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 (선집) [낭송]

목차

국도시대는 바로 말씀 시대이다

국도시대에 하나님은 말씀으로써 시대를 개척하고 말씀으로써 역사 방식을 바꾸며 말씀으로써 전체 시대의 사역을 한다. 이것은 말씀 시대에 하나님이 역사하는 원칙이다. 그는 말씀이 육신 되어 서로 다른 각도에 서서 말씀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난 하나님을 진실로 보게 하였고 하나님의 지혜와 기묘를 진실로 보게 하였다. 이렇게 역사하는 것은 사람을 정복하고 사람을 온전케 하고 사람을 도태시키는 목적에 더 잘 달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말씀 시대에 말씀으로 역사하는 진실한 함의이다. 말씀에 의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고 사람의 본질을 인식하고 사람의 진입해야 할 것을 인식한다. 말씀에 의하여 말씀 시대에 하려는 하나님의 모든 사역을 이루며, 말씀에 의하여 사람을 드러내고 사람을 도태시키며, 또한 말씀에 의하여 사람을 시련한다. 사람은 모두 말씀을 보고 말씀을 듣고 말씀의 존재도 인식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존재를 믿게 되었고 하나님의 전능ㆍ지혜를 믿게 되었으며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믿게 되었다. ‘말씀’이란 이 단어가 비록 보통이고 간단하지만,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은 오히려 천지를 진동하였고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켰으며 사람의 관념과 옛 성정을 변화시켰고 온 세계의 낡은 모습도 변화시켰다. 역대 이래 오늘의 하나님만이 이렇게 역사하며, 오늘의 하나님만이 이와 같이 말씀하고 이와 같이 사람을 구원한다. 사람이 이로부터 말씀의 인도 하에서 살게 되었고 말씀의 목양과 공급 중에서 살게 되었으며, 사람이 모두 말씀의 세계에서 살게 되었고 하나님 말씀의 저주와 하나님 말씀의 축복 속에서 살게 되었으며, 더 많은 사람들이 말씀의 심판ㆍ형벌 중에서 살게 되었다. 이런 말씀과 이런 역사는 모두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고, 모두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며, 모두 옛 창조 세계의 원 모습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써 창세하고, 말씀으로써 전 우주의 사람을 인솔하며, 또 말씀으로써 전 우주의 사람을 정복하고 구원하며, 최종에는 말씀으로써 전체 낡은 세계를 끝마친다. 이래야 전체 경영 계획의 전부를 완성하게 된다. 전체 국도시대에 하나님은 말씀으로써 역사하고 말씀으로써 역사 효과에 달한다. 그는 표적을 나타내지 않고 이적도 나타내지 않으며, 오직 말씀으로써 역사한다. 사람은 모두 말씀으로 인하여 자양을 얻게 되고 공급을 받게 되며, 모두 말씀으로 인하여 인식을 얻게 되고 진실한 경력이 있게 된다. 말씀 시대의 사람은 실로 크나큰 축복을 받았다. 육체의 고통도 받지 않고 하나님 말씀의 풍부한 공급을 마음껏 누렸으며, 찾고 구할 필요 없이 뛰어다닐 필요 없이 안일 중에서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았고 하나님이 친히 발한 음성을 들었고 하나님의 공급을 받았고 하나님이 친히 하는 역사를 보았다. 이것은 모두 역대 이래의 사람이 누릴 수 없었던 것이고, 모두 역대 이래의 사람이 받을 수 없었던 축복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온전케 하기로 작정하였다. 그가 어느 각도에 서서 말씀하든지, 다 이 사람들을 온전케 하기 위해서이다. 영의 각도에 서서 말씀하면 사람은 깨닫기 어렵고 실행의 길을 찾을 수 없다. 그것은 사람의 터득 능력이 유한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역사하여 달하는 효과는 다른바, 매 단계 역사마다 그의 용의가 있다. 뿐만 아니라 그가 반드시 서로 다른 각도에 서서 말씀해야 사람을 온전케 할 수 있다. 만약 영의 각도에만 서서 음성을 발한다면, 하나님의 이 단계 사역은 완성될 수 없다. 그의 말씀하는 말씨로부터 너는 그가 꼭 이 한 무리 사람들을 온전케 하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나님께 온전케 되려는 각 사람으로서 처음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선 하나님의 사역을 인식해야 한다. 새로운 방식에 진입하였고, 시대가 변화되었으며, 하나님의 사역 방식도 변하였고, 하나님의 말씀 방식도 달라졌다. 지금은 역사 방식이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시대도 바뀌었다. 이전에는 국도시대였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역사 단계였으며, 지금은 천년국도 시대이다. 천년국도 시대는 말씀 시대인데, 바로 여러 가지 말씀 방식으로써 사람을 온전케 하고 서로 다른 각도에 서서 말씀하여 사람에게 공급하는 것이다. 