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조 그는 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이 아닌 오직 그에게 순종하도록 한다(1) 제 4 부
적그리스도의 본질에서 나타나는 가장 분명한 특징은 바로 권력을 혼자 차지하고 주무른다는 것이다. 누가 말해도 듣지 않으며, 어떤 사람도 안중에 두지 않는다. 누구에게 어떤 장점이 있든, 누가 어떤 올바른 관점과 고견을 제시하든, 혹은 어떤 적합한 방법을 내놓든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마치 그와 협력할 자격을 갖춘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가 하려는 일에 참여할 자격을 갖춘 사람 또한 아무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 적그리스도는 이런 성품을 갖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는 인성이 좋지 않은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게 어디 그냥 인성이 좋지 않은 것이겠느냐? 이는 그야말로 사탄의 성품이다. 이런 성품은 너무도 흉악하다! 어째서 성품이 너무도 흉악하다고 하겠느냐?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집의 소유물과 교회의 재산을 자기 손에 넣어 사유재산으로 삼고 자기가 통제하려고 하며, 다른 사람이 간섭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가 교회 사역을 할 때 고려하는 것은 오직 자신의 이익과 지위, 체면뿐이다. 그는 누구든 자신의 이익을 해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며, 자질이 있고 체험 간증을 말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자신의 명예나 지위에 위협을 가하는 것은 더더욱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체험 간증을 얘기할 수 있는 사람, 진리를 교제해 하나님의 선민에게 공급할 수 있는 사람을 경쟁 상대로 보면서 억누르고 배척하며 이들을 철저히 고립시키고 매장하고 망가뜨리려 한다. 그래야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 사람들이 줄곧 소극적이 되지 않은 채 본분을 이행하고 간증을 말하고 남들을 붙들어 준다면, 적그리스도는 최후의 수단을 쓴다. 즉, 빌미를 잡아 정죄하거나 죄를 뒤집어씌워 모함하거나 거짓을 날조해 억누르고 괴롭히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교회에서 제명되면 그제야 완전히 마음을 놓는다. 이는 적그리스도의 가장 음험하고 악독한 면이다. 그가 가장 우려하고 두려워하는 대상은 바로 진리를 추구하고 진실한 체험 간증이 있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선민들이 가장 동조하고 옹호하는 이는 글귀와 도리를 공허하게 논하는 사람이 아니라 체험 간증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적그리스도는 진실한 체험 간증이 없고, 진리를 실행하지도 못한다. 기껏해야 좋은 일을 좀 해서 남의 기분을 맞춰 주는 것이다. 하지만 적그리스도가 좋은 일을 얼마나 많이 하든, 듣기 좋은 말을 얼마나 많이 하든, 좋은 체험 간증 하나가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이점과 도움에는 미치지 못한다. 체험 간증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의 하나님 선민에 대한 공급과 양육 성과는 무엇보다 크다. 그래서 적그리스도는 누군가 체험 간증을 말하는 걸 보면 눈초리가 사나워지고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오르며 증오가 샘솟는다. 그는 간증을 말하는 사람이 더는 말하지 못하게 당장이라도 입을 막아 버리고 싶어 한다. 상대가 계속 말한다면 적그리스도의 명성은 완전히 바닥에 떨어질 것이며, 적그리스도의 추악한 몰골이 철저히 드러나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래서 적그리스도는 빌미를 잡아 간증을 말하는 사람을 방해하고 억누르려 한다. 적그리스도는 그들 자신이 글귀와 도리를 논해 사람을 미혹하는 것만 허용할 뿐, 하나님의 선민이 체험 간증을 이야기함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적그리스도가 어떤 사람을 가장 증오하고 어떤 사람을 가장 두려워하는지를 알 수 있다. 누군가 사역을 잘해 두각을 드러낼 수 있으면, 또 누군가 진실한 체험 간증을 말해 하나님의 선민에게 도움과 이로움을 가져다주고 그들을 붙들어 주며 모두의 동조를 받을 수 있으면, 적그리스도는 질투와 증오에 휩싸여 배척하고 억누르려 하며 이들이 사역을 맡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자신의 지위가 위협받는 상황을 피하려는 것이다. 진리 실제가 있는 사람이 적그리스도 옆에 있으면 적그리스도의 빈궁함과 가련함, 추함, 사악함을 부각시키고 드러낸다. 그래서 적그리스도는 파트너나 사역자를 선택할 때 진리 실제가 있는 사람, 체험 간증을 말할 수 있는 사람, 정직한 사람,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을 절대 선택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적그리스도가 가장 질투하고 가장 미워하는 사람들로, 바로 적그리스도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들이다. 진리를 실행하는 이들이 좋은 일을 얼마나 많이 하든, 하나님 집의 사역에 도움이 되는 일을 얼마나 많이 하든 적그리스도는 죽을힘을 다해 그것을 은폐한다. 심지어는 사실을 왜곡해서 말하며 좋은 일에 대한 공로는 자신에게 돌리고 나쁜 일에 대한 과실은 다른 사람에게 떠넘겨 자신을 높이고 남을 깎아내리기까지 한다. 적그리스도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 체험 간증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을 몹시 시기하며, 그들이 자신의 지위를 위협할까 봐 온 힘을 다해 공격하고 배척한다. 또한, 형제자매들이 체험 간증을 말할 수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 접하거나 옹호하고 동조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이는 진리를 싫어하고 하나님을 증오하는 적그리스도의 사탄 본성을 가장 잘 드러낸다. 