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조 자신을 높이고 증거한다 (제 5 부)
자신을 높이고 증거하는 것은 적그리스도의 가장 주된 모습이다. 이 조항에 따라 적그리스도의 본질을 규정하면 아주 적절하고 구체적이며 공허하지 않다. 그의 의도와 야심, 본질의 표출, 일관된 행동의 목적을 보면, 자신을 높이고 증거하는 것은 적그리스도가 보이는 특유한 모습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 번도 자신을 높이고 증거한 적 없는 적그리스도가 있겠느냐? (없습니다.) 왜 없겠느냐? 그는 야심과 욕망이 너무도 커서 통제할 수 없다. 어느 무리에서 살아가든 아무도 그를 높이고 숭배하지 않는다면 그는 삶에 가치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을 높이고 증거하여 목적을 달성하길 간절히 원한다. 살아 있는 한 그는 반드시 남들보다 뛰어나려 하고 그를 숭배하고 추종할 사람이 필요한데, 설사 ‘똥파리’나 ‘비렁뱅이 무리’라도 상관없다. 그는 개의치 않는다. 그를 숭배하고 추종하는 사람이 있기만 하면 그는 마음이 편안하다. 만약 유명 가수처럼 팬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는다면 그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만족하고 즐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본성이다. 어떤 사람이 추종하고 숭배하든 그가 보기에 다 좋다. 아무리 미천하고 역겨운 사람이라 하더라도, 설사 짐승 같은 놈이 그를 따르더라도 그를 높이고 지위에 대한 그의 야심과 욕망을 충족할 수만 있다면 그는 싫어하지 않는다. 그럼 그가 가는 곳마다 자신을 높이고 증거하고 과시하지 않도록 자신을 통제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게 바로 본질이다. 너희가 보기에 어떤 사람이 진실로 하나님을 따르겠느냐? 하나님은 인류 가운데서 특정한 유형의 인간을 택하고 구원하려 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최소한의 양심과 이성, 염치를 가지고 있다. 좀 더 나은 경우 진리와 긍정적인 사물, 하나님의 공평과 공의를 사랑하고 사악함을 증오한다. 정의롭지 않고 사악한 일을 보면 속으로 분개하고 설사 해결할 능력이 없다고 하더라도 마음속으로 그런 일들을 증오한다. 하나님은 최소한 이런 사람을 원한다. 이런 인성과 본질을 갖추지 않았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훌륭하고 위대하다고 아무리 떠들어대도 하나님은 그들을 원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종교계에 있는 바리새인들은 천편일률적인 공허한 이론과 겉치레하는 말로 하나님을 높이고 증거하는데, 2천 년 동안이나 그런 말을 해 왔음에도 지겨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지금 하나님이 선포한 이토록 많은 진리는 알아보지 못하고 거들떠보지도 않으며, 심지어 정죄하고 모독하는 사람도 있다. 이로써 그들은 철저히 드러났다. 하나님은 일찍이 그들을 외식하는 바리새인이자 사탄과 한패라고, 그들 같은 부류의 사람을 마귀 사탄, 개돼지 같은 짐승이라고 규정했다. 이 무리에 가서 이런 사람들 중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 안 되고 다들 분별력과 능력이 없는 것을 확인하면 적그리스도는 재빨리 기회를 틈타 자신을 과시한다. 자신이 예전에 세계적인 명문대 두 곳에 동시에 합격했지만 나중에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부탁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어느 대학에도 진학하지 않았다고 자랑하는 사람도 있는데, 어떤 이들은 이 말을 듣고 그를 특히 우러러본다. 네가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데다가 네가 좋아하는 것과 너의 세계관이 세상 사람과 똑같다면 너는 이런 사람을 숭배하게 된다. 