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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절 종교 관념 폭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81)

‘하나님’과 ‘사람’은 동일 선상에서 논할 수 없다. 하나님의 본질, 하나님의 사역은 사람이 가장 측량하기 어렵고,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직접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하지도 말씀하지도 않는다면 사람은 어떻게 해도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을 위해 평생을 바친 사람들일지라도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다. 하나님이 사역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무리 잘해도 헛수고이다. 하나님의 생각은 언제나 사람의 생각보다 높으며, 하나님의 지혜는 아무도 측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역을 ‘간파’했다는 사람들은 다 무능한 자, 교만하고 무지한 자라고 말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을 규정해서는 안 되며, 더군다나 규정할 수도 없다. 사람은 하나님의 눈에 실로 개미보다 작은 존재거늘 어찌 하나님의 사역을 측량할 수 있겠느냐? 입만 열면 “하나님은 이렇게 저렇게 사역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이러저러하다”라고 하는 사람은 다 허황된 말을 늘어놓는 자 아니겠느냐? 육에 속한 사람은 전부 사탄에 의해 패괴된 사람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본성을 갖고 있으며, 하나님과 대등해질 수 없고, 더욱이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계책을 낼 수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사람을 어떻게 인도하느냐 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 할 일이다. 사람은 마땅히 순종해야지, 이런저런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사람은 그저 먼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는 이상, 자신의 관념을 하나님이 사역하는 데 참고해 달라며 늘어놓아서는 안 된다. 자신의 패괴 성품으로 하나님의 사역에 의도적으로 극력 대적하는 것은 더 안 될 일이다. 이런 사람은 적그리스도 아니겠느냐? 이런 사람이 어찌 하나님을 믿는 것을 논할 수 있겠느냐?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이상, 하나님을 만족게 하고 하나님을 보고 싶은 이상, 진리의 도를 찾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는 길을 찾아야지, 목을 뻣뻣이 하고 하나님과 대립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해서 무슨 좋은 결과가 있겠느냐?

오늘날 하나님은 새로운 사역을 했다. 너는 이 말을 못 받아들일 수도, 신기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일단 너의 천연적인 것을 드러내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만이 진리를 얻을 수 있고, 진정으로 경건한 자만이 하나님의 깨우침과 인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진리를 구하는 데에 있어 언쟁을 벌인다고 해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마음을 차분히 하고 구해야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내가 “오늘날 하나님은 또 새로운 사역을 했다”라고 한 이 말은 하나님이 다시 육신으로 돌아온 이 일을 가리킨 것이다. 너는 이 말을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고, 이 말을 아주 싫어할 수도 있고, 이 말에 많은 관심을 가질 수도 있다. 어쨌든 나는 진심으로 하나님의 나타남을 갈망하는 사람 모두가 이 사실을 마주하고, 또한 신중하게 알아보기를 바란다. 가장 좋은 것은 경솔하게 결론을 내리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현명한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서문>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82)

하나님을 믿는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알아 가야겠느냐? 하나님의 현재 말씀과 사역을 바탕으로 알아 가야 한다. 치우쳐서도 그릇되어서도 안 된다. 먼저 하나님의 사역을 알아야 하는데, 이는 하나님을 알아 가는 기초가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각종 궤변은 전부 종교 관념에 속하며, 편파적이고 그릇된 이해이다. 종교 인사들은 예전에 받아들인 하나님의 말씀을 오늘날 끄집어내어 지금의 하나님 말씀과 맞춰 보는 것에 가장 능하다. 과거에 성령이 깨우쳐 준 것들을 고수하며 오늘날의 하나님을 섬기니, 방해하는 섬김과 낡은 실행이 되었고 완전히 종교 의식이 되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반드시 겸손하고 참을성 있는 겉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등의 인식을 오늘날에 적용해 실행한다면, 이런 인식은 종교 관념이며, 이런 실행은 외식하는 행위가 될 것이다. 종교 관념이란 과거의 낡아 빠진 것(하나님의 과거 말씀에 대한 이해와 성령이 직접 깨우쳐 준 빛 포함)을 말하는데, 그것을 오늘날에 적용해 실행한다면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게 되며, 사람에게도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는다. 종교 관념에 속하는 것들이 사람 내면에서 제거되지 않는다면 사람의 섬김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것이다. 종교 관념이 있는 사람은 성령 역사의 발걸음을 따라가지 못하는데, 한 걸음 뒤처지게 되면 그 후로는 차이가 점점 벌어지게 된다. 그런 종교 관념이 사람을 몹시 독선적이고 교만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나님도 자신의 과거 말씀과 사역에 미련을 두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도태시키는데, 너는 고정 관념을 내려놓지 못하겠단 말이냐? 하나님의 과거 말씀을 고수한다고 해서 네가 하나님의 사역을 안다고 할 수 있겠느냐? 과거의 빛을 고수하며 현재 성령의 빛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너를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너는 아직도 종교 관념을 내려놓지 못하겠느냐? 그렇다면 너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종교 관념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하나님의 현재 말씀과 사역을 머리로 가늠할 필요 없이 바로 순종하게 된다. 하나님의 현재 사역이 예전과 확연히 다르다 할지라도 과거의 관점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현재 사역에 바로 순종할 수 있다. 하나님이 예전에 어떻게 했든 현재 하나님의 사역을 중심에 놓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너는 고정 관념을 내려놓은 사람이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르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께 진실로 순종하는 사람이다. 너는 하나님의 사역을 분석하거나 연구하지 말고 하나님이 지난날의 사역을 ‘잊어버린’ 것처럼 너 역시 ‘잊어버려야’ 한다. 현재는 현재이고 과거는 과거이다. 현재 하나님은 과거에 행한 사역을 필요로 하지 않으니 너도 그것을 마음에 담아 두지 마라. 그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고 종교 관념을 완전히 내려놓은 사람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현재 사역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83)

하나님의 사역에는 항상 새로운 진전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사역이 생기면 그에 따라 시대에 뒤처진 낡은 사역이 있게 마련이다. 이 낡은 사역과 새로운 사역은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하며 한 단계씩 이어진다. 새로운 사역이 있으므로 낡은 것은 당연히 도태시켜야 한다. 일례로, 오랜 세월 사람의 실행과 관례적인 견해에 다년간의 경험과 교훈이 더해져 사람의 마음에는 형형색색의 관념이 생겼다. 하나님이 그의 본모습과 고유의 성품을 사람에게 전부 공개하지 않은 데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 전통 학설까지 더해져 사람의 관념은 더 쉽게 형성되었다. 즉,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과정에서 각종 고정 관념의 영향으로 하나님에 대한 여러 관념적 인식이 끊임없이 형성되고 발전되었으며, 이에 하나님을 섬기는 수많은 종교 인사들이 하나님의 원수가 되기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종교 관념이 강한 사람일수록 하나님을 더 크게 대적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원수라고 한다. 하나님의 사역은 언제나 새롭기에 규례를 만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서로 다른 수준의 변화와 새로움을 낳는다. 이런 사역은 하나님의 고유한 성품의 발현이자 고유의 사역 원칙이고, 그의 경영을 완성하기 위한 일종의 사역 수단이다. 이렇게 사역하지 않으면 사람은 변화될 수 없고 하나님을 알아 갈 수 없으며, 사탄은 패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사역에는 규칙이 없는 듯하나 주기적인 변화가 끊임없이 발생한다. 하지만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방법은 이와 크게 다르다. 사람은 낡고 익숙한 규례와 제도를 고수할 뿐만 아니라, 낡으면 낡을수록 더 좋아한다. 아무리 두드려도 꿈적하지 않는 돌처럼 어리석은 사람의 머리로 어찌 이해하기 힘든, 하나님의 그 많은 새 사역과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사람은 모두 낡아 빠지고 움직이지 못하는 백발이 성성한 하나님을 좋아할 뿐, 새로운 하나님은 싫어한다. 이렇게 하나님과 사람의 서로 다른 ‘취향’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고, 나아가 더 많은 갈등이 지금까지 남게 된 것이다. 하나님이 6천 년 가까이 새로운 사역을 행한 오늘날, 이러한 갈등은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사람이 완고하여 변하지 않은 것인지, 하나님의 행정이 사람의 거스름을 용납하지 않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종교 관료와 그 부인들은 여전히 낡아서 곰팡이가 핀 그 옛날 책과 신문들을 붙들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아직 끝나지 않은 경영 사역을 계속해 나가고 있다. 비록 적대적인 갈등이 있고 이를 해결할 수 없다고 해도 하나님은 그런 갈등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 대한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의 ‘믿음’과 ‘생각’을 붙잡고 놓지 못한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한 가지는, 사람의 ‘입장’이 아무리 굳건해도 하나님의 ‘발’은 언제나 움직이며, 상황에 따라 ‘입장’을 바꾼다는 점이다. 하지만 사람은 결국 스스로 패배하는 대상이며, 하나님은 모든 패장의 가장 큰 ‘원수’이자 패배했거나 패배하지 않은 모든 인류 가운데서 ‘승자’이다. 누가 하나님과 겨루어 승리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사역과 함께 점차적으로 많은 관념이 생겨났기 때문에 사람의 관념이 꼭 하나님에게서 온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사람을 용서해 주지 않으며,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에 맞춰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 사역 외의 산물을 무더기로 만들어 낸다고 해서 칭찬하지도 않는다. 반대로 그는 사람의 고정 관념과 낡아 빠진 경건한 신앙에 극도로 반감을 품으며 그런 고정 관념이 생긴 날을 거들떠볼 마음도 없다. 하나님은 그런 관념들이 자신의 사역으로 인해 만들어졌다고는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사람의 관념은 사람에게서 전염된 것으로, 그 발원지는 사람의 사고와 머리이고, 하나님이 아닌 사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사역의 원뜻은 본래 새롭고 살아 있는 것이지 낡고 죽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사람에게 지키도록 한 것은 시대별, 단계별로 나누어진 것이지 영원한 것이나 한 번 이루어지면 불변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사람을 죽게 하고 낡게 하는 마귀가 아니라 사람을 살게 하고 새롭게 하는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이 점을 너희는 아직도 모르겠느냐? 네가 하나님에 대한 고정 관념을 잡고 놓지 못한다면, 이는 네 머리가 트이지 않은 것이지 하나님의 사역에 일리가 없거나 하나님의 사역이 사람의 뜻과 안 맞는 것이 아니다. 또 하나님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네가 고정 관념을 내려놓지 못하는 이유는 네 순종이 턱없이 부족하고, 네가 피조물로서의 면모를 조금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지, 하나님이 너를 괴롭히기 때문이 아니다. 이 모두는 네가 초래한 것으로, 하나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모든 고통과 화근은 사람이 만든 것이다. 하나님의 생각은 언제나 좋은 것이다. 그는 너에게 고정 관념이 생기기를 원하지 않으며, 네가 시대에 따라 새로워지고 변화하길 원한다. 그러나 너는 사리 분별을 못 한 채 연구나 분석에만 매달린다. 하나님이 너를 괴롭히는 게 아니라 네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고, 너의 패역한 마음이 너무 큰 것이다. 작디작은 일개 피조물이 감히 하나님이 과거에 준 것들 중 극히 일부로 하나님을 공격하다니, 이것이 패역 아니겠느냐? 말하자면,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자격이 아예 없으며, 자신의 그 아무 가치도 없는 썩어 문드러진 말과 글을 제멋대로 뽐낼 자격은 더더욱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곰팡이가 핀 고정 관념은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느냐? 더 무가치하지 않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현재 사역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84)

하나님의 사역은 계속 발전하고 있다. 사역의 근본 취지는 바뀌지 않지만 사역 방식은 부단히 바뀌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도 부단히 변화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역이 많아질수록 사람은 하나님을 더 전반적으로 알게 되고, 사람의 성품도 하나님의 사역에 따라 변화한다. 그러나 끊임없이 변화하는 하나님의 사역으로 인해 성령의 역사를 모르는 자, 진리를 모르는 그릇되고 망령된 자들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사역은 언제나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의 사역은 항상 새롭기 때문이다. 그는 옛 사역을 반복하지 않으며, 과거에 한 적 없는 사역을 행한다. 하나님이 중복 사역을 하지 않고 또 사람은 늘 하나님이 과거에 했던 사역으로 오늘날의 사역을 가늠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새 시대의 사역을 전개할 때마다 언제나 많은 난관을 겪어야 했다. 사람에게는 문제점이 너무나 많고, 사람의 생각은 너무나 보수적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을 알지 못하면서 규정하기까지 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면 생명과 진리,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까지 잃게 되는데도 불구하고, 사람은 생명도 진리도 받아들이지 않고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보다 큰 축복은 더욱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람은 하나님을 얻고 싶어 하면서도 하나님의 사역이 바뀌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새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의 사역이 고정불변한 것이며, 영원히 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기만 하면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을 얻을 수 있고,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기만 하면 영원히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하나님을 그저 율법 아래의 하나님,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힌 하나님으로만 생각하며, 하나님은 성경을 벗어나서는 안 되고 벗어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이런 ‘생각’은 그들을 낡은 율법과 죽은 규례에 단단히 못 박아 놓았다. 이 밖에도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느 단계의 새 사역을 하든 예언의 근거가 있어야 하며, 새 사역을 할 때마다 ‘그를 진심으로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계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역이 아니라고 한다. 가뜩이나 하나님을 알기가 어려운데, 그릇된 마음과 스스로를 높이는 패역한 본성까지 지녔으니 사람이 하나님의 새 사역을 받아들이는 것이 더 어려워진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새 사역을 자세히 살피거나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멸시하는 태도를 취하며 하나님의 계시와 인도만 기다린다. 이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런 자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겠느냐?

