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8) 제 4 부
하나님의 예정이라는 측면에 관해 두 가지 사례를 들어 교제했는데, 기본적으로 다 이야기하지 않았느냐? (그렇습니다.) 그럼 긍정적인 사물과 부정적인 사물을 구별할 수 있겠느냐? 이 측면의 진리를 적용해서 네가 마주하는 각종 사람과 일, 사물을 판단할 수 있겠느냐? 만약 우리가 이 두 가지 사례를 교제하지 않았다면, 오늘 정의한 긍정적 사물 측면의 진리를 적용해서 판단할 수 있었겠느냐? (간단한 것은 분별했겠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 두 가지 비교적 복잡한 예는 분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다행히 교제를 했으니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사과배처럼 맛있는 먹거리를 먹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규례를 잘 지키는 축에 속하는 사람들은 사과배를 보고 먹고 싶어도 감히 먹지 못하며, 먹으면 하나님이 정한 원칙과 하나님 말씀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참고 먹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맛있는 것을 먹을 기회를 얼마나 많이 놓치겠느냐. 하지만 또 사람은 부정적인 사물이 분명한 어떤 것들에 대해서는 분별이 없어서 마음속으로 극찬하고, 깊이 인정하며 받아들인다. 무기 식품에 대해서도 ‘무기 식품은 인류의 식품 수요를 크게 충족시켰어. 기아로 죽는 상황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고. 이건 그야말로 인류 발전사에서 과학이 세운 큰 공헌이야! 정말이지 하나님의 행사이고 하나님께서 추진하신 일이라고!’라고 생각한다. 간단한 말 한마디로 한 가지 사실이 폭로되었다. 어떤 사실이겠느냐? 바로 네가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두 번째 문제이고, 심각한 문제가 하나 더 있다. 너는 대역무도한 말,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해서 하나님의 혐오와 역겨움을 샀다. 만약 이런 문제가 심각해져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며 고의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모독한다면, 구원받을 희망마저 없어질 수 있고, 네 종착지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깨닫는 것은 더없이 중요하다. 만약 우리가 예를 들어 교제하지 않았다면, 어떤 사람들은 ‘무기 식품은 과학 연구의 성과야. 그리고 과학 발전은 인류에게 기여하지. 그렇다면 그런 기여는 하나님이 정하고 배치하신 거겠지.’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교제하니 이해가 되느냐? 이 말이 맞느냐? (틀렸습니다.) 이렇게 인식해야겠느냐? (그러면 안 됩니다.) 이런 말을 한다면 큰일 날 것이다. 이는 대역무도한 소리다! 사물의 참모습과 본질을 확실히 인식하기 전에는 함부로 정의를 내리지 말고, 과학적으로 가공된 것을 쉽게 받아들이거나 좋아하지도 마라. 특히 사악한 흐름 속에서 추앙받고 성행하는, 다수가 좋아하는 것들을 엄중히 경계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에 근거하여 그것들을 분별해야지, 절대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혹자는 “저희는 자질이 부족해서 인터넷에서 각종 정보가 전파되는 것을 보면, 그것이 사회적 흐름이니 잘못되었을 리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본 후에는 마음속에 영향을 받게 됩니다. 저희가 진공 상태에서 산다면, 미혹당하지 않을 텐데요.”라고 말하는데, 이 말이 맞느냐? (틀렸습니다.) 너는 현실의 인간 세상, 현재의 사회에서 살아가니, 불가피하게 이상한 소리와 주장, 이론들을 많이 듣게 된다. 또 그런 논조가 불가피하게 네 마음속에 들어가 작용을 일으키고, 네 생각을 바꿔 놓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한 어쩔 수 없이 영향을 받게 되니, 깊은 산속 오지에서 살거나 자신을 작은 방에 가둬 이런 일을 듣지도 보지도 생각하지도 않아야만 마음이 깨끗해진다고 생각한다. 이 관점이 맞느냐? (틀렸습니다.) 명백히 틀렸다. 