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제 2 부)

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알아야 하느냐?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세계관, 인생관, 가치관을 통해 분별하는 것이다. 마귀에 속한 사람은 모두 스스로를 위해 살아간다. 그런 사람은 주로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 “사람은 재물 때문에 죽고, 새는 먹이 때문에 죽는다.” 등등 사탄의 말을 인생관이나 좌우명으로 여기며, 세상의 마왕, 위인, 철학자들의 말을 생명으로 삼는다. 특히 중국인들이 ‘성인’으로 떠받드는 공자의 말 중에서 대부분은 이미 사람의 생명이 되었다. 이것 외에도 불교나 도교의 명언, 유명인 입에서 나온 전형적인 말들은 모두 사탄 철학, 사탄 본성의 정수이자 사탄 본성에 대한 최고의 설명이고 해석이다. 인류의 마음에 주입된 이러한 독소는 모두 사탄에게서 온 것이며, 하나님에게서 온 것은 하나도 없다. 그 허튼소리들은 또 하나님의 말씀과 대립된다. 여기에서 모든 긍정적인 사물의 실제는 하나님에게서 오고, 사람을 해하는 모든 부정적인 사물은 다 사탄에게서 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의 인생관과 가치관을 통해 그 사람의 본성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사람이 누구에게 속하는지를 알 수 있다. 사탄은 국가 정부, 유명 인사와 위인들의 교육과 가르침을 통해 사람을 패괴시키며, 그들의 허튼소리는 사람의 생명 본성이 되었다.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라는 말은 사탄의 명언으로, 이미 모든 이의 내면에 침투해 생명이 되었다. 이 밖에 처세 철학에 관한 말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사탄은 각국의 전통문화를 이용해 사람을 교육하고 미혹하고 패괴시킴으로써 끔찍한 재난의 망망대해로 빠뜨리며, 사람은 결국 사탄을 섬기고 하나님을 대적하여 하나님께 멸망당하고 만다. 사회에서 수십 년간 공직에 있었던 사람에게 “당신은 관직에 오르고 벼슬길이 그렇게 형통하신데, 당신을 그렇게 만들어 준 명언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본다면 그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한 가지만 알고 있습니다. 바로 공직에 있으면 뇌물 주는 자를 꾸짖지 않는다는 것과 아부 없이는 되는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사탄 철학인 이 말에 기대어 관직에 올랐다. 이 말이 그 사람의 본성을 대변하지 않겠느냐? 공직에 오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은 그의 본성이 되었고, 관직에 올라 사업을 이루는 것은 그의 목적이 되었다. 사람의 삶과 행위, 사람됨에는 아직도 사탄의 독소가 많이 들어 있다. 예를 들어 사람의 처세 철학, 일 처리 방식, 사람의 좌우명에는 모두 큰 붉은 용의 독소가 가득하며, 이것들은 모두 사탄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 사람의 뼛속과 핏속에 흐르는 것은 모두 사탄의 것이다. 공직에 있는 자, 권세를 잡은 자, 성공한 자에게는 모두 그들만의 성공의 길, 성공 비법이 있다. 그 비법이 곧 그의 본성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들은 세상에서 큰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 뒤에 숨겨진 음모와 간계를 아무도 꿰뚫어 보지 못한다. 이는 그들의 본성이 매우 음험하고 악독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류는 사탄에 의해 심하게 패괴되었고, 모든 사람의 혈액 속에 흐르는 것은 사탄의 독액이다. 사람의 본성이 패괴되고 사악하고 불온적인 것이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고, 사탄의 철학과 사탄의 독소로 점철되고 뼛속까지 물들어 완전히 사탄의 본성 본질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대적하고 적대시하는 것이다. 사람의 본성을 이렇게 해부한다면 쉽게 자신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사람이 정말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여 그것이 진실하다는 것을, 진실로 거룩하며 공의롭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속으로부터 하나님의 거룩함과 공의로움을 찬미할 수 있다면, 그는 진실로 하나님을 인식한 것이고 진리를 얻은 것이다. 하나님을 인식한 사람이 바로 빛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진실로 하나님을 인식하여 얻게 되는 성과는 하나님께 진실한 사랑과 순종을 바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진실로 하나님을 알고 진리를 깨닫고 얻으면 그 사람의 세계관과 인생관에는 참된 변화가 생기며, 그로 인해 생명 성품에도 진실한 변화가 생긴다. 