오늘날 내가 예수의 사역이 시대에 뒤처졌다고 하는 것처럼 예수도 은혜시대에 여호와의 사역이 시대에 뒤처졌다고 했다. 율법시대만 있고 은혜시대가 없었다면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힐 수도, 전 인류를 속량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율법시대만 있었다면 인류가 오늘날까지 발전할 수 있었겠느냐? 역사(歷史)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역사(歷史)는 하나님 사역의 정상적인 법칙이 아니냐? 온 우주에서 행한 인류 경영에 대한 사실적 묘사가 아니냐? 역사가 앞으로 나아가며 발전하듯 하나님의 사역도 앞으로 나아가며 발전하고, 하나님의 뜻 역시 계속 바뀌고 있다. 하나님은 한 단계 사역을 6천 년이나 지속하지 않는다. 모두가 알다시피, 하나님은 항상 새로운 분이기에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 같은 사역을 줄곧 이어 나가며 몇 번이고 반복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지는 않는다. 그것은 그릇된 사람의 인식이다. 하나님은 한 가지 사역을 계속 지속하지 않는다. 그의 사역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언제나 새롭다. 내가 너희에게 날마다 새로운 말과 사역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하는 사역으로, 그 핵심은 ‘새롭다’와 ‘놀랍다’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변함이 없고,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이다”라는 말 또한 확실한 사실이다. 하나님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이지 사탄이 될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사역도 그의 본질처럼 영원불변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너는 하나님이 영원불변한 분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항상 새로운 하나님’이라는 말은 또 어떻게 설명하겠느냐? 하나님의 사역은 끊임없이 확장되고 변화하며, 하나님의 뜻 또한 부단히 사람에게 나타나고 공개된다. 한편,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면서 끊임없이 성품이 변화하고, 인식도 변화한다. 그 변화는 어디에서 오는 것이겠느냐? 부단히 변화하는 하나님의 사역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냐? 사람의 성품도 변화될 수 있는데 내 사역과 내 말의 끊임없는 변화는 받아들이지 못하겠단 말이냐? 반드시 사람에게 제한받아야 한단 말이냐? 그것은 억지가 아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관념’으로 규정한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85)

지난날, 유대인들은 모두 구약 성경을 보았으므로 한 남자 아기가 구유에 강생하리라는 이사야의 예언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왜 예수를 핍박했겠느냐? 패역한 본성과 성령의 역사에 대한 무지 때문이 아니겠느냐? 당시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행하는 것이 그들이 알고 있는 예언 속 남자 아기와 같지 않다고 여겼고, 오늘날의 사람은 성육신 하나님이 성경에 따라 사역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나님을 저버린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그들의 본질은 다 같은 것이 아니냐? 너는 성령의 역사라면 무조건 받아들일 수 있느냐? 성령의 역사임이 분명하다면 ‘흐름’이 옳은 것이니 고르거나 선택하지 말고 주저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네가 하나님을 상대로 식견을 넓히려 하고 여러 가지 의구심을 품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 아니겠느냐? 더 이상 성경에서 근거를 찾지 말고, 성령의 역사가 분명하다면 바로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따르는 것을 의미하므로 하나님을 연구해서는 안 된다. 나에 대한 더 많은 근거를 찾아 내가 너의 하나님임을 증명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내가 너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설사 성경에서 확실한 증거를 더 많이 찾아낸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를 완전히 내 앞으로 인도하지는 못한다. 그런 너는 성경 속에서 사는 사람이지 내 앞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다. 성경은 네가 나를 알도록 도와주지 못하고, 나에 대한 사랑이 더 깊어지도록 해 주지도 못한다. 성경에는 한 남자 아기가 강생할 것이라는 예언이 기록되었지만,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을 알지 못했기에 그 예언이 누구에게서 이루어질지 아무도 몰랐다. 그로 인해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대적하게 되었던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하는 일이 사람에게 이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와 예수는 완전히 다르며,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당시 예수는 은혜시대에 제자들이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지, 어떻게 기도하고 간구해야 하는지, 어떻게 사람을 대해야 하는지 등등 은혜시대의 도만 가르쳤다. 즉, 예수는 은혜시대의 사역을 한 것이다. 예수는 당시 제자들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그는 은혜시대의 사역만 했을 뿐, 말세의 사역은 하지 않았다. 율법시대에 여호와는 구약 율법을 제정하고 왜 은혜시대의 사역은 하지 않았겠느냐? 어째서 은혜시대의 사역을 미리 분명하게 말하지 않았겠느냐? 사람이 더 잘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그런 것 아니겠느냐? 여호와는 한 남자 아기가 강생하여 정사를 멜 것이라는 예언만 했을 뿐, 은혜시대의 사역을 앞당겨 하지는 않았다. 하나님이 하는 각 시대의 사역은 다 일정한 범위가 있다. 그는 해당 시대의 사역만 할 뿐, 다음 단계의 사역을 미리 하지는 않는다. 그래야만 각 시대의 대표적인 사역을 두드러지게 할 수 있다. 그 당시 예수는 말세에 어떤 징조가 나타날지,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인내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고, 어떻게 회개하고 죄를 자백해야 하며, 어떻게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만 말했다. 말세의 사람이 어떻게 진입하고 어떻게 추구해야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니 네가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찾는다면 터무니없는 일이 아니겠느냐? 네가 성경만 받쳐 든다면 무엇을 알아낼 수 있겠느냐? 그 어떤 성경 해석가나 설교자가 오늘날의 사역을 미리 꿰뚫어 볼 수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관념’으로 규정한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겠는가?>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86)

너희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대적한 근본 원인을 알고 싶으냐? 바리새인의 본질을 알고 싶으냐? 그들은 메시야에 대한 환상으로 가득했을 뿐만 아니라 메시야가 오리라는 것만 믿었을 뿐 생명 진리는 추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그들은 여전히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다. 이는 그들이 생명의 도를 알지 못하고, 진리의 도가 무엇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리석고 완고하고 무지한 그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겠느냐? 메시야를 볼 수 있겠느냐? 그들이 예수를 대적한 이유는 성령 역사의 방향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고, 예수가 말한 진리의 도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며, 더욱이 메시야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메시야를 본 적도, 메시야와 함께 지낸 적도 없기에 메시야란 이름만을 헛되이 지키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메시야의 본질을 대적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또한 그 바리새인들의 본질은 완고하고, 교만하며, 진리에 복종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데 있어 그들의 원칙은 ‘당신이 전하는 도가 아무리 대단하고, 당신의 권병이 아무리 크다 해도, 메시야로 불리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너무나 황당하고 엉터리 같은 관점 아니냐? 다시 너희에게 묻겠다. 너희는 예수를 털끝만큼도 알지 못하는데, 그렇다면 너희도 당시 바리새인과 같은 잘못을 너무도 쉽게 저지르지 않겠느냐? 너는 진리의 도가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느냐? 정말 너 자신이 그리스도를 대적하지 않을 것이라 보증할 수 있느냐? 너는 성령의 역사를 따를 줄 아느냐? 네가 자신이 그리스도를 대적할지 않을지 모른다면, 나는 네가 이미 죽음의 벼랑 끝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메시야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다 예수를 대적하고, 저버리고, 비방하는 짓을 저지를 수 있다. 예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다 예수를 저버리고 모욕할 수 있으며, 심지어 예수의 재림을 사탄의 미혹으로 여길 수도 있다. 더욱 많은 사람들은 육신으로 다시 돌아온 예수를 정죄할 것이다. 그런데도 너희는 두렵지 않으냐? 너희는 성령을 모독하고, 성령이 교회들에게 한 말씀을 훼손하고, 예수가 선포한 말씀을 경멸하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너희가 이처럼 미망에 빠져 있는데 예수에게서 대체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느냐? 너희가 이처럼 고집부리며 깨닫지 못하는데 어찌 예수가 흰 구름을 타고 육신으로 돌아오는 일을 이해할 수 있겠느냐?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진리는 받아들이지 않고 예수가 ‘흰 뭉게구름’을 타고 강림하기만을 맹목적으로 기다리는 사람들은 분명 성령을 모독하는 자들이며, 분명 멸망할 부류이다. 너희는 오로지 예수에게서 오는 은혜를 받고 천국의 복을 누릴 생각만 할 뿐, 예수가 하는 말씀을 한 번도 청종한 적이 없다. 또 예수가 육신으로 다시 돌아와 선포한 진리도 받아들인 적이 없다. 너희는 예수가 흰 구름을 타고 돌아온 이 사실을 무엇과 맞바꾸겠느냐? 죄짓기를 반복하고 입술로 죄를 자복하는 너희의 성심이냐? 너희는 흰 구름을 타고 돌아온 예수께 무엇을 제물로 바치겠느냐? 너희가 자신을 높이면서 오랫동안 사역한 자산이냐? 너희는 무엇으로 재림한 예수가 너희를 신임하도록 하겠느냐? 어떤 진리에도 순종하지 않는 너희의 그 교만한 본성이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네가 예수의 영체를 볼 때는 하나님이 이미 하늘과 땅을 새롭게 바꾼 후이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87)

너희들의 충성은 입술에만 머물고, 너희들의 앎은 머릿속 관념에만 머물며, 너희들의 수고는 하늘나라의 복을 위한 것이다. 그럼 너희의 믿음은 또 어떠하냐? 지금까지도 너희는 이 진리들을 무시하고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너희는 하나님, 그리고 그리스도가 어떤 존재인지 모른다. 또 어떻게 여호와를 경외하는지, 어떻게 성령 역사에 진입하는지, 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미혹을 어떻게 분별하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이 선포한 진리 중 한 마디라도 자신의 뜻에 맞지 않는 것이 있으면 정죄하기만 한다. 너의 겸손은 어디에 있느냐? 너의 순종은 어디에 있느냐? 너의 충성은 또 어디에 있느냐? 진리를 찾는 너의 태도는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을 경외하는 너의 마음은 어디에 있느냐?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이적을 보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분명 멸망될 부류이며, 육신으로 돌아온 예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들은 분명 지옥의 자손, 천사장의 후손, 영원히 멸망될 부류이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내 말을 마음에 두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나는 예수를 따르는, 이른바 성도라고 하는 모든 이에게 말해 주겠다. 흰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강림하는 예수를 너희 육안으로 직접 보게 될 때는 공의로운 해가 공개적으로 나타난 때이다. 그때 네 마음은 몹시 흥분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너는 알고 있느냐? 예수가 하늘에서 강림하는 것을 보게 될 때는 네가 지옥으로 떨어져 징벌을 받아야 할 때이고, 하나님의 경륜이 끝났다고 선고될 때이며, 하나님이 상선벌악(賞善罰惡)할 때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사람이 이적을 보기 전 진리만 선포되었을 때 이미 끝났기 때문이다. 이적을 좇지 않고 진리를 받아들여 정결케 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와 창조주의 품속에 안기게 될 것이다. 하지만 ‘흰 구름을 탄 예수가 아니라면 거짓 그리스도이다’라는 신념을 고집하는 자들은 영원한 징벌을 받게 될 것이다. 이는 그들이 이적을 행하는 예수만을 믿고, 준엄한 심판을 선포하고 생명의 참도를 전하는 예수는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예수가 공개적으로 흰 구름을 타고 돌아올 때 그들을 처리하는 수밖에 없다. 그들은 너무나 완고하고 너무나 교만하며 자신을 과신하는데, 그런 인간 말종들이 어찌 예수에게 상을 받을 수 있겠느냐? 예수의 재림은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크나큰 구원이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에게는 정죄받는 기호가 될 것이다. 너희는 자신의 길을 택해야 한다. 성령을 모독하거나 진리를 저버리는 일을 하지 말고, 무지하고 교만한 사람이 되지 말며, 성령의 인도에 순종하고 진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 너희에게 충고하겠다.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하나님을 믿는 길을 가고 함부로 단정짓지 마라. 또한 제멋대로 건성으로 하나님을 믿지 마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적어도 겸손한 마음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춰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진리를 듣고 코웃음 치는 사람들은 다 어리석고 무지한 자들이고, 진리를 듣고도 멋대로 단정짓거나 정죄하는 자들은 다 교만한 자들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모두 다른 이를 저주하거나 정죄할 자격이 없다. 너희는 진리를 받아들이는 이성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진리의 도를 듣고 생명의 말씀을 본 후, 그 말씀 중에서 단 만분의 일이라도 너의 생각과 일치하고 성경과 일치한다고 여겨진다면, 너는 그 만분의 일에 해당하는 말씀에서 계속 찾고 구하여라. 나는 또 네게 자신을 과신하거나 높이 여기지 말고 겸손한 사람이 될 것을 권한다. 미약하게나마 하나님을 경외하는 너의 마음에 더 큰 빛을 얻게 될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고 자꾸 생각해 보면, 너는 이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과연 진리가 맞는지, 생명이 맞는지 알게 될 것이다. 혹자는 몇 마디 보지도 않고 “이것은 성령의 깨우침에 불과해.”라고 하거나 “이것은 거짓 그리스도가 사람을 미혹하는 거야.”라며 맹목적으로 정죄할지도 모른다. 이런 말을 하는 자는 그야말로 너무나 무지하다! 너는 하나님의 사역과 지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지극히 적다. 그러니 나는 너에게 다시 시작할 것을 권한다! 너희는 말세에 거짓 그리스도가 나타난다고 해서 하나님이 선포한 말씀을 맹목적으로 정죄해서는 안 되고, 미혹될 것이 두려워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된다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느냐? 여러 번 살펴보고도 이런 말씀이 진리도 길도 아니고 하나님의 선포가 아니라고 여긴다면, 너는 결국 징벌받을 사람이고, 복이 없는 사람이다. 이런 진리를 이렇게 분명하고 명확하게 말하였는데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너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 아니겠느냐?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올 복이 없는 사람이 아니겠느냐? 잘 생각해 보아라! 경솔하게 굴지도, 덤벙대지도 말라. 하나님 믿는 일을 아이들 장난으로 여기지도 말라. 자신의 종착지와 앞날, 자신의 생명을 생각해야지, 스스로를 우롱해서는 안 된다. 너는 이 말들을 다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네가 예수의 영체를 볼 때는 하나님이 이미 하늘과 땅을 새롭게 바꾼 후이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88)