또한 이는 적그리스도가 교회에서 사악한 역류이며 교회 사역을 교란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가로막는 원흉임을 증명한다. 이 밖에도 적그리스도는 형제자매들 사이에서 수시로 거짓말을 날조하고 사실을 왜곡하며 체험 간증을 말할 수 있는 이들을 깎아내리고 정죄한다. 이들이 어떤 사역을 하든, 적그리스도는 갖가지 이유를 찾아 배척하고 억누르며, 이들을 교만하고 독선적이며, 잘난 체하기 좋아하고, 야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한다. 사실 이들은 모두 어느 정도 체험 간증이 있고 진리 실제를 갖춘 사람들이며, 인성이 상대적으로 좋고 양심과 이성이 있으며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는 일부 결점과 부족함이 있고, 가끔 패괴 성품을 드러내지만, 자신을 반성하고 회개할 수 있다. 이들이 바로 하나님이 구원하려는, 하나님께 온전케 될 희망이 있는 사람들이다. 전반적으로 보면, 이들은 본분 이행에 적합하고, 본분 이행의 요구와 원칙에 맞는다. 하지만 적그리스도는 ‘내가 그냥 넘어갈 줄 알고? 너는 내 구역에 들어와 역할을 수행하면서 나와 겨루려고 하겠지만, 그건 안 될 일이야. 꿈도 꾸지 마! 너는 나보다 지식도 많고 말솜씨도 뛰어나며 인맥도 좋은 데다 나보다 진리를 잘 추구하지. 너와 협력하라고? 네가 내 명성을 빼앗아 가면 어쩌라고?’라고 생각한다.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집의 이익을 생각하겠느냐?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무엇을 생각하겠느냐? 어떻게 해야 자신의 지위를 보전할지나 생각한다. 적그리스도는 설령 자신이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못하는 것을 안다고 할지라도 자질이 좋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양성하거나 발탁하지 않는다. 그가 발탁하는 자는 다 아첨꾼들, 사람 숭배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그에게 동조하고 부러움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또한, 언행이 매끄럽고 진리를 조금도 깨닫지 못했고 분별력이 없는 사람들이다. 적그리스도는 그런 사람들을 발탁하여 자기 옆에 두고 자신을 위해 봉사하게 하며, 자신을 위해 뛰어다니면서 매일 자신의 주변을 맴돌게 한다. 그러면 그가 교회에서 세력을 갖게 되는데, 이는 그에게 다가가고 그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이 있게 되고, 아무도 감히 그를 건들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양성하는 이 사람들은 모두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자들로, 대다수가 영적인 이해력이 없고 그저 규례를 지키는 것밖에 모른다. 그들은 대세와 세력 따르기를 좋아하는데, 권력의 앞잡이, 바보들이다. 이방인들이 하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지 않으냐? 사내대장부의 노복이 되는 한이 있어도 무뢰한의 조상이 되지는 않겠다. 이와 정반대로 적그리스도는 그런 사람들의 조상이 되고, 그들을 전적으로 양성해 자신을 거들게 하려 한다. 적그리스도는 교회에서 권력을 잡을 때 늘 멍청하고 마구 소란을 피우는 자들을 끌어모아 자신의 조수로 삼는 한편, 자질 있으며 진리를 깨닫고 실행할 수 있는 사람, 사역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 특히 실제적인 사역을 할 수 있는 리더 일꾼은 배척하고 억누른다. 그렇게 교회에 두 개의 진영이 형성된다. 한 부류는 인성이 상대적으로 정직하고 진심으로 본분을 이행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이고, 또 한 부류는 적그리스도가 이끄는 멍청하고 마구 소란을 피우는 자들이다. 이 두 진영은 적그리스도가 드러나고 내쳐질 때까지 계속 싸우게 된다. 적그리스도는 늘 진심으로 본분을 이행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과 맞서고 대항한다. 이는 교회의 사역을 심각하게 교란하는 것 아니겠느냐?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것 아니겠느냐? 이 적그리스도의 세력은 하나님의 뜻이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막는 방해물이자 걸림돌 아니겠느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악한 세력 아니겠느냐? 적그리스도가 왜 그렇게 하겠느냐? 그 긍정적인 인물들이 일단 일어나 리더 일꾼이 되면 자신의 경쟁 상대가 되거나 자신의 적대 세력이 되지 자신의 말을 듣고 순종하거나 시키는 대로 복종할 리가 절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은 그의 지위를 위협하기에 충분하다. 그는 이들을 보고 증오를 느낀다. 이들을 배척하고 망가뜨리고 매장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하고 평안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가능한 한 빨리 자신의 세력을 키우고 자신의 대오를 늘리려고 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선민을 더 많이 통제할 수 있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 몇이 자신의 지위를 위협할까 봐 걱정하지 않을 수 있다. 적그리스도는 교회에서 자신의 세력을 만드는 한편, 그의 말을 듣고 그에게 순종하며, 그에게 아첨하는 사람들을 붙들어 일으켜 각 분야의 사역을 책임지게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 집의 사역에 도움이 되겠느냐? 그렇지 않다.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게 된다. 이 사악한 세력이 과반수가 되면 교회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 교회에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소수에 불과하고, 힘만 쓰는 자나 떡으로 배만 불리려는 불신파가 적어도 절반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적그리스도가 시종일관 이들을 미혹하고 회유한다면 교회에서 리더를 뽑을 때 그가 자연히 우위를 점하게 된다. 