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조 두각을 드러내고 자신의 이익과 야심을 충족하기 위해 본분을 이행할 뿐, 하나님 집의 이익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심지어는 하나님 집의 이익을 팔아넘기며, 하나님 집의 이익을 대가로 개인의 명예를 얻는다(4) 제 1 부

2. 적그리스도의 이익

오늘은 지난번 예배 내용을 이어서 교제하겠다. 지난번에는 적그리스도의 각종 모습 중 아홉 번째 항목 가운데 적그리스도의 이익과 관련된 제2조를 교제하였다. 제2조에서 교제한 것은 적그리스도 자신의 명예와 지위 아니었느냐? (그렇습니다.) 그럼 먼저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대략적으로 종합해 보아라. 적그리스도 자신의 명예와 지위라는 항목에서 나는 중점적으로 몇 가지 내용을 교제하였느냐? (지난 시간에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를 교제해 주셨습니다. 첫 번째는 책망 훈계를 대하는 적그리스도의 태도였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책망 훈계를 받아들이거나 거기에 순종하는 법이 없으며, 그것을 진리로 받아들이지도 않습니다. 두 번째는 적그리스도가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의 명예와 지위를 어떻게 지키고 어떤 모습을 보이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적그리스도의 본질은 경쟁입니다. 그들은 명예와 지위를 얻기 위해 경쟁하지요.) 그럼 오늘은 이어서 교제하겠다. 지난번에 너희에게 준 과제는 무엇이었느냐? 너희에게 추후 무엇을 묵상하고 교제하라고 했느냐? 기억하고 있느냐? (적그리스도의 모습을 해부한 하나님의 교제를 통해 저희 자신에게 어떤 적그리스도 성품이 있는지, 저희가 어떤 적그리스도 본성으로 일을 처리하는지 대조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대주제였다. 소주제는 어떤 항목에 대한 것이었느냐? (적그리스도가 자신의 명예와 지위를 지키기 위해 어떤 경쟁의 본성을 지니는지 보고, 저희가 실생활 가운데서 어떻게 표출하는지, 명예와 지위를 위해 어떻게 일을 처리하는지, 어떤 언행을 보이는지, 저희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 형제자매들과 명리를 다투는 모습을 보이는지 대조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또 보충할 사람이 없느냐? (하나님께서는 저희에게 적그리스도의 모습을 교제하면서 다른 사람은 어떤지만 말하지 말고 자신에게 대조해 보라고, 적그리스도 같은 성품과 표출 중 과연 자신에게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교제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대충 그 정도였다. 또 지난 시간에는 적그리스도가 사람들 사이에서 일을 처리할 때 떠받드는 최고의 명언에 대해 교제하였다. 무엇이었느냐? 인상이 남아 있느냐? (적그리스도가 떠받드는 최고의 명언은 바로 ‘나는 경쟁할 거야! 경쟁! 경쟁!’이었습니다.) 기억하고 있구나. 왜 이것은 기억할 수 있느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적그리스도 최고의 명언인 ‘나는 경쟁할 거야! 경쟁! 경쟁!’은 평소 제 모습이며, 제가 수시로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하나님이 교제하시는 어조 또한 생동감이 있었고, 이 말의 표현 방식이 바로 제 마음속 상태였기에 인상이 강하게 남았습니다.) 적그리스도의 갖가지 모습과 본성, 본질을 교제하고 해부할 때 가끔은 생활용어를 쓰며,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이고 강한 인상을 받는 어조와 방식을 채택한다. 또한, 실생활과 가까운 사례를 든다. 이는 사람들이 적그리스도의 본질과 스스로를 인식하는 데 큰 도움이 되며, 너희가 실생활 속에서 스스로를 인식하고 하나님 말씀을 체험하는 데 이롭고, 이런 적그리스도 성품을 변화시키는 데는 더더욱 이롭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앞에서 너희는 지난 시간을 대략적으로 돌아보았다. 구체적인 내용은 이 정도가 아니라 더 많을 것이다. 