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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의 그리스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대표적인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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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진리 실제의 진입에 관한 대표적인 말씀

(4) 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의 차이에 관한 말씀

27. 하나님 자신의 사역은 전 인류와 관계된 사역이자 전체 시대를 대변하는 사역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 자신의 사역은 모든 성령 역사의 동향과 추세를 대변한다. 반면, 사도의 사역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이 있은 이후에 이어지는 것으로, 시대를 이끌지도, 그 전체 시대의 성령 역사의 동향을 대변하지도 못한다. 그것은 그저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사역이며, 경영 사역과는 관계가 없다. 하나님 자신이 하는 사역은 경영 사역의 한 항목이지만, 사람이 하는 사역은 단지 쓰임 받는 사람이 이행하는 본분이므로 경영 사역과는 무관하다. 신분, 그리고 행하는 사역이 대변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똑같이 성령의 역사라고 해도 하나님 자신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에는 극명한 본질적 차이가 있다. 또한, 서로 다른 신분을 가진 대상에게 이뤄지는 성령의 역사에도 경중의 차이가 있다. 이것이 바로 성령 역사의 원칙과 범위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 중에서

28. 성육신 하나님의 말씀은 시대를 열고, 전 인류를 인도하고, 비밀을 밝히는 말씀이자 사람에게 새 시대에서 나아갈 방향을 알려 주는 말씀이다. 사람이 얻은 깨우침은 간단한 실천이나 인식에 지나지 않아 전 인류를 새로운 시대로 인도할 수 없으며, 하나님 자신의 비밀도 밝힐 수 없다. 하나님은 어쨌든 하나님이고, 사람은 어쨌든 사람이며, 하나님은 하나님의 본질을 가졌고, 사람은 사람의 본질을 가진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서문> 중에서

29. ‘성육신 하나님’과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성육신 하나님은 신성의 사역을 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신성 사역을 할 수 없다. 각 시대가 시작될 때마다 하나님의 영이 친히 말씀을 하여 새로운 시대를 열고, 사람을 새로운 기점으로 인도한다. 그의 말씀이 끝나면 신성 안에서 이뤄지는 하나님의 사역도 끝난 것이다. 그다음부터 사람들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을 따라 생명 체험에 진입하게 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 하나님과 쓰임 받는 사람의 본질적 차이> 중에서

30. 성육신의 사역은 새 시대를 여는 사역이며, 그에게 쓰임 받는 사람이 그의 사역을 이어서 한다. 사람이 하는 사역은 모두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의 직분 안에 있는 사역이며, 절대로 이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하나님이 성육신으로 사역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낡은 시대를 끝낼 수 없고 새로운 시대를 열 수도 없다. 사람이 하는 사역은 단지 마땅히 해야 하는 것, 즉 사람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사역일 뿐이지, 절대로 하나님을 대표해 사역할 수 없다. 오직 성육신 하나님이 그가 해야 할 사역을 완수할 수 있을 뿐, 그가 아닌 누구도 그의 사역을 대신할 수 없다. 물론 내가 한 말은 모두 성육신의 사역에 대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패괴된 인류에게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 중에서

31.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역이나 성령의 역사에 협력하기 위해 사역하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 모든 선민을 이끌기 위해 사람들 가운데서 일으킨 사람이자 인성으로 협력하는 사역을 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인성으로 협력하는 사역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기에,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와 성령이 사람들 가운데서 하려는 사역이 많은 경우에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 사람을 쓰는 목적은 하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더 잘 깨닫고, 하나님의 요구를 더 많이 충족시키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나 뜻을 직접 깨달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쓰임 받는 사람을 일으켜 이런 사역을 한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이 사람을 인도하는 데 필요한 매개자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소통을 담당하는 ‘통역사’라고 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사람을 쓰는 것에 관하여> 중에서

32.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이 일으킨 자로, 하나님이 자신의 사역을 위해 예비한 사람이며, 하나님 자신의 사역에 협력하는 사람이다. 그의 사역은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고, 신성으로 역사할 때 반드시 필요한, 인성으로 협력하는 사역이다. 반면, 다른 일꾼이나 사도의 사역은 그저 각 시기에 교회에 대한 다방면의 지시를 전달하고 실시하는 것이거나, 교회 생활을 유지하는 일부 단순한 생명 공급 사역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 일꾼들이나 사도들은 하나님께 지정된 자가 아니며, 또한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이라고 할 수도 없다. 이들은 모두 교회에서 선발된 자들로, 한동안의 배양과 훈련을 거쳐 쓰기에 합당한 사람은 쓰임 받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진다. 이들은 모두 교회에서 선발된 자들이므로 일부는 리더가 된 후 실체가 드러났고, 또 어떤 이는 많은 악행을 저질러 결국 도태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이 예비한, 어느 정도 자질과 인성을 갖춘 사람이며, 성령이 미리 예비하여 온전케 한 사람이다. 성령이 그를 완전히 인도하는 것은 물론, 특히 사역 면에서는 성령이 지배하고 주관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민을 인도하는 길에 오차가 생길 수 없다. 하나님은 반드시 자신의 사역에 책임을 질 것이며, 언제든 자신의 사역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사람을 쓰는 것에 관하여> 중에서

