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 추구의 중요성과 길 (제 1 부)

방금 형제가 진리 추구를 주제로 교제했다. 이 많은 교제를 듣고 나니, 진리 추구가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느냐?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느냐? 아마 지금, 앞으로 열심히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공을 많이 들여 진리를 많이 깨닫고 실행하겠다는 준비가 되어 있고 또 그렇게 결심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마음먹는 것이 옳으냐? 당연히 옳은 것이다. 너희가 이토록 많은 교제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면 그건 비정상이다. 그 말들은 모두 헛된 교제에 지나지 않게 된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현현을 갈망하는 모든 이들, 진리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세 구원의 은혜를 기다리는 모든 이들에게 진리는 가장 중요하다. 진리 추구는 우리의 일과 생활, 육적 앞날을 비롯한 그 어떤 일보다도 훨씬 중요한 것이다. 이제 진리 추구의 중요성을 알겠느냐? 너희도 속으로 분명 느끼는 바가 있을 것이다. 진리 추구가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임을, 모든 이들에게 진리 추구는 일생일대의 큰일이라고 할 수 있음을 인식했을 것이다. 그 많은 교제를 듣고 난 뒤, 너희는 누구나 마음속에 이러한 토대가 생기고, 이러한 인식과 느낌, 이해를 얻었을 것이다. 그 인식과 느낌은 정확하고 옳다. 이는 너희가 이해한 것이 이미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이 너희 모두에게 하려는 일, 하나님의 뜻과 완전히 부합함을 의미한다.

사람들 대부분은 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다. 설령 어느 정도 진리를 깨달았다 해도 복을 받으려는 속셈을 내려놓지 못한다. 사람이 진리를 대하는 태도는 어떠하냐? 대다수가 속으로는 진리를 싫어하고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사람에게 진리는 낯설기 때문이다. 사람은 진리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진리가 어디서 왔는지, 왜 진리를 추구하고, 받아들이고, 실행해야 하는지, 하나님이 왜 그토록 많은 진리를 선포해야 하는지 더더욱 알지 못한다. 이런 문제는 누구에게나 낯설고, 사람이 지금껏 생각해 본 적도, 접해 본 적도 없는 문제이다. 현재 하나님은 말세 심판 사역을 하며 많은 말씀을 선포하였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길에서 진리의 여러 방면에 관련된 많은 일을 접하였다. 진리를 구하지 않으면 실행의 길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진리를 인식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반드시 현실과 연관 지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 구절 한 구절이 모두 진리로, 반드시 직접 체험해야 깨달을 수 있다. 사람이 태어나 성인이 되기까지, 그리고 직업을 갖고 가정을 이루기까지, 접하는 사람, 일, 사물,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포함한 사람의 생활 환경은 사실 모두 진리와 관련된다. 하지만 진리로 이런 일들을 대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진리는 매우 낯설다. 인류 전체를 통틀어 진리를 깨달은 이가 단 한 명도 없으므로 너희는 지금부터 진리를 마주하고 받아들이고 추구해야 한다. 이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네가 만약 하나님을 믿으면 진리를 추구해야 하고, 진리만이 너를 변화시키고, 온전케 하고, 구원받게 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진정 하나님 앞에 올 수 있게 한다는 사실을 아직 인식하지 못했다면, 또 인식하지 못한다면 너는 진리에 대해 관심도 생기지 않고, 추구하지 못해서 갈수록 의욕이 사라질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교회 생활을 하고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진리까지 추구해야 해? 우리가 악을 행하거나 사람을 따르는 것도 아니고, 더욱이 거짓 리더나 적그리스도를 따르며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잖아? 하나님 믿는 도리를 어느 정도 알고 끝까지 하나님을 믿을 수 있으니 너무 깊은 진리는 몰라도 돼.” 이것이 옳은 관점이냐? (옳지 않습니다.) 왜 옳지 않으냐? (사람은 진리를 얻어야 하나님께 구원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이제 어떤 이들은 인류가 구원받는 일에서 진리가 가진 중요성을 어렴풋하게나마 의식하기 시작했다. 비록 진리가 사람의 생명이 되는 가치와 의의를 간파하려면 멀었지만, 마음속에 생긴 그 작은 생각과 의식은 무척 소중하다. 문제는 그것이 사람 마음에 뿌리내릴 수 있느냐 없느냐인데, 이것은 그 사람이 앞으로 추구하는 바에 달렸다. 네가 지금 그런 의식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로, 구원받는 길로 들어설 희망이 있다는 뜻이다.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예를 들어, 네가 소극적이고 연약할 때, 진리의 공급과 붙들어 줌이 없다면 네가 강해질 수 있겠느냐? 네가 너의 연약함을 이겨 낼 수 있겠느냐? 네가 왜 연약하고 소극적인지 인식하고 해부할 수 있겠느냐? 절대 불가능하다! 네가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할 때, 네가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이런 패괴 성품을 해결할 수 있겠느냐? 