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 제 1 부

‘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에 관한 첫 번째 실행 ― 내려놓기

‘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라는 주제에 관해 참으로 오랫동안 교제하였다. 교제한 내용은 모두 ‘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와 관련된 한 측면의 실행인 ‘내려놓기’에 관한 것이었다. 즉, 교제한 내용은 모두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며, 또한 사람이 생활 속에서, 그리고 걷는 인생길에서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의 진리 추구에 지장을 주는 것이 바로 이것들이다. 그렇다면 ‘내려놓기’의 첫 번째 내용은 무엇이냐? (‘사람의 각종 부정적인 정서를 내려놓기’입니다.) 두 번째 내용은 무엇이냐? (‘사람의 추구와 이상, 바람을 내려놓기’입니다.) ‘내려놓기’의 첫 번째 내용은 ‘각종 부정적인 정서를 내려놓기’이고, 두 번째 내용은 ‘사람의 추구와 이상, 바람을 내려놓기’이다. 각 내용에 포함되는 소 주제나 세부 내용이 적지 않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교제한 내용이 무엇이고, 이 내용들의 유형과 항목이 무엇이든, 또 얼마나 많은 사례를 들었고 얼마나 많은 내적 상태와 문제의 본질을 폭로하였든, 어쨌든 교제한 이 내용들은 모두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이나 실생활 속에서 직면하는 각종 문제, 그리고 그런 문제에 직면할 경우 택해야 할 실행의 길과 지켜야 할 진리 원칙에 관련된다. 그 문제들에 연관되는 각 측면의 내용은 공허한 것이 아니며 사람의 생각이나 정신세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현실 생활에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네가 진리를 추구하길 원한다면, 어떤 측면의 문제에 봉착하든 진리를 구해 상응하는 진리 원칙을 찾음으로써 그것을 근거로 삼고 실행의 길을 찾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그런 문제들에 직면했을 때 실행의 길을 얻기를 바란다. 이것이 바로 이 모든 내용을 교제하는 기본적인 목적이다. 비록 이런 진리에 대해 다 교제했지만, 사람이 진리 실제에 진입하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린다. 사람은 이러한 진리를 교제할 때부터 각 측면의 진리 원칙을 토대로 각종 일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고, 생활 태도와 생존 방식을 바꿔야 한다. 그러면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과정이나 생활하고 생존하는 과정에서 자기도 모르게 그 진리 원칙들을 받아들임으로써 사탄에게서 비롯된 기존의 낡고 오래된 각종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사상 관점, 혹은 생존의 태도나 방식을 바꾸고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게 된다. 따라서 이전에 교제한 그런 말씀이나 앞으로 교제할 말씀은 일종의 지식이나 학술이 아니고 당연히 일종의 이론도 아니다. 그것은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직면하는 각종 난제나 어려움을 해결하도록 지도하고 인도하며 도와주기 위한 것이다. 한 측면의 문제나 한 가지 환경, 한 측면의 사람과 일, 사물에 직면했을 때 너는 교제한 이 내용들 속에서 자기가 지키고 실행해야 할 진리 준칙을 찾으면 된다. 그러면 사람의 패괴 성품이나 낡고 그릇된 관점에 따라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근거와 준칙으로 삼아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진리를 추구하는 것인데, 진리를 추구하는 목적은 사람의 공허한 생활을 채우고 변화시키거나 사람의 정신세계를 풍요롭게 하는 것이 아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고 구원에 이르기 위한 것이다. 물론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는 것은 하나님에게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기 위함이기도 하다. 그런데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 목적과 의의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단순히 한 사람이 구원받는 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사탄의 패괴 성품에 농락당하지 않는 한 사람을 하나님이 얻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는 부류의 사람을 얻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피조된 인류 중에서 그가 원하는 만물을 관리할 수 있고 만물과 함께 언제까지나 존재할 수 있는 한 부류의 사람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그저 구원받는 것에 불과하지만 그 의의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그러니 사람의 관점에서 보든,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든 진리 추구는 모두 대단히 중요하다. 