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실행 (제 1 부)

너희는 정직한 사람이 되는 일에 대해 어떤 체험과 경험이 있느냐? (정직한 사람이 되는 건 아주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왜 어렵다고 생각하느냐? (저는 정말 정직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매일 성찰할 때마다 제가 아주 가식적이고, 과장 섞인 말을 많이 한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때로는 말에 감정이나 속셈이 담기기도 하고, 때로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을 써서 완곡하게 돌려 말하기도 하고, 사실에 위배된, 거짓과 진실이 섞인 말, 또는 여러 거짓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행동은 사람의 패괴 성품에서 비롯되는데, 교활하고 간사한 일면에 해당한다. 사람이 왜 간사한 짓을 하겠느냐? 자신의 목적,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수단을 쓰는 것이다. 수단을 쓰는 사람은 정정당당한 사람이 아니고, 정직한 사람이 아니다. 그럴 때면 사람의 음험함과 간교함, 혹은 악독함과 비열함이 드러난다. 마음속에 이런 패괴 성품이 있으면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이 무척 어렵게 느껴진다. 정직한 사람이 되기 힘든 점이 바로 이 부분에 있다. 네가 만약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고,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정직한 사람이 되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게 된다. 너는 정직한 사람이 되는 일이 한결 수월하다고 느낄 것이다. 체험이 있는 사람들은 사람의 음험함과 간사함, 악독함, 그리고 사람의 비열한 속셈이 정직한 사람이 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이런 패괴 성품이 존재하는 한 정직한 사람이 되는 일이 너무 어렵다. 너희는 다들 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한 훈련을 하고 있으니 이에 대한 체험들이 있는데, 어떻게 체험했느냐? (매일 제가 내뱉은 쓸데없는 말, 거짓말을 모두 기록한 뒤 성찰하고 해부했더니 대부분은 속셈을 품고 한 말, 허영과 체면을 위한 말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비록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식했지만 여전히 저도 모르게 거짓말을 하고, 자신을 가장했습니다.) 정직한 사람이 되기 어려운 점이 바로 이것이다. 의식하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다. 관건은 사람이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허영과 체면을 위해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거짓말을 한다는 점이다. 이는 모두 알면서도 잘못을 저지르는 것으로, 의식하지 못했다고 하는 건 거짓말이다. 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한 관건은 사람의 속셈과 동기를 해결하고, 사람의 패괴 성품을 해결하는 것이다. 그래야 거짓말하는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된다. 사람이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 즉 본인이 이익을 얻고 덕을 봐서 자기 체면이 서고 남들에게서 칭찬받기 위한 것, 이것이 바로 거짓말을 하는 속셈과 목적이다. 이렇게 거짓말을 하면서 드러내는 것이 바로 패괴 성품이다. 거짓말하는 일에 대해 이렇게 분별해야 한다. 그렇다면 패괴 성품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느냐? 바로 그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봐야 한다. 만약 진리를 받아들이고, 자신을 위한 말을 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오로지 교회의 사역, 하나님의 뜻만을 고려하고, 하나님 선민의 이익만을 고려한다면 거짓말을 하지 않게 된다. 진실만을 말할 수 있게 된다. 만약 이런 분량이 없어서 아직 진실만을 말하는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면 이는 네 분량이 너무나 작아서 진리를 실행해 내지 못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정직한 사람이 되려면 진리를 깨닫는 과정, 분량이 자라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렇게 보면 정직한 사람이 되는 일은 8~10년 정도는 체험해야 한다. 8~10년이라는 이 기간은 사실 생명이 자라는 과정이고, 진리를 깨닫고 얻는 과정이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거짓말하는 문제를 해결해서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이 정말 이토록 어려운 일이란 말입니까?” 사실 이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다르다. 만약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일에서 거짓말을 포기할 수 있지만,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거짓말을 포기하는 일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렵다.

