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9) 제 5 부
충후하다
다음으로 설명할 모습은 충후(忠厚)한 것이다. 이 측면의 모습은 인성의 장점에 해당한다.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하고서야 드디어 인성의 장점을 하나 찾았구나. 인성의 장점은 정말이지 많지 않다. 충후한 것은 인성 한 측면의 장점이다. 장점인 이상 제대로 한번 이야기해 봐야 할 것이다. 사람에게 있는 몇 안 되는 인성의 장점조차 갖추고 있지 않은 사람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럼 한번 살펴보자. 충후한 것의 장점은 무엇이겠느냐? (충후하다는 것은 사람이 비교적 성실하여 마음이 놓이게 일을 처리하고, 맡은 일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최선을 다한다는 것입니다.) (충후한 사람은 행실이 비교적 바람직하며 남을 고려하고 배려할 줄 압니다.) 남을 배려하다니 참으로 고상한 품격이구나! 이런 자는 고상한 사람이다. 그런데 충후한 사람이 그렇게까지 고상하겠느냐? (아닙니다.) 충후한 사람은 생각이 그다지 복잡하지 않고 단순한 편이며, 교활하지 않다. 또한 남에게 까다롭지 않고 관대하며 남과 어울릴 때 개인의 득실도 따지지 않는다. 남이 욕을 한마디하면 속으로 잠시 괴로워하다가도 ‘관두자.’라고 생각하며 더 이상 따지지 않는다. 누가 돈을 빌려 간 뒤 오랫동안 갚지 않아도 이렇게 생각한다. ‘빚을 독촉하기도 좀 미안해. 저 사람은 형편도 어렵잖아. 그때는 내가 저 사람보다 여유가 있었고. 빌려줬으니 어쩔 수 없지. 그냥 가난한 사람 도와줬다고 생각하자.’ 보아라, 그는 생각이 비교적 너그럽고 관대하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이 그를 오해해도 그는 개의치 않고 해명하지도 않는다. 남이 그를 판단하며 멍청하다고 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본분을 이행할 때도 피곤해하지 않고 남이 하려 하지 않는 일도 나서서 한다. 누군가 “남들은 다 쉬는데 왜 아직도 하고 있어요?”라며 비웃으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일 좀 더 하는 게 어때서요? 힘들지도 않아요. 일한다고 힘들어서 죽기라도 하겠어요? 다른 사람은 하든 말든 상관없어요. 저는 할 수 있는 만큼 더 할 거예요.” 그는 그런 것들을 따지지 않는 데다가 몸소 나서서 행동한다. 이해득실을 별로 따지지 않고 체면이 서는지 서지 않는지, 지위가 높은지 낮은지도 잘 따지지 않으며 손해를 봐도 말하지 않는다. 또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자발적으로 도와주고 속셈이나 목적 없이 돕는다. 남이 그에게 신세 진 것을 갚으려고 해도 그는 조금 도와주는 건 별것도 아니며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설사 도와주고 나서 상대방이 감사히 여기지 않아도 신경 쓰지 않고, 도와줄 일이 생기면 또 돕는다. 이런 부류가 많겠느냐? (많지 않습니다.) 이런 부류는 많지 않다. 이런 부류는 충후하긴 하지만, 처신할 때는 지켜야 할 선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늘 그에게서 이익을 취하려 하고 그를 바보로 생각하며, 이익을 취하고 나서는 듣기 좋은 말로 구슬린 뒤 얼마 지나면 또 그에게서 이익을 취한다. 그는 그 사람이 계속 그러는 것을 보고도 따지거나 다투거나 이치를 운운하지 않는다. 그는 그 부류가 좋은 사람이 아니며 어울리기에 부적절하다는 것을 속으로 알아차리고는 더 이상 상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뒤에서 판단하지는 않고, 기껏해야 그 사람이 어떠냐고 누가 물을 때 “그 사람은 남에게서 이익을 취하는 걸 좀 좋아해요.”라고 답할 뿐이다. 거짓말을 보태지도 않고 혈기에 차서 사람을 판단하지도 않으며 그저 있는 그대로를 말할 뿐이다. 충후한 부류의 인성은 참으로 훌륭하다. 