본분을 이행하면서 하나님께 충성할 수 있겠느냐? 사람이 자신을 인식하고 자신의 패괴, 자신의 교만을 해결하려면, 진리를 구하지 않고 가능하겠느냐? 사람은 늘 하나님에 대해 관념을 가지고 있고, 늘 자신의 관념과 상상으로 하나님을 가늠한다. 진리를 사용하지 않고 이런 것들을 해결할 수 있겠느냐? 해결할 수 없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일에 부딪히고 그때마다 선택의 순간에 직면한다. 그런데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 우리는 실행 길이 없다. 그리고 패괴 성품을 드러내며 잘못을 저지르고 잘못된 길을 가기가 쉽다. 사람에게 패괴 성품이 존재하는데, 본인이 이해한 얼마 안 되는 글귀와 도리만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 진리를 구하지 않는다면 살면서 부딪히는 일마다 원칙도 없고 실행할 길도 없고, 더 나아가 목표와 방향도 없다고 할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네가 하는 일은 하나같이 진리 원칙에 위배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동에 속하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다. 그러면 너희의 행동은 하나님께 혐오받고 저주받을 것이다. 너희가 패괴 성품대로 살면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너희 중 구원받을 수 있는 이는 단 한 명도 없다. 그러므로 모든 이가 진정으로 진리를 깨닫기 전에는 심판과 형벌, 채찍질과 징계를 마주해야 한다. 이런 심판과 형벌, 채찍질과 징계는 사람이 진리를 얻어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너희가 하나님 믿는 도리를 어느 정도 알았다고 해도 매번 일을 겪을 때마다 당혹스럽고, 어찌할 바를 모를 때가 많을 것이다. 하나님의 뜻도 알지 못하겠고, 어떻게 실행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아무리 초조해도 방법이 없고, 교제하며 구하려 해도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고, 하나님 말씀에서 답을 찾으려 해도 막막하기만 하고, 목표도 없을 때가 많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이는 갓 믿기 시작한 사람들이 범사에 진리를 구할 줄 몰라서 보이는 모습이다. 그래서 너희는 예배 때 대개 진리와는 무관한 질문을 하고, 진리와 무관한 교제를 하곤 한다. 이를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생활에서 진리를 실행할 줄 모르고, 일이 생겼을 때도 진리를 구할 줄 모르고, 실행 원칙과 목표로 삼은 진리는 더더욱 없다. 이는 누구나 겪는 어려움이 아니냐? 임하는 일에서 진리 원칙을 이미 파악하고, 진리의 본질을 깨달았다면 늘 당혹감을 느낄 수 있겠느냐? 분명 아닐 것이다. 설령 다소 당혹감을 느낀다 해도 그것은 진리에 대한 이해 정도가 너무 얕거나, 진리에 대한 체험이 그다지 깊지 않은 탓에 하나님 뜻을 알지 못하고, 본인의 패괴 성품이 해결되지 않아 마음속으로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지금 너희가 진리를 추구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어려움이 무엇이냐? 너희더러 어떤 진리를 주제로 교제하라고 할까 두려운 것 아니냐? 본인이 글귀와 도리만 말하고 실제를 교제하지 못할까 두려운 것 아니냐? 일이 생겼을 때 머릿속이 하얘질까 봐 더 두려운 것 아니냐? (그렇습니다.) 그것은 바로 너희 마음에 진리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진리가 있다면 그런 일이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일이 생겼을 때 하나님의 말씀에서 진리를 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올바른 답을 즉시 얻지 못하면 곧바로 절충안을 택한다. 즉, 하나님 말씀을 글자적인 의미만 이해한 뒤 규례를 지키면 그만인 것이다. 그런 다음 기도하면서 평안과 편안함을 느낀다. 형제자매들한테 물어봐도 자기보다 더 나은 생각도 없는 것 같아서 이렇게 실행하는 게 맞겠거니 생각한다. 사실 이런 식으로 실행하는 것은 진리의 기준, 진리 실제와 너무 동떨어지고, 하나님의 뜻과도 너무 동떨어진 것이다. 그것은 진리를 실행하는 원칙이 아니다. 진리를 실행하고 깨달으려면 먼저 실생활에서 맞닥뜨린 일 가운데서 진리를 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에 근거하여 일을 바라보고, 문제의 본질을 확실히 하면 어떻게 실행해야 진리 원칙에 부합할지 알게 된다. 늘 이렇게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여 일을 바라본다면 주변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손과 행사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주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하나님을 믿는 것이나 진리와 무관하다고 생각하고, 그저 자신의 기호대로, 사탄의 철학으로 대하는데, 이런 식으로 해서 공과를 배울 수 있겠느냐? 절대 불가능하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10년, 20년 믿고도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생명 진입이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실생활 속으로 들어오게 하지 못하고,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여 주변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을 대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자신에게 임한 모든 일을 분별하지 못하며, 진리 원칙대로 처리하지도 못한다. 이런 사람은 생명 진입이 없는 것이다. 