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조 두각을 드러내고 자신의 이익과 야심을 충족하기 위해 본분을 이행할 뿐, 하나님 집의 이익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심지어는 하나님 집의 이익을 팔아넘기며, 하나님 집의 이익을 대가로 개인의 명예를 얻는다(8) 제 2 부
책망과 훈계를 직면했을 때, 형제자매의 질책과 폭로를 마주했을 때 적그리스도는 또 어떤 말들을 하겠느냐? 어떤 적그리스도는 잘못을 저지르거나 사람을 미혹하는 마귀적인 말을 한다. 형제자매들이 그것을 보고 질책하고 책망하며 그의 교활함과 간사함을 폭로하면, 그는 겉으로는 반항하지 않지만 마음속으로는 반발한다. 마치 “당신이 뭘 알아? 당신이 나만큼 지식이 많아? 당신이 나만큼 하나님을 오래 믿었어? 당신이 하나님을 믿은 지 몇 년이나 됐다고 그러지? 나는 당신처럼 천박하게 굴지 않아!”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리더 일꾼이 책망할 때 그는 교활한 태도를 보이면서 표면적으로 응대하며 듣기 좋은 말을 하지만, 뒤에서는 불만과 불복의 마음을 품으며 보복할 기회를 노린다. 만약 평범한 형제자매가 책망한다면, 적그리스도는 그렇게 얌전히 있지 않고, 노발대발할 것이며 반박하고 보복할 것이다. 그는 반박하고 보복할 때 늘 이런 말을 한다. “나를 책망하기에 당신은 아직 멀었어! 만약 내가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면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았을 거야!” 이 말은 문제가 있어 보이지 않느냐? 이런 말은 보통 이방인, 불량 습성이 심각한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그런데 왜 교회에서 이런 말이 들리는 것이겠느냐?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특수한 무리이며, 이 특수한 무리는 특수한 기질을 지니고 있다. 그들의 기질은 어떤 점이 특수하겠느냐? 이 부류는 교회에서 늘 자격을 따지고 서열을 정한다. 누구를 보든 자신보다 못하게,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가르치고 싶어 하며, 괴롭히고 우롱하고 싶어 한다. 그는 설령 하나님을 믿을지라도 그와 협력할 자격을 지닌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누가 그를 형제자매로 여겨 마음을 터놓고 속내를 이야기하며, 그의 패괴 성품을 폭로하고, 그가 표출한 진리에 어긋나는 언행을 책망할 때, 그의 이 교만한 말들이 표출되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 집을 사회로, 자신의 근거지로 여기며, 교회의 형제자매들을 모두 졸개로 여긴다. 또 형제자매들은 사회에서의 일을 아는 게 적고 인식이 얕으며 사회에서 하층민이라고,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우롱당하고 유린당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는 형제자매들은 다 괴롭히기 쉽고 우롱하기 쉬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자기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누가 그를 책망하거나 폭로할 때, 그는 상대가 자기를 괴롭히고 폄하하고 배척한다고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미리 경계한다. ‘나를 혼내 주고 괴롭히려고? 꿈도 꾸지 마! 당신은 아직 멀었어!’라는 것이다. 이는 ‘영웅의 기개’를 지닌 사람이 하는 말 아니겠느냐?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말은 진리가 아니다. 그가 아무리 기개와 기골을 갖추고 있어도 하나님은 인정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런 성품을 혐오하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을 혐오한다. 하나님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에게 정죄당하고 버림받으며, 그런 말을 진리로 여겨 지키는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에게 구원받지 못한다. 그럼 다시 살펴보자. 이 말에는 어떤 문제가 있느냐? 진리 앞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며,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할 때는 나이와 귀천을 따지지 않는다. 본분 앞에서 모두가 평등하다. 각자 하는 업무가 다를 뿐, 자격 유무를 나누지는 않는다. 