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7) 제 1 부
사람의 유래에 따라 구분한 사람의 세 가지 유형
사람에서 환생한 부류의 특징
2. 시비에 밝고 옳고 그름을 안다
1) 시비에 밝다
지난번에 우리는 사람에서 환생한 부류의 모습과 특징에 관해 교제했다. 이 부류는 양심과 이성을 지니고 있고, 시비에 밝으며, 옳고 그름을 안다. 오늘도 지난번 주제를 이어서 교제할 텐데 교제하기에 앞서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겠다. 몇 년 전 들은 이야기인데, 한 젊은 여자가 오디션을 볼 때 어떤 사람이 지나가는 말로 “다리가 참 굵으시네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여자는 속으로 ‘다리가 굵다는 건 뚱뚱하다는 뜻 아냐? 뚱뚱하면 화면에 예쁘게 나오겠어? 체면 구기는 거 아냐?’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다리가 얇아져서 화면에 날씬하고 예쁘게 나올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그녀는 열심히 여러 자료를 찾고, 온갖 방법으로 다이어트를 했다. 예를 들면, 매일 밥은 안 먹고 다이어트 식단대로만 먹거나 과일, 채소만 먹었다. 어쨌든 살을 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먹은 것이다. 커피를 마시면 살이 빨리 빠지고 효과가 확실하다고 해서 커피만 마실 때도 있었다. 또 잠을 덜 자면 금방 날씬해진다고 해서 하루에 두세 시간만 자기도 했다. 그렇게 이래저래 애쓰다 보니 정말 효과가 있어서 살이 빠지고 몸매가 날씬해지며 다리도 가늘어졌다. 그게 남들에게는 예뻐 보이고 체면도 섰지만, 몸에 부작용이 나타났다. 어떤 부작용이겠느냐? 늘 현기증에 시달렸고, 낮에 본분을 이행할 때는 늘 몽롱했다. 가만히 서 있으면 몸이 계속 휘청거렸고, 앉아 있어도 온몸에 기운이 없어서 하루하루가 힘에 부치고 너무 고통스러웠다. 대다수 사람이 이 여자의 근황이 어떤지, 아직 건강하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하지 않겠느냐? 너희는 그녀의 다이어트 경험이나 소감을 듣고 싶으냐? (듣고 싶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인간 세상에 살면서 어떻게 해야 올바르고 규칙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지, 자기가 직면한 여러 유형의 사람과 일, 사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그리고 한마디 말을 듣거나 한 가지 일을 겪을 때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대해야 적절한지, 본인이 피해를 당하지 않게 스스로를 잘 지키면서 진정으로 올바르고 체면이 서게 살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 중에서도 이를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외부의 정보와 소식, 온갖 사상 관점,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논리를 마주할 때 사람은 분별력이 전혀 없을뿐더러 막아낼 힘도 없다. 물론, 올바른 사상 관점도 지니고 있지 않다. 더욱이 긍정적인 측면에서 올바른 방식으로 대하고 있다고 할 수도 없다. 그래서 사람은 참 불쌍하게 살아간다. 말해 보아라, 앞에서 언급한 여자는 삶이 피곤하지 않겠느냐? 삶이 불쌍하지 않으냐? (불쌍합니다.) 왜 불쌍하다고 하느냐? 그녀의 행동 중 어디가 잘못되었느냐? 사람은 다들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체면이 서는 삶을 추구하지 않더냐? 남들 눈에 아름다워 보이고, 만나면 칭찬과 찬사를 받는 것이 잘못이란 말이냐? 너희는 이 일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그녀는 예쁜 외모로 남들에게 찬사를 받으려고 자신의 몸을 상하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칙을 지키지 않아 결국 몸의 각 기능이 모두 망가져 버렸습니다. 현기증이 나는 것은 모두 그녀가 자초한 결과입니다. 참 어리석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사람은 어느 정도 생각하는 능력과 약간의 총명함, 평범한 생각을 지니고 태어나고, 여기에 더해 지식과 기술을 약간 습득하며, 좋은 사람의 모습을 좀 배우게 된다. 이것들로 외부에서 비롯된 온갖 사상 관점,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논리, 여러 유형의 사람과 일, 사물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겠느냐? 이것들로 네가 그런 일들을 올바로 마주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절대 그럴 수 없다. 