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한 훈련은 주로 거짓말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 패괴 성품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여기에 필요한 아주 중요한 실행 한 가지가 있는데, 그건 바로 네가 스스로 거짓말을 하며 남을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했다면 그 사람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사과해야 하는 것이다. 이 실행 방법은 사람이 거짓말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매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네가 누군가를 속였거나 네가 그에게 한 말에 불순물과 자기만의 속셈이 있었다면, 너는 그를 찾아가 너 자신을 해부해야 한다. “제가 그때 한 말은 거짓말이었어요. 제 체면을 지키기 위해서 그랬는데 나중에 마음이 불편하더라고요. 지금 이렇게 사과드리니 용서해 주세요.” 그 말이 상대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어떻게 거짓말하고 나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사람이 다 있지?’ 상대는 그 용기에 무척 감탄한다. 이렇게 실행하면 어떤 유익을 얻을 수 있느냐? 다른 사람의 감탄을 자아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효과적으로 거짓말을 자제하고 억제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거짓말을 한 후에는 반드시 사과해야 한다. 이렇게 해부하고 솔직하게 털어놓은 뒤 사과한다면, 훈련을 거듭할수록 좋은 효과를 볼 수 있고, 갈수록 거짓말도 줄어들 것이다. 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해 거짓말을 자제하고, 해부하고,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나중에 사과까지 하는 것은 더욱 큰 용기가 필요하다. 이렇게 1~2년 혹은 3~5년 훈련하면 반드시 뚜렷한 효과가 나타나고, 거짓말에서 벗어나는 일이 어렵지 않게 된다. 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한 첫 단계는 거짓말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3~5년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거짓말하는 문제가 해결된 다음, 두 번째 단계는 간사함과 기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간사함과 기만은 거짓말할 필요도 없이 그저 행동만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겉으로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에 간사함과 기만을 품고 있다. 그것은 본인이 가장 잘 안다. 왜냐하면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반성해도 쉽게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거짓말하는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나면, 그다음 간사함과 기만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훨씬 수월하다. 하지만 반드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사람이 간사한 수작을 부리고 남을 속이는 것은 모두 속셈에 지배받은 행동이라서 다른 사람들은 겉으로 봐서 알 수도 없고, 분별할 수도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감찰하고 알 수 있다. 따라서 간사함과 기만을 해결하려면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여 해결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다면, 간사함과 기만의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 네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고 잘못을 인정하든,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든, 자신의 패괴 성품을 해부하든, 네가 당시 어떻게 생각했고, 어떻게 말했고, 어떤 속셈이 있었고 어떻게 간사한 수작을 부렸는지를 모두 사실대로 얘기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게 해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솔직히 털어놓으라고 하면 너는 그럴 용기도 없고, 그럴 의지도 없을 것이다. 