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0) 제 1 부

오늘은 지난번 예배 내용에 이어서 교제해 보자. 지난번 예배에서는 무엇을 교제했느냐? (지난번에는 하나님께서 주로 두 가지를 교제하셨습니다. 먼저 ‘인류가 이상과 바람을 추구하지 않았다면 이 세상이 지금까지 발전할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과 관련된 내용을 교제하셨고, 이어서 결혼에 대한 사람의 잘못된 생각과 관점, 그리고 결혼의 올바른 개념과 정의에 대해 교제하셨습니다.) 지난번에는 커다란 주제인 결혼에 대해 교제했다. 결혼은 모든 인류와 관계되고, 인류 발전사를 관통하는 커다란 주제다. 이 주제는 사람의 일상생활에 관계되므로 모든 사람에게 무척 중요하다. 지난번에는 이 주제에 관계된 일부 내용을 교제했는데, 주로 결혼의 기원과 형성, 또 결혼 당사자 양측에 대한 하나님의 분부와 정함, 그리고 양측이 짊어지는 책임과 의무를 다루었다. 이 내용들을 주로 무엇에 근거해서 교제하였느냐? (성경 기록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한 다음 인류에게 결혼을 정해 준 말씀, 해당 구절을 근거로 교제했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지난번 교제를 통해, 지난번 성경에서 봤던, 인류의 결혼을 두고 했던 하나님의 말과 일을 통해, 너희가 결혼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얻게 되지 않았느냐?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저희는 아직 어려서 결혼에 대한 개념도 없고 경험도 없는데, 결혼을 정의하라고 하시니 좀 난감합니다.” 난감하냐? (그렇지 않습니다.) 난감하지 않다면, 결혼이라는 일을 어떻게 정의하겠느냐? 인류의 결혼에 대해 하나님이 한 말과 일을 근거로, 결혼에 대해 정확한 정의를 내려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결혼에 대해서라면, 네가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지금 교제하는 이 내용은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이것은 네가 깨달아야 할 진리 중 하나다. 이런 각도에서 볼 때, 네가 결혼에 대한 경험이 있든 없든, 결혼에 관심이 있든 없든, 혹은 결혼에 대해 어떤 생각과 계획이 있었든 관계없다. 어쨌든 그것이 네 진리 추구와 관계된 일이라면 마땅히 그것을 인식해야 한다. 또 그것은 네가 잘 알아야 할 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진리에 관계되고, 사람의 사상 관점에 관계되고, 사람의 진리 추구에 관계되고, 또한 네가 진리를 추구하는 길에서의 실행 원칙, 실행 길과 관계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네가 결혼 경험이 있든 없든, 결혼에 관심이 있든 없든, 혹은 네 결혼 상황이 어떻든 관계없이, 진리를 추구해 구원에 이르고 싶다면, 결혼이라는 일에 대해서도 진리에 관계된 다른 그 어떤 일과 마찬가지로 정확한 인식, 올바른 사상 관점을 가져야 한다. 속으로 반발하거나, 색안경을 끼고 보거나, 모종의 관념을 가지고 대해서도 안 되고, 자신이 처한 배경이나 환경에 따라 대해서도 안 되고, 결혼에 대해 취사선택해서도 안 된다. 이런 것들은 모두 잘못된 관점이다. 결혼도 다른 어떤 일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이 일을 대하는 관점과 입장, 각도와 관련이 있다. 네가 이 일을 대하는 사상 관점, 사물 보는 각도와 입장이 올바르고 진리에 부합하기를 바란다면, 반드시 이 일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정의해야 한다. 이것은 다 진리에 관계된다. 그래서 결혼이라는 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올바르게 인식해야 하고, 거기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알려 주려는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네가 그 안에 담긴 진리를 깨달아야만, 결혼이라는 일이 닥치거나 네 생활에서 결혼과 관계된 일을 만났을 때, 그 일을 올바른 사상 관점으로 마주하고, 올바른 입장과 각도로 바라볼 수 있다. 