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5) 제 4 부

일을 세심하고 진지하게 대하는 것

부주의는 인성의 결함이다. 그렇다면 일을 세심하고 진지하게 대하는 것, 중심과 중점을 파악하고,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발견하고,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것은 인성의 장점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세심한 사람은 일 처리 태도가 비교적 올바르고, 일을 매우 세심하고 진지하게 대하며,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힐 수 있고, 성급하게 굴지 않는다. 이는 인성의 장점이다. 사람이 이런 인성의 장점을 갖췄다면 풀타임 사역을 담당할 수 있겠지만, 만약 그의 일 처리 속도가 너무 느리고 사역 효율이 낮다면, 성과가 썩 좋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무엇과 관련되겠느냐? 선천적인 조건 중 자질과 관련이 있다. 세심한 사람은 모두 사역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그 관점은 틀렸다. 어떤 사람은 일을 너무 세심하게 해서 신경이 곤두서 있다. 예를 들어 보자. 그는 채소를 씻을 때 채소잎의 앞면을 씻은 다음에 뒷면을 씻고, 시든 잎은 모두 제거하고, 벌레 구멍도 전부 도려내며 아주 깨끗하게 한다. 이렇게 세심하게 일하는 것이 인성의 장점이기는 하지만, 원칙 없이 너무 자질구레한 것까지 신경을 쓴다면, 그럴 필요는 없고 비효율적일 것이다. 이는 자질이 부족해서 일을 완수하지 못하고 사역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반면 어떤 사람은 일을 세심하게 하면서도 원칙, 중심, 중점을 파악하고, 행동이 빠르고 민첩하며, 판단도 빨라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자질이 좋은 것이다. 일 처리가 세심하다고 해서 일 처리가 효율적이라는 것은 아니며, 일 처리 성과가 좋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앉아 있을 수 있고, 침착하며, 성급하지 않고, 큰소리치지 않고, 덤벙대지 않는 것일 뿐이다. 이는 기껏해야 인성의 장점에 불과할 뿐, 자질이 좋다고까지는 할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일 처리가 매우 세심하고, 진지해 보이며, 서두르거나 허둥대지 않고, 매우 침착하게 행동하지만, 일 처리가 비효율적이고, 일의 경중과 완급을 구분할 줄 모르며, 중요하지 않은 일을 끝도 없이 붙잡고 있어서 보는 사람이 조급해지고 화가 나서 발로 차 버리고 싶을 정도다. 일을 너무 느리게 하는 데다가 효율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으니, 정말이지 쓸모없는 놈이다! 정상적인 생존 능력이 있는 사람은 그보다 10배나 20배 더 빠르게 일한다. 그는 너무 느리게 일하며, 아무리 일을 많이 해도 규칙과 원칙을 찾지 못하고, 요령도 없고, 효율도 낮다. 한 시간이면 할 수 있는 일을 온종일 하고, 하루면 끝나는 일을 닷새 동안 하며, 닷새면 끝나는 일을 열흘 내내 해서 보고 있으면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어떤 여자는 일 처리를 질질 끈다. 잠시 후에 일하러 나가야 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기어이 머리를 감으려 하는데, 머리를 감는 것도 요령이 없어서 머리카락을 한꺼번에 씻지 않고 한 가닥씩 씻는 바람에 30분이 지나도 다 끝이 나지 않는다. 이는 정신병 아니겠느냐? 머리를 감느라 정작 중요한 일에는 지장을 준 것이다. 그녀는 일이 급할수록 더더욱 조급해하지 않으며, 중요하지 않은 일에 전념하다가 큰일에 지장을 주어도 조급해하거나 속을 태우지 않는다. 네가 재촉하면 또 많은 이유를 대며 “제가 이 중요한 일들을 끝내지 않으면 되겠어요?”라고 한다. 너는 이런 사람을 보면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그를 발로 차 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것이다. 이런 사람은 발로 차 버려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일이 있어도 시킬 필요가 없다. 일을 너무 느리게 하고, 너무 어리석으니 말이다! 너희는 이처럼 느릿느릿 일하는 사람을 보면 조급해지지 않으냐? (조급해집니다.) 그가 “저는 일을 세심하게 합니다!”라고 하기에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 세심함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다른 사람들도 너보다 그렇게 부주의하지 않으며, 너보다 일을 더 많이, 그리고 잘 한다. 너의 그런 세심함이 성과를 내느냐? 이것이 핵심이다. 일 처리가 세심할 뿐만 아니라 효율과 성과도 좋아야만 그 세심함이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일 처리가 세심하기만 할 뿐 결과적으로 성과도 없고 효율도 낮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아무 소용이 없다!” 어떤 사람은 옷을 매우 세심하게 만들지만, 늘 옷의 치수를 정확하게 맞추지 못하고, 사람이 옷을 입었을 때 잘 맞는지도 정확히 보지 못한다. 