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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칭과 신분에 관하여

하나님이 쓰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의 사역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지난 사역(구약과 신약)에 대해 아는 것은 물론, 오늘날의 사역에 대해서도 더욱 잘 알아야 한다. 즉, 6천 년에 걸친 3단계 사역을 모두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너에게 복음을 전하라 해도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알지 못한다면 너는 전하지 못할 것이다. 어떤 사람이 “당신들의 하나님은 성경과 구약, 예수님이 당시에 하신 사역과 말씀에 대해 어떻게 얘기했습니까?”라고 물을 때 네가 성경의 실상에 대해 말하지 못한다면 그들을 납득시키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본 것은 구약이었기 때문에 당시 예수도 그의 제자들에게 구약에 관한 것을 많이 이야기했다. 신약 성경은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고 수십 년이 지난 후에 사람들이 쓴 것이다. 너희가 복음을 전하려면 주로 성경의 실상과 이스라엘에서 하나님이 행한 사역, 즉 여호와가 행한 사역에 대해 확실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예수가 행한 사역도 알아야 한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문제다. 그들은 이 두 단계 사역의 실상을 들어 보지 못했다. 복음을 전할 때는 일단 현재의 성령 역사는 말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들은 이 단계의 사역을 따라올 수 없다. 이는 너희가 추구하는 것, 즉 하나님을 알고 성령 역사를 아는 것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보다 더 높은 것은 없다. 그러기에 네가 먼저 높은 것을 말한다면 그들은 따라오지 못할 것이다. 누구도 이러한 성령 역사를 체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전례가 없는 사역이므로 사람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들이 체험하는 것은 모두 과거의 낡은 것들이다. 어쩌다 성령 역사가 있다고 해도, 그들이 체험하는 것은 현재 이뤄지는 성령의 역사가 아니며, 현재 하나님의 뜻도 아니다. 그들은 여전히 낡아 빠진 실행 방식에 따라 실천하는데, 거기에는 어떠한 새로운 빛도, 새로운 것도 없다.

예수 시대에 성령은 주로 예수에게 역사했다. 성전 안에서 제사장의 옷을 입고 여호와를 섬기던 사람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충성되게 여호와를 섬겼고 성령의 역사도 있었다. 다만 그들은 당시의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예전의 낡은 실행 방식에 따라 여호와께 충성할 뿐, 새로운 인도는 받지 못했다. 예수가 새로운 사역을 가지고 왔지만, 성전 안에서 섬기던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인도와 새로운 사역이 없었으므로 성전 안에서의 섬김도 낡은 실행 방식을 유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성전을 벗어나지 않은 그들에게 새로운 진입이 있을 리 만무했다. 새로운 사역은 예수가 가져왔는데, 그는 성전 안에서 사역하지 않고 성전 밖에서만 사역했다. 하나님의 사역 범위가 진작에 바뀌어 더는 성전 안에서만 사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성전 안에서 섬기는 사람들은 기존의 상태를 유지할 뿐, 새 사역을 개척할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종교 인사들도 예전과 다름 없이 성경을 숭배하고 있다. 네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하면 그들은 너에게 성경을 들이밀 것이다. 그들이 성경에 대해 말하기 시작할 때 네가 어리둥절하여 제대로 대꾸를 하지 못하면, 그들은 너를 어리석은 신자라고 여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조차 모르는 주제에 무슨 하나님을 믿는다고.’ 그들은 깔보면서 이렇게 질문할 것이다. “당신들이 믿는 분이 하나님이라면 그분은 왜 당신들에게 구약과 신약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그분이 이스라엘에서 동방으로 영광을 가져왔다면, 어째서 이스라엘에서 한 사역을 모릅니까? 예수님이 한 사역은 왜 또 모르는 겁니까? 당신들이 모른다는 건 그분이 알려 주지 않았다는 말이겠죠. 그분이 정말 예수님이 다시 한번 성육신한 거라면 어째서 이러한 것들을 모른단 말입니까? 예수님은 여호와의 사역을 아시는데 그분은 왜 모릅니까?” 그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이 이런 것뿐인데,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이 흐름 속에 있는 사람은 더 이상 성경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날 하나님이 행하는 한 단계 한 단계의 사역을 너희는 모두 따라왔으며,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고, 이미 3단계의 사역까지 확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따져 보려는 마음을 버리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한 단계 한 단계의 사역을 모르는 그들은 따져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혹자는 “성육신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과거에 선지자와 사도들이 한 사역과 어떻게 다릅니까? 다윗도, 예수님도 주라고 불렸습니다. 그들이 한 사역은 서로 다르지만 호칭은 같았어요. 그런데 왜 그들의 신분이 다른 겁니까? 요한이 본 것은 환상(원문: 異象)이었고, 마찬가지로 성령에게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그는 성령이 하려는 말씀을 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어째서 요한의 신분이 예수님과 다른 거죠?”