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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어떻게 하나님의 사역과 사람 사역의 차이를 인식해야 하는지에 관한 대표적인 말씀

73. 하나님 자신이 하는 사역은 전 인류와 관련되는 사역이고, 또한 전체 시대를 대표하는 사역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자신의 사역은 성령 역사의 모든 동태와 추세를 대표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도의 사역은 하나님 자신이 역사한 후에 이어 나가는 것이지, 시대를 이끄는 것이 아니고 그 시대의 모든 성령 역사의 동향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다만 사람이 해야 할 사역을 하고 있을 뿐이지 경영 사역에는 전혀 관련되지 않는다. 하나님 자신이 하는 사역은 경영 사역 중의 항목이고, 사람이 하는 사역은 단지 쓰임받는 사람이 하는 본분이므로 경영 사역과는 무관하다. 신분과 행하는 사역을 대표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비록 다 성령의 역사일지라도 하나님 자신의 역사와 사람의 사역에는 언제나 뚜렷한 실질적인 구별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신분이 서로 다른 역사 대상에게 하는 성령 사역의 경중 정도도 각각 다르다. 이것이 바로 성령이 역사하는 원칙과 범위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에서 발췌

74.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이라고 해서는 안 되고, 사람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해서는 더욱 안 되며,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은 성육신 하나님이 아니고, 성육신 하나님은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이 아니다. 이는 실질상에서 구별이 있다. 혹시 네가 이런 말씀을 본 후에도 이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지 않고, 단지 사람이 얻은 깨우침이라고만 인정한다면, 너는 너무나도 무지하다. 하나님의 말씀이 어찌 사람이 얻은 깨우침과 같을 수 있겠느냐? 성육신 하나님의 말씀은 시대를 개척하는 것이고, 전 인류를 인솔하는 것이며, 심오한 비밀을 열어 줄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새 시대에서의 나아갈 방향을 가리켜 주는 것이다. 사람이 얻은 깨우침은 일부 간단한 실행이나 인식일 뿐, 전 인류를 새 시대로 들어가도록 인솔할 수 없고, 하나님 자신의 심오한 비밀을 밝힐 수도 없다.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이고 사람은 어디까지나 사람이며, 하나님에게는 하나님의 실질이 있고 사람에게는 사람의 실질이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앞에 쓴 말씀>에서 발췌

75. 성육신이 하는 사역은 새 시대를 전개하는 사역이고, 그의 사역을 이어서 하는 사람은 그에게 쓰임받는 사람이다. 사람이 하는 사역은 모두 육신에 있는 하나님의 직분 내에 있는 사역이니 이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하나님이 성육신되어 역사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낡은 시대를 끝마칠 수 없고, 새로운 시대도 가져올 수 없다. 사람이 하는 사역은 단지 당연히 해야 하는, 즉 사람의 능력으로 해낼 수 있는 사역을 조금 하는 것일 뿐, 하나님을 대표하여 사역할 수 없다. 오직 성육신 하나님이 와서 그가 해야 할 사역을 완성해야지 그 밖에 아무도 그의 사역을 대신할 수 없다. 물론 내가 한 말은 모두 성육신의 사역에 대해 말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패괴된 인류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에서 발췌

76. 어떤 사람은 “왜 시대를 개척할 때는 반드시 하나님 자신이 친히 하셔야 합니까? 정말 피조물은 대신할 수 없단 말입니까?”라고 물을 것이다. …가령 피조된 인류에게 시대를 끝마치게 한다면, 사람이 보거나 사탄이 보기에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하거나 배반하는 것일 뿐이지,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사람이 하는 사역은 사탄에게 잡히는 약점이 된다. 사람은 하나님이 친히 개척한 시대에서 순복하고 따라야만 사탄이 완전히 굴복할 수 있다. 그것은 피조물의 본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가 다른 사역을 할 필요 없이 따르고 순복하기만 하면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을 저마다 본분을 지키고, 저마다 역할을 다하는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하기에 사람이 대신할 필요가 없으며, 또한 하나님은 피조물의 사역에 참여하지도 않는다. 사람은 사람의 본분을 하면서 하나님의 사역에는 개입하지 말아야 하는데, 이것을 순복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탄을 패배시키는 증거이다. 하나님 자신은 시대를 다 개척한 다음에는 더 이상 친히 인간 세상에 와서 역사하지 않는다. 그때서야 사람은 정식으로 새 시대에 진입하면서 자신의 본분을 하게 되고, 피조물의 사명을 완성하게 된다. 이런 것은 다 사역하는 원칙이므로 아무도 어겨서는 안 되는 것이다. 오직 이렇게 해야만 공정하고 합리적이다. 하나님 자신의 사역은 하나님이 스스로 한다. 하나님은 사역을 전개하는 분이자 사역을 끝마치는 분이며, 사역을 계획하는 분이자 사역을 경영하는 분이고 더욱이 사역을 이루는 분이기도 하다. 성경에서 “나는 시작과 끝이라, 나는 씨를 뿌리는 자이자 곡식을 거두는 자이니라”라고 한 것과 같다. 하나님의 경영에 관련되는 모든 사역은 다 하나님이 스스로 하는데, 그는 6천년 경영 계획의 주재자이다. 그러므로 아무도 그의 사역을 대신하거나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끝마칠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창세한 이상 온 세상을 이끌어 자신의 빛 속에서 살게 할 것이고, 또한 반드시 전체 시대를 끝마쳐 자신의 모든 계획을 성취할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1)>에서 발췌