33. 하나님의 사역은 모두 그의 경영에 따라 하고자 하는 사역이며 커다란 경영에 관계된 일이다. 반면 사람(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이 하는 사역은 모두 개인의 체험을 공급하고 앞사람이 개척한 길을 이어 다른 체험의 길을 찾아내는 것이며, 성령의 인도를 받아 다른 형제자매들을 인도하는 것이다. 그들이 공급하는 것은 개인의 체험이나 영적 인물의 영적 저술이다. 성령께 쓰임 받기는 하지만 그들의 사역은 6천년 경륜에서 큰 경영과 관계된 사역이 아니다. 그들은 그저 단계별로 성령이 세운 사람으로, 자신의 역할과 수명이 다할 때까지 성령의 흐름 속에 있는 사람들을 이끌 뿐이다. 그들이 하는 사역은 하나님을 위해 적합한 길을 예비하거나 땅에서 하나님이 행한 경영 사역의 한 부분을 이어 갈 뿐이다. 그들은 경영 안에서 더 큰 사역을 할 수가 없고, 더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없으며, 더욱이 아무도 하나님의 옛 시대 사역을 끝낼 수 없다. 그러므로 그들의 사역은 피조물이 자신의 기능을 다하는 것을 의미할 뿐, 하나님 자신이 직분을 다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사역과 하나님 자신이 하는 사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시대를 여는 사역은 사람이 대신할 수 있는 사역이 아니다. 이 사역은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할 수 없다. 사람이 하는 사역은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며, 성령의 감동이나 깨우침을 받아서 하는 사역이다. 그들의 사역은 일상생활에서 사람이 실행해야 하는 길과 하나님의 뜻에 맞게 행하는 길을 이끌어 주는 것이다. 사람의 사역은 하나님의 경영과 관련이 없고 영의 사역을 대변하지 못한다. …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도 몇 가지 새로운 사역을 할 수 있고 몇 가지 옛 시대의 사역을 폐할 수는 있지만, 그들이 하는 사역으로 하나님이 새 시대에 나타내려는 성품과 뜻을 나타낼 수는 없다. 그저 옛 시대의 사역을 버리기 위해 사역을 하는 것일 뿐, 직접적으로 하나님 자신의 성품을 대변하는 새 사역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낡은 방식을 얼마나 버리든, 또는 새로운 방식을 얼마나 가져오든, 그들은 사람을 대표하고 피조물을 대표할 뿐이다. 반면 하나님이 직접 사역할 때는 공개적으로 옛 시대의 방식을 폐한다고 선포하지 않고 시대를 연다고 직접 선포하지도 않는다.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곧장 자신이 하려는 사역을 행한다. 즉, 곧바로 자신이 가져온 사역을 선포하고, 자신이 본래 하려는 사역을 행하며, 자신의 어떠함과 성품을 나타낸다. 사람이 보기에는 그의 성품이 과거 시대와 다르고 그의 사역도 과거의 시대와 다르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그저 사역을 이어 가고 더 심화시키는 것일 뿐이다. 하나님이 사역하는 것은 말씀을 선포하고 직접적으로 새로운 사역을 가져오는 것이지만, 사람이 사역하는 것은 곰곰이 헤아리거나 연구한 뒤에, 다른 사람이 도출한 결론을 기반으로* 인식을 심화하고 실행을 체계화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이 하는 사역의 본질은 ‘정해진 대로 착실히 따르고’, ‘새 신을 신고 옛 길을 가는’ 것이다. 즉,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이 가는 길이라도 하나님이 친히 개척한 길 위에 세워진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어디까지나 사람이고,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의 비밀 1> 중에서

34.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들과 선지자들의 말과 사역은 모두 사람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고, 피조물로서 자신의 기능을 다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성육신 하나님이 말씀하고 사역하는 것은 직분을 이행하는 것이다. 그의 외형이 피조물의 모습을 하고는 있지만, 그의 사역은 기능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직분을 이행하는 것이다. 본분은 피조물에 대해 말하는 것이고, 직분은 성육신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이 둘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어서 서로 바꿔 사용할 수 없다. 사람이 사역한다 함은 단지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사역한다 함은 경영을 하고 직분을 이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많은 사도들이 성령께 쓰임 받고, 많은 선지자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았을지라도 그들이 사역하고 말한 것은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한 것에 불과하다. 그들의 예언이 성육신 하나님이 말한 생명의 도보다 더 대단하게 여겨지고, 심지어 그들의 인성이 성육신 하나님보다 훨씬 뛰어나다 할지라도, 그들은 여전히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지 직분을 이행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본분은 사람의 기능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육신 하나님이 이행하는 직분은 경영과 관련된 일로서,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이다. 성육신 하나님이 말씀하든, 사역하든, 아니면 이적을 나타내든 간에, 한마디로 말해 그가 행하는 것은 경영 사역 중의 큰 사역이다. 이 사역은 사람이 대신할 수 없다. 하지만 사람이 행하는 사역은 단지 하나님의 경영 사역의 어느 단계에서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경영이 없다면, 즉 성육신 하나님의 직분이 없어진다면 피조물의 본분도 없어지게 된다. 하나님이 사역하고 직분을 이행하는 것은 사람을 경영하는 것이지만,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자신의 직책을 수행하고, 창조주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직분을 이행하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나님의 사역은 그의 고유한 본질인 영에게 있어서는 경영을 하는 것이고, 성육신하여 피조물의 외형을 갖춘 하나님께 있어서는 직분을 이행하는 것이다. 그가 어떤 사역을 하든지 모두 직분을 이행하는 것이다. 사람은 오직 그의 경영 범위 내에서, 그의 인도하에서만 자신의 능력을 다하게 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의 구별> 중에서

