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 제 3 부
5)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대한 사람의 관념과 상상
사람은 하나님 사역에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가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는 사람의 관념과 상상 속에서 무엇이냐? 조종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몰래 커다란 그물로 사람을 덮어서 사람의 모든 행동과 그가 처한 환경을 조종하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의 관념과 상상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따라서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경계심과 두려움이 생기게 되는데, 그 경계심과 두려움은 모두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대한 관념과 상상 때문에 생긴 것이다. 이런 두려움과 경계심은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순종이나 경외가 아니라 일종의 패역과 대적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무소불능하고 무소부재해서 사람이 무슨 일을 하든 ‘모든 걸 하늘이 지켜본다’고 생각한다. 또한 하나님이 항상 너를 살펴보고 주시하고 있는데, 그 목적은 네 마음과 손발을 구속하여 선택의 자유를 주지 않고 네가 진리를 실행하고, 자신의 사상 관점을 바꾸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하도록 강요한다고 여긴다. 이는 모두 사람의 관념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는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다. 사실 하나님은 사람을 대할 때 결코 강요하거나 옭아매거나 조종하려는 뜻이 없다. 하나님은 결코 사람을 속박하거나 사람에게 억지로 시키지 않고, 더욱이 강요하지도 않는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충분한 자유를 주고, 사람이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스스로 선택하도록 한다. 설사 네가 하나님 집에 있다 해도, 그리고 네가 하나님이 예정하고 택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너는 자유롭다. 너는 하나님의 각 요구와 안배를 거절하는 선택을 할 수도 있고 받아들이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하나님은 네게 자유롭게 선택할 기회를 준다. 다만 네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하든, 네가 한 가지 일에 직면했을 때 그 일을 처리하는 관점이 무엇이든, 또 결국 어떤 수단과 방식으로 해결하든 너는 네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 결국 네 결말은 네 개인의 판단과 정의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록한 내용에 달려 있다. 하나님이 수많은 진리를 선포한 다음, 사람이 그 많은 진리를 들은 다음,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과 요구, 사람에게 정해 준 원칙에 따라 모든 사람의 잘잘못을 엄격하게 판단하고, 모든 사람의 마지막 결말이 어떨지 판단한다. 이 일에서 하나님의 감찰과 지배, 안배는 사람을 조종하거나 옭아매는 게 아니다. 너는 자유롭다. 너는 하나님을 경계할 필요도 없거니와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할 필요도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너는 자유인이다. 하나님이 네게 자유로운 환경을 주고 자유롭게 선택할 의지와 여지를 주어서 스스로 선택하게 하였으니, 마지막에 네가 어떤 결말을 맞을지는 오롯이 네가 스스로 간 길에 달린 것이다. 그게 공평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네가 결국 구원받고 하나님에게 순종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하나님이 열납하는 사람이 된다면, 그것은 너의 올바른 선택으로 얻은 결과이다. 반면, 네가 끝내 구원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못하며 하나님에게 얻어지지 못하고 하나님이 열납하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그 또한 너 자신의 선택에서 비롯된 결과이다. 