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조 그는 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이 아닌 오직 그에게 순종하도록 한다(3) 제 3 부

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이 아닌 오직 그에게 순종하도록 하는 적그리스도를 해부하다

4. 얼마간의 경험과 지식을 갖췄다고 진리의 화신으로 사칭하는 적그리스도를 해부하다

지난번에 적그리스도의 모습 중 제8조 ‘그는 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이 아닌 오직 그에게 순종하도록 한다’를 교제했다. 제8조는 총 네 가지 소주제로 나뉘는데, 앞의 세 가지는 교제를 마쳤다. 네 번째 소주제는 무엇이냐? (얼마간의 경험과 지식, 교훈을 갖췄다고 진리의 화신으로 사칭하는 것입니다.) 그게 제8조의 네 번째 소주제이다. 물론 네 번째 소주제 역시 이 주제의 한 측면의 모습에 관한 것이고 이 주제와 관련 있다. 주제가 무엇이냐? 그는 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이 아닌 오직 그에게 순종하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 이 소주제를 조금씩 나누어 말해 보자. 경험과 지식, 교훈이라는 이 몇 가지는 각각 무엇이겠느냐? 어떤 사람들이 갖추고 있겠느냐? 어떤 사람들이 이런 것들을 갖추기 좋아하겠느냐? 어떤 사람들이 진리는 중시하지 않으면서 이런 것들을 갖추는 것만 중시하겠느냐? 또 어떤 사람들이 이런 것들을 진리로 여길 수 있겠느냐? 우선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자질이 어떻고 깨닫는 능력이 어떻든 그들은 지식을 아주 좋아하고 진리 실제보다 지식을 더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고 추구하는 목표와 방향은 소위 경험과 지식을 어느 정도 얻는 것이다. 그들은 그런 지식과 경험으로 자신을 무장하고 포장해 자신을 더 품위 있고 격조 있고 교양 있게 만들고, 남들에게 더 우러름과 숭배를 받으려 한다. 그들은 그런 지식과 경험을 갖추고 있으면 더 가치 있고 보람차며 자신감 있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보기에,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그런 지식과 신학에 관한 말, 여러 측면의 상식과 지식, 교훈에 관한 말로 자신을 무장하기 위해서이다. 그들은 그런 것들을 갖추면 하나님 집과 그 무리에서 한자리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그들이 매일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숭배하고 추종하는 것은 모두 지식이나 경험 같은 것들과 관련 있다.

우선 지식과 경험, 교훈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어떤 것들을 진리의 화신으로 사칭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지 살펴보자. 먼저, 이 몇 가지는 틀림없이 진리와 무관하고 진리에 부합하지 않으며 진리에 위배된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은 사람의 관념 속에서는 옳은 것이고 긍정적인 사물이거나 아름답고 선한 사물일 수도 있지만, 사실상 하나님이 보기에는 진리와 무관하다. 심지어 이런 것들은 근본적으로 사람이 진리를 정죄하는 근원이고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거나 하나님에 대해 관념을 갖게 되는 근원이자 원천이다. 경험과 지식, 교훈 같은 것을 갖춘 사람들 간에 나이나 성별의 차이가 있느냐? (없습니다.)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은사를 가지고 있는데, 은사란 무엇이냐?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남이 한 가지 이론이나 주장을 얘기하는 것을 들으면 그런 이론의 핵심이나 기본 개념을 이해한 뒤 빠른 두뇌 반응으로 그런 이론이나 주장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어떻게 그것을 자신의 말로 바꿔 남에게 말하고 들려줄지 바로 알 수 있다. 그는 듣고 나면 금세 기억하는데, 깨닫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고 기억력이 특히 좋은 것이다. 이게 바로 일종의 특별한 은사이다. 이런 은사를 갖춘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있다. 