또 어떤 이는 예배에서만 하나님 말씀을 읽을 때 마음을 약간 쓰고 인식도 조금 말할 수 있지만, 실생활에서는 어떤 문제가 임해도 하나님 말씀을 적용하지 못하고 어떻게 진리를 실행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실생활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진리나 하나님의 말씀과는 관계가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 말씀이나 진리를 하나의 지식처럼 여기며, 실생활이나 일을 바라보는 그의 관점, 인생 목표, 인생의 추구 등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 이런 식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어떠하냐? 그가 진리를 깨닫고 실제에 진입할 수 있겠느냐? 이런 식으로 하나님을 믿는 자가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겠느냐? 그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며,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그는 가정, 결혼, 일, 진로 등 모든 일을 포함해 자신이 일상생활 속에서 마주하는 모든 문제를 진리와 무관하게 보고, 사람의 방식으로 해결한다. 이런 식의 체험 방식으로는 영원히 진리를 얻을 수 없고, 하나님이 사람에게서 무엇을 이루려는지, 어떤 성과를 내려는지도 영원히 이해할 수 없다. 하나님이 진리를 선포한 것은 사람을 구원하고 사람의 패괴 성품을 정결케 하고 변화시키기 위함이다. 하지만 사람은 진리를 받아들이고 추구해야 자신의 패괴 성품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며, 실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하고 실행해야 진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도 모른다. 이런 자는 어리석고 무지한 사람 아니겠느냐? 가장 어리석고 황당한 사람 아니겠느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시종일관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바로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종교 의식을 중시하고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거나 체험하는 법이 없다. 교계의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님을 믿는 이 중차대한 일을 종교 신앙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불신파 아니겠느냐? 이방인 아니겠느냐? 진리를 추구할 때는 수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거기에는 간단한 부분도 있고 복잡한 부분도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먼저 우리 주변에서 발생한 모든 일에서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고 체험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하나님을 믿으면서 얻어야 할 진리와 추구해야 할 진리가 너무도 많다는 것을, 진리는 더없이 실제적이며 진리가 곧 생명이라는 것을 차츰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는 것은 바로 인류가 진리를 얻어 생명으로 삼게 하기 위함이다. 지음 받은 인류라면 모두 진리를 받아들여 생명으로 삼아야 한다.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이나 리더 일꾼,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만 진리를 받아들여 생명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전 인류를 대상으로 하며, 하나님은 전 인류를 향해 음성을 발하고 말씀한다. 그러므로 피조물이라면, 그리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하나님 말씀과 진리를 받아들여야 하고, 매사에 진리를 구한 다음 진리 원칙대로 실천하여 진리를 실행하고 진리에 순종해야 한다. 만약 리더 일꾼에게만 진리를 실행하라고 요구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뜻과 완전히 어긋나는 것이다. 하나님이 선포한 진리는 모든 인류를 대상으로 하며,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지, 소수의 몇 사람만 구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이 선포한 말씀들이 그렇게 큰 의의가 없을 것이다. 현재 너희는 진리 추구에 길이 있느냐? 진리를 추구할 때 가장 먼저 어떻게 실행해야겠느냐? 가장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먹고 마시고, 설교 교제를 많이 듣고, 일이 임했을 때 많이 기도하고 구해야 한다. 갖춘 진리가 많아지고, 너희가 성장이 빠르고, 분량이 생기면 본분을 이행하거나 사역을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고, 일부 시련이나 시험들을 이겨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너희 스스로도 확실히 얼마간 진리를 깨닫고 얻었다고 느낄 것이며, 하나님이 한 말씀은 모두 진리로, 패괴된 인류가 구원받음에 있어 가장 필요한 진리임을, 또한 유일무이한 창조주가 사람에게 베풀어 주는 생명의 진리임을 느낄 것이다. 지금 너희는 체험이 없고 그저 갈망하는 마음만 조금 가지고 있다. 네가 생각하기에 하나님 말씀은 무척 심오해서 그 안에는 네가 이르지 못한 것들, 네가 깨닫지 못한 진리도 너무 많고, 어떤 사물은 아직도 본질도 간파하지 못한 것 같다. 자신이 진리에 대한 이해도 너무 얕고, 그저 이렇게 갈망하는 마음, 그런 의욕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진리를 얻을 수 있을지는 너희가 앞으로 어떻게 실행하고 추구하느냐에 달렸다.