진리 앞에서 모든 사람은 겸허한 마음과 순종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이는 사람이 마땅히 갖춰야 할 이성이자 태도이다. 그렇다면 “나를 책망하기에 당신은 아직 멀었어!”라는 말을 하는 사람의 마음은 사회적 풍조와 흐름, 불량 습성으로 점철되어 있지 않겠느냐? 그는 하나님 집을 사회로 여기고, 하나님 집의 형제자매들을 사회 하층의 취약 계층으로 여긴다. 또 자기 자신은 강호의 거물로 생각하면서 누구도 자기를 건드리거나 손대서는 안 된다고, 만약 누가 자기를 폭로하고 책망한다면 좋은 결과가 없을 거라고 여긴다. 그는 하나님 집을 사회와 똑같이 생각한다. 당당한 사람, 기가 센 사람이 자리를 잡고, 모질고 사납고 악한 사람은 아무도 감히 건드리지 못한다고,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전부 능력이 없는 못난이라고, 수완이 좋은 사람은 아무도 감히 건드리지 못하고, 잘못을 저질러도 아무도 폭로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그런 사람이야말로 경골한이라고 말이다. 적그리스도는 이 세상 어떤 사람들 사이에 있든, 반드시 권력과 세력을 지니고 아주 모질고 악해야 남들이 괴롭히거나 함부로 우롱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것이 수완이고 재주라고 여기며, 그 수완을 통해 지위와 명예를 얻고, 마지막에 좋은 종착지를 얻고자 한다. 이는 어떤 성품이겠느냐? 흉악하고 사악한 것이다. 적그리스도 부류는 아무리 설교를 들어도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 그는 하나님 집은 진리가 권세를 잡고 있는 곳임을 보지 못하고,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어떤 변화들이 생기는지 보지 못한다. 설령 보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변화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그것이 전부 위장하고 자제한 거라고 생각하며, 자기는 그것을 위해 자제하거나 분을 참지 못한다. 이런 논리를 갖고 있기에, “나를 혼내 주고 괴롭히려고? 꿈꾸지 마!”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적그리스도의 사악함 아니겠느냐? 그의 이런 생각과 관점은 사악하다. 그가 이런 언행을 할 수 있는 것은 그의 흉악한 성품이 표출된 것이다. 교회에 이런 사람이 있지 않으냐? 형제자매들이 그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그를 폭로하고, 그의 문제점과 결점, 패괴 표출을 이야기하면 그는 상대가 자신을 괴롭히고 모욕하고 얕본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나서 “나를 책망하기에 당신은 아직 멀었어!”라고 말한다. 그는 누가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든 마음속으로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면 진리를 얻을 수 있다고? 그럴 리가!’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 일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책망과 훈계는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고, 약점을 잡아 사람을 혼내 주고 괴롭히는 거라고, 사람이 너무 온순해서 잘못을 좀 저질렀다고 괴롭힘 당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는 책망과 훈계가 사랑이고 남을 돕는 것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또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여야만 진실로 회개하고 변화할 수 있다는 점도 인정하지 않으며, 하나님 집은 진리가 권세를 잡는 곳이라는 사실은 더더욱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적그리스도는 속으로 늘 이렇게 말한다. ‘나를 책망하는 사람하고는 끝장을 볼 거야. 나를 괴롭히겠다고? 어림도 없어!’ 어떤 부류가 이런 말을 하겠느냐?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증오하는 사람만이 이런 말을 한다. 이렇게 흉악한 성품을 지니고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적그리스도의 본성 본질을 지닌 사람이며, 사탄에게 속하는 부류이다.
