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8) 제 3 부
혹자는 이렇게 묻는다. “사과와 배는 모두 하나님이 정하신 고유한 과일입니다. 그렇다면 이 둘을 접목하여 만든 사과배는 부정적인 사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을 먹지 말아야 할까요?” 이는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일 아니냐? 너희는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먹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먹는다면 중독되겠느냐? 몸에 해가 되겠느냐? 수명에 영향을 주겠느냐?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견해와 사람의 결말에 영향을 주겠느냐? 이 일을 어떻게 봐야겠느냐? 바로 여기에서 네가 진리 원칙을 알고 있는지, 앞에서 교제한 내용을 이해했는지가 검증된다. 네가 이 측면의 진리를 알고 이 측면의 진리 원칙을 파악했다면, 실생활 속에서 일이 닥쳤을 때 실행할 줄 알 것이다. 또한, 어떻게 하는 것이 진리를 어기는 것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진리를 지키는 것이며 진리 원칙의 범위 안에서 행동하는 것인지 알 것이다. 사과배를 먹어야겠느냐? (먹지 말아야 합니다.) 감히 먹지 못하는 것이냐, 아니면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이냐? (감히 먹지 못합니다.) 너희는 감히 먹지 못한다고 하지만, 평상시에 적게 먹었더냐? 먹은 후에는 어땠느냐? 몸에 해를 입었느냐? 먼저 사과배가 긍정적인 사물인지 부정적인 사물인지 확실히 해 보자. 너희는 먹으면 안 된다고 답했다. 그 말에는 사과배가 부정적인 사물이므로 먹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 담겨 있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그럼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옳으냐? 사과배라는 것을 이렇게 이해해야 하느냐? 내가 예를 들어 교제하지 않으면, 너희는 사과배를 먹으면 안 된다고, 먹으면 중독된다고, 마치 하와가 당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었을 때처럼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죄를 짓고 사탄의 손아귀에 떨어져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특히 지금은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는 중요한 때이고, 시일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함부로 먹으면 안 된다고, 만약 함부로 먹는다면 원칙을 어기고 행정 법령을 거슬러 구원받을 기회가 사라질 수도 있다고, 후회해도 소용없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너희는 이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하며, 이런 작은 일에도 막혀 버린다. 너희는 사과배를 먹으면 안 되고 감히 먹을 수도 없다고, 먹었다가는 원칙을 어기고 행정 법령을 거스르게 되니 큰일이라고 생각한다! 모두 이렇게 생각하지 않느냐? 그럼 과연 사과배를 먹어야겠느냐, 먹지 말아야겠느냐? (하나님, 저희가 방금 토론해 본 결과, 사과배는 먹어도 될 것 같습니다. 그것은 그저 사람이 개량했을 뿐, 하나님이 사과와 배에 정해 놓으신 자연법칙을 바꾸지는 않았으니, 사과배를 먹는 것은 행정 법령을 거스르는 것과 관련이 없습니다.) 교제를 통해 좀 더 밝히 이해하게 됐구나. 사과배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이 정한 자연법칙을 바꾸지 않았음을 이해했으니, 먹어도 된다. 너희가 방금 한 말이 정확하다. 다만 명확하게 설명하지는 못했다. 일단 먹어도 되는가 하는 문제는 차치하고, 사과배가 왜 하나님이 정한 자연법칙을 어기지 않은 것인지부터 말해 보자. 사과와 배는 모두 하나님이 창조한 식물이고, 거기에서 맺힌 열매는 사람이 먹을 수 있다. 그럼 이 두 가지 식물의 접목이나 꽃가루의 수분을 통해서 다른 종류의 열매를 만들어 낸 것은 어떻겠느냐? 그것이 인위적이든 자연적이든 기본적으로 그 열매의 근원과 생존 형식, 생존의 자연법칙과 규칙이 원래 하나님이 정한 대로 유지되어 있으며, 변함이 없다. 