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4) 제 2 부
우리가 교제할 주요 주제 하나는 바로 성육신이 생활하고 생존하면서 처신하는 원칙과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다. 이 두 가지 측면을 교제함으로써 너희가 성육신의 정상적인 면과 실제적인 면을 더욱 잘 알게 하거나, 성육신에 대해 더 많이 알게 하려 한다. 한 가지 측면에서 볼 때, 성육신은 인류 가운데서 생활하며 처신하는 데 원칙이 있고, 일을 처리하는 데도 원칙이 있다. 이 원칙은 매우 간단하다. 내게 있어 처신은 바로 규범을 지켜 처신하는 것이고, 일을 처리하는 것은 바로 분수에 맞게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규범을 지켜 처신하고, 분수에 맞게 일을 처리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원칙이자 신조이다. 모두 몇 글자이냐? (스무 자입니다.) 이 스무 자는 매우 간단하고,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이해하기가 무척 쉽다. 조금도 추상적이거나 공허하지 않고, 심오하지 않으며, 고급스럽고 격조 있고 세련되지 않다. ‘규범을 지켜 처신하고, 분수에 맞게 일을 처리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처신하고 일을 처리하는 원칙이자 신조이다. 나는 처신하고 일을 처리할 때 이 원칙을 준수하며, 이렇게 행한다. 그렇다면 너희는 이것이 사실임을 알 수 있겠느냐? 비춰 볼 수 있겠느냐? 한편으로 나는 설교하고 교제할 때, 사람들과 접촉하고 교류할 때,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늘 이렇게 처신하라고 알려 준다. 다른 한편으로 나 자신도 이렇게 처신하지, 구호를 외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에게 이 원칙을 말해 주겠느냐? 나 자신이 바로 이렇게 일을 처리하고, 이렇게 처신하기 때문이다. 다른 심오한 것은 없다. 어떤 사람들은 “당신의 그 처신 신조는 무척 서민적이라서 조금도 고상하지 않네요. 이것으로는 성육신 하나님의 신분을 대표할 수 없겠는데요!”라고 하는데, 이 말이 맞느냐? (맞지 않습니다.) ‘규범을 지켜 처신하고, 분수에 맞게 일을 처리한다.’, 이는 하나의 원칙이자 신조이다. 나는 일상생활에서도 이렇게 행하고, 직분을 다할 때, 즉 사역을 할 때도 이렇게 행한다. 나는 이렇게 처신하고, 또 이렇게 일을 처리한다. 수다를 떨고 담소를 나누듯 이런 일을 말해 보자. 너희도 마음을 편히 갖고, 나에게서 내 생활 측면의 정보들을 더 많이 알게 하려는 것이다. 좋지 않으냐? (좋습니다.) 만약 내가 이야기하는데 너희 중 누가 “반대합니다! 당신의 말씀과 행동은 같지 않습니다.”라고 한다면, 다시 말하겠다. 그리고 바로잡거나 앞으로 고치겠다. 또 만약 너희 중 누가 손을 들고 “찬성합니다! 당신의 말씀은 저희가 보고 들은 당신의 생활 속 표출과 똑같습니다. 당신의 말씀은 사실입니다.”라고 한다면, 나는 계속 유지하겠다. 괜찮지 않으냐? (괜찮습니다.)