예수가 당시에 사역할 때, 일부 사역은 구약 성경이나 여호와의 율법시대 말씀, 모세의 율법에 근거했다. 그는 그런 것들을 통해 일부 사역을 행하였다. 당시 그는 회당에서 설교하고 가르쳤으며, 그를 적대시하는 바리새인들을 구약 선지자의 예언으로 훈계하였고, 성경 말씀으로 그들의 패역을 드러내고 그들을 정죄하였다. 그들은 모두 예수가 행한 것을 혐오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예수의 수많은 사역은 성경의 율법을 따르지 않았으며, 예수의 가르침이 그들의 말은 물론, 심지어는 성경 속 선지자의 예언보다도 뛰어났기 때문이다. 예수가 행한 사역은 단지 속량하기 위한 것,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한 것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더 많은 말씀을 하여 사람을 정복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사람들을 가르칠 때 성경의 말씀을 많이 인용했으며, 그가 행하는 사역이 성경을 벗어나지 않아도 십자가의 사역은 완성할 수 있었다. 그가 행한 사역은 말씀의 사역도, 인류를 정복하기 위한 사역도 아니라 인류를 속량하기 위한 사역이었다. 그는 그저 인류의 속죄 제물이 되었을 뿐, 인류에게 말씀의 원천이 되지는 않았다. 그는 이방의 사역, 즉 사람을 정복하는 사역을 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히는 사역을 하였으며,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하였다. 비록 그가 성경을 바탕으로 사역했으며, 옛 선지자의 예언으로 바리새인들을 정죄했을지라도, 십자가의 사역은 충분히 완성할 수 있었다. 지금도 성경 속 옛 선지자의 예언을 바탕으로 사역한다면, 너희를 정복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구약에는 너희 중국인들의 패역과 죄업은 물론, 너희의 그 죄악의 역사(歷史)도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계속 성경 속에서 맴돈다면, 너희는 영원히 승복하지 않을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인들의 유한한 역사(歷史)로는 너희가 악한지 선한지를 판단하거나 너희를 심판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말해 보아라. 내가 이스라엘 사람들의 역사(歷史)에 따라 너희를 심판한다면, 너희가 지금처럼 따를 수 있겠느냐? 너희는 너희가 다루기 힘든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느냐? 이번 단계의 사역에서 말을 하지 않는다면 정복 사역을 완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십자가에 못 박히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성경 이외에 다른 말을 더 하여 너희를 정복할 것이다. 예수가 행한 사역은 성경 구약의 사역보다 한 단계 더 높은 것에 불과했다. 그는 그것으로 한 시대를 개척하고, 한 시대를 이끌었다. 그는 왜 “나는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라고 했겠느냐? 하지만 그가 행한 사역에는 구약시대의 이스라엘인들이 실행한 율법이나 그들이 지켰던 계명과 다른 것이 수없이 많았다. 그는 율법을 지키러 온 것이 아니라 그것을 완전케 하러 왔기 때문이다. 완전케 하는 과정에는 수많은 실제적인 것들이 포함된다. 그는 규례를 고수한 것이 아니라 더 현실적이고 더 실제적으로 행하고 더 융통성 있게 행하였다. 이스라엘인들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더냐? 그러나 그때 예수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다. 그가 말했듯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안식일의 주인이 왔으니 그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다. 그는 구약의 율법을 완전케 하러 온 것이며, 율법을 바꾸기 위해 온 것이기도 했다. 오늘날의 사역은 완전히 지금 상황에 맞춰 행하는 것이지만, 여전히 여호와가 율법시대에 했던 사역을 기초로 하는 것이지, 그 범위를 초월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사람은 말을 조심해야 하고, 음란죄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것은 구약의 율법 아니더냐? 지금 너희에게 요구하는 것은 십계명에만 국한되지 않는, 예전보다 더 높은 수준의 계명과 율법이지, 그것들을 폐한 것이 아니다. 각 단계의 사역은 모두 이전 단계의 사역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너희는 당시에 여호와가 이스라엘에서 행했던 것, 예를 들어 제사를 드리고, 부모를 공경하며, 우상을 숭배하지 않고, 남을 때리거나 욕하지 않으며, 간음하지 않고, 흡연이나 음주를 하지 않으며, 죽은 것을 먹지 않고, 피를 마시지 않는 것 같은 요구를 바탕으로 실행하고 있지 않느냐? 이전 것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행하는 동안, 비록 이전의 율법을 언급하지 않고 너희에게 새로운 요구를 했다 할지라도, 이런 율법은 폐해지지 않았고, 오히려 높아졌다. 폐해졌다는 것은 시대에 뒤처졌다는 뜻이다. 하지만 일부 계명은 영원히 지켜야 한다. 이전의 계명은 사람이 실천할 수 있게 되어 이미 사람의 어떠함이 되었다. 예를 들어, 금주와 금연 같은 것들은 더 이상 지나치게 강조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것을 바탕으로 너희에게 지금 필요한 것과 너희의 분량, 그리고 지금 행하는 사역에 근거하여 다시 새로운 계명을 정하는 것이다. 새 시대의 계명을 반포하는 것은 옛 시대의 계명을 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기초로 더 높이 끌어올려 사람으로 하여금 더 완전하고 실제적으로 행하게 하는 것이다. 지금 너희에게 요구하는 것이 계명과 구약의 율법을 지키는 데 국한되며, 이스라엘 사람들과 똑같은 것을 하라고 한다면, 심지어 여호와가 정한 율법을 외우라고 한다면, 너희에게는 어떤 변화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한계가 있는 몇 가지 계명을 지키거나 수많은 율법을 외운다고 해도 너희의 옛 성품은 여전히 깊이 뿌리박혀 있어 파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갈수록 타락할 수밖에 없으며, 아무도 순종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간단한 몇 가지 계명이나 수많은 율법은 너희가 여호와의 행사를 깨닫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너희는 이스라엘 사람들과 다르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고 계명을 외우기만 해도 여호와의 행사를 볼 수 있었으며, 여호와께 일편단심으로 충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너희는 전혀 그렇게 하지 못한다. 구약시대의 몇 가지 계명들은 너희로 하여금 자신의 마음을 바치게 하거나 너희를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너희의 마음을 느슨하게 만들어 음부에 떨어지게 할 것이다. 내가 행하는 정복 사역은 오로지 너희의 패역과 옛 성품만을 겨냥한다. 그렇기에 여호와와 예수의 타이르는 말씀은 오늘날의 이 엄한 심판의 말씀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 엄한 말씀이 없다면 수천 년 동안 거역해 온 너희, ‘전문가들’을 정복하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 구약의 율법은 너희에게서 효력을 잃은 지 이미 오래다. 오늘날 심판의 위력은 당시 율법의 위력을 훨씬 뛰어넘었다. 너희에게는 간단한 율법의 제약보다 심판이 가장 적합하다. 너희는 시초의 인류가 아니라 수천 년 동안 패괴된 인류이기 때문이다. 지금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은 모두 오늘날 사람의 실제 상태와 자질, 그리고 실제 분량에 근거한 것으로, 규례를 지키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모두 너희의 옛 성품을 변화시키고 너희의 관념을 버리게 하기 위함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역 이상 1>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89)

역사(歷史)는 끊임없이 발전하고, 하나님의 사역도 끊임없이 발전한다. 6천 년 경륜을 끝내려면 반드시 끊임없이 발전하면서 날마다 새로운 사역을 하고, 해마다 새로운 사역을 해야 한다. 또한 새로운 길과 새로운 기원뿐만 아니라 더 새로운 사역과 더 큰 사역을 개척해야 한다. 그에 따라 새로운 이름과 새로운 사역이 나타나게 된다. 하나님의 영은 언제나 새로운 사역을 한다. 낡은 것을 지킨 적이 없고 규례도 지키지 않지만, 그는 사역을 중단하지 않을뿐더러 시시각각 행하고 있다. 너는 성령이 행하는 사역이 영원불변하다고 말한다. 그러면 여호와는 왜 제사장에게 성전 안에서 그를 섬기라고 했겠느냐? 예수가 왔을 때, 사람은 그를 대제사장이라고도 하고, 다윗 집안의 사람이나 대제사장, 대군왕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예수는 왜 성전에 들어가지 않았겠느냐? 왜 제사를 드리지 않았겠느냐? 성전에 들어가든 안 들어가든 모두 하나님 자신이 행하는 사역 아니더냐? 사람의 상상대로라면 예수가 다시 와야 하고 말세에도 여전히 예수라고 불려야 한다. 또한 흰 구름을 타고 예수의 형상으로 사람들 가운데 임해야 한다. 그러면 사역을 되풀이하는 것 아니겠느냐? 성령이 낡은 것을 지킬 수 있겠느냐? 사람이 생각하는 것은 모두 관념이고, 사람이 받아들이는 것은 문자의 표면적 의미와 사람의 상상에 근거한 것이다. 이는 성령 역사의 원칙에 부합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그렇게 할 리 없고 그렇게 어리석거나 멍청할 리도 없다. 그의 사역은 네가 생각한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사람의 상상대로라면, 예수가 흰 구름을 타고 와서 너희 가운데 임할 것이며, 너희가 흰 구름을 타고 와서 자신을 예수라고 말하는 그를 보고, 그의 손에 난 못 자국까지 확인한 후에 그가 바로 예수임을 알아볼 것이다. 또 그는 다시 너희를 구원하여 능력이 매우 큰,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를 구원하여 너희에게 새 이름을 주고 흰 돌을 하나씩 준 다음 너희를 천국에 들어가게 하며, 천국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런 생각은 사람의 관념이 아니냐? 말해 보아라. 하나님이 사람의 관념대로 사역하겠느냐, 아니면 사람의 관념을 깨면서 사역하겠느냐? 사람의 관념은 모두 사탄에게서 온 것 아니냐? 사람은 모두 사탄에 의해 패괴된 존재가 아니냐? 하나님이 사람의 관념대로 행한다면 사탄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피조물과 같은 부류가 되는 것 아니겠느냐? 지금 피조물은 이미 사탄에 의해 이 지경까지 패괴되어 모두 사탄의 화신이 되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사탄의 방식에 따라 행한다면 사탄과 한패가 되는 것 아니겠느냐?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사역을 측량할 수 있겠느냐?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의 관념대로 행하지도, 너의 상상대로 행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나님이 흰 구름을 타고 오리라고 한 것은 그가 친히 한 말씀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하나님이 친히 한 말씀인 것은 맞지만, 너는 그 누구도 하나님의 비밀을 완전히 측량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느냐? 그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을 완벽히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느냐? 너는 성령이 너에게 깨우쳐 주고 빛을 비춰 준 것이라고 100% 장담할 수 있느냐? 설마 성령이 너에게 그렇게 직접 지시했다는 말이냐? 성령이 지시한 것이냐, 아니면 네가 관념적으로 그렇게 생각한 것이냐? 그는 “그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입니다.”라고 말하겠지만, 우리는 우리의 관념과 머리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늠해서는 안 된다. 이사야가 한 말일지라도 네가 그 말을 모두 해석할 수 있다고 100% 장담할 수 있느냐? 네가 감히 그의 말을 해석할 수 있겠느냐? 이사야의 말도 감히 해석하지 못하면서 어찌 감히 예수의 말씀을 해석하느냐? 예수가 높으냐, 아니면 이사야가 높으냐? 예수가 높다면, 왜 그가 한 그 말씀들을 모두 해석하려 하느냐? 하나님이 자신의 모든 사역을 너에게 미리 알려 줄 리 있겠느냐? 피조물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하늘의 사자도 모르고 인자도 모르는데, 네가 알 수 있겠느냐? 사람에게는 부족한 것이 너무도 많다. 지금 너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3단계 사역을 아는 것이다. 여호와부터 예수까지, 그리고 예수부터 이 단계의 사역까지 세 단계 사역이 이어져 오면서 하나의 완전한 경영이 되었는데, 이는 모두 한 분의 영이 행한 사역이다. 창세 이래 하나님은 끊임없이 사역하면서 인류를 경영하고 있다. 그는 처음과 나중이고, 시작과 끝이며, 시대를 펼치는 분이자 시대를 끝내는 분이다. 3단계 사역은 시대도 다르고 장소도 다르지만, 한 분의 영이 행한 것임에 틀림없다. 3단계 사역을 따로 갈라놓는 자는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지금 너는 첫 단계부터 지금까지 행한 사역이 의심할 바 없이 한 분의 하나님이 행한 것이고, 한 분의 영이 행한 사역임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역 이상 3>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90)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이상, 단계마다 하나님의 발걸음을 바짝 따라야 하고, ‘어린양이 어디로 가든지 따라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런 사람이라야 진정으로 참도를 찾고 구하는 사람이고, 성령의 역사를 아는 사람이다. 글귀나 이치만을 고집스레 지키는 자는 모두 성령 역사에 의해 도태될 자이다. 하나님이 시기마다 새 사역을 전개하므로 사람에게는 시기마다 새로운 시작이 생기는 것이다. 사람은 단지 “여호와는 하나님이다” 혹은 “예수는 그리스도이다”라는 어느 한 시대에만 적용되는 진리들을 지킨다면, 영원히 성령 역사를 따라갈 수도, 얻을 수도 없다. 하나님이 어떻게 사역하든 아무 의심도 없이 바짝 따라간다면, 사람이 어찌 성령에 의해 도태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어떻게 행하든 성령 역사임을 확신하고, 아무 걱정 없이 성령 역사에 협력하여 하나님의 요구대로 한다면, 사람이 어찌 징벌받을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사역은 멈추지 않으며 그의 발걸음도 멈춘 적이 없다. 하나님은 경영 사역을 완성하기 전에는 늘 바쁘게 보내며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은 다르다. 성령 역사를 조금 얻으면 영구불변한 것으로 삼고, 인식이 조금 생기면 하나님의 더 새로운 사역을 ‘좇아’ 앞으로 가지 않는다. 하나님의 사역을 조금 보면 하나님을 특정한 조각상으로 규정하기 바쁘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영원히 자신이 본 그 형상대로일 것이고, 예전에 어땠으면 이후에도 영원히 그러할 것이라고 여긴다. 얄팍한 인식이 조금 생기면 우쭐거리면서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하나님의 성품과 어떠함을 제멋대로 퍼뜨리기 시작한다. 한 단계 성령의 역사를 확신하고 나면 누군가 하나님의 새 사역을 아무리 전해 주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들은 모두 성령의 새 역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들이고, 지나치게 옛것을 고수하며 새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들이다. 또한 이들은 전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저버리는 자들이다. 사람은 모두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호와만 믿고 예수를 믿지 않은 것’이 잘못이라고 여기지만, 또 절대다수의 사람이 ‘여호와만 믿으면서 예수를 저버리는’ 역할과 ‘메시야가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예수라 칭하는 메시야를 대적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니 사람이 모두 한 단계 성령의 역사를 받아들였음에도 여전히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이는 모두 사람의 패역이 초래한 것 아니냐? 오늘날의 새 사역에 뒤처진 세계 각지의 기독교인들은 모두 요행을 바라며 하나님이 그들 각자의 소원을 들어줄 것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왜 하나님이 그들을 셋째 하늘로 올려 주어야 하는지, 예수가 어떻게 흰 구름을 타고 와서 그들을 맞아 줄지에 대해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절대적인 확신이 없다. 더욱이 예수가 정말 흰 구름을 타고 그들이 상상하는 그날에 올 것인지를 확정할 수 있는 절대적인 확신도 없다. 그들은 저마다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며, 어찌할 바를 몰라 한다. 하나님이 과연 다양한 교파에 속한 하나하나의 ‘작은 무리’를 끌어 올려 줄지 그들 자신조차 분명히 알지 못한다. 그들은 하나님이 지금 어떤 사역을 하고 있는지, 지금이 어떤 시대인지, 하나님의 뜻은 어떠한지를 명확하게 말하지도 못하면서 하루하루 손꼽으며 세월을 보내고 있다. 어린양의 발걸음을 끝까지 따라가는 사람만이 최후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 끝까지 따라가지 못했으면서 자신이 이미 모든 것을 얻었다고 여기는 그 ‘똑똑한 자’들은 누구도 하나님의 나타남을 볼 수 없다. 그들은 모두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고 여기면서 계속 발전하는 하나님의 사역을 아무런 까닭 없이 중단시킨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이 자신들, 즉 ‘하나님께 일편단심으로 충성하면서 그를 따르고 그의 말씀을 지킨 자’들을 끌어 올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일편단심으로 충성’할지라도 그들의 언행은 여전히 너무도 역겹다. 그들은 모두 성령의 역사에 대적하고, 간계를 부리며 악행을 저지르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길 끝까지 따라가지 못하고 성령 역사도 뒤따라가지 못하면서 옛 사역만 고수하는 자는 하나님께 충성하기는커녕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고, 새 시대에 버림받으며, 징벌을 받는 자가 될 것이다. 그들은 가장 가련한 자들 아니겠느냐? 또 많은 사람은 낡은 율법을 버리고 새 사역을 받아들이는 사람을 양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여긴다. ‘양심’만 따질 뿐 성령 역사를 알지 못하는 자들은 결국 자신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앞날을 망치게 될 것이다. 하나님도 사역할 때는 규례를 지키지 않고, 자신이 행한 사역일지라도 미련을 두지 않으며, 부인할 것은 부인하고 도태시킬 것은 도태시킨다. 그런데 사람이 오히려 경영 사역의 일부를 고집하면서 하나님을 적대시한다면 그것은 사람의 그릇됨 아니겠느냐? 사람의 무지함 아니겠느냐? 복을 받지 못할까 두려워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쓰는 사람일수록 더 많은 축복을 받을 수 없고, 마지막 복도 받을 수 없다. 율법을 고집스럽게 지키는 자들은 모두 율법에 절대적으로 충성한다. 그들은 그렇게 율법에 충성할수록 더욱 하나님을 대적하는 패역자가 된다. 지금은 율법시대가 아니라 하나님나라시대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사역을 과거의 사역과 함께 논해서는 안 되고, 과거의 사역을 오늘날의 사역과 비교해서도 안 된다. 하나님의 사역이 바뀌었고 사람의 실행 또한 바뀌었다. 율법을 지키는 것도, 십자가를 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율법과 십자가에 대한 사람의 충성심은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 없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실행>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91)

