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 수 있다 (제 3 부)

하나님을 믿고 인생의 바른길을 걸으려면 최소한 존엄 있고 사람다운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 남들에게 신뢰와 신임을 얻고, 네 인품과 인격에 무게가 있다는 느낌을 주어야 하며, 말한 대로 하고 입에서 한 번 나온 말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또 사람들이 너를 평가할 때, 이 사람은 말한 것을 반드시 지키고, 약속한 일은 반드시 해내며, 남이 부탁한 일도 상대가 만족할 만큼 성심성의껏 해낸다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런 사람이 신용을 지키는 사람 아니겠느냐? 사람이 신용을 지켜야 존엄 있게 살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누구도 감히 일을 부탁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설사 일을 맡긴다 해도 더 적합한 사람을 찾지 못해 어쩔 수 없이 그에게 맡기는 것이지만, 따로 한 사람을 더 배치해 그를 지켜보게 해야 한다. 이런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존엄이 있는 사람이냐? (아닙니다.) 그가 한마디를 하면 너는 분석하고 연구하고 추측하거나 말 속에 숨은 뜻을 들여다보아야 하며, 옆 사람에게 확인하고 증거를 찾아야 한다. 그가 한 가지 일을 말할 때 신뢰도가 거의 없다. 그런 일은 있겠지만 그가 과장하거나 축소한 것일 수 있고, 아니면 아예 그런 일이 없는데 그가 멋대로 꾸며 낸 것일 수도 있다. 그가 멋대로 꾸며 내는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남을 속이고 남들에게 자신이 뛰어나고 능력 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목적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런 사람을 좋아하겠느냐?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로 싫어하겠느냐? 사람들은 이런 사람을 싫어하고 깔보고, 심지어 영원히 만나지 않길 바란다. 이런 사람과 함께 있으면 사람들은 그가 하는 말을 믿지 않고, 그의 말을 진지하게 대하지도 않으며, 건성으로 몇 마디 인사 정도 건네거나 무성의하게 대한다. 설령 그의 말이 진실이라고 해도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이런 자는 너무 가치 없고 비천하며, 사람들도 그를 중시하지 않는다. 사람됨이 이 정도라면 존엄이 있겠느냐? (없습니다.) 아무도 그에게 일을 맡기지 않고, 그를 신임하지 않으며, 그와 마음을 나누지 않는다. 누구도 그의 말을 믿어 주지 않고 대충 듣고 지나가 버린다. 그가 “이번에는 내 말이 진실이야.”라고 말해도, 그가 하는 말이 진실이라고 아무도 믿지 않고 상대하지 않는다. 그가 “제가 하는 말이 모두 거짓이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당신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분석하고 싶은 마음도 없어요. 당신 말을 듣는 것도 피곤한데 당신 속셈과 동기를 분석하고 연구해야 하니까 너무 신경 쓰여요. 그럴 시간이 있으면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찬양을 배우는 것이 더 이롭겠어요. 당신과 얘기해 봤자 아무것도 얻을 수가 없잖아요. 당신 말 중에 솔직한 말은 하나도 없으니 당신과 사귀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하며 그와 관계를 끊을 것이다. 지금 이방인들은 “진실한 말을 듣고 싶어요, 아니면 거짓된 말을 듣고 싶어요?”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거짓된 말을 듣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항상 거짓말하고 빙빙 돌려서 말하는 사람은 가장 비천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아무도 그와 상대하거나 왕래하려 하지 않으며, 그와 마음을 나누거나 친구가 되려 하지 않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런 사람에게 인격과 존엄이 있겠느냐?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싫어하고, 언행과 인품, 인격을 조금도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은 무게감이 전혀 없다. 