소매가 긴지 짧은지도 알지 못하고, 품이 큰지 작은지도 알지 못하며, 소맷부리의 표준 폭이 얼마인지도 알지 못하고, 옷깃이 적당한지도 알지 못한다. 이런 사람이 만든 옷은 절대 기준에 맞을 수 없다. 만약 세심하면서도 원칙이 있다면, 이는 정말 인성의 장점일 것이다. 하지만 세심하기만 하고 원칙이 없어서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고 늘 중요하지 않은 부분에만 관심을 쏟으며 쓸데없는 고민을 한다면, 이는 사람들을 짜증 나게 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세심함’이라는 말을 긍정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모든 상황에서 세심함이 장점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 어떤 사람의 세심함은 원칙이 없는 쓸데없는 세심함으로, 이는 세심함이 아니라 신경이 곤두서서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며, 자질이 부족해서 일 처리 요령과 원칙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보기에 세심한 모습이나 일 처리 방식이 인성의 장점이 될 수는 있지만, 동시에 그 사람의 자질이 어떤지에 따라 구분해서 바라봐야 한다. 만약 자질을 따지지 않는다면, 일 처리 태도가 세심한 것만으로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자질도 있고 일 처리 또한 효율적이며 원칙을 준수할 수 있는데 거기에 세심하기까지 하다면, 이는 금상첨화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인성의 장점이다.

과시하기 좋아하는 것

또 다른 모습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과시하기 좋아하는 것, 이는 어느 측면의 문제겠느냐? (패괴 성품 측면의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보자. 타자를 매우 빠르게 치는 누군가가 자신에게 이런 특기가 있음을 알리기 위해 일부러 큰 소리를 내며 자판을 친다면, 이는 ‘타자 치는 리듬만 들어도 내가 얼마나 타자가 빠른지 알겠지!’라는 의미이다. 어떤 대졸자가 늘 ‘우리가 대학 다닐 때’, ‘대학 교수님’, ‘대학 캠퍼스’와 같은 말을 한다면, 이는 어떤 모습이겠느냐? (과시하는 것입니다.) 과시하는 것이다. 새 차를 산 어떤 사람은 자기 차가 고급 브랜드라는 것을 남들이 모를까 봐 차에서 내린 후에도 떠나지 않고 차 유리창에 손자국이 있는지 차 도장에 긁힌 자국은 없는지 확인한다. 왜 계속 차 앞에서 맴돌겠느냐? 바로 자기가 그 차의 주인임을 남들에게 알려 주기 위함이다. 이는 어떤 모습이겠느냐? (과시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고급 핸드폰을 손에 들고는 남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 분명 핸드폰 배터리가 없는데도 통화하는 척한다. 이는 무엇이겠느냐? (과시하는 것입니다.) 왜 과시하려고 하겠느냐? 허영심 때문 아니겠느냐? 어떤 사람은 밍크코트를 입고는 따뜻한 실내에 들어가도 벗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그에게 “안 더운가요?”라고 물어보면, “안 더워요. 밍크코트 입어서 따뜻해요!”라고 대답한다. 남들이 밍크코트를 못 알아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옷을 벗을 때도 굳이 브랜드를 드러내며 다른 사람들에게 “이 코트는 밍크인 데다가 명품 브랜드예요. 당신은 알지도 못하는 브랜드죠!”라고 거들먹거린다. 다른 사람들이 알지도 못하는데 뭐 하러 과시하는 것이냐? 이는 헛된 과시 아니냐? 어떤 사람들은 나한테도 “오리털 패딩을 입으셨네요? 밍크코트를 입어 보세요. 따뜻하답니다!”라고 자랑하길래, 나는 “따뜻하지만, 옷이 무겁더군요!”라고 대답했다. 그는 밍크코트를 입고 내 앞에서 거들먹거렸는데, 너희가 말해 보아라. 이렇게 과시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천박하지 않으냐? 인성만 놓고 본다면, 그는 두 가지 측면의 문제가 있다. 하나는 허영심이 특히 강하다는 것이다. 그는 먹고, 입고, 쓰는 이런 외적인 것들과 물질적인 것들을 다 자랑하고 싶어 한다. 과시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지 못해 늘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어 하고, 자신이 입고 쓰는 것들이 모두 고급품이며 평범한 것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싶어 한다. 다른 사람들이 안다고 한들 또 뭐가 달라지겠느냐? 설령 사람들이 알고 나서 그를 우러러보지 않을지라도 그는 마찬가지로 거들먹거리려고 한다. 천박하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천박하고 유치하다. 이것이 바로 과시하기 좋아하는 부류의 또 다른 측면의 문제이다. 말해 보아라, 그렇게 과시한들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느냐?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것이냐? 그럴 필요가 있느냐? 쓸데없는 짓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과거 80, 90년대에는 구두 밑창이 닳으면 철판을 덧대서 걸을 때 큰 소리가 났다. 