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5) 제 3 부
일 처리가 용두사미인 것
일 처리가 용두사미인 것은 어떤 측면의 문제겠느냐? (인성의 결함입니다.) 이는 인성 한 측면의 결함이다. 어떤 사람은 처음 일을 하려고 할 때는 계획을 매우 잘 세우며, 떠들썩하게 한다. 사람들을 모으고, 보고를 하고, 임무를 분배하며, 심지어 각오를 다지기도 한다. 하지만 일을 하다 보면 그림자도 보이지 않으며, 점검도 감독과 검사도 하지 않는다.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 감독과 지도를 하지 않으면 일이 흐지부지될 수 있고, 심지어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해 사역을 엉망으로 만들 수도 있다. 또 어떤 사람은 도리는 매우 명백하고 분명하게 이야기하지만, 일을 처리할 때 길이 없고 구체적인 계획도 없어 특수한 상황이나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알지 못하며, 다른 사람과 교제하지도 않고, 윗선에 구하거나 문의하지도 않는다. 일을 시작할 때는 자신감 있어 보이고, 뭔가 큰일을 할 것처럼 폼을 잡지만, 하다 보면 의욕을 잃고 도망가 버린다. 마치 세상에서 증발해 버린 것처럼 말이다. 누가 그에게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요? 그 일은 어떻게 됐나요?”라고 물으면, 그는 “그 일은 안 됐어요.”라고 대답한다. 그는 일을 성사시키지 못하면서 빨리 보고하지 않아 두세 달 동안 일을 지체시켰는데도 아무런 결과가 없다. 이는 화가 나는 일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런 사람은 정말 가증스럽다! 이 부류는 일 처리가 용두사미일 뿐만 아니라, 무슨 일이든 하면 할수록 더 엉망이 된다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막 일을 시작할 때는 그래도 두서, 생각, 체계가 좀 있지만, 하다 보면 생각이 모호해져 그 일을 왜 해야 하는지, 그 일에서 이루고자 하는 성과는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된다. 누가 그에게 “좀 구해 보세요.”라고 권하면, 그는 “구할 필요 없어요. 그냥 이렇게 하죠. 어차피 다들 하고 있으니까요.”라고 한다. 보아라, 일을 시작할 때는 기세가 대단해서 마치 천둥 치는 것 같지만, 하다 보면 소리도 없이 사라져 천둥소리만 요란할 뿐 비는 내리지 않는 것처럼 아무 결과도 내지 못한다. 만약 네가 물어보고 점검하고 검사하지 않으면, 그는 흐지부지 끝내 버리고 보고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처음에 했던 각오는 어디 갔느냐? 잊어버렸다. 처음에 작성한 계획서는 어디 있느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처음에 했던 그 구상들은 어디 갔느냐? 사라졌고,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는 바로 이런 작자이다! 이 부류는 처음 일을 시작할 때의 의욕만 보면 일을 잘하는 사람 같다. 하지만 사실은 무능한 놈이며, 절대 착실하게 일하는 사람이 아니고, 분수를 지키지 않는 사람이다. 그저 나서고 얼굴 드러내는 것만 좋아하고, 고생은 하기 싫어하며, 책임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무슨 일을 하든 시작만 할 뿐 끝을 맺지 못한다. 이런 사람의 인성은 어떻겠느냐? (나쁩니다.) 너희는 이런 부류가 한 가지 일이라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으냐? (불가능합니다.) 그는 무슨 일이든 용두사미로 끝내고 엉망진창으로 한다. 늘 이런 식이다.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처음 시작할 때는 매우 의욕적이어서 음악을 들으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리기까지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흥미를 잃어 일을 내팽개치고 하지 않는다. 이는 어떤 작자겠느냐? 이런 자는 가증스럽지 않으냐? (가증스럽습니다.) 일을 완수할 자신도 없으면서 함부로 떠맡고 능력 있는 척하며, 허풍을 떨고 큰소리를 친다. 네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 스스로 모르는 것이냐? 그 일을 해내거나 완수할 수 없다면, 말을 해라. 일을 지체시키지 마라!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너의 일을 지체시키면서 너를 속이기까지 하니, 인격이 저열한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인격이 너무도 저열하다! 