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2) 제 3 부
2. 두 번째 특징, 무감각함
동물에서 환생한 부류의 또 다른 모습은 많은 사람과 일, 사물 앞에서 몹시 무감각해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일을 편집적이고 치우치게 바라볼 뿐만 아니라, 어떤 사물이 나타나든 그것의 성질이나 본질, 근원이 무엇인지, 어떤 영향을 일으킬지, 어떤 결과를 야기할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 즉, 어떤 사람들이 말과 행동을 통해 어떤 조짐이나 징조를 보이더라도 그는 바보처럼 알아차리지 못하고 깨닫지도 못한다. 그가 알아차릴 때쯤이면 일은 이미 벌어져 있고, 결과도 이미 초래되어 있다. 그는 이렇게 많은 진리를 듣고 나서도 주위 사람이 어떤 부류의 사람이고, 어떤 본질의 사람인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며, 일부 사람들이 하는 말에 분명 문제가 있어도 느끼지 못한다. 이를테면 허풍을 떨고 큰소리치며 으스대면서 자기를 과시하는 사람 말이다. 이는 분명 교만한 성품을 표출하고 있는 것인데, 그는 이런 문제를 알아차리기는커녕 그 사람이 능력 있다고 생각하고, 탄복하며 우러러보는 것도 모자라 나중에는 이런 사람을 따르려고까지 한다. 이것이 바로 무감각함이다. 악인이나 악행임이 명확하고, 패괴 성품을 표출하는 것임이 확실하며, 어떤 일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는 게 분명한데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 일의 본질이 무엇이고,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며 의식조차 없다. 이런 사람이 바로 우리가 늘 이야기하는 영이 없는 죽은 사람이다. 이런 부류는 진리 원칙에 관한 일에 대해서는 더더욱 기준 미달이다. 그에게 그 일을 어떤 원칙대로 실행해야 하는지 알려 줘도 그는 알아듣지 못한 채 그저 지켜야 할 규례가 무엇인지만 기억한다. 교제해 준 원칙을 알아듣지 못하고 그 원칙에 이르지도 못하는 것이다. 그의 한 측면의 내적 상태가 패괴 성품에서 표출된 모습이라고 지적해 주어도 그는 남 얘기인 줄 안다. 입으로는 자기에게도 그런 측면의 패괴 성품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자신의 어떤 말과 행동이 그 측면의 내적 상태와 모습에 해당하는지 인식하지 못한다.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그는 알아듣지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것이다. 예배 시간에 진리를 교제할 때 남들은 다음 주제로 넘어갔는데도 그는 계속 이전 주제에 관해 이야기한다. 둔하고 무감각하지 않으냐?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그의 생각이 따라가지 못하는 게 아니라 그의 자질이 뒤처지고 기준 미달이라서 그런 것이다. 악인이 그를 속이고 농락하며 괴롭히려 해도 그는 감지하기는커녕 그 악인을 형제자매로 대하며 가깝게 지낸다. 그 결과 악인에게 해를 당하고 나서야 자기가 속아 넘어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내가 어리석었어. 나는 참 사람을 볼 줄도 모르고 분별할 줄도 모르는구나! 이번 일을 교훈 삼아서 앞으로 나 자신 말고는 그 누구도 믿지 않겠어. 이게 바로 최고의 지혜지!’라고 생각한다. 한 번 속고 나더니 그는 자기에게 식견이 생겼다고, 자기가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한쪽 극단에서 반대쪽 극단으로 치닫는 것이다. 동물에서 환생한 이 부류는 무슨 일에든 무감각하다. 예를 들면, 그가 양식을 하고 식물을 재배하는 일을 맡았었는데, 어느 날 기온이 떨어져서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 저녁 기온이 영하 5도라고 한다. 추위에 약한 식물이나 동물을 살펴봐야 하지 않겠느냐?” 