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조 두각을 드러내고 자신의 이익과 야심을 충족하기 위해 본분을 이행할 뿐, 하나님 집의 이익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심지어는 하나님 집의 이익을 팔아넘기며, 하나님 집의 이익을 대가로 개인의 명예를 얻는다(4) 제 2 부

적그리스도는 교회에서 어떤 고생을 하고 어떤 대가를 치르든 그것이 자기 몫의 일이고 피조물이 마땅히 이행해야 할 본분이라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공로로 여겨 하나님이 마땅히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왕 기억하는 거 그 자리에서 자신을 축복하고, 약속을 주고, 물질적인 혜택을 주어 자신이 이득을 볼 수 있게, 특별한 혜택을 얻을 수 있게 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그는 만족할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본분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느냐? 적그리스도는 본분이 피조물로서 마땅히 이행해야 할 의무라고도,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이라고도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과 거래해 하나님의 상을 얻어 낼 수 있는 카드이자 자기 야심과 욕망을 만족시키고 하나님의 축복을 얻는 수단으로 본다. 적그리스도는 ‘본분 이행의 전제 조건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있어야 해. 그래야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 진정한 믿음을 가질 수 있어. 하나님이 사람들의 뒷걱정을 없애 줘야만 안심하고 본분을 이행할 수 있다고. 그리고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모든 편의와 혜택을 제공해야 하고, 사람은 본분을 이행하는 동안 하나님의 집에서 제공하는 모든 혜택을 얻어야 해. 이건 사람이 당연히 받아야 하는 거야.’라고 생각한다. 적그리스도의 마음속 생각이 바로 이렇다. 이런 생각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관점이고, 적그리스도의 좌우명이며, 이는 적그리스도가 본분을 대하는 태도를 대변한다. 하나님 집에서 본분 이행에 관한 진리를 아무리 교제해도 적그리스도의 마음속에 감춰진 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며, 언제까지나 자기 관점을 고수하며 본분을 대할 것이다. 이 측면의 모습을 가리키는 명사가 있다. 무엇이겠느냐? ‘물질 지상주의’이다. 즉, 무엇이든 자기 손에 넣어야 진짜고, 약속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부류의 모습의 본질은 유물론의 모습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유물론은 바로 무신론이다. 무엇이든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을 기준으로 삼는다. 자기가 볼 수 있으면 상관없지만, 볼 수 없으면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분에 대한 적그리스도의 인식과 이해는 진리 원칙에 전혀 부합하지 않으며, 이방인의 관점과 완전히 같다고, 확실히 불신파에 속한다고 확언할 수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고, 하나님이 한 모든 말씀이 진리이자 참도라고 믿지 않는다. 그들은 명리와 지위만이 실재적인 것이며, 사람의 노력과 투쟁, 스스로 치른 대가를 통해서만 자기가 추구하는 것, 누릴 수 있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이것이 “행복은 자기 손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라는 관점과 뭐가 다르냐? 다르지 않다. 적그리스도는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대가를 치르며 본분을 잘 이행하여 최종적으로 얻는 것이 진리요, 생명이라고 믿지 않는다. 하나님의 요구에 따른 본분 이행에 합격했을 때 창조주의 인정과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믿지 않는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이 사람에게 한 약속과 하나님의 축복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믿지 않으면, 그는 진실한 믿음도 가질 수 없다. 그는 그저 ‘나는 본분을 이행했으니 하나님 집의 혜택을 누려야 하고, 물질적인 축복을 누려야 해. 하나님 집에서는 내게 모든 물질적인 혜택을 제공하고 누릴 수 있게 해야 해. 이래야 현실적이지.’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사상이자 관점이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이 진실하다고 믿지 않으며, 진리를 얻으면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한다는 사실 또한 믿지 않는다. 그는 본분을 이행하면서 결코 진리를 구하지 않고, 진리를 받아들이지도 않으며, 더욱이 다음과 같은 진리를 인정하지도 않는다. ‘사람이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는 것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가장 큰 축복이자 하나님에게 기억되는 일이고, 사람이 이 과정에서 진리를 얻을 수 있고, 마지막에 하나님에게 구원받을 수 있다면, 이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준 가장 큰 약속이다.’ 