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5) 제 1 부

추가 유언비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최근에 부정적인 유언비어를 들은 사람들이 있지 않으냐? (있습니다.) 너희는 이런 유언비어를 들었을 때 어떻게 반응했느냐? 두렵지 않았느냐? 궁금하지 않았느냐? 너희는 이 유언비어가 어떤 것인지 알고 싶지 않으냐? (알고 싶지 않습니다. 큰 붉은 용이 항상 근거 없는 유언비어를 만들어 내고, 무슨 말을 하든 그것은 다 거짓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런 유언비어의 세부 사항에 관심도 없고 그것이 말하는 그 마귀적인 말들을 알아보고 싶지도 않습니다.) 큰 붉은 용이 각종 유언비어를 날조하여 사람들을 미혹하고 패괴시키자 많은 사람이 유언비어를 듣고 미혹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두려워서 참도(道)를 받아들일 엄두를 내지 못했고, 일부 받아들인 사람들도 의심이 들어 하나님을 믿으려 하지 않게 되었다. 큰 붉은 용의 유언비어를 듣기 전까지 이들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고 아무런 의심도 없으며, 기꺼이 하나님을 따르고 본분을 이행하려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유언비어를 듣자마자 바로 의심이 생겨 하나님을 따르고 본분을 이행할 마음이 사라진 것이다. 특히 큰 붉은 용에게 체포된 사람들 중 일부는 큰 붉은 용의 고문과 위협에 타협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부인했고, 또 일부는 ‘3서’에 사인했으며, 심지어 강요에 의해 하나님을 욕하기도 했다. 이런 사람이 적지 않다. 너희도 많은 유언비어와 흑색선전을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또한 큰 붉은 용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체포한 후 세뇌하여 정말 많은 사람을 미혹하고, 게다가 하나님을 배반한 그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 봉사하도록 이용함으로써 교회를 감시하는 한편,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미행하고 감시하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큰 붉은 용은 종교 신앙을 없애고 하나님의 교회를 없애기 위해 하나님 선민들을 탄압하고 체포하는 일을 국가의 중요 업무이자 정치적인 임무로 여겨 매우 깊이 있게, 공을 들여 시행하고 있다. 그 결과, 하나님을 믿는 많은 사람이 겁을 먹고 하나님을 믿거나 본분을 이행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되었다. 특히 큰 붉은 용이 날조한 유언비어를 듣고 많은 사람이 미혹되었다. 하나님 집에서는 이런 유언비어에 대해 일찌감치 종합하고 분별하였으니, 여기에서는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만약 네가 정말 체포되어 큰 붉은 용이 이런 유언비어로 너를 세뇌하며 입장을 밝히고 ‘3서’에 사인하라고 핍박한다면, 어떻게 해야겠느냐? 지금은 너희가 큰 붉은 용이 날조한 유언비어가 전부 거짓이며 사람을 미혹하고 속이는 것임을 알고 있다. 그리하여 듣지 않고 보지 않으며 믿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이고는 있지만, 만약 이런 유언비어들이 네 앞에 놓여 네가 듣고 보게 하며, 심지어 그것을 사실로 여기게 한다면, 동요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마음속으로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사실의 진상을 알고 싶지 않겠느냐? 확인을 하고 싶지 않겠느냐? 큰 붉은 용이 유언비어를 날조해 사람들을 미혹하고 협박하거나 유언비어와 무신론으로 사람들을 세뇌하고 사상 교육을 하는 것에 대해 우리는 진리를 교제해 사람들에게 미리 예방 주사를 놔 줘야 하겠느냐? 이는 필요한 사역이겠느냐?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큰 붉은 용은 오랫동안 우리에 대한 유언비어를 날조했습니다. 특히 그리스도,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 교회와 교회 사역에 대한 유언비어를 날조했는데, 우리는 한 번도 이를 규명한 적이 없고, 나서서 우리의 태도와 관점을 밝힌 적도 없으며,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적절합니까?”