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조 사람의 마음을 농락한다 (제 4 부)

2. 사람들에게 숭배받기 위해 자신의 강점을 뽐내다

적그리스도가 사람의 마음을 농락하는 수법에는 방금 말한, 작은 선심을 베푸는 것이 있었다. 이것 외에 또 자주 보이거나 상투적인 수법에는 어떤 것이 있겠느냐? 예를 들어, 어떤 리더가 사람들 마음속에 나쁜 인상으로 남아 있다고 해 보자. 다른 사람들은 그가 그다지 재능은 없고 글귀와 도리만 말할 줄 안다고, 진리에 대해 진실한 인식이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사람들이 그에게서 이런 인상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챈다면, 그는 온 힘을 다해 그 결점과 문제점들을 숨기려고 하지 않겠느냐? (그럴 것입니다.) 그는 어떻게 하겠느냐? 어떤 말들을 하겠느냐? 솔직하게 털어놓는 척하는 것이 한 가지이다. 또 있느냐? (해명할 것입니다.) 해명 역시 숨기는 방식 중 하나이다. 이 밖에, 자신의 강점과 남들이 대단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통해 자신의 약점을 숨긴다. 이는 자주 쓰는 수법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저는 하나님을 믿은 기간이 짧은데 왜 리더로 발탁됐을까요? 저는 세상에서 회사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십여 명에 불과했던 직원들이 나중에는 이백 명까지 늘었죠. 이건 리더십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집에서 이런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지만, 가끔은 이 재능이 발휘될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이 듣고 그다지 동의하지 않으면, 그는 계속 쇼를 한다. “예를 들어, 당신이 말을 해도 직원들이 듣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당신이 성적을 내면 그들은 말을 듣습니다. 저한테는 증거가 되는 사실이 있어요. 제 회사는 지금 상장해 있거든요!”라고 말이다. 처음에는 그건 은사이고 이방인의 행동 방식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의 일 처리에 확실히 수완이 있고 어느 정도 성과가 나자 몇몇 사람들은 의혹을 품다가 믿게 되었고, 자기도 모르게 그의 일 처리 과정을 보면서 조금씩 그를 숭배하게 되었다. 게다가 그는 사람을 미혹하고 자신의 결점을 숨겼기에 사람들은 부지중에 그에게 회유되고 미혹되어 머리를 숙이고 굴종하게 되었다. 이는 하나의 수법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것은 무엇이냐? 온 힘을 다해 자신의 특기와 은사를 뽐내고, 능력과 재능을 과시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역시 사람의 마음을 농락하려는 것이다. 그는 사람의 마음을 농락하기 위해서 상대에게 좋은 것을 주는 것 외에도 상대가 마음속으로 그를 우러러보게 한다. 만약 그가 평범한 사람, 혹은 지식이 없는 무식꾼이라면 누가 그를 우러러보겠느냐? 그래서 그는 일부러 졸업장을 보여 줌으로써 자기가 가방끈이 길고 학력이 높다는 것을 알려 주는데, 몇몇 사람들은 여기에 미혹된다. 그는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은사와 특기, 능력을 뽐냄으로써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그를 대단하게 생각하고 좋은 인상을 받게 한다. 심지어는 사람들이 일을 처리할 때 늘 그의 의견을 구하고 싶은 충동이나 생각이 들게 한다. 그가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하는 행동 또한 사람의 마음을 농락하는 하나의 수법 아니겠느냐? 이는 적그리스도가 사람의 마음을 농락하는 두 가지 모습이다. 첫 번째는 작은 선심을 베푸는 것이고, 두 번째는 자신의 능력과 은사, 즉 자신의 우위를 뽐내는 것이다. 그는 이런 방식으로 대중을 압도하고, 군계일학 같은 면모를 드러내 모두가 그를 우러러보고 앙모하며 기꺼이 그의 앞에 나아가 그의 지휘를 따르고 그의 인도를 받아들이게 하며, 심지어는 기꺼운 마음으로 그의 모든 안배를 받아들이고 따르게 한다. 이는 심리전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농락하는 것은 일종의 심리전이다. 심리전이란 무엇이냐? 사람의 마음을 점령하고 통제하기 위한 사탄의 수법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심장과 폐부를 감찰하며, 사람의 마음을 정복하고 얻는다. 