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4) 제 1 부

사람의 유래에 따라 구분한 사람의 세 가지 유형

마귀에서 환생한 부류의 특징

최근 교제한 주제는 사람의 유형은 그의 유래를 통해 구분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선천적인 조건, 인성, 그리고 패괴 성품이라는 큰 주제로부터 파생된 특수한 주제이다. 이 특수한 주제를 놓고 우리는 어떤 내용들을 교제했느냐? (하나님께서는 유래에 따라 사람을 세 가지 부류로 나누셨습니다. 동물에서 환생한 부류, 마귀에서 환생한 부류, 그리고 사람에서 환생한 부류가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먼저 동물에서 환생한 부류의 네 가지 특징을 교제하셨습니다. 첫째는 치우치게 받아들임, 둘째는 몹시 무감각함, 셋째는 무척 흐리멍덩함, 넷째는 어리석음입니다. 두 번째로는 마귀에서 환생한 부류의 특징을 교제하셨습니다. 첫째는 거짓말에 인이 박임, 둘째는 삿됨, 셋째는 악함입니다. 그중에서도 주로 거짓말에 인이 박인 모습과 삿된 모습에 관해 교제하셨습니다.) 거짓말에 인이 박인 모습은 주로 기만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삿된 측면의 모습도 구분해 보았는데 총 몇 가지 모습이 있었느냐?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성품에 관한 것으로 괴상함이고, 둘째는 육의 그릇된 정욕입니다. 다른 한 가지는 기이함으로, 늘 환청과 환각 증상이 나타나고 항상 비정상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대체로 그런 것들이다.

2. 두 번째 특징, 삿되다

우리는 지난번에 마귀에서 환생한 부류의 삿된 모습에 관해 교제했었다. 나는 교회에서 정리해 놓은 출교 자료에서 한 사람의 모습을 보았다. 우리가 교제한 내용과 관계가 있는지 없는지 잘 들어 보아라. 농장에서 채소 농사를 담당하던 그는 주로 ‘인성이 악독하고 불손한 태도로 상부를 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모습이 있다. 첫 번째는 이런 모습이다. 그는 상부에 보낼 채소를 아무 밭에나 심었다. 그런데 그곳이 지대가 낮아 물이 고이기 쉬운 곳이라는 사실이 나중에 발견되었다. 결국 뿌려 두었던 비료가 물에 씻겨 내려가 채소가 많이 크지 못했다. 그는 비료를 더 뿌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뿌리지 않았고, 채소가 잘 자라지 않는 걸 보고도 내버려두었다. 그러고는 의도적으로 성치 않은 채소를 상부에 보냈다. 이것이 첫 번째 모습이다. 두 번째 모습은 이렇다. 평소 그는 형제자매에게 줄 채소만 돌본 뒤 곧바로 자리를 떴고, 상부에 보낼 채소는 살피거나 돌보지 않고 나 몰라라 했다. 세 번째 모습은 다음과 같다. 그는 채소에 벌레가 많이 꼬여 여기저기 갉아 먹혀 보기 거북하고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효과가 있건 없건 대충 약만 뿌리고 말았다. 벌레를 잡으라고 남들이 일러 주어도 그는 ‘왜 저렇게 호들갑을 떨지? 할 일이 산더미 같은데, 매일 채소만 돌볼 순 없잖아!’라고 생각하며 신경 쓰지 않았다. 보아라, 그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남들이 일러 줬는데도 하지 않았다. 네 번째는 이런 모습이다. 이 사람은 상부에 보낼 채소를 재배할 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당신은 그냥 내가 키워 주는 대로 먹기나 해. 성한 건 먹고 성한 게 없으면 먹지 말라고. 어쨌든 내가 키워 줬으니 감사한 줄 알아야지!’ 이것이 그가 품은 악독한 생각이다. 그는 이런 생각을 같이 사는 사람에게 말한 적이 있다. 다른 사람이 상부에 보낼 채소를 담을 때는 썩은 잎을 담는 바구니를 쓰지 말라고 해도 그는 “그건 장담 못 하겠네요.”라고 대답했다. 보아라, 다른 사람이 일러 주어도 그는 듣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 이것이 네 번째 모습이다. 다섯 번째 모습은 다음과 같다. 그는 상부에 보낼 채소를 이런 식으로 대하면서도 지각이 없고 전혀 뉘우치지도 않았다. 그는 누가 자기에게 신경 좀 쓰라고 하면 거부감과 반감을 품었고, 누가 자기에게 제안을 하면 그 사람을 증오했다. 이렇게 총 다섯 가지가 리더 일꾼이 정리한 그의 모습이다. 그 사람의 평상시 모습과 진리, 본분을 대하는 태도를 정리하면서 구체적인 사례까지 열거했으니 아주 잘 정리한 것이다. 들으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느냐? 이런 모습을 보이는 사람의 인성이 좋으냐? (좋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로 좋지 않으냐? 이 사람의 모습이 우리가 교제한 마귀에서 환생한 부류의 모습에 부합하지 않느냐? (부합합니다.) 어떤 모습에 부합하느냐? (이 부류는 악합니다.) 악한 것 외에 마귀에서 환생한 부류의 삿된 모습은 없느냐? (있습니다.) 그가 어떤 삿된 모습을 보이느냐? (보통 사람은 상부에 보낼 채소를 우선적으로 좋은 땅에 심지만, 그는 형제자매의 환심을 사려고 형제자매에게 줄 채소만 돌볼 뿐, 상부에 보낼 채소는 안 좋은 땅에 심고 돌보지도 않았으며 벌레를 쫓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늘 상부에 성치 않은 채소를 보냈습니다. 상부와 하나님에 대한 그의 태도가 적대적인 것입니다.) 그는 왜 상부에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겠느냐? 상부가 그에게 미움이라도 샀느냐? (아닙니다. 그의 본성 본질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증오하고 긍정적인 사물을 증오합니다.) 