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기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큰 붉은 용과 종교계의 각종 유언비어를 시종일관 명확히 분별하지 못해 마음속에 항상 물음표를 지니고 있다. 이 물음표는 완전히 믿지 않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믿는 것도 아닌, 중간 입장에서 이런 일들을 바라보며, 이런 일들이 모두 큰 붉은 용이 날조한 유언비어일 수도 있고 사실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그럴 수도 있다’라는 것이 진리를 구하는 관점이겠느냐? (아닙니다.) 이는 유언비어를 확인하고 검증하려는 관점이나 기다리고 관찰하는 관점이다. 내막을 아는 사람이 실상을 밝히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말해 보아라, 사람이 이 두 가지 관점을 가지고 있으면 어떤 결과가 야기되겠느냐? 위험하지 않겠느냐? 이 두 가지 관점 중 어느 관점이 사람을 굳게 서게 할 수 있겠느냐? (두 가지 관점 모두 사람을 굳게 서게 할 수 없습니다. 만약 사람이 마음속에 ‘그럴 수도 있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이는 아직 참도에 대한 확신이 없으며 마음속에 의심이 남아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유언비어는 그에게 매우 큰 시험일 것입니다. 사람이 참도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고, 진리를 믿지 못하며, 큰 붉은 용의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한다면, 사실 매우 위험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참도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 그들의 본질은 무엇이겠느냐? (불신파입니다.) 그런 자가 바로 불신파이다. 이 두 가지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 않겠느냐? 분명 적지 않다. 이런 사람들은 유언비어를 들으면 마음속으로 하나님에 대한 의심을 품고 그 내막을 알고 싶어 하며 유언비어의 진위를 분명히 하고 싶어 하지만, 진리를 구해 해결할 줄 모르기에 결국 흐지부지되어 버린다. 하지만 사실 이 문제는 여전히 사람들 마음속에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너희는 이런 유언비어를 들을 때 진리를 구하였느냐? 진리를 구해 유언비어를 해부하고 분별하였느냐, 아니면 유언비어의 옳고 그름을 일일이 분별하여 진위를 확인하였느냐? 너희는 유언비어를 들으면 그저 마음속으로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 순전히 큰 붉은 용이 유언비어를 날조해 비방하는 것이라는 생각만 할 뿐, 진리와 사실에 근거해 반박하지는 않는다. 사실 마음속에 어느 정도 의심이 남아 있음에도 그저 간단하게 이런 도리적인 말로 의심을 풀려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굳게 설 수 있겠느냐? 이것이 진리를 구하는 것이겠느냐? 이것이 진리를 깨닫고 얻은 것이겠느냐? 이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었겠느냐?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너희는 이 문제를 진리로 해결함으로써 이런 유언비어를 분별하여 미혹되지 않고, 마음속에 아무런 의문도 갖지 않으며, 나에 대한 의혹이나 추측, 경계를 완전히 없애고 싶지 않으냐?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당신의 설교를 듣고 당신의 양육과 목양을 받아 다들 어느 정도 수확을 거두고 성장했어. 하지만 당신과 실제로 함께 생활해 본 적은 없고, 당신이라는 사람을 실제로 접해 본 적도 없지. 그래서 당신이라는 사람이 대체 어떤 사람인지, 성격과 인품은 어떤지, 또 당신의 생활은 어떤지 전혀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해.’ 즉, 사람들은 이 육신의 인성 각 측면의 모습과 표출, 그리고 그의 생활, 사람과 일을 대하는 태도와 구체적인 모습에 대해 시종일관 의문과 의혹을 갖고 있는 것이다. 