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실행(상)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행하는 사역은 모두 사람을 떠날 수 없다. 사역의 대상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물 중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는 존재다. 사람의 삶과 모든 활동은 하나님을 떠날 수 없고, 전부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 심지어 하나님을 떠나서는 그 누구도 독립적으로 생존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사실이므로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다. 하나님이 행하는 모든 일은 인류의 이익은 물론, 사탄의 간계까지 겨냥한다.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왔고, 사람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결코 하나님을 떠날 수 없고, 하나님 역시 고의적으로 사람을 떠난 적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역은 모두 전 인류를 위한 것이고, 그의 생각은 언제나 선하다. 그리하여 사람에게 있어 하나님이 행하는 사역과 하나님의 생각(하나님의 뜻)은 모두 사람이 알아야 할 ‘이상(異象)’이 되었다. 이런 이상도 다 하나님의 경영이며, 사람이 할 수 없는 사역이다. 반면 하나님이 사역하면서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을 사람의 ‘실행’이라고 한다. ‘이상’이란 하나님 자신의 사역, 또는 사람에 대한 그의 뜻과 그가 사역하는 목적, 의의를 말한다. ‘이상’은 또한 ‘경영’의 일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경영’은 하나님이 사람을 상대로 하는 사역, 즉 그가 사람들 가운데서 하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역은 모두 사람이 하나님을 알아 가는 근거이자 길이며, 게다가 사람에게 너무도 중요하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이치나 사소한 일만 중시하고 그의 사역에 대한 인식을 등한시한다면, 절대로 하나님을 알 수 없거니와 그의 뜻에 맞게 행할 수도 없다. 사람이 하나님을 알아 가는 데 크나큰 도움이 되는 하나님의 사역들을 ‘이상’이라고 한다. 이러한 이상은 모두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하나님의 사역, 하나님의 뜻, 그리고 하나님 사역의 목적과 의의를 말한다. ‘실행’이란 사람이 해야 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는 하나님을 따르는 피조물이 마땅히 해야 하는 것으로, 사람의 본분이다. 사람이 해야 하는 것은 사람이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의 사역을 하면서 사람에게 요구한 것이다. 이 요구는 모두 하나님의 사역에 따라 차츰차츰 심화되고 높아진다. 예를 들어, 사람은 율법시대에는 율법을 지켜야 했고, 은혜시대에는 십자가를 져야 했다. 하나님나라시대(역주: 왕국시대)에는 그와 다르다. 사람에 대한 요구는 율법시대와 은혜시대보다 더 높아졌다. 이상이 높아지면서 사람에 대한 요구 또한 갈수록 높아지고, 명확해지며, 실제적으로 바뀐다. 마찬가지로 이상 역시 갈수록 실제적으로 바뀐다. 이렇게 많은 실제적인 이상은 사람이 하나님께 더 잘 순종하게 되는 데 이로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알아 가는 데에도 더욱 도움이 된다.

하나님나라시대에 행하는 하나님의 사역은 이전의 어느 시대보다 더 현실적이고, 사람의 본질과 성품 변화에 더 초점을 둔다. 이런 사역들은 하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 자신을 더 잘 증거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하나님나라시대에 사역하는 동시에 사람에게 이전의 어느 때보다 자신을 더 많이 공개한다. 즉, 사람이 인식해야 할 이상이 이전의 어느 시대보다 더 높아진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행한 사역이 전례 없는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나라시대의 사람이 알게 되는 이상은 전체 경영 사역에서 가장 높은 이상이다. 하나님의 사역이 전례 없는 경지에 이르러 사람이 인식한 이상 역시 가장 높은 이상이 되었고, 그에 따라 사람의 실행 역시 과거의 어느 시대보다 더 높아졌다. 사람의 실행은 이상에 따라 바뀌기 때문이다. 이상이 완전해진다는 것은 또한 사람에 대한 요구가 완전해짐을 뜻한다. 하나님의 모든 경영이 멈추면 그에 따라 사람의 실행도 멈추게 된다. 하나님이 사역하지 않으면, 사람은 이전의 규례를 지킬 수밖에 없거나 아예 행할 길이 없어진다. 