천년국도 시대에 들어서면, 말씀으로써 사람을 온전케 하기 시작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생명 실제에 진입하게 하는 것으로 사람을 정상 궤도에 이끌어 들어간다. 사람은 이렇게 많은 역사 절차를 경력하고서, 하나님의 역사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부단히 변화되고 부단히 심화되고 있는 것임을 보았다. 이렇게 오래 경과하면서 역사가 바뀌었다가 또 바뀌고 변하였다가 또 변하였지만, 아무리 변해도 사람을 만드는 하나님의 목적을 떠날 수 없고, 아무리 변해도 그 근본을 떠나지 않으며, 아무리 변해도 진리를 떠날 수 없고, 아무리 변해도 생명을 떠날 수 없는 것이다. 역사 방식이 변한다는 것은 다만 역사하는 형식이 변하고 말씀하는 각도가 변한다는 것이지, 역사의 중심 목적이 변한다는 것은 아니다. 말씀하는 말씨의 변화와 역사 방식의 변화는 모두 효과에 달하기 위한 것이지, 말씀하는 한가지 말씨가 한가지 사역 종지(宗旨)거나 사역 원칙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주로 생명을 추구하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생명을 추구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을 알기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네가 그래 국도에 들어가 왕 노릇 하기를 추구하는 것이 실제적인가? 오직 생명을 추구하여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에 달해야만 이것이 실제적이다.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를 실행하는 이것도 다 실제적이다. 한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한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경력하면, 실제적으로 경력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더듬어 내게 된다. 이것이 진실한 추구이다.

천년국도 시대에, 네가 이 새로운 시대에 진입하였는가 하는 것은 네가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였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너의 생명 실제로 하였는가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각 사람에게 나타나 최후에는 사람으로 하여금 모두 말씀의 세계에서 살게 할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각 사람 안에 깨우침과 빛비춤이 있게 할 것이다. 네가 만약 이 한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보아도 어리벙벙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흥미를 느끼지도 못한다면, 너의 정형이 비정상임을 설명한다. 네가 만약 이 말씀 시대에 진입할 수 없다면 성령 사역이 없게 되고, 네가 이 시대에 진입하였다면 성령 사역이 있게 된다. 네가 이 말씀 시대의 시작에서 도대체 어떻게 해야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이 시대에서, 너희들 가운데서 이 사실을 성취하려 한다. 즉 각 사람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내고 모두 진리를 실행해 낼 수 있고 마음으로써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사람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토대로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로 하고 모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며,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것에 의하여 하나님과 함께 왕 노릇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루는 것이 바로 이 사역이다. 네가 만약 하나님의 말씀을 보지 않는다면 되겠는가? 지금 많은 사람들은 하루 이틀 하나님의 말씀을 보지 않으면 견딜 수 없고 반드시 매일 보아야 한다고 느끼며, 볼 시간이 없다면 들어도 된다고 느낀다. 성령이 사람에게 이러한 느낌을 주고 이렇게 사람을 감동시키기 시작하는 것은 바로 말씀으로써 사람을 통제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게 하는 것이다. 네가 만약 하나님의 말씀을 하루라도 먹고 마시지 않는다면, 흑암을 느끼게 되고 목마름을 느끼게 되며 견딜 수 없음을 느끼게 된다. 이것은 너의 몸에 성령의 감동이 있음을 설명하고 성령이 너를 버리지 않았음을 설명한다. 그러면 너는 이 도의 흐름 속에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네가 만약 하루 이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지 않아도 지각이 조금도 없고 목마른 감도 없고 무슨 감동도 없다면, 성령이 너를 버렸음을 설명한다. 