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9) 제 1 부
너희는 평소 찬양을 들으면서 자신의 내적 상태나 체험과 결부해 보느냐? 찬양을 들을 때, 네가 체험하고 인식한 말씀이나 내용, 혹은 네가 이를 수 있는 말씀이나 내용과 연관 지어 마음으로 듣고 묵상해 보느냐? (하나님, 가끔은 어떤 일을 겪을 때 찬양을 들으면서 스스로에게 대조해 보지만, 또 가끔은 대충 형식적으로 듣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형식만 취한다. 그렇지 않으냐? 너희는 찬양을 들을 때 95% 이상은 대충 형식만 취한다. 그럼 그런 식으로 찬양을 듣는 것이 의미가 있겠느냐? 찬양을 듣는 목적은 무엇이냐? 적어도 마음을 평온히 하는 것이 목적이다. 각종 복잡한 일과 사유로부터 마음을 거두어 하나님 앞에서 평온히 하고, 하나님 말씀 앞에 나아가 말씀 한 마디 한 마디, 한 단락 한 단락을 자세히 듣고 묵상하는 것이다. 너희는 지금 사무적인 일로 바빠 찬양을 들을 시간이 없고, 묵상할 에너지도 없다. 또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을 읽거나 진리를 묵상하는 법이 전혀 없고,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하지도 못한다. 그저 매일 정신없이 본분을 이행할 뿐이다. 그리하여 어느 정도는 고생스럽고 힘들지만 무척 충실한 하루를 보냈다고 생각하면서 공허함을 느끼지 않고, 정신적으로도 무력해지지 않으며, 그 하루는 헛되지 않고 가치 있다고 느낄 것이다. 그렇게 매일 흐리멍덩하게 지내니 이것을 가리켜 하루하루 시간만 때운다고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그대로 3년~5년, 혹은 8년~10년이 지난다고 한들 큰 수확이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만약 특수한 일이 생기지 않고, 하나님이 배치한 특수한 환경이 임하지 않으며, 상부에서 직접 너희를 지도하고 이끌어 주면서 예배드리거나 교제해 주지 않는다면, 각종 사람과 일, 사물의 본질을 해부해 주지 않고 일일이 가르쳐 주지도 않는다면 너희가 보내는 거의 모든 하루하루는 사실 공허할 것이며, 성장이 무척 느릴 것이고, 생명 진입에서도 이렇다 할 수확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어떤 일이 닥쳐도 분별력이 커지지 않고, 진리에 대한 체험이나 인식도 진보를 이루지 못하며,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순종 또한 이렇다 할 체험과 성장을 이루지 못하니 일이 닥치면 여전히 진리 원칙대로 처리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본분 이행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일을 체험할 때, 여전히 주동적으로 원칙을 구하거나 진리 원칙대로 실행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허송세월을 하는 것이다. 허송세월을 하다가 마지막에는 어떤 결과를 맞이하겠느냐? 시간과 에너지를 모두 허비하고, 헛되이 심혈을 쏟으며, 그동안 걸어온 길은 바울의 길로 규정될 것이다. 여러 해 동안 리더 일꾼을 했는데도 생명 진입이 얕고 분량이 미미하며 어떤 진리 원칙도 이해하지 못한다면, 여전히 쓰임 받기에 합당치 않으며 한 가지 사역을 독립적으로 완수하지 못할 것이다. 리더 일꾼이 쓰임 받기에 합당치 않으니 평범한 형제자매들은 독립적으로 교회 생활을 하거나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지 못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지도, 생명 진입을 이루지도 못한다. 만약 감독하고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그릇된 길을 가게 될 것이다. 리더 일꾼이 사역할 때, 감독하고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치우친 길을 갈 것이고, 독립 왕국을 세울 것이며,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될 것이고, 심지어는 적그리스도를 따르면서 자각하지 못한 채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는 가련하지 않으냐? (가련합니다.) 지금 너희가 바로 이런 상태이다. 궁핍하고 가련하다. 일이 닥치면 속수무책으로 더 이상 갈 길이 없으며, 실제적인 문제나 실제적인 사역 내용과 관련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 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엉망진창이 된다. 매일 정신없이 바쁘고 몸 또한 무척 힘들며 심리적 스트레스도 크지만 사역 성과는 별 볼 일 없다. 하나님 집에서 사역지침을 통해서 각각의 진리 원칙과 실행의 길을 모두 명확히 알려 주었지만, 너희는 사역을 함에 있어 길이 없고 원칙을 찾지 못하며, 일이 닥치면 멍하니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무슨 사역을 하든 엉망이 된다. 이것이 가련한 모습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가련한 모습이다.