그의 장점은 별로 따지지 않고 무슨 일을 하든 혈기나 기분,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며, 그저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을 하고 다해야 하는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그는 정상적인 인간관계의 범위 내에서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 하며, 온 힘을 다해 성심성의껏 남을 돕는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그저 겸사겸사 도와줬을 뿐이야. 그러니 당신은 내게 빚졌다고 생각할 필요 없어. 내게 진 그 빚을 평생 못 갚을 거라는 생각에 늘 내 앞에서 비굴하거나 고분고분하게 굴지 않아도 된다고. 그럴 필요 없어.’ 이런 자는 사람들 중에서 인성이 가장 좋고 간사하지 않으며 남에게 야박하게 굴지도 않는다. 그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으며 인성에 선량한 측면이 있다. 즉,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나서서 하고 개인의 득실을 별로 따지지 않으며 대가도 그다지 중시하지 않는다. 이는 인성의 장점이다. 너희 주변에 누가 이런 장점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아라. 만약 이런 인품을 갖추고 있다면 그 부류는 패괴된 인류 중에서 좋은 사람, 괜찮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따지거나 간사하게 굴지 않고 남에게 야박하게 굴지도 않는다. 게다가 남을 도울 때 이익을 바라지 않고 특히나 관대하며 너그럽게 처신한다. 너그럽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 사소한 일을 두고 끝없이 따지지도 않고,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서 이익을 취한다고 해도 원망을 품지 않는 것이다. 이를 두고 너그럽다고 하며, 이는 인성의 큰 장점이다. 충후한 것이나 너그러운 것 모두 장점이다. 이와 달리 인색하고 의심이 많고 민감하고 편집적인 사람은 사소한 일을 가지고도 끝없이 따지고 걸핏하면 성을 낸다. 노발대발하거나 섬뜩할 정도로 정색하기도 한다. 누가 말을 걸어도 대꾸하지 않고 머릿속으로는 어떻게 복수할지만 궁리한다. 이는 모두 정상인이 갖춰야 하는 것들이 아니다. 반면 충후한 부류는 생각 속에 그런 복잡한 일들이 없고 남을 의심하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의 마음속에 있는 것은 전부 다 정상인이 갖춰야 하는 것들로서, 인성의 양심과 이성에 특히나 부합하고 인성의 정의감과 선량함의 기준에도 부합한다. 이런 부류와 어울리면 마음이 가볍고 복잡하지 않으며 골치 아픈 일도 별로 없다. 무언가를 경계할 필요도, 상대의 속마음을 추측하거나 에둘러 말할 필요도 없다. 가끔 실수로 그에게 상처를 주어도 어떤 결과가 초래될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며, 당연히 어떤 결과를 감당할 필요도 없다. 네가 화가 났을 때 혈기에 차서 욕을 좀 하더라도 그는 그 당시에는 너와 다투고 싸울지언정 싸운 뒤에는 앙심을 품지 않고 모함하거나 복수하지도 않는다. 너는 그가 지위를 갖게 된 후 너를 못살게 굴거나 트집을 잡을까 봐 걱정할 필요도, 툭하면 너를 괴롭힐까 봐 걱정할 필요도 없다. 그의 안에는 그런 것들이 없다. 그는 그토록 단순하다. 결코 그 일로 너를 물고 늘어지지 않으며 지나간 일은 지나간 채로 두고, 그 뒤에는 대화할 때도 정상적으로 너를 대한다. 당시에는 화가 나서 너와 다툴지라도 그 후에 앙심을 품지 않는다. 그는 네가 단지 홧김에 과격한 말을 몇 마디 했을 뿐임을 알고 이해해 준다. ‘화가 났을 때는 누구든지 말을 거칠게 할 수 있어. 그 사람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닐 거야. 게다가 사람은 누구나 패괴 성품을 가지고 있잖아. 기분이 나쁠 때도 있고 혈기도 가지고 있지. 진정한 다음 모두가 잘못을 인정하고, 패괴 성품을 표출해서 원칙대로 행동하지 않았다는 것을 반성하기만 하면 돼.’라며 너를 용서해 줄 것이다. 악인처럼 너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거나 끝까지 괴롭히는 일은 없다. 충후한 사람은 기본적으로 복수심이 없다. 