이런 사람에게 일을 맡길 수 있겠느냐? (맡길 수 없습니다.) 신뢰할 가치가 있겠느냐? (없습니다.) 이런 부류는 신뢰할 가치가 없다. 그가 너에게 호언장담하면, 믿을 엄두가 나겠느냐?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이런 부류는 어떤 사람이겠느냐? 사기꾼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비록 그가 너의 재물을 사취한 것도 아니고, 너를 성적으로 이용하려고 속인 것도 아니지만, 그의 이러한 처신 방식은 매우 가증스럽고 혐오스럽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이 혐오스러운 근원은 무엇이겠느냐? 이 부류는 인격이 저열하고, 분수를 지켜 처신하지 않으며, 허풍 떨거나 능력 있는 척하기를 좋아하고, 나서고 자신을 과시하기 좋아한다. 끈기 있게 일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주제 파악도 못 해 자신의 분량이 얼마인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능력 있는 척하려고 한다. 중요한 일이라면 모두 겁 없이 맡지만, 일을 맡은 후에는 제대로 하지 못해 큰일을 지체시켜 놓고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자기를 드러낼 수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이는 비열한 소인배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이 부류의 인성은 매우 나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만약 너희가 이런 사람을 만난다면, 큰일이나 중요한 일을 맡길 엄두가 나겠느냐?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네가 복음을 전하러 나가야 하는데, 아이가 너무 어려서 돌봐 줄 사람을 찾아야 한다면, 어떤 사람을 찾아야겠느냐? 이렇게 일에 책임감이 없고, 한결같지 못하며, 신뢰할 가치가 없는 사람을 찾을 엄두가 나겠느냐?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어째서냐? 자칫하면 그가 아이를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어쩌다가 아이를 잃어버렸나요?”라고 물으면, 그는 “저도 모르겠어요. 잠깐 졸았을 뿐인데 아이가 없어졌네요. 그게 제 탓인가요? 아이도 다리가 있으니 혼자서 걸을 수 있잖아요. 제 몸에 묶어 놓은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제 탓이 아니에요!”라며 책임을 회피하기까지 한다! 이는 추악한 무뢰한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은 이런 자에게 맡기면 안 된다. 그는 분수를 지키지 않으며 인격과 존엄이 없어서 문제가 발생하면 억지를 부리고 발뺌을 한다. 일 처리가 용두사미 같다는 결점은 인성 한 측면의 결함에 불과하지만, 이 결함은 너무나 심각한 문제이며, 인격의 문제이다. 어떤 사람들은 나서고 얼굴 드러내기를 좋아하고 일을 떠맡기 좋아하지만, 책임을 질 용기는 없다. 어려움에 직면하면 재빨리 책임을 회피하고 그 상황에서 벗어나 버리며, 너무도 무책임하다. 또한 분수를 무척이나 지키지 않고, 일 처리에 끈기가 없다. 이 지경까지 왔다면 이는 단순히 인성 한 측면의 결함이 아니라, 인격이 너무 저열하고 인성이 나쁜 것이다. 왜 이 부류를 가리켜 인성이 나쁘다고 하겠느냐? 믿을 만하지가 못해서 무슨 일이든 맡길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어떤 일을 맡기든 대답은 잘 하지만, 돌아서자마자 자취를 감춰 버린다. 무엇을 하러 갔는지도 알 수 없고, 어쩌면 며칠 후에나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네가 그에게 일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묻지 않으면 보고도 하지 않는다.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어떤 작자겠느냐? 너무도 무책임하다! 이 정도의 일조차 검증을 견뎌 내지 못하고 신뢰를 주지 못한다면, 그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에게 아이를 맡기고 돌봐 달라고 하면, 언제든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넘어져서 다치거나 먹으면 안 되는 것을 먹을 수도 있고, 밖에 나가 놀다가 길을 잃거나 나쁜 사람에게 유괴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일이 다 발생 가능하다. 