그렇다면 네 안의 정형은 정상이 아니다. 네가 이 말씀의 시대에 진입하지 못하였다면, 너는 뒤떨어진 사람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써 사람을 통제한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면 좋다고 느끼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지 않으면 행할 길이 없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양식으로 되었고 사람의 동력으로 되었다. 이전에 성경에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언급하였는데, 오늘 하나님이 이 사역을 이루려 한다. 그는 이 사실을 너희들 몸에 이루려 한다. 이전에는 사람이 며칠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보지 않아도 여전히 밥을 먹고 일을 하였는데, 무엇 때문에 지금은 안 되는가? 이 시대에 하나님은 주로 말씀으로써 모든 것을 통제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심판을 받고 온전케 되며, 최종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국도에 이끌려 들어가게 된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사람의 생명을 공급할 수 있으며,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사람에게 광명을 줄 수 있고 실행의 길을 줄 수 있다. 국도시대에서는 더욱 이러하다. 네가 하나님 말씀의 실제를 떠나지 않고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기만 하면, 하나님은 너를 온전케 할 것이다.

생명을 추구함에 있어서 시급히 성사하려 해서는 안 된다. 생명이 자라나는 것은 하루 이틀에 되는 일이 아니다. 하나님이 역사하는 것은 정상적이고 실제적이며, 역사하는 데는 모두 필요한 과정이 있는 것이다. 예수가 말씀이 육신 되어 33년 반에야 십자가의 사역을 완성하였는데, 하물며 사람의 생명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하나의 정상 사람, 하나님을 창현(彰顯)하는 사람을 만들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큰 붉은 용 국가에 있는 사람은 소질까지 낮아 장기간 말씀하고 역사해야 한다. 그러므로 너는 급히 효과를 보려 하지 말고, 적극적이고 주동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셔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공력을 많이 들여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서 실제적으로 실행할 수 있고 하나님 말씀에서 인식이 높아지고 견식이 넓어지고 분별이 늘어나고 지혜가 많아지면, 부지중에 너는 변화될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경력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할 수 있으면, 부지중에 너는 장성한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어도 실행해 낼 수 없다고 한다. 네가 조급해 할 것이 무엇인가? 일정한 분량에까지 자라면 네가 실행해 낼 수 있다. 네댓 살 되는 아이가, 그가 부모를 부양하지 못하고 부모를 공경하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지금 네 자신에게 얼마만한 분량이 있는지를 네 자신이 알아야 한다. 실행할 수 있는 것만큼 실행하고 하나님의 경영에 엇나가는 사람이 되지 말라. 너는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기만 하여라. 이후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을 원칙으로 하여라. 너는 먼저 하나님이 도대체 너를 온전케 할 수 있겠는가를 상관하지 말고, 이런 것을 연구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져와서 즉시 먹고 마시면, 하나님이 확실히 너를 온전케 할 수 있다. 그러나 먹고 마시는 데는 원칙이 있으니, 마구 먹고 마셔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면서 네가 인식해야 할 것을 찾아내야 하는데, 바로 이상(異象) 방면의 것이며, 또 하나는 실제적으로 실행하는 것을 찾아내야 하는데, 바로 네가 어떻게 진입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하나는 인식 방면의 것이고 하나는 진입 방면의 것인데, 이 두 가지 방면을 더듬어 냈다면, 즉 네가 어느 것을 인식해야 하고 어느 것을 실행해야 하는가를 알았다면,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실 줄 알게 된 것이다.