그럼 사탄과 적그리스도에게는 왜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 표현을 쓰지 않겠느냐? 그들은 비정상적이고 사악한 수법으로 사람의 마음을 앗아 가며, 사람의 마음을 미혹하고 회유하고 통제함으로써 사람들이 부지중에 그들을 대단하다고 생각하게 하고 앙모의 마음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을 농락하는 수법에 관해서는 방금 두 가지를 교제했다. 이 밖에도 매우 대표적인 수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겠느냐? 사람을 미혹하고 속박하는 적그리스도의 그런 수법과 행동 방식들을 겪어 본 적이 없다면, 스스로에게 대조하여 자기에게는 그런 모습이 없는지 살펴보아도 된다. 패괴 성품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누구나 이런 것들을 지니고 있다. 수시로 작은 선심을 베풀고 사람을 미혹하며 회유하지 않느냐? 또 언제나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은사와 강점을 뽐내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특히 진리에 어긋나는 일을 했을 때, 자기 약점과 결점이 폭로될 때, 나아가 책망 훈계를 받아 체면과 위신이 땅에 떨어졌을 때 이런 방식과 수법으로 보완하고 사람들 마음속의 자기 지위와 명망을 만회하는 이런 일을 너희는 하지 않느냐? (하기도 합니다.) 너희는 이런 일을 할 때 지각이 있느냐? 그 길은 옳지 않으니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느냐? 마음속으로 가책을 느끼느냐? 보통 아무 느낌이 없는 것이냐, 아니면 가책을 느끼지만 명예와 체면이 너무 중요해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는 것이냐? 어떤 상황이냐? (어쩔 수 없이 그럽니다.) 어쩔 수 없이 그런다면 가책을 느끼느냐? 아니면 아예 느낌이 없고, 일을 마친 후에도 크게 개의치 않으며 평소처럼 먹고 자고 하느냐? (가책을 느낍니다.) 가책을 느낀다면 그나마 괜찮다. 이는 너희가 그 정도까지 무감각하지는 않으며, 그래도 지각이 있다는 의미이다. 지각이 있는 사람은 구원받을 희망이 있지만, 지각이 전혀 없는 사람은 인성이 없으니 위험하다.

3. 허상으로 사람을 미혹하여 호감을 사다

적그리스도가 사람의 마음을 농락할 때 자주 쓰는 수법에는 또 어떤 것이 있느냐? 또 한 가지 상황이 있는데, 바로 무슨 일을 하든 하나님 앞에서 하지 않고 사람 앞에서 한다는 것이다. 그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상대를 회유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회유하는 데 목적이 있다. 겉으로 볼 때 그는 다른 사람보다 달갑게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는 것 같고, 남들보다 더 영적이고 하나님에게 충성스러우며 본분에 열심인 것 같다. 하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없으면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의 그런 행동은 본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며, 다른 목적이 있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행동함으로써 그의 행동이 얼마나 훌륭한지, 본분 이행에 얼마나 충성하는지를 보여 준다. 하지만 사실 그의 내면에는 충성이라는 출발점이 아예 없다. 그가 이루려는 목적은 사람들에게 그의 충성스럽고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또 그가 그렇게 대가를 치르는 것은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탄복을 금치 못하게 하여 기꺼이 그의 인도를 받아들이고 그가 어떤 잘못을 저지르든 용서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는 어떤 행위냐? 허상으로 사람을 미혹하는 것이다. 허상이란 어떤 것을 가리키느냐? 좋은 행위, 표면적으로 볼 때 진리에 부합하는 것 같은 행동 방식이다. 진리에 부합하는 것 같은 허상으로 사람을 미혹하고 호감을 사는 것, 이를 이런 행위의 특징으로 요약할 수 있지 않겠느냐? 결국 사람들의 호감을 얻는 것이 그의 목적이다. 사람들이 그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면 마음속으로 얼마간 그를 존경하게 된다. 그는 이런 방식으로 사람들 마음속에 일정한 지위를 점한다. 