사람이 올바른 인생의 목표가 있고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에 근거해 처신하며,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간다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평안하고 밝아지는 것을 느끼며, 마음에 조금의 어둠도 없이 완전히 해방되어 하나님 앞에서 자유롭게 살아간다면, 이런 사람이 바로 진정한 인생을 얻은 사람이고 진리가 있고 인성이 있는 사람이다. 이 밖에, 네가 깨닫고 얻은 진리는 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다. 지고한 하나님 곧 창조주가 너를 합당한 자격을 갖춘 피조물이라고, 사람의 모습을 살아 냈다고 칭찬한다면, 이것이 바로 가장 의미 있는 인생이다. 하나님께 칭찬받게 되면 진리를 얻은 것이며, 너는 바로 진리와 인성이 있는 사람이다. 지금 사탄이 다스리는 세상에서 최소한 수천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온 인류 중, 누가 진정한 인생을 얻었느냐? 그 누구도 얻지 못했다. 인류는 사탄에게 심하게 패괴되어 모두 사탄의 철학으로 살아가며, 인류의 일거수일투족은 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모든 말과 이론은 사탄의 패괴에서 비롯된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정확히 대립된다. 그러므로 그들이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부류이다. 만약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모두 침륜과 멸망에 빠져 인생이라고는 없을 것이다. 그들은 명리를 좇고 명인이나 위인이 되기를 원하며, 후세에 명성을 날리고 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기기를 바라지만, 그것은 전부 헛소리로, 결코 성립하지 않는다. 어떤 명인이나 위인도 사실 전부 사탄의 부류이다. 그들은 이미 오래전에 18층 지옥에 떨어져 징벌받고 있으며, 영원히 환생하지 못한다. 패괴된 인류는 그들을 숭상하고 그들의 헛소리, 궤변을 받아들여 마귀와 사탄의 희생물이 되었다. 피조물이라면 응당 창조주를 경배해야 한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이치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진리이고 천지 만유를 주관하며 모든 것을 주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으면 진리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네가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면 너는 마음 깊은 곳이 밝고 편안하고 비할 데 없이 행복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면 참으로 인생을 얻은 것이다. 과학을 연구하는 세상의 과학자들이 얼마나 큰 성과를 이루었든, 죽음에 다다르면 텅 빈 두 손과 함께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고 느낀다. 아인슈타인이나 뉴턴과 같은 고급 지식인들도 공허를 느꼈던 것은 바로 그들이 진리가 없고, 하나님에 대한 진실된 인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비록 하나님을 믿었지만, 하나님의 존재만을 믿었을 뿐, 진리를 추구하지는 않았다. 늘 과학 연구에 의지해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증명하려 했는데, 결국 평생을 연구해도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비록 평생 하나님을 믿었지만 진리는 얻지 못했다. 그들은 과학 지식만을 추구하고,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진리를 얻지 못하고, 진정한 인생도 얻지 못했다. 너희가 지금 가는 길은 그들의 길이 아니다. 너희가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이고, 어떻게 하나님께 순종하고, 어떻게 하나님을 경배하고, 어떻게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 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들과는 전혀 다르다. 그들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지만 진리를 얻지 못했다. 오늘날,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각 방면의 진리를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고, 진리 생명의 도를 베풀어 주었는데, 그래도 너희가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너무나 우매한 일이다.