물론 결혼에 관계된 문제도 정확한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저는 절대 결혼에 발을 들이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네가 발을 들이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 결혼에 대해서는 크고 작은, 혹은 옳고 그른 사상 관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또 생활하면서 결혼이라는 방면의 문제와 관련해서 사람이나 일을 마주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이런 문제를 어떻게 대하고 처리하여 해결할 것이냐? 결혼에 관계된 그런 문제가 나타났을 때, 어떻게 해야 정확한 사상 관점, 정확한 입장, 정확한 실행 원칙을 가질 수 있겠느냐? 어떻게 해야 하나님 마음에 합할 수 있겠느냐? 이는 네가 알아야 할 것, 또 알고 난 뒤 추구해야 할 것이다. 내 말이 무슨 뜻이겠느냐? 어떤 사람들은 아마 결혼이라는 일이 자기와 무관하다고 생각해서 귀담아듣지 않을 텐데, 그 관점이 맞느냐? (틀렸습니다.) 틀렸다. 어떤 주제를 교제하든 그것이 진리에 관계되고 진리 추구에 관계된 것이라면, 또한 사람과 일을 바라보거나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근거와 준칙에 관계된 것이라면 마땅히 받아들이고, 진지하고 주의 깊게 들어야 한다. 그것은 어느 한 방면의 상식도, 지식도, 업무도 아닌, 한 방면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결혼이라는 일에 대해, 주제로 다시 돌아가 교제를 계속해 보자. 결혼의 정의는 무엇이어야 하느냐? 우리가 지난번 교제했던,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정함과 안배, 그리고 결혼 당사자 양측에 대한 하나님의 부탁과 분부에 근거하면, 너희는 결혼의 개념과 정의가 모호하지 않고 아주 뚜렷하고 명확할 것이다. 결혼은 당연히 하나님의 정함과 안배에 따른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이다. 결혼은 이렇게 이루어진다. 여기에는 전제가 있으니, 하나님의 정함과 안배 아래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합해서 결혼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이론상 결혼에 대한 이런 정의가 정확하냐? (그렇습니다.) 어째서 정확하다고 하느냐? 너희는 어떻게 그것이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 있느냐? 그것은 성경 기록에 근거한 것으로, 거기서 흔적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 기록에는 결혼의 내력이 명확하게 나와 있다. 그것이 결혼에 대한 정의다. 명확하게 제시된 결혼의 정의를 바탕으로 다시 한번 결혼 당사자들이 짊어져야 할 책임이 무엇인지 보도록 하자. 지난번 예배에서 읽은 성경 구절에 분명히 나와 있지 않았느냐? (그렇습니다.) 결혼 당사자 양측이 짊어져야 할 책임 중 가장 간단한 한 가지는 서로 동반하고 서로 도와주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 하나님은 여자에게 어떤 분부를 했느냐? (하나님은 또 여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할 것이니 너는 자식을 낳을 때 고생을 하게 될 것이라. 너는 너의 남편을 사모하고 너의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라.”(창 3:16, 중국어성경 직역)) 그건 성경 원문에 나온 말이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말로 하면, 하나님이 여자에게 분부한 것은 바로 여자의 책임이다. 