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조 두각을 드러내고 자신의 이익과 야심을 충족하기 위해 본분을 이행할 뿐, 하나님 집의 이익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심지어는 하나님 집의 이익을 팔아넘기며, 하나님 집의 이익을 대가로 개인의 명예를 얻는다(5) 제 1 부
2. 적그리스도의 이익
3) 자신을 위해 혜택을 도모한다
오늘은 적그리스도의 여러 모습 중 제9조, 적그리스도의 이익 측면에 관해 이어서 교제하겠다. 지난 시간에는 적그리스도의 이익 중 세 번째, 혜택에 관해 교제하며 이 항목 안에서 또 몇 가지 구체적인 모습을 열거하는 한편, 적그리스도의 행동과 사상 관점 및 그들이 이런 사상 관점에 지배되어 행하는 각종 일에 관해 중점적으로 이야기하였다. 지난번에는 두 가지 측면을 교제했는데, 첫 번째는 하나님 집의 재물을 횡령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형제자매가 그를 위해 봉사하고 힘쓰도록 이용하는 것이었다. 이는 적그리스도가 자신을 위해 혜택을 도모하는 두 가지 측면의 구체적인 모습이었다. 이 교제를 들은 후 너희는 적그리스도 부류의 본성 본질에 인식이 생겼느냐? 적그리스도의 다양한 모습과 관련하여, 그것이 성품 측면이든 아니면 본성 본질 측면이든, 사실 패괴된 인류 사이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그저 대동소이하고, 인성 선악의 차이가 있을 뿐이며, 진리를 대하는 태도에서 명확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사람의 패괴 성품은 모두 같지만, 적그리스도는 진리를 증오하며, 하나님을 대적하고 판단하고 모독할 수 있고, 또 악을 행해 교회 사역을 교란할 수 있다. 이는 적그리스도가 보통의 패괴된 인류와 명확하게 구분되는 부분이다. 사람은 누구나 적그리스도 성품을 지니고 있지만, 악을 행해 교회 사역을 교란하지 않고, 하나님에게 직접적으로 대항하지 않는다면 적그리스도로 규정할 수 없다. 패괴된 인류의 사상 관점, 패괴 성품은 동일하고 비슷하지만, 만약 사람의 인성 본질이 악인이 아니라면, 이 한 가지는 적그리스도와 뚜렷하게 구분된다. 많은 사람이 이 차이점을 보지 못한 채 적그리스도 성품이 있는 사람과 적그리스도의 길을 걷는 사람을 동일 선상에서 논하며 적그리스도로 규정하는데, 이렇게 하면 좋은 사람을 해하기 쉽다! 적그리스도의 본질을 분명히 인식하지 못한다면, 이는 너희가 스스로를 인식하는 데도 큰 방해가 될 것이다. 네 패괴 성품이 적그리스도와 같다는 것을 깨달으면, 또 네가 걷는 길이 적그리스도와 같다는 것을 깨달으면 너는 너 자신이 적그리스도라고 여길 것이며, 네 행동과 사상 관점이 적그리스도와 같다는 것을 깨달으면 너 스스로를 적그리스도로 규정할 것이다. 만약 이 세 가지 측면에서 자신을 적그리스도라고 생각한다면, 너는 스스로를 적그리스도로 규정할 것이다. 이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겠느냐? 너는 어느 정도 소극적인 상태에 빠질 것이며, 자포자기할 것이다. 이런 식의 자기 인식은 어느 정도 치우친 감이 있다. 그럼 자신의 적그리스도 성품을 인식할 필요가 없겠느냐? 당연히 그렇지 않다. 적그리스도 성품을 교제하고 해부하는 것은 너희가 자신과 대조하여 진실로 스스로를 인식하게 하기 위함이다. 네가 자신에게 일반적인 패괴 성품이 있다는 것만 알 뿐 네게 적그리스도 성품이 있다는 점은 알지 못한다면 너 자신에 대한 인식은 피상적이고 단편적인 것으로, 제대로 된 인식이 아니다. 너희가 지금은 이 일에 대해 깨닫지 못할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이 ‘나는 적그리스도의 길을 걸은 적이 없어. 나는 적그리스도도 아니라고. 나한테는 적그리스도의 본질이 없는걸. 그러니 내게 적그리스도 성품이 있고, 내가 적그리스도의 길을 갈 수도, 적그리스도가 될 수도 있다는 정도까지 인식할 필요는 없어. 그렇게 자신을 인식한다면 그건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것 아니겠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너희는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는 이런 화제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관심이 있든 없든 네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이 측면의 진리와 말에 관해 조금씩 인식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체험적 인식을 교제할 때, 자신에게 적그리스도 성품이 있다는 것과 자기가 적그리스도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다. 그의 사상 관점, 성품은 적그리스도와 아주 비슷하고 찍어 낸 듯 똑같은 것이 분명한데도 그는 이러한 것들을 인식하지 못한다. 