35. 내 말은 내 어떠함을 대변하지만, 내가 하는 말은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하는 말은 사람이 체험한 것도, 볼 수 있는 것도, 접촉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전부 나의 어떠함이다. 어떤 이는 내가 교제하는 것이 내가 체험한 것이라고만 인정할 뿐, 영의 직접적인 발현이라고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하는 말은 당연히 내가 체험한 것이고, 6천년 경영 사역도 다 내가 하는 것이다. 태초에 인류를 창조할 때부터 지금까지 전부 체험했는데 내가 어찌 말하지 못할 수 있겠느냐? 또한, 나는 사람의 본성에 대해 꿰뚫고 있고 벌써 다 살펴보았는데 내가 어찌 제대로 말하지 못할 수 있겠느냐? 나는 사람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으므로 사람을 형벌하고 심판할 자격이 있다. 사람은 모두 내게서 나왔고, 또한 사탄에 의해 패괴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또, 나에게는 당연히 내가 한 사역을 평가할 자격이 있다. 그 사역은 내 육신이 한 것이 아니지만 그것은 영의 직접적인 발현이고, 모두 나의 소유와 어떠함이다. 그러기에 나는 발현할 자격이 있고, 내가 할 사역을 할 자격도 있다. 사람이 하는 말은 모두 사람이 체험하고 본 것이며, 사람 혼자서도 충분히 생각할 수 있고, 사람의 촉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이러한 일들을 얼마든지 나눌 수 있다. 반면, 성육신 하나님이 하는 말은 영의 직접적인 발현으로, 영이 이미 행했던 사역을 발현하는 것이다. 육신이 체험한 것도, 본 것도 아니지만, 발현하는 것은 여전히 그의 어떠함이다. 육신의 본질이 영이고, 발현하는 것은 영의 사역이기 때문이다. 설령 육신이 도달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해도 영이 이미 행한 사역이다. 하나님은 성육신한 후에 육신의 발현을 통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어떠함을 알게 했고, 하나님의 성품과 그가 하는 사역을 보게 했다. 사람이 하는 사역은 사람들로 하여금 마땅히 진입해야 할 것과 깨달아야 할 것을 더욱 명확하게 하도록 하는 것으로, 사람들을 이끌어 진리를 깨닫고 체험하게 한다. 즉, 사람이 하는 것은 붙들어 주는 사역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인류를 위해 새로운 활로와 시대를 여는 것이며, 평범한 인간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밝혀 그의 성품을 알게 하는 것이다. 즉, 그가 하는 것은 전 인류를 이끄는 사역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 중에서