설령 인위적으로 사과나무와 배나무의 가지를 접목했다 해도 그 나무들의 기존 생존의 자연법칙과 규칙의 기초 위에서, 그리고 기존의 생명 형식의 기초 위에서 양자 간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생명의 특징을 갖춘 열매를 만들어 낸 것이고, 이 열매를 ‘사과배’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은 그저 사람의 생존 능력과 사고방식, 지혜와 재지로 두 종류의 식물을 접목하여 다른 하나의 열매를 만들어 낸 것일 뿐, 사과배라는 열매는 하나님이 정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이것이 한 가지 측면이다. 다른 한 가지 측면을 보자. 설령 인위적인 간섭이 없더라도 사과나무와 배나무가 한 숲에서 자란다면, 꽃가루의 상호 전파를 피할 수 있겠느냐? 아주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꽃이 피는 계절이 되면, 꽃가루가 서로 전파될 것이고, 그것들의 땅속뿌리도 서로 얽힐 것이다. 꿀벌이 꽃가루를 전파하든, 바람이나 공기 흐름의 형식으로 꽃가루가 전파되든 사과와 배는 서로 영양 성분을 받아들여 아주 자연스럽게 사과배라는 열매를 만들어 낼 것이다. 그럼 이때도 사과배를 인위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정한 자연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라난 하나의 생물이다. 하나님이 허락한 범위 안에 속하므로, 사과배는 자연법칙을 어긴 것이 아니다. 그것이 사과의 특징을 갖고 있든, 배의 특징을 갖고 있든 어쨌든 부정적인 사물은 아니다. 그것은 여전히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 예비한 하나의 과일이므로 너는 마음 놓고 먹어도 되며, 절대 네 몸에 해가 되지 않는다. 다만 방금 내가 인위적으로 사과와 배를 접목한다고 했을 때, 너희는 사과배가 긍정적인 사물인지 부정적인 사물인지 확신하지 못해 감히 먹지 못한다며, ‘사과는 사과고, 배의 유전자가 없어야 해. 또 배는 배고, 사과의 성분이 없어야 하지. 그래야 무조건 먹을 수 있어!’라고 생각했다. 이런 이해법은 치우치지 않았느냐? (치우쳤습니다.) 이는 치우친 것이다. 각종 생물이 하나의 공동 공간에서 살아가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공급하며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보완하기 마련이다. 여기에는 세부적인 내용이 많고, 비밀이 있다. 어쨌든, 이 모든 것의 생성과 존재, 그리고 이루는 성과는 다 하나님이 창조한 인류의 생존을 위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긍정적인 사물이 존재하는 가치이자 의미이며, 최종적으로는 인류의 정상적인 생존과 번성을 위한 것이다. 이해가 되었느냐? (이해가 되었습니다.)
이어서 사람이 일상생활 속에서 자주 접하는 또 한 가지 일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너희는 어떻게 분별하고 대해야 할지 생각해 보아라. 인류는 식량에 대한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무기 곡물을 개발했으며, 각종 종자와 열매의 유전자를 개량하여 생산량을 늘렸다. 사실 처음에는 병충해를 줄이고 더 많은 농약 사용을 피하고자 했던 것으로, 인력을 줄이고 병충해의 방해도 받지 않는 상황에서 인류가 필요로 하는 각종 식물을 재배하는 한편, 생산량을 높여 인류의 식량 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래서 이런 제품이 나온 것이다. 이런 제품을 어떻게 부르느냐? 무기 식품이라고 부른다. 무기 식품의 출현은 인류의 식량 수요를 크게 충족시켰다. 사람들은 유기 식품의 생산량이 낮은 편이라 인류의 수요를 만족시킬 수 없다고 여겼다. 무기 곡물이 생겨난 후로 곡물의 생산량이 크게 증가했고, 사람의 경제 수입도 늘어났으며, 동시에 수많은 사람의 기아 문제도 해결되었다. 인류는 ‘운 좋게’ 무기 식품을 먹게 된 것이다. 그럼 이 무기 식품은 과연 긍정적인 사물이겠느냐, 부정적인 사물이겠느냐? 그것은 과연 ‘하나님이 정한 것’이라는 원칙에 위배되겠느냐, 위배되지 않겠느냐? 무기 식품을 먹어야겠느냐, 먹지 말아야겠느냐? 너희는 무기 식품에 대해 어떤 관점과 견해를 가지고 있느냐? 유기 식품과 무기 식품, 둘 중 무엇이 긍정적이고 무엇이 부정적인지 어떻게 규정하겠느냐? (유기 식품은 천연적인 것이고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것이어서 긍정적인 사물에 속합니다. 