책망과 훈계를 마주할 때, 적그리스도가 하는 또 다른 말은 “만약 내가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을 거야!”라는 것이다. 이 말이 무슨 의미겠느냐? 이는 적그리스도 부류가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다. 그들이 이런 말을 했으니, 그것을 해부해 보도록 하자. 그들이 이런 말을 한 데는 반드시 그 함의가 있을 것이다. 이 말을 언뜻 들으면 그 사람이 하나님을 믿은 후로 무척 큰 변화를 얻은 것 같고, 감사의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즉, “하나님은 저를 변화시키고 정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변화시키지 않으셨다면, 저라는 사람은 안하무인이었을 겁니다.”라는 것이다. 언뜻 듣기에는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이 어느 정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해부해 보면 문제가 무척 크다. “하나님을 믿지 않았을 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어!”라고 말하는 사람은 어떤 성품을 지닌 것이겠느냐? (교만하고 흉악한 성품입니다.) 이는 무뢰한, 흉악한 사람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면 큰 악인이었을 것이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도 안중에 없다는 것이고, 모두를 발아래로 본다는 것이다. 아무리 높은 사람, 좋은 사람도 그의 눈에는 별것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는 누구에게도 복종하지 않고, 누구도 눈에 차지 않아 하며, 누구도 돌봐 주지 않는다. 그에게 어떤 사람을 돌봐 주라고 한다면 그의 존엄을 손상시킬 것이다. 그에게 돌봄 받을 자격이 있는 존재라면 딱 한 분, 하늘의 하나님뿐이다. 이제 하나님을 믿게 된 그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태도와 표출이 어느 정도 수그러들었고, 하나님 집에 와서 억지로 몸을 낮추며 사람들 사이에서 함께 일을 한다. 정상인처럼 다른 사람들과 사귀고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과 왕래하고 일을 처리하다 보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을 마주하기 마련이다. 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그의 성품을 다시금 폭발시켜 이 말이 나오게 한다. 원래 그는 세상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을 때 아무에게도 복종하지 않았고, 그와 왕래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럼 하나님을 믿은 후, 하나님 집의 형제자매들 중 그가 복종할 만한 사람이 있겠느냐? (없습니다.) 정상 인성과 정상 이성을 지닌 사람이라면 어떤 사람들 사이에 있든 그렇게 처신하겠느냐?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라는 말을 한다. 세 사람이 있으면 그 가운데 반드시 너보다 뛰어나고 좋은 자, 네 스승이 될 자, 너를 도와줄 자가 있다는 것이다. 이방인들도 이런 말을 한다. 그런데 그 무뢰한이 그 말의 정확성을 인정하겠느냐? 그가 사람들 사이에서 남들과 평등하게 지내겠느냐? 이성을 갖춘 사람이 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의 사람들 중 이런 자는 어떤 사람이겠느냐? (까다로운 사람입니다.) 그렇다. 까다로운 사람이고 악질이다. 누구도 그를 어쩌지 못하고, 누구도 감히 그를 상대하거나 자극하거나 건드리지 못한다. 이런 자가 바로 악질이다! 네가 그를 자극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맞이할 것이다. 그것은 악귀를 자극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통 사회에서는 아무도 감히 그런 사람을 자극하지 못한다. 그의 성품과 일 처리 원칙을 보면 도처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시비를 건다. 아무도 그를 자극하거나 건드리지 못하고, 괴롭히지도 못하며, 오직 그만이 다른 사람을 괴롭힐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목적이 달성된 것이다. 그럼 그가 하나님 집에 와서 변할 수 있겠느냐? 변했겠느냐? (변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면에서 그가 변하지 않았고, 변할 수도 없음을 알 수 있느냐? (“만약 내가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을 거야!”라는 그의 말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평소에는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어떤 배경에서 이런 말을 하겠느냐? 