36. 사람이 하는 사역은 그 사람의 체험과 인성을 대변한다. 사람이 공급하는 것과 사람이 하는 사역은 그 사람을 대변하는데, 여기에는 사람의 식견, 사람의 추리, 사람의 논리는 물론이고, 풍부한 상상력까지 포함된다. 특히 사람의 체험은 사람의 사역을 더 잘 대변한다. 사람의 사역에서 그 사람이 체험한 것과 같은 성분이 묻어나기에 사람의 사역은 사람의 체험을 나타내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소극적인 상태에서 체험을 했다면, 그가 교제하는 말 역시 대부분이 소극적인 성분일 것이다. 반면, 그의 체험이 긍정적이었다면 긍정적인 부분에 길이 있고, 그의 교제는 다른 사람을 고무시킬 것이다. 사람들이 그에게서 긍정적인 부분의 공급을 얻을 수 있는 셈이다. 만약 이 기간에 사역하는 사람이 소극적이라면, 그가 교제하는 말에도 늘 소극적인 성분이 들어 있을 것이다. 이러한 교제는 사람을 가라앉게 하기에, 사람들은 교제가 끝난 후에 자기도 모르게 침울한 기분이 들게 된다. 따르는 사람의 상태는 인도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사역하는 사람의 내면에 있는 것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또한, 성령의 역사는 흔히 사람의 상태에 따라 변하며, 사람의 체험에 맞춰 이뤄진다. 성령의 역사는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고, 사람이 정상적으로 체험하는 과정에 따라 요구한다. 다시 말해, 사람의 교제는 하나님의 말씀과 다르다. 사람은 자신이 본 것과 체험한 것을 교제하는데, 이는 하나님이 행한 사역을 기초로 자신이 깨닫고 체험한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들의 책임은 하나님의 사역이나 말씀이 끝난 후에 실행해야 할 것과 진입해야 할 것을 찾아 따르는 사람들에게 공급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의 사역은 사람의 진입과 실행을 대변한다. 물론, 이러한 사역에는 사람의 경험과 교훈, 또는 일부 사유들이 섞여 있다. 성령이 어떻게 역사하든, 사람을 통해 역사하든 아니면 성육신을 통해 역사하든, 모두 사역하는 사람이 자신의 어떠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성령이 역사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은 모두 사람의 고유한 어떠함을 기초로 이루어진다. 성령의 역사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성령은 근거 없이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실제 상황과 조건에 따라 역사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사람의 성품이 변화할 수 있고, 사람의 낡은 관념이나 사상 또한 바뀔 수 있다. 사람이 말하는 것은 모두 사람이 깨닫고 체험한 것이며,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설령 그것이 도리나 관념이라고 해도 전부 사람의 사유로 닿을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하는 사역은 크기에 상관없이 사람이 체험한 것, 깨달은 것, 그리고 생각할 수 있는 것과 구상할 수 있는 범위를 뛰어넘을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타내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어떠함으로, 사람이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다. 즉, 사람의 사유로 이를 수 없다는 말이다. 그는 전 인류를 이끄는 사역을 선포하는데, 이는 그 자신의 경영과 관계가 있지 사람의 세부적인 체험과는 무관하다. 사람이 말하는 것은 사람의 체험이고, 하나님이 나타내는 것은 하나님의 어떠함이다. 이 어떠함이 바로 하나님의 고유한 성품으로, 사람이 갖출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의 체험은 하나님이 나타낸 어떠함을 기초로 깨닫고 인식한 것이다. 이렇게 깨닫고 인식한 것을 모두 사람의 어떠함이라고 한다. 이는 사람의 고유한 성품과 자질을 기초로 나타내는 것이므로 사람의 어떠함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체험하고 깨달은 것은 교제할 수 있지만, 체험하지도, 깨닫지도 못한 것이나 사람의 사유로 닿지도 못하는 것, 그러니까 사람의 내면에 없는 것을 교제할 수는 없다. 만약 사람이 체험하지 못한 것을 말한다면 그것은 사람의 상상이나 도리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런 말에는 실제가 조금도 없다. 가령 네가 사회의 일을 겪어 본 적이 없다면 너는 복잡한 사회관계를 제대로 교제할 수 없다. 또한, 너에게 가정이 없다면, 다른 사람이 가정사를 교제할 때 너는 그가 말하는 대부분의 문제들을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사람의 교제나 사역은 그 사람 내면의 어떠함을 대변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 중에서

37. 사람이 할 수 있는 사역은 범위가 있고 제한적이다. 한 사람은 특정 단계의 사역만을 할 수 있을 뿐, 시대 전체를 아우르는 사역은 할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을 규례로 이끌게 된다. 사람의 체험에는 모두 범위가 있기 때문에 특정 시기, 또는 특정 단계에만 적용될 뿐이다. 사람이 하는 사역은 하나님이 하는 사역과 비교가 불가능하다. 또한, 사람이 실행하는 길과 깨달은 진리는 모두 특정 범위에 적용되며, 사람이 가는 길이 완전히 성령의 뜻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사람은 성령의 깨우침을 받을 수만 있지, 완전히 성령으로 충만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체험할 수 있는 일은 모두 정상 인성의 범위 안에 있으며, 정상 인성의 두뇌 사유라는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실제적인 것을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다 이 범위 안에서 체험한 것이다. 그들의 진리 체험은 다 성령의 깨우침을 받아 정상 인성의 삶 속에서 체험하는 것이지, 정상 인성의 삶을 벗어나 체험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다 인성의 삶을 유지하는 기초에서 성령이 깨우쳐 주는 진리를 체험하게 된다. 게다가 그 진리는 사람에 따라 서로 다르며, 그 깊이도 사람의 영적 상태에 관련 있다. 그들이 가는 길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의 정상 인성의 삶이자, 성령의 깨우침이 있는 정상인이 가는 길일 뿐, 성령이 가는 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정상 인성의 체험을 보면, 추구하는 사람이 다르기 때문에 성령이 하는 사역도 각기 다르다. 또한, 사람이 체험하는 환경과 범위가 서로 다르고, 사람의 생각과 사유가 섞이게 되므로 사람의 체험에는 서로 다른 정도의 불순물이 섞이게 된다. 그래서 똑같은 진리라고 해도 그 진리에 대한 인식은 개인의 조건 차이에 따라 다르다. 그들이 인식하는 진리의 참뜻은 완전하지 않으며, 단지 어느 한 측면, 또는 여러 측면에 국한된다. 사람이 체험하는 진리의 범위 역시 개인의 조건에 따라 다르므로 똑같은 진리라고 해도 사람마다 인식하는 것이 서로 다르다. 다시 말해, 사람의 체험에는 한계가 있기에 성령의 뜻을 완전히 대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잘 맞는다고 해도, 또 사람의 체험이 성령이 온전케 하려는 사역에 매우 근접한다고 해도 사람의 사역을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볼 수는 없다. 사람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이 맡긴 사역만을 할 수 있다. 사람은 그저 성령의 깨우침으로 얻은 인식과 자신이 직접 체험해서 얻은 진리를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사람은 성령의 대변인이 될 자격도, 조건도 없으며, 사람의 사역을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말할 자격 또한 없다. 사람에게는 사람이 사역하는 원칙이 있고, 사람은 모두 서로 다른 체험과 조건을 갖고 있다. 사람의 사역에는 성령의 깨우침으로 얻은 모든 체험이 포함되지만, 이 체험은 사람의 어떠함을 대변할 수 있을 뿐, 하나님의 어떠함이나 성령의 뜻을 대변하지는 못한다. 그렇기에 사람이 가는 길을 성령이 가는 길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의 사역은 하나님의 사역을 대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람의 사역과 사람의 체험은 완전한 성령의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 중에서