라고 물을 것이다. 예수가 한 말씀이 하나님을 완전히 대변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을 완벽히 대변하여 사역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한이 본 것은 환상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완벽하게 대변할 수는 없다. 요한, 베드로, 바울이 많은 말을 했고, 예수 또한 그러했다. 그런데 그들의 신분은 왜 다른 것이겠느냐? 주로 그들이 한 사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수가 대표한 것은 하나님의 영이었으니, 하나님의 영이 친히 역사한 것이다. 또한, 그의 사역은 새 시대의 사역으로, 누구도 한 적이 없는 사역이었다. 그는 새로운 길을 열었으며, 여호와를 대변하고 하나님 자신을 대표했다. 그러나 베드로나 바울이나 다윗은 어떤 호칭으로 불렸는지에 상관없이 그저 피조물의 신분을 대변하고 예수 또는 여호와의 보내심을 받았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아무리 많은 사역을 하고, 아무리 대단한 이적을 보였을지라도, 그들은 그저 피조물일 뿐, 하나님의 영을 대표하지는 못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받들어 또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사역한 것에 불과하다. 또한, 그들은 예수나 여호와가 열어 준 시대 안에서 사역한 것이지, 그 밖의 사역을 한 것은 아니다. 결국 그들은 그저 하나의 피조물에 불과했던 것이다. 구약의 수많은 선지자들이 예언을 하고 예언서를 썼으나, 누구도 그들을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가 사역하자 하나님의 영이 그가 하나님임을 증거했다. 그 이유는 무엇이냐? 이제는 너도 알았을 것이다! 과거의 사도며 선지자들은 각종 서신을 쓰고 많은 예언을 했으나, 후세 사람들은 그중 일부만을 성경에 실었고, 일부는 소실되었다. 그들의 말이 전부 성령에게서 비롯된 것이라면 어째서 좋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겠느냐? 또한, 어째서 선택된 것과 선택되지 않은 것이 있겠느냐? 정말 성령의 말씀이라면 사람이 그것을 고를 필요가 있겠느냐? 예수의 말씀과 사역은 어째서 4복음서에 서로 다르게 기록되어 있겠느냐? 기록한 자의 실수더냐? 어떤 이는 “바울 등 신약의 저자들이 쓴 서신이나 행한 사역에 사람의 생각과 관념이 섞여 있다면, 당신(하나님)이 오늘날 하는 말씀에는 사람의 불순물이 전혀 없습니까? 사람의 관념이 조금도 없는 겁니까?”라고 물을 것이다. 하나님이 하는 이 단계의 사역은 바울이나 다른 사도들, 선지자들이 한 사역과 완전히 다르다. 신분만 다른 것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것은 행한 사역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바울은 매를 맞아 주님 앞에 엎드리게 된 후부터 성령에게 이끌려 사역하게 된 사람이다. 그는 보냄을 받은 사람이므로 그가 교회들에 쓴 편지는 전부 예수의 가르침을 잇는 것이었다. 그는 주 예수의 이름으로, 주의 보내심을 받아 사역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친히 올 때는 어떤 이름을 받들지 않고 그저 하나님의 영을 대신해 사역할 뿐이다. 하나님이 왔을 때는 곧바로 사역을 하지, 사람처럼 온전케 되는 과정을 거치거나 누군가의 가르침을 기초로 사역하지 않는다. 이 단계의 사역은 개인의 체험을 간증하면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직접 그가 소유한 것에 따라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봉사자의 시련, 형벌 시대, 죽음의 시련, 하나님을 사랑하는 시대 등등의 이러한 사역은 전부 과거에 한 적이 없는 사역이며, 현시대의 사역이지 사람의 체험이 아니다. 나의 말 중 어떤 것이 사람의 체험이더냐? 전부 직접 영에서 비롯된, 영의 말씀이 아니더냐? 너의 자질이 부족해 명확하게 알지 못했을 뿐이다! 내가 말하는 실제적인 생명의 말은 길을 안내하는 것으로, 여태껏 그 누구도 말한 적이 없는 것들이다. 과거의 누구도 이 길을 체험하지 못했으며, 누구도 이 실제를 알지 못했다. 내가 이 말을 하기 전에는 누구도 이런 말을 하지 못했고, 이런 체험을 이야기하지 못했으며, 이런 구체적인 것들을 말하지 못했다. 더구나 이런 내적 상태를 짚어 이런 것들을 끄집어낸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오늘날 내가 인도하는 이 길은 과거의 누구도 이끌지 못한 길이다. 만약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이라면 더 새로운 길은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바울이나 베드로는 예수가 인도하기 전까지는 자신의 체험이 없었다. 그들은 예수가 그 길을 개척한 다음에야 예수가 한 말씀과 이끌어 준 길을 기초로 체험할 수 있었으며, 그로 인해 수많은 체험을 하고 그런 서신들을 쓸 수 있었다. 그렇기에 사람의 체험은 하나님의 사역과 다르며, 하나님의 사역은 사람의 관념, 사람의 체험으로 얻은 인식과 다르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현재 새 길을 이끌고, 새 사역을 하고 있다. 그래서 요한과 여러 선지자들의 말이나 사역과 다르다고 누차 말하는 것이다. 나는 한 번도 먼저 체험한 후에 너희에게 말해 준 적이 없다. 절대 그렇지 않다. 만약 그랬다면 진작에 너희를 망치지 않았겠느냐? 과거의 많은 이들이 말한 인식도 매우 높지만, 그들은 소위 영적인 사람이라고 하는 자들의 인식을 기초로 두고 말한 것이다. 길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체험하고 보고 인식한 것에서 나왔다는 말이다. 그중에는 사람의 관념도 있고, 사람이 종합해 낸 경험도 있다. 그러나 현재 내 사역의 성질은 그들과 완전히 다르다. 나는 다른 이의 인도를 받아 본 적이 없으며, 다른 이를 통해 온전케 된 적도 없다. 또한, 내가 말하고 교제하는 것은 누구와도 다르며, 여태까지 그 누구도 말한 적이 없는 것들이다. 오늘날, 너희가 하는 사역은 모두 내 말의 기초에서 이뤄진다. 이러한 말씀이나 사역이 없다면 누가 이러한 것(봉사자의 시련, 형벌 시대…)들을 체험할 수 있었겠느냐? 누가 인식을 말할 수 있겠느냐? 너는 아직도 이러한 것들을 간파하지 못하겠단 말이냐? 