여자의 책임은 무엇이냐? 자녀를 낳아 기르고 부양하는 것, 또 자기 남편을 돌보고 사모하는 것, 이것이 여자에게 한 하나님의 분부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남자에게 분부한 책임은 무엇이냐? 남자는 한 집안의 주인으로 가정생활의 중대한 임무를 떠맡아야 한다. 힘쓰고 땀 흘려서 집안을 돌보고 먹여 살려야 한다. 또한, 가족 구성원을 관리하는 중요한 임무도 있다. 자기 여자를 관리하고 자기 생활을 관리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여자와 남자에게 분배한 책임이다. 여자와 남자의 책임이 명확하고 뚜렷하다. 그렇지 않으냐? 이는 결혼의 정의와 형성, 그리고 결혼 당사자 양측이 져야 할 책임과 다해야 할 의무다. 이것이 바로 결혼 자체이자 결혼의 실제 내용이다. 우리가 얘기하는 결혼 방면의 내용에 무슨 부정적인 요소가 있느냐? (없습니다.) 부정적인 요소가 없다. 하나같이 가장 순수하고 올바르고, 진리와 사실에 가장 부합하고, 또한 하나님 말씀의 근거에 부합한다. 성경 기록을 근거로 했기 때문에 결혼이라는 일이 지금 사람들에게는 아주 뚜렷하고 명확해졌다. 우리는 지나치게 많은 전제를 깔거나 장황한 말로 결혼의 유래를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결혼의 정의도 분명히 알고, 결혼 당사자 양측이 짊어져야 할 책임과 의무도 뚜렷하고 명확히 알게 되었다. 뚜렷하고 명확히 알게 된 후 그것이 진리 추구에는 어떤 작용을 하겠느냐? 결혼의 정의와 형성, 당사자 양측의 책임을 알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냐? 즉, 이런 내용을 교제하는 것이 사람에게 어떤 효과를 내고, 어떤 작용을 하느냐? 쉽게 말해, 너희가 그런 내용을 들으면 어떤 점이 좋으냐? (저희에게 결혼이 닥쳤을 때, 혹은 결혼이라는 일을 대할 때 올바르고 진리에 부합하는, 사물 보는 관점을 가질 수 있고, 사악한 시류와 사탄이 주입한 사상에 영향을 받거나 오도되지 않게 됩니다.) 그것도 긍정적인 작용 중 하나다. 결혼의 정의와 형성, 결혼 당사자 양측의 책임을 교제하면 사람이 결혼을 대할 때 올바른 사상 관점을 지니게 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올바른 사상 관점이 생겼을 때의 장점 및 긍정적 작용은 사람의 사상 의식에 올바른 결혼관이 세워지는 것이 아니겠느냐? 올바른 결혼관, 올바른 사상 관점이 생기면, 반대적이고 부정적이고 사악한 시류에 해당하는 사상 관점에 어느 정도 저항력과 면역력을 갖게 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이 저항력과 면역력은 무엇을 가리키느냐? 최소한 세상과 사회로부터 비롯되는, 결혼과 관계된 사악한 사상 관점에 대해 분별이 생긴다. 분별이 생긴 다음에는 더 이상 세상의 사악한 시류의 그런 사상 관점으로 결혼을 대하지 않게 되고, 더 이상 그런 사상 관점을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그런 사상 관점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너에게 좋은 점은 무엇이냐? 그건 바로 결혼에 대한 네 생각과 행동이 그런 사상 관점에 좌우되지 않고, 더 이상 그것으로 인해 네가 패괴되는 일도 없으며, 다시는 너에게 그런 사악한 사상 관점이 심어지는 일도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네가 사악한 세상 시류에 따라 결혼을 대하지 않게 되고, 사악한 시류에 사로잡히지 않게 된다. 그러면 너는 결혼이라는 일에서 굳게 설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특정한 의미에서 볼 때, 너는 결혼과 관련해서 사탄에게 속하고 세상에 속하는 일부 사상 관점이나 생각을 이미 내려놓은 것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결혼에 대해 정확한 정의가 생긴 후, 사람은 결혼에 대한 추구와 이상, 바람을 일부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된 것이냐? 결혼에 대한 추구와 이상, 바람을 완전히 내려놓을 수 있느냐? 