체면을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솔직하게 털어놓기는 무척 어려워진다. 어쩌면 너는 가끔은 본인의 말과 일 처리에 속셈과 목적이 담기기도 하고, 간사함과 불순물이 섞이기도 하고, 본인이 거짓말도 하고, 속이기도 한다고 간단하게 인정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막상 일이 닥쳤을 때 너에게 본인을 해부하도록 한다면, 그 일이 처음부터 끝까지 어떻게 일어났으며 본인이 했던 어떤 말이 기만이었는지, 어떤 속셈이 있었고 속으로 어떤 생각을 했는지, 음험하고 악독한 면은 없었는지 폭로하도록 한다면, 너는 그렇게 자세히 폭로하거나 구체적으로 말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한두 마디 언급에 그친다. “그렇게 된 겁니다. 어쨌든 저는 너무 간사하고 음험한 사람이고, 믿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이는 자신의 패괴 본질, 자신의 간사함과 음험함을 올바르게 대할 수 없다는 뜻이다. 늘 도피하는 상황, 도피하는 내적 상태에 있고, 자신을 용서하고 자신과 타협하면서 정직한 사람이 되는 진리를 실행하기 위한 고생과 대가는 치르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 해 동안 글귀와 도리를 얘기하며 늘 이렇게 말한다. “저라는 사람은 무척 간사하고 음험해서 언제나 행동에 속임수가 있고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전혀 진정성이 없습니다.” 몇 년째 이 소리를 떠들지만, 지금까지도 그는 변함없이 간사한 사람이다. 한 번도 그가 자신이 드러내는 간사한 내적 상태를 진실로 해부하고 뉘우치는 소리를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껏 거짓말하거나 남을 속인 뒤 사람들에게 털어놓고 사과해 본 적이 없고, 나아가 예배 때 자신을 해부하고 인식하는 체험 간증을 교제한 적도, 그 일에서 어떻게 자신을 인식하고 뉘우쳤는지에 대해서도 얘기한 적이 없다. 이런 것을 그는 하나도 실행하지 않았는데, 이는 그가 자신을 알지 못하고, 그에게 진실된 회개도 없다는 뜻이다. 그가 자신은 간사하다고, 정직한 사람이 되겠다고 말하는 건 그저 구호를 외치고 도리를 읊는 것에 불과하다. 그가 구호를 외치고 도리를 말하는 것은 아마도 유행을 좇고, 대세를 따르는 것일 수도 있고, 아마도 교회 생활이라는 환경에서 어쩔 수 없이 형식을 거치거나 구색을 맞추는 것일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이렇게 구호를 외치고 도리를 읊어 대는 사람은 영원히 진실된 회개가 있을 수 없고, 절대 하나님께 구원받을 수 없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실행하도록 하는 진리는 모두 대가를 치러야 하고 현실 생활에서 실제적으로 실행하고 체험해야 한다. 입으로 글귀와 도리를 읊으면서 말로만 자신을 인식하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은 간사한 사람이고,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이고, 교활하고 간사하고 남을 기만하는 사람이라고, 이런 식으로 몇 번 얘기했다고 그걸로 끝이 아니라는 말이다. 만약 그런 얘기를 하고 난 뒤에도 여전히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전처럼 거짓말을 하고 간사한 짓을 하고 남을 기만한다면, 또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여전히 사탄의 수단과 방식으로 그 일을 대한다면, 그 방식과 수단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면, 그런 사람이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있겠느냐? 성품이 변화될 수 있겠느냐? 영원히 불가능하다! 너는 스스로를 반성하고 인식할 줄 알아야 한다. 형제자매 앞에서 용감하게 너 자신을 솔직히 털어놓으며 본인의 실제 내적 상태를 교제해야 한다. 만약 자신의 패괴 성품을 털어놓거나 해부할 용기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용기도 없다면, 너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며, 자신을 인식하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만약 다들 종교인들처럼 사람들에게 자신을 뽐내며 우러름을 받으려 하고, 자기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어떻게 하나님께 순종하고 충성했는지 증거하고, 하나님은 어떻게 본인을 사랑하는지 증거하면서 이런 것을 이용해 사람들에게 우러름과 숭배를 받으려 한다면, 누구나 속으로 계산이 있고, 자신의 개인 공간을 지킨다면, 그러고도 무슨 진실된 체험을 논한다는 말이냐? 