누가 그의 결점을 지적하고, 말로 그의 존엄을 손상시키고 그의 상처를 건드렸을 때, 그는 자연스럽게 이 말을 내뱉는다. “만약 내가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을 거야! 당신이 감히 나한테 덤벼?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이는 어떤 성품이냐? 그의 이 말 앞에는 전제가 있다. 바로 “하나님을 믿기 전까지 나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어!”라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은 후에도 여전히 아무에게도 복종하지 않고 누구 말도 듣지 않는 것 아니겠느냐? 처음 그대로 마귀 사탄인 것 아니겠느냐? 그는 자신이 하나님을 믿은 후 변한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변했다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느냐? 일말의 양심이나 이성도 없으면서 감히 공개적으로 떠들어 대고, 사람들에게 “나는 양아치인데 누구를 두려워하겠어!”라고 대놓고 알리는 것이다. 악당, 악질, 양아치가 뭐 뽐낼 게 있단 말이냐? 뭐 자랑할 게 있단 말이냐? 적그리스도는 이렇게 자랑한다. 지난날 악질이던 과거를 영광스러운 역사로 여겨 하나님 집에 와서 자랑한다. 하나님 집은 어떤 곳이냐? 진리가 권세를 잡고 있는 곳이고,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성결한 곳이다. 그러니 어찌 네 그 마귀적인 말을 용납할 수 있겠느냐? 염치가 없는 적그리스도는 그것이 마귀적인 말임을 모른 채 좋은 말, 진리로 여겨 자랑하는데, 그야말로 수치도 모르는 몰염치한 작자들이고, 혐오스러운 자들이다! 이런 부류가 마귀적인 말을 할 때, 너희에게 그것을 반박할 적절한 말이 있느냐? (저는 그런 사람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는 교회에서 누구에게도 복종하지 않았지요. 그가 그런 말을 하며 저를 질책할 때, 저는 분별하지 못한 채 받아들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말했구나. 네 그 대응은 틀렸고 증거도 될 수 없다. 너는 그를 지적하여 부끄럽게 해야 한다. 그의 마귀적인 말에 수그러들어서도 안 되고 순종해서도 안 되며, 그를 폭로해야 한다. 하나님의 이기는 자가 되어 하나님을 위해 증거하려면 마귀 사탄을 부끄럽게 해야 한다. 사탄을 부끄럽게 하는 말, 진리에 부합하는 말을 한다면, 그는 받아들이지는 않더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며, 온순하고 고분고분해질 것이다. 이런 부류를 위협하면 되겠느냐? 정죄하면 되겠느냐? 그와 상의하고 그를 달래면 되겠느냐? (안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겠느냐? (만약 누가 교회에서 그런 말을 한다면, 저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행패를 부리려는 겁니까? 당신이 정상적으로 형제자매들의 진리 교제를 듣고 진리를 받아들인다면 상관없지만, 여기에서 행패를 부릴 거라면 나가십시오. 하나님 집은 당신이 행패를 부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그 말은 진리에 부합하지 않으니 여기에서 웃음거리가 되지 마십시오!”) 무척 대단한 말이다. 하지만 그 부류는 모두 악질이고 악당들이다. 그들이 이런 말을 무서워하겠느냐? (무서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너희에게 이야기를 하나 해 주겠다. 예전에 내가 만난 사람이 한 명 있었는데, 그는 하나님을 믿기 전에 요리사였다. 한번은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세상에서 요리사로 있을 때, 거물급 유명인이며 정계 인사들이 술을 마시러 와도 그들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줄 요리를 할 때면 한 손을 허리에 올리고 짝다리를 짚은 채 한 손으로만 요리를 했죠.” 그는 손짓을 하며 말했는데, 딱 봐도 아무에게도 승복하지 않는 태도였다. 그 뜻인즉슨, ‘이방인 중 누구도 내 상대가 될 수 없어. 나는 아무에게도 승복하지 않아. 나는 능력이 있다고. 나 같은 사람은 세상에서 올바른 기개를 지니고 있지. 보통은 정계 인사들도 거들떠보지 않아!’라는 것이다. 그는 손짓을 하며 말했는데, 무척 득의양양했고 손짓하는 동작은 매우 여유로워 보였다. 그 동작, 그 자세는 딱 봐도 무척 능숙한 것이 자주 그런 모습을 보이는 듯했다. 내 눈에 그는 뽐내려는 의도로 연기하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의 예전 ‘찬란했던 역사’를 뽐내며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려는 것이었다. 