그렇기에 하나님 집에서는 선거 때 반드시 진리를 밝히 교제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는 것이다. 진리 교제를 통해 적그리스도를 폭로하거나 물리치지 못한다면 적그리스도가 사람을 미혹하고 리더로 선발되어 교회를 통제하고 점령할 수 있다. 이는 무척 위험한 일 아니겠느냐? 교회에 적그리스도가 한둘 나타나는 것은 무서운 일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적그리스도가 세력을 형성하고 대세를 장악하면 무서운 것이다. 그러므로 적그리스도가 대세를 장악하기 전에 반드시 그를 뿌리 뽑고 교회에서 출교시켜야 한다. 이는 급선무이자 꼭 필요한 일이다. 이 밖에, 교회의 불신파, 특히 사람을 숭배하고 따르기를 좋아하는 자, 세력 좇기를 좋아하는 자, 마귀의 공모자나 앞잡이가 되기를 좋아하는 자, 서로 결탁하고 패거리 짓는 것을 좋아하는 자 등 불신파와 마귀는 일찌감치 제명해야 한다. 그래야 그 오합지졸이 한데 뭉쳐 세력을 이루고, 교회를 교란하고 통제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이는 하나님 선민이 반드시 똑똑히 알아야 하는 일이다.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마땅히 이 일에 부담감을 가져야 한다. 교회 사역에 부담이 있는 사람,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일들을 밝히 알아야 할 것이다. 특히 적그리스도에 속하는 부류와 아첨하고 사람 숭배하기를 좋아하는 그 졸개 마귀들을 간파해야 한다. 그 후 그들을 제약하거나 교회에서 제명해야 할 것이다. 이런 실행은 꼭 필요하다. 적그리스도 부류의 사람은 전적으로 진리를 받아들이지도 사랑하지도 않는 이 바보, 못난이, 비열한 소인배들과 한데 뭉치고 이들을 농락한다. 또 이 사람들과 매우 화기애애하며 조화롭고 친밀하게 ‘협력’을 한다. 이들이 어떤 존재겠느냐? 적그리스도의 무리가 아니겠느냐? 상부에서 그들의 ‘윗사람’을 교체하면, 아래 있는 그 충성스러운 자들은 싫어하면서 상부에서 일 처리를 불공평하게 한다고 판단하고 한데 뭉쳐 적그리스도 대신 불만을 제기할 것이다. 하나님 집에서 그들이 목적을 달성하도록 내버려 두겠느냐? 그들을 일망타진하고 전부 제명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적그리스도 악마 무리이니 한 놈도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적그리스도 부류의 사람은 단독 행동을 하는 일이 매우 드물며, 대부분의 경우 단체로 움직인다. 적어도 두세 명이 한 무리를 이룬다. 그러나 단독으로 움직이는 적그리스도도 있다. 이는 능력이 없거나 기회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다른 이들과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지위를 몹시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능력도, 배운 지식도 없다고 해서 지위를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그 생각은 틀렸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너는 적그리스도의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한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누구나 지위를 좋아한다. 적그리스도가 어떤 사람과도 협력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그가 왜 멍청이, 쓰레기, 어중이떠중이들을 양성하여 자기에게 아첨하게 하겠느냐? 그들과 협력하려는 것이겠느냐? 그가 정말 그 사람들과 함께 협력할 수 있다면 ‘적그리스도는 어떤 사람과도 협력하지 못한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과도 협력하지 못한다는 말의 ‘어떤 사람’은 주로 긍정적인 인물을 뜻한다. 하지만 적그리스도의 성품으로 보면, 그는 작당한 자들과도 협력하지 못한다. 그럼 그는 왜 그 사람들을 키우는 것이겠느냐? 부리기 쉽고 요리하기 쉬우며 주관이 없고 그가 뭘 말하든 다 듣는 멍청한 자들을 키워 함께 그들의 지위를 지키려는 것이다. 자기 혼자 힘으로는 미약해 지위를 지키려면 쉽지 않다. 그래서 바보 한 무리를 구슬려 매일 자기 주변을 맴돌며 자기를 위해 일하게 하는 것이다. 그는 또 하나님의 선민을 미혹하면서 그 무리 사람들이 어떻게 추구하고 어떻게 고생하니 양성할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게다가 일이 있으면 자기를 찾아와 상담하고 물어보기도 하는데, 모두 말 잘 듣고 순종하는 사람들이라고도 이야기한다. 그들이 본분 이행을 위해 협력하는 것이겠느냐? 적그리스도는 자신을 위해 일해 줄 사람, 자신의 앞잡이, 공모자가 될 자들을 찾아 자기 지위를 공고히 하려는 것이다. 이는 협력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경영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세력이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다른 사람과 협력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냐? 사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어쩌면 아주 쉬운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사람은 그것을 어렵게 느끼겠느냐? 사람에게 패괴 성품이 있기 때문이다. 인성과 양심, 이성이 있는 사람에게 남과 협력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고, 남과 협력하는 것이 행복한 일이라고 느낄 것이다. 그것은 누구든 혼자서 일을 성사시키기란 어렵고, 어떤 분야든, 무슨 일을 하든, 옆에서 지적해 주고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여하튼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혼자 하는 것보다 일이 훨씬 쉬운 것이다. 이 밖에도, 사람의 자질로 이를 수 있는 것, 또는 체험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이다. 아무도 모든 것에 능통할 수는 없는 법이다. 