다들 무슨 수로 서로의 진실된 체험을 교류하겠다는 말이냐? 체험을 공유하고 교제한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너의 체험과 인식을 교제하고, 네가 가진 생각과 내적 상태, 그리고 네가 드러내는 패괴 성품을 모두 이야기해서 사람들에게 분별하게 하고, 진리 교제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렇게 체험을 교제해야 모두가 유익과 큰 수확을 얻게 된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교회 생활이다. 그저 입으로만 하나님 말씀에 대해 어떤 깨달음이 있었다느니 어떤 찬양에서 약간 깨달음이 있었다느니 하는 식으로 아무렇게나 교제하면 끝이고, 본인의 현실적 내적 상태와 문제에 연결하지도 않는다면, 이런 식의 교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모두가 도리상, 이론상으로 인식한 내용만 얘기하고 실제 체험을 통한 인식은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면, 진리를 교제하면서 자신의 생활, 현실에 존재하는 문제, 개인의 내면세계에 대한 언급을 피한다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어떻게 진실된 소통이 이루어지겠느냐? 어떻게 진실된 신뢰가 생기겠느냐?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아내가 자기 남편에게 한 번도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았다면 두 사람을 지기(知己)라고 할 수 있느냐?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잘 알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가령 두 부부가 하루 종일 ‘사랑해’를 입에 달고 산다고 해도 말만 그렇게 할 뿐 각자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상대에게 바라는 게 무엇인지, 또는 본인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이런 것은 한 번도 털어놓지 않고, 상대에게 얘기해 본 적도 없고, 속에 있는 얘기도 나누지 않는다면,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서 빈말만 주고받는다면, 이들이 참된 부부이냐? 결코 아니다! 마찬가지로 형제자매는 같이 있으면서 서로 마음을 나누고, 서로 돕고 공급할 수 있어야 하고, 각자가 개인의 진실한 체험을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네가 개인의 진실한 체험은 얘기하지 않고 본인이 이해한 글귀와 도리만 얘기하고, 하나님 믿는 이치나 상투적인 얘기만 하고, 정작 자신의 속마음을 전혀 얘기하지 않는다면 너는 정직한 사람도 아니고, 정직한 사람이 될 수도 없다. 부부를 예로 들면, 두 사람이 몇 년을 함께 생활하면서 서로 맞춰 가는 과정에서 물론 서로 부딪히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두 사람이 다 정상적인 인성을 갖춘 사람이라서 너도 항상 그에게 마음을 털어놓고, 그도 너에게 마음을 털어놓는다면, 생활하면서 혹은 일하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자기가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떻게 처리할 생각인지, 혹은 자녀를 대할 때는 어떤 생각과 계획이 있는지, 일일이 상대에게 얘기한다면, 너희 둘은 서로의 마음을 아주 잘 안다고 느끼지 않겠느냐? 만약 그가 너에게 속마음은 털어놓지 않고 그저 돈만 벌어다 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너 역시 그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일도 없고, 서로 마음을 주고받는 대화도 없다면 너희 둘은 마음의 거리가 있는 것이 아니냐? 분명 거리가 있는 것이다. 둘 다 상대방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떻게 할 생각인지 모르기 때문에 결국 너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그는 네가 어떤 사람인지 짐작하지 못하고, 너는 그가 원하는 바를, 그는 네가 원하는 바를 알지 못한다. 언어적 소통과 마음의 소통이 없다면 사람 사이에 서로 마음을 알지 못하고, 서로 공급하고 도와주지 못한다. 너희는 이런 체험이 있지 않으냐? 만약 친구가 너에게 무슨 말이든 다 한다면, 자기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마음속에 어떤 고충이 있고, 어떤 기쁜 일이 있는지 모두 너에게 얘기한다면, 너는 그 친구와 특별히 가깝다고 느끼지 않겠느냐? 그가 너에게 말을 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너 역시 마음을 그에게 털어놓기 때문이다. 너는 그와 특별히 잘 맞아서 그와 사이좋게 지내며 서로 도울 수 있다. 만약 교회 형제자매들 사이에 이런 소통과 교류가 없다면 영원히 화목하게 지낼 수 없을 것이고, 본분도 조화롭게 협력하며 이행할 수 없다. 그러니 진리를 교제할 때는 반드시 마음의 소통이 있어야 하고, 속에 있는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정직한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갖춰야 할 원칙이다.

