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칭과 신분에 관하여(상)

하나님이 쓰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의 사역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지난 사역(구약과 신약)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며, 오늘날의 사역에 대해 더 잘 알아야 한다. 즉, 6천 년에 걸친 3단계 사역을 모두 알아야 한다. 너에게 복음을 전하라 해도 네가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알지 못한다면 전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이 너에게 “성경은 무엇이고, 구약은 무엇입니까? 예수가 당시 했던 사역과 말씀은 무엇입니까? 당신들의 하나님은 뭐라고 얘기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네가 성경의 실상에 대해 말하지 못한다면 그들을 납득시킬 수 없다. 당시 예수와 그의 제자들도 구약에 관한 것을 많이 이야기했다. 그들이 본 것은 전부 구약이었다. 신약 성경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수십 년이 지난 후에 사람들이 쓴 것이다. 너희는 복음을 전하려면 주로 성경의 실상과 하나님이 이스라엘에서 행한 사역, 즉 여호와가 행한 사역에 대해 확실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예수가 행한 사역도 알아야 한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문제다. 그들은 이 두 단계 사역의 실상을 들어 보지 못했다. 복음을 전할 때는 일단 현재의 성령 역사는 말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들은 이 단계의 사역을 따라올 수 없다. 너희가 추구하는 것, 즉 하나님을 알고 성령 역사를 아는 것이 가장 높으며, 이 두 가지보다 더 높은 것은 없기 때문이다. 네가 먼저 높은 것을 말한다면 그는 따라오지 못할 것이다. 누구도 이러한 성령 역사를 체험해 보지 못했고, 이러한 사역은 전례가 없는 것으로, 사람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체험하는 것은 모두 과거의 낡은 것들이다. 어쩌다 성령 역사가 조금 있다고 해도, 그들이 체험하는 것은 현재의 성령 역사가 아니며, 하나님의 지금의 뜻도 아니다. 그들은 여전히 낡아 빠진 실행 방식에 따라 실행하며, 거기에는 새로운 빛도, 새로운 것도 전혀 없다.

예수 시대에 성령은 주로 예수에게 역사했다. 성전 안에서 제사장의 옷을 입고 여호와를 섬기던 사람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충성되게 여호와를 섬겼고 성령의 역사도 있었다. 다만 그들은 당시의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예전의 낡은 실행 방식에 따라 여호와께 충성했을 뿐, 그들에게는 새로운 인도가 없었다. 예수가 오면서 새로운 사역을 가지고 왔다. 성전 안에서 섬기던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인도와 새로운 사역이 없었으며, 성전 안에서의 섬김도 낡은 실행 방식들을 유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성전을 벗어나지 않은 그들에게 새로운 진입이 있을 리 만무했다. 새로운 사역은 예수가 가져왔으며, 또한 예수는 성전 안에서 사역하지 않고 성전 밖에서만 사역했다. 하나님의 사역 범위가 진작에 바뀌어 더는 성전 안에서 사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전 안에서 섬기는 사람은 기존의 상태만 유지할 뿐, 새 사역을 가져올 수 없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종교 인사들도 예전과 다름없이 성경을 숭배하고 있다. 네가 그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하면 그는 너에게 성경 글귀를 들이밀 것이다. 또한 숱한 근거를 찾아내 너를 어안이 벙벙하게 만들고 제대로 대꾸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러고도 또 너에게 죄를 덮어씌우며 어리석은 신자라고 여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조차 모르는 주제에 무슨 하나님을 믿는다고.’라며 너를 깔볼 것이다. 또한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신들이 믿는 분이 하나님이라면 그분은 왜 당신들에게 구약과 신약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그분이 이스라엘에서 동방으로 영광을 가져왔다면, 어째서 이스라엘에서 한 사역을 모릅니까? 예수님이 하신 사역은 왜 또 모르는 겁니까? 당신들이 모른다는 건 그분이 알려 주지 않았다는 말이겠죠. 그분이 예수님의 두 번째 성육신이라면 어째서 이러한 것들을 모른단 말입니까? 예수님은 여호와의 사역을 아시는데 그분은 왜 모릅니까?” 그들은 너에게 이런 질문을 할 것이다. 