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조 사람의 마음을 농락한다 (제 1 부)

참고 복음 전파 방면의 진리를 보충하다

지난 몇 번의 예배에서 이야기했던 주제는 합격한 본분 이행 방면에 관한 것으로, 사람이 이행해야 할 본분과 인원을 분류해 보았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류가 있느냐? (첫 번째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 두 번째는 교회 각급 리더 일꾼, 세 번째는 각종 특수한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 네 번째는 보통의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 다섯 번째는 여가 시간에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 여섯 번째는 본분을 이행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총 여섯 부류가 있다. 지난번에는 첫 번째 부류에 대해 다루었다. 그것은 복음 전파 본분의 여러 원칙과 진리에 관한 내용으로, 여기에서는 복음을 전파하는 모든 방면에 관계된 내용, 즉 주의 사항, 관련된 원칙과 진리, 경계해야 할 것, 복음 전파의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쉽게 발생하는 실수와 치우친 부분을 다루었다. 너희는 한 가지 주제에 관한 설교를 들은 후에 그 안의 주요 내용을 종합하여 정리할 수 있겠느냐? 만약 너희가 그 주제의 주요 내용을 파악하고, 관련된 진리를 마음에 새긴 다음,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점차 그런 것을 자신의 실제와 자신의 생명이 되게 하고, 자신의 실행 길이 되게 한다면, 너희는 내가 교제한 이 내용들을 완전히 소화한 것이다. 내가 말씀 한 편을 교제했는데 만약 너희가 대략적인 내용, 몇 가지 사건이나 이야기만 기억하고, 거기서 말하는 진리와 원칙이 무엇인지, 왜 그런 일을 이야기하려 하는지도 모른다면, 이를 이해했다고 할 수 있느냐? 진리를 깨달았다고 할 수 있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이는 진리를 깨달았다고 할 수 없다. 그 안의 진리가 무엇인지 알아듣지도, 이해하지도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너희는 종합하여 정리할 수 있겠느냐? 지난번 교제한 핵심 내용에 대해 누가 한번 이야기해 보겠느냐? (저희가 정리한 내용은 일곱 가지입니다. 첫째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입니다. 둘째는 복음 전파 본분의 본질은 무엇인지입니다. 셋째는 복음 전파 본분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와 그 내면의 관점입니다. 넷째는 복음 전파의 구체적인 실행 원칙입니다. 예를 들어, 복음 전파 원칙에 어떤 사람이 부합하고 어떤 사람이 부합하지 않는지에 관한 내용입니다. 다섯째는 복음 전파 원칙에 부합하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입니다. 여섯째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 무단이탈하여 도주한 결과에 관한 것입니다. 일곱째는 복음 전파에 헌신한 역대 성도들에 관한 내용, 저희 또한 본분을 이행할 눈앞의 기회를 소중히 여기고 서둘러 진리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에 관한 내용입니다.) 지난번에 교제한 몇 가지 내용의 핵심을 대체로 종합하여 정리하였다. 아주 훌륭하다. 또 빠진 것은 없느냐?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사람의 관점을 바로잡아 복음 전파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이행해야 할 본분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모든 사람이 거부해서는 안 되는 책임임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 선민이 반드시 깨달아야 할 진리입니다.) 복음 전파는 모든 사람의 직책이자 의무로, 이 역시 한 가지 내용이다. 너희는 이 진리를 교제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알고 있느냐? 사람의 치우친 이해를 해결하려는 것이다. 어느 측면에서 치우쳤는지 알고 있느냐? (모릅니다.) 모른다는 것은 너희가 이 부분의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그럼 나는 왜 이 진리를 교제하려고 하겠느냐? 적극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이는 사람이 깨달아야 하는 측면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소극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복음 전파에 대한 모든 사람의 치우친 이해를 해결하기 위함이다.