그가 듣더니 “제게 패딩 점퍼가 있습니다. 저녁에 이불이랑 담요까지 덮고 자면 안 추울 거예요.”라고 했다. 그가 내 말의 뜻을 알아들은 것이냐? 대답으로 보건대 그는 못 알아들은 것이다. 이는 무감각한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그에게 “오늘 영하 5도라고 한다. 꽃이 정원에 있으면 얼어 죽을 것이다. 추위에 약하고 몸이 허약한 동물을 우리 안으로 들여라. 문에는 발을 더 치고 우리에 외풍이 부는 곳이 있으면 막아 놓아라.”라고 하면 그는 이 말을 듣고 고민한다. ‘동물이랑 식물을 말씀하시는 거였구나. 그렇다면 꽃은 실내로 옮기면 되겠네? 하지만 동물은 저렇게 많은데 어떤 동물이 추위에 약하고, 어떤 동물이 추위에 강한지, 어떤 동물을 우리로 들여야 하고, 어떤 동물을 우리 밖에 두어야 하는지 말씀도 안 해 주시네.’ 내가 말하지 않은 것은 맞다만 아무리 그래도 너는 원칙에 따라 일할 줄도 모르느냐? 겨울에 꽃이 밖에 있으면 얼어 죽을 수 있다는 것도 의식하지 못하고, 할 일을 안배해 주지 않으면 할 줄 모르는 것은 어떤 문제냐? 이것이 무감각함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무감각함이다. 예를 들어, 지금 날이 좋아 정원에서 옷을 말리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오후에 비가 올 것 같은데 옷을 밖에서 말리면 젖지 않을까요?”라고 한다. 이 말에는 일러 주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정상인처럼 사고한다면 이 말을 듣고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조심해야겠어. 날이 흐려지면 재빨리 옷을 걷어야지.’ 반면 정상 인성의 사고를 갖추지 못한 사람은 이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오후에 비가 올 거란 말을 들으면 그는 이런 생각을 한다. ‘나랑 상관없는 일인데 저런 말은 뭐 하러 하지? 난 지금 집에 있는데 말이야. 밖에 비가 와도 내가 젖을 일은 없어. 더군다나 비가 온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나한테 말해 봤자 소용없다고!’ 그는 왜 자기에게 이런 말을 하고 이런 일을 언급하는지 의식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그는 뭐라고 해야 알아듣겠느냐? 이렇게 알려 줘야 한다. “오후 몇 시에 비가 올 거예요. 비가 오기 전에 날이 흐려지면 얼른 옷을 걷어 오세요. 걷지 않으면 옷이 젖어 버려서 다시 빨아야 할 테니까요. 그리고 옷을 걷을 때 정원에 습기에 약하거나 비를 맞으면 안 되는 물건이 있는지 보고 같이 가져오세요.” 이렇게 당부해야 한다. 이렇게 당부하지 않으면 그는 옷을 걷어야 한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비에 젖으면 안 되는 다른 물건들도 함께 수거해 와야 한다는 것도 의식하지 못한다. 그는 그렇게 할 줄 모른다.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그는 너무 무감각하고 정상 인성의 사고를 갖추지 못해 정상 인성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그의 지능과 자질이 정상 인성의 기준에 못 미친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동물에서 환생한 부류이다. 그에게 한 가지 일을 시킬 때는 그런 일에 대해 여러 번 당부했고, 그 또한 여러 차례 처리해 봤다고 하더라도 또다시 당부해야 한다. 당부하지 않으면 그는 의식하지 못하고 처리하지도 못한다. 그러니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든 단계를 일일이 당부해야 한다. 한마디라도 빼먹었다간 그는 하지 않는 것도 모자라 그 일을 망쳐 놓을 것이다. 네가 다시 그의 문제를 지적하면 그는 치우친 논리를 잔뜩 늘어놓으면서 막무가내로 굴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무감각한 모습이다.