아직 멀었다. 사람은 단지 결혼에 대해 정확한 정의와 개념만 가지게 되었고, 사상 면에서 결혼에 대해 초보적이고 기본적인 개념과 인식만 가지게 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세상과 사회에서 유포하는 결혼에 관계된 각양각색의 사상 관점과 화제는 여전히 네 사상 관점에 영향을 주고, 결혼에 대한 네 생각, 심지어 행동에 영향을 줄 것이다. 그러니 지금까지 결혼에 대해 정확하게 정의했어도 사람은 여전히 결혼에 대한 추구와 이상, 바람을 완전하고 철저하게 내려놓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제 결혼이라는 일에서 사람에게 생기는 여러 가지 추구와 이상, 바람에 대해 교제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이상으로 결혼의 정의에 대한 교제는 일단락되었다. 이제는 결혼으로 해서 생겨나는 각종 추구와 이상, 바람을 어떻게 내려놓을 것인지 교제하기로 하자. 먼저 결혼에 대한 사람의 온갖 환상에 관해 교제해 보자. 환상이라고 하면 사람들 머릿속에 떠오르는 화면들이다. 이 화면들은 아직 사실로 나타나지 않았고, 단지 일상생활에서 혹은 사람이 마주하는 환경에서 일어나는 상상일 뿐이다. 이런 상상이 사람의 머릿속에서 그림이 되고 환영이 되고, 심지어 결혼에 대한 사람의 추구와 이상, 바람으로 변한다. 따라서 결혼에 대한 추구와 이상, 바람을 내려놓으려면 먼저 네 머리와 마음 깊은 곳에 심었던, 혹은 지금도 심어져 있는 온갖 환상을 내려놓아야 한다. 이것이 너희가 결혼에 대한 추구와 이상, 바람을 내려놓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즉, 결혼에 대한 온갖 환상을 내려놓으라는 말이다. 그러면 먼저 결혼에 대한 환상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얘기해 보자. 수백 년, 수천 년 전 사람들이 결혼에 대해 했던 말들은 지금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으므로 넘어가기로 하자. 근대 인류에게는 결혼과 관련해서 어떤 참신하고, 세련되고, 유행되고 주류가 된 말과 행사들이 있는지 살펴보자. 이런 것들은 너희에게 영향을 주어 마음 깊은 곳에서, 혹은 머릿속에서 결혼에 대한 여러 가지 환상을 끊임없이 만들어 냈다. 결혼에 대한 말들이 사회에서 먼저 유행했고, 그다음에는 각종 문학 작품에도 결혼에 대한 작가의 사상과 말이 등장했다. 이런 문학 작품은 드라마나 영화로 촬영되어 스크린에 옮겨졌는데, 이를 통해 결혼에 대한 인류의 온갖 말, 추구와 이상, 바람이 더욱 생동감 있게 연출되고, 그것들은 많든 적든, 음으로 양으로 계속해서 너희에게 주입되었다. 너희가 결혼에 대해 정확한 개념이 전혀 없을 때, 사회에서 생겨난 결혼에 대한 그런 각종 말이나 정보가 선입관으로 자리 잡고 너희에게 받아들여졌다. 그러고 나서 너희도 자신의 결혼이 어떻고 자신의 반쪽은 어떨 것이라는 환상을 품기 시작했다. 네가 그 정보들을 받아들인 경로가 드라마나 영화, 소설이든, 아니면 네 생활 범위, 네가 속한 그룹이든 그 어느 쪽을 막론하고, 그런 정보는 모두 사람에게서, 사회에서, 세상에서 온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모두 사악한 시류로부터 진화하고 파생되어 온 것이다. 물론 더 정확히는 사탄에게서 온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이 과정에서 너희가 결혼에 관해 어떤 사상 관점을 받아들였든, 어쨌든 사람은 결혼에 대한 각종 사상 관점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머릿속으로 결혼에 대해 끊임없이 환상을 품는다. 이런 환상은 모두 한 가지를 둘러싼 것이다. 그게 무엇인지 알겠느냐? (애정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유행하거나 주류가 되는 정보는 애정을 중심으로 결혼을 다룬다. 결혼이 행복한지는 애정이 있느냐, 부부가 서로를 사랑하느냐에 달렸다는 것이다. 사회에서 유행하는 결혼에 대한 이런 말들, 사람의 사상, 영혼 깊숙이 침투한 것들은 주로 애정이다. 이런 말들이 사람 내면에 주입되어 사람은 결혼에 대한 다양한 환상을 만들어 낸다. 