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3) 제 6 부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은 지 10여 년, 20, 30년이 된 지금에서야 자신이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었지만 단지 표면적인 행위가 조금 변화하고 마음이 조금 되살아났을 뿐 패괴 성품은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가 조금 변화한 것을 보고는 생명 성품이 변화했다고 생각하며 남에게 과시하기도 한다. “보세요, 제 생명 성품이 변화하지 않았나요?” 사실 너는 행위만 변화했을 뿐 성품 변화의 실제 모습은 없으며 정상 인성을 살아 내지도 않고 있다. 그럼 성품이 변화했는지를 어떤 식으로 알 수 있겠느냐? 관상을 보는 것이 아니니 겉모습을 봐서는 안 되고, 무슨 말을 하는지 듣는 것으로도 안 된다. 자신의 의지와 바람을 설명하는 것을 들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의지와 바람은 가장 공허한 것이다. 그럼 무엇을 봐야겠느냐? 어느 누구도 독촉하거나 감시하지 않고, 심지어 어느 누구도 붙들어 주거나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서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모든 일을 바라보고 처리하는 방법과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마음속에서 하나님 말씀이 생명이 되어 모든 행동을 제약하는지를 봐야 한다. 만약 이런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면 좀 더 단순하게 이야기해 보자. 네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말을 할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원칙으로 삼으려는 의식이 있는지를 봐야 한다. 이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면 안타깝게도 너는 진리가 생명이 되지 않은 것이다. 패괴 성품은 여전히 네 생명으로, 언제 어디서든 너를 통제하고 네 의식, 사상 관점을 지배할 수 있다. 또 너는 언제 어디서든 자신의 감정과 기분, 염원과 판단, 관점과 기호에 따라 모든 사람, 일, 사물을 대하고 처리할 수 있기에 여전히 아주 위험하다. 너는 독립적으로 본분을 잘 이행하지 못하고 독립적으로 생활하지도 못하여 늘 남에게 의지해야 하며, 남이 붙들어 주지 않으면 쓰러진다. 이것이 바로 분량이 몹시 작은 것이고, 진리를 얻어 생명이 되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진리를 얻어 생명이 되지 않았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 나쁜 짓이나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너를 제약하는 원칙이 고작 한두 가지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네 이성이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아무도 너를 부추기거나 종용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너는 절대 일부러 하나님을 모독하고 욕하거나 교회 사역을 교란하고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일부러 하지 않는 것이 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자발적으로 하지는 않더라도 수동적으로 할 수는 있다. 여기서 수동적이라는 것은 무슨 뜻이겠느냐? 패괴 성품이 언제든 튀어나와 네가 어떤 말이나 어떤 행동을 하도록 지배할 수 있고, 언제든 네가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관점으로 사람과 일을 바라보고 패괴 성품으로 일과 사람을 처리하게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네가 잘못을 하나 저질렀는데 그 일을 상부나 리더, 혹은 그 어떤 사람에게도 알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해 보자. 너는 이유가 무엇이든지 간에 꿍꿍이를 품은 채 숨기고 말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이는 패괴 성품이 주도권을 잡은 것이냐, 진리가 주도권을 잡은 것이냐? 두말할 나위 없이 패괴 성품이 주도권을 잡은 것으로, 패괴 성품이 숨기고 말하지 않도록 너를 지배하여 뚫고 나가지 못하는 것이다. 뚫고 나가지 못한다는 것이 무슨 뜻이겠느냐? 너도 깨달은 진리를 실행하고는 싶지만 실행해 낼 힘이 없고 결코 네 패괴 성품을 이기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러면 너는 위험해지며, 진리를 행하지 못하게 된다. 네가 숨기거나 속이고 싶다면, 반드시 숨기고 속이는 일을 저지를 수 있다. 특히 상부에 숨기고 상부를 속이며, 좋은 일은 알리고 나쁜 일은 알리지 않는 것은 물론, 심지어 윗사람을 기만하고 아랫사람을 속이기도 한다. 너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진리를 몹시 사랑하고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이에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모든 진리를 열심히 기록하고 묵상하고 정리해서 실생활에서 실행하죠.” 