이는 많은 사람이 스스로를 인식할 때 오직 자신에게 패괴 성품이 있다는 것, 자기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며 인성이 그다지 좋지 않고 진리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의 얕은 수준까지만 인식할 뿐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보여 준다. 사실, 그의 모습과 표출이 바로 적그리스도 성품이며, 그가 걷는 길이 적그리스도의 길이다. 그러나 그 자신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어째서 그렇겠느냐? 적그리스도 성품과 관련된 이 여러 가지 모습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수많은 사람이 자신에게 적그리스도 성품이 있다는 사실, 자신은 적그리스도의 길을 걷는다는 사실을 말하기 두려워한다. 설령 인식했다고 해도 감히 말하지 못한다. 한마디라도 했다간 저주받고 정죄받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네가 말을 하든 하지 않든 무엇이 달라지겠느냐? 네게 적그리스도 성품이 있다는 사실을 바꿀 수 있겠느냐? 바꾸지 못한다. 네가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은 진리에 대한 네 이해가 너무 얕고, 자신에 대해 진정한 인식이 없다는 의미이다.
(3) 직무상 편리를 이용해 속임수로 먹고 마시고 다른 것(이점)도 사취한다
이어서 적그리스도가 자신을 위해 혜택을 도모하는 세 번째 모습, ‘직무상 편리를 이용해 속임수로 먹고 마시고 다른 것(이점)도 사취한다’는 것에 관해 교제하겠다. 물론, 직무상 편리를 이용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기치를 들고 속임수로 먹고 마시고 다른 것(이점)도 사취하는 짓이라고도 할 수 있다. 너희는 여태까지 이 모습에 대해 묵상하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없습니다.) 그럼 너희는 이 부류의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있느냐? 너희는 이 부류의 사람에게 어떤 관점을 갖고 있느냐? 혐오스럽고 역겹다는 느낌이 들지 않느냐? 이 부류의 사람을 경멸하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이런 사람은 어떤 부류에 속하느냐? 그들의 인성은 어떠하냐? 그들은 왜 이런 짓을 저지르겠느냐?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관점은 무엇이겠느냐? 이 부류의 사람은 하나님이 구원하는 대상이겠느냐? 그들은 과연 무엇을 위해 하나님을 믿겠느냐? 그들은 가정과 직업을 버렸으며, 얼마간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는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또 직무상 편리를 이용해 속임수로 먹고 마신다. 이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냐? 이런 행동은 하나님이 혐오하고 싫어하는 것임을 그들이 알겠느냐? 너희는 이런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솔직히 말해서 대다수가 생각해 보지 않았다. 어째서 생각해 보지 않았겠느냐? 혹자는 “이런 사람은 사회에 무척 많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집에 몇 명 있다고 해도 별 문제는 아닙니다. 게다가 저 자신도 그렇게 깨끗하지는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너는 네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한 번도 자신의 행동과 생각, 뜻, 그리고 다른 사람의 행동, 모습을 진리와 결부시켜 본 적이 없고, 진리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정의한 적도 없다. 그런데도 네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겠느냐? 네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이해한 진리가 네게 가치와 의미가 있겠느냐? 없다. 영적인 이해력이 없으면서 영적인 척하는 사람들은 다 거짓된 것이다. 그들은 온종일 규례적인 것들을 죽어라 지키고 글귀와 도리를 좀 늘어놓는 것 외에 나머지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다. ‘창밖의 세상사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성현의 글을 읽는 데만 열중한’ 그 옛날 서생들처럼 말이다. 