누가 일을 처리하다가 기분을 상하게 하면 그 사람을 미워할 때도 있지만 결코 인성의 도덕을 위배하여 비열한 수단으로 괴롭히지는 않는다. 설사 그에게 패괴 성품이 있어서 패괴 성품에 기대 말하고 행동하며, 상대가 예전에 저질렀던 잘못을 언급하거나 책망하고 훈계할지는 몰라도 없는 사실을 날조하거나 수중의 권력을 이용해 공격하고 복수하지는 않는다. 설사 공격하고 복수하려고 해도, 그에게 그런 측면의 패괴 성품이 있더라도 그의 인성에는 충후하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복수하고 싶을 때도 제약을 받아서 결국 분수를 지킬 것이다. 패괴된 인류가 권력을 가진 상황에서 이 정도로 행동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이미 훌륭하다. 평범한 사람은 이 측면의 장점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이 정도 분수조차 잘 지키지 못하고, 공격하거나 복수하지 않는 것조차 실천하지 못한다.
충후한 모습이나 표출은 인성 한 측면의 장점이다. 인성의 이 장점은 사람이 패괴 성품을 표출할 때 어느 정도 통제하고 절제하도록 크게 제한하거나 일깨워 준다. 만약 그 충후한 사람이 영적인 이해력이 있고, 진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인성의 이 장점은 그가 더욱 엄격하게 진리 원칙을 근거로 사람과 일을 바라보거나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반면 간교한 사람은 훨씬 더 교활해서 충후한 사람과는 달리 나쁜 짓을 저질러도 반성하기는커녕 한술 더 떠 끝까지 나쁜 짓을 저지르려 한다. 이는 마귀와 다름없으며, 충후한 사람의 행동 원칙과는 완전히 상반된다. 예를 들어, 충후한 사람으로서 이런 인성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면 말다툼을 할 때도 사실을 근거로 말하고 거짓말을 보태지 않을 것이며, 없는 사실을 날조하여 나쁜 일을 꾸며내지도 않을 것이다. 화가 나서 비방하거나 인격을 모욕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말다툼을 할 때면 교만하거나 흉악한 성품을 표출할 테지만, 분명 그의 양심과 이성, 충후한 인성에 제한받는 상태에서 말을 내뱉을 것이다. 그러니 네게 상처를 입히는 정도도 얼마간 약해질 것이다. 반면 악인에게는 충후한 인성이 없다. 악인은 어떻게 말다툼을 하느냐? “당신은 음녀이고 창녀예요. 나는 당신의 8대 조상까지 욕하고 저주할 거예요!” 그는 온갖 거친 말과 악담을 퍼붓는다. 이런 자가 바로 악인으로, 인품이 악랄하다. 일부 인품이 악랄한 사람은 사실을 근거로 남을 욕하지 않는다. 왜 사실을 근거로 하지 않겠느냐? 양심이 없고 양심의 기준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남을 욕할 때 양심의 제약을 받지 않아서 입에서 나오는 대로 욕설을 퍼붓는데, 못 하는 욕이 없다. 또 분풀이를 할 수 있고, 네 마음을 후벼 팔 수 있으며, 너를 미치도록 화나게 할 수만 있다면 되는대로 욕을 한다. 그가 하는 욕에 너는 죽도록 화가 날 것이다. 이런 부류는 마음이 선량하지 않고 악독함으로 가득 차 있다. 악인은 주로 교만함과 흉악함이라는 두 측면의 성품을 표출한다. 그가 하는 욕의 본질은 저주를 담고 있고 사탄의 악독함이 가득하며 충분한 살상력을 지니고 있다. 심지어 그는 가장 악독한 저주의 말까지도 서슴없이 내뱉는다. 만약 인성이 있거나 인성이 충후하다면 그런 욕을 내뱉지 못할 것이고, 없는 사실을 날조하지도 못할 것이다. 양심의 지각과 이성이 있기에 양심 안에 있는 선량하고 충후한 측면이 욕을 내뱉지 못하도록 강하게 제한하고 통제할 것이다. 누가 너를 욕할 때면 부아가 치밀어서 그의 8대 조상까지 욕하고 지옥에 떨어지라고 저주하고 싶다가도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그를 저주하겠어? 내가 하나님도 아닌데 내 말대로 이루어지겠냐고.’ 너도 상스러운 말로 그에게 반격하고 싶겠지만 ‘상스럽게 욕을 하면 나 자신도 역겨운데, 주위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겠어? 그건 인격과 존엄이 없는 행동이잖아? 몰상식한 인간 같다고. 난 그런 사람은 되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에 욕을 내뱉지 못할 것이다. 