네가 그렇게 생각하고 그런 염원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진리를 실행해 냈다는 뜻은 아니다. 왜 그렇겠느냐? 내면의 수많은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사상 관점이 이미 네 마음을 점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패괴 성품이 네 생명이 되고 주인이 되어 네 사상과 행위를 지배한다. 그러니 진리를 실행하려 해도 소용없고 마음대로 되지도 않는 것이다. 따라서 패괴 성품을 해결하지 않으면 설사 네가 본분을 이행하고 있더라도 원칙대로 일을 처리할 수 없다. 자발적이고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판단하거나 대적하거나 모독하지 않을 수만 있어도 괜찮은 편이다. 그러나 패괴 성품이 네 마음의 주인이 되니 너는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게 된다. 너는 아마 수동적이거나 긴박한 상황에서만 상부를 기만하고 하나님을 속이는 짓을 저지른다고, 긴박한 상황에서만 사람을 억압하거나 혈기를 드러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것이 한순간 마음이 조급해서 그런 것이겠느냐? 아니다. 그것은 뿌리 깊은 패괴 성품이 주도권을 잡아 초래한 결과이다. 그것은 필연적이다. 왜 필연적이겠느냐? 네가 깨달은 진리는 네게 단지 하나의 염원이나 신념에 불과할 뿐 아직 네 생명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가 지식을 갖추었든 갖추지 않았든, 자질이 뛰어나든 부족하든 최소한 진리는 네 생명이 되지 않았다. 즉, 진리가 네 내면에서 주도권을 잡는 게 아니라 사탄 성품과 사탄 철학이 주도권을 잡고 있다. 사탄 성품이 너를 지배하면 너는 사탄 성품에 기대 살아가는 것이고, 여전히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너는 이익이 손해를 보거나 체면이 깎이지 않는 상황, 네 지위나 명예, 이익과 관련 없는 상황에서는 진리를 좀 실행하려고 하겠지만 일단 네 명예와 이익, 지위, 종착지와 관련되는 순간, 패괴 성품이 단단히, 필사적으로 너를 붙들고 통제해 여전히 하나님에게 진실로 순종하지 못하고 100% 하나님과 진리를 배반할 것이다. 이런 현상들로 볼 때 네 패괴 성품이 해결됐느냐? 벗어 버렸느냐? 진리가 네 생명이 되었느냐? 한 가지 일이 발생했을 때 네가 깨달은 진리가 네 패괴 성품, 선택과 염원, 욕망과 야심, 지위와 명예를 이기지 못한다면 네가 깨달은 진리는 네 생명이 아니다. 진리가 네 생명이 되면 자연스레 그런 패괴 성품들을 이길 수 있다. 패괴 성품을 이기지 못한다면 진리가 네 내면에서 아직 주인이 되지 못했고, 생명이 되지 못했다는 뜻이다. 네가 진리를 사랑한다고 말할지라도 그것은 단지 네 동경과 바람일 뿐 진리가 네 생명임을 뜻하지는 않는다. 정상 인성을 가진 사람은 모두 긍정적인 동경을 품는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을 동경한다고 해서 좋은 사람이라는 뜻이겠느냐? (아닙니다.) 진리와 공평, 공의를 사랑한다고 해서 진리와 공평, 공의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겠느냐? 그것은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동경하는 것에 불과하다. 동경이란 무엇을 가리키느냐? (사람의 아름다운 바람을 가리킵니다.) 그렇다. 일종의 바람일 뿐 실제로 어떻게 처신하는지와는 무관하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너희는 지금 진리가 생명이 되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진리가 생명이 되었는지 여부는 어떻게 확인할 수 있겠느냐? 네 이익이 진리와 충돌할 때, 네 이익이 손해를 입고 위협받을 때 네가 깨달은 진리가 네 패괴 성품을 이길 수 있는지를 보면 된다. 이길 수 있다면 너는 진리가 생명이 된 사람이다. 이길 수 없다면 네 분량이 아주 작다는 증거이다. 어느 정도로 작겠느냐? 진리가 생명이 되지 못했을 정도로 작다. 실제 상태가 그렇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만약 진리가 생명이 되지 않았다면 저희가 어떻게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겠어요? 어떻게 하나님을 위해 고생하고 대가를 치를 수 있겠어요?” 심지어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저는 이미 어느 정도 충성심이 있어요. 이미 이기는 자로 만들어졌다고요.” 사실 이런 말에는 사람의 관념과 상상이 어느 정도 섞여 있다. 사람이 의지와 이상(理想)을 품는 것은 잘못된 게 아니고, 빛과 정의에 대한 동경, 진리 추구와 구원받는 것에 대한 동경 등 아름다운 바람은 사람의 일부 의식과 걷는 길의 방향은 물론 일부 행위까지 바꿀 수 있으며, 표면적으로는 사람의 기질과 생존 방식도 어느 정도 바꿀 수 있다. 여기서 바꾼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 예를 들어, 현재 네가 믿음이 있고 내적 상태가 특히 좋으며 소극적이지 않고 본분도 아주 순조롭게 이행한다면, 너는 자신이 유독 충성심이 강하다고 느끼고, 구원받고자 하는 바람도 이루어질 희망이 생길 것이며, 어떤 고생을 겪든 상관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좋은 날은 오래가지 않는다. 