어떤 사람은 새 구두에도 반드시 철판을 덧댄 후에 신었는데, 자기가 구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남들에게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하면 마음속으로 자신감이 들고 즐겁다고 느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주목을 받는 것은 좋은 일이야. 매력과 존재감이 있다는 증거니까, 반드시 자신의 장점과 강점, 그리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좋은 물건들을 다 함께 누려야 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진정으로 함께 누리는 것이겠느냐? 이것은 자랑이다. 이 세상에는 자랑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매우 많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모두가 이런 자들을 정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으냐? 아무도 이런 부류를 멸시하지 않으며,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지도 않는다. 세상 사람들은 전부 이런 부류이며, 모두가 각종 물질, 지위, 재화의 즐거움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세상이 이런 것들을 추앙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 집에서는 이런 부류가 역겹고 경멸스럽게 느껴진다. 왜 그렇겠느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기초를 다지기 시작해 조금씩 진리를 깨닫고 사람답게 사는 가치와 의미를 깨닫게 되면서 물질적인 즐거움과 세상의 허황된 것들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그런 외적인 것들에 대한 추구가 적어지고, 추구하는 목표와 방향이 변하며, 내면세계에서 필요로 하는 것이 달라지고, 다른 시각으로 물질적 욕구를 바라보게 되며, 그런 것들이 다 허무하고 내면의 욕구를 채워 주지 못한다고 느끼게 된다. 그래서 각종 물건들을 과시하거나 자랑하는 일이 줄어드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과시하고 자랑하는 것은 기껏해야 무엇이겠느냐? 기능이나 특기 등을 자랑한다. 예를 들어 보자.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항상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어 한다. “제 목소리가 좋지 않나요?”라며, 자기가 노래를 잘한다는 것을 남들이 모를까 봐 늘 자신을 과시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요컨대, 과시하기 좋아하는 것은 인성 한 측면의 결함이며, 인성이 미성숙하고 유치하고 천박한 모습이다. 사람이 약간의 글귀와 도리만 이해할 뿐 아직 진정으로 진리를 얻거나 진리 실제에 진입하지 못했을 때는 과시하기 좋아하는 결점을 드러내기 쉬우며, 이런 인성의 결함은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사람이 진리를 얻기 전에 과시하고 자랑할 수 있는 것들은 그가 살아가는 자본이자 밑천이기 때문이다. 네가 자신감 있게 처신하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것은 외모, 기질, 특기, 학력, 경력 또는 기술 업무 등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모두 과시하기 좋아하는 결점을 드러내며, 이는 극복하거나 저버리기 쉽지 않다. 사람이 진리를 깨닫고 진리 실제에 진입하여 어느 정도 분량이 생겨 이처럼 진리와 무관한 일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되면, 과시하고 자랑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게 된다. 이런 것들은 사람에게 인성이 있음을 의미하지 않으며, 분량이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 것은 물론, 사람이 구원을 받았으며 진리와 하나님에게 순종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과거에는 과시하기 좋아했어도 진리를 깨닫고 진리 실제에 진입한 후에는 그런 욕망이 약해져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 측면의 인성 결함이 극복되고 사라진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좀 비싼 티셔츠를 입었는데 실수로 약간 더럽혀 예민해졌다고 해 보자. 다른 사람이 “뭘 그렇게 예민하게 굴어요? 빨면 되잖아요?”라고 하자, 그는 “이 옷 200위안짜리예요. 알기나 해요?”라며 굳이 가격을 남들에게 알려 줘야 만족했다. 하지만 사람이 진리를 깨달은 후 이런 일에 직면한다면, 올바르게 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가격을 말하지 않을 것이며, 이때 그의 허영심은 어느 정도 줄어들 것이다. 이는 그의 인성이 비교적 성숙해졌고, 그렇게 천박하고 유치하지는 않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는 과시하기 좋아하는 인성 결함을 극복한 것이다.