77. 만약 사람이 사역한다면 너무나 유한하여 사람을 어느 정도까지만 이르게 할 수 있을 뿐, 영원한 처소로 이끌어 들어갈 수는 없다. 인간은 사람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고, 사람의 앞날과 이후의 처소는 더더욱 보장할 수 없다. 하지만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사람이 하는 사역과 다르다. 그는 사람을 창조한 만큼 사람을 이끌고, 사람을 구원하는 만큼 철저히 구원하여 완전히 얻으며, 사람을 인도하는 만큼 적합한 처소로 이끌어 들어갈 수 있고, 사람을 창조하고 경영하는 만큼 사람의 운명과 앞날을 책임진다. 이것이야말로 창조주가 하는 사역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사람의 정상 생활을 회복시켜 사람을 아름다운 처소로 이끌어 들어간다>에서 발췌

78. 사람이 하는 사역은 유한한 범위를 대표할 뿐이다. 하나님이 사역을 하는 것은 어느 한 사람에게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전 인류를 향해 말씀하는 것이고, 그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을 향해 말씀하는 것이다. 결말을 선포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결말을 선포하는 것이지 어느 한 사람의 결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아무도 차별 대우 하지 않고, 아무도 난처하게 하지 않는다. 그는 전 인류에 대해 역사하고 말씀한다. 그러므로 이번에 성육신하신 하나님은 이미 전 인류를 다 각기 부류대로 되게 하였고, 이미 전 인류를 심판하였으며, 전 인류를 위해 적합한 처소를 안배하였다고 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패괴된 인류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에서 발췌

79. 하나님 자신이 하는 사역은 모두 그 자신의 경영 계획에서 하려고 하는 사역인데, 큰 경영에 관련되는 일이다. 사람(즉,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이 하는 사역은 모두 자신의 체험을 공급하는 것이고, 모두 이전 사람이 밟아 온 길을 이어 따로 체험의 길을 찾아내는 것이며, 성령의 인솔하에 다른 형제자매들을 인솔하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공급하는 것은 모두 자신의 체험이나 영적 인물의 영적 저작이다. 비록 성령께 쓰임받지만 그들이 하는 사역은 6천년 계획 가운데의 큰 경영과 관련되는 사역이 아니고, 다만 각기 서로 다른 단계에서 성령께 일으킴을 받아 그들이 할 수 있는 기능이 끝날 때까지, 또는 그들의 수명이 끝날 때까지 성령의 흐름 속에 있는 사람을 인솔하는 것일 뿐이다. 그들이 하는 사역은 단지 하나님 자신을 위해 적합한 길을 예비하거나 하나님 자신이 땅에서 하는 경영 중의 한 가지를 잇는 것이다. 그 사람들은 경영 중의 더 큰 사역은 할 수 없고, 더 새로운 출로도 개척할 수 없으며, 더욱이 아무도 하나님의 옛 시대 사역을 다 끝마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는 사역은 단지 피조물을 대표하여 자신의 기능을 하는 것일 뿐, 하나님 자신을 대표하여 직분을 할 수는 없다. 그것은 그들이 하는 사역과 하나님 자신이 하는 사역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시대를 전개하는 사역은 사람이 대신할 수 있는 사역이 아니다. 이 사역은 하나님 자신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할 수 없다. 사람이 하는 사역은 모두 피조물의 본분을 하는 것인데, 모두 성령의 감동이나 깨우침 아래에서 사역하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이끄는 것은 모두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이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길과 사람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게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는 사역은 하나님의 경영에 관련되지 않고, 영의 사역을 대표하지 않는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1)>에서 발췌

