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5) 제 2 부
‘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에 관한 첫 번째 실행 ― 내려놓기
하나님과의 간극과 하나님에 대한 적대감을 내려놓기
1. 하나님에 대한 관념과 상상 내려놓기 ― 하나님 사역에 대한 관념과 상상 내려놓기
6) 하나님은 사역으로 사람의 선천적인 조건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패괴 성품을 변화시킨다
이어서 ‘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라는 주제에 관해 교제해 보자. 최근 여전히 ‘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 중 ‘내려놓기’ 측면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하나님과의 간극과 하나님에 대한 적대감을 내려놓기’라는 큰 주제에 관해 다루었다. 이 주제의 첫 번째 내용은 하나님에 대한 관념과 상상을 내려놓는 것이다. 이 조항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사람의 관념과 상상을 교제했으며, 이 내용은 선천적인 조건, 인성, 패괴 성품 간의 차이라는 상대적으로 복잡한 문제와 관계가 있다. 여기에는 매우 많은 세부 사항이 있다. 일상생활에서 이런 문제에 직면할 때 사람들은 늘 개념을 혼동해 대체 어느 유형의 문제인지, 어떻게 구별해야 하는지 확실히 분간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보자. 어떤 모습들에 대해 사람들은 그것이 대체 인성과 관련된 것인지 아니면 선천적인 조건과 관련된 것인지 확실히 분간하지 못한다. 또한 일부 모습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그것이 대체 패괴 성품인지 아니면 인성 문제인지 분간하지 못한다. 이러한 일들을 모두 확실히 분간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늘 선천적인 조건의 문제와 결점을 패괴 성품으로 여기거나 인성의 결함과 문제를 패괴 성품이라고 여기며, 심지어 때로는 패괴 성품 표출을 오히려 선천적이고 바꿀 수 없는 조건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과정에서 늘 선천적인 조건, 인성, 패괴 성품이라는 세 가지 측면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 매우 모호하다고 느끼고 명확하게 분간하지 못하는 것이다. 지난번에 우리는 그중 일부를 교제하였고, 당연히 몇 가지 사례도 들었지만, 나는 충분히 구체적이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오늘은 이 세 가지 측면의 문제를 꺼내 다시 구체적으로 교제해 보겠다. 내가 몇 가지 구체적인 모습과 사례를 이야기할 테니, 너희는 그것이 선천적인 조건, 인성, 패괴 성품 중 어느 측면에 속하는지 분별해 보아라. 너희가 분별하지 못한다면 함께 이 일을 논의해 보자. 어떠하냐? (좋습니다.) 선천적인 조건 측면에 대해서는 지난번에 상대적으로 더 많이 교제했으므로 당연히 좀 더 명확하게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비교적 경계선상에 있거나 인성과 유사한 것들이 있어서 사람들은 여전히 그것이 과연 선천적인 조건에 속하는지 아니면 인성에 속하는지 그래도 확실히 분간하지 못한다. 내가 몇 가지 모습이나 행위, 행동 방식을 제시할 테니, 너희는 그것이 대체 어느 측면에 속하는지 대답해 보아라. 이렇게 교제하면 어떤 좋은 점이 있겠느냐? 그것이 어느 측면에 속하는지 알게 되면, 그것을 어떻게 대하고 처리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⑥ 선천적인 조건, 인성, 패괴 성품의 여러 측면 모습
부지런히 일하는 것과 게으른 것
먼저 첫 번째 모습인 부지런히 일하는 것, 그러니까 사람이 근면한 것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이는 어느 측면에 속하겠느냐? (그것은 인성의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이는 인성의 장점이겠느냐 아니면 결함이겠느냐? (인성의 장점입니다.) 매우 부지런하고 근면한 것, 이는 인성의 장점이다. 깔끔하고 청결하며 위생을 중시하는 것, 이는 어떤 측면의 모습이겠느냐? (인성의 장점입니다.) (그것은 좋은 생활 습관으로, 선천적인 조건에 속합니다.) 이것이 선천적인 조건이냐? 