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하신 하나님 말씀 낭송 <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상)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의 토대입니다. 믿음이 약해져만 가는 당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을 갖고 싶지 않나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은 당신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과의 교제는 언제든...
하나님의 현현을 갈망해 찾아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사람의 자질을 판단하는 열한 가지 능력 중 마지막 한 가지인 창의력에 관한 교제를 마쳤다. 이 열한 가지 능력에 대한 교제를 듣고 너희는 본인의 자질이 어떤지 조금은 분명해졌느냐? (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너희는 판단할 수 있겠느냐? 자신의 자질이 과연 어떤지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느냐? 자신의 자질이 좋은지, 평범한지, 부족한지, 아니면 자질이 없는지를 확정하는 데에도 판단 기준이 있다. 한 측면만 볼 것이 아니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그렇다면 한 사람의 자질이 어떤지를 판단하려면 어떤 측면들을 살펴보아야 하느냐? 앞서 교제한 열한 가지 능력에 해당하는 모습을 볼 때, 한 사람의 자질이 좋다고 판단하려면 적어도 몇 가지 중요한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 열한 가지 능력 중 주로 어떤 능력들을 갖추어야 한 사람의 자질이 좋다고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아라. 판단할 수 있겠느냐? 뒤에서부터 살펴봐야 한다. 자질이 좋으려면 가장 기본적으로 창의력을 갖추어야 하고, 그다음이 감식력, 의사 결정 능력, 대처 능력이다. 그다음은 변별력, 판단력, 인지 능력이고, 마지막이 수용 능력, 받아들이는 능력, 이해 능력, 그리고 학습 능력이다. 순서가 이렇게 된다. 왜 역순이겠느냐? 우리가 처음에는 낮은 순으로 나열했지만, 자질이 좋은 사람을 판단할 때는 높은 순으로 순서를 매긴다. 자질이 좋은 사람은 가장 기본적으로 창의력을 갖추고 있다. 이는 의사 결정 능력, 감식력, 변별력을 지닌 토대 위에서 갖출 수 있는 능력이다. 인지하고, 변별하고, 판단할 수 있고, 또 이해 능력도 갖추고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너는 자질이 좋은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리더십이 있는 사람이고, 의사 결정 그룹에 들어가 리더가 될 수 있는 인재이며, 한 분야의 사역을 담당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자질이 좋은 사람이다. 자질이 보통인 사람은 창의력에서 학습 능력에 이르기까지 각 측면의 능력이 모두 보통이며, 일의 효율과 성과도 보통이다. 이런 사람이 바로 자질이 보통인 사람이다. 자질이 보통인 사람은 주로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 원칙을 그다지 심도 있고 정확하게 받아들이거나 이해하지 못하고, 시행하거나 실행할 때 늘 허점과 편차가 있으며, 이것저것 잘 빠뜨리고 잊어버리는 등 전체적인 면을 두루 돌보지 못한다. 예를 들어 그가 교회 리더로 선출되면 사역 전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복음 사역을 담당할 때는 그것만 신경 쓰느라 다른 사역은 챙기지 못한다. 복음 사역은 일으켰지만, 문서 사역, 영화 제작 사역은 신경 쓸 겨를조차 없다. 왜 그렇겠느냐? 자질이 너무 평범해서 한 측면의 사역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다. 한 측면의 사역은 간신히 감당해 내긴 하지만, 다른 사역까지 챙기라고 하면 그는 우는소리를 하며 애를 먹고, 어느 사역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사역을 할 때도 누군가 항상 감독하고, 일깨워 주고, 검사하며 검토해 주어야 하고, 누군가 항상 옆에서 도와주고, 진리를 교제해 주며, 사역 원칙과 범하기 쉬운 각종 편차와 허점을 거듭 강조해 주어야 한다. 항상 누군가 일깨워 주어야 하는 것이다. 왜 늘 누군가 일깨워 주고 지적해야 하느냐? 사역 경험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질이 보통이라서 그렇다. 