이는 그가 무책임하고, 인격이 너무 저열하며, 무슨 일을 하든 양심의 마지노선이 없고, 자신의 사욕을 만족시키는 데에만 신경 쓸 뿐 다른 일은 개의치 않기 때문이다. 네가 일을 부탁할 때, 그는 거절하면 네 체면을 깎는 것 같다고 느낀다. 그래서 자기 체면도 지키고 허영심도 채우기 위해 수락하지만, 그 후에는 전혀 책임지지 않는다. 큰소리를 쳐 놓고 일은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 것, 이는 신뢰할 가치가 없는 것이다. 이런 부류가 좋은 사람이겠느냐? (아닙니다.) 용두사미로 일을 처리하는 사람을 리더로 뽑을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어째서 안 되느냐? (그는 하나님 집 사역을 망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맞다. 그가 말하고 약속하는 것을 보면 제법 능력이 있어 보이며, 사람들은 다들 큰소리치는 사람을 믿기 좋아한다. 하지만 그가 일을 하기 시작하면 예측할 수가 없다. 그는 일을 망쳐 놓고도 네게 알려 주지 않으며, 무슨 문제가 생겨도 설명하지 않는다. 너는 그가 일을 제대로 할 거라고 잔뜩 기대하지만, 결국 그는 일을 망쳐 놓고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네가 맡긴 일을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일을 처리할 때 분수를 지키지 않고, 오직 자신의 흥미와 기호, 호기심대로 행동한다. 또 어떤 사람은 스스로를 내세우는 것을 좋아해서 오직 자신을 내세우고 얼굴을 드러내기 위해 일을 한다. 이런 사람은 본분을 지키고 책임을 지는 사람도, 착실하게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다. 이러면 문제가 생긴다. 이는 영적인 이해력이 있는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 순종할 수 있는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인지까지는 가지도 않았다. 아직 이 수준까지 가지도 않았지만, 인성만 봐도 그는 신뢰할 가치가 없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리더로 뽑을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인성이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은 양성할 가치도 없다. 왜 그렇겠느냐? 인격이 너무 저열해서 기본적인 인격과 존엄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는 리더로 쓰거나 양성하기에 모두 적합하지 않다.
일 처리가 신중한 것
다음으로는 일 처리가 신중한 것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이는 어떤 측면의 모습이겠느냐? (인성의 장점입니다.) 일 처리가 신중하고 경솔하지 않으며, 일이 닥쳤을 때 침착하게 대하고 진리를 구할 수 있는 것, 이는 인성의 장점이다. 이 사악한 사회에서, 각종 복잡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갖가지 사람과 일, 사물의 출현은 신중하게 대해야 한다. 설령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하며 직면하는 갖가지 일이라고 할지라도 거기에는 복잡한 상황이 있으니 신중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본분을 이행하는데 악인의 교란을 맞닥뜨리면 먼저 분별할 줄 알아야 하며, 그 후 진리 원칙대로 대해야 한다. 이는 본분을 대할 때 마땅히 지녀야 할 태도이다. ‘일 처리가 신중한 것’은 무엇과 관련이 있겠느냐? 사람의 이성과 관련이 있다. 네가 꿰뚫어 볼 수 없는 일에 직면했을 때는 신중히 행동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네가 어느 정도 진리를 깨달았다고 해도 일부 특별한 일의 배후에 있는 본질과 근원을 꿰뚫어 보지 못할 때는 신중히 행동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때는 더 신중히 행동해야 한다. 신중함이란 보수적이거나 소심하게 구는 것이 아니며, 일을 할 용기가 없거나 책임지기를 두려워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 것들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신중함이란 인성 한 측면의 장점이다. 신중함은 어떤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겠느냐? 일을 처리할 때 먼저 진리 원칙을 구하고 나서 그 일이나 사역을 하는 구체적인 실행 단계와 길, 그리고 이루려는 성과를 구하는 것이다. 