그래서 하나님 사역에서 하나님은 사람에게 아주 큰 선택의 여지를 주고 절대적인 자유를 주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결말과 종착지를 포함한 모든 사람과 일, 사물을 진리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결말과 종착지 역시 진리로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 사역에서 영원불변의 원칙이다. 하나님은 네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계하며 겁먹은 채 고분고분하게 길 끝까지 간다고 해서 너를 열납하고 네게 은총을 베풀어 구원받게 하지 않으며, 네가 무슨 공로를 세웠다고 해서 마지막에 구원받게 하지도 않는다. 다시 말해, 결국 어느 누구도 얻어서는 안 될 결말이나 좋은 종착지를 파격적으로 얻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마지막에 어떤 결말을 맞는지는 자기가 가는 길에 따라 결정된다. 예를 들어 보자. 가령 하나님이 네게 하나의 환경을 배치하면, 그 환경에서 네가 해야 할 것은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고 인식하는 것, 자신의 패괴 성품을 인식하는 것, 자신의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사상 관점을 인식하는 것, 자신의 결함과 부족을 인식하는 것, 혹은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오해와 원망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이치를 따지거나 궤변을 늘어놓지 않고 순종하면서 상응하는 진리를 구해 현재 상태를 바꾸고, 진리를 받아들여 진리 원칙대로 하면 성과를 거둔 것이다. 같은 유형의 일이 또다시 닥친다면 너는 자연스럽게 진리 원칙대로 실행할 것이니, 하나님이 너를 도와주려 특수한 환경을 배치할 필요가 없게 된다. 이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며, 사람이 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무의미한 사역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태도가 달라진다. 어떤 사람들은 일이 닥치면, 진리를 구하지 않고 스스로 반성하지도 않으면서 계속 소극적이 되고 원성만 높인다. 하나님과 사람을 원망하며 하나님에 대해 관념을 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판단하기까지 한다. 누가 그를 책망하고 폭로하면, 그는 스스로 변명할 구실을 찾고, 소극적이고 태만하게 구는 것도 모자라 심지어 훼방을 놓기까지 한다. 이런 사람은 구제 불능으로 하나님에게 버림받는 사람이다. 만약 네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어서 설교를 듣고 진리에 이르고자 하며 긍정적인 태도를 조금 지니고 있다면, 하나님은 네 마음을 감찰하여서 네가 진리를 구할 때 네게 감동을 조금 준 다음 네가 진리를 실행하는지 감찰할 것이다. 하지만 네가 자신을 인식하거나 회개하는 것을 택하지 않고 소극적이고 태만하게 굴면서 이치를 따지며 변명하고 여기저기서 시끄럽게 소란을 일으키는 것을 택한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하고 어떻게 처리하겠느냐? 하나님은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고 네게 감동을 주거나 하나님 말씀을 읽고 진리를 구하라고 독촉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관여하거나 간섭하지 않고, 네가 실컷 네 모습을 드러내게 할 것이다. 그러다 어느 시점에선가 너는 양심적으로 ‘이러면 안 돼.’라는 생각이 들거나 간혹 자기가 현재 처한 환경과 유사한 체험 간증을 듣고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 살펴보다가 문득 자신의 행동이 부적절하고 비이성적이며 떳떳하지 못하다는 생각에 마음이 쓰리게 될 것이다. 이때부터 너는 소극적이 되지 않고 연약해지지 않는다. 자기 입으로 변명하기도 겸연쩍어지며 교란하고 훼방을 놓으려는 생각이나 행동이 점점 줄어들고 그 정도가 약해진다. 결국 어떤 정도에 이르든 어쨌든 모두 개인적인 행동이고, 하나님은 은밀히 그리고 묵묵히 지켜보기만 한다. 지켜보는 목적은 증거를 찾아 마지막에 너를 평가하는 것이다. 니느웨 성이 멸망하려 할 때, 하나님이 요나를 보내 니느웨 사람에게 말씀을 전했을 뿐 그들이 죄를 시인하고 회개하며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도록 그들에게 감동을 주지는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은 그런 일들을 하지 않고 그저 요나를 보내 말씀을 전하고 그와 동시에 은밀히 지켜보기만 했을 뿐이다. 그들이 그 통보를 듣고 어떤 일련의 반응과 행동을 보이는지,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각 부류의 사람이 어떻게 할 생각인지, 하나님의 그 통보에 대해 각 부류가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하나님은 은밀히 지켜보기만 했다. 지켜봤다는 게 무슨 뜻이겠느냐? 