무엇이든 알고, 무엇이든 할 수 있고 해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누구든 이런 이성을 갖춰야 한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하든, 그 일이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너를 도와주고 지적해 준다거나, 참고할 만한 의견을 낸다거나, 너와 협력하며 일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네가 일을 좀 더 정확하게 할 수 있고, 실수를 덜 하고, 시행착오를 덜 하게 된다. 이는 좋은 일이다. 특히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패괴 성품을 해결하지 않으면, 이는 위험한 일이다! 사람은 사탄의 성품을 갖고 있기에 언제 어디서든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할 수 있다. 사탄 성품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언제라도 하나님을 부정하고 대적하고 배반할 수 있다. 적그리스도란 인간은 우둔하여 이런 것들을 깨닫지 못한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어렵사리 잡은 권력을 남과 나눌 수 있겠어? 권력을 남과 나누면 그 권력이 없어지잖아? 권력이 없으면, 어떻게 내 능력과 재주를 드러낼 수 있겠어?’ 그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맡긴 것이 권력이나 지위가 아니라 본분임을 알지 못한다. 적그리스도는 오직 권력과 지위만을 받아들이고, 본분은 한쪽에 제쳐 놓고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는다. 명예와 이익, 지위만을 추구하며, 권력을 손아귀에 쥐고 하나님의 선민을 통제하여 지위의 복을 누리려고 생각할 뿐이다. 이는 너무도 위험한 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동이다! 무릇 명예와 이익, 지위만을 추구하며 제대로 본분을 이행하지 않는 자는 불장난을 하면서 자신의 목숨을 갖고 노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언제든 스스로를 망칠 수 있다. 지금 너는 교회의 리더 일꾼이며,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 이는 보통 일이 아니다. 너는 누군가를 위해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더욱이 너 스스로 밥을 먹고 생계를 유지하고자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교회에서 네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다. 특히 그 본분은 하나님의 부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럼 그 본분을 이행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겠느냐? 잘하든 못하든 하나님께 내놓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마지막에는 반드시 설명해야 하며, 결과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네가 받아들인 것은 하나님의 부탁이며, 신성한 책임이기 때문이다. 그 책임은 크든 작든 엄숙한 것이다. 어느 정도로 엄숙하겠느냐? 작게 보면 너라는 사람이 평생 진리를 얻을 수 있을지, 하나님이 너를 어떻게 대할지와 관련이 있다. 크게 보면 네 앞날과 운명, 그리고 결말과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그러니 악을 행하며 하나님을 대적한다면 정죄되고 징벌받게 될 것이다. 네가 이 본분을 이행하면서 행한 모든 일을 하나님은 기록하고 있다. 또한, 그것에 대해 어떻게 점수를 매기고 평가할지, 하나님께는 원칙과 기준이 있다. 하나님은 네가 본분을 이행할 때 보인 모든 모습으로 네 결말을 결정한다. 이는 심각한 일이 아니겠느냐? 아주 심각한 일이다! 네게 사역을 하나 맡긴다고 해서 그게 네 혼자만의 일이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 사역은 너 혼자 완성할 수는 없지만 네가 책임져야 한다. 네게 그 책임이 있고 네가 그 부탁을 완수해야 한다. 이는 무엇과 관련 있겠느냐? 협력과 관련이 있다. 어떻게 협력해 섬길지, 어떻게 협력해 본분을 이행할지, 어떻게 협력해 네게 맡겨 준 부탁을 완수할지, 어떻게 협력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지 등 이런 것들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조화롭게 협력하는 것’에는 많은 내용이 들어 있다. 최소한 다른 이가 말하고 다른 의견을 내놓게 해야 한다. 네게 정말 이성이 있다면 어떤 사역을 하든 먼저 진리 원칙을 구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주동적으로 다른 이의 의견을 구해야 한다. 모든 의견을 진지하게 대하고, 한마음 한뜻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면 기본적으로 조화롭게 협력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면 어려움이 많이 줄어들고, 어떤 문제가 닥쳐도 해결하거나 처리하기 쉽다. 이것이 바로 조화로운 협력으로 이루게 되는 성과이다. 때로는 극히 사소한 일에서 의견 충돌이 생길 수도 있지만, 사역에 지장만 주지 않는다면 문제라고 볼 수 없다. 단, 핵심적인 일, 교회 사역과 관련된 큰일의 경우, 반드시 공감대를 형성하고 진리를 구해 해결해야 한다. 리더 일꾼인 네가 만약 늘 거들먹거리며 본분 이행을 무슨 벼슬로 삼아 누리고, 늘 지위의 복을 누리고, 자신만의 계산을 하고, 늘 자신의 명리와 지위를 생각하고 누리려 하고, 늘 자신의 경영을 하고, 더 높은 지위를 얻어 더 많은 사람을 다스리고 통제하려 하고, 더 높은 자리에 오르려 한다면, 이는 문제가 된다. 중요한 본분 이행을 벼슬로 삼아 누리려 하는 것은 너무나 위험하다. 네가 늘 이렇게 행동하며 누구와도 협력하기 싫어하고, 네 권력을 남과 나누고 싶어 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이 돋보이고 주목받는 것을 싫어하고 그저 모든 것을 혼자 누리기를 바랄 뿐이라면, 적그리스도가 되는 것이다. 반면 언제나 진리를 구하고 육을 저버리며 자신의 속셈과 생각을 내려놓고 주동적으로 남들과 협력한다면, 단순하게 마음을 열고 남들에게 의견을 묻고 구하면서 다른 이의 말과 건의에 귀 기울일 수 있다면, 누구의 건의든 옳고 진리에 부합하는 건의는 다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이런 실행은 슬기롭고 올바른 것이다. 그 실행은 네가 그릇된 길에 들어서는 것을 막아 줄 것인데, 너에게는 바로 보호이다. 너는 리더라는 감투와 지위가 주는 허세를 내려놓고 스스로를 평범한 사람으로 여겨야 한다. 