예를 들어, 어떤 부류는 본분 이행에 기꺼이 대가를 치르고자 하고, 일을 처리할 때 대부분 경험에 기대며, 기본적으로 큰 원칙을 어기지 않는다. 하지만 네가 진리 원칙을 구하라고 교제하면 그는 어떻게 말하겠느냐? “교제할 필요 없습니다. 그 일들은 다 제 마음속에 있으니까요!”라고 말한다. 정말로 일이 닥쳤을 때 그는 구하지 않을뿐더러 다른 사람의 만류도 듣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의견은 더더욱 듣지 않는다. 그저 자기가 좋다고 생각하는 대로 할 뿐이다. 그들이 대가를 치를 때, 그들이 하는 일이 외관상으로 엄격하고 신속하여 어느 정도 권위적으로 보일 때 사람들은 그들을 어떻게 보겠느냐? 호감을 갖지 않겠느냐? 사람들이 보기에 그들은 눈에 띄게 진리를 어긴 부분이 없고, 일 처리 방식이 매우 노련하며, 본분 이행의 ‘충성’ 정도와 경험은 탄복할 만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 사람은 하나님을 오랫동안 믿었고 이 분야의 본분 이행에 경험이 있어. 노련하다고! 우리는 그렇게 못 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그를 이렇게 좋게 본다. 한편, 사람들 마음속 그들의 비중이 높겠느냐, 낮겠느냐? (높을 것입니다.) 비중이 높고 크다. 어떤 사람들은 한 번도 진리를 구해 본 적이 없다. 한편으로는 영적인 이해력이 없고, 다른 한편으로는 진리에 흥미가 없고 진리를 전혀 사랑하지 않으며, 무엇이 진리 원칙인지 아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본분을 이행할 때 순전히 한때의 열정과 좋은 마음, 여러 해 동안의 경험에만 의존한다. 하지만 남들이 이 사실을 아는 걸 원치 않기에 극력 아첨하고 대가를 치른다. 만약 그들이 영적인 이해력이 없다는 사실, 혹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일 처리에 원칙이 없다는 사실을 누군가가 눈치채면, 그들은 서둘러 성적을 내서 보여 주며 이렇게 말한다. “제가 정말 영적인 이해력이 없는지, 일 처리에 원칙이 없는지,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지 보십시오.” 이렇게 하다 보면 적잖은 사람이 그에게 미혹되어 “그들은 본분 이행 경험이 있고 원칙을 이해합니다. 저희는 이해하지 못하고요.”라고 말한다. “저희는 이해하지 못하고요.”라는 한마디는 무엇을 드러냈느냐? 사람들이 마음속 깊이 그들의 외적인 좋은 행위를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인정은 무슨 의미겠느냐? 그들은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받아들인 사람이라는 뜻이다. 사람들이 그들에게 이런 평가를 내린다는 것은 그들이 사람들 마음속에 어느 정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 아니겠느냐? 더 구체적으로는 일종의 명망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럼 그 명망은 사람에게 무엇을 가져다주겠느냐? 그들에 대한 앙망과 우러름, 심지어 의존을 가져다준다. 어떻게 의존하겠느냐? 일만 생겼다 하면 그를 찾는다. 만약 누군가가 “이건 큰일입니다. 우리는 잘 모르니 상부에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하면, “그럴 필요 없습니다. 리더한테 물어보면 되죠. 리더는 뭐든지 아니까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모두가 리더 일꾼은 대부분 사역으로 바쁘고 악을 행하지 않았으니 분명 진리를 깨닫는 사람일 것이고 일 처리에 원칙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이 주장이 어떠하냐? 표면적으로 악을 행하지 않은 사람이 진리를 깨닫는 사람이겠느냐? 꼭 그러리라는 법은 없다. 사람이 진리를 깨닫는 것은 제한적이다. 만약 리더는 무엇이든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무슨 문제가 있든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구하거나 하나님 말씀에서 찾지 않고 리더에게 물어본다면 일을 그르치게 되지 않겠느냐? 만약 네가 언제나 리더 말만 듣고 리더를 앙망한다면, 몇몇 일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으며, 자칫 잘못했다간 교회 사역에 손해를 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사람을 숭배하고 앙망하면 옆길로 새거나 문제가 생기거나 자기 생명에 해를 주고, 하나님 집과 교회 사역에 손해를 끼치기 쉽다고 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농락하는 적그리스도의 모습에는 주로 다음의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작은 선심으로 사람을 회유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자신의 강점과 은사, 능력을 뽐내는 것이다. 