그럼 어떻게 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 진리를 추구하고 깨달아야 한다. 각 항목의 진리를 모두 분명하게 깨달으면, 이런 일들이 닥쳤을 때 그 이면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그것이 긍정적인 사물인지 부정적인 사물인지 금방 변별하고 정의할 수 있으며, 양심과 이성을 갖춘 토대에서 아주 빨리 긍정적인 사물을 받아들이고, 부정적인 사물은 막아 내거나 내치고 비판하고 정죄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너는 보호를 받게 되고, 무력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며, 그렇게 걱정하고 두려워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어째서 그렇겠느냐? 너는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삼아 긍정적인 사물과 부정적인 사물을 분별하는 기본적인 능력이 있으며, 각종 긍정적인 사물과 부정적인 사물에 대한 네 견해와 관점은 모두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하고 있어서 그것이 긍정적인 사물인지 부정적인 사물인지 확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네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는 매우 쉬운 일이 된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방금 교제한 내용들을 듣고 이해했느냐? 이렇게 교제하지 않으면 너희가 이해할 수 있겠느냐?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럼 몇 년 더 체험하면 긍정적인 사물과 부정적인 사물을 분별할 수 있겠느냐? (사람에게 진리가 없으면 그런 일들을 분별하지 못하고, 때로는 부정적인 사물을 추종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므로 체험한 햇수가 많다고 해서 분별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일들이 비밀과 관련이 있느냐? (관련 없습니다.) 비밀과 관련이 없는데, 왜 깨닫지 못하느냐? 이런 것들은 표면적인 일 아니냐? (그렇습니다.) 단순히 표면적인 일이라면 이해하기 쉬워야 하는데, 사실 이 일들은 일부 진리와도 관련이 있고, 사람이 각종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과도 관련이 있다. 일단 일을 바라보는 관점, 그리고 문제의 본질과 성질에 관련되면 진리와 관련되는 것이다. 진리와 관련되면 너희는 꿰뚫어 보지 못하고 멍해진다. 그러니 이렇게 교제할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사람이 교제를 듣고 난 다음, 주의력을 일 자체에 쏟거나 규례 지키는 법을 배우는 게 아니라, 교제를 통해 진리와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며, 무엇이 긍정적인 사물이고 부정적인 사물인지 분별할 줄 알게 되고, 진리 측면에서 성장하고 분별 능력이 향상되기를 바랄 뿐이다. 이러면 소득이 있는 것이다. 긍정적인 사물과 관련해서 무릇 하나님이 창조한 것, 하나님이 정한 것, 하나님이 주재하는 것, 이 범주 안의 것들을 너희는 앞에서 든 두 가지 특수 사례를 통해 모두 분별할 수 있게 되었느냐? 아니면 동일한 종류의 사물만 분별할 줄 알고, 그 두 사례와 다른 사물은 여전히 분별하지 못하느냐? (동일한 종류의 사물은 어느 정도 분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사물도 간단한 것은 분별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너무 복잡한 것은 여전히 분별하지 못할 듯합니다.) 이것이 실상이다. 그렇지 않으냐? 만약 여전히 분별하지 못하겠다면, 너희는 한 가지 원칙을 파악해야 한다. 먼저 그 구체적인 것이 하나님이 창조한, 그것이 갖춰야 할 기능이나 하나님이 정한 그것의 존재 의미를 거슬렀는지 보아야 한다. 이 조건을 거슬렀는지 보라는 것이다. 만약 거슬렀다면 그것은 부정적인 사물이다. 