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어떻게 새 시대에 진입할 수 있는가 (제 2 부)
내가 한 이 많은 말을 정말 알아들었느냐? 어떻게 해야 새로운 시대에 진입할 수 있는지 알겠느냐? 어떤 방면에서부터 바꾸고 어떤 방면으로 진입해야 하느냐? 아마 너희는 잘 모를 것이다. 사람이 예전에 진입한 부분도 있긴 하지만, 아직도 한참 부족하고 하나님 요구에 이르지 못한 방면이 많다. 지금 하나님이 이렇게 많은 말씀을 하는 것은 사람을 새로운 시대로 데리고 들어가기 위함이다. 그런데 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에 늘 관념을 가지느냐? 이것은 사람이 과거에 진리를 얻지 못했고, 진리 실제가 없었다는 뜻이다. 너는 지금 하나님 말씀을 읽고 받아들일 수 있으면서 왜 실제 생활에서는 진리를 실행하지 못하고, 늘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께 맞서느냐? 왜 일이 생기면 늘 자신의 생각을 품고, 자기 뜻대로 행하면서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느냐? 바로 내면에 육적인 것이 너무 많고, 자신의 뜻이 너무 많아서 늘 스스로가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너희는 설교를 들으면 좋다고 느끼고 관념이 별로 없다가도 일이 생겨서 진리를 실행하고자 하면 그게 생각처럼 되지 않고, 패역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내가 너희의 패역이 너무나도 많다고 한 말을 못 믿겠으면 한번 기록해 보아라. 매번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마다 마음속에서 어떤 관념이 생겨나고, 어떤 생각이 드는지 일일이 적은 다음, 자기 내면에 있는 것을 파헤쳐 해부하고, 하나님 말씀과 대조해 보아라. 그러면 자신의 패역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실행하면 네 생명 진입에 도움이 될 것이다. 너는 용기 내어 사실을 직면하고, 자신을 폭로해야 한다. 과감히 자신을 폭로하는 것은 네가 진리를 받아들일 마음이 있고, 관념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순종할 마음이 있다는 뜻이다. 스스로를 저버려야 한다. 계속해서 하나님을 거역하는 짓은 하지 마라. 이는 잘못이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 네가 하나님께 쉽게 순종하게 되는 순간, 네 마음은 평안하고 기쁠 것이다. 또한, 하나님 말씀을 읽을 때는 무척 즐겁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는 속으로 할 말도 생겨서 하나님과 점점 가까워질 것이다. 하나님을 거역하기만 하는 자는 결코 진리를 실행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하나님 말씀을 읽어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데, 어찌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있겠느냐? 일이 생겼을 때 사람의 관념과 상상이 튀어나오고, 그것을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을 때, 너는 묵상하고 반성해야 한다. ‘이 문제는 어디서 비롯된 걸까? 왜 이런 관념이 생겨나지? 그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을 읽으면서 이 일을 꿰뚫어 보아야 한다. 문제가 해결되면 생명 진입이 있게 될 것이다. 문제를 이렇게 실제로 해결하지 않는다면, 약간의 관념이야 별것 아니라고, 며칠 지나면 자연스레 사라질 테고, 그러면 관념이 없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 이유로 너는 항상 자신에게 관념이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관념이 튀어나올 때 무시하고 지나쳐 버린 것이다. 당시에 무슨 위험이 뒤따르지 않으면 나중에는 인정하지 않게 된다. 평소 훈계와 책망을 받지 않고 역경이 없을 때는 누구나 관념을 갖지 않는다. 전에 관념이 있었다 해도 죄다 잊어버리고, 자기는 훌륭하다고, 정말 관념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일이 생겨서 관념이 흘러나오면 하나님과 맞선다. 그리고 얼마 후 관념이 사라지면, 사람은 그 일을 잊고 또다시 자신은 내적 상태가 매우 좋고 하나님께 아무런 관념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건 무슨 문제냐? 이것은 진실로 진리를 깨달은 것도 아니고, 관념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된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이런 관념은 또 반복해서 나타날 것이고, 다른 사람이 진리를 명확히 교제해 주어야만 철저히 해결할 수 있다. 관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진리를 구해야 하며, 도리를 아는 것만으로는 소용이 없다.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은 자신을 아는 것에 한계가 있고, 피상적이다. 말하자면, 관념이 생겨도 발견하지 못하고, 알아차리지 못할 때도 있다. 