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괴 성품을 해결하는 방법에 관한 말씀 (발췌문 53)
본분을 이행하면서 책임을 지지 않고 대충 건성으로 임하며 무골호인이 되어 하나님 집의 이익을 수호하지 않는 것은 어떤 성품이겠느냐? 이는 바로 교활한 것으로, 사탄 성품이다. 사람의 처세 철학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바로 교활함이다. 사람은 교활하지 않으면 남에게 미움을 사기 쉽고, 자신을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충분히 교활해 누구에게도 미움을 사거나 상처를 주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래야 자신을 보호하고 밥그릇을 지킬 수 있으며 사람들 가운데서 입지를 굳힐 수 있다고 말이다. 이방인은 모두 사탄 철학으로 살며, 모두 무골호인이 되어 누구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는다. 너는 하나님 집에 와서 하나님 말씀을 읽고 하나님 집의 설교를 들었으면서 왜 진리를 실행하여 마음속 말을 하거나 정직한 사람이 되지 못하느냐? 왜 늘 무골호인이 되느냐? 무골호인은 자기 이익만 지키고 교회의 이익은 지키지 않는다. 누군가 악행을 저질러 교회 이익에 해를 입히는 것을 봐도 상관하지 않고, 그저 무골호인이 되어 누구에게도 미움받지 않는 것을 좋아한다. 이것이 바로 무책임한 것이다. 이런 자는 너무 교활하여 믿을 만하지 않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허영과 체면, 명예와 지위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남을 돕고, 벗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감수하며, 어떤 대가든 기꺼이 치를 수 있다. 하지만 막상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고, 진리를 지키고, 정의를 지켜야 할 때가 되면, 그의 선의는 모두 사라져 조금도 보이지 않고, 진리를 실행해야 할 때 조금도 실행하지 않는다. 이것은 어떻게 된 일이냐? 자신의 존엄과 체면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대가든 치르고 어떤 고통을 받아도 되지만, 실제 사역을 하고 실질적인 일을 해야 할 때, 교회 사역을 지키고 긍정적인 것을 지켜야 할 때, 하나님 선민을 보호하고 그들에게 공급해야 할 때는 ‘어떤 대가든 치르고 어떤 고통을 받아도 된다’는 기백이 왜 사라지느냐? 정말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사실, 그런 자의 내면에는 하나의 성품이 있는데, 바로 진리를 싫어하는 성품이다. 왜 진리를 싫어한다고 말하겠느냐? 바로 하나님을 증거하는 일, 진리를 실행하는 일, 하나님 선민을 보호하는 일, 사탄의 간계를 깨부수는 일, 교회 사역을 지키는 일과 관련되기만 하면, 회피하고 물러서서 올바른 일은 조금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영웅적 기개와 고통도 마다치 않는 정신은 어디 간 것이냐? 모두 어디에 쓴 것이냐? 이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이기적이고 비열하게 자신을 보전할 게 아니라 교회 사역을 지켜야 한다고 사람들이 꾸짖어도, 그런 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난 그런 일 안 해. 그런 일은 나와 상관없어. 그렇게 해서 내가 명리와 지위를 추구하는 것에 무슨 도움이 되는데?’ 그런 자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명리와 지위를 추구하기 좋아하지 하나님이 맡긴 사역은 전혀 하지 않는다. 그래서 교회 사역에 그가 필요할 때 회피하기만 한다. 이는 마음속으로 긍정적인 것을 싫어하고, 진리에 관심이 없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 진리를 싫어하는 태도다. 오직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 실제를 갖춘 사람만이 하나님 집의 사역과 하나님의 선민이 필요로 할 때 선뜻 나설 수 있다. 또 물러서지 않고 용감히 일어나 하나님을 증거하고 진리를 교제하며 하나님의 선민을 바른길로 인도함으로써 하나님의 사역에 순종하게 한다. 이것이야말로 책임지는 태도이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모습이다. 