‘규범을 지켜 처신하고, 분수에 맞게 일을 처리한다.’, 생활 속에서든 사역을 할 때든 나는 이 신조를 굳게 지킨다. 사역 과정에서 너희가 느낄 수 있는 것이 적다고 할 수 없으니, 먼저 생활 측면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성육신은 인류 가운데서 특수한 신분을 가진 한 사람이지만, 일을 처리할 때 조금도 특혜를 누리지 않고, 자신을 특수한 인물로 대하는 법이 없으며, 그저 평범한 사람이다. 그는 어느 나라에 가든 그 나라의 법률과 규정을 준수한다. 또 어떤 일을 처리할 때 모르는 것이 있으면, 현지 법률과 정책이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어떻게 하는 것이 위법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위법이 아닌지 서둘러 문의하고 알아본다. 그렇게 적절한 방식대로 행할 뿐, 특혜를 누리지 않는다. 이렇게 하는 것이 규범을 지키는 것이고, 분수에 맞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규범을 지켜 처신하고, 분수에 맞게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을 처리할 때 관련 법률을 알아야 한다면, 변호사에게 자문하거나 법률 법규를 찾아본다. 위법한 일은 하지 않고, 법의 허점을 노리지도 않으며, 법률 법규를 엄격히 준수한다. 대다수 국가의 법률 법규는 개인의 합법적인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며, 마땅히 준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마당에 건축물을 지으면서 어떤 물건을 놓으려 한다면, 먼저 정부가 그 일에 대해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마당에 그 물건을 놓아도 되는지, 놓아도 된다면 어디에 놓는 것이 적절한지 문의하고 알아봐야 한다. 세부 사항을 확실히 물어본 뒤 정부의 규정대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만약 정부가 그런 행동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하지 않는다. 억지를 부리지 않으며, 안 되는 줄 뻔히 알면서도 기어이 법을 어기며 일을 처리하는 짓은 절대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어떤 건축물을 지으려면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정부의 허가가 떨어져야 시공할 수 있다. 공사가 완공되면 또 정부의 검사를 거쳐야 하며, 검사에 합격해야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다. 이것이 건축 절차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소규모 공사도 반드시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정부 규정이 있나요? 신청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거라면, 번거롭게 굳이 신청할 필요 없잖아요.”라고 하는데, 나는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반드시 정확하게 알아봐야 한다. 만약 필수적으로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받지 않는다면 규정을 어기는 것 아니겠느냐? 규정을 위반해서는 안 된다. 이 건축물을 짓기로 한 이상 허가를 받아야 한다. 만약 정부에서 허가받을 필요가 없다고 한다면, 허가를 받지 않아도 마음이 편할 것이고, 정부에서 반드시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면, 허가를 받는 것이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것이다.” 법률이나 정부 규정과 관련된 일은 무조건 정확히 문의해야 한다. 그러지 않았다가 문제가 생기면 무척 번거로워진다. 해외에서 생활할 때 지켜야 할 최소한의 한 가지는 위법한 일을 하지 않고, 정부 규정을 위반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시골에 살면서 닭이나 양을 키우려면,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정부는 이런 일에 상세한 규정을 두고 있으니, 절대 위반해서는 안 되고, 특혜를 누려서도 안 된다. 정부 규정을 위반했다가 적발되면 무척 번거로워지므로 우리는 법과 규율을 준수해야 한다. 이 또한 어떻게 처신하고 어떻게 생활할지에 대한 원칙과 관련이 있다. 어디에서 생활하든 규범을 지켜 처신하고, 분수에 맞게 일을 처리해야 한다. 나는 일상생활에서 이웃과 지낼 때도 규범에 따라 행하며, 소음을 내지도 않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는다. 또 정부가 어떻게 규정하든 우리는 준수해야 한다. 개를 키우더라도 관리를 잘해서 개가 함부로 짖어 이웃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게 해야 한다. 특히 주말에는 이웃들이 모두 집에 있으니, 피해를 주지 않도록 더욱 주의해야 한다. 겨울에 눈이 올 때도 역시 아침 8시 이후에 눈을 치우기 시작해야 한다. 너무 일찍 눈을 쓸면, 소음 때문에 이웃의 휴식을 방해하여 미움을 사게 된다. 정부의 명문화된 규정이 있으면 준수해야지, 고의로 정부 규정을 위반해서는 안 되고, 정부와 각을 세워서도 안 된다. 이것이 바로 규범을 지켜 처신하는 것이다. 나는 어느 곳에 살든 기본적으로 소음을 내지 않는다. 밖에서 음악을 틀어 놓은 적이 없고, 큰 소리로 떠들거나 말하지도 않으며, 개를 산책시킬 때도 개가 함부로 짖지 못하게 한다. 또 최대한 이웃을 시끄럽게 하지 않고, 남의 생활을 방해하지 않으며, 미움을 사지 않으려 한다. 이것이 규범을 지켜 처신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래서 나는 수년간 주변 이웃들과 잘 지내 왔다. 서로 아무 탈 없이 지내며, 만나면 인사를 나누고, 우호적이고 화목하게 어울려 지낸다. 어디에 살든 이웃과 지낼 때는 규칙을 지켜야 한다. 남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되고, 비굴하게 굴 필요도 없다. 타인을 올바르게 대하고, 공평하고 공정하게 일을 처리한다면, 오래 지내도 아무 갈등이 없을 것이다.