교제를 들은 후에는 반드시 정리해 보아야 한다. 적어도 교제가 끝날 때마다 다시 예배드리면서 몇 번을 들은 후, 모두가 정리해야 할 것이다. 지금 너희가 지난 교제 내용을 되돌아보고 정리하는 것을 들으니 무척 생소해 보이고, 마치 1~2년은 지난 것처럼 인상이 없어 보인다. 하나의 편린이나 한두 마디 말, 일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개념과 인상이 있겠지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는 더 많은 본질적 인식이나 해부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개념도, 이렇다 할 인상도 없는 듯하다. 그러니 너희는 이 내용을 많이 반추하고 교제해라. 들은 후에 한쪽에 치워 두고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한다면 너희의 진리 진입은 무척 느릴 것이다. 반추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럼 교회 생활을 하면서 이 설교에 어떻게 호흡을 맞출 것이냐? 너희는 매주 예배 때마다 설교 내용을 교제하느냐? 혹은 최근의 설교 교제를 몇 번 다시 듣고, 많은 사람이 최근의 그 내용에 인상을 받고 깊은 인식을 갖게 한 후, 그 가운데서 진리를 깨닫도록 노력하느냐? 이렇게 하느냐? (하나님, 매주 예배 때마다 먼저 하나님의 최근 교제를 먹고 마십니다.) 교회 리더와 설교원, 그리고 교회 생활을 책임지는 결재팀 인원은 모두 이것을 책임져야 한다. 그래야 교회 사역을 제대로 할 수 있다.

3) 자신을 위해 혜택을 도모한다

(1) 하나님 집의 재물을 횡령한다

오늘은 적그리스도의 이익 중 세 번째, 혜택에 관해 교제하겠다. 혜택이란 무엇이냐? (복과 이익을 얻는 것입니다.) 간단한 해석이구나. 그것은 문자적인 의미이다. 더 보충해 보아라. 혜택이란 무엇이냐? (본분을 이행하거나 세상에서 일하면서 물질적, 비물질적 이익이나 이점, 편의를 얻는 것입니다.) 그 해석이 맞다. 혜택이란 사람이 받는 보수 이외의 좋은 대우이다. 거기에는 일용품, 음식, 또는 할인권 같은 것들이 포함되며, 사람이 본분을 이행할 때 그 본분이 가져다주는 편리한 조건이나 물질적, 비물질적 대우를 가리키기도 한다. 이것들이 전부 혜택이다. 이 단어의 뜻을 해석했는데, 너희는 이 항목에서 어떤 범위와 어떤 실사례, 모습을 교제하려는지 알고 있지 않느냐? 지금 너희의 머릿속에는 몇몇 사람들의 모습과 행동, 그리고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는 자들이 떠오르지 않느냐? 먼저 어떤 사람들이 생각났느냐? (지위를 이용하여 교회에 얹혀사는 사람들이 떠올랐습니다.) 그것이 한 부류이다. 이 부류도 본분을 이행한다. 어떤 이는 지위를 지닌 각급 리더 일꾼이나 책임자이고, 어떤 이는 평범한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이다. 그럼 그들의 공통된 특징은 무엇이겠느냐? 그들은 본분을 이행하는 동안 끊임없이 자신의 육체와 가정, 누림을 위해 일련의 사역을 하고 일을 한다. 그들이 매일 바쁘게 뛰어다니고 대가를 치르면서 오매불망 잊지 못하는 한 가지 일은 바로 그 일을 하거나 그 본분을 이행할 때 어떤 이점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그 속에서 누릴 수 있는 편리한 조건과 혜택, 대우가 무엇인지 계산하고 또 셈한다. 그리고 그것을 알게 되는 순간, 모든 대가를 불사하며, 나아가 그 이익과 편리한 조건을 얻기 위한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이 일에서 그들은 인정사정없고 물러서지도 않으며, 자신의 인격과 존엄은 더더욱 고려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형제자매들이 자신을 안 좋게 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나아가 하나님이 그 일로 인해 자신에게 어떤 평가를 내릴지 걱정하지도 않는다. 그저 마음속으로 조용히 자신이 본분 이행의 기회를 이용하여 누릴 수 있는 모든 대우를 생각하고 계산할 뿐이다. 그래서 이 부류는 표면적으로 볼 때 꼭 잘못되었다고는 할 수 없는 생각과 논점을 갖는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집은 내 집이고, 내 집은 하나님 집이야. 내 것은 하나님 것이고, 하나님 것은 내 것이지. 본분은 사람의 직책이야. 