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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의 그리스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대표적인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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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을 아는 데 관한 대표적인 말씀

(1) 하나님의 권병에 관한 말씀

1. 만물을 창조하면서부터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만유를 창조했기 때문이다. 그가 어떤 방식으로 만유를 창조했든, 그가 어떤 이유로 만유를 창조했든, 요컨대 만유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기고 세워지고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창조주의 유일무이한 권병이다. 인류가 이 세상에 아직 출현하지 않았을 때, 창조주는 그의 능력과 권병으로 인류를 위해 만유를 창조했고, 그만의 특별한 방식으로 인류를 위해 적합한 생존 환경을 예비했다. 그가 이룬 그 모든 것은 다 장래에 자신의 생기를 얻게 될 인류를 위해 예비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류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을 때, 하나님의 권병은 인류와는 다른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 나타났는데, 크게는 천체, 광명체, 바다, 육지가 있고, 작게는 날짐승과 길짐승 및 각종 곤충과 미생물이 있다. 또한 사람의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각종 균류까지 그 어느 것도 창조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존재하지 않는 것이 없다. 그 어느 것 하나 창조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번식하지 않는 것이 없으며, 또 어느 것 하나 창조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창조주의 주재하에 살지 않는 것이 없다. 그들은 비록 창조주의 생기를 얻지 못했지만, 다양한 형식과 구조로 창조주가 자신들에게 부여한 생명력을 보여 주고 있다. 그들은 창조주가 인류에게 부여한 언어 능력을 받지 못했지만, 그들 각자는 창조주가 자신들에게 베풀어 준 인류의 언어와는 또 다른, 생명을 표현하는 방식을 얻었다. 창조주의 권병은 정지된 것처럼 보이는 사물에 생명의 활력을 불어넣어 그들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게 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각종 살아 있는 존재에게 번식 능력을 주어 영원히 자취를 감추지 않고 대를 이어 창조주가 부여해 준 생존 법칙과 규칙을 전하게 할 수 있다. 창조주가 권병을 행하는 방식은 거시적, 미시적인 것에 구애받지 않고, 어떠한 형식에도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우주의 운행을 주관하고 만물의 존망을 주재하며, 더욱이 만물을 움직여 자신을 위해 봉사하게 한다. 그는 산천, 호수의 운행을 주관하고, 그 가운데의 만물도 주재하며, 만물이 필요로 하는 바를 공급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인류 이외의 만물 가운데서 나타나는 창조주의 유일무이한 권병이다. 이는 일생에 단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멈추지 않고 쉬지 않는다. 또한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그것을 바꾸거나 파괴할 수 없고, 더하거나 제할 수도 없다. 창조주의 신분은 아무도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어떤 피조물도 창조주의 권병을 대체할 수 없고, 그 어떤 비피조물도 그 권병에 이를 수 없다. 예컨대, 하나님의 사자나 천사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갖지 못했고, 더욱이 창조주의 권병도 갖지 못했다. 그들이 하나님의 능력과 권병을 갖지 못한 까닭은 그들이 창조주의 본질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피조물 가운데, 예컨대 하나님의 사자와 천사들은 하나님을 대신해 어떤 일들을 할 수는 있지만 하나님을 대표할 수는 없다. 그들이 인류에게는 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권병은 갖지 못하였고, 하나님처럼 만유를 창조하고 만유를 주관하고 주재하는 권병은 갖지 못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유일무이함은 그 어떤 비피조물도 대체할 수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권병과 능력 역시 어떤 비피조물도 대체할 수 없는 것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어떤 사자가 만물을 창조했다는 것을 보았느냐? 하나님은 왜 그의 사자와 천사를 파견해 만물을 창조하게 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권병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권병을 행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 모든 피조물과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창조주의 주재 아래에 있고, 창조주의 권병 아래에 있으며, 창조주는 그들의 하나님이자 그들의 주재자이다. 신분의 높고 낮음, 귀하고 천함, 능력의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그들 가운데 그 어떤 자도 창조주의 권병을 초월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들 가운데 그 누구도 창조주의 신분을 대체할 수 없으며, 그들은 영원히 하나님이라고 불릴 수 없고, 영원히 창조주가 될 수도 없다. 이것은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이며 사실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2. 우주의 행성은 인류보다 먼저 생겨났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우주의 행성은 언제부터 존재했든 간에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며 규칙적으로 운행하고 있다. 어떤 행성이 언제 어떤 위치로 이동하는지, 어떤 행성이 언제 어떤 임무를 수행하는지, 어떤 행성이 어떤 궤도에서 운행하는지, 언제 소멸하고 또는 교체되는지, 이 모든 것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된다. 행성의 위치와 행성 간의 거리는 엄격한 법칙과 정확한 수치가 있다. 운행 궤도, 운행 속도, 운행 법칙, 언제 어떤 위치까지 운행하는지도 특정한 법칙과 정확한 수치가 있다. 행성은 천만년 동안 그러한 법칙에 따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운행해 왔다. 그 어떤 힘도 그 운행 궤도와 법칙을 변경하거나 파괴할 수 없었다. 정확한 수치와 특정한 운행 법칙이 창조주의 권병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들 행성은 자발적으로 창조주의 주재와 다스림을 받으며 규칙적으로 운행한다. 인류는 거시적인 시각으로 쉽게 일부 법칙과 수치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일부 신기한 법칙이나 현상을 발견할 수도 있다. 인류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창조주가 만물을 창조했고 만물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심지어 창조주 권병의 존재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과학자, 천문학자, 물리학자들은 알 수 없는 엄청난 암흑에너지가 만물의 생존, 운행 법칙을 주재하고 지배하고 있음을 점점 더 많이 발견하고 있다. 이런 사실의 존재로 인류는 한 ‘능력자’가 만물의 운행 법칙에 대한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는 비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의 참모습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그는 항상 모든 것을 주재하고 다스린다. 그의 주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나 세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로 인해 인류는 사람이 만물의 생존 법칙을 좌지우지할 수 없으며, 그 누구도 이를 바꿀 수 없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또한, 그러한 법칙은 사람이 측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자연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다스리는 주재자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것은 인류가 거시적인 측면에서 느낄 수 있는 하나님의 권병이다.