이는 인성의 한 측면의 장점이자 강점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방금 누가 선천적인 조건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옳지 않다. 이는 인성과 관련 있으며, 생활 습관과 관련이 있다. 물론 이것은 인성의 장점이자 강점이기도 하다. 다음 모습은 게으르며 편한 것만 좋아하고 일하기 싫어하는 것이다. 일하지 않을 때는 기분이 무척 좋지만, 일만 한다 하면 기분이 나빠지고, 걱정하고, 성질을 내고, 화를 낸다. 일을 해야 하면 몸이 무겁고 온몸에 힘이 없다고 느껴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하지만 먹고 마시고 노는 이야기만 나오면 기운이 넘친다. 게으름은 어떤 측면의 문제겠느냐? (인성이 나쁜 것에 속합니다.) 적어도 이것은 인성의 결함이며, 인성 한 측면의 결점이자 큰 문제이다. 하지만 그래도 인성이 나쁘다고까지는 할 수 없다. 만약 그가 늘 다른 사람을 부리고 이용하며, 자신은 일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대신하게 한다면, 이는 무슨 문제겠느냐? (인성이 나쁜 것입니다.) 일을 좀 시키면 온갖 이유와 핑계를 대면서 회피하며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또 어떤 목적을 이루려는지 겉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방식과 수단 또는 거짓말과 속임수로 다른 사람에게 일을 시키고 자신은 혼자 여유로움을 즐긴다. 이는 무슨 문제겠느냐? (패괴 성품, 사악한 성품입니다.) 단순히 패괴 성품이겠느냐? 남을 이용하고 부리기를 좋아하는 이런 부류는 우선 인성이 좋지 않고 인품이 악랄하다. 게다가 교묘하게 사람을 부리는 수단은 그의 성품이 간사하고 사악하다는 것을 드러낸다. 사람을 이용하고 부리기 좋아하는 이런 모습은 그의 인성이 좋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줄 뿐만 아니라, 그의 패괴 성품이 심각하며 간사하고 사악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아라, 어떤 모습은 그저 인성이 좋지 않거나 인성의 어느 한 측면의 단점에 불과해 패괴 성품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모습은 악랄한 인성을 바탕으로 패괴 성품과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그러므로 어떤 측면의 모습이든 모두 그렇게 단순하지 않으며, 어떤 모습은 한 측면의 문제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두 가지 측면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허영
허영, 이것은 어느 측면의 문제겠느냐? (인성 측면의 결함입니다.) 맞다. 이는 인성 측면의 결함이다. 만약 단순히 치장하거나 멋 부리기를 좋아하고, 다른 사람에게 예쁘다, 아름답다, 멋있다, 젊다는 칭찬을 받기를 좋아하는 거라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외모를 높이 평가하거나 좋게 생각해 주기를 바라는 거라면, 이는 단순히 인성의 문제이다. 인성의 어느 측면 문제겠느냐? 이것은 분명 장점이 아니라 결함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름다움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것이 결함일 수 있나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어째서 허영이 인성의 결함이라고 하겠느냐? 허영이 결함이라고 한 이상 허영의 모습은 옳지 않은 것이며, 겉으로 보기에도 단정하고, 존엄 있고, 경건하고, 신중하여 반듯하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는 겉모습이 단정한 그런 차원이 아니다. 이는 단정한 겉모습을 합리적으로 중시하는 것보다 과하고 심각한 것으로, 자신을 꾸미고 드러내는 것을 지나치게 중시하여 남들이 자신의 이미지를 중시하게 하는 것이며, 심지어 약간 뻔뻔하기까지 한 것이다. 즉, 이런 부류는 많은 일에서 외모의 영향과 속박을 받는다. 이것이 바로 인성의 결함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화장하지 않으면 외출하기 부끄러워하고, 향수를 뿌리지 않으면 사람을 만나기 부끄러워한다. 마음속으로 늘 이런 일들을 중시하며, 늘 지나치게 치장해서 사람들이 자신을 높이 평가하고 좋아해 주기를 바란다. 이것이 바로 지나친 허영으로, 결함이 된다. 이 결함은 이미 정상 인성의 요구 기준과 범주를 넘어선 것이다. 지나친 허영, 이것은 인성의 결함이다. 이 측면의 모습에 대해서는 여기까지 이야기하겠다.
