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조 그는 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이 아닌 오직 그에게 순종하도록 한다(1) 제 3 부
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이 아닌 오직 그에게 순종하도록 하는 적그리스도를 해부하다
오늘은 적그리스도의 여러 모습 중 제8조인 ‘그는 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이 아닌 오직 그에게 순종하도록 한다’를 교제하겠다. 너희는 이 조항을 듣고 이해할 수 있지 않겠느냐? 우선 자신이 이해한 것을 이 조항의 어떤 모습에 비춰 볼 수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라. 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이 아닌 오직 그에게 순종하도록 한다는 조항의 문자적인 의미는 이해하기 쉽지만, 그 안에는 다양한 내적 상태, 여러 부류의 사람이 드러내는 갖가지 성품, 또는 갖가지 성품이 드러내는 다양한 행위가 담겨 있다. 이는 큰 주제이기 때문에 일부 작은 측면에서부터 교제를 시작해야 한다. 문자적인 의미대로 이 조항을 해석한다면 글귀와 도리를 얘기하는 사람들은 보통 이렇게 말한다. “그건 바로 무엇이든 그의 말을 따라야 한다는 거예요. 그가 하는 말이 진리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그가 글귀와 도리를 말하거나 한마디라도 말할 때 무조건 따르라는 거죠. 그는 늘 남에게 명령하고 사역을 배정하며 자신을 따르도록 강요해요.” 문자적인 의미만 좀 다룬다면 보통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겠느냐? 또 어떻게 이야기하겠느냐? “그는 자신이 항상 옳다고 생각합니다. 남에게 자신의 말에 따르라고 하고, 그가 하는 말이 진리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그에게 순종하도록 하죠. 그는 자신을 진리이자 하나님으로 여겨서 남들이 그를 따르는 것이 진리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런 의미예요.” 너희가 이 주제를 다룬다면 어떻게 이야기할지 한번 생각해 보아라. 너희가 보거나 직접 겪은 일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먼저 어느 측면에서부터 이야기하겠느냐? 실제에 대해 얘기하니 다들 말이 없어지는구나. 그럼 너희는 평소에 형제자매와 교제할 때도 말이 없느냐? 말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사역을 잘할 수 있겠느냐? 우선 이런 모습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과 행위로 나타나는지 한번 말해 보아라. 너희가 예전에 보거나 겪은 것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느냐? 생각나는 게 있느냐? (저는 본분을 이행할 때 강렬하게 드는 생각을 갖게 되면 정말로 그 생각대로 하고 싶습니다. 그 생각이 훌륭하고 옳다고 생각해서 남이 의문을 제기해도 서둘러 정해야 하는 미룰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고 그대로 강행합니다. 설사 남이 구하려고 해도 시간을 주려 하지 않고, 그저 남이 제 생각대로 행동하길 원합니다.) 그것도 구체적인 모습 중 하나다. 또 누가 말해 보아라. (한번은 제가 어떤 사람을 발탁하고 양성하는 일을 형제자매와 교제했는데, 사실 저는 마음속으로 그 사람을 발탁할 결심을 내린 상태였습니다. 저는 이미 상부에도 구했기 때문에 그 사람을 발탁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지만 일부 형제자매는 그 일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저는 왜 그 사람을 발탁하려는 것인지, 무슨 원칙과 진리에 따른 것인지 교제하지 않고 그저 그 사람이 아주 훌륭하고 그 사람을 발탁하는 것이 원칙에 부합한다고 형제자매에게 강력하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강제로 사람들이 제게 순종하게 하고는 제가 하는 일이 옳은 것으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너희가 이야기한 것은 같은 유형의 문제나 내적 상태인데, 기본적으로 이 조항에 부합한다. 하지만 보아하니 너희는 진리의 문자적인 의미만 깨달은 것 같으니 아무래도 내가 교제를 해야겠다. 너희가 웬만큼 이해했으면 이 조항은 넘어가고 이어서 다음 조항을 교제하려고 했는데, 지금 보니 그냥 넘어가지 말고 계속 교제해야겠다.