그런 사람에게 은사와 재능이 있으면 모두가 그를 좋아하고 존중하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람과 사람이 서로 왕래할 때 무엇을 갖추어야 하겠느냐? 인품, 인격, 존엄을 갖추고 마음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존엄이 있는 사람은 조금 개성이 있고 때때로 남들과 마음이 잘 맞지 않더라도, 정직하고 위선적이지 않으며 남을 속이지 않으므로 결국 모두에게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가 진리를 실행할 수 있고 정직하며 존엄과 인격, 인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남을 이용해 이득을 챙기지 않고,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보면 도와주며, 양심과 이성을 가지고 남들과 왕래한다. 또한, 함부로 남을 판단하지 않으며, 남을 평가하거나 논할 때 정확하게 말하고,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함부로 말하지 않고, 보태서 말하지 않는다. 그의 말을 증거로 삼거나 참고할 수 있다. 인품을 갖춘 사람의 말과 행동은 비교적 실제적이고 믿을 만하다. 인품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그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의 말과 행동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으며, 누구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신임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하고 솔직한 말은 거의 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를 사귀든, 누구를 위해 일을 처리하든 진심을 다하지 않고, 속이거나 건성으로 해서 아무도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너희는 지금 마음속으로 믿을 만한 사람을 찾았느냐? 너희는 자신이 믿음직스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느냐? 만약 누군가 너에게 어떤 사람의 상황에 대해 묻는다면 너는 자기 생각만으로 평가하거나 판단해서는 안 된다. 반드시 사실에 부합하고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말해야 하며, 모르는 일은 말하지 않고, 아는 만큼만 말해야 한다. 타인에 대해 공정하고 공평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책임 있는 행동이다. 만약 네가 겉으로 드러난 현상 하나만을 보고 스스로 판단한 것이라면 맹목적으로 규정해서는 안 되며, 더욱이 판단을 내려서도 안 된다. 너는 반드시 “이것은 제 개인적인 판단입니다.” 또는 “이것은 제 느낌입니다.”라는 전제를 달아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비교적 객관적이며, 상대는 네 말을 들은 뒤 네가 정직하게 말하고 공정한 태도를 가졌다고 느껴 너를 신뢰할 수 있을 것이다. 너희가 이렇게 할 자신이 있느냐? (자신 없습니다.) 그것은 너희가 남을 정직하게 대하지 않고, 처세에 진심을 다하지 않으며, 정직한 태도가 없다는 증거다. 누군가 네게 “저는 당신을 신뢰할 수 있으니 그 사람이 어떤지 얘기해 보세요.”라고 했을 때, 네가 “괜찮은 편입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다시 “자세히 얘기해 주세요.”라고 하자 너는 “자세히 말하면, 그는 착한 사람입니다. 본분을 이행할 때 기꺼이 대가를 치르고, 남들과도 잘 지내요.”라고 대답했다. 이 세 마디 말 속에 실제 증거가 담긴 말이 한 마디라도 있느냐? 증언으로 삼을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다. 이런 사람이 신뢰할 만한 사람이겠느냐? (신뢰할 만하지 못합니다.) 이 세 마디 말 속에 자세한 얘기가 하나도 없다. 모두 두루뭉술하고 공허하며 건성으로 하는 말이다. 네가 그 사람을 만난 지 얼마 안 돼서 겉모습만 보고 그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했다면 정상적이다. 하지만 네가 한동안 접촉한 사람이라면 실질적인 문제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네 마음속으로 그를 어떻게 평가하고,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 것이 바로 상대가 듣고 싶은 것들이다. 그런데 네 말 속에 실속 있거나 핵심적이거나 중요한 말이 하나도 없다면, 상대는 너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고, 더 이상 너와 사귀고 싶어 하지도 않을 것이다.