하나님은 방관자처럼 일이 전개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일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지켜보기만 했을 뿐 그 어떤 개입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그 몇 마디 말씀을 전하게 한 것 외에는 추가적으로 아무런 사역도 하지 않았고, 그 어떤 권면의 사역도 하지 않았으며, 더욱이 불필요한 말씀을 전하지도 않았다. 오직 요나의 입을 통해 전한 몇 마디 말씀이 전부였다. 물론 현대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역 원칙 역시 변치 않는다. 하나님은 여전히 이렇게 사역하고 인류에게 시종일관 이런 태도를 취하고 있다. 한 사람을 바꾸려는 것이든, 아니면 한 사람에게서 무엇을 온전케 하려는 것이든 하나님 사역의 태도와 원칙, 방식은 변하지 않는다.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하나님이 지은 것은 살아 있는 사람이며 자유 의지를 가진 피조된 인류이지 기계나 꼭두각시가 아니기 때문이다. 진리를 선포하거나 어떤 일을 이루려 할 때 하나님은 늘 먼저 환경을 배치하여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모색하기 위해 구하도록 하며, 때로는 하나님의 뜻이나 하나님의 요구가 무엇인지 직접 사람에게 알려 주기도 한다. 나머지는 사람의 자유 의지와 사람이 갖추고 있는 각 측면의 조건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태도로 니느웨 성의 사람을 대했고, 지금 구원하고자 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변함없이 이런 태도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 사역의 원칙은 변하지 않았고, 하나님은 영원히 이렇게 사역할 것이다. 그가 지은 인류에 대해 하나님이 사역하는 원칙은 영원히 이러할 것이다. 요나는 니느웨 사람에게 통보하고 나서 시원하게 쉴 곳을 찾았다. 그러고는 그 성의 사람들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하나님 말씀을 모두 전하여 하나님이 니느웨 성을 멸하려 한다는 소식을 모든 사람이 알게 된 후 그들 가운데서 어떤 동요가 일어나는지, 또 어떤 움직임이 일어나는지 옆에서 지켜보았다. 그는 그저 관찰할 뿐이었다. 물론 관찰에는 시간이 걸린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은 이 모든 일의 추이를 지켜본다. 만약 사태가 좋은 쪽으로 전개된다면, 하나님은 당연히 기뻐할 것이다. 반면 사태가 나쁜 쪽으로 전개된다면, 하나님은 아마 비통해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상황에 따라 다르다. 하나님이 비통해하는 이유는 그가 인류를 창조했기 때문이다. 인류가 멸망에 직면하면 하나님은 비통해하고 한 생명이 사라지려 하면 하나님은 비통해한다. 하지만 패괴된 인류가 이렇게나 무감각하고 미련하며 이렇게 패역하다면, 하나님은 비통해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원래 계획대로, 하나님이 사역하는 방식, 그리고 피조물을 처리하는 방식과 원칙대로 그가 해야 할 일을 할 것이다. 여기에는 사람의 정이나 기분이 없고, 오직 창조주가 행사하는 원칙과 준칙만 있을 뿐이다. 그러니 이런 측면에 관해 사람은 피조된 인류의 좁은 소견으로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을 짐작하거나 억측하지 말고, 자신의 관념을 내려놓고 사람을 대하는 하나님의 태도와 방식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역사하며 환경을 배치하고 사람과 일, 사물을 안배하여 너를 훈련하고 단련시켜서 진리를 내면에 만들려는 본래의 뜻은 무엇을 따른 것이겠느냐? 생명을 존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원칙을 따른 것이다. 이는 피조된 인류에 대한 창조주의 정이 아니다. 하나님에게는 정이 없다. 이 본래의 뜻의 원칙은 사람의 육적인 혈연의 정을 뛰어넘는다. 물론 이것은 어떤 인정(人情)도 아니고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존중하는 원칙에 따라 생긴 것이다. “이건 하나님의 넓은 마음이 아닐까요? 이런 게 차원이 높은 것 아닌가요?”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맞는 말이겠느냐? (아닙니다.) 차원이나 넓은 마음은 사람에게는 써도 되지만, 하나님에게는 쓰지 말아라. 이것은 넓은 마음이나 차원이 아니다. 이런 측면은 창조주의 사랑스러운 점이라고 할 수 있고,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 신분과 본질의 표출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존중한다. 하지만 이렇게 귀하게 여기고 존중하는 것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하나님의 원칙은 흔들리지 않는다. 