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5) 제 4 부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전통과 미신이 기독교 외의 전통적 사상과 미신에 속한다면 우리가 비판하고 내려놓아야겠죠. 그런데 정통 종교와 관련된 사상 관점과 전통 혹은 미신까지 내려놓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그것을 명절이나 생활 방식의 하나로 생각하고 기념하면서 일상에서 지켜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말이다. (안 됩니다. 모두 내려놓아야 합니다. 전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니까요.) 예를 들어 기독교에서 유래된 최대 절기인 성탄절에 대해 너희가 잘 알고 있지 않느냐? 동양의 일부 대도시에서도 이 절기를 지키면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거나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낸다. 성탄절 외에도 부활절, 유월절 역시 종교와 관련된 큰 절기이다. 어떤 절기에는 칠면조나 바비큐를 먹고, 어떤 절기에는 지팡이 사탕을 먹는다. 그 사탕은 빨간색과 흰색이 섞여 있는데 예수의 보혈이 사람의 속죄 제물이 되어 사람을 성결하게 한다는 의미가 있다. 빨간색은 예수의 보혈을, 흰색은 성결을 의미한다며 그 사탕을 먹는 것이다. 그리고 부활절에는 부활란을 먹는다. 이는 모두 기독교의 절기와 관련된다. 이 외에도 마리아상, 예수상, 십자가 등 기독교의 상징물이 있는데, 이것들은 모두 기독교로부터 발전된 것들이다. 내가 보기에 이것도 사실은 전통의 하나이다. 그렇다면 전통의 이면에는 필연적으로 미신과 관련되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 미신의 속설이 어떤 내용이든 결론적으로 이런 속설이 진리, 사람이 가야 할 길, 피조물을 향한 하나님의 요구와 관련이 없다면 지금 너희가 진입해야 할 바와 무관한 것이니 그것을 신성불가침한 것으로 여기지 말고 내려놓아야 한다. 물론 그것을 경멸할 필요도 없다. 그저 올바르게 대하라는 것뿐이다. 이런 절기가 우리와 관련이 있느냐? (관련 없습니다.) 관련이 없다. 어떤 외국인이 내게 물었다. “당신들은 성탄절을 지내십니까?” 지내지 않는다고 하니 그가 물었다. “그럼 중국식 설은 지내시나요? 춘제 말입니다.” 그 역시 지내지 않는다고 대답하니 다시 물었다. “그럼 어떤 명절을 지내십니까?” 내가 대답했다. “우리에겐 명절이 없습니다. 하루하루가 똑같죠. 우리는 언제든지 먹고 싶은 음식을 먹지 명절이라는 이유로 먹지 않습니다. 내게는 전통이란 것이 없습니다.” 그가 이유를 묻길래 설명해 주었다. “이유라고 할 것도 없어요. 그 어떤 속박도 없이 이렇게 지내는 것이 자유롭기 때문이죠. 우린 특별한 형식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아요. 규칙만 잘 지키면 되는 것이죠. 하나님이 사람에게 허락한 시간에 따라 제때에 양에 맞게 먹고 쉬며 일하고 활동하면서 그렇게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지내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아무런 형식이 없어요.” 물론, 십자가와 같이 종교와 관련된 특정 사물에 대해 십자가는 신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십자가가 신성하냐? 그것을 신성하다는 말로 형용해도 되겠느냐? 마리아상은 신성하냐? (신성하지 않습니다.) 예수상은 신성하냐?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구나. 어째서 예수상이 신성하지 않겠느냐? 사람이 그렸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정한 형상이 아니라 하나님과 무관한 그저 한 폭의 그림일 뿐이다. 마리아상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예수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제멋대로 그려 놓은 그림에 절하라고 했다고 네가 절한다면 멍청이가 아니냐? 네가 경배해야 할 대상은 하나님이지 형식적으로 절하는 우상, 초상화, 그림 따위나 물건이 아니다. 너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앙망해야 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본체 앞에 엎드려야지 십자가나 마리아상, 예수상 앞에 엎드리면 안 된다. 그것들은 모두 우상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제2단계 사역의 상징일 뿐,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 그리고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며, 하나님의 본질을 대표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니 네가 십자가를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이 네가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부적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나는 결코 십자가를 상징하지 않는다. 내 집에는 십자가 상징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런 것들은 없다. 그래서 성탄절이나 부활절을 지내지 말라고 하면 사람은 쉽게 내려놓을 것이다. 하지만 종교적인 측면으로 이른바 십자가나 마리아상, 예수상, 심지어는 성경과 관련하여 십자가나 마리아상, 예수상을 버리라고 하면 사람은 이렇게 생각한다. ‘아, 이건 너무 불경스러운 일이잖아. 어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야지….’ 