나는 이자를 정말 모른다. 일면식도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도 그는 왜 마음속에 그토록 큰 증오를 품고 있겠느냐? 그것은 본성의 문제이다. 악한 한편 삿되지 않으냐? 큰 붉은 용과 같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긍정적인 사물을 대하는 그의 마음에는 증오가 자리 잡고 있다. 왜 그러냐고 물어도 그 자신조차 분명하게 대답하지 못한다. 그는 그냥 증오하는 것이다. 그가 하나님과 진리, 긍정적인 사물을 몹시 증오하는 것은 비정상적이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이런 부류가 바로 마귀이다. “당신이 믿는 분은 누구입니까?”라고 그에게 묻는다면, 그는 분명 하나님을 믿는다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증오한다. 마귀의 마음이 드러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비정상적인 것이다. 왜 비정상적이라고 하겠느냐? 첫째, 나는 이 사람을 전혀 모르고, 그를 책망하거나 훈계한 적도 없는데, 그는 나를 이토록 증오하니 이것이 바로 삿된 것이다. 둘째, 채소 농사는 형제자매가 맡긴 일이다. 농사짓기 싫으면 싫다고 하면 되는데, 그는 그 농지로 화풀이를 했다. 심고 나서 제대로 돌보지도 않고, 상부에 성치 않은 채소를 보낸 것이다. 셋째, 그는 형제자매를 위해서는 흔쾌히 농사를 지으며 정성껏 채소를 돌봤다. 그런데 유독 상부에 보낼 채소를 심는 것은 내키지 않아 했고 몹시도 싫어했다.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그에게 잘못한 것도 아닌데 이런 식으로 상부와 하나님을 대하는 것이다. 비정상적이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비정상적이어도 너무 비정상적이다! 한편으로는 악하고 또 한편으로는 삿된 것이 바로 마귀의 본성이다. 마귀는 하나님 집에서 아무리 포용하고 인내하며 사랑으로 대하고 구원받을 기회를 주어도 전혀 헤아리지 못한다. 마음속으로 하나님과 하나님 집을 증오하기만 하는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증오하고 긍정적인 사물을 증오하는 것이 마귀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그 이유를 명확히 설명할 수 없다. 마귀는 하나님과 긍정적인 사물을 아무런 이유도 없이 증오하는 것이다. 이것을 삿됨이라고 한다. 그가 매일 무슨 생각을 하는지 보아라. ‘당신은 그냥 내가 키워 주는 대로 먹기나 해. 성한 건 먹고 성한 게 없으면 먹지 말라고. 어쨌든 내가 키워 줬으니 감사한 줄 알아야지!’ 이는 삿된 마음이 아니냐? 그가 생각하는 것은 죄다 사악하고 괴상한 일뿐이다. 양심과 이성이 있는 사람은 그의 생각에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가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마귀는 이렇게 행동한다. 그가 생각하는 것이라고는 죄다 어둡고 사악한 일들뿐이다. 마귀에 속하는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그러지 못합니다.) 그는 최소한의 인성의 도덕, 양심과 이성조차 갖추지 못했고, 하나님 이야기만 나오면 마음속에 화가 치밀고 증오심이 일어난다. 남들이 그에게 다른 일을 요청하면 그다지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데, 유독 상부를 위해 농사짓는 것에는 거부감이 대단하다. 이것이 바로 악이고 삿됨이다. 그에게 왜 그리 거부감을 갖느냐고 물어도 이것은 마음의 문제라서 아마 그 자신도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분명히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너희는 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히 알 수 있겠느냐? 그가 왜 이렇게 하나님을 대하겠느냐? 대부분의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저렇게 대할까? 이방인 아냐?’라며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제 진리를 교제했으니, 각 부류의 본질과 유래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부류가 바로 마귀에서 환생한 부류이며, 그들은 하나님을 증오하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마귀에서 환생한 부류가 변할 수 있겠느냐? (변할 수 없습니다.) 그는 큰 붉은 용과 같다. 그 역시 옳은 말이나 양심과 도덕에 부합하는 말을 할 수 있지만, 절대 말한 대로 행동하지는 못한다. 또 그는 듣기 좋은 말을 잔뜩 할 수 있지만, 막상 실제로 일을 해야 할 때는 하나도 하지 못한다. 왜 못 하겠느냐? 그의 내면이 마귀이기 때문이다. 그는 긍정적인 일, 인성적 양심의 기준에 부합하는 일을 할 땐 마음이 괴롭고 불편하고, 오로지 악을 행하고 마귀가 하는 일을 하거나 마귀가 생각하는 일을 생각할 때만 마음이 편하고 즐겁다. 이것이 바로 이 부류의 본모습이다. 네가 그와 한담을 나누거나 육적인 생활과 관련된 일을 이야기해도, 심지어 시사나 정치 문제를 얘기해도 그는 가만히 앉아 듣는다. 하지만 긍정적인 사물, 진리, 하나님, 하나님의 신분과 본질, 하나님의 사역,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요구와 관련된 내용을 교제하기만 하면, 그는 속으로 싫증을 내고 반발하며 듣기 싫어한다. 가시방석에라도 앉은 사람처럼 가만히 있지 못하고 마음을 졸이며 안절부절못한다. 그 자리에 1초라도 더 있는 것을 고통스럽게 생각하며, 심지어 곧바로 일어서서 가 버리는 사람도 있다. 