그는 다른 사람이 뭘 하든 자기와는 무관하고,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은 다른 사람의 일이라고 여기며,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 사람을 분별하고 일을 꿰뚫어 보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을 배우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이러하다. 설교를 듣고, 하나님 말씀을 보고는 공책에 적고, 마음속에 담아 두고, 도리나 규례로 여겨 지키면 끝이다. 주변에서 발생하는 일이나 주변에 보이는 사람들의 각종 행위나 모습이 이러한 진리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마음속으로 생각하거나 숙고하는 법이 없고, 기도하거나 구하지도 않는다. 많은 사람의 영적 생활이 이런 상태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의 진리 진입이 무척 느리고 얕으며, 영적 생활이 매우 단조롭고, 규례만을 지킬 뿐 일 처리에 원칙이 전혀 없는 것이다. 많은 사람의 영적 생활이 실생활과 따로 놀고 공허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분명한 악인이나 적그리스도의 행위, 모습을 대한다고 할지라도 마음속에 어떤 개념도 없고, 나아가 정의를 내리지도 않으며, 어떤 생각이나 분별도 없는 것이다. 너희는 적그리스도가 개인 혜택을 도모하는 행위, 모습, 주장을 적잖이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과연 어떤 부류인지, 그들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얻을 수 있을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인지 등의 문제를 마음속으로 묵상해 본 적이 없다. 언제나 게으름을 피우며, 일을 할 때는 형식만 취할 뿐, 진리를 얻고 진리 실제를 깨닫고 거기에 진입하기를 추구하지는 않는다. 적그리스도는 직무의 편리를 이용하여 자신을 위해 혜택을 도모하며, 하나님을 믿는다는 기치를 들고 하나님 집에서 갖가지 이점을 사취한다. 물론, 이 갖가지 이점에는 먹는 것, 마시는 것, 물질적인 누림 등이 포함된다. 이 부류 사람의 본질은 전에 말한 적그리스도의 유물론 본질과 동일하다. 이는 같은 부류 사람의 인품이다. 그들은 오직 각종 좋은 물질적 대우를 누리기만 바랄 뿐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선행을 예비하는 일은 더더욱 없다. 그저 진리를 추구한다는 명목하에 표면적으로 형식만 좀 취할 뿐 내면 깊은 곳에서 추구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들이 오매불망 그리는, 잘 먹고 마시며 좋은 대우를 받는 등의 육적인 누림이다. 이런 사람이 적지 않아 아마 각 교회에 한두 명, 심지어는 더 많이 존재할 것이다. 오늘은 이 사람들의 모습과 행위, 본질을 이론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겠다. 먼저 대표적인 세부 사례를 이야기하여 모두가 듣고 식견을 키우게 하며, 이 부류 사람이 우리가 교제하는 항목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그들이 직무의 편리를 이용하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기치를 든 채 속임수로 먹고 마시며 돈, 재물을 사취하는 것이 아닌지 살펴보는 한편, 이 부류의 사람을 분별하게 하겠다. 그다음에는 너희도 너희가 접하는 사람에게 우리가 말한 모습이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고, 생각나는 것이 있다면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아라. 너희가 보기에는 예를 드는 것이 좋겠느냐, 아니면 이렇게 개괄적으로 교제하는 것이 좋겠느냐? (예를 드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드는 것은 어떤 점이 좋으냐? 먼저, 많은 사람이 이런 이야기나 실제 사례를 듣고 싶어 한다. 거기에는 인물과 스토리가 있어 많은 사람이 흥미를 느낀다. 네가 개인적인 체험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말이다. 네가 그것을 글로 쓰면 사람들은 보통 한두 번 훑어보고 끝이지만, 그것을 영화나 연극으로 만들면 보는 사람이 더 많아지며,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보게 된다. 이렇게 하면 이 측면의 진리, 혹은 관련된 사람과 일, 사물을 더 분명하게 살펴보고 이해하게 하며, 더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된다. 이 밖에, 구체적인 사례를 드는 것은 사람이 더 정확하게 각 측면의 진리와 대조하고 결합하는 데 도움이 된다.