그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이 이런 것뿐인데, 이런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지금 이 흐름 속에 있는 사람은 성경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너희는 오늘날 하나님이 행하는 한 단계 한 단계의 사역을 모두 따라왔고,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으며, 이미 3단계의 사역을 확실히 깨달았기 때문에 연구하지 않고 포기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은 연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이 한 단계 한 단계의 사역에 대해 모르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성육신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과거에 선지자와 사도들이 한 사역과 어떻게 다릅니까? 다윗도, 예수님도 주라고 불렸습니다. 그들이 행한 사역이 서로 달랐으나 호칭은 같았어요. 왜 그들의 신분은 다른 겁니까? 요한이 본 것은 이상(異象)이었고, 마찬가지로 성령에게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는 성령이 하려는 말씀을 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어째서 요한의 신분은 예수님과 다른 거죠?”라고 물을 것이다. 예수가 한 말씀은 하나님을 완전히 대변할 수 있었고, 하나님의 사역을 완벽하게 대변했다. 요한이 본 것은 이상에 속한 것이며, 그는 하나님의 사역을 완벽하게 대변할 수 없었다. 요한, 베드로, 바울이 많은 말을 했고, 예수 또한 많은 말씀을 했는데, 그들의 신분에는 왜 차이가 있는 것이냐?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한 사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수가 대표한 것은 하나님의 영이었고, 하나님의 영이 친히 역사한 것이었다. 또한, 그의 사역은 새 시대의 사역으로, 누구도 한 적이 없었던 사역이었다. 그는 새로운 길을 열었고, 그가 대표한 것은 여호와이자 하나님 자신이었다. 그러나 베드로나 바울이나 다윗은 어떤 호칭으로 불렸는지에 상관없이 그저 피조물의 신분을 대변하고 예수 또는 여호와의 보내심을 받았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무리 많은 사역을 하고, 아무리 대단한 이적을 보였을지라도, 그저 피조물일 뿐, 하나님의 영을 대표하지는 못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받들어 또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사역했고, 또한 예수나 여호와가 열어 준 시대 안에서 사역한 것이지, 그 밖의 사역을 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그저 하나의 피조물에 불과했던 것이다. 구약을 보면, 수많은 선지자들이 예언을 하고 예언서를 썼으나, 누구도 그들을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가 사역하자 하나님의 영은 그가 하나님임을 증거했다. 그 이유는 무엇이냐? 이제는 너도 알았을 것이다! 과거의 사도며 선지자들은 각종 서신을 쓰고 많은 예언을 했으나, 후세 사람들은 그중 일부만 선택하여 성경에 실었고, 또 일부는 소실되었다. 그들의 말이 전부 성령에게서 비롯된 것이라면 어째서 좋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겠느냐? 또한, 어째서 선택된 것과 선택되지 않은 것이 있겠느냐? 정말 성령의 말씀이라면 사람이 그것을 고를 필요가 있었겠느냐? 예수의 말씀과 사역은 어째서 4복음서에 서로 다르게 기록되어 있겠느냐? 그것은 기록한 자의 실수가 아니냐? 어떤 이는 “바울이나 신약의 저자들이 쓴 서신과 행한 사역이 사람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고, 사람의 관념이 섞여 있다면, 당신(하나님)이 오늘날 하는 말씀에는 사람의 불순물이 전혀 없습니까? 사람의 관념이 조금도 없는 겁니까?”라고 물을 것이다. 하나님이 하는 이 단계의 사역은 바울이나 다른 사도들, 선지자들이 한 사역과 완전히 다르다. 신분만 다른 것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것은 행한 사역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바울은 매를 맞아 주님 앞에 엎드리게 된 후부터 성령에게 이끌려 사역하게 된 사람이다. 그는 보냄을 받은 사람이므로 그가 교회들에 쓴 편지는 전부 예수의 가르침을 잇는 것이었다. 그는 예수의 이름으로, 주의 보내심을 받아 사역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친히 올 때는 어떤 이름을 받들어 사역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을 대표해 사역한다. 하나님은 와서 곧바로 사역을 하지, 사람처럼 온전케 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며, 누군가의 가르침을 토대로 사역하지 않는다. 이 단계의 사역은 개인의 체험에 대한 간증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직접 그가 소유한 것에 따라 사역한다. 예를 들면, 봉사자의 시련, 형벌 시대, 죽음의 시련, 하나님을 사랑하는 시대 등등의 이러한 사역은 전부 과거에 한 적이 없는 사역이자 현시대의 사역이며 사람의 체험이 아니다. 내가 한 말 중에서 어떤 것이 사람의 체험이더냐? 전부 직접 영에서 비롯된, 영의 말씀이 아니더냐? 네가 자질이 너무 부족해 명확하게 알지 못할 뿐이다! 