그래서 적그리스도의 말에 현혹되고 우롱당할 수 있는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바로 이렇게 변칙적으로 자신을 높이는데, 어리석고 분별력 없는 사람은 현혹되고 만다. 결국 적그리스도는 자신의 수하에 있는 사람은 모두 평범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상당히 흡족해하지만 사실 그들은 한 무리 멍청한 자들이자 변변치 못한 자들이다. 진리에 대한 이해 능력이 없는 사람은 모두 사탄과 적그리스도에게 현혹될 수 있다. 그들은 사탄과 적그리스도가 하는 말을 들으면 유독 마음에 들고 구미에 맞다고 생각하며 듣기 좋아한다. 그들은 그 말을 정상적인 사고로 판단하지 못하고, 진리를 깨달은 사람을 찾아가 분별하지도 않는다.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만 하면 받아들이려 하기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현혹된다. 진리에 대한 이해 능력이 있고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적그리스도의 말을 듣고 나서 그가 사람을 현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를 버린다. 분별력이 없는 멍청이들은 적그리스도가 유식하고 자질이 뛰어나며 전도유망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런 식으로 일을 바라보고 일부 표면적인 현상에 현혹되며 진리 원칙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사탄을 따라간다. 이런 사람은 무지몽매함 때문에 멸망하지 않겠느냐? 바로 그렇다. 적그리스도가 자주 자신을 높이고 증거하는 여러 모습이나 다양한 행동 방식을 네가 분별할 수 있고 그가 말하는 목적과 의도가 무엇인지 판단할 수 있다면 너는 적그리스도의 본질을 쉽게 간파할 수 있다. 그래야만 재빨리 그를 버리고 저주하고 두 번 다시 만나지 않을 수 있다. 왜 이렇게 하겠느냐? 적그리스도의 말과 행동은 혐오스럽고 증오스러우며 마치 파리를 본 것처럼 역겨워 너는 서둘러 그를 쫓아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그리스도의 행동 방식과 행위를 분별할 줄 알게 되면 가장 먼저 적그리스도를 폭로하여 사람들이 적그리스도를 분별하게 한 다음, 원칙대로 그를 교회에서 출교시켜야 한다. 너희는 이렇게 할 용기가 있느냐? 하나님 선민은 이렇게 할 수 있어야만 분량이 자란 것이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하나님 집 사역을 지킬 수 있다. 하나님 선민이 진리를 깨닫고 분별력이 생긴다면 적그리스도는 교회와 하나님 집에서 설 곳이 없게 된다.
적그리스도는 어떤 상황에서든 기회만 있으면 자신을 과시하고 증거하며, 자신을 숭배하고 자신에게 탄복과 선망, 추앙의 시선을 보내기만 하면 그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이 기뻐한다. 그가 자신을 추종하고 숭배하며 앙망하는 사람에게 요구 기준이 있겠느냐? (없습니다.) 바보, 지적 장애인이든, 아니면 악인이나 불신파든, 어떤 부류의 사람이든, 심지어 제명하고 도태시켜야 할 사람까지 포함해 그를 추종하고 숭배하고 높이기만 한다면 그는 모두 받아들이고 몹시 좋아한다. 게다가 이런 사람을 자신 곁에 끌어들여 보호한다. 적그리스도는 이런 사람을 자신의 양이나 사유 재산으로 생각하며 그 누구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거나 폭로하고 처분을 내리지 못하게 한다. 이런 사람이 적그리스도에게 어떻게 아첨하고 알랑거리며 굽실거리든 어떤 역겹고 메스꺼운 말을 하든 적그리스도는 그저 즐거워하는데, 상대가 자신을 치켜세워 주기만 하면 그만이다. 적그리스도는 남이 그를 우러러보고 좋아하고 추종하게 하기 위해 말하고 행동한다. 그는 곁에서 그를 따르는 사람이 나쁜 일을 아무리 많이 저질러도 따져 묻지 않고, 그 사람의 인성이 아무리 음험하고 악독해도 싫어하지 않는다. 