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9) 제 1 부

‘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에 관한 첫 번째 실행 ― 내려놓기

하나님과의 간극과 하나님에 대한 적대감을 내려놓기

1. 하나님에 대한 관념과 상상 내려놓기 ― 하나님 사역에 대한 관념과 상상 내려놓기

6) 하나님은 사역으로 사람의 선천적인 조건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패괴 성품을 변화시킨다

최근에 교제한 주제는 상대적으로 관련 범위가 넓었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우리는 인성에 관한 더 구체적인 문제들과 사람의 생활에 관한 문제들을 다루었다. 또 지난번 예배 시간에는 자질 측면에 관한 주제를 교제했으며, 선천적인 조건, 인성과 패괴 성품을 어떻게 분별하는지에 대해서도 교제했다. 자질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교제를 마쳤으니 앞으로 그 내용을 근거로 사람의 자질이 어떤지 판단하면 된다. 이 밖에도 선천적인 조건, 인성과 패괴 성품, 이 세 가지 측면의 내용을 교제하면서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이 보이는 일부 모습과 표출에 대해 다루어 그것이 선천적인 조건인지, 인성인지, 아니면 패괴 성품인지 판단해 보았다. 선천적인 조건, 인성과 패괴 성품, 이 세 가지 측면을 교제함으로써 인류라는 피조물의 기본적인 구조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되지 않았느냐? (예전보다 더 많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생활 속에서 표출하는 이 세 가지 측면의 모습을 교제하는 이유는 피조된 인류가 선천적인 조건, 인성과 패괴 성품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남자든 여자든, 젊은이든 노인이든, 어느 인종들 사이에서 살고 어느 국가에서 살든, 혹은 어느 시기에 어떤 사회적 환경과 배경 속에서 살든, 외모가 어떻든 상관없이 피조된 인류라면 모두 선천적인 조건, 인성과 패괴 성품, 이 세 가지 측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달리 말하자면, 패괴된 인류에 해당하는 모든 사람은 다 선천적인 조건, 인성과 패괴 성품의 생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피조된 사람이라면 누구든 선천적인 조건, 인성과 패괴 성품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의 선천적인 조건은 하나님이 정한 것이다. 인성 가운데 일부는 선천적인 조건에 영향받고 일부는 가정에서의 성장 배경, 사회 환경, 그리고 사탄의 교육에 물들고 영향받는다. 그런데 패괴 성품은 사탄에게 미혹되고 패괴되어 생겨난 사탄의 성품이자 본성으로, 이 패괴된 본성 중 일부는 가정에서 비롯되고 일부는 사회에서 비롯되며 일부는 사람이 여러 환경에서 영향받고 물들기 때문에 생겨난다. 이렇게 보면 피조된 사람 그 누구도 사실 그다지 신비롭지 않다. 모두 선천적인 조건, 인성과 패괴 성품, 이 세 가지 측면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인지 분별하는 것은 사실 쉽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정하고 베푼 선천적인 조건을 제외하고는 사람의 인성이 어떤지, 그에게 어떤 패괴 성품이 있는지를 분별하기만 하면 된다. 그것이 그 사람의 본질을 결정하니 말이다. 이렇게 분별하면 아주 명확하다. 이런 것들을 근거로 한 사람의 본질이 어떠한지를 분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는 근거와 평가 기준을 가지고 분별하는 것이다.