이 원칙은 정이나 육에 속하지 않는다. 무엇에 속하겠느냐? 하나님만이 가지고 있는 진리 원칙에 속한다. 보아라, 사람은 자녀가 생기면 대단히 예뻐한다. 자녀에 대한 정이 너무나도 깊은 나머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아끼고 온종일 자녀 곁을 지키려 하지 않느냐. 하나님은 인류에게 그런 정이나 인정(人情)이 없다. 사람은 혈연관계로 인해 자녀에게 이런 정을 품는데, 이런 정은 사람이 이성과 원칙을 상실하게 만든다. 이는 정상 인성의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표출이나 사랑의 발현이 아니라 순전히 정과 혈기에 속하는 것으로 혈연관계 때문에 생긴 정이다. 정은 진리도, 정상 인성에 갖추어야 할 것도 아닌 부정적인 것이다. 하나님은 인류를 대할 때 지나치게 사랑하거나 귀여워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어떤 태도로 인류를 대하더냐? 하나님은 피조된 인류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생명을 존중하는 원칙에 따라 너를 택하였고, 너를 책임지며, 네게 역사하고 대가를 치르며, 네게 말씀으로 진리와 생명을 공급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이 상상하는 것처럼 사람을 꽉 잡고 놔주지 않는 방식으로 사역하지 않는다. 속된 말로 휘어잡는다고 하는데, 그런 게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휘어잡지 않고 결코 사람에게 강요하지도 않는다.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복을 받으려고 늘 하나님을 한바탕 휘어잡으려고 하고, 하나님이 복을 내리게 강요하려고 하는 것도 모자라 천국에 들어가려고 하나님에게 들러붙고 하나님을 휘어잡으려고 한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너를 휘어잡지 않았다. ‘휘어잡는다’는 속된 말을 쓰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생생하게 와닿아서 사람이 이해하는 데 용이하다. 하나님은 너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이 아니다. 너는 자유롭다. 네가 만약 하나님이 네 생명을 존중하고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네게 하는 이 모든 사역을 소중히 여긴다면, 너는 하나님이 어떤 환경을 네게 배치하고 안배하든 경계하거나 오해하고 맞서거나 거부하지 말고, 피조물이 해야 할 일을 하고 피조물이 창조주를 대할 때 가져야 할 태도인 순종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그렇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이제 이 측면에 관해서는 확실하게 교제하였다.
하나님 사역을 대하는 일에서 사람은 이미 관념과 상상을 표출했다. 이 관념과 상상이 무엇이더냐? 사람은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를 사람에 대한 조종과 통제로 이해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더냐? (그러지 않으십니다.) 사람은 마음속 깊은 곳에 하나님에 대한 은근한 두려움을 품고 있다. 하나님이 언급되면 하나님이 사랑스럽지 않고 무섭다고 느낀다. 네가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할 때까지 계속 네게 노할 것이고, 너를 온전케 하기 전까지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사람의 관념이 아니냐? 사람은 하나님을 무엇이라고 상상하느냐? 하나님을 독재자라고 생각하지 않느냐? 그의 통치와 정책을 반드시 받아들이고 깍듯한 자세로 그의 어떤 말이든 따라야 하며 뒤에서 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해서는 안 된다고, 그가 환경을 배치하면 받아들여야 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징벌받고 보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정말 그렇게 하더냐? (아닙니다.) 하나님은 너를 존중하고 책임지며 피조된 인류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니, 사람은 사리 분별 못 하고 은혜를 모르면 안 된다. 은혜를 안다면 하나님이 배치한 환경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여야 한다. 그 안의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그 안의 진리 원칙을 깨닫지 못하며 자기가 실행하고 변화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모를지언정 최소한 하나님을 경계하거나 오해하지는 말아야 한다. 