너는 말할 때 상당히 제약을 받기에 할 수 있는 말도 제한적이어서 기껏해야 “당신은 사탄이고 패괴 성품이 아주 심각해서 구원받지 못할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좋아하시지 않는다고요.”라고 말할 뿐이다. 기껏해야 이 정도 말만 할 뿐이지만,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지 아닌지는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니잖아.’라는 생각에 그마저도 자신감 있게 말하지 못한다. 누가 너를 욕하고 18층 지옥에 떨어지라고 저주하면 너는 이렇게 생각한다. ‘18층 지옥에 떨어지라니 말이 너무 심하네! 그건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는 말이잖아. 적당히 해야지!’ 왜 이런 생각이 들겠느냐? 네 인성 안에 있는 것이 악인과 다르기 때문이다. 충후하고 선량하며 양심과 이성이 있다면, 아주 이성적으로 말할 것이다. 양심의 범위 내에서 홧김에 과격한 말을 좀 하고 욕도 좀 하겠지만, 말한 후에 자신은 아무리 화가 나도 상대는 상처받지 않고 멀쩡할 것이며 살상력도 없을 것이다. 악인은 욕할수록 신이 나지만 너는 욕할수록 화가 나서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관두자. 저런 비열한 소인배, 악인은 상종할 가치도 의미도 없으니 다투지 말자고.’ 악인과 다투는 것은 사탄에게 진리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아무 효과도 없는 일이니 그와 다투고 따질 필요가 없다. 앞으로 그런 부류를 멀리하면 된다. 네가 그를 해칠 궁리를 하겠느냐? 그에게 복수하고 기회를 틈타 본때를 보여 줄 생각을 하겠느냐? 너는 그런 모진 마음을 먹지 못하고 늘 이렇게 말할 뿐이다. “관두자. 저 사람이 욕 몇 마디 했다고 내가 손해를 본 것도 아니니까 그냥 넘어가자고.” 어떤 사람은 ‘어차피 하나님께서 나를 저주하신 것도 아니잖아. 그가 나를 저주해도 소용없어.’라며 자신을 달래기도 한다. 사실 너는 양심과 이성을 가지고 있고 인성이 충후하고 선량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그런 욕설을 내뱉지 못하는 것이다. 너는 더럽고 격이 떨어진다고 느끼고, 입으로 그런 말들을 내뱉으면 양심에 반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특히 없는 사실을 지어낸 말이나 사실무근인 일은 더더욱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다. 말하지 못하는 것이 너에게는 일종의 보호가 된다. 그의 말은 네게 큰 살상력이 있고 상처를 주는데, 이는 그의 악행이다. 그 악행은 왜 생겨났겠느냐? 그의 인성 안에 악랄한 품성이 있기 때문이다. 갈등이나 충돌이 발생했을 때 그는 패괴 성품이 무한대로 팽창하여 거리낌없이 저주를 퍼붓는다. 그의 이런 악랄한 인품은 자연스레 패괴 성품을 표출한다. 반면 네가 충후하고 선량하며 양심과 이성, 인성을 갖춘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패괴 성품을 발산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인성이 패괴 성품의 표출을 크게 제한할 것이다. 이는 네게 무척이나 좋은 일이다. 겉보기에는 네가 손해를 보고 불리한 입장에 놓이며 그를 이기지 못해 우스갯거리가 된 것 같지만, 사실상 네 인성이 네가 악을 행하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행동이나 말을 하지 않도록 너를 보호한 것이다. 이는 어느 정도 너를 보호해 준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 인성의 장점이 네가 패괴 성품을 표출할 때 한 발 더 나아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고 혐오하는 일을 하거나 하나님이 혐오하고 정죄하는 말을 하지 않도록 너를 단단히 보호한 것이다. 이는 선행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너는 악을 행하지 않았으니 네 행동은 정죄되지도, 징벌받지도 않을 것이다. 