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5) 제 4 부

3. 세 번째 특징, 악하다

마귀에서 환생한 부류의 삿된 모습에 관해서는 다 교제했으니, 이제 마귀의 또 다른 측면의 모습, ‘악함’에 관해 교제하겠다. 악함이라는 측면의 모습은 삿됨과 비슷한 데가 있지만 차이점도 있다. 삿된 측면의 모습은 정상 인성의 사고, 양심, 이성 및 정상 인성의 본능에 부합하지 않는다. 또한, 하나님이 피조된 인류에게 정해 놓은 정상 인성 각 측면의 선천적인 조건에 부합하지 않고, 그것을 뛰어넘는다. 전체적으로 비정상적이고 초자연적이며 극단적이고 기이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즉, 정상 인성의 이성과 양심을 가진 사람이 이런 부류를 보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모습과 행위는 몹시 이상하고, 그의 사상 관점도 이상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가 왜 그런 생각을 하고, 왜 그렇게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나 이젠 교제를 통해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근본적인 이유는 어디에 있느냐? 그의 본성 본질과 속성이 마귀라는 데 있다. 삿된 측면은 대체로 이런 모습들이다. 반면, 마귀의 악함은 단순히 사람이 자주 보이는 일부 겉모습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대하는 이런 부류의 태도와 직결된다. 이는 삿됨보다 더 악랄하고 심각하다. 그러니 악한 측면의 모습은 진리를 대하는 모습을 근거로 규정해야 마땅하다. 먼저, 마귀 부류는 진리를 적대시한다. 이것이 첫 번째 측면의 악한 모습이다. 두 번째 측면의 악한 모습은 진리를 적대시하는 태도를 보일 뿐만 아니라 능동적으로 진리를 공격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 측면의 악한 모습은 진리를 적대시하고 공격하는 것 외에 한 걸음 더 나아가 진리를 대체하려 한다. 그들의 악한 모습은 절대 진리를 적대시하고 공격하는 수준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들은 이 두 가지 모습을 바탕으로 진리를 대체하려 하기까지 한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본질이다. 마귀의 악한 모습 중 많은 부분이 우리가 예전에 교제했던 적그리스도의 본질을 지닌 부류와 똑같다. 이 측면에 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될 것이다. 오늘은 주로 마귀의 악한 모습 중 진리를 적대시하고 공격하며 대체하는 세 가지에 관해 해부하겠다.

1) 진리를 적대시하다

먼저 마귀 부류가 진리를 적대시하는 모습부터 교제해 보자. 진리를 적대시하는 측면의 주제는 처음 접하는 게 아니라, 예전에 꽤 많이 교제한 바 있다. 진리를 적대시하는 모습은 마귀 부류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다시 말해, 그는 어떤 긍정적인 사물도, 올바르고 인성의 양심과 이성에 부합하는 모든 사물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특히 진리 원칙과 관련된 일은 더더욱 그렇다.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은 그냥 고개를 저으며 거부하고 마는 정도가 아니라, 반감과 혐오를 품고 진심으로 증오한다는 말이다. 어느 정도로 증오하겠느냐? 진리를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교제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눈에 거슬린다고 생각한다. 단지 가볍게 질투하는 게 아니라, 적대시하는 것이다. ‘적대시’란 무엇이냐? 아버지를 죽인 원수처럼 대한다는 말이다. 사실 너는 그와 깊이 왕래했다고 할 수 없고, 그 역시 널 잘 알고 있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도 네가 진리를 깨닫고 진리에 관해 교제하면 반감을 품는다. 그는 글귀 도리를 늘어놓는 사람에게는 반감을 품지 않으면서 자기에게 진리를 교제해 주는 사람에게는 죽도록 반감을 품는다. 마치 목숨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정도로 증오한다. 그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보이겠느냐? 진리 원칙이나 하나님의 뜻에 관해 교제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싫어하며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한다. 핑계를 대고 자리를 뜨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 거리낌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가 버리는 사람도 있다. 정상 인성의 양심과 이성을 지닌 사람이라면, 옳은 말, 특히 진리에 부합하는 말을 들었을 때 갈급해하지 않고 동의하지 않더라도 기껏해야 속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게 고작이며, 체면 때문에라도 자리는 지킬 것이다. 그런데 사탄 부류는 그러지 못한다. 