너는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설령 네가 이런 환경에서 아무런 수확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곡해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네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너같이 작디작은 피조물에게 바랄 만한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 네 생명, 오늘날 네가 누리는 모든 것은 전부 하나님이 준 것이고, 네가 깨달은 그깟 도리 역시 하나님이 네게 내려 준 것이다. 네 자유 의지, 자질과 은사, 크고 작은 능력과 재주 모두 하나님이 내려 준 것인데, 하나님이 네게 무엇을 바라겠느냐? 하나님이 진리를 네 내면에 만들어 네가 하나님에게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면 하나님은 영광받는데, 이것을 하나님이 네게 무언가 바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너는 소인의 마음으로 군자의 생각을 헤아리는 것이 아니냐? 이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서 무슨 영광을 받을 수 있겠느냐? 결과적으로 실질적인 득을 보는 쪽은 사람 자신이다. 하나님은 사역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영광을 받았다. 하나님 자신이 바로 영광이기 때문이다. 그의 진리와 권병이 사탄을 물리친 증거이자 모든 긍정적인 사물의 실제이다. 하나님 자신이 영광인데, 너라는 작디작은 피조물로부터 그런 시시한 영광을 받을 필요가 있겠느냐? 하나님은 사람에게 무엇도 바라지 않는다. 굳이 바라는 것이 있다면, 사람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경륜에 따라 하나님의 요구에 도달하는 것이다. 사람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수 있게 되면, 하나님은 안식할 수 있다. 인류가 구원받음으로 인해 하나님이 안식을 얻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바라는 바이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실질적인 득을 보는 쪽은 사람 자신이 아니냐? 사람은 진리를 얻게 된다. 즉, 더 이상 삶이 막연하지 않게 되며, 방향과 길이 생긴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여 더 이상 하나님을 거역하지 않게 되고, 다시는 그 어떤 사악한 세력에도 사로잡히지 않으며, 진정한 피조물이 되고, 죽음을 맞이할 일도 없어진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냐! 가장 큰 실질적인 득을 보는 쪽은 인류이다. 하나님 사역을 받아들이고 하나님 구원을 받아들인 인류 말이다. 이 측면이 확실하게 교제되었느냐? 여기에서 사람의 관념과 상상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를 사람에 대한 조종과 통제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 측면을 교제하지 않으면, 사람은 말할 수 없거나 하나의 체계적 이론으로 형성되지 않은 사상 관점을 늘 마음에 품는다. 이런 것들은 사람의 본분 이행을 속박하지 않고 사람의 삶에 뚜렷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사람의 진리 추구와 하나님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 따라서 사람은 이런 것들을 반드시 내려놓아야 한다. 이 측면의 문제가 해결되면, 너와 하나님 사이의 간극이 사라지고 진리 추구의 길에서 한 측면의 장애물이 제거되며 진리 추구가 수월해질 것이다. 실제적인 어려움이 해결되면, 하나님과의 간극이나 걸림돌이 줄어드니 너는 훨씬 수월하게 본분을 이행하고 진리를 실행하게 될 것이다. 이는 전쟁터에 나갈 때와 마찬가지이다. 너희가 보기에 전장에 가볍게 무장하고 나가는 게 좋겠느냐, 아니면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나가는 게 좋겠느냐? 어떤 쪽이 더 편하겠느냐? (가볍게 무장하는 쪽이 편합니다.) 가볍게 무장하는 쪽이 편하다. 무기만 메고 나가면 되니, 이편이 단출하다. 만약 솥과 행장에 화장품이나 운동 기구까지 메고 가면 부담이 너무 크다. 이렇게 많은 물건을 메고 전장에 나가면, 너무 힘들고 싸울 때도 불편하다. 이런 관념과 상상은 사람이 짊어진 각종 짐과 같아서 어딜 가도 성가시고 번거롭다. 결론적으로 이런 것은 네가 진리를 추구하고 실행하는 것을 수시로 가로막고 네게 지장을 줄 것이다. 중대한 일이 없을 때야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 같겠지만, 중대한 원칙적인 문제가 발생하면 너와 하나님 사이에 장애물이 생길 것이다. 이것들이 나타나면 너는 너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나 갈등이 있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믿는 마음이 더 이상 순수하지 않게 되며 많은 어려움이 생길 것이다. 