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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의 그리스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대표적인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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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을 알아 가는 데 관한 대표적인 말씀

1) 하나님의 권병에 관한 말씀

(228)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했다. 그래서 그는 모든 피조물을 자신의 권세 아래로 돌아와 순종하게 한다. 그는 만유를 주관하여 만유가 모두 자신의 수중에 있게 한다. 동물, 식물, 인류, 산천, 호수를 포함한 모든 피조물이 그의 권세 아래로 돌아올 것이다. 하늘의 만물이든 땅의 만물이든 모두 그의 권세 아래로 돌아올 것이며, 선택의 여지 없이 모두 그의 지배에 순종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규정한 것이고 또 하나님의 권병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관하여 만물이 모두 질서가 있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각기 부류대로 나뉘며 각각 자기 위치에 있게 한다. 아무리 큰 것도 하나님을 넘어설 수 없으며 모두 하나님이 창조한 인류를 위해 이바지한다. 어떤 것도 감히 하나님께 반역하거나 다른 것을 요구하지 못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공 여부는 사람이 가는 길에 달려 있다> 중에서

(229) 하나님은 이 세계를 창조했고 이 인류를 지었으며, 나아가 고대 그리스 문화와 인류 문명까지 만들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 인류를 위로하고 있고, 또 밤낮으로 보살피고 있다. 인류의 발전과 진보는 하나님의 주재와 떼어 놓을 수 없고, 인류의 역사와 미래는 하나님의 배치를 벗어날 수 없다. 네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든 국가와 민족의 흥망성쇠가 다 하나님의 배치 아래에 있음을 믿을 것이다. 모든 국가와 민족의 운명이 어떻게 흘러갈지, 이 인류가 어디로 가게 될지는 오직 하나님만이 알고 있다. 인류가 좋은 운명을 원한다면, 또 한 국가가 좋은 국운을 원한다면,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와 죄를 자백하며 회개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인류의 운명과 종착지는 피할 수 없는 재앙이 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은 온 인류의 운명을 주재한다> 중에서

(230) 만물을 창조하면서부터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드러나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만유를 창조했기 때문에 그가 어떤 방식으로 만유를 창조했든, 그가 어떤 이유로 만유를 창조했든 간에, 어쨌든 만유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기고, 세워지고, 존재한다. 이것이 바로 창조주의 유일무이한 권병이다. 인류가 이 세상에 아직 출현하지 않았을 때, 창조주는 그의 능력과 권병으로 인류를 위해 만유를 창조했고, 그만의 특별한 방식으로 인류를 위해 적합한 생존 환경을 예비했다. 그가 행한 이 모든 일은 다 장래에 자신의 생기를 얻게 될 인류를 위해 예비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류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을 때, 하나님의 권병은 인류와는 다른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 나타났는데, 크게는 천체, 광명체, 바다, 육지가 있고, 작게는 날짐승과 길짐승 및 각종 곤충과 미생물이 있다. 또한 사람의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각종 균류까지 그 어느 것도 창조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존재하지 않는 것이 없다. 그 어느 것 하나 창조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번식하지 않는 것이 없으며, 또 어느 것 하나 창조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창조주의 주재 아래 살지 않는 것이 없다. 그들은 비록 창조주의 생기를 얻지 못했지만, 다양한 형식과 구조로 창조주가 그들에게 부여한 생명력을 보여 주고 있다. 그들은 창조주가 인류에게 부여한 언어 능력을 받지 못했지만, 그들 각자는 창조주에게서 인류의 언어와는 또 다른, 생명의 표현 방식을 얻었다. 창조주의 권병은 정지된 것처럼 보이는 사물에 생명의 활력을 불어넣어 그들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게 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각종 살아 있는 존재에게 번식 능력을 주어 영원히 자취를 감추지 않고 창조주가 부여해 준 생존 법칙과 규칙을 대를 이어 전하게 할 수 있다. 창조주가 권병을 행하는 방식은 거시적, 미시적인 것에 구애받지 않고, 어떠한 형식에도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우주의 운행을 주관하고 만물의 존망을 주재하며, 만물을 움직여 자신을 위해 봉사하게 할 수 있다. 그는 산천과 호수의 운행을 주관하고, 그 가운데 있는 만물도 주재하며, 만물이 필요로 하는 바를 공급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인류 이외의 만물 가운데서 나타나는 창조주의 유일무이한 권병이다. 이는 한 번의 생이나 하나의 세대에서 끝나지 않고 영원히 멈추지 않고 쉬지 않는다. 또한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이를 바꾸거나 파괴할 수 없고, 더하거나 제할 수 없다. 창조주의 신분은 아무도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어떤 피조물도 창조주의 권병을 대체할 수 없고, 그 어떤 비피조물도 그 권병에 이를 수 없다. 예컨대, 하나님의 사자나 천사는 하나님의 능력을 갖지 못했고, 창조주의 권병은 더더욱 갖지 못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능력과 권병이 없는 까닭은 그들이 창조주의 본질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피조물 가운데, 예컨대 하나님의 사자와 천사들은 하나님을 대신해 어떤 일들을 할 수는 있지만 하나님을 대표할 수는 없다. 인류에게는 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권병은 갖지 못했다. 하나님처럼 만유를 창조하고 주관하고 주재하는 권병은 갖지 못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유일무이함은 그 어떤 비피조물도 대체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권병과 능력 역시 그 어떤 비피조물도 대체할 수 없다. 성경에서 만물을 창조했다는 하나님의 사자를 보았느냐? 하나님은 왜 그의 사자와 천사를 보내 만물을 창조하게 하지 않았을까?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권병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권병을 행할 능력이 없다. 모든 피조물과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창조주의 주재 아래 있고, 창조주의 권병 아래 있으며, 창조주는 그들에게도 하나님이자 주재자이다. 신분의 높고 낮음, 귀하고 천함, 능력의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그들 가운데 그 어떤 자도 창조주의 권병을 초월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들 가운데 그 누구도 창조주의 신분을 대체할 수 없으며, 그들은 영원히 하나님이라고 불릴 수 없고, 영원히 창조주가 될 수도 없다. 이것은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이며 사실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231) 우주의 천체는 인류보다 먼저 생겨났다. 우주의 천체가 언제부터 존재했든 간에 거시적인 관점에서 그것들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며 규칙적으로 운행하고 있다. 어떤 행성이 언제 어떤 위치로 이동하는지, 어떤 행성이 언제 어떤 임무를 수행하는지, 어떤 행성이 어떤 궤도에서 운행하는지, 언제 소멸하고 또는 교체되는지, 이 모든 것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된다. 이 행성들의 위치와 행성 간의 거리에는 엄격한 법칙과 정확한 수치가 있다. 운행 궤도, 운행 속도, 운행 법칙, 언제 어떤 위치까지 운행하는지에 대해서도 특정한 법칙과 정확한 수치가 있다. 행성들은 천만년 동안 그러한 법칙에 따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운행해 왔다. 그 어떤 힘도 그 운행 궤도와 법칙을 변경하거나 파괴할 수 없었다. 정확한 수치와 특정한 운행 법칙들은 모두 창조주의 권병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들 행성은 자발적으로 창조주의 주재와 다스림을 받으며 그에 따라 규칙적으로 운행한다. 인류는 거시적인 측면에서 일부 법칙과 수치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고, 사람은 설명할 수 없는 일부 신기한 법칙이나 현상을 발견할 수도 있다. 인류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창조주가 만물을 창조했고 만물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창조주의 권병의 존재는 더더욱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류의 과학자, 천문학자, 물리학자들은 알 수 없는 엄청난 암흑에너지가 만물의 생존과 운행의 법칙을 주재하고 다스리고 있음을 점점 더 많이 발견하고 있다. 이런 사실이 존재하기에, 인류는 만물의 운행 법칙에는 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한 ‘능력자’가 있다는 것을 직시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는 비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의 참모습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그는 항상 모든 것을 주재하고 다스린다. 그의 주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나 세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로 인해 인류는 사람이 만물의 생존 법칙을 좌지우지할 수 없으며, 그 누구도 이 법칙을 바꿀 수 없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이 법칙은 사람이 측량할 수 없으며, 자연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닌 어느 주재자가 다스리는 법칙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모두 인류가 거시적인 측면에서 느낄 수 있는 하나님의 권병이다.