형제자매들과 서로 왕래할 때는 반드시 마음을 나누고 이해해야만 이로움을 얻을 수 있고, 본분을 이행할 때는 더더욱 마음을 나누고 이해해야만 조화롭게 협력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가 너와 마음을 나누지 않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을뿐더러 매우 간사한 사람이라면, 네가 그와 마음을 나누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고 문제가 생기기 쉽다. 형제자매와 서로 왕래할 때도 원칙이 있어야 한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어야만 그와 마음을 나눌 수 있고, 순수하게 마음을 활짝 열 수 있다. 악인이나 불신파와 마음을 나눈다면 어리석고 무지하며 지혜가 부족한 것이다. 마음을 나누는 것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형제자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며, 진리를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는 간사한 자, 멍청한 자, 악인, 불신파는 형제자매가 아니므로 절대로 그들과 마음을 나눠서는 안 된다. 그들과 마음을 나누는 것은 마귀와 마음을 나누는 것이며, 결국에는 그들의 계략과 모함에 당하기 쉽다. 리더 일꾼 가운데 거짓 리더와 거짓 일꾼이 있고, 신도 중에도 거짓 신도와 불신파가 있다. 그들은 모두 형제자매가 아니니 절대로 그들을 형제자매로 대해서는 안 된다. 마음씨가 착하고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형제자매이고,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행하는 사람만이 형제자매다. 그 진정한 형제자매들과 서로 왕래할 때는 반드시 마음을 나누어야 하고, 순수하게 마음을 활짝 열어야 한다. 그래야만 서로 사랑하고 조화롭게 협력하며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다. 때로 사람이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내는데 성격이 맞지 않거나 가정환경, 배경, 경제적 조건마저 모두 서로 다를 때도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마음을 나누고 무슨 일이 있으면 서로 마음을 활짝 열고 소통할 수 있으며, 거짓말하거나 기만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상대방에게 환히 드러낼 수 있다면, 두 사람은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으며, 이것이 바로 참된 벗이다. 그에게 어려움이 생기면, 그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너를 찾을 것이다. 그는 마음속으로 네가 그를 도울 수 있다고 믿을 것이고, 설사 네가 그를 욕한다 해도 문제 삼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네가 정직한 사람이고 네 마음이 진실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너를 믿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말하든 또 그를 어떻게 대하든 그는 모두 이해할 수 있다. 너희는 이러한 사람이 될 수 있느냐? 너희는 이런 사람이냐? 아니라면, 너희는 정직한 사람이 아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낼 때는 가장 먼저 네 진심과 진솔함을 느끼게 해야 한다. 다른 사람과 함께 이야기하고 일하고 교류할 때 언제나 무성의한 말, 상투적인 말, 듣기 좋은 말, 아첨하는 말, 무책임한 말, 상상하는 말, 또는 상대에게 잘 보이기 위한 말만 한다면, 이는 진실한 것도, 성의도 전혀 없는 것이다. 누구와 함께 지내든 이런 방식을 취한다면, 그런 사람에게 정직한 마음이 없다. 그러면 정직한 사람이 아니다. 예를 들어, 소극적인 상태에 빠진 어떤 사람이 네게 진실한 마음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어쩌다가 소극적이 되었는지, 저 스스로는 도무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해 보자. 사실 네가 마음속으로는 그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고 있지만, 솔직하게 말하지 않고 “괜찮아요. 그건 소극적인 것이 아니죠. 저도 그래요.”라고 말했다. 상대는 이 말을 듣고 무척 위안이 되었겠지만 네 태도는 진실한 것이 아니다. 너는 상대를 건성으로 대했고, 상대가 마음이 편하고 위로를 얻게 하려고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다. 너는 진심으로 그를 돕지 않았고 그의 문제를 분명히 말해 주어 그가 소극적인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지 않았으며, 정직한 사람으로서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 너는 그저 그를 위로하고, 그와 사이가 틀어지거나 갈등이 생기지 않게 하려고 무성의하게 대했을 뿐이다. 이는 정직한 사람이 아니다. 그럼 정직한 사람은 이런 상황을 마주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너는 자신이 보고 정확히 판단한 것을 그에게 말해야 한다. “저는 이렇게 생각하고 또 이렇게 체험했습니다. 제 말이 맞는지 보십시오. 맞지 않는다면 받아들이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러나 맞는다면 받아들였으면 합니다. 제 말이 귀에 거슬려 상처가 된다면 하나님에게서 온 것으로 받아들여 주시기 바랍니다. 제 목적은 당신을 돕는 것입니다. 저는 이 일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당신은 자신의 체면 때문에 상처를 받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체면을 세워 주지 않자 무시당한다고 생각하고 충격을 받은 거죠. 당신은 여태까지 이런 억울함을 당해 본 적이 없으니 받아들이지 못하고 소극적이 된 것입니다. 이런 것 아닙니까?” 그는 듣고 네 말이 정확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네가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정직한 사람이 되지 않는다면 이런 말을 하지 못하고, 그저 “저도 늘 소극적이 됩니다.”라고만 말할 것이다. 그럼 상대는 모두가 그렇다는 말을 듣고 자신이 소극적인 것도 정상이라고 생각할 테고, 결국 소극적인 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네가 정직한 사람이 되고 정직한 태도와 정직한 마음으로 그를 돕는다면, 그가 진리를 깨닫고 소극적인 상태에서 빠져나오게 할 수 있다.

