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4) 제 4 부

사람에 대한 가정의 영향에 관해 우리가 언급한 사상 관점 외에 또 무엇이 있느냐? 너희가 한번 정리해 보거라. 가정에서 비롯된 것은 상당히 많다. 중국인은 이것을 밥상머리 문화라고 일컫는다. 예를 들면 밥상에서 아이가 이렇게 말한다. “우리 반 반장 있잖아요. 그 작대기 세 개 달고 있는 여자애 말이에요. 맨날 제 숙제 검사하면서 숙제 덜 해 왔다고 해요. 저 숙제 다 했는데도요. 맨날 제 꼬투리 잡기 바빠요.” 그럼 부모가 말한다. “걘 여자애고 넌 사내아이잖니. 걔한테 따져 봐야 뭐하니? 공부나 열심히 해서 엄마 체면이나 좀 세우렴. 그때 네가 반장이 돼서 그 아이 숙제를 검사하면 되잖니.” 너는 그 말을 듣고는 생각한다. ‘그러게 말이야. 난 남자고, 걘 반장이긴 하지만 여자아이니까 걔한테 따지면 안 되는 거지. 걔가 또 따지고 들면 무시해 버리면 그만이야. 걔가 나한테 따지고 들수록 나는 더 열심히 공부할 거야. 그래서 다음번엔 걔를 제치고 내가 반장이 돼서 걔를 감독하면 그만이잖아.’ 이것이 바로 밥상머리 문화이다. 밥상에서 남자아이가 울면 부모가 이렇게 말한다. “뚝! 울긴 왜 울어. 못난 놈!” 울면 못난 것이냐? 그럼 울지 않는 사람은 잘난 것이더냐? 울지 않는 남자는 모두 잘난 사람이냐? 잘난 사람들을 생각해 보아라. 어렸을 때 울어 본 적도 눈물을 흘려 본 적도 없었겠느냐? 그에게는 정도 없고 희로애락도 없겠느냐? 다 있는 것이다. 거물이든 평범한 사람이든 모두 인성의 연약함이나 인성 본능의 일면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본능의 일면은 부모의 교육과 사회적 배경으로 인해 나약함, 어리바리함, 무능함, 어리숙함으로 여겨져 사람들이 드러내길 꺼린다. 그저 어느 구석에 깊숙이 숨겨 놓고 남몰래 드러낼 뿐이다. 어떤 거물은 사업이 위기에 직면했는데 아무도 도와주거나 지원해 주지 않을 때 주위의 병사, 부하, 고용인이 물러간 후 욕조 속에서 이리처럼 울부짖으며 설움을 쏟아 낸다. 다 쏟아 내고 나면 생각한다. ‘누가 들었을까? 너무 맘 놓고 소리 질렀나? 좀 조용히 해야겠다!’ 소리를 낮추니 성에 차지 않아서 수건으로 입을 막고 이리처럼 울부짖는다. 정상 인성은 여러 정서를 발산하고 표현해야 하지만 이 사회의 모진 압박과 여러 가지 여론의 억압 때문에 아무도 감히 정상적으로 정서를 표현하지 못한다. 모든 사람은 가정의 교육과 영향으로부터 시작해 잘못된 것들을 주입받았기 때문이다. “남자는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 “쇠를 두들기려면 자신부터 단단해야 한다.”, “몸이 반듯하면 그림자가 기울어도 걱정하지 않는다.”, “양심에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으면 귀신이 찾아와도 겁날 일이 없다.”, 그리고 “사람이 착하면 업신여김을 당하고, 말이 착하면 사람이 올라탄다.” 따위의 말은 어리숙한 사람이 되지 말고 남을 괴롭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사람이 착하면 업신여김을 당하고, 말이 착하면 사람이 올라탄다.”에서 ‘착하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솔직함, 무던함, 충실함, 선량함, 정직함을 의미한다. 즉, 이런 사람은 쉽게 업신여김 당하니 그런 사람이 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럼 너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냐? 건달, 깡패, 무뢰한, 불한당, 악인, 불량배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아무도 괴롭힐 엄두를 내지 못한다. 어딜 가든 이치로 통하지 않으면 억지를 써야 한다. 소란을 피우고 유난을 떨며 생트집을 잡고 행패를 부릴 줄 알아야 한다. 이런 사람이 통한다. 어느 조직의 어떤 무리든 일반적인 사람은 이런 부류의 사람을 두려워해서 아무도 건들지 않는다. 개똥이나 빈대같이 일단 붙으면 떨어지지 않는다. 너는 이런 사람이 되어서 남들에게 호락호락하거나 만만하게 보이지 말아야 한다. 온몸에 가시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만약 가시가 없다면 이 사회에서 발붙이기가 쉽지 않을 것이고 항상 너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가정이 네게 가르치는 것은 네 인생길의 지침인 동시에 처신 원칙의 구체적인 가르침이자 주입이기도 하다. 부모는 이런 사상과 말을 통해 네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어떻게 행동하고 일을 처리해야 하는지 가르친다. 