앞으로 발생할 일이나 문제에 대해 생각하지 못하거나 생각할 수 있는 것에 한계가 있다. 따라서 늘 누군가 옆에서 지도하고, 검토하며, 점검해야 하고, 수시로 물어봐야 한다. 물어보면 그는 이 사역을 하지 않았거나, 저 사역을 잊어버렸거나, 그것도 아니면 어느 측면을 소홀히 했거나 사역 방법을 모르는 데다가 누구에게 물어보고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도 몰라서 계속 기다리고만 있다. 결론적으로 그가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은 아주 평범한데, 이 평범함은 그가 얼마나 의지가 있고, 얼마나 굳세고, 얼마나 사역하기를 좋아하고, 얼마나 고생하고 대가를 치를 수 있는지와는 관계가 없다. 이런 것들과는 관계없이 그저 그의 사역 능력이 평범하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하지만 자질이 좋은 사람은 사역할 때 큰 잘못이 거의 없고, 원칙과 방향, 큰 틀이 대체로 정확하다. 종종 사소한 세부 사항을 소홀히 하기도 하지만, 그 세부 사항이 사역 전체의 효율과 성과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이런 사람이 바로 자질이 좋은 사람이다. 물론 완벽한 사람은 없다. 즉, 자질이 좋은 사람도 사역하면서 사소한 허점이 있거나, 잠깐 소홀히 할 때가 있고 혹은 최근 어떤 사역 때문에 바쁘면 다른 사역을 조금 소홀히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자질을 놓고 볼 때, 그는 얼른 바로잡아 전체 사역이 별문제 없이 대체로 진리 원칙이나 사역지침, 행정 법령의 규정에 따라 질서 있게 진행되도록 상황을 제어하고 통제한다. 설령 그의 사역 범위 내에서 적그리스도나 악인이 나타나 교란하더라도 대처 능력이 있어서 빠르게 처리할 것이다. 그는 교회 사역이 신속하게 정상 궤도에 진입하고 형제자매들의 본분 이행 환경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최대한 빨리 일을 처리하고 해결한다. 자질이 좋은 사람은 돌발 상황이 생겨도 처리할 수 있고, 설령 처리해 보지 않았더라도 어떻게 원칙을 구하는지 안다. 그에게는 변별 능력과 판단 능력, 인지 능력이 있기 때문에 원칙에 따라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할 것이다. 즉, 그에게는 절대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있으며, 자신의 변별하고, 대처하고, 판단하는 능력 덕분에 돌발 상황을 신속히 해결하고 진정시킴으로써, 교회 사역이 정상적이고 질서 있게 진전되도록 지키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킬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일이 빈번히 나타나거나 장기간 진정되지 않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 아울러 그의 처리 원칙과 궁극적인 성과는 모두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다. 높은 효율과 좋은 효과 이 두 가지는 자질이 좋은 사람이 사역하면서 이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질이 보통인 사람은 교회 사역이나 생활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를 처리하는 게 조금 벅차고 힘들다. 문제를 비효율적이고 굼뜨게 처리하기 일쑤라 하루이틀이면 처리해야 할 문제도 간파하지 못해 기다리면서 속으로 3, 5일 고민하다 보니 즉시 결단을 내려 상황을 전환시키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그저 일이 계속 악화되도록 내버려두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는 사실을 확인하고 관련자를 찾아 상황을 파악하거나, 문제를 정리해서 윗선에 보고하는 등의 간단한 사역밖에 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은 이틀이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그에게는 보름이 걸릴 수도 있다. 결국 문제는 처리되어도 시간을 너무 끌어서 교회 사역은 일정 부분 손실을 입게 된다. 그러는 동안 일부 사람들이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어 떠나거나, 제물에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고, 특정 사역은 문제가 제때 해결되지 않아서 손실이 따를 수도 있다. 