새로운 이상이 없으면 사람에게 새로운 실행도 없고, 완전한 이상이 없으면 사람에게 완벽한 실행도 없다. 이상이 높아지지 않으면 사람의 실행도 높아지지 않는다. 사람의 실행은 하나님의 발걸음에 따라 바뀐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인식과 체험 역시 하나님의 사역에 따라 바뀐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떠날 수는 없다. 하나님이 잠시라도 사역하지 않으면 사람은 즉시 그의 진노 속에서 죽게 된다. 사람에게는 자랑할 만한 것이 조금도 없다. 오늘날 사람의 인식이 얼마나 높아지고, 체험이 얼마나 깊어졌든 하나님의 사역을 벗어날 수 없고, 하나님을 믿으면서 추구해야 하는 것과 사람의 실행은 이상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사역에는 사람이 마땅히 알아야 할 이상이 있고, 그에 따라 사람에게 적합한 요구를 제시한다. 그런 이상을 기반으로 삼지 않는다면 사람은 아예 실행하지도, 끝까지 따르지도 못할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거나 그의 뜻을 깨닫지 못한다면, 행하는 모든 것이 헛되고,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도 없다. 사람이 지닌 은사가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인도를 떠날 수는 없다. 또 사람이 제아무리 사역을 잘하고 많이 해도 하나님의 사역을 대신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어찌 되었든 사람의 실행은 이상을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이런 새 이상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에게는 새로운 실행이 없다. 그들의 실행이 진리와 무관한 까닭은 모두 규례와 죽은 율법을 지키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새 이상이 전혀 없고, 따라서 새 시대의 실행도 없다. 그들은 이상을 잃었고, 또한 성령 역사와 진리를 잃은 것이다. 진리가 없는 자는 모두 그릇됨의 후손이자 사탄의 화신이다. 어떤 인물이든 하나님 사역의 이상이 없어서는 안 되고, 성령의 함께함을 잃어서도 안 된다. 사람이 일단 이상을 잃으면 즉시 음부로 떨어져 흑암 속에서 살게 된다. 이상이 없는 사람은 흐리멍덩하게 따르는 자이고, 성령 역사가 없는 자이며, 지옥에서 사는 자이다. 이런 사람은 모두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자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간판으로 내건 자이다. 성령 역사와 성육신 하나님, 그리고 전체 경영의 3단계 사역을 알지 못하는 것은 이상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자는 모두 진리가 없는 사람이다. 진리가 없는 자는 모두 악을 행하는 사람이 아니겠느냐? 하지만 기꺼이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을 알고자 하며, 진정으로 하나님과 협력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상을 기반으로 삼은 자들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칭찬을 받게 되는 이유는 하나님과 협력하기 때문이다. 그 협력이 바로 사람이 마땅히 실행해야 하는 것이다.

이상(異象)에는 수많은 실행의 길이 포함되어 있다. 사람에 대한 실제적인 요구 역시 다 이상에 들어 있고, 사람이 알아야 할 하나님의 사역 역시 다 이상에 들어 있다. 예전에는 각 지역에서 특별 예배를 하거나 대예배를 하면, 한 부분의 실행 길만 강조했다. 그런 실행은 모두 은혜시대에 실행해야 했던 것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과는 별로 깊은 관계가 없다. 은혜시대의 이상은 기껏해야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뿐, 그 외에 더 큰 이상은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알아야 할 것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인류를 구속한 사역밖에 없었으므로 은혜시대에는 사람에게 알려 줄 이상이 더는 없었다. 그리하여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사람에게는 예수의 자비와 긍휼을 아는 것 외에 단순하고도 초라한 실행만 조금 있었을 뿐이다. 