정직한 사람이 되려면 진실된 말, 마음속에 있는 말을 해야 하고, 만약 거짓말하고 기만했다면 솔직히 털어놓고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고 하면,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네요.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들까지 전부 다른 사람에게 말해야 한단 말인가요? 긍정적인 것만 교제하면 되지 않을까요? 개인의 어두운 면이나 패괴된 면은 다른 사람에게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되지 않을까요?”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지 않고, 너 자신을 해부하지 않으면 너는 영원히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고, 영원히 네가 어떤 존재인지 모를 것이다. 또한, 다른 이들도 너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사실이다. 다른 이에게 신뢰받고 싶다면 무엇보다 네가 먼저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정직한 사람이 되려면 우선 마음을 터놓고 모두가 네 마음과 생각, 진실한 면을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거짓으로 꾸미지도, 포장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이 너를 신뢰하고 정직한 사람으로 여길 것이다. 이는 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실행이자 전제 조건이다. 늘 성결한 척, 고상한 척, 위대한 척, 인격이 고매한 척 꾸며 다른 이들이 너의 패괴와 결함을 보지 못하게 하며, 너를 올곧고 위대하고 헌신적이고 공정하고 이타적이라고 여기게 거짓된 모습만 보여 준다면, 여기에 간사함과 기만이 있지 않겠느냐? 시간이 오래되면 사람들이 너를 꿰뚫어 보지 못하겠느냐? 그러니 너 자신을 거짓으로 꾸미지도, 포장하지도 말고 마음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아라. 네가 다른 이에게 마음을 보여 줄 수 있고, 속으로 생각한 것, 계획한 것이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다 보여 준다면, 그것이 바로 정직한 것 아니겠느냐? 네가 다른 이에게 네 속내를 드러낼 때는 하나님도 지켜본다. 하나님은 “너는 다른 이에게 마음을 보여 줄 수 있구나. 그렇다면 너는 내 앞에서도 분명 정직할 것이다.”라고 말씀할 것이다. 혼자 있을 때, 하나님께만 네 본모습을 보이고, 사람들 앞에서는 늘 위대한 척, 고상한 척, 공평무사한 척 거짓된 모습을 보여 준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보겠고, 뭐라고 말씀하겠느냐? 하나님은 “너는 영락없이 간사한 사람이자 위선자이며, 소인배구나. 너는 정직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씀할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너를 정죄할 것이다. 정직한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 앞에서든, 사람 앞에서든 자신의 내적 상태나 속마음을 단순하게 털어놓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쉽겠느냐, 쉽지 않겠느냐? 이렇게 되려면 어느 정도 훈련이 필요하며, 또 수시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지해야 한다. 매사에 단순하게 마음을 열고 솔직한 말을 하는 훈련을 한다면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큰 난관에 부딪히면 하나님께 기도하고 진리를 구해야 한다. 진리를 실행할 수 있을 때까지 마음속으로 전쟁을 벌이고 육을 이겨야 한다. 그렇게 조금씩 훈련하면 점차 마음이 열리고 단순해져서 말과 행동 모두 전과 다른 성과를 보일 것이다. 거짓말하고 기만하는 일이 점점 줄어들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면 기본적으로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인류는 사탄에 의해 패괴된 뒤로 모두 사탄의 성품으로 살고 있다. 사탄처럼 언제나 자신을 꾸미고 포장하며 언제나 속임수를 쓰고 수단을 부린다. 무슨 일을 하든 속이거나 수단을 부리지 않을 때가 없다. 어떤 사람은 물건 사는 것과 같은 아주 평범한 일에서조차 속임수를 쓴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최신 유행하는 옷을 샀다. 그런데 본인은 그 옷이 무척 맘에 들지만 겉멋이 들었다고 형제자매들이 수군댈까 봐 교회에서는 차마 입지 못하고 밖에서만 몰래 입고 다녔다. 이것은 어떤 행동이냐? 이게 바로 간사함과 기만의 성품이 드러난 것이다. 왜 유행하는 옷을 샀는데 형제자매 앞에서 당당하게 입지 못하느냐? 