적그리스도의 여러 모습 중 제8조인 ‘그는 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이 아닌 오직 그에게 순종하도록 한다’에는 적그리스도의 본질적인 모습이 몇 가지 포함돼 있다. 그건 한 가지 일, 한마디 말, 한 가지 관점, 또는 한 가지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의 성품이다. 그럼 그 성품은 무엇이겠느냐? 몇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첫 번째, 이런 사람은 어떤 사람과도 협력하지 못한다. 이게 행동 방식이겠느냐? (아닙니다. 성품입니다.) 그렇다. 이는 성품의 표출이며, 그 성품의 본질은 교만하고 독선적인 것이다. 이런 사람은 그 누구와도 협력하지 못한다. 이게 첫 번째 조항이다. 두 번째, 늘 사람을 통제하고 정복하려는 욕망과 야심을 지닌다. 이 또한 성품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것이 행동 방식이겠느냐? (아닙니다.) 이는 너희가 말한 것들과 어떤 차이가 있겠느냐? 너희가 말한 건 일이나 행동 방식이다. 그건 본질이 아니다. 두 번째 조항은 너희가 말한 것들보다 더 심각하지 않으냐? (심각합니다.) 두 번째 조항은 근본적인 원인을 짚었다. 세 번째, 어떤 일을 인계받든 다른 이가 사역에 개입하고 질문하고 감독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는 본질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각 본질 속에는 다양한 모습과 행동 방식이 있다. 이 본질 역시 제8조의 주제에 부합하지 않느냐? 네 번째, 얼마간의 경험과 지식, 교훈을 갖췄다고 진리의 화신으로 사칭한다. 즉, 진리를 좀 교제할 줄 알면 자신이 진리 실제를 갖추었다고 생각하고, 남들이 그를 진리를 갖춘 사람이자 진리를 실행하고 사랑하며 진리 실제를 갖춘 사람으로 바라보게 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가 진리의 화신으로 사칭하는 이 일의 성질은 심각하지 않으냐? (심각합니다.) 이 조항은 제8조의 큰 주제에 부합하느냐? (부합합니다.) 부합한다. 제8조에는 기본적으로 이렇게 네 가지 조항이 있다. 첫 번째 조항부터 읽어 보아라. (첫 번째, 이런 사람은 어떤 사람과도 조화롭게 협력하지 못한다.) 조화롭다는 것은 협력할 줄 안다는 뜻인데, 이런 사람은 아예 그 누구와도 협력하지 못하고 혼자서 일을 처리하며 혼자 다닌다. 첫 번째 조항의 특징은 바로 ‘혼자’이다. 두 번째 조항. (늘 사람을 통제하고 정복하려는 야심과 욕망을 지닌다.) 이는 심각하지 않으냐? (심각합니다.) 그럼 두 번째 조항의 특징은 무엇이겠느냐? 한 단어로 표현해 보아라. (‘사악하다’입니다.) ‘사악하다’는 형용사로, 그의 성품을 표현하는 것이니 ‘통제’라고 해야 할 것이다. 통제는 일종의 행동, 바로 이런 성품에서 생겨난 그런 유형의 행동이다. 세 번째 조항. (어떤 일을 인계받든 다른 이가 사역에 개입하고 질문하고 감독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는 적그리스도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성품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는 적그리스도만의 특징적인 성품이다. 이 조항을 요약하기에 적절한 단어가 있겠느냐? ‘대항’이라는 단어가 있다. 누가 오든 저항하고, 형제자매나 보통 사람의 감독과 질문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물론 하나님의 감찰조차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는 대항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네 번째. (얼마간의 경험과 지식, 교훈을 갖췄다고 진리의 화신으로 사칭한다.) 이 조항을 적절한 단어로 요약해 보자면, ‘사칭’이라고 할 수 있다. 사칭하는 것은 외식하는 것보다 더 심각하다. 제8조의 큰 주제와 관련된 적그리스도의 네 가지 기본적, 특징적인 모습과 행동 방식, 성품이 모두 이 네 가지 조항에 담겨 있다. 첫 번째 조항의 특징은 ‘혼자’이다. 그는 어떤 사람과도 협력하지 못하고 그저 혼자서 일을 처리하려 한다. 그 누구의 말도 따르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행동한다. 모두가 그의 말만 따르고 남의 말은 따르지 못하게 하며,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두 번째 조항의 특징은 ‘통제’이다. 남을 통제하려 하며, 여러 방식으로 너, 너의 생각, 행동 방식, 마음, 관점을 통제할 것이다. 그는 너에게 진리를 교제해 주지 않고, 네가 진리 원칙이나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 주지 않는다. 그는 네가 오직 그를 위해 쓰이고 말하고 행동하고 힘쓰며 그를 높이고 증거하도록 통제하려 한다. 너를 통제해 그의 노예나 꼭두각시로 만들려 한다. 세 번째 조항의 특징은 ‘대항’이다. 이는 모든 것에 저항하는 것으로, 그의 사역이나 주장을 분별하고 감독하고, 위협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예외 없이 저항하고 반발하는 것이다. 네 번째 조항의 특징은 ‘사칭’이다. 무엇을 사칭하는 것이냐? 진리의 화신으로 사칭하는 것이다. 바로 그는 자신이 한 말이나 행동을 남에게 기억하게 하고 한술 더 떠서 노트에 받아 적게 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머리로 기억하면 다예요? 노트에 받아 적어야죠. 다들 제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잖아요. 아주 심오한 말이라고요!” 그는 자신의 말을 무엇으로 여긴 것이겠느냐? 진리로 여긴 것이다. 그럼 이제부터 하나하나 교제해 보자.