80.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은 아마 새로운 사역을 좀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아마 옛 시대의 사역을 좀 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새 시대의 성품과 새 시대의 뜻을 발표해 낼 수 없다. 그들은 다만 옛 시대의 사역을 폐하기 위해 사역하는 것일 뿐, 새로운 사역을 함으로 하나님 자신의 성품을 직접 대표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낡은 행실을 얼마나 폐하였든, 새로운 행실을 얼마나 가져왔든, 여전히 사람을 대표하고 피조물을 대표한다. 그러나 하나님 자신이 역사할 때에는 공개적으로 옛 시대의 행실을 폐한다고 선포하지 않고, 시대를 전개한다고 직접 선포하지도 않는다. 그가 사역을 하는 것은 단도직입적이어서 그가 하려는 사역을 직접 하는데, 바로 그가 가져온 사역을 직접 발표하고, 그가 원래 하려던 사역을 직접 하여 그의 소시와 성품을 발표하는 것이다. 사람이 보기에는, 그의 성품이 과거의 시대와 다르고, 그의 사역도 과거의 시대와 다르다. 하지만 그 자신이 보기에는 사역을 잇고 사역을 심화시키는 것일 뿐이다. 하나님 자신이 역사하는 것은 그의 말씀을 발표하고 새로운 사역을 직접 가져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사역하는 것은 심사숙고하거나 연구를 거치거나 다른 사람의 기초에서 깊이 인식하고 체계적으로 실행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하는 사역의 실질은 바로 ‘관습을 따르고’, ‘새 신을 신고 옛길을 가는’ 격이다. 즉,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이 가는 길일지라도 그것은 하나님 자신이 친히 개척해 낸 길 위에 세워진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어쨌든 사람이고, 하나님은 어쨌든 하나님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1)>에서 발췌

81. “성육신 하나님이 한 사역과 이전에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했던 사역에는 어떤 구별이 있나요? 다윗도 주로 불리고, 예수님도 주로 불렸잖아요. 그들이 했던 사역은 달라도 호칭은 같은데, 왜 그들의 신분이 같지 않다고 하나요? 요한이 본 것은 이상(異象)이고 또한 성령으로부터 온 것이며 성령이 하려는 말씀을 한 것인데, 왜 요한의 신분이 예수님의 신분과 다르다고 합니까?” 예수가 한 말씀이 완전히 하나님을 대표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완전히 하나님을 대표하여 역사하였기 때문이다. 요한이 본 것은 이상에 속할 뿐, 요한은 완전히 하나님을 대표하여 사역할 수 없다. 요한, 베드로, 바울도 많은 말을 하였고 예수도 많은 말씀을 하였는데, 왜 그들의 신분은 구별이 있는가? 그 주요 원인은 그들이 한 사역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가 대표한 것은 하나님의 영이고, 하나님의 영이 직접 역사한 것이며, 또한 새 시대의 사역을 한 것이고, 아무도 한 적이 없었던 사역을 한 것이다. 그가 새로운 출로를 개척하였는데, 대표한 것은 여호와이고 대표한 것은 하나님 자신이다. 그러나 베드로나 바울이나 다윗이 무엇이라고 칭함받았든지 그들은 단지 피조물의 신분을 대표하였고, 예수나 여호와의 보내심을 받았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한 사역이 아무리 많고, 행한 이적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피조물일 뿐, 하나님의 영을 대표할 수 없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받들거나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 사역한 것이고, 예수나 여호와가 전개한 시대 내에서 사역한 것이지 그 외의 사역을 한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그들은 피조물에 불과하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호칭과 신분에 관한 논법>에서 발췌

82. 요한은 시작의 사역만 하였으며, 더 많은 새 사역은 모두 예수가 한 것이다. 요한도 새로운 사역을 하였지만 새 시대를 개척한 것은 아니다. …비록 요한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라고 말하며 천국의 복음을 전한 자이지만, 그의 사역은 심화되지 않았고, 시작만 되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예수는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였고 낡은 시대도 끝마쳤지만 구약 율법도 완전케 하였는데, 요한보다 더 큰 사역을 하였다. 게다가 예수는 전 인류를 구속하러 왔기에 그가 그 단계 사역을 한 것이다. 요한은 길만 잘 닦아 놓았을 뿐이다. 비록 요한도 큰 사역을 하였고, 많은 말을 하였으며, 적지 않은 제자들이 따랐지만 그의 사역은 사람에게 새로운 시작만 가져다주었을 뿐이다. 사람은 요한에게서 생명과 길 또는 더 깊은 진리를 전혀 얻지 못하였으며, 하나님의 뜻도 깨닫지 못하였다. 요한은 큰 선지자(엘리야)이다. 그는 예수의 사역을 위해 장소를 개척하고 사람을 예비하였는데, 은혜시대의 길을 여는 선봉이었다. 이런 일은 정상 사람의 겉모습으로는 전혀 구분할 수 없다. 더구나 요한이 한 사역도 상당히 큰 데다가 요한은 성령이 약속한 자이고, 그가 했던 사역은 성령이 수호해 주었다. 그러므로 오직 그들이 했던 사역에서 각자의 신분을 구분하는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사람의 외형으로 사람의 실질을 구별하지 못하고 또 도대체 무엇이 성령의 증거인지를 단정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요한이 한 사역과 예수가 한 사역은 다르고 사역 성질도 다르다. 마땅히 이런 것에서 그가 하나님인지 아닌지를 보아야 한다. 예수는 시작, 이음, 종결, 성취의 이 몇 단계 사역을 하였다. 그러나 요한은 시작만 하였다. 예수는 처음에 회개의 도에 관해 복음을 전하였고, 그 후에는 사람에게 세례를 주고 병을 고쳐 주고 귀신을 쫓아내 주었으며, 마지막에는 인류를 죄에서 구속해 내어 예수의 전체 시대 사역을 완성하였다. 예수도 곳곳에서 사람들에게 전도하면서 천국 복음을 전하였다. 그런 점은 요한과 같지만, 다른 부분은 예수가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여 사람에게 은혜시대를 가져다준 것이다. 은혜시대에 사람이 실행해야 할 것과 가야 할 길은 다 예수의 입에서 나왔으며, 예수는 마지막에 구속 사역을 완성하였다. 그러나 요한은 그 사역을 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예수는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하였으므로 예수가 바로 하나님 자신이고 직접 하나님을 대표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1)>에서 발췌