⑥ 선천적인 조건, 인성, 패괴 성품의 여러 측면 모습

우리는 얼마 전에 선천적인 조건의 일부 구체적인 모습을 열거한 바 있는데, 그런 것들은 패괴 성품과는 관련이 없다. 선천적인 조건은 사람이 의지해 생존하는 근본이자 피조된 인류가 갖추어야 하는 일부 조건이다. 태어난 시간, 환경, 장소 등 출생에 관한 몇 가지 조건이든, 아니면 외모, 자질, 특기, 본능, 취미와 관심사, 성격 등의 측면이든 모두 사람의 선천적인 조건이다. 이런 선천적인 조건은 사람을 패괴시키지 않는 것은 물론, 그 안에 패괴 성품도 섞여 있지 않다. 종합해 보자면 선천적인 조건은 피조된 인류가 생존하고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기본 조건들이다. 인성이란 선천적인 조건을 갖춘 육체가 표출하는, 정상 인성의 양심과 이성에 관한 것들을 살아 내는 것이다. 반면 패괴 성품은 단순한데, 선천적인 조건과 인성을 갖춘 육적 생명이 사탄의 패괴를 거치면서 생겨난다. 다소 추상적이지 않으냐? 요컨대, 피조된 인류는 바로 패괴 성품에 의해 주도되고 기본적인 인성의 양심과 이성을 갖춘 피조물이다. 이런 피조물은 하나님이 정해 놓은 여러 측면의 선천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든 인류의 기본 구조이다. 이 중 선천적인 조건과 패괴 성품은 어느 정도 이해하기 쉽지만 인성은 상대적으로 추상적일 수 있다. 간단히 말하면 인성은 피조된 인류가 다른 생물과는 다르게 가지고 있는 특유한 속성으로, 이런 특유한 속성을 가진 피조물은 양심과 이성, 인품, 나아가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처럼 다른 생물과 구별되는 특유한 속성이 바로 인성이다. 이 인성에는 당연히 언어 표현 능력,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능력, 이해력, 새로운 사물을 받아들이는 능력, 창조주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능력, 하나님의 부탁을 받아들여 어떤 일이든 처리하는 능력이 포함된다. 이것이 바로 인성이다. 인성의 가장 간단한 이해는 바로 다른 생물과 구별되는 피조된 인류만의 고유한 속성이다. 이 속성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은 곧 양심과 이성이다. 이것이 가장 간단한 이해 방법이다. 여기에는 일부 세부 사항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인성 안에 갖추어야 하는 일부 인격과 인품, 긍정적인 사물과 부정적인 사물에 대한 변별, 긍정적인 사물에 대한 선택과 실행 등이다. 기본적으로 선천적인 조건, 인성과 패괴 성품, 이 세 가지 측면에서 사람은 이런 것들을 이해하고 인식해야 한다. 너희는 이런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예전에는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이런 문제를 처음 접했는데 이해가 되느냐? 닿을 수 있겠느냐?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우리가 다루고 있는 이 주제가 너무 심오하고 다소 추상적이며 마치 철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아 알아듣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없느냐? 최근에 선천적인 조건, 인성과 패괴 성품, 이 세 가지 측면의 일부 구체적인 모습을 교제했으니 방금 이야기한 것들이 추상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며, 이 세 가지 측면의 구체적인 모습이 무엇인지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밖에, 이 세 가지 측면 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명확히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 인성은 한 사람이 기본적인 선천적 조건을 갖춘 것을 토대로 표출해 내는 인격, 인품, 양심, 이성이다. 