그는 하나를 말하면 곧장 둘을 알고, 하나를 듣고 열을 안다. 들은 주제를 잘 활용해 자기 의견을 피력하고, 외부의 일부 사물이나 이론과 같은 논리, 글에 관한 것에 아주 능하다. 즉, 언어유희에 아주 능하고, 이론으로 남을 구슬리고 굴복시키는 데 능하다. 이런 은사를 가진 사람이 일부 있는데, 말재주가 특히 좋고 생각과 반응이 아주 민첩하다. 그는 한 측면의 진리를 들으면 자신의 잔재주와 은사로 그 측면의 진리를 일종의 지식과 학문으로 이해한다. 그런 다음 그런 학문을 이용해 남에게 교제하고 소위 양육하고 목양하는 사역을 한다. 이는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겠느냐? 좋은 효과가 있겠느냐? (없습니다.) 왜 그렇겠느냐? (실제적이지 않고 사람이 듣고 나서도 실행의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가 하는 말을 듣고 나서 전부 옳다고, 틀리거나 원칙에 위배되는 말은 한 마디도 없고 모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행할 때는 그 말이 공허하다고, 실행할 때 목표와 방향이 없어서 그것을 실행의 원칙으로 활용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다. 그럼 그 말은 무엇이겠느냐? (도리입니다.) 도리이고 지식이다. 적그리스도의 이런 모습은 매우 뚜렷하고 두드러진다. 그들은 진리를 지식이나 학술, 이론으로 여기고 늘 알 듯 말 듯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요구한다. 다른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고 자세히 말해 달라고 하면 명확히 말해 주지도 못하면서 반박까지 한다. “당신은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군요. 진리를 사랑한다면 제 말을 알아들을 수 있고 실행의 길이 생겼을 텐데 말이죠.” 일부 어리석고 분별없는 사람은 듣자마자 이렇게 말한다. “그러게 말이에요. 제가 정말로 진리를 사랑했다면 사람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겠죠.” 분별없는 사람은 그의 말이 옳다고, 자신이 진리를 깨닫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에게 책임을 돌린다. 그렇게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어 우왕좌왕한다.

다시 경험에 대해 얘기해 보자. 경험은 오랜 시간 겪은 것을 정리해 낸 일종의 행동 방식이다. 이틀 사역한 사람이 경험을 갖췄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10년, 20년 사역한 사람은 분명 경험을 갖췄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여러 해 동안 사역해서 경험을 갖췄으니, 어떤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어떤 사람에게 어떤 도리를 말해야 하는지 다 안다고 생각한다. 결국 어느 날 그가 알지 못하는 어떤 새로운 일이 발생하면 그는 지난 20년간 사역한 기록을 들춰 보며 궁리하다가 과거의 말과 행동 방식을 그대로 적용한다. 그가 그렇게 적용하면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은 그가 한 일이 진리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반면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보자마자 말한다. “저 사람은 제멋대로 사역하네요. 사역할 때 원칙이 없이 전부 경험에만 기대잖아요. 하나님의 뜻도 깨닫지 못하고,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고 하나님 집의 사람을 대하는 원칙에 부합하는지도 깨닫지 못한 채 아무렇게나 규례를 적용하는군요.” 여기에 문제가 있다. 보통 사람은 사역한 기간이 짧으면 “저는 경험이 있어서 두렵지 않아요. 사역을 그렇게 오래 했는데 제가 만나 보지 못한 사람이나 처리해 보지 못한 일이 어디 있겠어요?”라고 말할 밑천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 있게 그렇게 말한다. 설사 네가 많은 일을 처리해 봤고,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적지 않게 처리해 봤다 하더라도 네가 모든 일을 처리하고 모든 사람을 대할 때 다 진리 원칙에 맞게 행동한다고 확신할 수 있겠느냐? 