성육신의 규범을 지켜 처신하는 측면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그것은 아주 정상적인 일 아닙니까?”라고 말하는데, 나는 이렇게 말한다. “네 말이 참으로 맞다. 그렇게 정상적이다.” 이 정상적인 것은 어디에서 비롯되었겠느냐? 인성의 양심과 이성에서 비롯되었다. 성육신에게는 정상 인성이 갖추고 있는 온전한 양심과 이성이 있기에 ‘처신’이라는, 사람이 보기에 아주 보잘것없는 일에서 준수하는 원칙 역시 매우 보잘것없다. 그것은 바로 규범을 지켜 처신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이렇게 말한다. “그게 뭐 대단한 일이랍니까? 그게 언급할 가치가 있나요? 그게 정상적이고 실제적인 면입니까? 그런 건 다 사소한 일이지요.” 비록 사소한 일이지만, 규범을 지켜 처신하는 것은 성육신 하나님의 정상적이고 실제적인 면의 한 가지 체현이니, 이는 교제할 가치가 있고, 사람이 인식할 가치가 있다. 사람은 규범을 지켜 처신하는 것을 보잘것없게 여기는데, 만약 내가 삶 속에서 매사에 특혜를 누리고, 매사에 스스로를 내세우며 “나는 그리스도이며 하늘에서 왔다. 나는 남다르다. 나는 인류 중의 특수한 존재다. 모든 인류, 모든 생물, 모든 피조물은 내 발아래에 짓밟혀야 하고, 만물은 나의 발등상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모두 내게 엎드려 경배해야 하고, 모두 내 앞에서 깍듯하게 양보해야 하며, 모두 공손하게 굴어야 한다.”라고 한다면, 이것이 정상적이겠느냐? (정상적이지 않습니다.) 이는 정상적이지 않다. 내가 그렇게 하더냐? (그러지 않으십니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접촉하는 한 사람 한 사람, 특히 이방인과도 화목하게 지내며, 규범과 예의에 맞춰 대하고 교류한다. 사람들과 어떤 일을 논의하거나 문의할 때도 그들을 각별히 존중하며, 모르는 것은 많이 묻고 알아본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은 인내심을 가지고 대답해 준다. 물론, 규범을 지켜 처신하는 것은 그들이 나를 그렇게 대했기 때문에 나도 보답하는 것이 아니다. 성육신이 이 현실 환경에서 생활하며 사람들과 어울리고 일을 처리하는 것 자체가 이러한 원칙을 준수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도서관은 책을 읽고 공부하는 곳이니, 그곳에 가면 그곳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 떠들어서는 안 되고, 되도록 말을 하지 말아야 하며, 말을 하고 싶으면 목소리를 낮추거나 밖에 나가서 해야 한다. 특히 남의 독서를 방해하거나 지장을 주지 않도록 전화벨이 울리면 얼른 나가서 받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규범을 지키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걸려 오는 전화가 있으면, 나는 밖으로 나가서 받는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말하지만, 정말 모르는 사람이 있다. 서양의 일부 식당이나 마트, 사무 공간에서는 큰 소리로 말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는데, 현지 종업원이나 직원들은 이에 큰 반감을 갖는다. 특히 일부 아시아인들은 규범을 전혀 몰라서 대단히 저급해 보인다. 어떤 곳에는 규정이 분명히 적혀 있는데도 보고도 못 본 척한다. 심지어 모국어로 적힌 규정을 보고도 준수하지 않고, 오히려 규정을 위반하며, 직원이 주의를 주어도 따지려 든다. 이는 망신스러운 일 아니겠느냐? 어떤 사람들은 국내에서 위세를 부리던 버릇이 있어서 서양에 가서도 자기 구역인 줄 알고 안하무인으로 굴며 제멋대로 행동하는데, 규범을 전혀 지키지 않아 결국 어디를 가나 사람들의 반감과 혐오를 산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교통 부처에 시험을 보러 가서도 소란을 피우고, 나중에 자국민을 만나면 이렇게 떠벌린다. “우리 중국인은 어딜 가나 자유롭죠. 규칙을 지키는 건 딱 질색이라니까요.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을수록 좋아요. 누가 간섭하면 한바탕 난리를 쳐 줄 겁니다!” 이는 살아 있는 귀신 아니겠느냐? 그곳이 중국인 줄 아느냐? 권력과 세력이 있다고 위세를 부릴 수 있겠느냐? 그곳은 외국이고 법치 국가이니, 법률 법규를 위반하면,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법과 규율을 준수하는 것은 사람이 최소한으로 해내야 할 바이다. 사람이 이런 규범조차 모른다면, 너무 사람답지 않은 것이다.