1. 어떤 사람과도 협력하지 못하는 적그리스도를 해부하다
첫 번째, 어떤 사람과도 협력하지 못한다. 이는 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이 아닌 그에게 순종하도록 하는 적그리스도의 첫 번째 모습이다. 어떤 사람과도 협력하지 못한다. 여기서 ‘어떤 사람’은 모든 사람을 포함한다. 성격이 맞든 맞지 않든, 상황이 어떻든 협력하지 못하는데, 이는 일반적인 패괴 표출 문제가 아니라 본성의 문제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저는 어떤 사람들과는 성격이 안 맞아서 협력하지 못해요.” 이는 단순히 성격 문제가 아니라 패괴 성품의 문제이다. 패괴 성품이 있다는 것은 적그리스도의 성품이 있다는 뜻이지만 적그리스도의 본질이 있다는 말은 아니다. 진리를 구할 수 있고, 진리에 부합하기만 하면 누가 한 말에든 순종할 수 있다면,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과 조화롭게 협력하는 게 쉽지 않겠느냐? (쉽습니다.) 진리에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쉽게 협력하고, 진리에 순종할 수 없는 사람은 누구와도 협력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몹시 교만하고 독선적이며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어떤 사람과도 조화롭게 협력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심각한 문제이다. 그는 적그리스도의 본성을 가진 것이며, 진리에도, 하나님에게도 순종하지 못한다. 사람은 패괴 성품이 있는데,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구원받기 쉽다. 반면 적그리스도의 본성이 있는데 진리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골치 아파진다. 구원받기 쉽지 않은 것이다. 수많은 적그리스도가 드러나는 주된 원인은 어떤 사람과도 협력하지 못하고 늘 독단적이기 때문인데, 이는 패괴 성품의 표출이겠느냐, 아니면 적그리스도의 본성 본질이겠느냐? 어떤 사람과도 협력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이 문제겠느냐? 이는 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이 아닌 오직 그에게 순종하도록 하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겠느냐? 첫 번째 조항을 명확히 교제한다면, 적그리스도의 본성 본질을 가진 사람은 어떤 사람과도 협력하지 못하고 누구와 협력하든 갈라서게 되며 심지어 원수지간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어떤 적그리스도들은 겉으로 볼 때 주변에 조력자와 파트너가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일이 닥칠 경우, 그는 다른 이의 말이 아무리 옳아도 듣지도 않는다. 심지어 아예 참고하지도 않고 그 일에 관해 교제하거나 토론하는 경우는 더더욱 없다.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고, 다른 이를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 그저 보여 주기식으로 형식적으로만 남이 말하는 것을 들을 뿐, 마지막에 결정을 내릴 때는 여전히 그가 결정권을 갖는다. 다른 이가 말해 봤자 아무 의미도, 소용도 없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어떤 일을 책임지고 하는데 그중 한 사람에게 적그리스도의 본질이 있다고 해 보자. 그는 어떤 모습을 보이겠느냐? 무슨 일이든 자기 혼자서 시작하고, 물어보고, 처리하고, 해결할 뿐, 대부분의 경우 파트너에게 전혀 알려 주지 않는다. 그가 보기에 자신의 파트너는 어떤 존재냐? 조수가 아니라 그저 장식품일 뿐이다. 적그리스도의 눈에는 그의 파트너가 전혀 없다. 무슨 일이 있으면 그는 생각해 보고 실행 가능하다 싶으면 모두에게 그렇게 하라고 통지한다. 다른 사람에겐 이 문제에 대해 물어볼 권리가 없다. 그가 다른 사람과 협력하는 것의 본질은 무엇이냐? 사실 한 사람이 결정권을 가지고 있고, 어떤 문제가 생기든 다른 사람과 상의하지 않고 혼자 사역을 책임진다. 그의 파트너는 장식품이 되어 버린다. 그는 일할 때 늘 독단적으로 굴며 누구와도 협력하지 않는다. 그는 사역할 때 누구와도 소통하거나 교류하지 않는다. 항상 혼자 결정하고, 문제가 생겨도 혼자 처리한다. 많은 경우, 다른 사람은 그가 일을 다 끝내고 처리한 후에야 그 일에 대해 알게 된다.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 “일이 생기면 우리와도 교제해야죠. 그 사람은 언제 처리한 거예요? 어떻게 처리한 거죠? 우린 왜 몰랐던 거죠?” 그는 설명해 주지도, 상대하지도 않는다. 그의 파트너는 그에게 아무 쓸모가 없는 존재이다. 그저 액세서리, 장식품에 불과하다. 무슨 일이 생기면, 그는 궁리해 본 후 결정을 내리고는 하고 싶은 대로 한다. 그의 곁에 사람이 몇이 있든 마치 아무도 없는 양 다른 사람을 투명인간 취급한다. 이런 식이면 다른 사람과 협력할 때 그에게 실제적인 면이 있을 수 있겠느냐? 없다. 그저 형식적이고, 이름만 걸어 놓았을 뿐이다. 다른 사람이 “이런 일이 생겼는데 왜 모두와 교제하지 않는 거죠?”라고 말하면 그는 “사람들이 뭘 알아요? 난 팀장이에요. 내가 결정하면 그만입니다.”라고 대답한다. 또 “그럼 왜 당신 파트너와 교제하지 않은 거예요?”라고 말하면 “얘기해 봤어요. 별 의견이 없더군요.”라고 대답한다. 그는 상대가 ‘별 의견이 없다’, ‘주관이 없다’라는 이유로 자신의 이런 독단적인 행위를 덮어 버리곤 전혀 반성하지 않는데, 이런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이는 건 더 불가능하다. 이것은 적그리스도의 본성 문제다.