그러면서 나쁜 결과가 생길 거라 생각할 것이다. 물론, 이런 것들에 대해 굳이 파괴적인 행동을 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추앙할 필요도 없다. 그것은 그냥 물건일 뿐 하나님의 본질이나 신분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는 네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물론, 사람이 정한 소위 예수 탄생일, 부활절 역시 하나님의 신분 본질, 하나님의 사역,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네가 성탄절을 백 번, 만 번 지낸다 해도, 대대로 성탄절과 부활절을 지낸다고 해도 그것이 네가 진리를 깨달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너는 “전 서양으로 가겠어요. 거기서는 성탄절을 지낼 수 있잖아요. 성탄절은 신성한 날이에요. 하나님의 사역을 기념하는 날이자 우리가 기념해야 할 날이기도 해요. 우리는 그날을 엄숙하고 경건하게 보내야 해요. 더욱이 부활절은 만인이 주목해야 하는 날이에요. 성육신 하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잖아요. 우리는 이날을 함께 기쁨으로 경축하고 축하하며 영원히 기념해야 마땅해요.”라며 경모할 필요가 없다. 이는 전부 사람의 상상일 뿐 하나님이 원하는 게 아니다. 만약 사람이 이날을 기념할 필요가 있다면 하나님이 정확한 연월일은 물론 시분초까지 알려 줬을 것이다. 하나님이 정확한 연월일을 알려 주지 않았다는 것에는 한 가지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은 사람이 이날을 기념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네가 만약 기념한다면 하나님의 금기를 어기는 것이니 하나님이 좋아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좋아하지 않는데 네가 기어이 하겠다고 하고 한술 더 떠 이것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은 더욱 너를 싫어할 것이고, 너는 죽어 마땅하다.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지금은 네가 이런 절기를 지킨다 해도 하나님이 신경 쓰지 않지만 언젠가 네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대가를 치르고 책임을 져야 할 날이 올 것이다. 그러니 잘 들어라. 네가 십자가 밑에 엎드려 몇 번이고 절하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한 마디라도 진실로 깨닫고 준수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네가 십자가 밑에서 몇 번을 절하든 부질없다. 그것이 네가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하나님이 요구한 원칙대로 일을 처리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으니 하나님은 기억하지 않는다. 그러니 네가 만약 십자가가 무척 신성하다고 생각했다면 오늘부터 그런 사상 관점을 내려놓고 네가 그렇게나 귀중히 여기는 십자가를 마음 깊은 곳에서 지워 버려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을 상징하지 않으니 거기에 절하는 것 역시 네가 경건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네가 그것을 귀중히 여기고 보배롭게 여기며 심지어 하루 종일 어깨에 메고 있을지라도 네가 하나님을 경배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십자가는 단지 하나님이 한 단계 사역에서 사용한 도구일 뿐 하나님의 본질, 성품, 신분과는 전혀 상관없다. 네가 만약 기어코 십자가를 하나님으로 여겨 경배한다면 하나님이 혐오할 것이니 너는 하나님에게 기억되지도 못할뿐더러 오히려 하나님에게 버림받을 것이다. 그래도 네가 만일 “도저히 당신 말씀대로 못하겠어요. 십자가는 제 마음속에 신성불가침한 것이거든요. 십자가는 중요하지 않고 하나님을 상징하지도 않는다는 말씀은 못 믿겠어요. 당신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겠어요.”라며 기어이 고집을 부린다면 네 생각대로 해서 마지막에 네가 얻는 것이 무엇일지 두고 보아라.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진작에 내려왔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한 단계 사역에 쓰인 가장 보잘것없는 도구이자 하나의 물건일 뿐이니 하나님에게는 보존 가치가 조금도 없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네가 그것을 귀하고 보배롭게 여기거나 나아가 우러러보고 존중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 성경도 사람의 마음속에서 유난히 귀하게 여겨진다. 비록 이제는 성경을 보지 않는다 하더라도 성경이란 책은 사람의 마음속에 어느 정도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가정에서나 조상 대대로 전해져 오는 성경에 대한 관점을 지금까지도 완전하게 내려놓지는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성경을 한 켠에 치워 둘 때면 너는 생각할 것이다. ‘아,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 저건 성경이잖아. 소중히 여겨야지! 성경은 신성한 거야. 평범한 책처럼 함부로 대하면 안 돼. 이렇게 뽀얗게 먼지가 앉을 때까지 아무도 닦지 않고, 책 모서리가 구부러져서 저 지경이 되도록 아무도 정리를 안 하다니.’ 성경을 신성불가침한 물건으로 여기는 이런 사상 관점은 내려놓아야 한다.