본분 이행 과정에서 일부 좌절과 실패를 겪고 책망과 훈계를 받으며 우여곡절을 많이 겪는다면, 심지어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거나 억눌려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한다면 너는 마음이 불편해질 것이다. 너는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그런 일들이 왜 일어나는지도 알지 못하며 하나님에게 기도해도 답을 얻지 못해서 괴로워하게 된다. 그런 일들이 발생하면 진리와 빛을 동경하는 네 의지는 상당히 큰 타격을 입고 망가진다. 그 후 너는 본분을 이행하려 하지 않고 본분 이행이 재미없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는 어떻게 된 일이겠느냐? 어째서 이렇게 빠르게 바뀌겠느냐? 어째서 예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겠느냐? 네가 분량이 있고 진리가 생명이 되었다면 네 충성심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너는 진리가 생명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내적 상태와 마음가짐, 하나님을 믿으며 헌신하려는 열정이 늘 기복이 심하고 불안정한 것이다. 한동안 모든 일이 순조롭고 기분이 좋으면 너는 흥이 나서 기도할 때 말도 많이 하고 하나님의 말씀도 읽으려 한다. 또 본분을 이행할 때도 최선을 다하고 조금 바쁘거나 힘들어도 상관하지 않으며 어떤 고생이든 견디려 한다. 그러나 일단 순조롭지 않아지면 소극적인 상태에 빠지고 연약해지며 본분을 이행할 때도 기운을 내지 못한다. 밥을 한 끼 덜 먹거나 잠을 좀 덜 자면 엄청난 고생을 한 것처럼 생각하며 속으로 ‘뭐 하러 이렇게 고생하지? 본분을 이행해 봤자 돈도 못 버는데. 그럼 아무 의미도 없잖아!’라고 불평한다. 보아라, 마음가짐이 완전히 달라졌다. 왜 이렇게 크게 바뀌는 것이겠느냐? 진리가 생명이 되지 않았고, 패괴 성품이 여전히 내면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열정이 있을 때 스스로 야심과 욕망이 없고 하나님에게도 요구 사항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패괴 성품이 여전히 내면에서 주도권을 잡고 있기에 그런 것들은 여전히 변하지 않은 상태이다. 적극적일 때는 열정이 가득하고 유독 흥이 넘쳐 아무도 막지 못하지만, 소극적일 때는 녹초가 되어 아무도 일으키지 못하고 늘 극단적인 태도만 취하는 등 조금도 안정적이지 않다. 이것이 바로 정상 인성에 부족함이 있는 것이다. 무엇이 부족하겠느냐? 진리가 생명이 되는 것이 부족하다. 바로 그런 것이다. 내적 상태가 기복이 심해서 소극적이었다가 적극적이었다가 한다면 이는 누가 초래한 것이겠느냐? 패괴 성품이 농간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패괴 성품은 오늘은 네가 이렇게 생각하게 하고 내일은 네가 저렇게 생각하게 하는데, 어쨌든 모두 네 염원과 혈기, 당시의 내적 상태나 기분, 감정에 부합한다. 그러나 사람의 내면에 진리가 있으면 달라진다. 진리가 네 생명이 되면 너는 언제든 자신이 하는 일을 정확하고 진실하게 정의하게 되고, 영원히 변하지 않게 된다. 기복이 심해지지도 않고, 한 번 실패하고 넘어졌다고 해서, 책망과 훈계를 좀 받고 좌절을 조금 겪었다고 해서 소극적인 상태에 빠져 주저앉지도 않는다. 또한 성난 젊은이들처럼 3일 밤낮을 뜬눈으로 지낼 수 있게 적극적으로 변하지도 않고, 이성적이고 정상적인 사람이 된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진리를 깨닫고 진리가 생명이 되면 이상(異象)이 뚜렷해진다. 자신이 왜 하나님을 따르고 본분을 이행해야 하는지 알게 되고, 본분을 이행해 어떤 성과를 이루어야 하는지, 이런 고생을 견디는 목적과 의미, 가치가 무엇인지와 같은 진리 원칙들에 대해서도 희미하거나 흐리멍덩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밝히 알게 된다. 따라서 고생해도 달갑게 여기고 불평하지 않으며 무슨 일을 하든 규율과 원칙을 지키는 데다가 언제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다. 소극적일 때는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저버리지 않고, 적극적일 때도 하나님에게 별도로 요구하지 않으며 내적 상태 역시 아주 정상적이다. 너희는 지금 이런 상태이냐?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겠느냐? (지금부터 진리를 추구해 자신의 패괴 성품을 해결하는 것을 중시해야 합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다. 말하건대 진리를 추구하지 않아 계속 패괴 성품이 주도권을 잡고 생명이 된다면 좋은 종착지를 얻을 수 없으며 기껏해야 힘쓰는 자가 될 뿐이다. 그러나 진리를 추구한다면 구원받을 희망이 커지고 결국 큰 복을 받을 것이다. 진리를 추구하면 패괴 성품에 결박되지 않을 것이고, 패괴 성품이 더 이상 생명이 되지 않으면 너는 정말로 구원받을 희망을 보게 될 것이다. 반면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패괴 성품이 해결되지 않으며 계속해서 억제와 의지력에만 기대 좋은 일을 하고 악을 행하지 않으려 한다면 길 끝까지 걸어갈 수 있을지도 말하기 어렵다.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을 때 해결해야 하는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냐? (패괴 성품입니다.) 