세 번째는 허상으로 사람을 미혹하여 호감을 사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늘 남들이 모르는 길거리 소식을 폭로하거나 고금의 일을 논하고, 명인이니 고담준론이니 등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를 무엇이라고 하겠느냐? “할머니가 립스틱을 바르는 것, 본때를 보여 준다.”라는 익은말이 있다. 이렇게 늘 한 수 보여 주려고 하고, 사람들에게 우러름을 받고 싶어 하는데, 가끔 제대로 실력을 보여 주지 못해 빈틈을 드러내기라도 하면 온 힘을 다해 보완하려 하고 궤변을 늘어놓는다. 그들은 양심과 진리에 어긋나고 본분 이행과 무관한 어떤 일을 하든 잘못을 인정하거나 반성하거나 회개하는 법이 없다. 또한,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의식하기는커녕 머리를 쥐어짜고 고심해서 자기를 위해 궤변을 늘어놓고 수습하려고 한다. 그들은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해 초조해하며, 심지어는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면서 사람들에게 심어 준 자신의 좋은 이미지가 일순간에 추락할까 두려워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자신이 글솜씨가 좋고 문장력이 있다고 생각하고, 어떤 이는 자기가 좋은 리더라고, 교회의 기둥이라고 생각하며, 또 어떤 이는 자기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어떤 이유로 그 좋은 이미지가 사라지면 그들은 그것 때문에 신경 쓰고 대가를 치르며 머리를 쥐어짜 보완하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이 걷는 잘못된 길과 진리에 어긋나는 갖가지 행동 때문에 부끄러움과 자책을 느끼거나 하나님께 죄스러운 마음을 가져 본 적은 없다. 그들은 이렇게 느낀 적이 없다. 그들은 갖가지 수법을 써서 사람을 미혹하고 사람의 마음을 농락하는데, 이것이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겠느냐? 결코 그렇지 않다. 이것이 교회 리더가 해야 할 사역이겠느냐? 결코 그렇지 않다. 그들은 사탄 성품으로 살아가며, 악을 행하여 교회 사역을 교란하고, 하나님 집의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한다. 그들의 모든 행위와 걷는 길, 사람을 미혹하고 통제하는 갖가지 모습에 근거하면, 그들은 리더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사역을 망치고 방해하며,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고, 사람들을 자기 손아귀에 통제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는 적그리스도의 모든 행위가 아니겠느냐? 의심할 여지 없이 그렇다. 이는 적그리스도가 완전히 사탄의 역할을 맡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들이 한 이런 일의 성질을 볼 때, 그들은 자신이 이행해야 할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기는커녕 사탄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들이 하는 일은 전부 하나님의 선민을 놓고 하나님과 겨루는 것이다. 본디 하나님의 양이라면 마땅히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께 얻어져야 하지만, 그들은 사람이 하나님을 따르는 것을 가로막고 하나님의 양을 자기 손아귀에 틀어쥔 채 사람들이 그들을 숭배하고 따르게 한다. 바로 이런 성질이다. 이런 사람을 리더라고 부를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럼 뭐라고 불러야겠느냐? (악한 종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악한 종이라는 말이 딱이다. 적그리스도, 악한 종 모두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냐? 