사실상 감히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경험이나 공식을 진리로 여기는 사람은 누가 그에게 이의를 제기하면 “저는 오랜 세월 사역해서 당신보다 경험이 더 풍부해요. 감히 다른 의견을 내다니, 집에 돌아가서 기도나 제대로 하세요!”라고 말한다. 그의 앞에서는 아무도 감히 “아니요.”라고 말하지 못하고, 아무도 감히 다른 의견이나 다른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이를 뭐라고 하느냐? 이게 바로 경험을 진리로 여기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진리의 화신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저도 자신을 진리의 화신으로 여기지 않았어요. 감히 누가 진리의 화신을 자처하겠어요? 오직 하나님만이 진리이시죠. 저는 그렇게 행동하지도, 생각하지도 않았어요.” 너는 주관적으로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렇게 행동하려 하지도 않았지만, 객관적으로 네 행동 방식과 행위, 그리고 네가 그렇게 행동한 본질을 보면, 결국 네가 자신을 진리의 화신으로 여겼다고 규정할 수 있다. 왜 너는 네가 내놓은 제안에 사람들이 곧이곧대로 순종하도록 할 수 있겠느냐? 만약 네가 자신을 하나님으로 여기지 않고 평범한 사람이라면 네게 사람들을 순종하도록 할 자격이 있겠느냐? (없습니다.) 사람들이 네게 순종할 수 있는 상황은 하나뿐이다. 네가 진리를 깨달았을 때, 즉 네가 진리를 깨달은 사람일 때이다. 하지만 설사 네가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너는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인데, 평범한 사람이 진리의 화신일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이 한 말씀과 하나님이 사람에게 깨닫도록 요구한 진리를 모두 깨닫는다고 해서 진리의 화신이 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그건 아마 온전케 되지 않은 거겠죠. 베드로는 온전케 된 사람이니 진리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요?” 온전케 되더라도 진리의 화신은 아니다. 왜 그런지 아느냐? (본질에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본질에 차이가 있다. 이것이 한 가지 측면이다. 우리는 사람이 진리의 화신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말해 봐야 한다. 왜 사람은 진리의 화신이 될 수 없다고 하겠느냐? 진리의 화신이 단지 본질의 문제겠느냐? 누군가 말한다. “사람은 선천적으로 피조물이고 하늘의 그분은 선천적으로 창조주예요. 우리가 이 일에 대해 해명할 필요는 없어요. 하나님은 영원히 진리의 화신이시죠. 그럼 그리스도는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갖추었기 때문에 진리의 화신일까요? 만약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진리를 얻는다면 우리도 진리의 화신으로 불릴 수 있을까요?” 그러면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그럴 수 없어요. 예전에는 진리를 많이 깨달으면 그리스도가 되고 하나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제 본질은 교체하거나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들은 여기까지 이해한다. 그럼 이 일을 더 깊이 이해할 수는 없겠느냐? 내가 이 일을 교제하면 너희는 곧장 이해할 것이다. 진리의 화신을 언급해서 말인데, 그럼 화신이란 무엇이냐? 이 말은 조금 추상적이니 제일 간단한 말로 얘기해 보자. 하나님 자신은 바로 진리이고, 그는 모든 진리를 지니고 있다. 그는 진리의 원천이다. 모든 긍정적인 사물과 진리는 다 하나님에게서 왔고, 그는 만사 만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다. 그는 과거에 발생한 일이든, 현재 발생하고 있는 일이든, 아니면 앞으로 발생할 인류가 모르는 일이든 모두 판단할 수 있다. 하나님은 모든 사물의 옳고 그름을 판정할 수 있는 유일한 재판관이다. 즉, 모든 사물의 옳고 그름은 오직 하나님만이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모든 사물의 준칙을 알고 있고, 언제 어디서나 진리를 선포할 수 있다. 하나님이 곧 진리의 화신이다. 