즉, 조심스럽고 신중한 마음으로 중요한 일과 자신의 본분을 대하는 것이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직면하는 각종 문제도 무척 신중하게 대한다. 덜렁대지 않고, 지나칠 정도로 신중한데 이것도 나쁘지는 않다. 이 또한 인성의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신중함은 인성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으며, 신중한 태도는 사람을 이롭게 할 뿐, 결코 사람을 속박하거나 결박하지 않는다. 만약 네가 일이 닥쳤을 때 말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아무 일도 할 엄두를 내지 못하며, 어떤 사람과도 접촉하지 못하고, 나뭇잎만 떨어져도 머리를 다칠까 봐 걱정한다면, 이는 지나치게 신중한 것이다. 온종일 자신만의 작은 세계에 갇혀 지나칠 정도로 신중하게 살아가는 것, 이것이 신중함이겠느냐? (아닙니다.) 물건을 사러 갈 때는 속을까 봐 두려워하고, 가게를 차려 장사를 할 때는 손해를 볼까 봐 두려워하며, 집을 살 때는 흉가를 살까 봐 두려워하고, 컴퓨터를 살 때는 바이러스가 있을까 봐 두려워한다. 지나친 두려움 때문에 아무것도 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할 정도로 자신을 속박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신중함은 분명 이런 모습이 아니다. 이런 모습은 사람이 무지하고, 무능하며, 유치해서 혼자서 생존할 능력이 없음을 의미하며, 이는 자질이 부족한 모습이다. 즉, 이 사악한 사회와 복잡한 사람들을 마주할 때 어떠한 대응책도 없어 늘 걱정하고 두려워하며 위축되어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이다. 사기를 당할까 봐, 해를 입거나 살해당할까 봐 두려워 누구와도 접촉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어떤 일도 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일하러 나갈 때도 임금을 주지 않을까 봐 두려워하고, 심지어 어떤 여성들은 괴롭힘을 당할까 봐 두려워 일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나아가 어떤 사람들은 나쁜 사람을 만날까 봐 두려워 외출조차 하지 못하고, 물건을 사면 남에게 빼앗길까 봐 두려워한다. 한마디로 모든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는 지나치게 신중한 것 아니겠느냐? 이를 가리켜 ‘지나칠 정도로 신중한 것’이라고 한다. 이는 정신병 아니겠느냐? 어떤 사람들은 바로 이런 마음가짐을 갖고 있다. 온종일 이런저런 일들을 걱정하느라 결국에는 아무 일도 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사람을 만나러 외출할 엄두도 내지 못하니, 집에 있을 수밖에 없다. 이는 어떤 사람이겠느냐? (정신병자입니다.) 바로 이런 걸 정신병이라고 한다. 이는 정상적이지 않으며, 인간이 아니다. 판단력이 전혀 없고, 어떤 일을 하든 원칙도 마지노선도 없으니, 이런 사람은 짐승이 환생한 존재로 정상 인성이 없으며, 그 지나친 신중함은 진정한 신중함이 아니다. 신중함이란 무엇이겠느냐? 신중함은 바로 일 처리에 기준, 체계, 규칙이 있고, 이러한 원칙을 바탕으로 비교적 엄밀하게 일을 처리하며, 매사에 침착하고, 경솔하게 굴거나 덤벙대지 않고, 충동적이지 않고, 진리 원칙과 지혜로운 방법을 구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중함이며, 이것이야말로 인성의 장점이다.
큰소리치고 허풍 떨기를 좋아하는 것
큰소리치고 허풍 떨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매우 많은데, 이 또한 사악한 사회의 흐름이다. 많은 사람이 과장된 말, 엉터리로 꾸며 낸 말을 하며, 하는 말이 전혀 사실과 부합하지 않고, 입만 열었다 하면 다 허풍인데도, 스스로 능력이 있다고 착각하는데, 염치가 전혀 없다. 이런 부류는 신뢰할 가치가 있겠느냐? (없습니다.) 이런 부류에게 인격과 존엄이 있겠느냐? (없습니다.) 이런 부류는 인격과 존엄이 없으며, 존중하고 신뢰할 가치도 없다. 그렇다면 이런 부류에게 중요한 일을 맡길 수 있겠느냐? (맡길 수 없습니다.) 그럼 허풍 떨기 좋아하는 것은 어떤 문제겠느냐? (인성의 결함입니다.) 이는 인성의 결함이지만, 그 사람의 인성이 어떤지, 인성이 악한지, 긍정적인 사물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만약 단순히 양아치 기질을 가지고 있고, 가정생활이나 사회 환경에 오랜 영향을 받아 허풍 떨고 큰소리치기를 좋아하며, 말에 책임을 지지 않고, 결과를 고려하지 않고 말하는 나쁜 습관을 지니게 되었다면, 이는 그저 인성의 결함일 뿐 사람이 나쁜 것은 아니다. 