예를 들어,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지, 결혼 상대에 대한 자신의 요구는 무엇인지에 대한 환상이다. 특히 사회 곳곳의 정보는 모두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람도 나를 사랑해야 진정한 애정이 있는 것이고, 애정이 있어야 결혼도 가능하고, 애정이 있는 결혼이야말로 아름답고 행복한 결혼이고, 애정 없는 결혼은 비도덕적이라고 한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찾기도 전에 자신의 애정을 찾으며 결혼을 미리 준비해 놓고,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물불 가리지 않고 자신의 애정을 추구하고 실현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예전 사람들은 애정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소위 결혼은 자유라느니, 애정은 무죄라느니, 애정이 최고라느니 하는 얘기도 하지 않았다. 그때는 결혼, 연애, 애정이란 말도 꺼내기 부끄러워했다. 특히 이성에 관계된 경우 다들 쑥스러워 얼굴이 붉어지고 심장이 두근거리거나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지금은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애정에 관해, 결혼에 관해 거리낌 없이 얘기하는 사람을 보면 자기도 그렇게 얼굴 붉히거나 가슴 떨리는 일 없이 대범하게 애정과 결혼을 논하고 싶고, 나아가 자기가 추구하는 상대를 만나면 과감하게 고백하고, 마음을 보여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자기가 구애를 하거나 구애를 받는 온갖 장면을 상상하기도 하고, 자기가 사랑하고 추구하는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상상하기도 한다. 여자는 자신이 추구하는 상대를 백마 탄 왕자로 상상한다. 키는 적어도 180 이상이고, 유머러스하고, 교양 있고, 고학력에 집안도 좋고, 거기다 차도 있고, 집도 있고, 사회적 지위도 있고, 경제적 기반도 있으면 금상첨화다. 남자는 자신의 반쪽을 백설공주, 집안일을 안팎으로 다 잘하는 슈퍼우먼으로 상상하고, 심지어 자신의 반쪽이 집안 좋은 부잣집 딸이면 더욱 좋다고 상상한다. 그리고 둘이 결합해서 사람들에게 선남선녀, 환상의 커플, 천생연분 등으로 불리며 부러움을 자아내는 그런 커플이 되어, 서로 언성 높이거나 얼굴 붉히지도 않고, 무슨 일로 싸우지도 않으며, 서로 깊이 사랑해서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굳은 언약과 변치 않는 사랑으로 백년해로하며 영원히 서로 미워하지 않고, 서로를 버리지 않고, 떠나지 않는 것 등등을 상상한다. 여자는 어느 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식장에 들어서서 목사의 축복 속에 서로 반지를 나눠 끼고, 아플 때도 가난할 때도 서로의 곁을 지키며 평생을 함께하겠다고 영원한 사랑을 서약하는 장면을 상상한다. 남자도 어느 날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식장에 들어서서 목사의 축복 속에 반지를 나눠 끼고 서약하는 상상을 한다. 신부가 나중에 젊음과 미모를 잃더라도 그녀 곁을 지키겠다고, 사랑하는 여인에게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선물해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로 만들어 주겠다고 맹세하는 것 말이다. 남자든, 여자든 다 이렇게 상상하고 추구하며, 또한 이렇게 현실 생활 속에서 계속해서 결혼에 대한 각종 추구와 이상, 바람을 학습해 나간다. 동시에 내면 깊은 곳에서는 끊임없이 이런 환상들을 반복하며 어느 날 자신의 환상이 현실 생활에서 연출되어 그것이 더는 이상과 바람이 아닌 현실이 되기를 희망한다. 여자는 현대 생활의 영향과 사회에 넘쳐나는 온갖 소식과 정보의 영향으로,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부가 되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가 되기를 바란다. 