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조 사람의 마음을 농락한다 (제 3 부)

적그리스도는 리더의 본분을 이행하는 동안 어떤 짓을 하겠느냐? 우리는 방금 사람의 마음을 농락하며 자신과 의견이 다른 이를 공격하고 배척하는 것에 관해 이야기했다. 이 부류의 사람에게는 공통된 모습이 한 가지 더 있다. 그들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 (증오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그럼 어떻게 행동하겠느냐? 증오하는 것으로 그만이겠느냐? 갖은 방법을 동원해 배척하고 억압한다. 자신과 의견이 다른 이를 공격하고 배척하는데, 그 상대는 어리석고 아첨할 줄 모르며 처세 철학에 능숙하지 않은 사람일 수도 있고, 비교적 열정적이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럼 세 번째는 무엇이겠느냐?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배척하고 공격하는 것이다. 이 밖에 또 한 가지가 있는데, 바로 사람들 마음속에 그의 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이는 어떤 행동이냐? (사람의 마음을 점령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다. 그의 수법은 무엇이겠느냐? (스스로를 높이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가 스스로를 높이고 증거하여 이루려는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사람의 마음을 점령하고 사람을 통제하려는 것이다. 사람이 스스로를 높이고 증거할 때 보통 어떤 말을 하겠느냐? 하나는 자격을 논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자기가 한때 어떤 윗선 리더를 접대한 적이 있다고 말한다. 심지어 “저는 하나님을 접대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무척 잘해 주셨죠. 그러니 저는 분명 온전케 될 것입니다.”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 (사람들에게 우러름을 받으려는 것입니다.) 이 말에는 목적이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저는 상부와 접촉한 적이 있습니다. 상부에서는 저를 좋게 봐 주셨죠. 열심히 추구하라는 당부도 하셨고요.”라고 말하는데, 사실 상부에서 그를 정말 어떻게 보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무척 과장해서 말하며, 심지어는 없는 얘기를 날조하기도 한다. 만약 몇 명이 말을 맞춰 본다면 그는 안색이 변할 것이다. 어쩌면 상부에서 누군가에게 “당신은 자질이 좋고 이해 능력이 있으니 체험 간증문 쓰기를 연습해 보세요. 생명 체험이 생기면 리더가 될 수 있을 겁니다.”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이 말의 함의는 무엇이겠느냐? 설령 그가 인재라고 할지라도 연습하고 한동안 체험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연습하고 체험하기도 전에 뽐내고 거들먹거렸으니 이는 어떤 성질이겠느냐? 교만하고 방자하여 이성을 잃은 것 아니겠느냐? 설령 상부 형제가 그를 가리켜 자질이 있는 인재라고 말했을지라도 이는 그에 대한 격려나 평가에 불과하다. 그가 밖에서 이렇게 뽐내는 목적은 과연 무엇이겠느냐? 사람들에게 우러름과 숭배를 받으려는 것이다. 이는 ‘봐, 상부 형제님까지 나를 대단하게 생각하시잖아. 그런데 당신은 왜 나를 우러러보지 않는 거지? 내가 이 이야기를 해 주면 당신은 나를 우러러봐야 할 거야.’라는 뜻이다. 이것이 그가 이루려는 목적이다. 또 어떤 사람은 “저는 한때 리더 자리에 있었습니다. 교구 리더, 지역 리더, 교회 리더를 역임하며 한 단계씩 내려왔다가 다시 한 단계씩 올라갔죠. 세 번의 등락을 겪은 후 마침내 제 진심이 하늘을 감동시켜 지금은 또 윗선 리더가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소극적인 상태에 빠진 적이 없답니다.”라고 말한다. 그에게 왜 소극적인 상태에 빠지지 않았냐고 물어보면 그는 “주머니 속의 송곳은 언젠가 눈에 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이것이 그가 도출해 낸 결론이다. 이것이 진리 실제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진리 실제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기론(奇論)이며, 황당무계한 궤변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이런 말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느냐? 혹자는 “그는 정말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세 번의 등락을 겪으면서도 소극적인 상태에 빠지지 않았고, 이번에는 또 리더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정말 주머니 속의 송곳은 눈에 띄기 마련인가 봅니다. 그는 언젠가 온전케 될 재목입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가 이루려는 목적 아니겠느냐? 그는 사실 이 목적을 이루고자 했다. 적그리스도가 어떤 방식으로 말하든 전부 사람들에게 우러름과 숭배를 받기 위한 것이고, 사람들 마음속에서 특정한 지위를 점하기 위한 것이며, 나아가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가 자신을 증거함으로써 이루려는 목적이다. 그가 말하고 설교하고 교제하는 속셈이 사람들에게 우러름과 숭배를 받는 것이라면, 이런 행동은 전부 스스로를 높이고 증거하는 것으로, 사람들 마음속에서 지위를 점하기 위함이다. 이런 사람들이 말하는 방법과 방식은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는 다 자신을 증거하여 사람들에게 숭배받는 결과를 얻는다. 이런 행동 방식은 많든 적든 거의 모든 리더 일꾼에게 존재한다. 만약 이것이 지나친 지경에 이르러 자제나 억제가 안 된다면, 또 속셈과 목적이 특히 강렬하고 명확해서 사람들이 그를 하나님이나 우상처럼 여기게 하여 사람을 속박하고 통제하는 목적, 남들에게 순종과 숭배를 받는 목적을 이루려 한다면 이는 전부 자신을 높이고 증거하는 성질이자 적그리스도의 성질이다. 사람이 스스로를 높이고 증거하기 위해 자주 쓰는 수법은 무엇이냐? (밑천을 따지는 것입니다.) 밑천을 따지는 것에는 어떤 내용이 포함되느냐? 자기가 하나님을 몇 년 동안 믿었으며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고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렀는지, 얼마나 많은 사역을 하고 얼마나 많은 길을 뛰어다녔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 그들을 얻었는지, 얼마나 많은 굴욕을 당했는지 등이 포함된다. 어떤 이는 한술 더 떠서 자기는 몇 번이나 체포되어 감옥살이를 하면서도 한 번도 교회나 형제자매를 팔아넘기지 않고 굳게 서서 증거했다는 등의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데, 이러한 것은 전부 밑천을 따지는 것에 속한다. 그들은 교회 사역을 한다는 기치를 들고 자기 경영을 하며, 자기 지위를 공고히 하고, 사람들 마음속에 좋은 이미지를 구축한다. 이와 동시에 갖가지 방식과 방법, 수법으로 사람의 마음을 농락하고, 심지어는 자신과 관점이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고 배척한다. 특히 진리를 추구하고 원칙을 지키는 사람들을 극력 배척하고 억압한다. 반면, 무지몽매하고 어리숙하게 믿는 사람들,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 안 돼 분량이 작은 사람들에게는 어떤 수법을 쓰겠느냐? 미혹하고 회유하며 심지어는 위협한다. 이런 수법으로 지위를 공고히 하려는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전부 적그리스도의 행동 방식이다.