어느 단계의 사역이든, 내 입에서 말이 나오면 너희는 나의 말에 따라 서로 교제하기 시작한다. 이는 모두 내가 한 말에 따라 사역한 것이지, 너희 중 어떤 자가 생각해 낸 길이 아니다. 너는 작금에 이르러서도 이렇듯 간단명료한 문제를 간파하지 못했단 말이냐? 이 길은 누군가가 생각해 낸 것도, 어떤 영적인 사람을 기반으로 생긴 것도 아니다. 이 길은 완전히 새로운 길이기 때문에, 심지어 예수의 말씀 중 시대착오적인 것까지 폐하였다. 내가 하는 말은 모두 천지개벽과도 같은 사역이며, 완전히 새로운 가업을 세우는 것이다. 나의 사역과 말은 모두 새로운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의 새 사역이 아니란 말이냐? 당시 예수의 사역도 이러했다. 그가 한 것은 성전 안에 있는 사람들이 한 것과도, 바리새인들이 한 것과도,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것과도 달랐기에,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정말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일까?’라며 감히 확정하지 못했다. 예수는 여호와의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 그가 사람을 가르치며 한 말은 전부 새로운 것이었으며, 구약의 옛 선지자들이 한 말과 달랐다. 이런 이유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확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은 까다롭다는 것이다. 이 단계의 새 사역을 받아들이기 전에, 너희 중 많은 이가 과거 영적인 사람들의 기초에서 실행하고 진입하는 길을 갔다. 하지만 오늘날, 내가 하는 사역은 완전히 다르기에 너희는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네가 과거에 어떤 길을 갔는지, 누구의 ‘밥’을 먹었는지, 누구를 너의 ‘아버지’로 여겼는지 상관하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와서 새 사역으로 사람을 이끄는 이상, 나를 따르는 자는 모두 내가 한 말대로 해야 한다. 네가 어떤 ‘명문가의 자제’든 너는 나를 따라와야 한다. 과거의 실행 방식을 따르는 것은 더 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네 ‘양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내려올 때가 됐다. 너는 마땅히 네 하나님 앞에 나아가 네가 얻어야 할 몫을 구해야 할 것이다! 네 모든 것은 전부 내 손안에 있으니 너는 네 ‘양아버지’를 너무 맹신하지 말아야 한다. 그는 너를 완전히 주관하지 못한다. 오늘 하는 사역은 전부 새로운 가업을 세우는 것이다. 오늘 말하는 것은 과거의 기초에서 이뤄지지 않으며, 분명히 새로운 시작이다. 네가 이것을 사람의 힘으로 세운 것이라고 한다면 너는 구제 불능의 눈먼 자이다!

이사야, 에스겔, 모세, 다윗, 아브라함, 다니엘 등은 이스라엘 선민의 지도자나 선지자였다. 그런데 왜 그들은 하나님이라고 불리지 않았겠느냐? 성령은 왜 그들을 증거하지 않았겠느냐? 예수가 사역하고 말씀하자 성령은 왜 그를 증거했겠느냐? 왜 다른 사람은 증거하지 않았겠느냐? 똑같이 사람이고 육신이며, 모두 주로 불렸다. 그들이 어떤 호칭으로 불렸든 간에 그의 사역이 그의 어떠함과 본질을 대변하며, 그의 어떠함과 본질은 그의 신분을 대변한다. 호칭은 그의 본질과 관련이 없다. 그가 선포하고 살아 내는 것으로 그의 본질을 대변한다. ‘주’로 불리는 것은 구약에서는 매우 일상적인 일이므로 어떻게 불리든 상관없지만, 그의 본질과 원래의 신분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다.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 미혹하는 자들 중에도 ‘하나님’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지 않느냐? 어째서 그들은 하나님이 아니겠느냐? 그들은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본래 사람, 그것도 다른 이를 미혹하는 사람이지, 하나님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신분이 없다. 다윗도 열두 지파에서 주로 불리지 않았더냐? 예수 또한 주로 불렸다. 그런데 왜 예수만을 성육신 하나님이라고 일컫는 것이겠느냐? 예레미야도 ‘인자’로 불리지 않았더냐? 예수도 ‘인자’로 불리지 않았더냐? 그런데 어째서 예수만이 하나님을 대표해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있었겠느냐? 그 본질이 다르기 때문이 아니더냐? 또한, 그들이 한 사역이 다르기 때문이 아니더냐? 그런 것이 호칭에 달려 있단 말이냐? 예수도 인자로 불렸지만, 그는 하나님의 첫 번째 성육신이었다. 그는 정사를 메고 구속 사역을 완성하기 위해 왔다. 이 점이 똑같이 인자로 불렸음에도 예수의 신분과 본질이 다르다는 것을 말해 준다. 오늘날, 너희 중 누가 감히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이 하는 말이 전부 성령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누가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겠느냐? 그렇게 말한다면 어째서 에스라의 예언서와 옛 선지자들이 쓴 서적들을 없애 버렸겠느냐? 모두 성령에게서 비롯된 것이라면, 너희는 어째서 감히 마음대로 선택하는 것이냐? 너에게 성령의 역사를 선택할 자격이 있느냐? 이 밖에도 그들은 이스라엘의 수많은 이야기를 없애 버렸다. 네가 만약 과거에 기록된 그 책들이 전부 성령에게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왜 일부 책들을 없애 버렸겠느냐? 모두 성령에게서 비롯된 것이라면 전부 남겨 교회들에게 보내어 형제자매들이 보게 해야지, 사람의 생각을 더해 마음대로 취사선택해선 안 된다. 그래야 옳다. 바울, 요한 등 그들의 체험에 개인의 견해가 섞여 있다고 해서 그들의 체험과 인식이 사탄에게서 나왔다는 말은 아니다. 그저 그들이 개인적으로 체험하고 본 것에서 나왔다는 의미다. 그들은 당시 현실적으로 체험한 것을 기초로 인식했다. 그것들이 전부 성령에게서 비롯된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느냐? 4복음서가 전부 성령에게서 나온 것이라면 어째서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네 사람이 당시 예수의 사역에 대해 한 말이 다 다른 것이냐? 