이렇게나 중요하다면, 진리 추구와 관련된 한 측면의 실행인 ‘내려놓기’의 내용은 구원에 이르는 것을 추구하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매우 중요하다. ‘내려놓기’라는 측면의 실행이 이토록 중요하다면, ‘내려놓기’와 관련된 각 측면의 진리 원칙, 그리고 폭로한 ‘내려놓기’의 실행에 관한 각 측면의 내적 상태, 패괴 성품의 표출, 패괴된 사상 관점은 사람이 반드시 확실하게 인식해야 하는 한 측면의 내용이다. 사람은 오직 일상생활에서 늘 표출하는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사상 관점, 그리고 사람의 패괴 성품과 패괴 표출을 성찰하고 인식함으로써 자신을 인식하고 한 측면의 진리를 깨닫고 받아들인 후 상응하는 진리 원칙대로 실행해야만 진리 추구의 목적을 이룰 수 있다. 이 단계에서는 ‘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 중에서 ‘내려놓기’의 두 가지 내용에 대한 교제를 기본적으로 마무리 지었다. 첫 번째 내용이 무엇이더냐? ‘사람의 각종 부정적인 정서를 내려놓기’이다. 두 번째 내용은 무엇이었느냐? ‘사람의 추구와 이상, 바람을 내려놓기’이다. 이 두 가지 내용에 관해 많이 교제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네가 이 주제들과 관련된 모든 구체적인 진리 원칙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진리 원칙을 알아야만 일상생활에서, 인생의 길에서 진리 원칙에 따라 처신하고 일을 처리해 점차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있고,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차츰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얻는 성과를 거둘 수 있다.

하나님과의 간극과 하나님에 대한 적대감을 내려놓기

앞에서 교제한 ‘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에서 ‘내려놓기’의 두 가지 실행 내용은 사람의 패괴 성품, 온갖 사상 관점,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직면하는 각 측면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내려놓기’의 내용에는 더 중요하거나 더 크다고 할 수 있는 내용이 하나 더 있으니, 우리가 교제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측면의 내용이겠느냐? 바로 하나님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 사상 관점,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을 대하는 실행 원칙이다. 이 측면의 내용은 앞의 두 가지 내용보다 좀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측면의 내용은 하나님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와 사상 관점에 직결되고,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이 측면의 내용을 ‘내려놓기’ 항목에서 가장 마지막에 다루고자 한다. 물론 가장 중요한 내용이기도 하다. 예전에 다루었던 두 가지 내용 중에는 하나님을 대하는 사람의 일부 태도와 관점, 혹은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와 관련된 주제가 일부 있었다. 그러나 교제한 내용의 관점에서 보면, 기본적으로 사람의 관점에서 사람의 각 측면의 문제를 해부한 것으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다방면의 문제를 배경으로 사람의 각 측면의 패괴 성품이나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사상 관점을 해부하였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와 사상 관점에 관련된 한 측면의 내용을 교제할 것이다. 이 측면의 내용은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내려놓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이 측면의 내용 역시 그리 단순하지 않다. 어떤 사람이든, 혹은 어떤 부류든 단 한 가지 태도나 단 한 가지 사상 관점으로만 하나님을 대하지 않기 때문이며,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도 당연히 단 한 가지 관계만 있거나 사람의 한 가지 내적 상태에만 관련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대하는 사람의 각종 태도나 하나님의 신분과 지위, 하나님의 형상에 대해 사람이 품고 있는 각종 사상 관점 등 이런 이유로 인해 사람과 하나님 간에도 다양한 관계가 생겨난다. 그러면 오늘은 이런 측면의 내용을 교제해서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과연 아직도 어떤 심각한 문제나 봉합할 수 없는 갈등이 존재하는지, 그리고 사람이 내려놓아야 할 것에는 과연 또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자. 이렇게 알아보고 나면 네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일 경우 너와 하나님의 관계가 개선될 것이고, 하나님을 대하는 네 관점이 차츰 올바르고 긍정적이거나 진리에 부합하는 쪽으로 바뀌어 갈 것이다. ‘내려놓기’와 관련된 세 번째 측면의 내용은 ‘하나님과의 간극과 하나님에 대한 적대감을 내려놓기’이다. 