‘협력하다’라는 단어는 어떻게 해석하고 실행해야 하겠느냐? (일이 생기면 함께 상의하는 것입니다.) 그렇다. 그것은 실행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또 있느냐?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며 서로 감독하는 것입니다.) 매우 적절하다. 그렇게 실행하는 것이 바로 조화롭게 협력하는 것이다. 더 있느냐? 일이 닥쳤을 때 상대방의 의견을 구하는 것도 협력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너는 너대로 교제하고 나는 나대로 교제한 다음 결국에는 내 말을 따른다면, 그런 형식은 갖추어서 무엇 하겠느냐? 그것은 협력하는 게 아니고 원칙에 부합하지도 않으며 협력하는 성과도 거둘 수 없다. 다른 사람에게는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너만 따발총처럼 끊임없이 말하거나 자신의 생각만 다 말해 놓고 다른 사람의 말은 듣지도 않는다면, 그것이 상의하고 교제하는 것이겠느냐? 그건 형식만 갖추는 것이지 협력하는 게 아니다. 그럼 협력이란 무엇이겠느냐? 그건 바로 네가 너의 생각과 결정을 말하고 난 뒤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관점을 구하고, 그런 다음 다시 두 사람의 주장이나 관점을 꺼내 비교해 보면서 여러 사람이 함께 분별하고 원칙을 구하고 공감대를 형성해 정확한 실행 길을 확정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상의하고 교제하는 것이자 협력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리더를 맡으면서 일을 간파하지 못하고 방법을 찾지 못하면 그제서야 남들과 상의한다. 그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일은 제가 독단으로 결정할 수 없어요. 여러분과 조화롭게 협력해야죠.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상의해 보고 정할 테니 여러분도 의견을 내 보세요.” 사람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하고 나서 그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도 저랑 생각이 같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안 그래도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상의해 보니 우리 생각이 똑같다는 게 확실해졌네요.” 이 말이 진심이겠느냐? 이 말에는 거짓이 섞여 있다. 그는 그 일을 전혀 간파하지 못했다. 그의 이 말에서는 우러름을 받기 위해 남들을 현혹하고 기만하는 뜻이 담겨 있다. 그가 사람들의 의견을 구하는 것은 그저 형식을 갖추는 것일 뿐이다. 사람들이 그는 독단적이지 않거나 권력을 독점하지 않는다고 말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런 꼬리표를 떼기 위해 이런 방식으로 사실을 감추는 것이다. 사실 사람들이 말할 때 그는 전혀 듣지도, 신경 쓰지도 않으며 진심으로 사람들이 말하기를 원하는 것도 아니다. 표면적으로는 사람들에게 교제하고 토론하게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뜻에 맞는 방법을 찾기 위해 사람들에게 말하라고 하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확정하고 나면 그는 자신의 뜻이 옳든 말든 남에게 받아들이도록 강요하고, 사람들이 그의 방식이 옳고 모두의 뜻과 같다고 생각하게 만들어 결국 강제로 실행한다. 이것이 협력하는 것이겠느냐? 이는 협력하는 게 아니라 무엇이겠느냐? 이는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옳든 그르든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려는 것이다. 그 밖에, 그는 일이 닥쳤을 때 간파하지 못하면 사람들에게 먼저 말하게 하고, 다 듣고 나서 사람들의 관점을 정리한 다음 자신의 마음에 들고 적절해 보이는 방법을 찾아 사람들이 받아들이게 한다. 이는 협력의 기치를 내건 것인데, 그 결과는 여전히 그 자신의 뜻에 따라 일을 처리하고 그 혼자 결정권을 갖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그가 남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 사람들이 하는 말에서 트집을 잡고 평가하고 방향을 잡은 다음, 완전하고 정확한 주장으로 정리해서 결단을 내린다. 겉으로 보기에는 사람들의 의견도 듣고 사람들에게 말하게 하는 것 같지만 사실 결국에는 그 혼자서 결정을 내린다. 사실 그 결정은 사람들의 견해나 관점인데 단지 그가 정리해서 좀 더 완전하고 정확하게 말한 것일 뿐이다. 이런 사실을 간파하지 못하고 그가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가 이렇게 일을 처리하는 것은 어떤 성질이겠느냐? 너무도 교활하지 않으냐? 남들이 자신을 숭배하고 자신에게 순종하게 하기 위해 사람들의 의견을 정리해서 제 의견인 양 말하면서 결국에는 전부 자신의 의견대로 하게 한다면 이것이 조화롭게 협력하는 것이겠느냐? 