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7) 제 3 부
2) 옳고 그름을 안다
시비에 밝은 것에 관한 내용은 다 교제했으니, 이제 옳고 그름을 아는 것에 관해 이야기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옳고 그름을 아는 것과 시비에 밝은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 만약 차이가 없다면 굳이 따로 교제할 필요가 없다. 옳고 그름을 아는 것은 인성의 각도에서 어떤 관점이나 어떤 말이 옳고, 어떤 게 그른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옳으면 견지하고 그르면 내려놓아야 한다. 정상인의 내면에는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사상 관점과 근거가 있어서 옳은 일은 견지할 줄 알고 옳지 않은 일은 반대하고 나아가 내칠 줄 안다. 만약 이것도 못 한다면, 이 부류의 인성에 무언가 결여되어 있다는 의미이며, 이 부류는 인성이 없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네가 한 사람으로서 인성을 지녔다고 하면서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그른지도 모른다면, 어떻게 처신할 수 있겠느냐?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겠느냐? 또 어떻게 모든 말과 행동을 정상 인성 안에서 할 수 있겠느냐? 만약 네가 옳고 그름을 모른다면, 네 모든 언행은 정상 인성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정상 인성 안에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는 게 무슨 뜻이겠느냐? 네가 인성에 갖춰져 있어야 할 올바른 사상 관점에 따라 이성적으로 말하고 행동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는 정상 인성 안에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정상 인성 안에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을 근거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입니까?”라고 묻는 사람이 있다. 크게 두 가지 경우가 있다. 하나는 마귀의 본성으로 말하고 행동하며 사탄 성품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그가 말하고 행동하는 사상 관점과 태도가 마귀의 말과 행동처럼 사람을 미혹하고 해치며 유혹하고 오도하는, 긍정적이지 않은 것임을 알아볼 수 있다. 이것이 한 가지 경우로, 마귀의 본성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다른 한 가지는 짐승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으로, 더더욱 인성을 지니지 못한 경우다. 인성을 지니지 못했다는 것은 언행에 양심도 없고 이성도 없다는 뜻이다. 이렇게나 간단하다. 짐승이 하는 말은 온통 흐리멍덩한 말, 어리석은 말, 불합리한 말로 죄다 치우친 도리뿐이다. 그가 떠드는 말들을 보아라. 동물의 사상 관점처럼 비뚤어지고 어리석으며 미련하고 흐리멍덩하다. 들으면 어이가 없어서 “저 사람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네다섯 살 꼬마처럼 몰상식하고 철도 없어. 어른으로서 해서는 안 될 말이야! 하는 말이라곤 온통 말도 안 돼서 사람들한테 비웃음을 산다고. 어디 가서 입 밖에 꺼내기도 민망한 말이잖아!”라고 말하게 된다. 이는 동물, 짐승이 하는 말이다. 짐승의 본성으로 하는 말과 행동은 도리라고 할 만한 것이 없고 합리적이지도 않다. 더욱이 양심과 이성이 있다고 할 수도 없다. 다시 말해, 비이성적이고 아무런 생각과 논리도 없이 말한다는 것이다. 너는 그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고, 들어 봐도 무슨 말인지 도무지 모르겠고 갈피를 못 잡는다. 그의 말이나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혼란스러워지고 이해가 안 된다. 그는 말할 때 늘 중언부언하고, 횡설수설, 오락가락하면서 한 가지 일을 가지고 한참을 주저리주저리 떠든다. 그러다 마지막에 가서는 이야기를 어떻게 매듭지어야 할지 모른다. 