그저 그를 추종하고 숭배하기만 하면 다 좋아하며, 그의 권력과 지위를 지킬 수만 있고, 그를 거역하거나 맞서지만 않으면 몹시 흡족해한다. 이런 자가 바로 적그리스도다. 반면 늘 그를 폭로하며, 그가 자신을 높이고 증거하는 것을 방해하거나 멸시하는 사람, 그리고 그에게 진리를 교제하고 그가 지닌 문제점의 본질을 간파하며 그를 진정으로 분별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대하겠느냐? 그는 즉시 분노하고, 경계하고 배척하고 공격하는 방식을 취하다가 결국 온갖 방법을 동원해 그를 분별하고 그에게 반대하는 사람을 고립시킨다. 그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 자신을 높이고 증거할 때, 그는 늘 그 사람이 거슬리고 눈엣가시 같다고 느낀다. 또 그 사람이 그를 분별하고 내치려 할 뿐 아니라 그를 폭로하고 그의 좋은 일을 망치려 한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만 보면 마음이 불안해져서 늘 그 사람을 처리하려고 한다. 그는 그 사람을 처리하기만 하면 그가 또 자신을 높이고 증거할 때 아무도 그를 폭로하고 방해하지 않아 거리낌 없이 악을 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행동 원칙이다. 그를 치켜세우고 칭찬하고 높이는 사람들이 누구든, 그들이 하는 말이 사실에 부합하든 말든, 설사 거짓말이라고 해도 그는 받아들이고 마음속으로도 듣고 싶어 하며 진심으로 그들을 좋아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어떤 문제가 있든 그는 신경 쓰지 않고, 설사 그들의 문제점을 발견한다고 할지라도 숨기고 감싸주며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는다. 그들이 곁에서 그를 추종하고 치켜세워 주기만 하면 그는 즐거워한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행동 방식이다. 너희도 적그리스도처럼 이렇게 행동할 수 있느냐, 없느냐? 예를 들어, 너희가 교회의 리더 일꾼으로서 하나님 선민 가운데 지위와 신분이 있는 사람인데, 형제자매가 너를 우러러보고 치켜세우고 네게 아첨하면서 너는 설교도 잘하고 외모도 뛰어나며 그의 마음속 최고의 리더라고 자주 칭찬한다면 어떤 느낌이 들겠느냐? 너는 이런 사람이 하는 말의 속셈을 분별할 수 있겠느냐? 이런 사람을 버리고 멀리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다면 너는 몹시 위험하다. 자신이 외모도 보잘것없고 진리 실제를 교제하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면서도 누가 이렇게 자신을 치켜세우는 걸 들으면 마음이 흐뭇해서 늘 그 사람을 가까이하고 발탁하려 하니, 이는 골치 아픈 일 아니겠느냐? 이는 위험한 일이다.
리더 일꾼은 사역할 때 가끔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 덕에 진실한 체험을 말할 수 있다. 그러면 자연스레 우러러보고 숭배하고 좇으며 그림자처럼 따르는 사람이 생기는데, 이럴 때는 이런 일을 어떻게 대해야겠느냐? 사람은 모두 나름의 기호와 허영심을 가지고 있어 자신에게 동조하고 아첨하는 말을 들으면 속으로 즐기기 마련이다. 이는 정상적인 느낌으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을 치켜세우고 자신에게 아첨하는 사람을 발탁하여 중용한다면 이는 위험하다. 아첨하고 치켜세우기 좋아하는 사람은 무척 교활하고 간사한데, 정직한 사람도, 성실한 사람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일단 지위를 얻으면, 하나님 선민의 생명 진입과 교회 사역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들은 간사하고 교활한 사람에 속하는데, 그 누구보다 일을 그르치는 데 능하다. 비교적 올곧은 사람들은 보통 남을 치켜세울 줄 모르고 마음속으로는 네게 동조해도 입으로 내뱉지는 않으며 너의 결점이나 실수를 발견하면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솔직한 사람을 싫어해서 누가 자신의 결점을 지적하거나 자신을 꾸짖으면 억누르고 배척하며 나아가 상대의 결점과 단점을 물고 늘어지면서 끊임없이 판단하고 정죄하는 사람도 있다. 