사람에게 이런 의혹이 있는 것은 한 가지 측면에서 보면 하나님의 성육신을 100%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진리를 너무 얕게 깨달아 종교계나 큰 붉은 용의 유언비어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너희는 나에 대해 많은 추측을 하는 것이다. 물론, 그 추측의 내용은 결코 긍정적이거나 정당하지 않으며, 분명 부정적이고 어두운 내용을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추측을 하는 것이 너희에게 좋은 일이겠느냐, 나쁜 일이겠느냐? 이런 추측이 짐이나 족쇄겠느냐, 아니면 일종의 격려겠느냐? 말해 보아라. (만약 사람의 마음속에 이런 좋지 않은 추측이 있다면, 이는 좋은 일이 아니라 일종의 짐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계하게 하며, 하나님을 믿는 일에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 부정적인 것들이 너희에게 어떤 영향을 주겠느냐? 어떤 결과를 초래하겠느냐? 이것들은 특정 환경에서 너에게 위험하지 않겠느냐? (위험합니다.) 이런 것들이 짐이고 너에게 좋은 일이 아니라면, 진리로 해결해야겠느냐, 아니면 한쪽에 제쳐 둔 채 신경 쓰지 않고 생각도 하지 않다가 정말 문제에 직면했을 때 다시 생각해야겠느냐? 너희의 태도는 무엇이냐? (저는 유언비어를 들었을 때 정말 내버려둔 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방금 하나님의 교제를 통해 이런 문제들에 직면하면 진리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했습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마음속의 이 짐을 내려놓지 못해 특정한 상황에서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며, 심지어 하나님을 의심하고 부인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입으로는 이런 것들이 유언비어라고 하지만, 만약 이런 유언비어들을 시종일관 진실하게 분별하지 못하고 올바른 태도로 대하지 않으며 마음속에 항상 이런 부정적인 것들을 지닌다면, 늘 그것에 속박될 것이다. 그럼 그 유언비어들은 너에게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다. 언제 어디서든 폭발할 수 있으며, 그 결과는 분명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이고 너를 산산조각 낼 것이다. 지금 ‘3서’에 사인한 그 사람들이 바로 폭탄을 터뜨려 스스로를 산산조각 낸 것 아니겠느냐? 큰 붉은 용은 그들이 ‘3서’에 사인한 후에도 놓아주지 않고 기어코 하나님 욕을 몇 마디 하게 한 후에야 일을 마무리했다. 그들은 내키지 않았지만 감옥에 가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탄을 따랐다. 또 하나님을 욕한 후에는 복받을 희망이 사라지고 완전히 끝장났으니, 더 이상 그 유언비어의 진위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오랫동안 품었던 걱정, 근심, 두려움이 다 완전히 사라졌으며, 이와 동시에 그들이 구원받을 희망도 사라졌다. 말해 보아라, 사람이 성육신한 하나님이나 이 흐름을 의심할지라도 하나님을 욕해서야 되겠느냐? (그래서는 안 됩니다.) 큰 붉은 용이 하나님을 욕하라고 한대도 왜 큰 붉은 용의 말을 들은 것이냐? 그게 누구든, 참도와 이 흐름은 부인할지라도 하나님을 욕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욕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느냐? (하나님을 욕할 수 있는 사람은 인성이 악한 데다가 진리를 몹시 증오하고 사탄의 권세를 따르는 사람입니다.) 말해 보아라, 사람이 마음속으로 진정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면, 하나님은 창조주이고 인류를 만들었으며 사람에게 생명을 주었다는 것을, 만물을 주재한다는 것을 믿는다면, 하나님을 욕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절대 그럴 수 없다. 어떤 경우라도 하나님을 욕하지 않을 것이다. 설령 그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의심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사역하는 이 흐름을 의심한다고 할지라도 결코 하나님을 욕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님을 욕할 수 있는 부류는 이 흐름과 성육신한 전능하신 하나님을 부인한 것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이 선포한 진리를 부인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떤 부류에 속하겠느냐? (마귀에 속합니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입니다.) 