단지 양아치 기질이 너무 심각한 수준일 뿐이다. 하지만 만약 그가 허풍 떨기를 좋아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 지낼 때 매우 강압적이고 흉악하게 군다면, 큰소리치고 허풍 떠는 목적이 다른 사람을 억압함으로써 자기가 허풍 떨거나 과장한 일을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고 대단하게 만들고 남들 위에 군림하기 위한 것이라면, 이는 더 이상 양아치 기질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어떤 문제겠느냐? (인성이 악한 것입니다.) 이는 인성이 악한 문제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패괴 성품이 없겠느냐? (있습니다.) 어떤 패괴 성품이겠느냐? (흉악함입니다.) 교만함과 흉악함이 있다. 어떤 사람은 허풍 떨기를 좋아하는데, 이는 단순히 양아치 기질이 심각한 것으로, 생활 습관과 생활 환경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진실한 말을 하는 것, 속마음을 이야기하는 것, 실제 사정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 인생을 논하는 것, 진지한 일을 이야기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며, 이러한 의식 자체가 없는 것이다. 가정과 학교 어디에서도 이런 교육을 받지 못했으며, 사회에 진출한 후에는 더더욱 이런 교육을 받지 못했기에 타고난 양아치 기질이 매우 심각하다. 이런 사람은 건들거리고 진중함이 없으며, 큰소리치고 허풍을 떨기 좋아하고 자신을 과시함으로써 남들에게 높이 평가받고 싶어 하지만, 마음속에 별다른 야심이나 욕망, 욕구가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이런 모습만 있다면, 이는 단순히 양아치 기질로, 인성 한 측면의 결함이다. 하지만 만약 그가 목적을 가지고 허풍을 떠는 것이라면, 자신은 매우 유능하고 재능 있으며 평범한 사람보다 우월하고 특별하다고, 평범한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있다고 허풍을 떤다면, 이는 더 이상 양아치 기질의 문제가 아니다. 그는 어떤 사상에 주도되고 지위욕, 야심, 욕망에 지배되어 허풍 떨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그는 허풍 떨기라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억압해 승복하게 하고, 남들이 그보다 낮고 못하다고 느껴 그를 공경하고 그에게 순종하게 한다. 이것이 바로 인성의 악함이다. 그가 허풍 떨기를 좋아하는 것은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이다. 즉, ‘네가 가진 것은 나도 가지고 있고, 네가 할 수 있는 것은 나도 할 수 있어. 네가 아는 것은 나도 알고, 네가 본 것은 나도 봤지. 나는 너만 못하지 않아!’라는 것이다. 심지어 네가 어떤 음식을 먹어 봤다면, 그는 분명 먹어 보지 않았는데도 먹어 봤다고 말한다. 게다가 너보다 더 많은 것, 더 좋은 것을 먹어 봤다며, 없는 일로 허풍을 떤다. 허풍을 떠는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바로 너를 억누르고 너와 비교하여 자기가 너보다 대단하고 뒤지지 않는다고 느끼게 하려는 것이다. 이는 야심과 욕망에 지배된 것이다. 그렇다면 야심과 욕망이 지배하는 이런 인성의 모습은 단순한 양아치 기질이겠느냐, 아니면 인성의 악함이겠느냐? (인성의 악함입니다.) 여기에는 패괴 성품이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야심과 욕망이 지배하는 것, 이것이 바로 패괴 성품이다. 어떤 패괴 성품이겠느냐? (교만함과 흉악함입니다.) 맞다. 교만함과 흉악함, 이 두 가지 패괴 성품이다. 이 외에 약간의 사악함도 있다. 즉, 네가 무엇을 말하든지 그는 마음속에서 꿍꿍이수작을 부리고 있다가 그것을 가지고 뭔가를 꾸미려 하고, 사악한 마음과 극단적인 생각으로 이런 일들을 대하려는 것이다. 네가 “우리 집 차는 도요타입니다. 일본 차죠.”라고 하면, 그는 “일본 차는 좋지 않아요. 차는 역시 독일 차죠. 제가 예전에 몰던 독일 차는 성능도 성능이거니와 10년 넘도록 고장 한 번 난 적이 없었답니다. 당신 차보다 훨씬 좋았죠!”라면서 기어코 너를 이기려고 한다. 네가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어요.”라고 하면, 그는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했답니다. 질투 나죠?”라고 한다. 