또 자기 소유의 다이아 반지를 끼는 게 소원이다. 1캐럿 이상에 품질도 최상이고 흠집 하나 없이 완벽한 다이아 반지를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가 끼워 주는 것, 이것이 결혼에 대한 여자의 환상이다. 여자는 첫째로 그런 결혼 형식에도 환상을 품고, 둘째로 결혼 생활에도 온갖 환상을 품는다. 사랑하는 남자가 자신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연애할 때와 마찬가지로 결혼 생활에서도 자기를 깊이 사랑해 주기를 바라고, 다른 여자를 사랑하지 않고 자기를 행복하게 해 주고, 약속을 실현하고, 오래오래 영원히 서로의 곁에 있어 주기를 바란다. 셋째로는 연애 상대에게도 온갖 환상과 요구가 있다. 최소한 백마 탄 왕자는 되어야 하고, 백마 탄 왕자가 아니더라도 최소한 흑마 탄 왕자는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여자가 생각하는 이상형은 꼭 왕자급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토록 낭만적이고 멋진데, 평생이 얼마나 행복하겠느냐! 사람이 결혼에 대해 품은 환상의 근거는 사회와 대중, 혹은 온갖 정보, 각종 서적, 문학작품, 영화나 드라마에서 오는 것이다. 거기에 내면 깊은 곳의 사치스럽고도 개인의 기호에 부합하는 것들이 더해져 각양각색의 연애 대상, 각양각색의 이상형, 각양각색의 결혼 형식과 결혼 생활을 상상해 낸다. 결국, 사람의 온갖 환상은 모두 결혼에 대한 사회적 이해와 해석, 결혼에 대한 온갖 말들에 기반한다. 여자도 그렇고 남자도 마찬가지다. 결혼에 대해 남자가 가지는 여러 가지 추구는 결코 여성 못지않다. 남자도 마찬가지로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를 찾으려 한다. 정숙하고, 상냥하고, 착하고, 세심하고, 자기를 잘 챙겨 주는 사람, 게다가 작은 새처럼 남자에게 의지하고 자기만 바라보고 자기가 어떤 결함이나 단점이 있어도 싫어하지 않고 심지어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 그가 낙담할 때든, 실의에 빠졌을 때든, 실패했을 때든, 손 내밀어 도와주고 붙잡아 주며 이렇게 말하는 사람 말이다. “자기야, 괜찮아. 내가 있잖아. 어떤 고비도 이겨 낼 수 있으니까 걱정 마. 언제까지라도 내가 곁에 있어 줄게.” 여자가 남자에게 다양한 요구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자 역시 여자에게 다양한 요구가 있다. 그러니 남자도 여자도 모두 사람들 가운데서 자신의 반쪽을 찾는데, 짝을 찾는 근거는 바로 결혼에 대해 남녀가 가진 여러 가지 환상이다. 물론 남자는 더 많은 환상이 있다. 자기가 사회에서 자리를 잘 잡아서 사업을 이루고 경제 기반을 다지고 어느 정도 자본이 생긴다면 더 나은 짝, 자신의 지위와 신분에 어울리고, 자기 눈에 맞고 자기 취향에 맞는 짝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좋아하고 자기 요구에 부합하는 사람이라면, 그녀를 위해 무슨 일이든 기꺼이 하고, 심지어 불구덩이에도 기꺼이 뛰어들려고 한다. 물론, 더 현실적인 방법으로 그녀에게 좋은 물건을 사 주면서 그 어떤 물질적 필요도 충족시켜 주려 한다. 차도 사 주고, 집도 사 주고, 다이아 반지도 사 주고, 명품 가방, 명품 옷도 사 준다. 거기다 조건이 되면 개인 유람선도 사고, 개인 비행기도 사서 사랑하는 여자를 데리고 바다로 나가 둘만의 세상에서 지내거나, 사랑하는 여자를 데리고 세계를 유람하며 세계의 유명한 산, 유명 관광지를 돌아다니려 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생활이냐! 여자는 결혼에 대한 온갖 환상을 위해 갖은 대가를 치르고, 남자도 마찬가지로 결혼에 대한 온갖 환상을 위해 분투하고 노력하고 있다. 결혼에 대한 환상이 어떻든 그 환상이 세상으로부터 왔다면, 결혼에 대한 패괴된 인류의 각종 이해와 말에서 왔다면, 혹은 세상과 패괴된 인류가 너에게 결혼에 대한 정보들을 주입했다면, 이런 결혼에 대한 각종 사상 관점은 많든 적든, 깊든 얕든 네 생활과 신앙에 영향을 주고, 네 인생관과 인생길에 영향을 줄 것이다. 