사람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이토록 불쌍하고 가엾으니 결국 수많은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외부의 그 어떤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논리, 사상 관점도 분별하지 못하고, 자기가 마주하는 사람과 일, 사물에 대해서도 올바른 사상 관점을 갖고 있지 않으니 일이 닥치면 멍해지고 온갖 추태를 부린다. 일이 닥치지 않았을 때는 마치 도리를 조금 깨달았고 사람다운 모습도 어느 정도 갖춘 것 같지만, 일이 닥쳤을 땐 다르다. 마음속의 치우치고 추하며 황당한 사상 관점이 표출된다. 정말로 처신과 생존, 심지어 생활상의 어떤 사상 관점과 연관되면, 사람은 그렇게나 무지하고 우둔하며, 사람의 태도와 관점도 황당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으며 설교를 들었고, 본분도 이행하고 있으며 의도적으로 방해하고 교란하는 일,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모독하는 말을 한 적이 없는 데다가 겉보기에는 흠잡을 데 없지만, 외부의 온갖 잘못된 사상 관점, 특히 비교적 유행하는 사상 관점에 대해서는 마음속 깊이 반감을 품거나 반발하고 거부하는 게 아니라, 좋아하고 동조하는 것이다. 적절한 환경과 시기가 주어지면, 자기도 모르게 그런 것들을 받아들여서 직접 실행에 옮긴다. 앞에서 말한 그 여자가 뚜렷한 예시가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그것이 사악한 흐름을 좇는 모습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좇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관철하고 실행에 옮긴다. 지금 세상은 섹시하고 매혹적이며, 날씬하고 아름다운 몸매를 강조하지 않더냐? 어떤 업계에서든, 어떤 무리에서든 심지어 신앙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런 말들이 유행한다. 주님을 믿는 노부인 몇 명이 있었는데, 평균 연령이 예순 살 이상인데도 서로 누가 예쁜지 따졌다. 그러면서 옆에 있던 어린 여자에게 “네가 보기에 이 치마가 우리 중 누구한테 가장 잘 어울리니?”라고 물으니, 그 여자가 “언니들 다 잘 어울려요!”라고 대답했다. 환갑을 넘긴 그들을 ‘언니’라고 불러야 했다. ‘아줌마’라고 불리는 것을 싫어하고 불쾌해하니 말이다. 그 어린 여자는 뒤에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환갑이 넘었는데, 예뻐 봤자 얼마나 예쁘겠어요!” 그런데도 그 노부인들은 좋다고 난리였다. 염치가 있는 것이냐? (염치가 없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주님을 믿었는데도 여전히 그런 것들을 중시하다니, 인성이 비정상인 것 아니냐? 사람에게 양심과 이성이 없으면 황당한 일, 남들이 멸시하고 경멸하는 일, 자신의 비천한 인격을 드러내는 일을 수도 없이 저지른다. 어째서 많은 사람이 사악한 흐름과 관련된 일에 대해 분별하지 못하고 저항도 전혀 하지 못한 채 미혹되고 휩쓸리겠느냐?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진리를 전혀 깨닫지 못하며 무슨 일이 닥치든 간파하지 못하기 때문에 시험이 닥치면 드러나고, 그 속에 빠져 버리는 것이다. 현재 사회 각 계층의 사람들 사이에서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이 유행하는지 보아라. 한 방송국 기자가 남자아이를 인터뷰하면서 “제일 좋아하는 동요가 뭐예요?”라고 묻자 그 아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월량대표아적심’이요.” 이 대답을 들은 사람들은 어이가 없어 웃음만 나온다. 왜 어이가 없어 웃음만 나오겠느냐? 그것이 동요이냐? (아닙니다. 사랑 노래입니다.) 사랑 노래인데, 아이가 동요로 오해한 것이다. 이 일을 통해 사회에서 유행하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사회의 사악한 흐름 속에서 나타나는 한 가지 현상이다. 노인이고 아이고 모두 이로 인해 심각한 해를 입고, 그 속에 깊이 빠져 있다.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 중에도 이런 흐름을 따르는 동시에 이런 흐름이 권장하는 사상을 직접 실행에 옮기는 자들이 의외로 많다. 결국 어떻게 되겠느냐? 그 결과가 좋겠느냐, 나쁘겠느냐? (나쁩니다.) 결과가 나쁘다. 이것이 바로 사악한 흐름을 좇는 자의 말로다. 사람은 모두 육적인 정욕, 육의 정, 놀고먹으며 허송세월하는 삶에 빠지고 올바른 사상 관점, 인생을 마주하는 올바른 생존 태도도 지니지 못한다. 이런 상태로 살면서 지각도 없고 저항할 힘도 없는 것이다. 그러다 결국 점점 깊이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결국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겠느냐? 사탄의 먹잇감이 되어 그에게 완전히 잡아먹히고 만다.