나서기를 좋아하는 것
다음 모습은 나서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이는 어느 측면의 모습이겠느냐? (이는 인성의 단점으로, 남들 눈에 띄려고 하고 과시하기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패괴 성품이 있겠느냐? (있습니다. 그는 나서기를 좋아해 자신을 과시하고 남들 눈에 띄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나서기를 좋아해서 늘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것은 무슨 문제겠느냐? 지도자의 재능이 있기 때문에 그러겠느냐, 아니면 진리를 깨달았고 부담이 있기 때문에 그러겠느냐? 만약 부담이 있고 사역 능력이 있어서 어떤 사역을 맡을 수 있다면, 이는 나서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나서기를 좋아하는 것은 어떤 문제겠느냐? 이 측면은 인성의 결함이다. 이 부류는 나서기를 좋아해서 어디에 가든 자신을 과시하기 좋아하며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할까 봐 걱정한다. 말도 비교적 거창하고 과장되며 높은 음성으로 하고, 사람이 많을수록 더 발언하려 하며, 항상 무리 속에서 한자리 차지하려고 한다. 나서기를 좋아한다고 해서 인성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이는 인품과는 관련이 없는, 그저 인성의 결함이자 한 측면의 결점, 문제일 뿐이다. 어째서 인성 한 측면의 결점과 문제라고 하겠느냐? 이는 이성이 없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네가 사역을 감당할 수나 있으면서 그렇게 항상 나서려는 것이냐? 왜 항상 나서고 싶어 하는 것이냐? 야심과 욕망에 지배받는 것 아니겠느냐? 지위를 좋아하고, 남들이 치켜세워 주는 것을 좋아하며, 나서고 얼굴 드러내기를 좋아하는 것 아니겠느냐? 사람들 사이에서 명망이 있고 남들보다 한 수 위인 것을 좋아하며, 다른 사람을 이끌기를 좋아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런 부류는 인성이 드러난 것 아니겠느냐? 어떤 인성이냐? 이성이 없는 것이다. 이는 인성의 결함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한 가지 측면에서 보면 인성의 결함이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이 부류는 가끔 남의 눈에 띄려고 하거나 자신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다. 야심과 욕망에 지배되어 지위와 권력을 좋아하고 자기가 결정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나서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또 패괴 성품과 관련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는 어떤 패괴 성품이겠느냐? (교만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만이다. 네가 뭔데 나선단 말이냐? 네가 뭔데 결정하고 다른 사람을 이끌려고 한단 말이냐? “저는 진리를 깨달았고 부담도 있습니다.”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부담이 있더라도 네가 실질적인 사역을 할 수 있는지 봐야 한다. 부담이 있고, 하고 싶다고 해서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둘 사이는 논리적으로 아무런 관계도 없다. 네가 하고 싶고 좋아한다고 해서 할 수 있고 리더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네가 나서기를 좋아하고 지위를 좋아한다고 해서 모두가 반드시 너를 뽑아야겠느냐? 그렇다면 교회 리더를 선출하는 원칙은 무엇이냐? (사역 능력이 있는 사람인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인지, 올바른 사람인지에 근거해야 합니다.) 최소한 올바른 사람이어야 하고, 영적인 이해력이 있어야 하며,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사역 능력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양성 조건에 부합하며, 양성 대상이 된다. 이 몇 가지 조건을 다 갖춰야 하는 것이다. 만약 이 조건들을 하나도 갖추지 못했는데, 단지 나서기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모두가 너를 리더로 뽑는 것이 가능하겠느냐?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네가 늘 나서고 자신을 과시하기 좋아하는 것은 교만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는 교만하여 자기 분수를 모르는 것이다. 교만함은 인성 측면에서 보면 이성이 없는 것이고, 진리로 가늠하면 한 측면의 패괴 성품으로, 사탄 성품에 속한다. 나서기를 좋아하는 이런 모습은 인성의 결함이자 한 측면의 패괴 성품이므로, 이는 두 가지 측면의 문제이다. 나서기를 좋아한다고 해서 인성이 형편없거나 좋지 않은 수준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는 이성이 없는 구체적인 모습이자 교만한 성품의 한 가지 모습이다. 만약 그저 나서기를 좋아할 뿐 다른 사람을 억압하거나 괴롭히지 않으며, 또 악인의 수단으로 이간질하거나 패거리를 짓지 않는다면, 이는 인성의 결함에 불과하다. 하지만 악인과 적그리스도의 이런 모습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악행까지 저지른다면, 이 측면의 인성 결함은 한층 더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이니, 어떻게 되겠느냐? 인성이 형편없고, 나쁘며, 악하다는 말 몇 가지로 이런 인성을 규정하게 된다. 이와 동시에, 그가 표출한 패괴 성품의 모습에는 교만함뿐만 아니라 흉악함도 있다. 물론 더 구체적인 것도 있는데, 이는 그가 표출한 패괴 성품의 정도에 따라 규정된다. 