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조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고 그리스도의 본질을 부정한다(1) 제 3 부

2)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어서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고 그리스도의 본질을 부정한다’는 두 번째 모습,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에 대해 교제해 보겠다. 적그리스도에게는 하나님 신분을 지닌 창조주는 아예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은 단지 신화나 전설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창조주가 만물을 주재한다는 이 사실을 적그리스도가 인정할 수 있겠느냐? 그건 말할 필요도 없이 결코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인정하지 않는 데도 역시 사실적 근거가 있다. 하나님에 대한 적그리스도의 믿음과 인식, 이해는 사람의 관념과 상상 위에 세워지고, 우상에 대한 사람의 인지와 이해 위에 세워지고, 그 우상들이 사람을 미혹하는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이론 위에 세워진다. 적그리스도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이런 관념과 상상,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이론과 같은 것은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한다는 이 사실에 부합하는 것이냐, 아니면 위배되는 것이냐? 당연히 위배되는 것이다. 사람이 모시는 그 우상들, 그것들은 인류 가운데 발붙이기 위해 사람의 관념 상상과 입맛에 맞는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이론을 내세우며 사람을 미혹한다. 이를테면 “부처는 자비롭다.”, “하느님에게는 생명을 사랑하는 덕이 있다.”,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7층 불탑을 쌓는 것보다 낫다.”, “운명에 있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가지게 되고, 운명에 없으면 억지로 구해도 가질 수 없다.”와 같은 말들이 있다. 또 어떤 게 있느냐? (“머리 위 삼척에 천지신명이 지켜보고 있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머리 위 삼척이 어떤 곳이냐? 그건 공중이고 사탄이 머무는 곳이다. ‘천지신명’은 어떤 것이냐? (사탄입니다.) 그리고 불교에서 자주 하는 그 말이 무엇이냐? (“착한 일을 하면 좋은 결과가 생기고, 나쁜 일을 하면 나쁜 결과가 생긴다. 응보를 받지 않은 것이 아니라 때가 되지 않은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사람은 인간 세상에서 늘 말하는 상대적으로 조금 긍정적인 이런 속담이나 철학 이치를 진리로 간주한다. 하지만 사실상 이런 말들이 진리겠느냐? 진리와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겠느냐? (없습니다.) 예를 들어 “착한 일을 하면 좋은 결과가 생기고, 나쁜 일을 하면 나쁜 결과가 생긴다. 응보를 받지 않은 것이 아니라 때가 되지 않은 것이다.”라고 하는데, ‘착한 일을 하면 좋은 결과가 생긴다’는 말은 무슨 뜻이냐? ‘착하다’는 건 무슨 뜻이냐? 정의나 진리겠느냐, 아니면 사람이 가진 약간의 좋은 마음이겠느냐? (사람의 좋은 마음입니다.) 사람이 가진 그 약간의 좋은 마음으로 정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겠느냐? 꼭 그런 건 아니다. “다리 짓고 길 고친 사람은 두 눈이 먼다.”라는 말에서 다리를 짓고 길을 고치는 것은 착한 마음인데 어째서 두 눈이 머는 것이냐? 좋은 결과가 생겼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나쁜 일을 하면 나쁜 결과가 생긴다’, 그렇다면 사람을 죽이고 불을 지르는 것은 나쁜 일인데 나쁜 결과가 생기겠느냐? (역시 그렇지 않습니다.) 왜 그렇지 않겠느냐? “사람 죽이고 불 지른 사람은 자손이 잘된다.”라는 이 말은 ‘나쁜 일을 하면 나쁜 결과가 생긴다’는 말을 부정했다. “응보를 받지 않은 것이 아니라 때가 되지 않은 것이다.”라는 말에서 때가 되지 않았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 때가 되었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 진리를 깨닫지 못할 때, 사람은 이런 말이나 주장을 긍정적인 사물로 간주하고 진리로 여긴다. 