83. 신성에서 역사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표하는 것이지만, 인성에서 사역하는 것은 하나님께 쓰임받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성육신 하나님’과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은 실질상에서 전혀 다르다. 성육신 하나님은 신성의 사역을 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은 신성의 사역을 할 수 없다. 각 시대의 시작에서 하나님의 영이 친히 말씀하여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고, 사람을 새로운 기점으로 이끌어 들어간다. 그의 말씀이 끝난 후, 바로 하나님의 신성 사역이 끝난 후에 사람은 모두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의 인도에 따라 생명 체험에 진입하게 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 하나님과 쓰임받는 사람의 실질상 구별>에서 발췌

84.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이 하는 사역은 그리스도의 사역이나 성령의 역사에 협력하기 위한 것인데, 그는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일으킨, 하나님의 모든 선민을 이끌기 위한 사람이고, 또한 하나님이 일으킨 인성 협력 사역을 하는 사람이다. 인성 협력 사역을 할 수 있는 이런 한 사람이 있기에,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요구한 것과 성령이 사람들 가운데서 하려는 사역을 하나님께 쓰임받는 이 사람을 통해 더 많이 완성하게 된다. 하나님이 이 사람을 쓰는 목적은 하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더 잘 깨닫고, 하나님의 요구에 더 많이 도달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나 하나님의 뜻을 직접 깨달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쓰임받는 한 사람을 일으켜 이런 사역을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이 사람을 쓰는 것에 관한 논법>에서 발췌

85.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은 하나님이 사람을 인솔하는 데에 있어서의 매개자이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소통시키는 ‘번역관’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사람은 하나님 집에서 일꾼이나 사도가 된 그 어떤 사람과도 다르다고 말하는 것이다. 똑같이 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은 다른 일꾼이나 사도와는 사역 실질과 개인적으로 쓰임받는 배경에서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사역의 실질과 개인적으로 쓰임받는 배경에서 말하면,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은 하나님이 일으킨 사람이고, 하나님이 자신의 사역을 위해 예비한 사람이며, 하나님 자신의 사역에 협력하는 사람이다. 그의 사역은 다른 사람이 대체할 수 없는 것이고, 신성의 역사에 반드시 협력해야 할 인성의 사역이다. 그러나 다른 일꾼이나 사도가 하는 사역은 다만 각 시기에 교회에 대한 여러 방면의 안배를 전달하고 시행하는 것이며, 또는 교회 생활을 수호하는 일부분의 간단한 생명 공급 사역을 하는 것이다. 그런 일꾼이나 사도들은 하나님께 지정된 사람이 아니고, 더욱이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없다. 그런 사람은 모두 교회에서 선발된 사람으로 한동안의 배양과 훈련을 거쳐 쓰기에 합당한 사람은 계속 남겨서 쓰고, 쓰기에 합당치 않은 사람은 원래 있었던 곳으로 돌려보낸다. …그러나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은 하나님이 예비한, 일정한 소질을 갖추고 인성이 있는 사람이고, 성령이 미리 예비하고 온전케 한 사람이며, 완전히 성령이 인솔하는데, 특히 사역 방면에서는 더욱 성령이 지배하고 성령이 주관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민을 인솔하는 길에 오차가 있을 리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신의 사역에 반드시 책임을 질 것이고 어느 때든 자신의 사역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이 사람을 쓰는 것에 관한 논법>에서 발췌