사람들 사이에서 사는 개개인이 무엇이 긍정적인 사물이고, 무엇이 부정적인 사물인지 분별할 줄 모른다면, 이 혼란한 세상, 이 복잡한 인간 세상에서 인생의 올바른 사상 관점, 그리고 자기가 동경하는 올바른 인생길을 견지하기 어렵다. 언제 말 한마디를 듣거나 한 가지 일에 직면하여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사악한 흐름에 사로잡힐지 모른다. 사람에게 시비를 가리는 능력이 없다면, 자신의 생활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못할 것이고, 생존의 길에서 직면하는 각종 근본적인 옳고 그름의 문제는 말할 것도 없이 더더욱 대응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사람이 만약 무엇이 긍정적인 사물이고, 무엇이 부정적인 사물인지 모른다면, 자신의 생활을 관리하지 못할 것이고, 올바른 생활 방식도 지니지 못할 것이다. 건강한 생활 측면의 여러 정보를 접해도 어떻게 분별하고 취사선택해야 하는지 모르고, 어떻게 해야 긍정적이고 올바른 내용을 취하고 잘못된 내용은 거부할 수 있는지 모른다. 하다못해 육체의 건강조차 지키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양극단을 오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줄곧 한쪽 극단에서만 사는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과일을 많이 먹으면 건강에 좋고 비타민을 보충할 수 있어요. 과일을 먹으면 피부가 촉촉해지고 매끈해져서 모두에게 사랑받을 거예요.”라는 말을 그대로 믿는다. 그래서 얼마 뒤부터 온갖 과일을 폭식하고 밥도 비정상적으로 먹기 시작한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몸이 늘 아프다는 느낌을 받는데, 결국 병원에서 혈당이 높다는 진단을 받게 된다. 그러면 그는 ‘평소에 정말 건강하게 먹었는데, 왜 혈당이 높아졌을까? 과일을 많이 먹으면, 비타민을 보충할 수 있대서 그 말대로 과일을 많이 먹은 건데, 왜 잘못됐지?’라며 의아해한다. 의사는 이렇게 말한다. “과일은 비타민이 함유되어 있긴 하지만, 당분이 높아요. 과일을 밥 대신 주식으로 먹어서는 안 됩니다. 적당히 드시거나 조금만 드세요. 아예 안 드셔도 영양이 결핍되지는 않을 겁니다. 곡식이나 채소에도 그 영양소가 다 들어 있거든요.” 의사의 말이 적절하다. 이는 그의 생활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가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런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말해 보아라. 이런 잘못을 저질러서야 되겠느냐?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저는 혈당이 높아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라고 한다. 이 말은 어떠냐? 이성이 없는 말 아니냐? 혈당이 높은 게 하나님과 관련이 있느냐? 네가 자초한 일이 아니더냐? 너는 원칙도 없이 막무가내로 음식을 먹었다. 과일이 맛있다며 한도 끝도 없이 먹고, 고기가 맛있다며 채소는 제쳐 두고 무절제하게 먹다가 결국 탈이 나 버렸다. 