그는 진리를 듣는 순간 반감이 들고 마음이 어수선해진다. 도저히 참지 못할 정도로 마음속이 어지러워지면, 자리를 떠난다. 자리를 뜰 수 없을 땐 인터넷 영상을 보거나, 집중하지 못하고 딴짓을 한다. 혹은 화제를 돌려 잡담을 하거나 자신의 눈부신 과거를 높이고 증거하면서 다른 사람을 폄하하고 훈계한다. 요컨대 네가 진리를 교제하면 반감을 품는 것이다. 그는 극도로 적대시하는 태도로 진리를 대한다. 네가 진리에 관해 교제하지 않고 행정 사역이나 사무 사역, 복음을 전하면서 생긴 에피소드나 외부의 일 정도만 말한다면, 그는 자리를 지키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할 테니 화기애애하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진리에 관해 교제하는 순간, 특히 하나님 말씀을 읽을 때면 그 본질과 실상이 드러난다. 마음이 어수선해져서 더 들었다가는 머리가 터져 버릴 듯한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는 자기를 심판하는 것처럼 느끼고, 자기가 정죄되고 도태되어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 것처럼 느낀다. 또 네가 하나님 말씀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는 무슨 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속으로 반감을 품고 혐오한다. 이 문제가 심각하지 않으냐? 이런 부류에게 구원이 있겠느냐? 특히 진리를 실행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과 관련될 때,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정직한 사람이 되려고 진실한 말을 하고 솔직하게 털어놓는 훈련을 하겠지만, 그는 그런 말을 들으면 마음에 반감이 들어 경멸하고 증오한다. 그는 네가 진리를 실행하는 것은 비천하고, 자기가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 것은 존귀하니, 너보다 자기가 고상하고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어떤 관점이냐? 시비를 전도시키는 것 아니겠느냐? 진리를 적대시하는 사람은 이렇다. 네가 진리나 어떤 측면의 실행 원칙에 관해 교제하면, 그는 속으로 너를 경멸할 뿐 아니라 싫어할 것이다. 네가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교회 사역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도 그는 늘 피하기만 하며, 너와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너희 둘은 공통의 화제가 없다. 어떤 주제든 얘기해도 되지만, 오직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사역에 관한 일과 진리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 그가 이런 주제로는 이야기하기 싫어하니 말이다. 예를 들어, 네가 그에게 “충성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는 방법에 관해 교제해 봅시다. 현재 본분을 이행할 때 어떤 문제가 존재하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이야기해 보죠.”라고 하면, 그는 머리가 터질 것 같아 하며, 마음에 극도의 반감을 품는다. 심지어는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빛을 하고 너와 대적한다. 그는 사탄에게 충성할 때는 어떤 고생도 감수하지만, 하나님과 진리에 대해서는 반감이 대단해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누가 진리를 교제해 줘도 듣지 않는다. 또 그는 지식을 습득하고 명저에 관해 공부하라고 하면 아주 달가워하며, 자기가 굉장히 고상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설교를 듣거나 진리에 관한 다른 사람의 교제를 들을 때는 학대나 심판이라도 받는 사람 같다. 그는 하나님 말씀을 읽는 것, 진리를 교제하는 것을 무엇보다 싫어한다. 그러니 이런 부류는 일상에서 사무적인 사역을 조금 하거나 자신의 지위와 명예, 복받는 것에 득이 되는 일이나 조금 할 뿐, 하나님 말씀을 읽거나 묵상하는 법이 없다. 예배 때는 진리를 교제하지도 않고, 결코 개인의 체험적 인식을 나누지도 않는다. 예배는 형식적으로 드릴 뿐이다. 그에게 하나님 말씀이나 진리에 대한 인식에 관해 교제해 보라고 하면, 한마디도 못 하면서 속으로는 반감을 품고 이렇게 생각한다. ‘하나님 말씀, 진리에 대한 교제는 주부들, 사회 하층민들이나 하는 거야. 나 같은 인물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어? 나는 큰일, 큰 사역을 하는 사람이고, 큰 복을 받을 사람이야.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면 대들보나 기둥이 될 거야. 나는 중추적인 인물이라고. 당신들이 뭔데? 교회에서 당신들이랑 함께 예배드리는 것도 나한테는 격이 떨어지는 일이라고!’ 이 얼마나 거만한 작자냐! 그가 진리를 적대시하는 것은 진리와 관련된 모든 사람과 일을 적대시하는 것이고, 진리와 관련된 모든 언행을 적대시하는 것이다. 심지어 그는 긍정적인 사물마저 적대시한다.