본분 덕분에 누릴 수 있는 모든 혜택은 하나님의 은총이니까 사람은 거부하지 말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여야 해. 만약 내가 그것을 갖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이 가지게 될 테니 사양하거나 억지로 겸손하게 굴 필요도, 나아가 겸양할 필요도 없어. 그저 순종하는 마음과 진실한 태도로 얻어내고, 손을 뻗어 가지면 되는 거야.’라는 것이다. 그들은 이런 혜택을 당연히 받아야 할 것, 마땅히 가져야 할 일종의 대우로 여긴다. 마치 사람이 일을 하면서 시간과 정력을 소모하면 그에 상응하는 보수와 급여를 받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러한 것들을 탐하고 가지며, 혜택을 얻었으면서도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도, 그것은 하나님이 혐오하는 일이라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나아가 형제자매들이 그들을 어떻게 보는지 신경 쓰지도 않는다. 그들은 당연하게 이 모든 것을 누리고, 또 당연하게 이 모든 것을 얻어내며, 나아가 당연하게 매일 마음속으로 이 모든 것을 계산한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가 본분을 이행할 때의 일반적인 상태이자 본분을 이행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꾀하는 적그리스도의 일반적인 상태이다. 그럼 적그리스도의 마음가짐은 어떤 것이겠느냐?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는데 뭐라도 좀 가져야지. 내가 가정을 버리고 본분을 이행하는 이상, 하나님과 하나님 집을 위해 내 노동력과 정력, 시간을 쓰는 이상, 내가 누려야 할 모든 혜택을 받아야 하는 거야.’ 그는 이 모든 것이 당연하다고, 사람이 노력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마땅히 사람에게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런 관점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는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늘 자신의 혜택을 위해 분투하며, 이러한 혜택 중 어떤 한 가지라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고 자기 몫이 적어질까 봐 두려워한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가 본분을 이행하는 상태이다. 그가 본분을 이행하는 모든 속셈, 의도, 목적의 마지막 귀결점은 무엇이겠느냐? 스스로를 위해 모든 혜택을 도모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는 사람은 심각한 바보이고, 삶에 의미가 없다는 게 적그리스도의 마음이다.

하나님이 아무리 적그리스도의 본성을 드러내도, 진리를 좋아하지 않는 적그리스도의 모습을 아무리 폭로해도, 그는 자신의 이러한 속셈과 추구를 포기하지 않은 채 계속 혜택을 얻고자 경쟁한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접대 본분을 이행하는데, 교회나 형제자매들이 그 접대 가정에 음식, 도구 등을 사다 주고 심지어 돈까지 주었다고 해 보자. 만약 적그리스도 부류가 접대 본분을 이행한다면, 그들이 스스로를 위해 얻는 이득은 성냥 한 개, 티스푼 하나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형제자매들을 접대하기 위해 집을 내놓았고, 형제자매들을 위한 본분에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집에서는 당연히 모든 물건과 돈을 제공해야지요. 저는 집을 제공하고 당신들에게 밥을 해 주며 당신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합니다. 이 외에 여러분이 먹고 마시는 것들은 마땅히 교회에서 제공해야 합니다.” 교회가 그것들을 제공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여기에서 교제하려는 것은, 접대 본분을 이행하는 적그리스도와 진정으로 이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들이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표면적으로 접대 본분을 이행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에게는 계략이 있다. 