미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지구에서 사람이 볼 수 있는 산과 하천, 호수, 바다, 육지와 사람이 겪는 사계절, 각종 동식물, 미생물, 인류, 이 모든 것을 포함한 지구상의 만물은 하나님이 주관하고 주재하고 있다. 하나님의 주관과 주재로 만물은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생성 또는 소멸하고, 하나님의 주관과 주재로 생존의 법칙이 만들어져 만물은 이 법칙에 따라 번성한다.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이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의 권병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이란 게 그 유일한 답이다. “하나님의 권병으로 인한 것이다”란 말은 ‘하나님의 생각으로 인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한 것이다’, 혹은 ‘하나님이 친히 한 행사로 인한 것이다’라고 할 수 있다. 즉, 만물의 법칙은 하나님의 권병에서 비롯될 뿐만 아니라 그의 생각에 따라 생겨난다. 또한, 만물은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한다. 그 모든 움직임과 변화는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 생성 또는 소멸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232) 하나님이 보기에 그가 창조한 만물은 이미 그의 말씀으로 인해 세워지고 이루어졌으며, 모든 것이 점차 변화하고 있었다. 그때, 하나님은 그의 말씀으로 만들어진 각종 사물과 성취한 갖가지 일들에 대해 아주 흡족해하지 않았느냐? 그에 대한 답이 바로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이다. 여기서 너희는 무엇을 보았느냐?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무엇을 상징하느냐? 이 말은 하나님은 그가 계획한 일과 정해 놓은 일, 그리고 그의 목표를 성취할 능력과 지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어떤 일을 다 마친 후 후회한 적이 있느냐? 그 답 역시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이다. 즉, 하나님은 후회는커녕 아주 흡족해했다. 후회하지 않았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나님의 계획은 완벽하고,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 또한 완벽하다는 것과, 그의 권병이 완벽한 성취를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근원임을 의미한다. 사람이 어떤 일을 하고 나서 하나님처럼 보기에 좋았다고 말할 수 있느냐? 사람이 하는 모든 일들이 다 완벽할 수 있겠느냐? 사람이 한 번으로써 영원히 이룰 수 있겠느냐? 사람들이 “더 좋은 것만 있을 뿐 가장 좋은 것은 없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사람이 하는 일은 영원히 완벽에 이를 수 없다. 하나님 자신이 행하고 이룬 모든 일이 하나님 보기에 좋았을 때, 하나님이 만든 모든 것은 그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고정불변의 법칙이 생겼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을’ 때, 하나님이 창조한 것은 그 한 번으로써 영원히 형태가 고정되고 유형이 구분되며 위치와 용도와 기능이 정해졌다. 동시에, 만물 가운데 맡은 역할과 하나님이 만물을 경영하는 기간 가야 할 여정이 이미 하나님에 의해 정해져 영원히 바꿀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은 창조주가 만물에게 정해 준 ‘천상의 법칙’에서 온 것이다.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워낙 단순하여 사람들이 관심을 갖거나 중시하지 않는 말씀이지만, 사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에게 내린 천상의 규칙, 천상의 법칙이다. 이 말씀에서 창조주의 권병이 또 한 번 더 실제적이고, 더 깊이 있게 구현되었다. 창조주는 말씀으로 말미암아 그가 얻고자 한 모든 것을 얻었고, 그가 이루고자 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말씀으로 말미암아 그가 만든 모든 것을 그의 수중에서 주관할 수 있고, 그의 권병 아래 질서 정연하게 주재할 수 있었다. 동시에 만물도 그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생기고 소멸되며, 그의 권병으로 말미암아 그가 정한 법칙 안에서 생존한다. 그 법칙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법칙은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그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그 법칙은 하나님의 경륜을 위해 존재하고, 지속되고, 운행될 것이다. 창조주가 그 법칙을 폐기하는 그날까지 말이다! 창조주의 유일무이한 권병은 그가 만물을 창조하고, 만물을 그의 명대로 세울 수 있다는 사실에서 묻어날 뿐만 아니라, 만물을 다스리고 주재하며 만물에게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것에서도 구현되고 있다. 또한 창조주가 자신이 창조하려 계획한 만물이 완벽한 형식, 완벽한 생명 구조, 완벽한 역할을 가지고 그가 만든 세계에 한 번으로써 영원히 나타나 존재할 수 있게 하는 데서도 창조주의 유일무이한 권병은 구현되고 있다. 또 창조주의 모든 생각이 그 어떤 조건의 제한이나 시간, 공간, 지리적인 제한도 받지 않는 데서도 구현된다. 창조주의 유일무이한 신분은 그의 권병처럼 영원부터 영원까지 변하지 않을 것이며, 그의 권병은 영원히 그의 유일무이한 신분의 대언과 상징으로서, 영원히 그의 신분과 공존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233) 인류가 오늘날까지 발전해 오면서, 인류의 과학은 ‘일취월장’했다고 할 수 있다. 과학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이룩한 성과가 ‘과히 놀랄’ 정도이니, 인류의 기량이 날로 커지고 있다고 해야겠다. 그러나 유독 한 가지만은 인간의 과학이 돌파하지 못했다. 인류는 비행기를 만들고, 항공 모함을 만들고, 원자 폭탄을 만들고, 우주로 날아가고, 달에 착륙하고, 인터넷을 발명하여 첨단 과학 기술 시대에 살고 있지만, 숨 쉴 수 있는 생물은 만들어 내지 못한다. 인류의 과학은 생물의 본능과 생존 법칙, 각 생물의 생사윤회를 통제할 수 없고 여기에 대해선 속수무책이다. 그렇기에 인류의 과학이 아무리 높은 수준에 도달했어도 창조주의 생각 하나에 비할 수 없고, 창조주의 만물 창조의 오묘함과 창조주 권병의 위력을 측량할 수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구상의 바닷물이 그렇게 많아도, 하나님이 각각에게 경계를 정해 주었기 때문에 바닷물은 지금껏 함부로 자신의 범위를 넘어 육지로 올라온 적이 없다. 그들은 정해 준 대로 있고,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으며,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서로 침범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움직이라고 말씀할 때에야 움직일 수 있고, 그들이 어디로 가고 어디에 머무를지는 하나님의 권병으로 결정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234) ‘하나님의 권병’을 늘 하는 말로 설명하자면, 하나님이 결정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어떻게 할지 결정할 권리가 있고, 하나님은 하고자 하면 그대로 한다. 만물의 법칙은 하나님이 결정하는 것이지 사람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명령으로 바뀌는 것이지 사람의 의지대로 바뀌는 것이 아니다. 이는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천지 만물, 우주, 별, 1년 사계절, 사람이 볼 수 있는 것과 볼 수 없는 것은 다 하나님의 명령과 지시, 그리고 하나님이 창조한 당시의 법칙에 따라 조금의 오차도 없이 하나님의 권병 아래 존재하고 운행되며 변화한다.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그것의 법칙을 바꿀 수 없으며, 그것 본래의 운행 궤적을 바꿀 수 없다. 그들은 하나님의 권병으로 말미암아 생기고, 그 권병으로 말미암아 소멸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권병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235)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이것은 창조주가 인류에게 한 원래의 말씀이다. 그가 말씀함과 동시에 무지개가 사람들 눈앞에 나타났고,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너희 모두 무지개를 본 적이 있을 텐데, 무지개를 보았을 때 그 무지개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알았느냐? 과학으로는 이 사실을 논증할 방법이 없다. 과학으로는 그 근원을 찾지 못했으며, 행방도 찾지 못했다. 이는 창조주가 사람과 세운 언약의 증거이기 때문에, 과학적 근거는 필요 없다. 이는 인위적인 것이 아니고 사람이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창조주의 말씀이 있고 난 후 권병이 지속되는 결과인 것이다. 창조주는 그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사람과 세운 언약과 약속을 지켜 나가고 있다. 그러므로 무지개를 출현시켜 하나님이 세운 언약의 증거로 삼은 것은 창조주에게나 창조된 인류에게 있어, 영원히 바꿀 수 없는 천상의 규율이자 법칙인 것이다. 변함없이 지속되는 이 법칙은 창조주가 만물을 창조하고 난 후 그의 권병이 또 한 번 진정으로 구현된 것이며, 창조주의 권병과 능력은 무한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무지개’를 그 언약의 증거로 삼은 것은 창조주 권병의 지속이자 연장선인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또 한 번 말씀으로 행한 일이고, 하나님이 말씀으로 사람과 세운 언약의 증거이다. 이는 그가 무엇을 이루고자 결정하고, 어떤 방식으로 이루고 성취하겠다고 하면, 그 일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사람에게 알려 준다. 하나님만이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의 이런 말씀이 있고 난 몇천 년 후인 오늘날에도 인류는 하나님이 말씀한 무지개를 볼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로 인해, 이 일은 지금까지 바뀌지 않고 변함이 없다. 그 누구도 그 무지개를 없어지게 할 수 없고, 그것의 규칙을 바꿀 수도 없다. 그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존재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권병이다. “하나님은 말씀하면 반드시 책임지고, 책임지는 이상 반드시 이루며, 이루어진 것은 반드시 영원까지 지속된다.” 이 말은 여기서 아주 명확하게 구현되는데, 바로 하나님의 권병과 능력의 확실한 증거이자 특징이다. 이러한 증거와 특징은 그 어떤 피조물도 갖추지 못한 것이고, 그 어떤 피조물에게서도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 어떤 비피조물 가운데서도 볼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증거와 특징은 유일무이한 하나님만이 갖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창조주 고유의 신분과 본질을 피조물과 구분시켜 준다. 아울러, 그것은 하나님 자신 이외의 모든 피조물과 비피조물이 영원히 초월할 수 없는 증거이자 특징인 것이다.