2) 진리를 공격하다

누가 교회의 형제자매는 성도의 품위를 지켜야 한다고, 사역에서든 삶에서든 이성과 어울릴 때는 선을 지키고, 바르고 단정해야 하며, 함부로 꼬셔서는 안 되고, 이성 관계와 혼인을 존중해야 한다고, 이런 측면에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해야 하며, 하나님 집은 성 해방을 권장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할 때, 마귀에서 환생한 부류는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다 구닥다리 같은 생각이고 진부한 이야기지.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성도의 품위니 남녀유별이니 하는 소리를 하고 앉아 있어! 옛날 황궁에서는 황제가 황후 셋과 후궁 여섯을 거느렸다고. 얼마나 멋있어! 능력과 여건만 된다면 셋, 여섯이 뭐야, 나는 훨씬 더 많이 거느리겠어!’ 그는 모든 긍정적인 사물과 올바른 말, 특히 진리의 말씀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을뿐더러 상당히 반감을 품고 증오한다. 그래서 이들은 진리를 적대시하는 것은 기본이고 진리와 긍정적인 사물을 끊임없이 공격한다. 어떤 측면의 진리, 구체적인 하나님의 요구를 교제하든 그는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논리로 비판하고 판단한다. 이 비판과 판단은 공격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진리와 긍정적인 사물을 받아들이든 그는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 집에서 권장하고 진리가 사람에게 실행하도록 요구하는 것들은 모두 구호이고 형식이라고, 정말 사람의 필요에 부합하는 것은 세상의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흐름이 오늘날 제창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진리라는 것이다. 이는 사악함을 숭상하는 것 아니겠느냐? 따라서 그는 네가 어떤 측면의 진리를 교제하든 주관적으로 진리를 적대시할 것이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판단하고 공격하며 모독할 것이다. 예컨대 하나님이 사람에게 정직한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면, 그는 정직한 사람을 어떻게 정의하겠느냐? ‘정직한 사람이 되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야. 정직한 사람이 되어서 자기 속얘기와 사생활을 남한테 알려 주는 사람은 바보밖에 없다고. 바보들이나 사실대로 말하고 자기 운명을 남의 손에 맡기는 법이지. 난 바보가 아냐. 내 운명은 내가 결정해. 남들이 간섭할 권리는 없어! 내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든, 그걸 말하든 말든 다른 사람이 간섭할 권리는 없지. 내가 알리고 싶지 않은 건 궁금해하지 말라고!’ 이는 진리를 싫어하고 증오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마귀 부류는 진리를 받아들이지도, 실행하지도 않는다. 그는 진리를 적대시하고 공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온갖 사탄 독소와 사탄에게서 비롯된 관점, 행동 방식으로 진리를 대체하려 한다. 예를 들어, 계략이나 거짓말, 온갖 술수, 혹은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는 허상으로 다른 사람을 미혹하고, 그것들을 복받기 위해 하나님과의 거래 조건으로 삼는다. 그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정직한 사람이 되거나 본분에 충성할 필요도, 진리를 받아들이거나 실행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많이 고생하고 많은 대가를 치르며 사역을 많이 하면, 그리고 좋은 행위로 덕을 많이 쌓고, 남들이 동조하고 우러러보는 일을 많이 해서 형제자매에게 신뢰받고 높임 받고 옹호받으면, 그 대가로 천국의 복을 받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너무 황당하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진리를 판단하고 정죄하고 적대시하고 공격하든, 아니면 늘 사탄의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논리로 진리를 대체할 생각을 하든 이런 것들은 다 진리를 대하는 마귀의 구체적인 모습으로, 어떤 모습이든 마귀의 악한 본질을 여실히 보여 준다. 