만약 너희가 이런 태도 없이 그저 건성으로 넘어가면서 ‘내 본분 범위 안에 있는 일이면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일이면 상관하지 않을 거야. 나한테 물어봤을 때 기분이 좋으면 대답해 주고 기분이 안 좋으면 대답해 주지 않을 거야. 이게 바로 내 태도야.’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패괴 성품이 아니냐? 오직 자신의 지위와 명예, 체면만 지키고, 자신의 이익과 관련 있는 것들만 지키는데, 이것이 정의로운 일을 지키는 것이겠느냐?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겠느냐? 이런 작은 이기심의 이면에는 바로 진리를 싫어하는 성품이 있다. 너희 대다수는 종종 이런 모습을 보인다. 하나님 집의 이익과 관련된 일이 닥치면 “못 봤어.”, “몰라.”, “못 들었다고.”라는 말로 얼버무린다. 네가 정말 모르는 것이든,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것이든, 결정적인 순간에 이런 패괴 성품을 드러낸다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내가 보기에는 흐리멍덩하게 믿는 사람이거나 불신파로, 절대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다.
진리를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너희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진리를 싫어하는 것을 일종의 성품이라고 하겠느냐? 성품은 어쩌다 잠깐 나타나는 행동과는 관계가 없다. 어쩌다 잠깐 나타나는 행동으로는 성품의 문제를 규정할 수 없다. 사람에게 어떤 패괴 성품이 있든 항상 드러나기 마련이고, 심지어 한결같이 드러난다. 언제든 적절한 환경이 갖춰지기만 하면 드러난다. 그러므로 가끔 일시적으로 하는 행동을 가지고 함부로 성품의 문제로 규정할 수는 없다. 그러면 성품이란 무엇이냐? 성품은 속셈, 동기, 사람의 사상 관점과 관계가 있다. 너는 그것이 너를 지배하고 좌지우지하는 것처럼 느끼겠지만, 성품은 또 은밀하게 감춰진 채 표면적인 현상에 가려져 있다. 요컨대, 내면에 그런 성품이 있으면 그것이 너를 방해하고 통제하고 지배하여 네가 여러 가지 행동을 하게 한다. 이것이 바로 성품이다. 진리를 싫어하는 이런 성품이 자주 사람에게 어떤 행동과 사상 관점, 태도를 유발하겠느냐? 진리를 싫어하는 성품이 겉으로 드러났을 때 주된 특징은 긍정적인 것과 진리에 무관심하고, 진리 실행과 관련된 것에 무관심하고 기운이 빠지며, 진리에 공을 들이려 하지도 않으면서 그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 보자. 사람들에게 익숙한 건강 상식으로는 채소와 과일을 많이 먹고, 싱겁게 먹고 육류를 적게 먹어야 한다. 특히 튀김 음식을 되도록 삼가야 한다. 이것은 건강 관리를 위한 올바른 안내이다. 무엇을 많이 먹고 무엇을 적게 먹어야 하는지 누구나 알아듣고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이론적인 수용이냐, 아니면 사실적인 수용이냐? (이론적인 수용입니다.) 이론적인 수용이란 어떤 태도이냐? 기본적인 인정이다. 네 판단력으로 분별할 때 이것이 올바르고 훌륭한 조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네게 논증이 있느냐? 논거가 있느냐? 너는 체험이나 어떤 논거와 근거로써 이 말의 옳고 그름을 증명하지 않았고, 더욱이 실패 선례에서 어떤 교훈을 얻지도 않은 채 그저 이 관점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것은 이론적인 수용이다. 이론적인 수용이든 실제적인 수용이든, 우선 ‘채소를 많이 먹고 육류를 적게 먹어야 한다’는 말이 옳고 긍정적인 것임을 확실히 인정해야 한다. 그러면 진리를 싫어하는 사람의 성품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 일상생활에서 이 말을 어떻게 대하고 적용하는지 보아야 한다. 그러면 이 말을 대하는 태도, 즉 이론적으로, 도리상으로 받아들였는지, 아니면 그것을 현실 생활에서 적용해 실제로 삼았는지 알 수 있다. 네가 이 말을 그저 도리상으로만 받아들였을 뿐, 일상에서 하는 행동은 이 말에 완전히 위배되거나 이 말을 적용하는 실제적인 측면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치자. 그러면 네가 이 말을 좋아하는 것이냐, 싫어하는 것이냐? 예를 들어, 네가 식사하다가 채소를 보자 ‘채소는 사람의 건강에 이롭지만 맛이 없어. 역시 고기가 맛있지. 먼저 고기를 먹자.’라고 생각하고 채소는 안 먹고 고기만 먹는다면, 이는 어떤 성품을 드러낸 것이냐? 