이것이 사람이 내려놓아야 할 세 번째 내용이다. 본격적으로 이 주제를 교제하기에 앞서 우선 일상생활 속 어떤 문제에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간극,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적대감이 존재하는지 간단히 토론해 보자. 사람에게는 자신의 주관적인 문제들 말고도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대할 때 다양한 문제가 존재하지 않느냐? 사람이 각종 사물을 대할 때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사상 관점, 그리고 잘못된 실행 원칙이 다양하게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대할 때도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사상 관점, 실행 원칙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만약 네가 각종 사람과 일, 사물을 진리 원칙에 따라 대하고 실행한다면, 다시 말해 네가 각종 사람과 일, 사물을 대하는 자신의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사상 관점을 인식하는 동시에 이를 시정하고 내려놓은 후 하나님이 사람에게 알려 준 올바른 사상 관점에 따라 각종 문제를 마주하고 해결한다면, 각종 사람과 일, 사물을 대하는 네 실행 원칙이 상대적으로 진리 원칙에 부합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한 사람이 구원받았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느냐? 지금은 그렇다고 볼 수 없다. 만약 오늘 교제하는 내용을 언급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난 각 측면의 일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 원칙에 따라 바라보고 실행하고 있으니, 나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 진리를 추구해서 성과를 거둔 사람일 거야. 구원받은 사람일 거라고.’ 오늘 언급하는 ‘하나님을 대하는 사람의 각종 태도’라는 주제를 통해 살펴보면, 이 생각이 사실에 부합하느냐? (부합하지 않습니다.) 분명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각종 사람과 일, 사물을 대할 때 너는 어느 정도 근거와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는 있지만, 너와 하나님 사이에는 여전히 여러 간극이 존재한다. 각종 문제에서 너는 여전히 적대시하는 태도로 하나님을 대하니, 이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다. 비록 네가 하나님을 따르며 본분을 이행하는 동안 보여 준 각 측면의 모습이 남들 앞에서 제법 체면이 서고 겉으로도 진리와 원칙에 부합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네 마음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수많은 관념과 간극이 존재하고, 심지어 많은 문제에 봉착하면 여전히 적대시하는 태도로 하나님을 대한다면, 이 문제들은 무척 심각하다. 만약 네 마음속에 이런 문제들이 존재한다면, 네가 구원받은 자라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 왜냐하면 너와 하나님 사이에 여전히 많은 간극이 존재하고, 핵심적이고 중대한 문제에서 여전히 네게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태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너는 구원받은 자가 아닐뿐더러 오히려 위험인물이다. 설령 네가 생활 속에서 많은 일에 직면했을 때 다 진리 원칙대로 행하고 상대적으로 진리에 부합하게 행한다고 생각하더라도 이는 그저 표면적인 현상일 뿐, 네가 구원받았다는 증거가 될 수 없다. 너와 하나님의 관계가 아직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않았고, 네가 아직 하나님에게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않기 때문에 각종 일이 일어났을 때 겉으로 보이는 너의 행위나 사상 관점은 네가 이 일들에서 그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도리나 구호, 규례만을 준수했지, 진리 원칙은 준수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 줄 뿐이다. 여기에는 다소 변증법적인 관계가 있을 수 있다. 무척 복잡하게 들리겠지만, ‘하나님과의 간극과 하나님에 대한 적대감을 내려놓기’라는 주제의 구체적인 내용을 교제하고 나서 다시 곰곰이 성찰해 보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과의 간극과 하나님에 대한 적대감을 내려놓기’라는 주제를 본격적으로 교제하기에 앞서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어떤 간극이 존재하는지 먼저 토론해 보자. 일상생활에서 네가 느끼고 의식할 수 있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일어나는 하나님과의 간극,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적대감에는 무엇이 있느냐? 