마음이 공허한 사람, 정신적으로 기댈 곳이 없는 사람은 소위 이런 옳은 말을 정신적 지주, 일종의 정신적 위안으로 삼으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괜찮아. 살다 보면 희망이 있을 거야. 이 세상은 그래도 공평과 공의가 살아 있어. 정의가 지켜지고 있고, 정의를 구현할 수 있어. 결국 이 모든 것은 설명될 수 있을 거야.” 그렇다면 사람의 이런 주장이 과연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것에 대한 참된 인식이겠느냐? 과연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한다는 이 사실을 인정하는 참된 모습이겠느냐? (아닙니다.) 사람이 말하는 이런 격언이든, 속담이든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한다는 사실과 관계가 있겠느냐? (없습니다.) 왜 관계가 없겠느냐? (그런 말들은 진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건 이 일을 이론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그렇다면 근본적으로는 과연 무엇이겠느냐? 근본적으로는 이 도리처럼 전혀 그렇게 간단하지도 않고, 그 말 한마디로 해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이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으니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인식해야 하느냐? 전에도 교제했지만,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어떤 일을 대하든 방관자의 관점에서, 돈과 권력을 목숨처럼 여기는 유물론자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분석한다. 이런 관점과 입장에서 모든 일을 대하면 문제의 본질이 변하고 달라지지 않겠느냐? 유물론자의 관점에서 모든 일의 발전 법칙이나 발전 규칙을 바라본다면 궁극적인 결과는 무엇이겠느냐? 유물론자가 세상을 바라본다면 사람의 처세 철학과 수단, 방법, 방식을 만들어 내지 않겠느냐? 게임의 룰을 만들어 내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결과이고, 여기에 문제의 본질이 있다.

유물론자는 권력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사람이 권력을 얻으려면 첫째는 수단이 있어야 하고, 둘째는 여러 종류의 사람을 부리는 데 능해야 하고, 셋째는 독해야 하고, 넷째는 변덕을 잘 부릴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유물론자의 관점이 아니겠느냐? 여기에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하려는 뜻이 조금이라도 있겠느냐? (없습니다.) 그가 권력을 바라보는 이 몇 가지 관점은 어떻게 해서 생겨났겠느냐? 적그리스도의 본질에서 생겨나지 않았겠느냐? (그렇습니다.) 적그리스도의 어떤 본질이냐? 너희가 말해 보아라, 적그리스도에게 사악한 본질이 없다면 그가 ‘사람을 부리는 데 능하다’는 말을 생각해 낼 리가 있겠느냐? ‘수단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겠느냐? ‘사람은 변덕을 잘 부릴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느냐? 그에게 흉악한 본질이 없다면 ‘독해야 한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이는 적그리스도의 본질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그의 본질에 의해 생겨난 여러 가지 생각은 그가 단지 속으로만 생각하는 것이겠느냐, 아니면 일상생활에서 그가 처세하고 처신하는 원칙이 그런 것이겠느냐? (그의 처세 원칙이 바로 그렇습니다.) 그는 생활 속에서, 사람들 가운데서 끊임없이 정리해 낸다. 따라서 그의 수단은 계속해서 성숙해지고 노련해져서 결국 악랄해진다. 악랄하다는 건 무슨 뜻이냐? 아주 모질고, 독하고, 음험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모질고, 독하고, 음험한 그의 이런 모습이 그가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게 할 수 있겠느냐? 절대 그럴 수 없다. 그래서 적그리스도는 젊어서건 나이가 들어서건 무슨 일을 하든 자신의 철학과 법칙, 게임의 룰, 수단, 경험을 따른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한다는 사실에 부합하느냐, 아니면 위배되느냐? (위배됩니다.) 자신이 정리해 낸 그 모든 법칙들을 집행할 때 적그리스도가 받드는 원칙이나 취지는 무엇이냐? 그의 동력은 무엇이냐? 그는 말한다.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떤 대가도 기꺼이 치를 줄 알아야 해요. 모질고, 독하고, 음험해야 한다고요. ‘도량이 좁으면 군자가 아니요, 배짱이 없으면 장부가 아니다.’