오늘날 너를 정복하는 것은, 하나님이 너의 하나님이자 다른 사람의 하나님이며, 나아가 그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의 하나님이자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의 하나님인 동시에 애굽 사람의 하나님이고, 영국 사람의 하나님인 동시에 미국 사람의 하나님이다. 그는 아담과 하와의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아담과 하와의 모든 후손의 하나님이며, 하늘에 있는 만물의 하나님인 동시에 땅에 있는 만물의 하나님이다. 이스라엘 족속이든, 이방의 모든 족속이든 모두 한 분의 하나님 손에 있다. 그는 이스라엘에서 수천 년 동안 사역했을 뿐만 아니라 일찍이 유대 땅에 태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또 큰 붉은 용이 똬리를 틀고 있는 중국 땅에 강림했다. 그가 유대에서 태어났을 때는 유대인의 왕이었지만, 지금은 너희 가운데 강림했으니 너희의 하나님 아니겠느냐? 그는 이스라엘 사람을 인도했었고, 유대 땅에 태어났었으며, 다시 또 이방에 태어났지만, 그가 행한 모든 사역은 그가 만든 인류 전체를 위한 것 아니겠느냐? 그가 이스라엘 사람은 백배로 좋아하고 이방인은 천배로 미워하겠느냐? 이것은 모두 너희의 고정 관념 아니겠느냐?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의 하나님이 아닌 것이 아니라 너희가 하나님을 조금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또 하나님이 너희의 하나님이 되기를 원치 않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하나님을 버린 것이다. 피조물 중에 누가 전능자의 손에 있지 않더냐? 오늘날 너희를 정복하는 것도 하나님이 너희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냐? 너희가 아직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만의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이스라엘의 다윗 집안만이 하나님의 출생지가 될 수 있다고, 이스라엘을 제외하고는 어느 민족도 하나님을 ‘탄생시킬’ 자격이 없으며, 더욱이 어떤 이방 민족도 여호와의 사역을 직접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다면, 아직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완고한 자가 된 것 아니겠느냐? 계속 이스라엘만 주시하지 마라. 지금 하나님이 바로 너희 가운데 있으니 계속 하늘만 쳐다보지도 말고, 더 이상 하늘에 있는 너의 하나님을 그리워하지도 마라!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 왔는데 어떻게 하늘에 있을 수 있겠느냐? 네가 하나님을 믿은 시간은 길지 않지만, 너의 관념은 적지 않다. 그리하여 너는 이스라엘 사람의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 ‘왕림’하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고, 더욱이 이렇게 더럽기 그지없는 너희가 친히 나타난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생각지 못했다. 그리고 너희는 하나님이 이방에 친히 강림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그는 시내산이나 감람산에 강림하여 이스라엘 사람에게 나타날 것이고, 이방인(이스라엘 외의 사람)은 모두 그가 미워하는 대상이므로 친히 그들에게 사역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 모든 것은 오래전부터 너희에게 깊이 뿌리박혀 있던 관념이다. 오늘날 너희를 정복하는 것은 너희의 이런 관념을 깨뜨리기 위함이다. 그래서 너희는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 친히 나타난 것을 보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시내산도 아니고 감람산도 아닌, 과거에 인도한 적 없는 사람들 가운데 나타났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서 두 단계 사역을 한 후에 이스라엘 사람과 모든 이방인에게는 이런 관념이 생겼다. 즉,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오직 이스라엘 사람의 하나님이 되기를 원할 뿐, 이방인의 하나님이 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은 ‘하나님은 너희 이방인의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의 하나님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기 때문에 여호와, 즉 우리의 하나님은 너희를 미워하신다.’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유대인들은 ‘예수님은 우리 유대인의 모습을 지니고 유대인의 특징을 갖고 계신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에서 사역하셨고, 하나님의 형상은 우리 형상과 비슷하며, 우리 형상은 하나님의 형상에 가깝다. 예수님은 우리 유대인의 왕으로, 이방인은 이렇게 큰 구원을 받을 자격이 없다. 예수님은 우리 유대인의 속죄 제물이시다.’라고 생각한다. 그저 두 단계 사역을 했을 뿐인데 이스라엘 사람과 유대 족속에게는 이처럼 많은 관념이 생겼다. 그들은 하나님을 독점하고 하나님이 이방인의 하나님이 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이렇게 이방인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은 백지상태가 되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은 이방인의 하나님이 되기를 원치 않고, 그의 선민인 이스라엘 사람과 유대인들, 특히 자신을 따른 제자들만 좋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수와 여호와가 행한 사역이 인류 전체의 생존을 위한 것임을 어찌 모른단 말이냐? 지금 너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밖에서 태어난 너희 모두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정하느냐? 오늘날 하나님이 바로 너희들 가운데 있지 않더냐? 설마 이것이 꿈이란 말이냐? 너희는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냐? 도무지 믿을 수 없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너희가 어떻게 생각하든 하나님이 바로 너희 가운데 있지 않더냐? 너희는 아직도 이 말을 믿지 못하겠느냐? 이제부터 정복된 사람과 하나님을 따르려고 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선민 아니겠느냐? 지금 따르고 있는 너희가 바로 이스라엘 이외의 선민 아니겠느냐? 너희의 신분도 이스라엘 사람의 신분과 같아지지 않았느냐? 이 모든 것은 너희가 알아야 할 것 아니냐? 너희를 정복하는 것도 이러한 목적을 위한 사역 아니겠느냐? 너희가 하나님을 볼 수 있다면, 하나님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영원히 너희의 하나님이 된다. 너희가 모두 그를 따르고 그에게 충성하고 순종하는 피조물이 되기를 원하기만 한다면 그는 너희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실상 3>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92)