미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지구에서 사람이 볼 수 있는 산과 하천, 호수, 바다, 육지와 사람이 겪는 사계절, 각종 동식물, 미생물, 인류를 포함한 지구상의 만물은 하나님이 주관하고 주재하고 있다. 하나님의 주관과 주재하에 만물은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생성 또는 소멸된다. 또한, 생존의 법칙이 생기게 되고 이 법칙에 따라 번성한다.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이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의 권병으로 인한 것이다. 이것이 그 유일한 답이다. “하나님의 권병으로 인한 것이다”란 말은 ‘하나님의 생각으로 인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한 것이다’, ‘하나님이 친히 한 행사로 인한 것이다’라고 할 수 있다. 즉, 만물의 법칙은 하나님의 권병에서 비롯될 뿐만 아니라 그의 생각에 따라 생겨난다. 또한, 만물은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한다. 그 모든 움직임과 변화는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 생성 또는 소멸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3. 하나님이 보기에 그가 창조한 만물이 이미 그의 말씀으로 세워지고 이루어졌으며, 모두 다 점진적인 변화를 겪고 있었다. 그때, 하나님은 그의 말씀으로 만들어진 각종 사물과 성취한 갖가지 일들에 대해 아주 흡족해하지 않았느냐? 그에 대한 답이 바로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이다. 여기서 너희는 무엇을 보았느냐?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무엇을 의미하느냐? 무엇을 상징하느냐? 말하자면, 하나님은 그가 계획한 일과 정해 놓은 일, 그리고 그의 목표를 성취할 능력과 지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어떤 일을 다 마친 후에 후회한 적이 있느냐? 그 답 역시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이다. 즉, 하나님은 후회는커녕 아주 흡족해했다는 것이다. 후회하지 않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완벽하고,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 또한 완전무결하며, 그의 권병이 그의 계획을 완벽하게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근원임을 의미한다. 사람이 어떤 일을 하고 나서 하나님이 했던 것처럼 보기에 좋았다고 말할 수 있느냐? 사람이 하는 모든 일들이 다 완벽할 수 있겠느냐? 사람이 어떤 일을 한 번에 그리고 영원히 이룰 수 있겠느냐? 사람들이 “더 좋은 것은 있어도 가장 좋은 것은 없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사람이 하는 일은 영원히 완전할 수 없다. 하나님이 자신이 펼치고 이룬 모든 일들이 보기에 좋았을 때, 하나님이 만든 모든 것은 그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법칙이 생겼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을’ 때, 하나님이 창조한 것은 한 번에 그리고 영원히 그 형태가 고정되고 유형이 구분되며 위치와 용도와 기능이 정해졌다. 동시에, 만물 가운데서 하는 역할과 하나님이 만물을 경영하는 기간에 가야 할 여정이 이미 하나님에 의해 정해져 영원히 바꿀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은 창조주가 만물에게 정해 준 ‘천상의 법칙’에서 온 것이다.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 구절은 단순하여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도, 중시하지도 않는 말이지만 이 말씀은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에게 내린 천상의 규칙, 천상의 법칙이다. 이 말씀에서 창조주의 권병이 또 한 번 더 실제적이고, 더 깊이 있게 구현되었다. 창조주는 말씀으로 말미암아 그가 얻고자 한 모든 것을 얻었고, 그가 이루고자 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말씀으로 말미암아 그가 만든 모든 것을 그의 수중에서 주관할 수 있고, 그가 만든 만물을 그의 권병으로 질서 정연하게 주재할 수 있었다. 동시에 만물도 그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생기고 소멸되며, 그의 권병으로 말미암아 그가 정한 법칙 안에서 생존한다. 그 법칙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법칙은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그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경륜을 위해 창조주가 그것을 폐기하는 그날까지 존재하고 지속되고 운행될 것이다! 창조주의 유일무이한 권병은 그가 만물을 창조하고, 그의 명대로 세워지는 것에서 묻어날 뿐만 아니라, 그가 만물을 다스리고 주재하며 만물에게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것에서도 구현되고 있다. 또한 창조주가 자신이 만들기로 했던 만물에게 완벽한 형식, 완벽한 생명의 구조, 완벽한 역할을 갖게 하여, 그가 만든 세계에 한 번으로 영원히 나타나고 존재하게 할 수 있는 데에서도 구현되고 있다. 또 창조주의 모든 생각이 그 어떤 조건의 제한이나 시간, 공간, 지리적인 제한도 받지 않는 데에서도 구현된다. 창조주의 유일무이한 신분은 그의 권병처럼 영원부터 영원까지 변하지 않을 것이며, 그의 권병은 영원히 그의 유일무이한 신분의 대언과 상징으로서, 영원히 그의 신분과 공존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4. 권병 자체에 대해 말하자면,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석할 수 있다. 먼저, 권병이든 능력이든 그것은 모두 긍정적인 것으로서, 그 어떤 부정적인 것들과도 무관하며, 그 어떤 피조물이나 비피조물과도 무관하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의 능력은 생명이 있고 활력이 넘치는 어떤 형식의 것이든 만들어 낼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생명이기 때문에 그는 모든 생명체의 근원이다. 그와 동시에 하나님의 권병은 모든 생명체에게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순종하게 할 수 있다.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기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생존하며 지속된다. 그 후에는 하나님이 모든 생명체를 주재하고 주관한다. 이는 지금까지도 틀림이 없었으며, 영원히 그럴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그 어떤 사람이나 그 어떤 것도 갖추지 못한 것이며, 창조주만이 이러한 능력을 소유하고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그것을 권병이라 부른다. 이것이 창조주의 유일무이함이다. 그러므로 ‘권병’이라는 이 단어 자체나 권병의 본질은 오직 창조주와 관련이 있다. 이는 그것이 창조주만의 신분과 본질의 상징이기 때문이며, 창조주의 신분과 지위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창조주 외에는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권병’이라는 이 단어와 관련이 있을 수 없다. 이 역시 창조주의 유일무이한 권병에 대한 해석인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5. 현재 너희는 하나님의 권병에 대해 어떤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느냐? 먼저,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권병은 사람의 권력과 어떻게 구분되느냐? 어떤 차이가 있느냐? 혹자는 함께 논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매우 좋은 말이다! 사람들이 이 둘을 함께 논할 수 없다 말할지라도, 사람의 생각과 관념 속에는 항상 사람의 권력이 권병이라는 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또한, 함께 놓고 비교하기도 하는데 왜 그런 것일까? 이는 개념을 잘못 사용하는 오류에 빠진 것이 아니겠느냐? 양자는 함께 연관시킬 수도 함께 비교할 수도 없다. 하지만 사람은 통제가 되지 않는다. 이를 어찌 해결해야 할까? 네가 진정으로 해결하고 싶다면 유일한 방법은 바로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권병을 알고 이해하는 것이다. 창조주의 권병을 알고 이해하게 되면, 네가 사람의 권력과 하나님의 권병을 한데 놓고 논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사람의 권력은 무엇을 가리키느냐? 간단하게 요약해 보면, 패괴 성품, 욕망이나 야심으로 잔뜩 부풀어진 사람이 목적한 바를 달성시키는 일종의 수완이나 재주라 할 수 있다. 이것을 권병이라 할 수 있겠느냐? 어떤 사람의 야심과 욕망이 얼마나 부풀어지고 그 사람이 그것을 얼마나 달성할 수 있든, 그 사람에게 권병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의 팽창과 목적 달성은 기껏해야 사탄이 사람 가운데서 한 어릿광대짓에 지나지 않는다. 잘해 봤자 사탄이 스스로 조상이 됨으로 하나님이 되고자 했던 야심을 충족시키는 연극일 뿐이다.

지금 너는 하나님의 권병을 어떻게 보고 있느냐? 이상의 내용을 교제했으니 너는 하나님의 권병에 대해 새로운 인식이 있어야 한다. 그럼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 하나님의 권병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 자신의 신분을 상징하지 않느냐? 하나님 자신의 능력을 상징하지 않느냐? 하나님 자신만의 지위를 상징하지 않느냐? 만물 가운데 너는 어떠한 일들에서 하나님의 권병을 보았느냐? 어떻게 보았느냐? 사람이 경험하는 사계절에서 볼 때,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 변화에 대한 법칙을 바꿀 수 있는 자가 있느냐? 봄에는 나무에서 싹이 트고 꽃이 피며, 여름에는 잎이 무성하게 자라고, 가을에는 열매를 맺고, 겨울에는 나뭇잎이 떨어진다. 이 법칙을 바꿀 수 있는 자가 있느냐? 그것은 하나님의 권병이 어느 한 면으로 구현된 것이 아니냐?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라고 말씀하자 빛이 있었는데, 이 ‘빛’은 지금 존재하고 있지 않느냐? 그것의 존재는 무엇으로 말미암은 것이냐?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은 것이고 하나님의 권병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하나님이 만든 공기가 지금도 존재하지 않느냐? 인류가 숨을 쉴 수 있는 공기도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냐? 하나님에게서 온 것을 누가 빼앗아 갈 수 있느냐? 누가 그것의 본질과 기능을 바꿀 수 있느냐? 하나님이 나눈 낮과 밤, 주야를 정한 법칙을 깨뜨릴 수 있는 자가 있느냐? 사탄을 포함해 깨뜨릴 수 있는 자가 있느냐? 밤이 되었을 때, 잠을 자지 않고 대낮처럼 보낼지라도 역시 밤이다. 네가 너의 생활 규칙을 바꾸었지만, 낮과 밤이 교체되는 법칙은 바꿀 수 없다. 이 사실은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다. 그렇지 않으냐? 사자에게 소처럼 밭을 갈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코끼리를 나귀로 변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닭을 독수리처럼 하늘을 날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늑대를 양처럼 풀을 먹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없습니다.) 물속의 물고기를 육지에서 살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이것은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다. 왜 그럴까? 하나님이 그들을 물속에서 살도록 정했기 때문에 그들은 물속에서 살아야 한다. 육지에서는 살 수 없어 죽는다. 그들은 하나님이 정한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 만물은 모두 자기만의 생존 법칙과 범위가 있고, 각각 자기만의 본능이 있다. 그러한 것들은 모두 창조주가 정한 것으로, 그 누구도 바꿀 수 없고 벗어날 수 없다. 예를 들어, 사자는 영원히 사람과 격리된 야생 세계에서 살지, 영원히 소처럼 충직하게 성실하게 사람과 함께하며 사람을 위해 일할 수 없다. 코끼리와 나귀는 다 동물이고 네 다리를 가지고 있으며 숨을 쉬는 피조물이지만, 그들은 다른 종이다. 그들은 각자 하나님에 의해 종류가 구분되고 모두 각자의 본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영원히 서로 바뀔 수 없다. 닭도 두 다리를 가지고 있고 독수리처럼 날개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기껏해야 나무 위에 날아오를 수 있을 뿐 영원히 하늘을 날 수 없다. 이것은 닭의 본능으로 결정된 것이다. 이런 것은 하나님의 권병에 의해 정해진 것이 자명하다.