가난한 사람을 싫어하고 부유한 사람을 좋아하는 것

다음으로는 가난한 사람을 싫어하고 부유한 사람을 좋아하는 모습에 관해 이야기하겠다. 부자를 보면 아첨하기에 바쁜 사람들이 있다. “당신은 피부도 좋고 잘생겼군요. 당신은 귀한 분이니, 당신이 뱉는 침조차도 우리 같은 가난한 사람들보다 값어치가 있습니다!”라고 말이다. 부자, 신분이 높은 사람,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는 무척 부드럽게 이야기하지만, 농민을 보면 항상 비웃고 싶어 하고 말 안팎으로 상대를 폄하한다. 그는 가난한 사람과 부자를 대할 때 전혀 다른 태도를 취한다. 부자의 요구에는 영합하려 하고, 심지어 기꺼이 그의 노예가 되고자 하지만, 가난한 사람을 대할 때는 전혀 달라서 상대가 어려움에 직면해 도움을 청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신분이 낮거나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을 대할 때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을 대할 때 완전히 다른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가난한 사람을 싫어하고 부유한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다. 이는 어떤 문제겠느냐? (인성의 결함입니다.) 이것이 인성의 결함이냐? 인성의 어떤 문제겠느냐? (인격이 저열한 것입니다.) 이는 인성에서 인격 측면의 문제로, 인격이 저열한 것이다. 부자를 보면 굽실거리는 예스맨이 되지만, 가난한 사람을 보면 상전이 되려는 것처럼 구니, 이는 어떤 작자겠느냐? 이렇게 사람을 대하는 것이 원칙이 없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은 단지 돈이 좀 적고, 생활 여건이 좋지 않을 뿐이다. 그들이 너에게 무슨 잘못이라도 했느냐? 가난한 사람은 반드시 인성이 나쁘기라도 하다는 말이냐? 부자는 반드시 인성이 좋기라도 하다는 말이냐? 가난한 사람을 싫어하고 부유한 사람을 좋아하는 이런 부류가 진리 원칙에 따라 사람을 가늠하고 바라보겠느냐? 분명 그러지 않을 것이다. 이런 부류는 돈이 많은 사람을 고상하고 위대하다고 생각하며, 가난한 사람은 천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돈으로 사람을 가늠한다. 이런 자가 좋은 사람이겠느냐? 이 부류의 인성은 어떠하겠느냐? (인성이 좋지 않을 것입니다.) 부자를 보면 얼굴 가득 웃음을 띠지만, 가난한 사람을 보면 바로 표정이 달라지는데, 그 변화가 정말 빠르다! 부자라면 요강을 가져오라고 해도 선뜻 나서지만, 가난한 사람에게는 물 한 잔 따라 주는 것조차 싫어한다. 이는 어떤 작자겠느냐? 인격이 저열한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런 부류가 리더가 되면 좋겠느냐? (좋지 않습니다.) 왜 좋지 않으냐? 어떤 측면에서 리더에 적합하지 않으냐? (그는 사람을 대할 때 원칙이 없으며, 사람을 뽑고 쓸 때도 진리 원칙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와 재력을 근거로 삼습니다. 그가 리더가 된다면 지위와 돈이 있는 사람을 발탁할 것이며, 만약 발탁된 사람들이 악인이라면 그 교회는 악인이 권세를 잡게 되어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이런 부류는 리더가 되기에 적합하지 않다. 인격이 저열하고 일 처리에 양심의 기준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가 리더가 되면 교회를 사회처럼 만들 수 있어 그가 이끄는 교회가 사회단체로 변질되기 때문이다. 그는 돈과 세력이 있고, 신분과 지위가 높으며, 배경이 있고, 사회에서 승승장구하는 사람들을 팀장이나 책임자로 발탁할 것이다. 