만약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와 예정을 거스르지는 않았지만, 그 존재 형식과 존재 가치가 사람에게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할 수 없고, 그저 사람의 삶을 위해 어느 정도 봉사하고 몇몇 편의를 제공할 수 있을 뿐이라면, 좋은 점이 많지 않지만 이렇다 할 나쁜 점도 없다면, 즉 그것이 하나님이 창조한 인류의 생존 형식과 정상적인 생활을 전혀 파괴하거나 교란하지 않고, 어떤 나쁜 결과도 가져오지 않으며, 그 존재가 인류에게 의미가 있다고 할 수도 없고, 그것이 없어도 인류가 똑같이 잘 살 수 있다면, 이는 긍정적인 사물이나 부정적인 사물이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은 이 범주 안의 것이 아니고, 그저 하나의 종(種)이나 물건일 뿐이니, 우리는 그것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규정하지 않을 것이다. 일례로 마차가 있다. 마차는 일종의 교통수단으로 말이 끄는 것인데, 말은 하나님이 창조하고 정한 한 종류의 생물이다. 말이 끄는 수레는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지, 하나님이 만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부여한 생존 능력하에서 사람이 만들어 낸 하나의 도구인 것이다. 그것은 물건을 운송할 수 있고, 사람을 다른 곳으로 실어 나를 수도 있어서 사람의 생활과 이동에 편리함을 가져다준다. 그럼 너희가 말해 보아라, 사람이 만든 마차는 긍정적인 사물이겠느냐, 부정적인 사물이겠느냐? 마차가 에너지를 소모하더냐? 배기가스를 배출해서 공기를 오염시키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마차는 사람의 생활과 생존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지 않고, 오히려 사람의 생활에 어느 정도 편리함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그것이 없어도 사람은 좀 느릴 뿐, 걸어서 외출할 수 있다. 그것이 없다고 해서 사람이 살아갈 수 없는 것은 아니며, 그것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그럼 그것은 긍정적인 사물이겠느냐, 부정적인 사물이겠느냐? (제가 이해하기로 그것은 부정적인 사물이 아니지만, 긍정적인 사물도 아닙니다. 그냥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손에서 나온 것이고,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말할 수 없다. 만약 네가 마차 한 대를 두고 그것이 긍정적인 사물인지 부정적인 사물인지 토론한다면, 이는 사소한 일을 너무 거창하게 부풀리는 것이고, 의미 없는 일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이다.
“나무는 하나님이 만들고 정하신 것이며, 나무의 생존의 자연법칙과 존재 형식은 모두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으니 긍정적인 사물입니다. 그럼 나무를 베어서 목재로 가공하면 긍정적인 사물입니까, 부정적인 사물입니까?”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목재는 인류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여러 면에서 편의를 제공해 준다. 예를 들어, 책상이나 의자 등 각종 가구를 만들 수 있고, 불을 때서 밥을 지을 수도 있다. 이는 한 종류의 식물에서 하나의 물체가 된 것이다. 이것이 긍정적인 사물이겠느냐, 부정적인 사물이겠느냐? (긍정적인 사물이나 부정적인 사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 이제 이해하고 깨달았구나. 하나님이 창조하고 정하고 주재하는 원칙 범위에 속하는 것만이 긍정적인 사물이고, 이 원칙을 거스르는 것은 모두 부정적인 사물이다. 이 두 범주 밖의 것들을 두고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논의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이고, 사소한 일을 너무 거창하게 부풀리는 것이며, 본연의 일을 하지 않는 감이 있다. 예를 들어, “사람이 만든 커튼은 긍정적인 사물입니까, 부정적인 사물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혹자는 말한다. “그것은 천의 출처를 봐야 합니다. 만약 그 커튼이 원면을 가공해서 만든 것으로, 염색이나 표백을 하지 않았고, 화학 물질을 첨가하지 않았다면 긍정적인 사물입니다. 하지만 만약 염색, 표백, 날염을 거치고 몇몇 화학 물질을 첨가했다면 그것은 부정적인 사물입니다. 