비록 배상이나 보상이 뒤따르고 최종적으로 처리해야 할 사람도 처리하겠지만, 성과나 효율 면에서 볼 때 너무나 평범하다. 이것은 마치 불을 끄는 일과 같다. 자질이 좋은 사람은 진화 요령을 알아서 성과가 좋고 경제적 손실도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자질이 보통인 사람은 방법이 부적절하고, 비상조치도 취하지 않으며, 동작도 굼떠서 즉각적으로 핵심을 파악하여 문제를 해결할 줄 모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큰 손실을 초래한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제가 배상하겠습니다.” 단지 경제적 손실뿐이라면 배상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하지만 큰 붉은 용의 체포가 닥쳤을 때 네가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교회 사역에 손실을 가져왔다면 배상할 수 있겠느냐? 사역과 시간을 지연시킨 대가를 네가 배상할 수 있겠느냐? 자질이 보통인 사람은 돌발 사건이 발생할 경우 대처 능력과 판단력, 변별력, 나아가 의사 결정 능력까지 모두 보통이기 때문에 문제 처리가 더디고, 효율도 극히 낮으며, 비상조치가 미흡해 종국엔 사역 성과가 불만족스럽고, 사역에 손실을 입힌다. 결국 문제가 처리되더라도 시간이 지체되고 효율이 떨어졌기 때문에 손실인 것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의 자질을 보통이라고 규정한다. “그건 불공평합니다. 힘도 쓰고, 노력도 했고, 문제도 처리했는데, 어찌 자질이 보통이라고 하십니까?”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일은 기분과 감정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사실에 입각해서 공정하게, 그리고 사람의 자질이 이를 수 있는 수준에 비추어 말하자면, 네 자질은 보통에 해당한다. 왜 보통에 해당하느냐? 너보다 자질이 좋은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인성 면에서 비슷하더라도 자질이 좋은 사람의 문제를 처리하는 효율과 성과가 너보다 낫고 손실은 너보다 작기에 네 자질을 보통이라고 규정할 수밖에 없다.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이런 사람의 자질을 보통이라고 규정하는 이유는 자질이 좋은 사람이 일하는 효율과 성과가 그보다 낫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의 자질을 보통이라고 하는 것이고, 이는 공평하고 합리적이다. “그 사람은 진심으로 임했어요. 그 일을 할 때 무척 마음을 기울였고, 또 많은 고생을 하고 대가를 치렀습니다.”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얘기가 무슨 소용이냐? 그것이 그의 자질이 좋다는 뜻이냐? 그의 인성과 정서, 바람이 어떻든 자질만 놓고 볼 때 이런 모습이 바로 보통 자질의 모습이다.
자질이 부족한 사람은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 각 측면의 능력을 볼 때, 자질이 부족한 사람은 상대적으로 학습 능력과 이해 능력은 조금 갖추었다. 즉, 어떤 분야의 지식과 이론, 업무, 학술을 배울 때는 확실하고 정확하게 기억하고, 핵심 내용을 모두 노트에 기록한다. 교육을 받았었기 때문에 이해 능력이 그렇게 떨어지지 않고 보통 수준에는 이를 수 있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능력 다음 단계인 수용 능력, 변별 능력 등 몇 가지 능력은 갖추지 못했다. 그들의 능력이 그저 이론 지식, 기술 업무를 문자적으로만 배우고 이해하는 수준에 머물기 때문에 그들은 현실 생활에서 사람을 바라보거나 일을 처리하고, 문제를 해결하며, 사역지침을 시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들의 능력은 그저 학습 능력과 이해 능력에만 머물러 있고 받아들이는 능력에는 이를 수 있지만 수용 능력에는 이르지 못한다. 수용 능력을 갖춘 사람은 이 방면의 원칙과 이론, 원리를 현실 생활의 어떤 실물과 대조해 볼 수 있는지, 어떤 것들이 실용적이어서 적용이 가능하고 어떤 것들이 실용적이지 않은지, 어떤 것들이 자신에게 적합하고 어떤 것들이 적합하지 않은지 알지만, 자질이 부족한 사람은 이런 것들을 간파하지 못한다. 예를 들면, 인터넷에는 온갖 건강 상식, 운동 교재가 있어서 자질이 부족한 사람도 보고 나면 어떻게 운동하고 건강을 관리하는지 배울 수 있다. 그는 학습 능력, 이해 능력, 받아들이는 능력을 모두 갖추고 있고, 또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을 줄도 안다. 