속으로는 유행하는 물건을 좋아하고, 또 이방인처럼 세상의 조류를 좇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자기가 너무 겉멋 들고, 단정한 사람이 못 되고, 속으로 유행을 좇으며 내려놓지 못한다는 사실을 형제자매들이 간파할까 봐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그런 옷은 집에서만 입고 형제자매에게 보이는 걸 두려워한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떳떳하게 겉으로 내놓지도 못하는 것이라면 왜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냐? 사탄 성품이 그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냐? 그는 마치 진리를 깨달은 듯 입만 열면 글귀와 도리를 얘기하지만 정작 그 진리를 실행해 내지는 못한다. 이런 자가 바로 사탄 성품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말과 행동에 늘 속임수를 써서 남들이 실상을 간파하지 못하게 하고, 늘 사람들 앞에서 경건한 체하는데 이런 사람이 바리새인과 무슨 차이가 있느냐? 뒤로는 서방질을 하면서 앞으로는 열녀문을 세우고 싶은 것이다. 옷이 특이해서 남 앞에 입고 나서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왜 굳이 샀겠느냐? 돈 낭비가 아니냐? 그건 바로 속으로 그런 것을 좋아해서 그 옷이 너무 입고 싶으니까 꼭 사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막상 사고 나서는 입고 나가지도 못하다가 몇 년 지나서 후회하면서 그는 불현듯 깨닫는다. ‘내가 어쩌다 그런 어리석고 역겨운 짓을 저질렀을까?’ 자기가 생각해도 역겹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그 역시 자기도 모르게 그런 짓을 저지른 것이다. 속으로 좋아하는 것, 추구하는 것을 내려놓지 못하니까 양면 수법을 취해서 기만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만족시킨 것이다. 사소한 일에서도 간사한 성품이 드러나는데, 그렇다면 큰일에서는 진리를 실행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다. 보다시피 그의 본성은 간사함이며, 그 간사함이 바로 그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한 예닐곱 살 난 아이가 있었는데, 한번은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다른 아이가 뭘 먹었느냐고 묻자 아이는 눈을 깜빡이며 말한다. “잊어버렸어.” 사실 아이는 다른 사람에게 얘기해 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방금 먹었는데 금세 잊을 수가 있겠느냐? 예닐곱 살짜리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어른이 훈련해서이겠느냐? 가정 환경의 영향 때문이냐? 모두 아니다. 이건 사람의 본성이고, 유전이고, 간사한 성품을 타고난 것이다. 사실 그 아이가 무슨 맛있는 음식을 먹든 그건 다 정상적인 일이다. 남의 걸 훔쳐 먹은 것도 아니고, 모두 부모가 만들어 준 것인데, 아이는 이런 상황에서도 거짓말을 했다. 그러니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도 거짓말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일에서는 거짓말을 더 잘하지 않겠느냐? 이것은 어떤 문제를 말하는 것이냐? 본성의 문제가 아니냐? 그 아이는 지금 커서 어른이 되었는데, 거짓말이 본성이 되었다. 그는 확실히 간사한 사람이다. 그가 간사한 사람이라는 건 어릴 때부터 알아챌 수 있었다. 간사한 사람이 거짓말하고 속이는 것은 자기도 어쩔 수가 없고, 게다가 그런 성품은 언제 어디서나 표출된다. 배울 필요도 없고, 다른 사람이 부추길 필요도 없이 천성적으로 그렇게 할 줄 안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거짓말을 지어내서 남을 속인다면, 그의 거짓말이 일시적인 과오라고 할 수 있느냐? 절대 아니다. 이것은 바로 그의 본성 본질이 간사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런 간단한 일은 분별하기가 쉽지 않으냐? 어릴 때부터 거짓말을 하고, 언제나 거짓말을 하고, 간단한 일, 거짓말할 필요가 없는 일에서도 거짓말로 사람을 속이는 등 거짓말이 이미 본성이 되었다면, 그런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영락없는 간사한 사람에 속한다. 간사한 사람은 구원받을 수 없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간사한 사람은 진리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아서 정결케 되고 변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은 다르다. 그는 원래부터 비교적 솔직한 사람이고, 조금만 거짓말을 해도 얼굴이 빨개지고 마음이 편치 않다. 이런 사람은 정직한 사람이 되기가 쉽다. 그에게 거짓말을 하고 남을 속이라고 하면 그는 어려워한다. 