교회에는 수시로 다음과 같은 일이 생긴다. 어떤 형제자매들은 상부로부터 ‘리더 일꾼이 하나님 집의 사역지침에 어긋나는 일을 할 경우, 하나님의 선민은 이에 대해 보고할 권리가 있다.’라는 설교와 교제를 들은 후 자기 교회의 리더가 사역할 때 사역지침에 부합하지 않는 것을 분별하고는 보고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 일이 리더의 귀에 들어가게 되자 리더는 ‘감히 나에 대해 보고하려는 사람이 있다니 말도 안 돼! 대체 누구야?’라고 생각한다. 그 후, 리더는 교회 사람들 수십 명을 대상으로 전수 조사에 들어간다. 어느 수준까지 조사하겠느냐? 모든 사람의 나이, 하나님을 믿은 기간, 예전에 어떤 본분을 이행했는지, 현재 어떤 본분을 이행하는지, 누구와 연락하고 있는지, 상부와 연락할 가능성이 있는지 등을 모두 한 번씩 조사하며 큰 공을 들인다. 그리고 철저한 조사를 통해 혐의가 있는 사람 두세 명을 찾아낸 후 예배 때 집중적으로 이 일에 관해 설교한다. “사람은 양심이 있어야 합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믿는 동안 지금까지 인도해 준 사람은 누구입니까? 당신은 지금 이렇게 많은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만약 제가 예배에서 교제해 주지 않았더라면 깨달을 수 있었을까요? 지금 우리 교회는 복음을 전해 많은 사람을 얻었고, 복음 사역에서 큰 진전을 보였습니다. 만약 제가 진두지휘하지 않았더라면 여러분이 그 사람들을 얻을 수 있었을까요? 그러니 누구한테 고마워해야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곰곰이 생각한 후 “하나님께 감사해야죠. 사람에게 무슨 공이 있겠습니까?”라고 말하자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만약 제가 여러분한테 하나님의 말씀 서적을 가져다주지 않았다면 여러분이 그 책들을 얻을 수 있었을까요? 만약 제가 사람들을 모아 예배를 드리지 않았다면 여러분이 한데 모일 수 있었을까요? 사람은 양심이 있어야 합니다!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리더가 어쩌다 한 번 잘못한 일이 있어도 꼬치꼬치 추궁해서는 안 됩니다. 작은 실수를 물고 늘어지는 건 공연히 소란을 피우려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소한 일은 우리 내부에서 해결해야지 위에 보고해서 뭐 한답니까? 보고하는 사람은 무능하고 분량이 작은 겁니다. 어떤 일이든 다 상부에 보고하는 게 적절한 처사입니까? 상부에서 그 문제들을 해결해 줄 시간이 어디 있답니까? 해결한대도 교회 리더가 해결해야죠. 무슨 일이든 조용히 해결해야 하는 겁니다. 굳이 상부에 보고하는 건 상부를 방해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가 한마디 하겠습니다. 제게 보고한다면, 책망 훈계 없이 화기애애하게 문제를 해결해 줄 것입니다. 그런데 상부에 보고하면 상부에서 어떤 태도를 보일지 알기나 하세요? 상부는 만만한 곳이 아닙니다. 사자나 매와 같죠. 우리 정도의 분량으로 상부에까지 이를 수 있겠습니까? 상부에 문제를 보고한다면 좋을 게 없습니다. 크게 한 번 책망당하겠죠. 저도 여러 번이나 책망당했고요. 당신의 그 정도 분량으로 버틸 수 있을까요? 여차했다간 믿음을 잃게 될 텐데 그 결과를 누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보고하겠다면 결과는 스스로 책임지십시오. 나중에 책망받아 소극적으로 변하고 연약해져도 저를 원망하지는 마시고요. 보고하고 싶다면 저도 막지 않을 겁니다. 보고하세요. 누가 보고하는지 지켜보겠습니다!” 이렇게 겁을 주는데 함부로 보고할 사람이 있겠느냐? (없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보고하고 싶어도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는 못난 인간 아니겠느냐? 왜 그를 겁낸단 말이냐? 왜 그에게 겁을 먹는 것이냐? 지금 그가 너를 괴롭혀 죽이려고 할지라도 네 목숨은 그의 손안에 있지 않다. 하나님의 허락 없이 그가 감히 그럴 수 있겠느냐? 그의 협박 몇 마디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정말 보고하지 못한 채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는지도 모르겠어. 내가 상부에 보고하면 상부에서 그에게 처분을 내릴까? 만에 하나 처분이 내려오지 않으면 보복당하지는 않을까? 그럼 내가 정상적으로 본분을 이행할 수 있을까? 다시는 보고하면 안 되겠어. 게다가 이건 나와는 무관한 일이잖아. 다들 보고하지 않는데 내가 뭘 보고해?’라고 생각하며 위축되어 보고할 용기를 내지 못한다. 적그리스도가 이런 사람을 대할 때 사정을 봐주겠느냐?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어떻게 하겠느냐? 누가 자기에 대해 보고하고 싶어 하며, 자신과 같은 마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당신은 마음속으로 계속 불순한 생각을 품고, 소란을 피우려고 하지. 또 시비를 걸거나 내 문제점을 보고하려고 하고. 감히 말이야! 