인류가 오늘날까지 발전해 오면서, 인류의 과학은 ‘일취월장’했다고 할 수 있다. 과학 탐구 과정에서 이룩한 성과가 ‘과히 놀랄’ 정도이니, 인류의 재능은 날로 커지고 있다고 해야겠다. 그러나 유독 한 가지만은 인간의 과학으로 돌파하지 못한다. 인류는 비행기를 만들고, 항공 모함을 만들고, 원자 폭탄을 만들고, 우주로 날아가고, 달나라에 착륙하고, 인터넷을 발명하여 하이테크 시대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숨 쉴 수 있는 생물은 만들어 내지 못한다. 어떤 생물의 본능과 생존 법칙 및 각종 생물의 생사윤회에 대해서 인류의 과학은 무능하고 통제할 수 없다. 이로부터 인류의 과학이 얼마나 높은 수준에 달했든 창조주의 생각 하나에도 비할 수 없고, 창조주의 만물 창조의 오묘함과 창조주 권병의 위력은 측량할 수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지구상의 바닷물이 그렇게 많아도, 하나님이 각각에게 경계를 정해 주었기 때문에 그것은 지금껏 함부로 자신의 범위를 넘어 육지로 올라온 적이 없다. 그들은 정해 준 대로 있고,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으며,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서로 침범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움직이라고 말씀할 때에야 움직일 수 있고, 그들이 어디로 가고 어디에 머무를지는 하나님의 권병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권병’을 늘 하는 말로 설명하자면, 하나님이 말씀한 대로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어떻게 할지 결정할 권리가 있고, 하나님이 하고자 하는 대로 된다는 것이다. 만물의 법칙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사람의 말로 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명령으로 바뀌는 것이지 사람의 의지대로 바뀌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천지 만물, 우주, 별, 1년 사계절, 사람이 볼 수 있는 것과 볼 수 없는 것은 다 하나님의 명령과 지시, 그리고 하나님이 창조할 당시의 법칙에 따라 조금의 오차도 없이 하나님의 권병 아래에서 존재하고 운행되며 변화한다.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그것의 법칙을 바꿀 수 없으며, 그것 본래의 운행 궤적을 바꿀 수 없다. 그들은 하나님의 권병으로 말미암아 생기고, 그 권병으로 말미암아 소멸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권병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6. 만물은 하나님의 주재하에서 하나님의 권병으로 말미암아 생성되고 소멸되며, 하나님의 경영에 의해 생성되고 소멸된다. 어떤 것들은 조용히 왔다 조용히 사라진다. 인류는 그 근원과 법칙을 알지 못하며 생성과 소멸된 이유는 더더욱 알지 못한다. 사람은 만물에 발생한 모든 현상을 직접 보거나, 듣거나, 느낄 수 있으며, 그 모든 것은 인류와 관계가 있다. 또한, 인류는 온갖 현상의 기이함, 법칙, 이상한 점을 자기도 모르게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만물에 발생한 현상 이면에 창조주의 어떠한 뜻과 생각이 담겨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한 현상 이면에는 많은 이야기와 내용이 담겨 있다. 인류는 창조주를 멀리하고 그의 권병이 만물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인류가 창조주 권병의 주재하에서 발생한 모든 현상을 영원히 이해하거나 깨달을 수 없는 것이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다스림과 주재는 사람의 상상, 지식,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능가한다. 또한, 사람의 과학이 도달할 수 있는 수준과 창조된 인류의 능력을 넘어선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7.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이것은 창조주가 인류에게 한 원래의 말씀이다. 그가 말씀함과 동시에 무지개가 사람들 눈앞에 나타났고,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너희는 다 무지개를 본 적이 있을 텐데, 무지개를 보았을 때, 이 무지개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알고 있느냐? 과학으로는 이 사실을 논증할 방법이 없다. 과학으로는 그 근원을 찾지 못했으며, 그것의 행방도 찾지 못했다. 이것은 창조주가 사람과 세운 언약의 증거이기 때문에, 과학적 근거는 필요 없다. 그것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고 사람이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창조주의 말씀이 있고 난 후, 권병이 지속되는 결과인 것이다. 창조주는 그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사람과 세운 언약과 약속을 지켜 나가고 있다. 그러므로 무지개를 출현시켜 하나님이 세운 언약의 증거로 삼은 것은 창조주에게나 창조된 인류에게 있어, 영원히 바꿀 수 없는 천상의 규율이자 법칙이라는 의미이다. 변함없이 지속되는 이 법칙은 창조주가 만물을 창조하고 난 후 그의 권병이 또 한 번 진정으로 구현된 것이며, 창조주의 권병과 능력이 무한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무지개’를 그 언약의 증거로 삼은 것은 창조주 권병의 지속과 연장선인 것이다. 이 일은 하나님이 또 한 번 말씀으로 행한 것이고, 하나님이 말씀으로 사람과 세운 언약의 증거이다. 이는 그가 무엇을 이루고자 결정하고, 어떤 방식으로 이루고, 어떤 방식으로 성취하겠다고 하면, 그 일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사람에게 알려 주는 것이다. 하나님만이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의 말씀이 있고 난 몇천 년 후인 오늘날에도 인류는 하나님이 말씀한 무지개를 볼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로 인해, 그 일은 지금까지 바뀌지 않고 변함이 없는 것이다. 그 누구도 그 무지개를 없어지게 할 수 없고, 그것의 규칙을 바꿀 수도 없다. 그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존재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권병인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하면 반드시 책임지고, 책임지는 이상 반드시 이루며, 이루어진 것은 반드시 영원까지 지속된다.” 이 말은 여기서 아주 명확하게 구현되는데, 바로 하나님의 권병과 능력의 확실한 증거이자 특징이다. 이러한 증거와 특징은 그 어떤 피조물도 갖추지 못한 것이고, 그 어떤 피조물에게서도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 어떤 비피조물 가운데서도 볼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증거와 특징은 유일무이한 하나님만이 갖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창조주 특유의 신분과 본질을 피조물과 구분시켜 준다. 아울러, 그것은 하나님 자신 이외의 모든 피조물과 비피조물이 영원히 초월할 수 없는 증거이자 특징인 것이다.

하나님 편에서 사람과 언약을 세운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사건이다. 그는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한 가지 사실을 알려 줌과 동시에 그의 뜻도 알려 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특별한 증거를 사용해서 사람과 언약을 세우고, 그 증거로 그가 사람과 세운 언약에 확신을 준 것이다. 이 ‘언약’을 세웠다는 것이 하나의 큰 사건이 아니냐? 얼마나 큰 사건일까? 바로 그 ‘언약’의 특별함이 여기에 있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언약이 아니며, 또 단체와 단체 간의 언약도 아니다. 더욱이 한 국가와 또 다른 국가 간에 세운 언약도 아니며, 창조주가 인류 전체와 세운 언약이다. 이 ‘언약’의 유효 기간은 창조주가 만물을 폐기하는 그날까지이며, 이 ‘언약’의 시행자는 창조주이고, 그것의 수호자 역시 창조주이다. 요컨대, 인류와 세운 ‘무지개 언약’의 모든 것은 창조주와 사람의 대화에 따라 응하고 이루어졌으며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피조물이 창조주의 권병에 순종하고, 따르고, 신뢰하며, 그 권병을 깨닫고 목도하고 칭송하는 것 외에 무엇을 더 할 수 있겠느냐? 유일무이한 하나님 이외에 이러한 언약을 세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매번 무지개가 나타나는 가운데, 그것은 인류에게 창조주가 사람과 세운 ‘언약’을 알려 주고 상기시켜 주는 것이다. 창조주가 인류와 세운 언약이 끊임없이 나타나는 가운데, 그것이 인류에게 나타내 보여 주는 것은 ‘무지개’와 ‘언약’ 자체가 아니라, 창조주의 영원불변의 권병인 것이다. 무지개의 출현이 보여 주고자 하는 것은 창조주가 은밀한 곳에서 행하는 놀랍고도 오묘한 행사이며, 창조주의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변치 않는 권병의 생생한 구현이다. 이런 것들은 창조주의 또 다른 면에서 볼 수 있는 유일무이한 권병의 구현이 아니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8. 창세기 18장 18절 “아브라함은 반드시 강대한 나라가 되고 땅의 만국은 필히 그로 인해 복을 받을 것이니라(중국어성경 직역)”라는 말씀을 보고 난 후, 너희는 하나님의 권병을 느낄 수 있지 않으냐? 창조주의 비범함을 느낄 수 있지 않으냐? 창조주의 지고지상을 느낄 수 있지 않으냐? 하나님의 말씀은 아주 긍정적이다. 하나님이 이러한 말씀을 하는 것은 하나님께 필승의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 아니고 또는 그런 확신이 있음을 뜻하는 것도 아니라 하나님 말씀의 권병을 실증하기 위함이다. 그것은 그의 말씀이 이뤄지도록 내린 명령인 것이다. 여기에 너희가 주목해야 할 두 어휘가 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은 반드시 강대한 나라가 되고 땅의 만국은 필히 그로 인해 복을 받을 것이니라(중국어성경 직역)”라고 한 말씀에 어떤 모호한 부분이 있느냐? 