이는 네가 자초한 일 아니냐?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으면 네가 고상하고 순결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처럼 보일 줄 알았느냐? 사실 어떤 병은 사람이 자초한 것이고 하나님과는 무관하며, 사람이 어리석고 무지해서 걸리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달걀, 고기, 유제품은 영양가 있는 음식으로, 단백질을 보충해 줍니다. 쌀이나 밀가루 음식은 영양가가 별로 없어요. 고기나 달걀, 우유를 많이 먹어야 합니다.” 이 말을 듣고 어떤 사람은 “마침 제가 고기를 좋아하는데, 고기에 영양가가 있다고 하니 많이 먹어야겠네요. 남들은 하루에 조금밖에 안 먹지만, 저는 한 끼에 반 근씩 하루에 최소 두 끼는 먹을 거예요!”라고 말한다. 이렇게 무절제하게 먹다 보면, 먹는 양도 점점 늘어나 매일 남들 먹는 양의 두세 배를 먹게 되고, 밤에는 야식까지 먹으니 위가 서서히 커진다. 위가 커질수록 식욕도 늘어나니, 결국 어떻게 되겠느냐? 먹고 탈이 난다. 체중은 기준을 초과하는 데다가 늘 졸리고 정신이 혼미하여 어쩔 수 없이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 본 결과, 고혈압에 고혈당, 고지혈증까지 생겨 있다. 그러면 그는 이런 생각을 한다. ‘매일 고기를 몇 점 더 먹었을 뿐이잖아? 고기를 많이 먹으면, 건강에 좋고 영양도 결핍되지 않는다며? 내가 뭘 잘못했지? 왜 혈압이 높아진 걸까? 이놈의 몸뚱이는 너무 성가셔. 고기 몇 점 더 먹는 것도 못 견디다니!’ 끼니마다 고기 반 근을 먹는 게 고기를 몇 점 더 먹는 것이냐? 게다가 평소에 운동도 안 하고 앉아 있기만 하면서 그렇게 많이 먹으니, 결국 건강에 문제가 생기고 심장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이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연단하시는 거야. 괜찮아. 며칠 지나면 나아질 테니,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겠어!’라고 생각한다. 네가 무슨 근거로 하나님을 원망하겠느냐? 병에 걸린 게 하나님이 너를 연단해서겠느냐, 아니면 네가 자초한 일이겠느냐? 자기가 고기를 먹어서 살을 찌우고 병에 걸렸으면서 하나님이 자기를 연단한다고, 자기에게 믿음이 있는지 검증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이런 식으로 너를 연단하겠느냐? (그러지 않으십니다.) 그럼 어째서 이런 결과가 생겼겠느냐? (사람이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스스로 분별하지 못하고, 자신의 생활을 관리하지 못하며, 무엇이 긍정적인 사물이고 무엇이 부정적인 사물인지 모른다. 또 어떻게 해야 자신의 육적인 생활을 올바로 대할 수 있는지, 하나님이 사람에게 정해 놓은 생존의 자연법칙과 육의 각종 선천적인 조건의 법칙을 어떻게 준수해야 하는지 모른 채 늘 어리석고 황당한 행동을 하고, 하나님에 대한 관념과 상상으로 가득 차 있으며, 온갖 사치스러운 욕망을 품는다. 그러면 결국 어떻게 되겠느냐? 굽은 길만 가고 잘못만 저지르며 하나님을 늘 오해하게 된다. 이는 골치 아픈 일 아니냐? (그렇습니다.)