네가 하나님이 준 약속을 믿고, 하나님이 준 약속을 받아들인다면 이는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믿음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적그리스도와 불신파는 이러한 말씀을 듣고 마음속으로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그는 하나님 말씀을 믿지 않으며, 그것이 사람을 속이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그 말씀들이 그림의 떡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리석고 사상이 단순한 바보들을 이용해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게 하고, 봉사를 다 한 후에는 그들을 뻥 차 버릴 것이라고 말이다. 그는 또 이렇게 생각한다. ‘진리를 얻는 게 다 뭐야? 진리가 뭔지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나? 하나님의 약속이 뭔지 만져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냐고. 누가 그걸 얻었지? 하나님의 약속은 비현실적이야. 명리를 얻고 지위의 복을 누리는 것만이 현실적이지. 스스로 명리를 손에 넣고 지위의 복을 누리는 것만이 진실하단 말이야. 나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내려 주신 약속과 사람에게 공급하신 진리에 대해 오랫동안 들어 왔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고, 어떤 이득도 보지 못했어. 또 그건 내가 존귀하게 지위를 갖고 살게 해 주지도 않았지. 진리를 얻어 변화했고, 하나님의 축복을 얻었다고 증거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 사람들은 여전히 너무 평범해. 모두 일반인들이라고.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천국에 들어간다는 거야?’ 그는 손안에 꽉 움켜쥔 것, 자기가 얻은 것만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불신파의 관점 아니겠느냐?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그래서 적그리스도들은 교회에 들어온 후 의심의 눈빛으로 모든 것을 대하며, 마음속으로 늘 어디에서 이득을 좀 볼 수 있을지, 어떤 기회를 통해 잇속을 차리고 하나님을 믿으면서 더 큰 실익을 얻을 수 있을지 궁리한다. 그들이 마음속으로 항상 계산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일들이다. 그들은 명리와 지위를 얻어야만 모든 이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위를 추구하기를 선택하고, 일념으로 명리와 지위를 꾀하는 것이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진리를 묵상하거나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법이 없다.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실지라도 그것은 마음에 위안을 얻고 공허함을 채우기 위한 것일 뿐, 진리를 추구하기 위함이 아니다. 네가 언제라도 적그리스도 부류에게 탐욕과 욕망을 내려놓으라고, 명리와 지위에 대한 추구를 전부 버리라고, 하나님을 믿으면서 혜택을 얻겠다는 마음을 내려놓으라고 한다면 이는 불가능하다. 그에게 이러한 것을 포기하라는 것은 그의 피부를 벗기고 힘줄을 뽑아 버리는 것과 같다. 또 그에게 있어 이러한 것을 잃는 것은 마음이 없어지는 것과 같고 영혼을 잃는 것과 같다. 그는 이런 야심과 욕망 없이는 하나님을 믿는 희망이 없고, 살아가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눈에 본분 이행을 위해 헌신하고 바치고 대가를 치르면서 자신의 혜택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바보로 보인다. 적그리스도 부류가 신봉하는 처세의 원칙은 바로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이 스스로를 생각하지 않는 게 가능해? 자신의 혜택을 위해 싸우지 않는 게 가능하겠냐고.’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모든 사람을 멸시하고, 충심으로 본분을 이행하고 물질생활에서 근검절약하는 사람들을 멸시하며,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한다는 이유로 박해받아 돌아갈 집이 없어진 사람들을 멸시한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늘 이런 자들을 비웃으며 말한다. ‘당신들 꼴을 좀 봐, 하나님을 믿느라 집까지 잃고 가족들과 함께 지내지도 못하잖아. 삶도 여유롭지 못하고. 당신들은 정말 바보야! 하나님을 믿는 것은 물론이고, 뭘 하든 처세 원칙 한 가지는 지켜야 해. 바로 절대 손해를 보지 말라는 거지.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은 반드시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것이어야 해. 사냥감이 보이지 않으면 매를 풀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당신들은 너무 멍청해. 나를 봐, 하나님을 믿으면서 명리와 지위까지 추구하잖아. 하나님 집의 모든 대우를 누리면서 말이야. 나중에는 복도 받겠지. 나는 고생하지 않고도 당신들보다 큰 복을 받을걸. 나는 당신들 같지 않아. 당신들은 그렇게 대가를 치르고, 가정과 일을 버리고, 집이 있어도 돌아가지 못하고, 나중에 복을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미지수잖아.’ 이는 어떤 존재겠느냐? 그는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참되게 본분을 이행하지도 않으면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멸시한다. 또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하며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기 위해 가정과 일을 포기하고 고생하면서 대가를 치르는 사람들을 멸시한다. 이런 사람이 많지 않으냐? (많습니다.) 이런 사람은 교회마다 존재한다. 이런 자가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겠느냐?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이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아니고, 나아가 구원받을 수도 없다.