이는 오늘날과 너무도 큰 차이가 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어떤 모임을 가져도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현실적인 인식을 말할 수 없었고, 사람이 진입해야 할 가장 적합한 실행의 길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그저 포용과 인내를 바탕으로 단순한 세부 내용들만 조금 더해졌을 뿐, 그 본질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하나님은 동일한 시대에 더 새로운 사역을 전혀 행하지 않았고, 사람에 대한 요구 역시 포용하고 인내하거나 십자가를 지는 것에 그쳤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실행 외에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보다 더 높은 이상이 더는 없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더 많은 이상을 말하지 않았던 이유는 하나님이 그렇게 많은 사역을 행하지 않았고, 사람에 대한 요구 역시 유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쉽고 단순한 실행만 조금 했을 뿐, 어떻게 해도 그 범위를 벗어날 수 없었다. 오늘날 더 많은 이상을 말하는 까닭은 오늘날에 더 많은 사역, 율법시대와 은혜시대보다 몇 배 많은 사역을 행했으며, 사람에 대한 요구 또한 이전 시대보다 몇 배나 높아졌기 때문이다. 사람이 이 사역들을 분명하게 알지 못한다면, 이 사역들의 의의는 그렇게 크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이 사역들에 필생의 정력을 쏟지 않는다면 분명하게 알기 어려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복 사역을 하는 과정에서 실행의 길만 말한다면 사람을 정복할 수 없고, 이상에 대해서만 말하고 사람에게 요구하지 않는다면 이 역시 사람을 정복할 수 없다. 실행의 길만 말하면 사람의 정곡을 찌를 수 없고, 사람의 관념을 없앨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사람을 철저히 정복할 수도 없다. 사람을 정복하는 도구는 주로 이상이다. 그러나 이상 외에 실행의 길이 조금도 없다면 사람은 따라갈 수 없고, 나아가 진입할 수도 없다. 사역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음과 같은 원칙을 따른다. 이상 속에 실행이 있고, 실행 외에 또 이상이 있다. 사람의 생명과 성품의 변화 정도는 모두 이상에 따라 달라진다. 사람의 노력에만 기댄다면 변화의 폭은 그렇게 크지 않을 것이다. 이상이란 하나님 자신의 사역과 그의 경영을 말하고, 실행이란 사람이 실행할 길과 생존의 길을 가리킨다. 전체 경영에서 이상과 실행의 관계는 바로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이다. 이상을 없애거나 이상만 말하고 실행은 말하지 않는다거나, 또는 사람의 실행은 없애고 이상만 있다면 그것은 경영이라고 할 수 없고, 하나님의 사역이 인류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기는 더더욱 불가능하다. 그렇게 되면 사람의 본분이 없어질 뿐만 아니라 하나님 사역의 근본 취지마저도 부인하게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사역과 관계없이 사람에게 실행만 요구하고 더욱이 하나님의 사역을 알라고 하지 않는다면, 그런 사역은 더더욱 경영이라고 할 수 없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의 뜻도 모르면서 무작정 막연하게 실행하기만 한다면, 사람은 영원토록 온전히 합격한 피조물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부분의 내용은 모두 필수적이다. 오로지 하나님의 사역, 즉 이상만 있고 사람의 협력과 실행이 없다면 그것은 경영이라 하지 않는다. 또 사람의 실행과 진입만 있다면, 사람이 진입하는 길이 가장 높다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 사람의 진입은 반드시 사역과 이상에 따라 차츰차츰 바뀌어야지 마음대로 변해서는 안 된다. 실행의 원칙은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범위가 있다. 이 원칙들은 모두 사역의 이상에 따라 달라진다. 그렇기에 경영은 결국 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실행으로 귀결된다고 하는 것이다.

경영 사역은 인류 때문에 생겨났다. 즉, 인류가 있어서 생긴 것이지, 인류가 있기 전이나 태초에 천지 만물을 창조할 때 생긴 것이 아니다. 모든 사역에서 사람에게 이로운 실행이 없다면, 즉 하나님이 패괴된 인류에게 적합한 요구를 하지 않는다면(그가 행하는 사역에 사람에게 적합한 실행의 길이 전혀 없다면) 그 사역을 경영이라고 할 수 없다. 또 모든 사역에서 패괴된 인류에게 어떻게 실행하라고 요구하기만 하고 하나님은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의 전능이나 지혜를 조금도 나타내지 않는다면, 또한 하나님이 사람에게 얼마나 높은 요구를 하든, 사람들 가운데서 얼마나 오래 생활하든, 사람은 그의 성품을 조금도 알지 못한다면, 그와 같은 사역을 더더욱 경영이라고 할 수 없다. ‘경영’이라는 이 사역을 간단하게 해석하면 하나님의 사역, 그리고 그에게 얻어진 모든 사람이 그의 인도를 받으며 행하는 모든 사역을 뜻한다. 이런 사역을 ‘경영’이라고 총칭할 수 있다. 