반대로 악인이 악랄한 인품에 지배된 상태에서 하는 행동은 정죄될 뿐만 아니라 징벌도 받을 것이며 그는 그에 따른 결과와 책임도 감당해야 한다. 그러므로 여러 인성의 장점을 가진 사람은 어떤 일들에서 겉보기에는 체면과 지위, 존엄을 잃은 것 같고, 특히 주도권을 가지고 이치를 따질 기회를 잃은 것 같지만, 그것은 손해를 본 것이 아니다. 혹자는 “손해를 보지 않았다면 이익을 본 건가요?”라고 말하는데, 손해를 봤다거나 이익을 봤다는 식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럼 어떻게 판단해야겠느냐? ‘이 일에서 손해를 본 것은 중요하지 않아. 유익을 얻었다는 게 중요하지.’라고 판단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인성의 장점이 네가 악을 행하지 않고 하나님에게 정죄되지 않게 행동하도록 너를 지켜 주었으니 이는 유익을 얻은 것 아니겠느냐? 악을 행했다는 이유로 징벌받을 일은 없어졌다. 그러니 이는 네게 좋은 일 아니겠느냐? (좋은 일입니다.) 그것은 네 자발적인 선행도 아니고 자발적으로 진리 원칙을 준수한 행위도 아니지만, 인성의 장점이 있는 인성의 틀 안에서 진리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일을 했으니, 보호받은 것이다. 기억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정죄되지는 않을 것이니 너는 아무런 책임을 감당하지 않아도 되고 징벌받을 필요도 없다. 이는 좋은 일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과정에서 네 행동이 진리에 부합하든 부합하지 않든, 하나님이 어떻게 바라보든 최소한 너는 스스로 양심에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 설사 하나님에게 기억되지는 못할지라도 최소한 정죄되고 증오받지는 않아야 한다. 이는 네가 최소한으로 준수해야 하는 원칙이다. 인성의 장점이 사람에게 아주 중요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러니 인성의 장점을 좀 가지고 있으면 사람들 사이에서 설 자리가 없다고, 늘 남들에게서 이익을 취하지 못하고 이득을 얻을 수도 없다고, 좋은 건 다 남이 가져가고 너는 늘 손해만 본다고 언짢아해서는 안 된다. 손해 보는 게 뭐가 나쁘냐? 최소한 네가 누리는 것은 하나님이 네게 준 고유한 것이고 너는 남의 것을 차지하지 않았다. 하지만 남에게서 이익을 취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다. 그것은 남의 몫, 네가 가져서는 안 되는 것을 빼앗아 온 것이니 하나님 앞에서 정죄될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에게 정죄될 일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혹자는 “어떤 일들을 해야 하나님께 기억될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하나님에게 정죄되는 일이 무엇인지는 아느냐? 무엇인지 안다면 적어도 지켜야 할 그 마지노선은 지켜야 한다. 하나님에게 정죄될 일은 하지 마라.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이런 일들은 많이 얘기하다 보면 깨닫게 된다.
대다수 사람은 인성에 충후한 장점을 갖추고 있지 않다. 그러나 사람이 정말로 이런 장점을 갖추고 있다면 그는 패괴된 인류 가운데서 보기 드물게 정말로 좋은 사람일 것이다. 또한, 네가 정말로 이런 측면의 장점을 갖추고 있다면 하나님은 너를 축복하고 여러 방면에서 은총을 베풀 것이다. 사람들이 흔히 쓰는 말로 하자면, 하나님이 여러 방면에서 너를 보살필 것이다. 어떻게 보살피겠느냐? 너는 늘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네 이익을 버리며, 다른 사람은 네게서 이익을 취하겠지만, 그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축복을 얻지 못할 것이고, 그저 남에게서 이익을 취하는 것에 기대어 살아갈 것이며, 다음 생에서는 그 빚을 갚아야 할 것이다. 반면 너는 하나님의 축복에 기대 살아갈 것이다. 남이 네게서 이익을 취하더라도 사실상 너는 아무것도 잃지 않을 것이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이는 좋은 일 아니겠느냐? (좋은 일입니다.) 