내가 말하는 실제적인 생명의 도는 길을 안내하는 것으로, 여태껏 그 누구도 말한 적이 없는 것들이다. 과거에는 누구도 이 길을 체험하지 못했으며, 누구도 이 실제를 알지 못했다. 내가 이 말을 하기 전에는 누구도 이런 말을 하지 못했고, 이런 체험을 이야기하지 못했으며, 이런 구체적인 것들을 말하지 못했다. 이런 내적 상태를 짚어 이런 것들을 드러낸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오늘날 내가 인도하는 이 길은 과거의 누구도 이끌지 못한 길이다. 만약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이라면 더 새로운 길은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바울이나 베드로는 예수가 인도하기 전까지는 자신의 체험이 없었다. 그들은 예수가 그 길을 개척한 다음에야 예수가 한 말씀과 이끌어 준 길을 토대로 체험할 수 있었으며, 그로 인해 수많은 체험을 하고 그런 서신들을 쓸 수 있었다. 그러므로 사람의 체험과 하나님의 사역은 다르며, 하나님의 사역은 사람의 관념, 사람의 체험으로 얻은 인식과 다르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현재 내가 새 길을 이끌고, 새 사역을 하고 있으며, 요한과 여러 선지자들이 한 말이나 행한 사역과 다르다고 누차 이야기한다. 나는 먼저 체험하고 나서 너희에게 말해 주는 식으로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절대 그렇지 않다. 만약 그랬다면 진작에 너희를 망치지 않았겠느냐? 과거의 많은 이들이 한 말도 인식 수준이 매우 높지만, 그들은 소위 영적인 사람이라고 하는 자들의 인식을 토대로 말한 것으로, 길을 이끄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체험, 깨달음,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중에는 사람의 관념도 있고, 사람이 종합해 낸 경험도 있다. 현재 내 사역의 성질은 그들과 완전히 다르다. 나는 다른 이의 인도를 받아 본 적이 없으며, 다른 이의 도움을 받은 적도 없다. 또한, 내가 말하고 교제하는 것은 누구와도 다르며, 여태까지 그 누구도 말한 적이 없는 것들이다. 오늘날, 너희 가운데 누가 사역하든 모두 내 말의 기초 위에서 사역한다. 이러한 말씀이나 사역이 없다면 누가 이러한 것(봉사자의 시련, 형벌 시대…)들을 체험할 수 있겠느냐? 누가 인식을 말할 수 있겠느냐? 너는 아직도 이러한 것들을 간파하지 못하겠단 말이냐? 어느 단계의 사역이든, 내 입에서 말이 나오면 너희는 나의 말에 따라 교제를 시작하고, 내가 한 말에 따라 사역하지, 너희 중 어떤 자가 생각해 낸 길이 아니다.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너는 이렇듯 간단명료한 문제를 간파하지 못했단 말이냐? 누군가가 생각해 낸 길이 아니고, 어떤 영적인 사람을 기반으로 생긴 것도 아니라 완전히 새로 개척한 길이다. 심지어 예수의 말씀 중 시대착오적인 것까지 많이 폐하였다. 내가 하는 말은 모두 천지개벽과도 같은 사역이며, 완전히 새로운 가업을 세우는 것이다. 나의 사역과 말은 모두 새로운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의 새 사역이 아니란 말이냐? 당시 예수의 사역도 이러했다. 그가 한 것은 성전 안에 있는 사람들이 한 것과도, 바리새인들이 한 것과도,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것과도 달랐으며,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 맞을까?’라며 감히 확정하지 못했다. 예수는 여호와의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 그가 와서 사람을 가르치며 한 말은 전부 새로운 것이었으며, 구약의 옛 선지자들이 한 말과 달랐다. 그런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확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것은 다 사람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너희 중 많은 이는 이 단계의 새 사역을 받아들이기 전에 모두 과거의 영적인 사람들을 토대로 실행하고 진입하는 길을 갔다. 하지만 오늘날, 내가 하는 사역은 완전히 다르기에 너희는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확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네가 과거에 어떤 길을 갔는지, 누구의 ‘밥’을 먹었는지, 누구를 너의 ‘아버지’로 여겼는지 상관하지 않는다. 내가 와서 새 사역으로 사람을 이끄는 이상, 나를 따르는 자는 모두 내가 한 말대로 해야 한다. 네가 어떤 ‘명문가의 자제’든 너는 나를 따라와야 한다. 너는 더 이상 과거의 실행 방식에 따라 실행해서는 안 된다. 네 ‘양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내려올 때가 됐고, 너는 마땅히 네 하나님 앞에 나아가 네가 얻어야 할 몫을 구해야 할 것이다! 네 모든 것은 전부 내 손안에 있으니 너는 네 ‘양아버지’를 너무 맹신하지 말아야 한다. 그는 너를 완전히 주관하지 못한다. 오늘 하는 사역은 전부 새로운 가업을 세우는 것이다. 오늘 말하는 것은 분명히 과거의 것을 토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 시작하는 것이다. 네가 이것을 사람의 힘만으로 세운 것이라고 한다면 너는 구제 불능의 눈먼 자이다!