말세 심판 사역에서 하나님이 간단한 진리 몇 가지만 선포한다고 해 보자. 너무 깊이 있는 말씀을 하지 않고, 더욱이 사람을 심판하고 폭로하는 말씀은 거의 하지 않는다면, 그저 사람이 받아들이고, 사람의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말씀만 선포하고, 그저 약속과 축복의 말씀, 혹은 사람에게 권면하는 말씀만 한다면, 사람이 그런 말씀을 받아들였다고 한들 구원에 이를 수 있겠느냐? 예를 들어, 하나님이 이렇게만 말씀한다고 하자. “너희는 모두 너무 깊이 패괴된 자요, 진리가 없는 자, 나에게 충성심이 없는 자들이다. 너희 본성 본질은 이미 사탄의 본성으로 바뀌었고, 너희는 이미 살아 있는 사탄으로 변했다. 너희는 나와 적대적이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자들이다.” 그런 다음 사람들에게 말한다. “너희가 묵상해 보거라!” 그리고 곧바로 또 이렇게 말한다.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을 나는 축복하느니라. 내게 충성하는 사람은 내 마음을 흡족게 하고, 끝까지 갈 수 있고, 내 약속을 얻을 수 있느니라.” 하나님이 그저 간단하게 이런 말씀을 알려 주면 사람이 감동을 받겠느냐? 진리에 이르려고 노력하겠느냐? 어떤 느낌을 받겠느냐?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벌써 다 읽어 봤어. 비록 우리가 패괴 성품은 있지만, 악인도 아니고 하나님을 대적할 리도 없잖아. 단지 패역한 성품에다 도덕적으로 약간 타락하고, 품성이 저열해 세상의 흐름을 따르기 좋아할 뿐이야. 하지만 이제 진리를 좀 깨달아 스스로를 반성하고 인식할 수 있어. 이런 패괴된 것은 분명 벗어 버릴 수 있을 거야.” 많은 이들이 이런 내적 상태가 아니냐? 그들은 하나님 믿는 것에 관한 도리를 이해하면 진리를 깨달은 것으로 착각하는데, 이건 매우 위험한 일이다. 글귀와 도리나 읊어 대는 자들은 득의양양하다가도 일단 시련이 닥치면 그 즉시 넘어져 드러난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릴 수 있겠느냐? 불가능하다. 너희는 알아야 한다. 지금 시간이 많지 않다. 진리를 얻기 위해 수고하고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면 관념과 상상대로 하나님을 믿으면서 허송세월을 보내기 쉽다. 그러다 대재난이 닥치면 그때는 아무리 진리를 추구하고 싶어도 늦은 것이다. 그러면 구원받을 기회를 완전히 잃어버리는 것이다. 너희는 지금 비록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 뜻은 깨닫지 못한다. 하나님이 왜 진리를 선포하여 심판 사역을 하는지, 정말 아느냐? 하나님이 선포한 모든 말씀과 주제, 각각의 진리는 모두 의의가 있고, 너희에게 무척이나 유익이 된다. 오늘 사람이 이를 보고, 체험하고, 느낄 수 있는지는 관계없다. 또한 지금 수확이 얼마나 되는지도 관계없다. 어쨌든 3~5년 후에 너희는 오늘 하나님이 한 말씀이 진실하고, 하나님이 말씀을 선포하기를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하나님이 만약 은혜시대 때처럼 사람은 자기 품에 있는 어린 양이고,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되찾겠다며 사람을 달랜다면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은 정말 위대하고, 하나님은 사람을 너무나 사랑하시는구나!’ 사람이 만약 늘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을 대한다면 진실로 하나님을 찾지 않고, 하나님 앞에도 오지 않을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께 경외심도 갖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진실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지 못해 여전히 가벼운 태도로 하나님을 대하고 진리를 대할 뿐만 아니라 마귀 사탄처럼 하나님을 대적할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되면 진리가 무엇인지 영원히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따른다는 것이 어떤 건지, 진리를 구하고 얻는 것이 어떤 건지 결코 진정으로 깨닫지 못한다. 이것은 틀림없다. 하나님이 그 말씀들을 선포하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을 형벌, 심판하지 않고, 엄한 말씀으로 사람들을 대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곧 진리를 얻은 것으로 알고, 하나님을 믿으면 나중에 들림 받아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서 왕권을 잡는 줄로 알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이면 백부장쯤은 할 수 있겠지!”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는 크게 바라는 것도 없어. 하나님나라에서 대문 지키고 길이나 쓸어도 좋아!”