이는 좋은 사람을 억누르고 해치는 것 아니겠느냐? 하나님은 이런 일을 저지르고 이렇게 좋은 사람을 박해하는 것을 가장 혐오한다. 좋은 사람을 박해하는 것은 부도덕한 짓에 속한다! 좋은 사람을 많이 박해한다면 그런 자는 바로 마귀이다. 리더 일꾼은 누구든 공평하게 사랑으로 대해야 하고 원칙대로 일을 처리해야 한다. 특히 네게 아부하고 알랑거리며 늘 너를 중심에 두는 사람이 있다면 너는 그가 이방인의 아첨하는 수법을 배우지 않고 본연의 일을 할 수 있게 반드시 그를 올바르게 대하고 사랑으로 도와야 한다. 또 그가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느껴 다시는 그런 일을 저지르지 않도록 너의 입장과 관점을 밝혀야 한다. 네가 원칙을 고수하고 공평하게 사람을 대한다면 이렇게 날뛰는 소인배와 사탄에 속하는 부류들이 부끄러워하지 않겠느냐? 그러면 사탄을 부끄럽게 하고 하나님을 흡족게 하는 것이다. 아첨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리더 일꾼은 모두 아첨하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치켜세우고 비위를 맞추는 말을 할 줄만 알면 사람의 허영심과 지위욕을 충족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이런 수작을 좋아하지 않으며 마음속으로 몹시 혐오하고 역겨워한다. 거짓 리더나 이런 수작을 좋아한다. 하나님 집에서는 그를 치켜세우거나 칭찬하지 않지만 그를 치켜세우거나 칭찬해 주는 하나님 선민이 있으면 유독 흡족해하고 즐거워하며 결국 좀 위로를 받는다. 적그리스도는 이런 수작을 더더욱 좋아하는데, 이런 사람이 그에게 접근해 그를 중심에 두는 걸 가장 좋아한다. 이는 골치 아픈 일 아니냐? 적그리스도는 바로 이런 부류의 사람으로, 남이 자신을 칭찬하고 치켜세우고 숭배하고 추종하는 걸 좋아한다. 그러나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 비교적 올곧은 사람은 이런 수작을 좋아하지 않는다. 너는 네게 솔직한 말을 하는 사람을 가까이해야 한다. 그런 사람이 곁에 있으면 큰 도움이 된다. 특히 네 문제점을 발견하면 용기 있게 너를 질책하고 폭로해 주는 좋은 사람이 곁에 있으면 네가 잘못된 길로 들어서는 것을 피할 수 있다. 그는 네 지위가 어떠하든 상관하지 않고 네 일 처리가 진리 원칙에 위배될 경우, 질책해야 하면 질책하고 폭로해야 하면 폭로한다. 이런 사람이 바로 올곧은 사람이자 정의감이 있는 사람이다. 그가 어떻게 폭로하고 질책하든 너에게는 다 도움이 될 것이며, 그러한 것들은 전부 너에게는 감독이자 채찍질일 것이다. 너는 이런 사람을 가까이해야 한다. 이런 사람이 곁에서 도와주면 상대적으로 훨씬 안전하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보호이다. 진리를 깨닫고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 매일 곁에서 감독하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 사역을 잘해 내는 데 무척 큰 도움이 된다. 절대 아첨하고 알랑거리는 교활하고 간사한 사람을 너의 조력자로 삼지 마라. 그런 사람이 네 곁에 붙어 있는 것은 똥파리가 붙어 있는 것과 같은데, 얼마나 많은 세균과 바이러스를 옮기는지 모른다! 그들은 너를 교란하고 네 사역에 영향을 주기 쉬우며, 네가 시험에 빠져 잘못된 길에 들어서게 하고 재난과 화를 불러오게 한다. 그들을 반드시 멀리해야 하는데, 멀리하면 멀리할수록 좋고, 불신파인 그들의 본질을 분별해 내고 그들을 교회에서 제명할 수 있다면 더더욱 좋을 것이다. 진리를 추구하는 올곧은 사람은 네게서 문제점을 발견할 경우, 네게 지위가 있든 없든, 네가 그를 어떻게 대하든, 설사 네가 그를 교체하려 할지라도, 진실을 말한다. 절대 이리저리 감추거나 얼버무리지 않는다. 곁에 이런 사람이 많다면 얼마나 큰 도움이 되겠느냐! 그는 네 행동이 원칙에 어긋났을 때 너를 폭로할 수 있고, 네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 허심탄회하게 네 문제나 결점을 지적할 수 있다. 