옳은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긍정적인 것을 싫어하며, 육적인 취향만을 따라 음식을 먹으려고 하는데, 이렇게 먹을 것을 탐하고 즐기려 하는 사람은 긍정적인 것을 싫어하고 거부감을 느끼며 반감을 갖는다. 이것은 일종의 성품이다. 어떤 사람이 그 말이 옳다고 인정하면서도 스스로는 그렇게 행동하지 못하고, 그러면서 또 남에게는 그렇게 말하다 보니 그 말이 그에게서 하나의 이론이 되어 자신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게 됐다. 그는 채소를 많이 먹어야 좋고 고기를 많이 먹으면 안 좋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속으로는 ‘어쨌든 난 손해를 보지 않았어. 그래도 고기를 먹는 게 이득이고, 건강에 안 좋은 것 같지도 않아.’라고 생각한다. 그의 이런 탐욕과 욕망 때문에 그가 잘못된 생활 방식을 택하고 계속해서 올바른 상식과 생활 방식을 어긴 것이다. 이득을 탐내고 육적인 누림을 탐하는 그런 패괴 성품이 있으면, 그가 올바른 말과 긍정적인 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쉽지 않다. 그러면 그의 생활 방식이 패괴 성품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것은 패괴 성품이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다. 겉으로는 이런 행동과 태도로 나타나지만, 사실 한 가지 성품에 지배된 것이다. 어떤 성품이겠느냐? 바로 진리를 싫어하는 성품이다. 진리를 싫어하는 이런 성품은 발견하기가 매우 어렵다. 누구나 자신이 진리를 싫어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하나님을 믿은 지 몇 해가 되도록 진리를 실행하지 못하면 진리를 싫어한다는 사실이 충분히 증명된다. 사람은 그렇게 많은 설교를 듣고, 그렇게 많은 하나님 말씀을 읽었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이 마음속으로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고 하나님 말씀을 현실 생활에 가져와 실행하고 적용해 진리를 깨닫고 진리가 사람의 생명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이 요구에 도달하기 아주 어렵다. 그러므로 대부분 사람에게 진리를 싫어하는 성품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진리를 실행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진리를 실행할 수 있으면 진리 실제에도 진입할 수 있다. 깨달은 진리를 사람이 살아 내는 실제로 바꾸기가 정말 그렇게 어렵겠느냐? 예를 들어 보겠다. 추운 날씨에 네 머리가 땀에 젖은 채로 외출하려고 하자 엄마가 네게 감기 걸린다며 땀을 닦고 나가라고 했다. 너는 엄마가 널 위해 그런다는 것을 알면서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옳은 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 귀로 흘려버리고는 머리가 땀에 푹 젖은 채로 외출했다. 심지어 그렇게 나갔다가 정말로 감기에 걸린 적도 있지만 다음에 또 그 말대로 하지 않았다. 그 말이 옳고 도움이 되는 말이라는 것도 알고, 엄마의 출발점과 마음가짐이 모두 너를 위한 것임을 분명히 알면서도, 너는 여전히 귓등으로 듣고 따르지 않았다. 이것이 일종의 성품이 아니겠느냐? 네게 이런 성품이 없다면 어떻게 선택하겠느냐? (말을 들을 것입니다.) 너는 그 말의 중요성을 알고, 그 말을 듣지 않을 경우 네게 어떤 결과가 나타나고 어떤 고통이 닥칠지도 알고 있으니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할 것이다. 너는 항상 그 말을 지키고 실행하면 쉽게 감기에 걸리지 않게 될 것이다. 이것이 한 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 말씀을 읽고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도 이와 같다. 그러면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어떻게 대해야 하겠느냐? 이것이 가장 핵심적인 문제다. 사람이 하는 말도 진리에 부합하고 올바르다면 사람이 그걸 받아들였을 때 이득이 되는데, 진리인 하나님 말씀을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이득뿐 아니라 생명도 얻을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이 일을 모른 채 하나님 말씀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하나님이 권면하든, 일깨워 주든, 깨우치든, 위로하든, 입이 닳도록 타이르든 아무리 말해도 사람의 마음을 일깨울 수가 없다. 