많은 사람이 복음 전파에 관한 일을 치우치게 이해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나는 지금 특수한 본분을 이행하고 있으니까 복음 전파는 나와 아무 상관이 없어. 그건 나와 무관한 일이라고. 그러니 복음 전파 측면에서 깨달아야 할 진리와 원칙, 그리고 하나님의 요구 등은 모두 나와 무관하고, 나는 그러한 것을 깨달을 필요가 없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복음 전파 측면의 진리를 교제하면 멍하니 있으면서 전혀 진지하게 구하지 않고, 귀 기울여 듣지도 않으며, 듣고 난 후에도 무엇을 이야기했는지 알지 못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저는 하나님을 믿은 후로 줄곧 리더 자리에 있었습니다. 저는 자질도, 사역 능력도 갖추고 있죠. 타고난 리더감이랄까요. 아무래도 하나님이 제게 주신 본분과 이번 생에 제가 해야 할 사명은 리더 자리에 있는 것인 듯합니다.”라고 말한다. 이 말의 함의인즉슨, 복음 전파의 일은 그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복음 전파와 관련된 진리를 교제하면 그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예배 때 지난번 교제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요약해 보라고 하면 한참 동안 노트를 뒤적이고도 모르는 사람이 있다. 어째서 그렇겠느냐? 기억력이 나빠서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일이 많아서 머리에 공간이 없기 때문이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다. 여기에서 진리를 대하는 사람의 태도가 바로 진리를 싫어하고 사랑하지 않는 태도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나는 모든 사람이 알도록 경고하는 바이다. 복음 전파는 어떤 부류의 사람 혹은 어떤 집단 사람들의 특수한 직책이 아니라 하나님을 따르는 모든 이의 직책이다. 왜 복음 전파의 진리를 깨달아야 하겠느냐? 왜 사람은 이런 진리를 알아야 하겠느냐? 이는 한 피조물로서, 그리고 하나님을 따르는 한 사람으로서 나이와 관계없이 남녀노소 막론하고 복음 전파는 사람이 반드시 받아들여야 하는 사명이자 직책이다. 이 사명이 너에게 임해 네가 헌신하고 대가를 치르고 심지어 희생하는 것이 필요하다면 너는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마땅히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는 네가 깨달아야 할 진리이다. 이것은 간단한 도리가 아니다. 이는 진리다. 왜 이를 진리라고 하겠느냐? 아무리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고 장소와 공간이 바뀌어도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증거하는 일은 영원히 긍정적인 사물이기 때문이다. 그 의미와 가치는 영원히 변치 않는다. 그것은 시간과 장소가 달라진다고 해서 변하는 일이 결코 아니다.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증거하는 일은 영원한 것이며, 피조물이라면 모두 이를 마땅히 받아들이고 실행해야 한다. 이는 영원한 진리다. 어떤 사람들은 “제가 이행하는 본분은 복음 전파가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해도 복음 전파 방면의 진리는 사람이 마땅히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상(異象) 방면의 진리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모두 깨달아야 한다. 이는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토대를 다져 주는 것으로, 생명 진입에도 이롭다. 또한, 네가 교회에서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이방인을 만날 기회가 있을 것이니 네게는 복음을 전할 책임이 있다. 네가 복음 전파에 관한 진리를 깨달으면 속으로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새 사역을 전파하고, 하나님이 사역하셔서 사람을 구원하신다는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나의 직책이야. 언제 어디서든, 내 신분과 역할이 무엇이든, 배우가 되더라도 내게는 복음을 전할 의무가 있어. 지금 내가 교회 리더여도 복음을 전하러 갈 의무가 있는 거야. 지금 이행하는 본분이 무엇이든 내게는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파해야 할 의무가 있어. 기회가 있거나 여가 시간이 있으면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해. 이건 내가 마땅히 다해야 하는 책임이야.’ 지금 많은 이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나는 지금 고정적인 본분이 있고, 고정적인 업무와 분야를 공부하고 연구하는 중이야. 그러니 복음을 전하는 일은 나와 관계없어.’ 이것은 어떤 태도이냐? 책임을 미루고 사명을 회피하는 태도이고 소극적인 태도이다. 이런 자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이다. 누구든 복음 전파에 책임감이 없다면 이것은 비양심적이고 비이성적인 모습이 아니겠느냐? 네가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협력하고 책임지고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면 소극적이고 수동적으로 대충 하는 것인데, 이는 취해서는 안 될 태도이다. 네가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어떤 업무나 분야에 관계된 본분을 이행하든 최종적으로 달성해야 할 주된 효과 중 하나는 바로 하나님이 사역해 사람을 구원한다는 이 복음을 증거하고 전파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피조물로서 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다. 만약 최소한의 것조차 할 수 없다면, 네가 하나님을 믿은 몇 년 동안 본분을 이행하면서 무엇을 수확했느냐? 무엇을 얻었느냐?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느냐? 오랜 세월 본분을 이행하면서 업무에 정통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증거하라고 하면 입을 열지 못하고, 어떤 측면의 진리도 교제하지 못하니 이는 어떤 문제겠느냐? 이는 바로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사람이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고 말한다면, 억울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는 자기가 본분을 이행하면서 성과를 냈다고 생각하겠지만, 하나님 사역의 이상(異象)도,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도 깨닫지 못한다. 그런데 진리를 깨달을 수 있겠느냐? 적어도 너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참도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너는 하나님의 사역을 전파하고,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는 이 복음을 전파하는 데 전혀 부담이 없으며, 어떤 깨달음이나 인식, 이해도 없다. 그러니 네가 진실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겠느냐?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수립했겠느냐? 이러한 것에 모두 도달하지 못했으니 네게는 진리 실제가 없는 것이다.

