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5) 제 3 부
방금 마귀 부류가 지닌 기이한 측면의 가장 심각한 모습에 관해 교제했다. 이 모습들은 사람이 분별하기에 수월한 편이다. 그런데 심각하기로는 여기에 버금가는 모습들이 더 있다. 바로 일상에서 늘 극단적인 사상 관점, 행위와 행동 방식을 보이는 것이다. 그들은 항상 정상 인성의 감당 범위에서 벗어나게 행동한다. 예를 들어, 말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저지르면 스스로가 미워서 뺨을 때리는 것도 모자라 자기 자신에게 벌을 내려 낮에는 끼니를 거르고 밤에는 잠을 자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 극단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육체를 벌하고, 이를 통해 잘못을 바로잡겠다는 결심을 보인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그런다고 문제가 해결되진 않아요. 우선 하나님 말씀에 따라 반성하고 인식한 다음, 실행의 원칙과 길을 찾아야 차츰 변화할 수 있죠. 어떤 측면의 패괴 성품이든 하루이틀 만에 변화될 순 없어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린다고요. 다 과정이란 게 있는 거랍니다.”라고 권면하면, 맞는 말인데도 그는 받아들이지 않고 실행하지도 않는다. 그는 진리 원칙에 따라 각 측면의 문제를 대하지 않고, 극단적인 수단을 취한다. 어느 정도로 극단적이겠느냐? 늘 자신의 육체를 괴롭히고 자신을 학대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이것이 극단적이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극단적인 방식으로 남들을 대하고, 각종 일도 극단적인 방식으로 대한다. 일례로, 본분을 이행하면서 늘 바쁘다고 생각하는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시간을 들여 머리를 자르거나 감는 게 너무 귀찮다는 생각에 아예 삭발해 버렸다. 그리고 머리 깎는 주기를 늘리려고 모발이 정상적으로 자라지 못하게 머리에 화학약품도 발랐다. 극단적이지 않으냐? 남들이 그를 보면 대머리라 남자 같은데, 목소리나 체형은 또 여자 같아서 남자인지 여자인지 도무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다른 형제자매에게 물어보고 나서야 그녀가 여자임을, 머리는 귀찮아서 밀어 버린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어떤 분별력이 없는 자는 이런 사람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감탄한다. “저분 좀 보세요. 보통 사람은 저렇게 육을 저버리겠다는 결심을 하지 못하죠. 진심으로 육체를 증오하는 분이에요. 육을 아끼지 않겠다는 것을 정말 실제 행동에 옮긴 거죠! 언젠간 저도 그녀처럼 삭발하겠어요.” 이런 것을 본받는 사람도 있다! 이는 같은 부류가 아니겠느냐? 동지를 만난 것이다. 이 일을 분별하기는커녕 극찬을 아끼지 않으며 본받으려 하는데, 이는 극단적인 사람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극단적인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 삿된 기질을 보이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그 삿된 기질이 어디에서 비롯되었겠느냐? 정상 인성에 이런 삿된 기질이 있느냐? (없습니다.) 그렇다면 정상 인성에는 왜 이런 삿된 기질이 없겠느냐? 사람은 정상 인성의 사고와 양심, 이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든 비교적 정상적이고 긍정적이며 실제적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절대 그런 극단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든, 싫어하는 일이든, 어떤 일을 하든 극단으로 치닫지 않고, 정상적이고 이성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극단으로 치닫는 부류의 사상에는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들의 이해에는 문제가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사람에게 충성을 다해 본분을 이행할 것을 요구하면, 그는 어떻게 해야 충성을 다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반드시 고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실행한다. 