이 부류는 사탄 마귀의 무리이다. 그는 하나님의 선민도, 하나님의 양도 아니며, 비인류이다. 큰 붉은 용에게 체포된 후,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분별력이 없어서 유언비어를 듣고 의혹을 품는 사람들이 있다. 성육신에 대한 의혹을 품고, 위협과 유혹, 가혹한 고문에 압박받아 하나님의 이름과 성령 역사의 흐름을 부인하고, 교회를 부인한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하나님에 대한 배반인데, 여기에서 더 나아가 하나님을 욕하는 사람이 있다. 이는 양심과 이성이 심각하게 결여된 것으로,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이며,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른 것이다. 네가 사람을 욕하고 공격하고 판단하거나 비방해 봤자 법적으로는 기껏해야 명예 훼손죄나 인신 공격죄로 판결받을 뿐, 심각하다고 할 수 없으며, 죽을죄는 아니다. 하지만 사람이 하나님을 욕할 수 있다면 문제의 성질은 달라진다. 이는 단순히 하나님을 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독한 것이다! 모독이란 무엇이냐? 바로 긍정적인 사물, 진리,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공격하고 비방하고 매도하고 폄하하는 것으로, 이 모든 것이 다 모독에 속한다. 하나님은 거룩하며 지극히 높고 모든 인류를 주재한다. 하나님은 인류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분이며 인류 생명의 원천이다. 하나님의 본질과 신분, 지위는 지극히 높으며, 하나님은 완벽하고 아름답고 선하며 거룩하고, 흠잡을 데도 나무랄 데도 없다. 하나님이 거룩하고 완벽하며 지극히 높고, 인류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원천이기 때문에 피조된 인류가 하나님을 폄하하고 공격하고 매도하는 것은 전부 모독에 속한다. ‘모독’이 대체 무엇인지 이제 이해하였느냐? (하나님에 대한 공격, 매도, 폄하는 모두 모독에 속합니다.) ‘모독’이라는 단어를 설명하자면, 긍정적인 사물, 특히 진리나 하나님을 폄하하고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으로, 이것이 모독이다. 그래서 ‘모독’이라는 단어는 사람이 하나님을 폄하하고 매도하고 공격하고 판단하는 것을 형용할 때만 사용할 수 있으며, 이렇게 하는 것이 비교적 합당하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매도하고 공격하고 정죄할 때, 만약 그 말이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기껏해야 비방에 불과하며, 사실에 부합하면 비방에 해당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사람이 하나님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은 사실을 왜곡하고 흑백을 전도하는 것이므로 모독에 속한다. 사람이 감히 하나님을 정죄하는 것은 어떤 성질이겠느냐? 하나님에게 죄가 있겠느냐? (없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고 죄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폄하하고 공격하고 판단하고 매도하는 것은 전부 모독이라고 한다. 하나님을 욕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몇 마디 욕하기만 하면 풀려나고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어. 이런 상황이라면 하나님께서도 기억하지 않으실 거야.’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보기에는 그저 욕 몇 마디 한 것뿐이니 별로 큰 문제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일을 어떻게 보겠느냐? 네가 하나님을 욕할 수 있다는 것은 마음속으로 이미 하나님을 부인했다는 의미이다. 마음속에 증오가 생겨야만 하나님을 욕할 수 있다. 네가 자발적으로 욕했든 아니면 누군가에게 강요받아 욕했든 다 하나님을 부인하고 증오하는 모습에 속하니, 그런 행위와 행동 방식은 엄연히 모독이다.