남들과 같은 위치에 서서 본분 이행에 책임을 지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본분을 감투나 지위, 월계관처럼 여기면서 모두가 너의 지위를 위해 힘쓰고 봉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하나님은 마음속으로 너를 혐오하고 역겨워할 것이다. 네가 마음속으로 너 자신이 그저 다른 이보다 하나님의 부탁과 책임이 좀 더 있을 뿐 다른 이와 평등하다고 여기며, 남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법을 배운다면, 나아가 허리를 굽혀 다른 이의 의견을 묻고, 진지하고 세심하게, 마음을 다해 다른 이의 말에 귀 기울일 수 있다면, 남들과 조화롭게 협력할 수 있다. 조화롭게 협력하는 것이 어떤 역할을 하겠느냐? 매우 큰 역할을 한다. 너는 전에 자신에게 없었던 것을 얻을 수 있는데, 그것은 진리의 빛 비춤과 생명의 실제이다. 또한 다른 이의 장점을 발견하고 그것을 배울 수도 있다. 그리고 또 하나, 네가 관념적으로 다른 사람이 어리석고 멍청하고 우둔하고 너보다 못하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때, 또는 다른 사람이 마음을 열고 네게 이야기할 때, 너는 부지중에 모든 사람은 그렇게 평범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그 내면에는 서로 다른 생각과 취할 만한 부분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조화롭게 협력하는 법을 배운다면 네가 다른 사람의 장점을 배울 수도 있고, 너의 교만과 독선이 드러남으로써 잘난 체하지 않을 수 있다. 더 이상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고 낫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 때 스스로를 사랑하고 스스로에게 탄복하는 내적 상태로 살아가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이 네게는 보호가 되지 않겠느냐? 이 모든 것은 남과 협력하면서 배워야 할 공과이자 얻어야 할 이점이다.
나는 사람과 접촉할 때 많은 사람이 하는 말을 다 주의해서 듣는다. 다양한 사람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그들이 하는 말을 귀담아들으며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말하는 방식을 학습한다. 예를 들어, 너는 예전에 대다수의 사람이 교육을 좀 받고 지식이 좀 있을 뿐 업무는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과 접촉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텐데 사실 이는 틀린 것이다. 그런 사람들, 나아가 일부 특수한 인물들과 접촉할 때 너는 사람 마음속에 있는, 네가 볼 수도, 알아차릴 수도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의 사상 관점과 같은 것들 말이다. 그 사상 관점에는 치우친 것도 있고 비교적 정당한 것도 있다. 물론 그 ‘정당함’은 진리와 동떨어져 있거나 관련 없을 수도 있지만 너는 인성의 더 많은 측면을 알 수 있다. 이는 네게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를 두고 식견이라고 하며, 이는 식견을 늘리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식견을 늘리는 게 무슨 소용이 있죠?” 그것은 다양한 사람을 알고 분별하고 분석하고, 나아가 그들을 돕는 데 도움이 된다. 이게 바로 많은 사역을 하는 길이다. 영적인 척하며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나님을 믿고 있으니 라디오나 뉴스도 안 듣고 신문도 안 볼 거야. 바깥세상과 접촉하지 않을 거라고. 여러 분야의 사람들은 다 마귀야!’ 그럼 너는 틀렸다. 네가 진리를 갖추었다면 마귀와 접촉하는 걸 두려워하겠느냐? 하나님은 영계에서 사탄을 상대할 때도 있는데, 그렇다고 하나님이 변하겠느냐?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네가 사탄을 상대하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그 두려움 안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사실 네가 진리를 깨닫지 못할까 봐, 하나님을 믿는 것과 진리에 대해 마음속으로 올바른 이해나 관점을 가지지 못할까 봐, 수많은 관념과 상상을 가질까 봐, 너무 교조적일까 봐 두려운 것이다. 따라서 네가 리더 일꾼이든 팀장이든, 어떤 사역을 맡고 어떤 역할을 하든 너는 다른 사람과 협력하고 접촉하는 법을 배워야지 남들이 너를 따르게 하기 위해 큰소리치거나 늘 고상한 척만 해서는 안 된다. 네가 늘 큰소리만 치고 진리를 실행해 내지 못하며 다른 사람과 협력하지 못한다면 이는 추태를 보이는 것이다. 그런 너를 누가 상대해 주겠느냐? 바리새인은 어쩌다 무너졌겠느냐? 그들은 늘 신학 이론만 늘어놓고 큰소리만 쳤다. 계속 큰소리만 치다 보니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어졌다. 하나님을 부인하고, 나아가 사람의 관념이나 율법과 규칙으로 하나님을 정죄하고 대적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다. 그들은 하루 종일 성경을 받쳐든 채 들여다보고 연구해서 성경의 문구는 줄줄 외웠지만 결국 어떻게 되었느냐? 하나님이 어디에 있는지, 하나님의 성품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이 선포한 수많은 진리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정죄까지 했다. 이러면 끝장난 것 아니겠느냐? 어떤 결과를 맞이했는지는 너희도 잘 알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마음속에 이런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관점을 가지고 있지 않느냐? 너희는 폐쇄적이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네가 보기에 내가 폐쇄적이냐? 나는 가끔 뉴스도 보고 게스트 인터뷰 같은 프로그램도 본다. 형제자매와 몇 마디 잡담을 나누기도 하고 식사를 준비하는 사람이나 청소를 담당하는 사람과도 얘기를 나눈다. 누구를 만나든 나는 이야기를 나눈다. 사역을 하나 맡았다거나 특기가 하나 있다고 해서, 나아가 특별한 사명을 맡았다고 해서 네가 다른 사람보다 특별하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잘못된 관점이 은연중에 너를 틀 안에 가두고 철통으로 겉을 감쌀 것이다. 