그는 네 체면을 봐주지도 않고, 심지어 많은 사람 앞에서 널 난처하게 만들 수도 있다. 너는 이런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겠느냐? 혼내 줄 것이냐, 다가갈 것이냐? (다가갈 것입니다.) 다가가는 것이 맞다. 너는 마음을 활짝 열고 그와 교제해야 한다. “당신의 의견이 맞습니다. 그때 제 마음속에는 허영심과 지위욕이 있었어요. 이렇게 오래 리더 자리에 있었는데, 제 체면을 전혀 봐주지 않고 그 많은 사람 앞에서 제 문제를 지적했다고 생각해서 받아들이지를 못했죠.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제 행동은 확실히 원칙과 진리에 부합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거였어요. 리더라는 지위를 갖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건가요? 그냥 본분일 뿐 아닌가요? 우리는 모두 본분을 이행하고 있고, 지위도 평등합니다. 저는 그냥 당신보다 책임을 좀 더 많이 지고 있을 뿐이고요. 앞으로 문제를 발견하면 생각한 걸 그대로 얘기해 주세요. 우리 사이에 개인적인 원한은 없습니다. 진리에 대한 이해가 다르다면 함께 교제하는 것도 좋고요. 하나님 집에서, 하나님과 진리 앞에서 우리는 장벽 없이 하나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리를 실행하고 진리를 사랑하는 태도다. 적그리스도의 길을 멀리하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겠느냐?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 올곧은 사람에게 주동적으로 다가가야 하며, 의견을 제시해 주는 사람, 네게 문제점이 발견되면 솔직하게 말하고 지적해 주는 사람, 특히 문제점이 발견됐을 때 너를 책망하고 훈계해 주는 사람을 가까이해야 한다. 이런 사람은 네게 가장 도움이 되는 사람이니 소중히 여겨야 한다. 이런 좋은 사람을 배척하고 제거하면 하나님의 보호를 잃게 될 것이고, 조금씩 화가 닥칠 것이다. 좋은 사람, 진리를 깨달은 사람을 가까이하면 평안과 기쁨이 생기고, 화를 멀리할 수 있다. 반면, 소인배, 몰염치한 사람, 아첨하는 사람을 가까이하면 위험해진다. 사기당하거나 속임수에 넘어가기 쉬울 뿐만 아니라 언제든 화가 닥칠 수도 있다. 너는 어떤 사람이 네게 가장 도움이 되는지를 알아야 한다. 네가 일을 잘못하거나 자신을 높이고 증거하고 남을 미혹할 때 일깨워 줄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이 네게 가장 큰 도움이 되는데, 이런 사람을 가까이하는 것은 옳은 길이다. 너희는 그렇게 할 수 있느냐? 누군가 네 체면이 깎이는 말을 했을 때 평생 앙심을 품고 “당신은 왜 저를 폭로하는 거죠? 제가 당신을 서운하게 한 것도 없습니다. 왜 늘 저를 못살게 굴죠?”라고 말하면서 마음속에 기억해 두고 거리감이 생긴다면, 언제나 ‘나는 리더야. 나한테는 신분도, 지위도 있다고. 그러니 당신이 나한테 이런 식으로 말해선 안 돼.’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어떤 태도겠느냐? 이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상대와 힘겨루기를 하는 것인데, 말이 좀 안 통하는 것이다. 이것은 지위욕이 작간을 부리는 것 아니겠느냐? 이는 패괴 성품이 너무나 심각하다는 뜻이다. 항상 지위욕이 있는 자는 적그리스도의 성품이 심각한 사람이다. 거기에다 악행까지 저지른다면 바로 드러나 도태될 것이다. 사람이 진리를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몹시 위험한 일이다! 늘 지위를 두고 다투려 하고, 지위의 복을 누리려 하는 것은 위험한 징조이다. 마음이 늘 지위에 속박받고 있는데 진리를 실행하고 원칙대로 일을 처리할 수 있겠느냐? 진리를 실행하지 못하고 늘 명예와 이익, 지위를 위해 일하고, 언제나 권력을 이용해 일을 한다면, 이는 영락없는 적그리스도가 정체를 드러낸 것 아니겠느냐?