진리를 적대시하고 공격하며 대체하는 것은 오직 마귀들만 할 수 있는 짓이다. 오직 마귀만이 진리와 하나님을 대할 때 이렇게 증오하고 판단하며 정죄하고, 오직 마귀만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미혹하고 기만하고 유혹하여 그들이 진리와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오직 마귀만이 어떻게든 사람의 신뢰와 옹호, 칭찬을 기만으로 얻어내 그들의 마음을 매수하고 통제하는 목적을 달성하고, 사람들 마음속 하나님의 지위를 대체하려 한다. 결론적으로, 진리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대하는 마귀의 이런 태도에서 그 본질이 악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긍정적인 사물과 진리는 모든 피조된 인류가 동경하고 사랑하는 것이며, 사람이 아끼고 사랑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물론, 피조된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인류가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바른길을 가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게 되려면, 반드시 진리를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정상 사람이 구원에 이르려면, 진리를 추구하고 받아들이며 실행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다른 길은 없다. 설사 사람에게 패괴 성품이 있어서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행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하더라도 사람의 내면 깊은 곳, 주관적 바람을 보면, 진리를 적대시하지는 않는다. 주관적 태도에 있어 사람은 진리를 적대시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진리를 공격하거나 어떻게든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논리로 진리를 대체하려 하지도 않는다. 오직 사탄만 그럴 수 있다. 진리를 적대시하는 그의 본질은 큰 붉은 용과 다를 바가 없다. 긍정적인 사물이나 진리와 관련된 것이기만 하면, 사탄은 죄다 부인하고 정죄하며 내친다. 설령 그 진리가 사탄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더라도 사탄은 적대시하고 증오한다. 본성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마귀에게는 악한 본성이 있기 때문에 진리는 그에게 있어 원수이다. 원수란 무슨 의미냐? 영원히 화합할 수 없고, 영원히 친구가 될 수 없으며, 영원히 동지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큰 붉은 용처럼 말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몹시 증오하고 적대시한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욕하기만 하면, 사회에서 어떤 악행을 저질러도 괜찮다. 도둑질을 하든 강도질을 하든, 혹은 음란한 짓을 하든 그들은 다 상관하지 않는다. 네가 그것과 한패가 되어 어떤 나쁜 짓을 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으며 바른길을 가는 것만큼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는 너를 체포하고 박해하며 심지어 죽이기까지 한다. 네가 존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너의 존재가 그에게는 눈엣가시 같고, 네가 하루라도 존재하면 괴롭고 불안한 마음이 든다. 너를 멸해서 존재하지 않게 해야 그의 마음에 승리감, 안도감, 평안함이 깃드는 것이다. 마귀 부류인 그들이 진리를 대하는 태도는 큰 붉은 용이 진리를 증오하는 성질과 같다. 네가 진리를 추구하고 실행하며 모든 일을 원칙대로 한다면, 입장을 가지고 원칙을 고집한다면, 그는 네가 눈에 거슬릴 것이고 너를 증오할 것이다. 만약 그가 리더가 되어 권력을 쥐게 된다면, 어떻게 해서든 트집을 잡아 너를 괴롭히는 것은 물론이고, 네게 죄를 뒤집어씌워 정리해 내보낼 것이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모두 그에게 배척당해 쫓겨나고 흐리멍덩한 얼간이나 진리를 전혀 깨닫지 못한 사람만 교회에 남으면, 그는 아무런 위협도 없어 안전하니 이제 좀 살 만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 마귀 부류는 진리뿐만 아니라 진리를 사랑하고 추구하는 사람까지 적대시한다. 