무기 식품은 과학적 가공을 통한 유전자 변형으로 생겨난 것으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고유한 자연법칙에 위배되므로 부정적인 사물에 속합니다.) (무기 식품은 식품의 원래 유전자를 파괴하였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법칙에 위배되는 데다가 식품의 영양 성분을 파괴하였으며 사람이 먹어도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지금 많은 사람이 여러 해 동안 무기 식품을 먹은 후 보편적으로 몸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여건이 된다면 되도록 무기 식품을 먹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사회에서는 식품 대부분이 무기 식품이라서 살아가려면 무기 식품을 먹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너희가 말한 것은 다 원칙에 부합하고, 핵심도 틀리지 않았다. 다만 너무 간단하게 말해서 일부 세부 내용들이 분명하게 언급되지 않았다. 혹자는 이런 질문을 한다. “무기 식품과 유기 식품은 겉보기에 생긴 게 비슷하고, 식감의 차이도 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식품의 원형과 기본적으로 별다른 차이가 없지요. 심지어 어떤 무기 식품은 겉으로 볼 때 유기 식품보다 더 보기 좋고, 생산량도 더 많으며, 먹어 보면 식감이 떨어지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왜 유기 식품은 긍정적인 사물이고 무기 식품은 부정적인 사물인 겁니까?” 너희는 방금 유기 식품이 긍정적인 사물이고 무기 식품은 부정적인 사물임을 확실히 할 수 있다고 했지만, 왜 그렇게 구분하는지, 그 세부 내용을 아직 모르고 있다. 여기에는 너희가 알아야 할 한 가지 중점이 있다. 겉으로는 똑같아 보이는 것이 왜 하나는 긍정적인 사물이고 다른 하나는 부정적인 사물이겠느냐? 어떤 사람들은 “무기 식품은 과학적 가공을 거쳤고, 과학에 의해 파괴되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는데, 이 말이 맞느냐? 도리상으로는 맞고, 언뜻 듣기에는 그런 것 같지만, 듣고 나서도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럼 유기 식품과 무기 식품은 본질적으로 대체 어떤 차이가 있기에 하나는 긍정적인 사물이고, 하나는 부정적인 사물이라고 규정하는 것이겠느냐? 무엇에 근거하여 이렇게 규정하겠느냐? 하나님은 어떻게 보겠느냐? 이 안에 들어 있는 진리는 무엇이겠느냐? 이는 이 문제의 본질과 관련이 있다.
유기 산물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고 하나님이 창조한 것으로, 사람은 그것을 ‘유기’라고 명명했다. 먼저 ‘유기’라는 단어의 유래와 출처가 무엇인지, 사람이 왜 이렇게 명명했는지는 차치하고, 하나님의 창조와 예정이라는 측면에서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창조와 예정에는 세밀하면서도 매우 핵심적인 부분이 하나 있는데, 바로 한 알의 씨앗을 만들 때 하나님은 그것이 가져야 할 영양과 성분, 기능을 모두 그 안에 넣어 두었다는 것이다. 씨앗 안에 무엇을 넣을지, 그 원칙은 무엇에 근거하겠느냐? 인체의 필요에 근거하고, 사람 육체 오장육부 기능의 수용 정도와 필요한 영양 성분에 근거한다. 그 한 알의 씨앗이 자라서 나온 식품은 사람이 먹기 위한 것이므로, 사람이 먹은 다음 그 식품이 사람 몸에 어떤 작용을 할지, 사람이 그것으로부터 어떤 영양분을 흡수하여 사람 육체의 정상적인 성장과 생존을 유지하고 사람 육체의 생명을 연장할지, 하나님은 한 알의 씨앗, 한 종류의 식품을 만들 때 이런 것들을 고려했다. 아무렇게나 씨앗 한 알을 만들어서 흙에서 자라게 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마음을 썼다. 그 종자의 껍질과 알맹이, 그리고 배아가 인체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 어떤 효과를 내는지, 사람의 육체에는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사람이 그 식품을 먹은 다음 그 속에서 어떤 영양분을 흡수해야 하는지 등이 하나님이 고려한 바이다. 하나님이 이런 고려를 한 이상, 그 종자를 만들 때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영양분의 비율에 맞추어 만들어 내게 된다. 