그는 “저는 접대 본분을 이행하니 뭔가 얻어야겠습니다. 교회에서 제공하는 먹을 것, 쓸 것들을 우리 가족들도 같이 먹고 마음대로 써야지요. 제 집이 하나님 집이니까 하나님 집도 제 집인 겁니다.”라고 말한다. 이것이 적그리스도의 본분 이행 태도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래서 접대 본분을 이행하게 된 후, 일부 사람들은 마음이 변하기 시작하며, 늘 접대용 물건이나 재물에 눈독을 들인다. 자세히 추궁하는 사람이 없다면, 적그리스도 부류가 혜택을 얻을 기회가 온다. 어떤 기회겠느냐? 그들은 마음속으로 계산한다. ‘한 사람이 하루에 얼마를 쓰니까 남은 돈은 교회에 주지 말고 내가 챙기자. 그건 최소한의 수고비야. 아무도 질책하지 못할걸. 이건 내가 마땅히 가져야 하는 돈이라고!’ 그는 남은 돈을 자기 주머니에 넣는다. 또 어떤 적그리스도는 갖가지 이유를 대면서 형제자매들이 기증하거나 하나님 집에서 제공한 물건을 자기가 갖는다. 어떤 지역에서는 형제자매들이 다시 갔을 때 침대 매트리스나 베개가 사라져 있고, 고기나 채소도 없어져 있다. 누가 물어보면 그는 “너무 오래되면 먹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저희가 먹었습니다.”라고 말한다. 이는 탐욕스러운 사람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하나님 집에서 제공한 물건에 형제자매들이 접대 가정에 사 놓은 물건들까지, 그의 집에 갖다 놓기만 하면 그의 소유가 된다. 그는 그것들을 자기 마음대로 쓰고 먹으며, 심지어는 아예 자기가 갖고 숨기기까지 한다. 형제자매들이 다시 그곳에 가면 이런 것들은 보이지 않는다. 교회에서 또 그의 집이 필요해지면 다시 돈을 들여 구매해야 하고, 형제자매들은 다시 그의 집으로 가져와야 한다. 그러면 적그리스도는 기뻐하며 ‘하나님을 믿는 건 정말 최고야. 뭘 하든 이것보다 빨리 돈을 모을 수는 없고, 이것보다 더 쉽게 뭔가를 얻을 수는 없을걸. 게다가 교회에서 이 물건들을 잃어버렸는데, 누구 하나 감히 고발하지 못하잖아. 고발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먼저 그 사람을 고발할 거야! 그러니 당신은 벙어리 냉가슴 앓듯 이 일을 아무한테도 말할 수 없겠지. 이 물건을 내가 갖고 먹는다고 해서 당신이 나를 어쩔 수 있겠어? 하나님은 사람을 불공평하게 대하지 않으신다고. 집을 제공해서 형제자매들을 접대하는 건 내 공로야. 하나님이 기억하실 만한 일이라고. 그런데 욕심 좀 낸다고 해서 뭐가 두렵겠어? 이건 내가 마땅히 받아야 하는 것들인데! 내가 좀 먹는다고 해서 뭐가 두렵겠어? 당신들이 먹는 걸 나라고 못 먹을까? 당신들이 하나님 집 사람이듯 나 역시 하나님 집 사람 아닌가? 나는 옆에서 덕만 보는 게 아니라 혼자 특혜를 누릴 거야!’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본분을 대하는 적그리스도의 태도이다. 그는 본분을 이행하면서 이런 것들을 얻으려고 하며, 이것들을 최고의 혜택이라고 생각하며 말한다. “이건 하나님께서 주신 최고의 은혜입니다. 이것보다 현실적인 은혜는 없고, 이 축복보다 진실하고 실리적인 것도 없지요. 얼마나 좋은가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을 믿는 것이 ‘이번 생에는 백 배를 얻고 내세에는 영생을 얻는’ 거라고 하는데, 그 말이 이루어진 겁니다. 지금 저는 그 축복을 미리 맛보았다고요. 이건 정말이지,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그래서 적그리스도는 전혀 거리낌 없이 하나님 집 물건을 차지하며 전혀 주저하지 않고 자기 것으로 삼는다. 그들은 하나님 집의 재물을 무엇으로 여기겠느냐? 이방인들의 공공재로 여기며 탐욕을 품고, 하나님 집의 물건을 자기 소유로 삼고자 하면서도 그것이 본분을 이행하면서 누려 마땅한 은혜이자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그들은 이로 인해 후회나 부끄러움을 느끼는 법이 없고, 자기 인격의 비천함이나 스스로의 사악함을 인식하지도 못한다. 심지어 탐욕을 부리면 부릴수록 욕망과 야망이 더 커지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접대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그것이 하나님이 혐오하는 일이고 하나님에게 죄를 짓는 일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채 마음속으로 계산하고 비교한다. ‘어떤 접대 가정은 뭘 받았다던데, 만약 내가 접대했다면 그건 내 것이 되었겠지. 