부정적인 사물은 우리가 도태시키고 버려야 할 것이니, 써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야말로 하나님 말씀의 원칙을 준수하는 것이며, 그런 사람이야말로 긍정적인 사물을 사랑하고 진리를 사랑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면직물에 속하지 않는 모든 것, 천연 소재에 속하지 않는 모든 것을 비판합니다.” 천연 소재에는 어떤 것들이 있겠느냐? 면, 명주실, 그리고 마가 있다. 그의 말대로라면, 인류는 이 몇 가지 외에는 입을 수 있는 게 없다. 네가 원칙을 거스르지 않으며, 긍정적인 사물을 사랑하고 부정적인 사물을 내치는 데 이르려 한다면 이런 것들을 입어야 한다. 이런 것들만이 하나님이 창조한 원형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 관점이 옳으냐? (옳지 않습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런 관점대로라면 과학적으로 가공된 섬유 제품을 입는 사람은 전부 긍정적인 사물을 사랑하는 사람도,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도 아니며, 분별력도 원칙도 없는 데다가 대역무도해서 하나님이 혐오하시는 사람이니, 끝장난 것입니다!” 이 말이 적절하냐?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소한 일을 너무 거창하게 부풀린 것입니다.) 이 사람은 말에 다른 꿍꿍이가 있으며, 다른 이를 정죄하고 일을 확대 해석하는 것이다. 이런 부류는 어떤 사람이겠느냐? (규례를 지키고 영적인 이해력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는 터무니없는 사람이자 그릇된 인간이다. 그가 이런 억지 논리와 그릇된 주장을 늘어놓는 것은 모두 사소한 일을 거창하게 부풀리고, 기회를 잡아 자기 생각을 한껏 떠드는 것이다. 그는 머릿속에 온통 이런 억지 논리와 그릇된 주장뿐이며, 이런 것들을 말할 때는 끝도 없이 줄줄 늘어놓지만, 진리와 관련된 일을 교제하라고 하면 입을 닫는다. 또 무엇이 긍정적인 사물인지 교제하라고 하면, 이런 억지 논리와 그릇된 주장을 말한다. 역겹지 않으냐? 많은 사물이 하나님이 창조하고 정하고 주재하는 긍정적 사물과 무관하다. 엄격한 의미에서 말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창조하고 정하고 주재하는 것’이라는 원칙을 거스르지 않았고, 그 존재 형식이 인류의 생계와 생존에 악영향이나 해를 주지도 않았다. 그러니 말할 때는 양심과 이성을 갖추고, 사소한 일을 거창하게 부풀리거나 함부로 정죄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이 창조하고 정하고 주재하는 것’이라는 범주에 속하는 것들은 교제할 가치가 있고, 받아들이고 인식하고 준수하고 아끼고 보호할 가치가 있다. 이 밖에, 이 범주와 관련이 없는 것들은 되도록 거창하게 부풀려 큰일처럼 신나게 교제하거나, 나아가 엄숙하게 몇 번의 예배에 걸쳐 교제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보통 터무니없는 사람, 영적인 이해력이 없는 사람, 악인, 적그리스도, 마귀들이 이런 일들을 통해 자신을 과시하고, 사람들에게 자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 주기를 좋아한다. 분별력이 없는 사람은 또 이것을 진리 교제라고 생각해서 유익을 얻지 못해도 참고 듣는데, 사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다 그릇된 주장이고 황당한 논리이며, 내가 말한 긍정적인 사물이라는 주제와 관계가 없다. 그러니 이 부류가 긍정적인 사물과 관계없는 주제나 논조를 제기하는 것을 듣게 되면, 거부하고 듣지 않아도 된다. 만약 진리를 깨닫고 분별력이 있다면, 거기에 반박해도 되고, 그를 제지해도 된다. 어떻게 제지해야겠느냐? “됐어요. 입 다무십시오! 당신이 말하는 일들은 진리와도, 긍정적인 사물과도 관계가 없습니다. 당신이 하는 말은 헛소리라고요. 아무도 듣고 싶어 하지 않으니까 여기서 모두를 교란하지 말고, 모두의 본분 이행에 지장을 주지도 마십시오!”라고 말해라. 만약 그의 말에 다른 꿍꿍이가 있고 함부로 남을 정죄해서 좋은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너희는 일어서서 그를 제지해 교란하지 못하게 하는 한편, 그를 폭로해서 모두가 분별력을 기르게 해라. 모두가 들으면 그가 말하는 것이 그릇된 주장이고 황당한 논리이며 진리와 관계가 없음을, 그는 말꼬리를 잡고 의미 없는 일에 집착하고 있으며 이는 사람을 미혹하는 것, 글귀와 도리를 말하며 거창하게 떠들어 대는 것임을, 그는 다른 꿍꿍이가 있어서 일을 꾸미려고 하니, 그에게 제동을 걸어 입을 다물게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만약 그 시점에 현장에 있는 사람들 다수가 어리석어서 악인과 마귀를 분별하지 못하고, 그가 황당한 논리를 퍼뜨려 사람들을 미혹하는 것인지 알아채지 못한다면, 한데 모인 그들이 죽이 맞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을뿐더러 몇몇 황당한 논리를 자랑스럽게 떠들어 대고 고담준론인 양 퍼뜨린다면, 너는 일어서서 조용히 떠나도 된다. 