만약 단순히 나서기를 좋아할 뿐 인성이 악한 모습이 없으며, 다른 사람을 억압하거나 괴롭히지 않고, 몰래 패거리를 지어 독립 왕국을 세우거나 비정상적인 수단을 씀으로써 사람들을 미혹하여 자기 말을 듣게 하지 않는다면, 나서기를 좋아하는 모습은 단지 인성의 결함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런 악행이 있다면, 이는 더 이상 단순한 인성의 결함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떤 문제겠느냐? (인성이 형편없고, 나쁘며, 악한 것입니다.) 맞다. 이는 단순한 인성의 결함이 아니라 인성이 악한 것이다. 나서기를 좋아하는 것은 인성의 결함에 불과하다. 만약 그가 영적인 이해력이 있고, 또 어느 정도 자질과 사역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너희는 그를 리더로 뽑겠느냐? (뽑습니다.) 왜 그를 뽑겠느냐? (그는 악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가 나서기를 좋아하는 것은 그저 패괴 성품의 표출일 뿐, 거기에는 악한 성분이 없다. 그는 악인이 아니므로, 리더의 조건만 갖추고 있다면 리더로 뽑을 수 있고 양성할 수 있다. 나서기를 좋아하는 것은 인성의 이성이 부족한 모습이지만, 그는 사역을 할 수 있고, 사역 능력이 있으며, 영적인 이해력과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이 있고, 또 사역하고 책임자가 되기를 원하는 이 점을 고려하면, 그를 뽑아도 된다. 왜 그를 뽑아도 되겠느냐? 그는 기준에 맞는 인성과 자질을 갖췄기 때문이다. 악인이나 적그리스도가 아니며, 다른 사람을 괴롭히거나 억압하지 않고, 독립 왕국을 세우려 하지 않으면 리더로 뽑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가 나서기를 좋아하는데 그 안에 악한 인성이 있다면 이런 사람을 뽑겠느냐? (뽑지 않습니다.) 아직 리더로 선출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수작을 부리기 시작하고, 뒤에서 패거리를 짓고 투표를 조작하며,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꼼수를 쓴다면, 심지어 비교적 진리를 추구하고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 좋은 사람들에 대한 유언비어를 날조하고 그들의 험담을 하며, 진리와 인성의 도덕에 어긋나는 일을 아주 많이 저지르고 일부 악행까지 한다면, 너희는 이런 부류를 리더로 뽑을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왜 이런 부류를 뽑지 않는 것이냐? (그는 인성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가 악인이라 하나님 집에서 사람을 쓰는 원칙에 부합하지 않으며, 하나님 집은 악인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 선민이 악인의 손아귀에 떨어지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겠느냐? 괴롭힘과 억압을 받는 한편, 교회가 뿔뿔이 흩어지고 무질서해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네가 하는 것은 더 이상 본분 이행이 아니라 악인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되며, 악인에게 통제되어 악인을 따라가는 것이 된다. 그 결과는 무엇이겠느냐? 구원받을 희망이 영영 사라진다. 이해했느냐? (이해했습니다.) 그렇다면 똑같이 나서기를 좋아하고, 또 똑같이 교만한 패괴 성품을 지닌 자들이 있을 때, 사람들이 그중 한 명을 리더로 뽑는 근거는 무엇이겠느냐? (인성입니다.) 맞다. 바로 인성에 근거하는 것이다. 교만하고 간사하고 강퍅한 각종 패괴 성품의 표출은 보편적인 것으로,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차이가 나겠느냐? 인성에서 차이가 난다. 겉으로 보기에 어떤 사람은 좀 방탕하지만 어떤 사람은 보수적이고, 어떤 사람은 비교적 흐리멍덩하고 허술하지만 어떤 사람은 영리하고 치밀하며, 또 어떤 사람은 외향적이고 명랑한 편인데 어떤 사람은 내향적인 편이다. 겉으로 보이는 성격 차이에 따라 인성의 본질 또한 분명히 다르다. 어떤 사람은 양심과 도덕의 마지노선이 있지만, 어떤 사람은 양심과 도덕의 마지노선이 없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악하고 잔인하고 독해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사람을 죽이고 통째로 삼켜 버릴 정도이며, 무슨 짓이든 다 할 수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짓이 악인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다. 만약 너희가 악인의 손아귀에 떨어지면 그야말로 편안할 날이 없을 것이며, 밝은 빛을 보지 못할 것이다. 사람이 악인의 손아귀에 떨어지는 것은 큰 붉은 용의 손아귀에 떨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너희는 이런 경험이 없느냐? (있습니다.) 악인이 인성적으로 가장 두드러지고 뚜렷하게 보이는 모습은 바로 악하고 독하고 잔인하고 도덕적 마지노선이 없으며, 양심의 기준도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진리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전혀 없으며, 겁 없이 함부로 행동하고, 무슨 짓이든 감히 할 수 있으며, 양심의 마지노선이 없고,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 겉으로는 본분을 이행하며 힘을 들일 수 있고 고생을 할 수 있으며 또 베풀 수도 있지만, 하나님과 진리에 대한 경외심이 전혀 없다. 