또 어떤 접대 가정은 우리 집보다 잘살고 더 좋은 것들을 먹던데 왜 나는 그런 편의를 누리지 못하는 걸까?’ 그들은 이런 일에서 계산하고 경쟁하며, 기회가 오면 주저하지 않고, 그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적그리스도는 접대 본분을 이행하는 동안 작게는 신발 밑창부터 크게는 하나님 집에서 구매한 기계까지 전부 눈독을 들이고 차지하며, 본분 이행을 기회 삼아 갖가지 핑계와 방식으로 그것들을 자기 소유로 삼고, 하나님 집 재산을 횡령한다. 또 염치도 없이 그런 행동은 하나님 집의 재산을 지키기 위함이며, 그가 본분을 이행하면서 받아 마땅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일이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다.

접대 본분을 이행하는 동안, 적그리스도도 겉으로는 탐내거나 점유하지 않고 돈은 한 푼도 요구하지 않으면서 형제자매를 접대한다. 그런데 값어치 없는 물건을 보면 얼른 가져다가 잘 보관하지만, 하나님 집의 귀중품을 보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는다. 한 푼짜리 물건은 상부로 넘길지 몰라도 몇만 원, 몇십만 원, 몇백만 원, 심지어 더 비싼 물건은 주저하지 않고 자기 주머니에 넣어 차지한다. 하나님 집의 재물을 보관하는 동안 위험한 상황이 닥쳐 상황을 아는 사람들이 외지로 도망가거나 체포되어 그가 재물을 보관한다는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이런 상황은 사람을 시험하는 순간이다.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 진리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언제라도 자기 본분을 지키며, 재물을 횡령하려는 뜻이나 생각을 전혀 품지 않는다. 하지만 적그리스도는 다르다. 그는 머리를 쥐어짜 내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그 재물들을 자기 것으로 삼는다. 사정을 아는 사람에게 일이 생기면, 마음속으로 남몰래 기뻐하고, 심지어는 좋아 날뛰면서 바로 그 재물들을 자기가 갖는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으로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질책이나 죄책감은 더더욱 느끼지 않는다. 그 돈을 자기 집의 생활 용도로 함부로 사용하는 사람도 있고, 그 돈으로 곧장 자기 가족들이 사고 싶어 하던 물건을 사는 사람도 있으며, 심지어 그 돈을 즉시 은행에 넣어 자기가 차지하는 사람도 있다. 형제자매가 재물을 가지러 가면 그들이 인정하겠느냐? 적그리스도 부류는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그가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는 목적은 이득을 얻기 위함이다. 그 이득에는 하나님의 제물과 하나님 집의 재산, 나아가 형제자매 각자의 물품들까지 포함된다. 그렇기에 적그리스도는 탐욕과 욕망, 개인의 야심을 품고 본분을 이행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들은 진리를 추구하거나 하나님의 심판 형벌, 구원을 받아들이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온갖 이득과 편의, 그리고 재물을 위해 온 것이다. 이들은 탐욕과 욕망으로 점철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마음을 어디에 두겠느냐? 하나님 집의 재물에 둔다. 그래서 그들은 접대 본분을 이행할 때, 하나님 집에서 누구에게 어떤 물건을 사 주었는지, 하나님 집에서 누구에게 얼마나 많은 돈을 주었는지, 누가 접대 본분을 이행하면서 하나님 집과 형제자매들로부터 얼마나 큰 편의를 제공받고 어떤 이득을 보았는지 등에 집중하며, 이런 것들을 살핀다. 만약 평범한 형제자매를 접대하게 되어 어떤 이점도 얻지 못한다면, 갖가지 핑계를 대며 본분을 거절할 것이다. 하지만 윗선 리더를 접대한다고 하면 태도가 180도 바뀌어 얼굴에 웃음꽃이 피며 은근히 기대하면서 그 ‘큰 인물’을 한시바삐 자기 집으로 초대해 하나님처럼 모시지 못해 안달이 난다. 