그리하여 그 종자는 하나님의 생각 가운데서 탄생했다. 이는 종자 한 알의 영양 성분과 구조 측면에서 그것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바라본 것으로, 하나님이 그 씨앗을 창조할 때 고려한 한 가지 측면이다. 다른 한 측면을 보면, 하나님은 또 그 종류의 종자나 열매의 크기, 형태, 그것이 싹 트는 시간의 길고 짧음, 그것의 생존 형식, 자라기에 적합한 토양은 물론이고, 그것이 어떤 종류의 토양에서 얼마나 많은 영양을 흡수할지, 사람이 그것을 먹을 때 얼마나 많은 영양분을 흡수할 수 있을지 등을 고려했다. 하나님은 이런 세부 사항들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하나님이 종자를 창조할 때 고려한 갖가지 요소들은 결국 한 가지 목적으로 귀결된다. 그것은 바로 인류가 필요로 하는 식량을 공급하는 것이고, 육체의 정상적인 성장과 생존을 이루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한 가지이다. 이 밖에, 매우 중요한 한 가지가 더 있다. 만약 종자가 생명력이 없는 죽은 존재라면, 모래나 돌멩이와 같아서 땅에 심어도 싹이 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인류가 한 번 다 먹은 후에는 다음에 먹을 음식이 없다는 의미로, 인류의 식량 수요를 결코 만족시킬 수 없다. 그러므로 그 종자 안에는 껍질과 알맹이 등 마땅히 있어야 할 성분 외에 반드시 배아가 있어야 한다. 물론, 배아가 모든 종자에 존재하는, ‘생명이 있다’는 특징은 아닐 수도 있다. 어쨌든, 한 알의 종자 안에는 껍질과 알맹이 외에 반드시 생명력이 있어야 한다. 사람의 언어로 말하자면 생명력이지만, 사실 하나님 입장에서 말한다면, 그 한 알의 종자에 반드시 생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생명이 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겠느냐? 계속 번식할 수 있으며, 발아와 성장을 통해 반드시 열매를 맺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알의 종자가 발아하고 성장하고 개화하여 반드시 더 많은 열매를 생산해 낼 수 있어야 하며, 그 열매 또한 그것과 마찬가지로 생명력이 있어서 번식을 통해 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인류가 필요로 하는 식량을 끊임없이 공급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한 알의 종자를 창조하고 정할 때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두 가지이다. 한 가지는 그것 자체가 함유하고 있는 각종 영양소와 기능이고, 다른 한 가지는 그 종자가 반드시 생명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것, 그러니까 반드시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살아 있다’는 것을 인류의 언어 방식으로 명명한 것이 바로 ‘유기’이다. 사실 유기 식품은 하나님에게서 창조될 때부터 생명이 있었기에 땅에 심은 후 물을 주고 비료를 주면 싹이 나고 자라고 꽃이 핀 다음 열매를 맺는다. 또한, 그 모든 열매는 그것과 같은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 동일한 기능은 인류가 필요로 하는 식량을 끊임없이 공급하고, 인간 육체의 생존과 번성을 위해 공급한다. 이 밖에, 그 종자는 흙 속에 들어가 열매를 맺으며, 그 열매들은 또 그것과 마찬가지로 더 많은 열매를 맺어 인류에게 공급하고, 동일한 번식의 과정을 겪는다. 한 세대 또 한 세대, 이렇게 인류는 끊임없는 식품 공급을 받는다. 식품 공급을 받고 먹거리의 원천을 얻음으로써 인류는 육적인 삶, 생존을 대대로 길이길이 이어가며, 굶주리는 일이 생기지 않는다. 이 사실로 볼 때, 인류가 지금까지 생존할 수 있었던 데에는 하나님이 창조한 각종 씨앗의 무시할 수 없는 기여가 있었다. 또 그것들이 인류에게 이런 기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창조와 예정 덕분이다. 하지만 만약 하나님이 씨앗에 정해 놓은 가장 중요한 두 가지가 파괴된다면, 즉 종자의 영양소와 기능, 그리고 그것이 지닌 고유의 생명력이 없어진다면, 종자가 흙에 떨어져도 더는 싹이 나지도, 자라지도, 꽃이 피고 열매를 맺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게 땅속에서 사라질 뿐이라면 인류는 먹거리의 원천을 그대로 잃게 되니, 그럼 인류가 직면하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죽음입니다.) 