동물에서 환생한 부류의 무감각한 특징은 무척 뚜렷하다. 예를 들어 진리를 교제함으로써 그는 교회 리더가 실질적인 사역을 하는지, 기준에 맞는 리더인지 아니면 거짓 리더나 적그리스도인지 분별하는 방법을 도리상으로는 이해한다. 그런데 본 교회의 리더가 어떤 부류인지 분별해 보라고 하면, 교회 리더의 모습을 보고도 어떻게 분별해야 할지 모른다. 그에게 “당신네 교회 리더가 실질적인 사역을 하나요?”라고 물으면 그는 “제가 봤는데, 매일 예배하고 활발하게 일을 처리하더라고요. 형제자매한테 책도 배포하고 복음 전도 사역도 챙기고요.”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사역은 잘하나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인가요?” “그는 직장과 가정을 모두 버렸습니다. 부모가 찾아와도 본분을 이행하느라 만날 시간이 없어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일 겁니다.” 그는 교회 리더의 겉모습만 볼 줄 알며, 리더가 뒤에서 악을 잔뜩 행하는 것을 봐도 그것이 문제임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것이 문제인 줄도 모른다. 그런 일들이 눈앞에서 아무리 많이 일어나도 그는 보지 못하는 듯하다. 그는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는 게 아니라 마치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 같다. 이런 사람은 무감각한 것 아니냐? (그렇습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무감각한 것이다. 악령 역사가 있는 사람은 평소 초자연적인 일에만 집중하고 “어떤 소리를 들었어요.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시고 빛 비춰 주셨어요. 저를 인도해 주시고 제 안에서 계시해 주셨지요.”라며 늘 느낌에 관한 일만 이야기한다. 이런 사람을 만나면 그는 이런 생각을 한다. ‘저 사람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구나. 저 사람은 계시를 받았는데 왜 나는 그러지 못할까?’ 그는 그것이 악령 역사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그러다 어느 날 그 사람이 발작을 일으켜 사람들 앞에서 발광하며 벌거벗은 채 온 거리를 쏘다니는 걸 보고 나서야 그가 악령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실 발작을 일으키기 전부터 그 사람은 이미 적잖이 조짐을 보였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근거로 그 사람을 악령 역사가 있는 사람으로 규정하여 진작에 제명하고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무감각해서 알아차리지 못했고 그런 사람이 교회에 남아 있으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의식하지 못했다. 이러면 재앙을 불러일으키기 쉽지 않겠느냐? 심지어 일부 악령과 악귀가 사람을 해치는 지경에 이르러도 무감각한 사람은 알아차리기는커녕 그가 하나님을 무척 사랑하는 줄 안다. 늘 밤새 하나님 말씀을 읽고 찬양을 배우며, 며칠 동안 끼니를 거르고 잠을 자지 않아도 피곤해하지 않고 힘이 넘친다면서 말이다. 누가 봐도 비정상인데, 그는 그것을 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니, 너무 무감각하지 않으냐? 무감각한 사람은 한편으로는 일을 간파하지 못해 표면적인 현상을 통해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볼 줄 모른다. 그러다 보니 하나의 문제를 정확하게 규정하지 못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정상적인 사고방식과 변별 능력이 없기 때문에 주위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이런 부류는 한 곳에서 삼 년, 오 년 동안 살아도 “그쪽 날씨에는 어떤 특징이 있나요? 계절마다 어떤 특징이 있죠? 사람이 살기 괜찮나요?”라고 물으면 답을 하지 못한다. “특징은 무슨 특징이에요. 저도 몰라요. 어쨌건 4월이 되면 꽃이 피고, 9월, 10월이 되면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지긴 해요. 겨울이 되면 눈도 내리고요.”라고 말할 뿐이다. “그쪽 풍토나 인심은 어때요? 사회 제도는요? 인종 차별 같은 건 없나요? 정부 정책은 어떤가요? 외지인을 대하는 태도는 어떻죠?”라고 물어도 아무것도 모른다. 눈만 껌뻑일 뿐 아무 말도 못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종교 신앙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에 대해서도 답을 못 한다. 그저 “어쨌든 저희가 생활하면서 정부가 저희를 곤란하게 한 적은 없었습니다.”라는 말만 할 줄 안다. 그는 목석처럼 아무것도 모르는데, 이것이 바로 몹시 무감각한 것이다. 본분을 이행하느라 너무 바빠서 그런 일을 정리할 겨를이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건 핑계 아니냐? (그렇습니다.) 핑계가 틀림없다. 그렇게 간단한 일을 특별히 신경 쓰거나 기록할 필요가 있겠느냐? 필요 없다. 