패괴 성품을 해결하는 것이 가장 핵심이다. “저는 지금 하나님 집에서 풀타임으로 본분을 이행하며 제 모든 시간을 들이고 있어요. 그러니 제가 바로 이기는 자예요!”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이기는 자들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는데, 여기에서 이기는 자란 무슨 뜻이냐?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계 14:4) 이것이 간단한 의미의 ‘이기는 자’이다. 이기는 자가 되는 것에만 만족하고 끝내서는 안 된다. 간단한 의미의 이기는 자가 되는 것이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거나 진리가 생명이 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최종적으로 구원받는 사람이 되는 것은 단지 이기는 자가 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이기는 자는 그저 세상과 사탄, 사악한 흐름, 사악한 정권을 이길 뿐이다. 이런 자가 이기는 자이다. 네가 단지 진리 원칙을 좀 깨닫고 일시적으로 육체와 감정을 이기거나 각종 유언비어의 속박, 악인과 불신파의 교란을 받지 않는 것만으로는 이기는 자의 기준을 완전히 충족시킬 수 없다. 이런 소소한 체험만 있을 뿐이라면 그 가치는 크지 않다. 그렇다면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진리가 생명이 되는 것이야말로 가장 가치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진리가 생명이 될 수 있겠느냐? 오직 한 가지 길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고 많이 실행하고 체험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진리를 얻어 그것이 생명이 될 수 있다. 진리가 인생과 생활, 행동하고 처신하는 원칙을 주도하도록 실행한다면 진리 실제가 있는 것이다. 진리 실제를 갖출 때 네 기존의 사탄 성품은 물러난다. 어떻게 행동하고 싶을 때 먼저 고민해라.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진리 원칙을 의미하지는 않아.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살펴봐야 해.’ 매번 이렇게 고민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말하며 실행한다면 진리가 조금씩 네 생명 속에 스며들지 않겠느냐?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처럼 진리가 조금씩 네 마음속으로 스며들어 네 생활과 관점, 생존 상황, 내적 상태를 바꾸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면 네 내적 상태는 점차 변화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하며 악을 행하거나 방해하고 교란할 확률, 자신을 과시할 확률은 점차 줄어들 것이다. 반면 진리 원칙에 기대 실행하는 증거는 갈수록 많아진다. 중요한 시비를 가리는 일에 맞닥뜨릴 때 진리 원칙이 사탄의 패괴 성품을 이기고 개인적인 염원과 기호, 계획을 이겨야만 비로소 진정한 이기는 자이고 진리가 생명이 된 사람,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렇지 않고 단지 자신의 기호에 따라 ‘이렇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나는 달갑게 행동한 거고 불평도 없어.’라고 생각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불평이 없다고 하나 네가 실행하는 원칙은 무엇이겠느냐? 순전히 패괴 성품의 기호, 잘못된 사상 관점, 사심, 야심과 욕망, 감정, 혈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부 패괴 성품이 주도하는 것이다. 이는 패괴 성품을 표출하는 생명이지, 진리를 표출하는 생명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은 기억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정죄할 것이다. 너는 갖은 방법을 동원해 네가 살아 내는 것, 하는 말과 행동, 표출하는 사상 관점이 모두 진리에 부합하도록 해야 하고, 패괴 성품에서 생겨난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사상 관점이 네 마음속에서 갈수록 줄어들도록 해야 하며,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과 일을 바라보는 관점이 모두 진리에 관련되고 부합하도록 해야 한다. 이 측면에서 추구하고 중시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네 내면은 갈수록 변화할 것이고 내적 상태는 더욱 좋아질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글귀와 도리는 구구절절 조리 있게 이야기하지만 진리 실제를 언급하면 말이 없어지고 실제 인식은 조금도 말하지 못한다. 이는 무엇 때문이겠느냐? (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너의 생명이 여전히 패괴 성품의 생명이고 사탄의 생명이지, 진리의 생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방금 교제한 내용들을 다 알아들었느냐? 