그들이 너더러 어떤 사람이 되라고 알려 주느냐? 일부 부모들의 말은 언뜻 듣기엔 그럴싸하다. “우리 아이가 꼭 출세하거나 유명인이 될 필요는 없어요. 그저 좋은 사람만 되면 좋겠어요.” 그러고는 아이에게 “나쁜 마음은 먹지 말되 경계심은 가져라.”, “사람이 착하면 업신여김을 당하고, 말이 착하면 사람이 올라탄다.”, “남자는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 등의 말을 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자주 얘기한 것은 자녀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는 것이냐 아니면 다른 어떤 사람이 되라는 것이냐? (강한 사람, 적어도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아라. 일반적인 부모는 자녀가 남들을 괴롭히는 모습을 보고 싶겠느냐 아니면 자녀가 너무 정직하고 올바른 길을 걸어 항상 남들에게 괴롭힘 당하고 따돌림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 싶겠느냐? 자녀가 어떤 부류의 사람이 되어야 부모가 가장 기뻐하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서 체면이 서겠느냐? (자녀가 남들을 괴롭히는 사람이 되면 부모가 자랑스러워하고, 자녀가 올바른 길을 걸어 늘 괴롭힘 당하면 수치스럽게 생각합니다.) 네가 올바른 길을 걸어 늘 괴롭힘 당하면 네 부모는 걱정하고 속으로 괴로워하고 가슴 아파하면서 네가 남에게 괴롭힘 당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이는 무엇에서 비롯되겠느냐? 무엇에서 비롯되든 부모가 자녀에게 가르치는 이런 사상 관점은 올바르지 않고 진리에 위배된다. 쉽게 말해, 부모가 주입한 이런 사상 관점은 절대 너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지 않을뿐더러 진리 추구의 길로 들어서게 하지도 않을 것이다. 물론 사람도 이런 사상 관점에 이끌려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 이는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니 부모의 의도가 무엇이고 취지가 어떻든, 그들이 네게 어떤 영향을 끼치든 네가 진리에 어긋나고, 진리에 맞서며, 하나님과 진리에 순종하지 못하는 삶을 살게 한다면 너는 마땅히 그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우리가 이번에 몇 차례에 걸쳐 교제한 가정에서 비롯된 여러 사상은 사람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보급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어느 정도로 받아들였든, 그것을 받아들인 사람이 얼마나 많든, 사람이 그것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든 사람에 대한 해악이라는 점에서 봤을 때 사람은 반드시 이런 사상 관점을 내려놓고 각 사상 관점에 해당되는 일들을 다시금 살펴보거나 직시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올바른 실행의 길과 진리 원칙을 찾아내어 이런 사상을 내려놓는다는 전제하에 진리 실제에 진입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은 구원받을 희망이 있는 것이다. 이번에 몇 차례에 걸쳐 가정에서 너에게 영향 준 이런 사상 관점과 여러 가지 구체적인 말들을 교제했는데, 이를 통해 너희가 마음속 깊은 곳에 존재하는 여러 사상 관점을 얼마나 인식했는지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이번 몇 차례의 교제는 너희가 가정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인식하고, 또 가족이나 가정에서 비롯된 사상이나 가풍의 영향을 새롭게 인식하고 깨달아 그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대하도록, 아울러 올바른 관점과 입장으로 가정을 대하도록 일깨워 주었을 것이다. 네가 형식적으로 어떤 방식을 취하여 가정을 대하든, 결론적으로 너는 가정의 영향으로 갖게 된 사람과 일을 바라보거나 처신하고 일 처리하는 잘못된 사상 관점을 분별한 다음 이런 사상을 하나하나 내려놓아야 한다. 이를 통해 하나님이 가르쳐 준 관점과 방식을 순수하고 올바르게 이해하고 하나님이 가르쳐 준 사람과 일을 바라보거나 처신하고 일 처리하는 올바른 관점과 방식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자세이다.