적그리스도 부류는 어떤 일이 임하든, 어떤 일을 하든 가장 먼저 자신이 진리를 얻어 구원받을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모든 육적인 혜택을 생각한다. 육과 관련된 모든 혜택은 그의 마음속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 가장 높고 지고지상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는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한 적이 없고, 하나님의 사역을 생각한 적도 없으며, 나아가 사람이 이행해야 할 본분이 무엇인지 생각한 적도 없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어떻게 본분 이행에 합격하라고 요구하든, 어떻게 합격한 피조물이 되라고 요구하든, 그는 무감각하다. 하나님이 어떤 방식을 쓰고 어떤 말씀을 하든 그를 움직일 수 없고, 그가 미리 준비해 둔 계략을 바꾸고 탐욕과 욕망을 포기하게 할 수도 없다. 이 부류는 적그리스도 가운데서도 명실상부한 유물론자이며, 불신파이다. 그럼 이 부류를 적그리스도 군단의 인간 말종으로 볼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지위를 위해 얼마간 힘을 쓰는 적그리스도도 있지만, 이 부류는 힘쓰는 것조차 원치 않습니다.) 그렇다. 이 부류는 혜택을 원한다. 그가 온종일 눈으로 지켜보고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은 혜택뿐이며, 모든 것이 혜택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어떤 이는 접대 본분을 이행하면서 집에 계란이나 쌀, 밀가루가 떨어지면 바로 교회에 말해 사 오게 하고 자기는 하나도 사지 않는다. 마치 접대하기 전에 그의 집에서는 그런 것들을 먹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 본분을 이행하기 전에는 자기가 그것들을 샀지만, 본분을 이행한 후에는 핑계가 생겨 의기양양하게 군다. 빚 청산을 요구하는 사람, 하나님 집의 채권자가 되어 마치 하나님 집에서 그에게 뭔가를 빚진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좋은 작자가 아니다.

나는 중국의 한 접대 가정에 머무른 적이 있다. 그때, 어떤 형제자매는 인성이 매우 훌륭했다. 그는 하나님을 믿은 지 2~3년밖에 되지 않았고, 알고 있는 진리도 많지 않았지만 성심성의껏 접대 본분을 이행했다. 하나님 집에서 돈을 줘도 받지 않았고, 형제자매들이 뭔가 물건을 가져다주면 돈을 냈다. 또 하나님 집의 물건을 정성껏 보관했고 심지어는 하나님 집에서 사다 준 물건들을 다 쓰지 못하면 돈으로 환산해 하나님 집에 주기도 했다. 경제적으로 좀 여유로운 몇몇 사람들은 기꺼이 접대 본분을 이행하며, 하나님 집 돈을 한 푼도 받지 않는다. 그리고 집이 유복하지 않은데도 하나님 집에서 돈을 주면 받지 않는 사람도 있다. 교회든 형제자매들이든 그의 집에 뭔가 물건을 보내면 그는 아주 작은 것 하나라도 횡령하는 일이 없다. 이는 진리를 깨닫기 때문에 그런 것이겠느냐? 그렇지 않다. 이는 인품 문제이다. 이 밖에, 더 중요한 점이 한 가지 있으니, 바로 그가 진실로 믿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거기에 좋은 인품까지 더해져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런 일을 하지 못한다. 나는 여러 접대 가정에 가 본 적이 있다. 그중 어떤 집 사람들은 집에 있는 가장 좋은 이불과 담요를 가져다가 주었는데, 내가 “이건 한 번도 쓰지 않은 새것이로구나. 쓰지 말고 다시 개 두거라.”라고 말해도 기어코 나에게 가져다주었다. 또 어떤 접대 가정은 사용할 물건들을 전부 새것으로 준비해 두었다. 내가 “새것을 사지 말거라. 돈 낭비 아니냐. 지금 있는 것을 쓰면 되지, 돈 쓸 것 없다. 나는 어디를 가든 이것저것 사야 한다고, 무엇이든 새것으로 써야 한다고 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는 없다.”라고 말했는데도, 기어코 돈을 쓰는 사람들이 있었다. 또 어떤 접대 가정은 식사 때 반찬을 몇 개나 했다. 어떤 것이 입맛에 맞을지 몰라 잔뜩 준비한 다음에 고르게 한 것이다. 반찬 가짓수가 몇 개 없으면 잘 먹지 못할까 봐 말이다. 이런 사람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접대 가정은 달랐다. 내가 도착하자 그는 대충 생활용품들을 가져다가 주었고, 식재료는 전부 형제자매들이 가져온 것들을 썼다. 