지금 너희가 깨달은 진리는 너무나도 적다. 그저 공허한 이론만 조금 얘기할 수 있는 정도라 자신이 아직도 너무 부족하게 느껴지고 어떤 사역을 해도 자신이 없다. 이는 생명 진입이 너무나 얕고 진리를 아직 얻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네가 진정으로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게 된다면 힘이 날 것이다. 온몸에 힘이 넘칠 것이다. 그때는 갈수록 내면이 밝아지고, 길도 걸을수록 밝아질 것이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하지 못했고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여전히 마음이 공허하고, 사는 것이 고통스럽고, 본분 이행할 때도 의욕이 없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마음에 이상(異象)이 없으면 바로 그렇다. 사람은 진리를 얻지 못했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에 내면에 이렇다 할 즐거움이 없다. 특히 너희는 핍박을 받아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고난을 겪으면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살기가 싫어지는데, 이는 육의 연약함이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도 생각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 당연히 즐거워야지. 은혜시대에는 성령이 사람에게 평안과 기쁨을 내려 주셨는데, 지금은 그게 너무 적어. 은혜시대만큼 즐겁지가 않아. 지금 하나님을 믿는 것은 정말 괴롭구나.’ 너는 육적인 즐거움만 알고, 하나님이 오늘날 어떤 사역을 하고 있는지는 모른다. 하나님이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키려면 너희의 육을 고통스럽게 해야 한다. 비록 육은 고통받지만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축복이 있으면 너는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한다. 하나님을 모르고 진리를 얻지 못했는데도 체념할 수 있겠느냐? 지금은 주로 사람이 진리를 얻지 못했고, 생명이 없는 상태로, 아직은 한창 구원을 추구하는 과정에 있다. 그러므로 이 기간에는 고통을 받아야 한다. 지금은 세상 사람 모두가 시련을 받고 있다. 하나님도 아직 고통받고 있는데, 너희가 고통받지 않아서야 되겠느냐? 대재난의 연단이 없으면 사람은 참된 믿음을 가질 수 없고, 진리 생명도 얻지 못할 것이다. 시련과 연단 없이는 안 된다. 베드로를 보아라. 그는 나중(53세 이후)에 7년의 시련을 겪었다. 7년이라는 세월 동안 수백 번의 시련을 겪었다. 며칠에 한 번씩 시련이 찾아왔고, 온갖 시련을 겪고 나서야 생명을 얻고 성품이 변화했다. 진정으로 진리를 얻고 하나님을 인식하게 되면, 그때는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을 위해 살지 않으면 너무나 한이 될 것이다. 평생을 뉘우치며 뼈저리게 통회할 것이다. 지금은 아직 죽을 수 없다. 주먹을 굳게 쥐고 꿋꿋이 살아야 한다.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한다. 사람에게 진리가 있다면 이런 의지를 갖고 더는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죽음이 너를 위협할 때, 너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하나님, 저는 죽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아직 당신을 알지 못하는걸요! 아직 당신의 사랑에 보답하지 못했는걸요! 저는 당신을 제대로 알기 전에는 죽을 수 없습니다.” 지금 너희가 이런 경지에 이르렀느냐? 아직은 아니지 않으냐? 어떤 사람은 가정의 고통을 만나고, 어떤 사람은 결혼의 고통을 만나고, 어떤 사람은 핍박을 당해 안전하게 지낼 곳조차 없이 남의 집을 전전하느라 마음이 무척 고통스럽다. 지금 너희에게 임한 고통이 바로 하나님이 받는 고통이 아니더냐? 너희는 하나님과 함께 고통받고 있다. 이 또한 하나님이 사람의 고난에 함께하는 것이기도 하다. 오늘 너희가 그리스도의 환난과 나라와 인내에 동참해야 마지막에 영광을 얻을 것이다! 이런 고통을 겪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렇지 않으냐? 너에게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오늘 겪는 고통의 의미가 무엇인지, 왜 이렇게 많은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를 알고, 진리를 구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다면 너에게는 고통을 겪어 낼 의지가 생길 것이다. 네가 하나님 뜻을 알지 못하고 고통받는 것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괴롭고, 생각할수록 소극적이 될 것이다. 앞으로 살 길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고, 죽음의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네가 만약 진리에 정성을 다하고 공을 들여서 진리를 깨닫게 되면 마음이 밝아지고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마음에 평화와 기쁨을 안고 살아갈 수 있다. 