그는 그 기회를 돈줄, 화수분으로 보며, 만약 그 기회를 놓치면 부자가 될 기회도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어찌 놓칠 수 있겠느냐? 그는 탐욕과 욕망을 품고, 하나님 집의 재물을 횡령하겠다는 동기와 속셈을 가진 채 이득을 볼 수 있는 그 본분을 받아들인다. 최종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기 위한 것이겠느냐? 형제자매를 잘 접대하기 위한 것이겠느냐? 충성을 바치기 위한 것이겠느냐? 진리를 얻기 위한 것이겠느냐? 모두 아니다. 그는 이 기회를 틈타 이득을 보려 한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접대하지 않겠지만, 지위가 있는 리더 일꾼이라고 하면 얼른 접대한다. 또 갖가지 핑계를 대며 하나님 집에서 갖가지 생활용품이나 가사용품을 구매하게 한다. 그러고는 “리더가 왔는데 너무 열악한 곳에 머물게 할 수는 없지요. 접대를 더 잘하려면 미리 물건을 좀 사 두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집에서 제공하는 것들을 저희는 누리지 않을 것입니다. 설령 누린다고 할지라도 떡고물이나 좀 떨어지는 거겠죠. 이 밖에, 리더가 왔을 때 저희가 평소에 먹는 것들이 입에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리더는 할 일이 무척 많은 사람인데 몸이 망가지기라도 한다면 이는 우리, 접대하는 사람들의 잘못 아닐까요? 그러니 리더의 하루 세 끼는 교회에서 준비해야 합니다. 우유며 빵, 계란, 각종 채소, 과일, 고기, 영양제까지 모두 준비해야죠.”라고 말한다. 참 용의주도하게도 생각하지 않느냐? 적그리스도는 겉으로는 사람의 말을 한다. 하지만 그가 진심으로 리더를 위해 생각하겠느냐? 뒤에 숨겨진 목적은 과연 무엇이겠느냐? 그 목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집이 가난해서 좋은 것을 먹어 보지도, 접해 보지도 못했다. 그래서 이 기회에 식견을 넓히고 부자의 삶, 먹는 걱정 입는 걱정 없는 삶을 살아 보려는 것이다. 또 이 기회에 몸보신도 좀 하고, 평범한 사람은 먹지 못하는 음식도 좀 먹고, 일반인이 누리지 못하는 대우를 누려 보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런 생각을 매우 용의주도하게 드러냈다. 그 용의주도함 뒤에는 무엇이 있겠느냐? 그는 스스로를 위해 계획하며, 이러한 것들을 얻고 가지려 한다. 스스로를 위해 계획하기에 용의주도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었더라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리더를 접대한 이후, 그 적그리스도는 정말 더 나은 삶을 살게 됐다. 그러자 그는 또 생각했다. ‘이런 삶을 사는 것도 괜찮지만, 이 물건들은 결국 내 것이 아니잖아. 언제 이것들이 내 것이 될까? 리더를 쫓아내자니 이것들을 누릴 수 없을 것 같고, 그렇다고 쫒아내지 않자니 좋은 마음으로 접대할 수도 없겠어. 이런 이득들이 없다면 나는 이 본분을 이행하지 않을 거야.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밤늦게까지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시중을 들어야 하는걸. 이 본분을 이행하는 건 늘 득보다 실이 많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제공받는 편의와 누림은 아직 부족해. 리더가 계속 이곳에 머물면 어쩌지? 아무래도 뭔가 방법을 생각해서 그를 내쫓아야겠어. 그럼 우리 집도 한결 조용해지겠지.’ 이것이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일이겠느냐? 정상 인성을 지닌 사람, 진정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생각을 하겠느냐?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이런 생각을 한다. 