하나님 편에서 사람과 언약을 세운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사건이다. 그는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한 가지 사실을 알려 줌과 동시에 그의 뜻도 알려 주었다. 이를 위해 그는 고유한 방식으로, 특별한 증거를 사용해서 사람과 언약을 세우고, 그 증거로 그가 사람과 세운 언약에 확신을 준 것이다. 이 ‘언약’을 세웠다는 건 큰 사건이 아니냐? 얼마나 큰 사건일까? ‘언약’의 특별함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언약이 아니며, 단체와 단체 간의 언약도, 한 국가와 또 다른 국가 간에 세운 언약도 아니다. 이건 창조주가 인류 전체와 세운 언약이다. 이 ‘언약’의 유효 기간은 창조주가 만물을 폐기하는 그날까지이며, 이 ‘언약’의 시행자는 창조주이고, 그것의 수호자 역시 창조주이다. 요컨대, 인류와 세운 ‘무지개 언약’의 모든 것은 창조주와 사람의 대화에 따라 응하고 이루어졌으며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피조물이 창조주의 권병에 순종하고, 따르고, 신뢰하며, 그 권병을 깨닫고, 목도하고, 칭송하는 것 외에 무엇을 더 할 수 있겠느냐? 유일무이한 하나님 이외에 이러한 언약을 세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매번 나타나는 무지개는 인류에게 창조주가 사람과 세운 ‘언약’을 알려 주고 상기시켜 준다. 창조주가 인류와 세운 언약이 끊임없이 나타나는 가운데, 그것이 인류에게 나타내 보여 주는 것은 ‘무지개’와 ‘언약’ 자체가 아니라, 창조주의 영원불변의 권병인 것이다. 무지개의 출현이 보여 주고자 하는 것은 창조주가 은밀한 곳에서 행하는 놀랍고도 오묘한 행사이며, 창조주의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변치 않는 권병의 생생한 구현이다. 이런 것들은 창조주의 또 다른 면에서 볼 수 있는 유일무이한 권병의 구현이 아니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236) 창세기 18장 18절 “아브라함은 반드시 강대한 나라가 되고 땅의 만국은 필히 그로 인해 복을 받을 것이니라(중국어성경 직역)”라는 말씀을 보고 난 후, 너희는 하나님의 권병을 느낄 수 있지 않으냐? 창조주의 비범함을 느낄 수 있지 않으냐? 창조주의 지고지상함을 느낄 수 있지 않으냐? 하나님 말씀은 아주 확실하다. 하나님의 이런 말씀은 하나님께 필승을 자신하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한 것이 아니고, 그런 확신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다. 이는 하나님 말씀이 지닌 권병을 입증하는 것이자 그의 말씀이 이뤄지도록 하는 일종의 명령이다. 여기에 너희가 주목해야 할 어휘가 두 가지 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은 반드시 강대한 나라가 되고 땅의 만국은 필히 그로 인해 복을 받을 것이니라(중국어성경 직역)”라고 한 말씀에 모호한 부분이 있느냐? 걱정의 요소가 있느냐? 두려움의 요소가 있느냐? 이런 것들은 인류에게서 자주 드러나는, 사람만이 갖고 있는 요소이다. 하나님 말씀 속의 ‘반드시’와 ‘필히’라는 이 두 어휘 때문이라도, 사람의 그런 요소는 창조주와는 조금이라도 연관된 적이 없다. 그 누구도 타인을 축복할 때 이런 어휘를 감히 사용하지 못한다. 또한 그 누구도 감히 단정적으로 타인에게 강대한 나라를 주겠다는 복을 내리지 못하며, 천하 만민이 필히 그로 인하여 복을 받을 거란 약속을 하지 못한다. 하나님 말씀이 확실할수록 그 말씀은 무엇을 증명할까? 하나님이 가지고 있는 이런 권병이 이 일을 이룰 수 있음을 증명하고, 하나님은 이 일을 반드시 이루고야 말리란 걸 증명한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내린 이 모든 축복은 하나님의 마음속에선 매우 확실해 조금도 주저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그는 그의 말씀에 따라 이 모든 일을 이루고자 하였으며, 그 어떤 세력도 이 일의 이룩을 바꾸거나 저지하거나 파괴하거나 교란시킬 수 없다.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하나님 말씀의 이룩과 성취를 멈추게 하거나 영향을 줄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창조주가 하는 말씀의 위력이며, 부인할 수 없는 창조주의 권병인 것이다! 네가 이 말씀을 다 읽었을 때, 마음속에 의혹이 일겠느냐? 이 말씀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과 위엄, 권병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위력과 권병, 그리고 일이 성취되리란 필연성은 그 어떤 피조물과 비피조물도 이를 수 없고 초월할 수 없는 것이다. 창조주만이 이러한 어조와 말투로 인류와 대화할 수 있다. 사실을 통해 그의 약속이 빈말이나 허풍이 아니며, 모든 사람과 일, 사물이 초월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권병의 발현이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237) 네 씨로 크게 성하게 하리라고 한 말씀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한 언약이다. 이 언약은 ‘무지개 언약’처럼 영원히 이뤄질 것이며, 이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준 약속이기도 하다. 이 약속을 실현시킬 수 있는 능력과 자격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 사람이 믿든 안 믿든, 받아들이든 못 받아들이든, 그리고 사람이 하나님의 약속을 어떤 식으로 보고 대하든 상관없다. 이 모든 것은 장차 하나님의 말씀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의지나 생각이 바뀐다고 해서 바뀌는 것이 아니며, 그 어떤 사람이나 일, 사물의 변화에 의해 변하는 것도 아니다. 만물이 사라져도 하나님의 말씀은 사라지지 않는다. 반대로, 만물이 사라지는 그 날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완전히 이뤄지는 날이다. 그는 창조주이기 때문이다. 그는 창조주의 권병을 지녔으며, 창조주의 능력이 있고, 만유와 모든 생명을 주관한다. 그는 무에서 유를, 유에서 무를 가능케 하며, 모든 생과 사의 전환을 주관한다. 그러므로 사람의 자손을 번성케 하는 것은 하나님께 있어선 지극히 간단한 일이다. 사람이 듣기에는 천일야화나 동화 속 이야기 같은 일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기에, 하나님이 하고자 결정한 일이나 사람에게 약속한 일은 천일야화나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그건 하나님이 이미 목격한 사실이며, 반드시 이루어질 일이다. 너희는 여기에 대한 체득이 있느냐? 아브라함의 후예가 많은지 사실이 증명하고 있지 않으냐? 얼마나 많으냐?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라고 한 하나님의 말씀과 같지 않으냐? 각 나라, 각 지역, 세계 각지에 널리 퍼져 있지 않으냐? 이러한 사실은 무엇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냐? 하나님 말씀의 권병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난 후, 몇백 년 혹은 몇천 년 동안 그 말씀은 계속해서 이뤄지고, 끊임없이 현실화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 말씀의 위력이자 하나님 권병의 증거이다. 하나님이 만유를 창조할 때,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었다. 이는 순식간에 일어난 일로,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진 일이다. 이 일의 성취와 응답은 시간 차 없이 그 즉시 이루어졌다. 이 또한 다 하나님의 권병이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축복한 일을 통해 사람들이 하나님 권병의 또 다른 면의 본질을 보고, 창조주의 권병이 이루 헤아릴 수 없다는 사실과, 그 권병의 더 실질적이고 훌륭한 면도 알 수 있게 하였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238) 하나님의 권병은 사라졌다 나타나고 있다가도 없는 것이 아니며, 아무도 그의 권병이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 없다. 하나님이 누군가에게 복을 내리면,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지 간에 그가 내린 복은 지속된다. 그 지속됨은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권병을 증거하고, 창조주가 가진 영원불멸의 생명력이 수없이 재현되는 것을 사람에게 보여 준다. 그의 권병은 나타날 때마다 그의 말씀을 완전하게 구현해 내어 만물과 인류에게 보여 준다. 그리고 그의 권병이 이룬 일은 하나같이 더없이 정교하고 아름다우며 완전무결하다. 그의 생각, 그의 말씀, 그의 권병과 그가 이룬 일은 전부 그 어떤 것도 비할 수 없는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라고 말할 수 있다. 피조물에게 있어서 그 의의와 가치는 인류의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약속한 후에는, 그 사람이 어디서 태어났든, 무엇을 하든, 약속받기 전후로 그의 사정이 어떻든, 그의 생존 환경에 얼마나 큰 변화가 일어났든, 하나님은 모두 환히 알고 있다. 하나님이 말씀하고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하나님이 보기에는 다 방금 일어난 일과 같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인류에게 한 모든 약속을 추진하고 주관하고 실현시키는 능력과 권병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 약속이 무엇이든 간에,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든 간에, 시간, 장소, 종족 등 그 약속의 실현이 관련된 범위가 얼마나 넓든 상관없이, 그 약속은 이루어지고 실현된다. 게다가 이는 하나님께 있어서 전혀 힘들지 않은 아주 간단한 일이다. 이것은 무엇을 증명하느냐? 하나님의 권병과 능력이 주관하는 범위는 우주 전체, 인류 전체라는 사실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239)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욥을 축복한 후 제자리에 가만히 있지 않았고, 사자에게만 일을 시키고 자신은 결과만 기다리고 있지도 않았다. 이와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이 있자마자 만물은 하나님 권병의 인도 아래 하나님이 행하고자 하는 사역에 협력하여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사람과 일, 사물을 예비하였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하나님의 권병은 온 땅에서 행해졌고, 아브라함과 욥에게 준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고 응답하기 위한 길을 열었다. 그뿐만 아니라, 앞으로 진행될 각각의 절차와 모든 중요한 부분에 필요한 것들을 다 계획하고 예비하였다. 그 기간 하나님이 움직인 것에는 하나님의 사자뿐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한 만물도 포함되어 있었다. 즉, 하나님이 권병을 행하는 범위는 하나님의 사자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만물도 움직여 하나님이 이루려는 사역에 협력하게 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권병을 행하는 구체적인 방식이다. 너희들 가운데, 하나님의 권병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해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즉, 하나님은 권병과 능력이 있기 때문에 셋째 하늘이나 어떤 고정된 자리에 계시면서 그 어떤 구체적 사역을 행하지 않고 생각만으로 모든 사역을 완성할 것이라고 말이다. 또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긴 했지만, 하나님은 아무것도 할 필요 없이 그저 말 한마디면 충분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사실이 그러냐? 전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이 권병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의 권병은 진실하고 실제적인 것이지 절대 공허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권병과 능력의 진정성과 실제성이란 측면은 그가 만물을 창조하고 만유를 주관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그가 인류를 인도하고 경영하는 과정에서 점차적으로 나타나고 구현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류를 주재하고 만물을 주재하는 각각의 방식, 각각의 측면, 각각의 세부 내용과 그가 이룬 모든 사역, 그리고 만물에 대한 그의 이해는 확실히 하나님의 권병과 능력이 공허한 말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해 준다. 그의 권병과 능력은 항상, 모든 일에서, 나타나고 구현되고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권병이 실제로 존재함을 말해주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시시각각 자신의 권병과 능력으로 지속적인 사역을 하며, 만물을 주관하고 주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능력과 권병은 천사와 하나님의 사자를 포함해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다. 아브라함에게 어떤 축복을 주고, 욥에게는 또 어떤 축복을 주었는지,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결정이며, 하나님 말씀대로 된 것이다. 설사 하나님의 사자가 아브라함이나 욥에게 직접 임했을지라도, 그들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행한 것일 뿐이며 모두 하나님의 권병 아래 있는 것이다. 그들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주재 아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성경 기록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아브라함에게 임한 장면을 보았을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이 친히 무엇을 하였는지 보지 못했을지라도, 사실상 진정한 능력과 권병으로 행하는 분은 오직 하나님 자신이다. 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설사 네가 천사나 사자에게 큰 능력이 있어 그들이 이적과 기사를 행하거나 하나님이 준 사명을 받고 일련의 일을 행하는 것을 보았을지라도, 그들의 모든 행위는 하나님이 준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것일 뿐, 절대로 하나님의 권병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만물을 창조하고 주재하는 창조주의 권병을 가진 사람이나 사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창조주의 권병을 행하거나 나타낼 수 없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240) 성경 구절을 보자.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 나오는데…”, 예수는 이때, “나사로야 나오라”라고 한 마디만 했을 뿐이다. 그러자 나사로가 무덤에서 나왔다. 주의 입에서 나온 말씀 한 마디에 따라 일이 이루어진 것이다. 예수는 제단을 쌓거나 다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으며, 그저 한 마디만 했을 뿐이다. 이것을 이적과 기사라고 해야 하겠느냐, 아니면 명령이라고 해야 하겠느냐? 아니면 술법이라고 해야 하겠느냐? 겉으로 보면, 이적과 기사라고 칭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지금 시대에 적용시켜도 이적과 기사라고 할 수 있다. 절대 혼을 부르는 술법이나 사악한 요술이라고 할 수 없다. 정확히 말해서, 이 기적은 창조주의 권병으로는 매우 평이한 사건이자 발현된 매우 작은 부분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권병이자 능력이다. 사람을 죽게 할 수 있는 권병이 있는 하나님은 육을 떠난 영혼을 저승으로도, 마땅히 가야 할 다른 곳으로도 가게 할 수 있다. 사람이 언제 죽고, 죽은 뒤에 어디로 가야 할지는 다 하나님이 결정한다.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이런 일을 할 수 있고, 사람과 일, 사물이나 공간적 지리적 제한을 받지 않는다. 그저 그가 하고 싶은 것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만물 생령은 다 그의 주재하에 있기 때문에, 그의 말씀과 권병으로 인해 생겨나고 살아가고 또한 소멸한다. 죽은 사람을 부활시킬 수 있는 것 역시 그가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이것은 창조주만이 지닌 권병이다.