정직한 사람이 되기를 실행하는 것은 많은 방면과 관계가 있다. 즉,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은 어느 한 방면에서 정직한 사람이 되는 기준에 이르면 되는 것이 아니라, 많은 방면에서 기준에 이르러야 정직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거짓말만 하지 않으면 정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관점은 옳으냐?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이 단순히 거짓말을 안 하는 것과 관계되느냐? 아니다. 이는 다른 여러 방면과도 관계가 있다. 우선, 어떤 일을 대하든, 그것이 네가 실제로 본 것이든 아니면 다른 사람이 알려 준 것이든, 다른 사람들과 같이 지내는 것이든 아니면 문제를 처리하는 것이든, 네가 이행해야 할 본분이든 아니면 하나님이 네게 직접 맡긴 일이든 모두 정직한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 정직한 마음으로 대하려면 어떻게 실행해야겠느냐?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을 솔직하게 말하되, 빈말이나 상투적인 말이나 듣기 좋은 말, 아첨하는 말, 위선적인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마음속의 말을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마음속의 진짜 생각과 관점을 표현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정직한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을 영원히 말하지 않고 속으로 삭이며, 입으로 말하는 것과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이 언제나 일치하지 않는다면, 이는 정직한 사람의 모습이 아니다. 예를 들어, 네가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는데, 누군가 너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봤다고 하자. 너는 “저도 본분을 잘 이행하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그러지 못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사실 너는 속으로 네가 마음을 쓰지 않았다는 걸 알면서도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 너는 여러 가지 원인과 이유, 핑계를 대며 사실의 진상을 숨기고 책임을 회피했다. 이것이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이겠느냐? (아닙니다.) 네가 이렇게 말하면 속이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네 내면에 있는 것과 속셈의 본질은 패괴 성품이다. 그것을 꺼내서 분석하고 솔직히 털어놓을 수 없다면 정결케 될 수 없다. 이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너는 이렇게 사실대로 말해야 한다. “그동안 제가 본분을 이행함에 있어서 꾸물거리며 마음 쓰지 않고 건성으로 대충 했습니다. 기분이 좋을 때는 대가를 치를 수 있지만, 기분이 안 좋을 때는 해이해져서 대가를 치르지 않으려 하고 육적인 안일을 탐했습니다. 그래서 본본 이행에 아무런 효과가 없었습니다. 최근에 이를 바로잡아 최선을 다해 효율을 높이고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사람의 마음속 말이다. 앞에서 말한 것은 마음속 말이 아니라, 책망받거나 문제가 들키거나 책임을 추궁당할까 봐 두려워 갖가지 원인과 이유, 핑계를 대며 사실의 진상을 감춘 것이다. 먼저 사람의 입을 막은 뒤 책망을 피하기 위해 책임을 떠넘긴 것이다. 이것이 바로 거짓말이 생겨난 근원이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말을 하든 그중에 솔직한 말과 실제 상황도 있겠지만, 일부 핵심적인 말에는 거짓과 속셈이 섞여 있다. 그래서 어떤 말이 진실이고 어떤 말이 거짓인지 분별하고 판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말에는 불순물과 과장이 섞여 있고, 어떤 말은 사실에 부합하며, 어떤 말은 사실에 위배된다. 거짓과 진실을 함께 사용해 진위를 판단하기가 어렵다. 이런 사람이 가장 간사하고, 분별하기 가장 어렵다. 진리를 받아들이고 정직한 사람이 되기를 실행할 수 없는 사람은 틀림없이 도태될 대상이다. 