그가 그렇게 행동하는 걸 보고 나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럼 너라는 사람의 성품은 좋지 않은 것이다.” 미소를 띠고 이 한마디만 하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고개를 푹 숙였다. 동작도 즉시 움츠러들었으며,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그는 다시는 그 ‘찬란한 역사’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내가 그에게 무슨 말을 했느냐? (“너라는 사람의 성품은 좋지 않은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무슨 뜻이냐? (그의 본성 본질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그는 부끄러워했고요.) 그렇다. 그를 화내게 했느냐? 그와 논쟁을 벌였느냐? 그의 존엄을 손상시켰느냐? (그러지 않았습니다.) 혈기로 그를 대하며 “썩 물러나십시오! 뭐 하러 하나님을 믿습니까?”, “나한테 당신의 잘나가던 시절을 이야기하다니, 아직 멀었군요!”라고 말했느냐? 이런 방식을 썼느냐? (아닙니다.) 그런 뜻은 없었다. 그저 “너라는 사람의 성품은 좋지 않은 것이다.”라고 말했을 뿐인데 그는 부끄러움을 느끼며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머리가 돌아가는 사람이라면 이 말을 듣고 무슨 뜻인지 바로 이해하고, 앞으로는 한결 조심할 것이다. 이 방식이 어떠하냐? (좋습니다.) 그에게 눈을 부릅뜨고 논쟁을 벌이는 것이 적절하겠느냐? (적절하지 않습니다.) 누가 “만약 내가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을 거야!”라고 말한다면 너는 그에게 “하나님을 믿기 전까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면, 당신은 성품이 좋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하나님을 믿는데도 아무도 거들떠보기 싫어한다면, 당신이라는 사람의 성품은 더더욱 좋지 않은 것이고, 본질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해라. 여기까지만 말하고 그가 어떤 반응,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살펴보아라. 이것이 바로 정곡을 찌른다는 것이다. 악인이 이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괴로워하겠느냐? 그는 씁쓸해하며 생각할 것이다. ‘나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변화했다고 생각했어. 또 이런 말로 자격을 내세우고 하나님을 믿기 전의 내 찬란한 역사를 뽐내려고 했지. 그런데 이 일의 실체를 폭로하는 현명한 사람이 있을 줄이야. 이건 성품이 좋지 않은 거였어.’ 성품이 좋지 않다는 것은 무슨 의미이냐? 듣기 좋게 말하자면 인성이 별로 좋지 않은 것이고, 까놓고 말하자면 좋은 작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회에서 어떤 사람들이 좋은 작자가 아니겠느냐? (불량배, 양아치, 악질, 악당들입니다.) 그렇다. 바로 그들이다. ‘좋은 작자가 아니다’, ‘성품이 좋지 않다’라고 말하는 순간 그는 알아듣고, 불량배, 양아치, 악질, 악당이라는 단어나 이런 부류를 떠올렸을 것이다. 자기가 이런 부류의 범주 안에 든다는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았겠느냐?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거기에서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느냐? (그럴 필요 없습니다.) 한마디로 그의 실체를 폭로한 것이다. “처음부터 당신은 그런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여기에서 뽐내는군요. 부정적인 사물을 긍정적인 사물로 삼아 뽐내다니, 뭘 하고 싶은 겁니까? 여기는 하나님 집입니다. 여기에서 우쭐거릴 생각일랑 버리세요. 여기는 당신이 우쭐거릴 곳이 아닙니다. 우쭐거리고 싶다면 나가세요. 하나님 집은 진리가 권세를 잡는 곳이지, 당신이 위세를 부리는 곳도, 당신의 그런 악행을 떠벌리는 곳도 아닙니다. 사악하고 부정적인 사물로 하나님 집에서 뽐내는 의도가 뭡니까? 하나님의 사역이 당신에게서 성과를 냈다는 뜻이겠죠.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그건 하나님께 감사하는 게 아니라 악행을 뽐내는 것입니다. 그 말로 누구를 속이려고요? 세 살배기 어린애를 속이는 것은 가능할지 몰라도 형제자매들에게 공갈을 칠 수는 없습니다. 당신 뜻대로 되지는 않을 거예요!” 이렇게 그를 폭로한 것이다. 