새로운 앎은 낡은 관념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생기지만, 낡은 앎이 꼭 낡은 관념인 것은 아니다. 관념이란 사람이 혼자 상상하는, 실정에 부합하지 않는 것들을 말한다. 낡은 앎이 옛 시대에서도 이미 뒤처진 데다 사람이 새로운 사역에 들어가는 것을 가로막는다면 그런 앎은 관념이다. 그러나 사람이 그런 앎을 정확하게 대할 수 있고, 다양한 면에서 하나님을 알아 가 새것과 옛것을 결합할 수 있다면, 그 낡은 앎은 오히려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새 시대로 들어가는 밑바탕이 된다. 하나님을 알아 가는 이 공과에서 너는 수많은 원칙을 파악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알아 가는 길에 들어설 수 있을지, 하나님을 알려면 어떤 진리를 깨달아야 할지, 어떻게 관념과 옛 성품을 벗어 버리고 새 사역의 모든 안배에 순종해야 할지, 이런 원칙을 바탕으로 다시 하나님을 알아 가는 이 공과에 진입한다면, 너의 앎은 갈수록 깊어질 것이다. 네가 3단계 사역, 그러니까 전체 경륜의 사역에 대해 명확하게 알고, 또 처음부터 끝까지, 앞 두 단계의 사역을 현재에 연결 지어 한 분의 하나님이 행한 사역임을 깨달을 수 있다면, 그것은 너의 가장 단단한 기초가 될 것이다. 3단계 사역은 하나님 한 분이 행한 것으로, 최대의 이상이자 하나님을 알아 가는 유일한 길이다. 3단계 사역은 오직 하나님만이 할 수 있으며, 그 어떤 사람도 대신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오로지 하나님만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 자신의 사역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3단계 사역은 시대도, 장소도 다르고, 행한 사역도 다르지만 모두 하나님 한 분이 행한 사역이다. 이는 사람이 마땅히 알아야 할 이상 가운데 가장 큰 이상이다. 사람이 이것을 철저히 깨닫는다면 굳게 설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각 종교 각 교파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성령의 역사를 알지 못하며, 어떤 것이 성령 역사고 어떤 것이 성령 역사가 아닌지 분별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이번 단계의 사역이 앞 두 단계의 사역과 마찬가지로 여호와 하나님이 행한 것인지 더더욱 알지 못한다. 많은 사람이 따르면서도 이 길이 정확한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명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다. 사람은 이 길이 정말 하나님이 친히 인도하는 길인지, 말씀이 육신 된 것이 사실인지 걱정한다.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이런 사실들을 분별하기 위한 실마리가 별로 없다. 따르는 사람이 도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면 그 도는 그런 사람에게 일부 효과만 낼 뿐, 100%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그러면 그것은 사람의 생명 진입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사람이 3단계 사역을 통해 하나님이 세 단계의 사역을 각기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대상으로 행했음을 깨닫는다면 사역의 내용은 서로 다를지라도 하나님 한 분이 한 일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하나님 한 분이 행한 사역인 이상, 분명 어떤 오차도 존재하지 않는다. 설령 그것이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는다 해도 하나님 한 분이 한 일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사람이 정말로 하나님 한 분이 행한 사역임을 확신한다면, 사람의 관념은 언급할 가치도 없는 사소한 것이 된다. 이상에 대해 불분명하기에, 즉 여호와가 하나님이고 예수가 주라는 것만 알 뿐, 오늘날의 성육신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알지 못하기에, 많은 사람이 여호와의 사역과 예수의 사역에 미련을 둔 채 오늘날의 사역에 대해 수많은 관념을 갖고 있다. 또한 많은 사람이 늘 마음을 놓지 못하고 오늘날의 사역을 진지하게 대하지 못한다. 사람은 볼 수 없는 앞 두 단계 사역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념도 없다. 그것은 사람이 앞 두 단계 사역의 실정을 전혀 모르고, 또 직접 보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볼 수 없기에 마음대로 상상하는 것이다. 사람이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상상하든 입증할 수 있는 사실도, 바로잡아 줄 이도 없었다. 사람이 자신의 성향대로 대담하게 상상의 나래를 펼칠지라도 입증할 사실이 없었기에 그 상상은 성립 여부와는 무관하게 ‘사실’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두 머릿속으로 자신이 상상하는 하나님을 믿을 뿐, 실제 하나님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한 사람이 한 가지 신앙을 갖고 있다면 백 사람이면 백 가지 신앙을 갖고 있다. 사람에게 이런 신앙이 생겨난 이유는 모두 하나님의 실제적인 사역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고, 단지 귀로만 들었을 뿐 눈으로 보지는 못했기 때문이며, 전설과 이야기로만 들었지 하나님이 사역한 사실에 대한 인식은 거의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1년 믿은 사람은 물론, 하나님을 한평생 믿은 사람 역시 관념 속에서 믿고 있는 것이다. 사실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에 대한 관념적 신앙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사람은 모두 자신은 이미 낡은 관념의 속박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지에 들어갔다고 여긴다. 그러나 하나님의 본래 모습을 볼 수 없는 사람이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모두 관념이자 떠도는 소문이라는 것을 어찌 모른단 말이냐? 사람은 모두 자신의 관념이 정확하고,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라고 여겼지만, 오늘날 이 사역을 마주하면서 오랫동안 지녀 온 관념을 분출하게 되었다. 지난날의 상상과 생각이 이번 사역의 장애물이 되었건만 사람은 모두 이 관념들을 내려놓기 어려워하고, 이전의 생각들을 뒤엎기도 힘들어한다. 오늘날까지 따라온 수많은 사람들은 한 걸음씩 진행되는 이 사역에 대해 관념이 점점 심해져 성육신 하나님과 풀기 어려운 원한을 맺게 되었다. 그 원한의 근원이 바로 사람의 관념과 상상이다. ‘사실’은 사람이 멋대로 펼치는 상상을 용납하지 않으며 사람이 제멋대로 뒤집으려는 것은 더더욱 용납하지 않는다. 반면 사람은 관념과 상상 때문에 존재하는 사실을 용납하지 않으며, 사실의 정확성과 진실성은 무시한 채 한결같이 자신의 관념만 분출하고 상상의 나래만 펼친다. 이렇게 사람의 관념과 상상은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 오늘날의 모든 사역과 원수가 되었다. 이는 하나님의 사역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관념이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사람은 마음대로 상상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사역은 한 단계는 고사하고 조금도 뒤엎을 수 없다. 하나님이 사역한 사실은 사람의 거스름을 용납하지 않는다. 너는 마음대로 상상할 수 있고, 심지어 여호와와 예수 사역의 정수를 모아 편찬할 수도 있지만, 여호와와 예수가 행한 사역의 사실들을 뒤엎지는 못한다. 이것은 원칙이자 행정이다. 너희는 모두 이러한 문제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한다. 사람은 이번 단계 사역은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지만 앞 두 단계의 사역은 잘 맞는다고 생각하면서 앞 두 단계의 사역은 절대 지금처럼 이렇지 않았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하지만 너는 하나님의 사역 원칙은 모두 똑같고, 그의 사역은 어쨌든 다 실제적이며, 어느 시대의 사역에서든 하나님이 사역한 사실을 대적하고 반대하는 무리가 많이 ‘쏟아져 나왔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느냐? 오늘날 이 단계 사역을 대적하고 반대하는 자는 분명 이전에도 하나님을 대적했던 자다. 그들은 결국 하나님의 원수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사역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3단계 사역을 하나님 한 분이 행한 사역으로 여기고, 또 자신의 관념을 버릴 수 있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고, 진실로 따르는 사람이다. 전체 경영이 끝날 때 하나님은 만물을 각기 부류대로 나눌 것이다. 사람은 창조주의 손에서 창조되었으므로 마지막에는 철저히 하나님의 권세 아래로 돌아오게 된다. 이것이 3단계 사역의 종결이다. 이스라엘과 유대에서 행한 앞 두 단계의 사역과 말세의 사역은 곧 전 우주에서의 하나님의 경륜이므로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역한 사실이다. 사람은 많은 사역을 체험하지도, 보지도 못했지만, 어쨌든 사실은 사실이니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전 우주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모두 이 3단계 사역을 받아들일 것이다. 네가 어느 한 단계 사역만 알 뿐, 나머지 두 단계 사역과 과거의 하나님 사역을 알지 못한다면, 너는 하나님의 전체 경륜의 모든 실상을 설명할 수 없다. 그러면 너는 하나님을 단편적으로 알 뿐이다. 네가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하나님을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너는 하나님의 증인이 될 자격이 없다. 지금 이러한 것에 대해 깊게 알든 얕게 알든, 결국 마지막에는 너희가 모두 깨닫고 철저히 인정할 것이며,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전체 사역을 보고, 또한 하나님의 권세 아래에 복종하게 될 것이다. 사역이 막바지에 이르면 모든 종교가 하나가 되고, 모든 피조물이 창조주의 권세 아래로 돌아와 이 참하나님을 경배할 것이며, 모든 사교가 사라져 더는 나타나지 못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3단계 사역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길이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93)

하나님 사역의 근본 취지가 무엇인지, 하나님이 사람에게서 어떤 성과를 이루고자 하는지, 하나님이 사람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이는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파악해야 할 것들이다. 현재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사람은 창세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이 사람에게 행한 행사, 하나님의 모든 사역, 하나님의 뜻이 도대체 무엇인지 깨닫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 이는 전체 종교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의 부족한 부분이다. 언젠가 네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고, 하나님이 행한 모든 행사를 보고, 하나님의 어떠함과 소유를 알며, 또한 그의 풍성함, 지혜, 기묘함 그리고 사람에게 행한 모든 사역을 볼 수 있어야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다고 할 수 있다. 흔히 하나님은 만유를 포함하고 매우 풍성하다고 말한다. 만유를 포함한다는 의미는 무엇이냐? 풍성하다는 의미는 무엇이냐? 네가 이런 것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없다. 왜 종교계 사람들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악을 행하는 자, 마귀의 부류라고 하겠느냐? 그들이 악을 행한다고 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지혜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역은 절대로 그들에게 나타나지 않는다. 그들은 다 눈먼 자들이라 하나님의 행사를 보지 못하고, 하나님께 버려진 자들이라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하며, 성령의 역사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하나님의 역사가 없는 사람은 악을 행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를 말한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인정하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 하나님을 따르면서도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사람,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면서도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사람은 하나님 사역의 근본 취지와 하나님이 사람에게 행하는 사역을 알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설 수도 없다.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사람의 패괴 성품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사람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사역 원칙과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역사(歷史)가 만들어진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초기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유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본성이 있기 때문이다. 몇 년 동안 하나님을 믿어 온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고, 그 외에 사람의 패괴 성품까지 더해졌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성육신하기 전에는 사람이 하늘의 하나님이 정해 준 율례를 준수하는지에 따라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는지 아닌지를 판단했다. 예를 들면, 율법시대에는 여호와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 간주되었다. 여호와의 제물을 훔쳐 먹는 자, 여호와가 중히 여기는 사람을 대적하는 자는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 돌에 맞아 죽을 대상으로 간주되었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 사람을 때리거나 욕하는 자는 모두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에 해당되었고, 여호와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는 다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로 간주되었다. 은혜시대에 이르러서는 달라졌다. 예수를 대적하는 자는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으로 간주되었고, 예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는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으로 간주되었다. 이 시기에는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것에 대한 정의가 더욱 정확하고 실제적이었다. 하나님이 성육신하기 전에는 보이지 않는 하늘의 하나님을 경배하고 앙망하는지에 따라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는지 아닌지를 판단하였다. 그때는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것에 대한 정의가 그렇게 실제적이지 않았다. 사람이 하나님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형상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사역하는지, 어떻게 말씀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관념이 전무했고, 그저 막연하게 하나님을 믿었다. 따라서 사람이 하나님을 어떻게 상상해서 믿든 하나님은 사람을 정죄하지 않았으며 사람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사람이 하나님을 전혀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사람들 사이에서 사역했을 때 사람은 하나님을 보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으며, 하나님이 육신을 통해 행하는 행사를 보게 되었다. 그때 사람이 가지고 있던 모든 관념은 산산이 부서졌다. 그러나 육신으로 나타난 하나님을 본 사람이 진심으로 순종한 경우에는 정죄받지 않았고, 반대로 의도적으로 대적한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으로 간주되었다. 그런 사람이 바로 적그리스도이고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이다. 하나님에 대한 관념이 있음에도 기꺼이 순종하는 사람은 정죄받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과 생각에 따라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속셈과 행실에 근거하여 정죄한다. 사람의 마음과 생각에 따라 정죄한다면 아무도 노한 하나님의 두 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성육신 하나님을 의도적으로 대적하는 사람은 모두 그들의 불복으로 인해 징벌을 받는다. 이처럼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는 근원은 하나님에 대한 관념 때문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일을 저지르는 것이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대적하고 허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관념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일을 저지르기 때문에 정죄받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지 않는 사람은 정죄받지 않는다. 하나님께 진심으로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역을 가로막거나 방해하는 일을 저지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정죄받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역을 여러 해 동안 체험하고도 여전히 하나님에 대한 관념을 갖고 있고 성육신 하나님의 사역을 알지 못하며, 아무리 오랫동안 체험해도 여전히 하나님에 대한 관념으로 가득하고 하나님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은 설사 방해하는 일을 저지르지 않는다 해도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관념이 아주 많으며, 비록 그러한 관념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해도 하나님을 위해 복음을 전하지도, 하나님을 위해 굳게 서지도 못하므로 하나님의 사역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얼간이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에 대한 관념을 조금도 내려놓지 못하므로 정죄받는다. 다시 말해, 사람이 하나님을 갓 믿기 시작할 때 하나님에 대해 관념을 가지거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은 정상적인 일이나,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을 믿고 수많은 사역을 체험한 후에도 여전히 하나님에 대한 관념을 가진다면 이는 비정상적인 것이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은 더더욱 비정상적인 것이다.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므로 정죄받게 된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사람은 모두 쓸모가 없는 사람, 하나님을 가장 심하게 대적하는 사람, 하나님의 은혜를 공짜로 누리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궁극적으로는 도태될 사람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94)

하나님 사역의 근본 취지를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하나님 사역의 근본 취지를 알면서도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더더욱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대예배당에서 성경을 읽는 사람들은 하루 종일 성경을 외우지만, 하나님 사역의 근본 취지를 깨닫거나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수 있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그들은 모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소인배이고, 높은 곳에서 ‘하나님’을 가르치는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내세우면서도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명목하에 사람의 살을 먹고 사람의 피를 마시는 자들이다. 그런 자들은 사람의 영혼을 삼키는 악마이며, 사람이 올바른 길을 가지 못하도록 의도적으로 방해하는 마왕이자,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의 걸림돌이다. 그들이 비록 ‘건장하고 튼튼할’지라도,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이 어찌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길로 사람을 이끌어 가는 적그리스도임을 알겠느냐? 어찌 그들이 전문적으로 사람의 영혼을 삼키는 산 귀신임을 알겠느냐?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는 자는 가장 비천한 자이며, 스스로를 천하게 여기는 자는 가장 귀한 사람이다. 스스로 하나님의 사역을 안다고 여기고, 또한 눈으로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여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멋대로 전하는 자는 가장 무지한 사람이다. 이런 자들은 다 하나님의 증거가 없는 사람이며, 교만하고 잘난 척하는 사람이다. 반대로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지만 실제적인 체험이 확실히 있고 하나님에 대한 실질적인 인식을 얻은 사람은 하나님께 가장 사랑받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진정으로 증거가 있는 사람이며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될 수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진리를 실천하지 않는 사람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면서도 하나님 말씀의 본질을 위배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고, 성육신 하나님에 대해 관념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거역하는 사람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판단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증거하지도 못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충고하겠다. 너희에게 이 길을 갈 수 있는 믿음이 정말 있다면 계속해서 따르고,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면 일찌감치 떠나라. 그러지 않으면 아주 위험할 것이다. 너희의 본성이 너무도 패괴되었기 때문이다. 너희에게서는 충성심과 순종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고, 공의와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 하나님에 대한 사랑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너희는 엉망진창인 상태로 하나님을 마주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못하고,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며, 실행에 옮겨야 할 것을 실천하지 못하고, 자기의 기능마저 발휘하지 못하며, 마땅히 갖추어야 할 충성심과 양심, 순종, 의지도 없고, 겪어야 할 고난을 회피하고 마땅히 가져야 할 믿음도 갖추지 못했다는 얘기다. 좋은 점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으면서 너희가 무슨 낯짝으로 살아가고 있단 말이냐? 그래서 나는 너희에게 차라리 빨리 눈을 감으라고 하고 싶다. 그러면 하나님이 너희를 위해 더 이상 심려하지 않고 고난받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너희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면서도 하나님의 요구대로 하지 못한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며, 삶에 분투 목표도 없고, 무가치하고 무의미한 삶을 살아간다. 사람임에도 일말의 양심도, 인격도, 신용도 없다. 이런데도 너희를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기만하고, 하나님의 돈을 욕심내며, 하나님의 제물을 먹는 것도 모자라 결국에는 여전히 하나님을 인정 없이 대하고 일말의 양심도 없이 대하며, 하나님의 작은 요구조차 충족시키지 못한다. 이런데도 너희를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밥을 먹고, 하나님의 공기를 마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면서도 결국에는 하나님을 알기는커녕 하나님을 대적하는 쓸모없는 얼간이로 전락했다. 이것이 개보다도 못한 짐승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이냐? 동물 중에 너희보다 더 악독한 존재가 어디 있단 말이냐?