당신은 기회를 봐서 상부와 접촉해 나를 고발할 거야. 지금은 위축되어서 감히 그렇게 하지 못하지만, 언젠가 기회가 생기면 그렇게 할지도 모르지. 자, 내가 당신을 어떻게 손봐 줄지 지켜보라고!’ 그리하여 적그리스도는 핑계와 기회를 찾아 그 사람을 폄하하고, 형제자매들이 그에게 반감을 갖게 한 다음, 갖은 방법을 동원해 그의 약점을 잡는다. 그리고 소란을 피워 그의 코를 납작하게 해 놓는다. 그러면 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글렀어. 리더에게 순종하지 않고 함부로 보고했다가 괴롭힘 당했잖아. 앞으로는 이 교훈을 기억해야겠어. 절대 리더에게 원한을 사선 안 돼! 지금 결정을 내리는 건 리더잖아. 리더가 동쪽이라고 하면 서쪽이라고 하지 말고, 리더가 하나라고 하면 둘이라고 하지 말자. 리더가 시키는 대로 하는 거야. 절대 상부에 연락해서 문제를 보고해선 안 돼. 그랬다간 큰일 날 테니까! 리더에게 괴롭힘 당했는데 상부에서는 모르잖아. 누가 나서서 나를 도와주겠어?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무서운 건 직속상관이라고!’ 그는 소극적인 상태에 빠져 하나님 집은 진리가 권세를 잡는 곳임을 믿지 않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재한다는 사실은 더더욱 믿지 않는다. 그런데 그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있겠느냐? 없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에게 진실한 믿음이 없으면, 문제를 보고하고 싶어도 악인에게 겁을 먹고, 사악한 세력을 전혀 분별하지 못하며, 악인이 권력을 잡고 있는 곳에서 악인에게 괴롭힘 당해 못난 인간이 되어 버린다. 원래는 그래도 정의감이 조금 있었고 취할 만한 부분도 어느 정도 있었지만,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지도 못해 악인과 거짓 리더, 적그리스도에게 무너졌다. 모든 믿음이 사라질 정도로 무너진 그는 하나님에게 의지해 진리를 구하거나 지혜롭게 일을 처리하지 못한다. 이제 그는 적그리스도를 보면 무서워하고 겁을 먹는다. 어느 정도로 무서워하겠느냐? ‘이 세상은 악인이 권력을 잡고 있어. 그러니 어떤 사람들 사이에 있든 온순하게 굴어야 해. 나는 그런 독기도 없고 간도 작잖아. 어디를 가든 모욕을 감내하고 다른 사람에게 복종하며, 상대를 조상처럼 여겨야 한다고. 그 사람이 동쪽이라고 하면 서쪽이라고 해선 안 돼. 다른 목소리를 내면 안 되는 거야. 누구의 문제든 보고하지 말자. 누구의 일이든 캐묻지도 말고. 그냥 열심히 하나님 믿는 일만 신경 쓰는 거야. 리더 일꾼한테 원망을 사지 말고, 진리 원칙을 고수하지도 말자. 빛을 동경해서도, 정의를 사랑해서도 안 돼. 이 세상에는 빛과 정의가 없으니까. 그냥 끝까지 참는 거야. 앞으로 어디를 가든 명심해야 해. 항상 평화는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그는 이 한마디 결론을 종합해 낸다. 이는 적그리스도에게 쓰러진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쓰러진 사실을 어떻게 확정할 수 있겠느냐? 억압당한 후로, 그는 깜짝 놀라 간이 콩알만 해졌다. 어떤 일도 말하거나 행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되었고, 진실한 믿음도, 충성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는 태도도 사라졌다. 정의를 사랑하는 마음속 작은 불씨도 꺼져 버렸다. 적그리스도에게 철저히 짓밟히고 쓰러진 것이다. 이런 자는 못난 인간 아니겠느냐? 겁쟁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를 어떻게 간파할 수 있겠느냐? 네가 그에게 “당신 교회의 누구누구는 어떻습니까?”라고 물으면 그는 “훌륭합니다.”라고 답한다. 또 “당신들이 새로 뽑은 교회 리더에 대해 잘 아나요?”라고 물으면 “잘 모릅니다.”라고 대답하고, “요즘 그쪽 교회 생활은 어떻습니까? 교란하는 사람은 없나요?”라고 물으면 “다 좋습니다. 괜찮아요.”라고 대답한다. 무엇을 물어보든 그의 답변은 위와 같다. 이는 겁을 먹은 것 아니겠느냐? 왜 이 정도까지 겁을 먹겠느냐? 그는 하나님의 공의를 모르고, 사탄의 사악함과 잔혹함, 잔인함, 어둠을 간파하지 못했다. 또 진리가 권세를 잡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와 그 의미를 몰라 겁을 먹은 것이다. 그 결과, 그는 무슨 질문을 받든 애매모호하고 불분명한 말만 하게 되었다. 그의 입에서는 교회의 실제 상황을 들을 수 없으며, 그가 마음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는지도 알 수 없다. 그가 스스로를 꽁꽁 싸매고 있기에 너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교회에 어떤 문제가 존재하는지 그는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으며, 리더 일꾼이 어떤지 역시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선민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정보를 하나도 모르는 것이다. 