사람이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하겠느냐? 어떤 것이 정직한 사람의 실행 방식이겠느냐? 너희는 사실대로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활짝 열고 솔직히 털어놓으며 자신의 실제 내적 상태와 실제 문제를 교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정직한 사람의 실행 방식이며, 이렇게 실행해야 옳다. 양심과 이성을 가진 사람은 정직한 사람이 되기를 추구하려고 한다.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만 마음이 진실로 평안과 기쁨을 얻게 되고, 진리를 실행하여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만 진실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을 체험할 때 많은 실제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때로는 생각 없이 말을 하는데, 잘못된 생각, 잘못된 속셈과 목적, 허영심과 체면 같은 것들의 지배를 받아 거짓말하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거짓말을 합리화하기 위해 점점 더 거짓말을 하게 된다. 결국에는 마음이 평안하지 않게 되지만, 그래도 거짓말을 주워 담을 수 없게 된다. 잘못을 바로잡고 자신이 거짓말했음을 인정할 용기가 없어 그렇게 한 번 잘못하면 계속 잘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 후로는 늘 커다란 돌이 가슴을 누르고 있는 것만 같다. 기회를 봐서 사실관계를 밝히고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고 싶지만 늘 실천하지 못하다가 결국 ‘나중에 본분을 이행하면서 만회하자.’라고 생각하게 된다. 늘 만회하자는 말뿐, 시종일관 만회하질 못한다. 이는 거짓말한 후 사과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거짓말과 기만이 가져온 손실과 결과를 네가 만회할 수 있겠느냐? 네가 가슴을 치며 회개하고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관용과 긍휼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네가 듣기 좋은 말을 하며 나중에 만회하겠다 하면서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은 채 이후 여전히 거짓말과 기만을 저지르면 그건 절대로 회개하지 않은 것으로, 분명 도태된다. 양심과 이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점을 알 수 있다. 거짓말과 기만을 저지른 후, 그저 만회할 생각만 하는 것으로는 안 된다. 진정으로 회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정직한 사람이 되려면 거짓말과 기만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며, 진실을 말하고 실질적인 일을 해야 한다. 가끔은 진실을 말하는 바람에 체면을 잃거나 책망을 받을 수도 있지만,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께 한 번 순종하고 하나님을 한 번 만족게 할 수 있다면, 이 역시 가치 있는 일이자 위로가 되는 일이다. 어쨌든 결국에는 정직한 사람이 되기를 실행할 수 있고, 마음속 말을 털어놓을 수 있으며, 자신을 위해 궤변을 늘어놓거나 설명하지 않을 수 있다면, 이것은 진실한 성장이다. 네가 책망을 받든 교체되든 마음이 편안할 것이다. 네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가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마땅히 책망을 받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마음가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네가 기만을 저지른다면 결과가 어떻게 되겠느냐? 기만을 저지르고 난 후, 마음에 어떤 느낌이 드느냐? 편안하지 않다. 늘 자신의 마음에 죄악과 패괴가 있다 느껴지고 늘 ‘어떻게 거짓말을 할 수 있지? 어째서 또 기만을 저지른 거지? 나란 인간은 왜 이럴까?’라며 가책을 받는다. 너는 고개를 들어 하나님을 볼 면목이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특히 하나님의 축복,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 관용을 받을 때면 하나님을 기만한 행위가 더욱 부끄럽게 느껴지고, 마음의 가책은 더 심해지고 평온함과 기쁨은 사라진다. 