혹자는 “저는 하나님을 10년 넘게 믿었습니다. 오래된 신자죠.”라고 말하고, 혹자는 “저는 하나님을 20년이나 믿었습니다.”라고 말하며, 또 혹자는 “하나님을 20년 동안 믿은 게 뭐 대수입니까? 저는 30년 넘게 믿었습니다.”라고 말한다. 너희가 하나님을 믿은 햇수는 짧지 않다. 심지어 리더 일꾼으로 적잖은 햇수를 보내고 많은 경험을 쌓은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생명 진입은 어떠하냐? 진리 원칙은 얼마나 파악했느냐? 여러 해 동안 리더 일꾼을 하고 사역 경험도 좀 있지만, 각 부류의 사역이나 사람, 일이 닥칠 때 진리 원칙대로 실행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이름을 지킬 수 있겠느냐?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킬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사역을 지킬 수 있겠느냐? 굳게 설 수 있겠느냐? 적그리스도와 악인이 교회 사역을 교란하고 방해할 때 너에게는 그들과 싸울 믿음과 힘이 있느냐? 하나님의 선민을 보호하고 하나님 집의 사역과 이익을 지키고 하나님의 이름이 욕되지 않게 지킬 수 있겠느냐? 이런 것을 해낼 수 있느냐? 지금 보건대, 너희는 해내지 못했고 해낼 수도 없다. 매일 정신없이 바쁜데, 무엇 때문에 바쁜 것이냐? 근 몇 년간 가정과 일을 버리고 고생하며 대가를 치르고 적잖이 공을 들였지만, 수확은 크지 않다. 심지어 어떤 리더 일꾼들은 여러 차례 비슷한 사건과 사람, 환경이 임해도 매번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똑같은 과오를 남긴다. 이는 생명이 성장하지 않은 것 아니겠느냐? 진리를 얻지 못한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는 여전히 사탄에 의해 흑암 권세 아래에 통제되어 구원받지 못한 모습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교회의 각 시기에 네 주변에서 나타나고 발생하는 각 부류의 사건에 대해 너는 속수무책이다. 특히, 적그리스도나 악인이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사건이 닥치면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한 채 방임한다. 그나마 좀 나은 이는 얼마간 화를 내면서 교란하는 자들을 책망하지만, 그러고 나서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으니 방법이 없다. 어떤 이는 ‘나는 힘과 마음을 다했어. 하나님께서 힘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라고 하셨잖아. 나는 그렇게 했으니까 성과가 없는 건 내 잘못이 아니야! 사람들이 너무 못돼서 진리를 교제해 줘도 듣지 않는걸.’이라고 생각한다. 너는 마음과 힘을 다했다고 하지만 사역에 성과가 나지 않았다. 네가 교회 사역을 지키지 못하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지 못해 악인이 교회에서 권력을 잡게 되었으며, 사탄이 활개 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했다. 그런데도 너는 옆에서 방관하면서 어떤 방법도 강구하지 않았다. 권력을 줘도 처리할 줄 모르고,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지도 못하면서 자신은 진리를 깨달았다고, 또한 마음과 힘을 다했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자가 좋은 청지기이겠느냐? (아닙니다.) 각 부류의 악인과 불신파가 튀어나와 온갖 마귀와 사탄 역할을 하고, 사역지침을 어기며 딴짓을 하고, 거짓말로 하나님 집을 기만할 때, 그들이 하나님의 사역을 교란하고 방해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짓을 하여 하나님 집과 교회에 먹칠할 때 너는 그런 모습을 보고도 화만 낼 뿐 나서서 정의를 구현하고 악인을 폭로함으로써 교회 사역을 지키지 않았다. 또 그 악인들이 계속 교회 사역을 교란하거나 하나님 집과 교회에 먹칠하지 못하도록 처분을 내리고 해결하지도 않았다. 네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은 간증이 없다는 의미다. “감히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에게 처분을 내렸다가 분노를 사면 그들이 한패가 되어 저를 괴롭히고 파면할 텐데, 그럼 어쩐단 말입니까?”