그는 너에게 이렇게 말하고 한담을 나눌 뿐이다. 그의 말을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들겠느냐? 그는 마음속으로 너에게 벽을 치고 있다. 그의 마음가짐은 이러하다. ‘내 어떤 정보도 알아내려고 하지 마. 내 어떤 정보나 실제 상황도 당신에게 털어놓고 싶지 않아. 내게 다가오지 마. 내 입에서 교회 상황을 듣고자 하는 것은 내게 화를 가져다주는 거야. 현재의 내 생활 환경과 생활 리듬, 생활 상태를 망치려는 거지. 내 삶의 어떤 일에도 관여하지 마. 그 일들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그는 적그리스도에게 괴롭힘 당하고 보복당할 것이 두려워서 교회의 어떤 문제도 보고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는 적그리스도에게 굴종한 것 아니겠느냐?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고 통제당한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이런 상황을 보고 기뻐한다. 그는 상대를 괴롭혀서 다시는 그의 문제를 보고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하며, 그곳에서 교회를 단단히 통제하고 있다. 교회에 적그리스도에게 이렇게 통제당한 사람이 많지 않으냐? 너희는 다른 이가 문제를 보고하지 못하게 제약하는 일을 한 적이 있느냐? 어쩌면 그런 일을 하고도 아직 의식 못 했을 수도 있고, 또 앞으로 그런 일을 저지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적그리스도에게 농락당하고 통제되는 일이 문제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혹자는 말한다. “교회에 적그리스도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적그리스도를 믿거나 따른 적도 없고 섬긴 적은 더더욱 없습니다. 그저 적그리스도에게 얼마간 속박되어서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도통 들어서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요. 그런데 어째서 이것을 문제라고 하십니까?” 한 측면으로는 사람을 농락하고 통제하는 적그리스도의 수법을 통해 그의 본성 본질이 사탄의 본질이며, 진리나 하나님을 적대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는 사람을 두고, 하나님의 선민을 두고 하나님과 겨루려 한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적그리스도의 이런 일 처리 수법과 방식은 분명 무지몽매하고 어리석고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는 확실히 그들을 미혹하고, 단단히 통제하여 그들이 모든 일을 그에게 물어보고 그의 지시를 따르게 한다. 적그리스도는 그들의 입을 막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손발을 묶고, 그들의 마음과 생각, 나아가는 방향에 영향을 주었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모든 행동이 무지몽매한 사람들에게 초래하는 영향이자 결과이다.

지금까지 리더 일꾼의 본분을 이행하는 각 측면의 진리에 관해 이야기했다. 또한, 리더 일꾼에게 존재하는 문제들도 폭로하고, 가장 심각한 부류의 모습에 관해 중점적으로 언급했다. 이 부류는 어떤 사람들이냐? (적그리스도입니다.) 적그리스도 부류의 공통적인 모습은 무엇이냐? 권력을 잡고 교회를 통제하는 것이다. 권력에 대한 그들의 욕망은 모든 것을 뛰어넘는다. 권력은 그들의 목숨이자 뿌리이며, 그들이 살면서 행하는 모든 일의 중심이 되는 하나의 주제이자 방향, 목표이다. 그렇기에 적그리스도 부류의 모든 행동과 그들이 표출한 성품은 사람을 미혹하고 농락하고 통제하는 사탄의 수법과 완전히 동일하다고 하는 것이다. 이 부류 사람의 모든 행동은 영락없이 사탄의 전달 통로이자 화신, 선포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의 모든 행동과 모습의 주된 목적은 권력을 갖기 위한 것이다. 그들이 통제하는 대상은 누구겠느냐? 그들이 이끄는,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고, 그들의 권력 범위 안에서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사람을 통제하는 적그리스도의 수법에 대해서는 방금 이야기했다. 첫 번째는 사람의 마음을 농락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자신과 의견이 다른 이를 공격하고 배척하는 것이며, 세 번째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을 배척하고 공격하는 것이다. 네 번째는 시도 때도 없이 자신을 높이고 증거하는 것이고, 다섯 번째는 사람을 미혹하고 회유하며 위협하고 통제하는 것이다. 이 다섯 가지 모습은 전부 적그리스도가 권력을 얻고 사람을 점령하고 통제하기 위한 기본적인 수단이자 방식이다. 이는 큰 측면이다. 이제 이 몇 가지 큰 측면을 구체적으로 해부하고 교제하도록 하겠다.