가정에서 사람에게 주입한 한 가지 중요한 사상 관점은 바로 사람은 강해야 하고 또한 여러 수단을 이용해 자기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 사상 관점의 영향을 받아 처세 수단, 처세 방식이 생기면 사람의 이익과 육체 그리고 신변 안전을 보장받는다는 점에서 봤을 때 가정에서 이런 사상을 주입하는 주된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사람이 보호받고 괴롭힘 당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럼 생각해 보자. 괴롭힘 당하는 것의 본질은 무엇이냐? 괴롭힘 당하는 것이 좋은 일이더냐? 이것을 피할 수는 있느냐? 전혀 괴롭힘 당하지 않는 사람이 존재하느냐? 괴롭힘 당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이냐? 부모는 자녀가 정상적으로 사회에 발붙일 수 있기를 바라는 것 말고도 자녀가 괴롭힘 당할까 늘 염려한다. 그래서 부모는 항상 처세 비법, 처세 수단을 네게 알려 주고 이런 방식으로 너를 괴롭힘 당하지 않게 보호하려 하는 것이다. 그들이 항상 너와 붙어 다니면서 지켜 줄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네 날개가 굳어 홀로 날아야 할 때가 되면 그들은 네가 괴롭힘 당하지 않도록 특정 사상 관점으로 너를 무장시킨다. 그 사상 관점이 옳으냐? 너희는 괴롭힘 당하는 것이 두려우냐? 너희는 다음과 같은 사상 관점을 가지고 있지는 않느냐? ‘사회나 사람들 속에서 특히 이방인과 접촉하면 괴롭힘 당할까 두려워. 이게 제일 걱정스러운 부분이야. 나랑 능력이 막상막하인 사람을 만나면 재기할 수 있겠는데, 나보다 악한 사람을 만나면 반항조차 할 수 없을 거야. 어떻게 괴롭힘 당하든 감수해야지 어쩌겠어. 남들은 다 믿는 구석이 있고 연줄이 있으니 내가 감수해야지 뭐.’ 많은 사람들의 사상 관점이 이렇지 않으냐? (예전에는 그런 관점을 가졌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로는 형제자매와 잘 지낼 수 있었습니다. 다시 이방인과 접촉한다면 설사 괴롭힘이나 박해를 받는다고 해도 거기엔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있고 제가 배워야 할 공과가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다지 두렵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의지해 경험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부류의 사람이 유달리 두려워하느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 외에도 몹시 소심한 사람, 내성적인 성격의 사람, 열등감이 있는 사람, 나약한 사람, 칠칠치 못한 사람, 못생긴 사람, 체격이 왜소한 사람, 가난한 사람, 특히 가정 형편 때문에 조롱과 무시를 당하는 사람,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 별 역량이나 특기가 없는 사람, 막노동하는 사람, 생리적인 결함이 있는 사람 등 이런 사람들은 괴롭힘 당하기도 쉽고 괴롭힘 당할까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럼 이렇게 괴롭힘 당하는 일이 사회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이런 일이 나타난다. 그럼 괴롭힘 당하는 일은 어떻게 생겨나느냐? (사탄에게 패괴된 사람이 사악해져서 남을 괴롭히려 하고 남에게 괴롭힘 당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남을 억압하는 일이 곳곳에서 일어납니다.) 이는 한 측면의 원인이다. 어떤 사람은 남에게 괴롭힘 당하기 싫은 마음에 선수를 쳐서 남을 괴롭힌다. 남에게 겁줘서 아무도 자기를 괴롭히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그 사람의 본심은 그렇지 않다. 그렇게 하면 자기도 피곤하다. 남들을 모두 쓰러뜨리면 자기도 피곤하지 않겠느냐? “천 명의 적을 죽이고 아군 팔백 명을 잃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생각해 보아라. 고슴도치가 가시를 곤두세우고 나면 정신적으로 힘들지 않겠느냐? 남을 찌르면 남도 아프지만 자기도 힘든 것은 마찬가지다. 힘든데도 왜 그렇게 하겠느냐? 스스로를 보호하려면 조금은 힘들어야 하는 것이다. 이 사악한 세상은 각 부류의 사람에 대해 긍정적이고 올바른 원칙을 가지고 있지 않고 사탄의 처세 철학, 사회가 사람에게 정한 계급의 귀천으로 사람을 구분한다. 이런 불공평한 구분 원칙과 준칙을 바탕으로 사람들 간에 갈등이 생기고 계급이 생긴 것이다. 이런 갈등과 계급이 생기고 나면 사람들은 공평하고 화목하게 지낼 수 없다. 오로지 상류층이 되기 위해 경쟁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뛰어난 인물이 되기 위해 경쟁한다. 뛰어난 인물의 정점에 선 사람은 남을 통솔하고 마음대로 남을 괴롭히고 통제할 수 있다. 이 사회는 불공평하기 때문에 사람을 대하는 원칙 역시 불공평하고 사람과 사람 간에도 평화롭게 지낼 수 없으며 사람과 사람이 함께 지내는 원칙이나 방식, 수단은 모두 불공평하다. 이 불공평을 구체적으로 말해 보자면 사람과 사람 간에 힘, 가정 환경, 기술, 능력, 용모, 키, 수단, 계략, 술책을 겨루는 것을 들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어디에서 비롯되느냐? 