또 물건을 사야 할 때가 오면 나에게 손을 내밀며 돈을 달라고 했다. 또 어떤 접대 가정의 경우, 내가 물건 몇 개를 그의 집에 보관한 후, 한동안 찾지 않자 그들은 억지로 서랍을 열었고, 몇몇 물건이 사라졌다. 똑같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고 접대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들인데, 차이가 크지 않으냐? 하나님을 믿는 사람 중 일부는 이런 일을 저지른다. 이것이 사람이 하는 일이겠느냐? 이는 강도나 비적, 악당, 불량배가 하는 일이다.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 이런 일을 하겠느냐? 진심으로 믿는 사람은 네 물건을 보관할 때, 네가 아무리 오래 떠나 있어도, 8~10년 가까이 돌아오지 않아도, 절대 그 물건을 건드리거나 보거나 들추지 않고 잘 보관한다. 하지만 어떤 접대 가정은 네가 그의 집에 물건을 두고 떠나는 순간, 바로 그것을 들춰 본다. 어떤 물건을 들춰 보겠느냐? 네 가방 속에 액세서리, 핸드폰 등 돈 나가는 물건이 없는지, 돈은 없는지 들춰 본다. 그는 이런 것들을 들춰 본다. 또 어떤 여성은 주로 무엇을 보느냐? 좋은 옷이 없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확인한 후에는 “오, 이 옷 괜찮네. 입어 봐야겠다.”라고 말한다. 이런 일이 있지 않으냐? (있습니다.) 이런 일이 있는지 어떻게 아느냐? 너희는 본 적이 있느냐? 나는 실제로 겪은 바가 있어서 이런 일이 있다고 말한다. 겨울을 앞둔 시점이었다. 나는 한 접대 가정에 옷가지들을 두었는데, 어느 날 문득 그 옷들을 입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 집을 찾아갔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느냐? 내가 집에 들어갔을 때, 그 접대 가정의 안주인은 코트를 입어 보고 있었다. 그렇게 공교롭게도 나와 마주친 것이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라고 말하자 그녀는 순간 멍해졌다. 그렇게 공교롭게 나와 마주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또 무척 민망해했다. 하지만 뻔뻔스럽게 말했다. “아, 이 코트 저한테 딱 맞지 않나요?” “그건 내 옷이다. 네가 입으면 나는 못 입겠지.” “그럼 드릴게요. 저는 필요 없어요.” “필요 없는데 왜 입어 보았느냐? 저 옷장은 잠겨 있는 것 아니었느냐?” “마침 오늘따라 할 일이 없길래 꺼내서 구경 좀 한 거예요.” “그 물건들은 네 것이 아니니 건드려서는 안 된다.” 이것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그녀가 무슨 속셈으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모르겠다. 말해 보아라. 이런 자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겠느냐? 그를 하나님을 믿는 사람, 하나님 집의 사람으로 여겨야겠느냐?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을 따르는 자가 될 자격이 없다. 그는 사탄과 동류로, 염치도 양심도 이성도 없으며 일말의 인성도 지니고 있지 않은 무뢰한이다. 하나님이 이런 자를 구원하겠느냐? 그는 최소한의 인격과 존엄조차 지니고 있지 않으며, 하나님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도 없다. 그러니 하나님은 그를 구원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이 말한 진리와 하나님이 사람에게 공급한 생명은 이런 부류를 위한 것이 아니다. 이런 부류는 하나님 집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집 밖의 불신파이고 마귀에 속하는 존재이다. 적그리스도는 진리를 싫어하고 증오하는 본성 본질을 지녔으며, 또한 그들 본연의 인성과 인품은 극도로 천박하고 비열하다. 이런 부류는 역겨우며, 사람들에게 경멸받고 혐오받는다. 방금 이야기한, 하나님 집 재물을 횡령하는 이들의 모습을 볼 때, 이들은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진실로 헌신하지 않으며 진심이 없고, 계산과 탐욕, 욕망을 지녔음을, 진리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혜택을 좇아서 왔음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래서 어떤 각도에서 보든, 이 부류의 인성은 하나님에게 불합격으로 보인다. 