기아와 기근에 직면하고, 그다음에는 죽음에 직면하니, 번성해 나가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한 측면으로, 매우 심각하다. 다른 한 측면에서 보자면, 종자 한 알이 인위적인 가공을 거치면, 그 안의 영양소가 대폭 줄어든다. 기존에 갖고 있던 다양한 영양소는 소량의 영양소로 바뀌고, 그것의 기능도 바뀐다. 예를 들어, 원래는 사람이 그 식품을 먹은 다음 대뇌에 영양분이 공급되고 체력이 보충돼서 활력이 생겼는데, 인위적 가공을 거친 후에는 그 기능들이 크게 줄어들거나 심지어는 원래의 기능들이 사라진다. 그런 식품은 많이 먹어 봤자 몸이 피곤해지고, 뇌의 사고 기능이 느려지고 기억력이 감퇴하며, 나이가 많지 않은데도 노인처럼 두 다리가 무겁고 몸이 둔해지는 데다가 피부도 노화될 뿐이다. 겉보기에는 체격이 커졌어도 속은 유기 식품을 먹은 사람과 느낌이 달라진다. 식품 고유의 기능이 약화되거나 심지어 사라져서 사람이 먹은 다음에도 인체에 긍정적이고 올바른 도움과 이로움을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몸에 많은 부정적 영향을 초래한다. 몸이 필요로 하는 각 측면의 영양소가 제때 보충되지 않고, 동시에 인체의 많은 기능이 점차 퇴화되고 사라지는 것이다. 당연히 이런 악순환의 기초 위에서 대뇌의 사고는 느려지고, 심지어 몇몇 극단적인 행위나 생각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모습들은 모두 무기 식품이 사람에게 초래하는 부정적인 작용과 결과들이다. 무기 식품은 하나님이 창조한, 마땅히 갖추고 있어야 할 성분과 고유의 기능을 잃어버렸고, 하나님이 창조하고 정한 기존의 것과 달라졌다. 모두 인위적으로 가공되고 바뀐 것이다.
인류가 무기 식품을 만든 것도 식량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서였지만, 그것은 인류의 건강과 후손 번성에 각종 불리한 요소를 가져다주었고, 이는 인류의 번성과 생존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니 무기 식품에 대해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줄곧 유기 식품을 누려 왔다. 왜 유기 식품은 긍정적인 사물이고, 무기 식품은 부정적인 사물이라고 하겠느냐?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이냐? 중점은 어디에 있겠느냐? 중점은 바로 유기 식품은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 예비하고 정해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유기 식품은 하나님이 창조한 고유의 성분과 기능을 갖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부여한 생명력을 갖추고 있다. 반면, 무기 식품은 고유의 성분과 기능을 잃어버렸고, 하나님이 부여한 생명도 없다. 하나님이 정해 놓은 이 가장 중요한 두 가지가 없으므로, 하나님이 창조하고 정한 긍정적인 사물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하는 것이다. 무기 식품은 인류의 과학적 가공과 파괴, 개조를 거쳐 긍정적인 사물의 특징을 갖추지 못한 하나의 종(種)이 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창조하고 정한 긍정적 사물의 성분과 본질을 갖추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하나님이 창조하고 정한 긍정적 사물의 기능과 본질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사물의 기능과 본질에 위배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겠느냐? 하나님이 창조한 씨앗 한 알의 기능은 인류를 위한 것이고, 인류를 위해 봉사하고 인류에게 유익이 되기 위한 것이며, 사람 육체의 정상적인 수요와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무기 식품은 인류의 정상적인 생존을 파괴하고 교란하며, 이와 동시에 인류의 정상적인 삶과 생존에 일련의 되돌릴 수 없는 부정적 작용과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니 무기 식품을 부정적인 사물이라고 하는 것은 조금도 과하지 않다. 그렇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이 문제가 이해가 되느냐? (이해가 됩니다.) 