사례1. 사역을 핑계 삼아 먹고 마시다
먼저 하나님 선민들에게 자주 보이는 모습을 사례로 들어 보자. 어떤 리더 일꾼은 새로운 사역 장소에 도착해서 여러 형제자매를 접하고 좋은 것을 발견하면 ‘이 물건 좋네. 나는 왜 없지?’라고 생각한다. 그는 나쁜 마음을 품은 것 아니겠느냐? 그의 탐욕이 튀어나온 것이다. 탐욕이 튀어나올 때 이 비열하고 몰염치한 소인배 부류는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갖가지 핑계를 대며 그 일대에서의 사역을 떠나지 않는다. 그가 떠나지 않는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언젠가 이익을 보기 위함입니다.) 그렇다, 이익을 보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 이익을 손에 넣지 않으면 밤에 제대로 잠도 이루지 못한다. 그는 다른 곳에 갔다가 그 이익을 다른 사람이 먼저 손에 넣어 자기한테 기회가 없어질까 봐 걱정한다. 그래서 핑계를 대며 그 일대에서 설교하고 사역하는 것이다. 사실 그는 마음속으로 늘 그 이점을 생각하고, 또 눈으로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그 일대에서 입지를 굳히게 되었다. 많은 형제자매가 그에게 호감을 갖고, 그가 설교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그를 숭배하고 앙망하게 되었다. 이때 그는 원하는 것이 있다는 말을 꺼냈다. 어떻게 해서든 그쪽으로 화제를 이끌려고 했는데, 말하면 말할수록 마음은 더 조급해졌다. ‘어떻게 말을 해서 그걸 얻어 내지? 내가 그걸 좋아하고 원한다는 것을 들키면 안 돼. 그가 공짜로 주게 해야 한다고. 또 내가 그것을 원해서가 아니라 그가 스스로 원해서 준 거라고, 그건 내가 받아도 당연한 거라고 여기게 해야 해.’라고 궁리한다. 곧이어 그는 형제자매에게 물었다. “요즘 생명 진입은 어떤가요?” 그러자 형제자매들이 이렇게 답했다. “당신이 온 후로 저희의 교회 생활도 좋아졌습니다. 모두 힘을 내고 있고요.” “힘이 생겼다는 건 영 안의 상태가 좋아진 겁니다. 여러분의 사업도 잘되고 있네요.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니 앞으로는 더더욱 잘될 겁니다.” 그는 말을 하면서 자기가 원하는 쪽으로 화제를 유도했다. 그러자 형제자매는 그가 원하는 것을 알아채고 그가 떠날 때 좀 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닙니다. 그러지 마세요. 그건 원칙에 맞지 않고, 하나님께서도 좋아하지 않으실 겁니다.” “괜찮습니다. 당연히 가져가셔야죠.” “당연히 가져가야 한대도 저는 가져갈 수 없습니다.” 이야기가 끝난 후, 그는 형제자매가 정말 그것을 주지 않을까 봐 돌려서 말을 했다. 그가 잘해 준 것에 대해 상대가 고마움을 느끼게 하고, 이와 동시에 다시 한번 주동적으로 그 물건에 대해 이야기를 꺼냄으로써 상대가 잊지 않고 그에게 그것을 주도록 한 것이다. 그러자 형제자매는 알아채고 말했다. “지금은 그 얘기를 하지 말죠. 당신이 가실 때 다시 얘기하자고요.” 그 말을 들은 그는 무척 흡족했다. ‘다행이다. 드디어 손에 넣게 되었군!’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다. ‘내일 바로 떠난다면 내가 그것을 바랐다는 게 너무 눈에 띌 테니까 이삼일 있다가 가자.’ 그리고 드디어 사흘째가 되었다. 그가 떠날 때가 되자 형제자매는 그에게 묵직한 가방을 하나 건넸다. 그는 단번에 자기가 원하던 물건임을 알아챘지만 못 본 척하면서 사양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한마디도 없이 물건을 갖고 떠났다. 이런 자는 어떤 사람이냐? 이런 자가 바로 사역을 빌미로 삼고 노동력을 팔아 이득을 꾀하며 형제자매들에게 재물을 강탈하는 사람이다. 이는 일종의 사기 아니겠느냐? 