말해 보아라. 이 부류의 인성이 너희에게는 합격이냐? 이 부류를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너희도 이런 부류를 무시한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혹자는 하나님 집에서 어떤 물건을 샀다는 말을 들으면 나눠 받고 싶어 하고, 형제자매가 옷을 기부한 것을 보면 자기가 받을 자격이 있든 없든, 자기가 그것을 받아야 하든 그렇지 않든 다 가지려고 하며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나선다. 하지만 하나님 집에 해야 할 사역이 있다거나 좀 더럽고 힘든 일에 인력이 필요하다고 하면 순식간에 사라져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부류는 간사하고 교활하며 인격이 저열해서 사람들의 경멸과 혐오를 사고, 너무나 역겹다!

하나님 집의 재물을 횡령하는 적그리스도의 갖가지 모습을 통해 적그리스도가 언제나 자신의 혜택을 생각하며, 사람들에게 불신파, 유물론자로 보인다는 것을, 인격이 비열하고 비천해서 혐오스러우며, 하나님이 구원하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해부했다. 이 부류에 대한 정의는 진리를 싫어하는 수준까지 끌어올릴 필요가 없다. 그들의 인성과 인품을 통해 간파할 수 있으니, 진리의 차원까지 끌어올리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이 부류는 하나님 집에 있든 아니면 어떤 사람들 사이에 있든 가장 인격이 없고 비천한 사람들이다. 물론 하나님 집에서 진리로 가늠한다면, 이 부류는 더더욱 비천해 보일 것이다. 적그리스도의 이런 모습에 대해, 너희가 겪은 바는 없느냐? (한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집의 서적 인쇄를 맡았습니다. 그런데 위조 장부를 만들어 하나님 집의 제물을 수십만 위안 횡령했지요. 그 후, 조사를 거쳐 그가 처음 그 본분을 이행할 때는 돈이 별로 없었는데, 그 본분을 이행한 후 집도 사고 차도 샀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장부에서는 그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지요. 그의 가족들도 하나같이 악독해서 제물을 되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리더 일꾼에게 직접적인 책임이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나중에 상황을 조사할 때, 당시 사역을 책임지던 리더 일꾼이 그 적그리스도의 장부를 한 번도 조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건 그들이 직무를 유기하고 무책임하게 굴어서 벌어진 일이었지요. 그들에게는 분명 직접적인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럼 하나님의 기록부에 그들의 행적이 기록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들은 나중에 어떤 처분을 받았느냐? (일부는 제명되고 출교되었고, 일부는 그 제물들을 상환하고 있습니다.) 적절한 처분이다. 리더 일꾼은 이 일에서 직무를 유기했고, 관리 감독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 특히 인선에 있어 잘못된 사람을 썼고, 지켜보지도 감독하지도 않았으며, 일을 하는 사람들의 문제를 제때 발견하지도 못했다. 그리하여 심각한 결과가 초래되었고, 하나님의 제물과 하나님 집의 재산에 큰 손실을 야기했다. 이 직접적인 담당자들에게는 모두 책임이 있으니 행적이 기록되어야 마땅하다. 이것이 바로 부적절한 인선이 스스로에게 초래한 나쁜 결과이자 하나님 집에 야기한 손해로, 결국 하나님의 제물을 대가로 삼게 되었다. 말해 보아라. 적그리스도의 탐욕은 항상 존재하는 것이냐, 아니면 재물을 보고 생겨나는 것이냐? (항상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부류와 교제하고 왕래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탐욕과 욕망을 오롯이 확인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리더 일꾼이 책임감을 갖지 않고, 사람을 분별하지 않으며, 간파하지 못하고, 함부로 쓴 결과이다. 그래서 그들은 책임이 막중하고, 출교되어야 마땅하다.