적그리스도가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농락하는지 해부하다

1. 작은 선심으로 사람을 회유하다

적그리스도가 사람을 통제하는 첫 번째 수법은 사람의 마음을 농락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농락하는 데에는 몇 가지 방식이 있느냐? 작은 선심으로 사람을 회유하는 것이 한 가지이다. 때로는 좋은 것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칭찬을 하기도 하며, 때로는 약속을 하기도 한다. 또 때로는 남들 앞에 나설 수 있는 본분, 또는 도움이 되고 모두가 대단하다고 생각할 만한 본분이 있을 때 그런 본분을 자기가 농락하려는 사람에게 배정하기도 한다. 작은 선심에는 많은 것이 포함된다. 때로는 물질적인 것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비물질적인 것이 될 수도 있으며, 또 때로는 비위를 맞추며 좋은 말을 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혹자는 어떤 일이 닥쳐 연약해지고 본분 이행에 열의가 사라졌을 때, 하나님 말씀과 대조해 보면서 자신의 그런 연약함은 하나님께 충성하지 않는 것이며 본분을 이행하기 싫어하는 것, 진실한 순종이 없는 것임을 알고 가책을 느낀다. 그런데 어떤 리더는 그런 모습을 보고 “그건 분량이 작은 겁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실 거예요. 당신이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나 됐다고요. 스스로에 대한 요구치를 너무 높게 잡지 마세요. 또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하시고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는 높지 않습니다. 당신처럼 하나님을 믿은 기간이 짧은 사람이 가끔 좀 연약해지는 건 정상이죠. 걱정할 필요 없어요.”라고 말한다. 그 뜻은, 연약해져도 걱정할 필요가 없고, 계속 연약한 상태로 있을지라도 걱정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는 것이다. 그런 것은 다 정상적인 소극성이니 하나님은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정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본분을 이행하면서 늘 정에 속박받는다. 그러면 리더는 “분량이 작아 그런 것이니 괜찮습니다.”라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게을러서 본분에 충성을 다하지 않는데도 리더는 질책하지 않고, 늘 비위를 맞추며 좋은 말을 해서 상대가 그를 좋게 보고, 남을 이해하는 사람, 사랑이 있는 사람으로 여기게 한다. 마음속으로 ‘우리 리더는 자애로운 어머니 같아. 정말 남들을 사랑으로 대하는 사람, 하나님을 대표하는 사람,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사람이라니까!’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그 뜻은, 그가 하나님의 선포가 될 수 있으며, 하나님을 대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의 목적은 이것이 아니겠느냐? 어쩌면 이렇게 명확하지 않을 수도 있겠으나 한 가지 목적은 분명하다. 즉, 사람들이 그 리더가 무척 훌륭하다고, 남의 마음을 보살피고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헤아리며 남들 마음을 이해한다고 말하게 하는 것이다. 어떤 교회 리더는 형제자매가 건성으로 대충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보고 책망을 해야 하는데도 책망하지 않고, 분명 하나님 집의 이익이 손실 입는 것을 보아도 신경 쓰지도 묻지도 않으면서 조금도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려고 하지 않는다. 사실 그가 진심으로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헤아리는 것은 아니다. 그의 속셈과 목적은 사람의 마음을 농락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다. ‘내가 이렇게 해서 아무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으면 사람들은 나를 좋은 리더라고 생각하고 나를 좋게, 높게 평가하고 내게 찬성하고 나를 좋아할 거야.’ 그는 하나님 집의 이익이 얼마나 손해를 보든, 하나님 선민의 생명 진입이 얼마나 피해를 입든, 교회 생활이 얼마나 큰 방해를 받든 상관하지 않고 그저 사탄 철학을 지키며 사람들의 미움을 사지 않으려 한다. 마음속에는 어떠한 가책도 없다. 누군가 방해하고 교란하면, 기껏해야 말로 어물쩍 넘어갈 뿐 진리를 교제하지 않고 그 사람에게 문제의 본질을 지적하지도 않으며 사람의 내적 상태를 분석하거나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교제하는 법이 없다. 거짓 리더는 사람들이 항상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어떤 패괴 성품을 표출하는지 폭로하거나 해부하는 법이 없고, 어떤 실제적인 문제도 해결하지 않는다. 대신 사람의 그릇된 행동 방식과 패괴 표출을 항상 눈감아 주며, 사람이 아무리 소극적이고 연약하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그저 글귀와 도리를 늘어놓고 격려의 말 몇 마디로 대충 넘어가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유지할 뿐이다. 그 결과, 하나님의 선민들이 자신을 반성하거나 인식하지 못하고, 어떤 패괴 성품을 표출해도 해결하지 못하며, 글귀와 도리, 관념과 상상 속에서 살면서 생명 진입이 전혀 없다. 그런데도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의 리더는 하나님보다도 우리의 연약함을 더 잘 이해해 줘. 우리의 분량이 작아 하나님의 요구에 미치지 못해. 우리는 리더의 요구에 맞출 수 있기만 하면 돼. 우리가 리더에게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거야. 만약 어느 날 상부에서 우리의 리더를 교체하겠다면 우리가 목소리를 내야 해. 리더가 교체되지 않도록 상부와 협상하고, 상부에서 우리 요구를 들어주도록 압박해야지. 그러면 리더에게도 면목이 설 거야.’ 사람들의 마음에 이러한 생각이 생기고 리더와 이러한 관계가 형성된다. 마음에 리더에 대해 이러한 의지, 부러움, 숭배가 생기면 갈수록 리더를 믿게 되고, 리더의 말을 듣기 원하면서 하나님 말씀에서 진리를 구하지 않게 된다. 