38. 사람이 하는 사역은 흔히 규례에 빠지고, 사역 방식도 유한한 범위 안에 국한되기 쉬워 사람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인도할 수 없다. 그러므로 따르는 사람들도 대부분 유한한 범위 안에서 살며, 체험 방식 또한 제한된 범위 안에 있다. 사람의 체험은 모두 한계가 있고, 사역 방식도 몇 가지에 국한되기에 성령의 사역이나 하나님 자신이 행하는 사역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의 체험은 어쨌든 모두 유한하기 때문이다. 반면, 하나님 자신의 사역은 어떻게 이뤄지든 규례가 없고, 하나의 방식에 국한되지 않으며, 어떤 규례도 없이 자유롭다. 그래서 사람이 하나님을 아무리 오래 따랐다 해도, 그의 사역 방식에서 어떤 법칙도 도출해 낼 수 없다. 비록 그의 사역에는 원칙이 많지만, 항상 새로운 방식으로 이뤄지고 새로운 발전이 있으며, 게다가 그것은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한 시기에 여러 개의 서로 다른 사역을 할 수 있고, 서로 다른 몇 가지 인도를 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언제나 새로운 진입을 할 수 있고, 늘 새로운 변화를 얻을 수 있다. 그의 사역은 언제나 새로운 방식으로 이뤄지기에 너는 그가 사역하는 법칙을 알지 못한다. 이렇게 해야 따르는 사람들이 규례에 빠지지 않는다. 하나님 자신이 하는 사역은 모두 사람의 관념을 피해 가고, 관념을 일축한다. 진심으로 그를 따르고 추구하는 사람만이 어떤 규례의 제약이나 종교 관념의 제한을 받지 않고 성품의 변화를 얻을 수 있고, 또 자유로운 방식으로 살 수 있다. 사람은 사역할 때, 자신의 체험과 자신이 달성할 수 있는 것에 근거해 다른 사람에게 요구한다. 이러한 요구의 기준은 특정 범위에 국한되며, 실행 방법 역시 매우 제한적이다. 그래서 따르는 사람까지 어느샌가 유한한 범위 안에서 살게 되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규례나 의식이 형성되고 만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 중에서

39. 사람이 사역을 하려면 오랜 시간 훈련받고 온전케 되어야만 쓰임 받을 수 있다. 또 매우 훌륭한 인성을 갖추고 정상 인성의 이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하며, 처세의 원칙과 법칙을 많이 알고 사람의 지혜와 윤리 지식도 배워야 한다. 이것은 사람이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성육신 하나님은 그럴 필요가 없다. 그는 사람을 대표해 사역하거나 사람의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자신의 어떠함을 나타내고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을 직접적으로 하기 때문이다(물론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때에 하며, 직분을 이행해야 할 때에 사역하기 시작함). 그는 사람의 생활이나 사람의 사역에 참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그의 인성 안에는 이런 것들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이런 것들을 갖추지 않아도 그의 사역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음). 그는 직분을 이행해야 할 때에 자신의 직분을 이행할 뿐이고, 어떤 지위에 있든 상관없이 오로지 자신이 해야 할 사역만 한다. 사람이 그를 어떻게 이해하든, 그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든, 그의 사역에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의 비밀 3> 중에서