이제 다시 방금 이야기하던 주제로 돌아가 보자. 복음 전파는 모든 하나님 선민의 직책이자 의무이다. 이 측면의 진리를 끝까지 이야기했을 때, 모두가 이해해야 할 한 가지는 무엇이겠느냐? 사람이 대가를 치르든, 가정과 직장을 버리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든, 생명을 바칠 수 있든 사실 이런 것은 다 표면적인 것이다. 하나님이 최종적으로 사람에게 도달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냐? 네 분량과 생명이 자랄수록,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네가 하나님의 사역과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에 담긴 각종 진리를 점차 깨닫게 되고, 복음을 전해 하나님을 증거하려는 너의 부담이 점차 분명해지고, 이 본분을 짊어지려는 네 의지도 점점 커지는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몇 년간 교회에서 리더 사역을 하였는데 교회를 이끄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복음 전파 본분에 대한 느낌과 감동, 부담이 점점 더 사라진다면 그는 본분을 어떻게 이행한 것이냐?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것입니다.) 왜 그런 것이냐?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이냐? 사람에게 이런 내적 상태가 생겨나고 이런 내적 상태로 살 수 있다면 최소한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다. 바로 그 사람이 몇 년간 진리를 추구한 적도 없고, 실제적인 사역도 하지 않고, 큰 붉은 용과 같은 관료 간부에 속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전파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증거하는 일에 대해 아무런 부담도, 깨달음도 없는 것이다. 이 결과가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는 필연적인 결과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사역했든 그는 자기 분량이 무척 크다고, 자기는 하나님의 부담을 헤아릴 줄 알고,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섬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복음 전파에 대해 말하면 뒷걸음질을 친다. 그는 복음을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 모르고, 하나님의 현현을 갈망하면서 참도를 구하고 알아보려는 사람을 만나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한마디도 하지 못하며, 어디에서부터 말을 시작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한다. 이는 어떤 문제겠느냐? 이것이 바로 진리를 깨닫지도, 얻지도 못해 하나님을 증거할 줄 모르는 것이다. 오직 진리를 깨달은 사람만이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다.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은 네 본분 범위 안에 있는 일이다. 만약 네가 진리를 깨닫고 얻었다면, 참도를 알아보려는 사람을 만났을 때 왜 할 말이 없겠느냐? 이는 문제가 있는 것 아니겠느냐? 너희는 종종 이런 상황에 직면하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이는 어떤 문제겠느냐? 이는 부담이 없는 것이다. 부담이 없는 것은 문제 아니겠느냐? 부담이 없는데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겠느냐? 설사 본분을 이행한다고 할지라도 충성할 수 있겠느냐? 합격점에 이를 수 있겠느냐? 부담이 없는 것은 치명적인 문제는 아니지만, 심각한 문제이다. 그것이 사람의 본분 이행에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겠느냐? (해결해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결해야겠느냐? 복음 전파에 대한 잘못된 관점을 바로잡아야 하고, 복음 전파와 관련된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지금 너희가 하는 갖가지 사역은 모두 복음 전파 사역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으며, 전부 복음 전파 범위 안에 속한 사역이다. 또 전부 하나님을 증거하고 복음 사역을 확장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증거하고, 하나님이 사역하여 사람을 구원한다는 이 복음을 전파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이 깨닫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 하나님의 정복과 구원을 받아들이고, 마지막에는 복 있게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럼 더욱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말한,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게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겠느냐? 마지막에 어떤 성과를 내야겠느냐?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 구원의 은혜를 얻게 해야 합니다.) 왜 이런 목적에 이르러야 하겠느냐? 이는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계속 이 방면의 진리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만약 하나님의 뜻과 관련이 없다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쓸모없고 공허한 것이다. 다름 아닌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를 꺼내 놓고 분명하고 명백하게 이야기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이것이 진리임을 알게 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복음 전파 방면의 진리에 공을 들이고,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이런 깨달음을 얻고 이런 부담을 가져야 한다.