그 본성이 악하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귀에게 정죄되고 배척당하며 괴롭힘을 당하면 “그에게 미움을 산 것도 아닌데, 왜 저를 눈에 거슬린다고 생각할까요?”라고 한다. 이는 어리석은 말 아니냐?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사람을 분별할 줄 모르는 것 아니냐? 그럼 큰 붉은 용이 그리스도인을 체포하고 박해하는 것이 그들이 법을 어기고 죄를 저질렀기 때문이겠느냐? 아니면 그리스도인들이 정치 활동에 참여해서 큰 붉은 용을 전복시켜 정권을 빼앗으려 했기 때문이겠느냐? (모두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우리는 정치에 참여하지 않았고, 그들에게 반대하거나 그들을 폭로하지도 않았으며, 더욱이 그들의 정권을 탈취하려고 정치 활동을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그들은 왜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탄압하고 체포하겠느냐? 그들은 네가 하나님을 따르고 진리를 받아들이며 하나님을 크게 높이고 경배하기 때문에 증오하는 것이다. 그들은 네가 자기를 저버렸다고 생각한다. 또 네가 그들을 따르지 않고 경배하지 않으며 그들에게 순종하지 않아서 너를 증오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너를 탄압하고 소멸시켜 너를 없애는 목적을 달성하려고 한다. 그들은 악마이고, 진리를 적대시하는 본성 본질을 지니고 있기에 네가 하나님을 따르면 너를 적대시하고 증오할 것이다. 그리하여 어떻게 해서든 너를 괴롭히고, 너를 없애고 하나님 곁에서 빼앗아 가려 한다. 이것이 그들의 목적이다. 네가 만약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들은 너를 그다지 적대시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너를 짓밟고 패괴시키며 농락하고 통제하는 것은 여전할 것이다. 만약 네가 그들을 경배하고 따른다면, 그들은 기뻐하며, 너를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너 역시 그들과 함께 매장될 수밖에 없다. 사탄을 경배하는 사람치고 말로가 좋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의 본성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사탄에 속한 적그리스도 부류가 진리와 하나님을 왜 그리 적대시하겠느냐? 그들의 본성 본질이 얼마나 악하겠느냐! 그들은 진리와 하나님의 사역, 그 어떤 긍정적인 사물이나 올바른 주장, 행동 방식도 일절 받아들이지 않는다. 마음속으로 반감을 품고 받아들이지 않을뿐더러 능동적으로 악행을 저질러 하나님을 대적하는 한편, 온갖 유언비어와 황당한 논리를 퍼뜨려 진리와 긍정적인 사물을 정죄한다. 이 같은 악인도 하나님을 믿고 복을 받으려고 하나님 집에 섞여 들어오지만,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기에 드러나 도태된다. 예를 들어, 책망 훈계를 받는 것은 긍정적인 사물이다. 잘못을 저질러 책망 훈계를 받으면 정상인은 스스로 반성할 줄 안다. 나쁜 속셈이나 패괴 성품 때문에 저지른 잘못이라면 진리를 구해 해결할 수 있고, 자질이 부족해서 일을 꿰뚫어 보지 못했더라도 해결의 길을 능동적으로 찾을 수 있다. 자질이 좋고 진리를 깨달은 사람을 찾아 도움을 구하고 지도를 받는 것이다. 요컨대, 그는 양심과 이성의 인도와 규범을 통해 책망 훈계를 올바로 대할 수 있다. 그런데 마귀에 속한 부류는 책망 훈계를 어떻게 대하더냐? 마귀 자체는 진리를 적대시한다. 하지만 그의 사악한 본성 때문에 절대 적대시하는 수준에만 머무르지 않고, 진리를 정죄하고 대적하며 모독할 것이다. 따라서 책망 훈계를 받으면, 그는 온 힘을 다해 반박하며 변명하고 진리를 부인할 뿐 아니라 자기를 책망 훈계한 사람을 공격하고 정죄한다. 그러고는 “하나님을 믿는 건 너무 어려워요. 우리처럼 자질이 부족하고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앞으로 다 쫓겨나겠죠. 하나님 집에서 한자리 차지하고 밥벌이를 하는 게 참 쉽지 않네요! 자질이 부족한 사람은 살길이 없고, 남들에게 괴롭힘당할 수밖에요. 사람들이 우리를 아무리 함부로 대해도 참아야겠죠. 자질이 부족하니 어쩔 수 없잖아요? 자질이 부족하니 남보다 못한 거고요!”라는 말을 퍼뜨린다. 