진리나 하나님이 아닌 사탄에게서 비롯된다. 사탄에게서 비롯된 이것들이 사람 내면에 주입되어 사람이 이것들에 기대 사는데 사람과 사람이 함께 지내면 어떻게 되겠느냐? 사람이 모든 이를 평등하게 대하겠느냐?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 집의 가장 기본적인 선거 원칙만 해도 사탄의 사악한 세상에서 통하겠느냐? (통하지 않습니다.) 통하지 않는 본질이 무엇이냐? 이 사악한 세상은 진리가 권세를 잡지 않고, 사악한 조류와 사탄의 여러 사상과 철학이 권세를 잡고 있으니 사람과 사람 간에 서로 괴롭히고 통제하는 국면이 될 수밖에 없다. 괴롭히는 일이 없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는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이다. 이 세상은 진리가 권세를 잡고 있지 않기 때문에 사악한 세상에서 사람과 사람이 함께 지내면 결국 남을 괴롭히는 사람이 아니면 남에게 괴롭힘 당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네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이 두 가지밖에 없다. 사실 모든 사람은 남을 괴롭히는 사람이면서 남에게 괴롭힘 당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사람 위에 사람이 있고, 사람 밑에도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네가 남을 괴롭히는 이유는 네 지위가 그보다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가 남을 괴롭히는 동시에 너보다 지위나 신분이 높은 사람도 너를 괴롭힐 것이니 너 역시 그에게 괴롭힘 당할 것이다. 한 계층이 다른 한 계층을 괴롭히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 즉 괴롭히고 괴롭힘 당하는 관계인 것이다. 이런 관계만 존재할 뿐 진정한 가족애나 사랑, 관용, 인내는 없다. 원칙에 따라 공정하고 공평하게 모든 사람을 대할 수는 없다. 이 세상은 진리가 아닌 사탄이 권세를 잡고 있기 때문에 사람 간에 형성되는 관계는 괴롭히고 괴롭힘 당하고, 그리고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관계일 수밖에 없다. 이는 필연적인 결과이며 아무도 피해 갈 수 없다. 네가 조직폭력배의 두목이라고 한다면 수하에 있는 많은 조직원과 부하를 괴롭히고 통제하겠지만 조직폭력배 두목 위에도 상위 계층이 있고 정부도 있다. 권력과 깡패가 결탁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정부가 일부러 약점을 잡을 때도 있는데 그때 꼬투리를 잡히면 가차 없다. 너는 경찰국에 뇌물을 상납하고 그들의 권력에 아첨해야 할 것이다. 조직폭력배 두목이 대단해 보이지만 경찰국에 가면 그 역시 기를 펴지 못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굽신거려야 한다. “도(道)가 한 자(尺) 높아지면, 마(魔)는 한 장(丈) 높아진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라는 이방인의 말이 있다. 이는 모든 사람은 남을 괴롭히는 사람이면서 남에게 괴롭힘 당하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이것이 괴롭힘의 본질과 현상인 것이다.

괴롭힘이라는 것이 아무도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사람은 이를 어떻게 대해야 하겠느냐? 교회에서 네가 괴롭힘 당할 걱정은 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이 문제가 교회에 존재하지 않겠느냐?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겠느냐? 네가 이방인과 교류할 때는 이방인에게 괴롭힘 당할 수 있지만 교회에서는 이런 일이 없겠느냐? (교회에서도 있을 것입니다.) 정도는 다르겠지만 역시 있을 것이다. 사람은 모두 사탄에 의해 패괴되었기 때문이다. 구원에 이르기 전에는 종종 패괴를 드러낸다. 그렇게 드러내는 패괴 중 하나가 바로 사람을 공평하게 대하지 못하고 멋대로 대하는 것이다. 사람을 불공평하게 대하는 일이 생기면 괴롭히고 괴롭힘 당하는 일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니 이런 일이 수시로 발생하며 사람은 벗어날 수 없고 피할 수도 없다. 그럼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고 대해야 올바른 원칙이겠느냐? (하나님의 말씀과 원칙을 근거로 하는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구체적인 실행 방식은 무엇이겠느냐? 괴롭히고 괴롭힘 당하는 것을 너는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 예를 들어 보겠다. 네가 거짓 리더의 문제를 보고하는 내용으로 투서하자 그가 너를 괴롭히며 말한다. “얌전히 있지 않고 한 번만 더 내 문제를 윗선에 보고하고, 고자질하고, 평가서에 조금이라도 안 좋은 내용을 쓰면 가만두지 않겠어요! 나한테는 당신을 출교시킬 권한이 있는데 겁 안 나요?” 너는 이 일을 어떻게 대하겠느냐? 그가 너를 위협하고 있고 구체적으로 말하면 너를 괴롭히고 있다. 그에겐 권력이 있고 너는 평신도이니 함부로 너를 혼내는 것이다. 