우리가 방금 이야기한, 가정에서 비롯된 전통, 미신, 그리고 종교 측면의 여러 사상 관점, 생활 방식 혹은 미신적으로 경모하고 귀하게 여기는 물건 등 사람에게 주입된 모든 것은 잘못된 생활 방식이고 잘못된 사상 관점이다. 이는 은연중 네 인생과 생활, 삶을 잘못된 길로 이끈다. 이는 일상에서 부지불식간에 사람이 올바른 것, 긍정적인 사상과 사물을 받아들이는 것을 교란하고,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미련한 짓, 비이성적이고 유치한 일을 하게 된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사람은 이런 일에 대해 정확한 견해와 사상 관점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만약 그것이 진리와 관련되고 진리에 부합한다면 너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실행하며 순종해야 한다. 그것을 자신의 생활과 삶에서 지켜야 할 원칙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진리와 관련되지 않고 그저 전통, 미신, 종교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는 우리가 오늘 교제한 내용에 특수성이 있다는 것이다. 즉, 전통, 미신 그리고 종교와 관련된 이 내용을 네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경험했든 하지 않았든, 얼마나 인지하고 있든 어쨌든 일부 전통과 미신 측면의 말들은 객관적 사실로 존재하며 모든 인간의 일상생활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고 교란시킨다는 것이다. 그럼 이 일을 너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겠느냐? 어떤 사람은 말한다. “안 믿으면 안 돼요. 그 말대로 하지 않았다가 뒤탈이 나면 어쩌려고 그래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믿지 않는 사람과 구별되는 가장 큰 차이점이 무엇인지 아느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믿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언제나 자기 힘으로 운명을 바꾸려 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하고 보호하기에 현실 생활 속에 존재하는 이런 다방면의 미신 현상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보호가 없을뿐더러 하나님의 보호나 주재를 믿지 않으며 여러 더러운 귀신과 악령에게 일상생활이 지배당하기 때문에 삶에서 무슨 일이 생기든 금기를 따진다. 그의 이런 금기는 어디서 비롯되었느냐?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냐? (아닙니다.) 그는 어째서 이 일을 기피하려는 것이냐? 이런 일을 기피해야 한다는 것을 그가 어떻게 알았겠느냐? 일부 사람이 그런 일을 겪고 나서 얻은 경험과 교훈이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진 것이다. 이런 경험과 교훈이 퍼지면 사람들 사이에 일종의 풍조가 생겨 전부 그렇게 행동하면서 살게 된다. 그럼 이 풍조라는 것은 어떻게 생기느냐? 바로 악령이나 더러운 귀신이 정해 준 규칙대로 하지 않으면 그것들이 교란하고 정상적인 삶을 파괴하고 방해함으로써 이런 금기의 존재를 믿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이를 어기면 불행이 닥칠 것이라고 믿게 만드는 것이다. 인간이 수천 년의 일상생활을 이어 오면서 정리한 이런 경험이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면서 사람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람의 뒤에는 보이지 않는 힘이 사람을 장악하고 있기에 그것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 예로 설날에 폭죽을 터뜨리지 않으면 한 해 사업이 잘 풀리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것을 들 수 있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 보면 설을 지낼 때 첫 번째 향을 피우면 한 해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경험들은 사람에게 그런 미신을 꼭 믿어야 하고, 민간에서 유래된 속설을 반드시 믿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사람은 대대로 전하면서 이런 식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럼 이런 현상을 통해 사람은 어떤 사실을 알 수 있느냐? 