어떤 사람들은 각종 유언비어를 시종일관 놓지 못하고, 늘 그런 유언비어가 진실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큰 붉은 용의 집권당, 종교계, 이방인이 퍼뜨리는 그런 유언비어, 특히 인터넷에 올라온 유언비어와 주장이 진실인지 늘 확인하고 싶어 한다. 하나님이 늘 입장을 밝히지 않고 하나님 집도 사실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그는 그 유언비어들이 진실이라고 완전히 믿어 하나님을 부인하고 배반하려 한다. 이는 어떤 문제냐? 그는 대체 무엇에 근거해 하나님을 믿는 것이냐? 만약 유언비어의 진실 여부에 근거한다면, 그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다. 사실 하나님 집은 설교와 영화를 통해 많은 유언비어를 매우 분명하게 해부하고 반박했다. 그러니 내가 여기에서 자세히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너희는 어떤 측면의 유언비어를 또 확인하고 싶은 것이냐? 오늘은 이 주제를 툭 터놓고 이야기해 보자. 너희가 확인하고 싶다면 내가 설명해 주겠다. 일부 사람들이 늘 ‘저희에게 숨기고 저희가 알지 못하게 하는 일이 있는 것 아닙니까? 저희는 아무리 해도 당신을 완전히 헤아릴 수 없습니다. 저희는 당신을 따르면서 이렇게 많은 진리를 들었지만, 유언비어의 진위에 대해서는 여전히 확신이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에 항상 확인하려는 마음과 생각이 있습니다.’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말이다. 만약 확인을 하고 싶다면 과감하게 말해라. 그러면 그 일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며 내가 설명해 주겠다. 이는 별로 숨길 게 없다. 확인하고 싶은 사람이 있느냐? (확인하고 싶지 않습니다.) 확인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큰 붉은 용의 유언비어를 믿지 않기 때문이냐, 아니면 ‘이 일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아.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두자.’라는 태도를 갖고 있기 때문이냐? 그것도 아니면 확인한 후 실망해서 직면할 수 없을까 봐 두렵고, 자신이 굳게 설 수 있을지 모르며, 이러한 결과를 마주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냐? 유언비어의 내용이 무엇이든, 너희가 확인을 원하든 아니든, 이런 유언비어에 대해 내가 어떤 말을 할지, 어떤 견해를 이야기할지 듣고 싶든 아니든, 너희의 태도가 무엇이든 나의 태도는 하나이다. 너희가 진리를 깨달으면 자연스럽게 이런 유언비어를 분별할 수 있을 테지만, 너희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구하지도 않는다면, 나는 너희에게 해 줄 말이 없다. 진리를 선포하면서 한 말이 너무 많아 이런 유언비어를 설명해 줄 필요가 없고, 또한 이는 내가 해야 할 사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설교를 그렇게나 많이 들었으면서 아직도 분별할 줄 모른단 말이냐? 만약 분별할 줄 모른다면, 그것은 진리를 깨닫지 못한 것이며,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많은 말을 해도 소용이 없다. 그것은 이방인에게 말하는 것과 같아서 아무리 말해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어떤 유언비어에 대해서든 나는 해 줄 말이 없다! 나는 어떤 설명도 하고 싶지 않으며,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고, 어떤 해명이나 변호도 하고 싶지 않다. 외부에서 뭐라고 하든 나는 해 줄 말이 없다! 똑똑히 들었느냐? (똑똑히 들었습니다.) 해 줄 말이 없는 것, 이것은 하나의 태도이다. 이 밖에, 이 일에 대해 내가 너희에게 이야기하려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바로 언제 어떤 때라도 하나님의 신분과 본질, 지위, 성품, 권병과 능력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이 인류를 주재하고 인류에게 생명을 공급한다는 사실, 하나님이 성육신했다는 사실이 변하지 않으며, 하나님이 진리이자 길이자 생명이라는 사실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너희의 의혹을 해결하는 데 이 말들이면 충분하지 않겠느냐? (충분합니다.) 이 일에 대해서는 이 정도만 이야기하겠다. 너희가 듣고 이해했다면 받아들이고, 이해하지 못했다면 천천히 묵상해 보아라. 만약 네 마음속에 여전히 의혹이 남아 있고 이런 말로도 그 의혹을 해결할 수 없다면, 나도 더 이상 방법이 없으니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두어라. 내가 너에게 할 수 있는 말과 일은 여기까지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겠느냐? (적절합니다.) 이런 말들이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작용을 할 수 있겠느냐? 각종 복잡한 사물 앞에서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에 균열이 생기거나 사람이 하나님을 의심하게 되었을 때 이런 말로도 네가 현재 직면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너는 불신파이다. 네가 받아들인 것은 진리가 아니라 사탄의 거짓말과 사탄이 하는 온갖 마귀적인 말이다. 과거의 아담과 하와처럼 말이다. 그들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새겼다. 하지만 사탄이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야. 너희가 먹는다고 반드시 죽는 것은 아니라고.”라고 하자 즉시 의혹을 품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말씀을 버리고 뱀의 말을 믿었으며, 하나님 말씀이 거짓이라고 의심하였다. 뱀이 그들에게 말했기 때문에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을 믿고 따르지 않고 뱀의 거짓말을 온전히 따르게 되었다. 마지막에 어떤 결과가 벌어졌는지는 따로 말할 필요 없을 것이다. 그들은 뱀이 한 말을 믿고 받아들이는 동시에, 하나님 말씀을 부정하고 하나님 말씀이 거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 말씀이 진실이라고 믿지 않았고, 또 더 이상 하나님의 신분과 본질을 믿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을 의심했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으며 거짓말로 그들을 속인다고 의심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그들은 뱀의 말이 진실이며 뱀은 그들을 위해서 그렇게 말한 것이라고 믿었다. 결국 그들은 뱀의 유혹에 넘어가고 사탄에 의해 패괴되어 하나님의 보살핌을 떠나게 되었고, 하나님의 보호를 잃게 되었으며, 되돌아올 수 없는 길에 오르게 되었다.