그들이 사역하는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이득을 얻는 것이다. 이득이 있는 곳, 자기가 원하는 물건이 있는 곳을 발견하는 순간, 그는 발걸음을 옮기지 않으며 그곳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 어떤 좋은 것이든 다 집으로 가져가려 한다. 리더 일꾼으로 있는 몇 년간, 집에 있는 많은 물건은 전부 형제자매들에게서 얻어 온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형제자매들에게서 가문의 비법이나 보물을 얻어 오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현지 특산품을 받아 오기도 한다. 이들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언뜻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뛰어다니며 사역하는 것 같지만, 사실 형제자매들에게서 얻어 낸 이익이 무척 많다.
어떤 지역의 교회에 가게 된 한 리더는 그곳 대추가 전국적으로 유명한 것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대추를 좋아해. 이곳에서 산다면 매일 대추를 먹을 수 있겠지. 하지만 아쉽게도 며칠만 머물고 떠나야 하잖아. 지금은 대추가 아직 익지 않았어. 언제쯤 먹을 수 있을까? 방법이 있어. 핑계를 대고 대추가 익을 때까지 머물면 대추를 먹을 수 있지 않겠어?’ 그 후 그는 많은 형제자매의 내적 상태가 좋지 않고, 사역도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며, 그곳에 오래 머무르면서 각 사역이 제대로 돌아가게 한 다음 떠나겠다고 핑계를 댔다. 사실 그가 마음속으로 정말 그렇게 생각했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마음속으로 ‘대추가 익어서 가져갈 수 있을 때 떠나야지.’라고 궁리하고 있었다. 이 생각이 마음속을 가득 채웠기에 그는 발걸음을 옮길 수 없었고, 그 일대에서 머물게 된 것이다. 그 기간에 그는 글귀와 도리를 읊어 대고 겉으로 보이는 일들을 좀 했지만, 사역을 그리 잘 해내지는 못했다. 기다림 끝에 마침내 대추가 익자 그는 신이 났다. ‘드디어 대추를 먹을 수 있겠군. 마침내 꿈에 그리던 날이 온 거야!’ 대추가 익자 그는 먹기 시작하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매일 먹기만 해서는 안 돼. 대추를 먹기 위해서 머무는 건 안 된다고. 형제자매들이 알아채기라도 하면 어떡해? 어떻게든 방법을 생각해서 좀 얻어 가야겠어. 만약 안 준다면 쟁취해야지. 그 일에 대해 더 많이 말해야겠다.’ 그곳 형제자매들은 그가 대추를 좋아하는 것을 보고는 떠날 때 좀 싸 주겠다고 말했다. 그는 그 말을 듣고 무척 기분이 좋았지만 입으로는 “그러면 안 되지요. 원칙에 어긋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그런 걸 바라서는 안 됩니다. 그건 여러분을 대상으로 잇속을 차리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냥 가져갈 수는 없으니 값을 지불하겠습니다.”라고 말했지만, 그것은 빈말에 불과했다. 먹을 만큼 먹고 떠날 때가 되자 그는 속으로 걱정이 됐다. ‘그들이 나한테 대추를 안 주거나 질 떨어지는 대추를 주지는 않겠지? 나는 크고 좋은 걸 먹고 싶은데 말이야.’ 떠나기 전 이틀 동안 그는 수시로 말했다. “이제 곧 대추 수확이 끝나겠네요? 내년에는 언제쯤 익을까요?” 이 말의 속뜻인즉슨, 자기한테 대추를 주는 것을 잊지 말라고 형제자매한테 상기시키는 것이다. 형제자매들은 그의 말을 듣자마자 알아챘다. ‘아무래도 저 사람이 떠날 때 꼭 대추를 들려 보내야겠어. 그것도 좋은 걸로. 안 그랬다간 누군가를 못살게 굴지도 몰라.’ 