사람은 육체와 물질세계 속에서 살아가면서 많은 정보와 사상 관점을 접하고, 여러 사람과 일, 사물도 접하게 된다. 만약 여러 유형의 사람과 일, 사물이 긍정적인 것인지, 아니면 부정적인 것인지 변별하지 못하고 취사선택하지 못한다면, 긍정적인 사물을 견지할 줄 모르고 그것이 올바르다는 것을 알지도 못하며, 또 부정적인 사물을 거부할 줄 모르고, 더구나 그것이 부정적이라는 것을 알지도 못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위험한 삶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언제든 목숨을 잃을 위험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은 자신의 육적인 생활과 건강이라는 이렇게 간단한 일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서 다른 사람이 걱정해 주거나, 하나님이 보호하고 돌봐 주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늘 잘못을 저지르고 좌로나 우로 치우친다. 사회의 사악한 흐름의 주장을 받아들여 미용에 몰두하면서 뒷일은 생각하지 않는 여자들이 있다. 그중엔 한약이나 양약, 보약을 함부로 먹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 가지 음식을 마구 먹는 사람도 있는데, 결국 위장병에 걸려 하루 종일 탄식하며 골골댄다. 결국 아름다워지기는커녕 역겨워 보인다. 어떤 사람은 피부가 좋은데도 만족할 줄 모르고, 굳이 온갖 화장품을 바르다가 언제인가 품질이 안 좋은 화장품을 바르는 바람에 얼굴이 망가져 버렸다. 푸르죽죽해진 그녀의 얼굴에 사람들이 겁을 먹을 정도로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미용도 하고 성형도 하는데, 결국 콧대를 세우려다가 콧대가 높아지기는커녕 괴상한 모양이 된 사람도 있고, 턱에 보형물을 넣으려다가 제대로 되지 않아 웃거나 하품만 하면 추해지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늘 웃지도 못하고 하품할 엄두도 못 내니, 얼마나 괴롭고 사는 게 피곤하겠느냐! 긁어 부스럼을 만든 꼴이 아니냐? 어떤 여자는 키 작은 게 싫어서 정강이 쪽을 끊었다가 다시 이어 붙여 연장했는데, 결국 연장은 되지도 않고 사고가 나서 멀쩡했던 다리를 절게 되었다. 끔찍하지 않으냐? (끔찍합니다.) 별의별 나쁜 결말이 다 있다. 그들은 모두 좋지 않은 말로를 맞았다. 사악한 흐름이 권장하는 모든 사상 관점은 다 그릇되고 터무니없으며 사악해서 사람을 참으로 크게 해친다. 그들이 권장하는 미식이나 메이크업은 진정한 아름다움이 아니며 모두 사악한 것이다. 그것은 사람에게 화를 입히고 해를 끼친다. 이 무지한 여인들은 이런 해악을 기꺼이 받고자 한다. 그들은 이런 사악한 사상 관점에 저항할 능력이 조금도 없고, 먹으라면 먹고, 하라면 한다. 아무런 분별 없이 맹목적으로 좇기만 하니, 그야말로 말도 잘 듣는다! 결국 어떻게 되겠느냐? 대부분 말로가 좋지 않다. 중간에 잘못을 깨닫고 돌아서서 더 큰 피해를 제때 막지 않는 한 계속 그런 사악한 흐름을 좇고 사악한 사상 관점을 받아들이다가 결국 점점 타락하고 좋고 나쁨을 모르게 되어 점점 귀신을 닮아 가면서 사람다운 모습을 잃어간다. 99%의 사람은 긍정적인 사물과 부정적인 사물에 대한 분별력이 전혀 없어서 사악한 흐름을 기꺼이 받아들인다고 할 수 있다. 여자들이 함께 옷을 사러 가면, 무슨 말을 하는지 보아라. 한 사람이 “이 옷은 별로야. 얼굴이 하얘 보이지도 않고, 몸매가 잘 드러나지도 않아서 눈길을 끌지 못해. 내가 보기엔 저 옷이 섹시해서 눈길을 끌 수 있을 것 같아!”라고 하면, 또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한다. “이 옷은 요염한 맛이 없어. 살짝 시스루에 섹시해야지. 남들이 보고 좋아해야 한다고. 늘 그렇게 얌전하게 입으면, 아무도 안 좋아해.” 어떤 엄마는 한사코 딸을 연기자로 만들려고 한다. “연예계는 너무 난잡해서 연기자가 되고 싶지 않아요.”라는 딸의 말에 엄마는 이렇게 꾸짖는다. “넌 왜 이렇게 못났니? 키며, 외모며, 피부며 선천적인 조건이 이렇게 좋은데, 네가 연기를 안 해서 돈을 안 벌면, 우리 집은 뭘 먹고 살겠어? 유명해지고, 돈만 벌 수 있다면, 누구랑 잠자리를 갖든 상관없다. 그러지 않으면 네 잘난 몸뚱이도 말짱 도루묵이야! 지금까지 키워 줬으니, 엄마 아빠도 네 덕 좀 보자! 그 정도 덕도 못 보면, 너를 낳은 보람이 없지 않겠니?” 부모가 자녀를 이렇게 가르치는 게 옳겠느냐? (옳지 않습니다.) 자녀를 이렇게 가르치면 어떤 결과가 생기겠느냐? (자녀를 해치게 됩니다.) 언젠가 자녀가 사리 분별을 하게 되었을 때, 너무 고생스럽고 괴로우면, 엄마를 증오하고 원망할 것이다. ‘이게 다 엄마 때문이야. 그때 제대로 된 길로 안내해 주지 않았잖아! 난 연기를 안 하겠다고 했는데, 엄마가 기어이 시켰다고. 그래서 어떻게 됐지? 이제 곧 마흔인데 시집도 못 가고 있어. 아무도 날 원하지 않아. 나 좋다는 사람도 죄다 가벼운 만남이나 원하지, 결혼할 마음은 전혀 없다고. 인생 망한 거 아냐?’ 자녀를 이렇게 고통스럽게 만든 장본인이자 화근은 바로 부모다. 부모가 자녀를 해친 것이다.