40. 사람의 사역에서 보면, 그 사람의 체험이나 상상, 추리가 아주 높을 수도 있고, 인성이 특히 좋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사람을 탄복하게 할 수는 있어도 경외와 두려움을 자아내지는 못한다. 사람은 사역 능력이 있고 체험이 깊으며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 사람들을 보며 탄복하지만, 어찌 됐든 경외하지는 않는다. 그저 감탄하고 부러워할 뿐이다. 반대로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한 사람은 하나님께 감탄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사역이 사람이 할 수도, 가늠할 수도 없는 것임을 인지하며 신선함과 놀라움을 느끼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면서 가장 먼저 깨닫는 것은 그 사역은 측량할 수 없고 지혜로우며 또 놀랍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그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된다. 또한, 사람은 그가 하는 사역의 비밀이 사람의 사유로 닿을 수 있는 경지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사람은 그의 요구에 다다르고 그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기만을 바랄 뿐, 그를 뛰어넘으려고는 하지 않는다. 그의 사역은 사람의 사유나 상상을 초월하고, 사람이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조차 스스로의 부족함을 모르지만, 그는 사람들 가운데 와서 새로운 길을 열어 사람을 더 새롭고 더 아름다운 세상으로 인도했다. 그로 인해 인류는 새로운 진전과 시작을 얻을 수 있었다. 사람이 그에게 느낀 것은 탄복이 아니다. 아니, 탄복뿐만이 아니다. 가장 크게 느낀 것은 경외와 사랑이다. 사람은 부정할 수 없는 하나님의 기묘함을 느끼는 한편, 그가 하는 사역과 말씀을 사람은 할 수 없다고 느낀다. 그의 사역을 체험한 사람은 늘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오묘한 느낌을 받곤 한다. 더 깊게 체험한 사람은 하나님을 특히 더 사랑하게 되며, 언제나 그의 사랑스러움, 그리고 그가 하는 사역의 지혜로움과 기묘함을 느끼게 된다. 그로 인해 사람들 사이에서 무궁무진한 힘이 생겨난다. 또한 이로 인해 두려움을 느끼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한 번씩 추앙심이 생기는 것도 아니라,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을 깊이 느낀다. 하지만 그의 형벌과 심판을 체험한 사람은 또 그의 거스를 수 없는 위엄을 느낀다. 그의 사역을 아무리 많이 체험한 사람이라도 그를 가늠하지 못한다. 진실로 그를 경외하는 사람은 모두 그의 사역이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으며, 오히려 사람의 관념을 일축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가 사람에게 원하는 것은 완전한 탄복이나 외적인 순종이 아니라 진실한 경외와 순종이다. 이렇게 많은 사역에서 진실한 체험을 한 사람들은 전부 그에게 탄복을 뛰어넘는 경외심을 갖게 됐다. 사람은 모두 그의 형벌과 심판의 사역을 통해 그의 성품을 보게 되며, 그로 인해 그에게 경외심을 가지게 된다. 하나님은 사람의 경외심과 순종을 자아낸다. 그의 어떠함과 성품이 피조물과 같지 않고, 피조물보다 더 높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피조물이 아니기에 오직 그만이 사람의 경외와 순종을 받을 자격이 있다. 사람에게는 그런 자격이 없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 중에서

41. 은혜시대에 예수 또한 적지 않은 말씀과 사역을 했다. 그는 이사야와 어떻게 구별되느냐? 다니엘과 어떻게 구별되느냐? 그는 도대체 선지자냐, 아니냐? 왜 그를 그리스도라 하느냐? 그들은 어떻게 구별되느냐? 다 같은 사람이고 다 말을 했으며, 게다가 사람들이 보기에 그들의 말은 기본적으로 별 차이가 없었다. 모두가 말하고 사역했다. 구약의 선지자는 예언을 했고,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도 예언할 수 있었다. 이것은 어찌 된 일이냐? 이런 것은 사역의 성격에 따라 구별해야 한다. 네가 이런 일을 분별할 때는 그의 육신의 속성이 어떠한지, 그의 말씀이 깊이가 어떠한지를 보지 말고 먼저 그가 행한 사역을 보아야 한다. 또한 그 사역이 사람에게 어떤 효과를 주었는지도 보아야 한다. 당시에 선지자가 한 예언은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지 못했고, 이사야, 다니엘 같은 사람들이 받은 묵시는 생명의 도가 아니라 예언일 뿐이었다. 당시에 여호와가 직접 계시해 주지 않았다면, 그 누구도 사역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평범한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이다. 예수 또한 많은 말씀을 했지만 그 말씀은 생명의 도이므로 사람들은 그 속에서 실행의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첫째, 예수는 생명이므로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할 수 있었다. 둘째, 예수는 사람의 치우치고 그릇된 점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 셋째, 예수는 여호와의 사역을 이어받아 시대를 이을 수 있었다. 넷째, 예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낼 수 있었고, 그들의 부족한 점을 알 수 있었다. 다섯째, 그는 새로운 시대를 열고 낡은 시대를 끝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를 하나님이라고도, 그리스도라고도 하며, 이사야와 다를 뿐만 아니라 그 어떤 선지자와도 같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선지자 가운데 이사야가 행한 사역을 예수의 사역과 대조해 보면, 첫째, 이사야는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할 수 없었다. 둘째, 이사야는 시대를 열 수 없었다. 그는 여호와의 인도하에서 사역한 것이지 새로운 시대를 열며 사역한 것이 아니다. 셋째, 그가 한 말은 하나님의 영이 직접 계시한 것이므로 이사야 본인도 이해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들어도 이해하지 못했다. 이 몇 가지로 이사야가 한 말은 단지 예언일 뿐이고, 여호와를 대신해 행한 하나의 사역임을 증명할 수 있다. 그러나 이사야가 여호와를 완전히 대변할 수는 없다. 그는 여호와의 종이자 사역 도구였다. 이사야는 율법시대에만 사역했고 여호와가 역사한 범위 내에서만 사역했을 뿐, 율법시대의 사역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예수가 행한 사역은 그렇지 않다. 예수는 여호와의 사역 범위를 뛰어넘어 사역했다. 예수는 성육신 하나님의 신분으로 와서 사역했으며, 십자가의 사역으로 온 인류를 속량했다. 다시 말해, 예수는 여호와가 행하지 않은 새로운 사역을 했다. 그것은 바로 시대를 연 것이다. 또 다른 사역이 하나 더 있는데, 예수는 사람이 도달할 수 없는 경지의 말씀을 어느 정도 할 수 있었다. 예수가 행한 사역은 하나님의 경영 사역이고 온 인류와 관련된 사역이지, 사람 몇을 만드는 사역도 아니고 한정된 사람을 인도하는 사역도 아니었다. 하나님이 어떻게 성육신하여 사람이 되었는지, 당시에 영이 어떻게 계시했는지, 영이 또 어떻게 사람의 몸에 임하여 역사했는지는 사람들이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으므로 이런 사실로는 그가 성육신 하나님임을 증명할 수가 없다. 현실적인 방법은 사람들이 접촉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으로 분별하는 것이다. 영이 행한 일은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분명히 알고 있다. 이 일은 하나님이 입은 육신도 다 아는 것이 아니고 너 또한 볼 수 없기 때문에, 단지 그가 행한 사역으로 확신할 수밖에 없다. 예수가 행한 사역을 보면, 첫째, 예수는 시대를 열 수 있었다. 둘째, 예수는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할 수 있고, 사람이 가야 할 길을 가리켜 줄 수 있었다. 이것으로 예수는 하나님 자신이고, 최소한 그가 행한 사역은 하나님의 영을 완전히 대변할 수 있음을 확정할 수 있다. 즉, 예수가 행한 사역에서 그에게 하나님의 영이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성육신 하나님의 사역은 주로 새로운 시대를 열고, 새로운 사역을 인도하며, 새로운 경지를 여는 것이기 때문에 이 몇 가지로 예수를 하나님 자신이라고 확정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이사야나 다니엘 같은 대선지자들과 구분할 수 있게 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의 구별> 중에서