병에 걸리거나 죽음이 다가와도 너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직 진리를 얻지 못했는데,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헌신하고, 하나님을 훌륭하게 증거해서 그분 은혜에 보답해야 해. 나중에 어떻게 죽어도 좋아. 그때는 내 삶에 만족할 수 있으니까. 지금은 남들은 몰라도 나는 죽으면 안 돼. 굳세게 살아야 해.” 지금 이 일을 꿰뚫어 보고 여기서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진리가 있는 사람은 힘이 있다. 진리가 생기면 온몸에 힘이 넘치고, 진리가 생기면 의지가 생긴다. 진리가 없으면 폐물과도 같지만, 진리가 생기면 굳세고 담대해져서 아무리 고통을 받아도 고통스럽지 않다. 너희가 받는 그까짓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다. 성육신 하나님도 여전히 고난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너희는 사탄에게 패괴되어 하나님을 배반하는 본성이 있는 사람이다. 다들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짓을 많이 저질렀으니 심판받아 마땅하고, 형벌받아 마땅하다. 사람이 병이 나면 치료를 받듯, 고통받는 것을 두려워하면 되겠느냐? 너희는 패괴 성품이 있는데, 성품을 변화시키고 생명을 얻으려면 고통 없이 되겠느냐? 너희의 고통은 패괴 성품으로 인해 초래된 것이다. 그것은 마땅히 받아야 하는 고통으로, 반드시 받아야만 한다. 그것은 애꿎은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강요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너희가 지금 받는 고통은 사방으로 뛰어다니느라 고생하거나 본분을 이행할 때 조금 수고하는 것뿐이다. 때로는 자신의 패괴 성품이 계속 변화가 없어서 마음에 연단을 받기도 하고, 아무리 하나님 말씀을 봐도 이해가 안 되거나 혹은 말씀을 보고 마음이 좀 찔리고 괴로움을 느끼는 등 하나님 말씀에서 연단의 고통을 받기도 한다. 또는 실제 사역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본분에서 항상 실수를 저질러 가책을 느끼고, 사역 하나 못하는 변변치 못한 자신을 미워하느라 고통받기도 하고, 다른 사람은 발전하는데, 자기는 발전이 너무 더디고, 하나님 말씀을 이해하는 것도 너무 느리고, 빛 비춤도 너무 적어서 그것 때문에 고통받기도 한다. 때로는 큰 붉은 용에게 쫓기고 박해받는 등 열악한 환경의 위협으로 늘 겁에 질려 있고, 좌불안석의 공포 속에 사느라 고통받기도 한다. 얘기한 것 말고 또 어떤 고통이 있을까? 너희에게 힘든 육체 노동을 시킨 것도 아니고, 너희를 때리고 욕하는 상사나 사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너희를 노예로 부려 먹는 것도 아니다. 이런 고통은 하나도 없다. 사실 너희가 받는 그런 고통은 고통도 아니다. 그렇지 않은지 잘 생각해 보아라. 너희는 가정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만약 그것이 진리와 생명을 추구하고, 동시에 본분을 이행하여 하나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한 것이라면 이는 완전히 정의로운 일이요, 긍정적인 일이요, 너무나 마땅한 일이다. 그러면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집안이 어떻게 되더라도 다 내려놓을 수 있다. 그 의미를 잘 안다면 너는 후회도 없고, 소극적이 되지도 않을 것이다. 만약 진심으로 하나님께 헌신하지 않고, 힘을 써서 복만 받으려 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 사실을 분명히 알면 문제가 해결되고, 가족들은 염려할 필요가 없다. 모든 것은 하나님 손안에 있다. 지금 너희는 모두 시련의 고통을 겪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진리를 얻었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치만 이해하고 진리는 얻지 못했다. 자질이 훌륭한 사람들은 좀 더 깊이 이해하고, 자질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얄팍하게 이해했다. 네 이해의 깊이가 어떻든 네가 진리를 깨달아 시련이 닥쳐 고통받을 때 굳게 서서 증거할 수만 있다면, 네가 받은 고통은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다. 만약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람의 관념과 상상으로만 대한다면 아무리 고통을 많이 받더라도 참된 체험 간증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 네가 받은 고통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네가 진리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모든 일에서 진리를 구해야 한다. 예를 들어, 먹고 입는 일이나 개인의 일상에 관계된 일에서 어떻게 진리를 구해야 하느냐? 