만약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이방인처럼 이 사악한 흐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면, 이는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그 어떤 사악한 흐름이나 사악하고 부정적인 말도 분별하지 못하고, 사람의 각종 행동도 분별하지 못한 채 그것을 좇으며 잘못된 줄 알면서도 직접 해 보려 한다면, 이는 하나님에게 모욕의 기호이다. 하나님이 뭐라고 하겠느냐? “너는 사람으로서 시비를 변별하는 능력과 긍정적인 사물을 받아들이는 실제가 없으며, 나아가 부정적인 사물을 거부하는 행위와 행동 방식도 보이지 않는다. 너는 사람이 아니다. 양심과 이성이라는 사람의 기본 조건을 갖추지 않은 너는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나라에서는 너를 들이지 않을 것이다.”라고 할 것이다. 넌 사람이 아니니, 진리를 받아들일 수 없다. 네 내면을 보면 네가 주관적으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것은 죄다 사탄에게서 비롯된 사악한 것이고, 너는 마음속으로 긍정적인 사물을 대적하고 반대하며 거부하기만 할 뿐, 받아들이려는 태도가 전혀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너를 보고 사람이 아니라고, 네게 인성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성이 없는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나를 열납하지 않으시면, 더 고생하고 더 많은 대가를 치러서 하나님을 감동시켜 드려야지. 그래서 나에 대한 태도를 바꾸시게 할 거야.’라고 생각하지 마라.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특정한 행동 방식이 아니다. 하나님은 네가 마음속 깊이 진리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갖추고, 진리를 받아들이는 실제와 진리를 실행하는 증거도 갖추기를 원한다. 너는 진정으로 인성을 지닌 사람이어야 한다. 이 인성이라는 것은 꾸며 낸 것이 아니다. 네게 정말 정상 인성의 징표가 있다면, 다시 말해 네가 시비를 명확하게 분별하는 모습을 많이 보이고, 긍정적인 사물을 사랑한다는 분명한 사실이 있으며, 긍정적인 사물을 받아들이고 부정적인 사물을 거부한 실제 사례가 있고, 네게서 진리를 살아 내는 모습이 보인다면, 하나님은 네가 인성을 지녔다고 할 것이고, 너를 사람이라고 칭할 것이다. 그런데 네가 만약 “저도 인성이 있습니다. 저는 긍정적인 사물과 부정적인 사물을 분별할 줄 알아요.”라고 하면서 진리 실제를 살아 내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근거 없이 말한다면, 골치 아파진다. 도리상 너는 “하나님의 말씀과 행사는 모두 긍정적인 사물이고 진리인 반면, 사탄의 말과 행동은 죄다 사악하고 부정적인 사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모든 것은 긍정적인 사물이지만, 사탄에게서 비롯된 것은 전부 부정적인 사물이며 세상 사람들에게서 비롯된 것은 모두 사악한 것이고 부정적인 사물입니다.”라며 인정한다. 도리상으로는 네 말이 지극히 옳고 전혀 문제가 없으며 흠잡을 데 없지만, 사실과 마주하면 너는 결코 긍정적인 사물을 받아들이지 않고 견지하지 않으며, 긍정적인 사물의 법칙과 규칙을 지키지도 않는다. 이는 네가 시비에 어두운 사람이라는 증거다. 이런 모습이 있는지 없는지는 스스로가 잘 알 것이다. 사악하고 부정적인 사상 관점을 듣거나, 사악한 흐름의 정보를 듣고 나면, 넌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 어떤 사상 관점을 갖느냐? 무엇을 지향하느냐? 그것에 동조하느냐, 아니면 반감을 품느냐? 그것을 마음속에 남겨 두었다가 필요할 때 써먹을 생각이냐, 아니면 속에서부터 그것을 싫어하고 정죄하며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냐? 과연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는 너 스스로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혹여 모른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마음이라는 게 있겠느냐? 자기 태도도 명확히 모르는 사람이 정상적인 사람이겠느냐? 이렇게 가정해 보자. 