반면 패괴 성품은 선천적인 조건을 통해 인성 안에서 살아 내는 것으로, 사탄이 주입한 생명에 의해 주도되는 사람이 살아 내는 여러 가지 성품이다. 그리하여 사람이 어떤 선천적인 조건을 갖추었든 그것은 가장 기본적인 껍데기에 불과하며, 진정으로 사람의 본질을 주도하는 생명은 사탄이 사람에게 주입한 패괴 성품이다. 즉, 한 사람의 본질이 무엇인지 분별하려면 그가 표출해 내는 성품이 무엇인지 봐야 한다. 그가 표출해 내는 성품이 교만함, 강퍅함, 간사함, 사악함, 흉악함과 같은 패괴 성품이라면 인품이 선하든 악하든 그의 본질은 사탄에 속한다. 그의 생명은 사탄의 패괴 성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사람의 속성이 무엇인지는 내면에 지니고 있는 생명에 달려 있지, 선천적인 조건이 무엇인지에 달려 있지 않다. 만약 그의 생명이 사탄의 패괴 성품이라면 선천적 조건인 겉모습이 아무리 존귀하고 위대해 보여도 그의 본질은 사탄에 속하며, 그는 패괴된 인류의 일원에 불과하다. 반면 한 사람의 생명이 진리가 생명이 된다면 선천적 조건인 겉모습이 아무리 평범하고 정상적으로 보여도, 아무리 사람들에게 무시받을 만한 모습이어도, 심지어 겉보기에 인성의 연약함과 부족함, 결함을 좀 가지고 있어도 그는 구원받은 인류이고, 그의 본질은 사탄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속한다. 그렇게 본질이 변하며, 본질이 변하면 귀속도 변하여 그는 진리와 하나님에게 속하게 된다. 따라서 한 사람의 귀속과 본질, 최종적인 결말에 결정적인 작용을 하는 것은 선천적인 조건이 아니다. 물론 오로지 인성에 의해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그의 생명이 무엇인지를 봐야 한다. 만약 그의 생명이 처음부터 끝까지 줄곧 패괴 성품이 생명이 된다면 그는 사탄에 속할 것이고, 그렇다면 그는 사탄에 귀속될 것이다. 반면 어떤 사람이 진리가 생명이 된다면 그는 하나님에게 속할 것이고, 그렇다면 그는 하나님에게 귀속되며 하나님이 인류에게 예비한 아름다운 종착지로 돌아갈 것이다. 현재 사람에게 있는 여러 모습과 각 측면의 본질로 볼 때, 사람은 무엇에 귀속되겠느냐? 진리가 생명이 된 그런 생명이 있겠느냐? (없습니다.) 그럼 사람의 본질은 대체 무엇으로 결정되겠느냐? (그것은 무엇이 사람의 생명이 되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그렇다. 네 내면의 생명이 바로 네 본질이다. 네 내면의 생명이 변하여 패괴 성품이 아닌 진리가 생명이 된다면 네 본질은 진리와 하나님에게 속할 것이다. 물론 사람의 속성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은 여전히 사람일 뿐이고 그 속성도 여전히 피조된 인류에 속한다. 그러나 네 생명이 변화하기에 네 귀속에도 변화가 생긴다. 요컨대, 선천적인 조건은 곧 피조된 인류를 구성하는 일부 기본적인 조건이 되는 것이다. 즉, 네가 피조된 인류라고 불리는 한, 네게는 반드시 이런 선천적인 조건이 있어야 한다. 이는 기본적인 조건이다. 인성이란 한 사람이 선천적인 조건하에서 살면서 정상 인성을 표출하고 살아 내는 것이다. 패괴 성품은 패괴된 인류가 가진 고유한, 선천적인 조건과 인성이라는 껍데기에 가려져 살아가는 하나의 생명이다. 이 세 가지 측면의 연결과 구분, 그리고 그것들이 각각 피조된 인류에게 하는 역할이나 일으키는 작용은 이러하다. 우리는 얼마 전에 사람이 표출하는 선천적인 조건, 인성과 패괴 성품이라는 세 가지 측면과 관련된 모습들을 교제한 바 있다. 이 세 가지 측면과 관련된 내용은 우리가 교제했던 것들보다 훨씬 많다. 그러니 오늘도 계속해서 이 주제를 교제하겠다.