여기에 구할 만한 진리가 있지 않으냐? 누군가는 말한다. “하나님을 믿고 말고를 떠나 잘 먹고 잘 입는 것이 행복이고, 못 먹고 못 입는 것은 고통이지.” 이 말은 진리에 부합하느냐? 많은 이들이 부유한 생활에 잘 먹고 입으며, 육적인 즐거움에 연연하지만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행하는 건 쉽지 않고,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께 헌신하기란 더욱 쉽지 않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고, 결국 재난 가운데 떨어져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이다. 그럼 그런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할 수 있겠느냐? 사람들 중에는 노동자, 농민 집안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적잖이 고생한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이 진리를 깨달으면 쉽게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행하고, 하나님을 위해 버리고 헌신하며 고생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이 맡긴 일에 충성을 다하고, 심지어 하나님을 위해 목숨도 버릴 수 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 집에서 좋은 본보기가 된다. 육적인 즐거움을 특히 중시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너희가 보기에 사람이 잘 먹고 잘 입는 것이 정말 중요하냐? 결코 그렇지 않다! 만약 사람이 정말 하나님을 알고 진리를 얻는다면, 그가 하는 행동이 모두 하나님을 증거하고 만족게 하는 것이다. 아무리 못 먹고, 못 입어도 그 삶은 가치가 있고, 하나님께 인정받을 것이다. 이것이 가장 의미 있는 일이 아니냐? 잘 먹고 잘 입는다고 반드시 복을 받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잘못된 길을 걷는다면 저주를 받을 것이다. 변변치 않은 음식을 먹고 해진 옷을 입더라도 진리를 얻는다면 여전히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먹고 입는 일을 대하는 문제에도 구할 진리가 있고, 본분을 대하는 일에는 더더욱 구할 진리가 있다. 하나님이 맡긴 일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하고, 이는 심각한 일이다! 하나님이 네게 맡긴 일을 완수하지 못한다면 너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자격이 없으며, 징벌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맡긴 일은 당연히 완수해야만 한다. 이는 사람이 이행해야 할 가장 큰 책임으로, 목숨만큼 중요한 일이다. 만약 네가 하나님이 맡긴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가장 심각한 배반인 것이다. 그런 사람은 유다보다 더 비참한 자로, 반드시 저주받게 되어 있다. 사람은 하나님이 맡긴 일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최소한 하나님이 사람에게 일을 맡겼다는 것은 하나님의 높여 줌이자 특별한 은혜로, 가장 영광스러운 일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너는 모든 것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심지어 목숨을 버릴지라도 하나님이 맡긴 일을 완수해야 한다. 여기에 구할 진리가 있지 않으냐? 성품이 변화하는 것과 진리를 구하는 것은 너무나 관련이 깊다! 사람은 왜 사는지, 인생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이 안의 진리를 깨닫는다면 너의 인생관에도 변화가 생기지 않겠느냐? 이 안에는 더더욱 구해야 할 진리가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는 어떤 진리가 있느냐? 사람은 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느냐? 하나님을 사랑하는 의의는 무엇이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대한 진리를 명확히 깨닫고 사람이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어느 정도 생긴다면 진정한 인생을 살게 되고,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다. 범사에 진리를 구하는 사람은 생명이 가장 빨리 자라고 성품 변화도 이룰 수 있다. 하나님이 좋아하는 사람은 바로 범사에 진리를 구하는 사람이다. 사람이 매사 관념을 따르고, 이치에 기대고, 규례에 얽매인다면 아무런 발전이 없고 영원히 진리를 얻지 못해 언젠가는 도태되고 말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가장 혐오한다.

1999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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