이사야, 에스겔, 모세, 다윗, 아브라함, 다니엘 등은 이스라엘 선민의 지도자나 선지자였다. 왜 그들을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않았겠느냐? 성령은 왜 그들을 증거하지 않았겠느냐? 예수가 사역하고 말씀하자 성령은 왜 그를 증거했겠느냐? 왜 다른 사람은 증거하지 않았겠느냐? 똑같이 사람이고 육신이며, 모두 주로 불렸다. 그들이 어떤 호칭으로 불렸든 간에 그의 사역은 그의 어떠함과 본질을 대변하고, 그의 어떠함과 본질은 그의 신분을 대변한다. 호칭은 그의 본질과 관련이 없다. 반면 그가 나타낸 것과 살아 낸 것으로 그의 본질을 대변한다. ‘주’로 불리는 것은 구약에서는 매우 일상적인 일이었으며, 어떻게 불리든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본질과 원래의 신분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다.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 미혹하는 자들 중에도 ‘하나님’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지 않느냐? 어째서 그들은 하나님이 아니겠느냐? 그들은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 없고, 본래 사람이며, 다른 이를 미혹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본래 하나님이 아니므로 하나님의 신분이 없다. 다윗도 열두 지파에서 주로 불리지 않았더냐? 예수 또한 주로 불렸다. 왜 예수만을 성육신 하나님이라고 일컫는 것이겠느냐? 예레미야도 ‘인자’로 불리지 않았더냐? 예수도 ‘인자’로 불리지 않았더냐? 어째서 예수는 하나님을 대표해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있었겠느냐? 그 본질이 다르기 때문이 아니더냐? 또한, 그들이 한 사역이 다르기 때문이 아니더냐? 그런 것이 호칭에 달려 있단 말이냐? 예수도 인자로 불렸지만, 그는 하나님의 첫 번째 성육신으로, 정사를 메고 구속 사역을 완성하러 왔다. 바로 이 점이 예수의 신분과 본질이 똑같이 인자로 불렸던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말해 준다. 오늘날, 너희 중 누가 감히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이 하는 말이 전부 성령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누가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겠느냐? 그렇게 말한다면 어째서 에스라의 예언서와 옛 선지자들이 쓴 서적들을 없애 버렸겠느냐? 모두 성령에게서 비롯된 것이라면, 너희는 어째서 감히 마음대로 선택하는 것이냐? 너에게 성령의 역사를 선택할 자격이 있느냐? 이 밖에도 그들은 이스라엘의 수많은 이야기를 없애 버렸다. 네가 만약 과거에 기록된 그 책들이 전부 성령에게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왜 일부 책들을 없애 버렸겠느냐? 모두 성령에게서 비롯된 것이라면 전부 남겨 교회들에게 보내어 형제자매들이 보게 해야 하며, 사람의 생각을 섞어 함부로 취사선택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 바울, 요한 등 사람들의 체험에 개인의 깨달음이 섞여 있다고 해서 그들의 체험과 인식이 사탄에게서 나왔다는 말은 아니다. 그저 그들이 개인의 체험과 깨달음에서 비롯된 것들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그들은 당시의 현실적인 체험 배경을 토대로 인식했다. 그런 것들이 전부 성령에게서 비롯된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느냐? 만약 4복음서가 전부 성령에게서 나온 것이라면 어째서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네 사람이 당시 예수의 사역에 대해 한 말이 다 다르겠느냐? 못 믿겠다면 성경에 기록된 베드로의 이야기를 보아라. 베드로가 주를 세 번 부인한 사실이 다 다르고, 각각 ‘특색’이 있다. 식견이 없는 많은 사람들은 “성육신 하나님도 사람인데 그분이 하는 말씀이 전부 성령에게서 비롯된 것일 수 있겠습니까? 바울이나 요한의 말에 사람의 생각이 섞여 있다면, 그분이 하는 말씀에는 사람의 생각이 섞여 있지 않단 말입니까?”라고 말한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전부 눈멀고 식견이 없는 자들이다! 4복음서를 잘 보아라. 예수가 마친 일, 예수가 한 말씀에 대한 그들의 기록은 그야말로 각기 다 다르고, 각자 자신의 견해가 있다. 만약 저자가 쓴 것이 전부 성령에게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면, 마땅히 같고 일치해야지, 어째서 서로 다른 부분이 있느냐? 사람이 이러한 것들을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면 너무 어리석은 것이 아니겠느냐? 너에게 하나님을 증거하라고 한다면, 너는 어떻게 증거하겠느냐! 너의 그 인식 방식으로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겠느냐? 