그렇다면 이어지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왜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복음을 전하고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게 해야겠느냐? 왜 이렇게 해야 하겠느냐?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바라시지 아무도 침륜되는 것을 바라시지 않죠. 그러니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을 받아들이게 해야 합니다.” 맞는 말이지만, 위 문제의 본질적인 답은 아니다. 그럼 이 문제의 본질적인 답은 무엇이겠느냐? 너희는 알고 있느냐? (하나님은 하나님과 한마음 한뜻을 가진 자들을 얻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한마음 한뜻을 가진 자들을 얻고자 하므로 복음 확장을 통해 이루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널리 복음을 전하는 것에 관해 말하고 있다. 널리 복음을 전하는 것과 한 무리의 사람을 얻는 것은 차이가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럼 널리 복음을 전하는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사람을 최대한도로 구원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최대한도로 구원하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원칙 중 하나이지 이 문제의 답이 아니다. 이 단계 사역이 시작될 때부터 줄곧 말했듯이, 하나님이 이번에 와서 사역하는 것은 시대를 여는 것으로, 새로운 시대를 가져오고 옛 시대를 끝맺는 것, 즉 하나님나라시대를 가져오고 은혜시대를 끝맺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인 사람은 모두 이 사실을 보았다. 하나님은 새로운 사역을 하고 진리를 선포하여 인류를 심판하며, 인류를 정결케 하고 구원한다. 하나님나라의 복음은 수많은 나라에서 확장되기 시작했다. 이 인류는 이미 율법시대와 은혜시대에서 나와 더 이상 성경을 보거나 십자가 아래에서 살아가거나 구주 예수의 이름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한편, 하나님이 현재 선포한 말씀을 받아들여 그것을 인생의 생존 원칙과 방식, 목표로 삼게 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이들은 이미 새로운 시대로 진입한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미 새로운 시대로 진입한 것이다. 그럼 말세 복음과 하나님의 새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은 더 많은 사람은 여전히 어떤 시대에 살고 있겠느냐? 그들은 여전히 은혜시대에 살고 있다. 지금, 너희의 직책은 무엇이냐? 그들을 은혜시대에서 데리고 나와 새로운 시대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너희가 기도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외치기만 해서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 말씀을 몇 마디 전하는 것만으로 되겠느냐? 절대 불가능하다. 너희 모두가 부담을 갖고 복음 전파라는 부탁을 맡아 하나님 말씀을 널리 전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하나님 말씀을 전파하는 한편, 하나님나라 복음을 전파하고 확장해야 한다. 확장이란 무엇이냐?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하여 하나님이 새로운 사역을 했다는 사실을 더 많은 사람이 알게 하는 것이다. 그 후 그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고, 너희의 체험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증거하며, 그들을 이끌어 새로운 시대로 들어서게 해야 한다. 그러면 그들도 너희처럼 새 시대에 들어가게 된다. 하나님의 뜻은 매우 분명하다. 하나님의 뜻은 그의 말씀을 들은 후 받아들이고 따르는 너희를 새로운 시대에 들어가게 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전 인류를 새로운 시대에 들어가도록 인도하고자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자 지금 하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이 깨달아야 할 진리이다. 하나님은 한 무리의 사람이나 극소수의 사람, 혹은 어떤 작은 민족을 새로운 시대에 들어가도록 인도하려는 것이 아니라 전 인류를 새로운 시대에 들어가도록 인도하려고 한다. 그럼 이 목적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겠느냐? (널리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널리 복음을 전해야 한다. 다양한 방식과 길을 통해 널리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이다. 