86. 선지자들과 성령께 쓰임받는 사람들이 말을 하고 사역을 하는 것은 모두 사람의 본분을 하는 것이고, 하나의 피조물로서 자기의 기능을 하는 것으로,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성육신되어 말씀하고 역사하는 것은 직분을 하는 것이다. 비록 그의 외형도 피조물의 외형이지만, 그가 역사하는 것은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직분을 하는 것이다. 본분은 피조물에 대해 말한 것이고, 직분은 말씀으로 된 하나님의 육신에 대해 말한 것이다. 이 양자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으므로 서로 바꿔 사용할 수 없다. 사람이 사역하는 것은 단지 본분을 하는 것일 뿐이고, 하나님이 역사하는 것은 경영을 하는 것이고 직분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많은 사도들이 성령께 쓰임받고 또 많은 선지자들이 성령 충만을 받았을지라도, 그들이 사역한 것과 말한 것은 단지 피조물의 본분을 한 것일 뿐이다. 비록 그들의 예언이 성육신 하나님이 한 생명의 말씀보다 높고, 심지어 그들의 인성이 성육신 하나님보다 훨씬 비범할지라도, 그들은 여전히 본분을 하는 것이지 직분을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본분은 사람의 기능에 대해 말한 것으로,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육신 하나님이 하는 직분은 경영에 관련되는 일인데, 이것은 사람이 도달할 수 없다. 성육신 하나님이 말씀하든지 혹은 역사하든지 혹은 표적을 나타내든지 어쨌든 그가 하는 것은 경영 사역 중의 큰 사역을 하는 것이다. 이 사역은 사람이 대신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사역은 단지 하나님의 어느 한 단계 경영 사역에서 피조물의 본분을 하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의 경영이 없다면, 즉 성육신 하나님의 직분이 없어진다면 피조물의 본분도 없게 된다. 하나님이 역사하고 직분을 하는 것은 사람을 경영하는 것이지만, 사람이 본분을 하는 것은 자기의 직책을 이행하는 것이고, 창조주의 요구를 만족게 하기 위한 것이므로 직분을 하는 것이라고는 아예 말할 수 없다. 하나님이 사역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고유한 본질, 즉 영에 대해 말하면 경영을 하는 것이고, 성육신되어 피조물의 외형이 있게 된 하나님에 대해 말하면 직분을 하는 것이다. 그가 무슨 사역을 하든지 다 직분을 하는 것이다. 사람은 오직 그의 경영 범위 내에서, 그의 인도하에서만 자기의 능력을 다하게 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의 구별>에서 발췌

87. 사람이 하는 사역은 사람의 체험과 그 사람의 인성을 대표한다. 사람이 공급하는 것과 사람이 하는 사역은 사람을 대표하는데, 사람의 깨달음, 사람의 추리, 사람의 논리, 그리고 사람의 풍부한 상상도 사람의 사역에 포함되어 있다. 특히, 사람의 체험은 사람의 사역을 더욱 대표하는 것이다. 사람에게 어떤 체험이 있으면 그 사람이 하는 사역에도 그런 성분이 있는데, 사람의 사역은 사람의 체험을 말할 수 있다. …사람이 발표하는 것은 모두 사람이 본 것이고, 체험한 것이며, 사람이 생각해 낼 수 있는 것인데, 설사 도리나 관념일지라도 다 사람의 사유로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하는 사역이 크든 작든, 사람의 체험과 사람의 깨달음, 혹은 사람이 생각해 낼 수 있는 것과 구상할 수 있는 그 범위를 초월할 수 없다. 하나님이 발표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소시(所是)이고 사람이 도달할 수 없는 것, 즉 사람의 사유로 닿을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전 인류를 이끌어 가는 사역을 발표하는데, 사람의 세부적인 체험과는 관련되지 않고 하나님 자신의 경영과 관련된다. 사람이 발표하는 것은 사람의 체험이고, 하나님이 발표하는 것은 하나님의 소시이다. 이 소시는 바로 하나님의 원래 성품이고, 사람이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의 체험은 하나님이 소시를 발표한 기초에서 있게 된 깨달음과 인식이다. 그런 깨달음과 인식은 모두 사람의 소시로 불린다. 이것은 사람의 원래 성정과 소질의 기초에서 발표한 것이므로 또한 사람의 소시라고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에서 발췌