즉, 그 자신이 진리의 본질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아무리 많은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께 온전케 되었다고 해도 진리의 화신과 관계가 있겠느냐? 없다. 이는 틀림없는 것이다. 사람이 온전케 되면 하나님이 지금 행하는 이 모든 사역과 하나님이 요구한 여러 방면의 기준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게 되고, 정확한 실행 방법을 얻게 된다. 또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깨닫게 된다. 어떤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고 어떤 것이 사람으로부터 비롯된 것인지 분별할 줄 알게 되고,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릇된 것인지 알게 된다. 하지만 사람이 닿을 수 없고 꿰뚫어 볼 수 없는 일들도 있는데, 이런 것들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알려 주어야 알 수 있다. 하나님이 아직 사람에게 알려 주지 않은 일, 미지의 일은 사람이 알 수 있겠느냐? 사람이 예측할 수 있겠느냐? 절대 불가능하다. 이 밖에,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진리를 얻어 진리 실제를 갖추고, 수많은 진리의 본질을 깨닫고, 시시비비와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고 해도 사람에게는 모든 사물을 통제하고 주관할 능력이 있겠느냐? 사람에게는 이런 능력이 없다. 이것이 바로 사람과 하나님의 차이점이다. 피조물은 영원히 진리의 원천으로부터 진리를 얻을 뿐이다. 사람에게서 진리를 얻을 수 있겠느냐? 사람이 진리이겠느냐? 사람이 진리를 공급해 줄 수 있겠느냐? 불가능하다. 차이점이 바로 거기에 있다. 너는 진리를 받아들이기만 할 수 있을 뿐, 진리를 공급해 줄 수는 없다. 그렇다면 너를 진리를 갖춘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너를 진리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절대 불가능하다! 진리의 화신의 본질은 과연 무엇이겠느냐? 진리를 공급하는 원천이요, 모든 사물을 주관하고 주재하는 원천이요, 또한 만사 만물을 판단하는 유일한 준칙이자 기준이다. 이것이 바로 진리의 화신이다. 적그리스도의 부류는 흔히 이 점에 불복한다. 그들은 지식은 힘이고 경험은 사람이 자신을 무장해 강하게 만드는 무기라고, 사람이 경험과 지식, 교훈을 갖추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사람의 운명을 통제하고 사람의 사상을 통제하거나 좌우하며 나아가 사람의 행위도 좌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어떤 사람은 그런 것들이 사람을 가르치고 사람의 생각과 성품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어떤 생각이냐? (적그리스도의 생각입니다.) 이는 적그리스도의 생각이다. 하나님은 왜 인류의 운명을 주재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은 모든 긍정적인 사물의 실제이고,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긍정적인 사물의 실제이다. 하나님의 본질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본질은 진리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인류의 운명을 주재할 수 있다. 그런데 적그리스도는 이 점을 보지도, 인식하지도 못하며 더욱이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그는 사람과 지식, 사회에서 비롯된, 사악한 인류가 숭배하는 것들을 진리로 여기고 그런 것들로 사람을 미혹하고 통제하여 교회 안에서, 하나님 선민 사이에서 한자리 차지하려 한다. 그들이 사람을 미혹하는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그들이 그런 것들을 배우고 갖추는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사람들이 그에게 순종하고 그의 말을 따르도록 하는 것이다. 그의 말을 따르도록 하는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그에게 통제당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렇다. 