어떤 관점을 드러낼 필요도 없다. 마귀가 우쭐거리고 재주 부리게 두어라. 그가 네 마음을 교란해 네 본분 이행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그와 논쟁하지 마라. 왜 그래야겠느냐? 마귀는 영원히 마귀이고, 동물은 영원히 동물이다. 그는 이성이 없으며, 시비에 어둡고, 옳고 그름을 알지 못한다. 네가 아무리 교제해 줘도 그는 진리를 깨달을 수 없다. 마귀는 영원히 글귀와 도리를 말하고 구호를 외치며 고담준론을 늘어놓을 뿐이며, 동물에서 환생한 영이 없는 부류는 그것을 전혀 분별하지 못한다. 그는 사탄 마귀의 교란이 있는 곳에 따라가고 탁류에 뛰어든다. 네가 그에게 분별하는 법을 가르쳐 주어도 그는 배우지 못한다. 오직 진리를 깨달은 사람만이 총명함과 지혜를 갖추고,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할 줄 알며, 마귀가 교란하는 것을 보면 분별할 줄 알고, 탁류에 뛰어들지 않으며, 악에서 떠날 줄 안다. 마귀가 재주 부리는 곳, 동물들이 무리 지어 모이는 곳은 난장판이다. 그들은 서로 죽이 맞아서 한데 모여 즐거워하는데, 터무니없고 비정상적인 말이라면 누가 하는 것이든 듣기 좋아하고, 또 신이 나서 맞장구를 친다. 이는 마귀들이 무리 지어 모인 것 아니겠느냐? 총명한 사람은 이런 상황을 보면 빨리 피해야지, 그들과 함께 어울려서는 안 된다. 왜 그들과 함께 어울리면 안 되겠느냐? 왜 그들과 논쟁하면 안 되겠느냐? 네가 아무리 진리를 교제해 줘도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고, 아무리 많은 말을 해 줘도 헛수고이기 때문이다. 또 사탄 마귀에 속하는 사람은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동물에서 환생한 사람도 진리를 듣고 깨닫지 못하니, 네가 아무리 많이 말해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더냐?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을 수 있겠느냐? 그들이 진리를 구한 적이 있더냐? 그들은 내가 한 말도 받아들이지 않는데, 네가 한두 마디 말로 그들을 논박하여 승복시킬 수 있겠느냐? 그들이 마음을 돌이키게 할 수 있겠느냐? 그들이 네 말을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그러니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고, 조용히 떠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만약 네가 마귀에게 “너는 왜 진리를 실행하지 않느냐? 너는 왜 늘 거짓말하고 간사하게 구느냐?”라고 추궁한다면, 마귀는 눈을 부릅뜨고 반박하며 자기를 위해 따지고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자신이 거짓말하고 간사하게 군다는 사실을 결코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또 만약 네가 동물에서 환생한 부류에게 왜 늘 규례를 지키냐고 묻는다면, 그 역시 스스로를 위해 궤변을 늘어놓으며 자신은 진리를 실행하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 직면했을 때, 너는 마귀와 동물에서 환생한 이런 부류가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 그와 교제하지 마라. 어리석은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네가 아무리 많은 말을 하고 아무리 많은 일을 해도 그의 본성 본질을 바꿀 수는 없으니, 많이 말해 봤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에게 진리를 교제해야 쉽게 받아들이고 정상적인 대화를 할 수 있다. 마귀와 동물에서 환생한 이런 부류에게는 아무리 많은 진리를 교제해 주고 아무리 많은 사역을 해도 모두 헛수고다. 이번에는 그에게 반박해서 할 말이 없게 만들 수도 있고, 또 그가 네 말이 맞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번복하면서 너에게 반박하려 하고, 너를 창피하게 만들 말을 준비할 것이다. 