88. 사람이 체험하는 진리의 범위는 개개인의 각기 다른 조건에 따라 서로 다르다. 그러므로 서로 다른 사람이 같은 진리에 대해 발표하는 인식도 서로 다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체험하는 것은 다 유한한 것이기에 성령의 뜻을 완전히 대표할 수 없다. 설사 사람이 발표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매우 부합될지라도, 또한 사람의 체험이 온전케 하는 성령의 사역에 아주 근접할지라도, 사람의 사역을 하나님의 역사로 볼 수 없다. 사람은 그저 하나님의 종이 되어 하나님이 부탁한 사역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사람이 발표하는 것은 단지 성령의 깨우침에서 얻은 인식과 사람이 직접 체험하여 얻은 진리에 불과하다. 사람에게는 성령의 출구가 될 자격도 없고 조건도 없고, 또한 사람이 하는 사역이 바로 하나님이 하는 사역이라고 말할 자격도 없다. 사람에게는 사람의 사역 원칙이 있고, 또한 사람의 체험도 서로 다르고 갖추어진 조건도 서로 다르다. 사람의 사역에는 성령의 깨우침으로 체험한 모든 것이 포함된다. 그 체험은 오직 사람의 소시를 대표할 수 있을 뿐, 하나님의 소시나 성령의 뜻을 대표하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걷는 길을 성령이 가는 길이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의 사역은 하나님의 역사를 대표할 수 없고, 또한 사람의 사역과 체험이 완전히 성령의 뜻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는 사역은 늘 규례에 빠지기 쉽고, 사역하는 방식도 유한한 범위에 국한되기 쉬워 사람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이끌어 들어갈 수 없다. 따르는 사람도 대부분 모두 유한한 범위에서 생활하고, 체험하는 방식도 모두 유한한 범위 내에 있는 것이다. 사람의 체험은 다 유한한 것이고, 사역 방식도 유한한 몇 가지뿐이기에 성령의 역사와 비교할 수 없고, 하나님 자신이 하는 사역과 비교할 수 없다. 사람의 체험은 어디까지나 유한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자신의 사역은 어떻게 하든 규례가 없고, 한 가지 방식에 국한되지 않으며, 또 어떤 규례도 없고 다 해방되고 자유롭다. 사람이 아무리 오래 따를지라도 하나님의 역사 방식에 대한 법칙은 귀납해 낼 수 없다. 비록 그의 역사는 아주 원칙이 있지만, 또 항상 새로운 방식 가운데 있고, 늘 새로운 발전이 있으며, 또한 사람이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한 시기에 여러 항목의 서로 다른 역사를 할 수 있고, 서로 다른 몇 가지로 이끌 수 있기에 사람에게는 늘 새로운 진입이 있고, 늘 새로운 변화가 있게 된다. 하나님은 늘 새로운 방식으로 역사하기 때문에, 너는 그가 역사하는 법칙을 더듬어 낼 수 없다. 또 그래야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 규례에 빠지지 않게 된다. 하나님 자신이 하는 일은 늘 사람의 관념을 비켜 가고, 또한 사람의 관념을 반격하고 있다. 그를 진심으로 따르고 추구하는 사람이라야 성정이 변화될 수 있고, 자유로운 방식에서 살 수 있으며, 어떤 규례의 통제도 받지 않고 어떤 종교적 관념의 제한도 받지 않을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에서 발췌

89. 너희는 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너는 사람의 사역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는가? 사람의 사역에는 사람이 체험한 요소가 많고, 사람이 발표하는 것은 사람의 소시이다. 하나님 자신이 역사하는 것도 자신의 소시를 발표하는 것이지만 그의 소시는 결코 사람의 소시와 같지 않다. 사람의 소시는 사람의 체험과 사람의 생애(원문: 身世)(사람이 일생에서 어떤 것을 체험했는지, 어떤 불행을 겪었는지, 또는 어떤 처세 철학을 갖게 되었는지)를 대표하며,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사는 사람이 발표하는 소시도 서로 다르다. 네가 사회를 체험한 적이 있는지, 가정에서 네가 도대체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체험했는지는 모두 네가 표현하는 것에서 알아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육신 역사에서 너는 그에게 도대체 사회 이력이 있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다. 그는 사람의 본질을 손금 보듯 하여 각 부류 사람의 여러 가지 행실을 다 드러낼 수 있고, 사람의 패괴 성정과 패역 행위는 더욱 잘 드러낼 수 있다. ‘세상 사람’ 가운데서 생활하지 않지만 ‘보통 사람’의 본성과 ‘세상 사람’의 모든 패괴를 알고 있는데, 이것은 그의 소시이다. 그는 비록 세상을 접하지 않았지만 갖가지 처세의 조목들을 알고 있다. 그것은 그가 사람의 본성을 이미 다 측량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영의 역사를 알 수 있으며, 오늘이나 지난날의 것을 다 알고 있다. 여기에는 처세 철학과는 전혀 다른 지혜와 사람이 측량하기 어려운 기묘가 담겨 있다. 이것이 그의 소시인데, 사람에게 공개하기도 하고 숨기기도 한다. 그가 발표한 것은 비범한 사람의 소시가 아니라 영의 고유한 속성과 소시이다. 그는 열국을 두루 돌아다니지 않았지만 오히려 천하의 일을 알고 있다. 그가 접촉하는 것은 지식이 없고 식견이 없는 일부 ‘유인원’이지만 오히려 지식보다 높고 위인보다 높은 말씀(원문: 言論)을 발표해 낸다. 또 인성이 전혀 없고, 인성의 상식과 인성 생활을 모르는 어리석고 마비된 한 무리 사람들 속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인류에게 정상 인성을 살아내라고 요구할 수 있고, 그와 동시에 인류의 비열하고 비천한 인성도 드러내었다. 이것은 모두 그의 소시인데, 혈기에 속한 어떤 사람보다도 높은 그의 소시이다. 그는 복잡하고 자질구레하고 추한 사회생활을 부질없이 체험하지 않아도 그가 해야 할 사역을 충분히 할 수 있고, 패괴된 인류의 본질을 낱낱이 드러낼 수 있다. 추한 사회생활은 그의 육신에 도움이 될 수 없다. 그의 역사와 말씀은 사람의 패역을 드러내는 것일 뿐, 사람에게 처세의 경험이나 교훈을 공급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함에 있어 사회를 조사할 필요도, 사람의 가정을 조사할 필요도 없다. 그가 사람을 드러내고 심판하는 것은 자신의 육신이 체험한 것을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일찍이 사람의 패역을 알고 인류의 패괴를 증오하여 비로소 사람의 불의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가 하는 사역은 모두 사람에게 그의 성품을 공개하고, 그의 소시를 발표하는 것이다. 이 사역은 오직 그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것이지 혈기에 속하는 사람이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에서 발췌