전에는 적그리스도의 본성과 본질, 성품 그리고 그들이 걷는 길 등 몇 가지 큰 방향을 중점적으로 교제하였다. 오늘 교제하고 해부할 내용은 적그리스도의 인성 범주 속 모습으로, 실생활과 관계가 있다. 이는 작은 측면이지만 사람이 적그리스도 부류의 행동을 식별하게 해 주며, 또한 이는 적그리스도 부류의 명확한 특징이자 표지, 상징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어떤 적그리스도는 지위와 명리, 권세를 좋아하며, 무척 이기적이고 비열하고 흉악한 데다가 진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 그의 인성과 인격, 인품은 어떻겠느냐? 혹자는 “어떤 적그리스도는 명예와 지위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인격이 아주 고귀하고 고상하며 양심과 이성이 있습니다.”라고 말하는데, 이 말이 옳으냐? (옳지 않습니다.) 어디가 잘못되었느냐? 먼저, 적그리스도 부류의 성품과 본질이 어떠한지는 차치하고, 그의 인성과 인품을 볼 때, 그는 분명 좋은 사람도, 존엄과 양심, 고상한 인격을 지닌 사람도 아니며, 진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이런 인성을 지닌 사람이 바른길을 걸을 수 있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다. 그의 인성과 인품 자체에 바른길을 걷는 본질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부류는 진리를 좋아할 수 없으며,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적그리스도의 본분 이행 속셈과 태도를 볼 때, 적그리스도 부류의 인품과 인성은 사람들에게 혐오와 미움을 사며, 나아가 하나님에게 내쳐질 법하다.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하나님 집 재물을 횡령하려고 하고, 하나님에게 상과 재물, 이익을 요구하는 이 부류가 하나님 눈에는 어떤 사람으로 보이겠느냐? 이 부류는 절대 좋은 사람이 아니다. 그럼 하나님은 이 부류를 과연 어떻게 정의하겠느냐? 이런 사람에게 어떤 호칭을 붙이겠느냐? 성경에는 다음과 같은 은혜시대의 일화가 기록되어 있다. 유다는 늘 돈궤에서 돈을 훔쳐 쓰곤 했는데, 마지막에 하나님은 그를 이용해 한 번 힘을 쓰게 했다. 즉, 예수를 팔아넘기게 한 것이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혔고, 유다는 주와 벗을 팔아넘기는 역할을 맡아 마지막에 배가 터지고 창자가 다 흘러나와 죽었다. 그래서 하나님 집 재물을 횡령하고 하나님의 제물을 훔치는 부류는 하나님 눈에 전부 유다로 보인다. 이 말의 함의인즉슨, 하나님은 이 부류를 유다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비록 지금 유다로 정죄된 이 부류의 적그리스도들이 유다처럼 주와 벗을 팔아넘기는 짓을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본성 본질은 동일하다. 그들의 공통점은 무엇이겠느냐? 직무의 편의와 본분 이행의 기회를 이용하여 하나님 집 재물을 훔치고 횡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부류는 하나님에게 유다로 불리며, 주와 벗을 팔아넘긴 사람과 동등하게 취급받는다. 하나님 집 재물을 횡령하고 점한 이 부류의 적그리스도는 주와 벗을 팔아넘긴 유다와 같다. 그러니 이 부류의 결말이 어떠할지는 자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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