보아라, 충후한 사람은 겉보기에는 늘 손해를 보는 것 같다. 남들은 우직한 그의 모습을 보고는 말하거나 일을 처리할 때 늘 그에게서 이익을 취하고 항상 그를 바보로 대하며 괴롭힌다. 게다가 그에게서 돈과 이득을 챙기고 수많은 물건을 빼앗기도 한다. 하지만 그에게 부족한 것이 있느냐? 그는 무엇이든 풍족하여 부족한 것이 없고 일을 처리할 때도 똑똑하고 지혜로우며 걱정이 없다. 하나님 집에서 어떤 본분을 맡겨도 득실을 따지거나 다투어 빼앗지 않고 시키는 대로 하며, 무슨 일을 처리하든 거의 실수가 없다. 비록 가끔씩 작은 문제가 생기거나 사소한 잘못을 저지르긴 해도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다. 그는 일을 처리할 때도 상당히 마음을 쓰고, 양심과 이성을 거스르지 않는 최소한의 선을 지키며,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일 수 있기에 하나님의 축복을 얻을 수 있다. 충후한 것이 인성 한 측면의 장점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처신할 때 이런 측면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시시콜콜 따지지도 말고, 아무도 감히 건드리지 못하는 트집쟁이처럼 굴지도 마라. 그런 부류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남이 네게서 이익을 취해도 늘 괴롭힘당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우직하다고 나쁠 게 뭐가 있느냐? 어떤 사람은 꿍꿍이가 너무 많아서 늘 자신이 멍청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이렇게 말한다. “저를 바보 취급하지 마세요. 저는 똑똑하다고요! 누가 저를 좋아하지 않고 제게 못되게 구는지 다 알아요. 누가 저를 무시하고 말끝마다 비아냥거리면서 은근히 비꼬는지 다 안다고요.” 네가 보고 들으면서 알아차릴 수 있다고 해도 아무 소용없다. 그것은 잔꾀이고 잔머리일 뿐이다. 그 정도 잔머리가 있다고 해서 지혜롭고 정말 똑똑하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사람들은 너를 무시할 것이다. 그까짓 잔머리와 속셈은 동물들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말하겠느냐? 동물과 가까이 접촉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알겠지만, 작은 동물도 사람이 좋은 말을 하는지 나쁜 말을 하는지 알아듣는다. 강아지도 듣기 싫은 말을 하면 바로 기분 나빠하고, 분명하게 듣기 좋은 말을 해 주면 그것도 곧장 알아듣는다. 그러니 사람이 작은 동물도 갖추고 있는 것을 가지고 자신을 가늠한다면 스스로 속성을 낮추는 것 아니겠느냐? 피조된 인류를 가늠하는 기준을 낮춘다면 그것은 스스로 자신의 몸값을 낮추는 것이다. 늘 “저를 바보 취급하지 마세요. 저는 세 살배기 아이가 아니라고요. 옥수수빵 따위는 절대 안 먹어요. 만두를 갖다주세요. 저도 만두가 맛있다는 걸 안다고요!”라고 말하지 마라. 이런 멍청한 말로 자신이 멍청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서는 안 된다. 만약 네가 정말로 멍청하지 않다면 인성의 기준에 미치도록 노력해야 한다. 사람이 양심과 이성 안에 어떤 것들을 갖춰야 하는지, 어떤 모습이 인성의 장점인지, 어떤 모습이 인성의 결점이나 나쁜 인품인지 등에 관해 교제하고 인식해라. 사람의 인성이 갖춰야 하는 것, 피조된 인류가 갖춰야 하는 것을 교제한 다음, 그런 측면에서 노력하고 그런 것들을 갖추고자 애쓴다면 몸값이 오르지 않겠느냐? 늘 세 살배기 아이와 지능을 비교하면 발전이 있겠느냐? 성장할 수 있겠느냐? 세 살배기 아이가 “저는 플라스틱 젖병으로 우유를 마실 수 있어요.”라고 하면 너는 “나는 유리병으로도 우유를 마실 수 있어. 손을 데는 것도 두렵지 않다고.”라고 한다. 세 살배기 아이가 “저는 신발을 신을 때 왼발과 오른발을 구분할 수 있어요.”라고 하면 너는 “나는 스웨터를 입을 때 앞뒤도 구분할 수 있어. 너는 할 수 있어?”라고 한다. 이래서야 발전이 있겠느냐? 만약 네 지능과 인품, 인성이 갖춰야 하는 여러 측면의 능력이 늘 세 살짜리 어린이나 미성년자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면, 성숙한 사람이 되거나 남에게 어른으로 대접받기 어려울 것이다. 어떻게 해야 남에게 어른 대접을 받을 수 있겠느냐? 어른이 해야 하는 일, 피조된 인류가 해야 하는 일을 해야 하고 피조된 인류가 갖춰야 하는 인성을 갖춰야 한다. 이 인성은 최소한 무엇을 갖춰야겠느냐? 양심과 이성, 그리고 여러 측면의 좋은 인품을 갖춰야 한다. 그러면 인성의 결함과 문제가 점차 변화하고 개선되어 진리에 진입하는 일이 훨씬 쉬워지고 장애물도 줄어들 것이다.
