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9) 제 3 부

동양 사회의 교육 아래에서 동양인들에게는 ‘인내’라는 인성적 특징이 생겨났다. 이 인내의 이면에는 사실 동양 사회 윤리 교육하의 많은 세부 사상 관점, 처신의 방식과 방법, 그리고 여러 사물에 대한 갖가지 태도들이 포함된다. 동양 사회는 이러하다. 이 밖에, 서양 사회도 마찬가지로 서양 사회의 주류 문화 교육이 있는데, 이 교육 아래에서 서양인들도 특유의 인성 특징을 갖게 된다. 그렇다면 서양의 주류 문화 교육은 무엇이겠느냐? 주로 자주성과 독립성에 초점을 맞춘다. 이 자주성과 독립성은 동양 사회와 다르다. 동양 사회는 사람들에게 국가와 사회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바치며, 개인의 삶과 무관한 일들을 할 것을 요구하지만, 서양 사회의 교육은 동양 사회가 요구하는 것과 정반대이다. 그것은 네게 사회나 인류, 민족의 대업을 위해 무언가를 기여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서양 교육의 주요 정수는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자신의 문제를 처리하는 법을 배우며, 다른 사람이나 사회, 국가, 정부에 폐를 끼치지 말라는 것이다. 독립적인 권리와 독립적으로 사고할 여지, 독립적인 개인 공간을 제공하고, 독립적인 사유 능력과 문제를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처리하는 능력을 길러 준다. 너는 네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하며, 독립적이고 자주적으로 행동하는 한편,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 서양에는 이러한 사상 교육의 문화적 배경이 있고, 이런 문화적 배경 아래에서 서양인 역시 그들 교육 사상의 정수와 관련된 일련의 인성 특징을 갖게 된다. 동양인들은 동양 사회의 윤리 교육 아래에서 동양인의 교육 및 문화적 특징을 갖게 되었고, 서양인들은 서양 사회의 교육적 특징이 있기에 마찬가지로 관련된 교육 특징의 본질을 가지고 있다. 서양인이 지닌 교육 특징의 본질은 사실 동양인과 다르다. 동양인의 교육 특징은 ‘위장 교육’이지만, 서양인의 교육 특징은 ‘이기적인 교육’이다. 그 교육의 모든 주제는 사람들이 독립적, 자주적으로 행동하는 법을 배우고,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사고하며, 자신의 일을 스스로 처리하고 관리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서양 교육의 특징은 이기적인 교육이며, 이 이기적인 교육은 동양의 교육과 완전히 상이하고, 또 다른 특징이다. 이 특징은 서양인들이 개인의 독립적 공간을 강조하게 하고, 주관적 바람과 사유, 사상 관점, 생각을 강조하게 하며, 자신의 권리와 현재의 생존 상황, 지금의 기분과 감정을 강조하게 한다. 다른 것들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사회적 책임이나 가족에 대한 책임도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먼저 자기 문제를 명확히 하고 자신의 감정을 처리하며 눈앞의 일을 해결한 다음에 다른 것들을 고려하라고 하는 것이다. 동양의 교육은 동양인들이 인내할 줄 알게 하고, 서양의 교육은 서양인들이 권리를 수호할 줄 알게 한다. 이 점에서 서양인과 동양인은 완전히 다르다. 동양인은 무슨 일이 닥치든 그저 참기만 하며,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는 스스로에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 살기 위해서는 참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반면, 서양인들은 동양인의 인내와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사회 교육 아래에서 권리 수호를 배운다. 서양인의 권리 수호는 동양인의 인내보다 어느 정도 더 인격과 존엄을 갖추고 있지 않겠느냐? 즉, 더 주도권이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권리 수호는 가장 기본적인 개념으로, 신앙권, 생존권, 발언권 등 자신의 가장 기본적인 인권을 지키기 위해 취하는 필수 행동이다. 물론, 이 기본적인 권리 수호가 가리키는 것은 주로 무엇이겠느냐? 사람이 독립적으로 사고할 여지를 가지고, 어떤 사회 환경이나 주변 사람, 일, 사물의 영향과 통제도 받지 않으며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문제를 사고하는 것이다. 문제를 사고하면서 생겨난 관점이 옳든 그르든, 사유 방식이 옳든 그르든 간에 자주적이고 자유로운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요컨대, 서양인들은 자유 사회하에 있다. 서양 사회 교육의 문화적 배경 속에서 그들의 사상은 매우 활발하며, 늘 자유로운 상태에 놓인다. 그래서 동양 사회 사람들에 비해 더 대담하게 사고하고, 사고하는 것을 원하며, 잘 사고한다. 