예수가 나사로를 부활시킨 목적은 바로 사람의 생사를 포함한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결정한다는 사실을 사람과 사탄에게 증명해 알게 하고자 함이었다. 또한 하나님이 성육신하였을지라도, 변함없이 사람이 볼 수 있는 물질세계와 볼 수 없는 영계까지 다스리고 주관하고 있음을 알게 하고, 사람의 모든 것은 결코 사탄이 다스리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하려 함이다. 이것은 하나님 권병의 표출과 발현이며, 또한 하나님이 인류의 생사를 주관한다는 사실을 만물에게 전달하는 방식인 것이다. ‘예수가 나사로를 부활시킨’ 일은 창조주가 인류에게 분명하게 알려 주고 가르치는 방식이자 그의 능력과 권병으로 인류에게 교훈을 주고 공급해 주는 구체적인 행위이다. 또한, 비언어적 요소로 인류에게 창조주가 만물을 주관함을 보여 주는 방식이자 인류에게 창조주 이외에는 구원이 없다는 사실을 실제 행사를 통해 알려 주는 방식인 것이다. 이러한 무언의 방식으로 인류에게 준 가르침은 영구적이고 영원불멸한 것이다. 그는 이런 방식으로 인류의 마음에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놀라움과 깨달음을 가져다주었다. ‘나사로의 부활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 이 사건이 하나님을 따르는 모든 자에게 끼친 영향은 아주 깊다. 이는 이 일을 잘 아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만이 사람의 생사를 주관한다’는 깨달음과 이상(異象)을 확고하게 하였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241) 하나님은 권병과 능력이 있다 할지라도 매우 신중하고 원칙 있게 일하며 신용을 지킨다. 그의 신중함과 그가 일하는 원칙은 창조주의 거스를 수 없음과 뛰어넘을 수 없는 창조주의 권병을 나타내고 있다. 그가 지고지상한 권병을 가지고 있고, 만물이 모두 그의 권세 아래 있을지라도, 그리고 그가 만물을 주재하는 능력을 갖추었을지라도,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계획을 파괴하거나 혼란을 야기한 적이 없다. 그는 권병을 행할 때마다 항상 자신의 원칙을 엄격하게 지키며, 그가 말씀한 대로, 그가 계획한 절차와 목표대로 정확하게 진행한다. 두말할 것 없이 하나님이 주재하고 있는 만물 역시 하나님 권병의 행사 원칙을 따르고 있다.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그의 권병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의 권병이 행사하는 원칙을 바꿀 수 없다. 그가 보기에 복받는 자는 그의 권병으로 말미암아 축복을 받게 되고, 저주받는 자 역시 그의 권병으로 말미암아 벌을 받게 된다. 하나님 권병의 주재 아래,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하나님 권병의 행사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하나님 권병이 행사하는 원칙을 바꿀 수 없다. 창조주의 권병은 그 어떤 요인의 변화로도 바뀌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의 권병이 행사하는 원칙 역시 그 어떤 원인에 의해서도 바뀌지 않는다. 천지가 격변한다 하더라도 창조주의 권병은 변하지 않는다. 만물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창조주의 권병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영원히 바뀌지 않고 거스를 수 없는 창조주 권병의 본질인 것이다. 이 역시 창조주의 유일무이함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242) 하나님의 권병은 사람이 능히 모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신분과 지위는 사람이 사칭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너는 하나님이 말씀하는 어조를 흉내 낼 순 있지만, 하나님의 본질을 모방할 수는 없다. 하나님의 위치에 서서 하나님을 사칭할 수는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하고자 하는 일이나, 만물을 주재하고 주관하는 일은 영원히 행할 수 없다. 하나님이 보기에 너는 영원토록 아주 하찮은 피조물일 뿐이다. 네 능력과 재주가 아무리 뛰어나고, 네가 아무리 많은 은사를 가졌어도, 너의 모든 것은 창조주의 권세 아래 있다. 네가 몇 마디 모진 말을 할 수 있을지라도, 너에게 창조주의 본질이 있다고 할 수 없으며, 네가 창조주의 권병을 가졌음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하나님의 권병과 능력은 하나님 자신의 본질이지, 어디서 배운 것도 아니며, 외부로부터 더해진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이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본질이다. 그러므로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는 영원히 변할 수 없다. 피조물의 일원으로서, 사람은 반드시 자신의 본위를 지켜야 하며, 성실한 사람이 되어 분수에 맞도록 창조주가 맡긴 사명을 지켜야 한다. 도가 넘치는 일을 해선 안 되고, 자신의 ‘능력 범위’ 밖의 일을 해서도 안 되며, 하나님이 증오하는 일을 해서도 안 된다. 위인이나 초인, 고귀한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이 되려고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것들은 사람에게 있어선 안 되는 ‘소망’이다. 위인이나 초인이 되고자 하는 건 허무맹랑한 일이고,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건 더더욱 파렴치한 일이자 혐오감을 불러오는 일이며 버림받아 마땅한 일이다. 반대로 진정한 피조물이 되는 것이야말로 귀한 것이고, 피조물이 가장 지켜야 할 바이며, 모든 사람이 추구해야 할 유일한 목표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243) 권병 자체에 대해 말하자면,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먼저, 권병이든 능력이든 모두 긍정적인 것으로서, 그 어떤 부정적인 것들과 무관하고, 그 어떤 피조물이나 비피조물과도 무관하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의 능력은 그 어떤 형식의, 생명 있고 활력 넘치는 것이라도 다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생명이기 때문에 그는 모든 생명체의 근원이다. 그와 동시에 하나님의 권병은 모든 생명체가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순종하게 할 수 있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생겨나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생존하며 지속되게 한다. 그 후에는 하나님이 모든 생명체를 주재하고 주관한다. 지금껏 여기엔 오차가 없었으며, 영원히 그럴 것이다. 이런 것들은 그 어떤 사람이나 그 어떤 것도 갖추지 못했으며, 창조주만이 이러한 능력을 소유하고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그것을 권병이라 일컫는 것이다. 이것이 창조주의 유일무이함이다. 그러므로 ‘권병’이라는 이 단어 자체나 권병의 본질은 오직 창조주와만 관련이 있다. 이는 권병이 창조주만의 신분과 본질의 상징이기 때문이며, 창조주의 신분과 지위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창조주 외에는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권병’이라는 이 단어와 관련이 있을 수 없다. 이 역시 창조주의 유일무이한 권병에 대한 해석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244) 너는 갓난아기로 이 세상에 오는 순간부터 너의 직책을 이행하기 시작한다. 하나님의 계획과 예정으로 말미암아 네가 맡은 역할을 이행하고, 너의 인생 여정을 시작하는 것이다. 너의 배경이나 앞으로의 여정이 어떻든 하늘의 지배와 안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자신의 운명을 주관할 수 있는 사람 또한 아무도 없다. 이 같은 일은 오직 한 분, 즉 만물을 주재하는 이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류가 생겨난 후로 계속 이 일을 해 왔으며, 이 우주를 경영하고 만물의 변화 법칙과 운행 궤도를 다스려 왔다. 사람은 만물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용히 하나님의 감미로움과 비와 이슬의 자양분을 공급받는다. 또한, 만물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지배 속에서 살아간다. 사람의 마음과 영은 하나님의 주관 속에 있으며, 사람의 모든 삶 역시 하나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뤄진다. 네가 이 모든 것을 믿든 믿지 않든 상관없이, 모든 존재는 생명이 있든 없든 전부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하고 새로워지며 사라진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은 사람 생명의 근원이다> 중에서

(245) 사람이라면 누구나 거치는 성장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이나 접하는 사물은 모두 창조주의 계획, 안배와 필연적인 관계가 있다. 사람은 이렇게 복잡하게 얽혀 있는 관계망을 예상할 수도, 통제할 수도, 짐작할 수도 없다. 모든 사람의 성장 배경은 다른 사람, 다른 일과 사물, 그리고 수많은 사람, 수많은 일과 사물과 관련되어 있다. 아무도 이렇게 거대한 관계망을 계획하거나 안배할 수 없다. 각 부류의 사람과 일과 사물의 출현, 지속, 소멸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과 사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창조주만이 가능할 뿐이다. 사람과 일, 사물을 연결하는 각각의 방대한 관계망은 창조주의 예정 아래 있는 모든 사람의 성장을 일구어 내고, 또한 성장 과정에 필요한 다양한 환경을 마련해 준다. 또한, 창조주의 경영 사역에 필요한 다양한 역할을 키워 내고, 사람이 저마다의 사명을 순조롭게 완수할 수 있도록 든든한 기반을 구축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246) 사람의 출생이 전생의 인연에서 시작된 것이라면, 죽음은 그 인연의 끝인 것이다. 사람의 출생이 현생에서 이행해야 할 사명의 시작이라면 죽음은 그 사명의 끝이다. 모든 사람에게 각자의 출생 배경을 정해 놓은 창조주는 죽음에도 당연히 각자의 배경을 계획해 놓았다. 다시 말해, 모든 사람의 출생은 우연이 아니고, 죽음 역시 돌연한 것이 아니다. 태어남과 죽음은 모두 그 사람의 전생 및 금생과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출생과 죽음의 배경 모두 창조주의 예정과 관련이 있다. 이는 한 사람의 타고난 숙명이자 운명이다. 모두가 다른 배경에서 태어나듯, 죽음에도 각자 고유한 배경이 있다. 그래서 사람의 수명, 죽음의 방식과 시점이 모두 다른 것이다. 어떤 사람은 튼튼하고 건강하지만 일찍 죽는다. 어떤 이는 몸이 약하고 자주 아프지만 장수하며 편안히 눈을 감는다. 비명횡사하는 사람도 있고, 천수를 다 누리는 사람도 있다. 타지에서 마지막을 맞는 이도 있고,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는 이도 있다. 하늘에서 죽는 사람도 있고, 지하에서 죽는 사람도 있다. 누구는 익사하고 누구는 재난을 만나 죽는다. 누구는 아침에, 누구는 밤에 죽는다…. 누구나 빛나고 당당하게 태어나 멋진 삶을 살다 명예롭게 죽기를 바란다. 하지만 숙명을 뛰어넘고, 창조주의 주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것이 사람의 운명이다. 사람은 미래를 위해 어떤 계획이든 세울 수 있어도 어떻게 태어날지, 언제 어떻게 죽을지 계획할 수는 없다. 사람들은 죽음이 닥치는 것을 피하고 막으려 애쓰지만 죽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조용히 다가온다. 그 누구도 자신이 언제 어떻게 죽을지, 더 나아가 어디서 죽을지 알지 못한다. 