만약 다른 사람이 너에게 “요한이나 누가의 기록에 사람의 생각이 섞여 있다면, 당신들의 하나님이 하는 말씀에는 사람의 생각이 섞여 있지 않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너는 분명하게 대답할 수 있겠느냐? 누가, 마태는 예수가 하는 말씀을 듣고, 예수가 한 사역을 본 후에 개인의 인식을 말하고, 회고록처럼 예수가 사역한 사실의 일부를 기록했다. 너는 그들의 인식이 전부 성령의 계시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성경 외에도 영적인 사람들의 인식이 그들보다 높은 경우가 많았는데 어째서 그것들은 후세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냐? 그들도 성령께 쓰임 받은 사람들이 아니더냐? 너는 오늘날의 사역이 예수가 행한 사역의 기초 위에 나 자신의 견해를 더하는 것도 아니고, 예수의 사역을 배경으로 삼아 나의 인식을 말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수가 당시에 행한 것은 어떤 사역이냐? 내가 오늘날 하는 것은 또 어떤 사역이냐? 내가 행하고 말하는 것은 모두 전례가 없던 것들이고, 오늘날 가는 길은 모두 옛 사람들이 간 적이 없는 길이며, 역대의 사람들이 한 번도 간 적이 없는 길이다. 그것을 오늘날에 열었으니 영의 역사가 아니겠느냐? 과거에 리더가 되었던 사람들의 사역은 성령 역사라고 할지라도 전부 다른 이가 닦아 놓은 기초 위에서 행한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 자신의 사역은 다르다. 예수의 그 단계 사역도 마찬가지로 혼자 새로운 길을 열고, 세상에 와서 천국의 복음을 전했으며, 사람은 마땅히 회개하고 죄를 자백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수의 사역이 끝난 뒤, 베드로와 바울 등이 예수의 사역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승천한 다음, 그들은 그 영의 보내심을 받아 십자가의 도를 전하기 시작했다. 설령 바울이 매우 높은 내용들을 말했다 해도 그것은 예수가 한 말씀의 기초 위에서 한 것이다. 예를 들어 인내와 사랑, 고난받고, 머리에 수건 쓰는 것, 세례받는 것, 또는 지켜야 할 다른 규례를 전하는 것 등등은 전부 예수가 한 말씀을 토대로 한 것이다. 그들은 새로운 길을 열지는 못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당시 예수는 말씀하거나 사역할 때 규례를 지키지 않았으며, 성경의 구약 율법의 사역대로 하지 않았다. 반대로 은혜시대에 해야 할 사역에 따라 했을 뿐이다. 그는 그가 가져온 사역에 따라 행했고, 그의 계획에 따라 행했으며, 그의 직분에 따라 사역했을 뿐, 구약의 율법에 따라 사역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일을 구약의 율법에 따라 하지 않았다. 그는 선지자들의 말을 이루기 위해 사역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전적으로 옛 선지자들의 예언을 이루기 위해 각 단계의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규례를 지키거나 일부러 옛 선지자들의 예언을 성취하고자 온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하는 일은 옛 선지자들의 예언을 교란하지 않았으며, 그의 이전 사역을 방해하지도 않았다. 그가 하는 사역의 특이점은 어떤 규례도 지키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을 하는 것이었다. 그는 선지자도, 예언가도 아닌 ‘실무가’로, 매우 실제적으로 그가 해야 할 사역을 함으로써 그의 새로운 기원을 열고 새 사역을 시작했다. 물론, 예수의 사역으로 구약 선지자들의 말들이 많이 이루어졌고, 지금 하는 사역으로도 구약의 옛 선지자들의 예언이 이루어졌다. 다만 오늘은 너와 그 ‘오래된 책력’을 펼쳐 보면서 따지지 않을 뿐이다. 내가 해야 할 사역이 많고, 너희에게 해야 할 말도 많으며, 이러한 사역과 말은 그런 성경 구절들을 해석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사역은 너희에게 그다지 큰 의미도, 가치도 없고, 너희에게 도움이 되거나 너희를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새 사역을 할 것이며, 성경의 어떤 구절을 이루기 위해 일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이 땅에 와서 사역을 하는 이유가 단순히 성경에 나오는 옛 선지자들의 말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성육신 하나님이 크겠느냐, 아니면 옛 선지자들이 크겠느냐? 옛 선지자들이 하나님을 지배하는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이 옛 선지자들을 지배하는 것이냐? 이 말을 너는 어떻게 해석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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