그가 하는 거짓말은 어떻게든 티가 나서 거짓말을 했다 하면 남들이 바로 알아챌 수 있다. 그는 비교적 순수한 사람이다. 그가 만약 진리를 받아들인다면 쉽게 구원에 이를 수 있다. 이런 사람은 특수한 상황을 만났을 때,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만 거짓말을 하고,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언제나 사실만을 말한다. 진리를 추구하고 몇 년만 노력하면 이 방면의 패괴를 벗어버릴 수 있고, 쉽게 정직한 사람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이 요구하는 정직한 사람의 기준은 무엇이냐? <훈언 3칙>에서 하나님은 어떻게 요구했느냐? (“정직하다는 것은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요, 모든 일에서 하나님께 거짓을 행하지 않고, 다 털어놓으며, 사실을 숨기지 않고, 윗사람이나 아랫사람을 속이지 않으며, 하나님께 잘 보이려고만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요컨대, 정직하다는 것은 행동과 말에 불순물이 섞이지 않으며, 하나님을 기만하지 않고 사람을 속이지 않는 것이다. … 만약 네 말에 변명과 쓸데없는 설명이 많다면 나는 너를 진리 실행을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한다. 네게 밝히기 힘든 사적인 일이 많다면, 자신의 비밀, 즉 자신의 어려운 점을 사람들에게 털어놓고 광명의 길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면 나는 네가 구원받기 어려운 사람이며, 흑암에서 벗어나기 힘든 사람이라고 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 중에서)) 여기서 가장 중요한 말씀 한마디가 있는데 무엇인지 보았느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게 밝히기 힘든 사적인 일이 많다면, 자신의 비밀, 즉 자신의 어려운 점을 사람들에게 털어놓고 광명의 길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면 나는 네가 구원받기 어려운 사람이며, 흑암에서 벗어나기 힘든 사람이라고 한다.”) 그렇다, 바로 그 부분이다. 하나님이 “네게 밝히기 힘든 사적인 일이 많다면”이라고 한 것은 사람이 차마 밝히지 못할 짓을 많이 저질렀고, 어두운 면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평소 일을 처리할 때 전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지 않고, 육을 저버리지도 않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하나님을 이렇게 오래 믿었어도 진리 실제에 전혀 진입하지 못했다. “자신의 비밀, 즉 자신의 어려운 점을 사람들에게 털어놓고 광명의 길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면 나는 네가 구원받기 어려운 사람이며, 흑암에서 벗어나기 힘든 사람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사람에게 실행의 길을 주었다. 이렇게 실행하지 않고 구호만 외치고 이치만 말한다면 너는 구원받기 매우 어려운 사람이다. 이것은 구원받는 것과 관계가 있다. 구원받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아주 중요한 문제다. 하나님이 다른 곳에서 “구원받기 매우 어렵다.”라는 말을 언급한 적이 있더냐? 하나님은 구원받기가 매우 어렵다는 말씀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 정직한 사람이 되지 않는다면 너는 구원받기 매우 어렵다고 말씀했다. 구원받기 매우 어렵다는 말은 네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구원받기 쉽지 않다는 뜻이다. 네가 구원받기 위한 정상 궤도에 들어서지 못하면 구원받는 건 불가능하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여지를 남겨 주기 위해 이렇게 말씀했다. 즉, 네가 구원받기 어려울지 몰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한다면 구원받을 희망이 생긴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이런 의미가 된다. 만약 네가 하나님 말씀대로 이렇게 실행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비밀과 어려움을 해부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교제하지도 않는다면, 자신의 패괴와 치명적인 부분을 다른 사람에게 교제하지도, 해부하지도, 털어놓지도 않는다면 너는 구원받을 수 없다. 네가 구원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그렇게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고, 자신을 해부하지 않으면 너는 자신의 패괴 성품을 증오하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네 패괴 성품은 영원히 변화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네가 변화되지 못한다면 무슨 구원을 논한다는 말이냐? 