정상 인성의 사고를 갖췄고, 한 곳에서 3년 이상 살았다면 현지 기후의 특징, 풍토나 인심, 생활 습관, 신앙 환경, 정부의 정책, 그리고 외지인에 대한 태도를 대체로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특별히 알아보고 파악하거나 정보를 수집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정상 인성의 사고를 갖춘 사람이라면, 그런 일들은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정상인이 알 수 있고 똑똑히 볼 수 있는 문제를 모른다면, 이는 무엇을 의미하겠느냐? 정상 인성의 사고와 이성을 갖추지 못했고, 정상 인성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상 인성에 미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이런 부류가 사람이 아닌 동물에서 환생했기 때문이다.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무감각함의 특징이 뚜렷하다면 이는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방금 교제한 동물에서 환생한 부류의 특징을 통해 너희는 무엇을 깨달았느냐? 이런 부류의 사람에게 치우침과 무감각함이라는 두 가지 특징이 두드러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느냐? (그렇습니다.) 어째서 이런 부류에게 이 두 가지 모습이 보이겠느냐? 그의 인성에 무엇이 부족하겠느냐? (정상적인 사고가 부족합니다.) 꽤 적절한 답이다. 그는 사람의 지능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겉으로 봐도 이런 부류는 자질이 부족한 것처럼 보인다. 어느 정도로 부족하겠느냐? 치우친 데다가 무감각하다. 정상 인성은 늘 직면하며 혼자 힘으로 처리하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을 그는 감당하지도, 해결하지도 못하며 그저 유치하고 황당하며 미숙한 모습만 보인다. 더 심각한 것은 일부 사람들은 혼자 힘으로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 스스로 밥벌이도 못 한다는 것이다. 나가서 일하거나 어떤 직업에 종사해도 그 일을 감당하지 못하니, 어딜 가도 고용주가 쓰려 하지 않고 퇴짜를 맞는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활 반경 내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문제, 이를테면 살면서 자주 부딪히는 문제는 물론, 자질구레한 일들까지 무엇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굉장히 간단한 문제도 그는 엉망으로 처리하고 아무렇게나 규례에 맞춘다. 그가 처리하는 수법이나 방식은 대단히 우둔하고 미련하다. 성인으로서 세상일을 처리하는 방식이나 수단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이런 사람은 사람의 지능을 갖추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병에 걸려서 늘 몸이 아팠는데, 자료를 찾아보니 어떤 중병이나 큰 병에 걸렸을 것이라고 했다. 극심한 두려움에 떨던 그는 병원을 찾아가 검사를 받았다. 의사가 “심각한 병이군요. 치사율이 무척 높아요. 치료받지 않으면 병세가 심해져 죽을 겁니다. 수술해야 나을 수 있어요. 그러지 않으면 길어야 3개월밖에 못 살 겁니다.”라고 하자 그는 기겁하여 어쩔 줄 몰라 하며, 재검해서 확인해 보지도 않은 채 의사의 말대로 수술하기로 했다. 수술 전에 어떤 주의 사항이 있는지, 치료하고 나면 후유증은 없는지 묻지도 않았다. 그는 이런 문제들을 물어볼 줄도 모르고, 그저 의사의 말에 덜컥 겁을 먹고는 의사의 말에 따라 고분고분 수술대에 올랐다. 그 결과 수술하고 나서 여기저기 아픈 곳이 생겼고, 약을 먹어도 소용없었다. 얼마 후 그는 이 병은 수술할 필요가 없다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게 됐다. 그다지 심각한 병도 아니라서 운동을 하고 흔히 쓰는 약을 좀 먹으면 악화되지 않고 서서히 호전된다는 것이었다. 의사들은 돈을 벌려고 무서운 말로 환자에게 겁을 줄 때가 있다. 아무런 생각도 없고 판단할 줄도 모르는 그는 의사의 말에 겁을 먹고 의사가 하자는 대로 수술한 것이다. 이런 일이 생겼을 때 곁에 대신 검토해 줄 수 있는, 생각이 있고 주관이 있으며 지능이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는 시행착오도 겪지 않고 고생도 덜 수 있었을 것이다. 그에게 이런 일을, 특히 중요한 일을 혼자 처리하라고 하면, 좌우로 치우쳐서 다른 사람 때문에 곤경에 처하거나 해를 입는다. 늘 극단으로 치닫는다는 말이다. 그는 원칙에 따라, 혹은 이런 일을 처리할 때 흔히 적용하는 방식과 방법에 따라 종합적으로 판단한 다음 가장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방법을 찾아 대할 줄 모른다. 그러니 누구라도 그를 속일 수 있고 농락할 수 있으며 그를 휘두르거나 미혹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런 부류는 주관이 없는 것 아닌가요?” 정말 주관이 없는 것이 아니다. 너희도 알다시피 그는 나쁜 짓을 하고 그릇된 논리를 떠들 때는 얼마나 주관이 뚜렷한지 모른다. 그는 누가 옳은 말을 해도 듣지 않고 인정하지 않으며 그저 자신의 그릇되고 비뚤어진 논리만 떠들어 댄다. 