사람은 그 말대로 할 수도 없을뿐더러, 다 듣고 나서 한 귀로 흘려버린다. 이는 강퍅함과 진리를 싫어하는 성품이다. 하나님이 네게 알려 주며 당부한 일을 하나님 말씀대로 대할 수 없다면, 너의 이런 성품은 바뀔 수 없다. 네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아무리 인정하고 아멘 해도, 또 네가 하나님 말씀이 모두 진리라고 입으로 아무리 찬양해도 다 소용없다. 반드시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고 실행하고 체험하여 네 생명과 실제로 변화시켜야만 쓸모가 있다. 한 예로 간사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 정직한 사람이 되고 진실한 말을 하고자 하는 뜻이 있으면, 이는 어느 정도 쉽게 도달할 수 있다. 가장 바뀌기 어려운 것은 진리를 싫어하는 강퍅한 성품이다. 하나님이 어떻게 말해도 그가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하나님이 어떤 태도로 대하든, 경고하든 일깨워 주든, 권면하든, 입이 닳도록 타이르든 사실을 열거하고 이치를 말해 주어도 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면 곤란하다. 진리를 싫어하는 성품은 사람이 인식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항상 진리를 구하고 자신의 내적 상태를 반성해야 한다. 어째서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지, 진리를 깨닫고도 어째서 실행하지 못하는지 이 문제를 꿰뚫어 볼 수 있다면, 진리를 싫어하는 원인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사람의 성품 속에 은밀한 것이 있어도 겉으로는 자연스럽고 의젓하게 행동한다. 그에게는 자기만의 생각과 행동 방식이 있으며, 그는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남들이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해도 그는 남에게 휘둘리지 않으며, 그렇게 하면 남들이 자신을 우러러볼 것이라는 생각에 계속 그런 행동을 고수한다. 게다가 자기 처세가 올바르다고 생각하며 진리를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을 직시하지 않고 진리 원칙도 전혀 없다. 이것은 어떤 성품이겠느냐? 교만하고 독선적이며 진리를 싫어하는 성품이다. 진리를 싫어하고 사탄에게 속한 자들은 하나님이 아무리 많은 말을 하고 아무리 많은 일을 해도 일절 듣고도 못 들은 척, 보고도 못 본 척한다. 사탄은 결코 하나님 말씀을 진리로 대하지 않고 이 일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으며, 인류가 하나님 말씀과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가로막고, 인류를 미혹하여 자기에게 순종하게 한다. 사탄은 이렇게 하나님을 대적한다. 하나님은 진리를 선포하여 인류를 구원하고 일깨우고 정결케 하지만, 사탄은 전력을 다해 하나님의 사역을 교란하고 파괴한다. 사탄이 인류를 미혹하는 목적은 인류를 패괴시키고 인류에게 해를 끼쳐 결국에는 인류를 삼키고 파멸시키는 것이다. 한 예로 하나님이 인류에게 갖가지 먹거리를 주고 온갖 곡식과 채소, 생장에 적합한 땅을 창조해 놓았기 때문에 부지런히 일하기만 하면 충분히 먹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만족할 줄 모르고 늘 부유하게 살고 싶은 사람들이 기어이 유전자 변형 방식을 연구하고 생산량을 늘려 곡식의 참된 영양을 파괴하고 유기농 식품을 무기농 식품으로 만드는 바람에 이런 것을 먹은 사람들이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이것이 사탄의 짓이 아니겠느냐? 인류가 사탄에 의해 어느 정도까지 패괴되자 모두 살아 있는 사탄, 살아 있는 마귀가 되어 버렸다. 예전에는 사탄과 그 악령들이 하나님을 대적할 뿐이었지만, 지금은 패괴된 인류 전체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다. 그러니 패괴된 인류는 마귀 사탄이 아니겠느냐? 사탄의 후예가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수천 년 동안 인류를 패괴시킨 결과다. 