왜 유기 식품은 긍정적인 사물이고 무기 식품은 부정적인 사물이겠느냐? 포괄적으로 말하자면, 유기 식품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으로, 인류에게 이롭고 인류를 위해 봉사하며, 인류의 삶과 생존을 위해 기여한다. 그것은 인류의 삶과 생존에서 대체할 수 없는 작용과 역할을 한다. 하지만 무기 식품은 인류의 건강에 유익이 되느냐? (유익이 되지 않습니다.) 정반대로, 그것은 인류의 건강에 유익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인류의 건강을 해치고, 인류의 육적인 삶과 생존에 많은 고통과 번거로움을 초래한다. 예를 들어, 사람의 몸에 갖가지 불편한 느낌이 들고, 혈액 순환이 느려지고, 사지가 뻣뻣해지고, 두 다리가 무거워지고, 머리가 어지러워지며, 많은 질병이 지나치게 일찍 찾아오고 발작하며, 알레르기 반응도 갈수록 심해져서 피부에서 오장육부까지 각기 다른 정도의 이상 반응이 생긴다. 이것이 바로 무기 식품이 인류의 육적인 삶과 생존에 가져오는 각종 번거로움과 고통이다. 하나님이 사람의 육체를 창조한 이상, 오직 하나님만이 그 구조와 거기에 필요한 것을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사람 육체의 구조와 거기에 필요한 것에 근거하여 인류를 위해 각양각색의 식품을 창조했다. 남방에서 북방까지, 동방에서 서방까지 그 지역 인류의 삶과 생존에 유익이 되는 각종 식품을 창조한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한 각종 식품의 원형은 모두 인류의 삶과 생존에 필요한 먹거리의 원천을 제공하며, 사람의 육적인 삶과 생존에 필수적이다. 즉, 한 사람의 육체가 살아 있고 유지되려면 하나님이 창조한 식물들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식물과 종자들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기만 하면 모두 원형이고, 하나님이 만든, 필요한 기능과 성분을 갖추고 있고, 또한 하나님이 부여한 생명력도 가지고 있다. 종자 한 알이 어디에서 자라든, 설령 흙이 없는 돌 틈에 떨어졌다 할지라도 생명력만 있으면 싹이 날 수 있고, 정상적으로 생장하고 자랄 수 있으며, 종자를 맺을 수 있다. 인류는 이렇게 만물이 번성하고 살아가는 전체적 환경 속에서만 육적인 먹거리의 원천을 얻을 수 있고, 계속 다양한 활동에 종사하며 번성을 이어갈 수 있다. 각종 식물과 종자가 하나님이 만든 고유의 기능을 잃어버리는 것은 인류의 식품을 박탈당하고 인류 먹거리의 원천을 빼앗기는 것과 같다. 설령 사람이 일부 비원형 식품을 제조하고 생산해서 일시적으로 배를 채울 수 있다 하더라도 그 식품은 원형이 가공된 후에 변화가 생겼고 원래 기능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사람이 먹고 나면 육체의 기능과 감각이 그에 맞춰 변화하고, 그것이 지속되면 몸에 일부 이상 반응이 나타나며, 어떤 병증이 생기거나 심지어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이는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 식품을 창조한 최초의 취지에 위배되고, 또한 하나님이 인류에게 정해 놓은 생존의 자연법칙과 규칙에도 위배된다. 그러니 어떤 각도에서 말하든 하나님이 한 생물을 창조한 최초의 취지와 하나님이 정한 자연법칙, 규칙에 위배되기만 하면, 이는 하나님이 그것에게 부여한 기능과 그것이 마땅히 발휘해야 할 작용을 잃어버린 것이고, 하나님이 부여한 생명력을 잃어버린 것이니, 그것의 본질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무기 식품의 출현은 하나님이 식품을 만든 최초의 취지에 어긋난다. 그것은 과학자가 식품의 씨앗에 과학적 가공과 변화를 주어 식품의 본질에 변화가 생기게 한 것이다. 그리하여 무기 식품은 부정적인 사물이 되었다. 그것이 외관상 빛나고 아름다워지고 커졌든, 아니면 양이 많아졌든, 어떻게 변화했든 하나님이 창조한 최초의 취지에 위배되고 하나님이 창조한 기능과 생명력을 잃어버린 이상 부정적인 사물이다. 이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어느 시기에 생겨났든, 누구의 손에서 나왔든 하나님이 창조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정한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창조와 예정에 위배된다면, 부정적인 사물이다. 이해가 되느냐? (네.)