설령 체면상 점잖게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머리로는 이미 딴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생각이 진작에 다른 세상에 가 있으니,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는 왜 이런 모습을 보이겠느냐? 그는 속으로 하나님과 긍정적인 사물에 반감을 품고 있고 진리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귀담아듣지 않을뿐더러 받아들이려 하지도 않는 것이다. 그는 예배 때 진리를 교제하는 시간만 되면, 어떻게든 핑계를 대며 자리를 떠나려 한다. “일 보러 나가 봐야 해요.”, 혹은 “전화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요.”라며 그 틈을 타 도망가려는 것이다. 이런 부류는 비정상적이다. 만약 사람이 자기가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이런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는 긍정적인 사물이나 하나님과 관련되기만 하면 이런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모습으로, 본성 본질에 속한 문제이다. 사람의 유래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도 이 사실을 바꿀 수 없다. 네가 진리를 교제하고, 긍정적인 사물을 교제하며,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교제하면 그는 마치 자기를 심판하고 자기 목숨을 끊으려 하는 것처럼 느낀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 진리, 긍정적인 사물을 대할 때 이런 부류의 마음속에 나타나는 실제 내적 상태이다. 물론 이는 이 부류가 지닌 사악한 본질의 한 모습이기도 하다. 그들은 긍정적인 사물, 진리, 하나님에 대해 반감과 혐오감을 품기 때문에 그들이 속으로 매일 생각하는 것은 긍정적인 사물, 진리, 하나님의 사역과는 전혀 무관하다. 그들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모든 일은 삿됨과 관계가 있다. 그들은 어떻게 해야 자신을 드러내 무리에서 지위와 위신을 얻을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사람을 미혹하고 지위를 얻어서 더 많은 사람이 자신에게 동조하고 자신을 우러러보게 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동조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하나님 집이나 각급 리더에게 인정받고 발탁될 수 있을지 생각한다. 그들이 생각하고 저지르는 일은 다툼, 싸움, 갈취, 기만, 계략, 계획, 선동, 현혹, 조종, 미혹의 성질을 띠고 있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그들은 이런 일로 어떤 대가를 치르든, 어떤 고생을 겪든 개의치 않는다. 고생을 겪는 과정에서 그들은 어떤 악을 행해야 하는지, 누구를 음해해야 하는지, 어떤 목적에 도달해야 하는지 준비하고 계획한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고 의도가 있다. 그는 진리에 위배되는 말이나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일을 공개적으로 하지는 않으며, 더욱이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판단하거나 공격하거나 모독하지도 않는다. 이렇게 명확한 악행은 저지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속으로 진리나 긍정적인 사물과 관련된 일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나아가 사람의 양심과 이성, 도덕과 관련된 일 역시 고려하지 않는다. 그럼 그는 무엇을 고려하겠느냐? 그는 음모와 계략, 음해, 모의, 계획 같은 일에 관한 생각에 푹 빠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겉으로는 그에게서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고,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의심하거나 판단하며 심지어 모독하는 말을 들을 수 없을지라도 그의 마음속은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 그리고 하나님의 사역과 관련된 일에 대한 경멸과 멸시, 불손한 태도로 가득하다.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가 무엇이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든, 하나님이 각종 사역을 하는 원칙이 무엇이든 그는 전혀 거들떠보지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그의 마음속에는 이런 긍정적인 사물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이 없는 것이다. 비록 그는 이런 긍정적인 사물들을 공개적으로 거부하고 정죄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지만, 마음속 깊은 곳을 보면 그는 이런 긍정적인 사물들에 대해 반감과 혐오감을 품고 있다. 