그는 책망 훈계를 받아들이거나 스스로를 반성하고 인식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실행 원칙과 실행의 길을 구하여 문제를 해결하지도 않는다. 그가 정말 자질이 부족하다면, 어떻게 해야 자신의 기존 조건을 바탕으로 최대한 본분을 잘 이행하고 충성을 바칠 수 있는지 이런 생각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런데 그가 이런 생각을 하겠느냐? 그는 진리를 적대시하기 때문에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는커녕 판단하고 헐뜯는 일에 더욱 몰두하는 것도 모자라 자기를 책망하고 훈계한 사람을 속으로 몰래 저주할 것이다. ‘흥, 오늘 내 심기를 건드렸겠다? 언젠가 뜨거운 맛을 보여 주지! 내 자질이 부족하다고? 내가 하나님을 믿은 지가 몇 년인데. 이제 갓 하나님을 믿은 주제에! 나를 마땅찮게 보다니, 언젠간 뼈도 못 추리게 해 주겠어! 각오하라고!’ 보아라, 책망 훈계를 받을 땐 미소를 머금고 잠자코 있지만, 마음속은 원망과 증오, 저주로 가득하다. 어떤 사람은 책망 훈계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수시로 원망의 말, 공격하고 판단하는 말을 한마디씩 내뱉는다. 책망 훈계를 적대시할 뿐 아니라, 자기를 책망 훈계하는 사람을 능동적으로 공격하기까지 한다. 자기를 책망 훈계한 사람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 몸집이 왜소해서 유약해 보이는 여자가 있었는데, 막상 어떤 사람이 자기를 책망하자 노발대발하며 말했다. “이 몸이 이렇게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으면서 고난을 겪는 게 어디 쉬운 줄 압니까? 제가 마땅치 않나 본데, 왕년에 내가 복음을 전할 땐 당신은 태어나지도 않았어요! 내가 늙었다고 괴롭히려는 모양이죠? 잘 들어요! 어림도 없어요! 가서 물어보라고요. 이 몸이 평생 누구한테 져 본 적이 있는지.” 이런 성품을 가진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절대 그럴 리 없다. 그는 책망 훈계를 받아들이기는커녕 자기를 책망 훈계한 사람을 저주한다. 너무 악독하지 않으냐? 마귀 사탄 부류는 괴상하고 교활하며 간사하고 간교하다. 그들은 진리를 적대시하고 공격하는 태도를 갖고 있기에 자신의 악행이 탄로나 제명되고 출교당할 위기에 처하고, 복받을 가망이 없어지면, 절대 얌전하고 고분고분하게 굴지 않고 술수를 써서 반항한다. 어떤 사람은 리더 일꾼이 괴롭힌다는 거짓말을 지어내 자기를 위해 나서도록 사람들을 선동하면서 의도적으로 교회 사역을 교란한다. 또 순종하는 척하면서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하나님 집에서 저를 어떻게 대하든 설령 저를 B조로 쫓아내거나 제명할지라도 저는 한결같이 본분을 이행하겠어요. 저는 하나님께 충성합니다. 언제까지나 이 도(道)를 부인하지 않고 본분을 포기하지 않겠어요.” 그는 거짓된 낯짝으로 사람들을 기만하여 자신이 마치 회개한 것처럼, 하나님 집에서 자기를 어떻게 대하든 받아들이고 순종하며 본분을 포기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게 한다. 하지만 사실 그는 너를 속이고 농락하는 것이다. 그는 ‘흥! 나를 이용해 봉사하게 할 생각이라니, 어림없지! 내가 본분을 이행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인 건 다 형식적인 거야. 당신들을 가지고 논 거라고!’라고 생각한다. 그는 겉으로 아주 고분고분하게 말을 잘 듣는 모습을 보여서 사람들이 자기가 본분을 이행하길 원한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다 네가 정말 그에게 이행할 본분을 안배하면, 건성으로 임하면서 거짓으로 가장하여 너를 속인다. 심지어는 너와 연락을 끊고 잠적해 버려서 그에게 맡긴 일이 열흘이 넘도록 아무런 진전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일부 어리석은 사람들은 분별하지 못한 채 의아해한다. “그때는 승낙하면서 본분을 이행하고 싶다며 간절한 모습을 보였는데, 거짓말 같진 않았어. 그런데 왜 지금은 그림자도 안 보일까?” 내가 진실을 알려 주겠다. 그는 사기꾼 중의 사기꾼이며 마귀다. 마귀 부류는 본분 이행을 무엇으로 여기느냐? 하나님 집에서 자기를 이용해 봉사하게 한다고, 자기를 가지고 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본분 이행을 대하는 마귀 부류의 마음가짐이다. 네게서 이용할 게 뭐가 있느냐? 고작해야 특정 분야의 업무나 조금 알 뿐이다. 하나님 집에 그 분야의 사역이 필요하다 한들 기껏해야 그 본분을 이행하기에 적합한 정도이다. 