첫째, 적그리스도는 그 말을 듣고 네게 그에 대한 악의가 없음을 느꼈다. 둘째, 네가 한 말이 그의 정곡을 찔렀다. 셋째, 너는 그를 지목하지 않았다. 넷째, 그 말은 사실이었다. 네 말은 조금도 과장되지 않았기에 그는 그 말을 듣고 바로 수그러들었다. 어째서 수그러들었겠느냐? 네 말이 그를 민망하게 하고, 얼굴을 들 수가 없게 했기 때문이다. 그가 다시 네 앞에 올 때는 쑥스러워서라도 더 이상 그런 말을 하지 못할 것이며, 설령 말한다고 할지라도 장소와 상대를 가릴 것이다. 어쨌든 네 앞에서는 감히 또다시 말하지 못할 테니, 이는 그를 제압한 것 아니겠느냐? 너희는 이런 사람을 만났을 때 용감히 이렇게 말할 수 있겠느냐? (네.) 이런 부류를 대할 때는 방법이 있다. 혈기로 대할 필요도, 사납게 대할 필요도 없이 미소를 띠고 그를 제압하는 것이다. 이를 가리켜 사탄을 폭로하고 부끄럽게 하는 것이며, 굳게 서는 것이라고 한다. 네가 그를 폭로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그를 간파했다는 의미이고, 그와 같은 사람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증오하고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와 같은 사람은 부정적인 인물의 대열에 속하며, 너는 그와 반대편에 있다. 그는 네 앞에 오면 너보다 못하다고 느낄 것인데, 네가 그보다 뛰어나고 올바르기 때문이다.
적그리스도는 책망과 훈계가 닥치고, 가끔 형제자매들에게 폭로될 때 부끄러움을 모르는 두 가지 말을 한다. 어떤 것이었느냐? (“나를 책망하기에 당신은 아직 멀었어!”, “만약 내가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을 거야!”입니다.) 이 두 가지는 평범한 사람들 입에서 나오지 않는 말 아니겠느냐? 이 말은 어떤 성질을 띠고 있느냐? 천박하고 불량 습성, 사탄이 날뛰는 기세와 사악한 성품을 띠고 있다. 이는 분명 정상인의 입에서 나올 만한 말이 아니며,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할 말은 더더욱 아니다. 두말할 필요 없이,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사탄의 흉악한 성품을 지닌 부류이며, 이 부류는 악인이자 적그리스도다. 그들은 진리를 좋아하지 않고, 사악한 세력과 폭력, 사탄의 흉악한 세력과 성품을 숭상한다. 이 몇 가지 본질은 그들의 두 가지 말에서 미루어 알 수 있다. 이런 말을 하는 순간, 그들의 성품과 본질이 드러난다. 이 평범하고 정상적인, 패괴된 인류 사이에서 이런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은 좋은 작자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설사 이런 말을 들었을지라도 자기는 그런 말을 하지 못할 거라고, 이런 말을 하는 자는 몰염치하고 흉악하다고, 자기는 그렇게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아무리 미워하고 원망하고 무시해도 그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는 이런 말을 하는 자를 경멸한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은 그래도 염치가 있는 것이고, 인성 안에 올바른 일면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말을 수시로 입에 달고 다니며 일 처리와 처신의 최고 원칙으로 삼는 사람은 의심할 여지 없이 사탄과 한패인 적그리스도이다. “저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을 때, 이 말의 잘잘못을 알지 못했고, 어릴 때 그런 말을 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철이 든 후에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을 적그리스도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다. 사람이 젊고 무지할 때, 막 사회와 사람들을 접했을 때는 이런 말을 좋은 말, 기개 있는 말로 여긴다. 너무 어리고 철이 없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 선악을 분별할 줄 알고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분별할 줄 알게 되면, 이런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람은 그래도 양심과 이성을 좀 갖춘 것이다. 이 양심과 이성은 어디에서 비롯되었겠느냐? 이 사람은 그래도 선악을 분별할 줄 알고, 시비란 무엇인지, 옳고 그름이란 무엇인지 알며, 언행과 일 처리, 처신에 선택과 마지노선이 있다. 이런 자는 사탄도, 악인도, 짐승도 아니다. 처신에 준칙과 원칙이 있으니 올바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면서 그들의 최고 명언과 인생 격언, 자주 하는 말 등이 모두 드러났다. 