라는 말처럼 말이죠.” 이 말이 무슨 뜻이냐? “하나님께서 주재하신다느니, 하늘의 안배를 기다린다느니 하는 건 없어요! 벼슬아치든 제왕이든 다들 흉악하고 잔인한 수단으로 그 자리에 오른 거잖아요? 다들 싸우고 죽여서 얻어 낸 거 아니에요?”라는 뜻이다. 적그리스도의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그가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겠느냐? (인정하지 않습니다.) 바깥세상에서 적그리스도는 이 생존 법칙에 대해 이런 관점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교회에서도 같은 수단으로 일을 처리하지 않겠느냐? 같은 인생 법칙을 신봉하지 않겠느냐? 이것은 조금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교회에 왔다고 해서 관대해지거나 개과천선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절대 그럴 리 없다. 그는 말한다. “사람은 출세하려면 수단을 쓸 줄 알아야 해요. 다 같이 있는 자리, 특히 이름 있는 사람이 있는 자리라면, 어떻게든 자신을 나타내서 우두머리나 윗사람, 상부의 눈에 띄어야 발탁되고 중용될 기회가 생기고 두각을 나타낼 기회가 생기죠. 그 밖에도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반드시 겉과 속이 다르게 처신할 줄 알아야 하고 기만할 줄 알아야 해요. 남들 앞에서는 좋은 일만 하고, 못된 짓, 나쁜 짓, 엉큼한 짓, 사람들이 싫어하는 일은 남들 뒤에서만 해야 하죠. 절대 그 누구에게도 빈틈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요. 반드시 자신의 가장 좋은 면만 보여 주면서 잘 위장해야 하고, 꼬리가 아무리 길어도 잘 감추면서 인심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해요. 인심을 잃으면 그땐 늦어요. 기회가 없다고요.” 적그리스도는 교회에서도 이런 수단과 생존 법칙에 따라 살아간다.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것을 체험하고 인식한 형제자매들이 하는 모든 간증을 적그리스도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는 말한다. “머리가 있고, 생각이 있고, 교육을 받은 사람이 정리하고 짜깁기하면 그런 체험 간증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어요. 사실 그건 다 사람이 상상해 낸 거고 다 가짜예요. 다 불가능한 일이라고요. 짜깁기라면 저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열 편이고 스무 편이고 다 가능하지만 귀찮아서 안 할 뿐이라고요. 당신들의 그만한 수법도 제가 눈치 못 채겠어요? 다 자기를 과시하려는 거잖아요?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 이름을 증거하고,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시는 것을 증거하고, 하나님을 위해 증거한다고 듣기 좋게 말하는 거지, 사실은 그야말로 자신을 증거하고 두각을 나타내려는 거잖아요.” 그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행한 이 모든 증거를 사실로 인정하지 않는다. 외부의 온갖 환경이나 국면, 각국의 상황에 대해 하나님이 대체 어떻게 하는 것인지 적그리스도는 간파하지 못한다. 외부 환경을 지키거나 바꾸거나 마련하는 등 하나님이 하는 이 모든 일의 의미를 그는 간파하지 못한다. 그는 생각한다.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신다는 건 형식적인 말이야. 사실, 어느 나라에 가든 그 나라 정권의 말을 따라야 하는 것 아닌가? 그 나라 정권과 법률의 제약을 받아야 하지 않나? 그러면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신다는 말은 빈말이 되는 거잖아? 아무리 하나님이 주재하신다고 한들 그 나라의 정권과 법률을 뛰어넘으실 수 있겠어?’ 따라서 외부 환경이나 국면이 교회에 불리하고 교회 사역에 불리하면 적그리스도는 뒤에서 은근히 좋아하고 비웃으면서 마귀의 몰골을 드러낸다. 교회 사역이 모두 순조롭고 하나님의 축복과 인도로 모든 것이 정상 궤도에 오를 때, 외부 환경의 방해가 없고 형제자매의 내적 상태가 갈수록 좋아질 때 적그리스도의 마음은 꿈틀댄다. 그는 죽도록 질투가 나고 마음이 편치 않으며 증오한다. 왜 증오하겠느냐? 그는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주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고, 하나님이 경영 사역을 하는 곳이자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는 곳이며, 하나님의 뜻이 막힘없이 이루어지는 곳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에게서 실현되고 검증되는 곳이다. 