그리하여 매일 식사하는 것까지 규례를 지키는데, 쌀이 몇 톨인지, 채소가 몇 개인지 세 가면서 먹는다. 옷도 해어지면 기워 입다 보니, 남들이 보면 고행자 같다. 또 남들은 매일 여섯 시간에서 여덟 시간을 자는데, 그는 고작 한두 시간만 잔다. 그러면서 자기에게는 고생하겠다는 의지가 있고, 누구보다 충성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는 늘 이렇게 극단적인 생각과 행위를 하는 쪽으로만 생각하는데, 그것을 정상인은 이해하지 못한다. 예컨대 그는 다른 사람과 대화하다가 말실수나 잘못된 어휘 선택으로 남들에게 비웃음을 사면 망신을 당했다고 여기며 ‘다신 이 단어를 쓰나 봐라. 여기서 끝이 아냐. 내 흠을 잡지 못하게 평생 저 사람을 보지 않을 거고, 그와 말을 섞지도 않을 거야!’라고 생각한다. 그는 그렇게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지킬 수도 있다. 그 어떤 극단적인 행동이나 사상 관점도 그는 평생 지킬 수 있다. 그리고 누구의 권면도 받아들이지 않고 그렇게 지킨다. 거기에는 이유와 근거가 있는데, 그는 그것이 진리에 순종하는 모습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이자 충성스러운 모습인 줄 안다. 이런 사람은 골치 아프지 않으냐? (골치 아픕니다.) 이런 사람과 함께 지내는 것이 쉽겠느냐? (함께 지내기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의 행위는 어떻게 생겨난 것이겠느냐? 극단적인 사상에 의한 것 아니겠느냐? 그는 이런 극단적인 행동과 모습을 진리 실행이라고 여겨서 줄곧 이런 행동을 고집한다. 이런 극단적인 사상 관점이 이 부류가 보이는 이런 행위의 근원 아니겠느냐? 그는 그렇게 하는 것이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에게 충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을 속으로 정죄하고 업신여기고 무시한다. 예를 들어, 앞서 이야기한 삭발한 여자는 삭발하지 않은 사람을 보면 이렇게 생각한다. ‘참나, 머리를 그렇게 기르고 온갖 스타일로 꾸미다니, 허영심도 강하셔라.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나 보네! 나 좀 보라고. 이렇게 오랫동안 삭발하고 다니면서도 남들에게 놀림당할 걱정은 전혀 하지 않잖아. 난 허영심이 없거든. 당신들은 머리를 그렇게 기르는 데다가 자주 감기까지 해야 하니 얼마나 시간 낭비야! 그럴 시간에 하나님 말씀을 더 읽고, 본분을 더 이행하면 좀 좋아!’ 그녀는 다른 사람을 정죄하기까지 한다! 이런 부류는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듣고 설교를 여러 해 들어도 무엇이 진리인지 깨닫지 못하고, 극단적인 생각을 수도 없이 한다. 또 많은 극단적 생각에 이끌려 극단적인 행위와 행동 방식, 경향을 수도 없이 보이며, 그런 다음에는 스스로를 누구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충성스러운 사람으로 정의한다. 이는 삿됨의 또 다른 모습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무슨 일이든 극단으로 치닫는 것이 바로 삿됨이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이런 극단적인 모습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닌데, 왜 극단적인 모습을 삿되다 하겠느냐? (이 측면의 모습은 정상인의 사고에 부합하지 않고, 정상인이 갖추어야 할 행위와 행동 방식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극단적인 모습은 정상인의 사고와 모습과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현실과 정상 인성이 갖추어야 할 객관적이고 실제적인 삶과 동떨어져 있다. 그들은 과격한 방식으로 각종 일을 대한 다음, 이런 극단적이고 과격한 사상 관점과 행위를 긍정적인 사물로 정의하면서 진리는 부정적인 사물로 정의한다. 이는 다른 사람의 눈과 귀를 흐리고 시비를 전도시키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의 눈과 귀를 흐리고 시비를 전도시키며 개념을 바꿔치기 하는 것이 바로 삿됨이다. 