이것이 바로 짐승이나 동물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부류는 특징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무슨 말을 하든, 어떤 사상 관점을 지니고 있든, 혹은 어떤 사상 관점을 흡수하든 스스로도 그것의 옳고 그름을 모른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의 인성이 보이는 한 가지 특징이다. 이런 인성의 특징 때문에 결국 이 부류가 아무런 인성이 없는 사람으로 규정되는 것이다. 즉, 양심과 이성이 없다는 말이다. 말해 보아라, 옳고 그름도 모르는데, 그가 양심적으로 말하고 행동할 수 있겠느냐? 옳고 그름도 모르는데, 정상인의 양심과 이성을 갖출 수 있겠느냐?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모르는데, 정상인처럼 사고할 수 있겠느냐? 절대 그러지 못할 것이다. 정상인은 이런 자들과 대화해도 소통하지 못한다. 어째서 소통하지 못한다고 하겠느냐? 네게 사랑이 없어서겠느냐? 아니다. 너와 그 사이에는 공통된 화제가 없고, 공통된 사상 관점이 없다. 그와 소통하는 것은 마치 동물이나 마귀와 소통하는 것과 같아서 소통할 방법이 없다. 네가 마귀 사탄에게 진리에 관해 이야기한다면 말이 통하겠느냐? 네가 마귀 사탄에게 “하나님을 믿으세요.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셨습니다. 사람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마땅히 하나님을 경배해야 합니다.”라고 하면, 그가 뭐라고 하겠느냐? “하나님을 경배하라고요? 저는 남들한테 경배받고 싶은데요? 하나님을 경배하면 얼마 주는데요? 돈 주면 경배하러 갈게요.”라고 한다. 이게 무슨 말이냐? 마귀와 소통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동물과는 소통할 수 있겠느냐? (소통할 수 없습니다.) 어떤 동물은 먹이를 먹을 때 특히나 먹이를 지키려 들고, 자기 것을 다 먹고도 다른 동물의 것까지 뺏어 먹으려 한다. 네가 “먹을 때는 싸우지 말고 자기 것만 먹어라.”라고 한다고 동물이 알아듣겠느냐? (못 알아듣습니다.) 동물은 먹이를 먹을 때가 되면 여전히 서로 싸우면서 먹고 심지어 물어뜯기까지 한다. 너는 그것들과 소통할 수 없다. 그것들을 보호하고 먹이를 두고 다투지 않게 하려면, 엄격한 관리 조치를 취해야 한다. 먹이를 먹을 때는 분리해서 각자 먹게 해야 한다. 이렇게 관리하는 게 적절하다. 왜 그렇겠느냐? 그것은 동물이라 이성은 물론, 자각하는 능력도 없어서 자기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지 못하기 때문에 네 말이 아무리 옳고, 타당하며 유익하다 한들 알아듣지 못한다. 동물에서 환생한 부류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진리를 분명하게 교제해 주어도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그는 결코 올바른 원칙대로 행동하지 못하고, 잘못을 저질러도 잘못인 줄 모른 채 계속 고집한다. 그것도 평생 말이다. 이런 자는 동물이 아니냐?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부류는 동물이나 다름없고, 동물보다 나은 점이 많지 않다.
이제 동물과 마귀의 본성에 관한 이야기는 그만하고, 정상 인성의 옳고 그름을 아는 것에 관해 교제하겠다. 옳고 그름을 아는 것은 인성을 지닌 사람이 갖춰야 할 모습이지만, 사실상 이 모습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대부분이다. 사람은 늘 억지 논리를 떠들고 불합리한 말을 하는 것도 모자라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짓까지 하면서 특히 그것을 고집한다. 게다가 억지 논리를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고 가르치기도 한다. 그가 떠드는 논리는 가뜩이나 억지스러운데 그것을 남에게 가르치려고까지 하니 자기는 물론, 남에게까지 해를 끼친다. 예를 들어, 자기가 쌀을 싫어하면, 그는 “쌀엔 영양가가 없으니 국수나 만두, 빵을 먹읍시다.”라고 한다. 쌀에 영양가가 없다는 그의 말이 맞는 말이냐? (틀립니다.) 네가 영양학자냐? 실험해 보았느냐? 너는 무슨 근거로 쌀에 영양가가 없다고 하느냐? 밀은 재배하지 않고 벼만 재배하는 지역이 있는데, 그 지역 사람들은 평생 쌀만 먹어도 잘만 살고, 장수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그는 자기 입맛에 따라 ‘쌀은 영양가가 없다’며 이를 정설로 여기면서 말한다. 실제로 그것이 정설이냐? (아닙니다.) 