교회가 잘되면 하나님 권병의 진실성이 증명되고,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한다는 사실이 존재하고 진실하다는 것이 증명된다. 이 사실이 존재하고 증명되면 적그리스도에게는 뺨을 맞는 것과 같은 일이다. 뺨을 맞은 후 그가 즐겁고 평온하고 위안이 되겠느냐, 아니면 불복하고 분개하겠느냐? (불복하고 분개합니다.) 적그리스도는 속으로 뭐라고 생각하겠느냐? 그는 하나님을 증오하고 하나님을 부인한다. 겉보기에 교회의 상황, 형제자매들의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으면, 이들이 박해받고, 억압받고, 배척당해서 사회에서 아무런 지위도 없으면 적그리스도는 속으로 기뻐하고 만족해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 사역과 교회 생활이 모두 나날이 발전하고 새로워지면 적그리스도는 속으로 언짢아한다. 왜 언짢아하겠느냐? 그 일이 자신의 관념에 너무나 맞지 않고, 자신이 생각지도 못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주재와 하나님 말씀이 모두 이루어지고 현실이 되어 자신의 관점이 뒤집히면 그는 괴로워한다. 적그리스도가 나타내는 사상 관점과 불만의 정서로 볼 때, 그는 큰 붉은 용과 한통속이 아니겠느냐? 큰 붉은 용과 본성 본질이 같지 않겠느냐? 완전히 같다.

온 세상, 만물, 모든 피조물이 따르는 법칙과 규칙을 적그리스도는 이렇게 바라본다. ‘대자연은 오래전에 형성되었고, 사계절도 오래전에 형성되었어. 추위가 길어지면 더워지기 마련이고, 더위가 길어지면 추워지기 마련이야. 나뭇잎이 떨어져야 할 때는 바람 한 번 불면 떨어지지. 이건 아주 정상적인 일 아닌가? 이것이 어째서 하나님의 주재라는 거지? 어째서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이라는 거지?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은 어떻지? 사람들은 지금 많은 동물을 죽이고도 아무렇지 않고, 인류는 여전히 잘 살고 있잖아? 다들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신다고 하던데, 왜 내 눈에는 하나님이 어떻게 주재하시는지 보이지가 않지? 다들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신다고 하던데, 그러면 악인은 왜 늘 잘 풀리고 좋은 사람은 왜 늘 득세하지 못할까?’ 그는 결국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이 세상에 구세주라는 건 없어. 인류가 이 세상을 지배하는 거고, 세계 여러 나라의 위인이나 지도자들이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고, 그들이 국면을 바꾸고 있어. 만약 그런 위인이나 능력자들이 없으면 이 세상은 끝이야.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신다고 하는데, 나한테는 보이지가 않아. 하나님이 어떻게 주재하시지? 나는 왜 느껴지지 않지? 나는 왜 인식할 수 없지?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것에는 어째서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 일들이 많지?’ 그는 인정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다.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일에 대해,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과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할 때 나타내는 성품, 하나님의 행사 원칙, 하나님의 본질 등에 대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도 살아생전에 겨우 한두 가지밖에 인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것으로도 사람은 충분히 창조주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고 창조주가 하는 모든 말씀에 순종하고, 창조주가 바로 하나님임을 인정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것을 한두 가지 인식하더라도 완전히 도달할 수는 없는데, 이는 하나님이 한 많은 사역이 모두 하나님 신분과 지위에서 한 것이고, 피조된 인류의 사상, 인지와는 영원히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 체험하는 일 중에서 한두 가지 인식할 수 있다 해도 그것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어야 이를 수 있고, 이해력과 진리에 대한 이해 능력이 있는 사람이어야 이를 수 있다. 