90. 하나님이 신성 소시를 발표하는 것은 하나님의 본능이다. 육신에서 발표하든, 영이 직접 발표하든, 그것은 하나님의 직분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역사하는 중에, 혹은 역사한 후에 사람 자신의 체험이나 인식을 발표한다(즉, 사람의 소시를 발표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의 본능이고, 사람의 본분이며, 사람이 마땅히 도달해야 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에서 발췌

91.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육신의 체험을 대표하지 않는다. 사람이 하는 사역은 자신의 체험을 대표하는데, 저마다의 체험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진리를 직접 발표할 수 있으나 사람은 진리를 체험한 후에야 거기에 상응하는 체험을 발표할 수 있을 뿐이다. 하나님은 역사할 때 규례가 없고 시간과 지리적인 제한도 받지 않기에 언제 어디서나 그의 소시를 발표할 수 있으며, 그는 자유롭게 역사한다. 사람은 사역할 때 조건이 있고 배경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사역하지 못하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나 진리에 대한 체험도 발표하지 못한다. 하나님 자신의 역사인지, 사람의 사역인지는 대조해 보기만 하면, 너는 사람의 사역과 하나님 역사의 구별점을 알게 될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에서 발췌

92. 사람의 사역은 찾고 구하고 모색하는 것이고, 모두 다른 사람의 기초에서 모방하거나 숙고하여 더 깊은 진입이 있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사역은 자신의 소시를 공급하면서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을 하는 것이고, 어떤 사람의 사역에서 좀 인식한 것을 교회에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정형에 근거해 그때그때의 사역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역사하면 사람이 사역하는 것보다 몇천 배나 자유롭다. 사람이 보기에는 심지어 ‘분수도 지키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 같지만, 하는 사역은 다 새로운 사역이다. 그러나 너는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역사하는 것은 느낌에 따라 하는 것이 전혀 아님을 알아야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실행 (5)>에서 발췌

93. 역대 이래, 하나님께 쓰임받은 사람은 모두 정상 사유와 정상 이지가 있었고, 사람됨의 처세 원칙을 알고 있었다. 또 그들은 정상 사람의 관념을 가지고 있고, 정상 사람이 갖추어야 할 모든 것들을 갖추었는데, 다수는 모두 재능이 출중하고 선천적으로 총명하였다. 하나님의 영이 그 사람들에게서 한 것은 그들의 재능을 이용해 한 것인데 모두 은사에 속한다. 즉, 하나님의 영이 그 사람들에게서 합당한 부분을 발휘시키고 그들의 장점을 이용하여 하나님을 위해 효력하게 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실질에는 사람의 관념과 사유가 없고 사람의 뜻이 섞여 있지 않으며, 심지어 정상 사람이 갖추고 있어야 할 것마저도 부족하다. 다시 말해, 처세하는 원칙마저도 모른다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 하나님과 쓰임받는 사람의 실질상 구별>에서 발췌