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초심이자 이상과 바람이다. 하나님은 그 많은 말씀을 통해 사람의 관념 상상과 지나친 욕망, 사람의 패괴 성품을 적나라하게 폭로했다. 사람이 생각하는 것은 그 어느 하나도 진리에 맞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않는다. 사람이 바라는 것, 사람이 도달하려는 이상 중 그 무엇도 하나님 마음에 합하지 않고 완전히 하나님과 배치된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은 후부터 마주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의 말씀, 하나님이 사람의 본성 본질을 폭로하는 말씀, 사람의 관념에 어긋나는 말씀, 사람의 관념과 상상에 맞지 않는 하나님의 사역 방식이다. 비록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사역에 협력하기 원하고,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이기 원하지만 하나님의 요구에는 도달하기 어렵다. 많은 이들이 진리 추구에 관한 말만 나오면 흥미를 잃고, 진리 교제란 말만 들으면 졸음이 쏟아지고 듣고 싶은 생각이 싹 달아나는 반면 비밀에 관한 얘기나 복을 받고 약속을 얻는 얘기만 나오면 의욕이 샘솟는데, 이건 어찌 된 일이냐? 마음속 깊이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진리 추구를 너무 귀찮은 일, 신경 쓰이고 고생스러운 일, 대가가 너무 많이 따르는 일이라며 꺼리기 때문이다. 진리를 추구하는 일이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나 동시를 읽는 것처럼 간단하다면 아마 흥미를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쉽고 간단하고,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되고, 에너지를 너무 많이 쏟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진리 추구는 그렇게 쉽고 간단하지 않다. 자질이 뛰어난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완독했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진리 실제에 진입하는 것도 아니고, 글귀와 도리를 이해했다고 해서 진리 실제에 진입했다는 뜻도 아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을 믿을 때 의욕이 넘쳐서 예배 때나 설교 교제를 들을 때 꼬박꼬박 필기를 하지만, 시간이 지나 곰곰이 생각해도 뭔가 별로 얻은 것도 없다. 그리고 까맣게 잊어버려서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나지 않으면 진리를 얻는 일이 정말 쉽지 않다고 느끼고 그제서야 하나님 믿는 일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떤 사람은 예배가 끝나면 얻은 것도 많고 깨달은 바도 많다고 느끼다가도 하룻밤 자고 나면 싹 잊어버린다. 예배를 드리지 않는 것과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어떤 이는 하나님 말씀을 읽고 깨우침과 빛 비춤을 얻고 속으로 흡족해하다가도 이방인과 말만 조금 섞으면 마음이 바로 콩밭으로 달아난다. 집으로 돌아와서 하나님께 기도해도 하나님을 느낄 수 없고, 진리 추구니, 성품 변화니, 하나님께 구원받는 것이니 하는 것도 죄다 잊어버린다. 이는 바로 사람의 분량이 너무 작아 글귀와 도리만 이해할 뿐, 하나님 말씀이 마음속에 아직 뿌리내리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마음속에 아직 하나님의 자리가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바깥세상의 일만 대하면 마음속에서 하나님이 권세 잡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 사역을 체험하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약간의 시련과 실패와 좌절을 겪지 않으면 사람은 진정한 수확을 얻을 수 없다. 죽어라 외우는 것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이제, 몇 년씩 믿은 많은 이들이 비로소 일부 진리를 깨닫기 시작했다. 특히 좌절과 실패를 겪은 뒤에야 비로소 진리 추구의 중요성을 깨닫고,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읽기 시작하고, 열심히 진리를 교제하고 실행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실제에 진입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이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난 왜 조금만 어려움이나 장애물을 만나면 거기에 얽매여 쩔쩔매고, 그때마다 하나님 믿는 게 너무 힘들게 느껴질까? 왜 조금만 곤란한 일이 생기면 소극적이 되고 하나님 믿을 의욕이 사라질까? 어떨 때는 예배에도, 하나님 말씀에도 흥미가 안 생기는데 왜 이방 얘기만 나오면 신이 날까?” 이는 어떻게 된 것이겠느냐? 