너희는 유언비어의 문제가 해결된 것 같으냐? 만약 해결되지 않았다면, 너희 스스로 천천히 소화해 보아라. 유언비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많이 교제하였다. 만약 아직도 각종 유언비어를 꿰뚫어 보지 못하고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너희 스스로 교제해 해결하여라. 이 일은 그다지 큰일은 아니지만,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종종 사람의 마음과 생활을 교란할 수도 있다. 일부 유언비어는 당장 너의 목숨을 위협하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너에게는 일종의 방해일 것이다. 마치 사람을 물지는 않지만 역겨운 똥파리처럼 수시로 나타나 한 번씩 교란할 테니 말이다. 특히 네가 연약해졌을 때, 실패와 좌절에 직면했을 때, 혹은 소극적으로 변했을 때, 이런 유언비어와 마귀적인 말이 나타나 너를 교란하고, 네 마음속에서 너를 괴롭히며, 너의 발목을 잡아 조금씩 조금씩 끌어내릴 것이다. 바로 이런 식으로 물러나 믿지 않게 되는 사람도 있다. B조로 보내진 사람들, 일반 교회의 사람들은 무척 위험하다. 그럼 풀타임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은 위험하지 않겠느냐? 매우 위험한 사람들도 있다. 어떤 사람들이겠느냐? 바로 시종일관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부류이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아무리 많이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마음속에 항상 이런 의혹을 품는다. ‘왜 나는 어떤 하나님 말씀이 진리인지 알지 못할까? 다들 진리가 길이요 생명이라고 하는데, 왜 나는 생명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나도 하나님 말씀을 적잖이 들었는데, 내 내면의 생명은 변화가 없어. 나는 여전히 나일 뿐, 변하지 않았다고!’ 그들은 시종일관 진리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알지 못하며, 이상(異象)에 대해서도 늘 모호해한다. 이런 사람은 위험하다. 이 부류는 유언비어를 들어도 진리를 구해 분별하는 일이 없으며, 그저 피하고 거부할 뿐이다. 만약 피할 수 있으면 화를 면하겠지만, 피하지 못하면 사탄에게 잡혀가게 된다. 말해 보아라, 이 부류가 사탄에게 잡혀가는 것이 우연이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시종일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을 믿는 일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는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양이겠느냐? 이들이 하나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겠느냐? (알아듣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시종일관 하나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고 진리를 구하지도 않는다. 그러면서 늘 “하나님의 날은 언제 오나요? 언제 천국에 들어가죠?”라며 이런 것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마땅히 알아야 하는 일들도 알지 못하니,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냐! 말해 보아라, 내가 이 어리석은 사람들을 상대로 말을 하면서 어떤 마음이 들겠느냐? 영광스럽겠느냐, 아니면 슬프겠느냐? 아니면 분노를 느끼겠느냐? 이런 사람들을 보기만 해도 속에서 열불이 난다. 이 어리석은 자들이 하나님을 믿은들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느냐? 그들은 큰 붉은 용에게 잡혀가 세뇌된 후 드러나고 도태된다. 이 사람들은 진리를 전혀 깨닫지 못했기에 하나님 집은 그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큰 붉은 용을 통해 그들을 드러내고 도태시키는 것이다. 말해 보아라, 이것이 사랑이 없는 것이겠느냐? (아닙니다.) 이런 사람이 만약 큰 붉은 용에게 체포되지 않고 이런 유언비어에 미혹되지 않는다면, 계속 교회에 눌러앉아 있지 않겠느냐? 어떤 상황에서 그들을 물러나게 할 수 있겠느냐? (큰 붉은 용의 유언비어를 통해 물러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유언비어를 듣고 믿으면 물러날 것입니다.) 큰 붉은 용이라는 부각물의 마수를 통해 그들은 완전히 넘어갔고, 믿지 않게 되었다. 사실 이런 사람들은 진리를 깨달을 수 없으며, 어떤 본분도 이행할 수 없고, 어떤 힘도 쓸 수 없다. 