못 믿겠다면 성경에 기록된 베드로의 이야기를 보아라. 기록마다 베드로가 주를 세 번 부인한 사실이 다 다르고, 각각 ‘특색’이 있다. 식견이 넓지 않은 많은 사람들은 “성육신 하나님도 사람인데 그분이 하는 말씀이 전부 성령에게서 비롯된 것일 수 있겠습니까? 바울이나 요한의 말에 사람의 생각이 섞여 있다면, 그분이 하는 말씀에는 사람의 생각이 조금도 섞여 있지 않단 말입니까?”라고 말한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전부 눈멀고 식견이 없는 자들이다! 4복음서에서 그들이 예수가 마친 일, 한 말씀에 대해 기록한 것을 잘 보아라. 그야말로 사람마다 생각이 다 다르며, 각자 자신의 견해가 있다. 만약 저자가 쓴 것이 전부 성령에게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면, 전부 같고 일관되어야지, 어째서 서로 다른 부분이 있단 말이냐? 이러한 것들을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면 너무 어리석은 것이 아니겠느냐? 너에게 하나님을 증거하라고 한다면, 너는 어떻게 증거할 것인가! 너의 그 인식 방식으로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겠느냐? 만약 다른 사람이 너에게 “요한이나 누가의 기록에 사람의 생각이 섞여 있다면, 당신들의 하나님이 하는 말씀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너는 제대로 대답할 수 있겠느냐? 누가, 마태는 예수가 하는 말씀을 듣고, 예수가 한 사역을 본 후에 개인의 인식을 말했다. 회고록처럼 예수가 사역한 사실의 일부를 기록한 것이다. 너는 그들의 인식이 전부 성령의 계시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성경 외에도 그들보다 더 높은 영적인 사람들의 인식이 많지 않더냐? 어째서 그것들은 후세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냐? 그들도 성령께 쓰임 받은 사람들이 아니더냐? 너는 오늘날의 사역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예수가 행한 사역의 기초에 나 자신의 견해를 더하는 것도 아니고, 예수의 사역을 배경으로 삼아 나의 인식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예수가 당시에 행한 사역은 어떤 것이냐? 내가 오늘날 하는 것은 또 어떤 사역이냐? 내가 행하고 말하는 것은 모두 전례가 없던 것들이다. 오늘날의 길은 옛사람들이 간 적이 없는 길이며, 역대의 사람들이 한 번도 간 적이 없는 길이다. 그것을 오늘날에 열었으니 영의 역사가 아니겠느냐? 과거에 리더가 되었던 사람들의 사역이 성령의 역사라고 할지라도 전부 다른 이가 닦아 놓은 기초에서 행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자신의 사역은 다르다. 예수의 그 단계 사역도 마찬가지로 혼자 새로운 길을 연 것이다. 그는 세상에 와서 천국의 복음을 전했으며, 사람은 마땅히 회개하고 죄를 자백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수의 사역이 끝난 뒤, 베드로와 바울 등이 그의 사역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승천한 다음, 그들은 그 영의 보내심을 받아 십자가의 도(道)를 전하기 시작했다. 바울이 말했던 내용들이 매우 높다고 해도 그것은 전부 예수가 한 말씀의 기초에서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인내와 사랑, 고난받고, 머리에 수건 쓰는 것, 세례받는 것, 또는 지켜야 할 다른 규례를 전하는 것 등등은 전부 예수가 한 말씀을 기초로 했을 뿐, 새로운 길을 열지는 못했다. 그들은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당시 예수는 말씀하거나 사역할 때 규례를 지키지 않았으며, 성경의 구약 율법의 사역대로 하지도 않았다. 반대로 은혜시대에 해야 할 사역에 따라 했을 뿐이다. 그는 그가 가져온 사역에 따라 행했고, 자신의 계획에 따라 행했으며, 그의 직분에 따라 사역했을 뿐, 구약의 율법에 따라 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일을 구약의 율법에 따라 하지 않았다. 그는 선지자들의 예언을 이루기 위해 사역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전적으로 옛 선지자들의 예언을 이루기 위해 각 단계의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규례를 지키거나 일부러 옛 선지자들의 예언을 성취하고자 온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하는 일이 옛 선지자들의 예언을 교란하지는 않았으며, 그의 이전 사역을 방해하지도 않았다. 그가 하는 사역의 특이점은 어떤 규례도 지키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사역을 한다는 것이다. 그는 선지자도, 예언가도 아니라, ‘실무가’이다. 그는 매우 실제적으로 그가 해야 할 사역을 함으로써 새로운 기원을 열고 새 사역을 시작한 것이다. 물론, 예수의 사역으로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들이 많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지금 하는 사역으로도 구약의 옛 선지자들의 예언이 이루어졌다. 단지 오늘날 너와 그 ‘오래된 책력’을 펼쳐 보면서 따지지 않을 뿐이다. 내가 해야 할 사역이 많고, 너희에게 해야 할 말도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역과 말은 그런 성경 구절들을 해석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그런 사역은 너희에게 그다지 큰 의미도, 가치도 없고, 너희에게 도움이 되거나 너희를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새 사역을 할 것이며, 성경의 어떤 구절을 이루기 위해 일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이 땅에 와서 사역을 하는 이유가 단순히 성경에 나오는 옛 선지자들의 말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성육신 하나님이 크겠느냐, 옛 선지자들이 크겠느냐? 그렇다면 옛 선지자들이 하나님을 지배하는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이 그들을 지배하는 것이냐? 이 말을 너는 어떻게 해석하겠느냐?