인성의 장점 중 충후함은 흔치 않아서 대다수 사람이 갖추고 있지 않다. 그럼 어떻게 해야 이 측면의 장점을 갖출 수 있겠느냐? 어떤 진리도 깨닫지 못한 상태라면 인성의 이런 장점을 갖추기 어렵고 이런 사람이 되기도 어렵다. 그러나 일부 진리를 깨닫고 나면 이런 사람이 될 수 있는 길이 생기고 희망이 생긴다. 그럴 수 있을지, 최종적으로 성과를 얻을 수 있을지는 네가 진리를 얻을 수 있는지, 생명 진입이 있는지에 달려 있다. 이런 측면의 장점을 갖추기 위해서는 어떻게 실행해야겠느냐? 누가 네게 무슨 행동을 하고 어떤 말을 하든 혈기나 감정에 휘둘려 상대해서는 안 된다. 그가 무슨 뜻으로 네게 그렇게 하는지, 네게 얼마나 큰 해를 입혔는지, 네 체면을 얼마나 많이 구겼는지를 분석해서도 안 된다. 머리나 사람의 뜻, 혹은 처세 철학에 기대 그런 일들을 대하지 마라. 그럼 어떻게 대해야겠느냐? 어떤 일이든 하나님 말씀과 진리 원칙을 근거로 대해야 한다. 또 어떤 환경 안에서 어떤 사람을 마주하든 그 사람과 함께 대화하고 어울리고 구체적인 일을 처리할 때 최선을 다해 진리 원칙을 구하고 진리 원칙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그러면 인성을 개선하는 데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다. 즉, 그것은 네 인성의 양심과 이성에 어느 정도 보조적 역할을 할 것이며 네가 정의감을 가지도록, 올바른 위치와 시각으로 사람과 일을 바라보도록 도와줄 것이다. 이를 두고 개선이라고 한다. 개선이란 기존의 좋지 않은 인성을 좋게 바꾸고 정상화하는 것이다. 그럼 기존의 좋지 않은 인성은 어떻게 생겨난 것이겠느냐? 패괴 성품에 영향받고 지배되어 생겨난 것이다. 지금 네가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 원칙을 근거로 처신하고 일을 처리한다면, 일을 처리할 때 네 인성은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에 상당히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이 영향이 바로 개선이다. 물론, 이러한 개선은 한 가지 일을 통해 인성을 변화시키고 인격을 고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행동의 준칙과 방식, 방향으로 삼아 오랫동안 실행하고 체험하다 보면 조금씩 진리를 깨닫게 되고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게 된다. 그리하여 네 인성은 점차 변화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며, 너는 갈수록 양심적으로 변하고 선량해지며 정의로워질 것이다. 또 이성이 점점 더 정상화되고 혈기에 휘둘리거나 충동적으로 굴지도 않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인성이 패괴 성품을 갈수록 강력하게 제한하게 된다. 이런 인성의 조건을 토대로 패괴 성품의 표출에 대한 구속력도 갈수록 강화되고 더 강력해진다. 그러면 점점 패괴 성품을 덜 표출하게 되며 표출 정도도 약해지고, 네가 하는 행동이나 드러내는 관점은 갈수록 긍정적인 사물과 진리 원칙에 부합하게 된다. 이런 현상과 표출이 바로 사람의 생명이 변화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하고 진리를 준칙으로 하여 사람과 일을 바라보거나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면 인성이 갈수록 정상화되고 패괴 성품의 표출이 점점 줄어들어 차츰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게 된다. 이는 하나의 선순환이다. 