나는 보통 공공장소에 가면 각별히 신중하게 행동한다. 특히 몇몇 정부 기관에 가서 업무를 볼 때는 신중하게 행하며, 그곳의 규칙을 어기지 않는다. 어떤 서류를 작성하든, 어떤 답변을 하든 규칙대로 일을 처리하는데, 몇 번 일을 처리하다 보면, 경험이 생긴다. 규칙을 지키기는 쉽다. 문제는 규칙을 모르는 것이다. 그러면 웃음거리가 되는 것은 차치하고, 일 처리에 지장을 주지 않겠느냐?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으므로 규범을 지켜 처신해야 한다. 서양인들은 이런 일을 기본적으로 다 해낼 수 있다. 성육신 하나님은 정상적인 이성과 양심이 있으니, 당연히 해낼 수 있으며, 적극적이고 주동적으로 행한다. 그는 자신을 피조된 인류 가운데 특별한 존재로 분류하지 않으며, 이런 법률 법규를 피해 특혜를 누리는 일도 없다. 정부 부처에 가서 어떤 업무를 처리하든 다 절차대로 하며, “나는 특수한 지위와 특수한 신분을 갖고 있는데, 특별 대우를 해 줄 수 없습니까?”라고 요구하는 법이 없다. 한편으로 그런 경로를 찾으려고 다른 사람에게 질문하지 않고, 또 한편으로는 하늘의 하나님에게 “하나님, 제게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 이 일이 단번에 이루어지게 해 줄 수 없습니까? 그러면 사람들처럼 그런 절차를 밟지 않아도 되지 않습니까?”라고 기도하는 법도 없다. 나는 절대 그렇게 기도하지 않고, 규범을 지켜 절차대로 일을 처리한다. 물론, 이런 일을 처리할 때 특수 상황에 부닥치기도 하는데, 특수 상황에 부닥치면, 특수하게 처리해야 한다. 비용을 내야 하면 내고, 기다려야 하면 기다리며, 정부에 다시 신청하거나 확인해야 하면 다시 신청하고 확인한다. 반드시 법률 법규에 따라 엄격하게 절차를 밟지, 단계를 뛰어넘지 않는다. 마트에 가서 물건을 사든, 정부 부처에 가서 업무를 보든 남들이 줄을 서면 나도 따라 줄을 서고, 내 차례가 되면 얼른 앞으로 가며, 남들이 하라는 대로 규범을 지켜 그들의 요구에 맞춰 행한다. 이렇게 처신하며, 삶 속에서 일이 닥치면, 이렇게 행하고 이렇게 체험한다. 일부 특수한 경우에는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하지만, “규범을 지켜 처신하고, 분수에 맞게 일을 처리한다.”라는 신조에는 절대 영향을 주지 않으며, 해야 하는 대로 행한다. 특히 나라는 사람은 아시아인의 얼굴인 데다 체격이 작고, 생김새도 평범하며, 목소리도 크지 않고, 평범하고 수수해 보이며, 사람들 속에서 눈에 띄지 않고, 아예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특수한 환경에서 업무를 볼 때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차별을 받거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특수 대우’를 받기도 한다. 만약 이런 일이 닥치면, 너희는 어떻게 하겠느냐? 상대에게 따지겠느냐, 아니면 고발하겠느냐? 그것도 아니면 하나님에게 기도하며 그를 저주하겠느냐? 너희는 어떤 방식을 취하겠느냐? (만약 그때 여건이 된다면, 상대에게 따질 것 같습니다.) 그럼 그를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저주하지는 않겠느냐? (저주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저 마음속으로 꽤 화가 나겠지요.) 특수 대우를 받거나 차별을 받는 상황에 부닥치면, 내버려두어야 한다. 나 같은 경우, 기도하며 저주하지 않고, 상대와 따지거나 다투지도 않으며, 내버려두고 올바르게 대한다. 