그 당시 예수도 본격적으로 직분을 이행하기 전에는 그를 따랐던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성전에서 예배하고, 찬송하고, 찬미하고, 구약 성경을 보았다. 그러나 세례를 받자 영이 본격적으로 ‘그의 위에 임하면서’ 사역을 시작하여 그의 신분과 그가 이행해야 할 직분을 나타냈다. 그전까지는 마리아 외에 누구도 그의 신분을 알지 못했다. 요한조차 몰랐다. 예수는 29세에 세례를 받았는데, 세례가 끝나자 하늘이 열리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라는 음성이 들렸다. 그가 세례를 받은 후부터 성령이 이렇듯 그를 증거하기 시작한 것이다. 세례를 받기 전인 29세 전까지는 그 역시 일반인과 똑같은 생활을 했다. 식사해야 할 때 식사하고, 잠을 자고, 옷을 입는 등 일반인과 똑같은 행동을 했으며, 다른 사람과 다른 부분은 하나도 없었다. 물론, 그것은 사람의 육안으로 볼 때의 관점이다. 그에게도 때로는 연약한 모습이 있었고,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것들도 있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의 나이는 그의 총명, 지혜와 함께 자란 것이다. 이 말은 그가 평범하고 정상적인 인성을 갖고 있었으며, 일반인과 아무런 특이한 점이 없이 일반인의 성장 과정을 거쳤음을 말해 준다. 하지만 그에게는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가 있었다. 세례를 받은 후 그는 시험을 받기 시작했으며, 그다음에는 직분을 이행하면서 사역을 시작했다. 또한, 그에게는 능력과 지혜와 권병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세례를 받기 전에는 성령이 그에게 역사하지 않았다거나 그의 몸에 성령이 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세례를 받기 전에도 성령은 그의 안에 거하고 있었다. 다만 본격적으로 사역하지 않았을 뿐이다. 하나님의 사역에는 시간적인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정상인에게는 정상인의 성장 과정이 있지 않은가. 성령은 항상 그의 안에 거하고 있었으며, 그가 강생할 때는 다른 사람과 달리 새벽 별이 나타났다. 또한, 그가 강생하기 전에는 사자가 요셉의 꿈속에 나타나 마리아가 남자아이를 낳을 것이며, 이는 성령으로 잉태된 아이라고 말해 주었다. 예수가 세례를 받자 성령도 역사하기 시작했을 뿐이지, 성령이 그때 그에게 임한 것이 아니다. 성령이 비둘기처럼 그에게 임했다는 것은 그가 직분을 이행하기 시작했음을 지칭한 말이다. 그는 예전부터 하나님의 영을 지니고 있었다. 그저 때가 되지 않았기에 사역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영은 함부로 역사하지 않고 세례의 방식으로 그를 증거했다. 예수가 물속에서 나오자 영은 본격적으로 그에게서 역사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 직분 이행과 구속 사역을 시작했음을 예표하는 것이었다. 즉, 은혜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모든 사역에는 각기 때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 예수가 세례를 받은 후에도 특별한 변화는 없었다. 그의 육신은 여전히 원래의 육신 그대로였다. 다만 사역을 시작함으로써 그의 신분을 나타냈을 뿐이다. 또한, 그는 권병과 능력으로 가득해졌다. 이것이 바로 예전과 다른 점이었다. 그의 신분, 즉 지위에 확실한 변화가 생긴 것이다. 이는 사람이 한 사역이 아니라 성령의 증거이다. 처음에는 몰랐던 사람들도 성령이 이렇게 증거하자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만약 성령이 증거하기 전이었다면 예수가 엄청난 사역을 했다고 해도, 하나님 자신의 증거가 없기에 사람들은 그의 신분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의 육안은 꿰뚫어 볼 수 없기 때문에 성령이 증거하는 단계를 반드시 거쳐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육신 하나님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다. 성령이 증거한 후에도 그가 예전과 다름없이 사역했다면, 어떤 성과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에는 주로 성령이 역사하는 부분이 드러나야 하기 때문이다. 성령이 증거한 후에는 반드시 성령이 드러내어 사람들에게 그가 하나님이고, 그에게 하나님의 영이 있으며, 하나님의 증거는 틀리지 않았음을 분명히 보여 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증거가 정확하다는 것을 실증한다. 성령이 증거하기 전에 한 사역과 이후에 한 사역이 같다면 성육신한 그의 직분은 물론, 성령이 역사하는 부분도 두드러지게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눈에 띄는 차이가 없기에 사람은 성령의 역사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증거 이후, 성령은 성령의 증거를 지켜야 하므로 반드시 그에게서 지혜와 권병을 나타내야 했고, 이전과 달라야 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는 세례의 효과가 아니다. 세례는 그저 의식에 불과하며, 세례받는 방식으로 그가 직분을 이행할 시간이 되었음을 보여 줄 뿐이다. 이러한 사역은 하나님의 큰 능력과 성령의 증거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성령은 성령의 증거를 끝까지 책임진다. 직분을 이행하기 전까지 예수도 곳곳에서 말씀을 듣고, 설교하고, 복음을 전했지만, 큰 사역은 하지 않았다. 