말을 더듬고 어눌하다

선천적인 조건, 인성과 패괴 성품의 여러 표출에 대해 지난번에 어디까지 이야기했느냐? 겁이 많은 것과 대담한 것까지 이야기하지 않았느냐? (그렇습니다.) 그 내용은 전부 교제했으니 이제 말을 더듬고 어눌한 것에 대해 살펴보자. 이는 어느 측면의 문제겠느냐? (선천적인 조건입니다.) 이는 선천적인 조건이자 신체에 있는 한 측면의 결함이다. 물론 말을 더듬는 양상은 다양하다. 어떤 사람은 한 글자를 길게 늘여 발음하고, 어떤 사람은 한 글자를 반복해서 말하느라 한참 동안 말 한 마디 온전히 내뱉지 못한다. 어쨌든 이는 선천적인 조건이고, 당연히 신체에 존재하는 한 측면의 결함이기도 하다. 이것이 패괴 성품과 관련 있겠느냐? (관련 없습니다.) 패괴 성품과는 관련이 없다. 만약 누가 “말을 어눌하게 하는 걸 보니 당신은 꿍꿍이속이 많군요!”라고 하거나 “말을 더듬는 걸 보니 어쩜 그렇게 교만하죠?”라고 한다면 그 말이 정확하겠느냐? (정확하지 않습니다.) 말을 더듬는 결함이나 결점은 사람이 가진 패괴 성품과는 관련이 없다. 따라서 말을 더듬는 것은 선천적인 조건이자 사람의 신체에 존재하는 한 측면의 결함일 뿐, 분명 사람의 패괴 성품과는 관련이 없다. 사람의 패괴 성품과는 그 어떤 상관도 없는 것이다. 똑같이 말을 더듬지만 상황이 다른 경우도 있다. 어떤 사람은 평소에는 말이 어눌하지 않은데 질문만 하면 우물쭈물한다. 한참 걸려 한 마디를 하는데 그마저도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 없다. 그는 늘 말을 충분히 구체적으로 하지 않고 항상 무슨 뜻인지 추측하도록 하며 상대가 추측한 대로 받아들이게 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냥 웃어넘긴다. 어쨌든 질문에 직접 대답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그에게 “어디 있다 왔어요?”라고 물으면 그는 “저… 저는… 그냥 좀 돌아다니다가….”라고 말해서 대답을 듣고 나서도 그가 어디에 있다 왔는지 알 수 없다. 혹은 “그 사람의 자질이 어떤지 한번 평가해 볼래요?”라고 물으면 그는 “그 사람… 자질이요… 다들… 우리는… 모두… 딱히 잘… 모르겠네요.”라고 답한다. 그는 왜 말 한 마디도 이렇게 띄엄띄엄하겠느냐? 이것이 말을 더듬고 어눌한 것이겠느냐?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럼 그는 왜 이렇게 말하겠느냐? 말을 더듬고 어눌하기 때문이 아니라면 무엇 때문이겠느냐? (패괴 성품에 지배된 것입니다.) 이는 분명 한 가지 성품의 표출이다. 즉, 그는 일을 표현하거나 처리할 때 한 가지 성품에 지배된다. 그 성품은 그의 생명의 일부로서 그의 말과 행동을 지배해 한 가지 목적을 이루려 한다. 어떤 목적이겠느냐? 실상을 감추어 네게 알려 주지 않으려는 것이고, 일에 대해 명확히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왜 그렇게 하겠느냐? 실상을 말하면 자신이 그에 따른 결과를 감당해야 하거나 남에게 미움을 사거나 자기에게 불리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결과를 감당하고 싶지 않아서 네게 실상을 알리려 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패괴 성품에 지배받아 그가 말하고 행동하는 일종의 방식이자 스타일이다. 그가 이렇게 하도록 지배하는 그 생명은 그의 본성을 대표한다. 이는 그가 진리를 전혀 갖추지 않았고 진리 원칙대로 말하지도 않는다는 증거이다. 그럼 진리 원칙대로 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라는 하나님 말씀처럼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하겠느냐?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어떻게 하느냐? 옳아도 옳다고 하지 않고 아니어도 아니라고 하지 않는다. 그는 어떤 방식으로 말하느냐? 그는 말을 얼버무리고, 간사하고 사악한 방식으로 자신의 뜻을 표현하여 스스로를 지키려는 목적을 이룬다. 사탄이 가르치고 주입한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고 표현하는 것, 이는 분명 사탄의 패괴 성품이다. 이는 단순히 인성 측면의 표출이 아니라 사탄의 패괴 성품에 지배받아 나타나는 일 처리 방식의 표출이다.