사실 그는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했지만, 너를 이기려고 그러는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질투하고, 높이 평가하고, 우러러보는 느낌을 즐긴다. 보아라, 누구에게서 정보를 얻든 그의 반응은 모두 사악하고 극단적이다. 그에게는 정상 인성의 사유가 없다. 정상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이 뭔가 좋은 것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당신에게 그게 있다니 정말 좋겠네요. 구체적으로 어떤 특징과 장점이 있는지 말해 줄래요? 저도 식견 좀 넓히게 해 주세요.”라고 할 것이다. 정상 인성을 갖춘 사람이라면 이런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허풍 떨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정상 인성이 없어서 이렇게 생각한다. ‘당신은 있는데, 왜 나는 없지? 없어도 있다고 해야 해. 당신 것보다 더 좋다고 해야 한다고!’ 만약 네가 그에게 그 물건을 보여 달라고 하면, “안 보여 줄 거예요!”라고 하는데, 사실은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악함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어떤 일에 직면하든, 어떤 정보를 보거나 받아들이든 그의 반응은 모두 극단적이고, 인성에 부합하지 않으며, 사악하다. 그렇기에 그의 성품에는 약간의 사악함도 섞여 있는 것이다. 그와 정상적으로 대화하고 교제할 때, 너는 그가 다른 생각을 할 만한 말을 하지 않은 것 같아도 그의 머릿속은 이미 온갖 생각들로 가득 차 있다. 그는 이미 너를 질투하고 인정하지 않으며 미워하고, 또 너를 억압하고 싶어 한다. 그의 머릿속은 이런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말해 보아라, 이는 사악함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사악한 사람은 단순하지 않다. 그가 드러내는 대부분의 표정, 말, 행동은 모두 정상 인성의 양심과 이성에 부합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의 말에 공격성이 있을 수도 있는데, 공격성 외에도 그의 말 중 일부는 진실이 아니거나 허풍일 수 있다. 그의 내면에 사악한 생각이 있기 때문에 사악한 생각에 지배되어 하는 말은 모두 거짓말이고, 사탄 마귀에게서 나온 말이다. 이런 사람은 인성이 없으며, 인간도 아니다. 허풍 떨고 큰소리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인성의 본질에 따라 규정해야 한다. 즉, 양아치 기질이 있는 건지, 인성이 악한 건지를 살펴봐야 하며, 어느 측면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 만약 인성이 악하고, 양아치 기질이 심각하며, 악행을 많이 저지를 수 있다면, 좋은 사람이 아니니 악인으로 규정해야 한다. 하지만 단순히 큰소리만 좀 치고, 약간의 양아치 기질을 가지고 있을 뿐, 나쁜 짓을 저지르지 못하고, 양심과 이성이 좀 있어서 좋은 일도 어느 정도 할 수 있다면, 인성이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큰 문제가 아니니, 자질이 좋다면 책임자나 리더 일꾼으로 뽑을 수 있다. 똑같이 큰소리치고 허풍 떨기를 좋아하는 모습을 갖고 있다고 해도 그 인성이 선한지 악한지를 봐야 한다. 만약 양아치 기질만 있다면, 이는 인성의 결함일 뿐 패괴 성품과는 관련이 없다. 하지만 이런 부류가 속셈과 야심을 갖고 허풍을 떤다면, 이는 인성이 악한 것이며, 패괴 성품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인성을 논하자면 이는 인성이 악한 것이고, 패괴 성품과 관련된다면 그것은 교만함과 사악함, 또는 흉악함이니, 인품이 나쁜 것과 관련될 뿐만 아니라 패괴 성품과도 관련된다. 그렇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부주의한 것