높은 강단에 서서 사람을 가르치는 목사나 장로는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이며, 사탄의 동맹이다. 그러나 높은 강단에 서지 않고도 사람을 가르치는 너희는 하나님을 더 대적하지 않느냐? 더더욱 사탄과 결탁한 자들이 아니냐? 하나님 사역의 근본 취지를 모르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수 있는지 모른다. 하나님 사역의 근본 취지를 아는 사람도 설마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수 있는지 모른단 말이냐? 하나님의 사역은 틀릴 리 없다. 다만 사람의 추구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간 말종들은 목사나 장로보다 더 음흉하고 악랄한 자들이 아니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은 참으로 많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상태는 천태만상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각양각색이며, 또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도 다양하고 각양각색이다. 하나님 사역의 근본 취지에 대해 확실히 알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구원을 얻을’ 수 없다. 과거에 얼마나 하나님을 대적했든 하나님 사역의 근본 취지를 깨닫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하나님은 과거의 죄를 다 탕감해 준다. 사람이 진리를 구하고 실천할 수만 있다면 하나님은 사람이 저지른 모든 일을 마음에 두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진리를 실천함으로 인해 그 사람을 의롭다고 인정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을 보기 전이나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기 전에는 하나님을 어떻게 대하든 마음에 두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한 후에는 사람의 모든 행동이 하나님의 ‘사서(史書)’에 기록된다. 사람이 하나님을 보았고 하나님의 사역 속에서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진정으로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함, 하나님의 지존 무상함을 보고, 하나님의 사역을 진정으로 알고, 옛 성품에 변화가 생겼을 때 하나님을 대적하는 패역 성품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다시 말해, 누구나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한 적이 있지만, 네가 성육신 하나님께 순종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앞으로 충성을 다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며, 네가 행해야 할 진리를 실천하고, 너의 본분을 이행하며, 네가 지켜야 할 규정을 지킨다면, 너는 패역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만족게 하려는 사람이자,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될 사람이다. 반대로 네가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 뉘우치는 마음이 없이 패역 행위를 계속해 나가면서 하나님과 협력하거나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할 생각이 전혀 없다면, 너와 같이 고집불통인 사람은 확실히 징벌받을 대상이지 온전케 될 대상은 절대 아니다. 그러면 너는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여전히 하나님의 원수로 남게 될 것이다. 네가 영원히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 하나님의 원수로 남는다면 하나님이 과연 너 같은 사람을 용서하겠느냐?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람은 본성을 바꾸기 어렵다는 이유로 고의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비결’을 찾아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너는 일찌감치 떠나는 편이 낫다. 더 무거운 형벌을 받지 않도록, 또한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야만적인 행동을 하여 하나님께 육신이 제거되지 않도록 말이다. 너는 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 것인데 결국에 화를 입게 된다면 얼마나 헛된 일이겠느냐! 그래서 나는 너희에게 따로 계획을 세울 것을 권하겠다. 뭘 해도 하나님을 믿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느냐! 꼭 이 길을 가야만 하겠느냐? 진리를 구하지 않아도 살 수 있지 않더냐? 굳이 이렇게 하나님과 맞설 이유가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95)

나는 인간 세상에서 많은 사역을 행하면서 그동안 많은 말을 했다. 그것은 사람을 구원하는 말이자 사람으로 하여금 내 마음에 합하게 하기 위한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땅에서 내 마음에 합하는 사람을 많이 얻지는 못했다. 그렇기에 나는 사람들이 내 말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사람은 모두 내 마음에 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듯 내가 사역을 하는 이유는 사람이 나를 경배하도록 하는 데 있고, 더 중요한 이유는 사람이 내 마음에 합하도록 하는 데 있다. 패괴된 사람은 모두 사탄의 올무에서 살아가고, 자신의 육, 그리고 사욕으로 살아가며, 내 마음에 합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내 마음에 합했다고 자칭하는 자들은 모두 막연한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나의 이름을 거룩하다 칭하지만, 그들이 행하는 도는 나와 상반된다. 그들의 말에는 교만함과 자신감이 가득 배어 있다. 그들은 본래 나를 적대시하는 자들이고 내 마음에 합하지 않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날마다 성경에서 나의 종적을 찾으며, 내키는 대로 ‘적합한’ 구절을 찾아 하염없이 읊조리는가 하면, ‘경전’으로 삼아 외우기까지 한다. 그들은 내 마음에 합하는 방법을 모르고, 무엇이 나와 적대되는 것인지도 모른 채 그저 ‘성경’만 읽을 뿐이다. 그들은 아예 본 적도 없고 볼 수도 없는 막연한 하나님을 성경에 국한시키고, 여유가 생길 때면 꺼내어 보곤 한다. 그들은 성경의 범위 안에서 내 존재를 믿는다. 그들은 ‘성경’이 없으면 ‘나’도 없고 ‘내’가 없으면 ‘성경’도 없다며 ‘나’와 ‘성경’을 동일시한다. 그들은 내 존재와 내 행사에는 전혀 관심이 없지만, 성경 구절 하나하나에 대한 관심은 매우 각별하다. 심지어 적지 않은 이들이 성경의 예언이 없다면 내가 하고자 하는 그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성경 구절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데, 글귀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성경 장절로 내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가늠하고, 나를 정죄하기까지 한다. 그들이 찾는 것은 성경 글귀에 부합하는 길이지, 내 마음에 합하는 길이나 진리와 합하는 길이 아니다. 성경과 맞지 않는 것은 다 나의 사역이 아니라 여기니, 이런 자들은 바리새인의 충실한 자손들 아니겠느냐? 유대의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율법으로 예수를 정죄하였다. 그들은 당시 예수의 마음에 어떻게 합할 것인지는 찾지도 않으면서 율법 구절 하나하나는 진지하게 대했다. 그러다가 결국 예수에게 구약 율법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과 메시야가 아니라는 죄명을 씌워 죄 없는 그를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하였다. 그들의 본질은 무엇이겠느냐? 진리와 합하는 길을 찾지 않은 것 아니겠느냐? 그들은 성경의 글귀에만 관심을 기울일 뿐, 내 뜻과 내 사역의 절차와 방식에는 털끝만큼도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진리를 찾는 사람이 아니라 글귀를 고집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성경을 믿는 사람들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모두 성경을 지키는 종들이었다. 그들은 성경의 이익과 존엄성, 그리고 성경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인자하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렇게 한 이유는 단지 성경을 옹호하고, 또 성경의 글귀가 사람의 마음에 자리 잡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까닭에 자신의 앞날을 망칠지라도, 속죄 제물을 얻을 수 없을지라도, 성경의 규정을 따르지 않는 예수를 죽이려 했던 것이다. 그런 그들을 성경 글귀의 앞잡이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렇다면 오늘날의 사람은 어떠하냐? 사람은 천국에 가거나 은혜를 받기 위해, 이 땅에 와서 진리를 선포하는 그리스도를 인간 세상 밖으로 내몰려 하였다. 또한 성경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진리의 도래를 완전히 말살하려 하였으며, 성경이 영원히 존재하도록 하기 위해, 두 번째 육신으로 돌아온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또다시 못 박으려고 하였다. 사람의 마음이 이토록 악독하고, 그 본성이 나를 이토록 적대시하는데 어찌 나의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느냐? 사람은 내가 그들 가운데서 살아도 나의 존재를 모르고, 나의 빛을 밝게 비추어 주어도 여전히 나의 존재에 대해 모른다. 나의 진노가 사람에게 닥칠 때면 나의 존재를 더욱 부인한다. 사람은 저마다 글귀와 어우러지고 성경과 합하기를 구하지만, 어느 누구도 내 앞에 와서 진리와 합하는 길을 찾지는 않는다. 사람은 모두 천상에 있는 나를 앙망하고, 천상에 있는 내 존재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지만, 육신으로 살아가는 나는 개의치 않는다.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가는 내가 너무도 보잘것없기 때문이다. 내 눈에는 오직 성경 글귀에 합하기만을 구하고, 막연한 하나님과 합하기만을 구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비천해 보인다. 그들이 숭배하는 대상은 죽은 글귀와 자신들에게 헤아릴 수 없는 재물을 베풀어 주는 하나님, 그리고 사람의 지배를 받는 존재하지 않는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이런 자들이 나에게서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느냐? 사람의 비천함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나를 적대시하는 자들, 나에게 끝없이 요구하는 자들,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자들, 나를 거역하는 자들이 어떻게 내 마음에 합할 수 있겠느냐?

나를 적대시하는 자는 내 마음에 합하지 않는 사람이고, 진리를 좋아하지 않는 자 또한 내 마음에 합하지 않는 사람이다. 나를 거역하는 자는 더더욱 나를 적대시하고, 내 마음에 합하지 않는 사람이다. 나는 내 마음에 합하지 않는 모든 자들을 악한 자의 손에 넘겨 악한 자에 의해 패괴되게 하고, 그들의 악행이 다 드러나게 할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악한 자에게 넘겨주어 집어삼키게 할 것이다. 나는 나를 경배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바꾸어 말하면, 나는 내 마음에 합하는 사람의 숫자에만 관심이 있지, 나를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에는 무관심하다는 의미이다. 내 마음에 합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나를 배반한 악인이자 원수로, 굳이 그 원수를 내 집에서 ‘떠받들’ 리가 없다. 내 마음에 합하는 사람은 영원토록 내 집에서 나를 섬기겠지만, 나를 적대시하는 자들은 나의 징벌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성경의 글귀에만 신경 쓸 뿐, 진리와 내 발걸음을 찾는 일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자들은 모두 나를 적대시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나를 성경에 국한시키고, 성경 안의 존재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에 대한 크나큰 모독인데 그들이 어찌 내 앞에 올 수 있겠느냐? 그들이 중시하는 것은 나의 행사와 나의 뜻, 진리가 아니라 글귀, 그것도 사람을 죽이는 글귀이다. 이런 자들이 어찌 내 마음에 합할 수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는 마땅히 그리스도와 합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96)

예수가 성육신한 사실이 있은 뒤부터 사람은 하늘에는 아버지뿐만 아니라 아들이 있고 심지어는 영까지 있다고 여겼다. 사람은 전통적인 관념으로 하늘에는 이런 하나님, 즉 성부와 성자, 성령이라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있다고 여겼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은 한 분이지만 그 한 분의 하나님에게는 세 부분이 있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바로 전통적인 관념에 심각하게 사로잡힌 모든 사람이 생각하는 성부와 성자, 성령이라는 세 부분이다. 오직 이 세 부분이 합쳐져야만 하나님의 전부가 된다고 한다. 성부가 없으면 하나님의 전부가 아니고, 성자 또는 성령이 없어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관념적으로 성부나 성자는 단독으로 하나님이라고 일컬을 수 없고, 오직 성부와 성자, 성령이 합쳐져야만 하나님 자신이라고 일컬을 수 있다고 여긴다. 지금까지도 모든 종교 신자, 나아가 너희 가운데 따르고 있는 모든 사람들까지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인식이 과연 옳은지 그른지는 아무도 분명하게 말하지 못한다. 너희는 하나님 자신의 일에 대해 언제나 흐릿하기 때문이다. 관념적인 인식일지라도 너희는 그것의 옳고 그름을 알지 못한다. 너희는 종교적 관념에 심하게 물들었고, 종교적 전통 관념을 너무 깊이 받아들여 매우 심각하게 중독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너희는 이 일에서도 전해 내려온 독소에 중독되었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아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성부와 성자, 성령이라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 사람의 전통 관념이자 그릇된 인식 방법이다. 수많은 세기(世紀)를 거쳐 오면서 사람은 모두 머릿속 관념으로 상상해 내고 또 사람 스스로 만들어 낸,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믿고 있다. 오랜 세월, 수많은 성경 해석가들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참뜻’을 해석한 바 있다. 하지만 해석한 자들도 서로 위격이 다른 그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애매모호해하며, 분명하게 해석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구조’에 대해서 어리둥절해한다. 그 어떤 위대한 인물도 명확하게 해석하지 못했다. 대부분 이치나 문자적으로는 통할 수 있었지만, 그 내포된 뜻을 완전히 명확하게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그런 ‘위대한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결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은 ‘하나님의 본래 모습’을 본 적이 없으며, 운 좋게 하나님의 처소를 유람하면서 하나님의 침상에 도대체 어떤 물건이 있고, ‘하나님의 집’에는 도대체 몇만 세대 또는 몇억 세대가 있는지, 하나님의 고유한 구조는 도대체 몇 부분으로 이루어졌는지 조사한 사람 또한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조사할 내용 중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성부의 나이가 얼마나 되었고, 성자의 나이와 성령의 나이는 또 얼마나 되었는지, 그들은 각자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도대체 어떻게 분리되고 또 어떻게 일체가 되는지 등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그 누구도 이런 일들을 조사해 내지 못했기에 사람은 모두 ‘추측’만 해야 하는 상황이다. 삼위일체의 하나님께 관심을 기울이는 열성적이고 경건한 모든 종교 신자에게 사실의 진상을 보고하기 위해 하늘에 올라가서 유람한 다음 전 인류에게 ‘조사 보고’를 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에게 이런 관념이 있다고 해서 사람만 탓할 수는 없다. 성부인 여호와 자신이 인류를 창조할 때 성자 예수를 곁에 두지 않은 탓 아니겠느냐? 그들이 당시에 다 여호와라고 불렸다면 좋았을 것이다. 탓하려면 세상을 창조할 때 한순간의 실수로 성자와 성령을 곁에 불러 놓지 않고 혼자 사역한 여호와 하나님을 탓해야겠구나. 그들이 동시에 사역했다면 하나가 되지 않았겠느냐? 처음부터 끝까지 여호와의 이름만 있고 은혜시대에 예수의 이름이 없었거나 여전히 여호와로 불렸다면, 하나님이 인류에 의해 분리되는 고통을 겪지는 않았을 것 아니겠느냐? 물론, 이 모든 것에 있어 여호와만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탓하려면 수천 년 동안 줄곧 이렇게 역사하면서 여호와라 불리기도 하고 예수라 불리기도 하며 또 무슨 성령이라고 불리기도 하면서 사람을 혼란스럽게 하여 도대체 누가 하나님인지 모르게 한 성령을 탓해야 할 것이다. 성령 자신이 형체도 모양도 없이 역사하고, 더욱이 예수 같은 이름도 없으며, 사람이 만질 수도 볼 수도 없이 그저 천둥 치는 소리만 들을 수 있었다면, 이런 사역이 사람에게 더 도움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그렇지 않으냐? 이제 어떻게 해야겠느냐? 사람의 관념은 쌓여서 산이 되고 또 모여서 바다가 되어 오늘날의 하나님이 참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으니, 정말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이전에 여호와와 예수, 그리고 그들 사이의 성령, 이 세 분에 대해 사람이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는데, 오늘날 ‘전능자’ 한 분이 더 추가되고 그 역시 ‘하나님의 일부분’이라고 하니 그가 또 삼위일체의 하나님 중에 어느 위격에 해당하며 얼마나 오랫동안 숨겨져 있던 분인지 누가 알 수 있겠느냐? 사람이 이것을 어떻게 감당해 낼 수 있겠느냐? 삼위일체 하나님을 해석하는 데만 평생을 들여도 모자랄 판인데, 오늘날 한 분이 더 추가되어 ‘사위일체 하나님’이 되었으니 이를 어떻게 해석하겠느냐? 네가 해석할 수 있겠느냐? 형제자매들아! 너희는 이런 하나님을 어떻게 오늘날까지 믿어 왔느냐? 나는 정말 너희에게 탄복한다. 삼위일체의 하나님만 해도 너희가 감당하기 버거울 텐데, 오늘날의 사위일체 하나님을 이렇게 견실하게 믿을 수 있다니 말이다. 너희에게 나가라고 하는데도 나가지도 않다니 참으로 놀랍구나! 너희는 정말 대단하구나! 사람 혼자서 ‘네 분의 하나님’을 믿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혀 개의치 않아 하다니 너희는 이것이 이적이라고 생각지 않느냐? 너희가 이렇게 큰 이적을 나타낼 줄은 정말 몰랐구나! 너희에게 알려 주겠는데, 사실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우주 위아래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께는 아버지도 아들도 없고, 더욱이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사용하는 도구가 성령이라는 이런 학설도 없다. 이것은 모두 전혀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가장 그릇된 논리이다! 하지만 이 그릇된 논리 또한 ‘근원’이 있고 근거가 아예 없지는 않다. 너희 인간들의 머리는 결코 단순하지 않으며, 너희의 구상 역시 이치가 없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합당하고 교묘하여, 심지어는 그 어떤 사탄도 깨부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단지 아쉬운 것은 그것이 전부 결코 존재하지 않는 그릇된 논리라는 것이다! 너희는 사실의 진면목을 전혀 보지 못한 채 그저 추리와 상상만 하고 있다. 그러고는 일련의 이야기를 지어내어 사람들의 신뢰를 편취하고, 누구보다 어리석고 생각이 없으며 이성도 없는 사람들을 마음대로 다루어 그들이 너희의 위대하고 저명한 ‘전문가 학설’을 믿게 만들었다. 그것이 진리이냐? 그것이 사람이 마땅히 받아들여야 할 생명의 도이냐? 모두 허튼소리이다! 합당한 말이 하나도 없다! 오랜 세월 동안 너희는 ‘하나님’을 이렇게 나누어 왔다. 심지어 너희는 한 세대 한 세대 지나며 더 세밀하게 나누다가 공개적으로 한 분의 하나님을 세 분으로 나누기에 이르렀다. 이제 사람은 결코 하나님을 다시 합칠 수가 없게 되었다. 너희가 하나님을 너무 세밀하게 나누었기 때문이다! 내가 일찌감치 이 사역을 행하지 않았다면, 너희는 언제까지 미쳐 날뛰었을지 모른다! 이렇게 나누어 가는데도 하나님이 계속 너희의 하나님일 수 있겠느냐? 너희가 그래도 하나님을 알 수 있겠느냐? 너희가 뿌리를 찾아 돌아올 수 있겠느냐? 내가 한발 늦게 왔더라면, 너희는 예수와 여호와, 이 ‘두 부자(父子)’를 이스라엘로 쫓아내고 너희 자신을 하나님의 일부라고 일컬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지금은 말세다. 겨우 오늘날까지 기다려 내가 친히 이 단계 사역을 행하고 나서야 ‘하나님 자신’을 나누는 너희의 사역을 제지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너희는 나눌수록 더 심해졌을 것이고, 심지어는 너희 가운데 있는 모든 사탄을 너희의 상 위에 놓고 섬겼을 것이다. 이것은 모두 너희의 수법, 즉 ‘하나님’을 나누는 수법이다! 너희는 아직도 나누고 있느냐? 너희에게 묻겠다. 하나님은 도대체 몇 분이냐? 어느 하나님이 너희를 구원하러 오느냐? 너희가 온종일 기도하는 분은 첫째 하나님이냐, 둘째 하나님이냐, 아니면 셋째 하나님이냐? 너희가 온종일 믿고 있는 분은 도대체 어느 하나님이냐? 아버지이냐, 아니면 아들이냐? 아니면 영이냐? 말해 보아라. 너는 도대체 누구를 믿느냐? 그러면서도 말끝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구나. 사실 너희가 믿는 것은 모두 너희의 ‘머리’이다! 너희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아예 없다. 너희 머릿속에 있는 것은 수많은 ‘삼위일체 하나님’이다! 말해 보아라. 그렇지 않으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존재하는가?>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97)