너희가 보기에는 마귀에 속하는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으냐?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마귀와 동물에서 환생한 부류는 진리를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다. 설령 그 시점에는 받아들인다고 해도 그것은 입으로만 하는 말일 뿐, 시간이 지나면 번복할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 진리를 교제해 준다고 해서 효과가 있겠느냐? 너는 그를 변화시켜서 양심과 이성을 갖추게 하고, 그가 진리를 깨닫지 못했으며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하려고 하는데, 네 그런 생각과 출발점은 그 자체로 잘못되었다. 영원히 그런 생각과 출발점을 가져서는 안 된다. 이해했느냐? (이해했습니다.)
다시 긍정적인 사물이라는 주제로 돌아가 보자. 긍정적인 사물의 범위는 하나님이 창조한 것, 하나님이 정한 것, 하나님이 주재하는 것이라는 범주 안으로 규정된다. 어떤 사물을 대하든 사람은 ‘이것이 하나님이 창조한 것인가? 이것이 하나님이 정한 바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만약 하나님이 창조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정한 바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면, 신중하게 대해야 한다. 세상의 흐름을 따라 극찬을 보낸다면, 이는 어리석은 것 아니겠느냐? 하나님이 창조한 것, 하나님이 정한 것, 하나님이 주재하는 것이라는 범주와 관련이 없는 것이라면, 애초에 긍정적인 사물 또는 부정적인 사물로 분류될 것이 아니니, 그것을 논의해 봤자 무의미하다. 네가 그것에 대해 논의하는 이유는 그것을 긍정적인 사물로 여겨 받아들이기 위함이냐? 아니면 그것을 부정적인 사물로 규정하여 내치기 위함이냐?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내치는 것이 너의 생명과 처신에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 네가 진리를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되겠느냐? 만약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을 화제 삼아 교제하고 논의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이는 바보짓, 어리석은 일을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그 예로, 방금 말한 마차, 섬유 제품, 그리고 침대, 의자 등을 들 수 있다. 너는 늘 사소한 일을 크게 부풀려 논의하려고 한다. ‘그것이 긍정적인 사물일까, 부정적인 사물일까? 그것을 받아들일 것인가, 내칠 것인가? 그것을 소중히 여길 것인가, 멸시할 것인가? 어떻게 대하는 것이 적절할까?’라고 말이다. 이것이 바로 치우친 모습이다. 치우친 사람은 핵심을 잡지 못한 채 늘 형식과 도리, 규례에만 공을 들이며, 어떻게 진리에 공을 들여야 할지 전혀 모른다. 긍정적인 사물과 부정적인 사물이라는 문제와 무관한 많은 일들은 교제할 필요가 없다. 그것이 긍정적인 사물도, 부정적인 사물도 아니라면, 너의 생명 진입과 네가 걷는 인생의 길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므로, 그것을 연구할 필요도 없다. 쓸 수 있으면 쓰되, 쓰지 않아도 그만이다. 만약 어떤 화학 제품들이 건강에 영향을 주고, 그 냄새나 화학 성분이 인체에 어떤 해를 끼친다면, 방법을 생각해서 멀리해라. 이런 생활용품을 되도록 적게 쓰거나 아예 쓰지 않으면, 네가 입는 피해를 없애거나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피해를 완전히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최소한 일시적으로 우리의 생명에 해가 되지 않고, 단기간 내에 질병을 유발하지 않으며,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따르고 본분을 이행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데 영향을 주지 않으면 된다. 현실 환경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이 원칙이 이해가 되느냐? (이해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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