계속해서 부주의한 모습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무슨 일을 하든 부주의한 것, 이는 어떤 측면의 문제겠느냐? (인성의 결함입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무엇을 보든 대충대충이고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며, 무슨 일을 하든 어설퍼서 섬세한 사역을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문서 사역이나 문서 보관 사역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섬세한 작업도 할 수 없는데, 옷을 만들 때 간혹 바지통을 소매에 꿰매기도 하고, 긴 소매를 짧은 소매로 만들기도 하며, 26인치인 허리둘레를 24인치로 만들기도 하는 등, 크게 만들거나 작게 만들어 버린다. 그는 무슨 일을 하든 늘 이렇게 부주의하고, 덤벙대고, 서툴러서 결과적으로 어떤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심지어 어느 정도로 부주의하겠느냐? 일 때문에 외출하면서 가져가야 할 물건도 잊어버리고, 소송 때문에 변호사를 만나면서 신분증을 가져가지 않으며, 변호사가 요구한 증거도 가져가지 않는다. 많은 물건을 빠뜨리는데, 때로는 중요한 물건을 어디에 놓았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신경 써서 기억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늘 물건을 잃어버리고, 일과 생활이 엉망이 된다. 이런 부류는 사역과 본분을 대할 때 결코 진지하게 대하지 않으며, 무슨 일을 하든 다 날림으로 한다. 무슨 일을 보든 대충 보고, 무슨 말을 들어도 대충 들으며, 무슨 말을 하더라도 대충 말하고, 무슨 일을 기억해도 대충 기억한다. 그러므로 중요한 사역이나 기밀 사역은 할 수 없으며 그런 사역을 하기에 적합하지도 않다. 단순히 그 사람 개인의 생활이나 위생과 관련되어 다른 사람이나 중요한 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그의 부주의는 그저 인성의 결함일 뿐이며 무슨 문제가 생기면 본인이 책임지면 된다. 하지만 만약 본분이나 중요한 사역, 또는 어떤 사람의 운명과 미래, 사람의 거취 등과 관련된다면, 이런 부류는 이런 일을 처리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너무 부주의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그는 이런 일을 세심하게 대하지 않고 대충 훑어보기만 하며, 머리를 쓰거나 마음과 노력을 기울여 일을 처리하기 귀찮아한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일 처리 스타일과 방식이 시종일관 날림일 뿐만 아니라 이것저것 잘 잊어버린다. 만약 단순히 개인 생활과 관련이 있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사역이나 기밀과 관련되었다면 일을 망칠 수 있으며, 심지어 큰 재앙을 초래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급한 일이 생겨 파리에 가야 하는데, 부주의로 로마행 항공권을 사고도 매우 기뻐하며 “오늘 항공권이 너무 싸네!”라고 말했다고 해 보자. 다른 사람이 그것을 보고 “당연히 싸죠. 파리에 가야 하는데, 어째서 로마행을 샀나요?”라고 한다면, 이것이 바로 너무 부주의한 것이다! 이런 부류는 무슨 일이든 얕잡아 보고 건성으로 대충 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어 눈으로 한 번 대강 쓱 훑어보고는 끝낸다. 이렇게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이는 물론 마음을 쓰기 싫어하고 게으르게 구는 태도이기도 하다. 그들은 무슨 일을 하든 마음을 쓰기 귀찮아하고, 머리를 쓰거나 공들이기 귀찮아한다. 부주의한 사람은 중요한 사역에 적합하지 않다. 특히 문서 사역, 문서 보관, 기밀 업무 기술과 관련된 사역 등을 하기에 부적합하다. 그렇다면 이 부류가 리더가 되면 감당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는 항상 사역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전부 큰 틀에서 대강대강 할 뿐, 꼭 뭔가 하나씩 빼먹어서 실질적인 사역을 하지 못합니다.) 이런 부류는 사역할 때 세부 사항이 없으며 늘 날림으로, 건성으로 한다. 말도 늘 애매모호하게 해서 항상 ‘대략, 아마도, 대체로, 어쩌면’ 같은 말들을 사용하기 좋아한다. 이런 부류는 어떤 일도 해낼 수 없다. 행정 사역, 인사 사역, 교회 생활, 복음 사역 등 하나님 집의 많은 사역은 모두 구체적인 세부 사항이 있는데, 부주의한 사람들은 세부적인 사역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머리가 아파지고 어찌할 줄 몰라 하며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는 이런 세부적인 사역을 하기 싫어한다. 이런 게으른 태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역을 할 때도 항상 ‘대충 하기만 하면 돼. 어쨌든 사역지침에서도 그런 식으로 이야기했으니까.’라고 생각한다. 항상 ‘대충 그 정도면 된다.’