걱정하는 부분이 있느냐? 두려워하는 부분이 있느냐? 그런 것은 인류에게서 자주 드러나는, 사람만이 갖고 있는 요소이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의 ‘반드시’와 ‘필히’ 이 두 어휘 때문이라도, 사람의 그런 요소는 창조주와 조금이라도 연관된 적이 없다. 그리고 그 누구도 감히 이러한 어휘를 타인에 대한 축복에 사용하지 못한다. 또한 그 누구도 감히 타인에게 강대한 나라를 주겠다고 확실하게 말하지 못하며, 감히 타인에게 천하 만민이 반드시 그로 인하여 복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을 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확실할수록 증명하는 것은 무엇일까? 하나님이 그런 권병을 가지고 있어 하나님의 권병이 이 일을 이룰 수 있음을 증명한다. 또한 하나님은 이 일을 반드시 이루고야 말 것임을 증명한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축복한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마음속에서 매우 확실한 것이고, 주저하는 바가 전혀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말씀에 따라 이 모든 일을 이루고자 하였으며, 그 어떤 세력도 이 일의 응답을 바꾸거나 저지하거나 파괴하거나 교란시킬 수 없다.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하나님 말씀의 이룩과 성취를 멈추게 하거나 영향을 줄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창조주가 하는 말씀의 위력이며, 부인할 수 없는 창조주의 권병인 것이다! 네가 이 말씀을 다 읽었을 때, 마음속에 의혹이 일겠느냐? 이 말씀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에서 능력과 위엄, 권병이 묻어난다. 이러한 위력과 권병, 그리고 일이 필연적으로 성취된다는 것, 이것은 그 어떤 피조물과 비피조물이 이를 수도 초월할 수도 없는 것이다. 창조주만이 이러한 어조로, 이러한 뉘앙스로 인류와 대화할 수 있다. 그의 약속이 빈말이 아니고 허풍이 아니며, 사람과 사물이 모두 초월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권병의 구현이라는 것이 사실로 입증되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9. 네 씨로 크게 성하게 하리라고 한 말씀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한 언약이다. 이 언약은 ‘무지개 언약’처럼 영원히 지켜질 것이며, 이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준 약속이기도 하다. 이러한 약속을 실현시킬 수 있는 능력과 자격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으며, 사람이 믿든 안 믿든, 받아들이든 못 받아들이든, 그리고 사람이 하나님의 약속을 어떻게 보든, 어떻게 대하든 상관없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의지나 생각이 바뀐다고 해서 바뀌는 것이 아니며, 그 어떤 사람이나 사물의 변화에 의해 변하는 것도 아니다. 만물이 사라져도 하나님의 말씀은 사라지지 않는다. 반대로, 만물이 사라지는 그날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완전히 이뤄지는 날이다. 이는 그가 창조주이기 때문이다. 그는 창조주의 권병을 지녔으며, 창조주의 능력이 있고, 만유와 모든 생명을 주관한다. 그는 무에서 유를, 유에서 무를 가능케 하며, 모든 생과 사의 전환을 주관한다. 그러므로 사람의 자손을 번성케 하는 것이 하나님께 있어서는 지극히 간단한 일인 것이다. 이 일이 사람이 듣기에는 천일야화나 동화 속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기에, 하나님이 하고자 결정한 일이나 사람에게 약속한 일은 천일야화나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본 사실이며,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너희는 이러한 체득이 있느냐? 이런 것은 사실로 증명되고 있다. 아브라함의 후예가 많지 않으냐? 얼마나 많으냐?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라고 한 하나님의 말씀과 같지 않으냐? 각 나라, 각 지역, 세계 각지로 널리 퍼져 있지 않으냐? 이러한 사실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냐? 하나님 말씀의 권병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난 후, 몇백 년 혹은 몇천 년 동안 그 말씀이 계속해서 이뤄지고, 끊임없이 현실이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 말씀의 위력이자 하나님 권병의 증거이다. 하나님이 만유를 창조할 때,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었다. 이는 순식간의 일로, 아주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일이다. 이러한 일의 성취와 응답은 시간 차 없이 즉시 이루어진 경우이다. 이 또한 다 하나님의 권병이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축복한 일로 사람들에게 하나님 권병의 또 다른 면의 본질을 볼 수 있게 하였다. 또 사람들에게 창조주의 권병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음을 깨달을 수 있게 하고, 창조주 권병의 더 실질적이고 더 훌륭한 면도 느끼게 하였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10. 하나님의 권병은 사라졌다 나타나고 있다가도 없는 것이 아니며, 아무도 그의 권병이 얼마나 큰지를 가늠할 수 없다. 하나님이 누군가에게 축복하면,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지 간에 그의 그 축복은 지속된다. 그 지속은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권병을 증거하고, 인류에게 창조주가 가진 영원불멸의 생명력이 수없이 재현됨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의 권병이 나타날 때마다 그의 말씀을 완전하게 구현해 내어 만물과 인류에게 보여 준다. 그리고 그의 권병으로 이뤄진 일마다 더없이 정교하고 아름다우며 완전무결하다. 그의 생각, 그의 말씀, 그의 권병과 그가 이룬 일마다 전부 그 어떤 것도 비할 수 없는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라고 말할 수 있다. 피조물에게 있어서 그 의의와 가치는 인류의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약속한 후에는, 그 사람이 어디서 태어났든, 무엇을 하든, 약속받기 전후의 그의 사정이 어떻든, 그의 생존 환경에 얼마나 큰 변화가 일어났든, 하나님은 그것을 다 환히 알고 있다. 하나님이 한 말씀이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하나님이 보기에는 다 방금 일어난 것과 같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인류에게 한 모든 약속을 추진하고 주관하고 실현시키는 능력과 권병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 약속이 무엇이든 간에,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든, 그 약속을 이루는 데에 필요한 요소, 예를 들면 시간, 장소, 종족 등과 같은 요소의 범위가 얼마나 넓든, 그 약속은 이루어지고 실현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것은 하나님께 있어서 전혀 힘들지 않은 아주 간단한 일이다. 이것은 무엇을 증명하느냐? 하나님의 권병과 능력이 주관하는 범위는 우주 전체, 인류 전체라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11.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욥을 축복한 후에 가만히 계신 것이 아니고, 사자에게만 시키고 자신은 결과만 기다린 것이 아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이 있자마자 만물은 하나님 권병의 인도하에 하나님이 행하고자 하는 사역에 협력하여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사람과 사물을 예비하였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하나님의 권병은 온 땅에서 행해졌고, 아브라함과 욥에게 준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고 응답하기 위한 길을 열었다. 그뿐만 아니라, 앞으로 진행될 각각의 절차와 모든 중요한 부분에 필요한 것들을 다 계획하고 예비하였다. 그 기간에 하나님이 움직인 것은 하나님의 사자들만이 아니라 거기에는 하나님이 창조한 만물도 포함되어 있었다. 즉,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자들에게만 권병을 행한 것이 아니라 만물도 움직여 하나님이 이루려는 사역에 협력하게 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권병을 구체적으로 행하는 방식이다. 너희들 가운데, 하나님의 권병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해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즉, 하나님은 권병과 능력이 있기 때문에 셋째 하늘이나 어떤 고정된 자리에 계시면서 그 어떤 구체적 사역을 행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모든 사역이 다 생각으로 완성될 것이라고 말이다. 사람들은 또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었지만, 하나님은 아무것도 할 필요 없이 그저 말 한마디로 충분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사실이 그러냐? 확실히 그렇지 않다! 하나님이 권병과 능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의 권병은 진실하고 실제적인 것이지 절대로 공허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권병과 능력의 진정성과 실제성의 단면은 그가 만물을 창조하고 만유를 주관하며, 그가 인류를 인도하고 경영하는 과정에서 점차적으로 나타나고 구현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류를 주재하고 만물을 주재하는 각각의 방식, 각각의 측면, 각각의 세부 내용과 그가 이룬 모든 사역, 그리고 만물에 대한 그의 이해는 확실히 하나님의 권병과 능력이 공허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준다. 