하지만 자질이 부족한 사람은 구체적으로 그중 어떤 것이 실용적이고 효과적이어서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것인지 변별하지 못하고, 수용 능력 단계에는 이르지 못한다. 오늘 인터넷에서 시금치두부찜이 보양식이라고 하면 그는 그것을 매일 먹는다. 하지만 한동안 먹고도 효과가 어떤지, 인터넷에서 말한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 며칠 후 인터넷에서 또 시금치와 두부가 상극이라고 하면 그는 다시는 시금치두부찜을 만들지 않는다. 시금치와 두부가 과연 몸에 좋은지 아니면 상극인지 그는 알지도 못하고, 물어보지도 않으며, 그저 남들이 하는 말을 맹목적으로 따를 뿐이다. 지금은 정보가 발달해서 온갖 잡다한 정보가 넘쳐난다. 그는 옳고 그름과 맞고 틀림을 변별할 줄 모르고, 보고 듣는 게 무엇이든 자기가 들어본 적 없는 새롭고 심오한 것이면 모두 좋은 것으로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인터넷에서 초콜릿이 심장에 좋다고 하면 매일 초콜릿을 먹어서 결국 몸에 열이 오르고, 입에 물집이 잡히며, 눈도 충혈되고, 이명 증상까지 생긴다. 사실 적당량을 먹으면 심장에 좋다고 한 것인데, 그는 ‘적당량’이라는 단어는 까맣게 잊은 채 핵심을 놓쳐 결국 화를 자초하고 만 것이다. 며칠 후 인터넷에 또 ‘초콜릿은 심장에 좋지 않고, 많이 먹으면 살이 찌기 쉽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그러면 변별할 줄 아는 사람은 초콜릿을 많이 먹으면 몸에 좋지 않지만 적당량을 먹는 것은 괜찮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는 변별하지 못해서 그 말을 듣고 초콜릿을 한 조각도 입에 대지 않는다. 이쪽 아니면 저쪽, 극과 극을 오가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기가 무척 유행에 민감하다고 생각한다. ‘난 인터넷에서 좋다고 하면 먹고 좋지 않다고 하면 안 먹어. 난 시류를 따르는 사람이거든.’ 사실 그는 아무런 변별 능력이 없는 사람, 남들만 따라 하는 어리석은 인간이다. 인터넷에는 없는 정보가 없고, 대부분의 주장은 정확하지 않다. 물론 적게나마 옳은 정보나 주장도 있으니 너는 변별할 줄 알아야 한다. 어떤 정보를 받아들일지는 본인에게 필요한가, 본인에게 유익이 되는가, 이 방면의 정보가 긍정적인가를 근거로 판단해야 하는데, 자질이 부족한 사람은 이런 변별 능력이 없다. 자질이 부족한 사람은 수용 능력 다음 단계에 해당하는 각각의 능력에 이르지 못한다. 단지 사물에 관한 글이나 이론, 지식을 배우고 이해하는 차원에 머물고, 받아들이는 능력이 조금 있을 뿐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각 분야의 주장이 맞는지 틀리는지, 가치나 의의가 있는지 없는지를 변별할 때, 자질이 부족한 사람은 이 측면의 판단력과 변별력이 없다. 그다음 단계인 대처 능력 역시 자질이 부족한 사람은 갖추고 있지 않다. 그는 현실 생활, 혹은 생존의 길에서 나타나는 각종 문제를 본인이 알고 있거나 파악하고 있는 진리 원칙에 근거해서 처리할 줄 모른다. 그가 글귀와 도리를 얼마나 얘기할 수 있든 하나같이 공허하고 실제적이지 않다. 그는 주변에서 발생하거나 혹은 생존의 길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자신의 얕은꾀로 대응하며, 손해만 보지 않으면 그만이다. 자신이 파악하고 있는 원칙을 체험하거나, 느끼거나, 체득하거나, 검증하지 못한다. 그다음 단계인 인지 능력 역시 자질이 부족한 사람은 갖추고 있지 않다. 그는 어떤 문제가 생기든 이를 정리하여 결론을 도출할 줄 모르고, 사물 자체의 본질, 그 이면의 근원 및 그것이 야기하는 결과를 인식할 줄 모른다. 자질이 부족한 사람은 이런 것들을 전혀 생각할 줄 모르고, 더욱이 진리, 혹은 자신이 파악하고 있는 각종 사물의 원칙과 법칙을 적용해서 이런 문제들을 마주하고 처리할 줄 모른다. 이런 부류는 자질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각이 단순하고 얄팍하며, 사물을 보는 관점에 편차가 있다. 뿐만 아니라 더 골치 아픈 것은 그가 어떤 관점을 가져야 사물을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그는 어떤 사물의 본질도 간파하지 못하고, 어떤 사물의 맞고 틀림, 옳고 그름도 판단할 줄 모른다. 판단할 줄 모르니 변별할 줄 모르고, 그렇기에 당연히 어떤 대처 능력도 없으며, 의사 결정 능력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자질이 부족한 사람도 자기가 매일 뭘 먹고 입어야 하는지 알고, 자기 생활은 돌볼 줄 압니다.” 