이와 동시에, 이 부류 사람의 본성 본질도 함께 수면 위로 떠올라 사람들이 점점 더 분명히 간파하게 된다. 이런 일들이 밝혀지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가끔, 혹은 자주 듣는 그런 말들을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말로 간주하고 분별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 그 성질을 규정할 수도 없다. 성질을 규정하지 못하는데 네가 이해하는 진리와 네가 아는 시비, 옳고 그름이 너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것들이 네 입장에 영향을 주겠느냐? 네 관점에 영향을 주겠느냐?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 너는 무엇이 정상적인 패괴 표출이고 무엇이 적그리스도 본질의 모습인지 분별할 수 없다. 이러한 본질을 분명히 분별하고, 정확하게 성질을 규정하고 구분하며,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 정상적인 것과 비정상적인 것 등 각 측면의 모습과 표출, 성품, 본질을 모두 정확히 분별할 수 있어야만 사람과 일을 더욱 정확히 분별할 수 있다. 그러지 않는다면, 너는 적그리스도의 모습을 평범한 패괴나 정상적인 표출로 착각할 것이며, 가끔은 평범한 패괴 표출을 적그리스도 본질이 드러난 것으로 볼 것이다. 이는 혼동하는 것 아니겠느냐? 네가 리더이고 네 담당 범위 안에 적그리스도가 있는데, 네가 그는 남기고 패괴 표출이 있는 평범한 형제자매를 출교한다면, 이는 잘못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따라서 이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분별에 관해 아는 게 무척 중요하다고 하는 것이다.
책망 훈계를 마주할 때 적그리스도가 보이는 모습은 결코 이게 다가 아니다. 그들은 절대 한두 마디 듣기 거북한 말을 하거나 불만스러운 감정을 조금 품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더 많은 일을 저지르고 더 듣기 거북한 말을 할 수 있으며, 나아가 더 악한 일, 하나님 집 사역과 정상적인 교회 생활을 심각하게 교란하는 일을 저지를 수 있다. 적그리스도가 그 몇 마디를 하는 것 외에 또 어떤 일들을 저질러 그들이 적그리스도이고, 그들의 행동이 전부 적그리스도의 행동이고, 그들의 성품 또한 적그리스도의 성품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분별할 수 있도록 하는지 지금 너희가 교제해 보아라. 이렇게 해서 적그리스도들이 더 큰 교란을 일으키기 전에 형제자매들이 분별해 내고 그들이 적그리스도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한편으로는 형제자매들이 생명 진입에서 더 큰 피해를 보는 것을 막을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이 하나님 집 사역에 방해와 교란을 초래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미리 발견하여 해결하고 피하고 만회한다면 더 좋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럼 교제해 보아라. (적그리스도는 책망 훈계를 마주할 때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사람을 공격하는 말을 합니다. 누가 건의를 하든 그의 지위나 체면을 건드리기만 하면 그는 교회에서 그 상대를 판단합니다. 심지어는 흑백을 전도해 이야기함으로써 자신의 지위와 체면을 지키기도 하지요.) 또 어떤 것이 있느냐? (저는 한 악인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는 만약 누가 그에게 불리한 일을 하면 그 상대를 죽도록 괴롭힐 거라고 위협했습니다. 당시 저희는 진리를 깨닫지 못해 분별하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그를 두려워했지요. 그는 본분을 이행할 때 자기 멋대로 행동했습니다. 저희가 그의 사역에 존재하는 문제점들을 발견해 보고하려고 하면 보고하지 못하게 막았고요. 당시 저희는 진리를 갖추지 못해서 감히 반박하지도, 제때 보고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교회 사역에 큰 손실을 초래했습니다. 그것은 저희가 적그리스도를 분별하지 못해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얼마 후, 그는 온갖 악행을 저질러 출교당했습니다.) 이 일에서 너희는 굳게 서서 증거하지 못했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지 못했으며, 하나님 집 사역에 손해를 입혔으니 책임이 있다. 지금 보면, 그 사람을 출교한 것은 옳은 일이며, 그에게 억울한 일은 아니다. 앞으로 또 이런 부류를 만나면 분별할 수 있겠느냐? (이번 하나님 교제를 통해 적그리스도를 분별하는 측면의 진리를 더욱 분명히 알게 된 것 같습니다.)