42. 혹자는 “성육신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과거에 선지자와 사도들이 한 사역과 어떻게 다릅니까? 다윗도, 예수님도 주라고 불렸습니다. 그들이 한 사역은 서로 다르지만 호칭은 같았어요. 그런데 왜 그들의 신분이 다른 겁니까? 요한이 본 것은 환상(원문: 異象)이었고, 마찬가지로 성령에게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는 성령이 하려는 말씀을 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어째서 요한의 신분이 예수님과 다른 거죠?”라고 물을 것이다. 예수가 한 말씀이 하나님을 완전히 대변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을 완벽히 대변하여 사역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한이 본 것은 환상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완벽하게 대변할 수는 없다. 요한, 베드로, 바울이 많은 말을 했고, 예수 또한 그러했다. 그런데 그들의 신분은 왜 다른 것이겠느냐? 주로 그들이 한 사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수가 대표한 것은 하나님의 영이었으니, 하나님의 영이 친히 역사한 것이다. 또한, 그의 사역은 새 시대의 사역으로, 누구도 한 적이 없는 사역이었다. 그는 새로운 길을 열었으며, 여호와를 대변하고 하나님 자신을 대표했다. 그러나 베드로나 바울이나 다윗은 어떤 호칭으로 불렸는지에 상관없이 그저 피조물의 신분을 대변하고 예수 또는 여호와의 보내심을 받았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아무리 많은 사역을 하고, 아무리 대단한 이적을 보였을지라도, 그들은 그저 피조물일 뿐, 하나님의 영을 대표하지는 못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받들어 또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사역한 것에 불과하다. 또한, 그들은 예수나 여호와가 열어 준 시대 안에서 사역한 것이지, 그 밖의 사역을 한 것은 아니다. 결국 그들은 그저 하나의 피조물에 불과했던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호칭과 신분에 관하여> 중에서