무기 식품이 부정적인 사물에 속한다는 것은 교제를 통해 분명히 했지만, 또 하나 교제해야 할 문제가 있다. 혹자는 이렇게 묻는다. “무기 식품이 부정적인 사물이고 하나님의 창조와 예정에 위배된다면, 저희는 그것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먹어야 할까요, 먹지 말아야 할까요? 아예 안 먹어야 할까요, 아니면 먹는 양을 줄여야 할까요? 어떻게 실행하는 것이 적절할까요?” 방금 어떤 사람도 말했지만, 지금 사회의 식품은 대부분이 무기 식품이라 유기 식품을 좀 사려고 해도 찾기가 힘들다. 심지어 어떤 나라나 지역에서는 비싼 돈을 내도 살 수가 없다. 그러니 유기 식품의 좋은 점과 무기 식품의 해로운 점을 안다고 한들 어쩔 수 있겠느냐? 전반적인 환경이 그러한데 말이다. 이것이 바로 사탄의 세상이다. 사탄이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창조한, 생명력이 있는 먹거리를 먹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저희도 무기 식품을 먹는 것이 몸에 해롭다는 건 알지만, 유기 식품을 먹을 여건이 되지 않는데 어떻게 합니까? 설마 굶어 죽어야 하나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굶어 죽을 수는 없다. 살기 위해서 무기 식품이라도 먹어야 한다. 먹으면 몸에 해롭다고 해도 굶어 죽는 것보다는 낫다. 설령 계속 그렇게 힘들게 살아간다고 해도, 죽지 않고 본분을 잘 이행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버텨서 병든 몸일지라도 구원에 이를 수 있다면, 이 세상과 사탄을 이긴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무기 식품이 사람에게 주는 해가 이렇게 크고 또 되돌릴 수 없는 것이라면, 아예 먹지 말고 자기 집 마당에서 유기 식품을 기르는 방법을 생각해 봅시다.”라고 말하는데, 그런 여건이 된다면 당연히 좋다. 하지만 집에 마당이 없어서 채소나 곡식을 기를 수 없고, 또 서민이라서 유기 식품을 살 형편이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겠느냐? 그러면 무기 식품을 먹을 수밖에 없다. 혹자는 “무기 식품을 먹어도 최소한 어느 정도는 살 수 있고 그렇게 빨리 죽지는 않을 겁니다. 설령 어떤 괴질에 걸린다고 해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라고 말하는데, 너희는 각종 괴질에 걸리는 것이 두렵지 않으냐? 수명이 줄어드는 것이 두렵지 않으냐? (두렵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겠느냐? “그럼 최후의 수단을 쓸 수밖에 없지요. 한발 물러난 차선책으로,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무기 식품을 먹어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 원칙이 맞겠느냐? (맞습니다.) 그러하냐? 너희는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한다. 이것이 한발 물러난 차선책이고 어쩔 수 없는 것이냐? 한발 물러난 차선책도 아니고 어쩔 수 없는 것도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이런 하나님 말씀이 있지 않더냐? “너에게 한 가닥 숨이라도 붙어 있는 한, 하나님은 너를 죽게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의 목숨은 모두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 사람이 얼마나 오래 살지, 몸 상태가 어떨지는 하나님의 예정에 달려 있지, 사람이 무엇을 먹느냐에 달려 있지 않다. 사람은 무기 식품에 대해 올바른 사상 관점을 가지고 그것을 분별할 수 있으면 된다. 다만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환경에는 올바르게 대해야 한다. 만약 경제적인 여건도 되지 않고, 재배할 환경적 조건도 갖추지 못했다면, 주어지는 대로 먹으면 된다. 그럼 병에 걸릴까 봐, 죽을까 봐 걱정해야겠느냐? 걱정할 필요 없다. 어째서 그렇겠느냐? 우리에게는 마음속에서 버팀목이 되고 근거가 되는, 하나님 말씀에 담긴 진리가 있기 때문이다. 