는 태도를 갖고 있는 그가 사역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는 사람을 볼 때도 대충 본다. 리더 일꾼을 볼 때도 대충 보고, 각 팀의 책임자를 볼 때도 마찬가지로 대충 본다. 누가 “그 책임자는 하나님을 믿은 지 몇 년 됐나요?”라고 물으면, 그는 “아마 3년 좀 넘었을 거예요.”라고 대답한다. 하나님을 믿은 지 3년이라면 기초도 아직 다져지지 않았을 텐데, 이런 사람이 책임자가 되면 믿을 수 있겠느냐? 그는 이것을 꿰뚫어 보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항상 ‘대략, 대체로, 아마도, 어쩌면, 그런 것 같다’ 등의 말을 자주 사용하며, 정확하게 말하지 않는다. 누가 “그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리더를 해 본 적이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그는 “해 본 적 없는 것 같습니다. 그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거든요.”라고 대답한다. 보아라, 그는 어떤 일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다. 만약 네가 자세하게 물어보면 그는 자신의 느낌과 인상에 따라 대답하지, “즉시 가서 물어보고 확인하겠습니다.”라고 하지 않는다. 그는 이런 일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으며, 무슨 일이든 그저 대충대충 비슷하게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뭐 하러 그렇게 꼼꼼하게 사나요?”라고 한다. 이 말이 옳은 측면도 있고 육적인 생활과 관련된 일은 좀 대충 해도 괜찮기는 하다. 하지만 교회 사역과 관련되었다면 어설프게 해서는 안 된다. 사역을 어설프게 하면 성과에 지장을 준다. 모든 사역은 다 구체적인 배치, 안배, 점검, 독촉이 있기에 좋은 성과가 나는 것이다. 그저 어설프게, 대강대강 한다면, 어떤 사역도 성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부주의한 것은 인성의 결함이며, 이 부류는 중요한 사역을 감당할 수 없고, 특히 리더 일꾼의 사역을 감당하지 못한다. 이런 부류는 무슨 일이든 대충 듣고는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보자. 교회 설립 사역의 경우, 하나님 집의 사역지침에는 어떻게 교회를 설립해야 하는지, 인원이 몇 명이어야 교회 한 곳을 설립할 수 있는지, 몇 개의 교회가 있어야 소교구를 설립할 수 있는지, 몇 개의 소교구가 있어야 교구를 설립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전부 구체적인 규정이 있다. 또한 일부 특수한 상황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규정이 되어 있다. 하지만 그는 이런 것들을 구하지 않고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하는지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에게 세부 사항을 말해 보라고 하면 “그냥 교회를 세우는 거잖아요. 일정 수의 사람이 모이면 설립하는 거죠.”라고 말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설립하는 겁니까?”라고 물으면, 알지 못하고 세부 사항도 말하지 못한다. 만약 그가 리더가 된 지 얼마 안 되어 교회를 어떻게 설립하는지 모르는 것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모르면서 진지하게 대하지 않고 배우지도 않으며 구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사람이 교회 사역을 잘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이런 부류에게는 “물러나라!”라는 한마디만 하면 된다. 그는 리더 사역을 감당할 수 없다. 그 어떤 사역도 사람을 다루는 사역보다 복잡한 것은 없다. 만약 신중하고 책임지는 마음이 없으며, 사역을 세심하지 않고 어설프게 한다면, 네 자질이 아무리 훌륭해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너무 부주의해서 무슨 일을 하든 대충대충 하고, 전체적인 윤곽이나 형식을 따르는 것만 중시하며, 세부 사항을 중시하지 않고, 또 진지하게 대할 줄도 모른다면, 절대 리더 일꾼의 사역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이해가 되었느냐? (이해가 되었습니다.)
클릭하세요! 하나님에게서 온 기쁜 소식이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게 임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