그리고 마침내 그가 떠나는 날이 되자 형제자매들은 대추 세 상자를 주었다. 그는 혼자서 들고 가지 못할 것 같아 자기 파트너한테 좀 들어 달라고 했다. 그러고도 떠나기 전까지 계속 대추를 먹었는데, 너무 먹어서 열이 올라도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며, 그곳을 떠나면 앞으로는 먹지 못할까 봐 걱정했다. 그는 떠날 때도 무척 아쉬워했다. ‘이번에는 본전치기는 했어. 내년 이맘때쯤 다시 오자. 너무 일찍 오거나 늦게 올 필요는 없겠지. 대추가 익을 때쯤 맞춰서 오자고. 그럼 갓 딴 대추도, 말린 뒤엔 말린 대추도 먹을 수 있을 테니까. 떠날 때는 좀 얻어 갈 수도 있고.’ 계획이 구체적이지 않으냐? 그는 마음속으로 오직 이런 일만을 생각하며, 잇속을 차리고 이득을 꾀하고 형제자매들에게서 이익을 얻어 낼 궁리만 했다. 뭐든 마음에 든 좋은 것을 그는 놓치지 않는다. 그게 아무리 보잘것없는 물건일지라도, 그의 마음에 든 이상 그 물건은 마지막에 반드시 그의 손에 들어오게 되어 있다. 이는 적그리스도의 행위 아니겠느냐? 이 부류 사람의 인성과 인격은 너무 저속하지 않으냐? 표면적으로 아무리 고생하며 대가를 치르고 가정과 직업을 버릴 수 있더라도, 이 부류 사람을 가리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절대 그럴 수 없다. 이들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기치를 들고 속임수로 먹고 마시는 부류이다.
어떤 사람들은 각지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사역한 후 집에 돌아올 때 현지의 서로 다른 특산품을 가지고 온다. 심지어는 형제자매들로부터 물건을 강탈하기도 하는데, 명품 옷이든 전자 제품이든, 자기 마음에 든 것이라면 빼놓지 않고 얻어 낸다. 만약 주지 않으면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 핑계를 대면서 책망 훈계하여 상대가 무엇 때문에 책망 훈계를 받는지 깨닫게 한다. 결국, 상대는 그가 원하는 물건을 주어야 풀려날 수 있다. 이들은 본분을 이행한다는 기치를 들고 각종 이득을 얻어 내며, 이러한 이득을 얻기 위해서라면 전혀 예의를 차리지 않는다. 형제자매들이 가끔 뭔가를 주었을 때, 값나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되면 그들은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넘쳐나니 저는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습니다.”라는 말로 거절하며, 속임수로 형제자매들의 호감과 우러름을 얻어 낸다. 하지만 형제자매들이 주는 것이 꿈에 그리던 것, 필요한 것, 원하던 것이라면 그 물건을 보는 순간 차지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어떤 여성들은 형제자매들에게 화장품, 좋은 옷, 좋은 신발을 받아 내고, 어떤 남성들은 형제자매들에게서 전자 제품, 오토바이, 전자 기기를 얻어 낸다. 그들은 어떤 이득이든 전부 점한다. 형제자매들에게 어떤 좋은 물건이 있든, 그들 마음에 든 것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속여서 손에 넣는 것이다. 이 밖에, 이들은 또 교묘하게 명목을 만들고 갖가지 핑계를 대서 회식을 하며 진탕 먹고 마신다. 어느 수준까지 그러겠느냐? 그는 어떤 지역에 갈 때마다 돈이 있는 집, 잘 먹을 수 있는 집에 머무르며 그곳을 떠나지 않는다. 그러고는 교묘하게 갖가지 구실을 대며 사역자 모임을 만들고 회식을 한다. 회식 때마다 개막사처럼 어떤 말을 하겠느냐? “오늘 우리의 모임은 하나님나라의 모임이고, 이 음식은 하나님나라 잔치 음식을 미리 맛보는 겁니다.”라고 말한다. 그럼 알랑거리는 자들은 얼른 “아멘.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라고 말한다. 