그러면 너는 자신은 높은 위치에 서 있으니 이렇게 해서도 안 되고 저렇게 해서도 안 된다고, 이런 사람과 말을 해서도 안 되고 저런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어서도 안 된다고, 크게 웃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결국 어떻게 되겠느냐? 너는 어떤 사람이 되겠느냐? (‘과인’이 됩니다.) ‘과인’이 된다. 고대 황제들을 보면 늘 “과인은 어쩌고저쩌고”, “고는 어쩌고저쩌고”, “과인 생각에는”이라고 말하며 항상 자신을 과인이라 칭한다. 너는 늘 자신을 과인이라고 한다면, 스스로 몹시 위대해서 정말 천자라도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네가 천자이냐? 본질적으로 너는 보통 사람일 뿐이다. 네가 늘 자신이 위대하고 비범하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아주 골치 아픈 일이고 문제가 될 것이다. 이런 잘못된 관점을 가지고 처신한다면 네가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나 방법, 원칙은 분명 변하고 말 것이다. 네가 늘 자신은 과인이기 때문에 높은 위치에 서야 하고 이런 일이나 저런 일은 해선 안 되며 그런 일들을 하는 게 너의 지위나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문제가 된 것 아니냐? (그렇습니다.) 너는 그저 이렇게 생각한다. ‘이 정도 지위에 있는 내가 남들에게 아무 말이나 다 할 수는 없지!’, ‘이 정도 지위에 있는 내가 남들에게 패역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 ‘이 정도 신분을 가진 내가 남들에게 내 연약함이나 결함, 문제점, 부족한 교육 등 품위에 손상이 가는 말을 할 순 없지. 절대로 남들에게 알리지 않겠어!’ 피곤하지 않겠느냐? (피곤합니다.) 이렇게 피곤하게 살면서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이는 어디에 문제가 생긴 것이겠느냐? 본분이나 지위를 대하는 관점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네가 얼마나 높은 ‘관직’에 오르든, 어떤 직위이든, 얼마나 많은 사람을 관리하든 사실 본분만 다를 뿐 너는 다른 사람과 별다를 게 없다. 너는 이 일을 간파하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늘 이렇게 생각한다. ‘본분이 다른 게 아니라 분명 신분상에 차이가 있는 건데, 내가 다른 사람보다 위에 있어야지 어떻게 다른 사람과 협력하겠어? 다른 사람이 내게 협력한다면 모를까 내가 다른 사람에게 협력할 순 없지!’ 네가 늘 이렇게 생각하고 높은 위치에 서서 다른 사람의 어깨를 밟은 채 다른 사람의 위에 서서 다른 사람을 내려다보려고 한다면 다른 사람과 협력하기 쉽지 않다. 너는 늘 이렇게 생각한다. ‘저 사람이 뭘 알겠어? 아는 게 있다면 형제자매가 그를 리더로 뽑았겠지. 그럼 왜 나를 뽑았겠어? 내가 그보다 낫기 때문이지. 난 저 사람과 상의하면 안 돼. 그건 내가 뛰어나지 않다는 뜻이니까. 내가 뛰어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난 어떤 사람과도 상의할 수 없어. 나와 사역을 상의할 만한 사람은 없어. 아무도 그럴 자격이 없다고!’ 적그리스도는 이렇게 생각한다.
중국에서는 공산당이 종교적 신앙을 탄압해서 환경이 열악하다. 하나님을 믿으면 언제든 붙잡힐 위험에 직면하기 때문에 리더 일꾼도 예배를 그리 자주 하지 않는다. 한 달에 한 번 사역자 모임을 갖는 것도 불가능한데 여건이 허락할 때까지 기다리거나 적절한 장소를 찾아 다시 모임을 가질 때도 있다. 그럼 사역은 어떻게 시행하겠느냐? 사역지침이 있으면 인편으로 전달해야 한다. 한번은 근처의 형제를 통해 한 교구 리더에게 사역지침을 전달했다. 평신도였던 그 형제가 사역지침을 지정된 장소에 전달했을 때 그 교구 리더는 사역지침을 읽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칫, 예상대로네.” 이는 그 형제를 앞에 두고 무엇을 과시한 것이겠느냐? 이는 허세를 부린 것으로, 그걸 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이야, 정말 존엄하고 멋지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뒤이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사람을 통해 내게 사역지침을 전달하다니, 너무 급이 안 맞네!” 이 말은 ‘내가 교구 리더면 그래도 큰 리더인데 어떻게 평신도를 통해 내게 전달할 수가 있지? 이건 위계를 무시하는 거 아닌가? 상부에서 나를 너무 무시하네. 아무리 그래도 내가 교구 리더이니 적어도 지역 리더 정도는 보내 줘야지. 근데 제일 급이 낮은 평신도를 보내다니, 급이 안 맞잖아!’라는 뜻이다. 이건 뭐 하는 인간이란 말이냐! 그는 급이 맞지 않다고 하는데, 대체 지위를 어느 정도로 사랑하는 것이겠느냐? 사소한 일을 저렇게 크게 부풀리니, 그는 마귀 같은 인간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마귀 같은 인간이다. 너희가 보기에 교회에서 사역할 때 누가 무엇을 전달하거나 통지하러 오는 경우, 우리가 사람을 가려서 받겠느냐? 더군다나 중국 같은 환경에서는 형제자매가 그런 것들을 전달하는 도중에 내내 상당한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그런데도 그는 급이 맞지 않다며 그와 급이나 신분, 지위가 맞는 사람을 보내라고 하고 그러지 않으면 그를 무시한다고 생각하니 이는 적그리스도의 성품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게 바로 적그리스도의 성품이다. 이 마귀 같은 인간은 실제적인 사역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능력도 없으면서 그런 요구나 하고 지위도 몹시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의 명언은 무엇이냐? ‘급이 맞지 않다’이다. 누가 말을 걸면 그는 먼저 이렇게 묻는다. “당신은 리더 등급이 어떻게 되나요? 팀장이라고요? 물러가세요. 급이 안 맞잖아요!” 상부의 형제가 예배를 열면 그는 늘 곁에 다가가 이렇게 말한다. “교회 리더 중에서 형제님이 제일 급이 높고 제가 그다음이에요. 그러니까 저는 형제님 바로 옆에 붙어 앉을게요. 등급 순으로 앉아야죠!” 그는 이렇게 명확히 구분한다. 파렴치하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몹시 파렴치하고 분수를 모른다! 