즉,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행하는 사역과,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이 그와 협력하는 것을 통칭하여 ‘경영’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사역은 ‘이상’이라고 하고, 사람의 협력은 ‘실행’이라고 한다. 하나님 사역이 높아질수록(이상이 높아질수록) 그의 성품은 사람에게 더 많이 공개되고, 사람의 관념과는 더 부합하지 않게 된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실행과 협력 또한 더 높아진다. 또 사람에 대한 요구가 높아질수록 하나님의 사역은 사람의 관념에 더 부합하지 않고, 그에 따라 사람에 대한 시련의 정도와 사람이 달성해야 하는 요구 기준도 더 높아진다. 사역이 끝날 때면 모든 이상이 완벽해지고, 사람의 실행에 대한 요구 역시 모두 완전무결한 상태에 이르게 된다. 그때가 바로 각기 부류대로 나뉠 때이다. 사람이 알아야 할 것을 이미 사람에게 모두 공개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상이 최고조에 이를 때는 사역도 그에 따라 막바지에 이르고, 사람의 실행 역시 절정에 이르게 된다고 하는 것이다. 사람의 실행은 하나님의 사역에 근거하고, 하나님의 경영 또한 사람의 실행과 협력을 통해야만 완전히 나타난다.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을 나타내는 존재이고, 전체 경영 사역의 사역 대상이며, 또한 전체 경영의 산물이다. 하나님 자신의 사역만 있고 사람의 협력이 없다면, 그의 전체 사역의 결정체로 삼을 만한 것이 없으며,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경영은 아무런 의미도 없어진다. 하나님은 사역을 하는 것 외에도 적합한 사역 대상을 택해 그의 사역을 나타내고, 그의 전능하고 지혜로운 사역을 실증해야만 그의 경영 목적을 이룰 수 있고, 모든 사역으로 사탄을 철저히 물리치는 목적도 이룰 수 있다. 그러므로 경영 사역에서 사람은 필수 불가결한 일부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경영이 성과를 거두고 최종 목적을 이루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다. 사람을 제외하고는 생명을 가진 그 어떤 생물도 그 역할을 담당할 수 없다. 사람을 경영 사역의 진정한 결정체로 만들려면, 반드시 패괴된 인류의 모든 패역을 벗겨 버려야 한다. 그러려면 시기에 따라 사람에게 적합한 실행을 요구하고, 또한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그에 상응하는 사역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마지막에 경영 사역의 결정체가 된 한 무리 사람들을 얻을 수 있다.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행하는 사역은 하나님 혼자 행해서 자신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사역에 적합한, 생기 있는 사람을 통해 그의 사역을 이뤄야 한다. 하나님은 먼저 이들에게 사역한 후, 다시 이들을 통해 그 사역을 나타내고, 그의 이러한 증거가 피조물 가운데 나타나게 할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사역하는 목적이 이루어진다. 하나님이 홀로 사역하여 사탄을 물리치지 않는 까닭은 하나님이 피조물 가운데서 직접 자신을 증거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면 사람이 진심으로 탄복할 수 없다. 반드시 사람에게 행한 사역으로 사람을 모두 정복해야만 피조물 가운데서 자신의 증거를 얻을 수 있다. 하나님만 계속 사역하고 사람이 협력하지 않거나 하나님이 사람에게 협력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성품을 알 수 없고, 하나님의 뜻 또한 영원히 사람에게 알려질 수 없다. 그것은 경영 사역이라고 할 수 없다.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을 알지 못한 채 혼자 노력하고 추구하고 애쓴다면, 그것은 짓궂은 장난을 하는 것이다. 성령 역사가 없다면 사람이 하는 일은 곧 사탄이 하는 짓이고, 모두 거역하는 것이자 악을 행하는 것이다. 패괴된 사람이 행하는 것은 모두 사탄을 연출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마음과 합하는 것은 하나도 없이 모두가 사탄을 나타내는 것이다. 모든 말씀은 이상과 실행이라는 두 부분을 벗어나지 않는다. 사람은 이상을 바탕으로 실행과 순종의 길을 찾아야 하며, 관념을 내려놓고 자신에게 없는 것을 얻어야 한다. 하나님은 사람이 그와 협력하고 그의 요구에 완전히 순종하기를 바라고,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을 보고 그의 전능을 깨달으며 그의 성품을 알기를 원한다. 결론적으로 이것이 바로 경영이다. 하나님과 사람의 결합이 바로 경영이며, 이것은 가장 큰 경영이다.