즉,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고, ‘너에게 한 가닥 숨이라도 붙어 있는 한, 하나님은 너를 죽게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의 목숨, 몸 상태, 수명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사람이 병에 걸릴지 말지, 언제 병에 걸릴지, 언제 죽을지 등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으니 걱정할 필요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만약 유기 식품은 먹을 수 없고 무기 식품만 먹을 수 있다면, 마음 놓고 먹어라. 주어진 대로 먹으면 된다. 어떤 사람들은 “무기 식품이 부정적인 사물이라고 말씀하셨으면서 왜 저희에게 마음 놓고 먹으라고 하십니까?”라고 말하는데, 먹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가겠느냐? 너무 적게 먹으면 육체가 필요로 하는 만큼 공급할 수 있겠느냐? 지금은 이방인들도 무기 식품이 유기 식품보다 영양이 훨씬 떨어진다고, 많이 먹어도 영양분은 별로 없다고 말하는데, 이 또한 사실이다. 이 밖에, 또 한 가지 그들이 모르는 것이 있는데, 유기 식품의 영양 성분 비율은 적절해서 그것을 먹으면 몸속에서 많은 영양소가 생성되어 몸의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원래의 기능이 발휘되어 인체의 건강이 보장된다. 하지만 무기 식품은 영양 성분이 부족해서 인체 내에서 영양소를 합성해 사람이 필요로 하는 영양분을 공급하지 못한다. 또 무엇보다 중요한 점이 있으니, 무기 식품은 생명력이 없고, 많은 영양 성분이 부족해서 네 몸을 건강하게 해 줄 수 없다. 그것을 10년, 20년 먹고 나면 각종 질병과 괴질이 생겨나고, 어떤 사람들은 생식 능력까지 잃게 된다. 너무나 심각한 결과다. 그래서 ‘나는 밥도 반찬도 부족하지 않게 먹었으니, 영양분이 부족할 리 없는데, 왜 온몸에 힘이 없는 것 같을까?’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유기 식품과 무기 식품의 차이다. 사실 너는 이미 느끼고 있다. 왜 그런 느낌을 받겠느냐? 무기 식품에는 생명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많이 먹어도 영양분을 얼마 공급해 주지 못하기에 몸에 힘도, 활기도 없다고 느끼게 된다. 하지만 먹어야 할 때는 먹어야 한다.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고, 일할 수도 없으며, 생존도 불가능하다. 어리석은 짓을 하거나 극단으로 치달아서는 안 된다. 무엇이든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 대하고 진리 원칙대로 실행해야 한다. 이는 사람이 분명히 알아야 할 부분이다. 아무튼, 결국은 다시 ‘사람이 무기 식품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로 이야기가 귀결된다. 무기 식품이 사람에게 초래하는 부정적인 작용과 추후의 영향을 알게 된 다음, 그것에 속박받고 걱정하며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으며, 사람의 목숨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고, 전부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이렇게 받아들인다면 네 사상 관점은 올바른 것이다. 듣고 나니 마음이 환해지고 자유로워졌느냐? (네.) 이는 사람이 봐야 할 현실적 문제이다. 만약 이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한다면 너무 어리석은 것이다. ‘무기 식품을 먹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방금 몇 가지 실행 원칙을 말했으니, 네가 처한 객관적 환경과 실제 조건에 따라 구분하여 대해라. 요컨대, 모든 일을 대할 때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 바라봐야 하고, 일을 처리할 때도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야 한다. 네 출발점이 육체의 정상적인 생존을 잘 유지하고 육체의 정상적인 기능을 잘 유지해서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것, 하나님을 따르는 길에서 잘못된 길에 들어서지 않고 본분을 잘 이행해 진리를 추구하는 길에 오르는 것인 이상, 그것은 옳다. 이것이 하나님의 예정이라는 측면에 있어 우리가 교제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성경은 ‘개역한글’을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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