작은 관념은 해결되지 않더라도 사람을 쓰러뜨리지 못하지만, 커다란 관념은 해결되지 않으면 직접적으로 사람을 쓰러뜨릴 수 있다.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관념과 상상, 흔히 드러나는 잘못된 관점을 해결한 다음 각종 패괴 성품을 해결해야 한다. 얕은 곳에서부터 깊은 곳으로 차츰차츰 진리 실제로 들어가야 한다. 자신을 아는 일은 자신에게 존재하는 관념과 상상을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며, 진리를 깊이 깨달음에 따라 자신에 대한 인식도 점점 깊어진다. 자신을 아는 그 일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시종일관 자신을 알지 못하면 생명 진입이 있을 수 없으며, 생명 진입은 자신을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생명 진입을 하고 싶으면 열심히 진리를 구하고, 기회를 잘 붙잡아 하나도 빠짐없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자신의 관념을 적은 다음 진리를 구하고, 솔직히 털어놓아 교제하고, 하나님 말씀에 따라 해부해야 한다. 진리를 깨닫고 그 관념들이 철저히 해결될 때까지 말이다. 만약 그와 비슷한 일을 만났을 때 관념이 또다시 튀어나와 네 마음이 거기에 얽매인다면, 이는 네가 진정으로 진리를 깨달은 것이 아니라 도리만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관념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로 진리를 깨달아야만 관념이 철저하게 사라지고, 설령 나중에 다시 관념이 생겨도 쉽게 해결되어 거기에 얽매이지 않게 된다. 네가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신을 인식하고 진리에 진입하는 것이 어렵고 힘들지 않으냐? 역시 무척 힘들다! 자신을 알아 갈 때, 대충 표면적인 것만 인식하면서 자신은 교만하고 독선적이다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했다고 말한다면 이는 진실한 인식이 아니라 도리이다. 너는 사실에 입각하여 너 자신이 어떤 일에서 잘못된 마음가짐이나 견해, 혹은 치우친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 털어놓고 교제하고 해부해야 한다. 그래야 진실로 자신을 인식한 것이다. 행위적인 면만 인식해서는 안 되며, 핵심을 잡고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한동안 지나면 자신을 반성하며 어떤 문제들을 해결했고 어떤 문제들이 아직 남아 있는지, 그런 것들을 개괄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진리를 구해 그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수동적이어서는 안 된다. 늘 다른 이가 달래거나 떠밀거나 끌고 가게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생명 진입의 길이 있어야 한다. 네가 한 어떤 말이나 일이 진리에 맞지 않는지, 어떤 말과 일에서 마음가짐이 옳지 못했는지, 어떤 패괴 성품을 드러냈는지 수시로 성찰해야 한다. 늘 이렇게 실행하고 진입하며 스스로에게 엄격하게 요구하면 점차 진리를 깨닫고 생명 진입이 있을 것이다. 네가 진정으로 진리를 깨닫게 되면 자신이 확실히 별로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한 측면으로는 패괴 성품이 심각하고, 다른 한 측면으로는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고 어떤 진리도 깨닫지 못한 것이다. 언젠가 네게 정말 그런 인식이 생기면 더는 교만하게 굴지 않을 것이며, 많은 일에서 이성적이고 순종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핵심적인 문제는 무엇이냐? 관념의 본질을 교제하고 해부함으로써 사람은 관념이 생기는 원인을 이해하고 일부 관념은 해결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모든 관념의 본질을 간파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자신에 대해 조금 알았을 뿐, 그 인식의 깊이는 아직 충분히 깊지도, 명확하지도 않다. 즉, 자신의 본성 본질을 간파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어떤 패괴 성품이 뿌리박혀 있는지 알지 못한다. 이렇게 자신을 아는 정도에는 한계가 있다. 일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제 성품이 아주 교만하다는 사실을 스스로가 알고 있는데, 이게 자신을 아는 것 아닙니까?” 이런 인식은 너무 피상적이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자신을 진정으로 인식했다면 왜 위로 올라가려 하고, 지위를 얻어 남들보다 뛰어나고 싶어 한단 말이냐? 이는 사람의 교만한 본성이 완전히 뿌리 뽑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먼저 말하거나 일하는 네 속셈과 사상 관점부터 바꿔야 한다. 너희는 사람이 하는 수많은 말에는 늘 독과 가시가 들어 있고, 어투에는 교만함이 섞여 있음을 인정하느냐? 사람이 하는 말을 보면 그 안에 속셈과 개인의 관점이 들어 있다. 세심한 사람은 그런 말을 들으면 분별할 수 있다. 평소 교만함을 드러내지 않을 때는 말과 표정이 같지만, 일단 교만함을 드러내면 모습이 달라진다. 