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약속하다

2017.09.28

창 17:15~17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그 이름을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세니 어찌 생산하리요 하고”

창 17:21~22 “내 언약은 내가 명년 이 기한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더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함

하나님이 하고자 결정한 사역은 아무도 막을 수 없다

너희는 방금 아브라함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겠지? 그는 하나님이 홍수로 세상을 멸한 후에 택한 인물로, 아브라함이라고 불렸다. 그가 100세, 그의 아내 사라가 90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의 약속이 그에게 임했다. 하나님은 그에게 어떠한 약속을 주려고 했느냐? 바로 성경에서 언급한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주게 하며”라는 약속이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약속했을 때 아브라함의 상황은 어떠했느냐? 성경에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세니 어찌 생산하리요”라는 기록이 있다. 다시 말해, 이 노부부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나이였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느냐? 그는 땅에 엎드려 웃으며 속으로 ‘백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라고 했다. 아브라함은 그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즉, 하나님의 약속을 그저 농담으로 여긴 것이다. 사람이 보기에 그것은 도저히 이뤄질 수 없는 일이었고, 하나님이라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쩌면 아브라함은 그것이 몹시도 웃긴 일이라고 여겼을지 모른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셨으면서 나처럼 나이가 많은 사람은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것도 모르시는구나. 게다가 내게 아이를 낳아 기르라며 아들을 주시겠다니. 이건 불가능한 일이야!’라고 생각하며 땅에 엎드려 웃었다. 또 그는 마음속으로 ‘불가능해. 이건 하나님의 농담일 거야. 진짜일 리 없지!’라고 중얼거렸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진짜로 여기지 않았다.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은 하나님의 눈에 어떤 사람이었느냐? (의인이었습니다.) 어떤 점에서 그를 의인이라고 하느냐? 너희는 하나님이 부른 사람이면 다 의인이고, 완전한 사람이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라고 여기는구나. 참으로 교조적이다! 너희는 이 일을 똑바로 인식해야 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쉽게 정의하지 않으며, 여기에서도 아브라함을 의인이라고 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마음속에는 모든 사람에 대한 평가 기준이 있다. 이 일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어떤 사람이라고 평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태도를 생각해 보아라. 하나님에 대한 그의 믿음이 어떠한 것 같으냐? 막연한 면이 있지 않으냐? 그의 믿음이 큰 것 같으냐? 그렇지 않다! 아브라함의 웃음과 그의 마음속 생각은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을 대변하고 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를 의인으로 여기는 것은 순전히 상상에 불과하며, 아무렇게나 끼워 맞춘 무책임한 평가라 할 수 있다. 아브라함의 웃음과 몸짓을 하나님이 보지 못했겠느냐? 하나님이 알지 못했겠느냐? 하나님은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자신이 정한 일을 바꿀 리 있겠느냐? 그럴 리 없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기로 마음먹고 계획했을 때, 그 일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다.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어떤 태도를 보이든, 하나님은 어떤 영향도, 방해도 받지 않는다.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을 쉽게 바꾸지 않으며, 사람의 태도, 더욱이 무지한 태도 때문에 함부로 계획을 바꾸거나 무너뜨리지 않는다. 창세기 17장 21~22절에 뭐라고 되어 있느냐? “내 언약은 내가 명년 이 기한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더라”라고 되어 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말하든 하나님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이겠느냐? 그때 하나님은 사람에게 얼마나 큰 믿음을 가지라고도, 하나님을 얼마나 알라고도 요구하지 않았으며, 나아가 하나님이 행한 일과 말씀을 이해하라고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신이 하려는 일과 택하려는 사람, 그리고 일의 원칙에 대해 사람에게 완전히 이해하라는 요구도 하지 않았다. 사람의 분량이 턱도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아브라함이 무엇을 하든, 어떤 태도를 보이든, 하나님의 눈에는 모두 정상이었다. 하나님은 결코 정죄하지도 훈계하지도 않았다. 그저 “내 언약은 내가 명년 이 기한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라는 말씀만 남겼을 뿐이다. 하나님이 보기에 그 일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됨에 따라 점차 이루어지고 있었다. 즉, 하나님의 눈에는 이루고자 계획한 일이 이미 이루어진 것이다. 하나님은 그 일을 다 예비한 후 곧 떠나갔다. 사람이 무엇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든지, 사람이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계획하든지 하나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정한 시간과 절차,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발전되어 간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역 원칙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든, 어떻게 인식하든 간섭하지 않지만, 사람이 믿지 않고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계획이나 사역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일은 이렇게 하나님의 계획과 생각대로 이루어졌고, 성경에서 보았듯 하나님은 자신이 정한 시간에 이삭을 태어나게 했다. 사람의 행위와 태도가 하나님의 사역을 막았다는 것이 사실로 증명되느냐? 그렇지 않다!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보잘것없는 믿음이나 관념, 상상이 하나님의 사역에 어떤 영향이라도 주었더냐? 그렇지 않다! 조금의 영향도 주지 않았다! 하나님의 경륜은 그 어떤 사람, 일, 환경의 영향도 받지 않는다. 그가 하고자 뜻을 정한 모든 일은 그의 계획에 따라 제때에 완성되고 이루어지며, 그의 사역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하나님은 사람의 우매함과 무지함은 물론, 하나님에 대한 거부감과 관념조차 개의치 않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사역을 거침없이 해 나간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품이며, 전능함의 발현이다.

―<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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