이는 어떤 문제를 입증하느냐? 기만을 저지르는 것은 패괴 성품이 드러난 것이며,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이 너를 무척 고통스럽게 할 것이다. 네가 거짓말하고 기만을 저지르는 당시에는 그 말이 아주 훌륭하고 완곡하여 작은 단서도 드러내지 않았다고 생각하겠지만, 지나고 나면 네 마음속의 자책과 참소가 평생 너를 따라다닐 것이다. 네가 의도를 가지고 일부러 거짓말을 하고 기만을 저질렀다가 어느 날 그 일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면, 그것이 가시처럼 네 마음을 찌르는 듯해서 계속 만회할 기회를 찾으려 할 것인데, 그러는 것도 당연하다. 네가 양심이 없고 전혀 양심적으로 살지 않으며, 인성도 없고 인격이나 존엄을 중시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만약 네가 인격과 존엄, 양심과 지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자신이 거짓말하고 기만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자신이 거짓말하고 기만한 행위가 수치스럽고 낯을 들 수가 없고 비천한 짓이라고 생각할 것이며, 너 스스로 자신을 멸시하고 혐오하며 거짓말하고 기만을 저지르는 그 길을 버릴 것이다. 사탄에 속한 자들은 정상 인성의 양심과 이성이 없고,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하든 지각하지 못하며, 그것을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거짓말을 하면서도 이론과 근거가 있다. 거짓말하지 않으면 큰일을 해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죽어도 회개하지 않는다. 양심과 이성이 있는 사람은 다르다. 그들은 사탄의 패괴를 거쳤을 뿐이다. 비록 패괴 성품을 드러내기는 하지만, 그들은 악인이 아니다. 그들은 양심과 지각이 있고, 정상 인성을 필요로 하며, 아름답고 선한 것, 정의, 긍정적인 사물을 좋아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고 또 그런 것들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그들은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 자신을 반성하고 진실로 회개할 수 있다. 사탄은 사악하기 짝이 없다. 사탄은 긍정적인 것, 아름답고 선한 것을 싫어하고, 사탄의 본성에는 어둡고 사악한 것, 패괴되고 악독한 것만 가득 차 있다. 또 인성이 없고 정상 인성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양심과 지각도 없다. 하지만 사람은 다르다. 사람은 하나님이 만들었고, 양심과 이성이 있다. 양심이 있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지각이 있다. 하나님을 기만하고 사람을 속이면 양심의 가책과 책망을 받게 되는데, 그들은 그 책망과 가책을 고통스럽게 느낀다. 한 사람이 이런 고통을 느낄 수 있고, 이런 가책과 책망을 느끼면 그의 양심에 지각이 생기기 시작한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진리 추구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런 필요가 생기는 것이다. 이것은 좋은 일이다. 지금 너희는 거짓말을 하고 기만을 저지르면 책망을 느끼느냐? (그렇습니다.) 책망을 느낀다는 것은 너희에게 약간의 양심과 지각이 있고 희망이 있다는 증거다. 이것은 구원받기 위해 최소한 갖춰야 하는 지각과 태도다. 양심의 책망이 없으면 곤란하다. 그것은 인성이 없는 것이다. 그러면 너희가 거짓말을 하고 기만을 저지른 후에 회개할 줄 아느냐? 목을 빳빳이 들고 회개할 줄 모른다면 그 결과가 어떻겠느냐? 그러면 구제 불능이다. 양심과 이성이 있고, 정상 인성을 필요로 하며, 선악을 구분할 줄 알고, 긍정적인 사물과 아름답고 선한 사물을 좋아하며, 사악함을 증오하고,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구원받을 수 있는 대상이다. 지금 너희는 하나님이 구원하려는 대상이 바로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2017년 1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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