그 말이 진리에 부합하는지는 차치하고 그 말은 정설도 아니다. 그는 어떻게 이렇게 얼토당토않은 논리를 내뱉을 수 있는 것이냐? 그가 사람이냐? (아닙니다.) 그 말은 명백하게 틀렸고, 분명 사람이 사심과 편견을 품고 내뱉은 말이자 사실을 왜곡하는 사람이 한 말인데, 그는 옳고 그름도 모르면서 당당하게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니는 것이다. 쌀은 좋아하지만 밀가루 음식을 싫어하는 어떤 사람이 밀가루 음식을 먹는 사람을 보면 말한다. “밀가루 음식은 영양가가 없어요. 쌀이 영양가가 있죠. 밀가루 음식을 먹는 사람은 별 볼 일 없고 쌀을 먹는 사람은 고귀해요!” 그는 이 이론을 바탕으로 각 부류를 가늠한다. 네가 밀가루 음식을 좋아한다면, 그는 네가 비천하고 자기보다 고귀하지 못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 얼마나 명백하게 틀린 말이냐? 그런데도 그는 분별하지 못한 채 여기저기 이야기하고 다닌다. 말해 보아라, 이런 사람에게 인성이 있겠느냐? (없습니다.) 그러다 쌀이 싫고 밀가루 음식이 좋아지면, 그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쌀엔 영양가가 없지만, 밀가루 음식엔 영양가가 많아요. 항상 밀가루 음식을 먹는 사람이 얼마나 건장한지 보세요. 국수나 만두를 많이 먹어야 합니다! 쌀은 차가운 성질의 음식이라 먹으면 몸에 안 좋아요!” 이게 맞는 말이냐? (틀린 말입니다.) 편견 아니냐? (그렇습니다.) 이것은 편견이지 사실이 아니다. 그는 무엇을 근거로 이런 말을 하겠느냐? 자기 기호와 편견, 자신의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사상 관점을 근거로 말한다. 하지만 그는 그 말이 틀린 것도 모르고, 맞는 말로 여기고는 이야기하며 떠벌린다. 누가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 반박하면서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관점을 고집한다. 이는 옳고 그름을 모르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는 이렇게 간단한 일에서도 옳고 그름을 모르는데, 그의 양심이 작동하겠느냐? 그가 올곧게 행동할 수 있겠느냐? 올곧은 사람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알아야만 정의와 원칙을 견지할 수 있고, 그래야만 그가 견지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사람이 옳고 그름을 모르고 늘 잘못된 말이나 사상 관점을 고집한다면, 그의 올곧음이 진정한 올곧음이겠느냐? 그것은 올곧음이 아니라 치우침, 황당함이고 억지 논리이다. 그렇다면 너희가 말해 보아라, 이 사람에게 양심이 존재하겠느냐?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무런 양심도 없다. 어떤 사람은 일이 닥쳤을 때 사심이 생기면, 마음속으로 의식하고 이성의 제약을 받아 사심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육을 저버리고 포기할 수 있다. 반면 이들과는 다른 사람들도 있다. 특히 옳고 그름을 모르고 억지 논리를 떠들기 좋아하는 사람은 잘못된 관점을 어리석고 완고하게 고수한다. 예를 들어, 춤을 잘 못 춰서 춤출 때 동작이 맞지 않고 균형 감각이 없는 데다가 스텝도 박자가 안 맞아 늘 망신을 당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이런 말을 한다. “춤추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의젓하고, 춤추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의젓하지 않아요. 성격이 안 좋고 방탕하기까지 하죠. 이런 사람과 결혼하면 앞으로의 삶도 분명 불안정할 거예요.” 이 말이 옳으냐? (옳지 않습니다.) 왜 옳지 않다고 하느냐? (춤추는 걸 좋아하는 것은 의젓함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의 말이 사심이나 질투, 비방에서 비롯된 말인지는 둘째 치고, 그의 속셈이 무엇이든 그의 말이 객관적 사실에 부합하느냐? 춤을 출 줄 아는 사람, 춤을 잘 추는 사람이라고 해서 의젓하지 않으냐? 춤출 줄 아는 사람, 춤을 잘 추는 사람이 지닌 인성의 본질을 근거로 하는 말이냐? 의젓하지 않다는 게 사실이냐? (아닙니다.) 더구나 의젓함이란 무엇이냐? 의젓하다는 것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하느냐? 