자신을 높이고 증거하는 것은 적그리스도의 가장 흔한 모습으로, 일상생활에서든, 인간관계에서든, 아니면 교회 생활에서든 다 볼 수 있다. 이런 모습은 전부 패괴 성품의 표출에 속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신의 본분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분별해야 하는지 등과 관련된 진리는 우리가 교제한 내용에 다 언급되었다. 너희도 평소 이런 구체적인 모습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것을 문제라고 느끼지 못한 것이냐? 아니면 이런 구체적인 문제에 착안해 진입하지 않은 것이냐? 너희가 성품 측면에서 착수하지 않았거나 때로 이런 모습을 드러내면서도 성품 문제인지 알지 못해 신경 쓰지 않았다면 성품 변화까지 아직 갈 길이 먼 것이다. 이런 모습이 자신을 높이고 증거하는 것임을 의식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패괴 성품에 지배받은 것임을 알지 못하고 그것을 성격이나 태생적인 행동 방식, 또는 인지로 여겨 약화시킨다면, 그것을 패괴 성품이나 패괴 본질의 표출로 여기지 않는다면 너의 이 측면의 패괴 성품은 변화하기 어렵다. 사람이 알아차릴 수 있는 성품과 관련된 것은, 그것이 행동 방식이든 내적 상태든, 표면적 행위이든 아니면 언어나 말이든, 사상 관점이든 어떤 일에 대한 이해든, 성품 본질과 관련만 있다면 사람의 본성 본질의 발현이나 표출로 여겨야 한다. 그러면 인식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지 않겠느냐? 그저 하나님을 대적하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으며 지위를 탐하거나 일종의 표현으로 사람을 미혹하는 등의 큰 측면뿐 아니라 작게는 구체적인 생각, 마음가짐, 크게는 논조나 주장에 이르기까지 전부 인식할 수 있게 된다. 방금 나는 사상 관점과 일에 대한 이해를 포함해 총 여섯 가지 측면을 다루었다. 사상 관점은 의식과 생각 속에 존재하는 것이고, 이해는 이미 인식한, 구체적인 글과 말이 될 수 있는, 형체를 갖춘 것이다. 여기에 행동과 언어를 더하면 총 네 가지 측면이다. 이 밖에, 주장과 논조도 있다. 주장과 논조에 상대되는 개념은 무엇이겠느냐? (마음가짐과 생각입니다.) 생각이란 무의식적으로 마음속에서 생겨나는 비교적 모호한 것으로, 정말 옳은지 그른지 아직 정의되지 않았고, 그저 그렇게 여길 뿐 내면에서 형체를 갖추지 않은 것이다. 반면 입 밖으로 뱉어 낸 논조는 형체를 갖추고 있다. 총 세 부분과 여섯 가지 측면이 있다. 너희가 이 여섯 가지 측면을 패괴 성품의 본질을 해부해 성품 변화에 이르는 길로 삼고, 앞으로 이 여섯 가지 측면에서부터 시작해 자신의 패괴 성품과 패괴 본질을 인식한다면 진실로 자신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교제한 이 내용들은 듣고 나서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느냐? 너희는 예배할 때 이것을 기반으로 어느 정도 빛 비춤을 교제해 내거나 자신을 비춰 볼 수 있겠느냐? 이것이 가장 핵심으로, 가장 유익하다. 너희는 예배 때 교제하고 교류하며 체험과 체득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예전에 자주 언급했던 ‘묵상’은 쉽게 말해 ‘되새긴다’라고 하는데, 많이 보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많이 읽으며 많이 생각하고 많이 구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당시에 듣고 이해한 것과 듣고도 이해하지 못해 그저 도리로 삼은 것들, 그리고 중요한 부분과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모두 꺼내어 중점적으로 교제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을 ‘되새긴다’라고 한다. 이러면 진리의 세세한 부분과 각 측면의 차이, 각 진리의 정의를 점점 더 뚜렷하고 정확하게 알게 된다. 너희는 최근 몇 년간 깨닫고 실행한 여러 진리가 전에 비해 더 모호해진 것 같으냐, 아니면 더 뚜렷해진 것 같으냐? (더 뚜렷해졌습니다.) 요 몇 년간 너희가 하나님을 믿는 길과 처신하는 방향, 본분 이행의 마음가짐과 동기, 출발점에 큰 변화가 생기지 않았느냐? (하나님의 채찍질과 징계를 체험한 뒤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니 어느 정도 변화한 것 같습니다.) 변화가 생겼다는 건 옳고 당연한 일이다. 어떤 사람은 여전히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설교를 이토록 많이 들었는데도 전혀 변화하지 않았고 마음속으로 감명을 받지도 않았다. 즉, 예배하고 교제한 내용이 단 한 번도 그가 나아가는 방향을 바꾸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는 너무나 무감각하고 우둔한 것이다! 이제 구원받는 길이 점점 더 뚜렷해졌을 것이며, 체험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방식과 근본 취지를 분명하고 명확하게 알게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을 여러 해 동안 믿었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을 구원하고 사람의 패괴를 정결케 하는지 아직도 알지 못한다면 그건 네가 진리를 전혀 깨닫지 못했고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인식이 조금도 없다는 뜻이다. 이런 사람은 흐리멍덩하게 믿은 것 아니겠느냐?
2019년 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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