때로는 공리공론을 늘어놓다가도, 때로는 난폭하게 굴고 거드름을 피우는 등, 정말 안하무인이 따로 없고, 그로부터 사탄의 추악한 모습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사람은 내면에 온갖 속셈과 패괴 성품을 품고 있다. 마치 간사한 사람이 말할 때 늘 눈을 깜빡이고, 비스듬히 사람을 쳐다보는데 그 안에는 패괴 성품이 도사리고 있는 것과 같다. 또 어떤 사람은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 없게 빙빙 돌려 말한다. 그의 말은 어딘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고, 계략이 담겨 있다. 겉으로는 태연해 보이지만, 이런 사람은 더욱 간사하고, 진리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으며, 구원받기 힘든 사람이다.
이전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집안이 평안하고, 일이 순조롭게 풀리는 것에만 만족했다. 그게 하나님이 확실히 자기를 좋아하고 흡족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네가 만약 이런 것에만 만족한다면 영원히 진리 추구의 길을 걸을 수 없다. 겉으로 보이는 행복하고 순조로운 생활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그런 외형적인 것은 다 중요한 일이 아니다. 오늘날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사람 내면 깊이 뿌리내린 사탄의 것들을 정결케 하고 변화시키는 것이다. 근원에서부터, 사람의 본질과 본성에서부터 파헤치는 것이다. 왜 늘 사람의 관점과 속셈을 해부하겠느냐? 그것은 바로 사람의 본성이 매우 단단히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네 행동, 외모와 키도 보지 않고, 네 집안과 직업 여부도 보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런 것을 보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너란 사람의 본질을 보는 것이고, 본질에서부터, 근원에서부터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그러니 너는 가정이 평안하고 일이 잘 풀리는 것을 하나님께 축복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거기에만 만족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틀렸다. 그런 외적인 것을 추구하지 말고, 그런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마라. 네가 그런 것에 만족한다는 것은 너란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추구와 목표가 아직 너무 낮고, 하나님의 요구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는 뜻이다. 성품 변화를 중요하게 여기고, 네 성품과 인성, 하나님을 믿는 의도와 관점 같은 것부터 손을 대야 한다. 그러면 갓 믿은 자나 받아들이지 않는 자가 너와 마주했을 때, 얼핏 보고도 네가 달라졌고, 네가 추구하는 바가 전과 같지 않음을 알아차릴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추구하는 건 대개 돈이나 지위, 자식이 대학에 합격하고 딸이 좋은 짝을 만나는 건데, 당신은 어째서 이런 걸 추구하지 않는 겁니까? 당신 눈에는 그런 게 다 휴지 조각처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데, 어떻게 해서 하나님을 믿는 건가요?” 그들에게 네가 어떻게 체험했는지, 너에게는 어떤 패괴 성품이 있는지, 하나님은 너를 어떻게 훈계하고 책망하고, 또 심판하고 형벌했는지, 너는 어떻게 스스로를 반성하고 인식했는지, 어떻게 회개하고 달라졌는지 교제해 주어라. 그러면 너를 접한 자들은 네 교제가 아주 실제적이고, 사람에게 공급과 도움이 된다고, 겉으로 사람을 어르고 달래는 그런 설교와는 다르다고 느낄 것이다. 네가 생명 진입을 이야기하고 자신에 대한 인식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네가 정말 새 시대의 사람이 되고, 새사람이 되었다는 증거다. 지금도 어떤 사람들은 과거의 일을 이야기한다. “제가 예수님을 믿었을 땐 말이죠, 제가 하는 일마다 성령께서 크게 역사하셨어요. 복음을 전할 때 다들 제 설교를 듣고 싶어 했고, 제가 기도해 준 사람은 아픈 것도 금방 나았답니다.” 아직도 이런 이야기를 하다니, 이 얼마나 뒤떨어졌느냐! 너희는 진리를 많이 교제해야 한다. 생명 진입과 성품 변화,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 등등 생명 진입과 관련된 본질적인 것들을 논하되 진리와 무관한 것을 논해서는 안 된다. 늘 이렇게 실천하면 너희도 진리 실제가 조금 생긴다. 지금 너희 같은 분량으로는 생명 공급 사역을 할 수 없고, 진리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 그저 “하나님을 거역하지도, 대적하지도 마세요. 우리가 이토록 패괴되었어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라는 말로 사람을 어르고 권면하는 것밖에 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그 말에 이치를 깨닫겠지만, 여전히 힘이 없어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체험할 줄 모를 것이다. 