삼위일체설에 따라 세 단계 사역을 따져 보면, 세 분의 하나님이 행한 사역이 다르기 때문에 그들은 세 분인 것이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확실히 존재한다고 말한다면, 너는 도대체 무엇이 삼위일체인지 설명할 수 있겠느냐? 성부는 무엇이냐? 성자는 무엇이냐? 성령은 무엇이냐? 성부가 바로 여호와이냐? 성자가 바로 예수이냐? 성령은 또 무엇이냐? 아버지는 영 아니더냐? 아들의 본질 또한 영 아니더냐? 예수가 행한 사역은 성령이 행한 것 아니더냐? 당시 여호와가 행한 사역 또한 예수의 영과 같은 한 분의 영이 행한 것 아니더냐? 하나님께는 영이 몇이나 존재할 수 있겠느냐? 너의 주장대로 성부와 성자, 성령이 삼위일체라면, 영이 세 분인 것이고, 영이 세 분이면 하나님도 세 분이 된다. 그렇게 되면 유일한 참하나님이 아닌데, 그러한 하나님에게도 하나님의 고유한 본질이 있겠느냐? 너는 하나님이 오직 한 분뿐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에게 어떻게 아들이 있고 또 아버지가 있겠느냐? 이것은 모두 너의 고정 관념 아니겠느냐? 성경에 ‘성령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라고 기록된 것처럼 하나님은 오직 한 분뿐이다. 하나님의 위격 또한 오직 하나이며, 하나님의 영은 오직 하나이다. 네가 말한 성부, 성자가 존재하는지와는 관계없이,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고 너희가 생각하는 성부, 성자, 성령의 본질 또한 모두 성령의 본질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영이 하나뿐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는 성육신하여 사람들 가운데서 생활할 수 있고, 만유를 초월할 수도 있다. 그의 영은 만유를 포함하는 영이기도 하고, 무소부재 하는 영이기도 하다. 그는 육신에 거할 수도 있고 동시에 전 우주의 위아래에 있을 수도 있다. 사람이 모두 하나님을 유일한 참하나님이라고 말하는 이상, 하나님은 오직 한 분뿐이니 그 누구도 제멋대로 나누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영이 오직 하나이며 위격도 하나뿐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이다. 네 말대로 성부와 성자, 성령이 있다면 하나님도 세 분 아니겠느냐? 성령은 성령대로 다르고, 성자는 성자대로 다르며, 성부 또한 성부대로 다르다면, 그들의 위격이 다를 뿐만 아니라 본질도 서로 다르다면 어떻게 한 하나님의 각 부분이 되겠느냐? 성령은 영이다. 이는 모든 사람이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성부는 더욱 영이다. 그는 인간 세상에 내려온 적도, 성육신한 적도 없으며 바로 사람 마음속의 여호와 하나님이다. 그 또한 필연적으로 영이다. 그렇다면 그 영은 성령과 무슨 관계가 있겠느냐?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겠느냐? 아니면 아버지의 영과 성령의 관계겠느냐? 그들 두 영의 본질은 같겠느냐? 아니면 아버지가 성령을 도구로 삼았겠느냐? 이것을 어떻게 설명하겠느냐? 성자와 성령은 또 무슨 관계겠느냐? 영과 영의 관계겠느냐, 아니면 사람과 영의 관계겠느냐? 이것은 모두 설명할 방법이 없는 일들이다! 그들의 영이 하나라면 세 위격이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이 소유한 영이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위격이 다르다면 강한 영도, 약한 영도 있을 수 있으며, 절대 영이 하나일 수 없다. 성부와 성자, 성령의 설은 가장 그릇된 말이다! 이런 말은 바로 하나님을 나눈 것이다. 세 조각으로 나뉜 하나님은 각각의 지위와 영을 가지고 있는데, 그럼에도 영이 하나이고 하나님이 한 분일 수 있겠느냐? 네가 말해 보아라. 천지 만물을 창조한 이는 성부이냐, 성자이냐, 아니면 성령이냐? 어떤 사람은 그들이 함께 창조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인류를 속량한 것은 성령이냐, 성자이냐, 아니면 성부이냐? 어떤 사람은 성자가 인류를 속량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성자의 본질은 또 누구이냐?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 아니더냐? 육신이 하늘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것은 창조된 사람의 입장에 서서 말한 것이다. 너는 예수가 성령으로 잉태되었음을 모르느냐? 그의 내면은 성령이다. 네가 어떻게 말하든 그는 여전히 하늘의 하나님과 한 분이다. 그는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이기 때문이다. 성자라는 말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한 분의 영이 행한 사역이고, 하나님 자신이 행한 사역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영이 행한 사역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은 누구이냐? 바로 성령 아니더냐? 예수에게 역사한 분은 성령 아니더냐? 성령(하나님의 영)이 역사한 것이 아니라면 그가 행한 사역이 하나님 자신을 대변할 수 있겠느냐? 지난날, 예수가 기도할 때 하늘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것은 단지 창조된 사람의 입장에 서서 부른 것이다. 그것은 그저 하나님의 영이 평범하고 정상적인 육신을 입었고, 피조물의 외형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내면은 하나님의 영일지라도 그의 겉모습은 여전히 정상적인 사람이었다. 다시 말해, 예수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말하는 ‘인자’가 된 것이다. 인자라고 한 이상,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의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을 가리킨다(남자든 여자든, 결국엔 다 사람의 외형이다.). 그러므로 예수가 아버지라고 부른 것은 너희가 처음에 하늘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것과 마찬가지로 창조된 사람의 입장에 서서 부른 것이다. 너희가 외웠던, 예수가 가르쳐 준 주기도문을 아직 기억하느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그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이렇게 하늘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했다. 또 그 역시 하늘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만큼, 너희와 평등한 위치에 서서 하늘의 하나님을 부른 것이다. 너희가 이렇게 하늘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이상, 예수는 자신을 너희와 평등한 지위를 가진 사람이자 하나님이 땅에서 택한 사람(하나님의 아들)으로 여긴 것이다. 너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면, 그것 또한 너희가 피조물이기 때문 아니겠느냐? 예수가 땅에서 얼마나 큰 권병을 가졌든,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까지 그는 여전히 성령(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인자이자 땅의 피조물 중 하나였다. 그는 사역을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늘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단지 자신을 낮추고 순종한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하나님(하늘의 영)을 그렇게 불렀다고 해서 그가 바로 하늘에 있는 하나님 영의 아들임이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다른 위치에 섰을 뿐이지 위격이 다른 것은 아니다. 위격이라는 그런 그릇된 논리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까지 육신의 제한을 받는 인자였으므로 영의 권병을 다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피조물의 위치에 서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만 했다. 그것은 그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면서 세 번 기도한 것과 같다.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그는 그저 유대인의 왕이자 인자, 그리스도였을 뿐, 영광의 몸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는 피조물의 위치에 서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러야 했다. 그러니 너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을 다 성자라고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말한다면 예수가 너희에게 기도문을 가르쳐 준 뒤부터 너희는 모두 ‘성자’가 된 것 아니겠느냐? 그래도 너희가 인정하지 못하겠다면 말해 보아라. 너희가 부르는 ‘아버지’는 누구를 가리키느냐? 예수를 가리킨다면 예수의 ‘아버지’는 또 너희에게 무엇이냐? 예수가 떠난 뒤로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 말은 단지 예수가 육신으로 있었던 몇 년 동안만 적용될 뿐이며, 그 밖에 너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의미한다. 어떤 때에도 성부와 성자, 성령이라는 삼위일체론은 결코 존재할 수 없다. 이는 천고에 보기 드문 그릇된 논리이며,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존재하는가?>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98)