자질이 있다는 것은 그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자질이 있다는 것은 사람이 생활 속에서, 그리고 생존의 길에서 각종 본질적인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깨달은 진리 원칙에 따라 그것을 처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생활하면서 만나는 각종 문제란 어떤 사람을 판단하거나 어떤 일을 처리하는 것과 같은 경우를 말한다. 생존의 길에서 만나는 문제란 근본적인 옳고 그름에 관한 문제에 직면하거나, 하나님이 배치해 준 환경이나 하나님의 주재에 직면하거나, 혹은 미래의 종착지에 관계되거나 앞으로의 길을 선택하는 상황에 직면하는 경우 등을 가리킨다. 이런 것들이 모두 생존 측면의 문제에 해당한다. 생활이나 생존의 길에서 발생하는 문제 앞에서 이를 처리할 능력이 전혀 없는 사람은 의사 결정 능력이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사상이 비어 있어서 이들에게 감식력을 논하는 것은 다소 부적절하다. 물론, 자질이 부족한 사람은 마지막 단계인 창의력에 더더욱 이를 수 없다. 이를테면 사자와 호랑이 중 누가 동물의 왕인가를 논할 경우, 이 둘에게는 적어도 후보가 될 자격이 있다. 사자와 호랑이 양쪽 다 야생 짐승들 중에 제왕의 풍모와 능력을 갖추었고, 저마다 뛰어난 면이 있기에 양쪽이 겨루면 우열을 가리기가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모두 동물의 왕으로 뽑힐 자격이 있다. 만약 네가 뿔말, 사슴, 야크를 사자나 호랑이에 견주면서 누가 동물의 왕인지를 논한다면 비웃음을 살 것이다. 왜 그러겠느냐? (이 동물들은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차원이 다르고 체급이 모자라서 비교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자질이 부족한 사람은 아무 생각이 없고, 어떤 사람이나 일, 사물을 대하든 사상 차원에서 평가하고 감상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이런 부류를 두고 감식력이 있고 없고를 논할 수 없다. 감식력은 비교적 고차원적인 능력으로 자질이 좋은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얘기이니 창의력은 더더욱 자질이 좋은 사람에게 해당되는 얘기일 것이다. 창의력은 한 사람이 현실 생활에서 어떤 일을 실제적으로 다루는 능력을 보는 것이다. 자질이 부족한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 생각과 절차가 없고 일 처리 능력도 전혀 없기 때문에 창의력을 논할 처지가 못 된다. 그렇다면 자질이 없는 사람들은 어떤 능력을 갖추었느냐? 자질이 없는 사람들 대다수가 지닌 한 가지 특징은 바로 아무런 특기가 없다는 점이다. 표현 능력도 없고, 기술 업무에 관련된 특기도 없다. 청소와 같은 가장 단순한 일을 할 때에도 민첩하고 간결하게 처리하는 방법을 모르고 절차와 순서도 모른다. 간단한 일 하나만 보아도 자질이 없는 사람의 특징이 과연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다. 자질이 없는 사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바로 그 어떤 능력도 없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그들은 자신의 인간적인 생활, 의식주조차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하나같이 엉망이고, 아무런 원칙도 없다. 자질이 없는 이런 부류에 대한 가장 정확한 표현은 바로 어떤 일도 해내지 못하고 오로지 의식주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게 다라는 것이다. 자질에 따른 각 부류의 여러 가지 모습, 그리고 그들이 갖춘 자질과 능력의 특징을 모두 확실하게 설명했으니, 너희가 알아들었다면 자질에 따른 각 부류의 사람을 어떻게 분별하고 대해야 할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클릭하세요! 하나님에게서 온 기쁜 소식이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게 임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의 토대입니다. 믿음이 약해져만 가는 당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을 갖고 싶지 않나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은 당신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과의 교제는 언제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