하지만 네가 이것들을 내려놓는다면 너는 대단히 좋다고 생각할 것이다. 마음이 가볍고 후련할 것이고, 더 이상 속박되지 않고 얽매이지 않을 것이다. 이것들이 무의식이나 마음속에서 문득문득 떠오르겠지만, 네가 그것을 거의 해결했기 때문에 다음번에 일을 처리할 때는 훨씬 수월하고 쉬울 것이다. 비록 이런 관념과 상상이 생각 깊은 곳에서 은밀히 작용할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네가 주관적 의지로 그것이 긍정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분별했기 때문에 주관적인 측면에서 너는 그것을 내려놓을 것이고 그것에 영향받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너와 하나님 사이의 이 측면의 간극은 기본적으로 사라지고 해결된 것이다.
진리 추구라는 주제에 관해 자주 이렇게 교제하는데, 너희는 진리 추구의 중요성이 느껴지느냐? 주변에 잘 아는 사람들이 교회에 의해 처리되거나 심지어 제명되고 출교되는 것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느냐? 경험이나 교훈을 정리해 보았느냐? B팀으로 구분된 사람과 제명된 사람의 주된 문제가 무엇이더냐? (주변에 잘 아는 사람들이 B팀으로 조정되거나 제명된 것을 보면 느껴지는 바가 있습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었지만, 확실히 진리를 추구하지는 않습니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일이 생겨도 진리를 구하지 않는다면, 저도 결국 그들처럼 도태될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처리하는 하나님 집의 원칙이 무엇인지 아느냐? 단지 인성이 나쁘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눈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그들을 제명했겠느냐? (아닙니다.) 그렇다면 처리되지 않은 사람은 전부 인성에 문제가 없고 진리를 사랑하며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자들이겠느냐? 그런 것이겠느냐? (아닙니다.) 하나님 집에 의해 제명되거나 B팀으로 구분된 사람이 단지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싫어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겠느냐? 그들의 인성이 나빠서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겠느냐? 아니면 외모가 못나 혹은 일시적인 과오로 그들을 처리했겠느냐? 그것이 사람을 처리하는 하나님 집의 원칙이겠느냐? (아닙니다.) 누군가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 집이 그를 처리하거나 그의 본분 이행 자격을 취소하며 쫓아내더냐?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들을 처리하고 쫓아내느냐? (그들이 진리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지 않고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여 하나님 집 사역에 심각한 손실을 초래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주된 원인이냐? (그렇습니다.) 또 어떤 이유가 있느냐? 거짓말을 밥 먹듯 하여 쫓겨난 사람은 없느냐? (없습니다.)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싫어해서 쫓겨난 사람은 없느냐? 본분 이행에 충성을 다하지 않아서 쫓겨난 사람은 없느냐? (없습니다.) 대답해 보아라, 쫓겨난 사람들이 안타까우냐? 억울하게 쫓겨난 사람이 있느냐? (없습니다.) 백이면 백 억울하게 쫓겨난 사람은 없다. 그들이 행한 악에 따르면, 그들은 영계에서 열여덟 번 죽어도 모자라고, 모두 징벌받아야 마땅하다. 죽은 다음 다시 살아나 징벌받아 죽고 또다시 살아나 징벌받아 죽는 식으로 열여덟 번 죽어도 마땅한 자들이다. 그만큼 온갖 못된 짓을 일삼고 극악무도한 것이다! 어째서 이런 사람들을 처리하고 출교시키겠느냐?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본분을 이행하고 있는 게 아니라 방해하고 교란하며 망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을 처리하는 것은 그들이 툭하면 거짓말을 하고 인성이 나쁘거나 지위와 권력을 놓고 다투며 충성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이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어리석은 자들도 있다. 그러면 너희는 진리를 사랑하느냐? 쫓겨나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추구하느냐? (아닙니다.) 