사람이 생활 속에서 기피하는 이런 것들은 모두 사람이 하루하루를 살아오면서 정리한 경험이기에 이런 기피나 금기를 따를 수밖에 없고 꼭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뒤에 보이지 않는 힘이 이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대대손손 이 규칙을 지키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이 미신과 전통을 지켜야만 사람들 속에서 비교적 순탄하게 살 수 있다. 평안과 순탄함, 기쁨을 구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어째서 이런 미신이나 전통을 지킬 필요가 없는 것이냐?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보호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은 이들을 하나님 앞으로 이끌고, 하나님 집으로 이끈다.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사탄이 너를 해칠 수 없으며, 네가 사탄의 규칙을 지키지 않아도 그것이 너를 건드리지 못한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고 따르지도 않는 사람은 사탄이 마음대로 지배한다. 사탄이 사람을 지배하는 방식은 이렇다. 여러 속설과 괴상한 규칙을 정해 주어 지키게 하고는 지키지 않으면 혼쭐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음력 12월 23일에 조왕신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불행이 닥친다 하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불행이 닥친다니 이방인은 제사를 지내지 않을 수 없다. 그날은 깨엿도 먹어야 하는데 그 이유가 조왕신이 하늘에 가서 함부로 말하지 못하게 그의 입을 막는다는 것이다. 그럼 이 규칙과 미신적인 속설은 어디에서 비롯되었겠느냐? 사탄이 한 짓이 사람의 입을 통해 전해 내려온 것이니 근본적으로 사탄, 각종 더러운 귀신, 악령, 마왕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것은 네게 이런 규칙을 정해 주고 이런 미신적인 속설과 규칙으로 통제하여 그것을 따르게 만든다. 네가 따르지 않는다면 사탄의 뜨거운 맛을 보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런 미신적인 속설을 믿지 않는데, 집이 잘 풀리지 않자 점을 보러 불당을 찾아갔더니 이런 말을 들었다. “아이고, 어떤 금기를 어겼나 보군요. 집 공사를 좀 해야겠어요. 연통도 옮기고 방 배치도 바꿔야 해요. 부적을 하나 써 드릴 테니 문 위에 붙이세요. 그럼 어떤 귀신도 들어오지 못할 겁니다.” 사실은 그것이 더 큰 귀신이라 그 작은 귀신을 제압해서 너를 괴롭히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니 삶이 훨씬 평안해졌다. 그 사람은 처음엔 믿지 않았지만 이제 와서 보니 ‘아, 귀신이란 게 정말 있긴 있어서 일을 교란시키는구나.’라고 생각하고는 믿을 수밖에 없게 된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완전히 악한 자의 손에 놀아나면서 이 세상에 섞여 살아가기 때문에 아무런 선택의 권리나 여지도 갖지 못한다. 그러니 믿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만약 이런 미신이나 전통적인 사상 관점 혹은 종교에 속하는 것들을 고집하고 그들의 절기를 지킨다면, 그들의 속설을 믿고 그들의 전통과 생활 방식, 생활 태도를 계승한다면, 또한 삶의 즐거움의 원천이 그들의 속설에 있다면, 이는 하나님에게는 ‘저는 당신의 지배를 믿지 않고 당신의 지배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습니다.’ 하고, 악령, 더러운 귀신, 사탄에게는 ‘그렇게 해요. 당신들의 말을 믿고 당신들과 협력하고 싶습니다.’라고 몸으로 말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네가 지닌 여러 태도나 사상 관점, 그리고 네 실행이 진리는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악령, 더러운 귀신, 사탄의 사상 관점에 동조하며 그것의 사상 관점대로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고 있기 때문에 너는 악령, 더러운 귀신, 사탄의 권력 아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네가 그것의 권력 아래 살면서 나갈 땐 만두, 돌아올 땐 국수, 설에는 녠가오나 생선을 꼭 챙겨 먹고자 하니 어디 한번 그것을 잘 따라가 보아라. 너는 하나님을 믿을 필요도 없고 네가 하나님을 믿는 자라고 인정할 필요도 없다. 사사건건 사탄이 주입한 생활 방식이나 사상 관점 혹은 종교적 관념에 따라 사람과 일을 바라보거나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면서 생활하고 살아가며, 또 네가 하는 짓이 하나님이 가르쳐 준 것과 무관하고 진리와도 관계가 없다면 너는 영락없는 사탄의 추종자이다. 