원칙이나 마지노선도 전혀 없이 그는 사탄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으로 너를 대한다. 이를 구체적으로 말하면 너를 괴롭히는 게 아니겠느냐? 사람을 혼내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럼 너는 이 일을 어떻게 대해야 하겠느냐? 타협하겠느냐, 아니면 원칙을 고수하겠느냐? (원칙을 고수하겠습니다.) 이론적으로 사람은 그를 두려워하지 말고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 근거는 무엇이냐? 어째서 너는 그를 두려워하면 안 되느냐? 그가 만약 정말 너를 출교시킨다면 너는 겁먹을 수 있느냐? 그가 정말 너를 출교시킬 수 있다고 해서 원칙을 고수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겁을 먹으면 이 일은 어디가 잘못된 것이냐? 너는 어째서 겁을 먹는 것이냐? (하나님 집이 진리가 다스리는 곳임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한 측면이다. 너는 이런 믿음을 가지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은 악인이에요. 당신이 지금 리더니까 절 출교시킬 권한이 있다고 착각하지 마세요. 절 출교시키는 것은 잘못입니다. 이 일은 언젠가는 드러날 겁니다. 하나님 집은 당신 혼자 좌지우지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오늘 절 출교시키면 내일 당신은 징벌을 받겠지요. 못 믿겠으면 어디 한번 두고 보시죠. 하나님 집은 진리가 다스리는 곳이고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곳이에요. 사람은 당신을 처리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당신을 드러내 도태시킬 수 있습니다. 당신이 저지른 짓이 드러나는 때가 바로 당신이 징벌받을 때라고요.” 네게 이런 믿음이 있느냐? (있습니다.) 있느냐? 그런데 너희는 왜 말하지 못하느냐? 이런 일에 직면하는 것이 위험할 것 같으니 그럴 배짱도 없고 이런 진실된 믿음도 없는 모양이구나. 정말 그런 일을 만난다면, 사나운 악인이나 적그리스도를 만났는데 그들이 사람을 혼내는 수단이 큰 붉은 용의 수단에 필적한다면 그땐 어떡하겠느냐? 너는 훌쩍거릴 것이다. ‘아, 나는 분량이 작아. 겁도 많고 선천적으로 소심해. 나뭇잎만 떨어져도 다칠까 봐 걱정된단 말이야. 나는 이런 부류의 사람을 만나지 않길 바라. 나를 괴롭히면 어떡해?’ 그가 너를 괴롭히는 것이냐? 그가 너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가리켜 사탄이 사람을 혼낸다고 하는 것이다. 사람의 시선으로 보면 ‘지독한 사람이군. 지위가 있으니까 얌전하고 지위 없는 사람을 괴롭히는구나.’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것이냐? 진리의 각도에서 보면 그것은 괴롭힘이라고 하지 않고 사탄이 사람을 혼내고, 곯리고, 우롱하고, 패괴시키고, 짓밟는 것이라고 한다. 사탄의 이런 행태를 너는 어떻게 처리하고 대해야 하겠느냐? 겁을 먹어야 하겠느냐? (그러면 안 됩니다. 고발하고 폭로해야 합니다.) 속으로 그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만약 그의 문제를 보고하고 그에게 맞서기에 적기가 아니라면 일단 잠시 참았다가 적절한 때에 다시 윗선에 보고해야 한다. 만약 형제자매 중 너처럼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너희는 연대하여 그의 악행을 고발하고 폭로하여라. 만약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네가 나서서 그를 고발한다면 그 사람들은 너를 버릴 것이다. 그러면 너는 일단 참았다가 윗선 리더가 너희 교회에 사역을 점검하고 확인하러 오면 적절한 때 리더에게 그의 문제를 보고하여라. 그의 악행 사실을 낱낱이 밝혀서 리더가 그를 교체하게 하여라. 이것이 지혜가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한편으로는 믿음을 가지고 악인과 적그리스도, 그리고 사탄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너를 대하는 방식을 사람이 사람을 괴롭히는 것으로 보지 말고 사탄이 사람을 우롱하고 혼내며 짓밟는 본질로 보아야 한다. 그런 다음 너에 대한 그의 괴롭힘을 상황에 따라 지혜롭게 대하면서 적절한 때에 그를 폭로하고 고발하여 하나님 집의 이익과 교회의 사역을 지켜야 한다. 이것이 네가 굳게 서서 해야 할 증거이자 한 사람으로서 이행해야 할 의무와 본분이다. 그가 널 아무리 괴롭히고 불공평하게 대해도 너는 이를 괴롭힘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 이는 너라는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사탄이 사람을 우롱하고 짓밟으며 혼내는 것이다. 큰 붉은 용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박해하는데 그것이 너를 괴롭히는 것이냐? (아닙니다.) 그것은 너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왜 너를 박해하겠느냐? (그들의 본질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본질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원수로 여기며 하나님이 하는 모든 사역을 눈엣가시로 여긴다. 