이후에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는 이것이 네가 말하는 원칙이다. 평소에 너희들이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교통할 수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교통의 내용으로 하여 자기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하였는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였는가, 성령이 어떻게 하였는가를 나누어라.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교통하기만 하면 성령이 너를 비추어 준다. 하나님 말씀의 세계로 되게 하려면 사람도 역시 협력해야 하는데, 네가 이것에 진입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할 수가 없고, 네가 함구불언하면 하나님이 너를 비추어 줄 수가 없다. 일이 없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 한담하지 말라! 너의 생활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충만케 하여라. 이야말로 경건한 신도이다. 교통하는 것이 얕아도 괜찮다. 얕은 것이 없으면 깊은 것이 없는바, 반드시 과정이 있어야 한다. 너의 훈련에 의해 네 몸에서의 성령의 빛비춤을 더듬어 내고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셔야 효과가 있겠는가를 한동안 모색하면, 너는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게 된다. 너에게 협력하는 심지가 있어야 비로소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원칙은 하나는 인식 방면의 것이고 하나는 진입 방면의 것이다. 어떤 말씀이 인식해야 할 것인가? 이상 방면(즉 하나님이 지금 무슨 시대에 진입하였는가, 또는 하나님이 지금 무엇을 이루려 하는가, 무엇이 도성육신인가 등등 이 모두가 이상에 속함)에 관련되는 것이 바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무엇을 진입해야 할 길이라고 하는가? 바로 사람이 실행해야 하고 진입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심에는 이 두 방면이 있는데, 이후에는 이렇게 먹고 마셔라. 이상 방면을 알았으면 더 보지 않아도 된다. 주로는 진입 방면의 말씀을 많이 먹고 마셔라. 예를 들면 마음을 어떻게 하나님께로 돌리는가, 마음을 어떻게 하나님 앞에 안정시키는가, 어떻게 육체를 배반하는가 등 이런 것이 실행해야 할 것이다. 사람이 먹고 마실 줄 모르면 진실한 교통이 생길 수 없으며, 먹고 마실 줄 알고 관건적인 것을 틀어쥘 수 있으면 교통이 자유롭게 되고 무슨 문제를 제기하여도 교통할 수 있고 실제를 틀어쥘 수 있다. 만일 하나님 말씀을 교통하는 데에 실제가 없다면, 즉 관건적인 것을 틀어쥐지 못한다면, 네가 먹고 마실 줄 모른다는 것을 설명한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싫증을 느끼는데, 이것은 모두 비정상적인 정형에 속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무리 읽어도 싫어하지 않고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고 언제나 하나님 말씀이 좋다고 느껴지면, 이 정형은 정상이다. 이것은 실제 진입이 있는 사람의 먹고 마심이다. 너는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 실제적이고 실로 사람이 진입해야 할 것이고 사람에게 큰 도움이 되고 좋은 점이 많아 사람의 생명 공급이라고 느끼는데, 이 느낌이 있는 것은 성령이 준 것이고 성령이 감동시킨 것이다. 이것은 너에게 성령 사역이 있고 하나님이 너를 버리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계속 말씀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귀찮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아도 되고 보지 않아도 된다고 여긴다. 이것은 비정상적인 광경이다. 그에게는 실제에 진입하는 것을 사모하는 마음이 없다. 이러한 사람은 온전케 되는 데에 대하여 사모하지도 않고 중시하지도 않는다. 네가 어느 때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지 않게 되면, 너의 정형이 비정상임을 설명한다. 이전에, 하나님이 버렸는가의 여부는 안에 평안이 있는가 없는가, 누림이 있는가 없는가를 표준으로 하였다. 현재 관건은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는가 하지 않는가, 하나님 말씀을 실제로 하는가 하지 않는가에 달렸고, 네가 충성하는가 하지 않는가, 하나님을 위하여 네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가 하지 않는가에 달렸다. 즉 하나님 말씀의 실제로써 사람을 가늠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말한 것이다. 네가 보기 좋아하면 너를 깨우쳐 주고, 보기 싫어하면 너를 깨우쳐 주지 않는다. 하나님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에게 깨우쳐 주고 그를 찾고 구하는 사람에게 깨우쳐 준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보았어도 하나님이 깨우쳐 주지 않았다고 하는데, 너는 어떻게 보았는가? 네가 말 타고 꽃구경하듯이 보고 실제를 중시하지도 않는데, 하나님이 깨우쳐 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애(寶愛)하지 않는 이러한 사람이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겠는가?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애하지 않으면 진리가 없고 실제가 없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애하면 진리를 실행해 낼 수 있는데, 이래야 실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니, 바쁠 때든 한가할 때든, 환경이 있든 없든, 시련이 있든 없든, 어느 때든지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셔야 한다. 어쨌든,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이 생존하는 토대이기에, 사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날 수 없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하루 세 끼니로 삼아 먹어야 한다. 