이는 교만하고 독선적이며 독단적인 것으로, 공로를 자신에게 돌리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과 협력하는 것은 매우 솔직하지 못한 것이자 너무 교만하고 독선적인 것으로, 시간이 지나면 모두가 알아챌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제가 어떤 사람과도 협력하지 못한다고 하셨는데, 저도 파트너가 있어요. 파트너는 저와 아주 잘 협력한다고요. 제가 어디를 가든 따라오고 무얼 하든 따라 하죠. 가라는 데로 가고요.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하든 다 시키는 대로 한다니까요.” 이게 파트너겠느냐? 이는 파트너가 아니라 졸개이다. 졸개는 무엇이든 네가 시키는 대로 하는데 이게 파트너겠느냐? 이는 노예임이 분명하다. 생각도, 관점도 없고 주관은 더더욱 없는 데다가 무골호인 성향까지 있다. 무슨 일을 하든 진지하게 대하지 않고 건성으로 형식만 갖추면서 하나님 집의 이익은 지키지도 않는다. 이런 파트너가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누구와 협력하든 절대 복종하며, 노예처럼 말하는 대로 따르고 하라는 대로 한다. 이것은 협력이 아니다. 협력이란 무엇이겠느냐? 일이 생기면 상의하고 관점이나 견해를 밝히며 서로 보완하고 감독하는 것, 그리고 서로 구하고 의논하고 일러 주는 것이야말로 조화로운 협력이다. 예를 들어, 네가 자기 생각대로 일을 처리했을 때 어떤 사람이 “이 일은 잘못 처리했어요. 철저히 원칙을 위배했다고요. 왜 진리를 구하지 않고 제멋대로 처리했죠?”라고 말하는 걸 듣고 네가 “그러게요. 당신이 일깨워 줘서 다행이에요. 일깨워 주지 않았다면 큰 화를 부를 뻔했어요!”라고 말한다면 이것이 바로 서로 일러 주는 것이다. 그럼 상호 감독은 무엇이겠느냐? 사람은 모두 패괴 성품을 가지고 있고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하며 자신의 지위와 체면만 지키고 하나님 집의 이익은 지키지 않을 수도 있다. 모두가 이런 내적 상태를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서 문제점을 발견하면 너는 그와 적극적으로 교제하며 원칙대로 본분을 이행하라고 그에게 일깨워 주면서 스스로도 경계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상호 감독이다. 상호 감독하면 무슨 작용을 하겠느냐?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는 동시에 사람이 길에 잘못 들지 않게 할 수 있다. 협력의 작용은 서로 일러 주고 감독하는 것 외에 서로 의견을 묻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누구를 처리하려고 할 때는 너의 파트너와 이렇게 교제하고 의논해야 한다. “이런 일은 처음이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요? 확신이 서지 않아요!” 그러면 그는 “저는 이런 문제를 처리해 본 적 있어요. 당시 상황이 이 사람의 상황과는 조금 달라서 그때처럼 처리하면 약간 규례를 지키는 격이 되겠어요. 저도 이번에는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지 모르겠네요.”라고 말할 것이다. “제 생각이 괜찮은지 한번 들어 보실래요? 이 사람은 됨됨이만 놓고 보면 악인인 것 같지만 당분간은 확신할 수 없어요. 하지만 그가 힘을 쓸 수 있으니 일단 힘쓰게 두고, 힘을 쓸 수 없고 계속 방해하고 교란하면 그때 가서 처리하는 거예요.”라는 네 말을 듣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게 좋겠네요. 안전하고 원칙에 완전히 부합하는 데다 사람을 억누르지도, 개인적인 원한을 표출하지도 않는 방법이네요. 그럼 일단 그렇게 처리하죠.” 이렇게 두 사람이 상의를 거쳐 합의를 보면 사역이 순조롭게 이루어진다. 반면 두 사람이 협력도, 상의도 하지 않는다면 그는 어떻게 처리할지 몰라 너에게 떠맡기고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당신이 처리하고 싶은 대로 해. 어차피 실수하면 당신 책임이지 난 같이 책임지지 않을 테니까.’ 너는 그가 책임지지 않으려 이렇게 하는 것임을 알고도 지적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아무렇게나 처리하고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책임지고 싶지 않아서 내게 처리하게 하네. 그럼 내가 처리하지. 그를 출교시킬 거야.’ 두 사람이 마음이 맞지 않고 속마음을 숨긴 결과, 원칙을 위배하며 제멋대로 처리하고 힘을 쓸 수 있는 사람도 함부로 제명해 버린다. 이것이 조화롭게 협력하는 것이겠느냐? 조화롭게 협력해야만 긍정적인 성과를 이룰 수 있다. 한 사람은 무책임하고 다른 한 사람은 제멋대로 군다면, 이는 협력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다 자기 뜻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분을 이행해서야 어떻게 합격할 수 있겠느냐?