어느 정도로 파렴치하냐? 역겨울 정도다. 네게 리더라는 직함을 주어 봤자 네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얼마나 잘할 수 있겠느냐? 네가 어느 정도 성과를 내놓고 거드름을 피운다면 그나마 적절하고 논리에 부합하는 셈이지만, 아무 성과도 없고 아무 사역도 하지 않은 주제에 무슨 등급을 논한단 말이냐! 그럼 네 등급은 무엇이냐? 너는 교구 리더를 맡았지만 실제적인 사역은 별로 하지도 않았으니 너도 급에 맞지 않는 것이다. 내가 급을 따진다면 과연 내게 다가올 수 있는 사람이 있겠느냐? 아무도 없을 것이다. 너희가 보기에 내가 사람과 접촉할 때 무슨 등급을 따지느냐? 따지지 않는다. 나는 어떤 사람과 만나든 얘기할 수 있는 상황이면 얘기를 좀 나누고 얘기할 겨를이 없으면 인사만 하고 만다. 하지만 이 적그리스도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신분과 지위, 몸값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심지어 목숨보다도 소중하게 생각한다. 너희는 함께 본분을 이행할 때 등급을 따지느냐? 어떤 사람들은 무슨 일을 처리하든 등급을 따지고, 걸핏하면 다른 사람이 위계를 무시한 채 사역하고 통지한다고 한다. 무슨 위계를 무시했다는 것이냐? 먼저 본분을 잘 이행해라. 너는 제대로 이행한 본분도 없고, 어떤 사역도 하지 못하면서 무슨 등급을 따지는 것이냐? 누가 네 등급을 따지더냐? 아직 등급을 따질 때가 아닌데 너는 분수를 모르고 너무 일찍 등급을 따지는 것이다. 때로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장소에 가서 사람을 찾는데, 적절한 사람을 찾을 때 등급을 따지겠느냐? 대체로 그렇지 않다. 네가 그 사역을 책임졌다면 너를 찾고 네가 없다면 다른 사람을 찾을 뿐, 네 등급이나 지위 고하를 따지지는 않는다. 사람이 스스로 등급을 따지는 것은 분수도, 원칙도 모르는 것이다. 하나님 집에서도 이방인처럼 지위와 등급, 직함을 세세히 따진다면 너는 몹시 비이성적인 것이다! 너는 진리를 깨닫지 못했고 몹시 부족하다. 하나님을 믿는 게 무엇인지도 깨닫지 못한 것이다.
방금 다른 사람과 협력하는 것을 다루었는데, 그게 쉬운 일이겠느냐? 진리를 구할 수 있거나 어느 정도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 인성을 갖췄고 양심적이며 이성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과 협력할 수 있다. 반면, 인성을 갖추지 못했고 늘 지위를 독차지하려 하며 항상 자신의 존엄과 지위, 명예와 이익만 생각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과도 협력하지 못한다. 물론 이 또한 적그리스도의 주된 모습 중 하나이다. 즉, 어떤 사람과도 협력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어떤 사람과도 조화롭게 협력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는 이 원칙을 실행하지 않는다. 그가 실행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 그는 권력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고, 사람들이 그가 간파하지 못하는 부분이나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물어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는 다른 사람을 착각하게 만드는데, 다른 사람에게 그는 못하는 것이나 모르는 것이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없는 척척박사라고, 그라면 못하는 게 없이 다 할 수 있고 뭐든 해낼 수 있다고, 그는 다른 사람이나 다른 사람의 도움, 일깨움, 제안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게 한다. 이것이 한 가지 이유다. 그 밖에, 이 적그리스도라는 인간의 가장 두드러진 성품은 무엇이겠느냐? 네가 그와 접촉하면서 그가 하는 말 몇 마디를 통해 간파할 수 있는 성품은 무엇이겠느냐? 교만함이다. 어느 정도로 교만하겠느냐? 정신병에 걸린 듯 비이성적이다. 예를 들어, 그는 물 한 모금 마시는 자태가 우아하다는 것까지 드러내서 과시하며 이렇게 말한다. “물 마시는 제 자태가 아주 우아하지 않나요?” 그는 특히 과시와 자랑을 많이 하는데, 특히 부끄러움도 모르고 염치도 없다. 적그리스도는 바로 이런 인간이다. 그의 눈에는 누구도 그보다 못하며, 그는 특히 자랑을 많이 하고 분수를 모른다. 어떤 적그리스도는 아주 못생겼지만 스스로는 잘생겼다고, 달걀형 얼굴에 동그란 눈, 가느다란 눈썹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 정도로 분수를 모른다. 보통 사람은 삼사십 살까지 살면 대체적으로 자신의 외모와 능력을 정확하게 파악하지만 적그리스도 같은 사람은 이런 측면에서 비이성적이다. 무엇이 문제겠느냐? 그의 교만한 성품이 정상 이성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다. 그는 어느 정도로 교만한 것이겠느냐? 두꺼비처럼 생겨도 백조라고 말하니 이는 시비를 가리지 못하는 것이자 앞뒤가 바뀐 셈이며, 염치가 없을 정도로 교만한 것이자 자제력이 없는 것이다. 보통 사람은 스스로 잘생겼다고 자랑하는 것을 어려워하거나 민망해하며, 자랑한 뒤에는 한참 동안 부끄러워하고 얼굴까지 붉힌다. 적그리스도는 얼굴도 붉히지 않고 자신이 어떤 좋은 일을 했었는지, 어떤 장점을 가졌는지, 얼마나 잘났고 얼마나 남보다 나은지 입만 열면 자신을 자랑한다. 평상시에 말을 하듯 얼굴도 붉히지 않는다! 이게 바로 한없이 교만한 것이자 파렴치하고 비이성적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보기에 모든 정상인, 특히 진리를 구하고 정상 인성의 양심과 이성, 정상적인 사고를 갖춘 사람은 모두 평범한 사람이고 별다른 능력도 없으며 그들보다 못한 데다가 그들만큼 특기나 장점도 없다. 그는 거만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그보다 못하다고 생각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그는 무슨 일을 처리하든 어떤 사람과도 협력하거나 상의하려 하지 않는다. 설교를 듣든, 하나님의 말씀을 읽든, 하나님 말씀의 폭로를 보거나 때로 다른 사람이 그를 책망하고 훈계하든, 그는 자신에게 패괴 표출이나 과오가 있다고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이 교만하고 독선적이라고는 더더욱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보통 사람이고 자질이 평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는 이런 것들을 인식하지 못한다. 