온전케 되려 하고 하나님께 얻어지려 하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일이겠는가? 네가 지금 알든 모르든, 하나님의 역사를 꿰뚫어 보았든 보지 못하였든, 어쨌든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먹고 마셔야 한다. 이것이 적극적인 진입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진입할 수 있는 것은 재빨리 실행하고, 진입할 수 없는 것은 먼저 놓아두어라. 하나님의 많은 말씀을 네가 금방 보기 시작할 때에는 깨닫지 못하나, 두 달 석 달 후 심지어 1년 후에야 네가 깨닫게 되는데, 이것은 어찌 된 일인가? 그 원인은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는 데는 하루 이틀에 온전케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많은 경우에 네가 그의 말씀을 당시에 보자마자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당시에 어떻게 보아도 글자대로이니 반드시 한동안의 경력을 거쳐서야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많은 말씀을 하였으니, 너는 능력껏 먹고 마셔야 한다. 그러면 부지중에 네가 깨닫게 되고 부지중에 성령이 너를 깨우쳐 준다. 성령이 사람을 깨우쳐 주는 것은 흔히 모두 부지중의 정황 하에서 네가 간절히 사모하고 찾고 구할 때에 너를 깨우쳐 주고 인도하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 원칙은 네가 먹고 마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한다. 무릇 하나님의 말씀을 중시하지 않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언제나 다른 태도를 가지고 보아도 되고 보지 않아도 된다고 흐리멍덩하게 여기는 사람, 이러한 사람은 모두 실제가 없는 사람이다. 그의 몸에서는 성령 역사가 보이지 않고 성령의 깨우침도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사람은 공밥이나 얻어먹는 사람이고 끼어들어서 숫자만 채우는 남곽 선생이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로 하지 않으면 실제 분량이 없으며, 시련에 들어갈 때에는 네가 필연코 넘어질 것이다. 그때면 너의 진실한 분량이 드러난다. 평소에 실제에 진입하기를 추구하는 사람은 시련이 닥칠 때면 하나님 역사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양심이 있는 사람,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으로서는 실제 행동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해야 한다. 실제가 없는 사람은 작은 일이 좀 닥치면 설 수 없다. 실제 분량이 있는 것과 실제 분량이 없는 것은 절대로 같지 않다. 무엇 때문에 똑같이 먹고 마셨는데, 어떤 사람들은 시련 중에서 설 수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달아났는가? 뚜렷한 구별은 바로 실제 분량이 없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로 하지 않은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안에 뿌리 박히지 못하여 시련이 닥치기만 하면 길이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이 방면에서 설 수 있는가? 바로 큰 이상을 가지고 있거나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안에 그의 경력으로 된 것이고, 그의 실제 보임이 그의 생존 토대로 된 것이다. 이리하여 시련 중에서 설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실제 분량이자 생명이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기는 하여도 좀처럼 실행하지 않고 진실을 구하지 않는다. 진실을 구하지 않는 사람은 실행을 중요시하지 않는 사람이며, 하나님 말씀을 실제로 하지 않는 사람은 실제 분량이 없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은 시련 중에서 설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오면 너는 즉시 받아서 먹어라. 네가 얼마를 깨닫든지 간에, 어쨌든 네가 품어야 할 하나의 관점은 바로 먹고 인식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네가 해야 할 것이다. 너의 분량이 얼마만큼 자랄 수 있겠는가를 상관하지 말고 너는 그냥 먹기만 하여라. 이것이 사람이 협력해야 할 바이다. 너의 영적 생활은 주로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는 실제에 진입하는 것이다. 다른 것은 네가 중요시할 대상이 아니다. 교회를 인솔하는 자가 형제자매들을 인솔하여 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실 줄 알도록 하는 이것은 교회를 인솔하는 각 사람의 책임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든 나이가 어린 사람이든,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을 중요한 일로 삼아야 하고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한다. 만약 이 실제에 진입하게 되면, 국도시대에 진입한 것이다. 현재 다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지 않고는 살 수 없음을 느끼며 언제든지 하나님 말씀의 새로움을 느끼게 되는데, 사람은 바로 이 정상 궤도에 진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써 역사하고 말씀으로써 사람에게 공급한다. 사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향하고 사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면, 하나님 말씀의 세계에 진입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하였는데, 너는 얼마나 인식하였는가? 진입한 것은 또 얼마나 되는가? 만약 교회를 인솔하는 사람이 형제자매들을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이끌지 못하였다면, 이것은 직책을 다하지 못한 것이고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다! 