만약 너희가 패괴 성품을 아직 벗어 버리지 못했고 여전히 패괴 성품에 기대 살아간다는 것을 진정으로 인식한다면 소극적인 상태에 빠지겠느냐? (방금 하나님께서 저희의 패괴 성품이 아직 변화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속으로 크게 좌절했습니다. ‘지난 세월 계속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셨고 일부 특별한 환경에서도 진리 실행을 중시했는데 왜 여전히 패괴 성품이 변화하지 않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래서 조금 낙담했고 소극적인 상태에 빠졌지만 하나님께서 조금씩 인도하고 교제해 주신 덕분에 저는 단지 표면적으로 좋은 행위를 조금 했을 뿐 패괴 성품이 여전히 내면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확실히 변화하지 않았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행동할 때 우선 고민해 봐야 한다고, 사람의 생각이 아무리 좋아도 진리 원칙은 아니기에 하나님 말씀에 담긴 진리는 뭐라고 하는지 살펴 봐야 한다고, 행동할 때마다 진리를 구해 하나님 말씀대로 실행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서서히 내적 상태가 변했습니다. 하나님의 교제를 다 듣고 나니 다시 희망을 본 것 같고, 길이 생긴 것 같아서 소극적인 상태에 빠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소극적인 상태에 빠져서는 안 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소극적인 상태에 빠지지 마라.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는 것은 구원받는 것과 관련된 큰일이다. 패괴 성품일수록 더욱더 중점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반드시 전력을 다하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지, 소극적인 상태에 빠지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 비록 지금 너희는 진리 추구를 중시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실행할 줄 모를 때가 있다. 지금 너희에게 실행의 길을 말하면 너희의 생명 진입에 더욱 유리할 뿐만 아니라 너희에게 위기감을 심어 줄 수 있고 너희가 진리를 중시하며 가능한 한 빨리 진리를 깨달아 진리 실제에 진입하게 할 수 있다. 스스로 자만하지 말고, 현재 상태에 만족하지도 마라. 지금 너희는 단지 말을 잘 따르고 규율을 지키며 예전보다 조금 철이 들었을 뿐,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려면 아직 멀었다!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나 있는데 소극적인 상태에 빠진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소극적인 상태에 빠져도 실제 문제는 해결할 수 없으니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찾아보고 거기에서부터 해결하기 시작해야 한다. 지금 해결에 착수해도 늦지 않다. 그럼 언제가 되면 늦겠느냐? 하나님의 사역이 끝나면 늦는다. 너희는 진리 실제에 진입해 진리를 얻어 생명이 되게 할 의지가 있느냐? (이제 그런 의지가 있습니다.) 사실 진리 실제에 진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알다시피 진리를 교제하는 말씀은 아주 많이 했고 세부 사항도 많으며 아주 구체적이라 내용이 상당히 많아 보이지만 원칙과 실행 길은 변하지 않는다. 패괴 성품이 표출될 때는 의식적으로 그 생각이나 뜻을 붙잡고 속으로 묵상해라. ‘이건 패괴 성품이야. 그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예전에 해결해 본 적이 없는데. 하나님을 믿은 지 이렇게 오래되었지만 외적으로 행하는 데만 중점을 두고 자신을 과시하는 것만 중시했지, 내게 아직 패괴 성품이 있다는 것은 고민해 본 적 없구나. 그런데 오늘 갑자기 내 내면에 이런 생각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어. 이 생각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지? 패괴 성품에서 비롯되었어. 그럼 패괴 성품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진리를 구한 다음, 주변에 체험이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아라. 그들이 네가 진리를 구해 문제를 해결하도록 이끌어 줄 것이다. 다 같이 서로 붙들어 주고 도와주며 이해해 주어야 한다. 모두 분량이 같으니 누구도 다른 사람을 우러러보거나 멸시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서로 도와주고 붙들어 준다면 분량이 점점 자라나 마지막에 함께 구원받아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텐데, 그러면 좋지 않겠느냐? (좋을 것입니다.) 자, 오늘 교제는 여기에서 마치겠다. 다음에 또 보자!
2023년 9월 9일
성경은 ‘개역한글’을 인용하였습니다
클릭하세요! 하나님에게서 온 기쁜 소식이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게 임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