파트너 간에 일이 생기면 서로 의견을 묻고 상의해야 하는데 과연 적그리스도가 그렇게 실행할 수 있겠느냐? 적그리스도는 어떤 사람과도 협력하지 못하고 늘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하려 한다. 이 조항의 특징이 바로 ‘혼자’이다. 어째서 ‘혼자’라는 단어로 표현하겠느냐? 일을 처리하기 전에 그는 하나님 앞에 와서 기도하지 않고 진리 원칙을 구하지도 않으며 “이렇게 하는 게 적절할까요? 사역지침에서는 어떻게 규정하고 있죠? 이런 일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요?”라며 남과 교제하는 일은 더더욱 없다. 사역자, 파트너와 상의하거나 구해 공감대를 형성하려 하지 않고 혼자서 궁리하고 계획하며 생각하고 안배한다. 그는 하나님 집의 사역지침을 건성으로 한 번 읽고는 이해했다고 생각하며 무작정 사역을 안배한다. 다른 사람이 알았을 때는 이미 사역을 다 안배한 상태이다. 누구든 그의 입을 통해 그의 관점이나 주장을 미리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는 마음속에 있는 사상 관점을 절대 어느 누구와도 교제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리더 일꾼은 다 파트너가 있지 않나요?” 명목상으로는 그도 누구와 파트너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사역할 때 그는 파트너 없이 늘 독단적으로 행동한다. 리더 일꾼은 파트너가 있고, 어떤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이든 다 파트너가 있다. 하지만 적그리스도는 스스로 보통 사람들보다 자질이 뛰어나 보통 사람들은 그의 파트너가 될 자격이 없고 모두 그보다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적그리스도는 혼자 결정하는 것을 좋아하고 남과 상의하는 건 싫어한다. 그는 다른 사람과 상의하면 자신이 못나고 무능력해 보인다고 생각한다. 이는 어떤 관점이냐? 이는 어떤 성품이냐? 교만한 성품이 아니냐? 그는 다른 사람과 협력하며 상의하고, 다른 사람에게 구하고 물어보는 것을 남에게 굽히고 들어가는 구차한 짓으로, 그의 존엄을 해치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존엄을 지키려고 무슨 일을 하든 투명하게 굴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알려 주지도 않으며, 다른 사람과 상의하는 일은 더더욱 없다. 그는 다른 사람과 상의하는 것은 무능함의 표현이라고 여기고, 늘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묻는 사람은 머리가 나쁘고 주관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과 협력해 어떤 일을 완수하거나 어떤 상황을 처리하는 것은 능력 없는 모습이라고 여긴다. 이것은 그들의 교만한 심리와 그릇된 심리가 아니냐? 이는 패괴 성품이 아니냐? 여기에서 교만과 독선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는 정상인의 이성을 상실한 것이며, 정신에 좀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들은 늘 자신은 능력이 있어 혼자 일을 해낼 수 있으며, 다른 이의 협력은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패괴 성품이 존재하기에 조화롭게 협력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는 남과 협력하면 그의 권력이 흩어지고 나눠지니 남과 사역을 나누게 되면 자기 권력이 줄어들 것이고, 혼자서 전부 결정하지 못하면 자기에게 별 실권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이건 그에게 있어 굉장히 큰 손실이다. 그래서 어떤 일이 생기든 어떻게 하는 것이 적합한지를 알고 이해한다고 생각하면, 그는 다른 사람과 상의하지 않고 혼자 결정한다. 차라리 실수할지언정 남에게 알리지 않고, 일을 잘못할지언정 권력을 다른 사람과 나누려 하지 않으며, 면직되는 한이 있어도 다른 사람이 자기 사역에 끼어들지 못하게 한다. 이런 자가 바로 적그리스도이다. 그는 하나님 집의 이익에 피해를 주고 하나님 집의 이익으로 모험을 할지언정 자신의 권력을 다른 이에게 나눠 주지 않는다. 그는 사역을 하고 일을 처리하는 것을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뽐내고 남들 앞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권력을 행사할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입으로는 사람들과 조화롭게 협력하겠다고, 일이 닥치면 함께 상의하겠다고 하지만 사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 권력과 지위를 포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는 도리를 알고 자신이 해낼 수만 있다면 남과 협력할 필요 없이 혼자 일을 해내고 완수해야 능력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이런 관점이 올바르냐? 원칙을 어기면 그것은 본분 이행이 아니며,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할 수도 없고, 그저 힘만 쓰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는 알지 못한다. 또 그는 본분을 이행하면서 진리 원칙을 구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속셈대로 권력을 휘두른다. 그렇게 스스로를 드러내고 뽐내면서 누구와 협력하든, 어떤 일을 하든 남과 상의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행동하며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려 한다. 이는 분명 권력 남용이고, 권력을 이용해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모두 권력을 사랑하며, 지위가 생기면 더 큰 권력을 갖고자 한다. 적그리스도는 수중에 권력이 들어오기만 하면, 지위를 이용해 자신을 뽐내고 과시해 남들에게 우러름을 받고, 사람들 사이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목적을 이루려고 한다. 그래서 적그리스도는 권력과 지위를 무척이나 중요시하며, 어느 때라도 이 권력을 놓지 않을 것이다.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어느 방면의 업무와 관련 있든 그는 분명 모르면서도 아는 척하고 다른 사람이 아는 척한다고 지적하면 이렇게 말한다. “저는 지금 배워도 당신보다 더 잘 알 수 있어요. 인터넷에서 자료 좀 찾아보면 바로 알 수 있지 않나요?” 적그리스도는 이렇게 교만하고 독선적이며 어떤 일이든 아주 간단하게 생각하고 자신이 감히 도맡는다. 그 결과 상부에서 사역을 검사하면서 그에게 일을 어떻게 처리했느냐고 물으면 그는 거의 다 됐다고 말하지만, 사실 뒤에서는 독단적으로 행동하고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으며 혼자서 결정한다. 그에게 “이렇게 일을 처리하는 데 원칙이 있나요?”라고 물으면 그는 그렇게 하는 게 옳고 원칙에 부합한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그럴듯한 이론을 들이민다. 사실상 그의 생각은 모두 치우치고 잘못되었다. 그는 다른 사람과 전혀 상의하지 않고 늘 자기 생각대로 정하고 혼자서 결정을 내린다. 혼자서 결정을 내리면 보통 오류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 그처럼 이렇게 독선적이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대체 어떤 성품이겠느냐? 교만한 성품임이 분명하다. 그는 교만한 성품을 가졌기 때문에 그렇게 독단적으로 행동하고 제멋대로 못되게 굴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권력을 독점하고 혼자 권력을 독차지하는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바로 이런 성품을 가지고 있어서 절대로 다른 사람과 협력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그게 쓸데없고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적그리스도는 늘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낫고 누구도 그와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다른 사람과 협력하고 싶어 하지도, 협력하려고도 하지 않으며 그저 자기 혼자 결정하고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하려 한다. 그래야 마음이 후련하고 그의 출중함을 드러내어 남들이 복종하고 숭배하게 할 수 있다.