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이는 무능하고 유약한 것이냐, 아니면 진리가 없어 사람을 분별하지 못하고 사탄의 교란을 전혀 간파하지 못하는 것이냐, 그것도 아니면 본분 이행에 충성을 다하지 않고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냐? 대체 어떤 문제겠느냐? 이 일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네 타고난 성품이 유약하고 연약하고 소심하고 겁이 많다고 해도 그렇게 오래 하나님을 믿었으면 일부 진리에 대한 깨달음을 기초로 하나님께 진실한 믿음이 생겼을 것이다. 그럼 그 인성의 연약함과 유약함, 나약함을 극복하고 악인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럼 너희가 악인을 처분하고 해결하지 못하는 근본 원인은 무엇이겠느냐? 태생적으로 인성이 무능하고 소심하며 겁이 많아서겠느냐? 그것은 근본 원인도, 문제의 본질도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하나님께 충성심이 없고, 스스로를 지키며, 자신의 신변 안전과 체면, 지위를 보전하고, 퇴로를 남겨 두려고 하는 것이다. 충성심이 없는 모습은 어디에서나 스스로를 지키며, 일이 닥치면 자라처럼 목을 움츠리고, 일이 지나가고 난 후에야 고개를 내미는 것이다. 또 어떤 일이 닥치든 늘 이것저것 두려워하며 너무 많은 것을 걱정하고 우려하고 고민할 뿐 나서서 교회 사역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어떤 문제겠느냐? 믿음이 없는 것 아니겠느냐? 너는 하나님께 진실한 믿음이 없다. 너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믿지 않으며, 네 모든 것과 운명이 하나님 손안에 있다는 것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는 한, 사탄은 네 머리털 하나 건드리지 못한다’는 하나님 말씀도 믿지 않는다. 너는 눈으로 본 것에 근거하여 사실을 판단하고, 자신의 좁은 식견으로 사물을 판단하며, 언제나 스스로를 지킨다. 또 너는 사람의 운명이 하나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고, 사탄과 사악한 세력, 악인을 두려워한다. 이는 하나님께 진실한 믿음이 없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진실한 믿음이 없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 체험이 너무 얕아 이 일들을 간파하지 못해서겠느냐, 아니면 깨달은 진리가 너무 적어서겠느냐? 무엇 때문이겠느냐? 이는 사람의 패괴 성품과 어느 정도 관계가 있지 않겠느냐? 이는 사람이 너무 간사하기 때문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얼마나 많은 일을 체험했든, 얼마나 많은 사실이 눈앞에 펼쳐져 있든 그것이 하나님의 행사임을 믿지 않고, 사람의 운명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믿지 않는데, 이것이 한 가지 측면의 원인이다. 이 밖에도 또 한 가지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바로 사람이 스스로를 너무 아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역, 하나님 집의 이익,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위해 어떤 대가나 희생도 치르려 하지 않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위험한 일은 하지 않으려 하니 사람은 스스로를 아껴도 너무 아낀다! 사람은 죽음이 두렵고, 모욕당하는 것이 두렵고, 악인에게 모함당하는 것이 두렵고, 어떤 곤경이든 빠지는 것이 두려워 극력으로 자신의 육을 보전하며, 어떻게 해서든 어떤 위험한 처지에도 처하지 않으려 한다. 사람이 이렇게 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너무 간사하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스스로를 너무 아끼고 너무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너는 자신을 내놓으려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기를 원한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그저 소망일 뿐이다. 진정으로 나서서 하나님을 위해 증거하고 사탄과 싸워야 할 때가 되어 위험과 죽음, 각종 어려움과 곤경을 직면하게 되면 원치 않는다. 그 정도의 소망으로는 버티지 못하고, 너는 어떻게 해서든 먼저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할 것이며, 다음으로는 마지못해 겉으로 보이는 일, 남에게 보고할 수 있는 일을 얼마간 할 것이다. 사람의 머리는 로봇의 머리보다 잘 돌아가고 임기응변에 능해서 어떤 일이 닥쳤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자신에게 도움이 될지, 어떻게 행동하면 불리할지 알며, 융통성을 발휘하고 자유롭게 굴릴 수 있다. 