인류의 삶과 죽음을 주관하는 존재는 인류 자신도, 자연계의 그 어떤 생명체도 아닌 유일무이한 권병을 지닌 창조주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인류의 삶과 죽음은 자연계 내 모종의 법칙의 산물이 아니라 창조주의 권병과 주재로 인한 결과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247) 사람이 매일 어디를 가고 무엇을 할지, 어떤 사람이나 일을 맞닥뜨릴지, 어떤 말을 할지,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예상할 수 있을까? 사람은 이 모든 일의 발생을 예상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일이 어떻게 발전해 나갈지도 통제할 수 없다. 예상치 못했던 일을 맞닥뜨리는 상황은 살면서 빈번하게 일어난다. 이런 ‘삶 속의 사소한 일’들의 발생과 발전 양상 혹은 법칙은 인류에게 어떤 일이든 우연이란 없으며 그것이 전개되는 과정과 필연성은 사람의 뜻에 의해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모든 사건의 발생은 인류는 자신의 운명을 지배할 수 없다는 메시지와 인류를 향한 창조주의 경고를 전하는 동시에, 자신의 손안에 운명을 쥐고자 하는 인류의 헛된 야심과 욕망에 주먹을 날리고 있다. 여러 차례 거칠게 뺨을 때려 대는 것처럼 인류의 주의를 환기시켜, 대체 누가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고 주관하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인류는 또한 야심과 욕망이 끊임없이 무너지고 깨지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예비된 운명에 순응하고, 현실과 하늘의 뜻, 창조주의 주재를 받아들이게 된다. 계속해서 일어나는 ‘삶 속의 사소한 일’부터 일생의 운명까지, 창조주의 주재와 안배를 나타내지 않는 일이란 없다. 또한, 그것들은 하나같이 ‘창조주의 권병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메시지와 ‘창조주의 권병은 지고지상하다’는 불변의 진리를 전하고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248) 사람은 하나님의 권병 아래에 있으며, 모든 사람은 능동적 또는 수동적으로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를 받아들인다. 사람이 살면서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아무리 시행착오를 겪어도, 결국에는 창조주가 정해 놓은 운명의 길로 되돌아가게 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아무도 벗어날 수 없는 창조주의 권병이며, 또한 창조주가 권병으로 만물을 주재하고 다스리는 방식이다. 아무도 벗어날 수 없는 창조주의 이러한 권병이 있고, 이러한 주재와 다스림의 방식이 있기에, 만물은 질서 정연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고, 인류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끊임없는 윤회를 반복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세상이 규칙적으로 돌아가고, 매일, 매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너희들은 이러한 사실에 눈을 뜨고 정도는 다르겠지만 느끼는 바가 있을 것이다. 진리에 대한 너희들의 경험과 인식, 하나님에 대한 인식에 따라 느끼는 바가 깊을 수도 얕을 수도 있다.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대해 얼마나 깊이 알고 있는지는 진리의 실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만큼 체험했는지, 하나님의 본질과 성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가 사람의 순종 여부에 따라 존재하는 것일까? 하나님의 이런 권병이 사람의 순종 여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일까? 하나님의 권병은 어떤 상황에서든 존재한다.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의 생각과 뜻에 따라 모든 사람의 운명과 만물을 주재하고 안배한다. 이는 사람의 변화나 누군가의 의지에 따라 바뀌는 것이 아니며, 시간과 공간, 지리적인 변화로 인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권병은 하나님 자신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주재를 알고 받아들이고, 그의 주재에 순종할 수 있는지 여부는 하나님이 인류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이 사실을 조금도 바뀌게 하지 못한다. 즉, 하나님의 주재에 대해 사람이 어떤 태도를 갖든 하나님이 사람의 운명과 만물을 주재한다는 사실은 전혀 바뀌지 않는다. 네가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하지 않는다고 해도 너의 운명은 여전히 하나님의 주재 아래에 있다. 네가 하나님의 주재를 모른다고 해도 하나님의 권병은 변함없이 존재한다. 하나님의 권병과 하나님이 인류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사실은 사람의 의지와 기호, 선택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권병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 천지가 사라진다고 해도 그의 권병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 자신이고, 유일무이한 권병을 갖고 있으며, 그의 권병은 그 어떤 사람이나 일, 사물, 공간, 지리적 제한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항상 변함없이 권병을 시행하고 큰 능력을 나타낸다. 그는 경영 사역을 계속하며 만물을 주재하고, 공급하며, 지배한다. 이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는 사실이자 영원불변한 진리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249) 인류의 운명과 만물의 운명은 창조주의 주재와 아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그의 지배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한마디로 인류의 운명과 만물의 운명은 창조주의 권병과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관계다. 인류는 만물의 법칙 가운데 창조주의 지배와 주재를 경험하고, 만물의 생존 법칙을 통해 창조주의 다스림을 목격하게 된다. 만물의 숙명을 보며 창조주가 만물을 주재하고 주관하는 방식에 대해 알게 되며, 인류와 만물의 생사윤회를 통해 창조주가 모든 만물 생령을 지배하고 안배한다는 것을 진정으로 느끼게 된다. 그리고 창조주의 지배와 안배가 세상의 모든 법률, 규정, 제도뿐 아니라 그 어떤 힘과 세력도 넘어선다는 사실에 진정으로 눈을 뜨게 된다. 따라서 인류는 어떠한 피조물도 창조주의 주재를 무너뜨릴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 어떤 세력도 창조주의 예정을 따르는 만사 만물에 해를 끼치거나 이를 바꿀 수 없다. 인류와 만물은 바로 이런 천상의 법칙과 규칙에 따라 살아가면서 한 세대 또 한 세대 번성해 왔다. 이것이 바로 창조주의 권병이 진실로 구현된 것이 아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250) 누군가 운명을 믿고 이를 마음 깊이 느꼈음에도 창조주가 인류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고, 순종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의 이번 생은 한 편의 비극일 것이다. 여전히 헛되고 공허할 것이며, 여전히 창조주의 권세 아래로 돌아오지 못해 창조주의 인정을 받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창조된 인류가 되지 못한다. 진실로 창조주의 주재를 알고 경험한 사람은 소극적이거나 무력하지 않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일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의 운명이 정해져 있음을 인정함과 동시에 삶과 운명에 대해 정확한 정의를 내리게 된다. 사람의 일생은 창조주의 주재 아래에 있다는 정의 말이다. 사람이 지금껏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며 자신이 겪었던 인생의 각 단계들을 떠올려 볼 때, 매 순간이 힘들었든 수월했든 하나님이 모든 걸음을 안배하고 인도해 왔음을 알게 된다. 하나님의 세심한 계획과 정성스러운 안배로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오늘날까지 오게 되어 창조주의 주재와 구원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번 생에서 얻은 얼마나 큰 행운인가! 누군가 운명을 부정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면, 이는 그가 하나님이 그를 위해 예비한 모든 것에 반항하며 순종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누군가 하나님이 사람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사실에 긍정적으로 반응하여 자기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서 하나님의 주재를 진정으로 느끼게 된다면, 그는 하나님이 안배한 모든 것에 더욱 진심으로 순종하고 싶어질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 더 이상 거역하지 않고 더욱 단호한 의지와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이 그의 운명을 지배하도록 할 것이다. 운명이 어떤 건지 모르고 하나님의 주재를 알지 못한 채 안개 속을 헤쳐 가며 비틀거리며 나아가는 그 과정이 너무나 고단하고 쓰라리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총명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주재에 대해 깨닫고 받아들이는 길을 택한다. ‘자신의 두 손으로 좋은 삶을 일구기 위해 애썼던’ 고통스러운 날들, 운명에 맞서 싸우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소위 삶의 목표란 것을 추구하던 나날에 안녕을 고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없던 나날, 하나님을 볼 수 없던 나날, 하나님의 주재를 정확히 알지 못했던 나날, 그런 나날들은 아무 의미도, 가치도 없었고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어디에서 어떤 일을 했든 사람의 생존 방식과 목표는 끝없는 슬픔과 벗어날 수 없는 고통만을 가져다주었기에, 그런 날들은 돌이켜 볼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오로지 창조주의 주재를 받아들이고, 그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고, 참된 삶을 추구할 때, 사람은 차츰 모든 슬픔과 고통에서 풀려나고 삶의 공허함을 떨쳐 버릴 수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251) 창조주의 주재에 순종해야 참된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지배와 주재를 알지 못하는 탓에 늘 반항심을 가지고 패역한 태도로 운명과 마주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권병과 주재, 그리고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나 그들이 처한 상황과 운명을 바꾸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는 결코 성공할 수 없는 헛된 바람일 뿐, 곳곳에서 좌절을 맛보게 된다. 영혼 깊은 곳에서의 이런 몸부림은 고통스러운 것이며, 그 고통은 마음 깊이 새겨지고 사람의 생명을 낭비하게 만든다. 그 고통의 원인은 무엇일까? 하나님의 주재 탓일까, 아니면 사람의 운명이 나쁜 탓일까? 둘 다 틀렸다. 한마디로 말해, 사람들이 가는 길, 사람들이 선택한 생존 방식이 근본적인 원인이다. 