이것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 사실상 그들이 처리되고 출교된 이유는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방해하고 교란하며 망치는 역할을 했으며 사탄, 마귀, 큰 붉은 용이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일을 저질러 심각하게 하나님 집의 행정 법령을 거스르고 하나님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이다. 쫓아내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쫓아낸 것이다. 하나님 집이 사랑이 없어서 사람에게 야박하게 굴거나 하나님이 사람에게 기회를 주지 않은 게 아니라 그들이 도가 지나치게 행동해 방해와 교란을 일으켜 교회 사역에 너무나 큰 손실을 일으킨 것이다. 그들이 하고 있었던 것은 본분 이행이 아니고 힘쓰는 것조차 아니다. 그들은 방해하고 교란하고 있었으며 악을 행하고 있었다. 하나님 선민 중 그 누구도 교회에 이런 사람이 존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네가 교회에서 비꼬는 말이나 거짓말을 조금 한다면, 이는 그저 개인의 행동으로서 개인이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것일 뿐이다. 방해나 교란을 일으키지만 않으면, 아무도 너를 처리하지 않는다. 네가 때때로 조금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하더라도 대부분의 경우 성과가 있고 방해나 교란을 일으키지만 않으면, 하나님 집은 네게 계속 머무르면서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원칙대로 너를 대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방해와 교란을 일으켰다. 그들이 제멋대로 굴고 하는 일마다 원칙을 어기면서 소란을 일으키고 불안을 조장하는 바람에 교회 각 측면의 사역이 망가지고 많은 형제자매의 본분 이행 성과가 물거품이 되었다. 그들의 방해와 교란이 야기한 결과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얼마나 오랜 시간을 들여야 복구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심각하기 때문에 그들을 반드시 내쫓아야 한다! 그래야 형제자매들이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하도록 잘 보호할 수 있고 좋은 성과를 거두도록 할 수 있다. 이런 악인과 적그리스도들을 제명해야만 형제자매에게 적절한 사역 환경과 생활 환경을 조성해 줄 수 있다. 이런 악인과 적그리스도가 교회에 남아 있으면 화근이 될 뿐이다. 그들이 가는 곳마다 난장판이 되고 아수라장이 된다. 그들이 한 일은 힘쓰는 기준에도 못 미치고 전부 다 교란하고 파괴하고 무너뜨리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 그들의 목적은 교회 사역과 교회 생활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것이다. 이는 사탄의 심부름꾼이 아니겠느냐? 이런 사람이 교회에 남을 수 있겠느냐? 그들은 보통의 패괴된 인간이 아니라 사탄의 심부름꾼이다! 이런 자들이 무슨 짓을 하더냐? 제물을 함부로 쓰고 하나님의 제물을 이방인에게 조건 없이 준다. 이방인에게 돈을 줄 때는 유독 통이 커서 받지 않겠다고 해도 억지로 준다. 이방인에게 일을 맡길 때 상대방이 보수는 백 위안이면 된다고 해도 기어이 삼백 위안을 주고, 삼백 위안을 달라고 하면 굳이 오백 위안을 준다. 보수를 주고 난 뒤엔 추가로 보너스까지 챙겨 준다. 제물을 얼마나 많이 쓰든지 상부에 묻지도 않고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는 것이다. 어떤 사역을 하든 하나님 집의 사역지침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 집이 당부한 원칙을 따르지도 않는다. 물론 진리 원칙은 더욱 따르지 않는다. 그저 자기 성질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고, 하나님 집의 이익은 눈곱만큼도 지키지 않는다. 이방인의 이익을 지킬지언정 하나님 집의 이익은 지키지 않고, 하나님의 제물을 가져다가 여기저기서 물 쓰듯 쓴다. 그 돈이 그가 벌어 온 돈이더냐? 이방인에게 보너스를 주고 선물을 줄 때는 거침이 없다. 반대하는 사람이 있어도 소용없고 오히려 반대하는 사람을 훈계한다. 대답해 보아라,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냐? 이는 인간 말종이 아니겠느냐? 이런 사람을 제명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또 어떤 악행을 저지르더냐? 복음을 전한 숫자를 속여서 보고하여 하나님 집을 기만한다. 숫자를 속이지 않고 보고하는 사람은 호되게 괴롭히고 억압하여 숫자를 거짓으로 보고하도록 강요하며 보고하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든다. 이런 자는 어떤 사람이냐? 이런 자가 사람이냐? 그들을 두고 단지 인성이 나쁠 뿐이라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을 뿐이라고 한다면 말이 되겠느냐? 