그에게 통제당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가 한 마디만 해도 사람들이 그의 말을 따르고 그의 지배를 받아 그의 도구이자 노예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그의 관점과 소위 경험, 지식, 교훈을 받아들이면 그를 숭배하기 때문이다. 그를 숭배하면 그의 말을 따르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그의 말을 따르면 그가 사람들을 휘두르기 편해지지 않겠느냐? 그는 목적을 이루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일단 사람들이 그의 말을 따르기 시작하면 그는 하나님에게서 사람들을 가로채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러면 그는 기뻐한다. 이게 바로 적그리스도의 목적이다. 사실, 그도 마음속 깊이 자신이 진리의 화신이고 진리라고 아주 분명하게 믿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하겠느냐? 그는 자신의 지식과 경험, 그리고 은사에서 비롯된 것들이 모두 옳다고 생각하고 그런 것들의 힘을 빌려 사람들을 통제하고 자신의 손아귀에 꽉 움켜쥐려 한다. 그런 경험과 지식, 교훈 중 일부는 분명히 사람을 속이는 마귀적인 말이고, 일부는 분명하지는 않지만 그 안에 함정이 숨겨져 있고 계략과 묘책이 들어 있어서 간파하지 못하면 미혹된다. 미혹되면 어떤 결과가 생기겠느냐? 사람이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고 진리를 깨닫지 못하며, 사람의 지식과 경험, 교훈을 진리로 여기고 하나님의 말씀은 옆으로 제쳐 놓게 된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매우 모호해하면서 그런 지식과 경험은 유독 신경 쓰고 떠받들며 나아가 공들여 실행하고 이행하게 된다. 이게 바로 적그리스도의 행동이 이루려는 목적이다. 만약 그에게 사람을 휘두르고 통제하여 순종시키려는 야심이 없었다면 그가 그런 것들을 갖추었겠느냐? 그는 공들여 갖추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목표가 있고 목적성이 아주 명확하다. 그의 명확한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사람을 통제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통제하려는 것이다. 그가 한 무리 사람을 통제하려는 것이든, 일부 사람을 통제하려는 것이든 만약 이론적 기초가 없다면 사람을 통제할 수 있겠느냐? 그는 먼저 사람의 관념과 상상에 가장 부합하고 사람의 구미에 가장 잘 맞는 사상과 이론을 찾아 무리 속에서 전력을 다해 퍼트려야 한다. 사람을 세뇌시키고 설득하며 끊임없이 주입하고 들려주고 숙지시켜 그런 사상 관점을 받아들이게 해야 한다. 사실 사람은 매우 수동적으로 주입되고 세뇌되며, 부지불식간에 그런 관점들을 받아들이게 된다. 사람 안에는 옳고 그름과 시비를 분별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진리를 깨닫기 전에 사람은 그런 것들에 저항할 능력도, 항체도 없다. 사람은 그런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관점을 받아들이고 나면 금세 그런 것들의 포로가 된다. 포로란 무엇이겠느냐? 그런 관점을 받아들인 뒤 그런 것들이 옳다고 점점 더 철저히 믿게 되고, 그런 관점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설득함과 동시에 남을 설득하게 된다. 이게 바로 미혹되고 통제되는 것이다. 사탄이 사람을 미혹할 때는 바로 이렇게 목적을 이룬다.

세상에서 일부 특수한 업무 기술을 배웠거나 사회에서 어느 정도 지위를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 집에 오고 나서 한 가지 공통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는데, 그 생각으로 인해 한 가지 공통적인 모습을 보인다. 어떤 생각이겠느냐? 그들은 자신이 사회에서는 엘리트라고 생각한다. 엘리트란 무엇이냐? 무리에서 비교적 뛰어난 사람이다. 그들은 일부 특수한 고등 교육을 받았고, 사회에서 그들의 재능과 자질, 은사는 출중하다. 출중하다는 것은 무엇이냐? 한 무리 사람들 속에서 사고와 지능, 말재주가 뛰어나고 일부 사물이나 기술에 대해 특수한 이해력을 가진 것을 출중하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은 사회에서 엘리트로 불린다. 모든 국가에서 그런 사람들을 양성하는데, 양성하는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국가를 더 빠르게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들이 각자의 직무에 뛰어들면 각 업계가 더 빨리 발전할 수 있다. 