이를 깨닫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이 사람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인정할 때, 하나님이 너를 위해 주재하고 안배한 모든 것이 너를 얼마나 이롭게 하고 보호해 주는지 알게 될 때, 고통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느끼고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며 자유롭게 된다. 대다수 사람들은 고통에서 벗어나 예전과 다른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창조주가 사람의 운명을 주재하는 것의 실제 가치와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창조주의 주재를 진정으로 인정하지도 순종하지도 못하며, 어떻게 창조주의 지배와 안배를 구하고 받아들이는지 역시 알지 못한다. 그래서 창조주가 사람의 운명과 사람의 모든 것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알지 못하고 창조주의 권세에 진정으로 순종하지 못하면, ‘운명은 스스로 정하는 거야’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헤어 나오기 쉽지 않고, 운명과 창조주의 권병에 필사적으로 반항하며 생기는 고통에서 벗어나기도 어렵다. 물론 참된 자유를 얻기도,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되기도 아주 어렵다. 이런 내적 상태를 해결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기존의 생존 방식과 인생 목표에 작별을 고하는 것이다. 기존의 생존 방식과 인생관, 목표, 소망과 꿈을 정리해 보고 분석한 다음, 하나님이 사람에게 가지고 있는 뜻과 요구에 대조해 본다. 그리고 자신의 생존 방식과 인생관 등 가운데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것이 있는지, 하나님의 요구에 맞는 것이 있는지, 올바른 인생의 가치를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이 있는지, 진리를 점점 더 깨닫는 삶을 살고 인성을 갖춘 사람다운 모습으로 살게 하는 것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인류가 추구하는 다양한 삶의 목표와 생존 방식을 반복적으로 살피고 자세히 분석하다 보면, 창조주가 인류를 창조할 당시의 취지에 부합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창조주의 주재와 보살핌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들뿐, 하나같이 사람을 타락시키고 지옥으로 이끄는 함정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 사실을 알았다면 이제 해야 할 일은 기존의 인생관을 버리고 여러 함정을 멀리하며, 하나님의 주관과 안배에 네 삶을 맡기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이 없이 하나님의 지배와 인도에 순종하기만을 구하며,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쉬워 보이지만 실은 어려운 일이다. 그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어떤 이는 기꺼이 응하고 어떤 이는 꺼린다. 이를 꺼리는 사람들에게는 응하려는 생각과 의지가 없다. 하나님의 주재를 알고, 하나님이 사람의 운명을 지배하고 안배한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거기서 벗어나고 싶어 하고, 운명을 하나님께 맡기거나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하기를 원치 않는다. 더 나아가 그들은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래서 자신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확인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항상 존재한다. 그들은 자신의 두 손으로 운명을 바꾸고 싶어 하고, 자신의 힘으로 행복해지기를 원하며, 하나님의 권병과 주재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보려고 한다. 사람에게 슬픔이 생기는 것은 사람이 행복한 삶을 추구하며 명예와 이익을 좇기 때문도, 안개 속에서 운명에 맞서며 힘겹게 나아가기 때문도 아니다. 창조주의 존재와 창조주가 인류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에도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수렁 속에서 나오는 대신, 차라리 잘못을 깨닫지 않고 독하고 완강하게, 수렁 가운데서 계속 발버둥 치길 원하며 고집스럽게 창조주의 주재에 반항하고 조금도 회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리고서야 포기하고 방향을 돌린다. 이것이 사람의 진정한 슬픔인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순종을 선택한 자는 현명하고, 벗어나려는 자는 우매하고 완고하다고 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252) 창조주의 권세에 복종하여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하다

한 사람의 출생은 외로운 영혼이 이 세상에 와서 인생을 경험하는 출발점이자 창조주의 안배에 따라 창조주의 권병을 경험하는 시발점이 된다. 이는 당연히 한 사람 또는 한 영혼이 창조주의 주재와 권병을 인지하고 창조주의 권병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사람은 평생 창조주가 정해 놓은 운명의 법칙 속에서 살아간다. 양심과 이성이 있는 사람에게 있어 수십 년 인생을 살며 창조주의 주재를 인정하고 창조주의 권병을 인지하는 데 이르게 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수십 년의 인생 경험을 통해 사람의 운명은 하나님이 예정한 것임을 깨닫고 삶의 의미를 느끼거나, 그 의미에 대해 정리하는 것은 굉장히 쉬운 일이다. 그러한 삶의 경험을 인정함과 동시에 사람의 생명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마음이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사람을 진정한 삶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 무엇인지, 삶의 목표와 사명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조금씩 깨닫게 된다. 또한 창조주를 경배하지 않거나 창조주의 권세에 복종하지 않는 사람이 죽음에 직면할 때, 즉 영혼이 다시 창조주와 마주하게 될 때 그 영혼은 더없는 공포와 불안에 떨게 될 것임을 점차 깨닫게 된다. 이 세상에서 수십 년을 살면서 사람의 생명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알지 못하고 운명이 누구에 의해 좌우되는지도 깨닫지 못한다면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지 못할 수밖에 없다. 수십 년 동안 삶을 영위하면서 창조주의 주재를 깨달은 사람은 삶의 의미와 가치를 순수하게 이해하는 사람이며, 삶의 이유를 깊이 깨달은 사람이다. 또한 창조주의 주재를 제대로 이해하고 경험한 사람이고, 더 나아가서는 창조주의 권병 아래에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런 사람은 창조주가 사람을 만든 의미를 이해한 것이다. 또 사람은 마땅히 창조주를 경배해야 하고, 사람의 모든 것이 창조주로부터 비롯되었기에 머지않은 미래에 창조주의 품으로 돌려드려야 한다는 것도 안다. 이런 사람은, 삶은 창조주가 마련한 것이고, 죽음은 창조주의 주재에 달려 있으며, 삶과 죽음 모두 창조주의 권병 아래 예정돼 있음을 안다. 따라서 사람이 이런 사실을 진정으로 깨닫게 되면 자연스레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게 되고, 자신이 지닌 모든 것을 담담히 내려놓게 된다. 또한, 무턱대고 저항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곧 닥칠 모든 것을 흔쾌히 수용하고 순종하며, 창조주가 마련한 삶의 마지막 관문을 맞이하게 된다. 사람이 자신의 삶을 창조주의 주재를 경험하고 창조주의 권병을 알아 가는 기회로 삼고, 또한 창조된 사람으로서의 본분을 이행하고 자신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는다면, 분명 올바른 인생관을 가지게 될 것이고, 창조주의 축복과 인도에 따라 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창조주의 빛 속에서 행하고, 창조주의 주재를 깨달으며, 창조주의 권세에 복종하게 될 것이다. 또 창조주의 경이로운 행사를 증거하는 사람이 되고 창조주의 권병을 증거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런 사람은 두말할 필요 없이 창조주의 사랑을 받고 창조주에게 열납될 것이다. 이런 사람만이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삶의 마지막 관문을 흔쾌히 맞이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253) 하나님을 유일무이한 주재자로 받아들이는 것이 구원받는 첫걸음이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권병’에 대한 진리를 진지하게 대하고, 마음으로 느끼고 깨달아야 한다. 이런 진리들은 모든 사람의 삶과 관계가 있고, 모든 사람의 과거와 현재, 미래와 맞닿아 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일생에서 거치게 되는 중요한 관문들과도 관련될 뿐 아니라 어떻게 하나님의 주재를 알아야 하고, 어떤 태도로 하나님의 권병을 대해야 하는지와 같은 문제와도 관련된다. 당연히 모든 사람의 종착지와도 관계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이해하고 깨닫기 위해 평생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네가 하나님의 권병을 직시하고 그의 주재를 받아들일 때 하나님의 권병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차츰 인식하고 체득하게 된다. 그러나 네가 하나님의 권병을 인정하지 않고 그의 주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하나님의 주재에 대해 전혀 알 수가 없다. 하나님의 권병을 진정으로 느끼거나 깨닫지 못하면 인생의 끝자락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을 수십 년간 믿었다고 해도 인생에서 얻은 바가 아무것도 없고, 하나님이 인류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깨달은 바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이는 얼마나 슬픈 일이냐? 따라서 인생의 길을 얼마나 걸어왔든, 현재 나이가 몇 살이든, 앞으로 갈 길이 얼마나 남았든, 우선 하나님의 권병을 인정하고 직시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이 너의 유일한 주재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이 인류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진리들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깨닫는 것은 모든 사람이 완수해야 할 과제이자 인생을 알고 진리를 얻을 수 있는 중요한 열쇠이고, 매일 마주해야 하는, 하나님을 알아 가는 기본적인 공과이자 일상이다. 이는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지름길로 이런 목표에 이르려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알려 주겠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주재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이가 있다면, 그것은 더욱 불가능하다! 하나님은 사람의 유일한 주이고, 유일한 운명의 주재자이기 때문에,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주재할 수 없고 운명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 한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든 타인의 운명에 영향을 미칠 수 없으며, 그것을 지배하고 안배하거나 좌우하고 변화시키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만이 사람의 모든 것을 주재할 수 있다. 