또한 하나님이 택한 사람도 원수로 생각해서 네가 하나님을 따르면 너를 미워할 것이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요 15:18)라는 성경 말씀처럼 말이다. 큰 붉은 용은 사람과 하나님을 미워하여 하나님을 원수로 여기고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 특히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을 더더욱 원수로 생각한다. 그래서 너를 박해하고, 못살게 굴고, 하나님을 따르지 못하게 하고, 자기를 경배하며 따르고, 하나님을 욕하게 만들고 싶은 것이다. 네가 욕하지 않겠다고 하면 그들은 그럼 네가 죽게 된다고 위협할 것이다. 그들은 네게 공산당이 좋다고 말하라고 한다. “싫습니다.”라고 하면, “그렇다면 뜨거운 맛을 보여 줘야겠군. 고문으로 손 좀 봐 주지. 너랑은 그 방법으로 대화하겠어!”라고 한다. 그것이 너를 괴롭히는 것이냐? 그것은 사탄이 사람을 학대하는 것이다.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사람을 괴롭히는 일을 똑바로 이해해야 한다. 사람의 관점으로 보면 모든 사람은 사회나 사람들 속에서 남을 괴롭히고 괴롭힘 당하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진리의 관점으로는 그렇게 볼 수 없다. 너를 괴롭히거나 통제하려는 사람이 누구든, 그의 이런 행위의 본질은 괴롭힘이 아닌 사탄의 우롱과 학대, 지배, 유린, 패괴인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성에 따라 인성화된 방식으로 너를 대하는 것도 아니고, 공평하게 너를 대하는 것도 아닌 사탄의 관점, 사탄의 입장으로 사탄의 사상을 지침으로 삼아 너를 대하고 너와 대화하며 너와 함께 지내는 것이다. 예를 들면, 네가 한 악인과 함께 방을 쓰는데 네가 먼저 왔으니 선착순으로 알맞은 위치를 먼저 골라야 한다는 생각에 아래층 침대를 택했다. 그가 와서 보고는 “당신이 아래층 침대를 써도 되는 겁니까? 난 아직 고르지도 않았는데 당신이 바로 쓴다고요? 내가 있는데도 감히 아래층에서 잘 생각을 하다니 간도 크시네! 나랑 상의도 없이 아래층에서 자다니, 위층에서 자요!” 네가 말한다. “뭐 때문에 위에서 안 잔다는 거예요? 나중에 들어왔으면 순서대로 당신이 위층을 써야죠.” “순서? 내가 언제 순서를 지켰다고 그래요? 난 어디서도 줄은 안 서요. 대통령이 온다고 해도 줄 안 섭니다! 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감히 줄을 서라는 말을 하네.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군! 죽으려고 환장했어! 당장 올라가요!” 넌 순순히 위층에서 자야 한다. 이것이 널 괴롭히는 것이겠느냐? 사람의 관점으로 보면 이는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다. 네 온순함, 어리숙함을 보고 기선을 제압하고 본때를 보여 줌으로써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알라는 것이다. 이는 사람의 관점, 사람의 정이나 육의 시선으로 바라본 견해이다. 그럼 진리의 관점으로도 이렇게 볼 수 있겠느냐? 애초에 네가 먼저 아래층을 골랐으니 모든 것이 정리되었는데, 그가 굳이 자리를 옮기라면서 너를 위층으로 올려 보낸 것이다. 이것은 억지가 아니냐? 이는 너를 혼내는 것이 아니냐? 너를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게 아니냐? 너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 아니냐? 또 자기가 윗사람을 자처하고 너를 일꾼이나 노예로 여기는 것이 아니냐? 그럼 그의 생각과 논리는 무엇이냐? 자기보다 대단하지 않으면 아랫사람이고 자신이 부릴 수 있는 대상이며 자신이 혼내야 하는 대상이라는 것이다. 이 일을 진리의 관점으로 보면 괴롭힘이라고 할 수 없고 사람을 혼내는 것이다. 사람을 혼낼 수 있는 사람이 누구더냐? 악인, 악마, 건달, 부랑자, 불량배, 억지를 부리며 인성이 없고 아무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이다. 어디서든 규칙을 지키지 않고 그가 윗사람이라면서 좋은 일, 잇속을 차릴 수 있거나 득이 되는 일은 모두 독차지하며 남과 나눌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는다. 이는 불량배가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것은 불량배나 악마가 하는 짓이다. 그가 이렇게 너를 혼내면 무섭지 않으냐? ‘아, 이렇게 사나운 사람도 다 있네. 아래층에서 자는 건 어림없는 일이겠다. 이게 무슨 일이람?’ 너는 겁을 먹고 다음부터 그와 얘기할 때는 선택형으로 말하게 된다. 그리고 생각한다. ‘저 사람 심기나 기분을 건드리면 안 되겠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날 혼내려 들 거야.’ 네가 이런 생각을 품으면 그가 의도했던 목적을 달성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목적이겠느냐? 너를 겁줘서 자기를 무서워하게 만들고 너와 그 사이에 계급의 차이를 두려는 것인데, 그는 어른이고 너는 꼬맹이라는 것이다. 너는 어디서든 그의 말을 따르고 그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탄이 일하는 원칙이 아니더냐? 그는 너의 조상이 되고 너는 그의 후손이 되어서 그에 의해 길들여지고 부려지며 희롱당할 것이다. 