반면, 동양인들의 사상은 대부분 묶이거나 형식화되고 억압된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서양인의 사상은 자유롭고 활발하며 문제에 대해 사고하기를 원한다. 부적절한 표현일지도 모르나, 그들은 기이하고 이상한, 심지어 의미 없는 일을 더 많이 생각하고자 한다. 이것이 바로 서양의 사회 교육하에서 만들어진 인성 특징의 한 가지 모습이며, 이 인성적 모습은 동양인보다 좀 더 진보적이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자신의 생존권을 지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로운 사상 아래에서 생겨난 각종 관점을 지킨다. 그래서 서양의 문학 작품이나 문예, 여가 생활에서 나타나는 사상 관점이나 문예 형식은 매우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서양의 문학 작품이나 여가 생활은 인류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전위적인 편이라, 사람들에게 영감과 많은 유익을 준다. 동양의 문예 작품들이 제창하는 사상은 무엇이겠느냐? 나라와 가족, 부모를 사랑하는 것 등으로, 전부 동양 사회의 윤리 교육이나 동양 문화의 정수에 포함되는 것들이다. 서양 문화는 서양인들에게 자유롭고 자주적인 사상적 공간을 제공하고, 이러한 인성 특징을 가져다주었으며, 자유로운 사상의 권리를 부여했다. 그래서 서양인들은 문예 생활 측면에서 동양인보다 사상적 깊이가 더 있으며, 동시에 사상의 범위도 더 넓다. 보아라, 동양인의 사상적 범위나 문예 생활에서 나타나고 제창되는 사상은 매우 제한적이고 편협하며 국한되어 있다. 반면 서양인들의 문예 생활에 나타나는 각종 화제는 매우 광범위하며, 정부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그 화제 중에는 특정 시기 정부가 제정한 어느 법률에 대한 인성적 성찰도 있고, 그것이 사회, 나아가 한 개인의 삶과 가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성찰도 있으며, 학교 교육과 인권에 대한 성찰도 있고, 인종 평등, 인종 차별, 다양한 인종 사이의 관계에 대한 사회 각 계층과 이주민 간의 논의도 있다. 이렇듯 각종 화제가 포함된다. 여기에서 서양의 문예 작품이 반영하는 화제와 사상 관점이 아주 광범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그것은 법 집행 기관이 큰 법적 틀 안에서 법을 집행하는 방식 및 수단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 대중의 심리에 주는 다양한 부담이나 사람의 삶에 미치는 각종 후속 영향까지도 반영한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서양의 각종 문예 작품 속에서 드러나는 사상 관점이다. 한 가지 측면에서 보자면 서양의 문화 배경하에서 제창되는 사상이고,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서양의 문화 교육 배경하에서 자유로운 사고가 가능해진 사람들에 의해 드러나는 사상 관점이기도 하다. 요컨대, 그들이 문예 작품에서 나타내는 다양한 사상과 사회 각 계층, 각 업계가 각종 사물을 대하는 사상 관점, 처세 철학, 태도는 동양인과 완전히 다르다. 간단한 예를 들어 보자. 동양에서 회사에 다니는 직원은 사장이 자신의 생계유지 근원이므로 사장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설사 사장이 개인적인 집안일, 예를 들어 아이 픽업이나 장보기 같은 일을 시켜도 거절하지 못하고 무조건 따라야 한다. 심지어는 휴식 시간에도 언제든 호출에 응해야 하니, 사장의 수행원, 하인, 노예와 같은 존재다. 동양의 직원과 사장 사이의 상하 관계는 이런 상태이다. 직원은 불편하고 괴롭고 내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참아야 한다. 상대는 사장이고, 자신의 생계를 좌우하니, 사장 뜻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 동양에서는 사장이 아무리 착취하고 비합리적으로 행동해도 직원은 벗어날 도리가 없으며 참아야만 한다. 일부 동양 국가에도 노동법이 있다. 노동법은 모든 국민의 합법적인 권익을 보호해 주지만, 사회적으로 볼 때 동양이기 때문에 사장이 노동법을 위반해도 감히 이를 고발할 직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직원들은 아무리 권리를 박탈당하고 사장에게 착취당해도 방법이 없다. 노동법이 있다고 한들 그것을 들어 자신의 권익을 지킬 수 없으며, 그저 손을 놓은 채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는 것을 지켜봐야만 한다. 반면 서양은 다르다. 서양의 직원과 사장 간 상하 관계는 오직 업무 차원, 업무 시간에만 존재하며, 업무 외에는 개인적 감정 관계가 없다. 사장이 잔업을 시켜도 거절할 수 있고, 사장이 아이 픽업이나 장보기를 시켜도 “당신은 저한테 그런 일을 시킬 자격이 없습니다. 그건 제 업무가 아니고, 저는 당신에게 봉사할 의무도 없어요.”