소위 리더 일꾼이라는 자들이 각지에 가서 한껏 먹고 마시며 끼니마다 보양식을 원하고 생선이나 고기가 있어야 한다. 심지어는 매주 반찬이 겹치면 안 되고, 식사를 마친 후에는 좋은 차를 마셔야 한다. 그러면서 “차는 꼭 마셔야 합니다. 매일 사역량이 많아서 밤을 새워야 하거든요. 차를 좀 마셔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사역을 할 수가 없답니다.”라고 핑계를 댄다. 입으로는 이렇게 말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지금 나는 아주 어렵게 이 지위를 손에 넣었어. 그러니 기품을 보여야 하지 않겠어? 게다가 나는 좋은 것들을 누리기를 꿈꿔 왔다고. 그러니 이제 방법을 생각해서 누려야 하지 않겠어? ‘권력은 있을 때 써라.’라는 말도 있잖아. 열심히 먹고 마셔야 해. 언젠가 이 지위를 잃게 되면 이것들을 누릴 수 없을 테고, 이런 기회도 사라진다고. 그럼 평생 헛되게 산 것 아니겠어?’라고 생각한다. 이 부류의 사람은 사역한다는 기치를 들고 이렇게 속임수로 먹고 마시며, 얼마간 사역을 하고 글귀와 도리를 늘어놓으면서 이점을 취하고 좋은 것을 먹으려 한다.
예전에 어떤 사람이 한 지역에서 사역한 적이 있는데, 현지 형제자매들은 그를 위해 매일 닭을 한 마리씩 잡아야 했다. 그렇게 그는 하루에 한 마리씩 닭을 먹는 습관이 생겼다. 매일 말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니 어떤 느낌이 드느냐? (역겹습니다.) 형제자매들이 닭을 키우는 것은 계란을 얻기 위해서이며, 보통은 닭이 늙어야 잡는다. 그자가 온 후로 알을 낳는 닭까지 잡아야 해서 결국 닭의 수가 점점 줄어들었고, 형제자매들은 당해 낼 수가 없었다. 얼마 후, 그는 교체되어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그 습관을 고치지 못해 그의 집 자매에게 매일 닭을 잡아 달라고 했다. 만약 닭을 잡아 주지 않으면 자매와 말싸움을 벌였다. 이는 어떤 작자이냐? 그는 닭을 먹는 게 습관이 되어 매일 끼니마다 먹었으며, 교체되어서도 여전히 먹어야 했다. 아예 인이 박인 것이다. 이런 사람은 문제가 있지 않으냐? 말해 보아라, 이런 부류가 좋은 작자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어쨌든, 하나님을 믿는다는 기치를 든 채 본분 이행의 기회를 틈타 형제자매의 재물을 강탈하고, 가는 곳마다 속임수로 먹고 마시는 자들은 좋은 작자가 아니며, 그들의 본질은 적그리스도이다. 어디에 가서 사역을 하든, 어떤 사역을 하든 그들은 먼저 돈이 좀 있고 생활 여건이 좋은 접대 가정을 골라 자신을 접대하게 한다. 그들이 그런 곳을 찾아간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잘 먹고 잘 지내는 등 육적인 만족을 위해서이다. 어떤 지역은 환경이 좋지 않기 때문에 그곳에 머무르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그런 생각과 탐욕을 버리겠느냐? 그럴 리 없다. 그는 다시 그런 지역을 찾아가 접대받을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외지에서 몇 년 사역한 후 사람이 180도 달라지며, 고향으로 돌아오면 형제자매들조차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얼굴이 커지고 배가 나오며 좋은 옷을 입고 태가 나고 풍채가 좋아졌다. 그럼 그의 생명 성장은 어떻겠느냐? 생명은 조금도 성장하지 않았다. 그저 좋은 것을 먹고 입으며 살집이 붙었고, 호의호식해서 피둥피둥 살이 쪘을 뿐이다. 중국의 그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는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불안에 떨게 된다. 