그런 모습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매일 사람의 주위에서 일어나고 네게서도 일어나는 일이니, 이 문제들은 굳이 힘들게 생각하지 않아도 바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간극에는 과연 어떤 것들이 있느냐? 먼저 간극에는 무엇이 포함되는지 말해 보자. 갈등, 불복, 관념, 오해 등이 포함되지 않겠느냐? 너희가 더 말해 보아라. (본분을 이행하면서 드러나거나 책망과 훈계를 받으면 하나님을 오해하고 경계합니다. 이행하는 본분이 중요할수록 빨리 드러난다는 생각에 마음속에 하나님과의 간극이 생겨 일부 본분이나 부탁을 마음에 거리낌이 없이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여기에서의 간극은 무엇이냐? (경계와 오해입니다.) 경계와 오해는 한 측면의 간극이다. 누가 또 이어서 말해 보아라. 다른 사람은 하나님과의 간극이 없느냐? 마음이 깨끗하고 성결하단 말이냐? 하나님에게 그 어떤 부정적인 생각을 전혀 가져 본 적이 없느냐? (하나님, 제가 한 가지 말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순조로운 환경을 배치하실 때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적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역경이나 제 관념에 어긋나는 일이 생길 때면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지, 이어서 무엇이 닥칠지, 앞으로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지 추측하고 많은 생각을 합니다. 심지어 원망하거나 속으로 하나님을 판단하고 오해하기까지 합니다. 이럴 때 제 마음은 닫혀 버리고 맙니다. 또 한 가지 제가 본 것을 말해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마음에 들지 않는 환경에 처하면, 속으로 반발하며 이런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나만 이런 환경에 처하게 하시는 거지? 왜 다른 사람은 이런 환경에 처하지 않지?’ 하나님께서 배치하신 환경에 순종하지 못해 하나님과 갈등이 일어난 것입니다.) 네가 앞에서 말한 일은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간극이 있는 것으로, 어떤 환경에서 조건 반사적으로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간극이 생기고 하나님을 경계하고 오해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 말한 일은 사람이 마음속으로 불복하여 하나님을 적대시하게 된 것이다. 또 누가 계속 말해 보아라. (상부로부터 책망과 훈계를 받아 저의 부족한 자질이 드러나면, 저는 스스로를 규정합니다. 구원받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진리를 추구하려 해도 의욕이 생기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일종의 오해입니다. 또 어떤 형제자매들은 병에 걸려 죽음을 앞두면 ‘예전에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고 헌신했는데, 설마 전혀 기억 안 하시겠어?’라고 생각합니다. 속으로 하나님께 이치를 따지고 대들며 대항하는 거죠. 이런 내적 상태도 무척 많습니다.) 하나님과의 간극과 하나님에 대한 적대감이라는 측면에서 많은 사람이 드러내는 문제는 기본적으로 경계와 오해, 그리고 어떤 일들이 닥쳤을 때 사람이 드러내는 불복과 불만, 다시 말해,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적대감이다. 대체로 이런 것들이다. 너희가 교제한 이 문제들 외에 사실상 사람이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대하는 온갖 태도의 문제는 비단 여기에 그치지 않고 훨씬 많다. 너희가 의식하지 못하는 문제들도 있다. 한 가지 측면에서 보면 이는 사람이 여러 환경을 체험할 때 자기에게 어떤 문제들이 있는지 성찰하지 않기 때문이고, 다른 측면에서 보면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가 과연 어떤지, 혹은 사람이 어떤 태도와 관점으로 하나님을 대해야 올바른지를 결코 깊이 고민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늘은 사람의 여러 모습과 사람에게 현재 실제로 존재하는 이런 상태들을 근거로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간극, 그리고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사람의 여러 모습에 대해 구체적으로 교제해 보자. 이런 다양한 모습을 교제함으로써 사람은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과 간극이 생기거나 하나님을 적대시하게 될 때, 하나님과의 간극과 하나님에 대한 적대감을 자발적으로 내려놓을 수 있게 되어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조화로운 관계가 형성되고, 결국 하나님과 완전히 합하게 된다. 그러면 하나님과의 간극과 하나님에 대한 적대감을 완전히 없애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에게 진실로 순종하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사람과 하나님의 정상적인 관계이고, 이런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피조물이다.