라고 말하며 거절할 수 있다. 사장이 계속 강압적으로 그런 일을 시키면 고소도 가능하다. 그럼 서양의 노동법이 적용되어 법적 조치가 취해질 것이다. 서양인은 이렇게 할 수 있고, 또 이렇게 할 용기도 있지만, 동양인은 그렇지 않다. 동양인은 상사나 지위 있는 사람, 유명인이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하고, 무상으로 봉사해야 하며, 게다가 “당신을 위해 분골쇄신하며 대가 없이 봉사하겠습니다. 당신을 섬기는 것은 제 영광입니다!”라고 말해야 한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가 노동력을 착취하든 인권을 박탈하든 너는 모두 받아들여야 하며, 어떤 보상도 요구해서는 안 된다. 만약 보상을 요구한다면 너는 고마움을 모르는 자, 상대의 체면을 세워 주지 않는 자가 되며, 상대는 너에게 본때를 보여 주려 할 것이다. 반면 서양인은 다르다. 그들은 권리 수호를 배웠고, 그 권리를 매우 적절히, 극도로 잘 활용한다. 대통령, 유명인이라고 할지라도 식사 때 팁을 주지 않으면 항의받는다. 이것이 바로 노동법이 그들에게 부여한 권리다. 동양인들은 이런 상황에서 감히 항의하지 못하고 ‘이 사람은 공직자고 유명인인데, 내가 이 사람을 상대로 소송해서 이길 수 있겠어? 설사 이길지라도 뒤에서 나를 괴롭히면 어떡해? 고소하면 결국 내 손해야. 최악의 경우 목숨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고.’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손해를 볼지언정 감히 팁을 요구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참는’ 것이다. 서양인은 다르다. 그들은 ‘내가 왜 참아야 하지? 나는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게 아니야. 나 자신을 위해 산다고. 나는 내 권리를 지켜야 해. 그리고 이 돈은 내가 마땅히 받아야 하는 거야. 아무리 유명인이고 대단한 사람이라고 해도 돈은 줘야지. 사람은 모두 평등한걸. 자기가 뭐라고 안 주는 거야? 돈을 안 주면 고소하겠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팁을 받으면, 그 일은 끝난다. 이것이 바로 동서양의 문화 교육 아래에서 사람과 일, 사물을 대하는 동서양인의 서로 다른 사상 관점이자 처리 방식이다.

동서양은 문화 교육의 방식과 구체적 내용 면에서 서로 다르며, 서로 다른 교육 아래에서 서로 다른 인류 문화와 각 민족의 인성 특징을 만들어 냈다. 이러한 인성 특징 아래에서 동양인은 동양인만의 생활 방식, 생활 현황, 사유 체계, 처세 태도를 지니고, 서양인은 서양인만의 생활 방식, 생활 현황, 처세 방식, 처세 태도를 지닌다. 이 두 가지 처세 태도 중 하나는 인내와 심한 내향적 특징을 보이며, 다른 하나는 주관적 의지와 바람의 권리 보장을 특히 강조한다. 이 밖에도, 하나는 위장 교육 아래에서 생겨났고, 다른 하나는 이기적 교육 아래에서 생겨났다. 어떤 교육 아래에서 만들어진 인성 특징이든, 그것이 인내든 권리 수호든, 내향적이든 개방적이든 어떤 인성 특징이 긍정적인 사물이겠느냐? (동양인이든 서양인이든 그들의 인성 특징은 모두 긍정적인 사물이 아닙니다.) 왜 긍정적인 사물이 아니라고 하느냐? 구체적인 이유를 말해 보아라. 말하지 못하겠느냐? (그렇습니다.) 어떤 일이든 꼼꼼하게 따지기를 겁내고, 꼼꼼히 따질 때면 멍해지며 말을 명확히 못 하는 것은 그 부분을 밝히 알지 못한다는 의미이니, 내어놓고 교제해야 한다. 이는 교제할 가치가 있는 주제이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이 주제는 ‘하나님이 창조한 것’과 관련된다. 먼저, 하나님이 창조한 인류가 어떤 존재인지 살펴보자. 하나님이 창조한 것은 긍정적인 사물이다. 사람의 어떤 것이 하나님이 창조한 것이더냐? (자유 의지와 하나님이 주신 지혜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입니다.) 포괄적으로 말해, 사람의 선천적인 조건은 모두 하나님이 준 것이고, 하나님이 창조한 것이다. ‘창조’라는 단어가 다소 추상적일 수 있다. 사람은 모두 부모에게서 태어났지, 하나님의 손에서 직접 만들어진 것은 아니니, ‘하나님이 창조한 것’이라는 말은 다소 거창하고 딱 들어맞지 않는 느낌이 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준 선천적인 조건’이라고 하는 것이 더 구체적이고 객관적일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준 선천적인 조건은 ‘하나님이 창조한 것’이라는 주제와 관계가 있다. 그렇다면 사람의 선천적인 조건을 모두 긍정적인 사물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네.) 사람의 외모, 언어 기능, 모든 감각 기관, 자신의 생리 조건, 자유 의지, 사유하고 사고하는 기능, 타고난 특기와 은사, 나아가 사람이라는 생명체가 따를 수 있는 모든 생존의 자연법칙은 긍정적인 사물이다. 즉, 하나님이 사람에게 준 선천적인 조건은 모두 긍정적인 사물이다. 