널리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말로는 쉽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겠느냐? (사람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그렇다. 그러려면 사람의 협력이 필요하다. 만약 사람이 마음속으로 항상 낡은 것들을 지키고 치우친 것들을 품으며 낡은 규례와 행동 방식을 고수하는 반면, 복음 사역이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듯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부탁을 받아들이지도 않는다면, 이런 사람이 하나님에게 발탁되어 쓰임 받을 수 있겠느냐?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자격이 있겠느냐? 하나님에게 인정받을 수 있겠느냐? 절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나는 반드시 너희의 사상을 바꿔 줘야 하고, 너희가 어떤 것을 깨닫지 못하는지 보고 그 측면에 관련된 진리를 깨달을 때까지 계속 말해 줘야 한다. 너희가 아무리 무감각하고 우둔할지라도 나는 한결같이 쉬지 않고 말해 주어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자 너희가 이행해야 할 본분임을, 너희가 살아가는 이번 생의 의무이자 사명임을 알게 해야 한다. 네가 듣고 나서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이해하지 못한다면, 나는 또 계속 말해 줘야 한다. 질릴 정도로 들었다고 해도 네가 진리를 깨달을 때까지 나는 말해 줘야 한다. 진리란 무엇이냐? 진리란 하나님이 선포한 것으로, 하나님의 뜻이자 사람에 대한 요구이며, 새 시대의 사람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진리 실제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대해야겠느냐? 가감 없이 절대적으로 받아들인 후 순종하고 협력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해야 한다. 이것이 사람의 의무이다. 이렇게 말하니 이해가 되느냐? 어떤 이들은 “아이고, 하나님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부탁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하시는데, 이는 저희처럼 보잘것없는 사람들과는 관계없는 이야기 아닐까요?”라고 말한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관계가 없겠느냐? (있습니다.) 어떤 관계가 있겠느냐? 이 일은 이렇게 말해야 한다. 하나님은 창조주고, 사람은 피조물이다. ‘창조’와 ‘피조’는 어떤 관계냐? 주동과 피동 관계이고, 만드는 것과 만들어지는 것의 관계이다. 창조주의 뜻을 네게 나타낸 이상, 어떤 태도로 대해야겠느냐?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하여 협력해야 합니다.) 그렇다. 너는 순종하고 받아들이는 한편, 최선을 다해 협력하고, 어떤 대가도 불사하고 협력해야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협력에 진리를 구하는 것이 포함되지 않겠느냐? 진리를 깨닫는 것이 포함되지 않겠느냐? 모두 포함된다. 네가 하나님의 요구와 부탁을 알게 된 이상, 그것은 네 사명과 연관된다. 그것은 네 본분이다. 너는 알게 된 이상, 받아들여야 한다. 이는 양심과 이성을 갖춘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만약 네가 하나님의 요구와 부탁을 알고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양심과 이성이 없어도 너무 없는 것이고, 사람이라고 불릴 자격도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채 ‘하나님의 뜻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지?’라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의 뜻이 너와 무관하다면 너는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도, 하나님 집의 사람도 아니다. 예를 들어 보겠다. 네 부모는 너를 낳아 오랫동안 키워 주었다. 너는 집에서 먹고 거하며 집안 돈을 썼다. 그런데 집에 일이 생겼을 때 너와 무관하다며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고 달아난다면, 이는 어떤 작자겠느냐? 외부인이라고 한다면 많이 봐준 것이다. 사실 너는 불효막심한 놈, 사람의 탈을 쓴 금수, 짐승만도 못한 작자이다. 하나님의 뜻이 네게 나타났고, 하나님은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이 단계 사역을 받아들였고, 나는 이 말들을 너희에게 먼저 베풀어 주어 듣게 했다. 너희는 알아듣고 받아들였다. 이제 내 뜻과 너희에 대한 요구 또한 알려 주려 한다. 너희는 내 사역과 말, 내가 이루려는 일을 전파하여 전 인류가 내 음성을 듣게 해야 한다. 또 내 나라의 복음을 확장하여 전 인류가 하루빨리 하나님의 사역을 받아들이고 하나님나라시대에 들어서게 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자 요구이다.” 