이는 직분을 이행할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며, 하나님이 자신을 낮추고 감추어 육신에 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때가 되지 않았기에 그는 전혀 사역을 하지 않았다. 세례를 받기 전에 그가 사역을 하지 않은 데는 두 가지의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성령이 본격적으로 ‘그의 위에 임해 역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그에게 사역할 능력과 권병을 주지 않았기 때문임). 설령 예수가 자신의 신분을 알고 있었다 할지라도 그는 앞으로의 사역을 할 수가 없었으므로 반드시 세례받는 날까지 기다려야 했다. 이는 하나님이 정한 시간이므로 그 누구도, 심지어 예수 자신조차도 어길 수 없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사역을 스스로 방해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이는 하나님이 자신을 낮춘 것이고, 하나님의 사역에 법칙이 있다는 것이다. 그의 영이 역사하지 않는 한, 어떤 사람도 그의 사역에 끼어들 수 없다. 두 번째 이유는, 세례를 받기 전까지 그는 일반인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의 성육신이 초자연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은 하나님 영의 안배에 어긋나게 일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순서와 절차가 있으며, 매우 정상적으로 사역한다. 그의 사역에 권병과 능력이 생긴 것도 세례를 받은 후부터다. 다시 말해, 성육신했다 해도 초자연적인 행동이나 일반인의 성장 법칙에서 벗어나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만약 예수가 진작부터 스스로의 신분을 알고, 세례받기 전에 곳곳에서 큰 사역을 하면서 모든 일반인과 달리 비범함을 드러냈다면, 요한의 사역이 이루어지지 못했을뿐더러 하나님의 다음 단계 사역도 진행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이 하는 일에 착오가 있다고 증명되었을 것이고, 사람은 하나님의 영과 하나님이 입은 육신의 근원이 다르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성경에 기록된 예수의 사역은 전부 세례를 받은 이후, 즉 3년 동안 이루어진 것이다. 성경에는 세례를 받기 전에 그가 어떤 사역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그가 세례를 받기 전까지 그러한 사역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그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고, 일반인을 대변할 뿐이었다. 그가 직분을 이행하지 않았을 때는 정상인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어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예수는 29세가 되어서야 자신이 한 단계의 사역을 완성하기 위해 왔음을 알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그 자신도 알지 못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하는 사역이 초자연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가 열두 살에 예배당에 예배하러 갔을 때 마리아가 그를 찾았다. 그때 그는 어린아이처럼 “어머니,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고 말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된 자인데 조금도 특이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하지만 그의 특이함이 초자연적인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는 그저 다른 어린아이들보다 더 하나님을 사랑했을 뿐이다. 겉모습은 사람이었지만, 그의 본질은 특이하고 남달랐다. 하지만 성령이 그에게 역사한다는 것과 그가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을 진정으로 느낀 시점은 세례를 받은 이후였다. 33세가 되던 해에 그는 비로소 성령이 그를 통해 십자가에 못 박히는 사역을 할 것임을 알았다. 32세 때는 실정을 조금 알게 된 것이다. 이는 마태복음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라고 기록된 것과 같다. 그는 자신이 하려는 사역이 무엇인지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특정한 때가 되자 알게 되었다. 태어날 때부터 모든 걸 알고 있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성령도 그에게 점차적으로 역사했으며, 과정이 있었다. 그가 처음부터 자신이 하나님이자 그리스도이며, 성육신한 인자라는 것을 알았고, 십자가에 못 박히는 사역을 완성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어째서 세례받기 전에는 사역하지 않았겠느냐? 왜 예수는 제자들에게 그가 이행할 직분을 말해 준 후에야 근심하며 그것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겠느냐? 어째서 요한이 그를 위한 길을 예비하고, 세례를 준 후에야 비로소 오랫동안 몰랐던 것들을 깨달을 수 있었겠느냐? 이 모든 것이 바로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이 하는 사역임을 증명한다. 그렇기에 그가 깨닫고 도달하기까지 전부 과정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기에 영이 직접 역사하는 것과는 달랐다.