94. 사람이 사역하려면 장기적인 양성과 온전함을 받아야 쓰임받을 수 있다. 또한 매우 높은 인성이 요구되는데, 정상 인성의 이지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하는 데다가 많은 처세 원칙과 법칙도 더 잘 알아야 하고, 사람의 지혜와 윤리 지식도 더 많이 배워야 한다. 이것은 사람이 갖춰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육신 하나님은 이런 것을 갖출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가 하는 사역은 사람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그의 소시(所是)를 발표하고 직접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물론, 마구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시간에 하고 직분을 해야 할 때에 사역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는 사람의 생활에 참여하지 않고, 사람의 사역에도 참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그의 인성에는 이런 것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이런 것이 갖추어지지 않아도 그의 사역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는 다만 직분을 해야 할 시간에 따라 자신의 직분을 하는데, 지위가 어떠하든 한결같이 자신이 해야 할 사역만 하고 있다. 사람이 그를 어떻게 알고 있든, 그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든, 그런 것은 그의 사역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3)>에서 발췌

95. 사람이 교통하는 것은 자신의 깨달음과 체험인데, 하나님이 이미 한 사역의 기초에서 사람이 깨달은 것과 체험한 것을 발표하는 것이다. 그들의 책임은 하나님이 역사하거나 말씀한 후에, 실행해야 할 것과 진입해야 할 것을 찾아내 따르는 사람들에게 공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사역은 사람의 진입과 실행을 대표한다. 물론, 이런 사역에는 사람의 경험과 교훈 또는 사람의 사유도 어느 정도 뒤섞여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에서 발췌

96. 하나님 자신의 역사는 없고 사람의 사역만 있다면, 너는 사람이 고차원적으로 말하는 것에 아무도 이를 수 없음을 알게 되고, 그가 말하는 어조, 일 처리하는 원칙, 진중하고 노련하게 사역하는 것에 아무도 도달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너희는 인성 품격이 높은 그 사람들에게 탄복하지만 하나님의 역사와 말씀에서 그에게 대단히 높은 인성이 있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그의 인성은 아주 보통이어서 역사할 때는 정상적이고도 실제적이지만 보통 사람은 또 헤아릴 수도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에게 경외심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사람의 사역에서는 아마 사람이 체험하는 것이 아주 높고, 상상하고 추리하는 것이 매우 높고, 인성이 아주 좋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을 탄복하게만 할 뿐이지, 경외하거나 두려워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모두 사역 능력이 있고 체험한 것이 매우 깊고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탄복하지만, 어쨌거나 경외하지는 않고 그저 탄복하고 부러워할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한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탄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사람이 할 수 없고 사람이 측량할 수도 없으며 새롭고 기묘하다고 느낀다.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면서 처음으로 그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은 ‘신묘막측’하고, 지혜롭고도 기묘하다는 것이다. 또한 사람에게 자신도 모르게 그를 경외하는 마음이 생기게 하였고, 그가 하는 사역의 심오한 비밀은 사람의 사유로 도달할 수 없는 것임을 느끼게 하였다. 그가 하는 사역은 사람의 사유와 사람의 상상을 초월하고 사람이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은 그의 요구에 달하고 그의 마음을 흡족게 할 수 있기만을 바랄 뿐, 그를 초월할 수 있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에서 발췌

97. 사람에게 체험이나 인식이 있게 되는 것은 선천적인 은사나 혹은 사람의 본능에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끄심과 직접적인 목양으로 인한 것이다. 사람은 오직 이런 목양을 받아들일 기관만 있을 뿐, 직접 신성(神性) 소시를 발표할 수 있는 기관은 없다. 사람은 원천이 될 수 없고, 단지 원천수를 받는 그릇만 될 수 있다. 이것이 사람의 본능이고, 사람에게 있어야 할 기관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기관을 잃고 사람의 본능을 잃게 된다면, 사람은 가장 귀중한 것을 잃고 피조물의 본분을 잃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에서 인식과 체험이 없다면, 자신의 본분이 없게 되고 피조물이 해야 할 본분과 피조물로서의 존엄도 잃게 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에서 발췌

98. 사람이 하는 사역은 사람에게 진입해야 할 것과 깨달아야 할 것에 대해 더 분명하게 알도록 하는 것이고, 사람을 이끌어 진리를 깨닫게 하고 체험하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는 것은 돌보는 사역이다.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인류를 위해 새로운 출로와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고, 사람을 위해 사람이 모르는 것을 밝혀 주어 그의 성품을 인식하게 한다. 그가 하는 것은 전 인류를 이끄는 사역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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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본분(本分): 피조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의무, 기능, 직책을 말함.

②소시(所是): 하나님의 생명 성품이 포함된 각종 실제.

③도(道):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목표가 있는 길,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진리를 가리킴.

④표현(表現): 말로 나타내는 것 외에 행위, 태도, 품행 등도 포함됨.

⑤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⑥정형(情形): 관점, 상태, 생각, 입장, 정서.

⑦이지(理智): 옳고 그름이나 이해관계를 분별하고 자기 행위를 자제하는 능력.

⑧효력(效力):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힘이나 기능만 다하는 것을 뜻함.

⑨신묘막측: 감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신기하고 오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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