정상 인성, 양심과 이성, 정상인의 사고, 각종 사물에 대해 정상인이 갖춰야 할 사상 관점에 관해 아무리 교제해 줘 봤자 그는 듣지 않을뿐더러 속으로 아예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리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스스로 황당무계하고 기이하며 정상 인성의 궤도에서 벗어난 행동 방식과 행위, 나아가 사상 관점을 도출해 내고 직접 실행에 옮긴다. 또 이를 기준으로 모든 사람과 일, 사물을 판단하기까지 한다. 자신의 극단적인 사상 관점과 행위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것은 틀린 것이고, 자신의 극단적인 사상 관점과 행위에 부합하는 것은 죄다 옳은 것이고 진리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남들의 눈과 귀를 흐리는 것 아니겠느냐? 시비를 전도시키고 개념을 바꿔치기하는 것 아니겠느냐? 이것이 마귀에서 환생한 부류가 지닌 또 한 측면의 삿된 모습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결코 긍정적인 사물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 대신 긍정적이지 않은 사물이나 부정적인 사물을 취해 긍정적인 사물을 대신하게 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이를 본받고 모방하게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려는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이 역시 한 측면의 극단적인 행위이다.
마귀 부류에게는 또 한 측면의 삿된 모습이 있으니, 바로 진리를 눈곱만큼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비정상적이고 초자연적인 일을 좇기 좋아한다. 늘 완전히 영적인 이론과 주장을 정리하려 하고, 심지어 이런 초자연적인 일의 근거를 연구하고, 그것들을 진리, 일상의 행동 지침, 방향, 목표로 삼아 각종 사람과 일, 사물을 대하고 판단한다. 예를 들어, 어떤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그는 전날 어떤 꿈을 꿨는지, 주변에서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지는 않았는지, 아니면 불길한 징조는 없었는지 떠올려 보고는 거기에서 자신의 운세를 판단할 근거를 찾으려 한다. 항상 이런 것만 추구하는 것이다. 특히 심한 병에 걸린 사람을 만나면 그는 상대가 불길한 사람이니 그런 부류와 접하면 양기가 빨리고 자기에게 불운이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부류를 만나고 나면, 자기 이마가 거뭇해지지는 않았는지, 불길한 기운이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려고 늘 거울을 본다. 그는 평소에도 자신의 운세가 어떤지 고민한다. 틈만 나면 달력에 적힌 운수를 찾아보거나 인터넷 운세를 검색해 보는 것이다. 또 꿈을 꾸거나 남들로부터 미신에 관한 속설을 들으면, 자기 운세의 길흉을 판단하는 근거로 삼는다. 그는 하나님을 믿지만 절대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주변의 사람과 일, 사물을 대하지 않고, 진리를 근거로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대하지도 않는다. 대신 항상 특이한 느낌을 찾는다. 예를 들어, 어느 날 노래할 때 몸이 좀 안 좋으면 ‘내가 노래하지 못하게 하나님이 막으시는 건가?’라고 생각한다. 또 어느 날은 복음을 전하러 나가기로 다른 사람과 약속해 시간과 장소를 분명히 정해 놓고도 기도해서 영적인 느낌을 찾는다. 기도하고 나서 몇 분이 흘러도 아무런 느낌이 없으면, 태양에 이상 현상은 없는지 하늘을 올려다보고, 밖에 까치나 까마귀가 울지는 않는지 귀를 기울이며, 이로써 오늘의 운세를 판단한다.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순조로울지, 사람을 얻을 수 있을지 말이다. 이 방법이 시원치 않으면, 동전을 던져서 갈지 말지를 결정한다. 앞면이 나오면 전도가 순조로워 사람을 얻을 것이고, 뒷면이 나오면 전도가 순탄치 않아 사람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는 이런 것을 근거로 나갈지 말지를 정한다. 이런 부류는 하나님을 얼마나 오래 믿었든 진리를 근거와 실행 원칙으로 삼을 줄 모른다. 