본분 이행을 통해 너를 판단하고 네게 요구하는 것은 너를 높여 주는 것인데,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는 은혜도 모르는 것이다. 마귀에 속한 사람은 이토록 막무가내다. 본분 이행을 원하기에 교회에서 사역을 안배해 주었더니, 그는 그것을 보고 하나님 집에서 자기를 이용하려 한다고 생각한다. 네가 정말 교회에 이용 가치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는 네게 행운이겠느냐, 불행이겠느냐? (행운입니다.) 화겠느냐, 복이겠느냐? (복입니다.) 왜 복이라 하느냐?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높여 주심이므로 복이라고 합니다.) 이 측면을 인식해야 한다.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높여 줌이다. ‘높여 줌’이란 무엇이냐? 네가 가지고 있는 업무상의 특기가 하나님 집 사역에 유용하게 쓰이는 것으로, 이는 하나님이 네게 준 기회이다. 하나님은 네게 하나님을 위해 봉사할 기회를 주었고, 구원받을 기회를 주었다. 이는 네가 복을 받을 수 있는 기본 조건이다. 너는 이 기본 조건을 갖추어야 차츰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행하여 구원에 이를 기회가 있다. 만약 쓸 만한 점이 하나도 없다면, 너는 하나님 집에서 폐물일 텐데 하나님 집에서 너를 거저 먹여 살리겠느냐? 하나님 집에서 네가 이행할 수 있는 본분이 없다면, 너에게는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할 정당하고 합리적인 매개와 기본 조건이 없는 것이다. 만약 네가 하나님 집에서 어떤 구체적인 사역에서도 유용하게 쓰이지 못한다면, 이는 너와 하나님 사이에 아무런 관계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과 같다. 그러면 너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기회가 없을 것이고,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행하는 그 어떤 단계나 시기상의 사역을 받아들일 기회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네게 구원받을 기회나 조건이 남아 있겠느냐? 만약 네게 이용 가치가 있다고 한다면, 이 말이 이방 세계의 사람들에게는 불편하게 들릴 것이다. 어쩌면 ‘이용’이라는 말이 그들에게는 부정적인 단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 집에서 너를 누가 이용하는지 생각해 보아라. 이 ‘이용’을 어떻게 해석해야겠느냐? 만약 하나님이 너를 이용한다면, 이는 네가 하나님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가치가 좀 있는 사람이라는 증거다. 네가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는 것은 하나님이 너를 높여 주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기회를 준 것이고, 하나님이 사람을 높여 준 것이니 좋은 일이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이 너를 좋게 보고 네게 기회를 주고자 한다는 증거다. 그러니 네가 하나님에게 이용되는 게 망신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밑지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것이 손해겠느냐? 네가 인격을 상실하고 존엄을 잃게 했느냐? 그렇지 않다. 너는 얻은 게 더 많다. 그것으로 인해 너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진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에게 구원받을 기회가 생겼다. 전혀 손해가 아니며, 오히려 큰 득을 본 것이다. 하지만 마귀에서 환생한 부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악한 본성을 지닌 그는 사탄이 아무리 자기를 이용하고 패괴시켜도 불만이 없고 흡족해한다. 만약 정부 관료가 자기를 이용한다면, 행운이고 일이 잘 풀린다는 생각에 분별하거나 반항하지 않으며 대항하거나 거부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교회에서 본분을 이행할 사람으로 자기가 발탁되면, 그는 그것이 봉사이자 죽을힘을 다해 힘쓰는 거라고, 교회에서 자기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특정 분야의 업무 기술을 조금 알고 있어서 교회가 그녀를 해당 분야의 사역에 안배하면, 그녀는 그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기는커녕 엄청나게 반감을 품는다. ‘나를 이용하시겠다? 