자극적인 것을 좋아한다

이어서 다룰 또 다른 모습은 바로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고 평범한 것을 싫어하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 어떤 생활 방식을 선택하든 목적은 결국 자극을 얻는 것이다. 이것이 무슨 문제겠느냐? 우선, 이것이 선천적인 조건 중 취미와 관심사겠느냐? (그렇습니다.) 정말 그러냐? 정말 그런지 잘 생각해 보아라.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는 것을 사람의 이성 면에서 보면 정상적이냐? (비정상적입니다.) 그럼 선천적인 조건으로 분류하는 것이 적절하냐?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보면 적절하지 않다. 이 모습은 어느 측면의 문제에 해당하느냐? 만약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는 것이 패괴 성품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어떤 패괴 성품이냐? 교만함이냐, 간사함이냐, 아니면 흉악함이냐? (모두 아닙니다.) 이는 어느 측면의 패괴 성품과도 관련이 없다. 그럼 이는 무슨 문제겠느냐? (인성의 문제입니다.) 인성에 있는 어느 측면의 문제겠느냐? 행실이 단정하지 못한 것 아니냐? (그렇습니다.) 처신이 올바르지 않고 행실이 단정하지 못하며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고 분수를 모르는 것이다. 분수를 모르는 것은 정상 인성이 없는 것이다. 이는 양심과는 관련이 없으며, 주로 정상 인성의 이성이 없는 것이다. 그는 올바르게 분수를 지키면서 한 가지 일을 맡거나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고, 어른스럽게 행동하지도 못하며, 생각이 성숙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처신하는 스타일이나 행동 방식까지 미성숙하다. 이는 최소한 인성에 존재하는 한 측면의 결함이다. 물론 이는 인품 문제라고까지는 할 수 없고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일종의 태도와 관련된다. 신선하고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며 무슨 일을 하든 끈기가 없어서 오래 지속하지 못하고, 분수를 모르고 올바르지 않으며, 늘 자극을 찾으며 새로운 것을 하려 하는 이런 문제는 인성의 결함에 해당한다.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는 이 부류는 정상 인성의 이성이 부족하며, 성인이 마땅히 감당해야 하는 책임과 사역을 잘 감당하지 못한다. 어떤 사역을 하든 시간이 흘러 신선함이 사라지면 싫증을 내고 의욕을 잃는다. 그저 신선하고 자극적인 느낌만 찾을 뿐, 자극이 없으면 삶이 평범하게 느껴지고 심지어는 정신적으로 공허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느낌을 받으면 분수를 모른 채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일만 찾는다. 늘 독특한 일들만 하려 하고, 어떤 사역을 하거나 일을 처리할 때 따분하고 재미없다고 느끼면 더 이상 하려 하지 않는다. 설사 해야 하는 사역이거나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사역이라 하더라도 지속하지 못한다. 너희도 알다시피 이방인 중에는 늘 마약을 복용하는 자들이 많다. 이유가 무엇이든 마약을 복용함으로써 자극적인 느낌을 얻는 것을 즐기고, 정상인을 넘어서는 비이성적인 느낌을 찾는 것이다.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마약을 복용하여 자극을 찾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처신할 때 정상인의 이성을 갖추고 있지 않다. 또 마음속으로 늘 비현실적이고 초자연적인 느낌을 추구하여 자신의 생활 방식을 선택하는데, 이는 몹시 위험하다. 이런 부류는 흔히 겉보기에는 큰 문제가 없는 것 같지만 분별하지 않는다면, 혹은 이 부류와 이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한다면 ‘이 사람은 단지 성품이 불안정해서 30, 40대가 되었는데도 어린아이처럼 미성숙한 거야.’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사실 이 부류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자극을 찾는다. 그는 무슨 일을 하든 어른스러운 생각과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고 어른스러운 일 처리 방식과 태도도 갖추고 있지 않다. 따라서 이런 부류는 아주 골치 아프다. 그는 인성이 나쁘지 않고 인품도 그다지 악랄하지 않을 수 있지만 인성에 이런 측면의 결함이 있기 때문에 큰 사역, 특히 일부 중요한 사역을 능히 감당하지 못한다. 그에게 진리를 교제하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다 알지만 실행을 못 하는 거예요.” 그는 올바르게 분수를 지켜 가며 정상인의 생각과 태도를 가지고 생활하거나 사역하지 못하는 데다가 속으로 늘 분수를 모른다. 이런 모습을 보인다면 아주 골치 아픈 사람이다.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는 모습에 대해서는 여기까지 교제하겠다.

성경은 ‘개역한글’을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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