그럼 이런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는 높겠느냐, 아니면 낮겠느냐? (높습니다.) 분명 평범한 지위는 아닐 것이다. 특수한 재능을 어느 정도 갖추었고, 일부 특수한 지식을 배웠으며, 특수한 교육도 좀 받았기 때문에 그들의 자질과 재능, 학습한 지식은 보통 사람보다 뛰어나다. 이런 사람들이 교회에 오면 그들의 심리는 어떻겠느냐? 그들이 가장 먼저 하는 생각은 무엇이겠느냐? 그는 먼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부잣집은 망해도 삼 년을 간다잖아. 하나님을 믿은 뒤로는 세상을 추구하지 않게 됐고 세상에서 환영도 못 받게 됐지만 내가 받은 특수한 교육과 학습한 지식, 갖춘 재능으로 보면 당신들 중에서는 내가 지도자가 돼야 해. 하나님 집에서 대들보나 기둥 역할을 해야 하고 리더나 인솔자가 돼야 한다고.’ 그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겠느냐? 그는 무슨 근거로 이렇게 생각하겠느냐? 만약 그가 농민에 불과하다면 감히 이렇게 생각하겠느냐? (감히 그러지 못할 것입니다.) 왜 감히 그러지 못하겠느냐? (그럴 밑천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렇게 생각할 밑천이 없다. 그럼 어떤 사람이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느냐? 어느 정도 지식과 재능, 은사, 그리고 소위 자질을 갖춘 사람들이다. 그들은 하나님 집에 와서 생각한다. ‘나는 이제 세상을 추구하지 않을 거야. 세상은 너무 사악하니까. 이제 하나님 집에 와서 추구하자. 하나님 집에 오면 최소한 교회의 리더 일꾼 정도는 맡아야 해.’ 그가 좋은 마음을 품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왜 좋은 마음을 품지 않겠느냐? 그가 학습한 것들과 그가 갖춘 사회적 지위가 그를 해치기 때문이다. 만약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그는 평생 그런 지위에서 내려올 수 없다. 그는 늘 자신이 구름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하나님이 보기에 그는 평범한 피조물과 다르지 않다. 그는 늘 자신을 구름 위에 올려놓는데 그건 너무 위험하지 않겠느냐? 떨어지는 순간 크게 다쳐서 목숨도 부지하기 어렵다! 이런 사람은 왜 자신이 당연히 높은 지위를 가져야 하고 당연히 숭배받아야 한다고, 많은 사람이 당연히 그 위주로 행동해야 한다고, 무슨 일이든 당연히 먼저 그의 의견을 묻고 경청해야 하며 당연히 그를 먼저 떠올리고 그를 최우선시해야 한다고 생각하겠느냐? 그는 왜 ‘당연히’라는 생각을 그토록 많이 하겠느냐? 그가 자신이 갖춘 사회적 지위와 지식, 그리고 학습한 특수한 것들을 아주 중시하기 때문이다. 그는 생각한다. ‘진리를 아무리 많이, 대단하게 말한다 해도 내가 가진 것들은 여전히 가치 있어. 진리보다 가치 있고 진리가 대체할 수 없는 거라고. 나는 사회에서 기업 총수로 수천 명을 관리했어. 내가 팔 한 번 휘두르면 모두가 내 말을 들어야 했지. 그렇게 큰 권력을 가졌으니 신분과 지위가 얼마나 높았겠어! 하나님 집의 이런 보잘것없는 인물들 중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한 바퀴 돌아봐도 특별한 인물은 별로 없네. 내게 관리를 맡기면 식은 죽 먹기일 텐데. 별것도 아니라고!’ 네가 그에게 “좋아요. 그런 야망이 있는 것도 괜찮아요. 그럼 당신이 욕망을 채울 수 있도록 제가 당신을 교회 리더로 추천할게요. 당신이 이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진리를 실행할 줄 알게 하고, 연약하고 소극적이고 본분을 이행하지 않는 사람을 모두 붙들어 주세요.”라고 말하면 그는 “그거야 쉽죠. 저는 기업을 경영할 때 사람을 설득하는 일만 했거든요. 자신 있어요.”라고 한다. 한 교회의 30명 넘는 사람을 그의 손에 맡기고 나면 어떻게 되겠느냐? 두 달도 되지 않아 그중 연약한 사람은 더 연약해지고 소극적인 사람은 더 소극적으로 변한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사람을 얻지 못하고, 하나님 말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은 예배만 하면 졸며 상부의 설교조차 들으려 하지 않는다. 누가 “당신은 꽤 능력 있지 않아요?”라고 하면, 그는 “맞아요. 저는 기업 총수니까 당연히 능력 있죠!”라고 한다. 아무리 세상에서 총수였다 한들 소용없다.