그러기보다는 늘 미신에 관한 속설, 혹은 이상한 느낌이나 현상으로 사람과 일, 사물을 판단하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각종 일을 대하며, 혹은 자기가 실행해야 할 원칙을 결정한다. 항상 이런 허무맹랑하고 기이하며 해괴하고 초자연적인 느낌만 찾고, 그런 느낌으로 행동하고 생활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외출하다가 검은 고양이를 보면, 재수 없다고 생각해서 일을 그르치더라도 외출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일을 보러 외출하는 길에 차가 고장 나면 하나님이 막는 거라고, 오늘은 운이 나쁘다고, 나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또 어떤 사람은 외출하다가 관을 보면, 오늘 밖에서 재물을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부류는 무슨 일이든 늘 미신 같은 얘기를 근거로 삼으려고만 할 뿐, 진리를 근거로 한 정확한 실행 원칙은 지니고 있지 않다. 남들이 아무리 교제해 주고 하나님 집에서 아무리 사역해도 그는 진리 원칙대로 생활하고 사역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수도꼭지가 갑자기 고장 나 물이 새는 등 간혹 집에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면, 그는 나쁜 징조일 거라 의심한다. 어쩌다 바람이 불어 창문이 열리고 유리가 깨지면 ‘바람이 비정상적으로 부네. 재앙의 징조 같아. 나가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막으시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또 집을 나설 때 눈이 오면 “제가 나가자마자 눈이 오는 것 좀 보세요. ‘길 떠나는 귀인은 눈보라를 부른다’라고들 하잖아요. 제가 귀인인가 봐요!”라고 한다. 이는 헛소리 아니냐? 그는 무슨 일이든 이런 해괴하고 터무니없는 속설을 근거로 판단하고 결정한다. 예를 들어, 외출할 때 가방끈이 문고리에 걸리면, 이런 상황에 해당하는 속설이나 유의 사항이 있을 거란 생각에 바로 운세 달력을 뒤져서는 그 시간에 나가서 일을 보는 것과 관련하여 ‘만사가 풀리지 않으니 외출을 삼가라’라는 속설을 찾아낸다. 그는 ‘만사가 풀리지 않는다는 건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되고 집에 있어야 한다는 말이잖아. 이건 하나님께서 편안함을 누리게 하시는 거네. 하나님께서 지켜 주셨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일에서도 근거를 찾다니 황당하지 않으냐? 어떤 상황이든 다 그에 맞는 속설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기이하지 않으냐? 그는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두 기이한 현상으로 보는데, 그 ‘기이한 현상’을 처리하는 근거는 바로 온갖 기이한 속설이다. 그는 온갖 기이한 속설로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대한다. 그러니 이런 부류와 함께 생활하다 보면, 늘 그가 몹시 기이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가 느닷없이 내뱉는 말 한마디는 사람의 마음을 떨리게 하고 소름이 돋게 한다. 예를 들어, 한밤중에 개 짖는 소리가 들리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인데, 그는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자료를 찾고 점을 봐서 그 시간에 개가 짖는 것과 관련하여 어떤 속설이 있는지 꼭 알아보려 한다. 그와 한동안 접촉하고 왕래하다 보면, 어떤 느낌이 들겠느냐? 분명 터무니없는 말에 수시로 교란당할 것이다. 마음속에 평안과 기쁨이 있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평안과 기쁨은 없다. 너는 그처럼 안절부절못할 것이며, 무슨 일이든 속설을 찾아보려 할 테니, 그러는 동안 마음속에 하나님은 사라지고 오직 미신의 속설만 남을 것이다. 이것이 악령과 마귀 사탄에게 교란당해 생각이 불안해지고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사라지며 사고가 혼란스러워지는 것이다. 또 정상 인성의 모습이 사라지고 사람의 정상적인 생활 질서와 생활 법칙이 이런 혼란한 사상과 말에 엉망이 된다. 