너는 자신이 좋은 작자가 아니라는 것을 속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온갖 사악한 흐름과 사악한 말에 흥미를 품고 늘 그것을 좇고 거기에 동참하고 싶어 한다. 단지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하나님 집의 여러 진리 원칙과 자신의 체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제하는 것일 뿐, 사실 내심 긍정적인 사물에 대해 반감과 거부감을 품고 있다. 그렇다면 네가 입으로는 긍정적인 사물을 좋아하고 사악한 흐름을 싫어한다고 해도 그것은 진심이 아니다. 마치 다음의 경우처럼 말이다. 어떤 사람이 “고기를 많이 먹는 건 좋지 않습니다. 고기는 너무 많이 먹으면 건강에 안 좋으니 조금만 먹고 밥이나 밀가루 음식, 채소를 많이 먹어야 해요.”라고 했다. 그러자 일부 사람들이 이 의견을 수용해서 고기를 적게 먹었는데,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거나 괴롭다거나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 ‘이렇게 하는 게 옳아. 한동안 경험해 보니까 건강에 좋은 것 같아. 전체적으로 정신 상태도 좋아졌고 몸도 예전보다 건강해졌어. 정말 좋은 것 같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의견을 받아들이는 게 내키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애초에 이렇게 생각했다. ‘고기를 많이 먹는 게 왜 건강에 안 좋지? 채소를 많이 먹는 것도 딱히 건강할 것 같진 않은데 말이야. 어쨌든 고기는 맛도 좋고 고소하잖아! 고기가 없으면 채소를 먹는 것도 괜찮아. 배고픈 것보다야 낫지. 하지만 고기가 있다면 많이 먹어야 해. 참 어리석은 사람들이야. 다들 가식을 떨지만, 난 그러지 않겠어. 당신들은 나만큼 솔직하지 않아. 난 있는 그대로 말해. 고기는 맛있다고 말이야!’ 그는 식사할 때마다 채소는 몇 입 안 먹으면서 고기는 엄청나게 많이 먹는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그가 속으로 긍정적인 말을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는 받아들이지 않고 이행하지도 않으며 속으로 ‘이게 어떻게 긍정적인 말이야? 어째서 난 그것이 긍정적이라는 생각이 안 들지? 그게 뭐가 좋아? 내가 고기를 많이 먹는 게 어디가 잘못됐다는 거지? 내가 죽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당신들이 나보다 잘 살고 있지도 않잖아!’라며 잔뜩 반감을 품는다. 그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고기를 너무 많이 먹으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도 인정하지 않는다. 올바른 말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그가 어떻게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더더욱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런 사람은 긍정적인 사물을 받아들이는 것을 내켜 하지 않고 괴로워하며 이행하기 힘겨워한다. 이는 그의 인성에 문제가 있으며, 그가 속으로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사람들은 긍정적인 사물에 속하는 바른말을 들으면 쉬이 받아들이면서,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실행의 길도 없어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당신께서 이렇게 일깨워 주셔서 다행입니다. 듣자마자 이 말이 정확하고 관점이 순수하고 올바르며, 객관적이고 실제적인 데다가 인성에 부합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한다. 그는 이 말을 듣고 나서 곧장 실행할 수 있다. 간혹 방탕하고 제멋대로 굴기도 하겠지만, 속히 바른길로 돌아올 것이다. 그가 긍정적인 일을 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지켜보거나 통제할 필요는 없다. 그는 내키지 않아 하지 않고, 괴로워하지 않는다. 마치 양이 풀을 좋아하는 것처럼 말이다. 양에게 고기를 주면 먹지 않지만, 풀을 주면 무척 맛있게 먹는다. 양은 초식 동물이니, 양에게 필요한 것은 풀이다. 