이런 리더는 사람들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만약 리더가 하나님의 선민과 이런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하고, 또한 그 관계를 즐기며 하나님 선민이 응당 자신을 이렇게 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 리더는 바울과 다를 바 없고, 이미 적그리스도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하나님의 선민은 이미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어 분별력이 전혀 없다. 사실, 그 리더는 진리 실제가 없고, 하나님 선민의 생명 진입에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그저 글귀와 도리만 늘어놓으며 인간관계를 유지할 뿐이다. 그는 외식하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드러내는 데 능하다. 또 그의 말과 일 처리는 사람의 관념에 맞으며, 사람들을 미혹한다. 그는 진리를 교제할 줄 모르고, 스스로를 인식하지도 못하기에 사람들이 진리 실제에 진입하도록 인도할 수 없다. 그는 오직 명예와 지위를 위해서만 사역하며, 듣기 좋은 말을 해서 사람을 우롱할 줄만 안다. 그리하여 사람들로부터 숭배받고 앙망받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교회 사역과 하나님 선민의 생명 진입에 심각한 영향과 지장을 주었다. 이런 자는 적그리스도가 아니겠느냐? 혹자는 적그리스도의 행동 방식과 똑같이 행동하지만, 적그리스도가 드러나는 것을 보고는 스스로에게 대조할 수 있다. 그리고 자기가 걷는 길 역시 적그리스도의 길이라고, 얼른 정신 차리고 돌아서서 하나님께 회개해야 한다고, 언제나 개인의 지위와 이미지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매사에 하나님을 높이고 증거하여 하나님이 사람들 마음속에서 지위를 얻게 하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크게 높이게 해야 한다고, 그래야 마음속에 진실한 평안이 찾아온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이 바로 진리를 사랑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다. 만약 적그리스도 본성이 있는 사람이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는 말을 듣는다면 마찬가지로 마음이 불편하겠지만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의 패괴 성품을 솔직하게 털어놓지도 못한다. 이는 그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진실로 회개할 줄 모른다는 증거이다. 그는 계속 지위를 점하고 지위의 복을 누리며, 하나님 선민들의 숭배와 앙망을 즐기고자 한다. 그리하여 그에게 미혹된 사람은 모두 참도와 하나님 말씀에서 벗어나고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그를 따르게 된다. 그런데도 그는 전혀 반성하지 않고, 자기가 위험한 상태에 빠졌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한 채 자신이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계속 사람을 미혹하고 농락한다. 사람들이 그의 말을 잘 듣고 그에게 순종하기만 하면, 아무리 건성으로 무책임하게 본분을 이행해도 눈감아 주며, 게다가 그 무지몽매한 사람들의 숭배와 앙망을 즐기고, 심지어는 아무도 드러내고 분별하지 못하도록 그들을 보호해 준다. 적그리스도의 이런 행동은 독립 왕국을 세우는 것 아니겠느냐? 적그리스도는 실제적인 사역도 하지 않고, 진리 교제로 문제를 해결하지도 않는다.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며 진리 실제에 진입하도록 인도하지 않고 오직 지위와 명예, 이익을 위해서만 일하며, 자신의 입지를 굳히고 사람 마음속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는 일에만 관심이 있다. 이렇게 해서 사람들이 계속 자기를 숭배하고 앙망하고 따르게 한다. 이것이 바로 그가 이루려는 목적이다. 적그리스도가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농락하며 하나님 선민을 통제하는데, 이런 사역 방식이 사악하지 않으냐? 그야말로 너무도 역겹다! 그들이 한동안 그런 식으로 일하여 사람들이 호감을 느끼며 신뢰하고 의지하게 하지만, 그 결과는 어떠하겠느냐? 사람들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생명 진입에 아무런 진전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적그리스도를 자기의 영적 부모, 하나님을 대신하는 존재로 여기게 된다. 사람들 마음속의 하나님 지위를 그들이 대신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일이 생겨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않고, 어떤 문제가 닥치든 하나님에게 기도하거나 의지하지 않으며, 하나님 말씀에서 진리를 구하지 않게 된다. 오히려 리더에게 물어보고 리더의 안내를 구하면서 점점 더 리더를 앙망하고 의지하게 된다. 그들은 하나님에게 구할 줄 모르고, 어떻게 하나님을 앙망하고 의지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며, 어떻게 하는 게 진리와 원칙에 부합하는지는 더더욱 모른다. 그들은 어떤 일이 닥치든 리더가 입을 열기만을 간절히 기다린다. 리더가 하라는 대로 하고 지시하는 대로 따르는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사람을 이런 지경으로 끌고 간다. 이는 사람을 미혹하고 통제하는 것 아니겠느냐? 하나님의 선민들이 왜 일이 닥쳤을 때 하나님에게 진리를 구하지 않는 것이겠느냐? 왜 리더의 말을 살펴보거나 분별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겠느냐? 왜 리더의 말을 들으면 바로 순종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바로 순종하지 못하는 것이냐?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대신 리더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 말씀을 듣는 대신, 또 진리를 구하고 진리에 순종하는 대신 리더의 말을 따른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앙망하고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대신 리더에게 의지해 일을 처리하며, 리더의 지지와 말과 결정에 의지한다. 이 소위 리더들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이미 어느 정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가 사람을 미혹하고 우롱하여 얻은 결과이다.