사탄 성품을 어떻게 인식하고 분별해야겠느냐? 사탄이 하기 좋아하는 일,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나 수단에서 알 수 있듯, 그것은 영원히 긍정적인 사물을 좋아하지 않고 사악한 것을 좋아한다. 또 늘 스스로 능력이 있다고,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사탄의 교만한 본성이다. 그래서 사탄은 아무 거리낌 없이 하나님을 부정하고 대적하며, 하나님과 맞선다. 사탄은 모든 부정적인 사물과 사악한 사물의 상징이자 근원이다. 이 점을 간파할 수 있다면 사탄 성품을 분별할 수 있다.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행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모든 사람의 내면에는 사탄 성품이 있으며, 사람은 누구나 사탄 성품에 속박되고 얽매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이 좋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어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단순하게 마음을 여는 사람을 보면 부러워하고 질투하지만, 막상 그에게 정직한 사람이 되라고 하면 힘들어한다. 죽어도 정직한 말을 하거나 정직한 일을 하지 못한다. 이것이 일종의 사탄 성품 아니겠느냐? 말은 듣기 좋게 하지만 실행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진리를 싫어하는 것이다. 진리를 싫어하는 사람은 진리를 받아들이기가 몹시 힘들며, 진리 실제에 진입하지 못한다. 진리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는 내적 상태는 바로 진리와 긍정적인 사물에 관심이 없고, 심지어 반감을 갖거나 혐오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시류를 좇는 것에 열광하며, 하나님이 좋아하는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는 마음속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런 것을 거들떠보지 않으며 냉담하게 대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요구한 이 기준이나 원칙을 자주 경시하곤 한다. 그는 긍정적인 사물에 반감을 갖고 있으며, 언제나 마음속에 반발하고 대항하고 경시하는 감정을 품고 있다. 이것이 바로 진리를 싫어하는 자의 주된 특징이다. 교회 생활에서 하나님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진리를 교제하고 본분을 이행하고 진리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 등은 다 긍정적인 사물에 속한다. 이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긍정적인 사물에 반감을 품고 신경 쓰지 않으며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가장 증오스러운 점은 그들이 긍정적인 사람, 예를 들어 정직한 사람,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 충심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 하나님 집의 사역을 지키는 사람에게 경시하는 태도를 보이며 늘 그들을 공격하고 배척하려 한다는 것이다. 상대의 단점과 패괴 표출을 발견하면 그것을 빌미 삼아 문제를 확대하며, 시종일관 깎아내린다. 이는 어떤 성품이겠느냐? 그들은 왜 긍정적인 사람들을 이토록 적대시하겠느냐? 어째서 악인, 불신파, 적그리스도에게는 큰 호감을 보이고 영합하며 늘 한통속이 되어 허송세월하겠느냐? 그들은 부정적인 사물, 사악한 사물에 대해 언급하면 신이 나서 희희낙락하지만, 긍정적인 사물에 대해 이야기하면 대항하는 태도를 보이기 시작한다. 특히 다른 이가 진리를 교제하거나 진리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들을 때면 마음속에 싫증과 불만을 품고 원망을 표출한다. 이는 진리를 싫어하는 성품 아니겠느냐? 패괴 성품을 드러낸 것 아니겠느냐?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을 위해 사역하고 열심히 뛰어다니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은사와 재능을 발휘하고 자기 기호대로 자신을 드러내는 데 기운이 넘친다. 