1. 하나님에 대한 관념과 상상 내려놓기 ― 하나님 사역에 대한 관념과 상상 내려놓기

1)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을 매우 초자연적이고 막연하게 상상한다

‘하나님과의 간극과 하나님에 대한 적대감을 내려놓기’에서 사람이 내려놓아야 할 첫 번째 사항은 관념과 상상이다. 이는 매우 중요한 한 가지 내용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관념과 상상은 모든 사람에게 존재하지 않느냐? (존재합니다.) 모든 사람은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더군다나 로봇도 아니다. 그는 자유 의지가 있고 바깥 세계로부터 받아들인 온갖 사상 관점도 가지고 있다. 물론 주관적인 바람 속에서 자신의 필요나 기호, 그리고 욕망에 따라 생겨난 하나님에 대한 온갖 관념과 상상도 가지고 있다. 관념과 상상이라고 불린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진리에 부합하지 않고 사실과도 부합하지 않으며, 최소한 하나님의 뜻이나 하나님의 신분과 본질에도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관념과 상상은 사람이 내려놓아야 할 주요한 첫 번째 항목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에 대한 관념과 상상에 관련된 내용에는 주로 어떤 것이 있느냐? 사람이 하나님을 믿기 전에 하나님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기존의 관념이 한 측면이고, 그 외에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나서 생긴 새로운 관념도 있다. 이런 새로운 관념은 좀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관념과 상상이다. 하나님을 믿기 전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에 대한 상상으로 가득하다. 이 상상은 인류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관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중국인이 하나님을 믿지는 않아도 하나님을 하늘님이라고 칭하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비교적 많은 서양에서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하나님(上帝)이라고 칭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많지만, 대다수가 하나님이 있다고 믿고 있고, 하나님에 대해 수많은 상상을 한다. 사람은 하나님이 만유 가운데 존재하고 만유를 뛰어넘는 무소부재, 무소불능의 신통력이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런 하나님은 과연 누구겠느냐? 이를 아는 사람은 없다. 어쨌든 하나님은 무엇보다 크고, 모든 것을 주관한다. 하나님의 구체적인 형상은 어떤 모습이겠느냐?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는 저마다 상상하고 규정한 하나님의 얼굴과 형상이 존재한다. 인류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이런 관념, 상상들은 예전에 모두 언급했으니, 이것들은 오늘 교제할 주된 내용이 아니다. 오늘 교제할 내용은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간극,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적대감과 관련된 온갖 관념과 상상 중에서 사람이 내려놓아야 할,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본질에 부합하지 않는 각 측면의 관념과 상상이다. 공허하고 허무맹랑한 관념과 상상들은 다루지 않을 것이다. 지금 너희의 분량이라면 기본적으로 그것들은 별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고, 너희가 진리를 추구하는 데 지장을 주지 않을 것이며, 더욱이 너희가 하나님을 따르는 데도 지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설사 몇몇 사람의 마음속에 여전히 막연한 상상이 어느 정도 있더라도 그것이 사람이 하나님을 따르는 데 지장을 주지 않는다면,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닌 것이다. 우리가 교제할 관념과 상상은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와 관련되고, 사람의 본분 이행과 사람이 걷는 길과 관련되며, 당연히 사람의 추구와도 더욱 관련된다.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각종 관념과 상상 중 우선 하나님 사역에 대해 사람은 수많은 관념과 상상을 갖는다. 그런 관념과 상상은 하나님에 대해 이방인이 갖는 여러 상상보다 훨씬 현실적이어서 공허하지도 않고 막연하지도 않다. 이는 하나님을 따르는 과정에서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에게는 하나님 사역에 대한 막연하고 실제에 부합하지 않는 수많은 관념과 상상이 가득하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사람은 하나님 사역이 이적으로 가득하고, 사람이 예측할 수 없거나 사람이 이를 수 없는 기적으로 가득하다고 상상한다. 