의젓함이 곧 올곧음과 선량함, 인성을 지닌 모습을 말하느냐? 기껏해야 한 사람이 지닌 인성의 우수한 점이나 장점일 뿐 그 사람이 정상 인성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가 자기 관점을 정설이나 옳은 말이라고 여기고 말하는 것은 억지 논리를 떠드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그가 이런 말을 내뱉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신도 그 말의 옳고 그름을 모른다는 증거다. 말해 보아라, 이런 사람에게 인성이 있겠느냐? (없습니다.) 이런 자는 골치 아픈 사람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만약 정상 인성을 지닌 사람이라면, 춤을 잘 추는 사람을 보고 속으로 질투가 나도 기껏해야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 사람 춤출 때 유연한 팔다리 좀 보세요. 저도 춤추고 싶지만, 그런 은사와 특기가 없어서 잘 못 추겠더라고요. 춤을 잘 추는 사람을 보면 정말 질투가 나요! 저 사람의 팔다리가 저한테 달렸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렇게 말한다면 그나마 봐줄 만하다. 이런 게 솔직한 말이다. 기껏해야 패괴 성품이 조금 있을 뿐, 인성이 부족한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억지 논리를 떠드는 건 심각한 문제이다. 그는 “춤추는 사람은 의젓하지 않고 경박해요. 큰일을 할 사람이 아니란 걸 한눈에 알 수 있죠.”라고 한다. 그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의 인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어떤 심각한 문제겠느냐? 그의 인성에는 옳고 그름을 아는 기본 조건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틀린 말, 치우친 말, 불합리한 말을 정설이나 옳은 말로 여기고 떠드는 것을 통해 그는 인성이 없고, 양심의 통제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말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가 이렇게 떳떳하고 당당하게 억지 논리를 내뱉고, 그 말의 성질이 무엇인지도 모르며, 그런 말을 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르는 것은 인성이 없는 모습이다. 인성이 없는 사람은 늘 이런 그릇된 말, 터무니없는 말을 공공연하게 늘어놓는데, 그것은 자연스러운 표출이다. 그는 비단 한두 가지 일에서만 이러는 게 아니라, 매사에서 이런 말을 하면서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사상 관점을 드러내고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옳은 말, 긍정적인 말은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구하지도 않으면서 이런 말, 처신을 고집한다면, 이런 부류는 인성이 없는 사람으로 규정된다.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고집한다면, 이는 한 가지 문제, 한 가지 사실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그가 옳고 그름을 모르고, 모든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논리를 옳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네가 “무엇이 틀린 거죠?”라고 물으면, 그는 “이런 말과 상반되는 것이 틀린 거겠죠.”라고 대답한다. 네가 다시 “그럼 진리 원칙과 객관적 사실에 부합하는 말은 옳을까요?”라고 물으면, 그는 “그러거나 말거나, 그걸 누가 알겠습니까? 어쨌든 제가 하는 말이 옳아요!”라고 대답한다. 옳고 그름을 모르는 것이 진정으로 양심과 이성을 지닌 사람이 갖춰야 할 모습이겠느냐? (아닙니다.) 답은 명확하다. 절대 아니다.