이것은 너희 리더 일꾼도 진리 실제가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자기 자신도 진입하지 못했는데 어찌 다른 사람에게 공급할 수 있겠느냐? 너는 다른 사람이 어디서 어려움을 느끼는지, 어떤 패괴 성품이 있는지 근원과 핵심을 잡아내지 못한다. 왜냐하면 너도 너 자신에 대해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희가 교회에서 사역하는 것은 생명을 공급한다고 할 수 없고,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라고 사람들에게 권면하는 것뿐으로,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는 너희가 진정 진리를 깨달은 것이 아니며 생명 진입도 없다는 것을 충분히 말해 준다. 너희 대다수는 영적인 이치, 공허한 신학 이론만 말할 줄 알지 생명을 공급할 수는 없다. 그래서 너희의 분량이 너무 작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네 관점은 아직도 변하지 않았고, 네 인식과 속셈도 아직 변하지 않았다. 자신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으면서 남들에게 변하라고 하는데, 너에게 길이 있느냐? 다른 사람에게 공급할 수 있느냐? 다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 너는 못 하면서 남들에게만 변하라고 하는데, 효과가 있겠느냐? 그저 글귀와 도리만 얘기하면서 꾸짖고 권면하면 남들이 진리를 깨닫게 할 수 있겠느냐? 네게 하나님 사역에 대한 진실한 인식이 없는데, 하나님 선민이 네 교제를 듣고 하나님 사역을 인식할 수 있겠느냐? 너 자신도 본분 이행에 원칙이 없는데 어떻게 하나님 선민에게 본분을 잘 이행하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들이 하나님을 따름에 어찌 힘이 생기겠느냐? 리더 일꾼은 교회 여러 사람의 내적 상태가 어떤지,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에 대해 체험을 통한 인식이 있는지, 어떤 사람이 진정으로 자신을 알고 진실로 회개한 사람인지 알아보고 파악해야 한다. 이런 것을 파악할 수 있는 리더 일꾼은 실제적인 사역을 어느 정도 할 수 있다. 만약 너와 협력하는 자들도 너처럼 다른 사람을 꾸짖기만 하고, 자신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건 네가 진리 실제도 별로 없고,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등 그들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뜻이다. 전에 이런 일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너희는 그저 이렇게만 알고 있다. ‘이번에 나에게 권력이 주어져서 나도 지위가 생겼구나. 교회에서 한자리 얻었으니 남들을 꾸짖어도 되겠지.’ 네가 지위, 명망만 중시하고, 사람을 꾸짖고 설교할 궁리만 하고, 어떻게 말해야 사람들이 네 말을 잘 들어서 네가 몇몇 교회에서 권세를 잡고, 명망을 높이고, 지위 기반을 다질까 하는 궁리만 한다면, 네가 정말 이런 것들만 신경 쓴다면, 그건 치우친 길을 가고 있다는 뜻이다. 옛 시대에서 새 시대로 진입하려면, 행동과 말의 변화뿐만 아니라 더 높은 진입, 더 큰 대가가 요구된다. 육을 철저히 저버리고 육이 좋아하는 것을 버릴 수 있어야 하고, 오직 진리가 생명이 되도록 추구하여 진정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 그래야 안에서부터 밖으로 진실한 변화를 이룰 수 있다. 새로운 사역을 하는 하나님은 사람에게 반드시 새로운 요구를 하는데, 사람이 오래된 전통 관념만 고수하다 보면 일에 방해가 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맹신하며 성경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면 생명을 얻을 수 있겠느냐? 하나님을 알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다. 절대 불가능하다. 바리새인은 조상 대대로 성경을 읽었지만 결국 진리를 선포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어찌 된 일이냐? 사람이 정말 성경을 이해했다면 하나님을 알고, 돌아온 예수를 맞이해야지, 정죄해서는 안 된다. 지금 많은 이들이 아직 이 일을 간파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이 오늘날 한 말씀이 얼마가 되든 성경은 그래도 멀리하지 말고 봐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다. 그 결과 성경 말씀은 잘 기억하는 반면, 하나님이 오늘날 선포한 진리는 이해하지 못하고, 실행하지도 못한다. 결국, 진정한 체험 간증이 하나도 없어서 도태되고 만다. 그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냐? 사실, 아직까지 많은 이들이 성경은 늘 보면서 하나님 말씀은 거의 읽지 않는데, 이는 대체 슬기로운 행동이냐, 아니면 미련한 행동이냐? 과거 주님을 믿을 때는 사람마다 열정적일수록 생명이 크고 믿음이 좋다고 생각했다. 