그렇다면 이 ‘긍정적인 사물’에 사람의 생각 속에서 생겨났거나 사회와 각 시대로부터 받아들인 각종 사상이 포함되겠느냐? (포함되지 않습니다.) 후천적으로 사회와 인류에게서 비롯된 어떤 것이든 하나님이 준 것이 아니며, 하나님이 창조한 고유의 것도 아니다. 즉, 사회와 인류에게서 비롯된 모든 것은 긍정적인 사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포괄적으로, 개념적으로 개괄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럼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느냐? 동양 사회의 윤리 교육이라는 문화적 배경하에서 만들어진 인성의 특징과 사람의 사유 방식은 어느 정도 변형되지 않았겠느냐? 동양 사회에서 사람의 사상은 묶이고 왜곡되었으며, 사회와 사탄으로부터 비롯된 사상 관점에 패괴되고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사탄의 가공을 거친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사람의 사상이 가공되었고, 그것은 인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또 그러한 교육은 긍정적인 사물에서 비롯된 것도,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도 아니다.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이 어떤 사상 관점과 사상 체계를 만들어 내고 결과적으로 어떤 인성 특징을 만들어 냈든 거기에서 파생된 모든 후속 산물은 긍정적인 사물이 아니라 부정적인 사물이다. 이 점은 확실하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동양인의 사상은 묶이고 왜곡되었으며, 일부 동양의 사상 관점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동양인이 나타내는 인성적 특징은 모두 부정적이다. 이제 다시 서양을 보자. 서양인의 사상 교육의 내용은 무엇이냐? 그것이 진리와 관련이 있더냐? 서양 교육의 이러한 내용과 사람에게 요구하는 인성적 모습이 하나님 말씀에서 비롯된 것이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좀 더 분명히 설명하기 위해 하나 물어보겠다. 이런 교육이, 인생과 생존, 세상사를 대하는 이런 사상 관점의 원칙과 방식이 하나님 말씀과 진리에 맞느냐? (맞지 않습니다.) 어떤 점이 맞지 않느냐? (서양의 이기적 교육이 일례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사상적 자유를 존중하지만, 타인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만 생각하게 합니다. 이는 하나님 말씀에 담긴 진리에 맞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말씀에 담긴 진리는 어떻게 이야기하더냐? (사람들과 함께할 때 자신의 이익이나 감정만 고려해서는 안 됩니다. 어떻게 해야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동시에 진리에 부합할지를 고려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네가 자유롭고 객관적으로 문제를 생각하든, 아니면 어떤 사상 관점에 지배되어 문제를 생각하든 문제를 고려할 때는 네 이익이나 존엄, 인격을 지키는 것만 생각해서는 안 되며, 이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문제를 생각할 때의 원칙이 아니라고 알려 준다. 너는 문제를 생각할 때, 그것이 진리에 맞는지, 진리로 해결할 수 있는지에 주안점을 두어 진리 원칙에 맞고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데 이르러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문제를 생각하는 원칙이다. 사람을 대하든, 자기 가정이나 주변 일을 대하든 단순히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지키는 것으로 그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 원칙에 맞아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처신의 원칙이다. 그래서 표면적으로 볼 때는 동양의 문화 교육에 비해 서양의 문화 교육이 더 인권을 중시하고 사람의 권리 보호를 중시하며 동양 문화보다 높아 보이지만, 그것이 진리를 대체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또 그것이 동양 문화보다 높으며, 인권을 존중하고 사람에게 독립과 자유를 허락한다고 해서 진리 원칙을 대체할 수 있다고 여기고, 긍정적인 사물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서양의 문화 교육은 그저 동양의 문화 교육보다 높고 인성의 필요에 더 부합할 뿐, 진리 원칙과 동일시될 수는 없으며, 진리 원칙을 대체할 수도 없다. 