43. 예수의 사역과 요한의 사역이 어떤 차이가 있겠느냐? 단순히 요한은 예수를 위해 길을 닦는 자였기 때문이겠느냐? 아니면 하나님이 그렇게 정해 놓았기 때문이겠느냐? 요한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라고 외치며 천국의 복음을 전했지만, 그의 사역은 시작일 뿐 깊이 들어가지는 못했다. 반면 예수는 새로운 시대를 열고 낡은 시대를 끝냈으며 구약 율법도 완전케 했다. 그는 요한보다 더 큰 사역을 했을 뿐만 아니라 전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했다. 요한은 길만 잘 닦아 놓았을 뿐이다. 비록 그도 큰 사역을 하고 많은 말을 했으며 그를 따르는 제자들도 적지 않았지만 그의 사역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작을 가져다주는 데 그쳤다. 사람들은 그에게서 생명과 길 또는 더 깊은 진리를 얻지 못했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도 못했다. 요한은 큰 선지자(엘리야)다. 그는 예수의 사역을 위해 장소를 준비하고 적합한 사람들을 예비하였으며, 은혜시대의 길을 여는 선구자였다. 정상인의 겉모습만 보고는 이런 차이를 구별할 수 없다. 더구나 요한도 매우 큰 사역을 했을 뿐만 아니라 성령이 약속한 자이고, 성령이 그의 사역을 수호했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한 사역을 통해 각자의 신분을 구별하는 수밖에 없다. 사람의 겉모습으로는 본질을 구별할 수 없고, 사람 또한 무엇이 성령의 증거인지 정확히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요한과 예수의 사역이 다르고 사역의 성질 또한 다르기 때문에 이런 것을 통해 그가 하나님인지 아닌지 판단해야 한다. 예수는 시작, 후속, 종결, 성취의 이 몇 단계 사역을 했지만 요한은 시작하는 사역만 했다. 예수는 처음에 회개의 도를 말씀하면서 복음을 전했고, 그 후에는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냈으며, 마지막에는 죄에서 인류를 속량함으로써 그의 전체 시대 사역을 완성했다. 예수도 곳곳에서 사람들에게 전도하며 천국의 복음을 전했다. 이 점은 요한과 같다. 다른 점은 예수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 사람들에게 은혜시대를 가져다주었다는 것이다. 예수는 은혜시대에 사람들이 실행해야 하는 것과 가야 하는 길을 말씀해 주었고, 마지막에는 구속 사역을 완성했다. 요한은 이런 사역을 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예수는 하나님의 사역을 한 것이며, 그가 바로 하나님 자신이고,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대표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육신의 비밀 1> 중에서

44. 너희는 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의 사역에서 너는 무엇을 볼 수 있느냐? 사람의 사역에는 사람의 체험 성분이 많고, 사람이 나타내는 것은 사람의 어떠함이다. 하나님도 사역할 때 자신의 어떠함을 나타내지만, 그의 어떠함은 사람의 어떠함과 같지 않다. 사람의 어떠함은 사람의 체험과 생애(사람이 평생 어떤 체험을 하고 어떤 일을 겪었는지, 또는 어떤 처세 철학을 갖고 있는지)를 상징한다.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사는 사람이 나타내는 어떠함은 서로 다르다. 사회 경험이 있는지, 가정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어떻게 경험했는지는 모두 네가 드러낸 것에서 알 수 있다. 하지만 성육신 하나님이 하는 사역에서는 그의 사회적 이력을 볼 수 없다. 그는 사람의 본질을 손바닥 보듯 훤히 꿰뚫고 있어서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의 다양한 행동을 모두 들춰낼 수 있으며, 사람의 패괴 성품과 패역 행위는 더욱 잘 들춰낼 수 있다. 세상 사람들 속에서 생활하지 않지만 일반인의 본성과 세상 사람의 모든 패괴를 알고 있다. 이것이 바로 그의 어떠함이다. 그는 세상을 겪어 보지 못했지만, 세상살이에 관련된 작은 것까지 잘 알고 있다. 사람의 본성을 다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고, 사람의 귀로는 들을 수 없는 영의 역사를 알 수 있으며, 현재나 과거의 것을 모두 알고 있다. 여기에는 처세 철학이 아닌, 지혜와 사람이 측량할 수 없는 기묘함이 담겨 있다. 이것은 그의 어떠함으로, 사람에게 공개되기도 하고, 숨겨져 있기도 하다. 그가 나타내는 것은 비범한 사람의 어떠함이 아니라 영의 고유한 속성과 어떠함이다. 그는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지 않았지만 천하의 일을 모두 알고 있다. 그는 지식도, 식견도 없는 ‘유인원’들을 접했지만 지식보다 뛰어나고 위인보다 고매한 말씀을 선포한다. 또 그는 인성이 없고 인성의 상규와 인성 생활을 모르는 어리석고 무감각한 사람들 속에서 살지만, 인류에게 정상 인성으로 살 것을 요구할 수 있고, 동시에 인류의 비열하고 천박한 인성을 들춰낸다. 이 모든 것은 그의 어떠함으로, 육에 속하는 그 어떤 사람의 어떠함보다도 높다. 그는 복잡하고 번거로우며 불결한 사회생활을 체험하지 않아도 그가 해야 할 사역을 충분히 할 수 있으며, 패괴된 인류의 본질을 남김없이 들춰낼 수 있다. 불결한 사회생활은 그의 육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의 사역과 말씀은 사람의 패역을 들춰내기만 할 뿐, 사람에게 처세 경험이나 교훈을 공급하지는 않는다. 그는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할 때, 사회 조사도, 사람의 가정 조사도 할 필요가 없다. 그가 사람을 들춰내고 심판하는 것은 그의 육신이 체험한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그는 오래전부터 사람의 패역을 알고 인류의 패괴를 증오했기에 사람의 불의를 들춰내는 것이다. 그가 하는 사역은 다 사람에게 그의 성품을 공개하고, 그의 어떠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사역은 그 자신만이 할 수 있으며, 육에 속한 사람이 다다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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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사람이 도출한 결론을 기반으로: (직역) 다른 사람의 기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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