아무리 네가 책망해도 그는 자신은 자질이 뛰어나고 보통 사람보다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구제 불능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는 구제 불능인 것이고 이게 바로 적그리스도이다. 아무리 책망해도 그는 자신이 부족하고 무능력하다고 고개 숙여 인정하지 않는다. 그가 보기에 자신의 문제와 결점, 패괴를 인정하는 것은 정죄되거나 멸망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는 남이 그의 결점을 보거나 그가 자신의 자질이 떨어지고 영적인 이해력이 없다고 인정하는 순간, 하나님을 믿는 것은 힘이 빠지고 의미가 없어진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지위를 지키지 못하고 잃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위가 없다면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차라리 죽는 게 낫지!’라고 생각한다. 지위가 생기면 그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교만해지고 제멋대로 못되게 군다. 벽에 부딪치거나 책망을 받으면 그는 다 내팽개치려 하고 소극적으로 변해 일을 게을리한다. 그가 진리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기를 바라는 건 꿈도 꾸지 마라. 그들은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나한테 지위를 주고 혼자 하게 한다면 어떨까? 나보고 다른 사람과 협력하라는 건 말도 안 되지! 나한테 파트너를 찾아 주지 마. 난 필요 없어. 아무도 나와 협력할 자격이 없다고. 아니면 나를 쓰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시키든지!’ 이건 도대체 뭐 하는 인간이란 말이냐? 산 하나에 호랑이 두 마리는 가당치 않다는 것이 적그리스도가 가진 심리이자 드러내는 모습이다. 이는 구제 불능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첫 번째 어떤 사람과도 협력하지 못한다. 여기에서 ‘못한다’에는 무엇이 포함되어 있겠느냐? 어떤 사람과도 협력하지 않는 것과 어떤 사람과도 협력하지 못하는 것, 이 두 가지가 아니겠느냐? 두 가지 뜻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것은 적그리스도의 본질에 의해 결정된다. 설사 누가 그와 협력해 사역한다고 해도 실질적으로는 진정으로 협력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그저 따르거나 거들어 주는 자, 심부름하거나 일을 처리하는 자일 뿐이다. 이는 절대 협력하는 거라고 할 수 없다. 그럼 협력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겠느냐? 사실상 협력의 최종 목적은 진리 원칙을 깨닫고 진리 원칙대로 일을 처리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옳은 결정, 원칙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리며, 오류를 발생시키지 않고 사역 과정에서 실수를 줄임으로써 네가 하는 모든 것이 마음대로 하고 제멋대로 못되게 구는 게 아니라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도록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이 아닌 오직 그에게 순종하도록 하는 적그리스도의 첫 번째 모습은 바로 어떤 사람과도 협력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과도 협력하지 못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오직 그에게만 순종하도록 하는 건 아니죠.” 그가 어떤 사람과도 협력하지 못한다는 것은 바로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누구의 의견도 묻지 않으며, 나아가 하나님의 뜻이나 진리 원칙도 구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의향대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이 말의 숨은 뜻은 무엇이겠느냐? 그가 사역할 때는 진리나 하나님이 아닌 그가 다스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사역하는 원칙은 사람들이 그의 말에 따르고 그를 진리이자 하나님으로 대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성질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과도 협력하지 못하는 건 그 사람이 진리를 깨달아서 다른 사람과 협력할 필요가 없기 때문일 수도 있잖아요.” 그런 것이겠느냐? 진리를 깨닫고 실행하는 사람일수록 일을 처리할 때 더 다방면에서 묻고 구하며 다른 사람과 많이 상의하고 교제해서 손실이나 실수할 확률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한다. 진리를 깨달은 사람일수록 더욱 이성적이고 다른 사람과 협력하려 하며 다른 사람과 협력할 수 있다. 그렇지 않겠느냐? 다른 사람과 협력하려 하지도, 협력하지도 못하는 사람일수록 누구의 말도 들으려 하지 않고 누구의 제안도 참고하려 하지 않으며 일을 처리할 때 하나님 집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을 뿐 아니라 진리 원칙에 부합하는지 구하려 하지도 않는다. 이런 사람은 진리를 구하지 않을수록 진리를 더더욱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어떻게 오해하겠느냐? ‘형제자매가 나를 리더로 뽑았고 하나님이 내게 리더가 될 기회를 주셨으니 내 행동은 진리에 부합하고 내가 어떻게 하든 다 옳아.’ 이는 오해가 아니겠느냐? 그들은 왜 이렇게 오해하겠느냐?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이런 사람은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또 다른 점은 이런 사람은 진리를 전혀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는 의심의 여지없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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