사실 사람의 본성 본질을 놓고 볼 때,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데, 하나님을 믿는 마음이 진실할 수 있겠느냐? 마음에 하나님의 자리가 있겠느냐? 마음에 하나님이 있겠느냐? 틀림없이 그렇지 않을 것이다. 마음에 하나님이 없고 하나님의 자리가 없다는 것은 마음에 진리가 없다는 뜻이며, 네가 어떠한 진리도 깨닫지 못하고 실행하지도 않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하나님 말씀을 묵상한다든가 진리를 실행하는 것 같은 얘기만 나오면 흥미를 잃고, 길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만약 네게 돈을 벌어 오라고 하면서 어떤 일을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거라고 하면 너는 어떻게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그 일을 해낼 것이다. 실패해도 겁내지 않고 계속 시도할 것이다. 네가 이익에 이끌렸기 때문이다. 너는 마음이 이익에 사로잡혔는데, 이익이 최우선인 것이다. 너는 돈과 이익을 너무나도 중요하게 생각해 쉽게 내려놓을 수 없을 것이며, 그리하여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네 바람과 목적을 이루려 하고, 심지어는 어떤 대가도 불사할 것이다. 그렇기에 하는 말인데, 네가 진리 추구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로 생각한다면 길이 없거나 시간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네 진리 추구와 실행을 가로막는 어려움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너희에게는 이런 의지가 있느냐? 이를테면 부모는 자식을 만족게 하기 위해 모든 대가를 치른다. 자식이 대학 가는 데 얼마가 필요하다고 할 때 집에 그만한 돈이 없으면 부모는 빌려서라도 그 돈을 마련하려고 사방으로 뛰어다닌다. 혹 여의치 않으면 궁리 끝에 장사를 하거나 일이라도 하려고 할 것이다. 부모는 이렇게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마련한 돈으로 자식을 대학에 보내고 어엿한 인재로 키워서 밝은 앞날을 열어 주려 한다. 너희가 진리를 추구할 때도 이런 의지가 있다면, 아무도 어려움 때문에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다. 지능이 떨어지거나 천성적으로 두뇌에 문제가 있지 않은 이상, 태어날 때부터 지적 장애가 있지 않은 이상, 정상인의 사유로 도달할 수 있는 상태는 너도 도달할 수 있고, 어떤 어려움도 어려움이 아닐 것이다. 진리 추구는 사람의 상상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반드시 성령 역사가 있어야 한다. 사람은 단지 협력할 뿐이다. 우리에게 추구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성령이 우리를 이끌어 줄 것이다. 늘 공급하고 깨우쳐 우리가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우리가 깨닫지 못한 진리를 깨닫게 할 것이다. 사람이 못 하는 일들을 하나님은 전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다. 만약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는다면 사람이 아무리 공을 들이고 힘을 써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은혜시대에도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고 따른다고 했지만 오직 천당에 가는 것만이 목표였다.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고 체험하는 일에는 관심도 없었고, 어떻게 구원받는지도 몰랐다. 단지 규례를 지키거나 예배를 드리고 거기다 성경을 좀 읽으면 이만하면 죽어서 천당에 갈 수 있겠거니 하는 막연한 기대를 품을 뿐이었다. 하지만 말세 사역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하나님의 모든 사역이 다 현실적이어서 우리는 실제로 대가를 치르고, 또 실제로 구하고 체험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이 선포한 말씀에서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은혜시대와 같은 방식으로 믿는다면, 꼬박꼬박 예배드리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만으로 들림 받아 천당에 오르고 셋째 하늘에 오르기를 기다린다면, 사람이 얼마나 교만해지겠느냐! 패괴된 인류가 바로 이러하다. 하나님이 어떻게 사역하든, 약속을 주기만 하면 꼭 붙들고 놓지 않는다. 또 그것을 규례로 삼아 지키면서 하나님의 사역이나 뜻은 조금도 구하지 않고 오로지 들림 받아 천당에 갈 날만 기다린다. 사람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모른 채,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면서 높이 오르려 한다. 