마음이 다소 괴롭긴 해도 며칠 지나면 괜찮아지고 스스로 풀린다. 설령 너의 존엄과 인격이 모욕을 당했을지라도 혈기를 드러내서는 안 되며, 혈기의 방식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 그럼 어떻게 대해야겠느냐? 상대가 너를 차별하거나 모욕한다면, 인내하며 대하고 그를 멀리하며 혈기를 드러내지 마라. 그러면 그도 너를 어쩌지 못할 것이다. 이번에 손해를 본 것은 하나의 교훈으로 삼아라. 만약 내게 이런 일이 닥친다면, 정상 인성의 이성과 양심 때문에 상처를 받았다고 느낄 것이고, 인격과 존엄이 타격을 받았다고 느낄 것이며, 마음도 괴롭고 아플 것이다. 하지만 절대 내게 특수한 신분과 특수한 지위가 있다고 해서 억울해하지는 않으며, 나를 차별한 사람들을 증오하거나 저주하는 일은 더더욱 없다. 나이가 들수록 이런 일이 너무나 정상적이라고 생각된다. 이 인간 세상에서 살면서 이런 패괴된 인류 속에 있다 보면, 이런 일은 너무나 정상적이다. 이런 일이 정상적이라고 느끼는 것은 수시로 보아 와서 무감각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은 모두 패괴된 인류이기 때문이다. 그가 너를 차별하는 것은 너라는 사람을 겨냥했기 때문이 아니라, 전 인류가 다 그렇기 때문이다. 보아라, 미국이라는 다민족 이민 국가에서는 모든 인종의 사람이 차별을 받은 적이 있다고 말하는데, 심지어 백인조차도 자신이 차별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사람은 서로 다른 상황, 서로 다른 환경, 서로 다른 무리 속에서 누구나 차별을 받는다. 때로는 다른 인종으로부터 차별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같은 인종 안에서도 어느 정도 차별이나 불공평한 대우를 받기도 한다. 네가 생각하는 차별은 어쩌면 패괴된 인류가 사람을 대하는 가장 흔한 처세 방식일 수 있다. 이 인류는 본래 이러하니, 이런 일로 너무 따지고 들지 마라. 화가 나는 것은 정상적이지만, 이 일을 빨리 간파한 다음, 해소해야 한다. 혈기를 부리는 방식으로 대하지 말고, 누군가에게 보복하거나 기도하며 누구를 저주할 생각도 하지 마라. 또 너 자신이 남다르다고 생각하지 마라. 너는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이며, 남들도 너를 평범한 사람으로 대한다. 네가 만만해 보여서 너를 함부로 대하는 것이니, 이는 아주 정상적인 일 아니겠느냐? 관념과 상상에 기대 ‘나는 남달라. 내 몸값과 지위가 얼마나 높은데. 누가 나를 괴롭히면, 나는 기도하면서 그를 저주할 거야. 내 뒷배를 말해 주면, 깜짝 놀랄걸. 나중에 내가 권력을 잡으면, 당신이 무릎 꿇고 살려 달라고 빌게 만들겠어. 닭이 모이를 쪼듯 머리를 조아리게 만들 거라고.’라고 생각하지 마라. 나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세상에 차별받는 일은 어디에나 있다. 그의 차별은 너 혼자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 이 세상 자체에 불공평이 가득하고, 차별이 가득하며, 온갖 사악함이 가득하고, 온갖 악행이 가득하다. 이런 일이 닥쳐도 나는 나 자신을 뭔가 특수한 인물로 여기지 않기에 아주 쉽게 해소할 수 있다. 이 역시 규범을 지켜 처신하고, 분수에 맞게 일을 처리하는 신조를 준수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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