매번 하나님, 하나님의 성육신, 하나님의 신분과 본질, 하나님의 행사를 증거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또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 대가를 치르며 심혈과 생명으로 인류를 구원한다고 증거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그는 말이 없어지고 말하고 싶어 하지도 않으며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멸시한다. 하지만 자신을 증거할 때는 할 말이 많아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나서기를 좋아하는 것, 이는 단지 인성 측면의 결함일 뿐이다. 만약 이 부류가 악을 행하지 않고 양심과 도덕의 마지노선이 있다면, 어느 정도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상황에서는 기본적으로 양심의 마지노선에 따라 일들을 가늠할 수 있다. 그의 양심이 작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어떤 이성이 마음에 들어서 상대방과 접촉을 하고 싶어도 그에게는 인성의 양심 마지노선과 염치가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자제하게 된다. 하지만 악인은 이런 것들을 신경 쓰지 않고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억지로 접촉한다. 만약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으면, 그는 온갖 방법으로 그를 괴롭히고 제압하며 못살게 굴 것이다. 하지만 양심의 마지노선이 있는 사람은 양심에 제약을 받아 어떤 과오는 범하지 않으며, 어떤 선을 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염치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상대적으로 더 깊이 잘 받아들인다면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될 것이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기 때문에 보통은 선을 넘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양심의 마지노선이 있는 사람이 리더가 되면, 너희에게 유익한 점이 매우 많다. 최소한 그는 너를 해치지 않을 것이며, 너를 지체시키거나 망치는 일은 더더욱 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너희에게 공급과 도움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악인은 다르다. 그는 단순히 말로만 너를 미혹하는 것이 아니라, 온갖 수단을 동원해 너를 괴롭히고, 억압하고, 짓밟는다. 만약 네가 그에게 굴복하지 않거나 그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또는 어떤 일에서 그와 논쟁을 벌이면, 그는 너를 공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죄하고, 망신 주고, 제압하려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너는 완전히 그의 손아귀에 떨어지게 된다. 평범한 패괴 인류와 악인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인성의 선악과 양심의 작용 여부이다. 악인은 양심이 없기 때문에 염치도 없어서 어떤 나쁜 짓이든 할 수 있다. 평범한 패괴 인류도 인성에 결함과 결점이 있기는 하지만, 양심과 이성의 제약을 받기 때문에 수많은 선을 넘는 일들을 하지 못한다. 설령 하나님을 믿지 않을지라도 분명한 악행은 저지르지 않는다. 예를 들어, 간음이나 도둑질 같은 일을 전혀 할 수 없다. 네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세상에 있을 때, 음란한 짓을 하라고 하면 할 수 있었겠느냐? 음란한 짓을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바로 성 파트너가 많은 것, 나아가 동시에 여러 이성과 관계를 맺으면서도 지각이 없으며 마음에 참소를 받지 않는 것이다. 너희는 이렇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없습니다.) 음녀나 창녀, 치한들은 이렇게 할 수 있다. 너희는 이들과 차이가 있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무슨 차이가 있느냐? 인성의 양심과 이성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있다. 양심과 이성이 염치를 갖게 하므로 네가 음란한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너에게는 ‘그렇게 사는 것은 좋지 않아.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을 거야. 나는 그런 부류와 선을 긋고 죽어도 음란한 짓은 하지 않을 거야.’라는 기준이 있다. 만약 그런 장소에 팔려 가면, 어떤 사람들은 “죽어도 그런 사람이 되지 않겠어요!”라고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굴욕과 억울함을 참으며 억지로 하기는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달가워하지 않으며 기회만 생기면 도망친다. 반면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그런 장소에 가지 말라고 해도 스스로 가려 하며, 돈을 벌지 못해도 간다. 음란한 짓을 좋아하기 때문에 돈을 벌든 못 벌든 상관없는 것이다. 이 두 부류는 차이가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성의 차이다. 인성의 차이는 매우 중요하다. 만약 너희가 각 부류 사람의 인성 모습 차이를 꿰뚫어 볼 수 있다면, 사람을 볼 줄 알게 될 것이다. 따라서 한 사람을 가늠할 때는 온전히 그의 패괴 성품에 근거하거나 그가 일시적으로, 혹은 특정 일에서 보이는 모습과 표출에만 근거해서는 안 된다. 그의 인성과 본성 본질에 근거해 그가 대체 어떤 사람인지를 가늠해야 할 것이다. 나서기를 좋아하는 측면의 모습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에서 마치겠다.