어떤 일이 일어나든 이런 부류는 그 일을 기이한 속설로 해석하여 마지막에는 황당무계하고 해괴한 방식으로 대한다. 이것이 바로 삿됨이다. 심지어 리더에게 책망을 받으면,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날 때 몸이 찌뿌둥했지. 세수할 때는 이마가 거뭇했고. 그러더니 결국 오늘 책망을 받는구나. 거봐, 조짐이 있었잖아. 그러니 매일 틈만 나면 거울을 들여다봐야겠어. 이마가 거뭇해지면 조심해야지. 책망받거나 일이 난관에 부딪히고 잘 안 풀릴지도 모르니까.’ 어떤 사람은 복음을 전하러 나갔다가 갈망하고 구하는 마음을 지니고, 진리를 교제하면 받아들일 수도 있는 괜찮은 복음 대상자를 만나면, 하나님에게 감사한 나머지 이런 생각을 한다. ‘어제 샘물에 발을 씻는 꿈을 꿨지. 샘물은 재물을 의미하고, 재물을 얻는다는 건 복음을 전해서 사람을 얻는다는 걸 의미해. 그러니 오늘 사람을 얻은 건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할 일이야. 하나님께서 일찍부터 징조를 보여 주셨잖아!’ 어떤 일이 생기든 어떤 느낌이 들든 그는 항상 그 근원을 파고들고 근거를 찾으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왼쪽 눈꺼풀이 떨리면 재물이 들어오고, 오른쪽 눈꺼풀이 떨리면 재앙이 닥친다’라는 미신을 믿어서 이를 근거로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판단한다. 그는 결코 진리에 공을 들이지 않고, 진리를 구해 이를 근거로 여러 가지 일을 판단하지도 않는다. 그의 마음은 온통 이런 기이하고 황당무계하며 해괴하다 못해 초자연적인 온갖 속설이나 사상 관점,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논리로 가득하다. 이러한 것으로 점철되어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겉으로는 정상 같으며, 생활, 사역, 다른 사람과의 왕래 면에서 극단적이거나 초자연적이고 기이한 모습이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와 왕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그의 생각과 마음속이 온통 황당무계하고 해괴하며 치우친, 사악한 흐름에서 비롯된 온갖 미신의 속설로 가득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이런 속설을 근거로 주변에서 일어나는 각종 일을 판단한다. 심지어는 그것이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이고 하나님의 보호라는 것을 인식한 상태에서도 미신 같은 속설을 근거로 그런 일을 해석하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까지도 미신의 속설로 해석한다. 이는 삿됨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는 그렇게 많은 진리를 듣고도 어째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진리로 문제를 바라볼 줄 모르며, 진리에 부합하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못하겠느냐? 그의 마음속은 왜 진리가 없고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논리, 미신으로 점령되고 가득 차 있겠느냐? 이는 삿됨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심지어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땅 위의 개미도 밟아 죽여서는 안 됩니다! 개미도 생명이에요. 개미를 밟아 죽였는데, 그 개미가 영계로 돌아가 하늘에 고하면 죗값을 치러야 할 겁니다.” “만약 당신이 물고기를 한 마리 죽였는데, 물고기가 입을 벌리고 당신을 바라보았다면, 그건 당신을 규탄하는 겁니다! 그러니 당신은 그 물고기를 먹어서는 안 됩니다. 먹으면 죗값을 치르게 될 거예요! 닭이나, 개, 소, 돼지를 죽이는 건 모두 살생이에요. 나중에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요!” 이런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논리가 어디에서 왔겠느냐? 이 사악한 인류 사이에서 듣지 않았겠느냐? 여기저기서 들은 말들을 모두 받아들이고, 그 말들을 최고의 지령으로 삼아 하나님의 뜻과 똑같이 높게 보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몇 년 동안 믿었는데도 여전히 “닭을 죽여서는 안 됩니다. 