그의 권병과 능력은 항상 모든 일에서 나타나고 구현되고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권병이 실제로 존재함을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시시각각 자신의 권병과 능력으로 계속 사역하며, 만물을 주관하고 주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능력과 권병은 천사와 하나님의 사자를 포함해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어떤 축복을 주고, 욥에게는 또 어떤 것을 축복하였는지,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결정한 것이며, 하나님이 말씀한 대로 된 것이다. 설사 하나님의 사자가 아브라함이나 욥에게 직접 임했을지라도, 그들이 한 것은 다 하나님의 지시대로 한 것이며, 모두 하나님의 권병 아래에 있고, 그들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주재 아래에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성경 기록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아브라함에게 임한 것을 보았을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이 친히 무엇을 하였는지 보지 못했을지라도, 사실상 진정한 능력과 권병으로 행하는 분은 오직 하나님 자신이다. 이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설사 네가 천사나 사자에게 큰 능력이 있어 그들이 이적과 기사를 행하거나 하나님이 준 사명을 받고 일련의 일을 행하는 것을 보았을지라도, 그들의 모든 행위는 하나님이 준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것일 뿐, 절대로 하나님의 권병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만물을 창조하고 주재하는 창조주의 권병을 가진 사람이나 사물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창조주의 권병을 행하거나 나타낼 수 없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12. 성경 구절을 보자.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 나오는데 …”, 예수는 이때, “나사로야 나오라”라고 한 마디만 했을 뿐이다. 그러자 나사로가 무덤에서 나왔다. 주의 입에서 나온 말씀 한 마디에 따라 일이 이루어진 것이다. 예수는 제단을 쌓거나 다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으며, 그저 한 마디만 했을 뿐이다. 이것을 이적과 기사라고 해야 하겠느냐, 아니면 명령이라고 해야 하겠느냐? 아니면 술법이라고 해야 하겠느냐? 겉으로 보면, 이적과 기사라고 칭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지금 시대에 적용시켜도 이적과 기사라고 할 수 있다. 절대 혼을 부르는 술법이나 사악한 요술이라고 할 수 없다. 정확히 말해서, 이 기적은 창조주의 권병으로는 매우 평이한 사건이자 발현된 매우 작은 부분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권병이자 능력이다. 사람을 죽게 할 수 있는 권병이 있는 하나님은 육을 떠난 영혼을 저승으로도, 마땅히 가야 할 다른 곳으로도 가게 할 수 있다. 사람이 언제 죽고, 죽은 뒤에 어디로 가야 할지는 다 하나님이 결정한다.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이런 일을 할 수 있고, 사람과 일, 사물이나 공간적 지리적 제한을 받지 않는다. 그저 그가 하고 싶은 것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만물 생령은 다 그의 주재하에 있기 때문에, 그의 말씀과 권병으로 인해 생겨나고 살아가고 또한 소멸한다. 죽은 사람을 부활시킬 수 있는 것 역시 그가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이것은 창조주만이 지닌 권병이다.

예수가 나사로를 부활시킨 목적은 바로 사람의 생사를 포함한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결정한다는 사실을 사람과 사탄에게 증명해 알게 하고자 함이었다. 또한 하나님이 성육신하였을지라도, 변함없이 사람이 볼 수 있는 물질세계와 볼 수 없는 영계까지 다스리고 주관하고 있음을 알게 하고, 사람의 모든 것은 결코 사탄이 다스리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하려 함이다. 이것은 하나님 권병의 표출과 발현이며, 또한 하나님이 인류의 생사를 주관한다는 사실을 만물에게 전달하는 방식인 것이다. ‘예수가 나사로를 부활시킨’ 일은 창조주가 인류에게 분명하게 알려 주고 가르치는 방식이자 그의 능력과 권병으로 인류에게 교훈을 주고 공급해 주는 구체적인 행위이다. 또한, 비언어적 요소로 인류에게 창조주가 만물을 주관함을 보여 주는 방식이자 인류에게 창조주 이외에는 구원이 없다는 사실을 실제 행사를 통해 알려 주는 방식인 것이다. 이러한 무언의 방식으로 인류에게 준 가르침은 영구적이고 영원불멸한 것이다. 그는 이런 방식으로 인류의 마음에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놀라움과 깨달음을 가져다주었다. ‘나사로의 부활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 이 사건이 하나님을 따르는 모든 자에게 끼친 영향은 아주 깊다. 이는 이 일을 잘 아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만이 사람의 생사를 주관한다’는 깨달음과 이상(異象)을 확고하게 하였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13. 하나님은 권병과 능력이 있다 할지라도 일할 때는 매우 신중하고 원칙이 있으며 신용을 지킨다. 그의 신중함과 그가 일하는 원칙은 거스를 수 없는 창조주의 성품과 뛰어넘을 수 없는 창조주의 권병을 나타내고 있다. 그가 지고지상한 권병을 가지고 있고, 만물이 모두 그의 권세 아래에 있을지라도, 그가 만물을 주재하는 능력을 갖추었을지라도 단 한 번도 자신의 계획을 파괴한 적도 방해한 적도 없다. 그는 권병을 행할 때마다 항상 자신의 원칙을 엄격하게 지키며, 그가 말씀한 대로, 그가 계획한 절차와 목표대로 정확하게 진행한다. 두말할 것 없이 하나님이 주재하고 있는 만물 역시 하나님 권병의 행사 원칙을 따르고 있다. 그의 권병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존재가 없고, 그의 권병의 행사 원칙을 바꿀 수 있는 존재도 없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복받는 자는 그의 권병으로 말미암아 축복을 받게 되고, 저주받는 자 역시 그의 권병으로 말미암아 벌을 받게 된다. 하나님 권병의 주재하에, 하나님 권병의 시행에서 벗어날 수 있는 존재가 없으며, 하나님 권병의 행사 원칙을 바꿀 수 있는 존재도 없다. 창조주의 권병은 그 어떤 요인의 변화로도 바뀌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의 권병의 행사 원칙 역시 그 어떤 원인에 의해서도 바뀌지 않는다. 천지가 격변한다 하더라도 창조주의 권병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만물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창조주의 권병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영원히 바뀌지 않고 거스를 수 없는 창조주 권병의 본질인 것이다. 이 역시 창조주의 유일성인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14. 사람이 매일 어디를 가고 무엇을 할지, 어떤 사람이나 일을 맞닥뜨릴지, 어떤 말을 할지,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예상할 수 있을까? 사람은 이 모든 것이 일어날지 아닐지를 예상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일이 어떻게 진전되도록 좌우지할 수도 없다. 사람은 살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일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생활상의 소소한 일’이 일어나거나 흘러가는 방식 또는 법칙은 인류에게 어떤 일이든 우연이란 없으며 그것이 전개되는 과정과 필연성은 사람의 의지에 의해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창조주가 인류에게 전하고자 하는 훈계와 인류가 자신의 운명을 좌우할 수 없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또한, 그 일들은 운명을 자신의 손으로 결정하고자 하는 인류의 야심과 욕망에 상반된다. 이는 반복적으로 얼굴을 가격하는 것처럼 주의를 환기시키고 도대체 누가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고 주관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인류는 또한 야심과 욕망이 끊임없이 무너지고 깨지면서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예비된 운명에 순응하고, 현실, 하늘의 뜻, 창조주의 주재를 받아들이게 된다. 계속해서 일어나는 ‘생활상의 소소한 일’부터 삶의 운명까지 창조주의 주재와 안배를 나타내지 않는 것이란 없다. 또한, 그것들은 ‘창조주의 권병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메시지와 ‘창조주의 권병은 지고지상하다’는 불변의 진리를 전달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15. 사람이라면 누구나 거치는 성장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이나 접하는 사물은 모두 창조주의 계획, 안배와 필연적인 관계가 있다. 사람은 이렇게 복잡하게 얽혀 있는 관계망을 예상할 수도, 통제할 수도, 짐작할 수도 없다. 모든 사람의 성장 배경은 서로 다른 사람과 일과 사물, 많은 사람과 일과 사물과 맞닿아 있다. 아무도 이렇게 거대한 관계망을 계획하거나 안배할 수 없다. 각 부류의 사람과 일과 사물의 출현, 지속, 소멸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과 사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창조주만이 가능할 뿐이다. 사람과 일, 사물을 연결하는 방대한 관계망은 창조주의 예정 아래 있는 모든 사람이 성장할 수 있도록 하고, 성장 과정에 필요한 다양한 환경을 마련한다. 