아무리 큰 이득과 편의를 얻어도 그의 탐욕과 욕망은 채워지지 않으며, 그는 만족할 줄 모른 채 이렇다 하게 받은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쓸데없는 희생이자 대가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많은 것을 얻고 아무리 큰 편의를 제공받더라도 그는 자기가 손해라고, 하나님 집과 형제자매들이 자기에게 잇속을 차리고 있다고, 자기는 어떤 이득도 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시간이 길어지면 그는 그 이득들이 자신을 만족시켜 주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탐욕이 채워지지 않는 것이다. 말해 보아라. 적그리스도는 어떤 인성을 지녔겠느냐? 그에게 인성이 있겠느냐? (없습니다.) 인성이 없는 사람에게 양심이 있겠느냐? 그들에게 진정으로 본분을 이행하려는 마음이 있겠느냐? 그들이 겸허하고 진솔하며 진실하게 헌신하려는 마음으로 본분을 이행하겠느냐? 돈 한 푼 넘보지 않고,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으며, 어떤 상도 원하지 않은 채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어째서 그럴 수 없겠느냐? 그에게는 양심과 지각이 없다. 그는 아무리 큰 편의를 제공받아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정상인이라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없고,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 아니냐? 이런 생각, 이런 태도는 몰염치한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염치가 없는 사람에게 인성이 있겠느냐? 여기에서 염치도 양심도 없는 적그리스도의 본성이 드러난다.

염치가 없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어떤 사람이 염치가 없느냐? (정신병이 있는 사람이 염치가 없습니다.) 정신병이 있는 사람은 염치없이 벌거벗은 몸으로 거리를 뛰어다니며, 사람들이 쳐다봐도 자각하지 못한다. 어쩌면 그는 옷을 걸친 사람들을 비웃을지도 모른다. “아이고, 옷을 입는 게 얼마나 귀찮습니까. 저처럼 옷을 벗고 맨몸으로 거리를 뛰어다니면 얼마나 자유롭고 멋진데요!” 이는 염치가 없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염치가 없는 것이다. 염치가 없는 사람은 양심도 지각도 전혀 없다. 염치가 없는 사람은 정신병이 있는 사람으로, 누구에게나 잇속을 차리고 누구의 물건이든 다 탐을 낸다. 그의 탐욕과 욕망은 이미 정상 이성의 범주를 뛰어넘어 자제하기 어렵고 양심과 지각을 찾아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사람이 진리를 얻을 수 있겠느냐? 절대 진리를 얻지 못한다. 그는 오직 명리와 지위, 물질적인 이익만을 추구할 뿐, 진리를 얻을 수 없다. 그러니 천국에 그의 몫이 있겠느냐?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구원하지도, 온전케 하지도 않는다. 이런 사람이 불쌍하냐? (불쌍하지 않습니다.) 이런 자는 가증스럽고 역겹고 혐오스러우며, 사람들에게 경멸받는다. 이런 사람은 인격이 비열하고 저열하며, 존엄도 염치도 없다. 그들의 마음은 탐욕과 야심, 욕망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들은 본분 이행의 기회를 틈타 자신의 이익을 꾀하려고만 할 뿐,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진리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는 법도 없다. 그들은 하나님에게 기도할 때도 이득과 이익, 하나님의 축복을 얻게 해 달라고 간구한다. 그들은 하나님에게 자기가 어떻게 고생하고 대가를 치렀는지 말한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자기가 겪은 고생과 희생을 대가로 하나님과 흥정을 함으로써 축복과 상을 받아 내려는 것이다. 심지어는 공개적으로 하나님에게 손을 내밀며 자신이 원하는 물질적인 대우를 요구하기도 한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말하려는 것은 원망과 불복, 불만, 억울함, 원한, 그리고 탐욕과 욕망이 충족되지 못했을 때의 상실감이다. 하나님이 그들의 이런 모습을 보면, 그들을 좋아하겠느냐, 아니면 혐오하겠느냐? (혐오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교회를 위해 약간의 대가라도 치르면 바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공치사를 하며, 자신이 각종 본분을 이행하고 여러 사역을 할 때 희생하고 바친 것에 관해 하소연한다. 