그래서 일이 닥쳤을 때 너의 그 알량한 믿음이 굳게 서지 못하는 것이다. 너는 하나님을 대상으로 간사한 짓을 하고 암투와 수작을 벌인다. 네 행동은 하나님에게 진실한 믿음이 없음을 드러낸다. 너는 하나님을 믿을 수 없다고, 하나님이 꼭 너를 보호해 주고 네 안전을 지켜 주며 죽지 않게 해 주리란 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님을 의지할 수 없으며, 오직 스스로에게 기대야만 성공할 가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결국 어떻게 되느냐? 어떤 환경, 어떤 일이 닥치든 그런 방식과 방법, 수단으로 행동하며,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서 증거하지 못한다. 또 어떤 환경이 닥치든 합당한 자격을 갖춘 리더 일꾼이 되지 못하며, 청지기로서 마땅히 보여 주고 행동해야 할 것들을 보여 주지 못하고, 충성을 다하지 못한다. 이는 간증을 잃어버린 것이다. 얼마나 많은 일이 닥치든, 너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 기대 충성과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아무 수확도 얻지 못한 것이다. 너는 하나님이 배치해 준 환경 속에서 사탄과 싸울 때마다 물러서고 도망치는 길을 선택했으며, 하나님이 이끌어 준 대로, 하나님이 만들어 준 궤도대로 체험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 싸움에서 네가 마땅히 얻어야 할 진리와 인식, 체험을 얻지 못한 것이다. 너는 하나님이 배치한 환경 속에서 매번 그런 방식으로 체험했으며, 언제나 그런 방식으로 마무리 지었다. 그러니 결국 네가 얻은 것 역시 똑같은 도리와 교훈일 뿐 진실한 인식은 별로 없었다. 그저 경험과 교훈을 좀 얻었을 뿐이다. ‘앞으로는 이렇게 하지 말아야지. 앞으로 이런 일이 닥치면 뭘 주의하고 뭘 신경 써야지. 또 어떤 사람들을 조심하고 피하고 경계해야지.’라고 말이다. 그게 다였다. 너는 무엇을 얻었느냐? 경력과 식견을 얻었느냐, 아니면 경험과 교훈을 얻었느냐? 만약 네가 얻은 것이 진리와 무관하다면 그것은 수확이 아니며, 진정으로 네가 얻어야 할 것도 아니다. 그러니 너는 하나님이 배치한 환경 속에서 하나님을 실망시킨 것이다. 하나님이 그 환경을 배치함으로써 네가 얻도록 예정한 것을 너는 얻지 못했으니 분명 하나님을 실망시켰을 것이다. 그 시련 속에서, 혹은 하나님이 배치한 환경 속에서 너는 하나님이 얻게 하려 한 진리를 얻지 못했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도 커지지 않았으며, 깨달아야 할 진리를 깨닫지 못했고, 스스로를 인식해야 하는 부분에서 인식하지도 못했다. 또 얻어야 할 교훈을 얻지 못했고 지켜야 할 진리 원칙 역시 얻지 못했다. 이와 동시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 역시 커지지 않은 채 그 자리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그럼 무엇이 커졌겠느냐? 네가 원래 모르던 도리들을 지금은 알게 되었을 것이고, 이해하지 못했던 부류의 추악한 몰골을 이제는 보았을 것이다. 그 외에 진리와 관계되는 것들은 단 하나도 보지 못했고, 깨닫거나 인식하거나 체험하지도 못했다. 그리하여 이어지는 사역이나 본분 이행 과정에서 지켜야 할 원칙을 너는 여전히 이해하지도 알지도 못하니 하나님을 크게 실망시킨 것이다. 적어도 그 환경 속에서 커져야 할,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과 믿음이 커지지 않았다는 것, 이 두 가지를 이루지 못했다는 것은 너무도 가련한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당신은 제가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고 하시는데 그건 아닙니다. 적어도 저는 스스로를 인식했고, 주변의 사람과 일, 사물을 인식했으며, 나아가 인성을 이해하고 저 스스로를 더 정확하게 알게 됐으니까요.”라고 말한다. 이런 것들을 인식했다고 해서 진실로 성장했다고 할 수 있겠느냐? 네가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40~50살쯤 되면 이러한 것들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자질이 좀 있거나 자질이 평범한 사람은 다 이를 수 있다. 또한,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고, 자신이 인성 측면에서 지니고 있는 약점이나 강점, 장단점,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40~50살이 되면 주변에서 자주 교류하는 각 부류 사람의 인성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다. 