일 처리가 체계적이고 두서가 있으며 우선순위가 분명한 것
계속해서 또 다른 모습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즉, 일 처리가 체계적이고 두서가 있으며 우선순위가 분명한 모습이다. 이런 사람은 사색과 고민을 통해 무엇을 먼저 하고 무엇을 나중에 할지 결정할 수 있으며, 일을 무턱대고 하지 않고 계획성 있게 단계적으로 처리한다. 무슨 일을 하든, 심지어 가장 간단한 빨래조차도 단계적으로 해서 색상이 짙은 옷과 옅은 옷을 따로 세탁하며, 세탁량에 따라 물과 세제의 양을 조절하여 낭비하지 않는 등 그는 이런 것들에 대한 계획이 다 있으며, 그 계획들은 매우 체계적이고 꼼꼼하다. 이는 어떤 측면의 모습이겠느냐? (인성 한 측면의 장점이자 강점입니다.) 그렇다면 이 장점이 이 부류의 사람이 인성이 좋다는 의미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단지 인성 한 측면의 장점이자 강점일 뿐, 인품과 처신의 원칙에는 이르지 못하며, 패괴 성품과도 관련이 없다. 그저 생활 습관 또는 생활을 대하는 태도에 불과하다. 어떤 사람은 일 처리에 두서가 있고 계획적이며, 규칙을 파악할 수 있어서 일이 마무리된 후에 사람들이 보고 좋다고 생각한다. 이는 자질이 좋은 사람이다. 반면 자질이 부족한 사람은 다르다. 무슨 일을 하든 뒤죽박죽이고 혼란스러우며, 두서도 계획도 없이 제멋대로 함부로 해서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는 어떤 문제겠느냐? (인성에 결함이 있는 것입니다.) 이 측면의 인성 결함은 무엇과 관련이 있겠느냐? (자질이 형편없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자질이 형편없는 이 부류를 가리켜 ‘머리가 나쁘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내가 “이렇게 간단한 일도 이해하지 못하느냐? 머리는 장식으로 달고 다니는 것이냐?”라고 하면, “저는 머리가 나쁩니다.”라고 대답한다. ‘머리가 나쁘다’는 것은 어떤 뜻이냐? 바로 자질이 없거나 부족한 것으로, 이는 자질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어떤 측면으로 귀결되겠느냐? 선천적인 조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선천적으로 머리가 나쁜 사람인데, 훈련시킬 필요가 있겠느냐? 이런 부류는 무슨 일을 하든 계획과 두서가 없으며, 간단한 일도 한참 동안 해서 중요한 일마저 지체시켜 버린다. 이것이 바로 자질이 없거나 부족한 것이다. 이방인들은 늘 인성이 좋지 않은 사람을 ‘자질이 없다’고 한다. 예를 들어, 누가 공중위생을 지키지 않고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거나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를 질러 다른 사람의 공부나 휴식을 방해하면, “저 사람은 자질이 없어.”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는 규범을 모르는 것이고 인성이 없는 것이다. 어째서 이것을 자질이 없다고 한단 말이냐? 자질이 없다는 것이 이런 것이겠느냐? 자질이란 무엇이냐? 일 처리의 효율과 성과를 가리켜 자질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일 처리에 두서가 없는 것은 자질이 부족한 사람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 또한 인성 한 측면의 결함이다. 그렇다면 이 결함은 선천적인 것 아니겠느냐? 이런 것이 쉽게 변하겠느냐? 훈련을 통해 변할 수 있겠느냐? 돼지한테 나무에 오르라고 하면 그게 되겠느냐? 그것은 그럴 재목이 아니고, 그런 자질도 없다. 일 처리에 두서가 없는 것은 자질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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