정말 정상적인 이성과 사고로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마주하고 올바로 대하며 처리해야 할 때 그는 어떤 방식과 절차로 처리해야 하는지 모르고,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아무런 방식이나 방법도 없고 주관도 없으니, 결국 남들에게 휘둘리다가 그들이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상 인성의 지능을 갖추고 있지 않다는 것이 동물에서 환생한 부류의 특징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그릇되고 비뚤어진 논리를 고집하는 것도 모자라 그것을 입 밖으로 쏟아 내고 여기저기 떠들겠느냐? 그것이 바로 그의 지능으로는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그릇된 논리인지, 무엇이 정상 이성에 부합하고 무엇이 이성에 부합하지 않는지 분별하지 못한다는 증거이다. 그는 구분할 줄 모르기 때문에 옳은 논리를 말해 주어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자신의 치우친 논리와 비뚤어진 논리만 고집하며 그것이 옳은 줄 안다. 누가 어떤 방식으로 말하든, 또 그 방식이 아무리 훌륭하고 지혜로워도 그는 귀담아듣지 않고 알아듣지도 못한다. 그러면 끝장이다. 그게 바로 정상 인성의 지능이 없는 것이다. 설령 일상 속 지극히 정상적인 일에 관한 도리를 말해 준다 한들 그는 전혀 말이 통하지 않고, 여전히 자신의 비뚤어진 논리를 고집하려 한다. 남들이 보면 ‘뭐 저런 이상한 사람이 다 있어? 어쩜 저렇게 말이 안 통하지? 저 사람은 정신 나간 사람 같기도 하고 어린애 같기도 해. 왜 저렇게 철없는 말만 할까?’라고 생각하는데, 그렇다고 그가 어린 것도 아니다. 오륙십 대에도 그렇고 팔십 대가 되어서도 여전하다. 평생 지능이 온전치 못한 사람이니 죽을 때까지 정상인의 사고와 지능을 갖추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동물에서 환생한 사람의 특징이다. 이 특징은 뚜렷하지 않으냐? (뚜렷합니다.) 예를 들면, 얼굴은 예쁘장한데, 건달의 꼬임에 넘어가 그와 같이 살게 된 어리석은 여자가 있다. 그런데 그녀는 남자가 밖에서 바람을 피우는 것을 알고도 화내지 않는다. 어쨌든 자기한테 잘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나중에 그가 또 다른 여자를 꾀어서 놀아나는 걸 알고도 그녀는 개의치 않고 끝까지 그를 따르며 이런 말까지 한다. “그가 절 버리지만 않으면 돼요.” 누가 “저런 남자랑은 같이 살지 마세요.”라며 말려도 그녀는 “안 돼요. 못 헤어져요. 그는 절 사랑해요. 저도 그가 좋고요!”라고 한다. 이런 사람은 평생 건달을 따라다니며 고생해도 싸다. 그녀는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이고 제대로 된 사람인지 분별할 줄 몰라서 건달을 만나고도 그가 자기를 무척 사랑하는 줄 안다. 그 건달은 그녀에게 그럴싸한 말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사 주면서 구슬린 다음 그녀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논다. 그러면서 뒤에서 바람을 피우다 들키고도 말 몇 마디로 얼버무리며 넘어간다. 자기를 속였는데도 그녀는 간파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그녀는 그 남자에게 재산과 집을 모두 빼앗긴 채 버림받는다. 그녀는 양심이 없는 놈이라며 그를 욕하지, 자기가 사람 볼 줄 몰라서 속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그 건달이 왜 다른 사람이 아닌 그녀를 속였겠느냐? 그녀가 어리석어서 그런 것 아니겠느냐? 이런 부류에게는 무슨 일이든 편집적이고 터무니없게 받아들이고 대한다는 것 말고도 또 하나의 주된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정상 인성의 지능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부류를 두고 동물에서 환생했다고 한다. 그는 동물이기 때문에 사람의 지능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그가 사람의 지능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은 그 내면의 본질이 사람의 본질이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사람의 일에 대응하지 못하며, 정상인이라면 처리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를 처리하지 못하고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의 일상생활이나 세 끼 식사, 의식주 그리고 인간관계, 주변 환경 등에 대해서도 그는 무감각하다. 그리고 어떤 일들이 닥쳐서 마주하고 처리해야 할 때 그는 정상인의 지능이 없으니, 지혜를 갖추지 못했음은 더욱 말할 나위도 없다. 이런 문제에 직면하면 그는 처리하는 데 애를 먹고 힘들어하며 미련하기까지 하다. 그는 나이를 꽤 먹었고 살아온 세월도 짧지 않은데, 어째서 이 일을 이런 식으로 처리하겠느냐? 그의 말을 들어 보면 어찌 이토록 역겹고 거슬리겠느냐? 어째서 정상인 같지 않겠느냐?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고 많은 일을 겪었을 텐데, 이토록 간단한 일을 처리하면서 어떻게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냐? 최소한 갖추어야 할 기본 인성이나 사람이 지니고 있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원칙조차 없다.
클릭하세요! 하나님에게서 온 기쁜 소식이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게 임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