이 일에 대해 듣고 어떤 느낌이 들어야 하겠느냐? 너는 어떤 태도를 보여야겠느냐? 어떤 선택을 해야겠느냐? 피조물이 이행해야 할 본분을 어떻게 다해야겠느냐? 어떤 사람은 짐이 무겁다고 생각하지만, 생각만 해서는 안 된다. 행동으로 옮겨야 하고, 진실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 너는 하나님에게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당신은 저에게 복음 전파의 책임을 부탁하셨으니 이는 저를 높여 주신 것입니다. 저는 깨달은 진리가 몹시 적지만, 최선을 다해 이 부탁을 완수하고자 합니다. 저는 많은 설교를 들으면서 얼마간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이는 다 당신의 축복입니다. 그러니 제게는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을 증거하여 당신의 부탁을 완수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것이 옳은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마음을 지니면 하나님의 인도가 있다. 하나님은 이미 사람에게 명확히 말한 바 있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사람이 거부해서는 안 되는 책임이자 의무이며, 평생의 본분이라고, 이는 모든 피조물의 본분이라고 말이다. 이 말에 하나님의 지시가 있지 않으냐? 하나님의 당부가 있지 않으냐?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지 않으냐? (있습니다.) 사람이 깨달아야 할 진리가 있지 않으냐? (있습니다.) 그럼 여기에 사람이 실행해야 할 길과 원칙이 있지 않으냐? (있습니다.) 내가 전부 몇 가지를 말했느냐? (네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지시와 당부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세 번째는 저희가 깨달아야 할 진리입니다. 네 번째는 사람이 실행해야 할 원칙과 길입니다.) 그렇다. 나는 그렇게 네 가지를 말했다. 그럼 이제 그 네 가지에 관한 세부 내용을 교제하겠다.

첫 번째, 하나님의 분부이다. 그럼 하나님의 분부는 무엇이냐?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널리 전하는 것이다. 두 번째,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냐? 더 많은 사람에게 하나님이 이미 왔고 하나님이 새 사역을 하였음을 알게 하고, 하나님이 시대를 바꾸어 옛 시대를 끝내고, 인류를 이끌고 새 시대로 들어갈 것임을 알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그렇지 않으냐? 그럼 하나님의 뜻이 복음 확장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복음 확장에는 최종적인 목적과 결과가 있다. 그것은 무엇이겠느냐? (하나님이 오시어 새로운 사역을 하셨다는 것, 옛 시대를 끝내고 전 인류를 새로운 시대에 들어가도록 인도하려 하신다는 것을 더 많은 사람이 알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 전 인류를 새로운 시대에 들어가도록 인도하는 것이다. 그럼 이것이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주겠느냐? 새로운 시대에 진입하면 이 시대는 변하게 된다. 그럼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겠느냐? 다시 읊어 보아라. (하나님은 시대를 바꾸고자 하십니다. 옛 시대를 끝내고, 인류를 새로운 시대에 들어가도록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 말 중 한마디라도 빠져서는 안 된다. 모두 적었느냐? (네.) 세 번째, 사람이 깨달아야 할 진리이다. 이 진리는 무엇이겠느냐? (복음 전파는 모든 피조물의 본분이자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진리이다. 이 진리 속에서 사람이 해야 할 일은 복음 전파의 본분을 받아들인 후 이 말에서 실행의 길과 원칙을 찾는 것이다. 사람에게 이 말은 진리이다. 이 말은 무엇이었느냐? (복음 전파는 모든 피조물의 본분이자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본분이자 사명이어야 한다. 본분과 사명을 어떻게 보아야겠느냐? 본분은 이행해야 할 책임이고, 이행해야 할 책임은 사람의 본분이다. 하지만 사명은 다르다. 사명은 책임보다 더 막중하고 적절하고 깊은 의미를 지니며, 무게가 있다. 적어 두었느냐? (적었습니다.) 지금 나는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너희는 내가 말한 내용을 전부 문자로 기록해 두어야 마음속으로 잘 이해가 된다는 것이다. 만약 적지 않고 이렇게 듣기만 한다면 인상조차 남지 않을 것이다. 이는 무엇을 말해 주느냐? 