마음속으로 사탄을 따르면서 너는 왜 여태 여기에 앉아 있는 것이냐? 어째서 아직까지 설교를 듣는 것이냐? 이것이 기만 아니겠느냐?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 아니겠느냐? 네가 사탄이 주입한 전통, 미신과 종교 관념에 연연해하며 한데 얽혀 떨쳐 내지 못하니 그냥 하나님을 믿지 말고 불당에서 지내면서 향을 피우고, 절하며 점치고 경이나 외우거라. 하나님 집에서 지내지 말거라.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자격도,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자격도 없다. 그러니 네가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고 인정한다면 가정에서 비롯된 전통, 미신과 종교적 관념을 내려놓아야 한다. 설사 아무리 기본적인 생활 방식이라도 그것이 전통, 미신과 관련된다면 너는 그것을 고수하지 말고 내려놓아야 한다. 하나님이 가장 혐오하는 것이 사람의 전통과 명절, 규칙 그리고 민간이나 가정에서 비롯된 여러 속설을 가진 생활 규칙들이다. 예를 들어 집을 지을 때 귀신을 비춘다 하면서 문 위에 꼭 거울을 거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을 믿는데도 귀신이 무섭단 말이냐? 하나님을 믿는데 귀신이 어떻게 함부로 너를 해칠 수 있겠느냐? 그럼 네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어떤 사람은 설에 “내가 죽으면”이나 “엄마가 죽으면” 등의 불길한 말을 하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퉤퉤퉤, 철없는 아이 같은 말이니 전부 취소요!”라며 기겁한다. 이 말이 들어맞을까 무서운 것이다. 무서울 것이 뭐가 있느냐? 설사 정말 들어맞는다고 해도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겠느냐? 반항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느냐? 하나님에게는 금기란 없다. 오직 진리에 부합하느냐만 따질 뿐이다. 네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 어떤 금기도 지켜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 원칙에 따라 그 일을 대해야 한다.

오늘 교제는 가정이 사람에게 가르치는 전통, 미신, 그리고 종교 측면의 주제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비록 우리가 이런 주제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는 않지만 이런 교제를 통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과 원칙에 따라 이 일들을 대해야 하는지 알려 주기에는 충분하다. 최소한 네가 반드시 실행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주제와 관련된 내용을 내려놓는 것이다. 그것을 염두에 두지 말고 평소의 생활 모습으로 여겨 지키지도 말아야 한다. 네가 해야 할 급선무는 그것을 내려놓는 것이다. 그것의 교란과 속박을 받거나 그것에 따라 네 화복을 판단해서도 안 된다. 더욱이 그것을 토대로 앞으로 갈 길을 바라보거나 택해서도 안 되는 것은 물론이다. 만약 네가 외출했다가 검은 고양이 한 마리를 보고는 “오늘 일진이 사납겠는데, 재수 없는 일이 생기는 거 아냐?”라고 말한다면 이런 관점은 어떠냐? (옳지 않습니다.) 고양이 한 마리가 널 어쩐다는 말이냐? 설사 미신에 어떤 속설이 있더라도 너와는 관계가 없으니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 검은 고양이는 말할 것도 없고 검은 호랑이가 와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려 있으니 사탄, 악령 역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고양이라면 더더욱 두려울 게 없다. 네가 만약 마음속에 어떤 금기도 없이 오직 진리만을 추구하고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려 있다고만 믿는다면, 그것이 어떤 속설이고 어떤 액운을 가져다주든 너는 염려할 필요가 없다. 가령 어느 날 네가 머리맡에서 부엉이 울음소리를 들었다고 치자. 중국 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부엉이 우는 게 무서우랴? 부엉이 웃는 게 무서울 뿐.” 그 부엉이가 울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웃기까지 하면 너는 기겁해서 심리적 충격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일어날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고, 일어나지 않을 일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을 거야. 