물론 여기에서 사람의 가장 큰 관념과 상상은 하나님 사역이 삽시간에 사람을 온전케 하거나 말씀 한마디, 이적과 기사 하나로 단번에 사람을 변화시켜 육적인 생활과 육체의 온갖 현실적인 어려움에서 벗어난 사람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즉, 이 사람은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며 로봇처럼 육적인 욕구가 없다고 여긴다. 또한 생각도 단순하고 사심이나 잡념이 없으며 그의 내면은 무척 성결해서 진리를 추구할 필요가 없고, 오랜 세월 진리를 교제하거나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일 필요도 없으며, 그저 하나님 말씀 한마디면 성취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되라고 하면 되고 이루리라 하면 이루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당초 하나님의 세 번째 단계 사역을 받아들일 때 사람에게는 더더욱 하나님 사역에 대한 온갖 관념과 상상이 가득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사역이 곧 끝날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느 해, 어느 달, 어느 날에 끝날지는 알지 못했지만, 마음이 조급해지고 심지어 직장과 가정을 버리기까지 했다. 농사를 그만두는 농민도 있었고, 소와 양을 그만 키우는 사람도 있었으며, 심지어 집과 차를 처분하고 은행에 맡긴 예금도 깨서 재산을 한데 모은 다음 금은보화와 귀중품을 챙겨 하나님을 따라갈 준비까지 하는 일부 사람들도 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 사역이 끝나서 사람은 살림살이를 할 필요가 없어졌으며 하나님이 가정과 결혼을 허물었으니 결혼과 일, 자신의 미래를 내려놓고 세상의 모든 향락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들이 “당신은 짐을 진 채 온 가족을 데리고 어딜 가십니까?”라고 묻자 그가 대답했다. “천국에 갑니다.” “천국이 어디 있는데요?” “아직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곳이 천국이죠.” 그것이 한순간의 충동이든, 이미 심사숙고를 거친 생각이든 어쨌든 이런 모습들은 한 가지 사실을 나타낸다. 그것은 바로 사람이 하나님 사역에 대해 수많은 상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어떻게 사역해서 사람을 구원할지,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고 나면 사람이 어떤 느낌일지, 사람이 어떤 상태로 어떤 환경에서 살게 될지 모른다. 그런 것들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과연 무엇인지, 하나님이 사람에게 역사해서 이루려는 성과가 무엇인지에 관해서도 모두 아는 바가 없다. 그럼 사람은 뭘 알겠느냐? 단 한마디 말씀만 기억한다. 바로 하나님의 날이 가까웠고 재난이 임했으며 하나님 사역이 곧 끝날 것이니,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따라가야 한다는 말씀이다. 이것이 사람에게 생겨난 모든 관념과 상상의 근원이자 근거이다. 이런 관념과 상상을 통해 사람은 다양한 선택과 결정을 내린다. 어떤 선택과 결정을 내렸느냐? 세상을 포기하고 학업과 직업을 포기하며 결혼과 가정을 포기하고 심지어 혈육 간의 정까지 포기하는 선택을 한다. 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는 하나님 사역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하나님 사역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목적이 무엇이겠느냐? 들림 받아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로 들림 받겠느냐? 구체적으로 어디로 들림 받든, 그날이 구체적으로 언제이든 어쨌든 지옥에 가지는 않을 것이다. 설령 천국이 아니더라도 높은 곳으로 갈 것이고, 설령 천국이나 형태가 있는 하나님나라가 아니더라도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이 옳다. 하나님이 있는 곳으로 들림 받을 것이다. 사람은 이런 관념과 상상이 완벽하다고 생각하지만, 실현될 수 있겠느냐? 사람이 지금껏 기다렸지만 하나님 사역이 끝나는 결과를 맞이했느냐?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 사역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사람은 실망하고 초조하지 않겠느냐? 후회하지 않겠느냐? 실망한 사람들이 있지 않으냐? 어떤 사람들은 본분을 이행하면서 어려움이 생기니 소극적으로 변한다. 혹은 가정생활에 환난이 닥치거나 박해를 받아 막다른 골목에 몰리니 후회한다. 물론 지금까지 힘들게 견딘 사람들도 쉽지 않았을 것이지만, 확실히 속으로는 매우 가슴을 졸인다. 왜 가슴을 졸이겠느냐? ‘하나님 사역이 어쩜 아직까지도 끝나지 않는 걸까? 하나님 사역이 얼마나 더 남은 거야? 집에 돌아가 살림살이를 해야 하나? 다시 돌아가 일을 하고 세상에서의 미래를 찾아야 하나? 다시 집을 사야 할까? 하나님께서는 답도 없으시고 속내를 밝히지도 않으시네! 