너의 먹고 마심이 깊든 얕든, 터득 정도가 어떠하든지 간에, 어쨌든 너는 먹고 마실 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중요시해야 하며 먹고 마심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다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이 그렇게 많은 말씀을 하였는데, 네가 먹고 마시지 않고 추구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지도 않는다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할 수 없다. 네가 하나님을 믿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셔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경력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내야 한다. 이래야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 한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말해 낼 수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해 낼 수 없다면,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 하지 않는다. 이것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다”. 사소한 간증, 쓸데없는 것, 겉면의 것들만 말하고 실제는 조금도 없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너는 하나님을 믿는 정도(正道)를 전혀 더듬어 내지 못하였다. 무엇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먹고 마셔야 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지 않고 천당에 가기만을 추구하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인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첫째로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어떤 경로에 의하여 사람을 온전케 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지 않는다면 온전케 될 수 있겠는가? 하나님 말씀을 실제로 하지 않는다면 국도 자민(子民)이라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구비해야 할 것은 최소한도로 외면에 좋은 행위가 있어야 하는 것이며, 가장 주요한 것은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을 구비하는 것이다. 어떻든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떠날 수 없는데, 네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심의(心意)를 만족케 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서 얻는 것이다. 이후에 각방(各邦)ㆍ각파ㆍ각종ㆍ각계를 모두 말씀으로써 정복한다.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고 각 사람은 손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고 있는데, 이것에 의하여 온전케 한다. 안팎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인바, 입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고 실행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하고 안에 간직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이며, 안팎이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침투된다. 이러면, 사람이 온전케 된 것이다. 하나님의 심의를 만족케 하는 사람, 하나님을 위하여 간증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하나님 말씀을 실제로 한 사람이다.

말씀의 시대에 진입하면 천년국도 시대이다. 현재에 바로 이 사역을 이루고 있다. 이후에는 너희들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교통하는 것을 훈련하여라.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경력하는 것에 의해야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유로(流露)할 수 있다. 얼마간의 경력한 말을 해내는 것에 의해야만, 다른 사람이 너에게 탄복하게 된다. 너에게 만약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면, 누가 너에게 탄복하겠는가! 무릇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말해 낼 수 있는 사람이다. 네가 만약 하나님의 말씀을 말해 낼 수 없다면, 성령이 네 몸에서 역사하지 않았음을 설명하고 네가 온전케 되지 않았음을 설명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말씀의 중요성이다. 너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은 진리를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에게라야 하나님의 축복이 있게 된다. 이후에 하나님이 각종 각파에 또 더 많은 말씀을 할 것이다. 먼저 너희들 가운데서 말씀하고 음성을 발하여 너희들을 온전케 한 다음, 이방에 말씀하고 음성을 발하여 그들을 정복하고, 말씀에 의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으로도 감복하고 말로도 탄복하게 한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게시에 의하여, 사람의 패괴 성정이 적어졌으며, 모두 사람의 모양이 있게 되었고 패역 성정도 적어졌다. 말씀이 권세를 지니고 사람 몸에 역사하여 사람을 하나님의 빛 중에 정복한다. 하나님이 현 시대에 하려는 것과 사역의 전환점은 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기에,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다. 자신의 먹고 마심에 의하여 또 형제자매들과 교통하는 것에 의하여 자신이 실제적으로 경력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너의 인식은 전면적일 것이다. 이래야 참으로 실제적인 살아냄이 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