이 사람들은 리더 본분을 이행한다는 기치를 들고 있지만, 리더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 그들의 행동은 리더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 적그리스도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사탄을 대변하여 하나님 집의 사역을 교란하고 망치며, 하나님의 선민들을 미혹하여 참도와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한다. 그들의 모든 행동은 사탄의 성품과 본성을 드러내며, 이로 인해 사람들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진리와 하나님을 저버리며, 사람을 숭배하고 따르는 결과를 초래한다. 언젠가 그들이 사람들을 철저히 미혹하고 통제하면 사람들은 그들을 숭배하고 따르고 그들에게 순종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사람의 마음을 농락하는 목적을 이룬 것이다. 그들은 교회 리더가 되어 하나님이 부탁한 사역과 리더 일꾼 본연의 사역을 하기는커녕 기어이 하나님의 선민에게 수작을 부리며, 사람을 미혹하고 농락하고 통제하여 분명 하나님께 속한 양들을 자기 손에 움켜쥐려 한다. 이런 자는 강도나 도적 아니겠느냐? 이렇게 하나님의 선민을 두고 하나님과 겨루는 것은 사탄의 종노릇을 하는 것 아니겠느냐? 이런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원수 아니겠느냐? 하나님 선민의 원수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100% 그렇다. 그들은 하나님의 원수이자 하나님 선민의 원수이다. 이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과거 중국 각지 교회에서 말하고 사역할 때 내 곁에서 녹음과 설교 원고 정리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은사가 있어 머리가 좋고 반응이 빨랐지만 딱 한 가지, 상황에 맞춰 듣기 좋은 말을 잘했다. 네가 음식 맛이 좋다고 말하면 그는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예전에 먹어 봤는데 정말 맛있더라고요.”라고 말한다. 네가 오늘 날씨가 덥다고 말하면 그는 “정말 덥네요. 땀이 다 나요.”라고 말하고, 네가 오늘 날씨가 너무 춥다고 하면 그는 또 “그러게요. 저는 털신까지 신었잖아요.”라고 말한다. 그는 솔직하고 진솔한 말을 하기 힘들어했다. 겉보기에는 열심히 추구하는 것 같지만, 정말 일이 생겨 대가를 치러야 할 때가 오면 숨어 버린다. 교활하고 간사한 그런 사람이었다. 혹자는 “그럼 왜 그런 사람을 택하신 겁니까?”라고 묻는데 택한 것이 아니라 당시 상황에 따라 결정된 것이었다. 당시에는 이런 사람조차 찾기가 쉽지 않았다. 적어도 그는 반응이 빨라서 말만 하면 언제든 녹음을 했다. 그는 나를 따라 각지를 돌아다니며 설교와 녹음을 정리하는 등 실질적인 일을 좀 했지만, 내 앞에서 보여 주는 모습과 교회에서 하는 행동이 완전히 달랐다. 내 앞에서 그는 말을 잘 듣고 영리하며 부지런하고 열심히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런데 교회에서 본분을 이행할 때도 그랬겠느냐? 상부와 접할 때는 그러했다. 그럼 하나님의 선민들 사이에 있을 때도 그랬겠느냐? 확신할 수 있겠느냐?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 그의 속내가 무엇인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 그와 만나서 한동안 함께 지내봐야 한다. 그러면 그의 본성 본질 안에 있는 것들이 다 드러난다. 그는 지위와 허영을 매우 사랑해서 누구와 함께 있든 밑천을 논하기를 좋아하고 자기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떤 일을 했는지, 얼마나 많이 고생했는지, 자기한테 어떤 모습들이 있는지 뽐냈다. 그는 늘 이런 일을 하고 이런 말을 했는데, 내 앞에서 보여 주는 모습과 완전히 달랐다. 이 밖에, 그와 함께 있는 사람은 누구나 속박받고 괴롭힘 당하는데도 감히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여기에서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겠느냐? 그는 자기가 하는 그 사역, 자기가 이행하는 그 본분을 밑천 삼아 여기저기에서 뽐냈다. 어느 정도로 뽐냈겠느냐? 모두가 그를 앙망하고 숭배하고 부러워하여 결국 “그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정말 큰 고생을 했습니다! 그의 믿음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보세요. 저희는 그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와 너무 큰 차이가 나죠!”