그는 설교를 들을 때 어떻게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행할지 고민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어떻게 이 새로운 빛 비춤과 가르침을 자신의 말로 정리해서 남들과 교제하고 교류함으로써 그들로부터 우러름과 숭배를 받을지 고민한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만약 이 말씀을 교회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더 많은 사람으로부터 우러름과 숭배를 받을 수 있을 거야. 그러면 사람들 가운데서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할 수 있겠지. 지위는 내가 얼마나 많은 도리를 얼마나 전반적으로 깨닫고 파악했는지에 달려 있거든.’ 설교를 들을 때 그는 자리에 앉아서 듣고, 심지어 퍽 진지하게 마음을 기울이면서 제법 열의를 가지고 듣기는 하지만, 그의 태도는 긍정적이지 않고 그의 목적 역시 순수하지 않다. 그는 진리를 받아들이는 태도로 설교를 듣는 것이 아니라, 신학을 연구하는 것처럼 파고들고 성경과 대조해 본다. 그는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여 그것에 따라 자신을 비춰 보고, 자신의 각 측면의 문제를 인식하여 해결의 길과 실행의 원칙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또한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을 인식하여 진실하게 뉘우치려 하지도 않고,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려 하지도 않으며, 진리 원칙에 부합하는 행동을 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의 목적은 이런 게 절대 아니다. 그의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더 많은 도리로 무장해서 자기를 과시하고 드러내어 남들로부터 우러름과 숭배를 받는 것이다. 이것이 첫 번째 목적이다. 두 번째는 복을 받을 수 있는 가장 간편한 길을 찾는 것이다. 그는 설교를 듣고 나서 그것이 참도라는 확신이 들면, 자기가 복을 받을 희망이 얼마나 되고 구원받을 희망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 본다. 그러고는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는 방법으로 하나님의 선민과 하나님 집을 속여 신뢰를 얻고, 하나님에게 자기가 겪은 고생과 치른 대가를 보여 주기로 한다. 이런 식으로 하나님을 믿으면 큰 복을 받고 아름다운 종착지가 생기는 줄 아는 것이다. 보아라, 그는 설교나 각 측면의 진리를 대할 때 순수하게 받아들여서 실행하고 체험하는 태도를 취하지는 않고 다른 계획과 꿍꿍이를 품는다. 그는 설교와 교제에서 나온 말들이나 유명한 구절로 자신의 머리와 입을 무장해서 형제자매를 미혹할 생각만 한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에게 숭배받고, 사람들 가운데서 입지를 다지며, 남들에게 우러름을 받으려는 것이다. 설교를 들을 때 이런 부류가 품는 생각과 속셈, 태도가 그들이 삿되다는 것을 충분히 말해 주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그의 이런 삿됨을 바로잡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겠느냐? 네가 그에게 “당신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진리를 받아들이는 게 아니에요. 진리를 추구할 때는 그런 태도를 지녀서는 안 돼요. 당신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진리가 당신에게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할 테니 당신은 구원에 이르지 못할 거예요.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실행의 원칙을 찾아 실생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고 체험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당신의 진리 실제가 되게 하고, 마침내 당신의 생명이 되게 해야 해요.”라고 말한다고 해도 그가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왜 그럴 수 없느냐? 그들이 노력하지 않아서겠느냐, 아니면 우리가 진리를 교제할 때 그들의 생각을 헤아리지 못하고 그들의 내적 상태에 맞는 적당하고 적절한 진리를 공급하지 못해서겠느냐? (모두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진리를 증오하는 그들의 본질 때문입니다.) 이런 부류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들의 본질과 밀접한 관계,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아무도 그들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바로잡을 수 없고, 아무도 이 마귀 부류의 사악한 본성 본질을 바꿀 수 없다. 그들이 진리를 증오하고 거부하니 진리가 그들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부류를 구제 불능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답은 분명하다.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그들의 본성 본질이 마귀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표출하는 것은 마귀의 본성에 완전히 지배된 것이지 절대 일시적인 패괴 표출이 아니고, 패괴된 인류가 지닌 사악한 측면의 패괴 성품도 아니다. 그들은 마귀이지 피조된 인류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문제의 근원이다.