그러나 사탄의 논리대로 사람과 일을 바라보거나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면 인성이 크게 망가지고 타락하며, 패괴 성품은 갈수록 커지고 심각해질 것이다. 이는 악순환이다. 하나님 말씀대로 사람과 일을 바라보거나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것은 선순환이다. 반면 사탄의 논리대로 사람과 일을 바라보거나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면 결국 악순환의 삶과 테두리 안에서 끊임없이 맴돌며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선순환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가장 간단하고 직접적인 방법은 바로 인성의 결함과 패괴 표출부터 시작하여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하며, 하나님 말씀과 진리 원칙을 근거로 패괴 성품을 해결하여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성과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면 네 생명은 선순환에 들어갈 것이고 인성은 갈수록 정상화될 것이며 너는 패괴 성품을 점차 변화시키고 벗어 버릴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생명 진입의 과정이자 사람이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고 구원에 이르는 필연적인 과정이다. 물론 이는 한 측면의 진입하는 길이기도 하다. 우리가 말하는 이런 인성의 결함과 결점, 그리고 인품이 악랄하고 인격이 미천한 문제들이 자신에게도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면 마땅히 진리를 구해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과 진리를 실행하는 것으로 대체해야 한다. 그러면 선순환에 들어가게 되고 결국에는 인성이 변화할 뿐만 아니라 패괴 성품도 벗어 버릴 것이며, 네가 의지해 생존하는 패괴 성품의 뿌리도 변화하는 수확을 얻을 것이다. 이렇게 실행하면 구원에 이를 희망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진리를 구하고 실행하지 못한 채 속으로 ‘당신은 나더러 인색하다, 편집적이다, 뻔뻔하다, 의심이 많다고 하면서 내 인성의 결함과 결점을 지적하지만,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그냥 이렇게 살아갈 거고 변할 생각도 없으니까 마음대로 생각해! 어차피 난 손해 보기 싫고 이익만 챙기면 그만이야!’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사상 관점을 가지고 있다면, 불행하게도 너는 악순환의 구렁텅이에 빠져 영원히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결국 어떤 결말을 맞이하겠느냐? 너도 원치 않는 결말을 맞이할 것이다. 바로 네 패괴 성품이 영원히 네 생명이 되는 것 말이다. 그것이 평생토록 너를 단단히 얽매고 네 생각과 영혼 깊은 곳에 깊숙이 뿌리내려 너는 결코 벗어 버리지 못할 것이다. 벗어 버리지 못한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 구원받을 희망이 없고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 예비해 놓은 종착지에 네 몫이 없다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네 결말이다. 이런 결말을 보고 싶지 않다면 내가 말한 방법부터 시작해 진입하고 실행하여 선순환을 이루어야 한다. 그러면 마지막에는 틀림없이 수확을 얻게 될 것이다.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오늘은 많은 주제를 교제하지는 않았지만 적지 않은 내용을 다루었다. 이번 시간에는 일단 여기까지 교제하고 다른 측면의 주제와 내용은 나중에 이어서 교제하겠다. 또 보자!
2023년 12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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