이번 생에 닭을 죽이면, 다음 생에 닭으로 태어나 사람에게 죽임을 당할 거예요. 그러니 살생하면 안 됩니다. 살생하면 죗값을 치르게 될 거예요!”와 같은 말을 한다. 말은 이렇게 하면서 정작 닭을 먹을 때는 한 끼에 한 마리를 뚝딱 해치운다. 비정상적이지 않으냐?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모피를 입어서는 안 됩니다. 동물은 죽어도 그 영혼이 다 느끼거든요. 당신이 모피를 입는 건 동물의 영혼을 걸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그 동물이 억울하게 죽기라도 했다면, 당신을 찾아와서 들러붙을지도 몰라요. 당신에게 들러붙는다면 삶이 편치 못할 겁니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이것들은 기이한 말 아니냐? (기이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가발을 쓰는 사람을 보면 속설을 늘어놓는다. “당신이 쓰는 가발 머리카락의 원래 주인이 억울하게 죽어서 그 영혼이 머리카락에 남아 있을지도 몰라요. 당신이 만약 그의 머리카락을 쓴다면, 그의 영혼이 당신을 따라다닐 겁니다.” 온갖 기이하고 해괴하며 터무니없는 속설이 이 부류의 마음속에서는 보물이 된다. 즉, 그들의 지상 명령인 것이다. 그들은 이런 터무니없고 황당한 속설을 진리로 여기고 지키면서 자기가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고 있는 줄 안다. 그러고는 자기만 지키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지키라고 알려 준다. 상대가 지키지 않으면, 살벌하고 등골이 오싹한 말로 위협하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지키라고 겁박한다.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은 겁을 먹게 된다. 이런 해괴하고 황당한 말이 바로 마귀 사탄이 인간 세상에 퍼뜨리는 유언비어이자 황당한 논리로, 사람의 정상적인 사고와 자유 의지를 교란하고 통제한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마귀 사탄이 이런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논리를 통해 일부 사람들을 점령하여 그들이 인간 세상에서 자기를 위해 봉사하게 하고, 자신의 대변인, 온갖 해괴하고 기이한 사상의 집행자 노릇을 하게 한다. 그러니 어떤 측면의 모습을 보든 기이한 부류의 본성 본질은 사악하다. 그들은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삿된 것을 최고로 숭상한다. 바로 이런 문제인 것이다. 사람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분별력이 없을 때는 늘 자기도 모르게 이런 기이하고 해괴한 속설에 영향받고 미혹된다. 그러나 진리를 깨닫고 나면, 정상 이성과 정상적인 사고의 판단으로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 일이 닥쳤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 확실히 알게 된다. 이는 정상 인성을 갖춘 사람이 마땅히 깨닫고 지켜야 하는 바이다. 이런 해괴하고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통해 분별하고 판단하거나, 사람과 일, 사물을 대하는 방법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 기이한 부류를 분별하고 나니, 그들의 본질을 확실히 알게 되지 않았느냐? 그들의 본질이 무엇이냐? 삿된 본질이다. 그는 하나님을 크게 높이지 않고 사탄을 크게 높인다. 한 측면의 진리에 관해 말하고, 하나님에게 감사하며, 하나님이 배치한 환경을 받아들이려 할 때도 기이하고 해괴하며 황당무계하고 터무니없는 속설을 찾아 근거로 삼으려 한다. 그의 관점에서는 이런 해괴하고 황당무계한 속설과 관점이 진리와 하나님의 주재를 능가한다. 그러니 이런 부류의 본성 본질은 의심할 여지 없이 삿되다. 그들은 사탄의 생명에 의지해 살아가며, 그들이 높이고 추종하고 경모하는 것은 진리가 아니라, 사탄의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논리이기 때문이다. 설사 네게 보이는 것이 그 개인의 행위라고 할지라도 그 행위를 배후에서 조종하는 것은 사탄 마귀의 온갖 사상 관점이다. 