반면 자질이 부족하고 이해력이 없고 진리를 전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한두 가지에도 이르지 못한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생각이 사람의 생각보다 높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 이 말로 볼 때 사람은 영원히 창조주의 생각에 닿을 수 없다. 네게 한두 가지 인식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인 경우에도 말세의 이 단계 사역을 받아들인 사람이어야 하고, 하나님 말씀을 많이 듣고 많은 진리를 깨닫고 체험한 후에야 이를 수 있다. 그러려면 필생의 에너지를 바쳐야 한다. 하나님 신분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적그리스도 부류의 사람인 경우, 그들의 본질로 말하자면, 그들은 진리를 좋아하지 않고, 긍정적인 사물을 좋아하지 않으며, 나아가 하나님의 신분 본질과 관계된 그 어떤 일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한다는 이 사실을 영원히 인정하지 못한다. 이 사실에 대한 인정은 진리에 대한 깨달음과 추구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하지만 적그리스도 부류는 진리를 부정하고 싫어하며 하나님을 증오하고 하나님 신분 본질은 더욱 증오한다. 따라서 그들 입장에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한다는 이 사실은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느냐? 그 얼간이들은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한다는 이 사실을 영원히 볼 수도, 인식할 수도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들은 이 일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한다는 이 사실에는 많은 일이 포함되고, 많은 진리와 관계가 있고,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신분 본질과도 관계된다. 하나님은 자신이 주재하는 만물 사이에서 어떻게 만물을 지배하겠느냐? 방식에서, 시간에서, 또 이 일에 대한 하나님의 고려에서 어떻게 계획하고 배치하는 것이 하나님의 생각이겠느냐? 이 몇 가지로 보아 이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이 안에는 상당히 복잡한 관계가 있다. 영적인 이해력이 전혀 없고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적그리스도 부류의 얼간이들은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을 영원히 인식할 수 없다. 영원히 인식할 수 없다면 인정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인식하지 못해서 인정하지 않는 거니까 인식한다면 인정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추리일 뿐이다. 추리는 그저 논리에 부합할 뿐이지 사실에 부합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사실의 진상은 무엇이냐? 그는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영원히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잠시 제쳐 두고 천사장, 사탄, 마귀, 큰 붉은 용에 대해 얘기해 보자. 그것들이 하나님 선민을 박해하고 교회를 파괴하고 하나님 사역을 교란하자 하나님은 그것들에게 재앙을 내려 그것들을 안절부절못하고 허둥대며 어쩔 줄 모르게 하였다. 대응할 수가 없게 되자 그것들이 최후에는 용서를 빌며 말했다. “다시는 하느님과 싸우지 않겠습니다.” 이 말에서 몇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느냐? 큰 붉은 용도 하느님이 있다고 인정했고, 하나님이 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그 본성은 바뀌지 않았다. 하나님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도 하나님에게 대항하며 맞서려 했다. 싸움에서 이길 수 없자 용서를 빌며 다시는 하느님과 싸우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정말 굴복하고 용서를 빌었겠느냐? 아니다. 그것들은 숨을 돌리고 나면 또 싸운다. 이것이 바로 본성이고, 본성은 바뀌지 않는다. 적그리스도가 바로 이런 본성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일 중에서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는 것에 대해 적그리스도는 어떻게 바라보느냐? 