이런 부류가 설교를 들을 때 보이는 모습에는 몇 가지가 더 있다. 하나님 집에서 진리를 교제하면서 일부 사람들의 악행과 행실을 폭로하고 해부할 때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지난번 그 일을 말하는 거죠? 그 일의 자초지종은 제가 똑똑히 알고 있어요. 당신이 무슨 의도로 그 일을 언급하는지 알겠네요. 그 일을 교제하고 해부한다는 핑계로 위신을 세워서 사람들이 당신의 말을 따르게 하려는 게 아닌가요? 일부 사람들을 훈계하고 억압하려는 거잖아요? 지금 운동을 벌이고 있는 거 아니냐고요. 바보들이나 당신의 말을 믿겠죠! 바보들이나 당신의 말을 듣고 진리 원칙대로 실행할 거라고요!” 보아라, 그는 어느 측면의 진리와 관련된 사례나 주장, 일부 사람들의 구체적인 모습을 듣고 이해하는 것조차 남다르다. 그는 올바르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올바르게 대하지 못하면서 사실을 왜곡하고 긍정적인 사물을 판단하며 정죄한다. 생각하는 것이라고는 죄다 어두운 것뿐이면서 자기는 대단히 똑똑하고 실상을 알고 있는 줄 안다. 이것이 삿된 것 아니겠느냐? 큰 붉은 용처럼 말이다. 큰 붉은 용은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서 사람을 제명하고 출교시키는 것은 사람들에게 힘을 과시하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 집, 교회에서 사람을 제명하는 것이 교회를 정결케 하려는 것이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방의 마귀라서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긍정적인 사물을 늘 왜곡하고 판단하며 정죄한다. 그들은 결코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긍정적인 사물을 대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가 원숭이에서 진화했거나 용의 후예라고 믿을지언정 하나님에게 지음 받았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 얼마 전에는 수억 년 전에 살았던 거대한 쥐가 인간의 조상이라고 주장하는 과학자의 말도 들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주장도 다 있구나! 하나님이 인간을 지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믿으라고 아무리 말해도 그는 인정하지 않는다. 눈앞에 놓인 이 사실은 믿지 않고, 오로지 사람은 원숭이에서 진화한 게 아니면 쥐의 후손이거나 용의 후예라는 말만 믿는 것이다. 그는 이런 허튼소리를 믿을지언정 하나님이 인간을 지었다는 사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을 주었다는 사실은 믿지 않는다. 이 사실을 믿지도, 인정하지도 않고, 받아들이려 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삿된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는 자기가 용의 후예라는 말을 들으면 좋아한다. 그가 원숭이에서 진화한 원숭이의 후손이라거나, 커다란 쥐가 그의 조상이라는 말을 해 주면 그는 이렇게 말한다. “맞습니다. 더할 나위 없이 영광스럽네요!” 그런데 하나님이 인간을 지었다고 하면, 그는 돌연 굳은 표정으로 눈에 핏발을 세우면서 적대시한다. 정말 삿되기 짝이 없다!

클릭하세요! 하나님에게서 온 기쁜 소식이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게 임할 것입니다.

카카오톡으로 대화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