지금, 사람이 열정만 있고 성품이 변화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다고 얘기하면, 하나님이 그런 사람들을 부당하게 대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에 내가 그런 사람들을 책망했더니, 거기에 반발하고 그런 사람을 편드는 자들이 있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을 그렇게 오래 믿으면서 대가도 치르고 고통도 그만큼 많이 받았습니다. 공로는 없다 해도 나름대로 고생했는데, 어쩌면 사람을 그렇게 대하실 수 있습니까?” 어떤 이들의 관점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것이 인식하기 힘든 일이냐? 사람은 사람의 겉에 드러난 행동을 보고, 하나님은 사람의 본질을 보는데, 이것은 차이가 크다. 너는 어째서 사람이 겉보기에 얼마나 경건한지, 얼마나 말을 잘하는지, 얼마나 뛰어다니며 대가를 치를 수 있는지만 보고, 그의 관념이 얼마나 되는지, 그가 얼마나 독선적이고 교만한지는 보지 않느냐? 그러니 너희가 일을 바라보는 관점은 아직도 너무 낡고 뒤떨어졌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 사람에게서 겉으로 드러난 대가를 보지 않는다. 대가나 밑천도 논하지 않고, 네가 얼마나 고통받았는지도 논하지 않고, 그저 너란 사람의 본질만을 본다. 이전 시대에서는 사람을 쓰는 원칙이 무엇이었느냐? 열정적인 사람, 열심히 뛰어다니며 헌신할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을 아주 오래 믿은 사람, 결혼하지 않고 나이가 아주 많은 사람일수록 명망이 높고, 리더를 맡을 수 있었다. 지금은 그런 것들 대신 사람의 본질을 본다. 하나님을 믿는 일에서 그 사람의 본질이 어떤지, 그가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는지, 하나님의 새 사역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성육신으로 왔어도 네가 알지 못하는데, 그럼 너의 본질은 과연 어떤 것이냐?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것은 너의 관점과 의도가 하나님과 합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참도를 받아들이고 과거 자신의 의도, 관념을 버릴 수 있다면, 이런 사람만이 하나님께 열납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 하나님이 역사하여 사람을 쓰는 데는 원칙이 있다. 밑천과 출신, 명망, 혹은 지위를 보지 않으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는 쓰지 않는다. 그런 사람을 쓴다면 사역이 지체되지 않겠느냐? 늘 자기가 들인 본전 얘기만 하는, 교만이 하늘을 찌르는 자는 순전히 마귀에 해당하는 자이다! 봉헌이니, 헌신이니, 밑천이니, 명망이니 하는 것들은 얘기하지 않는다. 그런 건 말해 봤자 소용없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가장 진심인 사람, 가장 기꺼이 순종하려는 사람, 진리 실제가 있는 사람을 칭찬한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을 봐서 소용이 있느냐? 겉으로 드러난 것들은 어느 정도 변했지만, 본성에 담긴 많은 것들은 변하지 않았으니, 어느 시기가 되면 드러난다. 그러니 그런 것들을 인식하고 파헤쳐야 한다. 사람 본성에는 아직도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 물론, 사람의 본성 중에 교만과 독선, 패역이 가장 크고 근원적인 문제이기는 하지만, 사람 내면에는 그것 말고도 다른 패괴 성품들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므로 자신을 아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자질이 좀 있는 사람은 자신이 어떤 일에서 잘못했고,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는 쉽게 알고 이해한다. 하지만 본성 안의 것, 성품 안의 것, 특히 치명적인 약점과 관계된 것들은 사람이 가장 파악하기 힘들고, 인식하기 힘들다. 어떤 잘못을 저지르든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무슨 죄를 지어도 하나님께 인정했다고 그것이 곧 자신을 인식한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마라. 사실, 그 정도로 자신을 인식했다고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 못 믿겠으면 두고 보아라. 어느 날 일을 만났을 때 쓰러질지도 모르고, 어느 날 잡혀가서 하룻밤 새 유다가 되면 크게 당혹해할지도 모른다. 생명 진입을 하고 싶다면 우선 자신을 알아야 하고, 성품 변화에 이르고 싶다면 더더욱 하나님 말씀에 비춰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해야 한다. 자신을 인식하는 일에 길이 생기고, 깊이가 생겨서 진리를 실행할 수 있게 된다면, 자연히 생명 진입이 있게 될 것이다. 성품 변화도 여기에서부터 시작한다. 네가 정말 자신을 인식하게 되었을 때, 생명 진입과 성품 변화에 길이 생기고, 그 일이 한층 쉬워질 것이다.
1995년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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