어림도 없지. 내가 그렇게 멍청한 줄 알고? 이 몸은 이 나이 먹도록 누구한테 이용당해 본 적이 없어. 나를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그렇게 격분할 것 없다. 본분을 이행하고 싶다면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여서 제대로 이행하고, 본분을 이행하기 싫다면 하나님 집을 떠나라. 하나님 집의 문은 활짝 열려 있다. 언제든 괜찮으니 가고 싶은 데로 가라. 하나님은 사람에게 진리를 값없이 베풀어 주었다. 아무 조건 없이 사람에게 진리를 베풀고 생명을 공급해 주었다. 하나님이 네게 한 푼이라도 바라더냐?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본분을 조금 이행하면서 하나님에게 이용당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양심이 없고 은혜도 모르는 것 아니겠느냐? 설령 하나님이 너를 이용한다고 한들 그게 어떻단 말이냐? 문제라도 되느냐? 네 목숨까지 하나님이 준 것인데 널 이용해서 안 될 게 있느냐? 그럴 자격도 없느냐? 업무 좀 안다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굽실대며 공손하게 네게 약속을 주어야 하느냐? 너를 보좌에 받들어 모셔야겠느냐? 그래야 네 기분이 좋겠느냐? 정상 인성이 없는 사람은 본분 이행을 대할 때 올바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늘 이런 말만 늘어놓는다. “하나님 집에서 절 이용하고 있는데, 전 그렇게 멍청하지 않아요. 바보들이나 하나님께 기꺼이 이용당하죠!” 보아라, 정말 삿되고 악한 생각 아니냐? 사리 분별이 되지 않는구나! 이런 사람은 어떻게 대해야겠느냐? 간단하다. 제명하든 B조로 보내든 정리해서 내보내면 그만이다. 이용당할 게 그렇게 걱정되면, 왜 아직까지 하나님 집에 붙어 있으면서 본분을 이행하고 싶다고 하느냐? 그것은 외식하며 다른 사람을 기만하는 것 아니냐? 이용당할까 봐 걱정한다면, 하나님 집은 영원히 네게 본분을 맡기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 집은 하기 싫은 일을 강요하지 않는다. 지금은 모두가 각기 부류대로 나뉘는 때이다. 본분을 이행하고 싶은 사람은 남고, 이행하기 싫은 사람은 당장 교회를 떠나 영원히 돌아오지 마라. 하나님 집은 아무한테도 강요하지 않는다. 기꺼이 본분을 이행하고자 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선민이며, 본분 이행을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은 교회 사역을 교란하러 온 사탄의 심부름꾼이다. 본분을 이행해서 복을 받고자 하면서도 이용당할까 봐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양심과 이성이 있는 사람들이겠느냐? (아닙니다.) 그는 손해 볼까 봐 늘 걱정한다. 늘 하나님 집이 자기를 이용해 잇속을 차려서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좋고 나쁨도 구분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 네가 무슨 손해를 보았다고 그러느냐? 만약 네 기술적 업무로 진리와 구원을 얻으려 한다면, 내가 알려 주겠는데, 너는 얻지 못한다. 당치도 않다. 너는 자격 미달이다. 하나님 말씀은 생명이자, 인류가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고 사탄 권세에서 벗어날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만이 사탄의 본성 본질을 지닌 옛 인류를 근절시킬 수 있으며, 하나님의 생명과 진리만이 이 인류를 계속 생존하게 하고 사탄의 운명을 끝낼 수 있다. 하나님의 생명과 진리는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이다. 세상 그 어떤 물질적인 것, 사람이 귀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도 바꿀 수 없다. 사람의 목숨으로도 바꿀 수 없는데, 하물며 그깟 기술적 업무로 바꿀 수 있겠느냐? 진리는 사고파는 물건이 아니며 하나님 집은 진리나 생명을 파는 곳이 아니다. 그러면 사람이 어떻게 해야 생명을 얻을 수 있겠느냐? 오직 진리를 받아들이고 진리에 순종하며, 하나님에게 충성과 진심을 바쳐 피조물의 본분을 잘 이행해야 생명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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