이것은 매우 미시적인 일과 관계가 있다.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것에 대해, 만물은 너무 크고 거시적이어서 적그리스도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눈이 멀어 꿰뚫어 보지도 못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적그리스도의 운명을 주재하는 것에 대해 적그리스도가 순종하겠느냐? 이해하겠느냐? 인식하겠느냐? 인정할 수 있겠느냐? 그건 더욱 불가능하다. 적그리스도는 현실 생활에서 자신이 가진 좋은 것은 모두 스스로 쟁취한 것이라고 여긴다. 예를 들어 대학에 합격한 것을 두고 그는 자신이 공부를 잘해서라고, 자신은 날 때부터 명문 대학에 들어갈 재목이었다고 얘기한다. 삶이 잘 풀리고 돈을 벌게 되면 그는 자신이 태생적으로 부자가 될 재목이었다고, 점쟁이들도 자기에게 인생이 순탄할 것이고 관운도 있고 재운도 있다고 얘기했다고 말한다. 그러다가 일이 잘 풀리지 않고 뜻대로 되지 않아서 괴롭고 힘들면 그는 원망을 품는다. ‘난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지? 내 운명은 왜 이 모양이지? 운도 나쁘고 말이야!’ 그는 사람의 눈으로 이해하고 바라본다. 모든 일이 술술 풀리면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서 가는 곳마다 우쭐대며 기고만장해서 건방을 떨고 극성을 부린다. 일이 뜻대로 잘 풀리지 않으면 하늘을 원망하고 주변을 탓하면서 사태를 되돌리고 벗어날 궁리를 한다. 입으로는 하나님이 정한 일과 하나님이 한 일은 다 좋다고 하지만 정작 뒤에서는 사태를 되돌리거나 벗어나거나 바꾸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며 모든 방법을 생각해 낸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저는 제 운명이 이렇게 안 좋고, 제 운이 이렇게 형편없다고 안 믿어요. 이 세상이 이렇게 불공평하다고 믿지 않고, 저처럼 능력 있는 사람에게 빛 볼 날이 없다는 것도, 저처럼 귀한 사람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 없다는 것도 믿지 않는다고요. 사실 운명이란 빈 껍데기이고 한낱 주장일 뿐이에요. 스스로 쟁취하고 노력해야 하죠. ‘고생을 해 봐야 뛰어난 사람이 된다.’라는 말도 있잖아요. 이 말은 최고의 신조예요. 언제라도 이 말을 잊지 말고 이 말로 스스로를 격려해야 해요.” 그는 입만 열면 하나님이 하는 일은 다 좋다느니,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재한다느니,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한다느니 하고 떠들지만 결국에는 “고생을 해 봐야 뛰어난 사람이 된다.”라는 말을 한다. 겉으로 하는 말은 모두 영적인 말이지만, 뒤에서 시행하고 실행하고 따르는 원칙은 모두 사탄의 처세 철학과 논리적 사고이다. 여기에 일말의 순종이라도 있느냐? (없습니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이런 식으로 바라보고, 이해하고, 대한다. 이런 모습과 사례에서 볼 때,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믿겠느냐, 아니면 의심하고 정죄하겠느냐? (의심하고 정죄합니다.) 입으로는 뭐라고 떠들든, 그의 실제적인 모습을 볼 때,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한다는 이 사실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그 사실을 전혀 믿지 않는다. “스스로 쟁취하지 않으면서 수동적으로 하나님의 주재만 기다릴 수 있는 일이 있습니까? 밥 짓는 건 자기 손으로 해야 하잖아요. 그저 입만 벌리고 하늘에서 떡이 떨어지기만 기다릴 수 있나요? 아무리 하나님이 주재하신다고 해도 사람이 노력하고 움직여야 하지 않겠어요?” 심지어 이런 어이없는 소리를 하는 적그리스도도 있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한다는 이 사실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물론, 그것을 부정하고, 그릇되게 해석하기까지 한다. 그릇되게 해석하는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자신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원하는 모든 이익을 쟁취하는 것에 대한 근거와 핑계를 찾으려는 것이다. 적그리스도의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볼 때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바라보는 그의 진짜 관점은 과연 무엇이겠느냐? 불신과 부인, 정죄, 이것이 바로 그의 진짜 관점이다.