나는 하나님 손안에 있고, 만물도 하나님 손안에 있어. 두렵지 않아. 이 일에 영향받지 않을 거야. 그냥 살던 대로 살아야지.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하나님의 모든 지배에 순종하는 것, 이것만은 영원히 변치 않아!’라고 생각하며 그 어떤 것에도 방해받지 않는 것이 옳은 것이다. 만약 어느 날 네가 이와 머리카락이 빠지고 밥그릇이 깨지며 자기가 죽는, 온갖 안 좋은 일이 다 일어나는 악몽을 꿨고, 이 모든 장면이 네게 좋은 징조로 보이지 않았다면 어쩌겠느냐? 의기소침하지 않겠느냐? 괴롭지 않겠느냐? 영향을 받지 않겠느냐? 예전 같았으면 한두 달은 괴로워하다가 아무 일도 없으면 안도의 한숨을 쉬겠지만, 이제는 조금 방해받다가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바로 안정을 되찾을 것이다.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 순종하는 마음 자세를 갖는 것이 옳은 것이다. 설사 이런 불길한 징조가 정말 안 좋은 일로 일어난다 해도 해결 방법이 있다. 어떻게 해결하겠느냐? 안 좋은 일 역시 하나님께 달려 있지 않느냐?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사탄 마귀가 네 머리카락 하나 건드릴 수 없다. 하물며 지금은 목숨이 달린 문제인데 그것들이 멋대로 결정할 수 있겠느냐? 만약 하나님의 허락이 없다면 큰일이든 사소한 일이든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네가 어느 날 꿈에서 어떤 나쁜 장면을 보았든 혹은 몸에 어떤 이상한 느낌이 들었든 염려하지 말고 불안해하지도 말며 회피, 거부, 대항할 생각도 하지 마라. 또는 인위적인 방법으로 인형을 만들어 바늘로 찌르거나, 쌀 점을 보거나, 점대를 뽑거나, 혹은 그 위험을 피하려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아볼 필요가 없다. 어쩌면 네가 꾼 꿈이 정말 불행이 닥칠 것을 예고하는 것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사업이 망하거나 주식이 떨어지거나 사업을 남에게 빼앗길 수 있고, 예배 중에 정부 당국에 잡힌다거나 복음을 전하다가 신고당하는 등의 일일 것인데 그런들 어쩌겠느냐?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 달려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안 좋은 일로 염려하거나 슬퍼하거나 두려워하지 마라. 물론, 그 어떤 나쁜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저항하거나 반항하지도 마라. 피조물로서 해야 할 일이나 이행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피조물이 가져야 할 입장과 관점을 가지는 것은 일이 일어났을 때 모든 사람이 가져야 할 태도이다. 다시 말해, 받아들이고 순종하며 하나님의 지배에 맡기고 원망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그 어떤 종교, 전통, 미신에 관련된 속설이나 그로 인한 불행도 네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며 방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너는 진정으로 사탄 권력 아래에서,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 흑암 권세나 사탄의 사상에 지배당하지 않게 될 것이고 네 생각, 네 마음과 영, 네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에 정복되고 하나님께 얻어질 것이다. 이는 자유케 되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는 완전히 자유케 되어 해방과 자유를 얻고 사람답게 사는 것이니 얼마나 좋으냐!

오늘 교제한 이 주제와 관련된 내용은 대체로 여기까지다. 일상생활에서 익숙한 금기와 관련된, 예를 들어 특정 병에 걸렸을 때 어떤 것을 먹으면 안 되고, 열이 많은 사람은 고추를 먹으면 안 된다는 말은 처신이나 사상 관점과 관련이 없고 사람이 가야 할 길과는 더더욱 무관하기에 이런 것은 우리가 교제할 범위에 속하지 않는다. 우리가 교제한 가정이 네게 가르치는 내용은 모두 사람의 사상 관점, 사람의 평소 생활 모습, 생활 규칙 그리고 여러 사물을 대하는 사상 관점 및 입장과 견해와 관련된다. 다방면에서 잘못된 이런 사상 관점과 태도를 모두 해결한 다음 사람이 진입해야 할 것은 바로 올바른 사상 관점, 사물을 대하는 올바른 견해와 태도를 구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럼, 오늘 주제는 여기까지 교제하도록 하겠다. 안녕!

2023년 3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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