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면 교회 사역에는 문외한이다. 그에게 복음 사역을 맡기면 표면적이고 소용없는 형식적인 일만 하고 아무 성과도 얻지 못하며, 한 교회의 몇십 명조차도 잘 양육하지 못한다. 어떻게 된 일이겠느냐? 그렇게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 사회에서 한때 기업 총수나 고위 임원이었던 사람이 왜 하나님 집에 와서는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겠느냐? (성령이 지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지키지 않는 것도 한 측면이다. 주된 원인은 무엇이겠느냐? 그가 진리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의 내적 상태와 패괴 성품,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사람을 폭로하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이 말씀하는 방식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그는 영적인 이해력이 없어서 어떻게 된 일인지 꿰뚫어 보지 못하고 겉으로만 맹목적으로 행동한다. 그는 교회 사역을 하는 것이 세상에서 기업을 경영하는 것과 비슷해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열정을 북돋우면 사역을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사람을 설득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의 처세술을 활용해 상부를 매수하고 하부를 회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이 돈을 벌 수만 있으면 모두 자기 말을 듣고 자기를 따를 것이라고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한다. 외부의 일은 진리와 관련이 없다. 하나님을 믿으면 무슨 일을 하든 모두 진리와 성품 변화에 관련되는데, 세상에서 쓰던 수법을 쓴다고 통하겠느냐? (통하지 않습니다.) 통하지 않는다. 사람의 내적 상태와 연약함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어떻게 사람을 잘 붙들어 줄 수 있는지,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관념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사람이 패괴 성품을 드러낼 때 어떻게 자신을 인식하게 할 수 있는지, 어떻게 정직한 사람이 되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그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함부로 말하고 되는대로 규례를 적용한다. 예를 들어, 누가 문외한이거나 영적인 이해력이 없는 말을 한 마디 하면 그는 그 사람이 자질이 떨어지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이리저리 되는대로 규례를 적용해 사람이 길을 잃게 하고, 사람의 마음을 휘저어 놓아서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도 기운이 빠지게 하고, 소극적인 사람은 더 소극적으로 변하게 한다. 어떤 사람은 그에게 교회를 이끌게 하느니 차라리 자신이 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게 낫다고 말한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겠느냐? 그가 교회를 이끌면 사람들의 마음을 흩트리니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 왜 믿으려고 하지 않겠느냐? 사람은 원래 명확한 이상(異象)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는데, 그가 그렇게 행동하며 사람을 휘저어 혼란스럽게 만든 것이다. 본래 사람은 마음속에 진리가 없고 도리만 깨달을 뿐인데, 그가 휘저으니 더욱 모호해지고, 성령 역사도 종잡을 수 없게 되며, 과연 하나님이 있는지도 좀 헷갈리게 된다. 그럼 그는 어떤 행동 방식을 써서 사람을 그 지경으로 이끌었겠느냐? 예를 들어, “인류는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라는 말이 진리가 아니냐? (그렇습니다.) 