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만이 인류의 운명을 주재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권병을 가지고 있기에 창조주만이 인류의 유일무이한 주재자이다. 하나님의 권병은 창조된 인류를 주재할 뿐만 아니라, 아무도 보지 못하는 비(非)피조물, 우주와 별들도 주재한다. 이는 실제로 존재하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이를 바꾸지 못한다.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아직도 요행심을 품은 채 자신에게 특기나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 현재의 처지를 바꾸거나 현재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자가 있다면, 인위적인 노력을 빌어 명예와 부를 얻고 출세를 하는 등 운명을 바꿔 보려는 자가 있다면, 자기 무덤을 제 손으로 파며 고생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라 말해 주겠다! 너는 조만간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고, 자신이 헛수고를 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운명에 맞서려는 야심과 욕망, 반역적인 행동으로 인해 그릇된 길로 빠지게 될 것이며, 뼈아픈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너는 지금 당장은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실감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류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진리를 점차 깊이 체험하게 될 때면 오늘 내가 한 말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될 것이다. 네가 마음과 영이 있는 사람인지,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인지는 하나님의 주재와 진리에 대한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물론 이것들은 네가 하나님의 권병을 진정으로 느끼고 깨달을 수 있는지도 결정한다. 네가 평생 동안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를 느껴 본 적이 없고 그의 권병을 인정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너는 황폐하기 그지없는 사람이며 분명 하나님이 혐오하여 버리는 대상이 될 것이다. 이는 너 자신이 가는 길과 자신의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 하나님이 사역하는 동안 하나님이 주는 시련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주재를 받아들이며, 하나님의 권병에 순종하고, 점차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로 경험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권병을 진정으로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주재에 대해 진실한 체험을 하게 되며, 진정 창조주 앞에 복종하게 된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구원받은 사람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254) 사탄은 감히 하나님의 권병을 넘어설 수 없다. 사탄은 하나님의 명령과 구체적인 지시에 대해서는 더욱 조심스럽게 복종하고 따르며 감히 거역할 수 없다. 물론 사탄은 하나님의 어떤 명령도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탄에게 정해 준 범위이다. 그러므로 사탄은 감히 이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 이는 하나님 권병의 위력이 아니냐? 하나님의 권병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냐? 사탄은 하나님을 어떻게 대해야 하고, 속으로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인류보다 훨씬 더 잘 안다. 사탄은 영계에서 하나님의 지위와 권병을 확실하게 보았고, 하나님 권병의 위력과 하나님의 권병이 시행되는 원칙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감히 태만히 굴거나 조금도 거스르지 못하며, 하나님의 권병에서 벗어난 그 어떤 일도 하지 못한다. 또한 하나님의 진노에 맞서 그 어떤 도전도 하지 못한다. 사탄은 본성이 사악하고 교만할지라도 하나님이 정해 준 한계와 범위를 감히 벗어나지 못한다. 천만 년 동안, 사탄은 엄격하게 그 한계를 지켰고, 하나님의 모든 지시와 명령을 준수하였으며, 지금껏 감히 한계선을 한 걸음도 넘지 못했다. 사탄은 악독하긴 해도 패괴된 인류보다 훨씬 ‘현명’하다. 사탄은 창조주의 신분을 알고 자신의 한계도 안다. ‘규율을 지키는’ 사탄의 행위를 통해 하나님의 권병과 능력은 사탄이 뛰어넘을 수 없는 천상의 법칙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유일무이함과 권병으로 인해 만물이 법칙 속에서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으며, 인류가 하나님이 정한 궤도 속에서 번성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이 규율을 깰 수 없고 이 법칙을 바꿀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모두 창조주의 손에서 나온 것이고, 창조주의 결정에서 비롯된 것이며, 창조주의 권병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255) 사탄이 욥을 호시탐탐 노렸을지라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욥의 털끝 하나도 감히 건드릴 수 없었다. 사탄의 본성이 사악하고 잔인할지라도,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사탄은 하나님의 지시를 지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욥에게 임한 사탄이 양 떼에 침입한 사나운 늑대처럼 거칠게 날뛰었을지라도, 사탄은 감히 하나님이 정해 준 범위를 망각하지 못했고 하나님의 명령을 벗어나지 못했다. 사탄은 아무리 해도 감히 하나님 말씀의 원칙과 범위를 벗어날 수 없었다. 이것이 사실 아니냐? 이 점에서 볼 때, 사탄은 여호와 하나님의 그 어떤 말씀도 넘어설 수 없다. 사탄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은 다 명령이고 천상의 법칙이며, 하나님 권병의 발현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모든 말씀 뒤에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천상의 법칙을 어기며 위반한 자들에 대한 처벌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사탄은 하나님의 명령을 벗어나면, 하나님의 권병을 넘어서고 천상의 법칙에 대항한 결과를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똑똑히 알고 있다. 그 결과는 도대체 무엇일까? 말할 것도 없이 사탄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징벌이다. 사탄이 욥, 이 한 사람에게 행한 일은 인류를 패괴시킨 사탄의 소행을 보여 주는 축소판일 뿐이다. 사탄이 그 일을 저지를 때 하나님이 사탄에게 정해 준 범위와 내린 명령은 사탄이 모든 일에서 지켜야 하는 원칙을 보여 주는 축소판일 뿐이다. 그리고 사탄이 이 일에서 담당한 역할과 위치는 사탄이 하나님의 경영 사역에서 담당하는 역할과 위치를 보여 주는 축소판일 뿐이다. 사탄이 욥의 시험에서 보인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은 하나님의 경영 사역 가운데서 하나님께 감히 대항하지 못하는 사탄의 모습을 보여 주는 축소판일 뿐이다. 이 축소판들이 너희에게 주는 경고는 무엇이냐? 사탄을 포함한 만물 가운데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감히 창조주가 정한 천상의 법칙과 규칙을 벗어나지 못하며, 저항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저항자에게 내리는 창조주의 처벌을 바꾸거나 그 처벌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창조주만이 천상의 법칙과 규칙을 정할 수 있고, 창조주만이 그러한 법칙과 규칙을 시행할 능력이 있으며, 창조주의 능력만이 그 어떤 사람이나 그 어떤 것도 초월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창조주만의 권병이며, 이 권병은 만물 가운데 지극히 높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가장 크고 사탄이 그 다음이다”라는 말은 절대 있을 수 없다. 유일무이한 권병을 가진 창조주 외에 다른 신은 있을 수 없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256) 사탄의 ‘특별’한 신분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사탄의 다방면의 행위에 관심을 보인다. 심지어 많은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 외에 사탄도 권병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사탄도 이적을 보이고 인류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류는 하나님을 숭배하는 것 외에도 마음속에 사탄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으며, 심지어 사탄을 하나님으로 삼아 숭배하기까지 한다. 이들은 불쌍하기도 하거니와 가증스럽기도 하다. 그들이 불쌍한 것은 그들이 무지하기 때문이고, 그들이 가증스러운 것은 그들의 대역무도함과 타고난 사악한 본질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너희가 권병이 무엇인지, 권병이 상징하는 바가 무엇이고 대변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게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개괄적으로 말하면, 하나님 자신이 곧 권병이다. 하나님의 권병은 하나님의 지고지상함과 하나님의 본질을 상징한다. 하나님 자신의 권병은 하나님의 지위와 신분을 대변한다. 그렇다면 사탄은 자기 자신을 감히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탄은 감히 자신이 만물을 창조하였으며, 만물을 주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당연히 그러지 못한다! 사탄은 만물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지금까지 하나님이 창조한 것과 같은 그 어떤 것도 만들어 내지 못했으며, 생명이 있는 그 어떤 것도 만들어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탄에게 하나님의 권병이 없기 때문에 사탄은 영원히 하나님의 지위와 신분을 가질 수 없다. 이는 본질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사탄에게 하나님과 같은 능력이 있느냐? 물론 없다! 사탄이 행한 일들, 사탄이 보인 이적은 무엇이냐? 능력이 맞느냐? 권병이라 할 수 있느냐? 물론 아니다! 사탄은 사악한 흐름을 주도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교란시키고 파괴하며 방해하는 짓을 일삼는다. 몇천 년 동안, 사탄은 인류를 패괴시키고 해쳤으며, 사람을 유혹해서 타락의 길로 가게 하거나 하나님을 버리고 죽음의 골짜기로 걸어가게 하였다. 이런 짓 말고, 사탄이 인류에게 행한 것 중 어느 것 하나 기릴 만하거나 칭찬하고 귀히 여길 만한 것이 있느냐? 사탄에게 권병과 능력이 있었다면 인류가 사탄에 의해 패괴되었겠느냐? 사탄에게 권병과 능력이 있었다면 인류가 사탄에 의해 해를 입었겠느냐? 