그는 겉으로 보기엔 사람이지만, 사실 마귀 사탄의 온갖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논리의 대변인이자 계승자, 증거자이다. 그가 증거하고 추종하는 것은 진리가 아닌 사탄의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논리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삿된 본성 본질의 모습이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사람에게 천사가 보이는 게 좋은 일이겠느냐? 정말 천사를 볼 수 있다면 당연히 좋은 일이겠지만, 만약 진짜 천사가 아니라 천사로 가장한 사탄이 보이는 거라면 무척 위험하다. 사탄이 천사로 가장하여 네게 나타난다면, 이것이 좋은 일이겠느냐, 나쁜 일이겠느냐? (나쁜 일입니다.) 왜 나쁜 일이라고 하느냐? 정상적인 상황에서 육체를 지닌 평범한 존재가 천사를 볼 수 있겠느냐? (볼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이런 기능이 있겠느냐? (없습니다.) 확실하게 말하는데, 사람에게는 영계의 사탄이나 천사를 볼 수 있는 기능이 없다. 그런데 네 눈에 보인다면, 이는 어찌 된 일이겠느냐? 육체의 기능이 바뀐 게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확실하게 말해서 그렇다. 그렇다면 육체의 기능에 범상치 않은 현상이 나타났다면, 하나님이 바꾼 것이겠느냐, 아니면 다른 어떤 것이 바꾼 것이겠느냐? 그것도 아니면 네가 스스로 변한 것이겠느냐? (다른 것이 바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너를 바꿔 주겠느냐?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역을 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 그 믿음을 굳건히 하기 위해 하나님이 사람의 기능을 바꾸어 천사나 영계의 일을 보게 하겠느냐? 하나님이 그런 일을 하겠느냐? (그러지 않으실 것입니다.) 확실하게 말하는데, 하나님은 그러지 않는다. 사람이 구원받기 전에 하나님은 절대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의심의 여지 없는 확실한 사실이다. 사람의 육체적 기능이 갑자기 바뀌어서 범상치 않은 현상이 나타났는데, 이것이 하나님이 바꾼 것도, 스스로 변한 것도 아니라면, 어찌 된 영문이겠느냐? 하나님이 이런 일을 할 리 없고, 너 스스로도 바꿀 수 없다면, 유일한 가능성은 바로 사탄, 악령이 네게 한 짓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탄, 악령이 너를 미혹하고 통제하여 초자연적인 현상, 즉 정상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고, 정상인에게는 들리지 않는 말이 들리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는 절대 좋은 일이 아니다. 사탄이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을 네게 보여 주는 목적이 무엇이겠느냐? 네 시야를 넓혀 주고, 영계의 존재를 믿게 하며,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생기게 해 주려는 것이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사탄이 좋은 마음이나 의도로 네게 이런 짓을 하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분명히 말하는데, 그렇지 않다. 사탄은 너의 이런 범상치 않은 기능을 이용해 네가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것을 보게 함으로써 영계에 대한 더 큰 관심을 유도한다. 즉, 네게 이익과 달콤함을 조금 주고는 사탄이 곧이어 할 일을 네가 받아들이도록 유혹하는 것이다. 사탄이 곧이어 무슨 짓을 하겠느냐? 사탄이 네게 진리를 베풀어 주겠느냐? 생명을 공급하겠느냐? 아니다. 너라는 사람을 갉아먹고 네 육체의 각종 선천적인 기능을 망가뜨린 후 너를 점령하려 할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 곁에서 너를 빼앗아 가고 네가 하나님을 버리게 할 것이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사탄이 한 사람에게 천사를 보여 주든, 영계의 어떤 현상을 보여 주든 그것이 좋은 일이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을 자주 보는 사람이나, 자기 집 지붕 위에 희고 순결하게 생긴 천사가 날아다니는 게 보이는데 그 천사가 늘 자기와 대화한다고 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어떻게 해야겠느냐? (당장 멀리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당장 멀리하고 이야기하지 마라. 