어떤 사람들이 사귀기에 적합하고 어떤 사람들이 사귀기에 적합하지 않은지, 어떤 사람들이 교류하기에 적합하고 어떤 사람들이 교제하기에 적합하지 않은지, 어떤 사람들을 멀리하고 어떤 사람들을 가까이해야 할지 거의 다 알게 된다. 자질이 너무 떨어지는 사람이나 멍청이, 바보, 지적 장애인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말이다. 만약 네가 하나님을 오래 믿으면서 많은 진리를 듣고 많은 환경을 겪었는데도 인성 측면에서만, 혹은 사람을 분별하거나 간단한 사물을 인식하는 데에서만 약간의 수확이 있을 뿐이라면 이를 진정한 수확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럼 진정한 수확이란 과연 무엇이냐? 진정한 수확은 네 분량과 관계가 있다. 네게 수확이 있으면 진보가 있을 것이며, 네 분량도 성장할 것이다. 진정한 수확이 없으면 네 분량은 성장하지 않는다. 그럼 여기에서 수확이란 무엇을 가리키겠느냐? 최소한 진리, 구체적으로 말해서 진리 원칙과 관계가 있다. 각 부류의 일과 사람을 처리할 때 반드시 지켜야 할 진리 원칙이 무엇인지 이해하여 지키고 실행할 수 있다면, 그것은 네 처신의 원칙과 기준이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수확이다. 그 진리 원칙들이 네가 처신할 때 지켜야 할 원칙과 준칙이 되면, 그것은 곧 너의 생명이 된다. 그 부분의 진리가 네 내면에 만들어지면 네 생명이 되고, 네 생명은 성장하는 것이다. 만약 네가 이런 일과 관련된 진리 원칙을 아직 파악하지 못해 이런 일이 닥칠 때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른다면, 이 부분에서 진리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당연히 이 부분의 진리는 네 생명이 아닐 것이다. 그럼 네 생명은 성장하지 않았을 테니 아무리 말을 잘해 봤자 도리에 불과할 뿐 소용이 없다. 이 일을 판단할 수 있겠느냐? (네.) 그럼 너희는 그 기간에 성장했느냐? (그러지 못했습니다.) 너는 사람의 뜻과 머리로 몇몇 경험을 종합했을 뿐이다. ‘앞으로 어떤 말과 어떤 일을 하지 말아야 할지, 어떤 일을 많이 하고 어떤 일은 적게 하며 어떤 일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할지 이제 나는 확실히 알게 됐어.’라고 말이다. 이것이 생명이 성장했다는 표지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영적인 이해력이 심각하게 없는 것이다. 그저 규례와 글귀, 구호를 종합했을 뿐이니 진리와는 상관이 없다. 너희가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어떤 환경이나 큰일을 겪은 후에는 ‘이런, 앞으로 이런 일은 이렇게 처리하고 저런 일은 저렇게 처리해야지.’라고 스스로에게 말하지만, 다음번에 비슷한 일이 닥치면 똑같이 실패하고 만다. 스스로에게 화를 내 봤자 방법은 없다. ‘나라는 인간은 어쩜 이 모양인 거야!’라고 화를 내며 늘 스스로가 제구실을 못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도움이 되겠느냐? 네가 제구실을 못 하는 것도, 어리석은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배치한 환경에 문제가 있는 것도, 더욱이 하나님이 사람을 불공평하게 대하는 것도 아니다. 네가 진리를 추구하거나 찾지 않고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지 않으며,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 늘 사람의 뜻이 섞여 있는 것이며,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 자기가 주도권을 쥐려고 하고, 사람의 말을 들을지언정 하나님 말씀은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어떤 사건과 환경 속에서 얼마간 경험과 교훈을 종합했다고 해서 네가 성장한 걸로 생각하느냐? 만약 정말 성장했다면, 하나님의 다음번 검증에서 너는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킬 것이고, 하나님 집의 사역을 제대로 지킬 것이며, 교회의 각 사역을 합리적으로 배치할 것이다. 하나님 집의 사역이 어떤 교란이나 방해도 받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이 어떤 비방이나 모욕도 당하지 않으며, 형제자매의 생명 성장에 어떤 해도 가지 않고, 하나님의 제물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말이다. 이는 네가 성장했음을, 또한 쓰임 받기에 합당하며 생명 진입이 있음을 의미한다. 지금 너희는 아직 부족하다. 너희의 머리는 하나같이 미숙하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이 너무 많고, 너희는 순수하지도 않다.