하나님의 각 단계 사역은 하나의 흐름 안에 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6천년 경륜이 창세부터 지금까지 한 단계 한 단계 맞물려 오늘날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길을 닦는 사람이 없었다면 뒤에 온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뒤에 올 사람이 있었기에 길을 닦는 사람도 있었고, 사역은 이렇게 한 단계 한 단계 전해 내려올 수 있었다. 한 단계 한 단계 이어져 있기에, 길을 여는 자가 없다면 사역은 진행될 수 없고, 하나님도 사역을 계속 앞으로 진행시킬 수 없을 것이다. 어느 단계든 어긋나지 않는다. 전부 순서대로 이어져 하나의 흐름을 이룬 것으로, 하나의 영이 한 일이다. 하지만 길을 열었든, 이어 갔든, 그것이 신분을 결정하지는 못한다. 그렇지 않으냐? 요한은 길을 열었고 예수는 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의 신분이 요한보다 낮다고 할 수 있겠느냐? 여호와는 예수보다 먼저 역사했다. 그렇다고 여호와가 예수보다 크다고 할 수 있겠느냐? 길을 닦거나 잇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역의 본질과 대변하는 신분이다. 그렇지 않으냐?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하려는 이상, 그는 반드시 길을 닦는 사람을 일으켜 사역하게 해야 했다. 요한은 처음에 전도를 시작할 때,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라고 외쳤다. 그는 처음부터 이 말을 전했다. 왜 그가 그 말을 할 수 있었겠느냐? 말을 한 전후를 따지자면 요한이 먼저 천국의 복음을 말했고, 그다음에 예수가 말했다. 사람의 관념대로라면 요한이 새로운 길을 열었으니, 그가 예수보다 당연히 커야 한다. 하지만 요한은 자신을 그리스도라고 하지 않았고, 하나님도 그를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증거하지 않았다. 다만 그를 통해 길을 열고 주의 길을 닦았을 뿐이다. 그는 예수를 위해 길을 예비했지, 예수를 대신해 사역할 수는 없었다. 사람의 사역 또한 전부 성령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다.

구약시대는 여호와가 길을 이끈 시대였다. 여호와의 사역은 구약의 모든 시대를 대변하며, 이스라엘에서 행한 모든 사역을 대표한다. 모세는 그저 땅에서 그 사역을 지켰을 뿐이다. 그의 사역은 인성 협력에 속한다. 당시 여호와는 음성을 발해 모세를 불렀으며, 이스라엘인들 가운데서 모세를 일으켰다. 그리하여 그가 사람들을 광야로 인도해 가나안에 들어가게 했다. 그것은 여호와가 친히 지시한 일이지, 모세가 스스로 한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모세는 하나님으로 불릴 수 없다. 율법도 여호와가 정하고 친히 반포한 것으로, 단지 모세에게 전하게 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예수도 계명을 정했다. 게다가 구약의 율법을 폐하고 새 시대의 계명을 정했다. 그럼 어째서 예수는 하나님 자신이겠느냐? 이는 같은 맥락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 모세가 한 사역은 시대를 대변하지 않으며, 새로운 길을 연 것도 아니었다. 여호와가 앞에서 길을 이끌고 그에게 해야 할 일을 지시해 주었다. 그는 그저 쓰임 받는 사람에 불과했다. 예수가 왔을 때, 요한은 이미 길을 닦는 사역을 하고 천국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시작했었다(성령이 이렇게 하기 시작했음). 그래서 예수가 와서 바로 그의 사역을 했다. 하지만 그의 사역은 모세의 사역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이사야도 그렇게 많은 예언을 했는데, 어째서 그는 하나님 자신이 아니겠느냐? 예수는 그렇게 많은 예언을 하지 않았는데도 왜 하나님 자신이겠느냐? 그 당시 예수가 했던 사역을 감히 전부 성령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고, 전부 사람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없었으며, 그것이 전적으로 하나님 자신이 하는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없었다. 이러한 일들은 사람이 분석할 수 없는 것이다. 이사야의 사역과 예언들이 전부 성령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말할 수는 있어도 그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은 여호와의 묵시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는 그리 많은 사역을 하지 않았고, 그렇게 많은 말씀도, 예언도 하지 않았으며, 사람이 보기에 그렇게 높은 말씀을 전하지도 않은 것 같지만, 그는 하나님 자신이었다. 이는 사람이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요한이나 이사야, 다윗을 믿은 사람이 없고, 그 누구도 그들을 하나님, 또는 다윗 신, 요한 신이라고 부른 사람이 없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오직 예수만이 그리스도로 불렸다. 이는 하나님의 증거와 그가 담당한 사역, 그리고 그가 이행한 직분에 따라 구분되는 것이다. 아브라함, 다윗, 여호수아, 다니엘, 이사야, 나아가 요한과 예수에 이르기까지, 성경에 나오는 큰 인물들이 행한 사역에서 너는 누가 하나님 자신이고, 누가 선지자, 사도에 속하는지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누가 하나님께 쓰임 받은 자이고, 누가 하나님 자신인지는 그들이 행한 사역의 본질과 유형에 따라 구분되고 확정된다. 이러한 것들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면 이는 네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가 그렇게 많은 말씀과 많은 사역을 하고 더욱이 수많은 이적을 보여 줬기 때문에 하나님이라면, 요한도 그렇게 많은 일과 많은 말을 했고, 모세도 마찬가지인데 왜 그들은 하나님이라고 불리지 못하느냐? 아담은 하나님이 친히 만들었는데, 왜 하나님이라고 불리지 않고 그저 피조물이라고 불리겠느냐? 다른 사람이 너에게 “오늘날 하나님께서 그렇게 많은 사역과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이라고 한다면, 모세도 그렇게 많은 말을 했으니 그 역시 하나님 자신이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너는 그에게 “하나님은 왜 당시에 예수님을 하나님 자신이라고 증거하셨으면서 요한은 증거하지 않았겠습니까? 요한은 예수님보다 먼저 사역하지 않았습니까? 