매사에 그에게 양보하며 그와 대등하게 지내지 못할 것이다. 네가 그와 대등하게 지내려면 오직 한 가지 상황밖에 없을 것이니 그가 죽어야만 가능하다. 너는 오로지 죽은 자와 대등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네가 그에게 얼마나 괴롭힘 당하였느냐? 그의 이런 악행과 기세에 마음속 깊이 겁먹지 않았느냐? (그렇습니다.) 네가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타협했다면 이 결과는 네가 그에게 패괴되었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가 너를 사로잡고 악한 짓을 하며 원칙을 어기는데 너는 보고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처음에 그가 너를 침대 아래층에서 위층으로 쫓아냈기 때문이다. 다시는 그를 건드릴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를 보면 피해 다니고 그 사람 얘기만 나오면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이는 그에게 겁을 먹은 것이 아니겠느냐? 네가 그를 원칙에 따라 공평하게 대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면 너는 그에게 사로잡힌 것이다. 사로잡힌다는 것의 본질이 무엇이냐? 그에게 점유되고 통제된다는 것이다. 그런 게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이 일을 어떻게 대해야 그에게 통제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악인이 사람을 괴롭히는 것을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고 학대하는 현상의 일종으로 여겨야 한다. 이런 본질을 간파하고 나면 어떻게 대해야 하겠느냐? 마음속 깊이 그를 혐오하고 버려서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아, 나보고 위층에서 자라고 하네. 좋아, 위층에서 자 주지. 그런데 말이야, 내가 오늘부터 악인의 행태와 본질을 또 하나 알게 되어서 악인이 일상생활이나 사람들 뒤에서 보이는 행태를 분별할 수 있게 되었거든. 오늘부터 나는 저 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떠들고 어떤 짓을 하는지, 사기를 치지는 않는지 면밀히 주시할 거야. 하나님 집에서 그를 쓴다면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지,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는지, 제물을 낭비하지는 않는지, 다른 사람을 혼내지는 않는지 지켜보겠어.’ 그리고 속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하나님, 악인을 드러내셔서 제가 그의 악행과 본질을 분별하고 그의 악행의 증거를 손에 넣게 해 주세요. 또한 악인을 두려워하지 않게 제게 용기를 주시고, 그와 전쟁을 치를 수 있는 믿음과 힘을 주세요.’ 비록 그와 한방을 쓰면서 겉으로는 평소와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속으로는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그가 네게 한 모든 것은 괴롭힘이 아닌 사탄 본성을 드러내고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네가 그를 이렇게 본다면 그가 두렵겠느냐? 그가 악행을 드러내거나 패역한 말을 할 때마다 너는 속으로 그를 저주할 것이다. ‘너는 마귀이고 사탄이야. 네가 악을 저지르고 하나님을 대적하니 언젠간 저주를 받게 될 거야. 하나님이 너를 가만두지 않으실 테니 언젠간 드러나고 말 거다!’ 악인을 이렇게 대해야 한다. 그와 전쟁을 치를 믿음과 힘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에게 기도하면 마음속에 힘이 생겨 그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어떠냐? 이 방법이 좋지 않겠느냐? (좋습니다.) 네가 진리의 관점으로 그를 분별하는 것이 부모에게서 배운 “나쁜 마음은 먹지 말되 경계심은 가져라.”라는 말보다 실용적이지 않겠느냐? 경계해서 무슨 소용이 있느냐? 사탄이 너를 학대하고 패괴시키는 것은 막을래야 막을 수가 없다. 사탄이 너를 패괴시키고 학대하는 것은 막아서 될 일도 아니다. 그것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사탄은 너를 형식적이고 표면적으로 패괴시킬 뿐 아니라 사상적으로도 패괴시키는데 네가 막을 수 있겠느냐? 가장 중요한 것은 진리로 무장하고 하나님에게 의지하여 악인의 행태뿐 아니라 악인의 본질도 어느 정도 분별해야 하고, 동시에 악인이 나타내는 여러 사상 관점 역시 분별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다음 진리로 무장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로 그를 폭로하고 해부하여 형제자매가 모두 분별하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모두가 함께 그를 버린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네가 방어하고, 경계하고, 거절하고, 회피하기만 한다면 이것은 겁쟁이요, 이기는 자의 모습이 아니다.