어떤 사람들은 일이 닥쳤을 때 하나님에게 기도하라고 하면 자기는 분량이 작아서 구할 줄 모른다고 하고,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라고 하면 자기는 자질이 없어서 큰 빛을 얻지 못한다고 하며, 설교를 들으라고 하면 또 설교에서 하는 말들이 너무 대단하고 깊어서 도달할 수 없다고 한다. 그는 사람이 자질이 떨어지는 데다가 연약하고 모든 면에서 다 부족하니 리더를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네가 “어째서 리더를 찾아가야 합니까? 왜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않는 거죠?”라고 물으면 그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은 관념이 있는 데다가 자질도 떨어지죠. 아둔하며 무감각하고요. 하나님 말씀은 때로 그렇게 직설적이지 않고, 예를 들어 설명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저희 리더는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직접적으로 알려 줍니다. ‘1 더하기 1은 2’라는 식으로 무척 직설적이죠. 저는 하나님 말씀을 읽을 때 소리 내어 읽을 수만 있어도 다행이죠. 하나님 말씀의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어떤 요구를 하시는지, 어떻게 실행해야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지 역시 모릅니다. 한 번도 답을 찾지 못했어요. 저는 자질이 너무 떨어지는 데다가 분량도 너무 작고, 무감각하고 어리석어 어떤 일도 꿰뚫어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든 리더에게 물어봐야 해요. 리더가 대신 결정해 주고, 답을 찾아주고, 어떻게 하라고 알려 주면 그렇게 하는 거죠. 저는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단순하고 순종적이죠.” “단순하고 순종적이라는 건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리더에게 정말 진리 실제가 있습니까? 그가 정말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입니까? 만약 리더가 글귀와 도리만을 늘어놓을 뿐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당신이 리더에게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의미가 될까요?”라고 물으면,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리더는 자질이 뛰어난 데다가 맞는 말만 합니다. 그건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뜻에 부합한다는 의미지요.” 그의 말에 논리적 추리가 있지 않으냐? 전부 개인적인 느낌이다. 그는 자질이 떨어지고 분별력이 없어 리더에게 정말 문제가 있어도 간파하지 못할 것이다. 많은 사람이 무지몽매하고 자질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이 원인은 잠시 차치하고, 리더 본인에 관해서만 말해 보자. 사람들이 이런 모습을 보이고 리더에게 이런 의존성과 견해, 태도를 보이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농락하는 리더의 수법이나 방식과 관계가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얼마나 관계가 있겠느냐? 리더의 사역 방식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지 않겠느냐? 절대적이고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고 100% 관계가 있다고 확언할 수 있다. 어째서 이렇게 말하겠느냐? 많은 리더가 주관적인 바람으로는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고 싶어 하지만,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데다가 각종 실제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고, 행정 사무와 관련된 사역만 조금 할 줄 알고, 자신을 뽐내 우러름 받을 줄만 알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적그리스도의 길에 들어선다. 또 자신만의 방식과 방법으로 계속해서 사람의 마음을 농락하고 통제하며 사람의 행위와 생각을 통제하여 사람들이 일을 처리하고 진리를 실행하며 본분을 이행하는 모든 측면에서 그들의 말을 듣고 따르게 한다. 사람은 모두 적그리스도에게 순종할 뿐 하나님에게는 진실한 순종을 보이지 않는데, 적그리스도에 대한 순종이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크게 넘어섰다. 본분 이행에 전혀 성과가 나지 않고, 사람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도 못한다. 이런 자가 구원받는 사람이겠느냐? 사람이 리더 일꾼에게 순종하고 충성하는 것에는 ‘정확한’ 실행의 길이 있다. 하지만 하나님에게 어떻게 순종하고 충성해야 할지에 관해서는 정확한 실행조차 없다. 아무도 이런 측면에서 교제하지 않고, 아무도 이런 측면에서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는다. 사람은 모두 자신의 지위와 명예를 위해 말하고 행동하며, 하나님의 선민들이 자신에게 순종하고 자신을 숭배하도록 하기 위해 침식을 잊은 채 머리를 쥐어짜 가며 사역한다. 이는 명백히 리더 일꾼이 되어 교회에서 권력을 잡으려는 목적을 이루기 위함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기겠느냐? 패괴된 인류의 성품과 기호가 모두 같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길을 가리켜 주면 너는 흔쾌히 실행하고자 하지만, 이는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말을 듣고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이다. 그럼 사람은 왜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기 싫어하고 하나님께 구하려 하지 않는 것이냐? 사람의 인성 안에는 진리에 부합하는 것이 없으며, 사람이 좋아하고 동경하는 것,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들은 진리와 상반되고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람에게 일이 닥쳤을 때 진리를 구하라고 하면 하늘에 오르는 것보다 어렵게 느껴지지만, 사람의 말을 듣고 따르라고 하면 더없이 쉽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적그리스도가 사람의 마음을 농락하는 수법으로 사람을 통제하는 것은 금방 효과를 보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들이 아무렇게나 한 말 한마디가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불러오고, 속셈과 관점이 들어간 말을 아무렇게나 내뱉으면 사람들은 그를 다시 보고 다르게 대한다. 이는 사람의 내면에 과연 무엇이 있는지를 보여 준다. 다시 말해, 네가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지위와 권세를 추구하는 길을 걷는다면, 네 모든 행동은 패괴된 인류 누구에게든 참도에 등을 돌리고 진리와 하나님을 멀리하고 저버리게 하는 영향과 결과를 가져다주게 된다. 오직 이 결과, 이 결말뿐이다. 이는 너무도 명확한 사실이다.