그 밖에, 적그리스도는 늘 혼자 권력을 독차지하고 자기 혼자 결정을 내리려 한다. 그는 이런 성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협력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과 협력하기를 원하지 않는지 물으면 그는 원한다고 하지만 정작 협력해야 할 때가 되면 그러지 못한다. 이런 게 바로 성품이다. 왜 그러지 못하겠느냐? 만약 적그리스도가 부팀장이고 다른 사람이 팀장이라면, 적그리스도의 본성 본질을 가진 그자는 부팀장을 팀장으로, 팀장을 도리어 부팀장으로 바꿀 수 있다. 그는 어떻게 달성하겠느냐? 그는 다양한 수단을 가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형제자매 앞에서 일을 처리할 때, 즉 많은 사람이 볼 수 있을 때 많이 말하고 많이 행동하며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다른 사람이 그를 우러러보게 하고 그가 그 팀장보다 훨씬 낫고 이미 그 팀장을 넘어섰다고 인정하게 한다. 시간이 흘러 형제자매가 팀장이 부팀장보다 못하다고 말하면 적그리스도는 그 말을 듣고 기뻐서 이렇게 생각한다. ‘드디어 내가 그보다 낫다고 인정했어. 이러면 목적을 달성했다고.’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부팀장이 다해야 할 책임과 의무는 무엇이겠느냐? 팀장과 협력해 교회에서 안배한 사역을 이행하거나 수행하고, 팀장에게 지적해 주거나 팀장을 일깨우고 감독하면서 둘이서 상의해서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팀장은 주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부팀장은 그를 보조하고 그와 협력해 각 사역을 잘 처리해야 한다. 훼방을 놓아서는 안 될 뿐 아니라 모든 일에서 팀장과 협력해서 해야 할 사역을 잘 처리해야 한다. 팀장이 일을 처리할 때 원칙을 위배한다면 부팀장은 지적하고 도와주어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 팀장이 하는 올바르거나 잘 처리하는 일과 진리 원칙에 부합하는 일은 부팀장이 지지하고 협력해야 하며, 최선을 다해 한마음 한뜻으로 사역을 잘 처리해야 한다. 문제가 발생하거나 문제를 발견하면 둘이서 상의해 해결해야 한다. 가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해야 할 때는 둘이 협의해서 일을 분담한 뒤 자신이 맡은 사역을 잘 처리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협력이다. 조화롭게 협력하는 것이다. 적그리스도가 과연 사람과 이렇게 협력할 수 있겠느냐? 절대 불가능하다. 적그리스도가 부팀장을 맡는다면 그는 어떻게 해야 팀장과 지위가 바뀌게 할지, 팀장을 부팀장으로, 부팀장을 팀장으로 되게 하여 자신이 주도적인 지위를 차지할지 궁리할 것이다. 그는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며 팀장을 지휘하여 남들이 그를 팀장보다 훨씬 낫고 팀장을 맡기에 적합한 사람으로 보이게 한다. 그렇게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명망을 얻고 자연스레 팀장으로 뽑힌다. 그는 일부러 그 팀장이 추태를 보이고 체면을 구기게 하여 남들에게 무시당하게 만든 다음, 빈정거리고 조롱하는 말로 그를 폭로하고 비하한다. 조금씩 두 사람의 격차가 점점 커지고 사람들 마음속에서 차지하는 자리도 달라지다가 결국에는 적그리스도가 팀장이 되고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럼 이런 성품을 가진 그가 다른 사람과 조화롭게 협력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든 혼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권력을 손에 쥔 채 독점하려 한다. 네 직함이 무엇이든, 정이든 부든, 크든 작든, 그는 지위와 권력을 언젠가는 자신이 독차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 그와 함께 본분을 이행하든, 어떤 사역을 하든, 나아가 한 가지 문제를 논의하든 그는 늘 독특하게 군다. 그는 누구와도 협력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도 그와 같은 명망이나 직함, 능력이나 평판을 가져서는 안 되고 누군가 그를 넘어서고 그의 지위에 위협이 되는 순간,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국면을 전환하려 한다. 예를 들어, 여럿이 한 가지 일을 상의하다가 마침 결론을 내리려 할 때 그는 곧장 상황을 파악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깨달은 뒤 이렇게 말한다. “이 일이 그렇게 처리하기 어렵나요? 이렇게 상의까지 해야 할 일인가요? 여러분이 한 말은 다 적합하지 않아요!” 그는 아무도 생각지 못한 남다른 이론이나 그럴싸한 말을 하고, 마지막에는 사람들의 관점을 부정한다. 부정하고 나면 사람들은 그걸 보고 이렇게 말한다. “역시 대단해요. 왜 우리는 저런 생각을 못했을까요? 우린 너무 어리석어요. 안 되겠어요. 역시 당신이 방향을 잡아 줘야 해요!” 적그리스도는 바로 이런 효과를 원한다. 늘 큰소리치면서 독특한 존재로 인식되는 효과를 이루고 남들의 우러름을 받고자 한다. 결국 다들 그에게 어떤 인상을 가지겠느냐? 그가 보통 사람은 닿을 수 없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보통 사람보다 대단하다는 인상을 갖는다. 어느 정도로 대단하다고 생각하겠느냐? 그가 오지 않으면 다들 확정하지도, 결정을 내리지도 못하고 그가 와서 한마디 해 주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가 와서 한마디를 하면 듣자마자 감탄하고 그가 황당무계한 논리를 펼치더라도 여전히 대단하다고 한다. 