어느 누구도 자신을 사탄의 부류로 생각하지 않으며, 자신이 멸망의 대상이라고는 더더욱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 자신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본분 이행 과정에서 적잖은 고통을 받았으며 끝까지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았으니 이미 하나님께 구원받은 것이라고, 틀림없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관점은 잘못된 것이며, 진리를 전혀 깨닫지 못한 것이다. 특히 하나님을 갓 믿은 사람은 이것도 불만이고 저것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무척이나 교만해서 누구를 봐도 눈에 거슬리고 자기보다 못한 것 같다. 심지어 하나님에게도 이런 태도를 보인다. 그리스도를 받아들였다고 하지만 그것이 곧 그리스도의 모든 말씀과 그리스도가 행한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는 그저 명목상으로만 하나님의 이 단계 사역과 성육신한 하나님을 받아들였을 뿐, 하나님이 행한 것에 관념도, 상상도, 반감도 품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를 보면 무척 흥분하고 감동하며, 영광스럽다고 느끼면서 자신이 헛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은 진리가 없고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말하는 것을 보면 관념이 생기고, 그리스도가 일 처리하는 것을 봐도 관념이 생긴다. 그리스도가 어떤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도 관념을 품고, 심지어는 그리스도가 먹는 음식, 그리스도가 입는 옷, 그리스도의 표정과 행동 하나하나에 관념이 생기고 부정적인 견해나 생각을 품는다. 어째서 그렇겠느냐? 사람이 상상하는 하나님과 실제 하나님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은 본래부터 패괴 성품과 교만한 본성을 지녔기에,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인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관념을 품지 않을 수 없고, 대적하고 판단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의 신성 본질을 모르면 순종하기도 힘드니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일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역을 오래 체험한 사람, 특히 하나님의 설교를 많이 들은 사람은 성육신한 하나님을 어떻게 인식하고 대하겠느냐? 하나님께 관념을 품었다가 하나님을 인식하기까지의 과정,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다가 진실로 순종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들은 직접 겪었다. 또 하나님이 하는 모든 일, 하나님이 하는 모든 말씀, 하나님이 처리하는 모든 사안 하나하나가 진리 원칙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람은 거기에 관념을 가져서는 안 되고, 반발심과 반감을 가져서는 더더욱 안 된다는 사실을 그들은 직접 깨달았다. 이렇게 몇 년을 체험한 끝에 진리를 조금 깨닫고 나면, 바르게 대할 수 있다. 사람의 내면에 약간의 진리가 생명이 되고 실행 원칙이 생겨나면 자연히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게 된다. 갓 믿은 사람, 체험이 없는 사람은 이런 일에서 하나님을 거역하거나 대적하기 쉽고, 미련하고 무모한 일을 저지르기도 쉽다. 심한 경우 하나님을 판단하고 모독해서 철저하게 넘어지기도 하고, 계속해서 교회 사역을 교란하고 방해하다 도태되는 이도 있다. 지금 너희도 하나님에 대해 관념과 상상으로 가득하지 않으냐? 성육신한 하나님을 믿는 일이 너무 어렵게 느껴지느냐? 혹자는 말한다. “전에 주님 믿을 때는 정말 간단했습니다. 예배드리고, 설교 듣고, 일이 생길 때 주님께 기도만 하면 됐으니까요. 아무도 저희에게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라고 하지 않았고, 저희가 주님 말씀을 실행하고 체험하고, 진리를 추구하도록 이끌어 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목사나 설교자는 성경을 강론할 뿐, 저희가 알아서 이해하면 그만이었고요. 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은 후로는 하나님이 선포하신 진리가 너무 많습니다. 진리를 실행하자니 너무 어렵고, 실제에 진입하는 일도 정말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럼 너희는 생각해 본 적 있느냐? 여전히 과거에 주를 믿는 방식대로 하나님을 믿으면 진리 생명을 얻을 수 있겠느냐? 구원받을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이 점을 의식했다는 것은 너희가 발전했다는 뜻이다.