라고 말할 정도였다. 모두가 입만 열었다 하면 그의 이름을 언급하고, 나를 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를 보는 것이 나를 보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그가 사람들의 인식과 사상, 마음에 미치는 영향은 마지막에 이 정도에 이르렀다. 이 정도가 될 때까지 그는 많이도 말하고 일하지 않았겠느냐? 자기가 어떤 본분을 이행했는지 결코 한두 마디 말로 끝내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히 일장 연설을 늘어놓으며 이렇게 저렇게 말하고, 자기 속셈과 목적까지 더해서 사람들을 유혹하고 미혹하여 자신을 숭배하게 하는 말을 함으로써 결국 목적을 이루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이 어떠하냐? 내 곁에서 본분을 이행한 것은, 처신하는 법을 배우는 측면에서든 진리를 얻는 측면에서든 그에게는 모두 좋은 일로, 온전케 될 기회를 먼저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이 기회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 그는 그 기회가 얼마나 귀하고 중요한지 몰랐고, 그것이 진리를 얻어 하나님을 인식하는 길이자 토대, 원천이라는 사실도 깨닫지 못했다. 반대로 그는 그 기회를 이용해 사람들 사이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사람의 마음을 농락하는 목적을 이루려 했으니 문제가 생긴 것이고, 잘못된 길에 들어선 것이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그가 이렇게 자기가 한때 얼마나 고생했는지, 하나님이 그를 어떻게 인도하고 대하고 신임했는지 떠벌리고 다니면서 그 안에 내포된 자신의 속셈을 의식하지 못했겠느냐? (의식했을 것입니다.) 그랬을 것이다. 의식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그럼 그는 의식할 수 있었는데도 왜 자신의 악행을 단속하지 못했겠느냐?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오직 권세와 지위만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만약 정말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면 패괴를 표출할 때, 자기가 어떻게 고난을 겪었는지 증거할 때 마음속으로 양심의 가책과 참소를 느꼈을 것이고, 자기가 하는 일이 비열한 짓, 하나님을 대적하는 짓이라고 생각해서 다시는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또 그 후로 그런 행동을 하고 싶어지면 조심하면서 그런 일을 끊어 냈을 것이다. 이는 무척 정상적이다. 하지만 적그리스도에 속하는 사람은 이런 일을 할 때 양심의 가책을 느끼더라도 야심과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며, 책망과 훈계가 닥치더라도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의 본성은 왜 수습이 불가능할 정도로 팽창했겠느냐? (진리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본성적으로 진리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그들은 무엇을 좋아하느냐? (지위를 좋아합니다.) 지위는 그에게 무엇을 가져다주느냐? 사람들의 숭배와 우러름, 부러움을 가져다준다. 최종적으로 그의 목적은 하나님과 같은 지위, 대우를 누리고 그 지위가 가져다주는 명예와 행복,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여기까지 들으니 역겹지 않으냐? (역겹습니다.) 그에게는 더욱 역겨운 일이 있다. 나중에 병에 걸려 고향으로 돌아간 그는 스스로가 지위의 복을 누릴 자격이 더 커졌다고 생각했다. 이 사상에 지배되어 어떤 모습을 보였겠느냐? 사람들이 그에게 더 좋은 대우를 더 많이 해 주기를 원하지 않았겠느냐? (그랬을 것입니다.) 그는 왜 그런 요구를 했겠느냐? 그 요구가 과하다고, 무리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느냐? 그는 자기가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하나님과 형제자매들을 위해 많은 고난을 치렀어. 그러니까 나는 그런 자격이 있어. 그렇게 고생했기 때문에 병에 걸린 거라고. 그러니 형제자매들은 반드시 나를 돌봐 줘야 해.’라고 말이다. 그는 병에 걸린 기간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 사람들에게 시중을 들어 달라고 하고 음식을 먹여 달라고 했다. 