헛소리가 아니냐? (그렇습니다.) 그들은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을뿐더러 정상 인성조차 갖추지 못했으니,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추구한다고는 더더욱 말할 나위가 못 된다. 그들이 바로 마귀이다! 이제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그들은 어떤 본성을 가졌느냐? (마귀의 본성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마귀의 본성을 가졌다. 그들은 제명되면 오히려 “억울합니다. 전 그런 적 없어요!”라며 불복하고 억울해한다. 누가 보나 사실인데도 인정하지 않고 죽어도 굽히지 않는다. 이것이 그들을 제명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말해 주지 않느냐? 이런 부류를 제명하지 않는다면,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겠느냐? 그가 회개하겠느냐? 계속 본분을 이행하도록 그에게 기회를 주고 책망과 훈계만 한다면, 그가 회개하여 개선되겠느냐? (그러지 않을 겁니다.) 그는 절대 회개할 리 없다. 이는 어떤 본성 본질이냐? 어떤 부류가 회개하지 못하고, 사실과 마주해도 회개하지 않느냐? (마귀입니다.) 마귀, 사탄의 본질을 지닌 자, 악령, 더러운 귀신은 회개할 줄 모른다. 네가 아무리 진리를 교제해도 그는 회개하지 않는다. 악을 행한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는 그가 진리를 받아들이고 자기를 인식할 수 있겠느냐? 절대 그럴 리 없다! 악을 행한 사실을 인정하면 진리를 받아들일 기회가 생기겠지만, 그는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고 자기가 한 짓이 어떤 성질인지 인정하거나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이런 사람은 회개할 리 없다. 마치 소돔 사람처럼 말이다. 그들에게 “계속 회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이 성을 멸하실 겁니다.”라고 알려 줬지만, 그들이 받아들였느냐? 그들은 이 말을 듣고 어떤 태도를 취했느냐? 마치 못 들은 것처럼 계속 자기 입맛대로 행동했다.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전혀 회개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 멸망이라는 결말을 맞았다. 하나님은 교회에서 방해하고 교란하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었지만, 그들은 소중히 여기지 않고 회개하지도 않은 채 기어이 하나님에게 끝까지 대항했다. 양심과 이성이 없는 그들을 동정할 가치가 있겠느냐? (그럴 가치가 없습니다.) 이렇게 동정할 가치가 없는 자들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느냐? 그들에게 탄복하고는 ‘그들은 오랫동안 고생하면서 대가를 치렀고 아주 부지런하고 힘들게 사역했어. 그리고 개중에는 사역 역량과 리더십을 갖춘, 자질이 준수한 사람들도 있는데 쫓아내면 아쉽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느냐? 아쉬우냐? (아쉽지 않습니다.) 아쉽지 않다는 것은 그들을 내쫓는 게 옳다는 의미이다. 그들이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 어떤 길을 가는지 지켜보아라. 만약 본분을 이행하면서도 방해하고 교란한다면, 이는 인간 말종이다! 피조물이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책임을 다해야 하며, 설령 합격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방해와 교란은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방해나 교란은 사탄이나 하는 짓이지 패괴된 인류가 해서는 안 되는 짓이다. 패괴된 인류가 사탄에게 패괴되어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을 대적하지만, 본분을 이행하면서 의도적으로 방해하고 교란하는 짓은 정상 인성이나 양심과 이성을 지닌 사람이라면 하지 않을 것이다. 그에게는 양심과 이성의 제약이 있기 때문에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하나님 집 사역을 방해하거나 교란하거나 망치지 않을 것이다. 합격하는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평범하게나마 본분을 이행한다면 그런대로 괜찮다. 최소한 양심과 이성의 기준에는 부합한다. 그런데 그들은 이 기준에도 못 미치니, 결국 악행을 일삼다 하나님 집에서 제명되거나 출교되는 지경에 이를 수밖에 없다. 그들은 인간 말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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