설사 가끔 좋은 것을 먹고 부유한 접대 가정을 만난다고 해도 살집이 붙을 수는 없다. 그럼 피둥피둥 살이 찌는 사람은 어떤 부류의 사람이겠느냐? (지위의 복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매일 삼시 세끼 뭘 먹고 마실지, 뭘 누릴지만 고민하는 사람이다. 이 부류의 사람은 한 끼라도 잘 먹지 않으면 사역을 하고 본분을 이행할 마음이 사라지고, 배 속이 든든하지 않으면 평정심을 잃는다. ‘오늘은 제대로 못 먹었어. 고기도 없었고, 식사를 마친 후에는 차를 따라 주는 사람도 없었지. 그러니 나는 당신들을 신경 쓰지 않을 거야. 당신들이 교회 사역에 관해 교제해도 입을 다문 채 복수할 거라고. 그러게 누가 나한테 맛있는 걸 주지 않으래? 그런 음식을 내놓고도 내가 당신들한테 교제해 주기를 바라는 거야? 꿈 깨시지!’ 그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지만 소리 내서 말하지는 않는다. 그저 “어제 너무 늦게 자서 오후에는 눈 좀 붙여야겠습니다.”라고 말할 뿐이다. 이는 대단한 거짓말쟁이 아니겠느냐? 그렇게 그는 오후 4~5시까지 잠을 잤고, 많은 사람이 기다렸지만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사과 냄새를 맡고는 먹지 못할까 봐 벌떡 일어났다. 그는 그렇게 사역을 하고 그렇게 본분을 이행한다. 이런 사람들은 어디를 가도, 하나님 말씀을 아무리 먹고 마시고 설교를 들어도 자기 속셈과 목적을 바꾸지 않을 것이고, 야심과 욕망을 내려놓지도 않을 것이다. 모든 물질적인 것들은 그들이 이번 생에 추구하는 목표이며, 호의호식하고 좋은 대우를 누리는 것은 그들이 이번 생에 하나님을 믿으며 추구하는 목표이다. 그들은 평생 하나님을 믿으면서 계속 그렇게 호의호식하고 좋은 집에서 머물 수 있으면, 또 형제자매들에게 지지받고 그런 것들을 사취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에서 품팔이해도 그다지 많은 돈을 벌 수 없고, 장사로 돈을 버는 것도 쉽지 않으며, 이런 것들을 누릴 수는 없다. 그래서 그는 이리저리 고민하다가 역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좋다고, 그렇게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입만 좀 놀리고 발품만 좀 팔며 리스크만 좀 감당하면 호의호식할 수 있으며 많은 사람이 시중을 들어 주고 남들보다 좋은 대우를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런 삶이 너무 좋다고, 하나님을 믿어서 큰 복을 누리게 됐다고 여긴다. 그래서 그는 수시로 형제자매들 앞에서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무도 많은 것을 풍성하게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바람을 뛰어넘었죠.” 그의 말은 맞지만 그 개인의 추구나 그의 인품, 그리고 그의 생각, 속셈, 목적과는 전혀 다르다. 그가 한 말은 전부 남을 속이는 것이며, 그가 표면적으로 열심히 뛰어다니고 헌신하는 것 또한 남을 속이는 것이다. 그의 내면의 계산과 속셈, 탐욕이야말로 진실이다. 이것이 바로 이 부류 사람의 인품이다. 무엇을 하든, 어디에 가든 이 물질적인 누림은 그들의 마음속에서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한다. 그들은 영원히 그것을 놓지 못하고 잊지도 못한다. 네가 아무리 진리를 교제해도, 아무리 하나님의 뜻을 교제해도 그들은 계속 이런 욕망과 탐욕을 죽어라 끌어안고, 이런 속셈과 목적을 가진 채 본분을 이행한다. 지위가 있든 없든 그들의 속셈은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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