누워 있는 시간이 길어져서 답답해지자 이번에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 마실 것을 들고 그와 함께 밖에 나가 산책하자고 했다. 이는 정말 역겹지 않으냐? 정말 이 정도까지 아프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이성이 없어도 심각하게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무척 열정적으로 보인다. 교회의 일에 신경 쓰고 마음을 졸이며, 늘 앞장서서 뛰어다닌다. 그러니 그가 리더가 되었을 때 모두를 실망시킬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 선민들에게 존재하는 실제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집중하기는커녕 자기 명예와 지위를 위해 힘써 일하고, 늘 자신을 뽐내 남들에게 우러름을 받으려 하며, 자기가 어떻게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고생했는지 떠들어 댄다. 결코 진리 추구와 생명 진입에 공을 들이지는 않는다. 이는 모두가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가 바쁘게 사역을 하고, 여러 장소에서 늘 자신을 뽐내며, 글귀와 도리를 늘어놓아 일부 사람들의 우러름과 숭배를 받고, 사람의 마음을 미혹하고 지위를 공고히 한다고 할지라도 마지막에는 어떤 결과가 초래되겠느냐? 그가 작은 선심을 베풀어 뇌물을 주든, 아니면 자기 은사와 능력을 뽐내든, 갖가지 방식과 방법으로 사람들을 미혹하고 그들의 호감을 얻든, 어떤 방식으로 사람의 마음을 농락하고 사람 마음속에 지위를 차지하든 무엇을 잃게 되겠느냐? 그는 리더 본분을 이행하는 동안 진리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잃었다. 그와 동시에 그가 보인 여러 모습으로 인해 자신의 마지막 결말을 위한 악행도 쌓이게 됐다. 지금 와서 보면, 작은 선심으로 뇌물을 주거나 사람을 농락하든, 아니면 자신을 뽐내거나 허상으로 사람을 미혹하든, 겉으로 보기에 그들이 그 가운데서 얼마나 큰 실익을 얻은 것 같든, 얼마나 큰 만족을 얻은 것 같든지 간에 이 길은 바른길이냐? 진리를 추구하는 길이냐?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냐? 분명히 아니다. 이런 방식과 수단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하나님을 기만할 수는 없다. 결국, 모두 하나님께 정죄당하고 하나님의 혐오를 받는다. 왜냐하면 이런 행위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것은 사람의 야심으로, 이는 사람이 하나님을 적대하는 태도와 본질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마음속으로 이런 자가 본분을 이행하고 있다고 절대 인정하지 않고, 악을 행하고 있다고 규정한다. 악을 행한 자에 대해 하나님은 어떻게 규정하느냐?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나님이 “내게서 떠나가라”라고 말씀했는데, 그럼 어디로 가는 것이냐? 바로 사탄에게 넘기는 것이고 사탄의 집단 거주지로 보내 버리는 것이다. 결국, 어떻게 되겠느냐? 악령에게 괴롭힘을 받다가 죽는다. 즉, 사탄에게 삼켜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이 구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는 하나님의 양이 아니고, 하나님을 따르는 자는 더더욱 아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구원 대상이 아니다. 하나님은 이 부류의 사람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다. 그럼 사람의 마음을 농락하는 것은 과연 어떤 성질이겠느냐? 이는 적그리스도의 길을 걷는 것으로, 적그리스도의 행위와 본질이다. 더 심각한 본질은 선민을 두고 하나님과 겨루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원수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 부류의 성질과 위치를 정한 것으로, 조금도 틀림이 없다.

2019년 1월 22일

성경은 개역한글에서 인용하였습니다

클릭하세요! 하나님에게서 온 기쁜 소식이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게 임할 것입니다.

카카오톡으로 대화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