왜냐하면 결혼은 성인이라면 누구라도 피할 수 없는 일이고, 피할 수 없는 화제이기 때문이다. 네가 설령 이번 생에서 독신을 선택해서 결혼할 일이 없다고 해도 결혼에 대한 환상은 여전히 존재한다. 네가 설령 독신을 택한다 해도, 결혼에 대한 가장 원초적인 개념과 생각을 갖기 시작한 후로 너는 결혼에 대해 온갖 다양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이 환상은 네 사상을 점유할 뿐만 아니라 네 일상생활을 가득 채우고, 여러 가지 일을 대하는 네 사상 관점과 선택에 영향을 준다. 간단하게 말해, 한 여자가 연애 대상에 대한 기준이 있다면, 그게 성숙한 기준이든 아니든, 성립이 되든 안 되든 그녀는 이 기준으로 이성의 인성과 인품을 판단하고, 이성이 자기가 사귀고 싶어 하는 유형인지를 판단한다. 이 기준은 그녀가 결혼 상대를 선택하는 기준과 따로 떼어 놓을 수 없다. 예를 들어, 그녀가 좋아하는 타입의 남성은 짙은 눈썹에 부리부리한 눈, 희고 말쑥한 장방형의 큰 얼굴에 말투는 세련되고, 지적이고, 매너가 좋은 사람이다. 그녀는 자신의 연애관에 따라 이런 이성에게 호감이 가고, 상대적으로 이런 이성에게 끌린다. 따라서 생활 속에서 이런 이성이 자기의 연애 상대이든 아니든, 그녀는 그에게 분명 호감을 느낄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이성을 만나면 그의 인성이 좋든 나쁘든, 인품이 어떻든, 음험한 사람이든 아니든, 사악한 사람이든 아니든 다 나중 문제다. 이런 것은 그녀가 이성을 대하는 기준이 아니다. 그녀의 기준은 무엇이냐? 바로 배우자를 선택하는 기준이다. 만약 상대방이 그녀의 배우자 선택 기준에 부합한다면, 설령 그 사람이 그녀가 배우자로 선택할 상대는 아니더라도 그녀가 어울리기 좋아하는 대상이 된다. 이 문제는 무엇을 말해 주느냐? 한 사람의 연애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연애 상대, 혹은 결혼 상대에 대한 기준은, 본인이 모든 이성을 바라보는 관점에 상당 부분 영향을 끼친다. 자신의 배우자 선택 기준에 부합하는 이성을 만났을 때는 그 사람의 어딜 봐도 맘에 들고, 목소리도 듣기 좋고, 언행을 봐도 마음이 편안하다. 설령 그가 자신이 연애하고자 하는 대상, 추구하고자 하는 대상이 아니라 해도, 어딜 봐도 맘에 든다. 이렇게 맘에 든 것이 문제다. 그가 무슨 말을 해도 너는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한다. 그의 모든 게 다 좋아 보이고, 다 옳은 것 같고, 뭘 하든 다 좋아 보인다. 네가 그에게 호감을 갖기 시작하면서 점점 그에게 탄복하고 숭배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탄복과 숭배는 어디서 오는 것이냐? 그 근원은 네가 연애 상대와 결혼 상대를 선택하는 기준이다. 이 기준이 어느 정도는 네가 사람을 잘못 보게 만들 것이다. 더 정확히는 네가 한 이성을 대하는 준칙, 근거를 더욱 모호하게 바꿔 놓는다는 말이다. 그의 겉모습이 네 심미관에 부합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인품이 어떤지, 그의 행동이 원칙에 부합하고 진리 원칙이 있는지, 그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인지, 하나님에게 참된 믿음과 순종이 있는지 등을 상관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너에게 아주 모호해지고, 너는 쉽게 감정에 지배되어 그 사람을 대하게 된다. 네가 그에게 호감이 있고, 또 그가 감정 면에서 네 기준을 충족시키기 때문에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네 눈엔 좋아 보이고 훌륭해 보인다. 그래서 너는 그를 두둔하고 숭배하며, 심지어 그가 악한 일을 해도 분별하거나 폭로하지 못하고, 끊어 내지도 못한다. 그 원인이 무엇이냐? 바로 그 부분에서 감정이 작용해서 네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감정이 작용하면 원칙대로 일하기가 쉽겠느냐? 