그들은 하나님 집에서 그저 머릿수만 채우며, 밥만 축내고 시간만 때우는 존재일 뿐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가련한 모습인데 자신이 하나님을 따르는 자라고,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말한다. 이는 부끄러운 짓 아니겠느냐? 하나님을 따르는 자라면 최소한 사람이어야지, 영이 없는 죽은 자나 짐승이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고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양이며, 하나님의 양이어야 진심으로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을 따를 수 있다. 하나님의 양이 아니라면, 진심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다. 그는 목적을 가지고 교회에 섞여 들어왔으며, 그 목적은 바로 복을 받는 것이다. 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없기에 아무리 오랫동안 믿어도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가질 수 없다. 마귀, 사탄, 더러운 귀신과 악령이 들린 사람들도 이것이 참도임을 알고 복을 받고 싶어 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이런 사람들을 원하겠느냐? (원하지 않으십니다.) 각종 악령과 더러운 귀신이 동물에 빙의한 후 오랫동안 수련해 요괴가 되고 나면, 늘 사람이 되고자 한다. 더러운 귀신이나 악령, 각종 동물의 정령이 되기를 원하지 않고, 한 단계 더 높은 존재인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이런 어리석은 자들도 자신의 수준을 높여 하나님의 선민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말해 보아라, 하나님이 이런 사람을 원하겠느냐? 하나님은 원하지 않는다. 그들이 교회에 섞여 들어와도 소용이 없으며 정리되어야 한다. 그들을 정리하면 하나님 집과 교회가 깨끗해진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적어도 하나님의 신분과 본질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진리이자 길이자 생명임을 인정하며, 기꺼이 하나님을 위해 힘쓸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 어리석은 자들이 여기에 이를 수 있겠느냐? 한참 부족하다. 그들은 모두 영이 없는 죽은 자인데도 늘 복을 받고 싶어 하고,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고 싶어 하며, 천국에 가고 싶어 한다. 야심과 욕망은 크다만, 자신이 어떤 주제인지 보지도 않고 분수를 모르는구나! 이런 사람들은 도태되어야 마땅하다. 아깝게 생각되느냐? (아깝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것은 정예이지, 사람 수가 많은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이는 하나님 선민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기준이자 교회 인원수에 대한 요구와 원칙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정예이다.”에서 ‘정예’란 하나님나라의 정예병을 가리키는 것이겠느냐, 아니면 이기는 자를 가리키는 것이겠느냐? 둘 다 정확하지 않다. 정확히 말해 ‘정예’란 정상 인성을 가진 사람, 진정한 사람을 의미한다. 하나님 집에서 네가 사람의 본분을 이행할 수 있으며, 너를 사람으로 쓸 수 있고, 누군가가 너를 끌고 당기고 밀지 않아도 사람의 책임을 다하고 사람의 본분과 의무를 이행할 수 있다면, 네가 쓸모없는 사람이 아니고 공짜 밥을 먹는 사람도, 백수건달도 아니며, 사람의 책임과 의무를 감당할 수 있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면, 너는 비로소 기준에 맞는 인류이다! 본연의 일에 집중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백수건달이 사람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 (감당할 수 없습니다.) 책임지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편, 책임을 질 수 없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는 쓸모없는 자이다. 사람으로서의 책임을 질 수 없는 자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지능이 낮거나 바보거나 지적 장애가 있거나 육체가 마비된 사람들을 표준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왜 그렇겠느냐? 