또한, 창조주의 경영 사역에 필요한 다양한 역할을 결정하고, 사람이 저마다의 사명을 순조롭게 완수할 수 있도록 든든한 기반을 구축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16. 한 사람이 성장 과정에서 어떤 사람과 일, 사물의 감화와 영향을 받는지, 어떤 지식을 배우고 어떤 능력을 갖추는지, 어떤 습관을 가지는지, 이 모든 것은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부모, 가족, 주변의 사람과 일, 사물도 선택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주변 사람과 일, 사물과의 관계나 그것이 성장 과정에서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 역시 선택할 수 없다. 그럼 누가 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안배하는 것일까? 사람에게 선택권이 없는 이상 사람이 결정을 하는 것은 아니며,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것은 더더욱 아닌 것이다. 따라서 모든 사람과 일, 사물은 창조주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 확실하다. 창조주가 모든 사람의 출생 배경을 안배한 것처럼 특정한 성장 배경도 안배한 것이다. 한 사람의 탄생이 주변 사람과 일, 사물의 변화를 초래한다면, 그 사람의 성장 역시 주변의 사람과 일, 사물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음에도 집안의 몰락을 가져와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어떤 사람도 특정된 규칙에 따라 태어나지 않으며, 사람의 성장 배경에 규칙과 필연성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그 모든 것은 사람이 상상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운명에서 비롯되고 운명에 의해 결정된다. 결국에는 창조주가 정해 놓은 운명, 그가 주재하고 안배한 운명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17. 부모의 품을 떠나 독립할 때 어떤 사회 환경에서 어떤 일이나 사업을 하게 될지는 모두 운명으로 정해져 있으며, 이는 부모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어떤 사람은 대학에 진학해서 좋은 전공을 선택하고, 졸업 후 만족스러운 일자리를 찾을 것이다. 인생 여정에서 첫발을 순조롭게 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기술을 가졌어도 사업을 일으키기는커녕 자기에게 맞는 일이나 자신이 속할 곳을 찾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인생의 첫 발걸음을 내딛자마자 하는 일마다 실패하고 순탄하지 못하여 앞날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경우이다. 성공과는 연이 없는 운명인 것처럼, 힘들게 공부했지만 대학교 문턱을 밟아 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인생의 첫 희망이 물거품이 된 것이다. 이 경우, 운명이 변수로 가득 차 있음을 처음 실감하고, 앞길이 순탄할지 험난할지 두려움과 기대를 동시에 갖게 된다. 교육 수준이 높지 않아도 책을 써서 이름을 날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식 없이도 창업을 통해 수익을 내고 밥벌이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어떤 직업을 선택하고 어떻게 생계를 유지할지, 좋은 선택과 나쁜 선택의 기로에서 과연 사람은 스스로 방향을 정할 수 있는 것일까? 사람의 바람과 결정에 따른 선택이 가능한 것일까? 대부분의 사람은 적게 일하고 많이 벌길 원하고, 바람과 햇빛을 피할 수 있는 편안한 곳에서 살면서 그럴싸한 옷을 입고 싶어 한다. 또한 남보다 성공해서 가문을 빛내고 싶어 한다. 사람의 소망은 이렇게 ‘완벽’하다. 그러나 인생의 여정에서 첫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운명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차츰 깨닫게 된다. 또한, 자신의 미래를 대담하게 계획하거나 마음껏 꿈을 키울 수는 있어도 꿈을 실현할 능력과 권력이 없을뿐더러 미래를 결정할 능력이 없음을 처음으로 실감하게 된다. 사람이 직면한 현실은 언제나 꿈과 괴리가 있고 늘 생각만큼 만족스럽지 않다. 사람은 그런 현실에 만족하지 못한다. 심지어 자신의 직업, 앞날을 위해 온갖 방법과 수단을 동원하고, 운명을 바꾸기 위해 노력과 희생을 아끼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열심히 노력해서 자신의 꿈과 희망을 이룰 수 있다고 해도 궁극적으로 영원히 운명을 바꿀 수는 없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자신의 숙명을 거스를 수는 없다. 능력, 지능, 의지와 상관없이, 운명 앞에서 사람은 나이, 우열, 귀천을 구분할 수 없는 동등한 존재이다. 사람이 평생 어떤 직업을 가질지, 어떻게 생계를 유지할지, 얼마나 많은 부를 가질지는 부모에 의해 좌우되거나 재능, 노력, 욕심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이는 창조주가 정한 운명에 달려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18. 부모는 한 사람의 삶에서 출산과 부양의 책임을 지고, 그 사람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형식적으로 제공할 뿐이다. 모든 사람의 운명은 오직 창조주의 정하심과 관련이 있다. 사람의 미래는 운명으로 정해져 있으며, 그 누구도 좌지우지할 수 없다. 부모조차 자식의 운명을 바꿀 수 없다. 모든 사람은 독립적이고 각자의 운명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부모는 자식의 운명을 막을 수도 없고, 현생에서 맡은 역할에 힘을 보탤 수도 없다.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고 어떤 환경에서 성장할지, 이는 현생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전제 조건일 뿐, 그것이 운명을 결정할 수 없고 어떤 운명 속에서 사명을 완수하게 될지도 결정할 수 없다. 따라서 부모는 한 사람이 현생의 사명을 완수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없고, 가족들 역시 그 사람이 현생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자신의 사명을 어떻게 완수하게 될지, 어떤 환경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게 될지는 현생의 운명에 의해 좌우된다. 즉, 창조주의 뜻으로 정해진 모든 사람의 사명은 객관적인 조건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성장 환경에서 성숙해지고, 인생 여정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며, 창조주가 정해 놓은 운명을 조금씩 실현하게 된다. 수많은 사람 중의 한 사람으로서 자연스럽게 삶에서 역할을 짊어지고, 창조주의 정하심과 주재에 따라 피조물로서의 책임을 수행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19. 사람이 태어나는 것이 전생의 인연으로 시작된 것이라면, 죽음은 전생 인연의 끝인 것이다. 태어나는 것이 금생에서 해야 할 사명의 시작이라면 죽음은 그 사명의 끝인 것이다. 창조주가 사람이 태어날 때 그 배경을 정해 놓았으므로 그의 죽음의 배경 또한 이미 계획되어 있다. 다시 말해, 우연히 태어나거나 예기치 못하게 죽는 이는 아무도 없으며, 태어남과 죽음은 모두 그 사람의 전생 및 금생과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태어남과 죽음의 배경 모두 창조주가 예정해 놓았다. 이것이 한 사람의 타고난 숙명이자 운명이다. 모두가 다른 배경에서 태어나듯 모두가 다른 배경에서 죽음을 맞게 된다. 그래서 사람의 수명, 죽음의 방식과 시점이 모두 다른 것이다. 어떤 사람은 튼튼하고 건강하지만 일찍 죽는다. 어떤 이는 몸이 약하고 자주 아프지만 장수하며 편안히 눈을 감는다. 비명횡사하는 사람도 있고, 천수를 다하는 사람도 있다. 타지에서 마지막을 맞는 이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눈을 감는 이도 있다. 하늘에서 죽는 사람도 있고, 지하에서 죽는 사람도 있다. 누구는 익사하고 누구는 재난에서 죽는다. 누구는 아침에, 누구는 밤에 죽는다…. 누구나 주목받고 태어나 아주 멋진 삶을 살고 명예롭게 죽기를 바라지만 운명을 뛰어넘고, 창조주의 주재에서 도망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것이 사람의 운명이다. 사람은 미래를 위해 어떤 계획이든 세울 수 있어도 어떻게 태어나고 죽을지 또 죽는 시간을 계획할 수는 없다. 사람들은 죽음이 닥치는 것을 피하고 막으려 애쓰지만 알지 못하는 사이 죽음은 조용히 다가온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 더 나아가 어디서 죽을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 삶과 죽음을 주관하는 존재는 사람도, 자연계의 어떤 생명체도 아닌 창조주이다. 그의 권병은 유일무이하다. 인류의 삶과 죽음은 자연법칙의 산물이 아니라 창조주의 권병과 주재로 생긴 결과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20. 사람은 하나님의 권병 아래에 있으며, 모든 사람은 능동적 또는 수동적으로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를 받아들인다. 사람이 살면서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수없이 시행착오를 겪어도, 결국에는 창조주가 정해 놓은 운명의 길로 되돌아가게 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아무도 벗어날 수 없는 창조주의 권병이며, 또한 창조주가 권병으로 만물을 주재하고 다스리는 방식이다. 바로 아무도 벗어날 수 없는 창조주의 권병, 또한 이런 방식이 있기에, 만물이 질서 정연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고, 인류는 아무런 방해 없이 끊임없는 윤회를 반복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세상이 규칙적으로 돌아가고, 매일, 매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너희들은 이러한 사실에 눈을 뜨고 어느 정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진리에 대한 너희들의 경험과 인식, 하나님에 대한 인식에 따라 깊이 느낄 수도, 얕게 느낄 수도 있다.