반면 인성이 좋고, 자질이 있으며, 진리를 추구하기는 하지만 사회적 지위가 낮은 농민, 가난한 사람, 학력이 낮고 듣기 좋은 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모두 깔아뭉갤 것이다. 이는 사회와 똑같아지는 것 아니겠느냐?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 사회에서는 돈 많고 지위가 높은 사람이 권세를 잡지 않느냐? 신분이 높고 배경이 있는 사람, 권력과 세력이 있는 사람이 사회의 각 계층, 각 영역, 각 단체에서 지위를 차지하고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서고 있지 않느냐? 하나님 집이 사회와 같다면, 그것이 하나님 집이겠느냐? 그것은 더 이상 하나님 집이 아니며, 교회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은 사회단체이다. 가난한 사람을 싫어하고 부유한 사람을 좋아하는 이런 부류가 리더가 되면 바로 이런 결과가 초래된다. 이런 부류는 지위가 높은 사람을 보면 그들의 앞잡이가 되는데, 앞잡이가 되는 사람이 무슨 원칙이 있겠느냐? 이런 부류가 처신의 마지노선이 있겠느냐? (없습니다.) 이런 부류는 처신의 원칙과 마지노선이 없어서 위험한 환경에 처하면 유다가 될 수 있다. 국가가 망하려 할 때 민족 반역자가 될 수 있으며, 만약 이 부류가 지도자라면 매국노가 될 수도 있다. 바로 이런 작자들이다! 그러니 이런 부류는 리더로 적합하지 않다. 그들은 실질적인 사역을 할 수 없고 형제자매들을 해치며 진정으로 진리를 추구하고 인성을 갖춘 사람들은 깔아뭉개면서 인성이 악하고 사회적 지위가 높고 유명한 사람들은 전부 발탁하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 집에서 사람을 발탁하는 원칙과 정반대이다. 만약 이런 부류가 하나님 집에서 왕권을 잡게 된다면, 교회 사역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을 것입니다.) 교회 사역과 하나님 선민은 이런 사람들 손에 망쳐지게 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서로 결탁하고 서로 이용하며 서로 치켜세워 주는 바람에 진리를 추구하는 형제자매들은 모두 배척당해 구석에 밀려나게 된다. 어쩌면 모두 B조로 보내거나 제명되어 막다른 골목에 몰릴 수도 있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이런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어떻겠느냐? 그들은 함께할 때는 서로를 형이나 동생이라고 부르고 어깨동무를 하며, 사회에서 자신이 어떤 휘황찬란한 역사를 갖고 있는지, 상대를 위해 어떤 일을 해 줄 수 있는지 자랑한 후, 상대에게 자신을 위해 어떤 일을 해 줄 수 있는지 물으며 서로 이용한다. 이것이 사회의 사람들과 무슨 차이가 있느냐? 그들은 함께할 때도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지 않으며, 진리나 개인의 체험적 인식을 교제하지도 않고, 자신에 대한 인식도 말하지 않고 자신의 패괴 성품을 해부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기가 사회에서 얼마나 승승장구하는지, 어떤 위신 서는 일을 했는지, 어떤 휘황찬란한 역사를 갖고 있는지, 어떤 관료들과 함께 먹고 마셨는지, 어떤 관료에게 아첨했었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들은 이런 것들만 이야기한다. 이들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겠느냐? 그들은 서로 지위, 배경, 능력, 수단을 비교하고, 또 서로 결탁하고 이용한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관계이다. 만약 네가 평범한 사람이거나 농민이라서 그들을 위해 일을 처리해 줄 수 없다면, 그들은 너를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너는 결코 그들의 눈에 들지 못해 구석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그들은 함께 있을 때 무슨 이야기를 하겠느냐? 