하나님 집에서는 왜 적그리스도를 출교하느냐? 남겨 두어 봉사하게 하면 안 되느냐?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면 안 되느냐? (안 됩니다.) 만에 하나 그가 진리를 추구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 (적그리스도가 진리를 추구할 리 없습니다.) 이제 깨달았구나. 적그리스도는 악인이고 사탄에 속하는 자이다. 그는 회개할 리 없기에 출교하는 것이다. 사람을 출교하는 것은 가볍게 하는 일이 아니다. 하나님 집에서는 참고 또 참으며, 그들에게 거듭 회개할 기회를 주고 여지를 남겨 준다. 좋은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하게 해서는 안 되고, 경솔한 출교 조치로 한 사람을 망쳐서는 안 된다. 그들이 오랜 세월 하나님을 믿은 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그들을 완전히 간파하기 전까지, 그들이 완전히 드러나기 전까지 하나님 집에서는 누구에게나 관용을 베푼다. 하지만 적그리스도가 회개할 수 있느냐? 회개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 집에서 사탄의 종 역할을 하며 하나님 집의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고 망가뜨린다. 그에게 은사나 재능이 조금 있다 하더라도 제대로 본분을 이행할 리 없고, 올바른 길로 나아갈 리 없다. 설사 적그리스도에게 쓸 만한 구석이 조금 있다 하더라도 그는 결코 하나님 집에서 하나님 사역을 위해 긍정적인 공헌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방해, 교란, 파괴 외에 다른 좋은 일은 안 한다. 네가 그를 남겨 두고 관찰하며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어도 그가 회개할 리 없으니 결국 그에 대해 취할 해결 방법은 출교다. 출교하기 전에 그가 바로 적그리스도이며 죽어도 회개할 수 없고, 하나님과 진리를 적대한다는 것을 간파했기 때문에 출교하는 것이다. 만약 좋은 사람이라면 출교하겠느냐? 만약 그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고 회개할 수 있다면, 그를 출교하겠느냐? 기껏해야 본분을 교체하고, 영적 생활을 하며 반성하게 하지 출교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 하나님 집에서 출교를 결정했다면, 그것은 바로 이 사람이 하나님 집에 남으면 재앙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좋은 일은 하지 않고 늘 교란하고 방해하며 나쁜 짓이란 나쁜 짓은 다 할 것이다. 그가 어느 교회에 있든 그의 교란으로 흩어진 모래알처럼 단결력이 떨어져 사역은 정체되고, 대다수 사람은 매우 의기소침해져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을 것이며, 심지어는 믿기 싫어져 더 이상 본분을 이행 못 하는 사람도 생길 것이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겠느냐? 적그리스도의 교란이 원인이다. 적그리스도를 해결하고 제명하고 출교해야만 그 교회에 희망이 생기고 교회 생활이 정상이 되며 하나님의 선민들이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진입할 수 있다. 혹자는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니 적그리스도에게도 회개의 기회를 주셔야지요.”라고 말하는데 듣기에는 참 좋은 소리다. 그런데 정말 그렇겠느냐? 너희가 유심히 살펴보아라. 출교된 적그리스도, 악인 중에 나중에 자신을 인식하고, 진리를 추구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된 자가 있더냐? 회개한 자가 있더냐? 그들은 회개하지 않고 죽어도 죄를 인정하지 않아 몇 년이 흘러 다시 만나도 여전히 그 모양이다. 게다가 그때의 일을 계속 붙들고 늘어지며 자신을 위해 변명하고 해명한다. 성품이 조금도 변화하지 않은 것이다. 네가 그를 다시 받아들여 교회 생활로 복귀시키고 그에게 본분을 이행하게 하면, 그는 여전히 교회 사역을 교란하고 방해할 것이다. 바울처럼 자신을 높이고 증거하며 지난 잘못을 되풀이할 것이다. 그는 진리 추구의 길을 가지 못하고 원래 가던 길, 적그리스도의 길, 바울의 길을 걸을 것이다. 이것이 적그리스도를 출교하는 근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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