감정이 앞서면 원칙이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 일이 야기하는 결과가 심각하다고 하는 것이다. 네 연애 상대도 아니고, 너와 결혼할 상대도 아니지만, 그는 네 심미관에 부합하고, 감정적 필요에 부합한다. 이런 전제라면 너는 감정의 영향과 통제를 받지 않을 수 없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 사람을 대하고, 그 사람에게서 발생한 문제를 처리하고, 너 자신의 문제를 처리하기가 쉽지 않다. 감정이 일단 너를 지배하고 주도하게 되면, 너는 감정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힘들고 진리 실행의 실제에 진입하기 힘들다. 내가 하는 이런 말이 무슨 뜻이겠느냐? 결혼에 대한 여러 가지 환상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네가 전혀 다른 세상, 다른 별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미성년자도 아니고, 정신 지체자나 바보는 더더욱 아니다. 너는 성인이고 성인의 생각을 가졌다. 그와 동시에 너도 모르게 사회에서 형성된 결혼에 대한 말들을 받아들인다. 즉, 사회나 사악한 인류에게서 온 결혼에 대한 각종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받아들이고 나면, 너는 자기도 모르게 연애 상대가 누구일지 상상하게 된다. 이 상상은 무엇을 가리키느냐? 바로 실제에 부합하지 않는, 공허한 생각들이다. 우리가 지금 교제하고 폭로하는 내용에 근거하면, 주로 사회와 사악한 인류에게서 온 결혼에 대한 온갖 말들을 겨냥한 것이다. 너는 진리에 부합하는 올바른 결혼관이 없기 때문에 사회와 사악한 인류에게서 비롯된 결혼에 대한 각종 말에 영향을 받아 타락하고 패괴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너는 그걸 모르고, 알아차리지도 못한다. 너는 그것이 일종의 타락, 일종의 패괴임을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고, 알게 모르게 그것이 모두 합리적이고 당연한 것이라고, 성인이 가져야 하는 생각이라고 여기게 된다. 너는 너무나 당연하게 그것을 자신의 정당한 요구, 정당한 필요, 성인이 가져야 할 정당한 생각으로 변모시킨다. 따라서 네가 처음에 이런 정보들을 받아들이면서부터 결혼에 대한 네 환상은 점점 높아지고 깊어지고, 동시에 결혼에 대해 갈수록 염치가 없어지거나, 결혼에 대한 각종 환상을 적극적으로 거부하지 않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너는 갈수록 자기도 모르게, 대담하게 네 연애 상대를 상상하고, 결혼의 다양한 시나리오와 여러 관계되는 일을 상상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사회와 사악한 인류에게서 오는 결혼에 대한 온갖 말과 정보를 받아들일수록, 사람은 더 대담하고 거리낌 없이 자기 결혼을 상상하고, 연애 상대를 찾고 추구한다. 동시에 자기 연인이 연애 소설이나 드라마, 멜로 영화에서 묘사한 것처럼 무조건 자기를 사랑하고 죽어서도 변치 않기를 희망한다. 본인도 드라마나 연애 소설에서 얘기한 것처럼 자기 연인을 깊이 사랑하고 오래도록 변치 않기를 바란다. 어쨌든 이런 환상은 현실 생활에서 인성의 필요, 생활의 필요와는 괴리된다. 물론 인성의 본질과도 괴리된다. 그것은 현실 생활과 전혀 맞지 않고, 사람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여느 일들처럼 상상에서 생겨난 각양각색의 아름다운 생각일 뿐이다. 이런 생각이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정의와 안배에 부합하지 않는 이상, 사람은 사실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추구해선 안 되는 그런 사상 관점을 내려놓아야 한다.

이 책에 사용된 한글성경 번역본은 ‘개역한글’을 인용하였습니다. 그 외의 경우는 따로 표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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