어떤 브랜드의 옷이 새로 나왔는지, 어떤 신차가 출시되었는지, 누가 몇 캐럿짜리 다이아몬드를 샀는지, 누구네 건물이 경매로 팔렸는지, 누가 산 주식이 떨어졌는지 또는 올랐는지, 누구네 회사가 상장했는지, 누가 정부 공직자에게 아첨했는지, 누가 어떤 폭력 조직과 결탁했는지, 누가 어떤 일을 하느라 뒷돈을 얼마나 쓰고 얼마나 많은 선물을 줬는지, 전부 이런 일뿐이다. 역겹지 않으냐? 만약 그들이 교회에서 맨날 이런 일들만 이야기한다면, 교회 생활과 교회 사역을 교란하고 망치지 않겠느냐? 말해 보아라, 이런 사람을 리더로 뽑을 수 있겠느냐? (없습니다.) 이는 투기꾼이다. 교회에 이런 사람이 있는 것을 발견한다면 그들을 폭로해 정리해야 한다. 하나님 집은 이런 사람을 남겨 두지 않는다. 투기꾼은 하나님 집에서 그럭저럭 시간을 때우고 복을 얻으려고만 한다. 그는 결코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어떠한 긍정적인 사물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 게다가 이런 사람들은 본분을 이행할 때 진심이 전혀 없고, 조금도 헌신하려 하지 않으며, 이익만 얻고 싶어 하고, 이익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형제자매들이 모두 본분 이행에 전념하고 열심히 사역할 때, 그는 본분을 제쳐 두고 개인적인 일만 하며, 심지어 먹고 마시고 놀고 즐기기까지 한다. 또 늘 인터넷에 접속해 패션, 미용, 헤어, 고급 건강식품 등 자신이 가장 좋아하거나 필요로 하는 것들을 검색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는 어디를 가든 늘 허풍을 떨며 사람들을 속이고 자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을 찾는데, 그런 사람을 만나면 바로 의기투합한다. 하지만 진정한 형제자매들과는 어울리지 못해 교회에서는 별종, 비인류이다. 너희는 이런 사람을 발견하면 멀리해야 한다. 또한, 만약 대부분의 사람, 또는 리더가 분별력이 없어서 그를 진정으로 믿는 형제자매라고 생각한다면, 너희가 나서서 그를 폭로하고 정리해 내보내야 한다. 이해가 되느냐? 이 부류를 왜 정리해야겠느냐? (이런 사람은 교회에서 교란을 일으키기 쉽고, 나쁜 분위기를 조성하며, 다른 사람의 본분 이행과 진리 추구에 지장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그는 교회 분위기를 다 망쳐 놓는다. 자신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까지 지장을 주고, 다른 사람의 발목을 잡으려 하며, 한 푼어치의 일을 하면서 열 푼어치의 임금을 요구한다. 이런 사람을 쓰느니 개를 키우는 것이 낫다. 개를 키우면 집을 지키고 주인에게 충성도 하니 말이다! 개는 뒤에서 꼼수를 부리지 않으니, 걱정할 것도 없다. 만약 교회에 가난한 사람을 싫어하고 부유한 사람을 좋아하는 자를 둔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겠느냐? 그가 하나님 선민을 도울 수 있겠느냐? 그가 사람들에게 유익을 가져다줄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가 드러났고 모두가 그를 꿰뚫어 봤다면, 정리해 내보내야 한다. 만약 그를 계속 남겨 둔다면, 방해, 교란, 소란만을 일으킬 것이며, 교회에 우환만을 야기할 것이다. 그가 큰 화를 초래한 후에 수습하려면 번거로워진다. 우리는 번거로운 일을 원치 않고, 신경 쓰지 않기를 원한다. 사람이 해야 할 일과 마땅히 이행해야 하는 본분이 많은데, 이런 번거로운 일을 만들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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