이는 사람을 현혹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럼 왜 그를 두고 어떤 사람과도 협력하지 못한다고 하겠느냐?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다른 사람과 협력한다는 건 대등하다는 뜻인데, 어떻게 산 하나에 호랑이가 두 마리나 있을 수 있겠어? 산이 하나면 산의 대왕도 하나여야지. 그 왕의 자리는 유능한 사람이 차지하는 거고. 나 같은 능력자나 그 자리에 오를 수 있다고. 당신들은 머리도 안 좋고 자질도 떨어지고 겁도 많은 데다가 살면서 누구를 속이거나 곤경에 빠뜨려 보기는커녕 그저 남에게 속기만 했잖아. 그러니 리더가 될 자격이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지!’ 그는 나쁜 일도 좋은 일로 만들어 버린다. 나쁜 일도 드러내어 떠벌리니 뻔뻔하지 않으냐? 그는 왜 그렇게 말하겠느냐? 그가 그러는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얼마나 많은 사람들 사이에 있든 그는 리더가 되고 제일 높은 자리에 오르려는 것이다. 이런 뜻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는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모든 사람을 멸시하고 비하하고 조롱한 다음 그럴싸한 말로 사람들을 납득시키고 다들 그의 말을 따르게 한다. 이게 협력하는 것이겠느냐? 이는 협력하는 게 아니라 무엇이겠느냐? 이는 우리가 말하는 제8조인 ‘그는 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이 아닌 오직 그에게 순종하도록 한다’에 부합한다. 이는 협력이라는 관점에서 말한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무슨 일을 처리하든, 언어적으로나 행동 방식상으로나 다른 사람과 협력해서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협력하지는 않으면서 그의 주장과 행동 방식에 협조하라고 다른 사람에게 요구할 뿐이다. 그럼 그가 다른 사람의 제안은 따르겠느냐? 그럴 리 없다. 다른 사람이 어떤 제안을 하든 그는 아예 관심도 없고 세세한 부분이나 이유, 그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지도 묻지 않으며 진리 원칙은 더더욱 구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내가 곁에 있어도 내게 묻지도 않는다.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것이다. 내가 혹시 질문이 있는지 물으면 그는 없다고 한다. 분명 방금 발생한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모르면서 곁에 있는 내게 묻지 않는다. 이런 그가 누구와 협력할 수 있겠느냐? 누구도 그의 파트너가 될 자격은 없고 그의 노예나 졸개만 될 수 있다. 그렇지 않겠느냐? 어떤 사람은 곁에 파트너는 있지만 그 파트너는 사실 그의 졸개이다. 꼭두각시 같은 존재로, 그가 동쪽으로 가라고 하면 동쪽으로 가고 서쪽으로 가라고 하면 서쪽으로 가며, 무엇을 알려 주면 그대로 믿고 알려 주지 않으면 감히 묻지도 못한다. 그저 그가 시키는 대로 할 뿐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안 돼요. 혼자서 결정해선 안 되고 당신과 협력하고 당신을 감독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서 같이 처리해야 하는 일도 있어요. 그리고 예전에 당신이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사역은 자질과 사역 능력을 갖춘 파트너를 찾아 도움을 받아야 해요. 교회 사역과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켜야 한다고요!” 그는 뭐라고 하겠느냐? “당신이 제 파트너를 교체한다고 해도 달리 제 파트너가 될 만한 사람이 없는걸요.” 이게 무슨 말이란 말이냐? 파트너가 될 만한 사람이 없는 것이겠느냐, 아니면 그런 졸개나 노예를 찾지 못하는 것이겠느냐? 그는 그런 노예나 졸개, 그가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을 ‘파트너’로 찾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가 이런 어려움을 제기하면 어떻게 해결해야겠느냐? 너는 이렇게 말해라. “저런, 협력할 사람을 찾지 못하고 있군요. 그럼 당신도 이 사역을 할 필요 없어요. 파트너가 있는 사람에게 시킬게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느냐? 누구도 너와 협력할 자격이 없고 협력하지도 못한다면 그럼 너는 뭐 하는 인간이란 말이냐? 너는 괴물이지 사람이 아니다. 진정으로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협력하는 사람의 자질이 너무 떨어져서 협력할 수 없는 경우가 아니고서는 최소한 보통 사람과는 협력할 수 있다. 이성적인 사람은 본분을 이행할 때 우선 다른 사람과 협력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상대방이 지능이 낮거나 마귀라서 협력이 불가능한 경우가 아니라면 어떤 사람과도 협력할 줄 알아야 한다. 대다수의 사람과 협력할 줄 아는 것은 아주 중요하며, 이는 정상적인 이성의 표징이다.
클릭하세요! 하나님에게서 온 기쁜 소식이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게 임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