장사를 좋아해서 이방인으로부터 재고 떨이 옷을 산 다음, 형제자매에게 팔아 이윤을 남기는 사람이 있었다. 나중에 또 다른 사람이 여름용 인견이나 망사 등의 옷감을 창고에 보관하길래 내가 “거기에 두는 건 적합하지 않다. 오래 두었다가 쥐가 파먹거나 습한 날씨 때문에 곰팡이가 슬면 아까울 것이다. 전부 옷으로 만들어서 형제자매에게 입히면, 걱정할 필요가 없지 않겠느냐?”라고 했다. 그리고 나중에 가서는 내가 그 일을 도맡아 챙겼다. 그러는 와중에 옷을 파는 그자가 반대하며 말했다. “안 됩니다. 그러면 안 돼요! 검은색 옷감은 열을 흡수하잖아요. 형제자매는 늘 땡볕에서 일하는데, 검은 옷을 입으면 너무 더울 거예요. 형제자매가 열사병에 걸리거나 더위를 먹으면 누가 책임지나요?” 이게 맞는 말처럼 들리느냐? 너희는 모를 것이다. 여기에는 객관적 사실이 하나 있다. 그 옷감은 무척 얇고 통기성이 좋아 입으면 무척 시원하다. 검은색이라 온도가 약간 올라가더라도 옷을 헐렁하게 만들면, 그자가 우려하는 더위를 먹지는 않을 것이었다. 더구나 검은색 옷감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연한 색도 있었다. 사실 이런 말을 한 사람에게는 다른 의도가 있었다. 왜 이렇게 말하겠느냐? 그 배경을 모른다면 그가 정말 형제자매를 걱정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배경을 이해한다면 그가 그런 말을 한 데는 다 목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형제자매가 만약 그 옷감으로 만든 시원한 옷을 입는다면, 그가 들여온 옷은 팔리지 않을 것이었다. 형제자매가 사지 않으니 말이다. 그가 들여오는 옷은 모두 길거리 표나 재고 정리 상품이다 보니, 품질이 떨어지고 입으면 거지 같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싸게 파는 것도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런 배경을 알고 나니, 그가 한 말의 옳고 그름에 관해 갈피가 잡히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그가 왜 그런 말을 했겠느냐? (자기 물건이 팔리지 않을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한테 사심이 있다는 말은 안 하고, 형제자매를 생각한다는 핑계와 그들이 더위를 먹을까 봐 걱정된다는 이유를 대며 옷을 만드는 것을 가로막고, 이 사역을 가로막았다. 또 하나의 객관적 사실은 정작 그 자신은 무더운 여름에 검은색 긴 청바지와 검은색 옷을 입고도 전혀 덥다고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찌 된 일이었겠느냐? 그의 말은 사실과 달랐다! 형제자매에게 인견으로 옷을 지어 주면, 그는 “안 돼요. 검은색 옷감은 너무 더워서 형제자매가 더위를 먹을 겁니다.”라고 했다. 자기는 인견보다 훨씬 두꺼운 검은색 청바지를 입었으면서 왜 덥다고 하지 않았겠느냐? 그렇다면 검은색 옷은 너무 더워서 형제자매가 더위를 먹을 거라는 그의 말이 맞겠느냐? 그가 진심으로 그런 말을 했겠느냐? 진심이 아니라 마음에 없는 소리다. 그렇다면 그의 말이 맞는 말이겠느냐? 사실에 부합하겠느냐? (사실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왜 그런 말을 했겠느냐? 그 일이 자기 사업과 충돌했기 때문이다. 그는 속으로는 애가 타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말할 수는 없으니, 그런 말로 훼방을 놓아서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목적을 이루려고 한 것이다. 그 일은 내가 도맡아 챙기고 있었는데, 그는 그렇게 대놓고 교란했다. 내가 도맡아 챙기고 있는 일에 의견이 있으면 곧바로 내게 말하면 되는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겉으로는 아무 의견이 없는 척 잘도 가장하더니, 뒤에서는 가차 없이 일을 망치려 했다. 그가 뭐라고 했겠느냐? “형제자매들은 다 입을 것이 있고, 다들 잘 입고 다니는데, 굳이 이렇게 많은 사람을 동원하고, 이렇게 많은 수고를 들여서 옷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요?” 그는 내 앞에서는 한마디도 안 하면서 뒤에서는 이렇게 훼방을 놓았다. 그는 그런 말을 할 때 속으로 옳고 그름을 알고 있었겠느냐, 모르고 있었겠느냐? 그가 만약 보통 사람을 겨냥해서 그런 일을 한 거라면, 그리고 속으로 옳고 그름을 알면서도 오로지 사리사욕에 눈이 멀고, 개인적인 속셈과 목적 때문에 그렇게 행동한 거라면, 그것은 그저 인품의 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그는 나를 겨냥해서 그런 일을 한 것이다. 게다가 그는 훼방 놓는 말을 해 놓고 그것의 옳고 그름을 알지 못했다. 마음속으로 아무런 지각도 없었고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으며 그 일의 성질도 몰랐다. 