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는 진리의 실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만큼 체험했는지, 하나님의 본질과 성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가 사람의 순종 여부에 의해 결정되느냐? 하나님의 이런 권병이 사람의 순종 여부에 의해 좌우되는 것일까? 하나님의 권병은 어떤 상황에서든 존재한다. 하나님은 어떠한 상황에서든 자신의 생각과 뜻에 따라 모든 사람의 운명과 만물을 주재하고 안배한다. 이는 사람의 변화나 누군가의 의지에 따라 바뀌는 것이 아니며, 시간과 공간, 지리적인 변화로 인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권병은 하나님 자신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주재를 알고 받아들이고, 그의 주재에 순종하느냐로 하나님이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는 사실이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즉, 하나님의 주재에 대해 사람이 어떤 태도를 갖든 하나님이 사람의 운명과 만물을 주재하는 사실은 전혀 바뀌지 않는다. 네가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하지 않는다고 해도 너의 운명은 여전히 하나님의 주재 아래에 있다. 네가 하나님의 주재를 모른다고 해도 하나님의 권병은 변함없이 존재한다. 하나님의 권병과 하나님이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는 사실은 사람의 의지와 기호, 선택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권병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 천지가 사라진다고 해도 그의 권병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에 유일무이한 권병을 갖고 있다. 그의 권병은 그 어떤 사람이나 사물, 공간, 지리적인 제한을 받지 않는다. 하나님은 항상 변함없이 권병을 시행하고 큰 능력을 나타낸다. 그는 경영 사역을 계속하며 만물을 주재하고, 만물에게 공급하며, 만물을 지배한다. 이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는 사실이며 영원불변한 진리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21.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킬 때, 사람을 거침없이 해칠 때, 하나님은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지 않았다. 또한 그는 자신이 택한 사람을 방치하거나 방관하지도 않았다. 하나님은 사탄이 하는 모든 일을 분명하고 똑똑히 알고 있었다. 사탄이 어떤 일을 하거나 트렌드를 만들 때마다 하나님은 사탄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이 택한 사람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조용히, 소리 없이 자신이 하고자 하는 모든 일을 해 나갔다. 하나님은 누군가에게 사역을 할 때나 누군가를 택할 때, 조용하고 자연스럽게 하고자 하는 일을 할 뿐 그 어떤 사람에게도, 사탄에게도 선포하지 않는다. 더욱이 요란하게 움직이지도 않는다. 우선, 하나님은 네가 태어날 가정을 정해 주었다. 너의 가정 환경, 부모, 조상은 하나님이 일찍이 정해 놓은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일을 즉흥적으로 결정하고 행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준비했다고 하는 것이다. 네가 태어날 가정을 정한 다음에는 네가 태어날 날짜도 정했다. 이어서 네가 울며 태어나는 모습, 네가 옹알옹알 말을 배우고, 아장아장 걸음마를 떼는 모습부터 네가 조금씩 성장해 달리고, 뛸 수 있으며, 말을 할 수 있고, 감정 표현을 할 수 있는 과정까지 하나님은 다 지켜보았다. 사탄은 성장 과정에 있는 모든 사람을 호시탐탐 노린다. 하지만 하나님이 하는 일은 사람이나 일, 사물, 공간, 시간의 제약을 전혀 받지 않는다. 그는 해야 할 일, 하고자 하는 일을 행할 뿐이다. 너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많은 좌절, 질병, 우여곡절을 겪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하나님은 너의 생명과 미래를 엄격하게 지켜 주었으며, 너의 삶을 든든히 뒷받침해 주었다. 하나님이 너의 곁에서 너를 보호하고 돌보았기 때문이다. 어느새 너는 장성하여 새로운 사물을 접하게 되고, 이 세상과 이 인류를 알아 가기 시작한다. 모든 일이 새롭게 느껴진다. 너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관심을 두며, 자신의 인성으로 자신만의 공간에서 살아간다. 이 과정에서 너는 하나님의 존재를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그러나 네가 조금씩 성장하고, 한 걸음씩 앞을 향해 나아가고, 심지어 지식을 습득하고 과학을 공부할 때에도 하나님은 너에게서 한 걸음도 멀어진 적이 없이 지켜 주었다.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너도 세상을 알아 가고 접하는 과정에서 꿈을 키운다. 자신의 취미, 자신의 관심사를 가지게 되고,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늘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며 미래에 대한 그림을 그려 본다. 그 과정이 어떠했든지 하나님은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기억하고 있다. 어쩌면 너는 자신의 과거를 잊었을지 몰라도, 누구보다도 하나님이 너를 더 잘 알고 있다. 너는 하나님이 지켜보는 앞에서 살아가고, 자라고, 성숙해지기 때문이다. 그 기간 동안 하나님은 가장 중요한 일을 행한다. 이는 아무도 느끼지 못했던 일이고, 아무도 모르는 일이며, 하나님이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일이다. 가장 중요한 일은 어떤 것일까? 그 일은 하나님이 누군가가 구원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 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반드시 그 일을 해야 한다. 그 일은 사람과 하나님 모두에게 굉장히 중요하다. 그 일이 어떤 일인지 너희는 알고 있느냐? 너희는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개념도 없어 보이는구나. 그럼 내가 알려 주겠다. 네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사는 동안 하나님은 너에게 수많은 일을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일을 했는지 일일이 알리지도 않고, 너에게 알게 하지도 않는다. 너에게 말한 적도 없다. 그 일들이 어떤 것이든 사람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고,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하나님은 그 일을 다른 일들보다 훨씬 중요하게 여겼다. 바로 사람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하나님이 그 사람의 안전을 보장해 준 것이다. 이 말이 너희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아 “안전이 그렇게 중요합니까?”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안전’은 문자적으로 보면 무엇을 말하느냐? 아마 너희는 평안함, 재앙도 화도 없는 것, 멀쩡하게 사는 것, 정상적인 삶 정도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속으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도 할 것이다. 내가 말하는 하나님의 그 일은 도대체 무엇을 말할까? ‘안전’이 하나님 편에서는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정말 너희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뜻일까? 아니다. 그럼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한다는 것일까? 여기서 말하는 ‘안전’이란 사탄에게 먹히지 않도록 지켜 준다는 의미이다. 중요한 일이지 않으냐? 사탄에게 먹히지 않는다는 것은 너의 안전과 관련된 일이지 않으냐? 신변의 안전과 관계되는 일이니 이보다 중요한 일은 없을 것이다. 사탄에게 먹히는 순간 너의 영혼과 육체가 더는 하나님께 속하지 않으므로 하나님은 더 이상 너를 구원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런 영혼, 그런 사람을 포기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네가 사탄에게 먹히지 않도록 너의 안전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중요한 일이지 않으냐? 그런데도 너희는 왜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느냐? 아무래도 너희는 하나님의 큰 은혜를 느끼지 못하나 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6> 중에서