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진심이 한 조각 있고,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버리겠다는 바람도 있지만, 일이 닥치면 자신의 각종 욕망과 바람, 계획을 저버리지 못한다. 하나님 집과 하나님의 사역에 갖가지 어려움이 닥칠 때일수록 너는 더더욱 한쪽으로 비켜서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며, 나서서 사역을 주관하고 하나님 집의 이익과 하나님의 사역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 주지 않는다. 그럼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네 진심은 어디로 간 것이냐? 그 진심은 어쩌면 그렇게 단 한 번의 타격도 견디지 못할 만큼 나약하단 말이냐? 하나님을 위해 바치고 모든 것을 버리겠다는 그 바람은 어디로 갔느냐? 그것은 왜 굳게 서지 못하는 것이냐? 왜 그렇게 일격에도 견디지 못하는 것이냐? 이는 무엇을 의미하느냐? 너에게 실제 분량이 없다는 것이다. 너의 그 보잘것없는 분량으로는 작은 마귀 하나에게 교란당해도 정신을 차리지 못할 것이며, 작은 마귀가 한 번 괴롭히기만 해도 그것을 따르게 될 것이다. 설령 어느 정도 분량이 있다고 해도 네 이익과 관계없는 피상적인 일들을 겪을 때는 그럭저럭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면서 네가 할 수 있고 네 능력 범주 내에서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좀 할 수 있겠지만, 정말 굳게 서야 할 때, 교회 사람들이 대거 체포될 때, 악인과 적그리스도가 교란할 때는 어디에 있겠느냐? 무엇을 하겠느냐? 무슨 생각을 하겠느냐? 이는 문제를 분명히 설명해 준다. 그렇지 않으냐? 만약 어떤 적그리스도가 본분 이행 기간에 모두를 기만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며 교회 사역을 교란하고 방해하고 제물을 낭비하고 형제자매들을 미혹해 자신을 따르게 하는데도 분별하고 제지하고 보고하기는커녕 적그리스도를 돕고 따라서 일을 처리하며, 적그리스도가 그 모든 일을 통해 이루려는 결과를 실현시킨다면 하나님을 위해 진실로 헌신하겠다는 그 다짐이 무슨 역할을 했겠느냐? 이것이 네 진실한 분량 아니겠느냐? 적그리스도와 악인, 각 부류의 불신파가 튀어나와 하나님 집의 사역을 교란하고 망쳐 놓을 때, 특히 교회에 먹칠하고 하나님 이름을 욕되게 할 때 너는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 하나님 집의 사역을 지키기 위해 앞에 나서서 한마디 한 적이 있느냐? 앞에 나서서 제지하고 막은 적이 있느냐? 너는 나서서 제지하지 않은 것은 물론, 적그리스도를 따라 함께 악을 행하고 나쁜 짓을 했으며, 적그리스도의 조력자, 도구 역할을 했다. 심지어 사람들이 편지를 써서 적그리스도의 문제를 보고할 때도 문제를 보류해 둘 뿐 처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위해 진심으로 헌신하겠다는 다짐과 소망은 이 중요한 때 제 역할을 했겠느냐?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면, 그 소위 바람과 다짐이라는 것은 분명 네 진실한 분량이 아니고, 네가 하나님을 오랫동안 믿으면서 얻은 수확도 아닐 것이다. 그것은 진리를 대신할 수 없으며, 진리도 생명 진입도 아니고 사람이 생명을 갖추었다는 상징도 아니다. 그것은 그저 사람의 일방적인 생각이고, 어떤 아름다운 사물에 대한 동경이나 지향일 뿐 진리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러니 너희는 정신 차리고 자신의 진실한 분량을 똑똑히 보아야 한다. 자기가 그래도 좀 소질이 있다고, 또한 많은 것을 버렸다고, 학업과 직업, 가정, 결혼, 육의 미래 등을 버렸으니 분량이 무척 크다고 생각하지 마라. 심지어 처음 하나님을 믿고 뿌리를 내린 후로 줄곧 리더 일꾼을 한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그 세월 동안 어느 정도 경험과 교훈을 종합하였고, 얼마간 글귀와 도리를 말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자신의 분량이 다른 사람보다 크다고, 생명 진입이 있다고, 자신은 하나님 집의 대들보, 기둥이며 하나님이 온전케 할 대상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틀렸다. 스스로 훌륭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너희는 아직 그러기엔 이르다! 적그리스도조차 분별하지 못하는 너희는 딱히 실제 분량이랄 게 없다. 네가 여러 해 동안 리더 일꾼을 하기는 했지만, 쓰임 받을 만한 곳이 없고, 실제적인 사역을 별로 하지도 못한다. 그저 그럭저럭 쓸 뿐이다. 너희는 천리마가 아니다. 너희에게 정말 괴로움과 고생을 참고 견디는 정신이 있다고 할지라도 기껏해야 늙은 황소에 불과할 뿐이다. 너희는 쓰임 받기에 합당치 않다. 어떤 사람들이 리더 일꾼이 된 것은 전적으로 열정과 기초적 지식이 있고 어느 정도 자질을 갖췄기 때문이다. 