오늘 교제에서는 주로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 적그리스도의 모습 두 가지를 해부해 보았다. 교제를 듣고 나서 어떤 인식을 좀 얻지 않았느냐? 어떤 사람들이 이런 문제를 안고 있느냐? 적그리스도의 성품은 있지만 적그리스도의 본질은 아니어서 고칠 수 있는 건 어떤 사람들이냐? 같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적그리스도의 본질을 지니고 있어서 고칠 수 없는, 영원히 하나님의 원수이자 구원받을 수 없는 대상, 멸해져야 할 대상은 어떤 사람들이냐? 너희에게도 그런 모습이 있지 않으냐? 너희는 자신이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으냐? 진리를 받아들이고, 진리로 그런 생각들을 바꾸고 대체할 수 있을 것 같으냐? (그럴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변할 수 없겠느냐? 어떤 부류는 사치스럽게 생활하면서 대궐 같은 집에 살고 인테리어도 궁궐처럼 하고 고급차도 몇 대씩 가지고 있는 이방인을 보면 마음이 들썩이고 감탄을 금치 못한다. ‘돈이 좋긴 좋구나. 벼슬이 좋긴 좋아. 능력 있는 사람이 최고라고! 저 사람은 어쩜 저렇게 능력이 좋을까? 어쩜 저렇게 운이 좋을까? 어떻게 저 돈을 벌었을까?’ 사회적으로 지위가 있는 사람만 보면 특별히 비위를 맞추고 환심을 사고 아첨해 댄다. 상대에게 무슨 일이든 해 주려 하면서 어떻게든 굽실대지 못해 안달이다. 그는 사회의 사악한 흐름을 무척 좋아하고, 한술 더 떠서 언제나 그 안에 휩쓸리고 싶어 한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사악한 흐름에 휩쓸리지 못하는 것을 두고 괴로워하는가 하면 자기가 이 세상에서 내쳐졌다고 생각한다. 외롭고, 무기력하고, 기댈 곳도 없고, 위안받지 못한다고 느끼며, 늘 이것 때문에 슬퍼한다. 또 어떤 부류는 돈 있고 힘 있는 사람이 사회에서 일이 잘 풀리는 것을 보고 무척 부러워서 늘 그 일을 입에 올리며 칭송한다. “저 사람은 사람을 죽여도 돈 있고 백 있으니까 형식적으로 감옥에서 며칠만 있다가 나왔어요. 저런 게 능력이죠!” 그는 사회에서 보는 이런 사람들을 무척 존경하고 우러러본다. 또 어떤 부류는 사회에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에 무척 관심을 보이고 주의를 기울인다. 심지어 정치와 관계된 일에 무척 참여하고 싶어 하고 거기에 몸담고 싶어 한다. 앞서 말한 이런 자들이 속으로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는 적그리스도와 똑같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고, 하나님의 신분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부류는 적그리스도와 한패이다. 그들은 교회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 집에 속하지 않으므로 언젠가는 정리되어야 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 믿는 사람들과 어울릴 수 없고, 그들이 가는 길은 하나님의 요구와는 전혀 맞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너무나 위험하다. 설령 아직은 어떤 악을 행하지 않았더라도,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부인하거나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았더라도, 공개적으로 교회에서 사람들을 미혹하거나 지위를 다투지 않았더라도 이런 자들은 적그리스도의 본질을 지닌 자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 신분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한다는 사실은 더더욱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자들은 사악한 세력과 한패이고, 사탄과 한패이다. 그들은 사악함을 숭상하고, 마귀 사탄이 내세우는 그 어떤 그릇된 주장과 황당한 이론, 그리고 세상에서 일어나고 유행하고 퍼지는 그 어떤 사악한 흐름도 모조리 숭상한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 집과 교회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 대상이 아니다. 이런 자들이 바로 진정한 하나님의 원수요 적그리스도이다.

2020년 11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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