22. 사탄은 하나님의 권병을 감히 넘어설 수 없으며, 하나님의 명령과 구체적인 지시에 대해서는 더욱 조심스럽게 명령에 복종하고 따르며 감히 거역하지 못한다. 물론 사탄은 또한 마음대로 하나님의 어떤 명령도 바꿀 수 없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탄에게 준 범위이다. 그러므로 사탄은 감히 그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 이것이 하나님 권병의 위력이 아니겠느냐? 하나님의 권병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냐? 사탄은 하나님을 어떻게 대해야 하고, 자기가 속으로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인류보다 훨씬 잘 안다. 그러기에 사탄은 하나님의 지위와 권병에 대해 영계에서 확실하게 보았고, 하나님 권병의 위력과 하나님의 권병이 행사되는 원칙에 대해 깊이 느꼈다. 그래서 감히 태만하거나 그 어떤 것도 전혀 거스르지 못하며, 감히 하나님의 권병을 벗어나 그 어떤 일도 하지 못한다. 또한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 그 어떤 도전도 감히 하지 못한다. 사탄은 본성이 사악하고 교만할지라도 하나님이 정해 준 한계와 범위를 감히 벗어나지 못한다. 천만년 동안, 사탄은 엄격하게 그 한계를 지켰고, 그에 대한 하나님의 모든 지시와 명령을 준수하였으며, 지금껏 감히 한계선을 넘어갈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사탄이 악독하긴 하지만 패괴된 인류보다 훨씬 ‘현명’하다. 사탄은 창조주의 신분을 알고 자신의 한계를 안다. ‘규율을 지키는’ 사탄의 행위로부터 하나님의 권병과 능력은 사탄이 뛰어넘을 수 없는 천상의 법칙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의 유일성과 하나님의 권병으로 인해 만물이 법칙 속에서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으며, 인류가 하나님이 정한 코스 속에서 번성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이 규율을 깰 수 없고 이 법칙을 바꿀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모두 창조주의 손에서 나온 것이고, 창조주의 결정에서 온 것이며, 창조주의 권병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23. 사탄이 욥을 호시탐탐 노렸을지라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욥의 털끝 하나도 건드릴 수 없었다. 사탄의 본성이 사악하고 잔인할지라도,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후에는 사탄도 하나님이 지시한 것을 지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사탄이 욥에게 임할 때, 사나운 늑대가 양 떼에 침입하듯 사납게 날뛰었을지라도, 감히 하나님이 정해 준 범위를 망각할 수 없었고, 감히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지 못했다. 사탄은 어떻게 해도 감히 하나님 말씀의 원칙과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냐? 이 점에서 볼 때, 여호와 하나님의 그 어떤 말도 사탄은 넘어설 수 없는 것이다. 사탄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은 명령이고 천상의 법칙이며, 하나님의 권병을 나타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모든 말씀 뒤에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천상의 법칙을 어기며 위반한 자들에 대한 처벌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사탄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면 하나님의 권병을 넘어서고 천상의 법칙에 대항한 결과를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똑똑히 알고 있다. 그 결과는 도대체 무엇일까? 말할 것도 없이 사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다. 사탄이 욥, 이 한 사람에게 행한 일은 사탄이 인류를 패괴시킨 축소판일 뿐이다. 그리고 사탄이 그 일을 벌일 때 하나님이 사탄에게 정해 준 범위와 내린 명령은 사탄이 모든 일을 하는 데에 있어서 원칙의 축소판일 뿐이다. 또한 사탄이 그러한 일에서 담당하는 역할과 위치는 사탄이 하나님의 경영 사역에서 담당하는 역할과 위치의 축소판일 뿐이다. 사탄이 욥을 시험하던 그 일에서 보인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은 사탄이 하나님의 경영 사역에서 하나님께 감히 대항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축소판일 뿐이다. 이러한 축소판이 너희에게 주는 경고는 무엇이냐? 사탄을 포함한 만물 가운데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감히 창조주가 정한 천상의 법칙과 규칙을 어기지 못하며, 그런 법칙과 규칙에 저항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저항자에 대한 창조주의 처벌을 바꾸거나 그것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창조주만이 천상의 법칙과 규칙을 정할 수 있고, 창조주만이 그러한 법칙과 규칙을 시행할 능력이 있으며, 창조주의 능력은 그 어떤 사람이나 그 어떤 것도 초월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창조주만의 권병이며, 이 권병은 만물 가운데 가장 높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가장 크고 사탄이 그다음이다’라는 말은 절대 있을 수 없다. 유일무이한 권병을 가진 창조주 외에 다른 신은 있을 수 없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24. 사탄은 수천 년 동안 인류를 패괴시키면서 무수히 많은 악행을 저질렀고, 대대로 사람들을 미혹하였으며, 인간 세상에서 천인공노할 죄를 저질렀다. 또 사람을 해치고 미혹하고 하나님께 대항하도록 유혹하며, 하나님의 경륜을 교란시키고 파괴하는 등의 악행이 가득하다. 하지만 하나님의 권병 아래에 있는 만물 생령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정한 법칙과 규율을 따르고 있다. 하나님의 권병과 비교할 때, 사탄의 사악한 본성과 그것이 날뛰는 것은 추하기 그지없으며, 사람을 역겹게 하고 염증이 나게 한다. 또한 보잘것없고 일격에도 견디지 못한다. 비록 사탄이 하나님이 창조한 만물 가운데서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할지라도, 사탄은 하나님이 정해 놓은 그 어떤 사람, 일, 사물도 변화시킬 수 없다. 수천 년이 지나도 인류는 여전히 하나님이 내려 준 빛과 공기를 누리고 있다. 인류는 여전히 하나님이 친히 불어넣어 준 생기로 숨을 쉬고 있고, 하나님이 만든 꽃과 새, 물고기와 곤충들을 누리며, 하나님이 공급해 준 만물을 누리고 있다. 낮과 밤은 여전히 끊임없이 교체되고, 사계절 역시 변함없이 순환하고 있다. 하늘을 나는 기러기는 올겨울에 떠나가서 내년 봄에 다시 돌아온다. 물속의 물고기는 그들의 집인 강과 호수를 떠나 본 적이 없다. 땅 위의 매미는 여름날 마음껏 자기들만의 노래를 부른다. 풀 속의 귀뚜라미들은 가을날 가을바람을 따라 노래한다. 기러기는 무리를 이루고 매는 외롭게 지낸다. 사자 무리는 사냥하며 살아가고, 사슴들은 꽃과 풀밭을 떠나지 않는다…. 만물 가운데의 각종 생령들은 갔다가 다시 오고 왔다가 다시 가며 찰나 속에서 변화무쌍하다. 하지만 그들 각자의 본능과 생존 법칙은 변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이 공급해 주는 자양분을 받아 생존한다. 그 누구도 그들의 본능을 바꿀 수 없으며, 그 누구도 그들의 생존 법칙을 파괴할 수 없다. 만물 가운데서 살아가는 인류가 사탄에 의해 패괴되고 미혹되었을지라도 하나님이 만든 물과 공기와 만물을 떠날 수 없다. 인류는 여전히 하나님이 만든 이 공간 속에서 번성하며 살아간다. 인류의 본능은 변화가 없으며, 인류는 여전히 두 눈으로 바라보고, 두 귀로 듣고, 머리로 생각하며, 마음으로 깨닫고, 두 다리와 두 발로 걸으며, 두 손으로 일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는, 하나님이 공급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본능은 변하지 않았다. 인류가 하나님과 협력하는 기관(器官)은 변하지 않았고, 피조물의 본분을 다할 수 있는 기관은 변하지 않았다. 인류 심령의 필요는 변하지 않았으며, 인류가 뿌리를 찾아 돌아가려는 소망은 변하지 않았다. 인류가 창조주의 구원을 얻고자 하는 소원은 변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권병 아래에서 살아가면서 사탄의 피비린내 나는 학대를 견디고 있는 인류의 현주소다. 비록 사탄의 엄청난 유린을 당한 인류가 더 이상 태초에 창조한 아담과 하와가 아니고, 지식과 상상, 고정 관념 등 하나님과 적대되는 것들이 가득하고 사탄의 패괴 성품이 가득한 인류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눈에 인류는 여전히 하나님이 만든 존재이다. 왜냐하면 인류는 여전히 하나님의 주재와 지배하에 있고, 하나님이 정한 코스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보기에 사탄에 의해 패괴된 인류는 단지 외관상 더럽고 굶주리고 반응도 조금 느리고 기억력도 조금 감퇴되고 나이가 조금 많은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사람의 모든 기능과 본능은 오히려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이런 인류가 하나님이 구원하고자 하는 인류이다. 이런 인류는 창조주의 부름을 듣고 창조주의 음성을 듣기만 하면 바로 일어나 그 음성의 근원을 찾아 달려간다. 이런 인류는 창조주의 그림자를 보기만 하면 모든 것을 제쳐 두고 창조주를 위해 헌신하며, 심지어 목숨까지 바친다. 인류의 마음과 영이 창조주의 마음의 소리를 깨닫게 될 때, 인류는 사탄을 버리고 창조주의 곁으로 온다. 인류가 완전히 몸의 더러움을 씻어 내고 창조주가 다시 공급해 주는 자양분을 얻게 될 때, 인류의 기억은 회복된다. 그때의 인류는 진정 창조주의 권세 아래로 돌아온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25. 인류의 운명과 만물의 운명은 창조주의 주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그의 지배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한마디로 인류의 운명과 만물의 운명은 창조주의 권병과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관계다. 인류는 만물의 법칙을 통해 창조주의 지배와 주재를 경험하고, 만물의 생존 법칙을 통해 창조주의 다스림을 목격하게 된다. 만물의 숙명을 통해 창조주가 만물을 주재하고 주관하는 방식을 깨닫게 된다. 또한, 인류와 만물의 생사윤회를 통해 창조주가 모든 만물 생령을 지배하고 안배한다는 것을 진정 느끼게 된다. 그리고 창조주의 지배와 안배가 세상의 모든 법률, 규정, 제도뿐만 아니라 그 어떤 힘과 세력도 넘어선다는 사실에 진정 눈을 뜨게 된다. 따라서 인류는 어떠한 피조물도 창조주의 주재를 무너뜨릴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 어떤 세력도 창조주의 예정을 따르는 만사 만물에 해를 끼치거나 이를 바꿀 수 없다. 인류와 만물은 이런 천상의 법칙과 규칙에 따라 살아가면서 한 세대 또 한 세대 번성해 왔다. 이것이 창조주의 권병이 진실로 구현된 것이 아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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