또한, 개별 교회에서 이상적인 책임자를 찾지 못해 그가 파격적으로 발탁되어 양성받을 대상이 된 것이다. 이들 중 일부는 각 부류 사람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하나씩 교체되고 도태되었다. 지금까지 따르며 살아남은 사람들도 있지만, 제대로 된 분별력이 없다. 그저 악을 행하지 않아 살아남았을 뿐이다. 이는 전적으로 상부의 사역지침 덕분이고, 상부에서 직접 지도하고 점검하고 신경을 쓰고 체크하고 감독하고 책망 훈계를 한 덕분이다. 이것을 기초로 몇몇 사역을 구체화할 수 있었던 것이니 이는 쓰임 받기에 합당한 사람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너희는 늘 사람을 숭배하고 따르며 치우친 길을 걷고, 잘못된 일을 하기 때문이다. 또 수시로 사설과 궤변에 미혹되어 갈 곳을 잃고 방향을 잡지 못하다가 결국 자기가 대체 누구를 믿는 것인지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너희의 실제 분량이다. 너희에게 생명 진입이 전혀 없다고 한다면 억울해할 테니, 이렇게 말하겠다. 너희의 체험 범위는 너무나 제한적이며, 책망 훈계나 큰 징계가 임했을 때만 조금 진입할 뿐이다. 하지만 큰 원칙 측면의 일, 특히 적그리스도나 거짓 리더의 미혹과 교란을 직면하는 일에 있어서 너희는 백지와 같고 간증이 전혀 없다. 또 너희는 생명 체험과 생명 진입에서 체험이 너무 얕으며, 하나님을 진실로 인식하지 못했다. 이런 측면에서도 백지와 같다. 이 밖에, 교회의 실제적인 사역을 하는 측면에서도 너희는 진리를 교제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니 이 역시 백지와 같다. 이 몇 가지 측면에서 너희가 제출한 것은 전부 백지 답안지이다. 그래서 너희는 리더 일꾼으로 쓰임 받기에 합당하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평범한 신자로서 많은 사람이 어느 정도의 생명 진입은 이루었다. 다만 그 정도가 너무 미미하여 진리 실제에 이르지 못한다. 검증을 이겨 낼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정말 큰 시련과 시험이 임하거나 직접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큰 형벌과 심판이 임하면 그때 비로소 진실한 분량과 진리 실제가 있는지, 굳게 설 수 있는지, 네가 제출하는 답안지는 무엇인지, 하나님의 요구에 도달할 수 있을지 등이 검증될 것이다. 그래야 네 진실한 분량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 네게 분량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리더 일꾼이 되는 일에 대해 말하자면, 너희는 이렇다 할 실제 분량이 없어서 일이 닥치면 바로 멍해진다. 또 악인과 적그리스도가 교란하면 바로 꼬리를 내리며, 어떤 중요한 사역도 혼자서 완수하지 못한다. 전부 다른 사람이 점검하고 지도하고 협력해야 완수할 수 있다. 즉, 너희는 방향을 잡지 못한다. 너희가 맡은 역할이 주연이든 조연이든 혼자 한 가지 일을 담당하지 못하며, 독립적으로 어떤 한 사역을 완수하지도 못한다. 또 상부에서 방향을 잡아 주거나 걱정하지 않아도 사역을 잘해야 하는데, 너희는 이 수준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마지막에 사역을 체크할 때, 너희가 모든 부분을 빈틈없이 신경 쓰고, 모든 사역을 마음을 다해 훌륭하게 해냈으며, 적절하게 처리하여 전부 진리 원칙에 부합한다면, 진리를 깨닫고 진리 원칙을 구하는 것을 기초로 사역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사역을 제대로 해냈다면, 그때는 쓰임 받기에 합당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너희가 체험한 모든 일을 통해 볼 때, 너희는 쓰임 받기에 합당하지 않다. 쓰임 받기에 합당하지 않다고 하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너희가 독립적으로 본연의 사역을 완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한 가지 측면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볼 때, 만약 상부에서 점검하지 않는다면 너희는 사람들을 곁길로 잘못 이끌고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교회의 형제자매들을 진리 실제나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로 이끌지 못하고, 하나님의 선민들이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도록 하지도 못할 것이다. 너희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상부에서 한동안 체크하지 않는다면, 너희가 책임지는 사역 범위에는 늘 많은 오류와 허점이 생길 것이며, 각양각색에 형형색색의 문제들이 발생할 것이다. 