그러나 그에게 진리를 실행하고 진리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라고 요구하면, 마음이 차갑게 식고 열정도 사라진다. 스스로를 뽐낼 수 없으면 힘이 생기지 않고 기운이 빠지는 것이다. 스스로를 뽐낼 때는 왜 힘이 생기겠느냐? 진리를 실행할 때는 왜 힘이 생기지 않겠느냐? 이는 무슨 문제겠느냐? 사람은 모두 남들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며 허영을 좇는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복을 얻고 상을 받기 위해서는 기운이 넘친다. 그런데 왜 진리를 실행하고 육을 저버릴 때는 힘이 없어지고 기운이 빠지는 것이겠느냐? 그 이유는 무엇이겠느냐? 이는 사람의 마음에 불순물이 있으며, 오로지 복을 받기 위해, 솔직히 말하자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추구할 만한 복과 이익이 없다면 힘이 없어지고 기운이 빠지며 어떤 열정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는 전부 진리를 싫어하는 패괴 성품으로 초래된 것이다. 이러한 성품에 지배되면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선택하지 않고 스스로의 길로 치우치며 잘못된 길을 택하게 된다. 또 명리와 지위를 추구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면서도 포기하지도 내려놓지도 못한 채 명리와 지위를 좇아 사탄의 길을 걷게 된다. 이는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사탄을 따르는 것이다. 사람이 행하는 이 모든 일은 사탄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며, 사탄을 섬기는 것이다.
진리를 싫어하는 패괴 성품이 쉽게 변화할 수 있겠느냐? 진리를 싫어하는 것은 인류가 깊이 패괴된 특징이며, 변화하기가 가장 어렵다. 진리를 받아들여야만 성품 변화에 도달할 수 있으며, 진리를 싫어하는 사람은 진리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중병에 걸려 음식조차 넘기지 못하는 사람처럼 몹시 위험하다. 진리를 싫어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다 해도 구원받기가 어렵다. 몇 년 동안 하나님을 믿었지만 진리와 긍정적인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진리를 추구해 구원에 이르겠다는 인생 목표조차 확실하지 않다면, 장님이 길을 잃은 격이 아니냐? 그래서 진리를 싫어하면 진리를 받아들일 수 없으며, 이런 패괴 성품은 쉽게 변화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진리를 받아들이고 올바른 길을 걸을 수 있는 사람은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패괴 성품이 쉽게 변화될 수 있다. 진리를 싫어하는 성품이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하나님께 구원받기를 간절히 바란다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겠느냐?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조금 쉽겠느냐? 어디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지름길이겠느냐? (긍정적인 것이 무엇이고 원칙이 무엇인지 깨달은 뒤에 본분을 이행할 때 원칙과 기준에 따라 판단해야 합니다. 원칙에 어긋나고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지 않으면 그렇게 하지 말고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우선 각 항목 진리의 원칙을 파악해야 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진리를 싫어하는 내적 상태가 드러날 때 본분과 원칙에 관련된 것이라면 육을 저버리고 원칙에 따라 실행해야 합니다.) 그렇다. 길이 있어야 하고, 이 목표와 길이 분명해야 한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대다수 사람이 어떤 측면의 성품이 어떤 배경에서 언제 어떤 방식으로 드러나는지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것을 안다면 쉽게 변화가 나타나지 않겠느냐? 지금 보면 사실 사람이 갖고 있는 여러 생각이나 태도는 모두 성품과 관련된다. 갖가지 성품에 지배당하지 않고, 패괴 성품이 딱 버티고 발목을 잡지 않는다면 사람에게 잘못된 사상이 있더라도 바로잡기가 쉽다. 