하나님 말씀은 분명 이런 뜻이며, 그 말씀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은 왜 늘 정직한 사람이 되라고 강조하느냐? 왜냐하면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에게 순종할 수 있는지, 구원에 이를 수 있는지와 직접적으로 관계된 아주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저는 교만하고 독선적이고, 화를 잘 내고, 패괴를 잘 드러냅니다.” 이런 사람들도 있다. “저는 허황되고, 허영심이 많고, 남이 추켜올려 주는 걸 좋아합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겉으로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일이고, 큰 문제가 아니니 늘 입에 달고 살지는 마라. 네가 어떤 성품, 어떤 성격이든 하나님 요구대로 정직한 사람이 되는 한 구원받을 수 있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냐, 중요하지 않으냐? 이것은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훈언 3칙>이란 말씀에서 하나님은 정직한 사람이 되는 일을 언급했다. 다른 편에 수록된 말씀에서는 하나님을 믿으며 정상적인 영 생활과 올바른 교회 생활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라든가, 어떻게 정상 인성을 살아 내는지에 관한 내용을 자주 언급했는데, 이 몇 가지 방면의 문제는 대략적으로만 얘기하고, 너무 자세하고 구체적으로는 얘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직한 사람이 되는 일을 얘기할 때, 하나님은 사람에게 길을 제시하고 어떻게 실행하는지 알려 주었는데, 퍽 자세하고도 알기 쉽게 얘기해 주었다. 하나님은 ‘네게 밝히기 힘든 사적인 일이 많다면, 자신의 비밀, 즉 자신의 어려운 점을 사람들에게 털어놓고 광명의 길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면 나는 네가 구원받기 어려운 사람이라고 한다.’라고 했다.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은 사람이 구원받는 일에 관계된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하나님이 왜 정직한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느냐? 이는 사람됨의 진리와 관계가 있다. 정직한 사람은 하나님이 구원하려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원하는 사람이다. 네가 거짓말로 기만할 수 있다면 너는 간사하고 교활하며 음험한 사람이지 정직한 사람이 아니다. 네가 정직한 사람이 아니면, 하나님도 너를 구원하지 않을 것이니 너는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너는 자신이 지금 이미 매우 경건하고, 교만하거나 독선적이지 않다고, 혹은 본분을 이행하면서 대가를 치를 수 있다고, 복음을 전해 많은 이들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지만 정직하지 못하고 여전히 간사하며 아무런 변화도 없는데, 구원받을 수 있겠느냐? 절대 그럴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 말씀은 우리 모두를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이다. 구원받고 싶다면 먼저 하나님의 말씀과 요구에 따라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자신을 활짝 열고 자신의 패괴된 성품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 자신의 속셈과 사적인 비밀도 털어놓으면서 광명의 길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광명의 길을 찾는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 진리를 구해서 자신의 패괴 성품을 해결한다는 뜻이다. 네가 본인의 패괴, 본인 행동의 속셈과 목적을 솔직히 털어놓고, 동시에 자신을 해부한 후, 다음과 같이 구한다. ‘나는 왜 이렇게 했을까? 내가 이렇게 한 것이 하나님 말씀의 근거가 있을까? 이렇게 한 것이 진리에 부합할까? 이렇게 한 것이 알고도 잘못을 저지르는 건 아닐까? 하나님을 기만하는 건 아닐까? 만약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이라면 이렇게 해서는 안 돼. 하나님이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하나님 말씀에 뭐라고 나와 있는지, 진리 원칙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이것이 바로 진리를 구하는 것이고, 빛 속에서 걷는 것이다. 사람이 항상 이렇게 실행할 수 있으면 참된 변화가 생기고 구원에 이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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