하나님을 상상대로 믿어서도, 관념대로 믿어서도 안 된다. 재미로 믿는 것은 더더욱 안 될 일이다. 한때의 기호나 일시적인 충동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면 계속 하나님을 믿어야 할지, 정말 진리를 추구할 생각이 있는지, 자신이 과연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지, 하나님을 믿는 길을 가기로 결심했는지, 진리를 추구하기로 결심했는지를 냉정하게, 곰곰이 생각해 보아라. 이 부분을 왜 강조하겠느냐? 지금 우리가 믿는 존재는 성육신한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성육신했다는 것은 하나님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와 정말로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다. 사람과 겉모습이 똑같은 존재 말이다. 하지만 그는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요, 하나님 자신이다. 하나님은 성육신한 뒤 실제로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사역을 했다. 또 실제로 많은 말씀을 선포하고, 많은 사역을 했으며, 많은 사람을 택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의 사역과 복음을 확장하고 있다. 이 모든 실제적인 사역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즉,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고 온전케 하기 위해서 당연히 사람에게 그의 말씀과 사역을 실제로 체험하도록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사람이 진리를 얻고 진실로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이루려는 일이다. 너희는 하나님의 사역을 받아들였을 때부터 지금까지 여러 가지 일을 겪었을 것이다. 그게 초자연적인 일이든,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있고 사유로 닿을 수 있는 일이든, 어쨌든 모든 일을 하나님이 실제로 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행하고 우리 사이에서, 또 우리 주변에서 행하기에 우리는 그것을 보고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진리 추구는 현실적인 공과로, 자신에게 임하는 모든 일에서 진리를 구하고 실행해야 한다고, 사람의 노력과 협력이 있어야 비로소 진리를 얻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진리 추구는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하나님 말씀을 읽고 글귀의 뜻을 이해했다고 진리를 깨달은 것이 아니고, 말만 잘하는 것이 진리를 실행한다는 것도 아니다. 진리를 추구하려면 우리가 실제로 진리를 구하고 받아들여야 하고, 수고와 대가도 치러야 한다. 또한, 실생활에서 체험하고, 구하고, 묵상하고, 교제하고, 실행하고, 공들여야 한다. 그래야 조금씩 하나님 말씀과 진리에 진입하여 수확을 거둘 수 있다. 그러다 언젠가 진리가 무엇인지, 진리의 본질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날, 너는 성육신 하나님이 한 그 말씀들이 곧 우리가 현실에서 필요한 것임을, 우리가 모든 문제를 처리할 때 필요한 실행 원칙임을, 우리 삶의 목표와 방향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너는 하나님이 행한 모든 것이 더없이 큰 의의가 있고, 성육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더없이 중요하고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 하나님의 각 단계 사역, 하나님의 언행 하나하나, 일거수일투족,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관점은 하나같이 사람을 정결케 하여 구원하기 위한 것으로, 무엇 하나 공허하지 않으며, 전부 현실적이고 실제적이다. 그러니 종교계에서 온 자든, 이방인 가운데서 받아들인 자든, 더는 관념과 상상에 따라 하나님을 믿지 말고, 종교적인 꿈에서 깨어나라고 하는 것이다. 대재난이 닥쳤을 때 갑작스레 공중으로 들림 받아 주님과 만나는 꿈은 한낱 백일몽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이 와서 실제로 진리를 선포하여 사람을 폭로하고 심판하고 사람의 패괴를 정결케 하는 것은 실제로 사람이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하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사람은 수많은 핍박과 환난, 책망과 훈계, 심판과 형벌을 겪어야 정결케 되어 변화할 수 있고, 이렇게 하나님 사역을 체험해야 진리를 얻을 수 있다. 네가 진리를 얻으면 네 마음속에 하나님의 자리가 생기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순종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하려는 일이다. 진리를 깨닫고 진리의 가치를 알고, 네 마음에 진리가 뿌리를 내려서 진리에 대한 실제적인 체험과 인식이 있게 되면, 하나님 말씀이 네 마음속에서 생명이 될 것이다. 이 과정이 실제적이지 않으냐? (실제적입니다.) 이 과정에서 사람은 무엇을 해야겠느냐? 먼저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며,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책망과 훈계, 시련과 연단에 순종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의 패괴가 정결케 된다. 그러면 진리를 실행하여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고,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할 수 있다.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할 줄 알면 하나님이 사람에게 무엇을 하려는지, 어떤 성과를 내려는지 알게 된다. 하나님 말씀이 사람에게서 이루려는 성과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자신을 알게 하는 것이고, 둘째는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성과를 모두 이루면 정말로 하나님 말씀을 알고, 진리를 깨닫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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