적그리스도가 사람의 마음을 농락하는 첫 번째 모습은 작은 선심으로 사람을 회유하는 것이다. 작은 선심이란 꼭 물질적인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많은 것이 포함된다. 때로는 마음에 드는 말을 해 주는 것일 수 있고, 때로는 사람의 욕망과 흥미를 충족시켜 주는 것일 수도 있으며, 또 때로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듣기 좋은 말을 해 주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하여 상대로 하여금 그 리더는 남을 헤아려 주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즉, 충분한 포용과 사랑, 온기, 그리고 소위 이해심으로 사람을 통제하려는 그의 이면의 야심을 숨기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형제자매들이 좋은 물건을 헌납할 경우 그는 자기와 사이가 좋은 사람에게 조금 나눠 준다. 이렇게 작은 선심으로 사람의 마음을 농락하고 인심을 사는 것이다. 만약 교회에 쉬운 일, 밖에서 고생하지 않아도 체면을 세우는 일이 있으면 그는 자기와 사이가 좋은 사람에게 그 일을 시킨다. 왜 그렇게 하겠느냐? 한 측면으로는 그가 태어날 때부터 진리를 좋아하지 않고, 일 처리에 원칙이 없기 때문이다. 또 다른 측면으로는 그가 좋은 일을 자신과 사이가 좋은 사람에게 배정한 후 듣기 좋은 말을 좀 해서 상대가 고마운 마음을 갖게 함으로써 사람의 마음을 농락하려는 목적을 이룬다. 이 수법은 작은 선물이나 듣기 좋은 말 몇 마디로 끝나는 게 아니다. 여기에는 속셈과 목적이 있다.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상대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으려는 것이다. 만약 10명의 사람이 있다면 그는 먼저 판단한다. ‘이 열 명 중 둘은 아부를 잘하지. 내가 따로 신경 쓰지 않아도 그들은 내 비위를 맞출 거야. 또 둘은 어리석은 사람이니까 이익만 좀 안겨 주면 내 말을 들을 거야. 나머지 둘은 자질이 좀 있으니까 내가 고차원적인 설교를 하고, 대단한 말을 좀 하면 나한테 순종할 테고. 셋은 보아하니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라 요리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그들의 사정을 알아보고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살펴서 그걸 충족시켜 줘야겠어. 만약 나한테 고마워하지 않고 나를 따르지도 않는다면 결국 처리하고 제거해야지. 남은 한 명은 나한테 반대하기는 해도 큰 말썽은 부리지 못할 테니 대응하기 쉬울 거야.’ 사람들 가운데서 그는 자기가 요리할 수 있는 사람과 그럴 수 없는 사람을 쓱 훑어만 봐도 알 수 있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알겠느냐? 그의 마음속에는 사탄의 정치와 철학 같은 것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의 일 처리 원칙과 처세 방식은 사람들과 화목하게 함께 지내는 것도,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아니고, 남에게 도움이나 공급을 주고 덕이 되는 것도, 사람들과 평등하게 지내는 것도 아니며, 진리 원칙으로 일을 처리하고 교류하는 것도 아니다. 그에게는 이런 원칙이 아예 없다. 그의 원칙은 무엇이겠느냐? ‘모든 사람이 속으로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를 우러러보는 사람, 마음속에 내가 있고 나를 두려워하고 존경하고 공경하는 사람은 신경 쓸 필요 없어. 나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한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를 공경하지만 그다지 순종하지 않는 사람한테는 어떻게 해야 하지? 보통 남들한테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한테는 또 어떻게 해야 할까?’ 그가 사람을 통제하는 데는 단계가 있다. 그에게 왜 이런 단계와 사상이 생기겠느냐? 권력에 대한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들 속에서 남들과 화목하게 지낼 경우, 이것은 그에게 너무나 성취감이 없고, 너무나 존엄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의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자기 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첫 번째가 아니면 두 번째를, 두 번째가 아니면 세 번째를 차지해야 하고, 평등하게 지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사람이 리더를 하면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겠느냐? 그러지 못한다. 그가 하는 모든 일은 무엇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겠느냐? (권력을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모두 권력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그는 권력을 중심으로 어떤 일들을 하려 하느냐? 먼저 네 마음을 읽고 파악하려 한다. 즉, 먼저 너를 포섭하여 네가 그에게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놓게 하고, 네 마음속 말을 끌어내서 그에 대한 네 솔직한 생각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그것을 파악한 후에는 상황에 맞춰 하나하나 손을 쓴다. 그는 사람의 마음을 통제하려고 하는데, 누군가의 마음이 자신과 맞지 않고 누군가가 그를 공경하지 않고 다른 마음을 품는다는 사실을 알면 손을 써서 상대를 괴롭힌다. 그렇기에 사람의 마음을 농락하는 적그리스도의 출발점은 권력을 위함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럼 그가 권력을 얻는 방식과 수단은 무엇이겠느냐?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파악하고 통제하는 것이다. 사람의 사상은 무엇으로 통제되느냐? 마음과 본성으로 통제된다. 사람의 마음이 통제되면, 그 사람의 사상과 생각, 뜻이 어떤지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마음이 통제되는 순간, 사람은 완전히 통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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