또 상부에서 시정하거나 점검하거나 직접 처리해 주지 않는다면, 어느 수준까지 잘못될지 장담할 수 없고, 언제까지 잘못될지 알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너희의 실제 분량이다. 그래서 너희는 쓰임 받기에 합당하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너희는 이런 말을 듣기를 원하느냐? 이런 말을 듣고 소극적인 상태에 빠지지는 않느냐? (하나님, 마음이 무척 괴롭긴 하지만 하나님께서 교제해 주신 것들은 분명 사실입니다. 저희는 분량도, 진리 실제도 전혀 없습니다. 적그리스도가 나타나도 분별하지 못하고요.) 내가 좀 짚어 주어야겠구나. 그러지 않으면 너희는 계속 억울하고 원통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너희는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그저 글귀와 도리를 좀 말할 수 있을 뿐이다. 평소 예배 시간에 도리를 말할 때 초안을 작성할 필요가 없고 주눅 들지도 않는다고 해서 스스로 분량이 있다고 생각한다. 분량이 있는데 왜 쓰임 받기에 합당하지 않겠느냐? 왜 진리를 교제하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느냐? 너는 그저 글귀와 도리를 좀 늘어놓아 형제자매들에게 동조를 살 뿐이다. 이는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것도, 쓰임 받기에 합당한 것도 아니다. 네가 말할 수 있는 그 얼마 안 되는 글귀와 도리는 결코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 하나님이 작은 환경만 배치해도 너는 금세 드러날 것이다. 네 분량이 미미하고 진리를 깨닫지 못하며 어떤 일도 간파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네가 가련하고 궁핍하며 눈멀고 어리석다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다. 그렇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너희가 이런 일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면 천천히 생각해 보아라. 너희가 보기에는 내가 한 말이 일리가 있지 않으냐? 이것이 실제 상황 아니냐? 스스로에게 대조해 볼 수 있겠느냐? 대조해 보니 그렇다 해도 소극적인 상태에 빠져선 안 된다. 소극적인 상태에 빠져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너는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며 리더 일꾼이 되려고 하니 좌절과 실패를 좀 맞닥뜨렸다고 책임을 내팽개쳐서는 안 된다. 다시 일어나 계속 전진해야 할 것이다. 자신에게 부족하고 모자란 부분, 문제가 심각한 부분이 있으면 그 측면의 진리를 갖추는 데 집중해야 한다. 소극적인 상태에 빠지고 쓰러져 있으면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일이 닥칠 때 글귀와 도리를 늘어놓지 말고, 갖가지 객관적인 이유를 강조하지도 마라. 그런 건 소용이 없다. 하나님이 너를 검증할 때, “저는 그때 몸이 별로 안 좋았습니다. 저는 젊었고, 주변 환경이 별로 안정적이지 않았어요.”라고 말한다면 하나님이 그 말을 들어 주겠느냐? 하나님이 “그때 네게 교제해 준 진리를 너는 들었느냐?”라고 물으면 너는 “들었습니다.”라고 할 것이다. “너에게 내려온 사역지침이 손에 있지 않았느냐?”라고 물으면 너는 “있었습니다.”라고 할 것이다. 그럼 하나님은 “그런데 너는 왜 그렇게 행하지 않았느냐? 왜 그렇게 엉망으로 무너졌느냐? 왜 굳게 서지 못했느냐?”라고 물을 것이다. 네가 강조하는 어떤 객관적인 이유도 성립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네 핑계와 이유가 아니다. 하나님은 네가 얼마나 많은 도리를 늘어놓을 수 있는지, 어떻게 변명하는지를 보지 않는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네 진실한 분량과 생명 성장이다. 언제든, 어떤 급의 리더가 되든, 네 지위가 얼마나 높든 너는 자신이 누구인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지 잊지 마라. 네가 아무리 많은 도리를 늘어놓을 수 있어도, 또 그 도리를 아무리 노련하게 늘어놓을 수 있어도, 하나님 집을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공을 세웠어도 그것은 전부 실제 분량이 아니고, 생명이 있다는 표지도 아니다. 진리 실제에 진입하고 진리 원칙을 파악하는 것, 일이 닥쳤을 때 굳게 설 수 있는 것, 독립적으로 사역을 완수할 수 있는 것, 쓰임 받기에 합당한 것, 이런 것이 바로 실제 분량이다. 자,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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