너는 네가 진실로 깨달은 것과 인식한 것, 체험한 것으로 이 말을 논증해 형제자매가 그 말이 진리이고 옳다고 더 확고히 인정하게 하고, 인류는 하나님에게서 비롯됐다고 확신하게 하여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더해 주어야 한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생기면 사람은 징계를 받거나 고난을 겪고 박해를 당해도 마음속에 힘이 생긴다. 이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뭐라고 말하느냐? “어떤 TV 프로그램에서 1억 년 전의 인간은 부족 생활을 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고 하더군요.” 그가 이렇게 지식을 과시하며 역사(歷史) 얘기를 하자 다들 듣고 어리둥절해서 말한다. “인류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 말을 들으니 별로 그런 것 같지 않네요. 그럼 사람은 원숭이에서 진화한 게 아닐까요?” 보아라, 그는 사람을 어디로 이끌었느냐? 이는 사람을 해치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는 걸핏하면 그의 지식을 자랑하고 역사나 철학 얘기를 한다. 그리고 그가 세상에서 관직에 오른 사람들과 어떻게 왕래하고 서로 결탁했는지 이런 것들을 자랑한다. 그가 이렇게 자랑하는 걸 들으면 원래 분량이 작고 연약하며 믿음도 작은 일부 형제자매의 마음은 어디로 달아나겠느냐? (세상으로 달아납니다.) 그렇다. 이는 무슨 뜻이냐? 그 사람들을 그에게 맡기면 그가 망쳐 버린다는 뜻이다. 그는 분명 문외한이고, 생명 진입에 관한 일을 깨닫지 못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본직 사역이 무엇인지도 깨닫지 못했고, 생명 영 안의 일이나 성품 변화에 관한 일은 더더욱 깨닫지 못했다. 이런 것들은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 진리를 깨달은 사람으로 사칭하고 목자가 되어 하나님 선민을 이끌려 한다. 황당하지 않으냐? 만약 네가 생명 영 안의 일을 모른다면 리더로 뽑혔을 때 너는 어떻게 해야겠느냐? 이렇게 말해야 한다. “저는 문외한이고, 교회를 이끌어 본 적도 없어요. 저는 구해야 해요. 사역 지침에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해요. 그리고 잘 아는 사람을 찾아 어떻게 사역해야 하는지 교제하거나 진리를 깨달은 형제자매와 협력해야 해요.” 이게 올바른 태도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고 한사코 거드름을 피우는 사람이 있다. “저보고 다른 사람과 협력하라고 하는데, 누가 저만큼 자격이 있겠어요? 저만큼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 있겠어요? 저는 사회에서 상당히 명망이 높았어요. 누구든 절 보면 어느 정도 체면을 세워 줘야 했죠.” 이렇게 허풍을 떨며 자신의 능력을 과시한다. 그처럼 교회를 이끌면 형제자매가 진리 실제에 진입할 희망이 있겠느냐? (없습니다.) 없다. 그러면서도 그는 사람들이 무슨 일이든 그에게 보고하게 한다. 이 마귀는 대학을 며칠 다니고 지식을 좀 갖추었다고 사회에서 공공연히 사기를 치고 어떤 나쁜 짓도 서슴지 않는다. 약간의 생존 수단이 있으면 하나님 집에 와서 명성을 쌓으려 하고, 지위를 얻어 가문을 빛내기 위해 진리의 화신으로 사칭하면서 하나님 선민이 모두 그의 말을 듣고 그를 따르게 하려 한다. 그에게는 이 ‘진리의 화신’이 무엇을 가리키겠느냐? 바로 이런 것이다. “당신들은 제 생각, 행동 방식, 관점 하나하나 다 진리로 여기고 지켜야 해요. 규칙을 하나 정해 줄게요. 5위안 이하의 영수증은 다 제게 보고하세요.” 누가 “5위안은 보고할 필요 없죠. 저희도 권한 범위가 있잖아요. 저희도 원칙대로 하면 안 되나요?”라고 하면 그는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그래서야 되겠어요? 이건 중요한 일이에요. 제가 리더니까 제게 결정권이 있다고요!’ 입으로는 말하지 않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는 이렇게 사람을 통제한다. 나쁜 짓이나 사람을 기만하는 짓은 무엇이든 저지를 수 있다. 남을 속이고 해칠 때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가슴도 두근거리지 않으며, 속으로 전혀 불안해하지도 않는다. 하나님 집에 왔을 때 지위를 하나 주면 대담하게 차지하고, 일단 지위를 차지하면 내려오려 하지 않으며, 사람들이 순종하도록 자신이 진리의 화신으로 사칭하려 한다. 이런 사람이 있지 않으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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