하나님 사역이 언제 끝나는지, 어떤 사역을 더 하실지, 사람들이 준비할 수 있게 알려 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 사람들한테 알려 주시지도 않고 그저 진리만 계속 선포하고 교제하시면서 구원받는 것에 관한 이야기만 줄곧 하시네. 앞으로의 일, 미래의 일은 전혀 말씀해 주지 않으시고, 인류가 언제쯤 아름다운 종착지에 들어가는지, 육적인 생활이 언제 끝나는지는 말씀해 주시지 않고 기한 없이 기다리라고만 하신다고.’ 사람은 하나님 사역을 알지 못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이 사람을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구원하는지, 하나님 사역에서 하나님이 어떤 구체적인 사역을 해서 사람이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지 등에 관해서는 모두 분명히 알지 못한 채 시종일관 자신의 관념과 상상 속에 살면서 하나님 사역을 하나의 형식이나 하나의 신기한 마술로 여긴다. 마치 하나님 사역은 그저 하나의 빈말일 뿐인 것처럼, 하나님 사역에는 딱히 구체적인 내용이 없는 것처럼 하나님이 되라면 되고 이루리라 하면 이루어지듯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면 사람들이 모두 변화하여 계시록의 예언처럼 성인이 되고 성결해진다고 생각한다. 하나님 사역에 대해 사람이 어떤 구체적인 생각, 혹은 구체적이지 않은 막연하고 공허한 생각을 하든 어쨌든 사람에게는 하나님 사역에 대한 관념과 상상이 가득하다. 사람은 한결같이 공허한 관념과 상상 속에서 살아가면서 하나님 사역을 대하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모든 항목의 구체적인 사역과 말씀을 대한다. 물론 대다수의 사람이 하나님 사역에 대해 품는 관념과 상상은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사역이 끝나면 사람은 끝까지 견딘 것이고, 하나님 사역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만 있으면, 그때까지 살아남아 있기만 하면 승리하는 것이며, 사람이 버린 것, 바친 것, 고생하면서 치른 대가가 모두 가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점을 통해 한편으로는 사람에게 하나님 사역에 대한 다양한 상상이 가득하다는 것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그 믿음은 도박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의 목숨과 모든 재산은 물론 미래, 결혼,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하나님 사역이 끝날 때까지 견디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사역이 끝났다고 하나님이 선포할 때까지 살아 있기만 하면 한몫 챙길 수 있고 자기가 치른 모든 대가에 대해 보상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금껏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나님 사역에 대해 사람이 갖는 주된 관념과 상상은 무엇이냐? (사람들은 하나님 사역에는 이적이 넘치고, 하나님은 말씀 한마디면 사람을 정결케 하실 수 있으며, 사람이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아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줄 압니다.) 그것이 하나님 사역에 대한 사람의 관념과 상상이다. 또 어떤 측면의 관념과 상상이 있느냐? (사람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역사해서 과연 어떤 성과를 거두려 하는지 모른 채 그저 하나님 사역이 끝날 때까지 견디기만 하면 천국에 들어갈 가망이 있는 줄 압니다.) 그 역시 관념과 상상의 일종이다. 사람은 하나님 사역이 하나의 형식이자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또 무엇이 있느냐?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추구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믿음은 도박의 성질을 띠고 있습니다.) 그것이 관념과 상상이겠느냐?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본질이고 추구의 본질이다. 여기에서 관념과 상상은 무엇이냐? 사람은 하나님을 따르면서 모든 것을 버리고 본분을 이행하기만 하면 마술이라도 부린 듯 사람이 변화한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사람의 생각은 너무나도 공허하고 초자연적이며 막연하다. 사람은 형벌과 심판,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일 필요도, 하나님 말씀의 공급을 받아들일 필요도 없이 그저 이렇게 하나님을 따르면서 시키는 본분을 이행하고 끝까지 따르기만 하면 변화되어 결국 하나님 사역이 끝날 때 천국에 들어가는 줄 안다. 이런 것들이 사람의 관념과 상상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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