요한이 한 사역이 큽니까, 아니면 예수님이 하신 사역이 큽니까? 사람이 보기에 요한이 한 사역이 크고 예수님이 하신 사역은 작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성령은 예수님을 증거하고 요한을 증거하지 않으셨을까요?”라고 반문하여라. 오늘날에도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할 때, 그 자신이 직접 말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가 구름 속에서 모세에게 말씀하고 직접 이끈 것이다. 이는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에서 한 사역이다. 모세에게 그런 영과 어떠함이 없었으므로 그는 그 사역을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가 한 일과 예수가 한 일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이는 행한 사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 선지자, 사도, 그리고 하나님 자신을 구분하는 것은 사역의 성질이다. 이렇게 하면 너는 의문이 없어질 것이다. 성경의 기록에는 어린양만이 일곱 인을 뗄 수 있다고 나와 있다. 역대로 수많은 큰 인물들이 성경을 해석했다. 그렇다고 해서 너는 그들을 전부 어린양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그들의 해석이 완전히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 그들은 그저 성경 해석가에 불과했다. 그들이 어린양의 신분이 없는데 어떻게 일곱 인을 뗄 수 있겠느냐? ‘어린양만이 일곱 인을 뗄 수 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오직 일곱 인을 떼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그 사역은 별로 필요가 없으므로 사역을 하면서 곁들여 했을 뿐이다. 그는 자신이 하는 사역을 똑똑히 알고 있는데, 많은 시간을 들여 굳이 성경을 해석할 필요가 있겠느냐? 6천년 사역에 굳이 ‘어린양이 성경을 해석하는 시대’를 더해야겠느냐? 그는 새 사역을 하기 위해 왔다. 다만 과거의 사역에 대해 조금 풀어 주면서 사람이 6천년 사역의 실정을 알게 하면 충분하다. 구태여 많은 성경 구절을 해석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현재 하는 사역이다. 너는 하나님이 전적으로 일곱 인을 떼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구원 사역을 하기 위해서 온 것임을 알아야 한다.

너는 예수가 말세에 강림한다는 것만 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강림하겠느냐? 너희처럼 이제 막 속량된 죄인들은 변화의 과정과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는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수 있겠느냐? 지금의 너같이 고루한 사람을 예수가 구원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네가 죄에 속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구원 덕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네게 죄와 더러움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네가 변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어떻게 성결해질 수 있겠느냐? 네 안에는 여전히 더러움으로 가득하며, 너는 이기적이고 비열하다. 그러면서도 예수의 강림에 함께하기를 원하느냐? 그런 꿈 같은 일이 있겠느냐? 하나님에 대한 너의 믿음에는 한 단계의 과정이 빠졌다. 너는 그저 속량되었을 뿐, 변화의 과정은 거치지 않았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려면 하나님이 친히 사역하여 너를 변화시키고 정결케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속량만 될 뿐, 성결해질 수는 없다. 그리하여 너는 하나님과 함께 복을 누릴 자격이 없다. 너는 하나님이 사람을 경영하는 사역에서 한 걸음 뒤처져 있기 때문이다. 즉, 변화와 온전케 되는 중요한 한 단계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막 속량된 너 같은 죄인은 하나님의 유업을 곧바로 이어받을 수 없다.

이 단계의 새 사역이 시작되지 않았다면, 그 대단한 전도자, 설교자, 성경 해석가, 그리고 소위 영적인 위인들이 어떤 지경에 이르게 될지 모른다! 이 단계의 새 사역이 시작되지 않았다면 너희가 말하는 것은 전부 낡아 빠진 것들이 아니겠느냐? 보좌에 오르거나 왕의 분량을 예비하는 것, 자신을 버리거나 자기 몸을 쳐 복종시키는 것, 인내하거나 모든 일에서 공과를 배우는 것, 겸손하거나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전부 케케묵은 말들의 반복이 아니더냐? 이는 겉만 바꾸는 것일 뿐 속은 그대로이다! 머리에 수건을 쓰고 떡을 떼거나 안수기도 하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 외에 무슨 새로운 사역이 있겠느냐? 무슨 발전성이 있겠느냐? 이대로 이끌다 보면 너는 죽어라 규례를 지키거나, 여태까지 해 온 대로만 계속 움직일 것이다. 너희는 너희의 사역이 매우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어찌하여 그것이 전부 고대의 ‘노인’이 물려준 유전이자 유훈임을 모른단 말이냐? 너희가 하는 말, 하는 행동은 전부 노인들의 유언을 이어받은 것이 아니더냐? 노인들이 임종 때 남긴 당부가 아니더냐? 너희가 하는 일이 역대의 사도, 선지자, 심지어 만유를 뛰어넘는 일이라 생각하느냐? 나는 이 사역을 시작하자마자 너희가 위트니스 리를 숭상하며 ‘보좌에 앉아 왕 노릇 하기를 추구하는’ 것을 제지시키고, 너희들의 기를 죽여 놓았으며, 너희가 이 단계의 사역에 끼어들지 못하게 했다. 이 단계의 사역이 없다면 너희는 점점 더 깊이 빠져들어 구제 불능이 될 것이다. 너희 가운데는 낡아 빠진 것들이 너무나 많다! 다행히 현재의 사역이 너희를 끌어왔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너희가 어디로 갔을지 모른다! 하나님이 항상 새로운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어째서 너는 새로운 것을 찾지 않는단 말이냐? 어째서 항상 낡아 빠진 것들을 지키고 있는 것이냐? 그러므로 성령의 현재 역사를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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