그렇다면 이런 자는 어떤 사람이냐? 이 사람에게 인성이 있겠느냐? (없습니다.) 말해 보아라, 이토록 심각한 일을 저질러 놓고 속으로 지각하지 못하는데, 양심이 있겠느냐? (없습니다.) 양심이 없다. 이는 명백한 사실이다. 설령 보통 사람이 올바른 일을 하고, 하나님 집에서 형제자매에게 유익한 일을 하더라도 그것을 망치지 말고 지켜야 하고, 모든 사람이 조화롭게 협력하여 일을 이루어야 하는데, 하물며 내가 하겠다고 주장하는 일에 대해 감히 뒤에서 망치고 마수를 뻗다니, 이 성질이 너무나도 심각하다! 다 망치고 나서도 그는 좋은 사람인 척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척한다. 그에게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겠느냐? 그럼에도 그는 자기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있어야 할 모습이겠느냐?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있어야 할 양심과 인성이겠느냐? 자기가 누구를 믿는지도 모르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도 못하는데, 그가 어떤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겠느냐? 그럼에도 이런 사람이 복을 받고 싶어 한다면, 그야말로 코미디가 따로 없지 않겠느냐? 만약 그가 나 개인을 겨냥해 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얘기하고 다닌다면, 내가 보기에 그가 교회 사역을 고의로 방해하고 교란하지 않고, 본분도 그럭저럭 괜찮게 이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참고 계속 그를 관찰할 것이다. 그런데 내가 하나님 집과 하나님의 선민에게 해야 할 일을 하고, 모두에게 유익한 일을 하는데, 그가 튀어나와 교란하고 훼방을 놓으면서 내가 하지 못하게 막는다면, 내가 그를 봐줘야 하겠느냐? 만약 이 사람이 분량이 작고 사리 분별은 못 하지만, 평소 본분 이행에 성과가 있다면, 나는 인내하고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한 번 줄 수도 있다. 그가 회개하기를 원하고, 하나님 집을 위해 봉사하길 원한다면, 그를 처리하지 않고 용서해 줄 수도 있다. 그런데 그가 좋고 나쁨을 모르고 계속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논리를 퍼뜨리고, 계속 교란하며 훼방을 놓는다면, 나는 봐주지 않고 원칙대로 처리할 것이다. 악인을 대할 때는 원칙대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 교회를 교란하는 각종 해충을 정리해 내보내면, 교회가 훨씬 평온해진다. 이런 인간이 아닌 자들을 처리해 버리면, 너무나도 평온해질 것이다! 돼지나 소, 말 같은 짐승을 집 안에서 키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만약 집 안에서 키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느냐? 집 안이 분명 난장판에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너는 견딜 수 있다고 하는데, 어디 며칠이나 버티는지 한번 두고 보겠다. 집 안에서 키우기 적절하지 않은 것은 밖으로 내보내서 지내기 적합한 곳에 있게 해야 한다. 그럼 문제가 해결된다. 참는 게 능사가 아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방도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인간이 아닌 이런 자는 아무리 분명하게 교제해 주어도 실행하지 않는다. 십 년, 이십 년 하나님을 믿어도 일이 닥치면 이방인과 같다. 진리를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고 실행하지도 않으며 아무런 생명 진입도 없다. 일이 닥치면 교란하고 망치기만 할 뿐이다. 이런 부류는 정체가 드러나기 전에는 마지못해 약간의 봉사는 한다. 일단 정체가 드러나면, 봐주지 말고 당장 정리해라. 그를 봐주는 것은 진정으로 인성을 지녔고 진리를 추구하며 충성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에게 잔인한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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