많은 사람이 또 창세기에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 사람을 만들고”라고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연상할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형상을 따라 인류를 만들었다고 말씀한 만큼 ‘우리’는 둘 이상이고, ‘우리’라고 말씀한 만큼 하나님은 한 분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은 ‘위격’이 다를 것이라는 추상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 말씀을 토대로 성부, 성자, 성령이 생겨났다. 그렇다면 성부는 어떤 모습이냐? 성자는 어떤 모습이냐? 성령은 또 어떤 모습이냐? 설마 세 형상으로 있다가 합쳐진 형상에 따라 오늘의 인류를 만들었다는 것이냐? 그렇다면 사람의 형상은 도대체 성부를 닮았느냐, 아니면 성자를 닮았느냐, 그도 아니면 성령을 닮았느냐? 도대체 어느 위격의 하나님을 닮았느냐? 사람의 이런 말은 결코 옳지 않고 통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단지 하나님 한 분을 여럿으로 나눈 것에 불과하다. 모세가 창세기를 쓸 때는 세상 창조가 끝나 인류가 생긴 다음이었다. 세상을 창조할 때는 모세라는 사람이 존재하지도 않았다. 모세가 성경을 쓸 때는 이미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런데 그가 하늘의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했는지 알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할 때 도대체 어떻게 했는지는 모세도 전혀 몰랐다. 구약 성경에는 성부와 성자, 성령이라는 말이 없고, 오로지 유일한 참하나님 여호와가 이스라엘에서 사역했다는 내용만 있다. 시대가 달라짐에 따라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고 해서 이름 하나가 위격 하나를 가진다는 것을 증명할 수는 없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께는 무수히 많은 위격이 있지 않겠느냐? 구약에 기록된 것은 여호와가 행한 사역이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이 율법시대에 행한 시작의 사역으로, 있으라 명하면 생기고, 세워지라 명하면 세워지는 하나님의 사역이었다. 여호와는 단 한 번도 그가 성부로 사역하러 왔다고 말한 적이 없고, 성자가 인류를 속량하러 올 것이라고 예언한 적도 없다. 예수가 있던 그 당시에도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전 인류를 속량하러 왔다고만 했지, 성자가 왔다고 말한 적은 없다. 시대가 다르고 하나님이 행할 사역이 달랐기 때문에 서로 다른 차원에서 사역할 필요가 있었고, 그리하여 대표하는 신분 또한 달라진 것이다. 사람은 여호와가 예수의 아버지라고 여기지만, 예수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는 원래 아버지와 아들의 구분이 없느니라. 나와 하늘의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느니라. 사람이 아들을 본 것은 바로 하늘의 아버지를 본 것이니라.”라고 했다. 어떻게 말해도, 결국 아버지든 아들이든 모두 한 분의 영이고 위격의 구분이 없다. 그러나 사람이 말하면 복잡해지는데, 위격이 다르다고도 하고, 아버지와 아들과 영의 관계라고도 한다. 사람이 위격을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물질화하는 것 아니겠느냐? 또 첫째, 둘째, 셋째로 나누는 것 역시 모두 사람의 상상이다. 조금의 참고할 가치도 없고 현실적이지도 않다! 네가 그에게 하나님이 몇 분이냐고 묻는다면 그는 바로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 성령으로, 삼위일체의 유일한 참하나님이라고 말할 것이다. 네가 다시 그에게 성부는 누구냐고 묻는다면, 성부는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의 영이고, 모든 것을 주관하는 하늘의 총책임자라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여호와는 영이 아닙니까?”라고 물으면 그는 영이라고 말할 것이다! 네가 다시 성자는 누구냐고 묻는다면 성자는 당연히 예수라고 말할 것이다. “그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예수님은 어디에서 오셨습니까?”라고 물으면, 마리아에게서 났고, 성령으로 잉태되신 분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본질 또한 영 아니냐? 그가 한 사역도 성령을 대변하지 않느냐? 여호와는 영이고 예수의 본질 또한 영이다. 말세라는 이 단계에 이르러서는 더 말할 것도 없이 여전히 영인데, 그들에게 또 무슨 위격의 차이가 있겠느냐? 하나님의 영이 다른 위치에 서서 영의 사역을 행하는 것 아니냐? 그러니 위격의 구분이 없는 것이다. 그때 예수는 성령으로 잉태되었으므로 의심할 바 없이 예수의 사역 또한 성령의 사역이었다. 여호와가 행한 제1단계 사역에서 그는 성육신하지도, 사람에게 나타나지도 않았으므로 사람은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지 못했다. 그가 얼마나 높고 크든 그는 영이고, 처음에 사람을 만든 하나님 자신이며, 바로 하나님의 영이었다. 그는 구름 속에서 사람에게 말씀했지만 그저 영이었기에 그 누구도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지 못했다. 은혜시대에 하나님의 영이 육신에 오고, 성육신으로 유대에 임해서야 사람은 처음으로 성육신한 그의 형상이 유대인의 형상임을 보게 되었지만, 여호와라는 느낌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었다. 다시 말해, 여호와의 영으로 친히 잉태되었으므로 강생한 예수는 여전히 하나님 영의 화신이라는 말이다. 당시에 사람은 성령이 비둘기처럼 예수에게 임하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예수 자신이 전용하는 영이 아니라 성령이었다. 그런데 예수의 영이 또 성령과 분리될 수 있겠느냐? 예수는 예수이자 성자이고 성령은 성령이라면, 어떻게 하나일 수 있겠느냐? 그렇게 된다면 사역을 행할 수 없다. 예수 안에 있는 영과 하늘의 영, 그리고 여호와의 영은 모두 하나이다. 성령이라고도 불리고 하나님의 영이라고도 불리며 일곱 배 강화된 영이자 만유를 포함하는 영이라고도 불린다. 하나님의 영은 수많은 일을 할 수 있다. 그는 세상을 창조할 수 있고 홍수로 세상을 멸할 수도 있으며, 전 인류를 속량할 수도 있고, 더욱이 전 인류를 정복하거나 멸할 수도 있다. 이 사역은 모두 하나님 자신이 하는 사역이지, 그 어떤 위격의 신이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영은 여호와라고 부를 수 있고, 예수라고 부를 수도 있으며, 전능자라고 부를 수도 있다. 그는 주이고, 그리스도이며, 또한 인자가 될 수도 있다. 그는 하늘에도 있고 땅에도 있으며, 전 우주 위에도 있고 만인 가운데도 있는, 하늘과 땅의 유일한 주관자이다! 창세부터 지금까지 이 사역은 하나님의 영이 혼자 행했다. 하늘에서 행한 사역이든 육신으로 행한 사역이든 모두 그의 고유한 영이 행한 것이다. 하늘의 피조물이든 땅의 피조물이든 모두 그의 전능한 손에 지배되며, 모든 것이 하나님 자신의 사역이므로 그 누구도 대신하지 못한다. 그는 하늘에서 영이고, 또한 하나님 자신이다. 그가 사람 가운데서 육신으로 있을지라도 그는 여전히 하나님 자신이다. 그의 이름이 수없이 많을지라도 결국에는 하나님 자신이며, 모든 것이 다 그의 영의 직접적인 선포이다. 십자가에 달려 전 인류를 속량한 것은 그의 영이 직접 역사한 것이고, 말세에 각 나라와 지역에 알리는 것 역시 그의 영이 직접 역사하는 것이다. 어느 때든 하나님은 오직 전능하고 유일한 참하나님, 만유를 포함하는 하나님 자신이라 불린다. 위격은 절대 존재하지 않고, 성부와 성자, 성령이라는 설은 더욱 존재하지 않는다. 천상천하에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존재하는가?>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99)

하나님의 경륜은 총 6천 년이며, 사역이 서로 다른 관계로 세 시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시대는 구약의 율법시대이고, 두 번째 시대는 은혜시대이며, 세 번째 시대는 마지막 시대에 속하는 하나님나라시대(역주: 왕국시대)이다. 각 시대에서 대표하는 신분은 모두 다른데, 그것은 다만 사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즉, 사역의 필요로 말미암은 것이다. 첫 번째 단계인 율법시대의 사역은 이스라엘에서 행했다. 두 번째 단계인 구속 사역은 유대에서 완성했다. 당시 예수는 구속 사역을 해야 했기 때문에 성령으로 잉태되어 독생자가 되었다. 이것은 모두 사역의 필요로 인해 정해진 것이다. 말세에 하나님은 사역을 이방으로 확장한다. 그는 이방인을 정복하는 사역을 하여 그의 이름이 이방인들 가운데서 크게 높임 받게 할 것이다. 또한 사람이 모든 진리를 깨닫고, 거기에 진입하도록 인도할 것이다. 모든 사역은 한 분의 영이 한다. 서는 위치는 다르지만, 사역의 성질과 원칙은 모두 같다. 너는 그들이 사역하는 원칙과 사역의 성질을 보고, 모든 사역은 한 분의 영이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또 성부는 성부이고, 성자는 성자이고, 성령은 성령이며, 궁극적으로 그들이 합쳐져서 하나가 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너는 어떻게 그들을 하나로 합치겠느냐? 성부와 성령을 어떻게 하나로 합쳐야겠느냐? 원래 둘이었다면 어떻게 합치든 여전히 두 부분 아니겠느냐? 합친다는 말은 서로 다른 두 부분이 함께 모여 하나의 전체가 되는 것 아니더냐? 그러나 그들이 하나의 전체가 되기 전까지는 두 부분 아니겠느냐? 한 분의 영은 하나의 본질이므로 두 영을 하나로 합칠 수는 없다. 영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며, 물질세계의 것과는 다르다. 사람은, 성부는 한 분의 영이고, 성자도 한 분의 영이며, 성령 또한 한 분의 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세 영을 마치 세 잔의 물처럼 하나의 전체가 되게 합친다면 하나로 합쳐지는 것이 아니냐고 한다. 이것은 순전히 그릇된 해석이다! 이는 하나님을 나누는 것 아니겠느냐? 성부와 성자, 성령이 어떻게 하나로 합쳐지겠느냐? 그들은 성질이 다른 세 부분 아니더냐?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라고 말한다. 예수를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라고 말씀한 것은 당연히 하나님 자신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스스로 자신을 증거한 것으로, 단지 다른 위치에 서서 그 자신을 증거하고 하늘에서 영의 위치에 서서 그가 입은 육신을 증거한 것에 불과하다. 예수는 그가 입은 육신이지 하늘에 있는 그의 아들이 아니다. 너는 이해하겠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다”라는 예수의 말씀은 그들의 영이 원래 하나임을 가리키는 것 아니겠느냐? 성육신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위아래로 분리된 것 아니겠느냐? 사실은 여전히 하나이다. 어찌 됐든 이는 하나님 스스로 자신을 증거한 것이다. 시대의 다름과 사역의 필요성, 그리고 경륜 절차의 차이로 말미암아 사람이 그를 부르는 호칭 또한 달라졌다. 제1단계의 사역에서는 여호와라고만 부를 수 있었으며, 그는 이스라엘 사람의 목자였다. 제2단계에서는 성육신 하나님을 주님, 또는 그리스도라고만 부를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하늘의 영은 그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했을 뿐, 하나님의 독생자라고는 하지 않았다. 그런 말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께 어떻게 독생자가 있겠느냐? 그렇다면 하나님은 사람이 되지 않겠느냐? 성육신했기에 그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불렸다. 그리하여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생겨났는데, 그것은 단지 하늘과 땅에 있는 차이로 말미암은 것이다. 예수는 육신의 위치에 서서 기도했다. 그는 정상 인성을 가진 육신을 입었기에 육신의 위치에 서서 “나의 외형은 피조물이다. 나는 육신을 입고 땅에 왔으므로 하늘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그는 육신의 위치에 서서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그의 본분이었고, 하나님의 영이 성육신하여 마땅히 갖춰야 하는 것이었다. 그가 육신의 위치에서 아버지께 기도했다고 해서 그를 하나님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그를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한대도, 그는 여전히 하나님 자신이다. 그는 단지 영이 입은 육신일 뿐, 본질은 여전히 영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하나님 자신이면서 왜 기도하지?’라고 여길 수 있다. 그것은 단지 그가 성육신한 하나님,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이지, 하늘에 있는 영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성부와 성자, 성령은 모두 하나님이고, 그 세 분이 하나로 합쳐져야만 유일한 참하나님이라고 불린다고, 그러면 능력이 매우 클 것이라고 여긴다. 또 어떤 사람은 “그래야 일곱 배로 강화된 영이시지. 성자가 오셔서 기도했는데, 바로 그 영께 기도하신 거야.”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피조물의 위치에 서서 기도했다. 그것은 육신이 불완전했기 때문이다. 육신에 거하면 완벽하지 못하며 많은 연약함이 따르고, 육신으로 사역하면 많은 방해를 받게 된다. 그래서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아버지 하나님께 세 번 기도했다. 세 번 기도하기 전에도 여러 차례 기도한 적이 있었다. 제자들과 함께할 때도 기도하고, 혼자 산에 올라가서도 기도하고, 배 위에서도 기도했다. 또한 많은 사람 가운데서도 기도하고, 떡을 뗄 때도 기도하고, 사람에게 축복할 때도 기도했다. 그가 왜 그렇게 했겠느냐? 그가 기도한 대상은 영이었다. 그는 육신의 위치에 서서 영께,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래서 사람들 눈에 그 단계 사역에서 예수는 성자로 보인 것이다. 그럼 이 단계에서는 왜 기도하지 않겠느냐? 그가 가져온 것은 말씀의 사역이고, 말씀의 형벌과 심판이기 때문이다. 그는 기도할 필요가 없다. 그의 직분은 바로 말씀하는 것이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히지도 않고, 정권을 잡은 자들에게 넘겨질 일도 없으니, 곧바로 사역만 하면 된다. 지난날, 예수가 천국이 임하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은 앞으로의 사역을 위해서였다. 이번 단계에서는 천국이 이미 임했는데 그가 더 기도할 필요가 있겠느냐? 그가 하는 것은 시대를 끝내는 사역이기에 더 이상은 새로운 시대가 없다. 그런데 다음 단계를 위한 기도가 필요하겠느냐? 아마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의 말에는 모순되는 점이 수없이 많다. 물론 그 모든 것은 사람의 관념이다. 만일 추궁하지 않는다면 너희는 모두 옳다고 여길 것이다. 삼위일체 하나님과 같은 말들은 모두 사람의 관념이라는 것을 어찌 모른단 말이냐? 이를 완전히 아는 사람은 없다. 모두 불순물이 있으며, 사람의 뜻이 너무 많다. 이는 피조물은 결코 하나님이 행한 사역을 해석하지 못한다는 것을 설명한다. 사람은 생각이 너무 많다. 그것은 모두 논리와 사유에서 나왔으며, 진리에 상반된다. 너의 논리에 따라 하나님의 사역을 철저히 분석할 수 있겠느냐? 여호와가 행한 사역을 모두 분명하게 알 수 있겠느냐? 인간인 네가 한눈에 다 간파할 수 있겠느냐, 아니면 하나님이 영원부터 영원까지 꿰뚫고 있겠느냐? 네가 태초부터 영원까지 바라볼 수 있겠느냐, 아니면 하나님이 태초부터 영원까지 바라볼 수 있겠느냐? 너는 뭐라고 설명을 하겠느냐? 네가 무슨 자격으로 하나님을 해석하느냐? 네가 무엇을 근거로 해석하느냐? 네가 하나님이냐? 천지 만물은 하나님 자신이 창조한 것이다. 네가 창조한 것도 아닌데 왜 멋대로 해석하느냐? 너는 아직도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믿느냐? 그러면 너무 피곤하지 않으냐? 네가 세 분의 하나님이 아닌 한 분의 하나님을 믿기를 바랄 뿐이다. 역시 가벼운 것이 좋지 않겠느냐? 주의 짐은 가벼우니 말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존재하는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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