이런 사람은 생활 능력, 생존 능력, 자립 능력이 없어 전적으로 다른 사람의 도움과 보살핌에 의존하며, 자립해서 살 수가 없고, 사람의 책임과 의무를 감당할 수 없으며, 하나님 집에서 자신의 본분을 다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는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며,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 리더 일꾼을 하든, 아니면 어떤 업무 기술과 관련된 사역을 하든 너는 자신의 본분에 속하는 사역을 해낼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 생활하고 생존하는 것 외에도 그저 숨 쉬고 먹고 마시고 놀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너에게 부여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사람만이 피조물, 사람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다. 하나님 집에서 늘 밥을 빌어먹으려고 하고, 어물쩍 대충 넘어가려 하고, 끝까지 대충 버티다가 복을 받으려는 그런 사람들은 어떤 사역과 책임도 감당할 수 없으며, 사명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사람은 도태시켜야 하며, 아깝지도 않다. 도태된 자들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 그를 쓸모없는 놈이라 불러도 좋고, 백수건달이라 불러도 좋으며, 놈팡이라 불러도 좋다. 어쨌든 그는 사람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 그에게 어떤 일을 맡겨도 그는 혼자 완수하지 못하며, 어떤 임무를 줘도 자기 책임을 짊어지지 못하고 자기가 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도 못한다. 이러면 끝난 것이다. 이런 사람은 살아갈 자격이 없으니 죽어 마땅하다. 하나님이 그를 살려 두는 것 자체로도 이미 은총을 베푼 것이며, 특별한 은혜인 셈이다.

유언비어라는 주제에 대해서는 여기까지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너희에게 또 다른 문제가 있다면 꺼내서 교제하거나 스스로 진리를 구해 해결하면 되니, 더 이상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괜찮겠느냐? 의견이 있느냐? (없습니다.) 만약 내가 언급하지 않은 다른 문제가 있다면, 너희 스스로 방법을 마련해 해결하여라. 이 일에서 나는 책임을 다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저희는 아직 원하는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런 유언비어가 진실인가요, 거짓인가요? 명확한 답을 주세요.”라고 한다면, 내가 명확한 답을 준다고 한들 무슨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 그러니 너희 스스로 답을 찾으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해 줄 말이 없다. 이는 너희가 분별력을 갖추었는지에 달린 문제이다. 진리를 얻은 사람은 영원히 미혹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이런 유언비어는 많은 사람을 드러냈다. 몇 년 동안 하나님을 믿었지만 진리를 얻지 못한 사람들이 모두 드러났는데, 이는 하나님의 지혜이다. 이것이 바로 나의 답이다. 이해하였느냐? (이해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알려 주려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내가 하려는 말은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몇 권에 모두 적혀 있고, 모든 설교에도 담겨 있다. 이 말들이 바로 내가 너희에게 하려는 말이다. 충분히 많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계속해서 “그렇다면 유언비어에 관해 당신은 어떤 답을 가지고 있습니까?”라며 대답을 강요한다면, 나의 대답은 “없다. 해 줄 말이 없다.”라는 것이다. 내가 하려는 말은 이미 모든 설교를 통해 충분히 말했다. 만약 너희가 진리를 구하고자 하고, 이런 말들을 받아들이고 지킬 수 있다면, 너희의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하지만 너희가 이런 말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너희의 문제는 영원히 문제로 남게 될 것이다. 나는 책임을 다했으니, 더 이상 나와는 상관이 없다. 똑똑히 이해했느냐?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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