그런데 이리는 다르다. 이리는 오로지 고기만 찾아 먹지, 풀은 먹지 않는다. 이리에게 고기보다 맛있는 건 없다. 이것은 본성의 자연스러운 표출로 아무도 바꿀 수 없다. 후천적으로 추가된 것도 아니고,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니다. 양은 선천적으로 풀을 먹고, 이리는 선천적으로 고기를 먹는다. 누가 가르친다고 해서 양이 육식 동물이 되고, 이리가 초식 동물이 될 수는 없다. 이것은 본질의 발현이다. 네게 필요한 것, 네가 사랑하는 것은 네 인성에 의해 결정된다. 네 인성이 긍정적인 사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너는 긍정적인 사물을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네가 부정적인 사물을 좋아한다는 것은 네 내면이 부정적인 사물을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이는 네 본성 본질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다른 사람이 주입할 필요가 없다. 어떤 사람이 너를 돌이키려 네게 진리 원칙을 교제해 주면 아마 너는 체면상, 혹은 미안해서 일시적으로 받아들이고 말로는 동의한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뒤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실행하는지는 온전히 네 본성에 의해 결정된다. 너는 거짓으로 꾸밀 수 없고, 네 부모조차 너를 바꿀 수 없을 것이다. 네 인성에 긍정적인 사물을 사랑하는 요소와 부정적인 사물을 증오하는 요소가 있는지 없는지는 어느 누구도 결정할 수 없고, 오로지 너 자신의 본질에 의해 결정된다. 이제 이 점이 분명해지지 않았느냐? (분명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비에 밝은 모습은 한 사람의 인성을 아주 잘 나타내 준다. 만약 네게서 시비에 밝은 모습이 자연스럽게 표출된다면, 너는 선천적으로 긍정적인 사물들에 대해 특히 흥미를 느낄 것이다. 그리고 누가 옳은 말을 하면, 그 말을 무척 듣고 싶어 하며 그가 많은 이야기를 해 주기를 바라 마지않을 것이다. 많이 듣고 많이 얻어서 시행착오를 거의 하지 않거나 아예 하지 않을 수 있도록 말이다. 반면 사악하거나 부정적인 사물과 마주하면, 너는 반감을 품고 엮이지 않으려 피할 것이며 들으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너 자신도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게 부정적인 사물은 좋아지지 않지만, 누가 옳은 말을 하면 무척 듣고 싶어 한다. 자기를 조롱하는 사람이 있어도 개의치 않고 말이다. 이런 힘이 어디서 생겨났는지는 너 자신도 알지 못한다. 어떤 사람들은 너의 그런 성실함을 보고 너를 바보라고 생각하며 멸시하고 비웃지만, 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옳은 말이라면 받아들이면 되는데, 그게 뭐가 어렵지?’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인성의 자연스러운 표출이다. 인성 속에 긍정적인 사물을 사랑하고 부정적인 사물을 싫어하는 타고난 느낌이 생기는 것은 정상 인성의 한 가지 특징이자 모습이다. 이런 느낌과 이런 인성을 갖춰야만 비로소 올곧고 선량한 사람이 될 수 있고, 올바른 입장과 지위에서 해야 할 말을 하고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다. 시비에 밝은 인성을 지니면, 진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진리 원칙에 관한 여러 분명한 가르침을 받아들이기 위한 기본 조건을 갖춘 것이다. 만약 시비에 밝은 인성을 지니지 못했다면, 인성 속의 양심과 이성은 텅 비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진리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모든 긍정적인 인도와 올바른 길을 받아들이기 위한 기본 조건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진리를 받아들이고 긍정적인 사물을 받아들이기 위한 기본 조건조차 갖추지 못했으면서 순종을 논하는 것은 황당하고 허황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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