사람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도리만을 좀 이해한다면 어떤 측면의 진리든 정의와 개념, 윤곽만을 알게 될 뿐 그런 진리와 관련된 구체적인 세부 내용을 어떻게 실행하고 적용해야 할지 등은 하나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너희처럼 많은 사람이 도리를 말하면 두세 시간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너희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일이 닥쳤을 때 진리로 해결하라고, 너희가 체험하고 이해한 실행 원칙과 실행의 길로 해결하라고 하면 어려워한다. 이는 어떤 문제겠느냐?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겠느냐? 이제 네 번째에 관해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네 번째는 무엇이었느냐? (실행해야 할 원칙과 길입니다.) 이 원칙과 길은 무엇에 근거하여 정해졌겠느냐? 두 가지에 근거했다. 하나는 하나님의 뜻이고, 다른 하나는 진리이다. 이 두 가지는 사람이 반드시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복음을 전하게 됐는데 그러기 싫다고 해 보자. 하나님은 복음 전파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겠느냐? 네 실행 원칙은 무엇이어야 하겠느냐? 네 태도는 어떤 것이어야 하겠느냐? 가감 없이, 마땅히 순종하고 받아들이되 이유를 묻지 말고 분석하거나 따지지도 말아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실한 순종이다. 이는 진리를 실행할 때 반드시 지켜야 할 중요한 원칙이다. 정의하는 방식으로 말한다면 하나님의 뜻은 일반적으로 무엇이겠느냐? 하나님의 뜻은 곧 하나님의 의사이고, 하나님이 행사하는 목적이자 근원, 출발점이다. 영적인 말로는 뜻, 이상(異象)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뜻을 네게 알려 준 것은 하나님이 네게 큰 방향을 주어 하나님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게 한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세부적으로 말씀하지 않고 원칙을 알려 주지 않았다면, 네가 구체적인 실행의 길과 방향을 알 수 있겠느냐? 알 수 없다. 그렇기에 내가 사람에게 어떤 일을 하라고 말하면, 머리가 좋고 마음과 영이 있는 사람은 받아들인 후 바로 세부 내용을 찾으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구한다. 하지만 머리가 안 돌아가고 마음과 영이 없는 사람은 그 일이 쉽다고 생각해서 세부 내용을 알려 주기도 전에 일을 처리하러 간다. 이는 머리가 안 돌아가는 것이고, 너무 맹목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부탁을 받아들이고,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여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고자 한다면, 먼저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한다. 또 너는 반드시 그 부탁이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니 너는 마땅히 받아들이고 헤아려야 하며, 나아가 순종해야 한다. 그다음으로는 그 본분을 이행할 때 어떤 진리를 깨달아야 하는지, 어떤 원칙을 지켜야 하는지, 어떻게 실행해야 하나님 선민과 하나님 집 사역에 도움이 되는지를 구해야 한다. 이것이 실행의 원칙이다. 하나님의 뜻을 이해한 후에는 바로 해당 측면의 본분과 관련된 진리를 깨닫고자 구해야 한다. 진리를 깨달았으면 진리 실행의 원칙과 길을 확정해야 할 것이다. 원칙이란 무엇이냐? 구체적으로 말해서, 원칙이란 진리를 실행하여 목표를 이루고 성과를 내기 위해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네게 어떤 물건을 사러 가게 시켰다고 해 보자. 그 일의 구체적인 실행 원칙은 무엇이겠느냐? 먼저, 너는 구매할 물건의 규격이 얼마인지, 어떤 모델인지, 품질은 어떤 기준에 도달해야 하는지, 가격은 적절한지 등을 알아야 한다. 구하는 과정에서 구체적인 실행 원칙을 알게 된다. 원칙은 너에게 사이즈와 범위를 알려 주니 그 범위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물건의 규격과 품질, 가격 등 측면에서 기본 원칙을 파악했다는 것은 네가 그 일의 요구 기준을 파악했다는 뜻이며, 이는 네가 기본적으로 실행할 줄 안다는 의미가 된다. 진리를 실행할 때는 반드시 원칙을 파악해야 한다. 원칙이야말로 가장 핵심적이고 근본적인 부분이다. 본분 이행의 기본 원칙을 파악했다는 것은 그 본분을 이행할 때의 요구 기준을 파악했다는 의미이며, 원칙을 파악했다는 것은 진리를 실행할 수 있다는 것과 같다. 그럼 여기에서 ‘실행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을 기초로 하겠느냐? 하나님의 뜻과 진리를 깨달은 것을 기초로 한다. 하나님이 요구한 말씀 한마디만 알았다고 해서 진리를 깨달았다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다. 그럼 어떤 기준에 도달해야 진리를 깨달았다고 할 수 있겠느냐? 본분 이행의 의미와 가치가 무엇인지 깨달아야 한다. 이 두 가지 측면을 깨달았다면 본분 이행과 관련된 진리를 깨달은 것이다. 