이상(異象)과 관련된 것은 주로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가리키지만, 실행과 관련된 것은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하는 것으로, 하나님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하나님의 사역은 하나님 자신이 완성하고, 사람의 실행은 사람 스스로 해야 한다. 하나님 자신이 해야 하는 것은 사람이 할 필요가 없고, 사람이 실행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과 무관하다. 하나님이 행하는 사역은 그 자신의 직분이므로 사람과 관계가 없다. 그 사역은 사람이 할 필요가 없고, 더구나 사람은 하나님이 행하려는 사역을 할 수도 없다. 사람이 실행해야 하는 것이라면, 사람은 반드시 해내야 한다. 헌신하는 것일지라도, 사탄에게 넘겨져 굳게 서야 하는 것일지라도, 그것은 다 사람이 해내야 하는 일이다. 하나님이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사역을 전부 끝내고,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것을 모두 사람에게 지시하고 나면, 나머지 사역은 사람이 해야 한다. 하나님은 직분 내의 사역만 할 뿐, 그 외의 사역은 하지 않는다. 사람에게 길을 가리켜 주고 길을 여는 사역만 행할 뿐, 길을 닦는 사역은 행하지 않는다. 사람은 모두 이 점을 깨달아야 한다. 진리를 실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사람의 본분이고,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하는 것으로서, 하나님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사람이 하나님도 사람처럼 진리와 관련해 고통받거나 연단받아야 한다고 요구한다면 그것은 사람의 패역이다. 하나님의 사역은 직분을 이행하는 것이고, 사람의 본분은 하나님의 모든 인도에 어떤 반항도 하지 않고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사역하고 어떻게 생활하든, 사람이 해내야 하는 것은 사람 스스로 완성해야 한다. 사람에게 요구할 수 있는 존재는 오로지 하나님뿐이다. 다시 말해,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사람에게 요구할 자격이 있다. 사람은 아무런 선택권도 없이 완전히 순종하고 실행해야만 한다. 이는 사람이 마땅히 갖춰야 할 이성이다. 하나님 자신이 행해야 할 사역을 다 하고 나면 사람은 조금씩 체험해야 한다. 전체 경영이 끝나는 마지막 때까지도 여전히 하나님의 요구대로 하지 못한다면 징벌을 받아야 한다. 사람이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은 패역한 탓이지, 하나님이 사역을 분명하게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지 못하는 자,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자, 충성을 다하지 못하고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는 자는 모두 징벌을 받을 것이다. 지금 너희에게 요구하는 것은 별도로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사람의 본분이고,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하는 것이다. 너희가 자신의 본분조차 다하지 못하거나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서 고생하는 것 아니겠느냐? 죽음을 자초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래 놓고 또 무슨 훗날과 앞날을 바라느냐? 하나님의 사역은 인류를 위한 것이고, 사람의 협력은 하나님의 경영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이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것을 다 한 다음에는 사람이 전력을 다해 실행하고 협력해야 한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사역에 자신의 온 힘을 다하고 충성을 바쳐야지, 관념을 계속 늘려 가거나 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사람을 위해 헌신하는데, 사람은 왜 하나님을 위해 충성을 다하지 못하느냐? 하나님은 사람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대하는데, 사람은 왜 조금도 협력하지 못하느냐? 하나님은 인류를 위해 사역하는데, 사람은 왜 하나님의 경영을 위해 자신의 본분을 조금도 이행하지 못하느냐? 이렇게까지 사역했음에도 너희는 보고도 행하지 않고 듣고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런 자는 모두 침륜될 대상 아니겠느냐? 하나님은 인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는데, 사람은 왜 지금까지도 착실하게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는 것이냐? 하나님께는 사역이 첫째이고, 자신의 경영 사역이 가장 중요하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고 그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첫째이다. 이런 것은 너희 모두가 알아야 한다. 너희에게 한 말은 이미 너희의 본질을 뼛속까지 짚어 냈고, 사역은 이미 전례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이 여전히 이 도의 진위를 분별하지 못하고, 관망하면서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언행 하나하나를 관찰하고, 하나님이 먹고 입는 것에 신경 쓰며, 관념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런 자는 모두 스스로 번뇌를 자초하는 사람 아니겠느냐? 이런 자가 어찌 하나님께 구하는 사람이겠느냐? 어찌 하나님께 진심으로 순종하는 사람이겠느냐? 자신의 충성과 본분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상관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행적’에만 관심을 두니 정말 가증스럽기 그지없는 자들이다! 사람이 깨달아야 할 것을 모두 깨닫고 실행해야 할 것을 모두 실행했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사람에게 복을 베풀어 줄 것이다. 사람에게 요구한 것은 모두 사람의 본분이고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만약 사람이 알아야 할 것을 깨닫지 못하고, 실행해야 할 것을 실행하지 못한다면 징벌받게 될 것이다. 눈에 띌 만큼 대적하지는 않았을지라도, 하나님과 협력하지 않는 사람은 적대시하는 자이고, 새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대적하는 태도를 지닌 자이다. 성령 역사에 특별히 ‘관심’을 가졌을지라도, 하나님이 요구한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고의로 대적하고 거역하는 자이다. 말씀에 따르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거역하고 대적하는 자이고, 본분을 이행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과 협력하지 않는 자이며, 하나님과 협력하지 않는 자는 성령의 역사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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