사탄에게 권병과 능력이 있었다면 인류가 하나님을 버리고 죽음의 길로 나아갔겠느냐? 사탄에게 권병과 능력이 없다면, 사탄이 행한 모든 것의 본질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하겠느냐? 혹자는 사탄의 모든 행위가 보잘것없는 잔재주에 불과하다고 정의한다. 그러나 나는 사탄에 대한 이런 정의는 타당하지 않다고 본다. 인류를 패괴시키는 사탄의 악행이 보잘것없는 잔재주일까? 사탄이 욥을 해한 그런 사악한 기세와 욥을 해치고 집어삼키려던 강렬한 욕망은 단연코 보잘것없는 잔재주로 실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당시를 돌이켜 보면, 욥이 소유했던 엄청난 양의 소와 양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거액의 재산이 한 순간에 모두 사라져 버렸다. 그게 보잘것없는 잔재주로 할 수 있는 일이더냐? 사탄이 한 행위의 성격으로 볼 때, 모두 파괴, 방해, 훼손, 상해, 사악, 악독, 어둠 등과 같은 부정적 단어와 잘 맞고 어울린다. 그러므로 모든 정의롭지 못하고 사악한 것의 발생은 사탄의 행위와 떼어 놓을 수 없으며, 또한 사탄의 추악한 본질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사탄이 아무리 ‘재주가 신통하다’ 할지라도, 아무리 오만하고 야심이 크다 할지라도, 아무리 강력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또 아무리 사람을 미혹하고 패괴시키는 재능이 탁월하고 사람을 협박하는 수법과 권모술수가 뛰어나다 할지라도, 아무리 그것의 존재 형식이 변화무쌍할지라도 상관없다. 사탄은 지금껏 생명 있는 그 어떤 것도 만들어 내지 못했고, 만물의 생존 법칙과 규율을 정하지도 못했으며, 생명이 있는 것과 생명이 없는 것을 주관하거나 주재하지 못했다. 우주 창공에는 사탄에 의해 생기고 사탄으로 인해 존재하는 사람이나 사물은 아무것도 없고, 사탄이 주재하고 주관하는 사람이나 사물 또한 아무것도 없다. 반대로, 사탄은 하나님의 권세 아래에서 존재해야 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지시와 명령에 순종해야만 했다. 사탄은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땅 위의 물 한 방울, 모래 한 알도 함부로 만질 수 없다.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땅 위의 개미조차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거늘, 하물며 하나님이 만든 인류는 어떠하겠느냐? 하나님의 눈에 사탄은 산속의 백합만도 못하고, 하늘을 나는 새만도 못하며, 바닷속의 물고기만도 못하고, 땅 위의 구더기만도 못하다. 만물 가운데 사탄의 역할은 만물과 인류를 위해 봉사하고, 하나님의 사역과 경륜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 사탄의 본성이 아무리 악독하고 본질이 아무리 사악해도 상관없다. 사탄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분수껏 자신의 기능, 그러니까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는 기능과 부각물의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탄의 본질이자 본래 자리이다. 사탄의 본질은 생명과 무관하고, 능력과 무관하며, 권병과 무관하다. 사탄은 하나님 수중에 있는 장난감,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는 기계에 불과하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257) 사탄은 수천 년 동안 인류를 패괴시키면서 무수히 많은 악행을 저질렀고, 대대로 사람들을 미혹하였으며, 인간 세상에서 천인공노할 죄를 저질렀다. 사람을 해치고 미혹하고 하나님께 대항하도록 유혹하며, 하나님의 경륜을 교란시키고 파괴하는 등 온갖 악행을 자행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권병 아래 있는 만물 생령은 늘 변함없이 하나님이 정한 법칙과 규율을 따르고 있다. 하나님의 권병과 비교해 보면, 사탄의 사악한 본성과 그것이 날뛰는 모습은 추하기 그지없으며, 역겹고 신물 나는 데다, 보잘것없고 취약하기 이루 말할 수 없다. 비록 사탄이 하나님이 창조한 만물 가운데서 돌아다닌다 할지라도, 사탄은 하나님이 정해 놓은 그 어떤 사람, 일, 사물도 변화시킬 수 없다. 수천 년이 지나도 인류는 여전히 하나님이 내려 준 빛과 공기를 누리고 있다. 인류는 여전히 하나님이 친히 불어넣어 준 생기로 숨을 쉬고 있고, 하나님이 만든 꽃과 새, 물고기와 곤충들을 누리며, 하나님이 공급해 준 만물을 누리고 있다. 낮과 밤은 여전히 끊임없이 교체되고, 사계절 역시 변함없이 순환하고 있다. 하늘을 나는 기러기는 올겨울에 떠나가서 내년 봄에 다시 돌아온다. 물속의 물고기는 그들의 집인 강과 호수를 떠나 본 적이 없다. 땅 위의 매미는 여름날 마음껏 자기들만의 노래를 부른다. 풀 속의 귀뚜라미들은 가을날 소슬바람 따라 낮은 소리로 노래한다. 기러기는 무리를 이루고 매는 홀로 지낸다. 사자 무리는 사냥하며 살아가고, 사슴들은 꽃과 풀밭을 떠나지 않는다…. 만물 가운데 각종 생령들은 갔다가 다시 오고 왔다가 다시 가며 찰나 간에 천태만상으로 변화한다. 하지만 그들 각자의 본능과 생존 법칙은 변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이 공급해 주는 자양분을 받아 생존한다. 그 누구도 그들의 본능을 바꿀 수 없으며, 그 누구도 그들의 생존 법칙을 파괴할 수 없다. 만물 가운데 살아가며 사탄에 의해 패괴되고 미혹되었을지라도 인류는 여전히 하나님이 만든 물과 공기와 만물을 떠날 수 없다. 인류는 여전히 하나님이 만든 이 공간 속에서 번성하며 살아간다. 인류의 본능은 변하지 않았다. 인류는 여전히 두 눈으로 바라보고, 두 귀로 듣고, 머리로 생각하며, 마음으로 깨닫고, 두 다리와 두 발로 걸으며, 두 손으로 일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는, 하나님이 공급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본능은 변하지 않았다. 인류가 하나님과 협력하는 기관(器官)은 변하지 않았고, 피조물의 본분을 다할 수 있는 기관은 변하지 않았다. 인류 심령의 필요는 변하지 않았고, 뿌리를 찾아 돌아가려는 인류의 소망은 변하지 않았으며, 인류가 창조주의 구원을 얻고자 하는 소망도 변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권병 아래 살아가며 사탄의 피비린내 나는 학대를 견디고 있는 인류의 현주소다. 비록 사탄의 엄청난 유린을 당한 인류는 더 이상 태초에 창조된 아담과 하와가 아닌, 지식과 상상, 관념 등 하나님과 적대되는 것들이 가득하고 사탄의 패괴 성품이 가득한 인류라 할지라도, 하나님 눈에 인류는 여전히 하나님이 만든 인류이다. 인류는 여전히 하나님의 주재와 지배 아래 있고, 하나님이 정한 궤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보기에 사탄에 의해 패괴된 인류는 단지 외관상 더럽고 굶주리고 반응도 약간 느리고 기억력도 다소 감퇴되고 나이가 조금 많은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사람의 모든 기능과 본능은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이 인류가 하나님이 구원하고자 하는 인류이다. 이 인류는 창조주의 부름과 창조주의 음성을 듣기만 하면 바로 일어나 그 음성의 근원을 찾기 위해 달려간다. 이 인류는 창조주의 그림자를 보기만 하면 모든 것을 제쳐 두고 창조주를 위해 헌신하며, 심지어 목숨까지 바친다. 인류의 마음과 영이 창조주의 마음의 소리를 깨닫게 될 때, 인류는 사탄을 버리고 창조주의 곁으로 온다. 인류가 완전히 몸의 더러움을 씻어 내고 창조주가 다시 공급해 주는 자양분을 얻게 될 때, 인류의 기억은 회복된다. 그때의 인류는 진정 창조주의 권세 아래로 돌아온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258) 아득한 우주에 수많은 생령이 번식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생명의 법칙을 따라 순환하며, 불변의 법칙을 지키고 있다. 죽은 사람은 산 사람의 이야기를 갖고 떠나고, 산 사람은 또 죽은 사람의 역사적 비극을 재연하며 살아간다. 인류는 이런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왜 사는가? 우리는 왜 죽는가? 누가 이 세상을 주관하고 있는가? 누가 이 인류를 창조했는가? 이것이 정녕 대자연의 조화일까? 인류가 진정으로 자기 운명을 지배할 수 있을까?’ 인류는 수천 년간 끊임없이 이런 질문들을 던졌지만 불행하게도 이런 문제에 집착할수록 과학에 대한 갈망은 점점 더 커졌다. 과학은 사람의 육에 일시적인 만족과 짧은 누림을 주었지만, 영혼 깊은 곳의 고독과 적막, 감출 수 없는 공포, 무력감에서 벗어나게 해 주지는 못했다. 인류는 그저 눈으로 볼 수 있고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과학 지식으로 심령을 마비시키고 있었을 뿐, 비밀 탐구를 위한 발걸음을 멈추지는 못했다. 인류는 우주 만물의 주재자가 누구인지 전혀 모르고, 인류의 시초와 미래는 더더욱 알지 못한 채 그저 속절없이 법칙에 따라 살아가기만 할 뿐이다. 그 누구도 그것을 벗어날 수 없고 또 그 누구도 그것을 바꿀 수 없다. 만물 가운데서, 또 하늘 위에서 태고부터 영원까지 계신 그분이 이 모든 것을 주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인류가 목도한 적이 없는 분이요, 인류가 안 적이 없는 분이며, 인류가 한 번도 존재를 믿지 않았던 분이다. 하지만 그는 인류의 선조에게 생기를 불어넣고 인류에게 생명을 부여한 분이요, 인류가 살 수 있도록 자양분을 공급해 주는 분이고, 오늘날까지 인류를 인도한 분이며, 나아가 인류가 유일하게 의지하여 살아갈 수 있는 분이다. 그는 만물을 주재하며, 우주 만물의 생령을 주재한다. 그는 사계절을 주관하며, 풍상설우(風霜雪雨)의 변화를 조절한다. 그는 인류에게 햇빛을 선사하고, 밤의 장막도 베풀어 주었다. 그는 하늘과 땅을 펴고, 인류를 위해 산과 강과 호수, 그리고 그 속의 생물까지 준비했다. 그의 행사는 모든 곳에 존재하고, 그의 능력 역시 모든 곳에 존재한다. 그의 지혜는 모든 곳에 존재하고, 그의 권병 역시 모든 곳에 존재한다. 이 모든 규율과 법칙은 그의 행사를 구현하고, 그의 지혜와 권병을 나타낸다. 누가 그의 주재에서 벗어날 수 있겠느냐? 누가 그의 안배에서 벗어날 수 있겠느냐? 만물은 다 그의 눈앞에서 살아가고, 더욱이 그의 주재하에서 살아간다. 그의 행사와 능력 앞에서 사람은 그가 분명히 존재하며, 만물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 외에는 어떤 존재도 이 우주를 주관할 수 없고, 더욱이 인류에게 이토록 무한히 많은 것을 공급해 줄 수 없다. 네가 하나님의 행사를 알든 모르든, 또 하나님의 존재를 믿든 믿지 않든, 너의 운명을 하나님이 정해 놓았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만물을 주재하는 분이 영원히 하나님이라는 사실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권병은 인류가 알 수 있는지, 깨달을 수 있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인류의 과거, 현재, 미래를 알고, 오직 하나님만이 인류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 네가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든 없든, 이 모든 것은 머지않은 장래에 사람이 직접 목도하게 될 것이다. 이 역시 하나님이 곧 이룩할 사실이다. 인류는 하나님이 보는 가운데서 살고 또 하나님이 보는 가운데서 죽는다. 인류는 하나님의 경영을 위해 살고 또 하나님의 경영을 위해 두 눈을 감는다. 이렇게 끊임없이 순환하며 왔다가 가고 갔다가 또 온다. 이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이다. 하나님의 경영은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하나님은 인류에게 그의 존재를 알게 하고, 그의 주재를 믿게 하며, 그의 행사를 보게 하고, 또 그의 나라로 돌아오게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획이고, 수천 년 동안 경영해 온 사역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람은 하나님의 경영 안에 있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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