하나님이 그것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할까 봐, 그들이 치른 대가를 하나님이 잊어버릴까 봐 걱정한다. 그래서 이들은 하나님 앞에서 악으로 보이고 후안무치한 사람으로 보인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이 치른 대가를 이야기하고 설명할 때, 자기 소원 중 받고 싶은 것을 말할 때, 하나님에게 손을 내밀어 자기가 원하는 상을 요구할 때, 하나님은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라고 말할 것이다. 하나님의 태도는 무엇이겠느냐? “너 같은 자는 내 앞에 올 자격이 없다. 나는 네가 역겹고 증오스럽다. 네가 원하는 것을 나는 이미 주었고, 너는 이번 생에 얻을 것의 백배를 이미 얻었다. 그런데 또 무엇을 바라는 것이냐?”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려는 것은 주로 물질적인 것이 아니다. 대신 인류에게 진리를 주어 그 속에서 구원받게 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적그리스도는 공공연히 하나님의 사역에 대항하며, 진리를 구하거나 실행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이 사역하는 기간에 본분 이행의 기회를 통해 이득을 챙기려고 하고, 언제나 빈틈을 보고 잇속을 차리려고 한다. 또 늘 자기는 손해를 보고 잇속을 많이 차리지 못했다고, 자기가 희생하고 바친 것이 너무 많아 득보다 실이 크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언제나 자기가 희생한 것을 후회하면서 세심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뒷일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여긴다. 그래서 그들은 마음속으로 늘 자기가 희생한 후 바로 보답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해 분노하고, 하나님을 잔뜩 원망한다. 그들은 항상 이렇게 계산한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 아니었나? 사람을 불공평하게 대하시지 않는 분 아니었어? 사람을 축복해 주시는 하나님 아니었냐고. 하나님은 사람의 모든 선행을 기억하시고 사람의 모든 봉헌과 헌신을 기억하시는 것 아니었나? 나는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가정을 버리고 대가도 치렀어. 그런데 하나님으로부터 뭘 얻었지?’ 탐욕과 욕망이 단기간 내에 채워지지 못하면, 그들은 소극적으로 변해 원망한다. 만약 오랫동안 채워지지 못하면 마음속 깊은 곳에 원망이 잔뜩 쌓일 것이다. 이렇게 원망이 쌓이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겠느냐? 그들은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의심하고 하나님에게 따지며,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판단하고, 심지어는 하나님의 사랑과 본질을 의심한다. 원망이 오랫동안 쌓이면 이러한 것들은 독소가 되어 확산하기 시작하는데, 그럼 언제든 하나님을 배반할 수 있게 된다. 그들은 특히 연약하고 소극적인 데다가 분량이 작은 사람들 앞에서, 혹은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 안 된 사람들 앞에서 수시로 이 소극적인 감정을 표출하고 퍼뜨리며, 하나님에 대한 불만과 모독을 퍼뜨린다. 심지어는 분별력이 없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공의 성품과 본질에 의심을 품도록 오도한다. 이는 적그리스도가 하는 짓 아니겠느냐? 그들은 자신의 야심과 욕망, 추구와 속셈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런 일을 저지르고, 하나님에게 이런 태도를 보인다. 이는 어떤 성품이냐? 이는 의심할 여지 없는 적그리스도의 성품이자 사탄의 성품이다.

성경은 개역한글에서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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