여기까지 교제를 들었는데, 너희는 괴롭히는 것에 대해 새로운 견해가 생기지 않았느냐? 남을 괴롭히는 것이 옳으냐? (옳지 않습니다.) 남을 괴롭히는 것은 어떤 성질이냐? (악인이 사람을 혼내는 것입니다.) 본질은 악인이나 사탄이 사람을 혼내고 우롱하는 것이다. 그럼 괴롭힘 당하는 것은 어떤 성질이겠느냐? (나약하고 진리를 실행하지 않으며 반항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 악인과 사악한 세력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사탄과 전쟁을 치를 믿음이 없고, 사탄의 추악한 낯짝을 똑바로 알고 분별하며 간파할 믿음이 없으며, 너에 대한 사탄의 유린과 학대에 반항할 믿음이 없는 것이다. 이런 성질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렇게 믿음이 없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늘 응어리가 있어서 두려워한다. ‘난 남에게 괴롭힘 당하고 싶지 않아. ‘나쁜 마음은 먹지 말되 경계심은 가져라’는 엄마의 말처럼 난 남을 괴롭히지도 않고 남에게 괴롭힘 당하고 싶지도 않아.’ 그리고 하나님에게 기도한다. ‘하나님, 제가 악인을 만나지 않게 해 주세요. 저는 담이 작고 천성적으로 온순하고 무던합니다. 제가 당신을 믿고 따르니 저를 꼭 지켜 주셔야 해요!’ 이런 자가 바로 못난이다. 그렇게 많은 진리를 듣고 깨달아 사탄 마귀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고작 악인 한 사람을 두려워하느냐? 큰 붉은 용이 너희는 무서우냐? (잡혀가면 무섭기도 하겠지만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지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의 악함에 겁먹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 또한 믿음의 기반을 어느 정도 갖춘 사람만이 보일 수 있는 모습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당신은 제가 큰 붉은 용을 무서워한다고 하시는데 제가 큰 붉은 용을 무서워했으면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겠어요? 이건 사실이잖아요? 그런데 저보고 큰 붉은 용이 무섭지 않다고 말해 보라고 하면 또 선뜻 말이 나오지는 않네요. 큰 붉은 용이 들으면 어떡해요?” 여전히 조금은 무서워한다. 큰 붉은 용이 사악하고 잔인하다고 공개적으로 말하기엔 그다지 엄두가 나지 않는데, 그 정도의 믿음도 없다. 이는 분량이 너무 작은 것이다. 너더러 공개적으로 그것과 대결하라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분노하게 만들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너는 최소한 큰 붉은 용이라는 악마가 사람을 학대하고, 패괴시키며, 우롱하고, 짓밟은 다음 집어 삼키는 방식으로 사람을 대한다는 것을 가슴 깊이 알아야 한다. 이는 너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온순하고 규칙과 법을 준수하기 때문에 그들이 너를 괴롭히거나 혼낸다는 말이 아니다. 네 그런 말은 터무니없고, 영적인 이해력이 없는 말이다. 큰 붉은 용은 너를 학대하는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학대하느냐? 위협하고, 겁박하며, 박해하고, 고문한다. 너를 학대하는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네가 네 신앙을 버리고 하나님을 부인하고 저버리게 한 다음 그들과 타협하여 결국 그들을 경배하고 따르게 만들고, 그들에게 굴복하고 그들의 여러 사상을 받아들이고 엎드려 절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즐거워한다. 그들은 바로 이런 목적으로 너를 박해하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을 따르면서 자기는 따르지 않으니 질투하여 너를 가만두지 않는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네가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다고 그들이 너를 가만두겠느냐?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해도 학대합니다.) 그렇다. 흔한 말로 그들은 그따위 것밖에 안 되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이런 본성 본질의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따르며 칭송하는 자 역시 학대하고 우롱하며 짓밟는다. 다 이용하고 나면 가차 없이 차 버리는데 개중에는 입막음을 위해 살해당하는 자도 있다. 결국 사람을 완전히 삼켜 버리는데, 결론적으로 누구든 말로가 좋지 않은 것이다. 어쨌든 사람은 똑똑히 알아야 한다. 가정이 사람에게 여러 사상 관점을 가르치고 주입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진정으로 너를 보호하려는 것도, 너를 올바른 길로 이끄는 것도 아니다. 대신 너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사탄의 철학에 따라 살아가도록 하고, 줄기차게 반복해서 사회와 사탄에게서 비롯되는 여러 사상의 유린과 사악한 조류의 교육을 받아들이게 하려는 것이다. 가정이 네게 이렇게 하는 취지와 목적이 무엇이든 결국 그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바른길을 가게 하지도 않고, 진리 실제에 진입하여 마침내 구원에 이르게 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비롯된 여러 사상 관점은 사람이 반드시 내려놓아야 하며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 진리를 추구하는 길에서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에 또 교제하도록 하자.

2023년 3월 4일

성경은 개역한글에서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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