이 밖에, 진리를 깨달은 후에는 본분 이행의 원칙과 실행의 길도 파악해야 한다. 본분 이행의 원칙을 파악하면 적용할 수 있다. 때로는 지혜를 좀 발휘해야 하는데, 그래야 본분을 이행하면서 확실히 성과를 낼 수 있다. 원칙을 파악하고,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면 진리를 실행할 수 있다. 만약 본분을 이행할 때 사람의 뜻이 섞이지 않고,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요구에 순종하고 하나님 집의 사역지침대로 처리하며, 완전히 하나님 말씀에 부합할 수 있다면, 네 본분 이행은 완벽하게 합격한 것이다. 설령 성과 면에서 하나님의 요구와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요구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다. 만약 네 본분 이행이 완전히 원칙에 부합한다면, 충성을 다하고 전력을 다한 것에 속한다면 그 본분 이행은 완전히 하나님의 뜻에 합하는 것으로, 너는 이미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 피조물의 본분을 잘 이행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리를 실행하여 이룬 성과이다. 그렇다면 우선 무엇을 깨달아야 사람이 실행해야 할 원칙과 길을 파악하는 성과를 이룰 수 있겠느냐? (우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런 다음 가감 없이, 마땅히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합니다.) 이는 사람에게 있어야 할 실행과 태도이다. 그다음으로 무엇을 깨달아야 하겠느냐?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진리 안에 들어 있는 세부 내용이 바로 원칙과 길이다. 사람이 실행해야 할 원칙과 길을 파악하려면 우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하고 그다음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이 두 가지가 주요 내용이고 나머지는 모두 이 안에 포함된 세부적인 내용이다.

첫 번째 부류인 복음 전파의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에 관해서는 일단 여기까지 이야기하도록 하자. 오늘도 일부 내용을 보충했다. 그 이유는 지난번에 교제했던 주요 내용을 제시하는 동시에 사람들을 일깨우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사람에게 이 측면 진리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한편, 네가 지금 하는 모든 일, 네가 지금 이행하는 모든 본분이 이 방향과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그 바탕 위에서 행해지고, 복음 전파에 관계되도록 하려는 것이다. 비록 너는 복음 전파의 전선에서 복음 전파 대상과 직접 대면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네가 이행하는 본분은 모두 복음 사역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모든 사람은 복음을 전하는 이 방면의 진리를 더 분명하고 명백하게 인식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오늘 보충한 내용을 통해 너희가 이 복음 전파 방면의 본분의 무게와 중요성에 대해 분명한 깨달음이 생기지 않았느냐? (그렇습니다.) 그럼 앞으로 이 방면의 진리를 어떤 태도로 대해야 가장 적절하고 합당하겠느냐? 복음을 확장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은 이 옛 시대를 끝내고 더 많은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데려와 옛 시대에서 벗어나 새 시대에 들어가도록 이끌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누구나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저도 알고 있지만 복음을 전할 기운도 없고, 협력할 마음도 없습니다.” 이것은 무슨 문제이냐? (인성이 없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것이다. 너는 자신이 피조물이고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항상 모든 사람에게 일깨우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분명하게 전하는 절실한 마음을 무시하고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면 너는 어떤 사람이겠느냐? 이는 인성이 없는 모습이다. 너는 하나님을 크게 높이고 싶어 하며 하나님이 너의 하나님, 너의 주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도 헤아림도 없다. 이를 두고 인성이 없다고 하며, 이런 사람은 양심이 없다. 이 주제에 관해서는 여기까지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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