만약 그 일에 흥미를 가지고 그와 이야기한다면 위험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당신은 위험합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이 늘 보이고, 이상해요. 당신과 어울리지 않겠어요.”라고 말하지도 마라. 이런 말을 할 필요는 없다. 속으로 알고 있으면 된다. 사탄 마귀가 이미 그를 타깃으로 삼았거나, 그자는 태생적으로 사람이 아닌 마귀이다. 사람은 마귀와 어울려서는 안 된다. 사람이 마귀와 어울린다면 그 결말은 오직 하나, 마귀에게 삼켜지는 것뿐이다. 초자연적인 현상이 나타나는 부류를 만나면, 그들이 어떤 해괴하고 기이한 이야기를 하든 절대 호기심을 갖지 말고, 당장 그 부류를 멀리해라. 그들을 관찰하거나 연구하지 말고, 바꾸려 하지도 마라. 더욱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 하나님을 믿게 하지도 마라. 그렇게 한다면 어리석기 그지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마귀 같은 자를 원하지 않는데, 네가 마귀 하나를 하나님 집에 데려다가 본분을 이행하게 한다면, 교회 사역에 유익이 있겠느냐? 유익은커녕 교회 사역에 교란과 방해만 일으킬 것이다. 네가 좋은 마음으로 그렇게 하더라도 하나님은 기억하지 않을뿐더러 너를 정죄할 것이다. 이는 악행이니 절대 이런 짓을 하지 마라. 네가 잘 아는 사람이든 낯선 사람이든, 네 가족이나 혈육이든 아니면 친구든, 그것도 아니면 함께 협력하는 형제자매든 만약 그가 자기 집 마당에서 누군가가 어슬렁거리는 것을 자주 본다거나, 늘 문틈으로 자기를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고 말한다면, 또 수시로 자기가 천사와 대화한다고 말하고, 자기에게 말씀하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다거나, 스스로를 이긴 남자아이나 장자, 들림 받을 대상이라고 느낀다면, 이런 부류를 형제자매로 볼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너희는 속으로 알고 있어야 한다. 이런 부류를 형제자매로 여기지 마라. 어리석게 굴어서는 안 된다. 네가 어리석어서 이런 부류를 보고 ‘저분은 이기는 자, 장자시고 온전케 되신 분이야. 진리가 있는 분이니 친하게 지내야지.’라고 생각한다면, 위험해질 뿐만 아니라 그에게 쉽게 미혹될 것이다. 그러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너는 사람을 분별할 줄 모르고, 사람의 본성 본질도 꿰뚫어 볼 줄 모른다. 하나님이 그런 사역을 하겠느냐? 하나님은 마귀 사탄을 구원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사람에게 진리를 공급하여 사람이 진리를 깨닫고 실행하며 진리에 순종함으로써 진리가 생명이 되게 하는 것이다. 또 사람이 하나님에게 진실한 인식과 경외를 갖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사탄의 권세에서 완전히 벗어나 구원에 이르게 된다. 하나님은 이런 사역을 한다. 진리 외에는 그 어떤 기이하고 터무니없는 이야기나 그릇된 주장, 황당한 논리도 사람을 구원할 수 없다. 그런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논리는 진리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사람을 미혹하고 패괴시키기만 할 뿐 절대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지 못한다. 사람이 구원에 이르고, 하나님에게 순종하고 악을 떠나는 데 이르는 유일한 길은 바로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행하는 것이다. 이 외에 다른 길은 없다. 극단적인 방식이나 속설, 혹은 황당하고 해괴한 속설로 진리를 가장하거나 진리를 대신하여 구원에 이를 생각은 하지 마라. 그런 길은 다 통하지 않는다. 이는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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