예를 들어, 엄마가 네게 땀을 식힌 후에 외출하라고 했을 때 네가 말을 잘 듣는 효자라면 엄마의 깊은 마음을 이해할 뿐만 아니라, 너도 그 말이 옳다는 걸 알고 그 말의 장단점을 알 수 있으며 그 말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패괴 성품에 방해를 받거나 발목을 잡히지 않는다면, 너도 그 말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간단한 조언이고 너도 그 말이 옳다는 걸 알지만, 진리를 싫어하는 성품과 강퍅한 성품으로 인해 뻔히 알면서도 말을 듣지 않은 탓에 엄마가 속상해하며 네 걱정을 하게 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요컨대, 이런 일이 닥쳤을 때 사람이 어떻게 대하는지 보아야 한다. 긍정적인 것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아야 하고, 또 한편으로는 어떻게 패괴 성품과 끊임없이 싸우고 대결하는지 보아야 한다. 여기에서 진리 추구에 대한 사람의 의지가 드러난다. 네가 이런 의지를 갖고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고 진리를 받아들인 뒤 하나님 말씀을 생명으로 삼아 사람다운 모습으로 살고자 한다면, 네게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진리를 추구하려는 의지가 클수록 변화도 그만큼 클 것이다.
구원받는다는 것은 주로 무엇을 의미하겠느냐? 주로 성품의 변화를 의미한다. 성품이 변화해야만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 있고 구원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성품 변화는 중대한 문제다. 성품이 변화하면 사람다운 모습으로 살게 되고, 완벽하게 구원에 이를 수 있다. 어떤 이는 좀 못생기고 은사와 재주도 좀 부족하며, 말주변도 없고, 또는 꾸밀 줄도 몰라서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일이 닥치면 자기 뜻대로 하거나 자기 꿍꿍이를 챙기지 않고 진리를 구할 수도 있다. 또 하나님이 한 가지 본분을 이행하라고 분부하면 하나님께 순종해 부탁한 그 일을 잘 해낼 수도 있다. 너희는 이런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외모는 못생겼지만, 그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이 있다. 그의 장점이 드러나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사람은 진중하고 일이 닥치면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하여 구합니다. 건성으로 하거나 어리석고 미련하게 행동하지 않고, 태도가 진지하며 책임감도 강합니다. 분수를 지켜 성의껏 자기 본분을 이행하고 책임을 다하며, 맡은 바를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언행을 절제하고, 이성이 정상적이며, 그가 살아 내고 겉으로 드러내는 성품을 보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으니 그의 일 처리에 원칙이 있지 않겠느냐? 그는 틀림없이 원칙을 구하고 제멋대로 나쁜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진리를 실행하고 성품 변화를 추구하여 최종적으로 얻는 효과다. 함부로 말하지 않고 조리 있고 정확하게 말하며, 안심하고 믿을 수 있게 일 처리를 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실제가 있으며, 악에서 떠난 실제도 있다. 이 사람에게서 이런 모습이 다 나타난다. 이런 사람이 바로 진리 실제에 진입한 사람이고, 성품에 변화가 나타난 사람이다. 이런 것들은 사람이 꾸며 낼 수 없다. 사람의 성품이 곧 사람의 생명이다. 사람이 가진 성품이 행동으로 그대로 나타나며, 사람의 행동과 태도는 모두 성품의 지배를 받는다. 사람에게 일관되게 나타나는 모습은 성격이 아니라 성품이 드러난 것이다. 성품의 문제를 인식하고 온갖 패괴 성품이 드러난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진리를 구해 해결해야 한다. 이것이 성품 변화를 추구함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으로 도달해야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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