그것은 어느 정도 인성적 필요와 사람의 존엄, 권익을 보호하거나 존중할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존중은 오직 인성 차원에만 해당된다. 진리와 공정함의 차원에서 보자면, 그것은 진리와 정의를 지키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서양의 문화 교육을 이기적 교육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기적 교육이란 ‘모든 사람은 내 이익을 위해 봉사해야 하고, 모든 일은 내가 이해한 다음에 해야 해. 내 개인의 이익과 인권, 권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라는 것이다. 여기에 도의적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느냐? 공평함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느냐? (없습니다.) 공평함과 도의조차 없다면, 어떻게 진리 원칙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겠느냐? 서양의 문화 교육은 일정 수준 네 인권을 존중하며, 네게 자유롭게 문제를 사고하고 의견을 표출할 권리를 준다. 이로써 사람의 존엄과 인권이 기본적으로 보호되므로, 서양의 교육은 어느 정도 인성의 필요에 더 부합한다. 하지만 서양의 교육이 사람을 올바른 인생의 길로 인도할 수 있겠느냐? 사람이 진리 원칙에 따라 모든 사람을 대하고 모든 일을 하도록 할 수 있겠느냐? 그것은 불가능하다. 서양 교육은 모든 사람에게 인권이 있고, 자신의 존엄을 지킬 권리가 있음을 보장하며, 이는 인성적 필요에 완전히 부합한다. 하지만 사회의 실상으로 판단해 보면, 인권 보장의 기준에 완전히 부합하는 국가는 몇 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말해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문제를 사고하고 의견을 표출할 수만 있어도 현대 사회에서 아주 좋은 사회 제도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유 의지를 주고, 독립적으로 문제를 사고할 능력을 주었지만, 이는 단지 한 가지 측면의 자질을 준 데 불과하다. 하나님은 결코 “이기적이고 자주적이어야 한다. 무엇이든 자신의 이익을 중심으로 해라. 자신의 이익이 가장 중요하다. 무슨 일이든 독립적으로, 스스로 결정해라. 진리를 구할 필요는 없다. 하늘의 뜻을 묻지 말고, 다른 사람의 이익도 고려하지 마라.”라고 말한 적이 없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도 이렇게 가르친 적이 없다. 인류의 삶을 인도하기 시작할 때부터 하나님은 사람에게 여러 측면에서 구체적인 삶의 방식과 처신의 방식을 제시해 주었으며,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며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는 것 등을 알려 주었다. 이 모든 것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많은 진리를 선포했지만, 단 한 번도 네게 권리를 수호하라고 말한 적이 없으며, 자유롭게 문제를 생각하고 자신의 독립적인 공간을 지키라고 말한 적도 없다. 하나님은 이런 말을 한마디도 한 적이 없다. 하나님은 단지 네게 독립적으로 문제를 사고할 능력을 주었을 뿐이다. 너는 이러한 기능과 자유 의지라는 선천적인 조건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은 사람에게 이러한 선천적인 조건을 주면서 동시에 율법과 계명을 제정해 주었고, 각종 진리를 공급하여 어떻게 처신하고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는지 알려 주었다. 사람은 모든 일에서 지켜야 할 진리 원칙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사람에 대한 경고에서 하나님은 단 한 번도 사람에게 자주적이고 독립적으로 행동하며, 권리 수호를 배우라고 한 적이 없다. 이러한 사상 관점이나 주장, 가르침은 결코 하나님 말씀과 진리에 나타난 적이 없다. 반대로, 사람의 패괴 성품을 폭로하는 말씀에서 하나님은 사람의 교만과 이기심을 폭로했다. 이 이기심은 사탄에게 패괴된 다음, 인성에서 드러나는 한 측면의 특징이다. 이 특징 중 일부는 사탄에게 패괴된 다음,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나타내는 일종의 인성 특징이고, 일부는 전적으로 이러한 사회 교육하에서 만들어진 인성 특징이다. 똑같은 이기심이기에 그것이 어떻게 생겨났든 결국 네가 이기적인 이상, 그것은 패괴 성품 아래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드러내는 일종의 인성 특징이자 표출이다. 이제 명확해졌느냐? (명확해졌습니다.)

클릭하세요! 하나님에게서 온 기쁜 소식이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게 임할 것입니다.

관련 콘텐츠

카카오톡으로 대화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